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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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의 血 제1부 15.
2012년 09월 16일 09시 51분  조회:3695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5.         

 

    몸을 떨리게 만든 1895ㅡ을미년! 지겹게 보낸 지난 한해는 그야말로 지옥속의 악몽과도 같은 한해였다. 3월 29일에 동학당란을 일으킨 전봉준을 사형하고나서 7월에 경희루에서 개국기원절 축하연을 열었다. 그때 고종은 아마도 모든 근심을 덜고 만천하를 얻은것만 같은 기분이였으리라.. 그러던것이 8월에는 꿈밖에 일본 랑인들이 궁궐을 침입하여 민비를 시해하는 끔찍한 참변을 당하게되였던것이다. 일본의 조종하에 제3차 김홍집내각이 조직되였고 10월에는 민비의 위호를 회복하고 장사를 지냈다. 임감수, 이도철 등이 국왕을 탈취하려다 잡혀서 사형되였다. 11월도 황황한 나날들이 겹치였다. 전군부협판(前軍部協辦) 이주회(李周會) 등을 왕비살해사건의 하수인이라 하여 사형했다. 그것은 낯가죽이 땅뚜께같은 미우라 고로오가 책임을 회피하느라 얕은 꾀를 쓴것이였다. 정부가 단발령을 강행했다. 17일에는 그날을 개국 505년 1월 1일로 하고 양력을 쓰게했다. 그리고나서 처음으로 기병대를 창설했던것이다.   

    1896년도 역시 지나간 해와 같이 벽두부터 소란스웠다.

    정월에 강원도를 비롯하여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2월에는 일개 국가의 군주라는 왕이 목숨이 무서워서 버젓한 제 궁궐을 놔두고 남의 나라 공관에 와서 곁방살이를 하게되였다. 신세가 이같이 마른 무우오가리같이 오그라들기만 하니 팔자가 사납기가 상가집의 개와 다를바없었다.

  《과연 복잡다난한 세월이구나! 이 해는 또 어떻게 보낼고!》

   고종의 입에서 나오는건 오로지 한숨과 탄식뿐이였다.

   어디면 안전할가?...자기는 개가 무서워 이리를 찾아 온 철없는 아이같음을 그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친일내각은 하루아침에 눈사태처럼무너졌다. 고종은 파천당일로 김병시를 총리대신으로 신내각을 구성하여 그날 호외로 공포하였던 것이다. 전부터 로씨야 공관과 미국 공관에 피신해있던 리완용, 리윤용형제와 안경수 등 친로, 친미파들을 모조리 기용하여 요직을 담당케 했다. 한데 왕이 이모양으로 남의 곁방살이를 하고있으니 내각도 이리로 옮겨와서 로씨야공관은 다름아닌 조선정부로 돼버린상싶었다.

   《지금 자칭 <이병>이라고 하는 란당들이 도처에 흥행하면서 극성을 부리고있는데 이제 며칠내에 곧 서울로 쳐들어오리라는 소문까지 펴놓아서 민심이 자못 황황합니다. 형세는 이같이 위태롭기만 하니 어서빨리 대책을 세워야할게 아니겠습니까.》

   어제밤 고종은 리완용의 이 말을 듣고서 곧 조칙(操飭)을 내리였던 것이다.

 

   <<그대들은 사랑하여도 나의 적자(赤子)이며 가엽어도 나의 적자가 아니겠는가. 역괴란당이 공모결탁하여 국모를 죽이고 군부를 협박하며 법령을 란발하여 상투를 강제로 자르게 하니 전국에서 나의 적자되는 자들이 분개하고 충의스러운 마음이 솟구쳐 곳곳에서 의병을 불러일으킨 것이 어찌 명분없는 일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란적을 소탕하고 나라의 원쑤를 갚았으니... 모두 빨리 돌아가라.>>             병신 2월 27일

                                                              

   유생출신의 반일의병장들은 국왕을 신봉하고 봉건왕권(封建王權)을 자기의 정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국왕은 그들의 존왕, 충군사상은 뿌리가 깊은 것이니 이 조칙을 보고는 마음이 움직여 손에 든 무장을 놓으리라 생각했다....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던 녀인이 다시 잠이 든 것 같자 왕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는 녀인을 다시금 내려다봤다. 안온한 모습이다. 달걀형의 말쑥한 얼굴, 그린 듯 짙으면서 반달같은 눈섭, 얄팍한 입술.... 바탕이 미모인 그녀 엄씨는 어려서 궁중에 들어와 여지껏 상궁으로 지내면서 이성과는 속살 한 번 섞어못보고 속절없이 늙어오다가 이제야 그 재미를 느껴보는 가련한 존재였다. 민비가 죽자 그래도 엄상궁 그녀가 쓸쓸하고 고독한 이 외로운 왕의 심정을 리해하고 위안하면서 달래였다. 이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왔다.

   《상감! 요즘 왜인들의 눈치가 과연 수상합니다. 들리는 소리도 무시무시하구요.》

    어느날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엄상궁이 하는 말이였다.

   《거 무슨 소리냐!?》

    그때 왕은 저으기 놀래여 가슴놀이 뛰였다.

    엄상궁은 이범진이 왜놈들이 국태공과 밀모하여 페립음모(廢立陰謀)를 꾸미고있는 것 같으니 상감께 급히 아뢰라해서 하는 말이라 했다.

   《지독한 놈들이구나! 중전을 시해하더니 이젠 나까지 넘본단말인가.》 

   왕은 이러면서 급히 여기 이 로씨야 공관으로 옮겨오게되였던 것이다.

   밤이 되면 엄상궁이 찾아와 잠자리를 함께 해주고 낮에는 그 혼자만이 2층의 이 널다란 방을 서성대고있는 것이다. 세자를 비롯한 왕족들 역시 오던 날 경운궁에 갈라든채 그대로 거기에 그냥 눌러있는 판이였다.  

   벽가에 놓여있는 탁상우에 금박을 올린 철상자가 하나 놓여있다. 그것은 경복궁을 떠나기 전 민비가 일본랑의 손에 시해를 당하는 그 몸서리치는 끔찍스런 변이 생기니 웨베르공사가 그의 안전이 념려된다면서 선사한 안전궤였다. 그러잖아 일본인들이 어느 때 자기마저 독살해서 없애버릴것만같아서 전전긍긍하던차라 그에게는 식품과 함께 자그마한 밥상까지 들어있는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생각하면 웨베르공사의 그 처사가 그지없이 고맙기만 한 이희(李熙)였다. 그는 짜리로씨야정부의 처사에 감지덕지했다.

   그런데 ������페후소칙������을 공포하자 웨베르공사가 미국 알렌공사와 함께 와서 배알하던 날 미국공사 알렌이 귀국의 정세가 이같이 험악한데 대궐을 보위해주겠노라면서 미국과 로씨야로부터 약간의 군대를 오게하는게 어떠냐고 제기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의문만 갈마들면서 마음이 그리 개운치를 않았다.

   《왜서 그런 말을 했을가? 그것은 기회를 타서 저희들의 군대를 끌어다 이 땅에다 발을 붙이게 만들자는 궁리가 아니였을가. 이왕 변란이 지나갔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내가 막기를 잘했지.》

   고종은 한번다시 혼자소리로 뇌이였다.

   상궁이 재잠을 달게 자고 깨여났다. 그녀는 잠옷을 입은 그대로 위생실로 갔다. 이때 문에 노크를 하더니 스페르공사가 방안에 들어섰다. 매일 아침 이맘때면 꼭꼭 와서 문안을 드리군 하는 그였다.

   《페하께서 밤편히 주무셨습니까, 외신은 페하의 만수무강을 삼가비나이다!》

   여기로 부임되여 온지 오라잖건만 어디서 배웠는지 인사말 한가지만은 제법 잘 번지였다.

   《감사하오. 스페르공사께서두 밤편히 주무셨소?》

   《예 그렇습니다, 페하!》

    스페르는 별로 할 말이 없는지 물러갔다.

   《례절이 밝아서 좋구나. 저 스페르도 웨베르처럼 해줬으면 얼마좋으랴.》

    엄상궁이 위생실에서 나오자 고종이 그를 향해 하는 말이였다.

    한데 스페르는 돌아가자 그를 놓고 씨벌이였다.

   《저런 허깨비가 다 왕질을 하니 이놈의 나라가 어떻게 될가. 개를 막을 든든한 울바자도 하나 없으니 원.》

   웨베르가 맞장구쳐가면서 같이 조소했다.

   조소받을만도했다. 어쩌면 그 비유가 딱 들어맞는 것이다. 이때의 조선은 외국군대의 친입을 근본 막아낼수 없는 무능한 존재였던 것이다.

   스페르가 나가자 고종은 전날의 일들을 다시금 머리에 떠올렸다.  

   고종이 로씨야와 가까워지자 바빠맞은건 일본이였다. 고무라공사는 고종이 파천당한일로 여기 이 로씨야공사관을 찾아와서 스페르공사에게 사건진상의 해명을 요구하는 한편 고종에게는 독립국가의 체면을 보아서 속히 환궁할 것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그날 웨베르는 미국 공사에 볼일이 있어서 가고 없었다. 로씨야 공사는 스페르와 비서관이 지키고있었는데 그들은 손탁부인한테서 언젠가 이완용이 그녀앞에서 조선에 친아라스정권을 세워야한다고 한 말을 내놓고 기분좋아서 스스로 접근하는 그런 젊은 놈을 괴뢰로 부려먹지 않고 누구를 부려먹겠는가고 한창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왔다고 전갈이 와서 보니 일본 공사 고무라가 들어서고있었다.

   스페르는 속으로 그렇지 조롱박같이 매끄러운 이 팔자수염쟁이가 등이 달아서 오늘 제발로 찾아오는구나 하면서 넌짓이 보다가 일어나 친절한양 례모를 차렸다.

  《고무라공사께서 무슨일에 모처럼....래방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고무라는 그따위 걷발린 소리는 집어치우라는 듯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스페르공사,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고종이 왜서 여기에 와 계시는지 사건진상을 좀 해명해줄수 없습니까?》

  《고무라공사, 우리가 해명해야 알일입니까. 본인하고 직접 물어보시지요. 페하께서는 웃층에 계실겁니다.》

   승리자의 오만한 태도였다.

   밸이 꼬인 고무라는 그를 따라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고종은 고무라를 보자 눈살이 곤두섰다.

   고무라는 그의 차고도 랭정하고 분노하는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교관다운 례모를 갖추면서 애써 화애로운 투로 말을 꺼냈다.  

  《페하, 이 어찌된 일입니까?.... 독립국의 체면을 봐서도 남의 나라 공관에 이같이 오래머물러계심은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하오니 어서 환궁하심이 옳은줄로 압니다.》

   이놈아, 난 네놈들같아나 이리저리 몰리는 몸이 됐다, 나를 이지경 만들어놓고서도 무슨 낯짝에 찾아와서 이러는거냐,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느라구 이러는거냐? 고종은 속으로 이렇게 욕하고는 일본측의 촉구를 단마디로 일축해버렸다.

   《현하의 국세가 이러한즉 잠시는 불가하오.》

   그날 로씨야측 웨베르공사는 공한을 보내여 고종의 아관파천은 자유의사라고 밝히였다.       

   <<본관은 귀하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고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조선 국왕페하께서는 이 나라의 정치형세가 중대하여 이 이상 왕궁에 체류함은 일신상의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에서 세자전하와 함께 본관으로 피난하게 된것입니다. 이에 본관은 귀하에게 거듭 경의를 표하는바입니다. >>

 

    고종의 아관파천 소식이 세상에 퍼지자 누구보다 놀랜 것은 이또오 히로부미였다.

   《눈을 멀쩡히 뜨고 조선의 국왕을 아라사께 빼앗기다니!》

    전보를 받고나서 부레가 끓어 오르면서 화가 난 그는 무력을 써서 고종을 빼앗아오자고 제기한 고무라공사를 외교관으로서 머리를 쓴다는게 고작 그 정도란말인가, 물소보다 더 미련한 사람이라고 원망했다.

 

    <<그 무슨일이 있어도 외교일에 조심할 것. 군대파견은 불가함.>>

    도오꾜오에서 그가 보낸 답전이였다.

    

    어느날 오전 손탁부인이 고종께 아뢰였다.  

   《페하! 서재필이 페하를 뵙겠답니다.》

   《서재필이 무슨일에 또?....》

    손탁부인의 전갈을 받은 고종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여올랐다.

    서재필(徐載弼)은 부패한 정권을 물리치고 도탄에서 허덕이는 혈족(血族)들을 구하려고 일으켰던 갑신정변이 청나라군대의 부당한 간섭으로 좌절되자 겨우 생명만 보존한 채 미국으로 망명한 다음 형설(螢雪)의 공을 이루어 그곳에서 의학박사(醫學搏士)라는 최고학위를 받고 몸은 비록 이역에 가 있었으나 정신만은 조국을 떠날 날이 없이 지내다가 망명생활 12년만에 조국의 부름을 받게 되어 온 것이다. 아직 부패의 잔재가 있기는 하나 갑신정변을 일으킨 지사(志士)들의 태도가 애국적이였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어, 남의 도움을 받아 개혁된  갱장정부(更張政府)에서는 인재를 물색한 결과 서재필박사를 초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재필은 부인과 함께 올 1월 1일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독립의 기초를 공고히 하고 민중의 사상을 고취하려는 의도로 이전날 청나라 사신을 맞던 영은문(迎恩門)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고 모화관(慕華館)터에다는 독립관(獨立館)을 세웠다. 그리고는 국문대자(國文大字)로 편액을 썼으며 또 국문으로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독립자유의 정신을 진작하고 신진투사들을 규합하여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혹은 연단에서 혹은 가두에서 고식적(姑息的)이며 자리적(自利的)이며 파쟁적(派爭的)인 정부당국자들을 공격하며 외국의존사상을 철저하게 타파하고 자유주의를 확고히 할 것을 줄기차게 제창하였다.

   고종은 서재필이 위인됨을 알기는 해도 그와 조용히 마주앉아 말을 오래나눠보지는 않았다. 전번에 환궁할 것을 촉구한바 있는데 이번에 찾아온 리유역시 그리하리라 속으로 짚으면서 그는 그를 들여보내라했다.

   서재필은 뚜걱뚜걱 절주맞는 구두신발소리를 내면서 로씨야공관 2층 왕실에 들어섰다. 올해 32살 나이의 서재필의 몸에서는 한창 젊음의 기백이 넘치고 있었다. 고종은 검정색나는 세루양복을 단정히 입고 은색 넥타이를 맨 그의 준수한 얼굴을 보자 만면에 희색을 지으면서 반갑게 맞았다. 당전의 복잡한 난국을 어떻게 넘겨버렸으면 좋을지 머리가 잡히지 않고 갑갑하던 차라 말동무라도 해주게 그가 찾아온 것이 반가왔던 것이다.

    서재필이 국궁재배하고 나자 고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지냄이 어떠한가?》

   《페하! 아직까지는 별로 큰 문제없습니다만 걸림돌이 원체 뿌리깊이 박혀나서....》

   고종은 서재필의 은유적인 이 말에 량미간을 끌어 모으더니 재촉하듯이 입을 다시연다.

   《계속말해보게.》

   《당로한 윤, 남, 로.... 제씨들이 너무도 고태의연하니 새 빛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윤용선, 남정철, 조병식 등 수구육신(守舊六臣)이였다. 그들은 의연히 옛탈을 벗지 못하면서 고종의 신임을 받아 갑오갱장(甲午更張)의 제도를 번복하면서 군권전제(君權專制)를 회복하고 임금의 뜻을 승순(承順)하여 뢰물(賂物)먹기를 일삼고있었던 것이다.  

   《너무 시급히 서두루는건 안닌가. 종래의 관습을 바꾸는게 일조일석에 되여지는 일은 아닐세.》

   고종은 한마디 타이르고나서 자기딴에는 젊고 유망한 나라의 동량을 아끼는 마음에서 격정을 잠시 누르고 피로를 풀라고 했다.

   나더러 피로를 풀라고? 어떻게 푼단말인가?...서재필의 얼굴에 일순간 곤혹스러운 기색이 덮히였다. 가시밭길처럼 험난한 것이 숙명이요 그것을 예고나하듯이 서재필이 이세상에 태여난 것은 바로 창생을 구제하기 위해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水雲 崔濟愚) 선생이 교수대의 이슬로 순교하던 1864년 그해였다. 일가되는 서광하의 양자로 들어가 14살 때 벌써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암송했다하여 전강(殿講)에 참가하였다가 장원급제를 하여 온 조선에 이름을 내였던 그다. 서재필은 특히 고균 김옥균(古筠 金玉均) 선생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한번은 김옥균을 따라 봉원사(奉元寺)에 계시는 이동원(李東元)스님을 만났는데 그들이 세계정세를 논하는 자리에서 유럽과 일본의 개화소식을 듣고 서재필은 개화사상에 공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의식전환에는 이같이 계기가 있는 것이다. 

   당시 개화사상에 불타고있었던 김옥균은 포경사(捕鯨使)가 되어 부산에 와 있는 일본인들에게 포경선(捕鯨船)을 전집(典執)하고 현금 2만 5천원을 차용해서는 서재필 등 61명을 선발하여 일본에 유학을 보냈던 것이다. 서재필은 육군소학교였던 도야마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이는 김옥균의 친구인 게이오의숙 창립자 후꾸자와에 부탁해서 된 것이다. 한데 이 무렵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3일천하라는 비웃음을 남기고 김옥균의 혁신계획은 실패로 막을 내린것이고 서재필은 자리를 바꿔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던 것이다.

   서재필본인은 거기서 미국국적에 들었다. 그러면서 필립 제이슨이라는 미국이름까지 달고와서 외부고문(外部顧問)으로 되었다. 하기에 고종은 그를 일반신하와는 다르게 조심스레 대하는 것이다.           

  《듣자니 외국가서 학업을 이룸에 신고많았다더니...》

  《페하! 사실 그러하옵니다. 저는 먼저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어공부를 했던겁니다. 그때 로버트라고 하는 사업가를 만나 그의 집에 자주오던 홀벤백과 친하게되였습니다. 홀벤백작은 펜실베네아대학의 이사(理事)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도움으로 그가 경영하는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일면 교장집의 정원일을 하면서 고학을 하다가 3년후에 라페예트대학을 다니게되였던것입니다.》

  《무슨 대학이라지?》

  《라파예트대학. 그것은 라파예트의 이름으로 명명된 대학입니다, 페하! 라파예트를 소개할까요. 라파예트를 볼것같으면 프랑스의 군인이고 정치가이며 후작이였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 미국의 독립전쟁에 몸소 참가하였지요. 그리고 그는 프랑스혁명당시 <인권선언>을 기초하고 국민군사령관으로 활약하였으나, 인권정치를 위한 활동으로 하여 그후 투옥과 망명을 거듭하기도했습니다. 프랑스 삼색기는 그가 창안한것이지요, 페하!》

  《오, 그런가!》

   고종이 라파예트의 자유주의적인 사상에 감복해서 감탄사를 올리는지 아니면 삼색기를 창안했음에 감탄해 그러는지 대방은 분간하기 어려웠다.

   고종은 입을 열고 물어왔다.

  《듣자니 서박사께서는 미국 녀인을 부인으로 맞아드렸다느 것 같던데 그게 사실이요?》

  《그렇습니다, 페하! 소신은 지난해 미국서 암스트롱대령의 딸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암스트롱대령이라! 암스트롱대령이라! 어디서 듣던 이름같은데....》

  《동성동명일수 있겠지요. 페하께서는 지금 그 유명한 대포를 상기하시지나않는지요?》

  《대포?》

  《예, 페하! 암스트롱대포말입니다.》

  《세상에 그런것두 있는가?》

  《있습니다, 페하! 그건 암스트롱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속사포인데 강철로 되어진겁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에 영국의 암스트롱이 발명했지요. 포신을 강철로 만들고 내부에는 라선조를 부착했습니다. 탄환은 후미에 장전하는데 발사하면 회전하면서 나갑니다.》

   《오!》

   고종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알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남은 벌써 오래전부터 그같이 대형의 무기를 연구제작하는데 조선은 겨우 낡아빠진 화성대나 만지고있음에 자책을 느끼는지 그 내심을 보아내기 어려웠다.

   이런 무맥한 인간을 임금이라구 섬기는 내가 소같이 미런하지. 서재필은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지라 속으로 이렇게 자조를 하고나서 자기가 그따위 대포에 대한 소개나 하자고 오늘 찾아 온 것이 아님을 생각하고는 빗나가려는 화제를 본곬으로 몰아넣었다.

   《페하! 대궐로 돌아가시오. 이 나라의 땅은 페하의 땅이며 이 나라의 백성은 페하의 백성입니다. 이 땅과 이 백성을 버려서는 아니되옵니다. 백성과 땅을 떠나서는 나라가 있을수 없습니다. 이 땅과 이 나라를 버릴수는 없습니다. 일국의 임금님으로 자기의 대궐에 계시지 않고 남의 나라 공사관에 와 겯방살이하며 계신다면 우리는 체면이 깎일뿐만아니라 남의 나라 사람들이 웃을겁니다. 그러하오니 속히 환궁하옵소서.》

   《그대말이 옳기는 하오만 지금 경운궁이 수리중이니 잠시 황궁하기 어렵소.》

   경운궁이 아니면 임금이 잠잘 자리가 없을가? 경운궁이 수리중이면 건청궁으로 환궁할수도 있지 않는가. 경운궁이 로씨야공사관과 가까우니 장차 환궁해도 그리로 가겠다는건가? 이건 고종이 돌아가지 않으려는 구실이였다. 자라보고 놀란 놈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더니 이제 점점 그런 꼴로 되어가는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가?... 서재필은 속을 끓이다가 오늘은 다시말해봤자 헛짓일 것 같아 그만 물러나오고말았다.

 

   어느날 웨베르공사가 한가지 소식을 알리러 고종을 찾아왔다.

  《웨베르공사구만! 언제쯤 환국하려오?》

  《페하! 외신은 그일 때문에 왔습니다.》

  《그일때문이라니, 무슨소리요?》

  《저는 로씨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그냥 남기로했습니다.》

  《오ㅡ그렇소. 그럼 스페르공사는?》

  《스페르는 일본주재 로씨야공사로 가게됐습니다. 본국에서 황제의 칙명이 그렇게 내린것입니다.》

  《그렇소. 구당이 명당이라구 오랜 친구가 아무렴 났지. 잘된 일이요.》

   고종은 얼굴에 화색을 띄면서 웨베르가 로씨야공사로 조선에 그냥 남는 것을 환영했다.

   사실은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말미암아 로씨야와 일본지간의 암투가 전에없이 악화되자 짜리로씨야정부는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스페르를 다시 주일본공사관(駐日本公使官)으로 전근시키고 조선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웨베르를 조선에 그냥 남겨두기로 한 것이다.

  《페하! 우리 로씨야에 <얼굴은 흰데 마음은 검다>, <등치고 간빼먹는다> 는 속담이 있지요. 그게 누구를 놓고 비유한것같습니까. 일본은 이번일로해서 땀을 빼고있습니다. 각국 공사들에서 가만있지 않으니까요.》

  《고맙소, 웨베르. 이게 다 웨베르공사의 공인줄로 아오.》

   고종은 민비시해사건조작과 자기의 아관파천으로 인하여 그 장본인으로 점찍혀진 일본이 각국의 비난과 추궁과 압력에 눌리워서 기가 죽어든다니 속이 좀 후련해지는 것 같아서 웨베르공사를 치하했다. 그러다보니 서재필이 와서 빌다싶이 환궁하라고 올린 진언은 새까맣게 잊고말았다.

 

   한편 일본은 조선국왕이 지금은 환궁할 뜻이 전혀 없거니와 로씨야가 조선국왕을 제 손아귀에 틀어쥐고 숱한 리권을 획득하고있는 것 같아 대책을 새로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금방 청일전쟁을 치루고 난 일본은 군사실력으로 로씨야와 맛설수 없으니 외교적교섭으로 퇴세를 만구하는 방도밖에 없었다. 하여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소 양보를 하면서라도 로씨야와 담판을 하게되였던 것이다.

   5월과 6월에 ������웨베르ㅡ고무라각서������와 ������로바노브ㅡ가다야마협정������이라는 것이 련거퍼 생겨났다.

   이 각서와 협정은 두말할 것 없이 로씨야측으로 놓고 보면 일본에 대한 커다란 외교적성공이였다. 이를 통하여 로씨야는 마침내 일본과 함께 조선을 공동보호할 권리, 일본과 동등한 수량의 군대를 조선에 주둔시킬 권리 등을 획득했다. 이리하여 조선에는 또 하나의 위험한 침략세력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종은 그런줄을 알기나하는지?...

   고종은 그보다도 반일의병이 각처에서 궐기하니 오히려 그것에 골치를 더 앓았다. 그는������선유사������를 내려보내여 의병들을 설복해서 무기를 놓고 흩어지게 만들자고 했다. 그랬더니 반응이 좋지 않았다. 상우에 어제밤 보고 내친, 국왕의 행위를 힐난하는 의병의 글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의병투쟁의 목적은 일본침략자들을 소탕하여 나라의 원쑤를 갚고 인민들을 편안하게 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왕의 군대를 인솔하고 일본침략자들을 소탕할 대신 의병들을 <토벌>하는 것은 부당한 행동이다. 만약 너희들이 지휘하는 군대로 하여금 일본침략자들을 소탕한다면 이것은 진실로 왕의 군대라고 말할수 있을것이요, 의병을 <토벌>하면 이는 일본침략자들의 군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일본침략자들을 소탕하는데 주되는 목적이 있다.>> 

   

    민구이첨(民俱爾瞻)이라 백성은 모두가 고종을 지켜보면서 환궁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기다림만이 아니였다. 임금이 신망이 없어지면 백성은 그런 임금을 배반할 생각을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이러다가는 과연 더 무시무시한 폭란이 일어날지도 모를일이였다. 시세가 이같이  점점 더 험하게 되자 조정의 상하에서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결 더 높아지게 되였다.

   서재필은 고종을 다시찾아갔다.

  《어서 환궁하십시오. 종묘사직이 위태롭습니다. 이러다간 이 나라가 어찌될지 모릅니다.》

   나라운명을 제일 걱정한는 것은 그래도 독립협회였다.

   한편 일본도 고종을 하루속히 환궁시키려고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저들의 목적이 따로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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