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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6) 눈물 겨운 머슴살이 김장혁
2024년 04월 05일 10시 36분  조회:59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4. 눈물겨운 머슴살이
 
 
      푸실푸실 내리는 눈발 속에 토성 안 집 춤판이 어수선하게 끝났다. 콧수염쟁이도 일본 기생년들이 모두 녹작지근해 춤판에서 비틀거리며 물러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북장고소리가 멎고 대나무피리 소리도 잠을 잤다. 울안에는 광솔불이 활활 타오르며 주정배들의 떠들썩하던 미친 소리 빈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월선은 펑퍼짐한 엉덩이를 비뚤거리며 마루에 나가 앙칼진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쳤다.
     “득호! ”
    “예꾸마!”
   득호가 허리를 구부정하고 마루 앞에 뛰어와 딱 멈춰 섰다.
   “넌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니? 마당을 어떻게 쓸었으면 일본 귀빈이 미끄러져 넘어졌겠느냐? 일본 어른이 래일 일어나지 못하는 날엔 네 목이 날아나지 않는가 봐라.”
    "아이쿠!"
    득호는 뒤덜미를 긁적거리면서 두덜거렸다.
    “아니, 술에 취해 자기절로 미끄러졌구만두.  흥, 하나 밖에 없는 목을 치면 어떻게 합둥?”
   월선은 빗자루를 들고 버선발 바람으로 마루에서 뛰여내려와 득호를 마구 때렸다.
    “이 놈, 네놈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득호는 머리를 싸쥐고 피했다.
    “아니, 가마니를 쪽 깐 마당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게 누구 탓입둥? 막걸리를 배때 터지게 처먹고 너덜대다가 넘어갔는데두 내 탓입둥?”
    월선은 득호를 따라가면서 조겨댔다.
    “이 놈아, 이 놈, 전번엔 마차를 운주하에 처박더니. 흥! 이번엔 일본 어른신님을 넘어지게 하잖았나? 엉? 이 놈아, 일본 어르신님이 상하는 날엔 널 놔둘 것 같니? 엉? 엉? ”
    월선은 숨이 차 헐떡거리면서 빗자루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빨리 마당을 말끔히 치워라. 눈 내린다.”
    월선은 은녀가 부엌에서 부엌녀와 함께 설거지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러냈다.
    “은녀야, 여기 나오나.”
    “얘-”
    은녀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달려 나오자 월선은 책망부터 앞섰다.
    “‘얘’는 무슨 얘나? 말버릇부터 고치라는데도.”
    은녀는 혀를 홀랑 내밀면서 머리를 수깃했다.
    “내일 아침 물을 물 독에 꼴딱 길어라. 이 집에 들어온 지 이젠 몇달 되는데 아직도 뭘 시켜야 하겠니? 자기절로 척척 해야지.”
    “알았습구마.”
   은녀는 두말없이 물동이를 안고 풀풀 흩날리는 눈을 밟으면서 대문 쪽으로 나갔다.
   등뒤에서 월선의 귀 째질듯한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물독을 깨겠다. 주의해.”
    “예.”
   (먹을 땐 개 닭 보듯하다가도 저녁도 먹지 못한 은녀를 밤중에 물을 긷게 하다니? 한심한 년이라구야.)
  득호는 마당에 깐 멍석을 왈왈 거두면서 속으로 월선을 욕했다. 그는 널린 종이까지 걷어 낸 후 눈을 빠득빠득 밟으면서 마당의 눈을 쓱쓱 쓸었다.
   아무리 밤중까지 눈을 쓸고 또 쓸어도 하늘에서 푸실푸실 쏟아져내리는 눈을 어찌는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득호는 빗자루를 쥐어뿌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에 은녀 어떻게 물을 긷겠니?)
   득호가 뒤따라 가보니 저쪽 우물가에서 드레박을 잣는 소리가 삐꺼덕 삐꺼덕 들리었다. 뒤이어 드레박의 물을 물동이에 쪽 붓는 소리가 들리고 허연 그림자우에 꺼먼 물동이를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득호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은녀가 비칠거리다가 우물가의 얼음에 미끄러져 넘어갈 번했다.
   득호는 바삐 은녀를 부축하면서 물동이를 붙잡았다. 그는 은녀의 머리 우에 놓인 물동이를 내리워 안고 앞에서 씨엉씨엉 집 쪽으로 걸어갔다.
   “오빠, 괜히 암펌이 보면 욕 먹겠소.”
   은녀는 치마폭을 걷어안고 득호를 뒤따라 부랴부랴 대문 안에 들어섰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몸채에서 나온 월선은 은녀의 물동이를 안고 대문 안에 들어서는 득호와 그 뒤를 따르는 은녀를 보고 앙칼진 목소리로 고함쳤다.
   “아니, 득호, 마당을 쓸어라 하였지. 물을 길으라고 하였나? 꼴 보기 좋다. 그래 계집애를 뒤쫓아 다닌다고 바보가 장가갈 것 같냐?”
   은녀는 바삐 득호의 손에서 물동이를 빼앗아 이고 부랴부랴 정주간으로 들어갔다.
   득호는 뒤따라가면서 월선이쪽에 대고 입을 비쭉거렸다.
   “패놓은 장작이 산더미 같은데 또 패라고? 암펌 같은게. 씨, 주둥이만 벌리면 마당을 쓸어라, 장작을 패라, 잔소리 끝이 없네. 이거 못 살겠다.”
    월선은 득호의 잔등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뭣이 어찌구 어째? 꼽싹 꼽싹 들을 거지, 뭣이 어쩌고 어째? 그래 두지 같은 배에 공밥을 채우겠냐?”
    그래도 뭐라고 투덜거리는 득호를 보고 월선은 곁방에 대고 소리쳤다.
    “영팔아, 영팔씨!”
   영팔이 바지멀춤을 쥐고 달려나와 가달두새를 긁적거렸다.
   “왜 그랩둥?”
  “초저녁부터 벌써 기생 년을 끼고 자겠나? 저 득호를 호되게 족쳐라!”
    영팔은 득호를 노려보다가 월선을 보고 헤벌쭉 웃었다.
   “숱한 손님들이 왔는데 방망이찜질까지 할 필요 있습둥? 집이 조용할 때 다시 버릇을 가르쳐주면 어떤가요?”
   월선은 살기등등해 고함쳤다.
   “너를 곱다고 숱한 돈을 먹여 길렀냐? 저런 놈을 매우 치지 못할가?”
    영팔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차는 격으로 사랑방에 달려가 방망이를 들고 씽 달아나왔다. 그는 다짜고짜로 득호를 땅바닥에 개구리 메치듯 메쳐놓고 사정없이 방망이찜질을 해댔다. 투닥 투닥 방망이로 득호를 패는 소리 과부 집 떵메질 소리 같고 빨래터의 방치 질 소리 같기도 하다. 아니, 방망이로 다듬이돌우의 이불등을 다듬는 소리 같았다.
    은녀가 물동이를 팔에 끼고 나오다가 그 광경을 차마 볼수 없어 "앗!" 비명소리를 내며 입술 속에 손가락을 넣고 깨물었다.
    “요년, 넌 물을 긷지 않고 뭘 해?”
   월선은 득호를 자기 손으로 때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지 은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휘두르면서 살진 손을 날려 귀썀을 챨싹 갈겼다. 머리채를 놓고 또 귀썀을 힘껏 쳤다. 은녀가 주춤하다가 뒤로 살짝 물러섰다. 월선은 지나치게 힘을 쓴 바람에 휘청거리다가 그만 마루에서 반 고패를 돌다가 마루 아래로 뚝 떨어졌다. 언 땅에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신짝마저 저 멀리 뿌리어 나가 상통이 가소롭기를 그지없었다.
    떠들썩하는 소리에 구경나왔던 일본과 조선 기생 년들이 코를 싸쥐고 웃어댔다.
    “바까 새끼, 다렝아 고찌라데 다까꾸 사껜다까?(누가 여기서 고래고래 고함쳐?)”
   끼무라가 취해 뻐드려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마루에 나왔다. 그는 콧수염을 슬슬 매만지면서 사위를 둘러보더니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눈알을 무섭게 부라리면서 꽥 고함쳤다.
   한길수는 깜짝 놀라 아래방에서 마루에 뛰쳐 나왔다. 그는 끼무라의 무서운 눈길과 은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행악질하며 물앉아 있는 월선이를 번갈아보다가 월선에게 다가가 타일렀다.
   “여보, 숱한 일본 손님들 앞에서 이게 뭐요? 집안 허물내메. 흥!”
   월선은 은녀의 머리채를 더 힘껏 내동댕이치더니 어린애처럼 발버둥질 쳤다.
   “년놈들, 잘도 놀아댄다. 이젠 숱한 사람들앞에서 요년의 역성까지 들어? 내 섧어서 어떻게 살아? 어, 헝.”
   끼무라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추운지 고개를 돌려 들어가면서 대가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길수는 끼무라를 따라 윗방에 들어가 바깥을 가리키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시늉을 하고 손으로 너무 많이 마셨다고 배를 가리키면서 손시늉을 했다.
    그런데 눈치 빠른 끼무라는 자기를 많이 마셨다고 말한다고 피씩 웃었다.
    한길수는 다시 마루아래 쓰러진 은녀 앞에 다가가 볼품없이 헝클어진 은녀 머리를 쓸어올려주며 나직이 말했다.
    “밤도 깊었는데 이젠 물을 그만 길어라. 좀 있다가 끼무라 발이나 씻어드려라.”
    그때까지 옆에 물앉아 발버둥질치며 엉엉 울던 월선은 은녀를 쏘아보면서 을러멨다.
   “물 길으러 가지 못하겠냐?”
   그런데 한길수의 고함소리 하늘땅을 진감했다.
    “발을 씻어줘라!”
    은녀는 두 손을 모아 쥐고 입에 대고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길수와 월선을 번갈아보았다.
   길수는 월선을 쏘아보며 고함쳤다.
   “옳다, 은녀는 물 길으러 가구. 당신이나 끼무라 발을 씻어주오.”
    월선은 억이 막혀 입을 쫙 벌리었다가 천천히 다물더니 길수의 번대 머리에 대고 삿대질했다.
   “옳다, 여편네라두 종처럼 팔아서 일본 졸개나 해 처먹어라. 원, 못난 영감이라구야. 쳇!”
   길수는 황급히 웃방과 사랑방을 둘러보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끼 국장님이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다. 에구, 이년을 어쩌겠냐?”
    길수는 어린애 달래듯이 월선의 두 손을 잡아 끌어당기며 일으켰다. 월선은 영감을 못이기는 척하면서 아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월선은 아래방문을 활 열고 머리를 내밀더니 방망이를 쥐고 떡 서있는 영팔에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거기서 뭘해? 득호 그놈을 매우 치지 못하구.”
    그제야 영팔은 꿈에서 깨여난듯이 방망이로 득호를 때리는 시늉했다. 월선이가 들어가자 영팔은 방망이를 홱 팽개치고 두덜거렸다.
    “밤중까지 이 놈 종노릇을 못해먹겠다.”
    영팔이 득호를 놓아주고 기생 뽕녀가 기다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득호는 눈을 털고 일어나 외딴 사랑채로 들어갔다.
은녀는 득호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물동이를 정주방으로 들여갔다.
     그는 사랑채 제일 작은 칸으로 들어가 누더기 이불을 쿡 쓰고 드러누워 흑흑 흐느껴 울었다. 순간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고 멀리 사라진 성칠 오빠가 그리워났고 남동생 상호가 그리워났다. 그럴수록 더욱 슬프게 흑흑 흐느끼면서 울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입귀에 흘러내렸다가 베개잇을 적셨다. 칠칠야밤에 어두컴컴한 사랑방에서는 은녀의 섧게 우는 소리와 흐느낌소리가 가냘프게 들릴 뿐이었다. 은녀는 울면서 짜개바람이 불어 손가락을 주물렀다.
    벙어리 속은 벙어리가 안다고 득호는 은녀 처지에 마음이 미여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은녀를 어떻게 위안하였으면 좋을지 몰라 벽을 하나 사이 두고 서성거리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
    이때 은녀가 우는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문고락지 다치는 소리 떨꺼덩 들렸다.
    “누구요?”
     은녀는 황급히 어두운 방에 들어선 검은 그림자에게 물었다.
    “영팔이다.”
    “한밤중에 무슨 일이요? 나가오.”
    “먹을 거 가져왔다.”
    “필요 없소. 나가오.”
   “이건 주인영감이 보낸 거야. 배 든든하게 먹어라.”
   영팔은 구들 목에 뭔가 내려놓고 나가면서 두덜거렸다.
    “언 감자 같은 년을 첩으로 들여앉힐 예산인가? 한밤중에 자지도 못하게 나까지 심부름시켜? 흥!”
    영팔이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였다. 뒤이어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은녀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이윽고 은녀는 누더기 이불속에서 나와 영팔이 가져온 것이 뭔가 기여가 손 더듬질 해보았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맞 덮은 그릇이 몇 개 만지었다.
     점심부터 먹지 못한 은녀는 숟가락을 쥐고 몇숟가락 퍼먹다가 속으로 먹어서는 빚을 진 것 같아 안 되겠다 싶어서 숟가락을 내리어놓았다.
    “은녀야, 여기 나오너라.”
    월선이 부르는 소리.
    월선은 하루 종일 눈을 감기 전에는 함지 같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 심부름을 시키는 앙칼진 소리 온 울안에 우박 치듯 쏟아졌다. 
     은녀는 간신히 일어나다가 눈앞이 아찔해나면서 불티가 반짝였다. 하긴 수십명의 음식을 마련하느라고 쓴 물을 혼자 추운 겨울에 한 동이 한 동이 길었으니 소 힘이라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은녀는 안간힘을 다해 방바닥 쪽으로 벌벌 기여가 짚신을 찾아 신고 문설주를 잡고 간신히 일어나 비실비실 문 밖으로 나섰다.
     밤송이 같은 눈송이가 성미도 급하게 펑펑 쏟아져 내렸다. 울 안에 쓸쓸하게 한 많은 세상을 뒤덮어버릴듯 하얀 눈이 한겹한겹 하얀 이불을 깔리고 있었다.
     은녀가 정주간에 들어서니 등불 아래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월선이가 옆구리에 두손을 지른 월선이 콤파스처럼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 있었다.
    “부른지 언젠데 왜 이제야 나와? 얼른 윗방에 들어가 끼무라 국장님의 발을 씻어드려라.”
    “예?”
    “얼른, 왜 그리 꾸물거려?”
    은녀는 설거지를 하는 부엌여를 힐끔 곁눈질해보았다. 부엌여는 별수 없으니 어서 가라고 머리를 끄덕여보이며 눈짓했다. 은녀는 할 수 없이 풍로에 끓여두었던 물을 함지에 퍼들고 윗방으로 올라갔다.
   은녀가 미닫이문을 사르르 열고 윗방 안에 들어서니 끼무라와 월향이 껴안고 코를 드렁드렁 구르고 있었다. 치마 바람에 드러누운 월향의 새하얀 허벅다리가 흘러내린 치마 밑으로 드러났다.
    은녀가 물함지를 끼무라의 발치에 내려놓고 조심스레 각반을 풀기 시작했다.
     “바까(바보)!”
     갑자기 끼무라가 고함치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벽에 기대여 세워놓았던 군도를 쥐였다. 그는 은녀를 가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은녀는 화뜰 놀라 뒤로 물앉으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끼무라는 세수 대야와 은녀의 수척한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군도를 스르르 놓았다.
     흉악한 눈길이 차츰 음충스런 눈길로 변하면서 은녀의 탄탄한 몸을 노려보았다. 청춘의 싱싱한 매력을 풍기는  봉긋한 점 가슴, 누더기 치마에 가려진 허벅다리...
     "오, 우쯔꾸씨이 무스메(예쁜 처녀구나.)"
   끼무라는 싹아 떨어진 이발 새로 금 이발을 드러내며 은녀의 손을 잡으면서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놓읍소. 발을 씻어 드리겠습구마.”
    은녀는 움추린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뭘 놓으라?”
    이때 길수가 윗방 문을 쭉 열고 들어왔다.
    끼무라는 이젠 제법 조선말도 섞어 지껄였다.
    “헤헤헤, 발을 씻으라고, 시켰소까.”
    끼무라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코 수염 밑에 웃음을 지었으나 눈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미친 듯이 스치고 있었다.
   “난 또, 이년이 혹시 국장님을 해치려나 해서. 에헴, 헴.”
   끼무라는 뭐라는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요로씨이, 요로씨이.” 하고 연신 헛 대답을 했다.
    길수는 은녀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당부했다.
   “끼국장님이 곤할 텐데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발을 씻어주고 나가라.” 
   “얘.”
    은녀는 길수 영감이 요때 방에 들어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삐 끼무라의 각반을 풀고 양말을 벗긴 후 살진 발을 대야에 넣고 씻어주었다.
   끼무라는 눈을 지그시 감고 연신 “요로씨이, 요로씨이.” 하고 감탄했다.
   은녀는 발을 다 씻은 후 물 함지를 들고 부엌간으로 나갔다.
    그때까지 은녀의 봉긋한 젖가슴이며 펑퍼짐한 엉덩이에 눈 뿌리를 박고 있던 끼무라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입을 헤벌리더니 닭알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마저 다시였다.
   끼무라는 그때까지 옆에 우두커니 서있던 길수를 쳐다보면서 “저건 웬 새애기냐?” 하고 넌지시 물었다.
   “예, 우리 집 부엌데기 은녀라는 계집앱죠.”
   “오.”
   끼무라는 색마의 눈알을 희번뜩거리더니 길수를 게슴츠레 바라보며 헤벌쭉 웃었다.
   "내, 당신 사위하면 어떻소?“ 
   "네?"
   끼무라의 정신나간 소리에 한길수는 우멍눈이 다 튀여나올 지경이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 월향이 깨여나면서 도도도 거리었다.
    “밤중에 무슨 뉘네 사위한다고 이래요? 호호호. 촌수 개판이구먼. ㅎㅎㅎ. 소 웃다가 꾸러미 터질 일인데요. 국장이란 녀석이 우리 집 머슴여를 욕심내 사위 하겠다잖아? 호호호.”
    길수도 월향의 말에 코를 싸쥐고 우멍 눈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길수와 월향을 힐끔힐끔 번갈아보던 끼무라 국장은 취김에 그런 실수를 하고 너무나 창피해 비단요우에 스르르 너부러지더니 자는척했다.
    집 안에는 살진 돼지 콧수염쟁이 코고는 소리 드렁드렁 구들 고래를 다 훑어가며 요란했다.
    드르릉, 드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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