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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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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4)
2017년 03월 09일 11시 44분  조회:182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제20 토비 숙청
                                       1. 갈림길
함흥 촌 동산에서 붉은 태양이 불끈 솟아올랐다. 이른 아침의 태양은 핏빛으로 빛나며 광복을 갓 맞은 산과 들을 비추었다. 지주를 청산하고 토지를 분배 받은 중조 인민들의 산과 들에는 황금물결이 출렁인다. 유서 깊은 이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낸 천백만 중국 인민들과 조선의 인민들은 새 삶을 찾은 기쁨에 흥겨워 가을걷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병완은 토성 안 촌공소에서 한창 성칠과 앞으로 일을 의논했다.
“이젠 조선도 해방됐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떠냐? 우리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더냐?”
성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도 짓고 사냥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나 고향이라고 소홀히 갈 게 아닙니다. 내 먼저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조선에 나가 정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고향에 가 본 후 고향으로 가는 일을 결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긴 여기 밭도 어디 쉽게 얻었느냐? 조선에서 들어와 어떻게 일군 황무지 밭이냐? 허나 조부모와 부모 산소가 계시는 고향을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배불리 먹고 산들 속에 걸릴 게 아니야?”
아버지 말씀에 성칠은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떼였다.
“우리는 김일성 장군의 명령에 따라 즉시 조선에 나가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허나 토비가 욱실거리는 이 곳에 아버지와 동생들, 유격대 가속들을 두고 간다는 것도 말은 아닙니다. 삼도만이나 왕청 일대 토비를 몽땅 숙청해 버리고 나갔으면 좋겠지만 조선의 형세는 우리가 시급히 나갈 것을 수요합니다.”
성질이 급한 병완은 곰방대 담뱃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바투 들이댔다.
“네가 나가면 언제 돌아 올 새 있겠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겠느냐?”
일단 마음을 정하면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아버지 성격을 아는지라 성칠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럼 아버지하구 기준 동생만 먼저 고향에 가서 정황을 알아보면 어떻습니까? 창준이랑 상순이랑 여기 있으면서 가을을 하게 합시다. 더구나 마을에서 기둥같이 여기는 아버지께서 가시는데다가 상순까지 가면 토비들을 누가 막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왁 쓸어 조선에 나가면 이 함흥 촌은 잃어버릴 거 같습니다. 이 마을을 아버지와 유격대 가속들이 어떻게 일떠세운 마을입니까?”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구나. 까딱 소문을 내지 않고 고향을 돌아보고 올게.”
이때 김칠백 중대장과 그의 아버지 덕성 그리고 철규 분대장과 그의 아버지 덕팔, 은녀, 룡철과 룡구와 그들의 아버지 송국, 막동이와 갓난이의 아버지 백룡이랑 줄줄이 촌공소에 찾아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토비들이 욱실거리는 간도에서 어떻게 살겠는가?”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자.”
병완은 조용히 떠나가려고 하다가 속 시원히 말했다.
“고향이라고 소홀히 갈 게 아니요. 우리 몇이 조선에 나가 고향 형편을 돌아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결정하기요. 우리 어떻게 일떠세운 함흥 촌이오? 어떻게 일군 밭이오? 피땀으로 바꿔온 이 마을과 밭을 훌 내주고 갈수 있소?”
그 말에 여럿은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여러분들을 둘러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소식을 기다리면서 가을이나 잘 하오. 상순이가 민병들을 데리고 마을을 지킬 테니까 토비를 너무 근심들 하지 마오.”
그러나 덕팔이 도리머리 질 했다.
“저 칠백이랑 성칠이랑 유격대를 데리고 가면 그 무리토비들을 어떻게 상순이랑 민병 서른이 당하겠소? 아예 일본 놈들이 망했는데 조선 고향에 돌아가는 게 나을 거 같소. 여기 중국은 가만 보면 싸움이 끝이 날 거 같지 않소.”
그때 칠백 중대장이 말했다.
“아버지, 지금 동만에는 길동 군구 민주연군 18퇀과 19퇀에 근 2천여명이나 되는 병력이 있습구마. 무기도 기관총에 탱크까지 있습니다. 그까짓 산골짜기 국민당 토비 몇 백 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놈들이 감히 이 마을로 내려 올 새 있습니까? 근심하지 마시요.”
송국이랑 백룡이랑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칼로 썩뚝 자르듯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기오. 내 기준과 송국을 데리고 먼저 고향에 돌아가 돌아보구 올게. 형편이 좋으면 모두 고향에 돌아가기요.”
송국은 동의해나섰다.
“그게 좋겠소. 덧 대구 나갔다가 거기서 살지도 못하고 여기서도 못 살게 되면 어쩌오?”
덕팔은 칠백과 성칠을 번갈아 보았다.
“용천이 살아 있었으면 고향 경주로 가겠는데 종무소식이니 귀향길이 멀어졌어.”
은녀는 경수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성칠을 보고 물었다.
“오빠, 나와 진달래 언니는 애를 업고 유격대를 따라 가는 게 옳잖소?”
성칠은 은녀를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애를 업고 싸우기 불편하겠지만 너희들은 부대를 따라 조선으로 가자.”
이때 진달래도 경주를 안고 경호 오빠와 함께 촌공소에 들어섰다.
“나도 부대를 따라 조선에 나간다. 은녀도 나와 함께 가자.”
은녀는 질달래 중대장을 보면서 인사했다.
“언니,고맙소.”
그때 경호는 진달래를 보고 물었다.
“네가 언제 부대를 따라 가겠나? 내캉 아버지 산소를 가봐야지 않나?”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오빠와 함께 조선에 나가기 전에 아버님 산소를 찾아가 인사하고 가야죠.”
모두들 병완의 말대로 먼저 가을걷이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하고 돌아갔다.
성칠은 조선으로 나가기 전에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천지꽃산 동쪽 산비탈에 묻힌 어머니 산소를 찾아 올라갔다.
성칠은 마른 풀이 뒤덮인 어머니 산소 앞으로 가자 손수 기준의 손에서 낫을 받아 쥐여 벌초했다. 그 사이 제수들은 제사상을 차려 놓았다.
병완과 후노친은 성희의 산소에 제주를 붓고 큰절을 올리었다.
병완은 두 손을 맞잡고 정색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보, 광복이 나면 당신을 데리고 조선 고향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당신은 여기 누워 있고 나 홀로 먼저 고향에 돌아가게 됐소. 그간 잘 기다리오. 이제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우리 당신을 꼭 고향에 데리고 가겠소.”
아버지에 뒤이어 성칠은 어머니 산소에 제주를 붓고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며 서럽게 울었다.
“어머님, 조선과 중국이 광복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다리던 광복입니까?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면 아버님과 어머님을 고향에 모셔가려고 이날 이때까지 유격대를 영솔해 싸우다나니. 흑흑흑,  그간 어머님께 얼마나 불효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부자간이 조선 고향에 나가 형편을 살펴보고 돌아와 어머님을 조선 고향에 모시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렇게 돌아가 고 싶어하던  충남 서현에 모시겠습니다.”
창준과 기준, 곱순 부부도 차례로 제주를 올리고 큰 절을 올리었다. 상순을 비롯한 손자들은 모두 병완의 분부대로 가을하러 나가고 오지 못하였었다.
병완은 노친 산 앞에서 술을 마시면서 성칠에게 말했다.
“얘야, 이젠 그만큼 불효를 저지르고 후처를 해서 이 애비한테 손자를 안겨주면 안되니?”
성칠은 머리를 숙였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맏아들로서 제 구실을 못해 참말 미안합니다. 하옥이 3년제도 지내지 못했는데 내 어찌?”
“야, 결혼은 후에 하더라도 혼처만은 미리 구해 놓아라.”
병완은 뒤 말을 이었다.
“이전에 네가 은녀를 좋아하지 않았니? 지금 은녀 남편이 희생됐으니 불쌍한 은녀를 맏며느리로 삼으면 어떠냐?”
성칠은 천천히 대답했다.
“후처 문제는 제가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황차 그때 폭파된 갱도어귀에서 용천 대장의 시체를 찾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살아 있으면 진작 찾아왔겠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모두들 성칠은 은녀 보다 진달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모두들 제사상을 거두고 내려 갈 때었다.
진달래가 경주를 업고 경호와 함께 산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병완과 여러 사돈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추 성칠 앞으로 다가갔다.
“오빠, 조용히 보자요.”
성칠은 주춤 멈춰 섰다.
모두들 자리를 피해주었다. 경호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천지꽃산 마루 쪽으로 스적스적 올라갔다.
진달래 중대장은 경주를 안고 성칠을 보면서 말했다.
“오빠, 난 경호오빠와 함께 장백산 밀림에 가서 아버지를 찾아보고 조선으로 나가겠어요. 헌데 오빠랑 부대가 어디로 가겠는지 찾지 못 할 가 봐 근심돼요.”
성칠은 진달래가 안은 경주의 볼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이 놈, 귀하긴 귀해.”
“오빠도 아직 이런 떡돌 같은 아들애를 볼 수 있는 기회 있어요. 허나 오빠는 번마다 조강지처와 형제의 의리를 앞세우면서 기회를 포기하군 했어요. 오빠나 저나 다 마음에 없는 일을 너무 많이 했어요. 오히려 그게 양심에 걸려요. 이젠 오빠와 전 서로 마음을 속이지 말고 진실하게 살 때가 된 거 같아요. 이젠 우리도 불혹의 나이를 넘어 좋은 세상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어요. 이제 더 거짓으로 살다간 땅속에 묻혀서도 눈을 감지 못하게 후회막급일 거예요.”
진달래는 정색해 성칠을 빤히 바라보았다.
허나 성칠은 못 들은 척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백두산에 가면 언제 오겠니? 부대는 오늘로 떠나갈 예산이다.”
“어디로 가나요?”
“아마 청진 아니면 함흥에 나갈 거 같다. 평양 쪽에는 소련에서 건너간 빨찌산 부대가 김일성 장군을 따라 곧추 들어갈 거 같다.”
진달래는 머리를 들어 먼 남쪽을 바라보았다.
“애를 업고 이젠 전쟁터에 나가기 힘들 거 같아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는 열기가 넘치는 열변을 계속 토했다.
“허나 난 오빠가 어디로 가든지 세상 끝까지 꼭 찾아 갈 거예요. 오빠 어디로 가든지 오빠 옆에는 제가 있을 거예요.”
“경호는 어디로 갈 생각이더냐?”
진달래는 구김 없이 대답했다.
“고향 개성으로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성칠은 진달래에게 말했다.
“그럼 너도 개성으로 가라. 거기서 용천대장이 돌아가기를 기다려라.”
“그런 말 말아요.”
진달래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외면하면서 진정을 토로했다.
“경주 아빠는 분명 희생됐어요. 살았으면 진작 왔을 거예요. 경주를 보고 싶어서라도.”
진달래는 묵묵히 서있는 성칠에게 경주를 안겨주었다.
“이번에 오빠와 함께 장백산에 가면 밀림 밀영자리에 가서 경주 아빠가 포위를 돌파하려던 갱도어귀를 파 보면서라도 경주 아빠의 시체를 찾아야 하겠어요. 모든 것이 확인되면 오빠도 더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요.”
성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튼 잘 갔다가 은녀를 데리고 조선으로 나오너라.”
“은녀?”
진달래는 이름 못할 눈빛이 반짝이였다.
“그래. 함흥 촌에 남게 되는 은녀를 데리고 나오너라. 그 애는 얼마나 불쌍한 애냐. 난 그 애를 친녀동생으로 생각한다.”
“알았어요. 허나 오빠가 갈 때 데리고 가요. 우린 모두 장백산에 가면 언제 갈지 모르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자. 네가 오해하지 않으면 된다. 잘 갔다 오너라.”
성칠은 경주를 진달래에게 안겨주며 진달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오빠에게 오늘에야 말하지만 용천 대장은 우리와 한길로 갈 분이 아니죠.”
“건 무슨 말이냐?”
성칠은 진달래를 품속에서 놔주었다.
진달래는 마른 옥수수 이파리가 파르르 가을바람에 떠는 옥수수 밭을 쓸어보더니 말했다.
“오빠, 날 욕하지 말아요. 또 달리 생각 말아요.”
성칠은 진달래를 정색해 바라보았다.
“용천 대장은 공산당에 들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진달래는 성칠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말했다.
“그는 우리가 지주를 청산하고 지주를 총살하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북만으로 간 거예요. 말로는 지역감정이 있어서 남대치인 자기를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백산 항일유격대 보다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북만으로 간다고 했지만요. 기실 유격대의 공산당조직이 싫어 떠났던 거예요. 결혼한 후에야 저한테 진속을 털어놨던 거예요. 이전에 늘 나한테 광복이 돼도 나와 애를 데리고 고향 경주에 갈 말을 했어요.”
성칠은 진달래를 욕했다.
“네가 무슨 험한 말을 하는 거야? 용천 대장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는 나의 훌륭한 스승이자 전우이고 훌륭한 유격대 대장이다!”
성칠은 꿇어 앉아 주먹으로 땅바닥을 꽝꽝 쳤다.
“용천 대장은 절대 그런 사람일 수 없다!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진달래는 성칠을 따라 땅바닥에 물앉았다.
“그의 부친은 경주의 대지주예요. 지주의 아들이면 그런 사상과 입장을 가질 수 있잖아요? 제 말을 믿으세요.”
“듣기도 싫다!”
성칠의 고함소리에 어머니와 싸우는가 하여 경주가 “엉엉” 울었다.
진달래도 성칠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에 애기를 업은 옥수수들이 몸부림치며 설레고 낙엽이 우수수 지었다.

2.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

     쪽빛가을 하늘이 까맣게 물들어 가더니 캄캄한 어둠 밤이 대지에 성큼 다가왔다. 함흥 촌 동산에 가는 눈썹달이 떠서 가을바람에 스쳐 바르르 떨고 있었다.
      유격대는 밤중에 대여섯 패로 나뉘어 함흥 촌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가기 시작했다. 병완은 기준과 송국을 데리고 유격대 대오 속에 숨어 조선으로 떠나려고 어둠을 밟으면서 조용히 토성 안 마당에 나섰다.
성칠은 토성 안에서 떠나가기 전에 이계삼과 허영주 그리고 창준과 상순을 보고 부탁했다.
“토비들이 욱실거리는데 마을 사람들을 잘 보호하오.”
“예,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든든한 민주연군이 이미 진수해에 들어와 진주해 있으니까.”
이계삼은 상순을 가리키면서 뒷말을 이었다.
“저 패기 있고 용감한 김상순 련장이 있으니까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구위 서기로 올라가니까 병완 동지를 당 지부 서기로 선거했습니다. 병완 서기가 조선에 갔다가 돌아오면 방어공사도 구축하고 민병들을 조직해 군사훈련도 해야겠습니다.”
병완은 그저 머리만 끄덕이었다.
상순은 성칠 대장을 보고 대담히 손을 내밀었다. 
“큰아버지, 미제 무기로 무장한 토비들을 막아 싸우자면 기관총 몇 정은 있어야 됩니다. 기관총 세정과 탄알을 푼푼히 남겨두고 가십시오.”
성칠 대장은 흔쾌히 대답하고 동욱 중대장을 불러 기관총과 탄알을 넘겨주게 했다.
상순은 성칠 큰아버지와 이계삼 서기 앞에서 가슴을 쭉 뻗치고 우렁차게 말했다.
“김 대장과 이 서기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민병들이 살아 있는 한 토비 놈들이 우리 마을을 끄떡 건드리지 못하게 지킬 것입니다.”
"허허허."
이계삼 서기는 상순을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성칠 대장은 창준과 상순의 손을 굳게 잡고 “이서기의 영도아래 마을을 잘 지켜라. 자기 마을만 지키지 말고 이 땅덩어리에서 국민당 반동파와 토비들을 몽땅 소멸해야 마을을 철저히 지킬 수 있다. 민주연군에 참군하여라."라고 부탁했다.
상순은 인차 대답하지 못하고 “내 잘 생각해 보고 참군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성칠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구장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조선을 바라고 떠났다.
덕성은 칠백의 팔을 붙잡고 “가을걷이를 하고는 조선에 나갈 터이니 영월동에서 우리를 찾아라. 혹시 찾지 못하면 경주거나 함흥 촌에서 찾아라.”라고 했다.
“아버지, 토비들이 싸다니는데 몸 조심하면서 편안히 계십소.”
덕성은 송국과 철규를 바라보면서 “저렇게 부자간이 다 가니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하며 부러워했다.
북만에서 온 유격대원들 가운데는 경상도나 강원도나 전라도 아니면 충청도가 고향인 대원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부대를 따라 조선에 나가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에 정황을 보아 북만에 있는 부모형제들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다.
은녀는 원래 속으로 진달래가 성칠을 따라 조선에 나가면 나가지 않고 고향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함흥 촌에 잠시 남아 있다가 다시 마을 사람들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달래가 경호오빠와 함께 진수해의 최구장네 집에 들었다가 장백산 아버지 산소를 돌아본 후 조선에 직접 나가든지 함흥 촌에 남아 용천 대장을 기다릴 소리도 한다는 말을 듣고 조선으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고향에는 부모와 상호, 은희의 산소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은녀는 종군위안부 옥설과 만금을 데리고 동욱 중대장이 영솔한 중대 대원들 속에 끼어 떠나갔다.
덕팔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은녀를 보고 부탁했다.
“조선에 갔다가 형편이 좋지 않으면 경수를 업고 다시 돌아오라.”
은녀는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인삼 중대장은 토성 안을 둘러보더니 마을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성칠 중대장과 함께 길을 떠났다.
은녀는 함흥 촌을 떠나 한참 걷다가 옥설과 만금이가 인 불룩한 보따리를 보고 물었다.
“건 뭐요?”
옥설은 주위를 흘끔거리더니 은녀에게 나직이 귀속 말을 했다.
“부끄럽지만요. 이건 우리가 간도에 와서 피땀을 흘리면서 번 돈이죠.”
옆에서 만금은 더 말하지 말라고 옥설의 옆구리를 톡톡 쳤다.
은녀는 주춤 멈춰서더니 양손으로 옥설과 만금의 손목을 잡고 대오 속에서 나와 뒤떨어지었다.
그녀는 유격대 대오 맨 뒤에 떨어져 나직이 말했다.
“원세개 대가리 돈이지?”
“그래요.”
“그 돈은 몽땅 폐지로 됐소. 어디다 쓴다고 그 폐지를 가지고 조선에 나가오?”
“예? 그럼 우리를 근 20여년이나 릉욕할대로 한 일본 놈들이 준 돈이 몽땅 폐지로 됐단 말인가요?”
“그렇소. 조선에 가져가면 어디다 쓴다고 그러오?”
만금은 맥이 풀려 풍덩 물앉아버렸다.
허나 옥설은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난 고향 김해에 나가겠는데. 혹시 그 돈 쓰겠는지 알아?”
드디여 그녀는  만금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떻게 피눈물로 바꾼 돈인데 여기다 버릴 순 없소. 명천에 가지고 가 봐야지.”
      만금은 겨우 일어나 은녀와 옥설을 따라 비실비실 걸었다…
마을 사람들은 유격대가 떠나가자 숨을 죽이고 살았다.
       상순은 이계삼 서기를 찾아 갔다.
이계삼은 진수해 구위 서기를 맡았지만 병완이가 조선에 나간 형편에서 아직 함흥 촌촌공소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상순을 자리에 권하면서 물었다.
“김 련장, 무슨 일이요?”
상순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독직입으로 말했다.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마을 사람들의 투지를 불러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이러다간 인심이 황황해지고 말 것 같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소. 그래 김 련장은 어떻게 할 예산이오?”
상순은 “손호표를 청산하고 처단합시다.”라고 제안했다.
“손 지주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붙잡혔던가?”
“예. 지금 우리 집 김치 움에 가둬 뒀습니다.”
“허허허, 그 놈이 배고프면 김 련장네 김치를 다 훔쳐 먹지 않겠소? 그 놈을 누가 지키오?”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내 매부 최학섭이 지킵니다. 사실 아직 김치를 넣지 않아 괜찮습니다. 그 놈을 처단해 지주들의 처자들이 다시는 토비들과 휩쓸리지 못하게 훈계해야 하겠습니다.”
“좋소. 닭을 잡아 원숭이들을 훈계해야지.”
그 날로 태평강 가에서 공개재판대회가 열렸다.
상순은 민병련 1패 패장 이태수와 2패 패장 최병수를 시켜 민병들을 데리고 가서 조덕림, 지학사, 손호표, 제지주 등 지주들의 처자들을 몽땅 공개심판장에 끌고 왔다. 장학산과 그의 처자들만은 공개재판장에 와서 회의에 참가하라고 일렀다. 장학산과 여편네 충씨 그리고 딸 장미련은 굿이나 보려고 공개심판장에 내려 왔다. 상순은 3패 패장 성수를 시켜 자기 집 김치 움에 가둬 둔 손호표 지주를 끌어 오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을도 끝이 났는지라 모두 공개재판대회장에 나왔기에 마을 사람들이 까맣게 모였다.
이때 손호표 지주가 성수와 최학섭에게 끌리어 공개재판대회장에 들어섰다.
손호표 지주가 결박당한 채 쩔룩거리며 공개재판대회장에 끌리어 왔다.
"여보!"
"아버지!"
손호표 처자들은 야단쳤다.
민병들은 총을 겨누며 처자들을 울지 못하게 했다.
이번 공개재판대회는 상순이가 집행했다.
그는 아름드리버드나무가 꽉 들어선 태평강 가 둔덕 우에 서서 먼저 한어로 말하고 뒤에 조선말로 말하면서 회의를 집행했다.
“아래에 진수해구위 이계삼 서기로부터 손호표 지주를 청산하고 처단할데 대한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이계삼은 둔덕 우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옆에서 상순이 즉석에서 이계삼이 몇 마디 하면 따라 조선말로 통역해주었다.
“손호표 지주는 평소에도 김기준 일가와 패용천촌의 가난한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특히 김기준네 저 놈의 소를 쓸 때다. 친일지주 지학사 놈과 짜고 들어 소구유에 재물을 풀어 넣어 소를 죽였다. 또 소를 죽인 죄를 기준 일가에 덮어 씌웠다. 사건 진상은 후에 지학사를 심문하는 가운데서 밝혀졌다. 그 후 손호표 지주는 김기준 일가에게서 소 값을 이자의 이자까지 물게 핍박하였고 소작료로 그해 벼농사를 지은 것을 몽땅 빼앗아갔다. 세상에 소작료로 10할이나 가져간 지주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때 사람들 속에서 야단났다.
상순이가 웬 일인가고 내려다보고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글쎄 용천 대장이 공개재판대회장에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용천 대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상순은 내려가지도 않고 고함쳤다.
“회의질서를 유지합시다!”
이계삼은 계속 연설했다.
“특히 손호표 지주는 우리 중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있는 함흥 촌 인민정권에 이를 갈면서 국민당 토비두목 조덕산 영장을 괴수로 하는 국민당 토비무리에 들어 혈안이 되어 지난번 함흥 촌을 미친 듯이 습격했다. 그 죄는 천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손호표 지주를 타도하자!”
머리를 빡빡 깎은 허영주가 군중들 속에서 구호를 부르자 격분한 군중들은 따라 구호를 불렀다.
“국민당 토비 놈들을 타도하자!"
"우리 마을을 우리 손으로 보위하자!‘
“보위하자!”
그때 함흥촌을 찾아 허둥지둥 오던 용천은 그 장면을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계삼은 계속해 선포했다.
“국민당 토비 악질지주 손호표는 인민들에게 하늘에 사무치는 죽을죄를 졌으므로 사형에 처한다! 또 그의 집과 밭을 몰수해 몽땅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준다!”
“손호표를 청산하자!”
“저 놈의 집과 밭을 나눠 가지자!”
이번에는 한족군중들이 구호를 불렀다. 군중들은 기뻐 박수를 치고 웃고 떠들었다. 손호표 처자들은 사시나무 떨듯하며 어깨를 들먹이면서도 감히 큰 소리를 내 울지 못하고 눈치를 흘끔흘끔 보았다.
이계삼은 손을 들어 흔들더니 마지막으로 지주들에게 경고했다.
“지금 삼도만 국민당 반동파들과 지주, 토비들은 우리 공산당의 영도하에 있는 함흥 촌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다른 마을의 촌간부들을 약탈하고 살인하고 방화를 일삼고 있다. 허나 조만간에 우리 민주연군은 강대한 인민무력으로 그 놈들을 깡그리 소멸할 것이다. 일체 국민당 토비들을 돕거나 미쳐 날뛰는 자들은 오늘 손호표와 똑 같은 더러운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토비숙청에 공을 세우면 우리는 그런 지주들은 공을 따져 용서해줄 것이다.”
이계삼이 연설을 마치자 상순은 둔덕 우에서 명령했다.
“국민당 토비 악질지주 손호표를 즉시 처단하라! 공개심판이 끝난 후 저 놈의 집과 재산을 몰수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준다! 올해 농민들은 자기 밭에서 난 곡식을 어느 지주한테도 바칠 필요 없이 몽땅 자기 집에서 먹어도 된다. 다만 이담 민주연군이 먹을 양식만 자원으로 얼마간만 내면 된다.”
그러자 군중들은 좋아 야단쳤다.
“공산당이 좋기는 좋소. 소작료도 없이 농사지은 거 몽땅 가지라오.”
“우리 행복을 보위하는 우리 민주연군에 쌀을 지원해야 하지.”
“그럼요. 우리 군대한테 쌀을 대줘야 하오.”
흥수와 학수 형제가 손호표를 사전에 파 놓은 구덩이 앞에 끌고 나가 꿇어 앉혔다.
손호표는 처자들을 둘러보더니 대가리를 푹 수그렸다. 허나 인차 대가리를 쳐들더니 마지막으로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며 발악했다.
“이제 삼도만 전보흥 소교가 우리 지주 형제들을 데리고 와서 내 원수를 갚아 줄 거야! 자손들은 오늘 이 원수를 똑똑히 기억…”
땅! 땅!
성수와 병수가 총을 쏘았다. 손호표 지주 놈은 악다구니질을 채 못하고 대갈통이 박산나 뇌장이 자갈밭에 튕기었다. 더러운 시체는 구덩이에 뒹굴어 처박히었다.
숱한 군중들이 조약돌을 쥐여 구덩이 안에 마구 뿌렸다. 한참 후 손호표 악질지주는 조약돌에 깔리어 더러운 시체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용천은 또 도리머리 질 했다.
공개심판대회가 끝나서야 상순은 달려가 용천 대장과 악수했다.
“어떻게 돼 이제야 왔습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힘들어.”
용천은 상순을 보고 그간 있은 이왕지사를 간단히 말했다.
“그때 내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해 나가자마자 적들이 뿌린 수류탄묶음이 폭파했네. 그러나 나는 수류탄 연기 속에서 용케도 적들을 빼돌리고 수림 속에 숨어 들어갔던기여. 처음에는 남만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당지 유격대와 함께 일본 패잔병들과 싸웠당께. 북만으로 부대를 찾아 갔을 땐 부대가 벌써 떠난 지도 오랬던기야. 마을 사람들캉 물어 보니 진달래가 경주를 데리고 기다리다가 함흥 촌으로 나갔다고 하더랑께. 헌데 있자노. 함흥 촌으로 오다가 그만 삼도만 부근에서 국민당 토비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잖아. 하, 세상에 없는 고생을 다 했당께.”
상순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에게 용천 대장을 인사시켰다.
이계삼은 경각성을 높이며 용천 대장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게 토비 소굴에서 빠져 나왔소?”
용천 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말하자면 긴데 간단히 말하죠. 그 놈들은 내 몸에 권총이 있는 걸 보고 빨갱이라고 총살할락꼬 했데이. 헌데 있자노, 난 살자고 그 놈들한테 말했당께. 나두 조선 지주의 아들이락꼬. 유격대에서 대장노릇 했는데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죽는 거 참 애닲다고 했는 기여. 그랬더니 전보흥이라던가. 그 자  놔주는 기여. 그 놈들은 날 보고 자기들 토비무리에 들어라 하잖겠나. 함께 빨갱이들과 싸우자는기여. 내가 조선 고향에 가겠다니까. 있자노. 같은 지주 출신을 봐서 놔주겠으니까. 기어이 삼도만에 남아 장교하라는기여. 난 거짓 항복했던기여. 도망칠 기회를 보다가 졸개들을 데리고 쌀 얻으러 나왔다가 도망쳐 버린기여. 허허허.”
그제야 이계삼과 허영주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혹시 삼도만서 일본 녀성들 보았소?"
허영주의 물음에 용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있었제이. 자매간이라던데 둘 다 전 소교 데리고 사는 같데이. 애도 있더구먼."
허영주와 이계삼은 눈길을 마주쳤다.
용천은 함흥 촌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아버지 김덕성을 찾아갔다.
덕성은 용천을 보자 와락 끌어안았다.
“야, 큰조카 살아 있었어?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래?”
그는 그간 용천이 여기까지 찾아온 경과를 듣고 눈물까지 흘리었다.
오후에 상순이 민병들을 영솔해 손호표네 집과 밭을 청산하자고 농민들을 데리고 자와 말뚝을 가지고 촌공소를 나가자 용천은 구경하러 따라 나섰다.
그는 상순에게서 그간 유격대에서 토비들의 습격을 물리친 일로, 진달래와 경호가 함흥 촌에서 자기를 기다리다 못해 조선에 나가기 전에 장백산에 아버지 산소로 간 일로 다 알게 되였다. 하여 그는 잠시 함흥 촌에 남아 진달래와 경호를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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