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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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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3)
2018년 09월 16일 11시 27분  조회:1390  추천:1  작성자: 김장혁





                       44. 대천세상
무더운 찜통더위에 목 안까지 말라들 지경이다. 변변한 선풍기마저 갖춰놓지 못한 비좁은 집 안은 숨이 헉헉 막혔다.
류려평은 바깥의 찜통더위보다도 이 집안의 일이 더 갑갑했다. 비좁고 무더운 집 안에 시루 속의 콩나물대가리처럼 빼곡이 들어앉은 시집식구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갑갑해났고 숨통을 무엇으로 꽉 지지눌러놓은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기 팔자를 원망할뿐이다.
류려평은 국장의 딸이여서 어려서부터 자존심과 승벽심이 강했다. 그러나 부모  덕분에 남부럽잖게 입고 쓰면서 자라나서 공부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개혁개방 초기 해마다 대학입학시험을 쳤지만 번마다 락방했다.
그녀는 정신타격을 입어 두문불출하고 집구석에 붙박혀 담배까지 풀썩풀썩 피우면서 고민에 잠겼다. 심지어 독약을 풀어 마시고 자살하려고까지 했다.
다행히 어머니 왕숙홍이 제때에 발견하고 독약사발을 빼앗아 깨버렸기에 목숨을 구했다.
“왜 멍청한 짓 하니?”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바에 살아서 뭘 해요?”
왕숙홍은 딸의 손을 꼭 잡고 타일렀다.
“얘야, 딱 대학에 가야만 사니? 대학에 가지 못해도 국장 아빠 있잖니? 근심할 게 뭐냐? 대학생과 결혼하면 돼.  아빠한테 부탁해 은행에 넣어주마.”
류려평은 울며불며 야단쳤다.
“어느 대학생이 눈 멀어서 고중생하구 살자 하겠어요?”
“근심하지 말라. 농촌에서 고생스레 자란 대학생을 찾으면 돼. 대학을 졸업해도 시내에 남으려면 국장 가시아버지 신세를 져야지.”
류려평은 아버지 면목으로 위생학교 간호원단기훈련반에 다니면서 백마왕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류려평의 아버지 류문봉은 국장이다. 그의 수하들과 친척들이 농촌에서 온 대학생을 참빚질하다가 종수 외삼촌을 만나게 됐다. 류려평은 맞선을 보자 련애할 새도 없이 그저 대학생이라는 리유로 종수와 번개식 결혼을 했다. 종수네 가정 식솔구성에 대해 알아볼 새도 없이 먼저 결혼해 살면서 련애한다는가.
류려평은 끝내 대학생 종수한테 시집갔고 종수는 꿈대로 시내 자그마한  신문사  기자로 사업하게 됐다. 
30여평방메터 되는 두칸짜리 집도 류려평의 본가집에서 사준 것이다. 그때만 해도 시내에서 그만한 집은 신혼부부로 말하면 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어머니에 시누이, 시동생까지 덮씌워 복잡하기 말이 아니였다.
려평은 조용할 때면 종수를 보고 종종 넉두리를 했다.
“시집 식구들한테 세집을 잡아주면 어떻습니까? 어디 복잡해 살겠습니까?”
“또, 또.”
종수는 종전처럼 안해의 푸념질에 취재가방을 들고 나가버리려고 서둘렀다.
류려평은 울먹거리며 종수의 가방을 빼앗았다.
“여보, 어서 대책을 대세요. 동무…”
“됐소, 됐어.”
종수는 색시의 손을 뿌리쳤다.
“그래 부모형제들을 쫓아내겠소?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하지도 마오.”
“글쎄, 그럼 우리 세 식구 세집에 나가 살든지?”
“시끄럽소.”
종수가 나가려고 하자 류려평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여보, 실제 문제가 아니고 뭔가요? 대책을 대세요.”
종수는 그저 뿌리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숙희 우리 청화를 봐주니 그렇지. 어쩌오? 오늘도 보오. 엄마와 숙희가 청화를 유치원에 데려가지 않았소? 만수를 보오. 겨울이면 석탄을 실어다 6층집에 퍼올린다, 불소시개를 긁어온다, 쌀을 사 메올려온다 하면서 돕지 않고 뭐요?”
려평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계속 푸념질을 했다.
“다 필요없어요. 집을 따로 잡고 하루라도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째 좋아도 좋은줄도 모르오?”
“뭐?”
려평은 종수를 마구 잡아흔들면서 성을 발칵 냈다.
“누구 신세에 살아요? 이 집 누가 사줬어요? 동무 기자질 하는게 누구 덕분인가요?”
“또, 또 시작한다. 됐소, 됐어.”
려평은 종수에게 종주먹을 안겼다.
“이젠 문제보도나 형사사건보도를 작작 쓰세요. 괜히 숱한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우리 집에 뛰어들겠어요.”
종수는 그녀를 힐끔 흘겨보더니 “그래도 신랑은 생각하는구만.”라고 하면서 려평의 볼을 매만져주었다.
“요것아,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겨. 난 억천만번 죽더라도 실제문제를 해결하는 그럴 듯한 기자로 될 거야.”
류려평은 종수의 떠나가나는 등뒤에 대고 손삿대질을 했다.
“명심하라고. 범은 그 놈의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고 놈의 이름 날리려다 죽어.”
종수는 려평의 공격에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집문을 활 열고 나가버렸다.
등뒤에서는 려평의 푸념질과 울음소리 마음을 허비였다.
종수는 한숨을 후~ 내쉬면서 자전거에 올라타더니 페달을 황급히 밟았다.
“에이구, 집에만 들어가면 답답해 죽겠다.”
그도 려평 못잖게 집안이 갑갑했고 집에서 훌 나와 단위로 가면 갑갑한 가슴이 활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단위에 나와서도 종수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단위나 개인의 사적을 신문에 실었을 때는 별로 뒤근심이 없었을뿐만아니라  감사신까지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리익을 대변한 기사를 써서 실었을 때에는 백성들은 속이 씨원해 했지만 일부 사람들한테서는 칼을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주위 사람들도 종수가 자꾸 말성을 일으키는 문제보도를 하는 것에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종수는 기어이 여론감독의 힘으로 실제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마음먹었다.
한번은 그가 취재길에 올라 뻐스를 타고 변경 마을로 질주할 때다. 30여명의  손님들이 뻐스 천정에 짐을 싣고 변경 마을로 달렸다. 그중 출국하려는 사람들은 짐을 해관까지 싣고 가야 했다. 그러나 뻐스 운전수와 승무원은 짜고들어 딱 100메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놓았다. 해관까지 짐을 실어가려면 한 사람이 2원씩 더 내야 실어다준다고 했다. 시내에서 변경까지 뻐스표가 2원인데 100메터를 실어가고 2원을 더 받는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었다.
종수는 처음에는 기자증을 빼들지 않고 운전수와 승무원에게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손님들이 2원을 내고서라도 실어다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어쩌는 수 없었다.
손님들은 짐이 많든 적든 매인당 2원을 더 내고서야 해관까지 뻐스에 짐을 운송해갔다. 운전수와 차장은 부르는 것이 값이다. 사 후에 뻐스공사에 알아보니 운전수와 승무원은 그 돈을 호주머니에 슬쩍 걷어넣었던 것이다.
종수는 백성들의 리익을 해치는 그런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다.
자그마한 변경마을은 인심이 박하다못해 말이 아니였다. 그날은 일요일이기에   해관에서 문을 닫아 손님들이 출국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변경마을에는 자그마한 려관이 딱 두개 밖에 없었다.
문제는 거기에서 또 생겼다. 손님들이 그중 아무 려관에나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려관에서는 식당이 없어 밥을 지어줄 수 없었다.
두루 알아보니 길 건너편 려관에는 식당이 있었다.
손님들이 어둑어둑 지는 땅거미를 밟으면서 길 건너편 려관 식당으로 우르르 쓸어갔다. 그러나 그 려관에서는 다른 려관에 든 손님한테 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종수가 알아보니 그 려관은 진공소합작판매합작사 소속 집체식당이 아니겠는가.
종수는 려관 주임을 찾아서 “먼 길을 온 손님들한테 어쩜 밥도 팔지 않습니까?” 하고 따지고 들었다.
“뭐라고 말해도 쓸데없습니다. 그 려관에 든 손님한텐 밥을 주지 않습니다.”
려관 주임은 한 입으로 딱 잡아뗐다.
종수는 할수 없이 기자증을 꺼냈다.
“전 신문사 기자입니다. 려관과 식당에서 이렇게 하는 건 잘못입니다. 식당도 이 마을에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복무해야 하지 않습니까?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취지는 어디로 갔습니까? 주임은 공산당원입니까? 아닙니까?”
“허허허. 대단한 기자구만. 밥을 주지 않으면 어쩌겠단 말입니까? 우리 려관의 규정이니까. 기자라도 별 수 없습니다.”
려관 주임은 기자고 뭐고 떠들겠으면 떠들라는 심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기자가 말해도 안되자 어떤 손님들은 짐을 챙겨들고 길 건너편 려관으로   건너갔다.
이쪽 개체려관 주인이 야단쳤다. 그는 건너편 려관 주임을 보고 손삿대질하며 펄펄 날뛰였다.
“밥을 주는 날엔 밥가마를 다 깨놓지 않는가 봐라.”
질겁한 려관 주인은 자기네 려관에 옮겨온 손님을 보고 되나가라고 내몰았다.
손님들은 또 이쪽 개체려관으로 우르르 쓸어 돌아왔다.
개체려관 주인은 그들을 려관에 받아주지 않았다.
“집체려관에 가볼게지. 왜 돌아왔어? 우리 려관엔 반변분자들을 받지 않는다니까.”
“아니, 려관을 옮겨갔다가 왔는데 반변분자라니요?”
손님들이 아무리 사정해도 쓸데 없었다.
종수가 말해도 쓸데 없었다.
“기자라고 대단한가 하오? 시비하겠거든 우리 려관에서 나가오. 말썽 많은 기자 딱 질색이라니까.”
“아니, 자기 려관에 든 손님을 밤에 내쫓다니?”
“나가라면 나갈거지. 내 려관 내 마음댑니다.”
종수는 참을 수 없어 “내 이제 시내에 가면 공상국에 반영하고 신문에 내지 않는가 보시오. 진짜 도덕이 없구만요. 이제 려관이 문을 닫아야 알겠습니까?”
그제야 려관방 주인은 좀 누그러들었다.
“잠간, 기자만 려관에 드십시오.”
종수는 다른 손님을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안됩니다. 이 손님들을 다 들게 하십시오. 안 그러면 가만 놔두지 않겠습니다.”
출국손님들은 어두운 밤에 두 려관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길바닥에 나앉았다. 그런 손님을 두고 두 려관주인을 놔둘 수 없었다.
그는 길 건너편 집체려관 주임을 찾아가 으름장을 놓기로 했다.
“당신들 알고보니 진공소판매합작사 소속 집체려관이더구만. 공소판매합작사 주임을 불러오오. 당신네 행위를 신문에 내고 공상국에 반영해 문을 닫게 하라오?”
려관 주임은 그때까지도 태도가 뻣뻣했다.
“그러겠으면 그러오. 우리 합작사 주임이 날 어쩐단 말이요?”
그는 멍청이 아닌 이상 공급판매합작사 주임을 부를리 만무했다.
밤은 깊어가는데 손님들은 길바닥에 나앉아 배를 촐촐 굶으며 앵-앵 매달리는 모기에게 시달려야 했다.
(인심이 야박한 이 마을에서 손님들이 무슨 수로 하루 밤을 보낼 수 있을가?)
종수가 두루 살펴보아도 합작사 대문에는 주먹만큼한 자물쇠가 매달려 있었다. 개인 상점이라도 있으면 과자라도 사서 끼니를 에따질수 있겠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편벽한 변경마을에는 상점도 없었다.
그때 손님들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본 한 할아버지가 숱한 마을사람들 속에서 나섰다.
“손님 여러분, 우리 집으로 가깁소. 우리 늙은 량주가 손님들한테 밥을 지어드립지.”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20여명 손님들은 짐을 들고 마음씨 착한 할아버지를 따라 갔다.
두 려관 주인들이 할아버지 등뒤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더러운 령감태기, 우리 손님을 빼앗아가?!”
“진짜 어부지리야, 영업허가증도 없이 개인 집에 손님을 쳐? 벌금을 콱 안기라고 공상국에 고발하지 않는가 봐라.”
종수는 야박한 려관 주인들을 보고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는 손님들과 함께 그 할아버지네 집에 가서 저녁을 에따지웠다.
할아버지네 집이 너무 비좁아 일부 손님들은 할아버지의 따님네 집에 나뉘여 가서 잤다.
이튿날 아침까지 할아버지네 집에서 먹고 종수는 손님들과 의논해 사례금을 모아 할아버지께 드렸다.
종수는 할아버지네 집을 나서자 곧추 공급판매합작사로 찾아갔다.
때마침 판공실에 주임이 나와 있었다.
종수가 기자증을 꺼내 보이자 주임은 아주 공손한 태도로 맞이했다.
종수는 어제 저녁에 려관에서 발생한 비렬한 사건을 렬거했다.
“…강렬한 항의를 제기합니다. 려관 식당에서 어쩜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한테 밥도 팔지 않습니까? 아무리 두 려관에서 경쟁해도 그렇지. 어쩜 합작사에서 경영하는 식당이 이 지경입니까? 주임의 경영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주임은 이마에 돋은 식은땀을 닦으면서 연신 사과했다.
“기자 선생님, 미안합니다. 아래 사람들이 기자를 노엽힐줄은 몰랐습니다. 합작사를 대표해 반성합니다.”
“반성? 한마디로 반성해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그따위 식으로 경쟁해선 안된단 말입니다.”
주임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수의 손을 잡아 끌었다.
“식사나 하셨는지요? 우리 식당에 가서 주임을 검사하게 하고 아침이나 잡숫고 가십시오.”
보아하니 주임은 술이나 대접하고 얼렁뚱땅 고비를 넘기려고 했다.
종수는 그런 눈치를 채고 따라나서지 않았다.
“딴 생각을 하지 말고 경영이나 잘 하십시오. 조사해보니 이런 일이 한두번 아니더구만요. 여태껏 두 려관이 비렬한 수단으로 경쟁하면서 손님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해서야 됩니까?”
“예, 예. 꼭 고치겠습니다.”
“말로만 해선 안됩니다. 신문에 내서 톡톡히 여론의 비평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래야 고칠게 아닙니까?”
“아이유, 절대 신문에 내지 마십시오.”
종수는 떠나면서 주임을 닦아세웠다.
“후에도 찾아와 손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려관 식당에서 계속 손님들한테 밥도 주지 않는가. 손님들이 길바닥에 쫓겨나는 일이 있는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공상국에도 반영하겠습니다.”
“아이고, 우리 려관이 문을 닫게 됐구만. 제발 이번만 용서해줍소. 우리 집체려관에서 맞은켠 개인려관을 없애버리려고 비인도주의적인 경쟁을 한 건 잘 못됐습니다. 꼭 고치겠습니다.”
종수는 주임한테서 조사자료에 싸인하게 하고는 뻐스에 앉아 야박한 그 변경 마을을 떠났다.
며칠 후 뻐스 운전수와 차장이 짐운송비를 2원씩 더 받은 일과 두 려관에서 손님을 길바닥에 내몰고 밥도 주지 않은 일을 폭로, 비판한 기사가 신문에 톱기사로 실렸다. 론평원은 그 기사 뒤에 론평까지 실어 해당 부문의 관리가 인성화되지 못한  점을 호되게 비판했다.
신문이 나가고 종수의 반영을 들은 해당 현공상국에서는 공소판매합작사 소속 집체려관과 개체려관에 반년 동안 영업을 중지시키고 정돈하게 했다. 공소판매합작에서는 인차 려관 주임을 바꾸고 경영방식도 개선했다. 그 후부터  변경마을로 찾아간 손님들이 길바닥에 나앉은 일이 다신 발생하지 않게 됐다.
종수가 신문사에 출근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오, 당신 정말 대단한 기자요.”
철직받은 려관방 주임이였다. 그는 앙금이 차서 종수를 삿대질하면서 야단쳤다.
“밥 한끼 얻어 먹지 못했다고 째째하게 신문에 내는가? 남의 밥통까지 잃게 만들어?”
그는 숱한 기자들 앞에서 종수의 멱살을 틀어쥐고 행악질했다.
종수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식당 주임을 질책했다.
“철직받아 마땅합니다. 여기 와서 떠들지 말고 자기 잘못이나 반성하란 말입니다.”
찰싹!
그는 종수의 귀쌈을 한대 갈겼다.
김택수 주임을 비롯한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려관 주임을 뜯어 말렸다. 보위과에서 올라와서야 려관 주임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물러갔다.
종수는 려관 주임한테서 귀쌈 한대 맞아 얼굴이 얼얼했지만 변경마을로 간 손님들을 대변해 비리를 폭로하고 뻐스와 려관 경영을 바로잡아놓은 것으로 해 긍지감을 느꼈다.
종수는 김택수 주임의 지령을 받고 타현 검찰원으로 취재하러 가게 됐다.
김택수 주임도 사적보다 문제기사를 쓰기 좋아하는 로기자출신이였다.
그러나 그는 종수를 보고 타일렀다.
“이젠 문제보도를 좀 작작 쓰오.”
“예?”
문제보도를 써야 신문의 여론감독을 할 수 있다던 김주임이 아닌가.
종수는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였다.
“귀쌈을 또 맞으려고?”
“귀쌈을 맞더라도 백성의 리익을 지킬 수만 있다면 전 달갑습니다.”
김택수 주임은 종수를 조용한 휴계실로 데리고 가서 타일렀다.
“나도 그런 일 경과했소. 만약 편안히 기자질을 하겠거든 문제보도를 쓰지 마오. 그러나 기자답게 살려면 고생스럽더라도 문제보도를 써야 하오. 대가도 크게 치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오.”
(로기자의 아주 철리가 깊은 명언이야!)
종수는 뻐스를 타고 타현으로 달려가면서 마음속 깊이 그 말씀을 간직했다. 기자를 하기도 진짜 힘들고 어깨가 무거운 것을 느꼈다.
뻐스를 타고 차창 밖에서 뒤로 휙-휙- 밀려가는 축 늘어진 버드나무와 백양나무를 내다보며 종수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날 종수는 검찰원에 가서 반부패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한 검찰원의 사적을 취재하고 검찰원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복도에서 몇해 동안 사라졌던 대학교 후배 은영을 만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은영이, 어떻게 돼 여기 있어?”
“어마나, 누군데요? 전 모르겠는데요.”
분명 은영이였다. 그런데 모르는 척 했다.
종수는 애탄 목소리로 말했다.
“은영이, 난 웃학년 박종수야, 알아보지 못하겠어?”
그녀는 종수의  아래우를 훑어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은영이? 박종수? 난 몰라요.”
“그래, 동무 이름 최은영 아니고 뭐요?”
대문 어귀 당직실 당직도 이상한 눈길을 종수한테 보냈다.
“우린 선후밴데 진짜 몰라? 승호네 동창인데.”
그녀가 홱 돌아서면서 말했다.
“전 최혜영인데요.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애요. 미안해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홱 돌아서서 걸어갔다.
“아니, 은영이 맞는데?”
종수는 대문 어귀에 어두커니 서 있다가 자기 눈썰미를 믿고 다시 검찰원에 들어갔다.
그는 당직원과 최혜영이라고 부르는 검찰원의 사무실을 물어 찾아 들어갔다.
“은영이 맞지 않습니까? 내 눈을 속이지 못합니다.”
종수는 웃으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널직한 사무실에는 그녀 혼자 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초리까지 꼿꼿해났다.
“무슨 일인가요?”
“은영이, 날 진짜 알아보지 못했소?”
그제야 그녀는 알은 체하면서 자리를 권했다. 그러나 뒤말은 선뜩선뜩하게 날이 섰다.
“옛날 은영은 이 세상에 없어요. 전 당당한 녀검찰원 최혜영인데요.”
“최씨 성만은 고치지 않았구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종수를 보고 물었다.
“금방 당직원과 은영이 어쩌고 말했나요?”
“아니, 그저 최혜영 검찰원의 사무실을 물었을뿐이요.”
그녀는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과 가녀린 어깨에 들어간 힘을 좀 푸는 듯했다. 뒤말은 의영희 날카로왔다.
“현검찰원 최혜영은 옛날 그 은영이 아니예요.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한가지 부탁합시다.”
“뭘?”
“이후엔 저 앞에서 승호 말을 꺼내지 마세요.”
종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은영을 리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은영은 피해자지만 은영의 과거가 퍼지면 검찰원에서의 립지가 좁아질게 아닌가?)
은영은 삼십대중반이였지만 아직도 십년전 학창시절처럼 예쁨이 물씬 풍겼다. 녀검사복까지 척 입어서 더 멋지고 생기발랄해보였다. 다만 수척해진 걀죽한 얼굴에는 새물새물 웃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고 청바위처럼 무섭게 날카롭고 굳어져 있었다. 게다가 눈길마저 아주 날카로와졌다.
(피해를 많이 받아 저런가? 아니면, 녀검사여서 저렇게 날카롭게 번졌는가?)
운동선수 출신인 그녀의 몸매는 아직도 날렵해보였다.
종수는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우쭐 일어났다.
은영은 갈라지기 전에 한가지 물었다.
“궁금한게 있는데요? 그 학급의 성호랑 잘 보내죠?”
종수는 잘 듣지 못했던지 동문서답했다.
“잘 보내오. 승호는 백화청사 구입과 과장…”
“아니, 성호를 물었는데요.”
그녀는 승호를 거드는 종수가 얄밉기까지 했다.
종수는 인차 말을 바꿨다.
“오, 성호? 공안국에 들어가지 못했소. 지금 고향에 돌아가 소사양을 합데.”
은영의 얼굴에는 분명 실망에 찬 검은 그림자가 흘러지나갔다.
“전번에 성호는 소장사를 하러 백성과 내몽골 부근에 갔댔어. 강도를 만나 죽을번했더구만.”
은영은 성호의 얘기를 쭉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호는 내몽골에서 백화청사 지하주차장 살인강탈참사와 내몽골 소강탈사건 흉수들을 나포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정의용사’ 상장도 받았소.”
순간 은영의 차디찬 눈에 형언하지 못할 빛이 반짝였다.
종수는 은영한테 “시집 갔는가?”, “신랑은 뭘 하는 사람인가?”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은영은 덤덤하게 앉아 또다시 엄숙한 표정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완전히 성격이 변하였다. 옛날 새물새물 웃고 활발하던 학창시절의 그녀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종수는 뻐스에 앉아 돌아오면서도 그녀가 갈라지기 전에 부탁하던 말을 되뇌였다.
“누구와도 절대 제가 여기 있단 말을 하지 마세요.”
종수는 은영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뻐스를 타고 변경도시를 떠나 산기슭으로부터 굽이굽이 가파로운 령길을 힘겹게 넘어가는 뻐스를 보고 피뜩 은영이 힘겨운 인생고개길이 련상되였다. 마음  구석으로 그녀가 이제도 어떻게 인생아리랑 열두고개를 고달프게 넘을가 근심되였다.
종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딸 청화가 반겨 맞았다.
“아빠~ 맛있는 거 사왔어요?”
“그래, 옛다!”
종수는 가방에서 엿사탕봉지를 꺼내 주면서 귀여운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와~ 좋다야. 이 후에도 꼭 엿사탕 사줘요. 예?”
“그래, 우리 귀염둥이야.”
어머니와 숙희가 밥을 다 지어놓고 려평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려평은 해가 넘어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중에야 려평이 얼굴이 지지벌개서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섰다.
“또 술을 마셨소?”
종수가 언짢은 눈길을 보냈다.
려평은 시부모와 시누이를 보고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
“미안해요. 단위에 손님이 와서 술자리에 앉았댔어요.”
어머니는 근심됐다.
“이후엔 늦어 오면 집에 전화라도 하오. 녀자 몸으로 밤중에 술을 마시고 홀로 집으로 오다가 일이 생기면 어쩌오?”
려평은 속이 괴여번저졌지만 “예, 알았다니까.” 하고 한마디 하고는 휑하니 웃방으로 올라가 미닫이를 꾹 닫아버렸다.
그녀는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 옷을 와락와락 벗어 구들에 훌훌 쥐어뿌려던지더니 청화 옆에 훌 드러누웠다.
종수는 꿀물을 풀어 들고 들어와 려평을 톡톡 다독였다.
“꿀물이나 마시오. 이후엔 작작 마시오. 이게 뭐요?”
“뭐 어쩐다고?”
순간 려평은 발딱 일어나 대들었다.
“항상 집에 들어오면 답답해 술 한잔 마셨는데 무슨 잔소리 그리 많아요?”
“아니,…”
“내 주임을 쉽게 한 것 같아요? 우에서 우리 은행에 오면 술접대를 하지 않으면 돼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주임을 못한다면 그런 주임을 그만 두오. 그까짓 주임을 못하면 뭐라오?”
“오~ 그래, 이렇게 답답한 집 안에 붙박혀서 당신 부모형제를 위해서 밥이나 짓고 빨래나 하란 말인가요? 꿈도 꾸지 말아요.”
종수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취한 색시와 말해보았자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 아닌가.
그때 청화가 깨나 어머니 목에 매달려 징징거려서야 부부간에 말다툼은 끝났다.
종수는 어떻게 하나 이 놈의 집에 말썽이 없이 살려고 색시를 다독이군 했다. 그는 이불을 펴고 누웠다. 한참 후 청화가 어머니 목을 끌어안고 쌔근쌔근 잠들었다.
종수는 이불 밑의 공작을 시작하려고 손을 스르르 이불 밑에 가져갔다.
려평은 종수의 홱 뿌리쳤다. 그녀는 신랑의 귀에 입을 대고 재잴거렸다.
“좀 작작 건드려. 더워 죽겠어. 숱한 보초군이 눈이 펀한데 좀 작작 주책없이 굴어요.”
종수는 손을 되찾아오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한참 후 그는 려평을 스르르 끌어안고 귀속말로 구슬렸다.
“여보, 만수가 대학 숙사로 갔지. 숙희도 혼사말이 들어오잖았소. 이제 부모만 모시고 우리 조용히 깨알이 쏟아지게 살기오.”
“픽!”
려평은 코방귀를 뀌더니 종수의 가슴을 밀어내며 훌 돌아누웠다.
“우린 그래도 자기 집이 있잖소. 우리 대학교 동창생들이 사는 걸 보오. 다 우리보다 못하단 말이요.”
려평은 돌아누운 채 잠잠했다.
종수는 계속 중얼거렸다.
“성호는 고향에 돌아가 소궁둥이를 치지. 승호는 부부간에 서로 의심하면서 맨날 싸우면서 살지…”
려평은 훌 돌아누우면서 두 손으로 종수의 얼굴을 딱 잡고 날카롭게 물었다.
“왜 동무네 동창생들은 다 그런가?”
종수는 려평을 꼭 끌어안고 어루쓸면서 조용히 구슬렸다.
“당신의 남편은 전도가 창창한 기자란 말이요. 쥐구멍에도 해볕이 들 날이 있다고 두고 보오. 일을 칠 건 그래도 내란 말이요.”
“픽!”
려평이 코방귀를 뀌며 돌아누우려고 했다.
종수는 려평을 꼭 껴안았다.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올 거야.”
려평은 요 조그만 집에 홀가분하게 세간살이를 할 날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삼복지간 찜통더위가 습격하는 어두운 집 안에는 갑갑한 침묵과 함께 잠시나마 황홀한 꿈이  흘렀다.


 
 
 
               45. 필마옹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왔다. 길가의 수양버들나무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을바람에 흐느적거리면서 행인들을 묵묵히 바래고 있다.
영희는 광훈을 업고 복화의 손을 잡고 큰 길을  건넜다.
“학교에 갔다가 곧추 집에 돌아오라, 응?”
“예.”
복화는 남동생한테 손을 저으면서 “빠이, 빠이!” 했다.
“뽀뽀를 해줘라.”
영희는 몸을 낮춰주었다.
복화는 남동생의 발가우리한 볼에 뽁 뽀뽀를 해주고 손을 저었다.
영희는 저 멀리 행인들 속에 사라지는 복화를 바래고나서 한숨을 호~ 내쉬며 돌아섰다.
(정말 오누이를 보고 이 놈의 집에 물앉았지. 바람둥이 나그네를 믿고 어떻게 살아?)
그녀는 진짜 승호의 과거를 묻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요즘 노는 꼴이 하도 괘씸해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승호한테 바투 들이댔다.
“당신, 요즘 왜 감옥에 자주 가요?”
“그런 일이 있소.”
승호는 얼버무리면서 출근하려고 서둘렀다.
영희는 승호의 팔을 꽉 붙잡고 따지고 들었다.
“모르는가 해요? 춘란이, 그 쌍년을 왜 자꾸 찾아가요?”
승호는 영희의 손을 뿌리치면서 두덜거렸다.
“왜 쩍하면 의심해. 남편을 자꾸 의심하는 것도 병이야, 병!”
영희는 단말마적으로 대들었다.
“당신이 먼저 의심했지. 내 먼저 의심했어?”
영희는 승호의 코대에 삿대질했다.
“생각해보세요. 코수염쟁이랑 우릴 해치려고 코 밑에까지 슬슬 기여들었는데요.  깡패들 눈치는 채지 못하고 색시를 의심하면서 연극을 놀지 않았어요? 퉤! 더럽다. 그 주제에 경찰이 되려고?”
“됐소, 됐어. 코수염쟁이한테 당하지 않았으면 됐지. 묵은 장부를 들춰 뭘 하오? 조과장을 방패막이로 내세워서 백화에 쳐들어온 코수염쟁이랑 멋지게 처치해버린 걸 모르오?”
“픽!”
영희는 코웃음쳤다.
“참 대단하군요. 당신 진짜 음흉하고 나쁜 사람이야.”
승호는 구들 끝에 앉아 신을 꿰다 말고 표독스레 쏘아보는 영희를 쳐다보았다.
“아무 소리나 하겠소?”
질겁할 영희가 아니였다.
“음흉하지 않아요? 조과장을 방패로 써먹고 뒤통수를 쳐?”
“내가 살자면 조흥수를 재껴버려야지”
승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왜 자꾸 춘란을 찾아가?”
“…”
영희는 승호의 가슴을 떠밀며 무섭게 노려보았다.
“감옥에서 나오면 첩이라도 삼을 작정인가?”
승호는 아무리 안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었다.
“이제 한번만 바람을 써보지. 그 잘난 물건부터 밑둥까지 썩뚝 잘라버릴테야!”
“됐소, 됐어.”
“공회주석이면 대단한가? 아무 수입도 없는 필마옹이지. 애 둘을 데리고 저런 나그네를 믿고 어떻게 살겠니? 그렇다고 한뉘 시부모한테 매달려 살겠는가? 시부모도 이젠 딸과 외손녀한테 엎어져서 지랄이지. 우리 광훈이하구 복화 이런 빌어먹을 집에서 태여난게 불쌍하지. 아이고, 원통해서 원, 못살겠다, 못살겠어.”
“야, 그만하오. 동네 창피해 어떻게 살겠소?”
“뭐라고? 숱한 깡패들이 우리 집을 박산낸게 누구 탓인가? 어쩜 깡패 겁나 온 시내를 돌면서 피난살이를 해?”
사실 승호와 영희는 온전한 집을 잡고 살 수 없었다. 깡패들이 뒤를 밟아서 세집을 알아내기만 하면 박살내군 했기 때문이다.
승호는 깡패와 영희한테 꼬리를 단단히 밟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바깥에서는 깡패들과 싸워야 했고 집 안에서는 영희를 구슬려야 했다.
그는 안해가 아무리 댕댕거려도 그저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려보내면서 참고 견디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지탱해나갔다.
그는 댕댕거리는 안해한테서 벗어나 바깥으로 훌 나왔다.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넘실거리는 수양버드나무들이 반겨맞지 않겠는가. 갑갑하던 가슴이 활 열리면서 홀가분해 살 것만 같았다.
그 기분도 잠시뿐, 백화상점에 가까와갈수록 그의 고민은 더 커갔다.
총경리 안수련은 “개인의 감정으로 사업을 대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과거를 묻지도 않고 승호를 구입과 과장으로부터 공회 주석으로 승급시켰다.
사실 승호는 공회 주석보다 보위과 과장을 하자고 작심했다. 그래서 천방백계로 조흥수한테 접근해 빈틈을 노려 잔등에 비수를 꽂았다.
안수련 총경리는 진작  승호의 음흉한 속내를 꿰뚫어보아냈다. 그녀는 승호를 보고 돈깨나 생기는 구입과 과장자리를 내놓게 하고 아무런 실권도 없는, 허명무실한 공회 주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무기를 휴대하는 보위과장 자리는 절대 음흉한 승호한테 넘겨줄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젠 승호를 보기만 해도 속이 섬찍했다.
그 덕에 범송이 어부지리를 하였다.
안수련 총경리는 승호의 매부 범송한테 구입과 과장에 보위과장까지 시킴으로써 “개인의 감정으로 사업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승호는 날이 감에 따라 더욱 불안했다. 이 후에 자기를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울 수도 있다는 의심이 더럭 들기도 했다.
(공회 주석 자리야 필마옹이지.)
승호는 허구픈 웃음을 웃으면서 사무실에 들어섰다.
따르릉, 따르릉.
사무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승호가 바삐 전화를 들자 안경리 챙챙한 목소리 들려왔다.
“리주석, 왔다 가오.”
“예.”
승호는 전화를 놓고 황급히 총경리실로 반달음쳐갔다.
안총경리는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승호를 바라보았다.
승호는 무슨 지령이 떨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리주석, 공회주석 자리는 아주 중요한 자리요.”
안총경리는 승호의 속내를 꿰뚫어볼듯이 쏘아보며 억지로 부드럽게 말머리를 뗐다.
“시장경영과 인성화된 관리엔 꼭 훌륭한 기업문화가 안받침돼야 하오. 리주석,  백화상점 기업문화와 종업원들의 문화생활을 제고시키오.”
승호는 내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상업국 국장을 해도 될만한 녀중호걸이군.)
안총경리는 뒤말을 이었다.
“리주석은 대학교 시절에도 운동을 잘해 소문이 높더구만. 동무 특장을 살려 공회 주석을 시킨 거요. 꼭 우리 백화상점의 기업문화를 멋지게 발전시키리라고 믿소.”
안수련 총경리는 이 시각만은 자기 딸의 정조를 짓밟은 짐승 같은 놈을 잊어버린  상 싶었다. “과부년의 더러운 새끼”라던지, “바람둥이 새끼”라던지 하고 승호를 욕하던 안수련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승호한테 몇발자욱 다가와 서서 아주 흥분된 어조로  부탁했다.
“리주석, 온 시내 사람들의 눈길이 단번에 우리 백화상점에 확 쏠릴 그런 이벤트를 좀 구상해보오.”
안총경리가 “리주석”, “리주석” 하고 짧은 바지를 춰올릴수록 승호는 더욱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불안했다.
(잠시야. 경옥은 삼십대 중반이 넘었는데 아직도 시집가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과년해가는 딸을 볼 때마다 안총경리가 나에 대한 원한을 되새기면서 이를 복복 갈게 아닌가?)
순간 승호는 이전에 안수련 총경리를 주의하라던 성호나 종수의 충고가 상기됐다.
그는 드러내놓고 덮쳐드는 깡패들보다 안수련 총경리가 더 무서웠다.
(청산은 좋으나 오래 있을 곳이 못되는구나.)
승호는 떠날 때는 떠나더라도 백화상점에 기념으로 뭔가 해놓고 싶었다.
어느 하루 선금과 범송이 아들애 영철을 데리고 승호네 집으로 놀러 왔다.
“안아보자. 우리 조카님.”
승호는 영철을 안고 “뽀뽀, 뽀뽀.” 하고 길죽한 얼굴을 들이댔다.
영철은 승호의 꺼실꺼실한 수염투성이 얼굴에 뽁 뽀뽀했다.
“물러나! 내 아빠야.”
광훈이 승호의 품에 안긴 영철을 마구 떠밀어냈다.
“그러지 마. 영철은 네 동생이야.”
승호는 광훈과 영철을 한품에 끌어안았다. 영희도 귀여운 애들을 바라보면서 사과를 깎아 내밀었다.
“아이고, 요것들이 귀해서 내 이 집에 붙어 살지. 그러찮으면 어떻게 살아?”
범송은 승호를 보고 “요즘 깡패들이 찾아왔니?” 하고 물었다.
승호는 영희와 선금을 흘끔 곁눈질했다.
“오지 않았어. 세집을 바꿨더니 아마 찾지 못한 거 같아.”
범송은 머리를 끄덕였다.
“개놈 새끼들, 10년도 넘었는데 계속 승풀이야. 깡패들의 뒤에는 경옥이 있는 거 같애.”
“두목은 허송파 형제야.”
범송은 도리머리를 홰홰 둘렀다.
“아직도 그 놈의 화근을 뽑아버리지 못해 야단인데. 어디 발편잠을 자겠니?”
승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대사는 대사야. 그 놈 새끼들은 번마다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갔단 말이야.”
그는 선금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선금아, 넌 무용을 잘하잖니? 우리 백화상점에 군무를 보급했으면 좋겠다.”
선금은 영희를 바라보면서 “군무야 영희, 아니, 형님이 더 잘하지.”라고 했다.
“백화상점에서 군무를 춰서 뭐 한다니? 또 안경리 수작이겠지. 아무리 군무를 춰서 시내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도 필마옹 같은 너네 오빠한테 먹을 알이 있니? 안경리는 김치독을 다 파먹으면 헌 신짝 차버리듯 할 거야. 다 부질없는 짓이야.”
범송도 맞장구를 쳤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안경리는 겉으로는 승호와 나한테 무슨 주석이요,  과장이요 시켰지. 그러나 언젠가는 딸을 해친 보복을 할 거야.”
승호는 인차 제지시켰다.
“그따위 생각하지 말라. 괜히 말썽을 일으키겠어.”
범송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이전에 백화상점에 코수염쟁이랑 와서 행패를 부릴 때 왜 총경리실에 쳐들어가지 않았겠어? 어째 그녀가 꽥 고함치자 깡패들이 도망쳤어?”
승호는 범송을 흘겨보았다.
“얘, 네까지 이럼 안돼. 그날 안총경리는 전화로 공안국에 신고했어.”
승호는 선금과 영희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종업원들을 동원해 녀성축구대회나 배구경기를 해선 시내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끌 것 같잖아. 백화상점 광장에서 멋진 녀성군무를 추면 행인들의 눈길을 대뜸 끌 것 같다.”
선금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춰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빠 령감이 빨리 떠올라. 어쩜 운동만 하고 춤이라고 별로 춰보지 못한 오빠가 저런 궁리까지 해?”
범송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승호가 백화상점 총경리를 하면 면모가 확 바뀔 거야.”
“픽!”
영희는 코방귀를 뀌였다.
“리주석? 필마옹이라고나 해라!”
선금은 보다못해 날카로운 눈길로 영희를 쏘아보았다.
“얘, 넌 왜 오빨 그렇게 무시해? 오빠 섭섭하게 대한게 뭐야?!”
“오늘 오빠 편을 들어 걸고 들겠니? 오빠한테 물앉아 사는게 어떤 심정인지 알기나 알고 이래?”
“시골 농민의 딸이 오빠한테 시집온게 다 누구 덕이냐?”
“오빠 아니면 내 시집가지 못했겠구나. 내만한 인물체격에 백마왕자한테라도 갈 수 있어.”
“뭐라니? 오늘…”
“그만두지 못하겠니?”
승호가 선금을 쏘아보았다.
영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또 넉두리를 했다.
“다 쒀논 죽을 어쩌겠니?”
“에이, 내 원 이 꼬락서니들 보기도 싫어.”
선금은 영철을 둘쳐업고 휭하니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범송도 멋적어 승호와 영희를 번갈아 살피다가 슬금슬금 선금을 뒤따라 나갔다.
승호는 권연을 꺼내 붙여물고 뻑뻑 피우며 속이 재가루로 타버린 연기를 물물  풍겼다.
“아이고, 밉다, 밉다 하니 이젠 담배까지 피워? 애들이 페병에 걸리겠어.”
“그만두지 못하겠소?!”
승호는 영희한테 눈 흰자위가 다 드러나게 눈알을 부라렸다.
“어쩔 셈인가요?”
영희는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 그래라. 이 놈 개굴 같은 집에서 나가지 않는가 봐라. 분해서 어떻게 살아? 아이구, 원통하다, 원통해!”
“엄마!”
“어머니~”
애들이 영희한테 안기면서 엉엉 울었다.
“울지마. 울지마라.”
광훈이 애고사리손으로 엄마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어머니, 울지마, 울지마. 응?” 하고 흐느껴 울었다.
“응, 그래. 에이고, 불쌍한 새끼들아, 이런 집에서 깨난 너네 불쌍해 내 죽지 못한다, 죽지 못해.”
승호는 우는 처자들을 차마 보기 구차해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청년시절에 일시적인 쾌감을 향수하려고 처녀의 정조를 짓밟은 후과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레 느꼈다. 천추에 용서하지 못할 죄과가 피해녀들과 자기 가정에 비치는 검은 그림자가 얼마나 큰가를 골통이 빠개지게 맞혀왔다.
“경옥이, 은영이, 홍희, 죽을 죄를 졌소. 죽여주오.”
그는 육신이 병신이 됐을뿐만아니라 정신상에서도 불구자로 돼가고 있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느꼈다.
“은영이, 타현의 검찰원에서 검찰원이 됐다지. 네 앞에 설 용기가 없구나. 너도 알아야 해. 한번 잘못 디딘 발로 해서 한평생 야수로 몰리면서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지 않느냐? 나도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단 말이야.”
그는 강가 수양버들을 주먹으로 꽝꽝 치면서 고함쳤다.
“나도 사람처럼 살고 싶다!”
그는 한없이 고통스러웠다.
누렇게 번져가는 수양버드나무가지들과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 비꼈다. 조약돌이 들여다보이는 강물이 누런 버두나무 락엽을 업고 맥없이 흐르고 있었다.
승호는 락엽이 쓸쓸히 지는 강가를 거닐다가 주춤 멈춰섰다.
“어머니, 아버지, 내 처진 왜 이렇게 불쌍합니까?”
그는 부모를 찾아가 속시원히 하소연하고 싶었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래도 부모가 제일 기댈만한 마음의 기둥이요, 영구한 정신피난처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떠올리자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승호가 어릴 때 늘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어머니를 때리며 “누구 아들인가?”고 따지군 했다. 어떤 때에는 푹 취해서 시퍼런 식칼로 승호의 피를 받아 자기 피와 같은가 보겠다고 날뛰였다.
승호가 대학을 가자 아버지 태도는 확 바뀌여 승호 일이라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승호가 대학교를 졸업하자 대학교 규률검사위원회 허철만 서기에게 부탁해 공안국에 배치했다. 그러나 사위 범송을 데려온 다음에는 또 태도가 일변했다. 범송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외손자 영철을 친손자 광훈보다 더 고와하였다. 더구나 외손자 돌생일에 친손자 돌생일 때보다 부조를 엄청 더 많이 했다. 선금한테 새 집도 사주었다.
승호는 녀동생을 질투하고 싶지 않았다.
(걔들이 화목하게 잘 살면 돼.)
승호는 진짜 요지경 같은 이 세상이 자오록한 안개 속에 잠긴 장백산 상상봉처럼 아리숭했다.
(언제면 모든 걸 다 깰가?)
부모네 집에 들어섰을 때였다. 때마침 부모가 다 집에 있었다.
“어쩌다 왔니?”
어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저 훌 일어나서 서성거렸다.
승호는 아버지한테 “백화상점 공회주석을 그만두고 떠나려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뭐라고?”
리철갑과 벽화는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 좋은 백화상점에서 왜 나와?”
“공회 주석을 내놓고 나와 뭘 하겠니?”
승호는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는 안수련 총경리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와 근심을 싹 털어놓았다.
리철갑은 머리를 끄덕였다.
벽화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 수련이 널 제발시켰지만 믿음이 가지 않더라. 널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있겠니? 다 가면이지, 가면! 걔는 어려서부터 묘하게 놀고 가면이 많았어. 속과 겉이 다른 년이야.”
승호는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견해를 내놓았다.
“남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남을 버리는게 낫습니다.”
리철갑은 상을 찡그리면서 “백화상점을 떠나 다른 단위로 간다고 잠잠할 것 같아?” 하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 것은 경옥의 아버지 권력의 힘을 두고 한 말인 것 같았다. 경옥의 아버지도 이미 2선에 물러났고 안수련 총경리도 오래지 않아 퇴직할 나이였다.
“너 어디로 간들 공회 주석이야 하지 못하겠니? 떠나라. 뭐나 감각대로 나가는 거야.’
벽화는 승호의 견해에 찬동했다.
리철갑은 자기 말이 들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가려고 신짝을 꿰는 것이였다.
“여보, 아들의 관건적인 시각에 어디로 갑니까?”
승회도 동을 달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또 선금이네 집에 가겠지.”
리철갑은 그들 모자의 말을 마이동풍으로 흘려보냈다.
“할 말 다했으니 모자간에 토론해 결정하오. 불시에 그 좋은 단위에서 나와 어디로 간단 말이요? 참 답답하오.”
“저 나그넬 봐라. 딸 집에 작작 가세요. 사위 눈치 보이지 않아요?”
“허허허. 남이야 딸집에 가든 말든 걱정도 상팔자다.”
철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승호는 어머니가 깎아놓은 사과배를 사각사각 갉아먹으며 물었다.
“엄마, 안총경리와 무슨 악연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악연 없어. 중학교 동창생일뿐이야.”
벽화는 안수련과의 과거를 알려는 승호의 물음에 회피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어릴 때 기억이 지금도 나는데. 항상 나를 뭐 ‘더러운 과부네 아들’이라는지 ‘바람둥이네 놈새끼’라는지 하며 욕했습니다. 내 경옥과 좋아하는 걸 알았을 때도 그렇게 날 욕하면서 극구 반대했습니다. 여기에 뭔가 있는 거 같단 말입니다.”
승호는 어머니를 흘끔 쳐다보면서 물었다.
“어머니 진짜 과붑니까? 울 아버진 친아버지 아닙니까?”
“얘, 무슨 말이냐? 말도 안돼.”
“그럼 왜 안경리는 그렇게 엄마를 욕합니까? 똑똑히 말해주십시오. 제대로 알아야 대책을 제대로 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 벽화의 얼굴에 복잡하게 얽힌 검은 그림자가 흘러지나갔다.
집 안에는 납덩이 같은 무거운 침묵이 한참 흘렀다.
그녀는 한참 쓰라린 추억에서 헤매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너도 이젠 알아둘 필요있구나.”
승호는 어머니 말라든 입술을 마주 바라보면서 귀를 도사렸다.
“나와 안수련은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아주 친한 딱친구였지. 아니, 자매와도 같았어.  후에 우린 둘다 한 미남자를 사랑한 라이벌이였어. 그 일 때문에 우리 사인 라이벌로부터 원쑤로 벌어졌어.”
“그래, 안경리도 우리 아버지를 사랑했습니까?”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승호는 들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럼?”
“그 분은 훌륭한 청년이였어.”
승호는 들을수록 격분했다.
“그래 그분은 뭘 하는 분입니까?”
“그도 우리 고중 동창생인데 의사야. 그 분은 수련보다 나를 더 좋아했던 거야. 우리 둘은 함께 의학공부를 했던 거야. 수련은 그이를 짝사랑했어.”
“의사 뭐 그리 대단해서? 흥! 공안국 과장을 한 우리 아버지 낫지.”
벽화는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눈물을 닦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승호는 삽시에 당혹스러웠다.
“그 의사한테 시집갔댔습니까?”
벽화는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눈물까지 주르르 흘렸다.
“아니야.”
승호는 수건을 가져다 어머니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혹시 어머니 옛 상처를 건드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꼭 알아둬야 하겠습니다. 어째 그 의사한테 시집가지 않고 그만뒀습니까? 난 그 의사 아들입니까?”
“후에 그 의사와 함께 농촌에 있는 그의 집에 가보았지. 놀랍게도 동생이 여덟이나 있더라. 그때 그의 어머니는 만삭이었어. 마흔도 넘었는데 말이야.”
“오~ 들을수록 어리뻥뻥하군.”
승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래 의사동창생과 살아서 나를 나았습니까? 한마디로 뚝 찍어 말하십시오.”
벽화는 눈물을 줄줄 흘리더니 두 손으로 승호의 얼굴을 붙잡고 쓰다듬었다.
“얘야, 천천히 들어봐라. 우린 사돈보기를 하고 결혼날자까지 다 잡았는데 결혼하지 못했어.”
승호도 어머니 두 손을 잡고 정색해 물었다.
“그 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 분은 다른 세상에 계셔.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나셨어. 흐흐흑, 흑흑.”
승호는 파도치는 어머니 가냘픈 어깨를 끌어안았다.
“참 불행하구만요. 무슨 일로 돌아가셨습니까?”
“갑자기 중풍에 걸려 사망했다. 아이고, 지금 생각만 해도 마음이 미여지는 것 같애.”
승호는 눈물이 글썽해 물었다.
“어머니 시집가지 않았는데 안경리는 왜 어머니를 과부라고 욕합니까?”
벽화는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나서 뒤말을 이었다.
“그 분은 수련보다 나를 더 좋아했지. 그래서 수련은 질투나서 나를 ‘과부’라고 소문을 퍼뜨린 거야. 됐다. 됐어. 네가 백상화점을 떠나면 그만이야.”
그녀는 훌 일어나 수건을 들고 세면실에 들어갔다.
승호는 따라가면서 물었다.
“어머니, 그 분의 부모랑 지금 살아계십니까? 동생들은 다 지금 계십니까?”
“됐다니까? 넌 그들과 아무런 상관없어. 넌 리철갑의 아들이야. 리선금의 친오빠야. 알만해?”
승호도 어머니 그 말뜻을 가슴깊이 아로 새기게 됐다. 그러나 궁금한게 너무나도 많았다.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그 분의 이름은 뭡니까?”
“그만둬. 현실을 중시해라. 아빠를 잘 모셔야 해. 그래야 우리 모자가 살아남는다.”
승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한가지 또 있습니다.”
“됐다니까.”
벽화는 비누물을 먹여 수건을 쓱쓱 빨았다.
“어머니, 왜 아버진 날 항상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욕하고 때렸습니까? 나와 그 의사 정말 무슨 관계 있는 건 아닙니까?”
“야, 이 자식아, 날 뭘로 만들려는 거야? 진짜 바람둥이, 과부로 만들 예산이냐? 절대 그런 일 없어.”
그러나 승호는 의문을 꼭 풀고 싶었다.
“나와 아버지 모색이 너무 다르니까. 아버진 키도 작달막하지만 난 꺽다리잖아요? 나도 아버지가 점점 친아버지 아니잖는가 의심됩니다.”
“너까지 의심하니 이걸  어떡해? 제발 날 못살게 굴지 말라. 엄마 죽는 거 보자고 그래? 네 애비도 지금 널 점점 자기 아들 같지 않다고 날 구박하는데 너까지 왜 이래? 응? 제발 날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지 말라.”
승호는 어머니를 더 핍박할 수 없었다. 그도 삼척동자가 아닌 이상 뭔가 짚이는 데 있었다.
(내가 혹시 그 국장님의 손자, 의사의 아들일 수도 있어. 아무리 봐도 나와 아버진 생김새나 성격이나 뭐나 닮은 데 없어. 나는 훤칠한데 아버지는  작달막해. 나는 쌍까풀 세귀눈인데 아버지는 외가풀눈이야. 나는 메부리코인데 아버지는 납작코야. 그래, 그래서 아버진 어려서부터 날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했어. 그래서 자주 어머니를 구박하면서 뉘네 앤가고 따졌어.)
승호는 모든 것을 밝혀내고 싶었다. 아버지와 친자감정을 하고 싶었고 그 국장님을 찾아내 DNA를 감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더는 어머니와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없었다.
승호는 고통스레 세면실에서 나와 텔레비죤을 켰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음량을 높이 틀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 앞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천지를 진감했다.
자기 팔자가 세상 둘다 없이 복잡하고 나빴다는 것을 점점 가슴 깊이 느꼈다. 또 과거보다 앞날이 점점 암담해지는 것만 같았다. 발목을 잡을 또 한가지 올가미가 서서히 드리워지는 것만 같았다.
승호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어머니를 뒤에 두고 바깥으로 나왔다. 을씨년스러운 가을하늘에서 가을비가 구질구질 지꿎게 쏟아져내렸다.
그는 어머니 집에 가서 혹을 떼려고 하다가 혹을 되붙여가지고 돌아왔다.
기분이 잡쳐 집으로 돌아오니 영희가 또 바가지를 긁어댔다.
“나그네 백화점 공회 주석도 하지 않는다지. 깡패들이 찾아올가봐 상점도 마음놓고 차리지 못하지. 애들 둘이나 싸지르고 어떻게 살겠니?”
그녀는 묵묵히 창밖만 내다보는 승호를 흘끔 훔쳐보고나서 계속 도도거렸다.
“저런 나그네를 믿고 어떻게 살겠니? 필마옹이라도 주어 할게지. 이제 어떤 단위를 전근하려고 그래? 참새처럼 어느 나무가지 높은가 여겨보면서 이 나무가지 저 나무가지 옮겨 날아다니다 말겠다.”
승호는 가타부타 묵묵부답이다.
그녀는 화를 왈칵 냈다.
“어째 대답하지 않는가? 불시에 벙어리 됐는가? 이런 나그네 믿고 어떻게 살아?  한국이나 일본에 가버리지 않는가 봐라.”
“그만두지 못하겠소?!”
승호가 고함치는 소리에 애들이 놀라 엉엉 대성통곡쳤다. 광훈은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면서 놀란 눈길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어이구, 어이구, 애들이 놀라 간이 다 떨어지겠다. 쯧쯧쯧, 바깥에선 어쩌지 못하고 집 안에서나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면서 꽥꽥 고함쳐라!”
승호는 용하게 꾹 참고 문을 벌칵 걷어차고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이 놈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퍼렇게 멍든 가을하늘은 대답 대신 지꿎은 쓰라린 비물만 내리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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