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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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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9)
2016년 08월 24일 15시 27분  조회:219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9.오랑개령을 넘어

       최구장은 공포와 어둠을 밟으며 어부와 함께 두만강 변으로 나갔다. 큰 버드나무 아래 철썩이는 두만강 물에 쪽배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진달래가 유골상자를 말배에 단 말을 몰고 왔다.
        어부는 닻줄을 와락와락 걷어 배우에 쾅 처박았다.
       “오르라우.”
어부는 볼 부은 소리로 퉁명스레 말하면서 삿대를 들었다. 말투마저 남대말투로 바뀌었다. 그는 바위돌과 면목 모를 사내가 벌건 상자를 말배에서 끌러 들고 쪽배에 실으려고 하자 우먹한 눈 확에 겁기를 띠었다.
“아니, 저 벌건 상자!”
“쉿!”
바위돌은 어부의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까딱 말고 삿대를 젓소.”
어부는 겁기를 띈 눈으로 바위돌과 유격대원 그리고 최구장과 진달래를 훑어보았다. 유격대원이 벌건 상자를 쪽배에 실었다.
진달래는 어부를 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우린 장백산 항일유격대예요. 우리 유격대는 백성을 해치지 않아요.  겁내지 마세요. 누가 우리 조선 사람들이 조상마저 제대로 모시지 못하게 했는가요? 일본 날강도 놈들도 사람인가요? 그 놈들의 말을 듣지 마세요.”
어부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근심어린 말을 했다.
“쪽배에 네 사람이 다 탈 수 없다니께.”
진달래가 나지막하나 위엄있게 말했다.
“큰아버지와 바위돌 두 분만 타면 돼요.”
그래도 어부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이쪽에 일본 놈들이 없어도 저쪽에 위만 경찰들이 득실거리오.”
진달래는 최구장과 바위돌이 쪽배에 올라타자 대안을 건너보다가 말했다.
“근심마세요. 저길 보세요. 벌써 우리 유격대원들이 마중하러 왔어요.”
어부도 밤장막이 드리운 두만강 대안 버들강변에서 초롱불빛 같은 것을 보았다.
진달래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냈다.
“저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안심하고 도강하세요. 일본 놈들과 위만경찰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가 몽땅 해치울 테예요.”
진달래 말에 어부도 담이 커졌는지 한숨을 푸 내쉬더니 삿대를 강바닥에 쿡 박아 힘껏 떠밀었다.
쪽배는 사품 치며 흐르는 두만강 강심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큰아버지, 잘 가세요.”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물러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진달래와 유격대원은 쪽배를 따라 버들강변을 내려가면서 바랬다. 일단 정황이 있으면 맞대응하려는 것이었다.
쪽배가 두만강 격류를 타고 아래로 떠내려가면서 강심으로 다가갈 때까지 아무런 정황이 없었다.
쪽배가 대안에 거의 닿을 때였다.
갑자기 마을 쪽에서 개 짓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었다. 뒤이어 이쪽으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다가왔다.
"네놈이 그 놈들과 내통했지?" 
뒤이어 웬 조선말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 면목모르는 강도 놈들입구마. 그 놈들이 우리 집 쪽배를 빼앗아가지고 이쪽으로 달아났소이다.”
분명 부자영감 허창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저기 쪽배가 두만강을 다 건너는구만.”
뒤이어 일본 놈의 독기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샤게끼(사격)!”
땅! 땅! 땅!
야무진 총소리가 두만강 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쪽배는 두만강 대안 버들강변에 악착스레 저어갔다. 말을 탄 유격대원들이 이쪽으로 습격해오면서 총질과 돌팔매질을 했다. 유격대원들은 일본 놈들을 가로막아 상류 쪽으로 유인해갔다. 진달래와 유격대원은 그 틈을 타서 버들강변에서 산기슭 수림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한 많은 두만강물소리가 철썩철썩 들릴 뿐이었다.
유격대원들은 산기슭 수림 속에서 진달래 등과 합세한 후 말을 타고 상류 쪽으로 쏜살같이 전이했다.
한편 최구장네는 쪽배를 타고 한 일리쯤 내려가 두만강을 건너 순조롭게 유골상자를 쪽배에서 내리워 버들방축에 들어갔다.
어부는 울상이 되여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훌 떠나가면 그만이지만 난 인젠 어찌는기우?”
“옛소. 이걸 로비를 해가지구 처자를 데리고 만주로 들어오오. 난 최구장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이 은혜는 후일에 꼭 갚아드릴게요.”
어부는 동전 열 몇 닢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이젠 그럴 수밖에 없는이오.”
바위돌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예 그 놈의 어부를 그만두고 만주에 들어가서 우리 유격대에 드오. 일본 놈들을 몰아내지 않고서야 우리 조선 사람들이 편안히 살 수 있소?”
최구장이 물었다.
“은공은 명함을 어떻게 부르오?”
“리흥수라고 부르는데유. 난 전라도 사람인디 여기서 사공을 하면서 집식구들이 오길 기다리는 중인뎁쇼.”
       사실 리흥수는 전라도 고향을 떠나 간도로 들어오는 난민이였다. 전라도 깍쟁이라는 말이 있다. 전라도 깍쟁이는 부채가 아까워 부채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부채에 대고 흔든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인 리흥수도 어찌나 깍쟁이질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리깍쇠라고 별명까지 지어 불렀겠는가.
       "알았소. 우린 진수해 함흥촌으로 들어갈 예산이니까. 함흥촌에 와서 나 최구장을 찾소.”
어부는 무거운 목소리로 “알았는지라고.”라고 하더니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버들방천에서 버드나무들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었다.
뻐꾹뻐꾹
버들숲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바위돌도 입에 손가락을 넣더니 뻐꾸기 소리를 냈다.
뻐꾹뻐꾹
뒤이어 버들숲속에서 대여섯 사람이 나타났다.
바위돌은 어둠속에서도 인차 상대방을 알아보았다.
“억복이!”
“바위돌아!”
억복과 바위돌은 서로 얼싸 안았다.
최구장도 뒤에 나타난 자식들을 알아보았다.
“얘들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맞아들 경순이가 아버지 앞에 넙적 엎드리면서 절을 올렸다.
“아버지, 그간 무사합니까? 우린 아버지랑 건너올 때가 된 것 같아 마중 나왔다가 근형을 이쪽 나루터에서 만났지요.사위도 왔습니다.”
경인과 경욱 그리고 상순도 절을 올렸다.
최구장은 상순을 보고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명옥의 신랑도 왔구먼.”
버드나무숲속에서 상순은 최구장에게 절을 꾸벅 올렸다.
“가시할아버지, 그간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항상 근심하면서도 제때에 마중하지 못해 미안합구마.”
최구장은 상순의 몸을 두 손으로 부축해 일으켰다.
“별 소릴."
그는 몸을 돌리더니 리흥수의 손을 잡아 상순 앞에 왔다.
"은공 리흥수오. 이 후에 함흥촌에 오면 잘 도와 주게나. 이 분 쪽배 아니면 어떻게 유골상자를 모시고 두만강을 건넜겠소."
상순은 흥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감사하오. 난 상순이라고 부르오. 이후에 진수해 함흥촌에 오면 날 찾소."
흥수는 어깨 쩍 벌어진 상순을 보고 아주 반색했다.
"상순이라지? 후에 찾아갈게유."
최구장은 넷째아들 경욱에게 몸을 돌리면서 물었다.
“네까지 왔는데 셋째 경민은 어떻게 됐느냐?”
튼튼하게 생긴 경욱이가 대답했다.
“셋째형님은 칼에 잘리운 손을 치료하려고 함흥촌에 갔다가 진수해에 내려 왔습니다. 조카사위 상순이네 칠촌 아저씨 되는 시준 의사한테 가서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시준 영감이 의술이 높아서 약을 몇 첩 달여 마시나 염증은 치료됐습니다.”
“음. 그럼 됐어.”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손비는 어떻게 되었느냐?”
“손비도 형내 약을 쓰고 하혈은 멎었습니다.근심 하지 마시오.”
서로 인사가 끝났을 때였다.
억복은 바위돌의 어깨를 툭툭 치였다.
“됐어, 우린 끝내 도강하였어.”
이때 진달래가 말했다.
“인차 이 자리를 떠야 해요. 총소리를 듣고 꼭 위만 경찰들이 수색하러 올 거예요.”
그리하여 최구장 등은 유골상자를 메고 마중 나온 억복과 근형, 상순을 뒤따라 버들 숲을 빠져 어둠을 타서 두만강 변을 떠났다. 리꺽쇠는 쪽배를 저어 두만강을 되 건너가 조선쪽 두만강 변 마을로 돌아갔다.
이때 뒤에서 꽥꽥 고함소리에 뒤이어 버들 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 부근 대안에서 총소리 울렸어. 꼭 이 부근에 웬 놈들이 들어와 잠복했을 수 있어. 버들방천을 서캐 훑듯 수색하란 말이야.”
억복과 바위돌이 마주 쳐다보더니 허리를 굽히고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상순이가 비수를 뽑아들고 버드나무숲속에 숨어 뒤에서 다가오는 놈들을 기다렸다. 근형이와 최구장은 유골상자를 버드나무 잎으로 훑어 덮어놓고 숨을 딱 죽이고 버드나무숲 속에 엎드려있었다.
뒤쪽에서 말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 왔다.
“여보게, 밤중에 이 무인지경에서 유격대나 만나면 어떡하나?”
“소대장님, 괜히 우리나 목숨을 잃을게 아닙니까?”
“저길 보십시오. 별들이 보이지 않는걸 보니 소낙비가 쏟아질 자정입니다. 돌아갑시다.”
“작작 지껄여! 총소리가 울렸는데도 수사하지 않으면 돌아가서 일본 헌병대 놈들에게 목을 잘리울 게 아니냐?”
“일본 놈들은 어째 수색하지 않고 밤에 일이 나면 우리만 못살게 군답니까?”
“조선쪽에서 총소리가 났는데 저쪽에 일이 있겠지. 여기에 무슨 일이 있다고 그럽니까?”
“너희들 정말 죽고 싶으냐? 잔말 말고 버들방천을 수색해라!”
그러자 바위돌과 억복은 괴춤에서 조약돌을 꺼내 거머쥐었다. 이때 위만 괴뢰군 세 놈이 슬금슬금 다가오면서 버들 숲을 와삭와삭 헤치었다. 한 놈은 억복의 머리앞에 와서 오줌을 쏴 내갈기였다. 억복이 조약돌을 뿌리려고 손을 쳐들었다. 그 찰나 바위돌이 쳐든 손을 잡아 내리웠다.
이때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하늘땅을 진동했다.
“아이고, 소낙비를 맞겠어. 어서 돌아가자.”
괴뢰군 놈들은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억복이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바위돌과 억복은 괴뢰군이 가버리자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버드나무숲을 나섰다. 그들은 최구장과 상순이 그리고 유골상자를 멘 근형을 보호하면서 산기슭 길에 올라섰다.
뒤이어 장대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잘 됐어. 소낙비는 맞겠지만 따라오는 놈들이 없을게 아닌가?”
억복의 말에 바위돌은 팔소매로 이마의 비 물을 쓱 닦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 놈들이 이렇게 억수로 퍼붓는 비를 맞으려 하겠냐?”
바위돌과 억복은 안전을 생각하여 상순의 말을 따라 골짜기에 난 벌판길을 택하지 않고 산기슭에 난 길을 택해 어둠과 소낙비를 무릅쓰고 걸어 나갔다.
“이제 오랑캐령만 넘어서면 선바위가 나지고 용드레촌과도 그리 멀지 않을 겁니다.”
상순의 말에 최구장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걸으면서 물었다.
“여기서 함흥촌까지는 몇 리나 되오?”
“함흥촌까지는 백칠팔십리 됩구마. 어떤 사람들은 이백 리는 된다고 합니다.”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걸음으로는 한 사흘 걸어야 하겠구먼.”
이때 상순이가 말했다.
“가시할아버지, 아예 가시증조할아버지를 아무도 모르는 진수해 남산에 모시면 어떻습둥? 함흥촌에 모시면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어떤 놈들이 우리 뒤를 밟아 함흥촌에까지 오면 증조할아버지를 어떻게 면례해 또 다른 곳에 옮겨 모시겠습니까?”
“진수해라는 곳은 함흥촌에서 몇 리나 되나?”
“함흥촌에서 한 십오 리는 떨어진 자그마한 시내입니다.”
“그게 좋을 것 같구먼. 옛날 조조도 누가 자기 산소를 다칠까봐 숱한 무덤을 만들어 자기 시체를 숨기게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아무도 몰래 아버지 산소를 써서 숨겨보세.”
그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두만강 버드나무숲속을 떠나 한 삼리를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바위돌과 억복은 바삐 최구장등을 보고 산기슭 나무숲속에 엎드리라고 했다.
바위돌은 혹시 진달래랑 오지 않았는가 하여 입에 손가락을 넣더니 뻐꾸기 소리를 냈다.
“뻐꾹뻐꾹”
요란하게 울리던 말발굽소리가 뚝 멎더니 말을 탄 한패의 그림자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춰 섰다.
산기슭 밤하늘에는 비방울이 쏟아지는 소리와 말들의 투레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숨 막힐 듯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바위돌이 또 뻐꾸기 우는 소리를 냈다.
말무리 속에서도 뻐꾸기 우는 소리가 났다.
“뻐꾹뻐꾹 뻑뻑 꾹 - ”
그러자 바위돌과 억복은 나무숲속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령 길에 나갔다.
“바위돌이 맞아요?”
“예, 진달래 중대장!”
진달래는 말에서 내리면서 기뻐했다.
“귀신이 곡할 듯이 우린 여기서 면바로 만났구먼요. 다들 무사한가요? 큰아버지랑은 어데 있어요?”
바위돌이 나무숲속에서 나오는 최구장 등을 되돌아보면서 말했다.
“저기 계십니다. 다 무사히 도강하였어요.”
그러자 진달래는 말고삐를 유격대원에게 넘겨주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큰아버지, 무사해요?”
“오, 그래. 너희들도 무사하였나?”
“예. 우린 큰아버지를 보낸 후 일본 놈들을 따돌리고 상류 쪽으로 말을 달려 곧게 건너왔댔어요. 이쪽에 무슨 정황이 있나 찾아 헤매다가 함흥촌 쪽으로 올라가면서 큰아버지를 찾는 중이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정말 천만 뜻밖입니다요.”
뒤이어 진달래는 유골상자를 말 잔등에 처매라고 하고 최구장에게 얼굴을 돌렸다.
“우리는 해가 밝기 전에 함흥촌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모셔야 해요.”
“그래, 그런데 아버지 산소를 진수해에 쓰기로 했다. 진수해로 가자.”
“예? 그럼 10여리는 가까워 졌구먼요. 빨리 이 두만강 변을 떠납시다. 소낙비가 쏟아지지만 일본 놈들이 오지 않는다고 할 수 없어요. 조선 쪽의 일본 놈들이 꼭 이쪽에 기별을 보내 우리를 수색하라고 했을 거예요.”
최구장은 밀짚모자를 쓴 머리를 끄덕였다.
“잠간!”
모두들 떠나려는데 최구장이 말 잔등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잠간만 기다려라. 아버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쳐다보았다.
이때 최구장은 바위돌 옆의 말잔 등에 실은 유골상자에로 다가가더니 질척질척한 진흙탕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었다. 진달래도 황급히 그 옆에 엎드렸다.
모두들 꿇어앉았다.
최구장은 머리를 진흙탕에 조아리면서 말했다.
“존경하는 아버님,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옵소서. 아버님을 고향에 편안히 모시지 못하고 이렇게 이국땅에 모시고 와서 정말 죄송하옵니다. 유교경전을 통달하여 전생에 남과 악한 짓을 한 게 없건만 왜놈들은 왜 이다지도 우리를 못살게 굽니까? 별 수 없이 만주로 아버님을 모시고 와서 계속 모시려고 하오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옵소서.”
옆에서 진달래도 한마디 올렸다.
“할아버님, 이젠 만주에 넘어와서 산소자리로 길을 떠나겠는데요. 마차에 모시지 못하고 말 잔등에 모셔서 불편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불효한 손녀를 용서하옵소서.”
최구장과 진달래는 유골상자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고서야 최구장은 꼬부장한 허리를 펴면서 일어났다.
진달래는 일어나자마자 손을 홱 저었다.
“출발!”
그들 일행은 몽땅 말에 올라 진수해를 바라고 질척질척한 산길을 달렸다.



                 10.이국 타향에 모신 조상의 산소
한 둬 시간 말들을 타고 거침없이 달려 그들은 진수해역에서 서남쪽으로 하여 자리 잡은 남산에 이르렀다.
“뿡-”
밤차가 경적을 드높이 울리면서 칙칙폭폭 칙칙폭폭 산 기슭 철길에서 달렸다.
최구장은 말꼬리를 잡아당겨 세우고 산정에 서서 새벽의 어둠 속에 잠긴 사위를 둘러보았다. 삐죽삐죽 산세가 험준한 산들이 푸르른 쪽빛속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뻐꾹새가 뻐꾹뻐꾹 구슬피 울었다.
산수에 밝은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순이, 자네 사는 함흥촌은 어느 부근인가?”
상순이 머리를 들어 서북쪽을 훑어보더니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쪽으로 한 십팔 리쯤 가야 합니다.”
“음, 그래?”
이때 최구장의 마음을 환히 읽은 진달래가 최구장과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큰아버님, 함흥촌에는 모시지 못해요. 놈들이 우리를 추적하면 꼭 함흥촌으로 먼저 찾아갈 게 아닌가요? 여기서 좋은 자리를 찾아 모시자요.”
최구장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는 수밖에 없구나. 올 추석에나 네 아버지를 모시고 산소에 오너라.”
진달래는 최구장의 옆에 바싹 다가서며 정답게 말했다.
“예, 추석에는 할아버지께 꼭 제주를 올리도록 하겠어요.”
최구장은 편안한 때가 아니어서 별 수 없었다. 한참 두루 산정과 산기슭을 돌아다니면서 보았다. 그는 서북으로 도끼봉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뭇산 위에 높이 솟은 삼형제산을 바라보고 북에 유유히 흐르는 부르하통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여기 양지바른 언덕아래에 모시자. 비록 명당자리는 아니로되 아버님을 모실만한 곳이라고 할 수 있어.”
상순과 근형은 말 잔등에서 유골 궤를 조심스레 내리워 둔덕진 곳에 모셔놓았다. 삽이 없어서 근형이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말을 타고 가면 좋겠는 것도 남들의 눈에 날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질척질척한 진창길을 주먹을 쥐고 달려 내려갔다.
최구장은 아버지의 유골을 산소 오른쪽으로 하여 모셔놓고 안신 제를 지냈다. 그는 진달래를 보고 조선에서 가지고 온 낙지와 물고기 몇 마리를 안신자리 앞에 놓게 하고 자손들을 이끌고 유골에 절을 올렸다.
천천히 머리를 든 최구장은 유골을 향해 말씀을 올렸다.
“아버님, 어머님,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옵소서. 섬나라 오랑캐 놈들의 등살에 이기지 못해 아버지를 정든 고향 개성에도 모시지 못하고 두 번째 고향 명천에도 고이 모시지 못했습니다. 이런 산 설고 낯선 만주 허허벌판에 모시게 돼 원통하고 죄송스러워요.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요? 이 죄 많은 자손들을 용서하옵고 자손들이 만주에서나마 일본 놈들의 철 발굽 밑에서 벗어나 배불리 먹고 잘 살게 구천에서라도 도와주옵소서. 이제 아버님과 어머님을 여기 양지바른 곳에 모시겠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안심하시고 편안히 계십시오.”
최구장은 말을 마치고 땅을 치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할아버님, 할머님, 편안히 계십시오.”
경숙과 경인을 비롯한 손자들 그리고 손녀 진달래도 흑흑 흐느끼면서 울면서 절을 올렸다.
마을에 가서 삽을 들고 달려온 증손자 근형도 넙적 꿇어 엎드려 절을 연신 세 번 올렸다.
최구장은 손수 자손들과 함께 유골상자를 열고 유골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꺼냈다. 뒤이어 머리로부터 목, 척추, 다리 뼈를 순서대로 다시 상자에 조심스레 넣었다.
이때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고 있었다.
진달래는 바위돌을 보고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산정 곳곳에 올라가서 주위를 경각성을 높여 잘 살피세요.”하고 명령했다.
총알을 맞아 구멍이 펑 뚫린 골반 골을 들고 유심히 보던 최구장은 또 목 놓아 울었다.
“어버이, 용서하세요. 일본 놈들 때문에 죄 없는 어버이 골반에 관통상까지 맞게 한 이 불효한 자손들을 용서하옵소서. 뼈에 구멍까지 뚫렸으니 얼마나 아팠겠어요. 아, 세상 독종 일본 놈 새끼들을 어떻게 하면 이 원수를 다 갚을고?”
저쪽에서 무덤을 파던 경인과 경숙이 놀라운 눈길로 골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참 후 무덤도 다 파고 유골도 상자 안에 다 정성 들여 넣었다. 최구장은 미리 준비한 하얀 천으로 유골을 싼 후 상자덮개를 덮어놓았다.
“아버님, 어머님, 이제 부모님을 이국 타향에라도 모시겠어요. 편안히 고이 잠드세요.”
경숙과 경인은 하얀 천으로 된 여러 갈래 바 줄로 유골상자를 들어 무덤 속에 천천히 내리워 모셔놓았다.
최구장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삽을 주어들고 흙을 관 위에 조심스레 눈물방울과 함께 주르르 흘려 내려 보냈다. 그러자 자손들이 차례로 삽을 쥐여 흙을 무덤 속에 흘려 내려 보냈다.
진달래도 떨리는 손으로 삽을 쥐여 흙을 떠 관 위에 흘려 내려 보냈다. 근형까지 흙을 퍼 넣자 모두들 아주 빨리 흙을 퍼 넣었다.
드디어 자그마한 봉분이 산중턱에 외롭게 생겨났다.
최구장과 자손들은 연신 아홉 번이나 큰절을 올렸다.
뒤이어 최구장은 자손들을 둘러보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너희들도 우리 최 씨의 유구한 역사를 알아둬야 한다. 우리 최 씨는 조선 성씨가운데서 제일 긴 성씨의 하나이다. 우리 시조는 신라 건국 전설에 나오는 신라 서라벌 여섯 촌중의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이다. ‘삼국사기’ 에 따르면 신라 3대왕 유리왕님께서 기원 32년에 신라 6개 큰 마을 촌장들에게 성을 하사하였느니라. 알천양산촌장 알평에겐 이씨를, 무산대수촌장 구례마에겐 손씨를, 취산진지촌장 지백호에겐 정씨를 하사하셨어. 금산가리촌장 기타에겐 배씨를, 명활산고아촌장 호진에게는 설씨를 하사하셨고 우리 시조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님께는 최씨를 하사하셨다. 그 최씨가 380여개 본으로 나뉘었는데 우리 개성 최씨는 신라 말기 개경, 그러니까 지금의 개성에서 대장을 지낸 최우달 장군님을 시조로 모시고 있느니라. 그의 아들 최응은 문장에 뛰여나 후고구려 왕 궁예 휘하에서 신임을 받아 대관을 지냈다. 후손 천보는 리조 초기에 한성부윤을 지냈고 그의 증손 최명창은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나의 아버님은 개성 최씨 네 집안에서 10대 장손이느니라. 그러니까 나는 11대 장손이고 경숙은 12대 장손이다. 근형은 13대 장손이야. 모두들 잘 기억해둬라.”
모두들 작달막한 근형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최구장은 계속 뒷말을 이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모두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개성에서 태여났는데 일본 놈들의 핍박으로 50여 년 전에 명천에 들어왔다. 저 내 동생 최구철과 진달래네 모녀간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개성에서 살다가 일본 놈들의 핍박에 의해 정든 고향을 떠나 머나먼 장백산에 들어가 피신해 있으면서 살게 됐다. 원래 아버지를 할아버지와 조상들이 계시는 개성에 모셔야 하겠지만 일본 놈들의 성화에 모시지 못하였구나. 그리고 일본 놈들이 득실거리는 명천에도 모셔 둔 채 우리 몸만 빠져 나올 수 없어 여기에 모셔 왔다. 일본 놈들의 성화에 우린 이젠 자기 고향에도 찾아갈 수 없게 되였구나. 우리는 자기 조상들도 보지 못하게 되였고 산소도 고향에 쓸 수 없게 됐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울면서 여기 외로운 산에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게 됐어. 이제부터 우린 대대로 여기에 산소를 써야겠다. 비록 고향에 돌아갈순 없지만 여기를 두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자자손손 배불리 먹으면서 살아보자. 이제 나라를 되찾게 되는 날 너희들이 내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나까지 모셔 내갈 것을 부탁한다.”
자손들은 몽땅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면서 섧게 흑흑 흐느껴 울었다.
제사까지 다 지내자 동녘하늘이 환히 밝아왔다.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면서 사위를 둘러본다.
최구장 일행은 흐리멍덩한 하늘아래 쓸쓸한 산소를 되돌아보면서 산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런데 경석이가 보이지 않았다. 약 담배 인이 박힌 그가 또 아버지와 형제들의 눈을 피해 약 담배를 피우러 숲속으로 달아난 것이 분명했다.
“에구, 또 약 담배 인이 올라온 모양이구나. 저 놈 막내를 어쩌겠니? 조선에서 떼버리고 왔더라면 시름을 놓았을 걸. 쯧쯧쯧.”
최구장은 속이 답답해 메마른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진달래는 한숨을 호 내쉬더니 최구장 일행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했다.
“큰아버님, 오빠들, 몸조심하면서 잘 계셔요. 무슨 일이 있으면 인편에 알리세요.”
최구장은 진달래의 해 빛에 탄 철색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돌아가면 구철 동생에게 문안 전해라. 편할 때 진수해로 놀러 오라고 해라. 그런데 넌 언제 시집가겠냐?”
최구장의 한숨 섞인 말에 진달래는 생글 웃어보였다.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내면 시집가지요.”
“에이, 일본 놈들을 언제 몰아내겠냐? 쯧쯧.”
진달래는 최구장께 넙쩍 큰절을 올린 후 말에 올라탔다.
바위돌과 억복이랑 유격대원들이 몽땅 말을 탔다. 최구장은 말을 타고 산정으로 치달아 달려 올라가는 진달래 일행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진달래 네가 수림 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그들은 외롭고 쓸쓸한 무덤을 떠나 천천히 산에서 내려왔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4권
                                          김장혁   

         

        제17 장백산에 피어난 진달래



               1.음흉한 획책


     우시장 경찰국과 헌병대대 사무실은 벌둥지를 쑤셔놓은듯이 발칵 뒤집혔다. 업동 경찰총국 부국장이며 헌병총대 부대대장 스즈끼가 강직돼 우시장 경찰국 국장 겸 헌병대대 대대장으로 내려 왔던 것이다.
그는 졸개들을 끌고 우시장 경찰국 국장 사무실에 들어가 끼무라 국장의 자리에 도고히 앉았다. 그 앞에 끼무라가 꿇어앉았다.
스즈끼 국장은 상부의 처벌서를 읽었다.
 
끼무라는 연약하고 무능해 관할구역에 출몰하며 살인, 방화하는 김용천, 김성칠과 진달래를 괴수로 하는 유격대 놈들과 김병완과 김기준 반일파괴분자들을 놈도 나포하지 못했다. 우시장 자위대대 한길성 대대장, 야마다 면장, 유격대에 피살당하게 했다. 똘만 경찰도 중상입게 했고 숱한 대일본제국 병사들이 기습받아 참살당하게 했다. 김병완과 김기준 반일파괴분자들은 우시장 경찰국과 숱한 군용다리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경찰과 헌병의 기강을 바로잡고 우시장 일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끼무라를 철직시키며 할복 형으로 처벌한다.

스즈끼 부국장은 뱀의 혀 같은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나도 무능한 널 잘 단속하지 못했다고 강직처분받았어." 
스즈끼 국장은 시퍼런 군도를 끼무라 앞에 덜러덩 쥐어 뿌렸다.
“하이(옛)!”
끼무라는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였다. 뒤이어 군복과 허연 적삼을 벗고 선뜩선뜩한 군도 끝을 불룩한 배에 가져다 댔다.
“천황페하,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시체 돼 혼이라도 유격대 놈들을 물어뜯게 해주옵소서.”
말을 마치자 끼무라는 군도로 배를 푹 찔렀다.
꽈당!
끼무라는  바닥에 대가리를 쪼으며 쿵-덩- 쓰러졌다. 뻘건 피가 흐르는 군도를 틀어쥔 채 코통스런 오만상을 찡그리였다. 맥없는 눈길로 어딘가 한 곳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뚱뚱한 배는 군도에 쭉 째져 있었다. 그 자가 쓰러진 채 재차 푹 찌르자 더러운 피가 주르르 흘러 널 바닥을 메스껍게 적시었다.
한참 버둑거린 끼무라는 천천히 죄악적인 한생을 끝장 보았다.
스즈끼는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지그시 감아 버리었다. 그 끔찍한 참상을 보기도 섬직했다. 하긴 자기도 언젠가는 끼무라와 같은 끝장을 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 스즈끼는 수하 대소 장교들을 몽땅 사무실에 불러들이었다. 일본 놈들과 자위대대 놈들은 배를 가르고 피 못 속에 쓰러진 상전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스즈끼는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하려고 들었다.
“다들 보았지? 누구든지 대일본제국에 제대로 충성하지 못하고 유격대와 그 족속들을 한 놈이라도 놓치는 날엔 저런 끝장을 볼 줄 알라.”
“하이!”
수하 놈들은 스즈끼 국장과 쓰러진 끼무라를 번갈아 흘끔흘끔 곁눈질하면서 공포에 떨었다.
스즈끼는 훈계를 계속했다.
“바로 네놈들이 병완과 기준을 살려 간도에 보냈어. 네놈들은 한개 소대나 되는 사냥꾼들이 포수대에 들었다가 유격대원으로 되게 만들었어. 네놈들은 우리 명천 우시장에 유격대들이 마구 쳐들어오게 했다. 네놈들은 야마다 면장과 한길성 대대장, 똘만 경찰을 반주검으로 만든 죄인들이야! 네 놈들은 경찰국과 숱한 다리가 무너지게 만든 죄인들이야! 범죄자들이야!”
“하이!”
놈들은 차렷하고 또 군례를 올리었다.
“병완과 기준은 경찰국 청사와 다리를 파괴한 주모자들이야. 네놈들은 그 놈 부자를 놓친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졌어. 네놈들의 목엔 이미 칼이 대져 있다. 이제 조금만 군사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날엔 언제든지 네 놈들의 목을 쳐 버릴 거야! 알만한가?!”
“하이!”
“옛!”
스즈끼는 모두들 나가라고 손짓하고 나서 야마모도 소장을 쏘아보았다,
"남게.”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던 야마모도는 복판으로 나서고 다른 놈들은 힐끔거리며 사무실에서 기신기신 나갔다. 몇몇 졸개들이 끼무라의 시체를 줄줄 끌어 내갔다. 한때 숱한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한 끼무라 놈은 개처럼 줄줄 끌리어 나갔다. 널판바닥에 더러운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 졸개들은 시체를 치우고 뻘건 피를 걸레로 말끔히 닦아낸 후 스즈끼 국장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나갔다.
야마모도는 감히 스즈끼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뚝처럼 서 있었다.
“앉게, 야마모도 소장.”
스즈끼는 맞은 편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 했다.그제야 야마모도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며 스즈끼 앞 왼쪽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스즈끼는 옆에 다가와 나란히 앉았다.
“야마모도 소장, 자넨 여기 정황을 손금 보듯 하지 않는가?”
“하이!”
야마모도는 벌떡 일어나 군례를 척 붙이었다.
“믿어 줘 감사합니다. 국장님을 위해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대일본제국에 충성하게나.”
“예. 천황페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앉게나. 내 상의할 일이 있네. 이제껏 끼무라 국장이 큰 그물을 쳐서 큰 고기를 잡는 전술은 실패했네. 조선 사람을 백 명 잘못 죽이더라도 유격대 한 놈을 놓쳐선 안 되네. 우리 황군은 중국 대륙을 쳐 들어가면서 ‘삼광정책’을 쓰지 않는가? 몽땅 죽이고 몽땅 불태우고 몽땅 약탈해야 해.”
“알겠습니다.”
스즈끼는 졸개가 가져온 차물을 후후 불면서 마시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항일유격대를 자기 구역에서 기다렸다가 소멸한다면 계속 얻어맞기만 하게 되네. 명천이나 우시장을 기습하고 장백산 일대 밀림 속에 숨어 버리면서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여기서 기다리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스즈끼는 야마모도 쪽으로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우린 특무소조를 간도에 파견해 놈들의 정황을 정찰해야겠어. 별동대를 조직해 그 놈들을 파악 있게 기습해야 하겠네.”
“예, 고명합니다. 참 고명합니다.”
야마모도는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었다.
“여기 특모 소조장을 시킬 조선 사람 없는가?”
“왜 하필 조선 사람입니까?”
“우린 일관적으로 조선 사람으로 조선 유격대를 치는 수법을 쓰네. 자위대하구 별동대 조선 사람들을 위주로 조직할 예산이네. 똘만이 그간 간도에 드나들면서 유격대 정보를 많이 수집했겠는데 참, 이젠 페물짝이 됐어. 기억력이 도끼등으로 돼버렸어.”
야마모도는 한참 생각을 더듬다가  입을 열었다.
“특무 소조장 할 놈이 있습니다."
"누군가?"
" 뱅승철이란 놈인데요. 그의 형 둘이나 진달래네 유격대에 죽어 원한이 깊습니다. 이전에 경찰국을 지을 때부터 끼무라 국장님을 도와 특무노릇을 아주 잘 했습니다.”
“음, 그래 그자는 김성칠이라던가? 그 놈 유격대 대장을 잘 아는가?”
“잘 알다 뿐이겠습니까.”
“조선 경찰 허꺽쇠가 특무 소조장을 시키자는 사람도 있네.”
“허꺽쇠는 너무 나섰기에 유격대 대장들에게 환히 드러났습니다. 백승철은 그저 건달인가 하지 우리가 파견한 특무 소조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됐네. 그럼 백승철한테 특무 소조장을 맡기고 허꺽쇠를 부소장으로 임명해서 훈련시키게나. 우리 일본군으로 별도로 특무소조를 조직합세. 이미 간도에 여러 번 드나든 적이 있는 가메다를 특무소조 소조장으로 임명합세. 장백산 유격대 놈들이 기병소분대두 있다던데 눈이 온 후에야 말 발자국을 명심해 정찰해야 되네. 자위대대 대대장은 영팔한테 맡기고 부대대장은 수길한테 맡기겠네.”
스즈끼는 허리를 의자등받이에 기대며 정중하게 말하였다.
“자넨 별동대 대장을 맡게. 부대장엔 헌병소대장 나까노라이찌로를 시키겠네.”
“예?!’
야마모도는 깜짝 놀라 벌떡 뛰어 일어났다. 그는 삼림을 지키는 것이 낫지 신출귀몰하는 유격대와 정면으로 싸우기 겁났던 것이다. 형 야마다와 자위 대대장 한길수가  살해당한 꼴을 보지 못했는가. 꿈에도 유격대에 놀라 벌떡 깨난적이 한두 번만 아니었다.
“야마모도 대장, 내일부터 특무소조와 별동대를 조직해 훈련시키게나. 올해 천혜의 눈이 녹기 전에 장백산 항일유격대를 몽땅 없애 버려야겠네.”
스즈끼의 명령이었다. 야마모도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지 않으면 안됐다.
“또 있네.”
“예?”
“우리 별동대만으로는 수 십 년 조선반도와 간도에서 유격전술을 써온 의병대 출신 유격대를 소멸할 수 없네. 우리 별동대는 기습해야 하네. 그래도 유격대토벌은 관동정규군에 의거해야 하네. 그런데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 소장 사이또도 이젠 늙어 무능하네. 문제는 간도 여러 파출소들에서 치안을 잘 유지해야 유격대 놈들이 여기까지 기습하지 못하겠는데 말일세. 내 사이또 소장을 탄핵하는 편지를 써서 상부에 보냈네.”
스즈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야마모도에게 편지 한통을 꺼내 주었다.
“간도 용정에 있는 관동군 장교에게 줘야겠네. 어쨌든 우리 별동대 기습에 관동군 주공이 필요하단 말이네. 민병 같은 우리 별동대로만은 유격대를 기습하기는커녕 매복습격당하지 않아도 다행이야. 관동군 속에 잘 아는 장교가 없는가?”
야마모도는 한참 궁리하더니 머리를 끄떡였다.
“있습니다.”
“누군가?”
“바로 한길성 대대장의 맏아들 한철주입니다. 그는 관동군에서 부련대장을 하는데 길림에 있다가 동 만에 돌아왔다는 거 같습디다.”
“동만?”
스즈끼는 김빠진 공처럼 맥이 풀려 의자에 스르르 물앉으며 안경알을 춰 올렸다.
“장백산 기슭에 돌아왔구먼.”
스즈끼는 이마에 손을 얹고 한참 궁리하다가 머리를 버쩍 들었다.
       “그런 천재일우의 인맥을 놓칠 순 없네. 이 편지를 한 련대장한테 전하게. 관동군의 토벌이 없인 이번 기습작전이 실패하게 되니까.”
       “하이!”
야마모도는 벌떡 일어나며 군례를 올리고 나갔다.
그는 관동군이 주공을 맡으면 자기는 협공이거나 기습이나 슬슬 하면서 살 구멍을 찾을 궁리를 했다. 그제야 조금 안도의 숨이 나왔다.
이튿날 스즈끼 국장은 일본 경찰 스까다를 시켜 별동대와 두개 특무소조, 자위대 두목들을 몽땅 불러 들여 임명사항을 공포하고 임무를 포치하였다.
일본 놈들과 친일주구들은 대일본제국과 천황페하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
야마모도 등 대소 두목들이 나간 후에도 스즈끼는 이마를 짚고 안경알 속의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한참이나 골똘히 궁리하였다.
이윽고 벌떡 일어난 그는 군도를 쓱 뽑아 들고 날이 선뜩선뜩한 칼날을 손가락 끝으로 쓱쓱 훑으며 이빨을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김병완, 김용천, 김성칠, 최진달래, 김기준… 네놈들을 나포하지 않고선 이 세상에서 살지 않을 테야!”
군도가 의자등받이에 탁 내리박혀 부르르 떨었다.
보름 후 바깥에서는 거위 털 같은 눈이 풀풀 흩날려 내렸다.
스즈끼 국장은 별동대 야마모도 대장을 불렀다.
“백승철과 가메다에게서 소식이 있는가?”
야마모도 대장은 바위 돌처럼 굳어진 얼굴을 풀지 못하면서 대답하였다.
“가메다한테서 장백산 밀림 속의 유격대 군영 위치를 파악해냈다는 기별이 금방 왔습니다.”
“그래도 털 한 모숨이 해냈군. 구체적으로 말하게나.”
야마모도 대장은 목이 말라 혀끝으로 입술을 축이더니 뒷말을 이었다.
“간도 영월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보라는 집단부락은 장백산 일대로 통하는 교통요충지입니다. 이전에도 유격대 놈들이 그 집단부락을 습격하여 십가장과 촌장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집단부락의 자위대에서 장백산 쪽으로 쌀과 소금을 싣고 가는 장사꾼차림의 사람들 셋을 발견하고 털 한 모숨한테 보고했답니다. 털 한 모숨이가 특무 둘을 데리고 사냥꾼인 척 하면서 멀찍이 뒤를 밟아 유격대 장백산 군영을 알아냈답니다.”
“좋아, 우린 상부에 보고하지도 말고 유격대 놈들을 일망타진해야 하네. 자넨 즉시 별동대를 거느리고 간도에 들어가 관동군 주공을 협조해 장백산 항일유격대를 기습해 김성칠과 진달래의 대가리를 떼 오게!”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괜찮겠습니까?”
“관계하지 말게. 상부에서 우리 출병사실도 모르니까. 별동대가 몽땅 죽어도 모르지 않는가?”
그 말에 야마모도는 혼이 훌 날아 날 번하였다. 그러나 인차 상전이 듣기 좋은 말을 골라 하였다.
“오, 참 묘합니다. 만약 우리 별동대가 전공을 세우면 그때 보고 해도 좋을 게 아닙니까? 헤헤. 정말 고명합니다. 고명해. 허허허.”
스즈끼 국장은 일어나 다가오더니 야마모도대장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마모도 대장, 절대 소홀히 기습하지 말게. 가메다와 백승철을 재차 파견해 장백산 유격대 병력과 군영 배치 지도를 그리게 하게나. 유격대 정보를 구체적으로 정찰해 오게 한 후 불시에 기습하게나.”
“하이!”
스즈끼 국장은 야마모도의 군례에 군례로 답하고 나서 말하였다.
“야마모도 대장, 별동대의 원정습격승리소식을 기다리겠네. 사꾸라관에서 당신의 승리적인 개선을 축하해 질탕하게 놀아 보세.”
“하이! 꼭 국장님의 명령대로 올 겨울 안에 김성칠과 진달래 놈의 목을 쳐오겠습니다.”
야마모도 대장은 재차 군례를 척 올리고 나갔다. 그러나 그는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바깥에 나오자마자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이 머리가 온전히 목 위에 붙어 돌아올 수 있을까?)
야마모도 대장은 소름이 끼쳐 뒤잔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스즈끼 국장은 사무 상에 앉아 이마에 왼손을 얹고 머리를 숙이더니 오래도록 못된 궁리를 하였다.
        사무실 난로 안에서 간혹 석탄덩이가 탁탁 튀는 소리가 납덩이 같이 무거운 침묵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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