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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노마드
김금희
1
창밖으로 내다보는 하늘은 여전히 신비하리만치 순수한 파아란 색이다. 4년전의 그 하늘처럼.
“근데, 그 새로 온 이모 말야. 슬이 누나 말고... 왜, 그 키 좀 작고, 단발퍼머한... ”
“음, 그래서?...”
“중국사람이야?”
“아니.”
“그럼, 한국사람?”
“아~니!”
“설마, 북한... 이야?”
박철이는 커피 한잔을 받쳐들고 창밖을 내다보다가 파란 등받이를 씌운 의자 뒤를 잠깐 훔쳐다보았다.
“아~니, 조선족이야.”
“그러니까 중국사람 맞네.”
“엄마는, 니가 중국 본토사람이냐고 묻는줄 알았지.”
의자 짬 사이로 젊은 여자와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가만가만 새여 나오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들려지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눈치챌수 있을 정도로 자제하고 있는 목소리였으나 벌써 박철이의 귀는 그 목소리에 민감해 지고 있었다.
미세한 물방울들이 유리창에 부딪쳐 아름답게 부서지며 날리고 있었다. 위에도 아래에도 온통 안개같이 뽀얗고 시원한 물방울들이였다. 엷은 구름층을 지나가는 모양이였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예의바른 미소를 예쁘게 띄우고 스튜어디스 한명이 박철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박철이는 다 마시고 굽이 드러난 빈 커피잔을 아가씨한테 건네주었다. 유난히 희고 가는 손목의 아가씨한테는 어떤 범접하지 못할 생소한 아름다움이 배여 있었다.
박철이는 다시 머리를 돌리고 그 거대한 공기바다속에 시선을 잠그어 버렸다. 4년전, 중국땅을 떠나 한국의 하늘로 날아가던 그 날처럼.
땅위에 있을 때는 도무지 볼수도 없고 상상할수도 없었던 풍경이 펼쳐 있어서 박철이는 그 날 잠시 넋을 잃은 듯 입을 하 벌리고 창밖을 내다보았었다. 더구나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땅위에서 보았던 하늘은 장대같은 비줄기들을 사정없이 내리 던지고 있는 무겁고 어두운 구름들 뿐이였었다. 이런 날에도 비행기가 뜰수 있을라나 괜한 걱정으로 전전긍긍 하고 있을 때 비행기는 용케도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조금 심한 흔들림이 아닌가 싶어서 출발을 후회하고 있을 때 끝내 그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날아올랐었다.
거짓말같이, 기적처럼 하늘위의 하늘은 그렇듯 평온하고 황홀하고 아름다웠었다. 한 번도 본적없는 태고의 궁창같은 신비스러운 쪽빛, 그 무연히 펼쳐진 아득한 공기 바다속에 유유히 떠있는 구름섬들, 첩첩산중같기도 하고 자유롭게 달리는 말떼들 같기도 한 그 구름들을 보며 박철이는 순간 가슴이 꺽 메여 왔었다.
떠나기 정말 잘했어, 하고 박철이는 그 날 혼자 앉아서 중얼거렸었다. 썰렁하고 딱딱한 구들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꾸던 모든 꿈들이 정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나 소설처럼 이루어 질수도 있다는 생각에 박철이는 터덕터덕 튀여 나올것 처럼 심하게 날치는 심장을 어찌 할 수가 없었었다.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색시를 얻어서 시내에 나가 자그만 가게라도 열어 먹고 살아야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애기도 기르고, 엄마 아부지도 모셔와야지. 그것이 박철이가 꾸던 꿈이였다. 다른 재주없이 오로지 땅만 파서 먹고 살던 부모 슬하에서, 내노라 하는 학벌도 갖추지 못하고, 장사속에 유난히 머리가 트지도 못한 박철이로선 그만한 꿈도 언감생심이 아닐수 없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서 자기 입이나 겨우 챙기던 박철이에게 한국으로 시집을 가 주겠다던 누나는 일생에 몇 명 안되는 귀인임이 분명했다. 누나가 보낸 초청장으로 마침내 한국 입국 비자를 받을수 있게 된 박철이는 그래서 사람들이 쥐구멍에도 빛이 들 날이 있다고 말하는줄 깨달았다.
“엄마, 장춘은 많이 춥대? 베이징이나 상해는 춥지도 않고 그렇게 좋다던데...” 박철이와 등을 맞대고 의자 뒤쪽에 앉은 방금전 그 남자아이의 약간 붕 ㅡ들뜬 목소리가 낮게 흘러 나왔다.
“아빠 회사일땜에, 놀러 다닐새가 없을거야...” 흥분한 아들애와 달리 한층 가라앉은 여자의 목소리는 대충 거두다 만 씽크대처럼 어수선 하게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중국에 와서 사업하는 집안인가? 박철이는 펼쳐져 있던 탁자를 탁! 소리나게 접어서 의자옆으로 붙였다.
이제 이 거대한 철물 덩어리속에서 불과 반시간만 더 버티면 비행기의 목적지이자 박철이의 목적지가 될 중국 땅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 텁텁하고 씁쓰레 한것 같으면서도 약간 누린것 같기도 하였던 중국냄새, 정확히 어떤 냄새였던지 기억을 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 박철이는 어둑스런 저녁녘에 우리를 찾아 들어가는 닭이나 양처럼 지금 그 냄새가 그리워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거무튀튀해서 밝지는 못하지만 부담이 가지 않는 중국사람들의 색깔, 언어의 종류도 다르고 교양있는 말투도 아니지만 약간 우잡스럽고 무식한듯 하면서도 아직 순진함이 남아있는 표정과 억양이 박철이 자신과 서로 닮아 있어서 중국사람들은 한결 편한 것이였다.
애초부터 중국을 떠난것은 중국에 돌아오기 위함이였다. 중국에 와서 사업하는 한국 사람들이 반드시 돈을 번다는 보장이 없었던것 처럼 박철이도 한국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돈을 벌수 있다는 헛된 상상은 하지 않았었다. 다만 열심히 일을 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 꿈을 이룰 가능성이 영 없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였다.
“거기 가서 일할때는 그저 나 죽었다 생각해야 되는기라.” 한국생활경험이 있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이런 조언을 빼먹지 않고 무료로 반복해서 들려주군 하였다.
“참말로, 놈(남) 밑에서 일하자믄 그만한 각오없이 되겄나? 걱정 말아이.” 돈만 벌믄 되제, 내가 뭐 거기서 평생을 살끼가? 누가 뭐라 카든 상관없다! 하고 박철이는 나름대로 생각했지만 정작 어느 “놈” 밑에서든지 “죽었다”하고 살아있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었다.
그의 온 몸 각 기관들은 이미 전 국민 모두 “절대평등”해야 한다는 무의식속에 깊숙이 물들었는바 머리는 “죽었”는것 같은데 입이 살아있어서, 입을 겨우 “죽였”는데 눈이 살아 있어서, 눈까지 “죽였”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는 주제넘게 손가락이 불쑥 살아날 때도 있어 박철이는 봉급도 챙기지 못하고 자주 짤려나가군 하였었다.
죽은 듯 살아있는 법을 터득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마음먹고 해보니 또 안되는것도 아니였다. 죽어야 할 때와 살아야 할 때가 있다는 요령도 알아 냈는바 뭐니뭐니 해도 효율로 살아가는 그 나라에서는 열심히 일해주는 것외에 다른 어떤 첩경이 없다는것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능숙하고 성실한 일솜씨로 “놈”들의 인정을 받아 내기전까지는 철저히 죽어야 한다는 것, 일단 인정을 받은 후에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받아 내야 할 때는 자신있게 살아나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철칙이 박철이의 깨달음의 정화였다.
“근데 너, 학원에서 배운 중국말로 대화할수 있겠어?”
“으음,..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나중에 엄마 미용실에 나와서 그 조선족 이모랑 중국말로 대화 해봐라.” 조선족을 그냥 조선족이라고 말한것 뿐인데도 박철이는 한국사람의 입에서 “조선족”이란 단어를 들을 때가 가장 미묘하게 불쾌해났다.
무의식간에 “중국 조선족인데, 일 잘해!”라고 칭찬하던 사장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였다. 그런 평범한 칭찬 앞에는 마치 “중국 조선족은 워낙 한국 사람과 달라서 일 잘 못하는데...”라는 전제조건을 이미 깔아두었을것 같은 느낌 때문에 박철이는 항상 그런 말들을 다만 글자 그대로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중국이란 온통 다른 종류의 언어를 시끄럽게 지껄이는 말들속에서 살아오다가 박철이가 처음으로 볼수 있었던 한국은 무궁화 위성이 보내주는 17인치 크기의 모니터 화면이였다. 티비에서는 절대로 흘러 나올수 없다고 생각한 조선말이 (물론 억양과 말투는 차이가 있었지만) 정말로 티비에서 흘러 나왔을 때, 박철이는 순간 온 몸이 떨리는 전율 ㅡ감동이란것을 느껴보기도 했었다.
그것은 태여나서부터 사람에게 순화되여 살고 있던 세퍼드가 어느날 갑자기 같은 혈통을 가지고 생활하는 야생 이리무리를 만났을 때 느낄수 있는 흥분 같은것이라고나 할가. 문뜩 몸에서 잠잠히 흐르고 있던 피줄기들이 요동을 치면서 자신의 원천을 그리워 하는, 강렬한 소망같은것이 불쑥 생겨난것이였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떠난 길은 아니였지만, 돈을 벌어 시내에서 살고싶은 박철이의 꿈이 더 큰 이유가 됐었지만, 어차피 떠나는 것이라면, 바로 그 원천이 흐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던것이다.
멀리 비행기 아래로 푸른 겨울바다와 장난감 성곽같은 하얀 도시가 내려다 보였다. 하늘위에서 내려다 보기에는 중국이든지 한국이든지 가난한 동네든지 부유한 도시든지 다 똑같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 땅의 실체를 알자면 비행기나 위성으로선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는 말이다.
일에 대한 입장의 차이외에 박철이가 난감했던것은 단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나라 사람들한테 무의식간에 걸었던 근거없이 높은 기대였었다. 다만 그들과 다른 것이 영어가 많이 섞여있는 교양있는 말투나, 세련된 옷차림이나, 그리고 교통질서 위생습관 음식솜씨 등등 뭐 대체로 그런 자잘한것들 뿐이라고 어리석게 단정한 박철이는 마침내 그런 자잘한것들이 합쳐서 기어코 넘을수 없는 큰 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었다.
종족은 한 종족이되 이제는 도무지 한 무리에 어울러 살아갈수 없는 야생 이리와 세퍼드처럼, 액체는 같은 액체지만 한 용기에 부어 놓아도 도무지 섞일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박철이는 결코 그들중의 한 사람이 될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었다.
그래서 박철이는 축구경기에서 승리하는 “대한민국” 때문에 짜잔ㅡ짜 짠짜! 박수치기 보다는 참패하는 “중국” 때문에 괜히 냄비뚜껑위의 라면을 참담하게 집어 먹으며 마음이 짠해지였고 “중국산 **에서 또다시 **이 검출되였습니다...”라고 떠드는 아홉시 뉴스를 볼 때마다 목덜미위로 용암처럼 솟구치는 분개를 느끼군 하였다.
한국사람들이 말하던 “중국”조선족이란 이름을 박철이 자신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 된것이였다. 이왕에 “중국산”이라면, 다만 4년이란 시간동안 한국물로 코팅되였을 뿐인 “중국산”이라면, 정말 “중국산”답게 중국 브랜드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박철이는 원천을 찾아, 꿈을 찾아 떠나던 원위치로 다시 돌아오기를 마침내 결단한것이였다.
사실 돌아와야 하는것 외에 박철이가 또 선택할수 있는 길은 없었지만 만약 한국 사람들이 박철이를 가리켜 말할 때 굳이 “중국”이란 규정어를 붙이지 않았더라면, 북에서 중국을 거쳐간 사람들에게 하던것 처럼 “비자”라는것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냥 “중국산”으로도 충분히 불편없이 살아갈수 있게 했더라면 그것은 또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였지만 어쨌든 그 만약들은 박철이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것들이였다.
“아빠 회사 얼마나 멀어? 아빠 나오실거지?” 아직 꿈이 많은 남자아이의 목소리는 중국땅이 가까워 올수록 더 흥분하고 있었다.
“으응... 당연히, 나와야겠지?” 그러나 여자의 목소리는 중국땅이 가까워 질수록 더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박철이는 어느 순간 그속에서 잠깐 번뜩이는 과일칼 같은 차거움도 느낄수 있었다.
이상한 이 예감은 뭐지?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 낯선 곳에 떨어져야 하는 외로움? 경계심? 아니면 다른 종류의 어떤 불안함? 물론 그것은 박철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였다. 그들은 중국 장춘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하나의 등받이를 기대고 선후 의자에 우연히 같이 앉았을 뿐이였지만 사실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앉았다고 해도 박철이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였으니까.
그 여자가 선화나 수미같은, ... 박철이가 알고 지내던 여자가 아닌 이상 말이다. 그녀들의 얼굴이 문뜩 떠오른것은 박철이가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이제 언제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겠는지 묘연하기만 한데, 그렇게 서로의 인연들이 줄 끊어져 날아가는 연 마냥 애달프게 멀어질것만 같은데, 이 시점에서 문뜩 그녀들이 생각키운건 아마도 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그 여자의 목소리 때문이였을지도 몰랐다.
차분하게 흐르면서도 단호함을 내내 잃지 않았던 수미의 목소리, 그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한듯한, 가슴을 흔드는 목소리 때문에 박철이는 수미를 영원히 기억할수 있을것 같았다.
“기집복은 지지리도 없는 놈...” 박철이는 허리를 깊숙이 의자에 묻고 눈을 지긋이 감아 버렸다.
그 녀의 이름이 수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였는지 박철이는 알수가 없었다. 그냥 고달프고 외로운 이국 노가다 생활에서 그 녀를 만난것이 정말 숨이 트인 일이였다는것 외에는.
일을 하고 자리를 붙이고 돈을 모으기만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렇게 되고보니 허전하고 외로워지는건 날로 더 해갔다. 몇 년만 더 “죽은듯이” 일하다 보면 돌아가서 버젓이 꿈을 이룰거라고 매일매일 자신을 설득해 보았지만 그의 육체는 몇 년후에 이룰 자그만 꿈 따위에 소망을 갖기보다 당장 누리고 채우고 싶은 무고한 욕망에 더 집요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의지로 육체를 다스릴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성인”이라고 거룩히 일컫지만 불행스럽게 박철이와 그 외 많은 평범한 사람들 모두 “성인”이 될수는 없었다. 박철이에게는, 마땅히 결혼할 나이가 훨 넘은 노총각에게, 먹고 입고 자는것 처럼 아주 중요한 욕구가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여자에 대한 갈급함이였다. 그런 박철이에게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준 수미는 결코 지나쳐 버릴수 없는 여자였었다.
비행기 기체가 흔들거리면서 고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지평선이 조금씩 경사지고 있었다. 곧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박철이는 둔중한 안전벨트를 다시 허리에 착용해야 하였다.
이제 끝났군, 완전히 끝났겠지... 그렇게 그리웠던 중국 땅에 비행기 바퀴가 닿아 덜컹! 하고 떨리는 순간, 박철이는 곧 심장이 퍽! 터져 나올것 같은 기쁨과 동시에 문뜩 펑! 하고 터져버린 풍선마냥 쓸쓸하고 허전함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거기 사람들과, 그 땅하고 이제 이렇게 끝나버린건가... 내 꿈이 이제 정말로 이루어 지기를 시작하는건가...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어 서고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서서 짐들을 정리하며 박철이는 흘끔 뒤 의자를 쳐다 보았다. 코선이 뚜렷한 곱살스런 얼굴을 가진 아들 옆에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갸름한 얼굴의 여자가 서있었다.
눈길이 마주친 박철이에게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여자, 아마 박철이의 한국식 깔끔한 옷차림 때문에 “중국 조선족”인지 아니면 동족“한국인”인지 얼핏 분간이 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수미보다 예쁘진 않았지만 “미용실 사장”답게 화장이나 헤어 스타일이 한국 여자들 속에서도 튀고 있는 세련된 여자였다. 사실 연예인 말고 조선족 가운데서 수미만한 여자도 없을거라고 박철이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황홀하다거나 섹시하다기보다는 그냥 정말 고운 여자였다. 눈초리가 유난히 길어서 살포시 감겨 올라간 눈은 그 녀의 깊은 마음을 다 끌어내올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오똑 선 코날 아래의 도톰한 입술은 언제 보아도 육감적이였다.
“어서 오세요, 뭐 드실거예요?” 멍청하게 넋놓고 자신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박철이에게 수미가 건넨 첫 인사였다.
드르륵 드르륵 짐가방을 끌고 공항밖으로 나오니 중국 장춘의 겨울은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매섭게 추웠다. 훅 ㅡ 찬공기를 들이마시기 바쁘게 목은 쏙 움츠러 들어가고 코끝은 쨍 ㅡ하고 1미리나 얼어드는것 같았다. 구정을 앞에 두고 한창 추울 때 도착했으니 더욱 그럴 법 하였다. 공항은 떠나던 날보다 많이 커지고 깨끗해 진것 같았지만 공항 주위의 옥수수밭은 여전히 넓고 조용한것 같았다.
새로 만든 주차장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빨간 색 택시의 창문이 열리면서 더부룩한 머리의 기사가 중국인 특유의 느끼하고 높다란 목소리로 박철이를 불러 세웠다.
“취 날? 워 쑹니야?” 마치 몇 달 전부터 사귀여온 친구를 부르듯 스스럼없는 그 반가운 말투에 박철이는 저절로 걸음이 멈추어 졌다. 물론 기사의 반가움은 박철이를 보았을 때가 아니라 그의 지갑을 생각했을 때 나온것이였겠지만 어찌되였거나 박철이는 자신의 지갑이라도 반겨주는 그 친구가 싫지는 않았다.
그것은 롯데 백화점의 점원 아가씨한테서 “손님, 사실거 아니면 만지지 말아 주세요.” 하고 예의바른 미소가 깔린 충고를 들었을 때와는 완전 다른 기분이였다. 박철이는 자신의 지갑을 반겨주지 않는 그 아가씨한테서 무릇 이제 원피스 따위는 사지 않을거라고 얼굴을 붉히며 결심하고 누나의 팔을 잡아끌고 신세계백화점으로 갔었다.
통장에 저축한 돈이 얼마가 되던 지간에,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해주던 지간에, 그의 몸속에서 30여년동안 꽈리를 틀고 숨어 있었던 중국냄새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얼마든지 다시 있을수 있는 일이였다.
그런데 정작 중국냄새의 진원지인 여기에는 하나의 것이 아니라 몇 십개의 냄새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사람들은 누구의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냄새가 어딘가 자기의 것과 다르다고 여기면서도 어차피 “중국”냄새라는 것에서는 동일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차라리 지갑의 두께 따위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이였다.
“엄마 중국말도 잘 못하잖아, 주소만 갖고 어떻게 찾아간다고 그래?” 끌고 오던 트렁크를 짐칸에 넣고 택시 운전석 옆 차문을 열고 있는데 귀에 익은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당해 보지 못했던 혹독한 추위때문에 언짢아져버린 뒤좌석의 아들애가 빨갛게 언 코등을 실룩거리며 저만치 떨어진 곳에 짜증내며 서있었다.
나와 있을거라고 짐작했던 남편이 보이지 않자 여자는 겁도 없이 서툰 중국어로 택시 기사한테 흥정을 붙이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무리에서 떨어진 아기 상어를 발견했듯이 벌써 여러 대의 택시가 합동작전을 펼치는 어선들 마냥 그들 주위로 엉기성기 “포위망”을 펼치고 있었다.
“ 떠우 이거 쨔! 쭤 나꺼 처 예 이양!” 돈 좀 있어보이는 외국인들을 보면 빈대같이 달려드는 중국인들, 이제 그들의 땅에서 더 이상 고상해지지 못할 한국 여자의 표정을 핏 ㅡ 깨고소하게 비웃다가 박철이는 문뜩 기사한테 소리쳤다.
“덩 ㅡ훨!” 도움을 바라는듯 간절한 여자의 눈빛과 어쩔수 없이 딱 마주쳤기 때문이였다.
“어디 가세요? 시내까지 합승할까요?” 정작 어렵게 결심을 내린 박철이의 제의를 듣고 여자는 한국말을 하긴 하지만 분명 신분을 확인할수 없는 낯선 남자와 합승하는 것이 과연 더 안전한 일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는 모양이였다.
“거기서 뭐해? 안에서 좀만 더 기다리지... 애 다 얼리겠네...” 여자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좀 늦어지긴 했지만 어딘가 언짢은 얼굴의 남자가 마침 나타나준것은 굳이 긁어 부스름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박철이에게도 역시 잘된 일이였다.
“고맙습니다.” 여자는 아들애를 데리고 남편이 타고 온 봉고차쪽으로 총총히 달려가기전 머리를 까댁거려서 박철이가 베풀어준 소극적인 호의에 대해 가벼운 인사를 표했다.
“간이 큰 건가? 순진한 건가? 중국이 무섭지도 않은가베.” 박철이는 차안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리고 혼자 기우뚱거리며 그의 앞으로 질러가는 봉고차를 무심히 내다보았다.
“미림성형사출회사”라는 회사의 차량이였다.
2
자갈을 깔아서 반듯하게 수리된 마을길에 들어서면서 박철이는 슬금슬금 놀라고 있었다. 초가집은 거의 없어지다 싶이 적어지고 대신 벽돌집에다 번듯한 2층 시멘트집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마을 입구에는 웬만한 주차장까지 갖춘 식당들이 조선말로 된 간판을 버젓이 들고 서있었다. 헛, 저 집이 이대장네가 아닌가? 무슨 카페라고 쓴 집은 동식이네고, 어쭈, 저건 뭐야? 노래방이잖아? 장사가 되나보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갔을 때 까지는 워낙 시내니까 그동안 많이 변했겠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읍내도 아닌 그들의 동네에 이런 변화가 있을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것이였다.
“야, 박철이! 바, 박, 박철이 맞제?” 조용한 마을길에서 혼자 스적거리며 뻘쭘하게 걷고 있던 박철이의 어깨를 탁! 무식하게 두드리는 사람이 있어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울퉁불퉁한 얼굴에 유난히 큰 입을 가진 익숙한 얼굴의 사내였다.
“이게 누꼬? 호영이 이 짜슥!” 어렸을 때부터 한동네서 쭉 커오다보니 허물없는 친구였으며 중학교때 그 유명한 “4인방”의 맴버이기도 하였다.
“야~ 오래간만이네! 참말로 반갑데이!” 덩치가 산만한 남자 둘이서 끌어안고 치고 박고 하니 금새 조그만 동네가 떠나갈듯 요란해졌다.
“그래, 그동안 잘 있었나? 시방은 뭐하고 있노?” 호영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으로 오면서 박철이는 그간 궁금했던 문안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하였다. 물어보고 싶었던것, 알아보고 싶었던것이 사실 너무 많았다.
“내사 마, 할 일이라꼬 벼, 별, 별게 있갔나? 배 두 번 타, 타아고 왔다. 니, 니는 마, 하, 하안 ㅡ국사람 다 됐네이!” 앞머리가 눈썹을 찌르도록 머리가 텁숙한 호영이는 예나 지금이나 외모상에서 별로 달라진것이 보이지 않았으나 박철이는 자신이 보기에도 이제 “한국물감”이 많이 물들여진것 같았다.
“짜슥, 내는 내지, 한국사람은 무슨... 야, 그보다도, 그 짜슥들은 시방 다 뭐하고 있노?” 박철이가 말하는 그 짜슥 들이란 바로 한 마을에서 쭉 중학교까지 다녔던 “4인방”친구들이였다.
“명수 그, 그 놈은 일본 갔고, 추,운 ㅡ식이 그 놈은 시방 남방에서 큰 회사 다닌다 카더라!” 호영이의 큰 입술이 소꿉친구를 만난 흥분때문인지 슥슥 ㅡ 바람이 나가면서 자제력을 상실한듯 푸들푸들 떨리였다.
“짜아슥, 내를 보니께 그라고 좋나? 찬찬히 야그 해보거라.” 학교를 나와서 내지로 돈벌이 나갔다가 돌아왔을 그 때 처럼, 아니,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렇게 했던것처럼, 박철이는 급하면 말을 먹곤 하는 호영이를 위해 어깨를 편하게 툭툭 다독거려주었다.
이윽고 이어지는 호영이의 브리핑 ㅡ, 처음부터 “아무개는 **로 떠나갔고” 로 시작한 것이 결국 마지막까지 “아무개는 **로 갔고...” 로 끝나 버렸다.
“개네 한국에서 몇 년 잘 벌었재? 그냥 중국에서 살끼지 와 또 가노?” 돌아오면 끝이라고 생각한 박철이의 머리로는 또다시 떠나갔다는 아무개들이 금방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호영이의 “심층분석”ㅡ: 아무개는 여기서 시름놓고 살만큼 벌지 못했다 그러고, 아무개는 와서 무슨 시작을 하기도 전에 쓸만큼 다 썼다 그러고, 또 아무개는 읍내에 아파트 하나 사고나서 다시 할 일을 찾지 못했다 그러고...
아무튼 그들도 박철이처럼 방랑 끝 ㅡ이라고 생각하고 돌아 왔던 모양인데 그 끝이 자의든 아니든 다시 떠나가는 길의 시작으로 되었다는 말이였다. 박철이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페 속에 갇혀 지내고 있던 답답한 공기들을 푸 ㅡ 내다 뿜었다. 그러면, 아무개들의 끝이 또다시 떠나는 길의 시작이 되었다면, 박철이의 끝은 어떤 시작이 될까? 아까 마을길 입구에서 보았던 넓고 휑뎅그렁한 논밭도 겨울이라는 계절 때문이 아니라 버리고 간 주인네들 때문에 저렇게 처량하게 누웠으리라.
“그란데, 이 동네 장사는 잘 되나보제? 그 식당이랑, 까페는 뭐꼬?”
“빵빠ㅡ앙!” 굽인돌이를 틀어서 자기 집 담장쪽으로 들어가려던 박철이는 난데없는 차소리에 깜짝 놀라 말을 하다 말고 얼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착각인가 할 새도 없이 까만 자가용은 엉거주춤 길옆에 비켜선 두 친구를 스치면서 매끄럽게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읍내서 내려오는 식당 손님들이 꽤 많다! 다 한족들이 내려와 하는기다! 저어기, 쬐매한 쑈츠뿌 보이재? 저건 엣날에 매점하던 절뚝발이가 하는 기고...” 이제는 촌동네에 저런 차들의 출입이 별로 신기하지도 않은 듯 호영이는 씨엉씨엉 앞에서 걸어갔다.
버리다 싶이 헐값에 넘겨버린 집에다 고급스런 식당을 차려놓고 읍내의 지갑들을 청해 모으는 한족들이라... 아직도 빠지다 만 노인네의 이발같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페가들과 생기를 잃은 논밭, 그리고 조선말 간판을 들고 욱적북적 수다를 떠는 한족 식당들을 바라보며 박철이는 홀로 낯선 섬에 버리워진듯한 허전함, 그리고 손에서 떨어진 겨떡을 강아지한테 앗기운듯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어둠이 내려오기전 한시 급히 산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긴장감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 이게 누꼬? 우리 철이 왔네예! 철이 아부지, 빨리 좀 와보소!” 집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아들이 그리웠던 어머니는 눈굽을 찍으랴, 소리를 지르랴 야단도 아니였다.
그간 그리웠던 회포를 풀고, 서로 떨어져 살아왔던 얘기를 하면서 박철이와 호영이는 시간이 어느 곬으로 흘러갔는지 알수가 없었다.
“ 그 짜슥들은 다 색시 있갔재? 호영이 니는? 니는 있나, 없나?” 어머님이 손수 차려준 술상을 마주하고 기분좋게 술을 마시다가 취기가 불그스럼 오르기 시작한 박철이는 넌저시 눈을 거슴푸레 뜨고 황소숨을 씩씩 거리는 호영이를 쳐다보았다.
“ 내사 마, 색시를 하믄 뭐하갔노? 내가 먹고 살기도 그란데... 니는? 니는 있갔재?” 저가락으로 물고기 요리를 집다가 박철이는 푸욱! 하고 웃어 버렸다.
“ 니나, 내나 별거 있나? 기집들은 널렸는디, 나하고 살라카는 기집은 없더라.” 거퍼 5년만 지나면 마흔줄에 들어설 두 노총각은 아직 그 흔한 기집하나 데리고 살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세가 답답하여서 허구픈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창문밖으로 어두움이 질척질척 흘러 내렸고 온 마을을 숨막히게 뒤덮었을 텁텁한 어두움속에서 젊은 여자의 맑은 웃음소리나 부드러운 잔소리따위는 들리지 않을것 같았다. 있다고 해도 식당이나 노래방에서 취객들과 한족말로 지껄이는 여자들의 꾸며낸 웃음소리뿐 일것이였다.
거나하게 술이 취해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호영이를 박철이가 대문밖까지 바래다주는데 끌떡끌떡 딸꾹질을 하며 호영이가 취중인지 참말인지 알수 없는 한마디를 던져놓고 가는 것이였다.
“실은, 박철아, 내, 색시 하나 있었다!... 선화라꼬 꽤 쓸만한 기집애였는디... 끄억..꺽...” 박철이는 끝도 없는 터널같은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는 호영이의 뒤모습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었다.
“ 선화라꼬? 선화...선아...”
이튿날 아침, 밥상을 물리고 박철이는 읍내에 가서 두루두루 구정준비를 할 양으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참, 어무이, 호영이 말인데예?...” 아버지가 한사코 입으라고 내놓은 털내복에 다리 하나를 꿰고 학처럼 서있다가 박철이는 문뜩 어제밤 색시타령을 하던 호영이가 생각 키웠다.
“색시 있었어예?” 가끔씩 전화로 동네 문안을 할 때 도무지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였었다.
“있긴 있었다고 해야 제. 시방은 없꼬마는.” 어머니는 왈랑절랑 그릇들을 대야에 넣고 헹구고 있다가 한숨을 가벼이 내쉬였다.
“그기 무신 말인겨? 그라믄 잔치도 했어예? 와 내한테는 그란 말 없었심꺼?” 안방과 주방사이 문턱에 앉아 담배를 태우시던 박노인이 얼굴을 험상궂게 찡그리며 버릇처럼 혀를 쩟쩟 차고 있었다.
“색시만 얻었스믄 됐제, 잔치는 무신놈의 잔치? 니라믄 그라고 싶겄나?”
“그려, 밥 한 때는 묵였으니께, 그라믄 된겨.” 박철이는 두꺼운 청바지에 오리털 잠바까지 걸치고 목도리를 둘렀다.
“그라이께, 대체 무신 말임껴? 애 딸린 과부여? 산 동네 되놈이여? 아님 다리나 저는 여자여?”
“멀쩡하니 잘 생긴 체네여. 호영이 그놈아 보다야 백배 낫제. 조선여자라 그란거지…” 박철이는 가방을 챙기다 말고 뻐끔뻐끔 쓸쓸하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아버지의 된 서리내린 허연 뒤통수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놀랄것 하나 없는 일이였다. 가끔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어머니에, 아래를 쓰지 못한지 몇 년 잘 되는 아버지를 제쳐두고라도, 호영이 자신마저 말 먹는것뿐이 아닌 어딘가 모자란듯 바보스러울 때가 많은 녀석이였다. 그런 호영이네 집이 잘 살 리가 없었고 그런 호영이를 보고 야물딱진 조선족여자가 작정하고 시집와줄리 없었다.
“우찌나 예빘던지... 뼈다구다 가죽 입혀난거나 같았재? 을매나 굶었으믄, 밥알도 차마 몬 묵었다카더라. 쯧쯧, 불상한 아재...”
“그라이 묵이고 살리므 뭐 하노? 다 소용없는 짓이다.” 어머니는 그 여자가 가엾다고 혀를 찼고 아버지는 그런 여자를 가엾어 하는 어머니가 한심하다고 혀를 찼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박철이가 마음에 걸린것은 몹쓸 조선여자가 아니였다.
“그 여자,... 이름이 선화 맞심꺼?”
“아마 그랬제?” 호영이의 “색시”가 정말 있었다는것, 그 “색시”의 이름이 선화 라는것, 그리고 그 여자가 조선여자라는것에 박철이는 슬며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박철이는 짐짓 태연한척 거울앞에 서서 허흠, 기침도 한번 깇었다.
그래서 박철이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는 모양이였다. 아무리 멀쩡하니 잘 생겼다 해도 조선여자는 호영이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였을것이다. 호영이만 그리 생각한것이 아니라 “밥 한끼 묵었으믄 됐제, 잔치는 무슨...”하고 말하던 박철이의 부모님도 그리 생각하여서 잠자코 모두들 덮어두고 계셨던 모양이였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선여자, 호영이의 색시뿐만아니라 박철이가 한국으로 떠나기전 이미 동네에 있었던 여러명의 조선여자들이 지금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무개 색시는 시내 음식점에 다니면서 일을 하다가, 아무개 색시는 방앗간 집 돈을 몇 천원 꾸더니, 또 아무개네는 3돌배기 얼라를 재워놓고 떠난것이... 거퍼 5년을 버틴 여자들이 없다고 했다.
이제는 노총각들이 더 가난한 동네 한족 여자들을 데려오는것을 훨씬 낫게 여긴다고 하였다.
읍내 시장에는 박철이처럼 구정준비를 하려고 들른 사람들이 애벌레 한 마리를 놓고 뜯고 있는 개미떼들처럼 까맣게 모여서 북작거리고 있었다. 누덕누덕 기운 이불로 꽁꽁 싸안고 내온 싱싱한 야채들이며, 살얼음이 낀 수조안의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이며, 중국인 특유의 제조법으로 훈제한 돼지다리와 발쪽이며, 그리고 광주리안에 움츠리고 있다가 뜀질하며 나오는 다리 묶인 토닭들과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아 김이 문문 나는 돼지고기와 소고기... 역시 중국은 먹거리만큼은 절대 풍성한 나라였다. 피기름에 때까지 반들반들 묻은 외투를 입은 구레나룻 사나이한테서 박철이는 모처럼 먹고 싶었던 싱싱한 소고기와 큼직한 소꼬리며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우리 시집에서는 내가 입쌀도 못 먹다가 왔는줄 알더라.” 한국으로 날아간 그 날에 누나네 집에서 박철이는 삼겹살을 구워 먹었었다. 살고 있는 자그만 아파트는 “전세”라고 하였으며 삼겹살을 굽고 있는 형부의 얼굴에서는 크게 선심을 쓴다는 비장한 표정이 력력하게 그려져 있었었다. 박철이는 삼겹살들의 기름기가 빠지기를 기다려서 김치 잎에 돌돌 싸 바작바작 씹어 삼키면서 가여운 누나가 이제 소고기를 먹어보기는 몇 년동안 글렀겠다고 안타깝게 생각하였었다.
소고기만이 아니였다. 치약을 위로부터 짜는지 아래로부터 짜는지와 같은 사소한 습관에서부터 괴팍한 삐형과 소심한 에이형의 성격차이, 십년이란 터울에서 오는 세대차이, 그리고 엄연히 서로 다른 나라에서(공산과 자본)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문화의 차이... 등 가지가지의 문제들에 부딪쳐 누나와 형부는 자주 기진맥진 하였다.
형부는 직원 두명에 아르바이트 학생 한 명뿐이 없는 회사의 “김대리”였으며 경기가 널뛰기를 할 때마다 오늘 짤릴지 내일 짤릴지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였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괜찮다가도 술만 마셨다 하면 주정이 끝이 없어서 주위에 올똘한 친구 몇 명이 없이 살고 있었다. 형부는 누나가 웬만한 한국여자들보다 젊고 예쁘니까 그녀들처럼 살림도 잘 하고 애기도 잘 키우는 줄 알았던 모양이였다.
그러나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배워야 하는 살림을 살면서, 혼자 친구도 없이 외롭게 애기를 키우면서, 매일 가계부를 써도 좀처럼 붇지 않는 통장을 보면서 누나가 형부의 술주정까지 달래줄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일을 한 첫 두해 박철이는 누나의 집에서 구정이라고 명절을 쉬였지만 매번 반복되는 부부싸움을 겪어보고 외롭더라도 조용하게, 홀가분하게 혼자 명절을 쉬는 것이 더 나은 휴식일거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호영이네도 아마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문제에 시달렸을 것이였다. 호영이는 조건이 열악했고 더 자유롭고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그의 “색시”는 조건이 성숙되자 또 다른 탈출을 꿈꾸었을 것이였다.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서 결혼을 결정한 누나처럼 그들의 결합에도 각자의 필요때문이라는 이유가 먼저였을것 이었다. 호영이는 아마 “안해”보다는 우선 “여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 여자는 “남편”보다는 우선 “살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호영이가 “여자”를 “안해”로 대우해주기도 전에 그 여자는 “살 곳”이 다른 데도 많다는것을 알게 되였고, 이 전망없는 “살 곳”이 평생을 같이 해야 하는 “남편”으로 될가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떠나간 여자, 그 여자는 정말 중국 다른 곳에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혹시...그 선아처럼 한국에...
시장안에서 야채며 고기에다 과일까지 한 가방 가득 사고 나온 박철이는 추운듯 몸을 움씰 떨었다. 아니야, 어떻게 그런 우연이? 수미가 수미인지 알수 없었던것 처럼 박철이가 한국에서 만난 선아라는 여자도 정말 선아인지 선화인지 알수 없었다. 선화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잠깐동안 호영이의 “색시”였었던 그 선화라는 장담을 할수 없었다.
굵고 까만 고집스런 눈썹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개성적인 그녀의 성격과 잘 매치되였었다. 잘 생긴 여자였다. 체격도 육감적이라고 하기보다는 건강한 여자였다. 수미가 부드럽고 따듯한 수프라면 그녀는 잘 갈리지 않은 신선한 땅콩쥬스였다. 수미는 언제나 합리적인 말을 골라 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는 생각을 미처 가공하지 않은 채 툭툭 튀여나오는 덩어리들을 함부로 뱉을 때가 있었다.
“고아예요, 저는.” 그녀가 그렇게 알려 주었기에 꽤 오래동안 박철이는 그녀가 정말 시설에서 자란줄 알았었다.
“인마, 고만 조져라이!” 노란 칠이 덕지덕지 벗겨져 버린 호영이네 구들위에서 박철이는 한사코 건배하자고 우기는 호영이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괘않다, 우리 집이니께, 묵꼬 너부러지믄 그만인겨! 체 나라!” 워낙 푸들거리를 잘 하는 호영이의 커다랗고 두꺼운 입술이 들들 떨리고 있었다. 방울처럼 멋쩍게 큰 눈은 자주 초점을 잃어버려 핑 ㅡ 하니 풀렸다가 겨우 원위치를 회복하군 하였다. 단단히, 속시원히 취하고 싶었던 모양이였다.
“알았다, 고마! 마셔라! 마시고 죽으믄 고만이제! 니나 내나 뭐가 아깝겠나?” 박철이는 머리를 뒤로 훌쩍 젖혀서 술잔에 반쯤 채워져 있던 흰 술을 쭈ㅡ욱 들이켰다.
“허ㅡ어... 니는 와 죽자고 마시노? 니는 살아야제, ... 돈도 벌어왔으니께 인자 집도 사고, 색시도 얻고, 얼라도 낳고... 그라이 살아야제..어이? 억, 억, 허억...” 급기야 호영이는 눈물 코물을 비실비실 짜내면서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박철이는 이 시각, 호영이 보다 돈 좀 더 있다는 사실에, 호영이 보다 좀 더 잘 났다는 사실에 괜히 미안해나서 어깨를 들썩거리는 못난 소꿉친구를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였다.
“내도...헉, 얼라 있었다! 니 모르제? 선화 그 가시나가 고만...내 얼라를 ... 윽, 윽윽... 석달밖에 안 됐다카던데... 어~어~억... ”
“에잇 못난 놈...” 박철이는 한숨을 푹 ㅡ 쉬다가 다시 혼자 잔에 술을 채워서 답답하니 막혀있는 목구멍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 “중국 사람한테 가서... 석달만에 도망쳐 나왔어요...” 언젠가 같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선화라는 여자가 박철이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허긴... 얼라까지 싸놓고 내빼으믄 내 어예 살갔나? 우찌됐든간에 2년동안 내캉 살아 줬으니께 그만한 돈은 줘야겠제...” 눈물을 훔치며 호영이는 방금전보다 많이 덤덤해졌다.
“그긴 또 무신 소리고? 돈 가지고 튀였더나?” 박철이는 도둑이 와도 탐날것 하나 없어보이는 고물천지인 호영이네 가장집물들을 둘러보았다. 칼자국이 선명한 짧은 다리 책상에, 따귀를 많이 얻어 맞은것 같은 귀머거리 텔레비에, 유리창이 반쯤 나가서 지난 해의 달력으로 대충 가린 이불장 문에, ... 거기다가 건너편 방에서는 흐음흐음 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호영이의 어머니가 코를 골고 있었다.
“니가 무신 돈이 있다꼬 그걸 갖고 튀나? 독한 가시나...” 선화의 고집스러운 눈썹이 떠올랐다.
“난요,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그땐 죽어야겠지요...”
“아이다, 내가 배에 있을 때 울 엄니 밥 끓여주고 울 아버지 송장 치른 아다. 내가 준기다. 그 돈...”
“으이구, 그래, 니 잘 났다. 못난 놈...” 기어이 떠나가는 여자앞에서 호영이가 또 무엇을 할수 있었을가? 박철이는 저가락을 들어 밥상을 내리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그 어느날, 선녀가 떠나갔어요. 하늘높이 ....
선녀가 떠나갔어요~~ 선녀를 찾아주세요, ...아니 선화를 찾아주세요, ....
허헉, 흐흐흐 ... 근데 임마, 대체 그 가시나 선화냐? 선아냐?...” 호영이는 벌써 밥상에 코를 푹 박아버리고 크르륵 크르륵 잠이 들어 있었다.
“선아야, 니가 맞냐? 니가 선화야? 아니재? 니가 수미를 ... 아니재? 차마 니가 그랐겠나? 으이? ...독한 가시나, ...”
3
박철이는 그때 자그만 고물회사로 옮겨서 일을 하고 있었었다. 고물중에서도 낡은 전선만 취급하는 회사, 까놓고 말해서 쓰레기 수거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였으나 굳이 “회사”라고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그 전선의 피복들을 기계로 깐다는 그것 때문이였다. 기계라고 해도 전자동이 아니라 수동이여서 능숙한 일솜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자리였다. 허술한 공장외모와 달리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현금이 바로 들어올수 있어서 오히려 장마철에는 놀다 싶이 해야 하는 알짜 노가다보다 수입이 못지는 않았다.
사장과 직원 다 합해봐야 박철이까지 겨우 네사람, 두 사람은 동업하는 사장들, 한 사람은 대리, 그리고 박철이는 중국 아저씨라 불리는 직원이였다. 박철이는 괜찮은 일자리에서 더 많이, 더 오래 벌고 싶어서 성심껏 일했고 동업하는 두 사장은 그런 박철이를 아주 흡족해하였었다.
추석을 앞두고 모처럼 일을 일찍 끝낸 그들은 돼지갈비를 먹기로 합의를 보았었다.
“여기 고기가 맛있다고 소문 났다드라.” 이렇게 운을 떼며 식당문에 들어선 그들을 맞아준 여자가 바로 수미였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수미의 고운 얼굴을 보는 순간, 박철이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을 다시 만난것마냥 이름할수 없는 친밀함이 본능적으로 느껴졌었다. 포장은 비슷해도 본질적인 내용은 항상 서로 다르던 무리속에서 살다가 마침내 만난 그 “진정한 동지” ? 수미를 만나는 순간부터 박철이는 더 이상 한국생활이 외롭지가 않아졌다고 그 후에도 쭉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서 오냐고? 집에서 오지. 아따, 언니는 언제봐도 이쁘다~” 능글거리며 수미한테 농을 거는 사장과 대리를 보면서 박철이는 이상스럽게 벌써 미미한 질투같은것도 느끼고 있었다.
“인마, 너 결혼 안했다 그랬지?”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수미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박철이에게 사장과 대리들이 마음 가렵게 쿡쿡 찌르고 있었다.
“저 언니 이쁘지? 교포래~” 혹시 수미한테 그 말들이 들려질까봐, 아니 혹시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불컥 불거진 자신을 돌아 볼까봐 박철이는 막 화까지 슬슬 올리 받쳤다.
“에이 참, 그만해요...” 수미가 저만치서 돼지갈비 5인분을 큰 그릇에 받쳐들고 그들앞에 다가오자 노총각을 놀려먹는 재미에 더없이 즐거워진 유부남들이 또다시 지껄였다.
“언니, 중국에서 결혼했어?” 가스불을 켜고 고기를 올려놓다 말고 수미가 박철이를 흘끔 쳐다보는 것이였다.
“ 왜요? 좋은 사람이라도 있으시게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띤 수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박철이의 심장이 갑자기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퍼덕퍼덕 심하게 뛰놀기 시작하였다.
수미를 보고 입만 다시는 유부남들은 그 대리만족이라도 채우려고 박철이를 내세워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으며 수미는 수미대로 받아 주는듯 아닌 듯 묘하게 넘겨버리기만 하였고 박철이는 박철이대로 흥분에, 짜릿한 즐거움에 고기를 어느 구멍으로 집어 넣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시작된 수미와의 인연, 박철이는 기회만 되면 뻔질나게 수미가 일하는 갈비집으로 드나들었다. 수미와 이런저런 농도 걸어보고, 더 자세한 내용들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수미는 좀처럼 잡힐듯 말듯 박철이의 눈앞에서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기만 할뿐이였다.
그러기를 얼마동안, 그 해 추석이 되여 한 도시에서 일을 하며 가끔 전화로 연락을 하던 윗동네 친구녀석이 박철이를 찾아 왔었다. 워낙 붙임성이 좋고 성격이 능글맞아서 박철이의 초청을 기대하지도 않고 저좋으면 아무때고 문뜩 들이닥치는 주제가 좀 넘치는 친구였다.
“ 야, 추석 어떻게 보낼까 걱정했지? 나 와줘서 정말 다행이지?” 일년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겨우 추석 연휴 사흘에 목숨걸어야 하는 박철이인데 수미가 아닌 살벌한 녀석이랑 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반갑지 않았다.
“ 넌 애인도 없냐? 그 많던 애인들을 다 어떻게 먹어버렸대?” 박철이의 입이 퉁명스럽게 튀여 나온것을 보고 녀석도 무슨 감을 잡았는 모양인지 눈을 껌뻑거리면서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 이상하다, 넌 친구도 없고 여자도 없어서 반가워 할줄 알았는데… 왜? 너 애인이라도 생겼냐?” 애인이란 두 글자를 듣는 순간, 박철이는 알몸으로 샤워를 하다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들킨 남자처럼 얼굴이 불끈 달아올랐다.
“ 애, 애인은 무슨… 아니야, 절대 아니야…” 염치좋은 윗동네 바람둥이 친구는 손까지 내저으며 완강히 거부하는 박철이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 얌마, 아니면 아니지… 뭐 그렇게 까지 긴장을 하고 그러냐? 여자가 있긴 있는 모양이네ㅡ, 왜? 유부녀야? 하긴, 애인중에 처녀나 과부보다 유부녀가 젤로 짜릿하다더라…짜식, 재간 좋네ㅡ” 한국생활 7년에,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녀석은 꺼리끼는 기색도 없이 박철이의 심기를 자극하는 말들을 툭툭 내뱉었다.
“ 아니라니까! 그만 해!” 드디여 박철이가 화내기 시작하자 그제야 그 속없는 친구는 “정말 아니야? 아니면 됐고…” 라고 씁쓸하게 마무리를 짓는것이였다.
기어코 자기가 저녁 사겠다는 녀석을 데리고 수미네 갈비집으로 간것은 몰래 녀석에게 수미를 자랑하고픈 박철이의 욕심이였나 보았다. 자기는 사귄 여자가 셀수 없이 많았다는둥, 한국에서 같이 동거해본 여자만 해도 한타스는 된다는둥, 어떤 여자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자기가 박사라는둥, 박철이는 남자로서 전혀 매력이 없어 보인다는둥, 이제 기회가 되면 자기가 손수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기술을 전수하겠다는둥… 하늘아래 뻥이란 뻥은 모조리 치고싶어 안달이 났던것 같았다.
그날 저녁장사가 끝나면 수미도 사흘 추석휴가가 난다고 하였다. 완벽한 조각상처럼 예쁜 수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수미의 눈초리가 박철이를 향해 미묘하게 떨리는것을 보는 순간, 이 뻥쟁이 카사노바는 당금 얼이 나가는듯 멍청해졌다.
“ 얌마, 어디서 저런 일품의 여자를… 야ㅡ, 너 다시 봐야겠다…” 수미가 상을 보러 나간 사이 뻥쟁이 카사노바는 연신 침을 흘리면서 수미의 탱탱한 엉덩이를 느끼한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
“ 그만해, 아직은… 아니야…” 박철이는 녀석의 느끼한 시선이 불쾌해나서 일부러 팔굽에 힘을 단단히 주고 옆구리를 쿡 ! 필요이상으로 아프게 찔러주었다.
“ 뭐? 아직 손에 안들어온거야? 야, 그럼 우리 똑같이 경쟁하는거다! 아싸, 오늘 봉잡았네ㅡ!” 뻥쟁이 카사노바는 옆구리를 슬슬 만지면서도 신이 나서 어쩔줄을 몰라했고 박철이는 기분이 잔뜩 잡쳐서 녀석을 노려보기만 하였다. 이게 뭐야? 이게 아닌데… 큰일났다!
뻥쟁이는 과연 카사노바답게 식당 문어귀에 잠복하고 있다가 서빙언니들 가운데 수미가 묻어 나오는것이 보이자 으흠 으흠 유식한 신사답게 목청을 가다듬으며 다가서는것이였다.
“ 실례가 안된다면… 차라도 한잔…” 작업멘트의 기질이 다분한 느끼한 목소리의 뻥쟁이와 그 뒤에 숨어 어쩔바를 모르는 순진한 노총각을 번갈아보며 서빙언니들이 까르르 한바탕 웃는것이였다.
“ 얘, 수미야, 차 한잔 하겠다잖니? 빨리 가봐라, 정말 차 한잔뿐이죠? 술이라면 우리 같이 가주고 싶은데…” 허구프면서도 어딘가 즐거웠던지 수미는 손에 땀을 쥐고 서성거리는 박철이를 향해 피씩 웃고 말았다.
대신 수미도 같은 자취방에 있다는 여자친구를 불러와서 짝기러기 넷이 앉아 술을 마실수 있었다. 이제 곧 연휴라 긴장했던 탕개도 풀렸고 오랜만에 같은 입장의 동지를 만나 편하기도 했고 그리고 아직 풋풋이 젊은 이성들끼리 만나 미묘하기도 했다. 감수성이 민감한 소년, 소녀시대로 되돌아간것 같기도 하여 정말 즐거웠던 밤이였다. 그 밥맛 떨어지는 뻥쟁이만 아니였으면 너무 완벽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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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라는 작품을 소개글에서 많이 봤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원작품을 찾을수 없네요. 이 작품 부탁합니다. 꼭~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