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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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철부대 토비숙청기
2013년 08월 08일 13시 38분  조회:5082  추천:1  작성자: 김송죽
 

  동철부대 토비숙청기

 

<<8.15>>해방직후의 북만일대에는 사문동, 마희산, 리화탕을 우두머리로 한 토비들이 도처에서 살인, 방화하면서 횡행하였다. 그리하여 피난민들이 쟈므스(佳木斯)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때 쟈므스(佳木斯)의 김동철, 김명세, 한중선 등은 36명으로 독립대를 조직하였는데 시초에는 총도 몇자루밖에 없었다. 그후 독립대는 600여명으로 급속히 늘어나 공산당이 령도하는 삼강인민자치군 제1퇀제2영으로 편성되였다. 제2영은 조선족영으로서 교도원은 김동철, 부교도원은 김명세, 영장은 연안에서 온 류곤(한족), 부영장은 한중선이였다.

 

1946년 2월 24일에 삼강인민자치군은 리화탕토비를 숙청할 임무를 맡고 탕원, 의란, 통화, 방정일대로 떠났다. 그런데 부대는 첫출발부터 토비의 교란을 받았다. 부대가 떠난 그날 밤이였다. 강행군하는 대오를 따라 트럭몇대가 군량과 포탄을 싣고 떠났는데 대오가 시가지를 방금 벗어나자 달리던 차 한 대가 번저지는바람에 후송부대의 전사 여럿이 상하였다. 알고보니 그 자동차의 운전수녀석이 아군에 잠복한 토비였던 것이다.

 

부대는 탕원에 기여든 토비들을 몰아내고 강을 건너 의란(依蘭)으로 진군하여 대구동과 소구동에서 리화탕무리와 처음으로 맞다들었다. 그 전투에서 아군은 일부 토비들을 살상하였지만 아군의 김만준, 김만기형제와 변성학, 최남순, 윤승암 등 5명의 전사들이 놈들손에 포로되여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공산당깃발아래 굳게 맹세해

철갑모 머리우에 눌러쓰고서

빛나는 싸움터를 바라보던

굳세고 억세던 혁명5용사......

 

이 <<혁명5용사>>의 노래는 부대의 지식분자였던 문영식이 지은것인데 전사들속에서 재빨리 불리였다.

 

소구도에서 전투가 있은 이틑날 통하로 진격하다가 아군의 전사 5명이 적이 매설해놓은 지뢰에 목숨을 잃었다. 전우들이 희생되는것을 본 전사들의 가슴마다에서는 복수의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전투장에서 총이 없는 전사들은 몽둥이를 들고 적의 대갈통을 까고 총을 빼앗았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그같은 용감성에 겁을 집어먹은 토비들은 <<동철부대>>가 왔다는 소리만들으면 접전할 념도 못하고 달아나기부터했다.

 

방정에서 아군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리화당은 뿔뿔히 흩어진 저의 잔병들을 다시긁어모아가지고 사문동과 합세할 타산으로 조령쪽을 바라고 달아났다.

“놈들에게 숨돌릴 짬을 주지 말고 승승장구로 추격하자!”  지휘원, 전투원들은 이렇게 웨치면서 토비들을 추격하고 만나면 족치였다. 그들은 토비들을 한바탕싸우고나서 의란현경내에 있는 삼도강에서 다른부대와 회합했다.

 

그런데 3월에 삼강인민자치군은 목단강쪽으로 진출하게되였다. 사문동과 마희산무리들이 그곳 산간지대에 출몰하고있었던 것이다. 아군은 화림부근의 투도댄즈라는 마을에서 토비들과 맞다들게되였다. 1개퇀의 토비들은 벌써 그곳에 보루를 쌓아놓고는 주위에다 철조망을 겹겹이느리고 전호까지 파놓았다. 이때 돌격대로 나선 2명의 조선전사가 몰사격으로 적의 화력점을 견제하는 한편 부대의 진격로를 열기위해 가시철망에 널판자를 걸쳐놓는데 성공했다. 마침내 길이 열리였다. 또치카는 이쪽에서 던진 적탄통과 수류탄에 날아났고 혼비백산한 적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두손들고 투항했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한데 2영에서는 리일병, 허진선 등 용감한 전사 몇을 잃었다.

 

이 전투가 끝나자 목단강의 순조선동포들로 조직된 제14퇀도 토비를 숙청하려고 이곳에 와서 삼강인민자치군과 합력하였다.

그후 삼강인민자치군 제1퇀 2영은 상급으로부터 사문동토비를 계속추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지체없이 출발하였다. 토비와의 작전에서 뛰여난 재질을 보여준 김동철은 지략으로 적의 력량을 분산시키는 책략을 썻다. 그때 사문동의 수하에 비교적 전투력이 강한 한 개의 기병퇀이 있었는데 퇀장은 초경재(한족)이고 참모장은 김해정이라는 조선족이였다. 김동철과 김해정은 광복전에 한마을에서 살면서 항일투쟁도 같이한 친구였다. 그는 비밀리에 김해정에게 초경재를 설복하여 하루속히 의거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기병퇀은 끝내 아군쪽으로 의거해 넘어왔는데 그후 초경재는 도망치고말았다.

 

그때로부터 김동철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고 항간에서는 제2영을 <<동철부대>>라 부르게되였던 것이다.

 

삼강인민자치군은 한달남짓한 사이 다른 형제부대와 함께 5천여리의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무려 30여차의 전투를 치르었다. 이런 전투들에서 아군은 토비주력에 큰 타격을 주어 춘기공세를 해보려던 적의 시도를 꺾어놓았다. 따라서 <<동철부대>>의 이름이 널리퍼지자 열혈이 끓는 조선남아들이 날마다 부대를 찾아와 자기도 입대하겠노라 탄원했다. 이리하여 <<동철부대>>의 인원수는 점점 더 늘어났던 것이다.

 

1946년 5월의 어느날, 사문동이 저의 비도들을 거느리고 칠태하(七台河)에 기여들었다는 정보를 받은 삼강인민자치군은 3개퇀을 파견하여 토비소굴인 청룡산(靑龍山)을 포위공격하였다. 그 포위공격전에서 아군은 토비 200여명을 숙청하고 일본군복입고 일본무기로 무장한 손방유기병대 67명을 생포했다.  그러나 사문동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신발툰으로 도망쳤고 자기의 말로가 다가왔음을 직감한 그는 밀산(密山)쪽으로 넘어가 그곳의 비도 곽청정을 추겨 피비린 <<동안사변>>을 빚어냈던 것이다.

 

마귀같은 살인백정들의 손에 숱한 조선족ㅡ 남녀로소를 불문한 죄없는 이들이 무참히 살해되였다. 제 동포가 당한 그같은 참상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동철부대>>는 새로 탄원해나선 130명의 젊은 대원으로 한 개 련을 새로 편성한 후 그들을 데리고 벌리(勃利)로 돌아왔다.

 

한편 <<동안사변>>을 조작한 사문동은 조령에 가서 리화탕, 장흑자 등과 함께 흩어진 잔병들을 다시긁어모았다. 이런 적정을 정찰해낸 <<동철부대>>는 적소굴인 조령을 향해 떠났다. 그들은 하루에 180여리씩 강행군을 하면서 토비와 싸웠는데 어떤때는 하루에 4차나 격전을 벌리기도했다. 전과가 좋았다. 소판도에서 있은 격전에서만도 이 부대는 단번에 토비를 한 개련이나 전멸한것이다.

 

그 전투가 있은 후 <<동철부대>>는 어느 한 산으로 통하는 길을 감시하다가 노새네마리를 메운 차에다 쏘련홍군의 지페를 4마대나 훔쳐 싣고 산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적들을 섬멸하고 차를 빼앗았던 것이다. 아군은 투항을 권고하는 삐라를 비행기로 산속에 뿌리였다. 했지만 완고한 적들은 투항하지 않고 완강히 뻣히였다.

 

<<동철부대>>는 상급의 새지시에 따라 조령쪽에서 떠나 청산, 호산에 몰려있는 토비들을 섬멸해버리고는 게속해 벌리(勃利)를 거쳐 리련회토비무리추적을 떠났다. 그들은 칠성랍자산에 이르러 그곳에 숨어있던 70여명의 토비를 숙청하였는데 그자들은 거개가 <<동안사변>>때 살인만행을 감행한 후 밀산에서 쫓겨난 곽청정의 무리였다. <<동철부대>>는 그자들을 하나도남기지 않고 전멸하는 것으로서 시원스레 복수를 하고야말았던 것이다.

 

그곳을 떠난 후 부대는 부금, 집현, 사방대일대에서 2개월가량 토비들을 추적섬멸했는데 그들이 그기간에  격은 고생은 그야말로 형언키어려웠다. 전사들은 무더운 여름철에도 도로기를 신고 하루 백여리씩 걸어야했다. 그러면서 숲속에서 밤을 지새울 때면 모기들의 짓꿎은 성화도 이겨내야했다. 옷과 신발이 해여지고 식량공급이 딸려 어떤때는 옥수수 몇줌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굶주린 배를 달려야했고 그것마저 없어 굶기도했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불평불만의 소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눈물겨운 견지였다!

 

<<동철부대>>의 명성은 날이갈수록 높아갔다. 용맹하고도 기민한 그들은 마치 축지법이라도쓰듯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감쪽같이 적진에 뛰어들어 불벼락을 안기군했다. 그리하였기에 토비들은 <<동철부대>>가 온다는 소리만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져 아예 맞붙어볼 궁리도하지 않고 걸음아 날살려라 줄행랑을놓군했다.

 

1946년 8월 3일, 토비 리련희무리를 숙청하는 간고한 임무를 완수한 <<동철부대>>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쟈므스(佳木斯)로 돌아왔다. 이날 그곳의 동포조직이였던 민주동맹에서는 음식상을 푸짐히 차려놓고 돌아온 그들을 열열히 환영했다. 그때 삼강성은 합강성으로 명칭을 바뀌였는데 <<동철부대>>는 그곳에서 휴식정비를 하는기간 대오가 더 늘어났거니와 동북민주련군 합강성정부독립퇀으로 발전했다.

 

그때까지도 토비들이 채 숙청되지 않앗기에 합강성내의 지방정부와 백성들은 식량난에다 토비들의 위협을 의연히 받고있었다. 수백만백성들을 기근에서 벗어나게하자면 쏘련과 경제무역을 해야했다. 하여 <<동철부대>>는 9월 3일에 상급의 지시에 따라서 쟈므스(佳木斯) 남쪽의 타요자, 흑배, 리수구, 맹가강, 석두하자, 영평강 등 여러곳에 갈라져 토비들이 략탈하지 못하도록 금광을 보위하면서 그곳에서 나는 황금을 받아들이는 특수한 임무를 맏고는 그것을 전투과업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 과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척되여갔다. 그러나 운명이란 예측키어려운것이였다. 1946년 11월 16일, 참모장 김해정은 적정을 정찰하느라 두 개의 정찰반을 이끌고 완달산중에 있는 금광마을 영평강에 갔다. 저믄때라 날은 어둡고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전사들은 마을에서 약 2리가량 동떨어진, 지주가 버리고 달아난 빈집에 들었다. 그들은 몹시피로해진데다 경비를 하느라 장밤을 눈도 붙이지 못했다. 그런차 비도괴수 리화당이 그마을의 고지주가 마을에 지금 소부대가 들어와있다는 밀고를 받고는 즉시 기병 100여명을 끌고와 이틑날 새벽에 집을 포위했던 것이다.

싸움이 붙었다. 16명의 전사들은 김해정의 지휘하에 구들장을 뜯어 창문을 막는 한편 벽에 구멍 두 개를 뚫고 기관총을 내갈겼다. 그들은 근 3시간가량이나 치렬한 격전을 벌리면서 지원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허나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기다림이였다.

 

게다가 적은 워낙 숫자가 많고 이켠에서는 갇힌데다 인원도 퍽 적었다. 그야말로 엄청한 대비였다. 과불적중(寡不敵衆)이라 전사자가 차츰늘어났다. 이켠의 총소리는 차츰 뜸해갔다. 탄알마저 떨어지고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를 눈치챈 리화탕은 기뻐날뛰면서 투항을 하라 그러면 죽이지 않겠노라고 소리쳤다. 죽기를 각오한 전사들이 였거니 어찌 그따위소리에 넘어가랴, 적은 그래봤자 아무런 응대가 없으니 나중에는 새단에다 불을 달아 지붕에 올려뿌렸다. 집이 불타기시작했다. 하지만 전사들은 한명도 투항하지 않았거니와 불붙는 집안에서 그냥 대응앴다.

마지막으로 7명이 남았다. 그들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있다가 불붙는 집안에서 뛸쳐나가 육박전을 하다가 최후를 마치였던 것이다.

 

합강성정부는 그들의 장렬한 희생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벌리에다 <<참모장 김해정이하 16명렬사기념비>>를 세웠다. (병으로 사망한 녀병1명포함)

그 기념비에 아래와 같은 비문을 써놓았다.

 

푸로혁명에 피뿌린 17명렬사여

당신들의 피는 천추에 빛나리라!

위대한 정신과

용감한 투쟁은

후세에 유일한 표직이 되리로다.!

 

그후 얼마안되여 리화탕, 마희산, 장흑자 등 토비두목들이 련속 아군손에 잡혀 처형되였다. 토비두목이며 동북인민의 철천지원쑤였던 사문동역시 민주련군의 손에 잡혀 그해의 12월 3일 벌리에 끌려와 17명렬사묘들에 절을 하고는 처형되였다.

이로써 동북의 토비숙청은 막을 내린것이다.

그후 <<동철부대>>는 새로운 전투임무를 맡고 남부전으로 나아갔다.

 

(이 글은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제5권 <<승리>>에 실린 글에 다른 한편문장ㅡ 안옥균, 김송죽, 차수남공저로 된 “영평강 16용사”를 생략해 삽입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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