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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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투명한 시선들
2019년 07월 17일 09시 32분  조회:22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밤하늘의 투명한 시선들
금희
 
 
 
 
여섯, 일곱살 무렵이였던가. 소피를 보러 바깥에 나갔다가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보았다. 누군가 놀이 끝에 그대로 버려두고 간 것 같은 작은 구슬들 혹은 그 순간의 나처럼 온전히 혼자인 인간을 신비스럽게 내려보는 수많은 눈동자들을. 
 
온 세상이 그들의 눈빛 속에서 불경한 소리를 죽였다. 나도 내 숨소리를 멈췄다라기보다 내 페도 저절로 움직임을 멈췄다. 너무 크고 너무 까맣고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고 둥근 하늘 그리고 너무 많고 너무 작고 너무 순수한 별빛들. 그들 앞에서 나는 X광선에 찍힌 흉곽사진처럼 속속들이 투시되였다. 뭐라고 더 말할 수 있을가. 
 
서늘한 여름밤의 공기가 나를 부드럽게 스쳤다. 홀로 무한한 허공을 마주했던 그 순간이 아마 내가 처음으로 자의식에 대해 질문이 생겼던 때 같다. 눈을 몇번이나 껌뻑거렸던가. 나는 내가 정말 나로 살아있는 건지 그것이 문뜩 의심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나와 함께 집안에 있던 가족들, 지금이라도 몸을 돌려 문을 열면 곧 다시 볼 수 있는 어머니, 오빠 … 이들이 과연 내 가족이고 내가 알고 지낸 사람들이 옳은 건지,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나를 따돌리고 저들 끼리 연출하는 연극은 아닌지 하는 상상을 했다. 
 
그 느낌은 뭐라고 할가. 실은 아주 달콤하고 매혹적이면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쓸쓸하고 외로웠다. 마치 액체상태인 물이 수증기로 변하듯이 어떤 이상한 주문에 걸린 내가 자신의 육체와 실재의 환경 속으로부터 탈피하여 다른 한 차원 속으로 공기처럼 날아가는 듯한, 빨려가는 듯한 혹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런 체험 때문이였을가. 오래동안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원론자로 살아왔던 것 같다. 내게 있어서 세상은 불완전하고 악한 것이며 육체는 정신보다 하등한 것이여서 현실의 삶보다는 내면의식의 성숙이 훨씬 값어치 있는 것이였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이나 칸트의 실천적이원론보다 오히려 플라톤의 이원론이나 혹은 령지주의에 가까운 것이였다.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를 작문 속에 구구절절 써넣으면서도 정작 살갑게 어깨 한번 주물러 드리지 못하는 것, 그렇게 많은 실수와 부적절한 행위를 저질러놓고도 마음만은 그렇지 않았다고 스스로 안위 삼는 것, 그리하여 어느 순간 최선을 다해 작은 일상의 삶을 사는 이들을 향해 무가치한 일이라 비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였다. 
 
지금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박수쳐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세상은 나에 대해 온전하고 선한 것이며 육체는 정신과 따로이 분리되여 론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간의 존재 자체와 존재의 목적이란 동전의 량면성 같은 것이지 우렬의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때로 가장 어려운 것은 고매한 리상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일상이 될 수 있는 것, 나는 바로 그 평범함을 어려워하면서 매일매일을 조바심 내며 살고 있다. 
 
소설 쓰는 일도 어서 그리되였으면 싶다. 이것은 인간의 령혼에 관한 조명의 시도가 아니라 잡지사에서 맞춰준 기한 내에 보내야 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 되여서는 안된다고 오늘도 자신을 설득한다. 변명 같아보이지만 형이상학적 경향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참으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살자, 동년의 시절에 보았던 밤하늘 따위는 부디 잊고 살자. 먹고 입고 자고 살아가는 동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세상에 대한 례의다. 눈을 뜨면 또 하루, 오늘도 제때에 잘 먹고 잘 자고 해야 할 일상들 잘하게 해주세요… 아침부터 기도를 통해 자신에게 일러둔다.  
 
그러나 잊는다고 해서 무의식에서까지 잊은 것은 아니였다. 그 깊고 내밀한 역에서는 점점이 무수히 밝은 별빛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언젠가 정말로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떠날 즈음에 인생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면 다시 꺼내 펼쳐놓고 볼 수 있도록. 어느날 내가 다시 동년의 수많은 별빛 앞에 적라라히 서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부끄러워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잘 버틸 수 있을가. 그 생각만 하면 살아가는 순간마다 아찔하다. 
 
그러나 나는 본디 한줌의 흙이고 먼지인 것을, 아직 진흙덩어리처럼 실감나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도 배우지 못한 것을. 그럴듯한 삶을 흉내낸 소설 하나 주물러놓지도 못한 것을. 
 
내가 만들어낸 소설들이 마지막날, 그것들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많은 별의 눈동자 앞에 펼쳐지는 찰나를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 찍힌 사진 속에는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가. 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내 삶을 마치기까지 그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마음만은 늘 가지고 살고 싶다. 

출처:<장백산>2017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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