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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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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5)
2016년 06월 24일 15시 50분  조회:195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16 조상들의 산소
1.외로운 무덤
골짜기 어디에선가 샘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리었다. 일본 놈들한테 빼앗긴 고향 산천에는 의연히 샘물이 흐르고 있어 다행이었다.
경인은 수림이 꽉 뒤덮인 산속에서 헤매다가 골짜기에 내려가 끝내 퐁퐁 솟구치는 샘물을 찾아냈다. 그는 두 손으로 샘물을 퍼 마셔 타는 목을 축이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뭘 파는 듯 괭이소리 들렸다.
경인은 골짜기에 듬성듬성 난 쑥대를 헤가르면서 소리 나는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아니, 아버지와 근형이 이런 산골짜기에 뭘 팔가?”
경인은 허리를 펴고 황급히 아버지한테로 달려갔다.
“아버지, 큰일 났습구마. 경민과 경욱이 몽땅 일본 놈들에게 잡혀갔습구마. 경민은 야마모도란 놈이 휘두른 검에 왼손이 날아났습구마."
“뭐라고?!”
최구장은 맥없이 비 물에 괴죄죄한 땅바닥에 풀썩 물앉았다.
“그 놈들과 정말 한 하늘을 쓰고 못살겠구나.”
근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구장은 근심이 태산 같았다.
“에이, 손비는 어쩔까? 하혈이 심한데 관준네 약도 못 쓰고. 경민은 검에 찍혀 끊어난 팔을 어쩌니? 신설집 병관네 약을 썼으면 팔이 썩지 않겠는데.”
최구장이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에 경인은 다소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아버지, 그 집안이 정말 그렇게 용한 명의내력입둥?"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은 한 처녀애가 두 손을 머리 위에서 내리우지 못해 어미와 함께 신설집에 찾아왔댔어. 건데 병관 영감이 그 처녀애를 보자고 가까이 오라 손짓하더니 불시에 치마를 활 들어 올렸단다. 속치마도 입지 못한 그 처녀애는 부끄럽고 놀라 두 손을 내려 치마를 붙잡더래. 그래 두 손이 자연스레 내려왔대.”
“어허, 거 정말 용하구만요.”
경인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최구장은 근형이가 잡은 괭이자루를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경인과 근형이 최구장을 부축했다.
“아버지, 여기다 움을 파서 뭘 합니둥? 만주로 가깁소. 일본 놈들의 등살에 이런 동굴에서 못 삽구마. 황차 장마철이지.”
최구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도 만주로 당장 가야 한다는 걸 알아. 허나 성남에 묻힌 아버지 산소를 홀로 둔 채 차마 떠나가지 못하겠다. 아버지 고향 개성에 모셔가든지 만주국에 모시고 가든지 해야 하겠어
경인은 머리를 홰홰 가로저었다.
“지금 일본 놈들이 우릴 죽이지 못해 헤맵구마. 잡히면 어쩌자고 그래요?”
근형도 괭이를 내려놓으면서 삼촌의 말에 찬동해 나섰다.
“옳습구마. 할아버지 산소를 가만히 남겨두고 가면 누가 다치겠습둥? 고향이나 만주국에 모시고 가기보다 계속 여기 모시는 게 어떻습둥?"
최구장은 먹장구름이 뒤덮인 먼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장탄식했다.
“얘들아, 아무리 험난한 일이 있더라도 조상들의 산소는 잘 모셔야 한다. 조상이 없이 우리가 있을 수 있냐? 조상들을 잘 모시면 덕을 쌓고 후대들도 복을 받는 법이야. 산소에 가토를 많이 하면 후대들이 번성하고 풀이 무성하면 재앙을 입게 된다는 말이 있어. 아버지를 어떻게 이 일본 놈들이 득실거리는 눈물 젖은 땅에 외롭게 남겨두고 가겠느냐? 아버지를 아버지 고향인 개성에 모시자면 기차를 타면 한 이틀 가면 당도할게야. 그러나 이젠 일본 놈들의 눈에 나서 기차에 모시고 갈수 없게 되였구나. 만주국에 모시고 가는 게 옳아. 만주국에 가서 아버지 산소를 잘 모시는 게 옳다. 얘들아, 아버지 유골을 파서 그곳까지 메고 갈만하겠느냐?”
경인과 근형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지지해 나섰다.
“우리 번갈아 할아버지 유골을 업고 만주국까지 가겠습꾸마.”
최구장은 아들과 장손의 어깨를 툭툭 치였다.
“참 장하구나. 너희들은 정말 효자현손들이야. 경인은 더 지체말구 처자들을 데리고 먼저 만주국에 들어가라. 우리 들어가면 살 집이나 봐둬라. 내 근형과 함께 손비도 구해내고 집도 팔아 뒤처리해가지구 아버지를 모시고 들어갈게.”
“어찌 아버지와 형제, 조카들을 사지에 남겨두고 내 혼자 살겠다고 몸을 빼겠습니까?”
경인이 떠나갈 념을 하지 않자 최구장은 화를 버럭 냈다.
“네 이 놈, 아버지 말을 거역해? 만주에 가는 게 나를 생각하는 게야.”
경인은 아버지에게 절을 꾸벅 올리었다.
“아버지, 몸 조심합소. 만주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경인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신설집으로 갔다.
그는 신설집에서 아내와 아들딸들을 데리고 정든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떠나면서 그는 먼 산기슭을 감돌아 흐르는 고향의 강 운주하를 돌아다보았다.
순간 운주하 백사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검무를 추던 일로, 빨래터에서 어금을 만나던 일로, 버들강변에서 어금과 연애하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는 저도 몰래 코마루가 시큼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열 살도 되나마나한 근현은 종알거리면서 물었다.
“아버지, 우린 어디로 가는가요?”
“이밥도 배불리 먹는 살기 좋은 곳으로 가지.”
근환은 새까만 눈을 한번 깜짝하지도 않고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래 가면 언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가요?”
그 천진한 물음에 경인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한참 후에야 그는 무겁게 입을 떼였다.
“이담 너희들이 크면 꼭 고향 집으로 찾아오너라.”
근환의 물음은 끝이 없었다.
“그럼 우리 클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가요?”
“그거 몰라? 이담 우리 크면 집으로 찾아오라고 하잖아.”
옆에서 근원이가 아버지 손을 쥐고 걸으면서 아는 척 하면서 끼어들었다.
“안 돼, 난 운주하에서 고무신 배랑 띄우면서 놀겠는데. 언제 그렇게 오래 있다가 오겠니?”
근현도 끼어들어 종알거렸다.
“난 배불리 먹기만 하면 인차 돌아올 테야. 운주하에서 모래에 물도랑이랑 파고 물레방아를 돌리면서 놀고 싶어.”
철부지 애들 말에 어금은 하염없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들의 섭섭한 기분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경학은 떠나가는 그들의 뒤에서 빈정거렸다.
“쳇, 별게 다 공밥을 처먹구서 약값도 내지 않고 달아나! 흥!”
옆에 서 있던 형내가 경학을 쏘아보았다.
“그럼 못 써. 저 분은 내 스승님의 둘째아드님이시어.”
그래도 경학은 까만 눈을 깜빡거리면서 툴툴거렸다.
“형님 스승의 아들이면 어때? 나하고 무슨 관계있소. 우리 집 쌀독만 바닥이 날게 아니요?”
형내는 더는 참지 못해 경학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인정머리 없는 놈 새끼야, 저분은 우리 칠촌고모부야. 팔촌이 한 구들이라는데 친척도 모르는 새끼, 다시 개소릴 쳤다간 없어! 알아?!”
경학이 볼을 싸쥐고 엉엉 울면서 집안으로 들어가자 상철과 관준이 형내를 나무랐다.
“말할 거지 왜 손찌검이냐?”
경인은 뒤에서 하는 수작들을 다 들었지만 못들은 척 하고 길만 다그쳤다.
최구장은 동굴을 파다 말고 새단의 약 첩을 달일 데 없는데다가 배고파서 수림에서 내려와 신설집으로 들어왔다.
마당에서 조약돌로 차기를 놀던 경학과 광학이 보기 싫어 쓴 눈길을 보냈다.
“별 것들이 다 밥 축을 내러 온다.”
형내가 무섭게 경학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경학은 겁나 혀를 홀랑 내밀더니 삽작문 밖으로 달아났다.
형내는 바삐 마루에서 땅바닥에 내려나가면서 인사했다.
“스승님, 모처럼 우리 집을 찾아오셔서 반갑습구마.”
“고맙네.”
이때 상철과 관준이 마중나와 반갑게 인사했다.
최구장이 장손을 데리고 마루에 들어서자 상철의 처가 헤헤 웃으면서 함지에 발을 씻을 물을 담아 들여왔다.
“발에 묻은 싯누런 흙을 씻고 들어가시우. 구들을 다 어지럽히겠습구마.”
상철은 안해한테 흘끔 눈을 흘기더니 상을 찡그렸다.
“사람이 부실한데는 약이 없어. 거 무슨 소리오.”
상철은 미안해 허리를 굽히면서 “그대로 방에 들어갑소. 괜찮습꾸마.” 하고 말했다.
“아니, 며칠 만에 발을 씻는데 좋지”
최구장과 근덕은 널찍한 널마루에 앉아 함지 물에 발을 담그고 말끔히 씻었다. 뒤이어 최구장은 제일 위방에 들어가고 근덕은 형내와 함께 아래 방에 들어갔다.
그날 저녁에 최구장과 근덕은 한 끼 잘 대접받고 잠자리에 들었다.
밖에서는 번개가 번쩍이면서 집안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뒤이어 집 천정이 날려갈듯 천둥소리가 하늘땅을 진감했다.
최구장은 종내 잠이 오지 않았다.
(일본 놈들에게 잡히는 날엔 아버지를 만주에 모시고 가지도 못해! 자칫하면 아버지 산소마저 욕보일 수도 있잖아. 하루 급히 아버지를 모시고 만주에 가야 해!)
그는 막걸리를 마신 관준이 코를 드렁드렁 고르는 소리를 듣고 살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래 방에서 근형도 잠을 이루지 못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위방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소변도 볼 겸 스르르 방 미닫이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번쩍 하는 번개 불을 빌어 허리를 구부정하고 삽작문을 나서는 분이 바로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
근형이 소리치면서 삽짝문을 나섰다.
“쉿- 남들을 깨우겠어.”
최구장은 손을 휘저어 재차 소리 치려는 손자를 제지시켰다.
근형은 의아해 “할아버지, 야밤삼경에 어디로 갑둥?” 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넌 곤하겠는데 집에 들어가 쉬렴.”
“아니, 나도 가겠습꾸마.”
최구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난 아버지를 하루속히 파 모시고 만주국으로 가야겠어. 나온바 하곤 이 밤으로 아버지를 파내자. 소낙비 내리기에 일본 놈들이 찾아올 근심은 없을 거 같애.”
“예? 이젠 오래잖아 동이 트겠는데요.”
최구장은 먼동이 아직 트이지 않은 동녘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걸 가릴 새 있냐? 일본 놈들에게 잡히면 아버지를 만주에 모시고 가지 못할게 아니냐? 어서 서두르자.”
근형은 최구장의 팔을 부축하면서 산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들은 질척질척한 산길을 밟으면서 먼저 동굴을 파던 골짜기에 이르러 괭이와 삽을 찾아들고 수림으로 하여 성남 쪽으로 더듬어나갔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옷이 다 젖어 후둘 후둘 떨리고 덜덜 아래위 이를 쪼면서도 그들은 한사코 성남으로 찾아갔다.
근형은 정작 만주국으로 떠나가게 되니 불시에 다섯 살에 잃은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 어머니를 어찌 홀로 이 일본 놈들이 득실거리는 조선 땅에 남겨두고 가겠는가? 먼저 증조부를 모셔간 후 어머니도 모셔가자.)
그들은 어느덧 양지바른 산중턱 돌 토성을 두른 옛 성에 모신 산소 앞에 이르렀다.
번개가 번쩍이면서 쓸쓸한 무덤 앞에 꿇어앉은 최구장과 근형을 비추었다.
꽈르릉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감했다.
억수로 퍼붓는 소낙비를 맞으면서 최구장은 손자 근형을 데리고 절을 아홉 번이나 올렸다.
“아버지, 이 불효한 아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일본 놈들이 득실거리는 이 더럽혀진 땅에 아버지를 홀로 남겨 둘 순 없어 만주국에 모셔 가려고 합니다. 놀라시지 마시고 제가 모시는 데로 함께 가옵소서. 괭이질과 삽질에 많이 편하지 못하시더라도 불효자손을 용서해 주옵소서.”
최구장은 말을 마치자 훌쩍 일어나 근형을 돌아보았다.
“됐어. 이젠 시작하자.”
뒤이어 근형은 괭이질을 하고 최구장은 삽질을 했다. 그들이 한 둬 자 깊이 파 들어가자 썩은 관 널조각이 나왔다.
“아버지 뼈를 다치겠다. 이젠 괭이는 치우고 살살 삽질해.”
“예.”
최구장은 구덩이 속에 들어가 비 물에 질벅한 구덩이 위층 누런 흙을 매만지다가 나지막한 소리를 쳤다.
“나오셨다. 여기 머리가 만지는구나. 아버지, 양해하옵소서. 온 몸을 단번에 모시지 못해서 잠시 머리를 먼저 모셔 내갑니다. 차차 온몸을 다 모셔 내가겠습니다.”
최구장은 더듬어 내는 족족 “이건 머리다.”, “이번에는 목 뼈 같구나.” 하면서 근형에게 넘겨주었다.
근형은 구덩이 밖에서 하나하나 받아서 비 물이 줄줄 흐르는 땅바닥에 사지를 맞추어 죽 이어놓았다.
한참 후 일을 마치자 최구장은 근형의 손을 잡고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이때 뜻밖에 근형이 왕왕 대성통곡을 쳤다.
“아니, 얘가 웬 일이냐? 누가 듣고 오겠다.”
“할아버지, 난 엄마 산소를 저기 두고 만주국으로 못 가겠습꾸마. 엄마도 모시고 가겠습꾸마.”
그제야 최구장은 허리를 쭉 펴더니 근형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도 효자는 효자로구나. 네 엄마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 그런데 단번에 두 사람을 업고 그 먼 만주국으로 가지야 못하지. 어떻게 한다?"
최구장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었다.
"옳다. 네 엄마를 네 외가 집 산소에 모셔 가면 어떨까? 저 길주로 나가는 업동에 네 외가 집 산소들이 있잖니?”
“거기에 모시고 만주에 가면 어떻게 다시 찾아 봅둥?”
“야, 이 놈아, 증조부와 엄마를 단번에 만주국에 데리고 갈순 없지 않아? 먼저 거기에 모셔 뒀다가 후에 천천히 만주국에 모시고 가자.”
그제야 근형은 뒷덜미를 썩썩 긁적이었다.
“이젠 먼동이 트는구나. 어서 서두르자. 어데 가서 가마니라도 얻어다가 먼저 아버지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켜야 하겠어.”
그제야 근형은 비 물에 폭 젖은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연신 “예, 예.”라고 하면서 괭이와 삽을 구덩이 속에 파묻어두었다.
“야, 그건 경인이네 쓸만 한 삽이야. 가지고 가자.”
“아니, 여기 뒀다가 엄마도 파서 모시고 만주로 가겠습꾸마.”
“응, 그게 바로 효자 처사야. 자기 어시나 조상의 산소도 온전히 모시지 않는 놈이 어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겠어?”
그들은 비바람 속에서 유골을 하나, 하나 주어 냈다.
 
 
            2.부모의 유골을 모시고

근형은 가마니를 얻으러 떠나갔다.
최구장은 합장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을 머리로부터 발가락까지 죽 순서대로 맞춰놓았다. 아버지 유골을 내려다보는 최구장의 주름 잡힌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버지, 어머니, 부모를 고향에 모셔야 하는데 일본 놈들 때문에 길이 막혔어요. 어이, 어이. 생전에 잘 모시지 못했는데 세상을 떠난 아버지마저 내 고향에도 모시지 못하는 이 불효한 아들을 용서하옵소서. 어이, 어이. 흑흑. 어이, 어이.”
최구장은 처음에는 곡을 하면서 하소연하다가 저도 몰래 흐느끼면서 대성통곡 했다. 이 시각 그는 일본 놈들이 자기를 뒤쫓는다는 것마저 다 잊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다만 세상을 떠난 아버지마저 고향의 산소에 편안히 모시지 못하는 것을 뉘우치려는 것 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근형이 벌건 나무궤짝을 바 줄로 묶어 등에 지고 오지 않겠는가.
“아니, 손자야, 어데서 이렇게 좋은 궤짝을 가져 왔냐?”
최구장은 단단한 나무궤짝을 매만지면서 물었다.
“관준 사돈과 가마니를 좀 달라고 하니까 자초지종을 묻더니 사랑방에서 이 궤짝을 내다가 줍디다. 그는 ‘너 할아버지는 참말로 유교학설을 닦은 효자로구나.’하고 말씀하지 않겠습둥?”
“어이구, 감사할 변이라고. 적송으로 짠 단단한 궤로구나.”
근형은 궤짝을 벗어놓고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더니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사돈아바이네 옵구마.”
최구장이 뒤를 돌아다보니 관준과 상철, 형내까지 3대가 솔밭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여기까지 올 거야 있소? 사돈, 저렇게 좋은 궤를 주어서 정말 고맙소.”
너부죽하게 생긴 관준은 사람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사돈할아버지를 모시는 이런 중대사가 있으면 말씀이라도 하셔야지. 우리도 흙 한 삽이라도 파주지 않았겠소? 야밤삼경에 혼자 이렇게 나와서 면례를 하오?”
최구장은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치례를 했다.
“자다가 불시에 아버지 생각이 나서 나왔는데 사돈까지 깨워서 미안하오다.”
관준도 허리를 굽히면서 맞 인사를 했다.
“에이, 천만에 말씀을. 사돈이 한집안이라는데 별 말씀을 다 하오다.”
관준은 쪼그리고 앉아 최구장을 도와 비 물에 하얗게 바래진 유골을 궤에 순서대로 담았다.
최구장은 아버지를 모신 궤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휘 뿌리면서 절을 올렸다. 관준, 상철과 근형도 따라 절을 올렸다.
뒤이어 최구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렇게 총망히 면례행사도 올리지 못하고 부모를 모시고 정든 고향을 떠나가는 불효를 널리 양해해 주옵소서. 시국은 이 불효한 아들이 례도 올릴 경황이 없게 만들고 있사옵니다. 이제 만주국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면 산소에 편안히 모시고 가토도 많이 올리겠나이다. 아버지! 어이, 어이,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옵소서. 어이.”
최구장은 곡을 하다가 대성통곡 쳤다. 근형도 팔소매로 얼굴을 닦으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모두들 한동안 “어이, 어이.” 하고 곡을 했다.
“자. 그만하고 길을 떠나기요. 일본 놈들한테 잡히면 큰일 나겠소.”
관준은 최구장을 부축해 일으켰다.
형내가 먼저 궤를 지겠다고 나섰다.
“아니요. 내 손자 메면 되오.”
형내는 기어이 자기가 지겠다고 나섰다.
“그러지 맙소. 만주국까지는 몇 천리도 되겠는데 근형 사돈의 힘은 남겼다가 쓸 일이 많고도 많습니다.”
“고맙소.” 최구장은 다시 산 사람과 말하듯이 정중하게 말했다.
“아버지, 놀라지 마옵소서. 이젠 정든 고향을 떠나 천천히 만주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최구장은 아버지가 묻혔던 산소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자꾸 되돌아보았다. 근형도 팔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으면서 삽을 파묻어둔 자리를 재확인하듯이 자꾸 되돌아보았다.
한 일리나 걸은 후 근형이 형내의 어깨에서 궤를 받아 지고 질척질척한 누런 산길을 걸어 나갔다.
근형이 나무 궤를 메고 신설집 삽작문 안에 들어서자 상철의 처가 중얼거리면서 마중 나왔다.
“이 양반들이 신새벽에 나가더니 뭘 메고 들어와? 어머, 간밤에 소낙비가 쏟아지더니 송이버섯을 한 궤나 캐가지고 왔잖아?”
       관준은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리고 뒤에 서 있다가 눈을 둑 부릅뜨고 발을 탕 굴렀다.
“에이, 상철이 어데서 저런 부실한 후처를 데려왔소? 양해하오. 사돈어른.”
       최구장은 그저 한숨만 후 내쉬였다.
"원래야 저렇지 않았는데. 그만 일본 놈들 총박죽에 머리를 맞은 후부터 저렇게 부실하게 됐다니까. 우리 가문이 아무리 대대로 명의라  해도 저 며느리 부실한 병을 떼는 약은 없소. 참 답답하오.”
최구장과 관준이 시키는 대로 상철과 형내, 근형은 우방에 고인의 유골을 모시고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 후 관준은 숭늉 물에 양치질을 하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만주국까지는 천리나 되겠는데 어떻게 저 무거운 궤를 지고 가겠소. 상철과 형내를 보고 우리 집 수레에 모시고 두만강 강변까지 바래다드리게 하겠소.”
최구장은 황망히 “감사하오." 하고는 손사래를 쳤다.
"우린 일본 놈들에게 쫓기는 몸이오. 어찌 사돈들을 연루시키겠소. 그러지 마오.”
이때 아래 방에서 경학이 형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형님, 들었지. 형님은 이 소낙비 오는 날에 절대 소 수레를 몰고 나서지 마오. 괜히 일본 놈들의 군도에 목이 뚝 떨어지겠소.”
형내가 경학을 훌 밀어놓았다.
“그럼 못써!”
위방에서 그 괘씸한 행동거지를 다 내려다본 관준은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마른기침을 몇 번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헴, 사돈어른, 저 철없는 애들의 말을 탄하지 마오.”
최구장은 “아니,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애들을 탓해 뭘 하겠소?” 하고는 덤덤히 앉아 있었다.
최구장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뒤 근심이 나는데다가 갈 길이 멀어서 인차 떠나야겠소.”
관준도 너부죽한 얼굴에 긴장한 빛을 띠웠다.
“양. 더 말리지 않겠소. 형내야, 소수레를 메워라. 경학도 함께 가라.”
아래 방에서 경학이 투덜거리자 관준이 더는 참지 못하고 아래 방으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너 이 놈 새끼, 감히 내 말을 거역해? 네놈이 이렇게 부덕하기에 의술을 물려주지 않은 거야. 항상 맏형에게만 의술을 물려주고 자기한텐 목수재간만 배워줬다고 입에 다발을 걸 지경이라도 별수 있어?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죽이고 하는 의술은 너같이 덕이 없는 놈에게는 물려주었다간 큰 경을 치겠다. 네 오늘 사돈어른의 유골을 두만강변까지 모셔가지 않는 날엔 이 집에 발을 들여놓게 하는가 봐라!”
최구장은 말리었다.
“사돈어른, 이러지 마오. 내 더 미안하다니까.”
할아버지 성질을 알만큼 아는 경학은 할 수 없이 투덜거리면서도 수레를 메웠다.
“별, 사돈의 부모 유골이지 우리 부모 유골이라데?”
관준은 최구장의 눈치가 보여 더 욕하지 못하고 건 가래만 크게 뗐다.
좌우간 관준의 덕에 최구장은 아버지 유골을 수레에 모시고 비 오는 날에 두만강을 바라고 길을 떠나게 됐다.
최구장은 아침에 수림으로 돌아올 때 나무숲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이제껏 속이 불안했다. 순간 웬 늑대가 자기들을 노리면서 살피고 있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최구장은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엉거주춤 일어났다.
“사돈어른, 실례하기요. 일본 놈들의 개가 도처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소. 우리는 갈 길이 머니까 떠나야 하겠소. 폐를 끼치는바에 주먹밥이라도 좀 주오.”
그러자 관준은 하얀 염소수염을 슬슬 내리쓸면서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최구장, 두만강 강변까지는 오백리길이나 되오. 그러니 아예 저 상철과 형내를 보고 우리 집 수레에 유골을 모시고 가게 하겠소.”
상철도 동을 달았다.
“사돈어른, 우리 부자가 수레에 모셔다 드리겠습꾸마.”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니요. 우린 일본 놈들에게 쫓기는 몸들이요. 사돈어른 일가를 연루시킬 순 없소.”
이때 아래 방에서 형내가 선뜻이 나섰다.
“스승님, 근심하지 마십시오.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오백리 아니라 천리라도 모셔다드려야죠.”
“그러오. 이 소낙비 오는 날에 어떻게 유골을 메고 만주국까지 가겠소? 둘째손자 경학도 딸려 보내야 하겠소.”
병관의 말에 최구장은 바늘방석에 앉은 듯이 안절부절 못했다.
“아니, 둘째손자까지 보낼 게야 있소?” “철부지애지만 효성이라는 게 뭔가를 알아야 하오. 저놈에겐 최구장의 가르침을 받을 좋은 기회요.”
최구장은 관준의 덕분에 아버지 유골을 수레에 모시고 길을 떠나게 됐다.
상철의 후처가 정지에서 나오더니 주먹밥 한주머니를 수레에 실으면서 투덜거렸다.
“송이버섯이랑 많이 캤으면 내놓을게지. 깍쟁이 같은 양반들이 그 채로 싣고 장마당에 가?”
그녀는 얼굴을 들어 상철을 보면서 “여보, 시내 장마당에 가면 생선이나 한 구럭 사오오.”라고 말했다.
상철이가 눈을 흘겼다.
“에이유, 저 부실한 여편네를 어쩌겠소. 누가 바로 장마당에 가는가 하오. 쯧쯧.”
그는 뒤에 서 있는 최구장을 돌아다보면서 “사돈어른, 부실한 사람의 말을 탄해 듣지 맙소.” 하고 사과의 말을 했다.
최구장은 그저 묵묵히 서 있다가 바래러 나온 관준에게로 다가갔다. 상철과 형내가 수레를 몰고 앞에서 걷고 경학은 마지못해 느릿느릿 뒤따라갔다. 최구장과 근형은 뒤에서 관준과 인사를 나누었다.
“고맙소. 사돈어른, 덕분에 쉽게 두만강까지 가게 되였소.”
관준은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인사를 받았다.
“마땅히 도와야지요. 사돈어른의 효성에 정말 감동을 받았소. 다 남의 일이 아니요. 내야 감사를 드려야 하겠소. 자식들에게 사돈의 훌륭한 본을 잘 보여주게 되여 일거양득이요. 이담 우리도 만주국에 가게 되겠는지 조상들의 산소가 참 근심스럽소. 에이유, 이 놈의 세월에 아무 일도 없이 고향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면 조상들의 산소도 아무 문제없이 고향에 모시겠는데 말이요. 후유-”
관준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궤 춤에서 동전 한줌 꺼내주었다.
“이걸 적은대로 로비로 쓰오.”
최구장은 관준의 손을 굳게 잡고 흔들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사돈어른, 참 고맙소. 여기 고향에서 살기 힘들면 만주국 함흥촌에 오오. 거기서 우리 함께 잘 살아보기요.”
인품이 좋은 관준은 최구장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양, 그때 보기요. 내 삼촌도 함흥촌에 간지 몇 해 되는데 살기 괜찮다고 자꾸 오라고 하오. 내 가보니 함흥촌도 일본 놈들의 포위토벌까지 받았던데 그 놈들의 성화에 어디 마음 놓고 병이나 보면서 살겠는지 모르겠소? 조만간에 우리도 만주국에 들어가야 할 것 같소. 허나 근심은 태산 같소.”
이쯤 하고 그는 화제를 돌렸다.
“우리 애들은 일본 놈들에게 괜찮으니까 수레를 몰고 큰길로 가고 사돈네는 썩 떨어져서 가든지 위험한 시내를 지날 때는 피해 가오. 아픈 머리를 치료도 하지 못하고 떠나가는구먼.”
최구장도 관준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고 흔들었다.
“이렇게 갈라지면 언제 또 만나겠소?”
최구장과 관준은 오래도록 손을 잡고 흔들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작별했다.
최구장이 허연 팔소매로 눈물을 훔치면서 몸을 돌려 형내가 모는 수레 쪽으로 비칠비칠 걸어갔다.
앞에서 경학이가 하는 신경질적인 말소리가 최구장의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에이 씨, 사돈영감네 뼈다귀가 무슨 그리 대단해다고 이렇게 흐린 날에 우리를 보고 실어가라는 게야?”
“닥치지 못해?! 이놈 새끼, 다시 개 주둥이를 놀리기만 해봐라. 가만 놔두지 않겠다.”
형내가 경학을 욕하면서 뒤를 힐끔 돌아다보았다. 최구장은 못들은 척 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질척질척한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그들이 마을에서 한 이리쯤 떨어진 산기슭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마을 쪽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상철은 황급히 최구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사돈어른, 빨리 산에 올라가 피합소. 일본 놈들이 쫓아오는 것 같습구마.”
최구장은 마을 쪽을 돌아다볼 뿐 발에 뿌리라도 내린 듯이 뜰 념을 하지도 않았다.
“빨리 피합소! 스승님!”
형내도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재촉했다.
그러나 최구장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피하려면 다 함께 피하기요. 나만 도망가고 사돈네를 욕보게 해서야 되오? 연루시킨 것만 해도 죄송스러운데.”
그러자 형내는 스승 최구장을 마구 끌고 산기슭으로 가면서 말했다.
“스승님과 저 사돈만 피하면 일본 놈들은 전과가 없는 우리 집 식구들과는 어쩌지 않을 겁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그 말에 도리가 있는지라 최구장은 근형과 함께 산기슭으로 올라가 수림 속으로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경학은 옆에서 또 투덜거렸다.
“괜히 사돈네 유골로 해서 우리가 봉변을 당하게 되였구나.”
형내가 눈알을 부라렸다.
“주둥이를 다물어. 자칫 목이 날아나.”
가메다란 헌병 놈이 말을 타고 영팔이 등 대여섯 명의 개다리를 끌고 덮쳐왔다.
가메다 놈은 별스럽게 입귀 오른쪽으로 하여 노란 털 한 모숨이 자랐다.
“이 놈들아, 그 궤짝 안의 건 뭐냐?”
가메다가 채찍으로 궤를 가리키면서 건방지게 물었다.
“조상의 유골입니다.”
형내 말에 가메다는 영팔에게로 낯을 돌렸다.
“나니까?(뭐야?) 유격대에 쌀을 실어가는 건 아냐?!”
“유골이라는뎁쇼.”
영팔의 말에 가메다는 의아해 하더니 을러멨다.
“유골을 실어가서 뭘 해? 들춰 봐!”
영팔이 팔을 홱 젓자 개다리들이 말 잔등에서 뛰어내려 우르르 수레에 뛰어올라가 궤짝을 활 열어 재꼈다.
삐꺼덕!
흐리멍덩한 하늘아래 산기슭에서 비명소리와 같은 삐꺼덕 궤를 여는 소리가 울렸다.
“에크!”
졸개들은 궤짝안의 유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놈들은 우르르 수레에서 뛰어내렸다.
“진짜 유골입니다. 유골!”
영팔과 졸개들의 말을 듣고서도 가메다는 믿어지지 않았던지 자기 눈으로 궤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유골 옆에 놓은 저 주머니 건 뭐냐?”
“쌀밥입니다.”
“쌀밥? 너희들 셋이서 저렇게 많은 쌀밥을 처먹어? 혹시 유격대에 실어가는 건 아냐?”
“멀리 가야기에 푼푼히 가져 왔소.”
        가메다는 하얀 수갑을 낀 왼손으로 코를 싸쥐고 궤짝 덮개를 닫으라고 오른손으로 손시늉을 했다. 한 졸개가 궤짝덮개를 쾅 닫아버렸다.
최구장과 근형은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떠나가려니 한 가메다는 말을 탄 채 수레 주위를 빙빙 돌면서 요것조것 따지고 들었다.
“조선 사람들은 왜 죽은 사람의 유골을 파가지고 다니는가?”
일본 말을 배운 형내가 나섰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효성이 지극해서 돌아가신 조상들을 더 좋은 곳에 모시려고 면례합지비.”
형내의 유창한 일어대화를 듣고 가메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계속 지껄여댔다.
“넌 우리 대일본제국 말을 참 잘하는구나. 황군의 양민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어. 이실직고해라. 최구장과 손자 놈이 운주동 산소에서 해골을 파가지고 너희들 집에 간적이 있다고 밀고 들어왔어. 우린 다 알고 따라왔어. 어서 말해! 최구장과 손자 놈이 어디로 갔어?”
상철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형내만은 아주 태연자약하게 일어로 대꾸했다.
“우린 최구장을 본 적도 없습니다. 이 유골은 우리 노할아버지 유골입니다. 혹시 새벽에 우리가 간걸 누가 잘못 보고 고발한 게나 아닌지요?”
가메다는 형내의 너부죽한 얼굴과 예지로 빛나는 까만 쌍가풀 눈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교할한 놈, 헌병대에 끌려가 죽겠냐? 실토정하지 않겠어?”
이때 경학이 겁을 집어먹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려고 했다.
“황군, 사실, 저…?”
가메다는 인차 털 한 모숨을 만지작거리면서 교활한 눈길을 경학의 새파랗게 질린 낯에 돌렸다.
“이실직고해. 너만은 살려줄게. 최구장이랑 어데 갔어?”
형내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부르르 떨면서 경학을 무서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사실 우리는 그들이, 그들이 어데 갔는지 모, 모릅구마.”
가메다 놈은 채찍을 들어 경학의 어깨를 짱짱 내리쳤다.
“앗!”
경학은 두 손을 들어 날아오는 채찍을 막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말햇! 말하잖으면 온 집 안 몽땅 몰살이야! 알았소까?!”
영팔이 옆에서 섬나라 오랑캐처럼 고래고래 고함쳤다.
졸개들이 우르르 덮쳐들어 상철과 형내, 경학을 질척질척한 길바닥에 꿇어앉히고 포승으로 뒷결박을 지었다.
거메다는 군도를 뽑아들고 당장 목을 내리칠 상을 하면서 호통 쳤다.
“당장 말해! 최구장과 그 아들놈 경인이, 그 놈들은 우리 황군을 살해하고 도망쳤다. 운주동 구장 응삼도 죽였어. 대지 않으면 당장 죽여치우겠다.”
쉭! 쉭!
이때 난데없는 돌멩이가 날아와 면바로 가메다의 대가리를 깠다.
“앗!”
가메다 놈은 대갈통을 싸쥐고 말 잔등에 쓰러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돌멩이 유격대!”
가메다는 말 배때기를 탁 찼다. 그 놈은 말 잔등에 낯을 딱 붙이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당황해난 영팔이 등 졸개들도 상철이네 삼부자를 놓고 말 잔등에 뛰어올라 줄행랑을 놓았다.
“네놈들이 어디로 도망쳐?! 어디 죽어봐라!”
형내가 산쪽을 올려다보니 근형이가 수림 속에서 돌멩이를 뿌리면서 고함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유격대가 왔는가고 도망치기 시작하여싿. 
   바줄만 봐도 뱀인가 한다고   유격대애 혼 줄이 난 적 있는 가메다와 영팔 등은 이젠 돌멩이가 날아와도 돌멩이를 잘 뿌리기로 소문난 장백산 유격대인가고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던 것이다. 하긴 일본 놈들은 명천에서뿐만아니라 만주 함흥촌에서도 여러차례 돌멩이를 뿌리는 유격대한테 혼났으니까.
놈들이 도망치자 이윽고 최구장과 근형이가 산에서 황급히 뛰어내려왔다.
“놀랐겠소. 사돈, 이젠 돌아가오. 괜히 우리 일로 해 고생하겠소.”
최구장은 상철을 결박한 바줄을 풀어주면서 권고했다.
상철은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형내가 대수롭잖게 말했다.
“우리 잘못이 뭐입둥? 스승님, 근심 말고 령 길을 타고 가십시오. 우리가 꼭 궤를 두만강 변에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경학은 결박당했던 팔을 어루만지며 아버지와 최구장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면서 슬금슬금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 모로 걸어간 그는 투덜거렸다.
“형님이나 실어가라지. 난 몰라. 괜히 그 유골 때문에 일본 놈들의 손에 죽겠어.”
최구장은 뒤걸음 질 치다가 줄달음질쳐 달아나기 시작하는 경학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작은사돈! 집에 가면 관준 어른께 자초지종을 알리오.”
경학은 들었는지 마는지 걸음아 날 살리라고 달아났다.
그들의 뒤로 무형의 공포가 서리서리 휩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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