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빼앗긴 것들 김금희
1세상을 살다가 드디여 간절히 원하던 그 무엇을 얻었을 때 당신은 문뜩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사실 얻음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엄연한 대가가 있었다는것을. 당신은 그 얻음의 대가를 미리 알아서 지불하기를 원했을수도 있고 혹은 대가가 있다는것을 감감 모른채 얻는것에만 급급했을수도 있다. 그것을 얻고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보았을 때는 이미 원하지 않던 그 무엇을 빼앗겼을수도 있다. 그런면에서 볼 때 이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고 말할수도 있을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세상이 공평하길 바라면서도 자신한테만은 다른 사람에게보다 좀 더, 좀만 더 너그럽기를 바라고있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 최초의 충돌과 모순은 바로 그런 생각에서 생겼을수도 있다. 아담의 첫아들인 가인은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사만 기꺼이 받으셨다고 질투한 나머지 돌로 쳐죽이는 참사를 빚어냈다고 하니 그후의 인간들은 더 말할나위도 없을것이다. 북적거리며 일을 하던 직원들과 들락날락 분주히 굴던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 내장을 훑어낸 한마리 상어 같은 텅빈 회사건물을 나오면서 나는 홀로 쓸쓸하게 그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넓은 주차장에도 혼자 구을러갈수 있는 성한 차들은 다 구을러나가고 문이 뜯겨졌거나 바퀴가 빠졌거나 또는 휴지처럼 쭈그러진 철판으로 겨우 몸을 가리고있는 심한 “중증환자”들만 구석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러면 내가 얻은것은 무엇이고 빼앗긴것은 무엇일가? 얻은것이 더 큰 리익일가, 빼앗긴것이 더 큰 손실일가? 그것에 대해서 나는 당장 뭐라고 정리를 할수가 없었다. 어떤것들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돌아보고 진실한 평가를 내릴수 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회사 대문을 나오는것을 서슴치 않았다. 지금 나로서는 이렇게밖에 할수 없다고 자신을 설득하였지만 아직 나자신이 나의 선택에 대해 자유로운것은 아니였다. 대문을 나서며 경비실을 지날 때 래일이나 모레, 혹은 좀 더 지난후의 회사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고있는 경비아저씨가 문을 열고나와 허리를 굽실거리며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임경리님, 늦게 퇴근하시네요.”만약 이 량반이 회사가 곧 부도날수도 있다는것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가? 그때에도 나에게 이렇게 깍듯이 임경리님, 하고 불러 줄가? 그것은 아무도 장담할수 없는 일이였다. 십중팔구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것임을 나는 알고있기때문이다. “성심자동차정비유한공사” 회사대문에는 11개월전에 새로 올린 간판이 그대로 덩그러니 붙어있었고 그아래에는 “성심성의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라고 쓴 광고구가 양복 받쳐입고 넥타이 단정히 맨 허풍쟁이 신사처럼 위선이 가득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성심성의라?”나는 이런 광고글귀가 회사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수 있다는것쯤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허무하게 입을 한번 쩝 다시면서 이쯤에서 티끌의 미련도 없이 돌아서기로 하였다. 사실 나는 제법 눈치가 빠르며 두뇌회전도 빨라서 아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썩 약아빠지거나 사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성격도 아니다.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솔직히 나자신은 그런 말을 듣는것이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요즘에 들어서 “착”하다는 말은 자칫 “바보스럽”다거나 “제 밥그릇 하나 못챙기”는, 뭐 그런 물렁한 사람에게 자주 쓰이기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자기 밥그릇 한번 완벽하게 지켜본”일이 없었던 사람이다. “밥그릇 한번 지키려고”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될 때마다 나는 차라리 일찍 포기해버리는수가 많았었다. 사람들은 자칫 내 밥그릇이 될번했던것들을 가져가면서 나더러 사람 참 “착”하다고 하였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나 역시 내 밥그릇쯤은 제대로 지켜보고싶었던 사람이였다. 길을 건너 모퉁이를 돌아서 나는 새로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전철역으로 들어섰다. 내가 있는 아빠트까지는 거리가 한참 되여서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아깝고 뻐스를 타기에는 너무 붐벼서 여직 이렇게 전철을 타고 다녔다. 퇴근시간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전철에서 좋은 자리는 중간쪽보다 의자가 많은 앞뒤 량켠이다. 그중에서도 의자 바로 앞, 낮은 손잡이가 달려있는 구석진 저 자리는 한꺼번에 4개의 의자를 마주하고있어 앉아갈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은 자리에 속한다. 나의 맞은켠에서 항아리 같은 허리를 휘두르며 걸어오던 한 중년아줌마 역시 그 자리를 눈독들이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좋은 자리나 순서따위를 가지고 사람들과 “눈치싸움”을 해본적이 얼마 없었다. 그것은 내가 “고상”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낼 자신이 부족했기때문이다. 패배당한 사람이 아니라 일부러 져준듯한 여유를 부리는 사람의 표정을 짓는것, 그것은 나의 특기였다. 나는 어쩔수 없이 그런 인간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삼촌과 너무 닮지 않았다. 만약 내가 삼촌을 닮아서 사람들과의 “기싸움”에 아주 능한 사람이였더라면 어떠했을가? 삼촌은 자신을 닮아 “밥그릇 빼앗기”에 능한 내가 자랑스러웠을가 아니면 이렇게 “착”하기만 해서 아무에게나 밥그릇을 내주는 내가 더 다행스러웠을가? 나는 지금도 삼촌의 마음을 다 알수는 없었다. 아니, 이제 그 회사를 나온 마당에 삼촌에 관한 것이나 다른 어떤것도 알고싶지 않을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결국 나는 “명당자리”를 아줌마에게 내여주고 그옆의 손잡이에 몸을 기대섰다. 의자 넷을 마주하고 선 아줌마가 우선 순위였고 그다음은 곧바로 내게 기회가 차례질수 있기때문이였다. 전철이 덜컹거리며 달리는 동안 먼저 내릴 손님이 누구일가고 앉은 사람들의 표정에 너무 티나게 신경을 쓰고있는 아줌마와 달리 나는 머리를 수굿하고 핸드폰을 꺼내 짐짓 게임을 하는 여유도 보였다. 사람들에게 온갖 체면 다 구기며 작은 리익 챙기는 가소로운 인간이기보다 “고상”하게 살다가 문득“행운”을 거머잡은 인간으로 보여지고싶었다. 그래서 나는 삼촌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인것이다. 삼촌과 다른것이 너무 당연한 리유는 우리들의 피에 물이 절반 섞여있기때문이다. 나의 친 할머니는 삼촌의 생모가 아니였기에. 지금도 삼촌을 생각하면 나는 어렸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그리 잘 생긴 사람은 아니였지만 삼촌처럼 카리스마가 대단한분이라고 했다. 타고난 군인기질로 하여 부대에서 사령관직에까지 올랐으며 품은 녀인들도 많아서 내가 알기로도 네명이나 되였다. 조선에서 만난 첫째 녀인을 제쳐두고 정식으로 혼인을 한 둘째 녀인한테서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였고 세번째 녀인은 종군간호사출신으로 둘사이에 자식이 없었으며 지금 있는 할머니, 즉 삼촌의 생모하고는 족히 열한살차이로 삼촌을 비롯한 아들 셋에 딸 넷을 보았다. 그외 잠시 만난 녀자들이 얼마나 더 있었는지 이루 헬수 없었고 만난 녀인들마다 미인들이였다고 한다. 차가 어느역에인지 도착하자 아줌마가 호시탐탐 노리던 네 의자중 두 의자에 앉았던 사람이 한꺼번에 훌쩍 일어나 내려가는 바람에 자리가 두개씩이나 나지게 되였다. 아줌마가 배추통 두개를 합쳐놓은것 같은 엉덩이를 그중 하나의 의자에 밀어넣고 앉자 드디여 내 차례라고 움찔 앞으로 한걸음 내디디는데 뒤쪽에서 마른 팔꿈치 하나가 불쑥 튀여나와 신사처럼 느긋이 움직이는 나를 헤집고 간발의 차이로 내 먼저 의자에 털썩 앉아버리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 이런, 몰상식한 인간이라구야. 큰 일도 아니고 기껏해봐야 잠간 앉아갈수 있는 의자 하나였을뿐인데도 나는 기분이 영 더러웠다. 게다가 그 얌체 같은 사람은 나보다 썩 후에 차에 오른 사람이였으며 서있는것이 힘에 부칠것 같은 로약자도 아닌 젊은 남자였다. 누가 굳이 써붙여놓지 않아도 이 도시에서 전철을 탈 때에는 이런 규칙이 있었으니 첫째는 로약자한테 자리를 양보하는것과 둘째는 먼저 오른 사람 순위, 혹은 의자와 가까운 거리에 서있던 사람의 순위로 자리를 차지한다는 그것이다. 이런것들은 의무가 아니고 량심에 따라서 하는것들이기에 간혹 가다가 이렇게 량심이나 도덕원칙보다 자기 리익을 먼저 앞세우는 인간들때문에 약간의 흐트러짐을 보이기도 한다. 어쩜, 쯧쯧… 나는 놀이방에서 잘 놀고있다가 문득 다가온 다른 아이한테서 장난감을 빼앗긴 어눌한 아이처럼 맹랑하고 불쾌해났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 놀이방이 정말 있었더라면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았을가 나는 생각하였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 밥그릇 지킨다는것이 바로 이렇게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해야 자기것을 지킬뿐만아니라 더 많은것을 차지할수 있는가 하는것은 나만한 정도의 경험과 지력을 갖고있는 사람이면 다 알만한 도리이다. 다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속으로 생각만 할뿐 도무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따름이다. 불행스럽게 나는 할아버지의 “우수한” 기질을 물려받지 못한 아버지를 닮아서 역시 밥그릇 빼앗기에 서툰 사람이였다.네 아들중 할아버지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얻어가진듯한 사람은 바로 우리 회사의 공장장, 큰 삼촌이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 이미 장성한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하여 따로 살림을 하고있었던차라 딱히 계모와 가까이 하고 지낼 리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돌아가시기전에 한두번정도만 찾아뵈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난히 피줄에 집착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반려자답게 할머니는 여전히 아버지를 장남으로, 나를 장손으로 받들고있어서 나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할머니를 나의 할머니이상으로 마음속에 모시고 자주 찾아뵈였었다. 할머니한테만은 무서운 효자였던 삼촌도 어르신의 생각을 받들어서 언제 한번 형노릇 제대로 못해본 아버지였지만 “우리 큰 형”이라고 아무앞에서나 당당히 말했으며 방학때마다 찾아가는 나에게도 “우리 큰 조카, 임씨네 7대 장손”이라고 부르며 극진히 굴었었다. 그랬다. 그때는 정말 그랬었다. 내가 삼촌을 존경하고 따랐던만큼 삼촌도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것 같았다. 다른 어떤 리유나 속셈 같은것이 없이 순수한 혈육의 정에서 말이다. 전차가 거의 다달은 역은 오르내리는 인파가 기중 많은 큰 역이였다. 나는 멋없이 꺼내들고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앞에 앉았던 사람들뿐만아니라 다른 곳에 앉았던 사람들도 륙속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여내고있었다. 삽시간에 전철안은 입구쪽으로 가서 내릴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과 그틈에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앉으려는 사람들로 뒤죽박죽이 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까 말했던 “누가 굳이 써붙이지 않아도 다 아는” 그런 원칙은 사라지고 먼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사람이 임자였다. 인간들이란… 저렇게 작은 리익에도 몸살을 앓으니… 만약 경제공황이나 자연재해나 또 3차대전 같은 전쟁이라도 나게 된다면 인간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가? 자기 한 몸만 살겠다고 별짓을 다 할거다. 살려면 그렇게 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만 살수 있으니… 참, 육신을 입고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인간노릇을 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제 두역만 지나면 도착할수 있었으므로 나는 끝까지 “고상한” 품위를 지켜서 자리쟁탈전에 참가하지 않기로 하였다. 고작 5분동안 앉아가려고 사람들과 엉덩이를 밀치락거리고싶지 않았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나다. 자신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작은 리익쯤은 쉽게 포기하는 “착”한 사람. 물론 오늘 내가 회사를 나오면서부터 나의 “착한 본질”에는 이미 타격을 입게 되였지만 말이다. 처음으로 내 이미지를 거슬러서 해본 선택, 하지만 일개 인간이 완전히 새 성품으로 바뀌자면 아마도 얼마간의 련습이 필요한 모양이다. 아빠트에 올라와서 나는 주섬주섬 물건들을 정리하였다. 회사까지 나온 마당에 이 도시도 하루속히 떠나고싶었다. 혼자 사는 로총각의 물건은 그리 많지 않는 법이다. 옷 몇견지와 신발 몇켤레, 그외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서류봉투와 카드 몇개뿐이니 큰 트렁크 하나면 족했다. 침대머리에 있던 책상서랍을 뒤지니 낡은 앨범 하나가 오도카니 남아있었다. 앨범속에는 아직 싱싱하고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 담겨져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외제차를 타고 손을 차창밖으로 흔들어보이는 대학교시절의 촌티나는 사진을 보고 저도 모르게 푸-!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대학교 신입생일 때 삼촌도 금방 결혼하여 이 도시에 올라와 신접살림을 차렸었다. 몇호 안되는 조그만 시골동네에서 주먹이나 휘두르며 “왕노릇”을 하던 삼촌도 결혼을 하면서 도시진출을 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워낙 가방끈이 짧은데다가 완전 “시골뜨기”인 삼촌은 조그만 정비공장에서 견습공노릇부터 시작했던것이다. 그래도 삼촌은 어른이랍시고 얼마 안되는 견습공 월급봉급에서 숙모 몰래 다문 얼마를 꺼내 나에게 찔러주기도 하였다. 사진은 언젠가 찾아와 밥을 사준 삼촌이 나의 기를 살려주느라고 그랬는지 들통나면 혼이 날것 같은 고객의 비싼 외제차를 끌고와 학교 대문앞에 세워놓고 기어이 찍어준것이다. 그뿐이랴, 오고가는 선후배들앞에서 민망스러울만큼 세모눈을 희번뜩이며 특유의 큰 목소리로 “우리 조카야, 우리 조카… 전 성에서 3등성적으로 이 학교 왔잖아…”하고 떠들어대기까지 하였다. 아마 그때 가방끈이 짧은 삼촌한테는 대학생 조카가 있다는것이 엄청 자랑스런 일이였었나보다. 새로 사귄 동료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도 자주 나를 부르군 하였는데 “우리 조카 일류대학교 학생이야.”라는 말은 어디 가나 빼놓지 않는 맨트였다. 나를 대견스러워하고 나에게 살뜰히 하려고 애쓰는 삼촌이 그때는 진심으로 고마웠고 존경스러웠다. 물론 이런것은 모두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들이다. 학교를 나와 7,8년간 전국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직장생활을 하다가 김사장을 만나 다시 엮이게 된 삼촌과의 나날들… 차라리 그때 삼촌과 엮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가? 나와 삼촌은 오늘에 와서도 옛날 같은 정이 그대로 남을수 있을가? 2 물건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는 아빠트를 내려와 부근의 음식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혼자 궁상맞게 밥 해먹기 싫어서 자주 들리던 식당, 이제 여기서 먹는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일듯싶다. 아니, 이 모든것이 김사장때문일수도 있어. 나는 늘 시켜먹던 삶은 개발쪽 한접시를 상우에 놓고 매콤한 소힘줄무침을 반찬으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김사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만약 김사장이 정비업에 뛰여들려고 했을 때 말렸더라면, 아니 삼촌만 소개시켜주지 않았더라면, 김사장이 기어이 삼촌이랑 합작하겠다고 우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다. 삼촌과 김사장이 만나서 그 정비공장을 세우기까지 사실 너무나 많은 “만약”들이 도처에서 반전을 꾀하고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와서 그 많은 “만약”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나는 그 “만약타령”이라도 해보아야 할걸 다 해보았다고 말할수 있을것 같았다. 흠, 그래. 삼촌의 정비기술은 이 업계에서 최고였지. 경영경험도 10년 가까이 됐었고. 일개 견습공에서 업계 최고가 되였다니 삼촌은 역시 삼촌다웠다. 발도 넓어서 이 지방 유지들을 거의 꿰차고있었기에 사업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도 당연한 일이였다. 정비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김사장을 도와 정보를 수집하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 삼촌은 그때 한창 잘 나가는 정비회사에서 나와 스스로 공장 하나를 세우려고 투자자를 찾던중이였다. 그런 삼촌을 놓칠리 없는 김사장이였다. 그때는 오히려 삼촌이 뜸을 들이며 확답을 주지 않았고 김사장이 나를 내세워 어찌하나 삼촌을 설득시키려 애쓰던 때였다. 삼촌이 겨우 머리를 끄덕여 본격적으로 일을 벌려나가자 그제서야 나는 처음부터 피동이던 김사장의 립장이 더욱 몰릴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수 있게 되였다. 참, 불쌍한 량반. 그러게 나하고 해오던것처럼 승산이 있는 무역에만 손을 댈것이지 왜 이 나라, 이 도시까지 와서 삼촌 같은 사람이랑 엮여 기어이 사업 한번 거창하게 해볼 꿈을 꾸었다던가? 사업이라도 좋았다. 어차피 한국에서 하던 사업은 접고 몇년동안 장사로 짭짤한 수입을 보았으니 슬슬 들어와 정착하는것도 좋았다. 문제는 접어든 일에 깜깜 “문외한”이였다는것, 그럼에도 선진국냄새를 피우며 “과학경영”을 밀고 나갔다는것이다. 투자자로서 회사의 번영에 지극한 관심을 갖는 김사장도 김사장이겠지만 그렇다고 삼촌이 회사경기가 좋지 않기를 바랐겠는가? 스물셋부터 시작했으니 이십년 하고도 사년을 더 이 업계에서 잔뼈 굵어온 삼촌이 정비공장이 돌아가는 원리를 모를턱이 없었다. 들어오는 고객의 차를 받아서 기술공에게 넘겨주고 진단이 내려진후에 부품을 맞춰 주문하고 차가 완전히 출고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속속들이 꿰뚫고있는 삼촌이다. 벤츠와 오디, 보마 같은 비싼 외제차 수리에서는 업계에서 삼촌의 기술을 릉가할 사람이 없다고 소문이 났었다. 어떻게 해야 직원들이 범할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고 전체 사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킬수 있는가 하는것 또한 속셈 빤한 삼촌이다. 그런데 그의 체제를 사나흘에 한번꼴로 선진국 경영방식으로 바꿔보려는 김사장은 효률을 내기는커녕 사내 원칙을 헛갈리게만 하여서 직원들이 갈팡질팡 헤매게 한것이다. 삼촌과 의견이 갈리면서 다툼이 잦아지자 의심은 더 심해져서 늘 직원들에게 당일 들어온 차넘버를 일일이 확인하고 회사에 빚을 진 고객들의 신상을 조사하고 비싼 부품의 주문가격에 대해 도무지 믿어마지못해하였다. 나라면 몰라도 삼촌 성격에 그런것을 다 받아줄리 만무했다. 또 내가 김사장이라면 느긋하게 앉아서 경영을 삼촌에게 완전히 맡기고 투자금이나 회수했을것이다. 경영권 월권행위로 늘 다투던 두사람은 그예 개인감정까지 크게 상해버렸다. 벌써 다섯병째 마시고있지만 오늘 맥주는 물에 술을 탔는지 술에 물을 탔는지 씁쓰레하면서도 취하지는 않았다. “아줌마, 맥주 두병 더…” 나는 빈 술병을 주방에 대고 흔들어보였다. 알콜이 얼마간 들어가자 내 목소리도 두코드 높아진것 같았다. 아줌마는 “네-”하고 대답만 할뿐 머리를 들어보이지도 않고 자기 손의 일을 마무리하고있었다. “아이 씨- 술 떨어졌다는데…” 간덩이가 좀 커져서 나도 삼촌흉내를 내여 꼬장 한번 부려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생각대로 잘되지는 않았다.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빈 술병을 받아내가며 새 술 두병 더 갖다놓는 아줌마의 눈길이 “웬 안하던 주정이냐”라는 식으로 집요하게 내 얼굴을 따라다녔다. “보긴 뭘 봐? 으이씨-!”하고 삼촌이 혹시 주먹이라도 휘두르지 않을가 걱정되여 나는 마른 엉덩이를 반쯤 치켜들었는데 다행이 김사장한테 차마 그런 무지막지한 행각을 벌릴수는 없었는가보다. 라이터가 아니라 꺼져가는 담배불 하나만 들고있어도 전체 건물이 “쿵- 쾅-!” 폭발해버릴것만 같은 분위기의 사무실, 그날 내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삼촌과 김사장은 책상 하나를 사이두고 요행 마주친 암컷때문에 납작 엎드려 신경전을 벌이는 발정 난 수컷의 아나콘다 같이 씩씩거렸다.물어보나마나 경영상의 문제로 두사람이 또 크게 다툰것 같았다. 두사람의 의견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아 서로 한치의 협상의지도 보이지 않던 무렵이였다. “쒸익-!” 삼촌은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로 몸을 휙 돌려 팔을 휘저으며 씨엉씨엉 걸어나갔고 홀로 남은 김사장의 눈길은 차가운 레이저빛마냥 삼촌의 단단한 등허리를 따라 열려있는 문께로 가다가 “ 탕-!” 문이 닫히는 순간 거기에 왕창 부딪쳐 산산이 흩어지고말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였다. “어, 그래, 왔니? 앉아라.” 삼촌은 다른 친구 두사람과 술잔을 마주치다가 한발 늦어 도착한 나에게 아는체하였다. 상우에는 삼촌이 주문했을 개발쪽 한접시와 삶은 개고기 한접시에 몇가지 볶음료리가 푸짐히 올라와있었다. “임경리, 한잔 하지.” 삼촌과 꽤 가까운 사이로 지내는 운송회사 진사장이 내게 수작을 걸어오며 술을 권하였다. “아니, 절로 하겠습니다. 맥주밖에 마실줄 몰라서…” 나는 유들유들한 목살을 출렁이며 내 술잔에 술을 기울이려고 하는 진사장을 급히 만류하였다. “아가씨, 여기 맥주요!” 모처럼 따라주는 술인데 주제에 사양한다고 생각할가싶어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가씨를 불렀다. 아닌게아니라 자리에 엉덩이를 겨우 소심하게 붙이고 앉아 달싹거리며 곁눈으로 훔쳐보니 진사장이나 그옆에 앉은 공안국 국장이나 삼촌까지 웬지 나를 보는 눈이 영 곱지 않은것 같았다. “쟤는 맥주만 마셔.”라고 설명하는 삼촌의 말에도 웬지 알수 없는 묘한 비웃음 같은것이 섞여있는것 같았고 “그럼 자기 편한대로 마셔야지.”라고 맞장구를 치는 두 술친구의 대답에도 이름모를 고까움 같은것이 스며있는듯싶었다. 이도저도 아니면 내 신경이 너무 예민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드디여 구원병 같은 맥주가 올라오고 나는 늦게 오면 석잔 마셔야 한다는 중국사람의 법대로 혼자 따라서 련이어 석잔을 꿀꺽꿀꺽 굽내였는데 오히려 삼촌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나의 “성심”에 대해 별 흥미도 없는 심드렁한 표정들이였다. 애초부터 그들의 상대가 될만한 인물이 아니였다는것을 나도 알고는 있었다. 7, 8년후에 다시 만난 삼촌은 그런 식이였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우리 조카”하고 살갑게 부르다가도 그것이 아니다싶으면 내 기분이나 감정따위를 무시해버리기 일쑤였다. 적지 않게 당했으면서도 나는 “우리 조카…”하고 부르는 삼촌의 소리에 금방 달려가군 하였으며 불러놓고는 나의 존재를 망각해버리는 삼촌에게 여러가지 핑게거리를 손수 만들어 리해해주려고 하였다. “이 바닥에서 영향력있는 인물들이니 교분을 두툼히 쌓아놓는게 급선무지…” 그날도 나는 삼촌한테 이런 핑게를 만들어주었다. 나를 이런 자리에 끼워주었다는 자체가 나에 대한 삼촌나름의 배려가 아닐가 하고 나는 한술 더 뜨기까지 하였다. 호탕한 웃음들을 터뜨리다가 연신 잔을 마주치며 변치 않는 “우정”을 약속하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니 나는 괜히 둘러리처럼 앉아있는 자신이 멋적어졌다. “그래, 임공장장, 걱정말라구. 당신 회사가 내 관할범위에 있는한 내 말 한마디면 결판이 날게 아닌가…” 공안국 국장이란 작자가 벌겋게 충혈된 눈을 여유있게 끔벅거리면서 삼촌의 어깨를 툭툭 쳤다. “국장님 그 말 한마디면 제가 시름놓죠. 일단 일이 제대로 해결되면… 국장님의… 그건 꼭… 제 말 무슨 뜻인지 알죠?…” 삼촌도 술이 꽤 잘되였는지 과장된 몸짓으로 공안국장의 손을 잡고 흔들어대였다. “단, 나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사람이라니까. 임공장장과 친한건 개인감정이고… 공무는 공무인것이라! 언제나 우린 법대로 일을 한다니까. 그건 임공장장 당신이 항상 명심해야 하는거라고…” 정계에 몸을 담은지 몇십년 더 될 이런 인물들의 말은 아직 사회생활에 령활하지 못한 나 같은 초학자가 들을 때에 자칫 정말로 대공무사한 관리인줄로 착각하게 하는 것들이였다. “그럼,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당신은 아무 걱정없이 착실히 공무만 집행해주면 된다니까. 우리도 법에 어긋나는 일을 벌릴 위인은 아니지… 안그런가 임공장장?” 운송회사 진사장이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내가 오기전 이들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 간게 확실하였다. 삼촌이 혹시 일이라도 꾸미기로 했단 말인가? 술자리가 파하기까지 나는 혼자 맥주를 들이키며 불안한 추측에 시달렸다. “아줌마, 이게 무슨 료리냐구? 이렇게 짜게 해서 손님들 다 고혈압 걸리게 할건가?”내앞에 앉았던 남자들 넷이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시다가 무엇이 고까왔는지 트집을 잡기 시작하였다. “손님, 죄송합니다… 제 입에는…” 나한테 눈살을 직선으로 꽂아주던 아줌마는 나보다 소리도 크고 덩치도 큰 손님들 앞에서 설설 기고있었다. “아니, 이게 그래 괜찮단 말이요? 이 아줌마 오늘 장사 다했네…” 남자들이 그릇을 덜러덩거리면서 귀에 거칠은 쌍소리를 주저없이 내뱉었다. “아니, 아닙니다. 당장 바꿔드릴게요… 새로 해드릴게요…” 절반 가까이 축이 난 료리그릇을 내여가며 아줌마는 연신 주방을 독촉했다. “그 료리는 싫으니까 다른걸로 해줘요!” 남자들이 한술 더 떴다. 세상은 그렇다. 약한놈한테 강하고 강한놈한테 약한척하는 것이 세상인것 같았다. 나도 한번 술병이라도 둘러메쳐볼가나… 일곱번째병의 맥주를 마시면서도 나의 간덩어리는 좀처럼 그 남자들만큼 부어오르지 못했다. “개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2차로 노래방으로 옮겨 다시 술상을 벌렸을 때 나는 삼촌옆에 바투 다가가앉아 물었다. “삼촌, 정말… 하려구요?” “너 오늘 그 자식 나한테 하는 꼴 봤지?… 벵신… 나를 잡아보겠다고?… 내 이넘을… 넌 암말 말고 나 하는대로 따라만 와라.” 살이 툭 불거져나온 삼촌의 세모눈에서 살기가 번뜩거렸다. “삼촌, 나는…” 나는 두사람의 싸움에 관여하고싶지 않다고 말을 꺼내려는데 욱작욱작 혼잡한 소리가 나며 험상궂게 생긴 장정 서넛이 문을 탕 차고 들어왔다. “어, 임형! 어쩐 일이단가? 이 아우한테 련락을 다 하고…” 그들중 우두머리나 되는듯한 남자가 삼촌만큼이나 커다란 목소리로 지껄이며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유, 임형! 요즘 잘 나가신다면서…” “잘 나가긴 무슨… 암튼 잘왔다. 이쪽은 시 공안국 국장이시고 이쪽은 진형이다… 다들… 서로 잘 알고있지…” 삽시에 신분이 묘한 장정들과 이미 온 친구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알지, 우리도 구면인걸.” 공안국장이 눈을 가슴츠레 뜨며 느릿느릿 일어서서 장정이 내민 손을 한번 슬쩍 쥐였다 놓았다. 요란한 음악소리도 그쳐서 분위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간 무사히 계셨습니까? 국장나리. 우리가 뵌지도 한참 되는것 같네요…” 장정들중 머리를 빡빡 밀은자가 선글라스를 벗어 웃쪽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머리를 까댁거려보였다. “왜들 이러시나? 여기 앉게…” 살벌한 분위기에 삼촌도 약간 당황한듯하였다. “임형, 이거 미안하게 됐수. 아우가 눈치없어서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으니…” 빡빡머리가 부하들을 데리고 건들거리며 돌아섰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나는 일이 있어 먼저 가야 하니…” 공안국장이란자가 휘익 일어나서 그네들 앞서 문가로 걸어나갔다. “국장님…” 삼촌이 따라나서자 그자는 멈춰서서 빡빡머리일행을 돌아보았다. “임공장장, 알만해. 어떻게 할려는지… 나는 오늘 이 사람 못본걸로 해주게… 얘기들 나누고 무슨 결정이 나거든… 그때 다시 얘기합세…” 빡빡머리들과 껄끄러운 사이임이 분명하였다. 흑과 백의 사람들을 다 꿰차고있다던 삼촌이 혹시 정말… “짜아식, 건방떨긴! 지나 내나 다 이 바닥 민생을 위해 일하는게 아닌가? 법대로 하면 저런놈들이 더 꺼먼놈들이라니까. 내 오늘 임형만 아니였으면…” 공안국장이 나간 뒤 껌을 짝짝 소리내여 씹으며 빡빡머리가 기분 나쁘게 씨벌여대였다. “형님, 어쩌겠습니까? 아량이 넓은 우리가 참아드려야지… 야, 야, 니년들은 술도 안가져오고 뭣하러 거기 섰냐?” 빡빡머리의 부하들이 거들먹거리면서 복도에 대기하고 서있는 웨이터들을 불렀다. “계집들은 다 얼어죽었다냐? 새로 들어온 계집들 불러봐라…” 복도에 어정쩡하니 서있던 웨이터들이 술을 날라오고 마담이 직접 아가씨들을 줄지어 데리고 들어왔다. “삼촌…”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삼촌은 그네들과 아주 익숙한듯 자연스럽게 술상을 다시 벌리고있었다. “혹시… 그쪽사람들이요?” 술잔을 부딪치며 흥청망청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나는 삼촌한테 넌지시 물어볼수 있었다. 삼촌은 대답대신 한쪽눈을 질끈 감아보이기만하였다. 삼촌이 김사장한테 화가 난건 리해가 되지만 이런 사람들까지 부르다니, 나는 아마 평생 가도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건달들과 부득불 술잔을 마주치면서 속으로 생각하였다. “알았어… 임형, 그런 일은 일도 아니지… 알어… 어느 정도 선에서 해달라는가 말만 해!” 시끄러운 음악소리, 노래소리속에서 “빡빡머리”가 하는 말은 띄염띄염 내귀에 들려왔다. 나는 삼촌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만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날 있은 다툼때문에 충동적으로 먹은 마음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미리 예기하고 준비하고있었던것인지… 만약 처음부터 삼촌이 이런 계획을 가지고있었다면… 나는 삼촌이 점점 낯설어졌다. “그래서 너는 아직 멀었다…” 삼촌이 나를 쳐다보며 어깨를 툭툭 치면서 빙그시 웃었을 때 나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 대답을 할수 없었다. 3 언제 식당을 나왔는지 나는 정처없이 밤거리를 걷고있었다. 일이 어찌됐거나 우리들중에 결과적으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은 삼촌이 아니라 김사장이였다는 생각에 죄책감 같은것이 슬며시 가슴에 차기 시작해서 다시 참을수 없이 괴로워났다. 필경 김사장을 삼촌한테로 밀어넣은 사람이 나였기때문이다. 김사장과 내가 알고 지낸지는 3년, 원래 내가 다니던 회사의 거래처 사장으로 한국에서 자그만 규모의 자동차부품회사를 경영하고있다가 경기가 좋지 못하자 회사를 처분하고 다른 투자항목을 검토하던중이였다. 나와 알고 지내면서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바보기질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러 항목에 관한 시장조사를 많이 부탁했었다. 그 기간에 나는 충실하게 자료를 작성하여 보내주면서 신뢰를 꾸준히 쌓았고 김사장은 나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나를 한국에 초청해주기도 하였다. 그뒤 김사장은 나의 도움으로 중국과 한국간의 상품을 수출입하면서 꽤 짭짤한 수입도 보았다. 김사장이 정비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지난해 겨울부터였다. 업계 최고라는 평을 가진 사람이 나의 삼촌임을 안 김사장은 나를 내세워 백방으로 일을 성사시키려 하였다. 다른 서비스업보다 리윤이 훨씬 많은 정비업은 초창기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호황이였다. 사실 회사를 세워서부터 김사장과 삼촌의 “기싸움”만 아니였더라면 그만하면 장사도 잘된편이였다. 설비도 그 도시 최고시설로 들여왔고 건물도 넉넉히 평수를 잡아서 일반고객의 휴식터는 물론 VIP고객룸까지 완벽하게 꾸며놓았다. 각종 신문과 텔레비죤에도 황금시간대에 광고를 넣었다. 설립후 세번째달부터는 매일 모수입이 7,8000여원 되였으니 비수기인 여름철을 감안한다면 결코 적지 않은 수입이였다. 거기다가 현금으로 들어오는 돈이 많아서 세무쪽 일을 보기에도 한결 쉬웠다. 내가 처음부터 찝찝하였던 일은 투자 당시 투자금을 전부 내 개인통장으로 들인 일과 내 이름으로 법인을 삼은 삼촌이였다. 여느때 같으면 서류를 확실하게 준비하고 시작했겠지만 상대방이 삼촌인만큼 나는 주저하지 않을수 없었다. 독자기업이나 합자기업은 여러가지 귀찮은 절차들이 있어서 수속을 번거롭게 하지 말자는 리유도 있었고 조카인 나의 개인자산이 투입되였다는 리유도 있어서 김사장을 설득시켰다. 물론 투자금 거의 대부분이 김사장의것이였지만 내가 투입한 자산도 내게 있어서는 전부나 다름없어서 국내법인을 세울거면 차라리 내 이름으로 하자는게 삼촌의 리유였다. 삼촌이야 투자금 한푼도 들이지 않았고 대신 기술과 인맥을 바탕으로 장사를 하였으니 자신은 회사지분도 싫고 공장경영에만 신경을 쓰겠다고 했었다. 나와 삼촌, 그리고 나와 김사장지간의 관계를 따져볼 때 중립상태인 나의 신분이 가장 그럴듯해서 결국 김사장이 삼촌과 따로 합의서를 쓰기로 하고 삼촌의 제의를 받아들인것이였다. “흠, 그래. 지금 김사장, 그 사람은 더 한심하겠지…” 나는 길가 차거운 벤취우에 너부러졌다. 늦가을 차가운 밤공기가 페부를 뚫고 흘러 들어왔다. “몰라, 이젠 아무도 몰라… ”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거라고, 아무에게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거라고 나는 입속으로 마녀가 일러준 주문을 외우듯이 혼자 내처 주절거렸다.
“임경리, 왔어?” 그날 김사장은 한창 문어귀에서 점원아가씨들한테 뭐라고 교육을 시키고있었다. 새로 올린 간판에 특색요리사진까지 식당외벽에 붙여놓아서 그런대로 깔끔한 분위기가 풍기는 한식당이였다. 주방과 홀은 투명한 유리로만 칸을 사이두어서 손님들이 주방의 일거일동을 감독할수 있게 하였다. 홀에는 한국분위기를 내느라고 절반은 퇴마루식으로 낮은 조선밥상을 놓았고 절반은 다리가 뻣뻣한 중국사람들을 위하여 중국식밥상을 놓았다. 벽에는 김사장이 한국에서 가져온 인형이며 장구 같은 한국전통수공예품들을 걸어놓았고 남쪽벽 전체를 허물어서 탁 트인 유리벽으로 가득한 해살을 가게에 끌어들였다. 그외 2층은 칸칸이 막아 구들을 놓아서 조용한 이야기를 나누고싶어하는 손님들의 취향에 맞추었다. 그만하면 깔끔하고 고급스런 분위기의 인테리어였다. “며칠동안 회사에도 나오지 않고…” 김사장과2층의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나는 문안삼아 말머리를 떼였다. 혹시 삼촌한테서 무슨 낌새라도 챈건가? “어, 식당도 신경써야지… 아직 매니저가 없어서 애들이 제멋대로다.” 오십대줄에 들어선 김사장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편이였다. 젊었을 때는 따르는 녀자들이 한트럭은 되였을 미남형 얼굴에 수심 같은것이 잠간 흘러지나갔다. 자동차정비업도 그러했고 한식점도 그러했고 항목이 좋지 않은건 아니지만 모두 김사장의 전문이 아니라는것에 나는 반대표를 던졌다. 사업과 장사는 분명 틀린것이다. 중국과의 조그만 무역에서 리득을 보았다고 사업도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김사장 고집도 웬만하지 않아서 결국 내 의견을 무시하고 식당까지 벌이기로 하였다. 대신 돈을 그만큼 부은이상 위치도 가장 좋은 곳에 평수도 넉넉한 가게를 잡을수 있었다. 가게계약에, 식당영업허가증 수속에, 인테리어까지 내가 따라다니지 않을 때가 없었다. “뭐 이제 곧 온다면서요, 매니저.” 아직 삼촌한테서 얘기를 못들은건가 나는 유심히 김사장의 얼굴을 살폈다. 두가지 업을 한꺼번에 벌려놓으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삼촌은 회사경영을 맡아 한시도 회사를 떠날수 없었고 나는 요즘 회사재무부를 맡아 거의 매일 묶여있었다. 아무래도 식당까지는 무리라서 삼촌이 수소문하여 찾아본 매니저가 래일쯤 온다고 하였다. “알어, 공장장이 얘기했어.” 공장장이란 말을 뱉으면서 김사장은 눈썹을 약간 떨었다. 영 내키지 않은 모양이였다. 왜 그렇지 않을가? 여태 나하고 일을 할 때에는 전적으로 김사장한테 결정권이 있었고 나 또한 전심전의로 김사장의 사업을 위해 충실히 일을 해왔었다. “니말대로 식당은 나중에 하는거였다.” 김사장이 나에게 턱짓을 해보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약간의 후회와 미련, 흔들리는 믿음과 의심 같은것이 어죽속의 재료들처럼 한데 질척하니 섞여있었다. “그런데 뭐 일이 여기까지 온이상 이제는 물러설 길도 없다. 잘해내는수밖에는…” “그럼요, 잘해야죠, 다 잘돼야죠…” 김사장의 눈길이 당장 예리한 칼날처럼 내 마음속을 베고 들어올것 같아서 나는 머리를 돌렸다. “그래도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금방 교육을 받던 아가씨 하나가 낙지전골 냄비를 들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내가 뭘요…” “너의 사람됨을 잘 알기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게 아니냐? 나는 친구와 적은 알아 볼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친구를 섭섭하지 않게 할것이고.” 부탄가스에 냄비를 올려놓자 냄비속의 재료들이 금방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김사장은 집게로 잠간새에 오그라든 낙지를 집어 가위질을 하였다. “써억, 썩-!” 토막난 낙지다리들이 벌건 국물안으로 첨벙첨벙 잘려들어갔다. 내 어깨를 다독이는척하며 예방주사를 단단히 꽂아주는 김사장이였다. 친구? 문득 “친구와 한평생을 같이 가네.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 고개 돌리는 그대여…”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나는 김사장이 나를 친구로까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김사장과 3년동안 교제를 하면서 행동보다 말만 앞서는 여느 한국 소상인들하고 별로 다를바없다는것을 나는 몸소 체험해보아서 알고있었다. 김사장은 그간 나한테 준 보수가 합당하다고, 지어 넘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을 하지 않았을뿐 나는 사실 그 보수에 만족하지 않았다. 장사가 시작되기전에 나하고 정한 보수가 장사 끝났을 때는 수입이 좋았음에도 꼭 여러 구실을 책 잡아 매번 깎았기때문이다. 내가 심드렁해져서 일에 열성이 떨어질가 하면 김사장은 보나스랍시고 약간의 위로금을 보내주군 하는식이였다. 그럼에도 그와 꾸준히 래왕한 까닭은 말했다싶이 내가 “착해 빠진” 녀석인것도 있었고 그만하면 김사장이 너무 악덕사장은 아니다싶어서였다. 벤취에 누우면 잠이 들것 같았는데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오히려 술이 깨기 시작했다. 꼭 껴안고 벤취옆을 지나가던 젊은 남자와 녀자가 혼자 꺼멓게 앉아있는 나를 보고 기겁을 하였다. “우리 집 사람 혹시 전화오면 식당얘기는 절대 비밀이다. 알지?” 그래도 가정은 마음에 걸리는지 김사장이 부탁처럼 말을 해왔다. 그럼, 그걸 내가 왜 모를가봐. 식당에 투자한 인민페 70만원어치의 돈은 김사장 부인의 친정 돈이라고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던 아들딸에게 학비를 벌어주고 부인과의 로후를 생각해서 확실한 재산을 재여놓으려고 어려운 중국행을 결심하였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든든한 가장노릇을 하고싶은게 모든 남자들의 공통된 소원이 아니겠는가! 김사장이라고 례외일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김사장이 더 안쓰러워졌다. “다시 봐도 내 아들놈만큼 잘난 녀석은 없는것 같다니까. 안그래? 임경리?” 술이 좀 되고나서 김사장은 의례처럼 품안의 지갑속에 들어있던 가족사진을 꺼내 내게 보였다. “그거야 김사장님 아들이니까 그런거지… 우리 엄니보고 물어보세요, 제가 젤 잘났다고 그럴겁니다.” 내가 기분좋게 비꼬아주자 김사장은 허허 웃었다. “그런가? 그래도 나는 우리 딸네미가 젤 이쁜걸. 우리 집사람 젊었을 때를 꼭 빼닮았어…” 나는 그런 자랑 같지 않은 자랑을 하는 김사장이 가장 인간스러웠다. 그런 김사장앞에서는 잠시 회사고 돈이고 다 내려놓고 정말 인간 선후배로서 따뜻이 얘기 한번 해보고싶었다. 사실 굳이 삼촌이 아니라 이국타향에서 산다는 자체가 얼마나 불안한 일이겠는가. 돈은 좀 있겠지만 온통 낯선 사람들속에서 혼자 외롭게 자신의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이 남자가 문득 안돼보인것도 그럴 때였다. 어느 누구라도 익숙하고 편안한 곳을 떠나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는 낯선 곳에서 도박하고싶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니까 삼촌이 아니면 나만이라도 정직해야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삼촌과 정면충돌할 마음은 없었지만 량심적으로 김사장의 피해를 최소화시킬수는 없지 않을가 하고 혼자 생각하였다.“마셔.” 김사장이 술잔을 들었다. 어쩌면 이 량반은 그런 내 심사를 알아채고 일부러 더 살갑게 구는것인지도 몰랐다. 나의 “착한 마음”을 충분히 리용해먹으려고.
4 녀자들은 어두운 조명이 깔린 넓은 홀 긴 쏘파에 아무렇게나 앉아있었다. 가슴이 깊게 패여 가슴골짜기가 훤히 드러나보이는 웃옷을 입었는가 하면 허벅지까지 올라와 팬티를 겨우 아슬아슬하게 가린 짧은 치마를 입고있는치들도 있었다. 내가 가까이 걸어가자 그녀들은 낮은 소리로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빨다가 약속이나 한듯 머리를 돌려 일제히 내쪽을 쳐다보았다. 삽시에 나는 난감해졌다. 이건 뭐 내가 아가씨를 고르는것이 아니라 녀자들이 나를 가늠해보는것 같아서 기분이 영 더러워졌다. 그러게, 하필이면 이런 곳에 와서 익숙치도 않는 짓을 기어이 해보려할건 뭔가?나는 원래 녀자에 대해 그리 관심도 많지 않을뿐더러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녀석이였다. 이제 원래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살기를 선택했다면 이 짓거리를 하는것이 또 뭐가 그리 나쁠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벤취에서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이 노래방에 들어온것이다. 어차피 나는 이 도시에서 갈곳도 없고 만나고싶은 사람도 없다. 래일 떠나면 어쩌면 몇년 혹은 더 오랜 시간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헤어스타일이며 입은 옷들이며 화장이며가 제각각이였지만 그녀들에게서 풍기는 어떤 분위기랄가 하는것들은 이상하게 서로 닮아있었다. 굳이 이 녀자가 저 녀자보다 예쁘다거나 나아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슬슬 후회하기 시작했다. 꼭 이 짓을 해야만 새 사람이 되는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미인들중에 그래 마음드는 애가 하나도 없단 말이야?” 내뒤에 따라온 짙은 화장을 한 마담이란 녀자가 속살거렸다. 화장품냄새와 향수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제발 그런거 좀 적게 뿌리고 다니지… 그런다고 뭐 더 예뻐지고 고상해지나? 물론 나는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아니, 그게… 좀 더 청순한 스타일은 없나…” 나절로 말해버리고도 얼굴이 확 붉어지였다. 이런 말을 할 때는 좀 더 당당하게 목을 빼들고 트집을 잡으며 얘기를 해야 하는건데 나는 들어가려고 모지름을 쓰는 목소리를 겨우 뽑아내서 약간 비굴하기까지 한 어투로 말하고있었던것이다. 마담이란 녀자가 눈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깔깔 웃었다. “음-, 청순한 스타일? 그런 애 좋아하는구나. 있지, 그럼. 왜 없어? 정희야- 정희 어디 갔니?” 앉아있던 녀자들이 정희를 부르는 마담의 목소리에 나에 대한 신경을 그만 끄고 다시 하던 잡담을 계속하거나 담배를 계속 피우기 시작하였다. 나는 괜히 멋쩍어져서 정희든 영희든 3초내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 구실을 대고 이곳을 떠나야 하겠다고 속으로 별렀다. 이게 다 그녀때문이야.내가 기어이 이 도시에서 마지막밤을 녀자와 보내고싶어하는 리유가. 내가 그녀를 사랑했든지 아니면 그녀가 나를 얼마간이라도 좋아했든지 그런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이제 내가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것이였다. 그녀를 잊어버리기 위해 이 도시, 이 밤에 모든 해묵은 추억들을 영영 묻고 떠나고싶어서 나는 오늘 일을 내고싶은것이다. 정희란 녀는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셀 때에 복도쪽에서 걸어나왔다. 아까 말했듯이 여기 있는 녀들은 기껏해야 헤어스타일이 다르고 입은 옷이 다르고 눈코입이 약간 다르게 생겼을뿐 그 풍기는 분위기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굳이 어느 녀자는 청순하고 어느 녀자는 섹시하고 또 어느 녀자는 귀엽다는 그런 다양한 스타일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느끼고있었다. “어때? 괜찮지?” 마담이 그 정희란 녀자를 내앞으로 끌고와서 자신있게 눈을 깜빡거렸다. “얘 좋아하는 손님 무지 많다. 오늘은 마침 시간이 있어 땡잡은거야!” 늙은 녀자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더 좋아할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구역질이 났다. 좋아하는 손님이 많다는 말은 그만큼 많이 “사용된적”이 있는 아가씨란 말이 아닌가? 정말 원래의 나 같았으면 금방 뿌리치고 도망갔을걸 새로운 내가 되고싶은 나는 억지로 그 기분을 참아내였다. 녀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며 나는 곁눈으로 살짝 훔쳐보았다. 나의 편견을 모조리 뺀다면 사실 그만하면 괜찮은 녀자였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충분히 나와있었고 아직 얼굴이며 엉덩이에 탄력이 그대로 있는것이 겨우 스물두셋쯤으로 보이는 나이였다. 마담이 이 녀자를 청순하다고 여기는 리유는 연한 화장을 한 아직 애티나는 얼굴에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때문이였던것 같았다. 그래도 그 머리때문에 나는 한숨돌릴수 있었다. 그녀와 닮은 한가지라도 이 녀자한테서 찾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것도 이 도시에서였다. 10년전의 나, 아직 싱싱하고 순진하고 귀여운 구석이 흠뻑 묻어있던 철부지 대학생, 그랬다. 그런 나의 눈에 비쳐진 그녀는 청순하고 아름답고 고상했었다. 내가 다니던 자동차과에는 리과여서 그런지 녀학생들이 영 시원치 않았었다. 사범대에 예쁜 녀학생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연줄이 없어서 갈수가 없었는데 마침 친구녀석의 주선으로 미팅에 나갔다가 만난것이였다. 톡톡 튀는 개성의 세련된 그녀는 일시에 그날 미팅에서 남학생들의 주목을 받게 되였다.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귀여우면서도 예쁜 원피스를 차려입은 그녀, 오똑한 코와 생글생글 웃는 눈이 참 인상적이였다. 게다가 활달하고 령리하여서 분위기도 곧잘 맞추었고 눈치가 빨라서 어수선한 틈이 보이면 금방 메워주군 하였다. 나도 그녀가 참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그뿐이였다. 워낙 련애질에는 뒤전이라서 어떻게 녀자들한테 잘 보여야 되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름다운 이성을 만나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기껏 밥을 먹는다거나 영화를 보거나 춤을 추는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을 느꼈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도 녀자에 대해서는 모르는것이 너무 많은 나였다. 그녀에 대해서도 나는 줄곧 그러했다. 그녀를 알수가 없었고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헛갈리는것 같았다. 녀자는 푹신한 쏘파우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굽높은 하이힐을 까댁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음악이 요란하게 나오고있었고 대형 모니터에는 가슴과 엉덩이만 겨우 가린 녀자들이 해변에서 갖가지 야한 포즈를 취하고있었다. 나는 목이 갈한듯 얼굴을 찡그려보이며 “술-” 하고 나직이 뱉으면서 술병을 가리켰다. 녀자가 술잔에 맥주를 찰찰 부어 내손에 쥐여주었다.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이였다. 아니, 청순한 스타일을 연출하자면 이런 칼라는 피할것이지… 나는 녀자의 손을 그대로 감싸쥐고 술을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더 취해야 하는데… 오늘은 일을 내야 하는데… 나는 술병을 거꾸로 들고 입안에 꿀꺽꿀꺽 나머지 술을 모조리 털어넣었다. “넌… 얼마냐? 얼마면 되냐?” 무슨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내뱉고보니 스스로도 여간 우스운게 아니다. 나어린 아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녀자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졌을가? 별것도 아닌 일에 혼자 비장한척 호들갑을 떠는 위선자? 그녀라면 어떠했을가? 그때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가? 그녀와 잠간 마주친 손끝이 달달 떨렸다. 나는 서툴지만 그녀는 노련했다. “야, 진짜 예쁘다-” 친구녀석이 내옆에 와서 의자를 붙들고 겨우 몸을 가누어섰다. 그녀는 우리한테 매혹적인 웃음을 날려보내며 다른 친구녀석이랑 손을 잡고 신나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야, 쟤 사범대 얼짱이라잖니. 정말 예쁘지?” 내옆에 서있던 녀석은 아쉬운듯 입을 쩝 다셨다. “이번엔 나이트다! 내가 쏠게! 야 임마, 나 좀 팍팍 밀어줘라!” 인라인 스케이트를 잘 타는 다른 녀석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도무지 마음을 주체할수 없었던 모양인지 그 녀석은 내게 단단히 부탁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정작 디스코곡이 울려나오고 다들 흥분하여 취한듯 몸을 흔들어댈 때 그녀는 그 친구녀석을 피해서 내앞에 왔었다. 변변찮은 춤솜씨때문에 나는 당금 얼굴이 벌개지였다. “고향은 어디예요?” 시끄러운 음악소리속에서 그녀는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에 대고 물어왔다. 녀자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약간 비릿한듯한 냄새가 아찔하게 코로 흘러들어왔었다. “그러니까… 뭐요? 고향이요?” 그녀가 너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어서 코등의 잡티까지 볼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갑자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내 고향이 어디든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흐흐흣…” 그녀는 자신때문에 정신을 못차리는 내가 재밌었던 모양인지 어깨를 들썩이며 귀엽게 웃었다. 혼잡한 사람들속에서 이리저리 밀리는 바람에 나는 본의아니게 자주 그녀와 부딪치군 하였다. 그때 부딪쳐본 그녀의 어깨, 허리, 그리고 엉덩이… 나는 썩 후날까지 그 생생한 촉감을 잊을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로 그 “청순한” 아가씨의 어깨를 그러안고 휘청휘청 호텔방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나는 녀자를 보기좋게 침대에 쓰러눕혔다. 녀자는 몸을 틀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고있는 나를 활 밀쳐내고 빠져나갔다. “저 먼저 씻을게요…” 나는 벌렁 천정을 보며 팔다리를 대자로 쫙 펴고 돌아누웠다. 이게 무슨 짓인가? 낯도 코도 모르고 말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생면부지의 녀자랑 뭘 어찌하겠다고 여기까지 왔을가? 화장실에서 쏴- 하고 물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만 흥정했던 돈만 침대우에 뿌려놓고 그대로 도망가고싶어졌다. 그래, 이제라도 가면 되는거야. 그렇게 싫은걸 왜 해? 다른 일도 아니고, 남녀가 육체적으로 가장 친밀하게 밀착하여서 치루어야할 이런 일은 서로 원하고 서로 주고싶을 때에 해야 하는거 아닌가? 원래의 나는 아직 죽지 않고 내 머리속에서 쉬임없이 이런 말들을 주절거렸지만 나는 침대에 버티고 누워있었다. 별거 아니야, 이 세상에 반드시 해야 하는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 사람들이 자신의 리익에 맞춰서 정해놓은 원칙이라구. 그런 원칙이나 기준따위에 신경쓰지 말자. 나도 한번 방종해보자. 되는대로 살아보자. “ 당신도 씻을거예요?”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나오는 어린 나이의 녀자, 인생을 산 세월은 나보다 적어도 잠자리경험은 한참 선배일것 같았다. 큰 목욕타월로 몸을 헐렁하게 감싸고 나와서 어깨와 다리가 함부로 로출되였다. 나는 눈을 가슴츠레 뜨고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뭔가 가슴이라도 뛰든가 몸이라도 달아오르든가 해야 일을 치르겠는데 정작 반라의 녀자를 마주하고 내 몸은 내 의지대로 되주지를 않았다. 지금 씻지 않으면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할것 같아서 그럴바엔 차라리 욕실에라도 들어가있기로 하였다. 나를 유혹하는 녀자가 그녀라면 어땠을가? 그럴리가 없겠지만 한번이라도 그녀가 내앞에서 저런 포즈를 취하게 할수 있다면… 아니,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것이 무엇이겠는가? 지금 그녀나 이 아가씨나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한사람은 노래방에, 다른 한사람은 밖에 있다는 그것 말고는… 만약 그때, 그 대학시절, 나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관심을 보이던 그녀에게 내가 좀 더 다가갔다면… 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녀와 교제를 해나갔더라면… 그래서 정말 대학졸업시 결혼이라도 하게 되였더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되였더라면 그녀는 지금 리혼하지도 않았을거고… 어쩌면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지도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냥 아무말 말고 저 안아주면 안될가요?” 10년후 같은 도시에서 다시 만난 그녀, 그녀는 이제 청순하기보다는 한결 매혹적이고 섹시한 모습이였다. 어쩌면 이런 인연이… 혹시 그녀가 정말 나의 반쪽이 아닐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그때 들었었다. “일이 힘들어? ” 삼촌의 소개로 김사장의 식당에 매니저로 들어온 그녀, 식당에서 정비공장 직원들의 회식이 끝나고 다들 돌아간후에 우리는 작은 술집에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를 할수 있었다. “아니요,…” 그녀가 내잔에 맥주를 채웠다. 손톱끝에 바른 핑크빛의 매화무늬 매니큐어가 키스해주고싶을만큼 예뻤다. “그럼… 다른 무슨 귀찮은 일이 또 있는거야?…” 이런 말을 하는건 좀 주제넘지 않을가 하고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사생활에 좀 더 깊이 들어가보고싶었다. 술잔만 돌리며 아무 얘기를 않던 그녀, 나는 정말 그녀의 말대로 한번 가볍게 안아주려고 하였다. 식당에 들어온 첫날, 그녀를 알아보고 우리는 이렇게 작은 술집에서 이야기를 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에 그녀는 몇년간의 직장생활과 풍파 많았던 결혼생활에 대해 요약적으로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녀가 도대체 어떤 녀자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아픔들이 있었는지 다 알지 못한다. 그냥 그날 얘기가운데서 애가 없이 살아온 4년동안의 결혼생활을 청산했다는것, 그뒤 직장이며 장사며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살았다는 토막토막의 사정이야기밖에 나는 모른다. 나한테 안기고싶다던 그녀, 안겨서 울고싶어하던 그녀가 젊은 리혼녀로 살아오면서 그간 많이 힘들었을거라는 짐작만 어렴풋이 하고있을뿐이였다. 그녀때문에 나는 퇴근하고 식당에 들리는 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김사장을 만난다는 구실을 달고 말이다. 써빙하는 아가씨들을 제법 능숙하게 다루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혼자 그녀와의 미래를 렴치좋게 꿈꾸어보기도 하였다. 정비공장에서 내가 들인 투자금을 회수하는거야. 잘되면 더 많은 리익을 보겠지. 그녀와 자그마한 가게를 차려도 좋고 정식으로 무역회사를 시작해보는것도 괜찮을것 같았다. 이제껏 나혼자 벌고 쓰고 했지만 그녀와 가정을 이룬다면… 그녀와 함께 일을 해나간다면… 행복할것 같다는 생각도 주제넘게 들었다. 그녀는 식당일이 바빠서 내게 신경쓸새가 없다고 자주 오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도 그녀의 호의로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난 뒤의 그날밤 나는 그때 그녀가 왜 우는지를 알수가 없었다. “그냥 안고있어만 주세요…”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그녀를 나는 정말 멍청하게 안고만 있어주었다. 허리까지 길었던 생머리가 비싼 퍼머머리로 변신했으며 녀자 고유의 비릿하면서도 달큼했던 냄새가 은은한 매혹적인 향수냄새로 바뀌였다. 그녀는 어깨를 가늘게 떨며 쿨쩍이고있었다. 술을 많이 마셔 취했던건지, 자신한테 관심을 보이는 나를 보고 감격했던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나 붙잡고 울어보고싶었던건지… 하여튼 그녀는 오래간만에 만난 애인한테 안긴 녀자처럼 편안하게 나한테 안겨서 흐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더욱 동정하게 된것 같았다. 녀자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라도 옆에 든든히 있어주어야 하는데… 하는 유치하고 단순한 바보 같은 생각도 그 때 하게 된것이다. 더는 샤워를 구실로 욕실에 계속 처박혀있을수는 없었다. 나는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전쟁터에 나가는 병약한 군졸처럼 겨우 정신을 추슬러서 방으로 걸어나왔다. 아가씨는 몸에 흰 타월 하나만 걸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벌써 속이 덜덜 떨리는것 같았다. 아가씨가 태연할수록 나는 더 긴장되였다. 이건 도대체 누가 누굴 위해 봉사하는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수없는 남자들과 이 짓을 하는 아가씨에게 돈을 주며 하려 하는 나보다 돈도 받고 순수한 총각맛도 볼수 있는 이 아가씨가 훨씬 수지가 맞을것 같았다. 그래서 저렇게 태연하게 타월을 벗고 맨 알몸뚱이로 내게 다가오는가? 녀자는 천천히 나의 목을 그러안았다. 뜨거운 입김이 나의 얼굴로 불어왔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지? 키스를 할 차례인가? 아니면 먼저 녀자를 안고 애무를 시작해야 하는가? 갑자기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녀자의 매끄러운 손이 나의 국부를 애매하게 두르고있는 타월을 벗겨내였다. 희고 가는 손가락이 나의 가슴에서 원을 그리고있었다. 찹쌀만한 내 젖꼭지가 꼿꼿이 살아났다. 됐다, 이제 됐다. 일이 잘되여가는 징조다. 요염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는 녀자의 얼굴에서 나는 계속 그녀의 그림자를 찾고있었다. 어차피 오늘밤 이 녀자는 그녀의 데타인걸.정말 한번만은, 단 한번쯤은 그녀와 열렬한 정사를 치르고싶었다. 그녀의 속옷을 벗겨내고 하얀 유방을 손안에 잡아보고 알몸 구석구석을 키스해주고… 할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날 분명히 김사장과 같이 있었다. 회사일을 마치고 삼촌이랑 술을 마시다가 문득 그녀가 생각나서 전화를 넣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여 삼촌한테 핑게를 대고 한달음에 식당으로 뛰여갔었다. 2층 작은방 하나에만 불이 켜져있어 그녀가 거기 있을거라는 예감이 피끗 들었다. 혼자 힘들게, 고독하게 있을줄 알았던 그녀가, 혹시 혼자 청승맞게 앉아서 쿨쩍이고있지나 않을가 걱정이 되여 계단을 두개씩 뛰여올라갔는데… 그녀의 환희에 찬 신음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아닌 다른 남자랑 한창 즐거워하는 그녀의 소리를 들었을 때… 나의 랑패감이란… 나는 내 코앞에 바투 얼굴을 들이대는 녀자를 덥썩 끌어안았다. 녀자한테 내 붉어진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기때문이였다. 녀자의 입술을 빨았다. 코며 얼굴이며 턱이며 목이며 닥치는대로 빨았다. 녀자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거칠게 다루기 시작하였다. 왜? 왜 김사장이냐고? 나한테 안겨서 청승맞게 흐느낄 때는 언제고… 얼마나 알고 지냈다고 김사장의 품에 안겨서… 갑자기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아 복도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의 귀속으로 분명 그녀의 애교스런 목소리가 파고 들어왔다. “아- 아- 김사장님- 아이… 안된다니까… 하아…” 나는 귀를 틀어막고 계단을 도망치듯 뛰여내려왔다. 식당문을 나서서 거리로 미친듯이 뛰여가는데도 그녀의 교성이 계속 들려오는듯싶었다. 김사장과 한몸이 되여서 파마머리를 출렁이며 허리를 들썩이는 그녀를 눈앞에서 보는듯싶었다. 아, 그래서 녀자를 믿지 말라고 했던가? 거기에 비하면 대가까지 지불하고 아가씨의 하루밤을 산 나는 너무나 정정당당한 사람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그녀처럼 신음하게 할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녀 같은 소리를 지를수 있게 할것인가? 나는 씩씩 가파른 숨을 내쉬며 녀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바등바등 썼다.강하고 거칠게 들어가서 녀자가 죽어가는 신음소리를 지를수 있게 하려고 나는 안간힘을 다 썼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어느새 나의 페니스에 힘이 다 빠져버렸던것이다. 이발 빠진 종이호랑이? 녀자는 그런 얼렁한 인간이 아니였나란 식으로 눈이 올롱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그래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내가 그처럼 망설이고 주저하고 불정상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고있었을거다. 억울하고 창피하고 화가 났다.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세워보려고 부득부득 몇번을 더 도전했지만 한번 물러진 그 녀석은 좀처럼 다시 살아나지를 않았다.아, 내 인생에 그보다 더 창피할 때가 또 있을가? 내가 나가든 녀자를 내보내든 둘 중 뭔가는 해야 내가 살것 같았다. 나는 와락 일어나서 웃옷 호주머니속의 지갑을 꺼내 흥분된 손길로 큰장 몇개를 뽑아내여 녀자한테 쥐여뿌렸다. “가, 빨리 가버려!” 녀자가 나를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다. 기껏해야 그 노래방에, 어두운 홀 긴 쏘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어느 아가씨한테나 “그날 그 변태가…” 하고 지껄일뿐이겠지. 녀자는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몸에 두르고 지페를 주어서 문을 열고 나가며 “흥, 별 꼬라지야…”하고 가시돋친 말을 기어이 내 가슴속에 박아놓았다. 정작 녀자가 나가자 초라한 싸구려호텔방에 혼자 남은 내 처지가 더 궁상맞고 허무해보였다. 뭐 하는짓인가? 얼마나 많은,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몸을 섞는 녀자와 남자들이 내가 앉아있는 이 침대에서 삐걱거렸을가? 나는 벌떡 일어났다. 녀자를 쓰러눕히던 바닥의 카펫을 내려다보며 여기에서도 낯모를 녀자와 남자들이 수없이 많은 밤을 딩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옷을 허겁지겁 주어입고 그 방에서 도망쳐나와버렸다. 호텔의 호자도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멀리멀리 도망쳐버렸다. 다 그녀때문이야. 그녀만이 아니라 김사장때문일수도 있어. 어디 손벽이란 한손으로 치는 법이던가?
5 “삼촌, 그 매니저 말이야… 잘 아는 녀자야?” 어쩌다 조용한 기회를 잡을수 있어서 나는 삼촌한테 슬쩍 물었다. 삼촌은 한창 벤츠 하나를 앞에 놓고 컴퓨터로 전자회로를 검사하고있던중이였다. “왜? 그 녀자 괜찮니?” 삼촌의 눈이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비웃고있는것 같았다. “아니, 뭐 그렇기보다는… 믿을만한 녀잔가 그 말이지 뭐…\" 그녀에 대한 마음을 들켜버린것 같아서 나는 어물어물 넘겨버리려고 애를 썼다. “야, 산아! 가서 도구상자 가져와라!” 곁에 서서 한눈 팔세라 삼촌의 움직임을 보던 직원은 도구상자를 가져오라는 말에 시쁘둥해서 입이 대뜸 한발이나 나왔다. 점검을 마치고 고장난 부위를 수리할 관건적인 시각이 되면 삼촌은 이렇게 기술공들을 따돌리군 한다. 이 업이 워낙 기술일이라 기술만 로출되면 곰상스레 앉아서 직원을 하겠다는이들이 없어지기때문이다. “믿을만하냐는게 무슨 말인데? 다른건 모르겠고 식당일은 믿을수 있을거야. 니 숙모하고 어떻게 다리가 걸리는 사이거든.” 그래서 삼촌이 그녀를 식당에 들여왔는가? 어쨌든 서로 걸리는 사이라서… 식당 매니저란 자리도 잘만 하면 후려먹을게 많은 자리였다. 김사장과 한창 긴장한 사이인 삼촌이 자기편 사람으로 안배하자고 그녀를 들여온것 같은데… 그럼, 김사장과 재미를 보는 그녀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가? “근데 말이야… 그녀자… 김사장… 아니,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하게 되였다. 내가 말끝을 얼버무리자 삼촌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쏘아보았다. “응, 그애하고 김사장… 나도 대충 알고는 있다. 두고봐라. 김사장한테서 식당까지 넘겨받지 않는가, 내손으로 하는게 아니라 그애 손으로 해야지…” 이발을 부득 가는 삼촌의 이마에서 혈관이 툭 튀여나온 관자노리가 욱씬 움직였다. “사부님, 여기 도구상자요!” 아까 심부름을 시켰던 산이가 돌아와 도구상자를 열어보였다. 나는 삼촌한테서 돌아서며 흠칫 몸을 떨었다. 꼭 그래야만 하겠는가? 회사면 됐지 식당까지 꼭 그래야겠는가? 그래서 그녀를 미끼삼아 식당에 들인건가? 그녀의 손을 빌어 아니, 몸을 빌어 식당까지 가로채자고? 그러는 그녀는 또 뭔가? 그렇게 하기 위해 삼촌과 미리 짜고 들어왔단 말인가? 김사장과의 관계도 그때문에 그렇게 신속히 발전시킨건가? 다들 무서운 사람이네. 나한테 안겨 울던 그녀와 김사장의 품에 안겨 환희의 신음을 지르는 그녀가운데 어느것이 그녀의 진실한 모습인지 알수가 없었다. 어느것도 진실한 그녀라고 말할수 없었으며 그녀 자체가 자신에 대해 과연 얼마나 진실할가 하는 문제도 알수 없었다. 머리가 빠개지는듯한 아픔이 나를 잠에서 불러냈다. 나는 초상난 집처럼 썰렁한 내 아빠트의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쓴채 허리를 꼬부리고 모로 누워있었다. 해가 한참 뜬것 같았지만 온 몸이 나른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았다. 이럴 때 꿀물 한 컵 따라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그처럼 고마울데가 없을것 같았다. 물론 그런 사람이 내 집안에 있을리 만무했지만 말이다. 얼마간 버티고 누워있다가 나는 하는수 없이 자리에서 스적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짐은 어제저녁 트렁크에 다 정리해넣었으니 이제 몸을 추스리고 떠날 일만 남았다. 그래 떠나자. 이 도시만 떠나면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을것 같았다. 어눌하게 서서 삼촌을, 김사장을, 그녀를 리해해보려고 애쓰던 나를 버리고말이다. 내가 그런 노력을 했다고 해서 나한테 고마워하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내가 아니라 그 누구의 리해도 바라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아무의 리해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철저히 스스로 책임져 나가겠다는 그들의 생각도 어쩌면 틀렸다고만 할수는 없을것 같았다. 나는 비칠거리며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치솔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깔끔하게 면도도 하였다. 아무리 몰래 떠나는 길이라지만 도망가는 티를 너무 내고싶지는 않았다. 려행가는것처럼 그래, 려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가볍게, 홀가분하게 떠나고싶었다. 어차피 이놈의 인생도 려행길과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김사장도 떠나갈 때 이런 생각을 했을가? 아니면 다른 어떤 생각을 했을가?당연히 김사장이 더 비참해보일것이다. 회사에 들어간 돈이 나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그러나 김사장도 할수 있는만큼 다 해본 사람이였다. 내가 김사장을 안됐다고 본것은 순전히 그 사람을 한수 얕보았기때문이였다.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삼촌도 그랬다.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던 그녀를 김사장의 품안에 밀어넣은것도 그때문이였다. 그래서 세상 녀자는 믿을수가 없었다. 김사장의 수단이 좋아서인지 그녀의 욕심이 지나쳤는지 어쨌든 그들은 흐뭇하게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고있던 삼촌의 뒤통수를 보기좋게 후려갈겨주었다. 삼촌이 김사장에게 류동자금을 무리하게 더 요구한것도 그 뒤통수 맞을 시간을 스스로 앞당긴거나 다름없었다. 회계가 회사를 그만두어서 그때 회사장부는 나와 출납이 관리하고있었으며 세무서에는 나혼자 뛰고있었다. 어느 회사나 세무서에 내는 장부와 회사내부 장부, 이렇게 두부씩은 갖고있지만 우리 회사는 김사장이 모르는 또 하나의 장부가 있었으니 그것은 나와 삼촌만 아는 장부였다. “삼촌, 이렇게 까지…” 처음 장부를 따로 할 때 나는 영 마뜩치 않아했다. 벌써부터 이렇게 하면 나중에 서로간의 신용이 뭐가 되겠는가? 그런데 삼촌은 삼촌 나름대로 리유가 있었다. “중국에서 사업하자면 접대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줄 아니? 외상은 또 얼마나 되고? 이런걸 일일이 김사장한테 얘기했다간 서로 리해하기는커녕 얼굴 붉히고 싸울 일밖에 더 있을것 같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바닥에서 장사를 할수가 없다. 그리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비상금이라고 생각하고 암말 말고 해둬.” 내가 영 찝찝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삼촌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짜식, 삼촌말 들어라. 이 회사 법인은 너다. 이렇게 해서 네게 나쁠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삼촌은 김사장에게 끝없이 류동자금을 더 요구해왔다. 좀만 더 투자하라고, 몇달 지나면 리윤이 보일거라고, 이번달엔 이런 설비 꼭 들여와야 한다고… 리유도 매번 각가지였다. 둘이 심하게 다투고나서 돈을 요구하는 삼촌은 더 로골적이고 횡포해져갔다. “그래야 김사장 그 자식이 배기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할거다.” 삼촌은 술상에서 큰 목소리로 떠들며 웃었다. 나는 고래와 상어가운데 끼인 문어처럼 어떻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을 내가 뜯어말릴수도 없었고 어느 쪽이 터지는것을 구경할수도 없었다. 내 한몸은 다치지 말았으면 하는 초라한 바램뿐이였다. 삼촌의 “조르기”작전에 배겨내지 못하고 드디여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삼촌보다는 내가 더 어눌하고 물렁하게 보였기때문일것이다. 김사장의 팔짱을 끼고 같이 들어선 그녀를 보는 순간 카페에 앉아 얼음물을 마시던 나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것 같은 모욕감을 느꼈다. “임경리, 임경리를 믿어서 여기까지 왔다. 아무리 삼촌이라지만 이건 너무한거 아닌가? 임경리가 나와의 교분을 생각한다면, 량심을 생각한다면…” 김사장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희끗한 눈썹마디가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삼촌을 이 공장에서 해임해버려라. 어차피 지분도 없으니 나가면 그만이다. 회사는 처분해서 투자금을 얼마라도 회수하겠다.” 김사장이 갑자기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하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으니… “김사장님, 랭정하게 생각하세요. 지금 그러시면 서로 손햅니다. 삼촌이야 일전한푼 없이 들어왔으니 나가도 손해볼건 없어요. 사장님 그 돈들은 이 공장을 살려야 돌아오는건데, 지금 이러시면…” 그것은 김사장도 미리 각오한 일이였을것이다. 지금부터 김사장을 따돌리려고 애를 쓰는 삼촌인데 공장이 잘되여 돈을 많이 번다한들 그 돈들이 김사장손으로 들어갈리 만무했다. “긴말 할것 없고… 다 필요없으니까… 내가 보는 손해는 임경리가 신경쓸거 없다. 삼촌만 내보내라. 공장장은 다른 사람으로 초빙해서 임경리가 운영해도 좋다.” 삼촌과 임사장, 이제 이들 둘은 하나의 산속에 같이 살아갈수 없는 두마리의 호랑이가 된셈이였다. 김사장 립장에서 충분히 그런 제의가 나올만하였다. “김사장님… 그건…” 삼촌이냐 김사장이냐 나는 이들 둘가운데서 한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삼촌을 배반하자니 필경 물에 섞인 혈육이라도 혈육인것이고 김사장을 외면하자니 내 량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삼촌과 앉아서 협의를 봅시다. 삼촌한테 경영을 완전히 맡기고 매달 김사장의 투자금을 얼마간씩 갚아가는 식으로요…” 나로서는 중립의 위치에 설수 있는 가장 좋은 제안을 내놓았지만 김사장은 시원치 않아했다. “칫,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김사장님 한국에 돌아만 가면 돈을 갚긴 뭘… 지금 돈 되는것 팔아버리는게 그나마 덜 손해보는거라니까요.” 나와 김사장사이에 불쑥 끼여든 사람은 뜻밖에 그녀였다. 화장은 더 짙어지고 치마는 더 짧아진것 같았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선 눈길로 그녀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번엔 또 어떤 얼굴로 연출할것인가? 저 녀자는? 그녀는 나와 전혀 모르던 사이처럼, 완전히 김사장의 사람처럼 립장을 하고있었다. “그러니까 임경리, 회사를 처분하는건 내가 주선할테니까 여기에 싸인만 해주게.” 하긴 그녀의 말이 틀린데가 없었다. 삼촌은 충분히 그럴 사람이였다. 지금 김사장의 립장에서는 그렇게 하는것이 최선의 선택이였다. 식당이라도 받기로 됐나? 저 녀자가 왜 이 일에 김사장의 립장에서 끼여드는거지? 아니면 한국에 데려가 별장을 주면서 첩이라도 시킨다 했나? 나는 그녀를 훑어보면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둘사이에 무슨 거래가 있는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래도 걸리는 사이라고 믿고있는 삼촌을 까맣게 배반할수가 없었다. 서로 “사랑해서”라는 말은 젖먹이 어린아이한테도 먹히지 않을것이였다. 나는 그녀가 봉투에서 꺼내 김사장한테로 넘겨주는 서류를 받아보았다. 나의 법인대표자리를 포기하는 문서였다. “… 나 임성호는 성심자동차정비회사 대표리사직을 사직하며 이를 김기태한테로 양도한다… 모든 지분도 김기태 명하로 귀속한다… 금후 성심자동차정비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리익이나 경제문제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대체로 그러루한 내용이였다. 그녀가 변호사를 고용하여 작성한것인가? 서류를 든 나의 손이 가늘게 떨리였다. 회사설립시 내가 투자한 금액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김사장의 투자금에 비하지 못할것이만 나한테 있어서는 전부의 재산이였다. “김사장님, 내가 투자한 금액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네요…” 그 말까지 하지 못할 위인의 나는 아니였다. 기분이 불쾌해나서 목까지 붉어졌을것이다. 내 투자금이란 말은 처음 듣는 얘긴지 그녀가 올롱해서 김사장을 건너다보았다. 아마 그녀한테는 나와 삼촌을 투자 한푼 없이 남의 돈 날로 먹으려는 비렬한 한통속으로 몰아부쳤는가보았다. “지금 당장 회사를 처분하면 내 투자금을 절반도 회수못하는 상황이 아니냐? 거기서 어떻게 니것을 생각하겠느냐? 막말로 니가 그동안 모은 돈도 내가 벌어준 돈이 아니였나?” 김사장은 눈초리 하나 까딱않고 나를 쏘아보았다. 이제야 이 량반 본심이 나오는구나. 그래, 나를 여태 그 정도로 생각했단 말이지. 친구는커녕 먹다남은 콩고물이 있으면 먹고 살라며 던져주고 아무때나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을 해줘야 하는 그런 정도의 사람? 이제 필요없으니 나더러 빈손으로 나가달란 말이 아닌가. 만약 김사장이 투자금의 비률을 따져 회사를 처분한 금액을 나누자고 말을 했더라면 오히려 내쪽에서 얼마 안되는 내것보다 많은 손실을 입은 김사장의 립장을 더 생각했을것이다. 이렇게 나오는 김사장한테서 나는 일멸의 량심 같은것도 더이상 느끼지 않아주기로 하였다. “싸인 못하겠다면요?” 내 얼굴도 일그러져갔다. 나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있었던 모양인지 김사장은 그리 놀라는 기색이 아니였다. 그녀가 봉투에 달린 노끈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그럼 뭐 법정에서 보는수밖에. 이건 명백한 사기라고. 내가 못할것 같나? 돈 더 들여서라도 이 회사 엎을거다. 얘, 그만 가자!” 김사장이 그녀를 재촉하며 의자를 드르륵 빼고 일어섰다.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김사장의 팔을 부드럽게 잡으며 그녀가 나를 한번 스윽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그녀나 김사장이나 리해해보려고 애썼던 내자신이 바보스러웠다. 자신의 리익을 위해서 스스럼없이 뭉치는 그들, 그들과의 정이나 교분을 생각해서 주저하던 나하고는 달리 너무 당당하고 떳떳하게 나선 그들이였다. 그럴바엔 삼촌을 선택하고싶었다. 아니, 우선은 그들의 말대로 해주고싶지 않았다. 회사를 처분하든 설비를 팔아먹든 법인은 내 이름으로 되여있으니 나의 싸인이 없이는 어찌할수가 없는 그들이였다. 그런데 법정이라니? 이 일이 정말 사기건으로 고소될수 있는지 삼촌을 만나 상의해봐야 했다. 트렁크를 끌고 아빠트를 내려가면서 나는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집세는 미리 반년치를 냈으니 집주인이 손해볼것은 없었다. 이제 얼추 정리가 다 된건가? 택시에 앉아 문을 닫으면서 나는 담배냄새가 고약한 작업복을 입고있는 기사를 한번 흘낏 쳐다보았다. “역전이요!” 그래 떠나자, 훌훌 털어버리고 다 떠나자! 아무도 소용없었다. 나자신외에는. 사람이란 그런것 같았다. 자기의 리익에 선을 그어놓고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정이니 교분이니 하면서 평화롭게 지낼수 있었지만 일단 자기 리익범위에 들어온다면 그것들을 뜯어간다거나 망칠 일을 한다면 그때에는 정이니 교분이니 신용이니 하는 것들도 다 하루아침의 이슬처럼 흔적없이 사라지게 되는것이다. 그중에서 례외인 사람은… 아직 내 주변에 없었다. 삼촌은 한창 1층 사무실에 앉아 녀자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고있었다. “뭐 일을 이따위로 해놨어? 머리가 있는거야 없는거야? 당체 생각들이 없다니까…” 어느 직원이 결산지를 잘못 뽑아내여 삼촌이 던져버렸는지 온 사무실에 결산지가 제멋대로 날아다녔다. 녀자직원들 모두 머리를 수그리고 쩔쩔 매고있어서 어느 누가 장본인인지 금방 알수가 없었다. 삼촌의 호통에 다들 넉살이 나간것이다. “삼촌…” 이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내가 끼여들자 야단을 맞던 애들은 이제 살았다는 표정이고 한창 더 욕설을 퍼부어야 속이 후련할것 같은 삼촌은 얼굴이 재빛이 되였다. “뭐야? 바쁜 일이야?!…” 김사장일만큼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김사장일이야…” 내가 의미있는 눈짓을 해보이자 그제야 삼촌은 꼿꼿해있던 눈살을 풀고 나를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아까 김사장 그 녀자랑 같이 나를 찾아왔었어…” “그 녀자랑 같이”라는 대목에 와서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삼촌이였다. “한속이 됐더라구. 지금쯤 식당이름 그 녀자걸로 변경했는지도 몰라…” 흰 자위가 점점 많아지는 삼촌의 눈이였다. “뭐? 그년이?… 헛! 내가 지금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단 말인가?… 이 년놈들…!” 호된 한방을 맞아서 삼촌은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모양이였다. 삼촌 성격에 자신이 해꼬지하면 했지 좀체로 이렇게 당해본적은 없었기때문이였다. “내 당장 가서…” 삼촌이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며 돌아섰다. 나는 급히 삼촌을 붙잡았다. 아직 말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찾아가서 뭘 어쩌겠다는건가? “삼촌, 내 말 다 들어보라구…” 나는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삼촌을 끌고가서 내가 듣고 보았던것을 남김없이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까… 나를 내보내려 했다? 내가 어떤 인물인지 좀 알아나 보고 그러시지… 글고 뭐? 너보고 권리포기각서를 써달라고 했다? 법인이름 넘겨받아서 이 회사 당장 팔아치우게?” 삼촌은 쓰겁게 웃었다. “걱정말아, 니 싸인이 없으면 이 회사는 건드리지 못하는거고. 법으로 하겠다? 사기죄로 고소한다? 증거가 어디 있어서?” 삼촌은 팔짱을 끼고 여유있게 웃었다. “흑으로 오나 백으로 오나 나는 겁날게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투자금을 니 개인통장으로 들여오자고 우겼지. 증거를 없애자고…” 삼촌은 큰 배를 내밀고 흐흐 징그럽게 웃었다. “암튼 내가 주선할테니 저녁에 술상 하나 차리자…” 삼촌의 자신있는 말에 나도 덩달아 잠시 걱정을 매달아놓을수 있었다. 정말 삼촌이란 사람은 감당할수 없는 사람이였다. 그런 삼촌과 같이 일을 한다는것이 든든하게 생각되기도 하였지만 모름지기 섬찍하기도 하였다. 역전에는 항상 가야할 사람과 오고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법이다. 나는 매표소앞의 길다란 줄에 끼여섰다. 어디로 갈가? 내가 몇년동안 근무하면서 많이 익숙해진 ㄱ시는 동시에 김사장과 만나서 장사를 하던 곳이라 어딘가 찝찝했다. ㄱ시 말고… 그래, 이 나라 최남단도시로 가자. 일단 거기에 대학교때 친구녀석이 자리를 잡고있다니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야. 이 도시와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천애지각으로… 매표창구의 직원이 물어오자 나는 주저않고 그 도시이름을 대였다. “예, 거기요. 침대칸이 있다구요? 예, 아래층 말고 웃층이요. 몇시간 가야 된다구요?” “자, 자, 술들 들지…” 삼촌은 껄껄 웃으며 삼촌다운 큰 목소리로 술을 권하고있었다. 시 법원에 있다는 검사와 변호사 두명을 초청한것이다. 도수 높은 안경을 걸고 교만스러운 웃음을 흘리고있던 두사람은 삼촌한테 술잔을 들어보였다. “오늘 임공장장 마작운이 좋지 않아 미안해서 어떡하지?” 검사라는 작자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심드렁하니 웃었다. “아니 뭐, 다 재미로 하는거지요. 잘되는 날이 있고 안되는 날이 있는걸. 중요한건 기분좋게 놀아야 한다는것 아니겠습니까?” 삼촌이 대수롭잖은 일이라는듯 손을 내흔들었다. 이번엔 또 얼마를 “상납”했을가? 세 개? 두사람이니까 네개? 마작을 논다는건 눈가림수에 속할뿐이였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서로 그 내막을 빤히 꿰뚫고있었다. 직접 돈을 받지 않아서 법에도 문제될것 하나 없었다. 까탈스런 공무원들을 “사들이는”데는 이 방법이 최고였다. 삼촌은 이런 일에 아주 이골이 튼 사람이였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삼촌이 여태 쭉 살아온 이 북방도시에서 보다 더 효력을 볼수 있었다. “상납금”이 만족스러웠던지 그네들의 입에서도 말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기죄라면 우리 같은 경우에 증거가 불충분하다는게 그들의 판단이였다. 가장 중요한 회사설립자금이 내 개인통장으로 나갔기때문이였다. 나와 김사장사이를 증명해줄수 있는 서류나 사람도 없는 형편이여서 김사장의 돈이 바로 회사설립자금이라는 설도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돈을 보낼 당시 환률을 생각해서 암시장거래로 보냈기때문이였다. 또 설사 김사장의 돈이라는 증명이 있다고 해도 둘사이에 아무런 서류가 남지 않아서 대체 무슨 의도로 보낸 돈인지 불명백하다고 하였다. 내쪽에서 그 돈이 김사장과 장사할 때 나한테 진 빚이였다고 하면 엎을 길이 묘연하다고 했다. 김사장이 어떤 증거물을 제시할지 알수 없는 일이지만 이 사건은 최악의 경우에도 사기죄보다는 경제안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고 하였다. 알다싶이 일단 경제안건으로 판명이 나기만 한다면 돈이 없다는 핑게를 백방으로 만들어내여 시간을 거의 무한정으로 끌어갈수도 있어서 실질적인 배상을 하지 않을수도 있게 되는것이다. 거기다가 시 법원 원장까지 매수한다면 일은 떼여놓은 당상이였다. 법률에 대해 전문은 아니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였다. “하, 그렇게 된다면야 걱정할게 뭐 있겠습니까? 원장님께 잘 얘기해서 한번 식사나 하시지요…” 삼촌의 얼굴이 불그러니 잘 익어있었다. 나도 술병을 들고 두사람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연신 잔을 채워주었다. “그럼, 그럼요… 임공장장님 통이 크다고 잘 말씀드리지… 글고, 어차피 팔은 안으로 굽어야지 안그렇습니까? 그쪽은 한국 아닙니까? 우리 다 같은 중국인으로서 당연히 중국인의 송사에 귀를 기울여야지요…” 검사란 작자도 얼근하게 잘 취해있었다. 술이 들어가니 얼굴표정도 많이 풀어져 있었고 더워서 갑갑한지 반듯하게 매고있던 넥타이도 비뚤렁하니 반쯤 풀어헤치였다. “아, 지당한 말씀이지요… 이럴때 서로 똘똘 뭉쳐야지… 암튼, 며칠후에 마작판 한 번 더 벌립시다. 원장님 모시고 조용한 곳에서…” 삼촌은 내게 눈을 슴벅거려왔다. 이제는 확실한 타산이 섰다는 얘기다. 나도 숨이 활 나왔다. 이제 김사장은 전투기가 아니라 미사일을 가지고 덤벼든다 해도 별 승산이 없을것이다. 그러게, 삼촌이 어떤 인물이라고 간 크게 덤벼들어? 기차는 점심때에 출발하여 옹근 하루 하고 반나절 더 가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기차에 올라 트렁크를 질질 끌며 표에 찍힌 내 자리번호를 찾아갔다. 좌우, 아래우 해서 한칸에 네사람의 침대가 들어있었다. 내 침대 아래칸에는 벌써 그 주인이 짐들을 정리하고 먹을것들을 꺼내 탁자우에 놓느라 부산을 떨고있었다. 맞은켠 아래침대의 주인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틈을 타서 공용해야 하는 탁자위의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필요한것 없는것 죄다 꺼내서 쭉 배렬해놓았다. 또 시작인가? 지긋지긋한 자리싸움? 나는 씁쓸히 웃으며 내 트렁크를 번쩍 들어 웃 침대인 내 자리로 들어올려갔다. 어느 도시를 가나, 어떤 사람들을 만나나 이런 일들은 인간세상에서 피면할수 없는 일인것 같았다. 뭐 선진국사람들은 다 자리가 있고 문명스러워서 그렇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분명 그 나라, 그 인간들사이에는 또 다른 형태의 “자리싸움”이 존재할것이다. 어쩌면 기껏 걸상 하나나 편안한 자리 하나같은 작은 리익에 연연하는 우리보다 더 큰 리익을 사이에 놓고 살벌하게 싸우고있을지도 모르는것이다. 그게 인간의 본래 모습인가? 아니면 이 세상살이에 길들여진 외곡된 현상인가? 누구를 말할것도 없었다. 먼저 자기의 리익을 생각하는것은 어느 누구나 다 같은 것이였으니까. 김사장은 그후에도 나한테 전화와서 곧 령사관에 이 일을 넘길것이며 법정에서 나와 삼촌을 부르는 일이 있을거라고 두어번 경고했지만 그뒤로는 한동안 소식이 없어졌다. 식당은 내 예측대로 이미 다른 사람한테 양도되였으며 계약을 함께 체결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는것을 새 주인의 말에서 짐작해낼수 있었다. 그리고 그후 그녀는 김사장과 같이 떠났는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흥! 망할것들! 나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어림반푼도 없지!” 삼촌은 그들을 떠올리며 분이 차올라 씩씩거렸다. 나는 만일을 대비하여 주중 한국대사관에다 한국인 신분으로 이런 류형의 사건에 대해 자세한 문의를 해보았다. 거기에서 해주는 대답도 저번 변호사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난감한 말투로 서류 하나 없이 투자금을 그런 식으로 보낸게 잘못이란 말만 해주었다. 결국 법으로는 이 일이 사기죄로 성립될수 없다는 얘기였다. 김사장도 그걸 알았는지 다시 법으로 어떻게 할거란 장담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대신 얼마간 지나서 갑자기 내게로 만나고싶다는 전화를 해왔었다. “우리가 또 만나야할 리유가 있나요?” 나도 이제 김사장을 만나는것이 싫었다. 이제 서로 얼굴을 찢은 마당에 만나서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기분 나쁘게 헤여질 일밖에 더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다시 김사장의 옆에서 그녀를 보게 될가봐 두려웠다. 좋은 기억들만 남겨두고 갈것이지… 꼭 그렇게 너절하고 더러운 모습을 내게 보여줘야만 했는가?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나에게 호감 같은것이 한점 남았다면 말이다. “임경리, 인간적으로 생각해보게. 임경리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것 같은가?” 김사장의 어투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이제 도무지 해볼 도리가 없으니까 다시 나한테 량심이니 교분이니 들먹이고있었다. “임경리가 나서서 삼촌을 고소하는 방법밖에 없네.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내 이 일을 두고두고 잊지 않을거네…” 나는 한숨을 푸- 하고 내쉬였다. “김사장님도 인간적으로 생각해보세요. 김사장님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가요? 까놓고 말해서 김사장과 나는 남남이지만 삼촌과는 가족입니다. 김사장님은 가족을 배반하고 팔아넘길수 있을가요?” 저쪽에서 김사장이 후- 하고 한숨을 길게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말 않고 전화를 들고만 있는 그를 대하자 내 마음 한쪽이 짠해난다. “그래, 김사장님 지금 어디세요?” 이 량반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제대로 먹고나 다니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러게 참, 일이 왜 이렇게 되였을가? 우리는 왜 이런 관계가 되여버린건가? “그럼 나더러 이대로 망하고 돌아가란 말이냐?” 김사장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마음이 편할수 없을것이였다. “그러니까 삼촌과 만나서 협의해보세요. 저도 삼촌 설득해볼게요…” 가능성이 별로 없는 제의지만 나로서는 그것밖에 해줄수가 없었다. 김사장은 한숨만 쉬다가 아무말 않고 끊어버렸다. 내 머리도 내 머리겠지만 그 사람의 머리도 지금 빠개질것이다. 그 서슬에 기뻐난 사람은 삼촌뿐이였다. 매일 사람들을 불러 술자리를 만들어 흥청망청 먹고 마시였다. “내 임대관이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가르쳐줄거야. 함부로 덤비지들 말라고…” 삼촌은 득의양양해하였지만 나는 계속 속이 편하지가 않아서 삼촌이 주선하는 술자리에 핑게를 대고 빠져주었다. 삼촌의 공모범으로 보여지기 싫어서였다. 내 나름대로 량심껏 했다는 평을 듣고싶었다. 하긴 그런 마음이라도 먹고있었기에 김사장이 나를 빼고 삼촌만 찾은것 같았다. 6 기차는 덜컹거리며 잘도 나아갔다. 웃층침대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나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정작 차가 떠나고 눈에 익었던 도시를 떠나게 되니 그렇게 쓸쓸할수가 없었다. 대체 내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란 말인가? 이 도시로 돌아올 때는 이제 여기서 결혼도 하고 사업도 하고 애도 키우며 살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1년이라니?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니? 나를 반기고 기다리는 도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생에는 처음부터 무슨 종착역 같은것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다가 죽는 곳이 바로 종착역이겠지. 허무하고 외로웠다. 이 넓은 세상에 나를 위한 도시가, 나를 위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혈육이면 어떠한가? 비록 물이 섞인 피라지만 삼촌만 생각하면 뜨끈뜨끈한것이 욱 치밀어오르던 그 시절은 핥아먹은 개 밥그릇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는걸. 최소한 삼촌이 있어서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던 도시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삼촌을 지우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나는걸. 그래서 솔로몬이 그런 시를 지었다던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나는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삼촌이 당했다. 친구들과 기껏 술을 퍼마시고 비칠비칠 집으로 들어가다가 아빠트 입구에서 낯선 사내 둘에게 폭행을 당했다. 술에 너무 취해 어떤 사람들인지 미처 볼 새도 없었고 그렇게 퍽퍽 맞은 뒤에 간신히 집으로 올라왔단다. 김사장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건 묻지 않아도 뻔할 뻔자였다. 허연 붕대로 얼굴이며 팔을 둘둘 감고 삼촌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래, 이제 백으로 안되니까 흑으로 해보자는거지? 좋았어, 오늘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이 네놈의 실수다!” 그냥 당할 삼촌이 아니였다. 나는 골절에 좋다는 웅담을 술에 담궈가지고 삼촌한테 주고 오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김사장 분이 사그러진다면… 이쯤에서 무슨 타협을 볼수 있다면… 차라리 속편하겠다…” 거퍼 이틀이 지나지 않아 고객룸에 삼촌의 “아우”라던 그 “빡빡머리”가 애들을 데리고 득의양양해서 들어왔다. “임형, 찾았소! 그 자식이 말이야…” 아직 얼굴에 파스를 더덕더덕 붙이고 사무실에 앉아있던 삼촌이 용수철마냥 벌떡 튕겨올랐다. “흥, 제깟놈이 내 눈을 피할수 있다고? 오늘 내 손에 죽었다!” 나는 속이 철렁하였다. 주먹질로 이름났던 삼촌은 결혼전 무리싸움에 끼여들었다가 사람 목숨을 빼앗은 사고도 냈었다. 내막을 잘 알순 없었지만 몇년전에도 무슨 사고로 한동안 피해다닌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저렇게 불 같은 성격의 삼촌이 김사장을 만난다면… 정말 또 무슨 일을 칠지도 모를 일이였다. “삼촌! 랭정해요, 삼촌! 일 치지 말고…” 삼촌이 씽긋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여직껏 준비하던 일인데 제쪽에서 선수를 쳤으니 이제 나도 칠 명분이 생긴거다. 걱정말아. 이 도시로 끌고와서 조용하게 손 볼꺼니… 이 도시에선 아무일 없다. 다 내 사람들이라서…” 삼촌이 공안국 국장이며 “빡빡머리”며를 자주 만나던 일이 이런 때를 대비하여 눈감아달라는 차원에서였다는것을 나는 새삼 깨달았다. 삼촌은 정말 그의 말대로 “흑으로나 백으로나” 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김사장을 끌어들인것이였다. 무서운 사람! 저 사람한테 김사장이 걸려들었으니… 워낙에 서로 맞수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였다. 나는 김사장이 어느 정도로 당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까지 알려고 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여렸다. 삼촌의 성격을 보아 자신이 당했던것보다 더 하면 했지 덜 손봐줄 위인이 아니였다. “개자식, 너무 바빠서 오줌을 다 갈기더라. 야 임마, 너도 그거 봤어야 하는데…” 그날 저녁, 술상을 차리고 삼촌은 호탕하게 배를 두드리며 웃어대였다. “이것 봐라, 이제 그 자식은 끝났어. 이 회사는 이제 우리거다!” 삼촌이 품안에서 종이 두장을 꺼내보이며 껄껄 음흉하게 웃었다. 우리 정비공장 명예고문자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증명 하나와 일전 장사에서 나한테 진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보냈다는 내용의 수지 하나였다. 김사장의 비뚤비뚤한 싸인과 도장밥으로 찍었는지 피로 찍었는지 언뜻 알수 없는 뻘건 손도장이 찍힌것들이였다. 먼저 구타하고 나중에 억지로 찍어낸 모양이였다. “이 증명만 있으면 경제안건도 성립되지 않는거야. 그 자식이 우리 회사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지는거라고…” 삼촌이 내 어깨를 껴안고 술냄새를 팍팍 풍기며 흥분되여 말했다. “그래? 김사장이 우리 회사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되였다고? 그 사람… 이제 맨몸으로 돌아갔겠네?” 삼촌은 너무 기뻐서 나를 흔들어대였지만 나는 그렇게 기뻐할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끝난건가? 김사장 이렇게 거꾸러지면 다시 일어설수나 있을가? 중국으로 들어오고싶은 생각은 까맣게 없어질것이다. 돈 날리고 회사 빼앗기고 몸까지 다쳤는데 아무도 편이 되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꼼짝 못하고 악 소리 한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하고 삼촌한테 당한것이다. 나는 아가씨들을 주무르며 술을 퍼넣는 삼촌을 바라보았다. 삼촌은 정말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것일가? 김사장을 맨몸으로 쫓아내고 정말 두다리 쭉 뻗고 편안하게 잠잘수 있을가? 도대체 인간이란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질수 있는것일가? “삼촌- 삼촌은 정말 마음이 편해? 김사장 쫓아보내고?-” 술에 곤드레 취해서 나도 삼촌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흔들었다. 할수만 있다면 삼촌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보고싶었다. “야, 이 자식아. 나라고 그러고싶어 그랬겠니?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너, 내가 그 개* 같은 견습공에서부터 어떻게 기술공이 되고… 어떻게 경리가 되고… 어떻게 이 업계에서 자리를 굳혀왔는지 알기나 하니? 아무도 내편은 없었다. 돈도 없고 배운것도 없고 부모빽도 없고… 다 나혼자서… 이 험한 세상에서… 아득아득 살아왔어… 날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거다. 회사 잘 경영하고 돈벌어서 투자금 좀씩 갚고… 그담에 그담에 내가 먹으려고 했지… 흐흐… 원래 이 바닥에서 장사는 그렇게 하는거다.누구 탓할거 아니다!내가 아니라 다른놈 만났더라도 그 사람 그렇게 됐을거다… 다 제그릇이 너무 작은게 탈이지… 나만한 사람을 감당할수 없었던게…” 비칠거리며 택시에서 내려 사우나로 걸어가면서 삼촌은 주절주절 말들을 털어놓았다. 그래,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그게 중요한것이다. 그렇게 일찍 건드리지 않았으면 김사장은 얼마간의 투자금은 회수했을것이다. 결국 그렇게 따지자면 김사장은 이 도시에 들어온것부터가 잘못되였다. 일찍 건드리든 늦게 건드리든 아니면 건드리지 않았다 할지라도 삼촌은 어차피 그 회사를 손아귀에 넣고자 했을것이다. 일찍 건드렸기에 일찍 빼앗겼을따름이다. 그럼 나는 어떠했는가? 나는 애초부터 삼촌을 건드리지도 아니, 건드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그런 나에게 삼촌은 왜 그랬을가?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겠다는 자신의 생각도 전혀 믿을수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서 가장 간사한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굳이 녀자의 마음만 갈대라고 빗대여 욕할 필요가 없다. 리익앞에서 남자나 녀자나 사람이면 다 같은 마음일거니까. 삼촌이 혹시 나에 대해서도 다른 마음을 먹을수 있다는 생각은 그녀의 전화를 받고 서였다. “저예요. 잘… 있죠?” 한창 령수증을 “위조”하고있다가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녀자가 무슨 생각으로? 아직도 김사장과 관련된 일인가? “무슨 일이야? 어디야?…” 영 마뜩지 않아하는 내 어투를 알아차리고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김사장하고 상관없어요. 나는 나예요, 누구하고도 상관이 없는 사람이예요…” “…?”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도대체 이 녀자는 무슨 말이 하고픈걸가? “저 지금 떠나는 길이예요… 이 도시… 이 나라…” “…” “가기전에… 이제 다시 만날 일 없겠지요, 우리…”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정작 그녀가 떠날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영 구릿구릿하였다. “그래…” 떠나지 않는다면 또 달라질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미 나는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인걸. 내 마음이 그런 그녀를 다 받아줄만큼 너그럽지는 못한걸. “그래서 얘기하는건데요,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이예요, 나자신외에는… ” 그러니까 김사장이나 다른 어떤 누구라도 그녀 자신의 계획에 따라 만나는거지 정에 흔들린다는 말은 아니라는 말일것이다. 역시 속을 알수 없는 무서운 녀자… “당신도 믿지 마세요, 아무나… 장사로 만나는 사람도 그렇고 혈육이라 하는 사람도 그렇고… 녀자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누구를 말하는거야?” 나는 전화기를 귀에 바투 들이대였다. 이 녀자는 나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있었다.김사장은 갔고 혈육이라면 혹시… 삼촌을… “그래요, 까놓고 말해서 삼촌이예요…” 녀자는 삼촌이란 말을 하면서 가볍게 랭소하였다. “삼촌이 왜? 내가 그 말을 믿을것 같아?” 녀자는 픽하고 웃어버렸다. “그러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잖아요… 삼촌도 나도…”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는 일로 잠간 고민하였다. 이 도시를 떠난건지, 이 나라를 떠난건지는 알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남아있을 리유도 없었던것 같았다. 김사장과 상관없다니? 식당이 처분되고 돈을 받은 다음에 그녀는 김사장과 더 같이 있을 리유도 없었을것이다. 그녀말대로 그녀는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이였고 아무하고도 상관없이 그냥 자기가 하고픈 일을 선택해서 이루었을뿐이였을수도 있다. 이것이 그녀의 진실일수도 있다. 그럼 떠나는 마당에 굳이 나한테 찝찝한 전화 한통 하고싶었던 그녀는 또 무엇이였을가?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더이상 알고싶지도 않았다. 알았다 한들 또 무엇하랴. 아무 소용없는 짓들이였다. 라면냄새가 코로 흘러들어왔다. 내 아래층 주인이 탁자에 자신의 물건들을 가득 놓고 그중 책 한권우에서 컵라면을 먹고있었다. 맞은켠 손님과 공유해야 하는 탁자라 자신의 지경을 좀이라도 더 넓히려고 선수를 쳐서 저녁을 먹는것이였다. 그 밴댕이 속알딱지만한 속이 다 드러나보였다. 좀, 좀, 저러지 좀 말지. 다들 바보도 아닌데 그 속을 모를가봐. 왜 어떤 인간들은 꼭 저렇게 치사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흘끔 그 친구의 맞은켠 침대에 누워있는 손님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반응일가 궁금해서였다. 같이 물건을 탁자우에 밀어놓으며 신경전을 벌이겠는지 아니면 포기하고있는지. 맞은켠 침대의 그 사람은 누워서 책을 보고있었다. 빼앗기여서 불쾌한 표정을 일부러 양보했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꾸어서 말이다. 그 사람의 “고상한”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갑자기 숨이 확 트이면서 기분이 좋아지였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알수 없는 안도감도 느낄수 있었다. 괜히 그 사람과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저기요, 지금 몇시예요?” 기차를 타본 사람이라면 이러루한 물음이 바로 말꼬리의 시작이라는것을 다 알수 있을것이다. 거의 모든 화제는 이러루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몇시예요? 방금 지나간것이 어느 역이예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나와 일련의 뉴대감이 느껴지는 그 “동지”는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몇시냐구요? 음- 5시네요. 5시 5분…”
7
그녀의 전화는 무슨 악성바이러스 같아서 한번 대뇌세포속에 침입해들어온 이후 쉽사리 나가주질 않았다. 그러고보니 요즘 삼촌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점점 이상스러워진듯하였다. 전 같으면 퇴근후마다 벌려지는 이러루한 술자리에 인사차원만으로도 꼭 나를 부르군 하던것이 언제부터인가는 나오라는 전화 한통 없다. 물론 내가 술을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삼촌의 술친구들과 다 교분이 있는것도 아니여서 나오라고 할 때마다 다 나가는 내가 아니였다. 그런데 삼촌을 믿지 말라는 그녀의 전화를 받은후부터 괜히 삼촌이 나를 따돌리려고 그러는건 아닐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영 불쾌해나군 하였다. 일때문에 먹는 술도 많았지만 삼촌자신이 친구들과 마시는 술도 많았는데 그런 용도로 나가는 돈들이 다 회사장부에 접대비용으로 올려지군 하였다. 김사장이 떠난후에 회사에는 장부를 두개만 두었는데 만에 하나, 삼촌이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나한테 올려오는 장부 말고 아래층에 또 하나의 장부가 있을것이였다. 장부만큼은 아니라도 차 두어개의 수리비만 올려오지 않아도 구멍이 생길게 뻔하였다. 사달은 월말 영업수익을 작성할 때 생겼다. 자동차 부품값 외상장부는 다 맞았는데 고객들의 외상 수리비장부가 맞아떨어지지를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손님이 며칠만 말미를 달라해놓고 실제로 몇주일, 몇달이 지나도 갚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장부는 아래층 직원의 컴퓨터에 미결로 남아있고 나한테는 전달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외상장부가 있다는것조차 모를수 있었다. 그런 장부가 갚아진다면 그중에 얼마든지 틈이 생길수 있는것이다. 누구의 호주머니속에 현금이 들어가도 나는 감감 모를수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래층 녀자직원들을 의심했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아래층에서는 고정된 직원이 돈을 받고 장부를 관리하는것이 아니라 컴퓨터 네트워크로 세명의 녀자직원들이 동시에 장부를 관리하고 돈을 받을수가 있게 시스템이 되여있었다. 때문에 세명이 한꺼번에 짜고든것이 아니라면 손쓰기가 어려운것이다. 어쨌든 장부의 틈사리를 조사하기 위하여 아래층 컴퓨터로 들어가보니 그동안 외상으로 들어와서 내 장부에 아직 올려오지 못한 자동차가 몇건 잘되였다. “이건 공장장님이 먼저 놔두라고 해서…” 녀자애들이 떠듬거리며 나의 눈치를 보고있었다. “ 이건 어제 공장장님 카드로 들어왔대요… 결산장부는 공장장님이 임경리님 가져다준다고 했는데…” 녀자애들이 미결한 장부 몇개를 가리켜보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공장장님이 무상으로 해주라고 해서…” 그 금액들을 대충 훑어보아도 만단위가 훌 넘어갔다. 적지 않은 구멍이였다. “그래? 알았어…” 나는 다른말 않고 조용히 내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녀의 말이 사실인가? 삼촌이 정말 다른 마음을 먹은건가? 아니면 용돈이 모자라 장부 몇개 슬쩍 했을뿐인가? 정말 마음먹고 해먹자면야 삼촌은 얼마든지 나몰래 해먹을수 있었다. 부품도 삼촌절로 다 주문하고 큰 사고가 난 차량들은 반드시 가격을 협상해야 하니… 이 바닥에서 어떻게 해먹고있는지 나도 뻔히 잘 아는 일이다. 기사들만 보아도 그렇다. 정부기관에 근무하는 기사들은 더욱 그러했다. 약한 사고를 당하고도 일부러 부품을 바꾸러 오는가 하면 사고를 당하지 않고도 와서 비싼 부품을 바꾸는이들이 많았다. 어차피 수리비용은 기관에서 나가는거니까. 멀쩡한 부품을 바꾸어넣어서(어떤 경우에는 근본 바꾸지 않을 때도 있다) 부품 하나를 그냥 얻은데다가 높은 수리비를 받은 회사에서는 기사에게 수고비를 찔러주군 한다. 그 수고비맛에 기사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단골회사를 찾는것이다. 이런것들은 거의 공개된 비밀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이 나라, 이 도시 정비업은 그랬다. 비싼 외제차일수록 부르는것이 값이였다. 다른 회사에서 찾아내지 못한 문제점을 우리 회사에서 해결하였다면 가격은 우리 마음이였다. 아니, 삼촌 마음이라고 해야 옳은가? 삼촌도 마음만 먹으면 고객들한테서 회사장부에 알려지지 않는 수리비를 챙길수 있었으며 부품주문시에도 따로 카드를 만들어 수고비통장을 만들수 있었다. 어차피 구입비용은 회사장부대로 회사돈으로 나가야 하는것이니까. 그렇게 따지자면야 문턱마다 함정이고 덫일수 있었다. 어느선까지는 서로 알아도 모른척, 한쪽 눈을 감아주고 지내야 시끄럽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나는 김사장이 나간 뒤의 첫두달을 그렇게 버텼다. 그런데 삼촌편에서 나의 꼬투리를 잡으려는 낌새가 날로 더 로골적으로 보여지는 것이였다. 왜? 나는 삼촌을 건드리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여태 피하기까지 했는데… 내 아래층친구는 컵라면을 다 먹고도 부산하게 계속 탁자우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겨놓았다. 하루반을 이 기차에서 지내야 하니 다음끼니에도 탁자를 또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내릴 때 가지고 내릴것도 아니면서 자기가 다 쓰고나면 다른 사람이 쓸수 있게 자리를 얼마간 비워두어야지… 어떤 사람들은 그랬다. 항상 자기가 응당 가져야할 그 이상을 욕심내고있었다. 더 많이 가지고싶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들은 너무 로골적이고 너무 솔직했다. 너무 많은것을 차지하려고 하다보니 항상 다른 누군가와 충돌이 생기게 된다. 자기의 리익범위를 지나 다른 사람의 리익범주를 침입하였기에… 나는 충돌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여서 될수록 자신의 리익범주내에 얌전히 웅크리고있으려고 하지만 그들은 더 많은 리익을 위해서 충돌을 불사한다. 단순 용감한 그들은 또 충돌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 자신있게 부딪칠 준비를 하고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삼촌이 내게 걸어온 문제들은 시시껄렁한 작은것들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사무실 컴퓨터 전원을 켜놓고 갔다느니… 아침부터 웬 지각이냐느니… 령수증을 잘못 찢었다느니… 하는것에서부터 지출명세가 불확실하다느니… 장부가 명확하지 않다느니… 세금을 왜 이렇게 많이 내게 장부를 했느냐… 등등과 같은 민감한 문제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삼촌의 의도가 명확히 느껴오지 않아서 나의 잘못들을 인정하고 넘어갔는데 점점 많아지는 문제들이 그냥 장난이 아니였다. 인정하기 싫은 일이지만 이건 분명한 트집이였다. 나는 명의상 법인이였을뿐이고 삼촌은 실질상 회사의 주인으로 회사내외에 확실히 자리매김하고싶었던것이다. 자신의 착오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의 문제점은 직원들앞에서까지 공공연하게 내놓고 떠들어댔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회사에 책임진다고 말할수 있어? 직원들한테 본이 되는가?”서른명남짓한 직원들이 밥을 먹고있던 식당칸에서 삼촌이 눈을 부라리며 내게 소리쳤을 때 정말이지 당장 집어치우고 뛰쳐나오고싶었다. “아무도 믿지 마세요… 삼촌? 그래요, 삼촌말이예요…”하고 마지막 귀띔을 해주던 그녀의 말이 언뜻 머리에 떠올랐다. 나보다 눈치가 빠른 그녀는 처음 자신을 식당에 들여오며 구슬리던 삼촌의 입에서 그 인간됨을 미리 알아챘던 모양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삼촌한테 당하기전에 먼저 선수를 치고 도망간것이였다. 나한테는… 바보 같이 순진하게 삼촌만 믿고있는 내가 안쓰러웠을가, 아니면 우스웠을가 암튼 그런 복잡한 마음에서 주저하다가 전화를 걸어준것 같았다. 다들 나보다 한참 선수들이였다. 나 같이 얼쩡한 인간이 또 어디에 있을가? 거의 일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장부를 손에 쥐고있다지만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했고 내 호주머니는 더우기 청결하게 지키였다. 그뿐이랴. 응당 그전부터 얼마간씩이라도 회수했어야할 나의 투자금도 삼촌의 이런저런 구실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있었던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뻔한 스토리였다. 김사장한테 하던것과 똑같은 방법을 내게 쓰고있는 삼촌이였다. 구실을 잡아 트집을 걸고 장부를 빼돌리고 돈줄을 졸라매여 나 스스로 숨이 막히게 하는… 너무 티나는 수단들이였다. 그럼에도 나는 삼촌이기에 나의 혈육이기에 절대로 나한테 그럴리가 없을거라는 바보스러운 믿음 하나로 그것들을 다 외면하였던것이다. 삼촌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 나는 그날 저녁 삼촌을 회사로 불렀다. “뭐 급한 일이냐? 급한 일 아니면 다음날 보고… 나 피곤하다…” 내 전화를 받는 삼촌은 예상대로 영 심드렁한 말투였다. 삼촌은 워낙 나 같은것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있었다. “착해빠져서” “밥그릇만 빼앗기는” 나를 상대하는 일은 삼촌한테 있어서 일도 아니였을것이다. “삼촌, 아무래도 회사일에 내가 적성이 맞지 않는것 같기도 하고 이제 결혼하고 내 일도 새로 시작해야 할것 같아서 말인데…” 내가 어눌하게 말을 꺼내자 삼촌은 비스듬히 의자에 포개고 앉아서 나를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것도 삼촌 예상안의 일일것이다. 무조건 “조르기”로 나혼자 포기하고 나가주기를 바라는… “그래서?” 삼촌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나는 숨이 막힐것 같아 연신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투자한 금액을 빼주었으면…” 일전 한푼 들이지 않은 사람은 삼촌이였지만 나는 내 돈을 처넣고도 오히려 삼촌한테 사정하고있었다. 이 세상은 워낙 이런 세상이였던가? “흠- 투자금이라…” 삼촌은 일부러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였다.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김사장한테 하던 식으로 나를 내보내려고 하지 말았으면… 나는 삼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삼촌은 과연 어떤 대답을 줄것인가? “야, 임마, 너도 회사장부 다 쥐고있으니 알겠지만… 우리 회사 세운지 이제 일년도 안됐어. 김사장 그놈이 떠난지는 이제 석달째고… 아직 제궤도에 들어서지도 않은 회사에서 투자금을 빼겠다니… 나보고 어떡하라구? 아직 공장도 더 확충해야 되고 설비도 더 들여와야 하는데… 아직 먼저번 설비값도 다 물지 못했다는건 니가 더 잘 알잖니… 야- 난감하다… 니가 이렇게 나오니…쯧쯧…” 삼촌의 얼굴에는 한치 미안함이나 어색함도 없었다. 너무 당당하게 너무 도리있게 말을 하고있었다. 나는 삽시에 뒤머리가 아파났다. 삼촌이 정말… 정말로 나까지… “그러면 매달마다 얼마간이라도 빼주면 어때요? 그러면 부담이 덜 가겠는데…” 김사장한테 해보라고 제의했던 최후의 수단이였다. 설마 삼촌이… 나는 눈 하나 깜짝않고 삼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삼촌은 김사장이나 나나 똑같이 취급할셈이였던가? “글쎄… 지금은 어렵잖겠니… 몇달 지나서 겨울장사 들어가면 좀 나을런지… 지금은 할게 너무 많다… 회사부터 살리고 봐야지, 투자금이야 차차 회수하면 되는거고…” 삼촌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뻔한 거짓말을 내앞에서 스스럼없이 하고있었다. 아, 삼촌이란 사람은… 나는 더이상 뻔뻔스러운 삼촌의 얼굴을 대하고있기가 싫었다. 내가 어눌하고 “착”한건 사실이지만 그만한 말귀 알아듣지 못하는 바보는 아닌것이다. 나는 그날 삼촌의 진면모를 충분히 들여다볼수 있었다. 결국 그날 나와 삼촌은 반년에 걸쳐 내 투자금을 뽑아낸후에 나의 모든 지분과 명의를 삼촌한테 양도하기로 구두합의를 보았다. 그때 삼촌이 정말로 내 투자금은 뽑아 주겠다고 생각하고있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의 말대로 아무도 믿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기때문이였다. 내 아래층친구는 코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탁자아래에서 보온병을 꺼내 뜨거운 차 한잔 마실 생각을 하였던 모양이다. 탁자우에는 그의 휴지, 과자, 햄, 책, 그리고 핸드폰과 꽤 비싸보이는 보온컵까지 올망졸망 쌓여있어서 완전 역전앞 길거리난전을 련상케하였다. 비싸보이는 보온컵에 차잎 한스푼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그는 돌아서서 이불우에 던져놓은 가방을 뒤적이고있었다. 워낙 둔중한 몸집이라 자리를 다른 사람보다 배는 더 차지하게 생겼으니 자신의 엉덩이가 탁자우의 책을 슬슬 밀어버리고있다는것을 도무지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책이 밀리면서 온 탁자우의 난잡하게 놓여진 물건들이 련쇄반응을 일으키듯 다같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유리로 된 보온컵이 가장자리로 막 밀려나고있었다.“엇…” 내가 웃몸을 일으켜 아래로 내려다보는 순간 맞은켠 아래침대에 있던 그 “고상한 동지”도 동시에 그 장면을 목격하고있었다. “저기요, 컵 떨어지겠어요…”하고 웨치면 될걸 나는 입을 다물고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그 “고상한 동지” 역시 빤히 쳐다만 볼뿐이였다. “짤랑-!” 유리컵이 바닥에 사정없이 떨어지면서 깨져버리고 뜨거운 차물은 유리쪼각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마야, 내 컵!” 그 친구가 발등에 뿌려진 뜨거운 차물때문에 덴겁하여 소리지를 때 나와 그 “동지”는 하나, 둘, 셋 하고 약속이나 한듯 눈을 서로 마주치였다. 내가 그런거 아니야… 알어, 내가 그런것도 아니야… 그냥 우리는 보고도 말을 해주지 않았을뿐이지…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나였다. 반드시 삼촌처럼 당한만큼 당장 갚아주는 위인은 아니였어도 고상한척 양보하는척 얌전히 물러가서 엎드려 기다리고있다가 일단 기회라는것이 오면 손가락 한번 까딱하는것으로 대방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고싶어하는…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였다. 8 만약 삼촌이 나와 약속한대로 매달 투자금을 좀씩 빼주었다 해도 지금의 상황은 또 많이 달라져 있었을것이다. 애초부터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던건지 아니면 하다보니 경영이 차차 부실해져서 리익이 좀씩 줄어들어서 그랬던건지 삼촌은 두번째달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실 장부와 현금이 다 내손에 있어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수 없는 일도 아니지만 나는 끝까지 회사원칙대로 공장장인 삼촌의 싸인을 받고 지출하려고 했었다. “야, 이번달은 그냥 넘어가고… 다음달 보자… 정비실 하나 더 늘여야 되고 겨울 난방시설도 들일 준비를 해야 하니…” 1층사무실에 앉아 고객들과 얼리고 닥치며 흥정을 하고있던 삼촌은 가뜩이나 험상궂은 얼굴을 더 심하게 얼그러뜨리며 귀찮은 사채업자를 쫓아내는양 나를 밀어내였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있는지 한심스러웠다. 더이상 어떻게 해주랴? 처음 김사장을 따돌릴 때는 “우리 회사”라고 하면서 반반씩 나누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해놓고 그래, 워낙 그것까지는 바라고있지 않던 나라서 내 투자금만 회수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지분이니 명의니 다 양도할거라고… 사실 삼촌의 기술도 기술이였거니와 당시 내가 중간에 서서 김사장을 설득하고 또 내 돈을 몽땅 넣지 않았으면 김사장도 들어올리가 없었다. 그런것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하면 안되지… 한꺼번에 다 빼달란 말도 아니고 매달 얼마간씩일뿐인데… 이것까지 못하겠다 그러면… 실망스러웠고 배신감이 팍 들었다. 이제 다시는 삼촌과 협상자체를 하기 싫었다. 아무 소용없는 짓이였으니까. 그래서 김사장은 삼촌과의 협상을 피하고 대신 분을 풀려다가 자신이 배로 당한것이였다. 다 지긋지긋하고 다 싫어졌다. 나는 조용히 사무실에 들어가 내것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삼촌은 아직 나를 다 알지 못하였다. 하긴 나도 내자신이 그럴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삼촌이라고 어찌 알수가 있었을가? 나는 끝까지 “착”하고 “고상”하고 “빼앗”기기만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몰리다보면, 몰리고 몰려서 더는 물러설 자리가 없게 되면… 그렇다. 그게 가장 무서운것이다. 궁지에 몰린 개가 높은 담을 넘듯이 사람도 몰리게 되면 예상밖의 큰일을 저지를수 있는것이다. 따지고보면 워낙에 악한 사람도 끝까지 착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것 같았다. 얼마나 짓눌리느냐에 따라서 밀가루반죽이 모양을 내듯이 사람도 변형하는것 같았다. 어느 누구라도 탓할것이 못되였다. 내가 김사장이라도 그렇게 했을것이고 내가 삼촌이라도 그런 마음을 먹었을것이니… 결국 삼촌이 나였더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것이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더하랴. 하늘은 내게 기회를 주었고 나는 그 기회를 충분히 리용했을뿐이였다. 나의 손가락 아래에서 삼촌은 자기 손안에 들어왔다고 여긴 거의 모든것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였다. 나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할거라고 삼촌은 생각하고있었는지 모른다. 만약 그런 생각을 했더라면 그것이 삼촌의 가장 큰 실수였다. 차라리 삼촌이 옛날처럼 기름때가 죄죄한 작업복을 입고 와서 나의 손에 억지로 용돈을 밀어넣어주던 그 옛날처럼 그렇게 했다면… 아니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고 처음 회사를 설립했을 때 김사장의 투자금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던 그 날처럼 내 손을 잡고 “늬의 아버지, 내 큰형 말이다… 돌아가기전에 나를 찾아왔었지… 자기가 없는 날에는 바로 내가 늬들의 아버지나 다름없다고…”그런 말을 하면서 위선의 눈물이라도 흘렸더라면 나는 이 막판뒤집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꼭 그렇게 했을것이다. 삼촌이 내 아버지나 다름없는데 내가 왜 삼촌과 리익싸움을 하겠는가? 내것이 삼촌거요 삼촌것이 내것이겠는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것이로다… 나는 회사장부를 말끔히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회사는 삼촌이 다 경영하는것 이지만, 삼촌이 돈을 번다고 하지만 나의 손가락밑에서 나가는 장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삼촌은 아직 다 알지 못했다. 나의 손가락 다섯개면 충분히 회사 하나를 엎을 만큼 조작할 능력이 있었다. 이 방면에서 삼촌은 전문이 아닐뿐더러 설마 내가 그렇게 할가 시름놓고있었던것이다. 어떻게 할가? 어느 정도로 할가? 삼촌 몰래 다른 투자자를 만나 회사를 넘기는 방법도 있었고 삼촌눈을 속이고 미리 부도를 내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매일마다 회사에 나와 각 부문의 보고를 받는 삼촌의 눈을 속이는 일이 불가능했다. 어떤식으로 결판을 보든 우선은 회사장부가 깨끗해야 했다. 세무서에서 탈세 혐의라도 하는 날이면 일이 복잡하게 꼬일것이니… 그래서 나는 외부장부를 깨끗이 하는 반면 내부장부는 오래두어서 좋을점이 없다는 핑게를 대여 말끔히 없애버렸다. 내부장부를 없애버리니 삼촌은 현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참고할 수치가 없게 되였다. 매주일 출납이 1층에 내려보내는 현금장부는 나의 능력한도내에서 일정한 조작이 가능했다. 은행에 있던 회사의 현금도 내 개인통장으로 인출해버렸다. 은행장부야 회계를 맡고있는 나이기에 혼자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다. 외부장부만 깨끗하면 그 수자만 계좌에 있으면 법적으로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의 외부장부로 보면 빚도 없고 이익도 없는 겨우겨우 살아가는 그런 회사가 되여버렸다. 그렇게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는 나에게 기회는 뜻밖에 앞당겨서 찾아왔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어느 시골역을 지나고있었다. 저녁은 식당칸에서 대충 볶음밥을 시켜먹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 창밖에는 벌써 짙은 어둠이 온통 깔려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산을 지나는지 다리를 건너는지 잘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불빛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곳을 지날 때에야 그곳이 자그만 현성이라는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간간히 불빛속으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툴툴거리는 삼륜차가 철길옆에서 기다리고있는 모습이 비쳐들었다. 갑자기 기차가 속력을 낮추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끼익- 끽 하고 역도 아닌 곳에 멈추어버렸다. 시가지에 들어와서는 워낙 교통이 혼잡하여 기차는 속력을 줄이는 법이다. 간혹가다 맞은켠 기차가 지나가기를 서서 기다릴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시설도 좋고 교통상황도 좋아져서 그런 경우가 드문데… 한참 기다려도 기차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뭔 일이래?” 구경할거리가 없어서 다들 적적했던차라 서로 차창밖을 내다보며 수군거렸다. “맞은켠 기차를 기다리는거겠지.”하고 추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요즘에도 그러나 뭐? 혹시 사고난거 아니야?”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에이, 설마 그런 방정맞을 일이…” 기차는 모든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겠다는듯 다시 서서히 떠나기 시작하였다. “어 저기네, 저기…” 기차가 떠나가서야 우리는 기차머리가 멈추어서있었을 그 십자가에 승용차 두대가 포개있는 모습을 차창밖으로 내다볼수 있었다. “사고는 사고맞네, 우리 기차랑 난게 아니여서 다행이지만…” 그 교통사고때문에 일시에 십자거리가 혼란스러워 기차가 멈추었던 모양이였다. 나는 엎드려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둑스레한 불빛때문에 똑똑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워 뛰여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충 알아볼수 있었다. 그래, 이게 바로 운명이 아니겠어? 사람이 주체할수 없는 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사고인것이다. 누가 그것을 미리 알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빽”이 많다고 으시대던 삼촌도 례외일수 없었다. 그래서 세상은 그래도 공평하다고 하는가? 삼촌은 회사를 거의 꿰찰무렵에 사람을 치여죽였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도 겁내지 않고 혼자 운전하여 집으로 가다가 한산한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여나온 녀자 하나를 치여 뭉개버렸다. 덜컹, 하고 차가 흔들리자 삼촌은 정신이 들어 허겁지겁 차머리를 돌려 도망간것이였다. 나는 그때 한창 장부를 마무리하고 삼촌의 눈을 피할 기회만 엿보고있었다. 삼촌이 매일 회사에 나오는 이상 나는 쉽게 손쓸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 회사로 나가니 그 시간대에 조회를 하고있을 삼촌이 나오지 않고있었다. 나보고는 지각이니 뭐니 하면서…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별다른 생각없이 그대로 올라갔다. 점심때가 거의 되여서 직원들이 이르기를 삼촌이 출국한다고 하였다. 그뒤에도 나는 감감 모르고있다가 이튿날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게서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이 도시의 정비공장마다 순회하며 수색할것이 있다는것이였다. 곧 신문과 텔레비 뉴스에 사고소식이 대문짝만큼 크게 보도되기도 하였다. 끔찍하게 짓뭉개져버린 녀자의 시체를 부분이나마 화면으로 보면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났다. 같은 해아래에서 같이 숨을 쉬며 부딪치며 살아가던 사람을 치여죽이다니? 그리고 바로 뺑소니쳐버린 가해자… 설마설마하면서도 걱정되여 사고위치, 차모양, 번호 등을 여기저기 물어본 결과 삼촌이 금방 수리한 고객의 외제차하고 여러가지 상황들이 거의 맞아떨어졌다. 수리가 아직 덜 끝났지만 운전하고 다닐수는 있던 차여서 워낙 으시대기를 좋아하는 삼촌이 그날 손수 끌고 나갔던것이였다. 비싼 외제차라 이 도시에 수량이 극히 적어서 조사결과가 나오는 시간도 빨랐다. 다 들통나버린 마당에 돌아오지 않을수 없었다. 호출령이 내려서 돌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영영 가족과 생리별당할수도 있었으니까. “어떡하겠니? 니가 보증을 좀 서라…” 하는수 없이 입국한 삼촌은 나를 찾아와서 사정하였다. 회사 법인대표의 명의로 내가 보증을 서면 피해자와 합의를 보는 동안 삼촌은 가석방될수 있었다. 그래야 삼촌은 또 자신의 그 “흑백”동아리들을 동원하여 문서를 꾸밀수 있는것이였다. 골목길이라서 책임을 전적으로 운전기사가 질수는 없고 피해자를 설득하여 배상하는 방법으로 고소를 막아서 일단 행사처벌은 면하겠다는 속셈이였다. 만약 내가 보증을 선 기간에 삼촌이 몽땅 정리하여 외국으로 도망간다면 나는 일정한 벌금이나 15일동안의 구류형에 처해질수 있다고 했다. 방법이 없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삼촌이 감방에 당장 들어가게 생겼는데… 돈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삼촌의 몸까지 상하는것을 기어이 내 눈으로 보고싶지는 않았다. 삼촌이 잘 안다던 그 공안국 국장한테 찾아가서 굽실거리며 싸인을 하고 삼촌을 꺼내왔는데 오히려 삼촌쪽에서는 고맙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었다. 피해자에게도 미안하단 말이 없어서 합의에 문제가 생겼는데 삼촌은 더 높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리유로 회사의 현금들을 보이는족족 가져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교만과 넘쳐난 욕심에 대해서 일말의 후회도 보이지 않는 삼촌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지막뒤집기를 결단한것이다. 삼촌이 회사를 떠나 밖으로 나도는 동안 나는 먼저 출납을 파직시켜 내보내고 구제트럭과 외제차 검측기기 같은 가장 값나가는 설비들을 팔아버렸다. 부품도 재고를 정리한다는 리유로 부품장사군들한테 넘겨주었다. 건물은 임대한것이라 어찌할수가 없었지만 그대신 반년치를 한꺼번에 내야 하는 집세와 물세, 전기세나 부품 외상값도 다 합치고보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 구실을 대고 기한을 미룬 다음 내 통장으로 모조리 빼돌려버렸다. 직원들이 느끼고 불안해 할가봐 자연스럽게 눈에 금방 띄이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것에만 손을 대였다. 그외의것들은 값이 나가지 않을뿐더러 매일 영업할 때 써야 하는것이니… 내 투자금액의 몇배가 되는 거액의 돈들은 모두 내 통장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침착하게 금고에서 삼촌의 싸인만 있는 빈 종이를 꺼내 서류를 작성하였다. 저번에 모 회사와 자동차수리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하다가 만일을 대비하여 삼촌의 싸인을 미리 몇장 더 받아놓은것이였다. “…나 임성호는 성심자동차정비회사의 대표이사직위와 모든 지분을 임대관한테 양도한다… 금후 성심자동차정비회사의 모든 경제문제는 나 임성호와 무관하다…” 삼촌이 그렇게 가지고싶어하던 회사의 대표리사직, 나는 그날 빈껍데기에다 빚만 남은 회사의 사무실에서 혼자 그 서류를 꾸미였던것이다. 자신의 사고안건때문에 동분서주하는 삼촌대신 내가 서류를 그 면목있는 변호사한테로 넣어주었다. 워낙 삼촌이 내놓고 원했던 일이라 그 변호사도 아무 의심없이 수리해주었다. 물론 수고비를 넉넉히 준 사람도 나였다. 그렇게 나는 그 우유곡절 많은 회사와 관계를 청산하고 떠난것이다. 내가 더는 회사의 법인이 아니였기에 공안국에서 삼촌의 보증을 섰던 그 서류가 어느때까지 효력을 낼수 있을런지 모를 일이였다. 만약 삼촌의 동아리들이 힘을 미처 쓰지 못해 안건이 공안국에서 법원으로 넘어간다면 나의 보증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것이다. 삼촌이 내가 벌인 일들을 다 알아버리는데 과연 며칠이나 더 걸릴지 모를 일이였다. 사실 사고만 아니였더라면 삼촌이 회사를 넘겨받아 영업을 잘해서 다시 돈을 모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와의 합의금을 그러모으자면 당장 껍데기에 빚뿐인 회사에서 무엇을 얻어낼수가 없을것이다. 삼촌은 회사를 처분하여 돈을 만들든지 아니면 회사를 담보로 또 돈을 꾸든지 그런 방법을 쓸수밖에 없을것이다. 그나마 회사법인을 삼촌한테 양도하고 떠났으니 삼촌 마음대로 회사를 처리할수 있어서 뭐 꼭 손해봤다고 할수도 없었다. 워낙 삼촌은 동전 한푼 없이 들어왔으니까. 물론 삼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수도 있었다. 통째로 삼키려 했던 육질 좋은 회사에서 기름기와 고기들은 내가 다 가져가고 빈 거죽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이를 갈수도 있었다. 마음먹기에 달린 노릇이였다. 나의 계산방법에 따르면 대충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 김사장: 거액의 경제손실과 정신적피해를 입었음. 그녀: 자신이 지불한 “대가”그이상의 경제리익을 얻었음. 나: 투자금의 몇배를 수취하였음. 삼촌: 투자 한푼 없이 회사를 얻을수 있게 됨.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만 본다면 김사장의 재산을 우리 세사람이 찢어 나눠가진셈이 되였다. 처음부터 의도한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것도 사실이였다. 우리 세사람은 어느 누구도 누구한테 떳떳할수가 없었다. 일이 여기까지 온이상 이제 다시 되돌아갈수는 없었다. 나는 뺏고 빼앗기는 그들의 싸움속에서 이리저리 밀리고 치이다가 요행 선수를 칠 기회를 잡아 빠져나온것이였다. 누구도 다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은 나만 다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이렇게 나부터 살고보자란식으로 바뀌게 된것이다. 다시는 삼촌을 보고싶지 않았지만 혹시 삼촌의 그 안건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도 한구석에 내내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몰라, 아무도 몰라. 어느 누가 내 립장에서 나를 위해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삼촌도 똑같았다. 아니, 삼촌이였기에 내가 느낀 배신감이 더 컸다. 밤은 완전히 깊어졌고 기차안의 불들도 취침시간이라 다 꺼졌다. 나는 다만 덜컹덜컹 레루우를 무작정 달리고만 있는 철바구니속에 누워서 모든것을 잊으려고, 이 모든것에서 자유로워지려고 가엾게 애를 쓰고있을뿐이였다. **** 나는 역에서 트렁크를 드르륵거리며 끌고나와 대합실에 앉아 그 도시에 있다는 친구녀석의 전화번호를 찾고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휴대폰을 꾹꾹 누르고있는 내앞에 어떤 낯선 구두가 조용히 멈추어 서있었다. “죄송한데요…”하고 겨우 말머리를 떼며 조심스런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였다. “무슨 일이예요?” 나는 그 남자의 의도를 금방 알아낼수가 없었다. 차라리 옷차림이 헐망하거나 때국이 좔좔 흐르는 사람이였더라면 그 의도를 더 빨리 알아챌수 있었을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나보다도 더 깔끔한 정장을 입고 게다가 반들반들 닦은 까만 구두를 신고있기까지 하였다. 끌고있는 트렁크도 내것보다 훨씬 비싸보이는것이였다. 뭘 물어보려는것인가?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떼기 곤란해하는거지? 내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고 서있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고있는데 남자의 가족으로 되여보이는듯한 할멈 하나가 옆에 다가와 섰다. “얘가 이렇게 얼굴거죽이 얇아서 말을 못한다네… 젊은이, 사실 우리 아들이 나를 데리고 이 도시에 려행나왔다가 바로 몇시간전에 기차표며 지갑을 몽땅 잃어버렸다네…” “…”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며 아들이라는 남자와 엄마라는 할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젊은이… 어렵겠지만 돈 좀 꾸어줄수 없겠는가?” 남자는 암울한 눈빛으로 바닥만 쳐다보고있었고 할멈은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바르며 나한테 사정을 하였다. “글쎄요…” 낯선사람이 돈을 꾸어달라? 이건 뭐 열에 여덟은 사기가 아닐가? 꾸어준 돈을 어디가서 받게? 차라리 그냥 달라고 하지… “그래, 그래, 어렵겠지… 우리라고 해도 낯선 사람한테 어찌 돈을 꾸어주겠나?… 그래서 몇시간째 이러고있었다네… 자네가 기중 착해보여서…” 할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면서 내 마음속에 아직 사라지지 않고 웅크리고있던 동정심이란것을 끄집어내려고 애를 썼다. “어머니, 그만 됐습니다…” 젊은 남자는 창피스러웠던지 포기하고 저쪽으로 가서 앉아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할멈은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서인지 그래도 내게 일루의 희망을 품고 계속 서있었다. “어떻게… 좀 안되겠나… 이 늙은이가 여기 이러고있기도 힘에 부치네…” 내 성격에 “돈 없으니까 저리 가보세요.”라는 말은 철저히 변하지 않은이상 아직 할수가 없었다. “글쎄요, 나도 현금이 얼마 없는데… 얼마나…” 내 말에서 희망을 본 할멈은 활짝 웃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한 칠백원이면 될것 같은데…” “이잉?…” 그렇게 많이? 하는 표정이 내 얼굴에 그대로 쓰여졌을것이다. 할멈은 급히 내게 해석을 해주었다. “우리가 ㄴ시까지 가야 하니 두사람의 기차표에 두루 쓸것 하면 그만큼 있어야 하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내가 주머니를 열어줄 낌새를 보이지 않자 할멈은 다급해났다. “그럼 먼저 오백만… 다른 사람한테 또 사정해볼테니… 젊은이… 제발… 아, 그렇지… 얘야, 얘…” 할멈은 갑자기 무슨 좋은 생각이 났던지 자기 아들한테로 달려가는것이였다. “이걸 보게나. 우리 아들 ㄴ시 **회사 건축공정설계사일세… 여기 전화번호며 련락주소… 다 있다네…” 할멈이 가져온것은 남자의 명함장이였다. 아주 고급스런 명함장이였다. 남자의 옷차림과도 어울리여보였다. 정말인가? 정말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들인가?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우리 ㄴ시에 돌아만 가면 자네 계좌로 꼭 돈을 부쳐보낼거네. 아니, 리자를 쳐서 아니, 감사한 마음으로 이백원 더 보내주겠네. 회사이름에 주소도 있으니 자네가 얼마든지 찾아볼수도 있을거네…” 할멈이 우겨서 남자의 핸드폰이라는 번호도 눌러보았다. 분명 남자쪽에서 벨이 울리기까지 하였다. 할멈은 또 눈치 빠르게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내 이름을 묻고 계좌번호도 적어달라고 하였다. 나는 얼결에 그것들을 적어주고나서 주머니속의 지갑을 꺼내 지페 5장을 세여주고말았다. 그들이 대합실을 떠나 시야에서 사라진후에 나는 문뜩 이상한감을 느꼈다. 보통 명함은 지갑속에 넣고 다니는데 지갑은 잃어버리고 명함은 있다니… 핸드폰이 있으면 자기의 친지들과 련락을 하여서 무슨 방법이든 댈수 있었을텐데… 명함 하나 가지고는 아무것도 증명해보일수가 없었다. 나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 중복발신 다이얼을 눌렀다. “지금 거신 전화는 이미 꺼져있습니다…” 전화에서는 통신회사 녀직원의 록음테프소리만 반복하여 들려오고있었다. 나는 픽 - 하고 소리내여 웃어버렸다. 아무도 믿지 않을거라던 내가, 내 아버지 버금으로 가는 삼촌마저 배신해버린 내가 또 당한건가? 햇내기 사기군한테? 이 세상은 이렇게 속이지 않으면 속아서 살아야 하는 법인가?
세상을 살다가 드디여 간절히 원하던 그 무엇을 얻었을 때 당신은 문뜩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사실 얻음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엄연한 대가가 있었다는것을. 당신은 그 얻음의 대가를 미리 알아서 지불하기를 원했을수도 있고 혹은 대가가 있다는것을 감감 모른채 얻는것에만 급급했을수도 있다. 그것을 얻고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보았을 때는 이미 원하지 않던 그 무엇을 빼앗겼을수도 있다.저 남자와 할멈이 얻은것은 무엇이였을가? 오백원이란 현금? 아니면 또 한번의 사기성공경험? 그들이 세상에 살면서 진정으로 얻고싶었던것, 원하던것이 그래 겨우 그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치른 대가는 무엇이였을가? 비굴하고 치사한 구걸연기? 아니면 깨끗한 량심? 나는 트렁크를 끌고 대합실을 나섰다. 해살은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눈부시게 온 땅우의것을 찬란하게 비춰주고있었다. 남부도시의 강한 해빛에 나는 눈을 쪼프리고 슴벅거렸다. 그렇다면 내가 얻은것은 무엇이였던가? 거액의 현금? “밥그릇 빼앗기의 성공경험?” 돈을 얻은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나도 이제 “제 밥그릇” 챙길수 있다는것, 그런 싸움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챙길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는것이다. 아직 련습이 더 필요하겠지만 나는 이제 원래의 “착”해빠져서 빼앗기기만 하는 얼렁한 인간이 아니였다. 좀 더 훈련을 거친다면, 더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마음을 더 모질게 먹는다면 나는 더 잘 빼앗고 더 잘 속이고 더 많이 챙겨서 보다 더 누리고 살수 있는 인간으로 탈바꿈하게 될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가 빼앗긴것은 무엇이였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빼앗긴것은 사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그 무엇이였을가? “착”하고 믿음직스러웠던 심성? 혈육간의 정? 혹은 신용? 사랑?…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나의 믿음? 이제는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것이며 나 또한 아무 사람도 믿을수가 없을것이다. 나는 혼자서,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인생을 고독하게 걸어가야 하지 않을가? 어느 도시의 역전앞이라도 항상 이렇게 가고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법이다. 내 앞에서 혼잡하게 짐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지금 한창 여러갈래의 길들을 만들어보이고있었다.
끝[<도라지> 2009년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