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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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웃지도울지도못할 방귀사건(1)
2013년 08월 21일 08시 09분  조회:4092  추천:1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웃지도울지도못할 방귀사건(1) 

 

1976년, 귀주동인지구(貴州銅仁地區) 송도묘족자치현(松桃苗族自治縣)의 우랑구(牛郞區ㅡ지금은 우랑진, 내흥진, 사패향으로 나뉘여졌음)에서는 “반혁명”을 잡아낸다면서 한차례 성세호대한 “반혁명추적”공세를 일으켰는데 들춰낸 반혁명조직이 36개, 조직성원은 1359명이였는데 그들중 맞아죽은것이 37명이고 시달림에 몸이 불구로 된 자가 263명에달했다. 반혁명조직이라고는 근본 존재하지도 않건만 그것을 잡아낸다하여 벅작끌었던 큰 원안(寃案)이였다. 귀신이 들어도 놀랠 그런  한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도화선은 다른게아니라 그마을의 지주아들이 뀐 방귀로 인한것이였다.

웃지도울지도못할 그 방귀사건의 경과는 이러하다.  

 

화근

그해의 1월 18일날 밤이였다. 우랑대대 계공전촌 사차대대의 사람들은 피곤한 하루의 공정이 끝나자 저녁을 먹고는 난로주위에 빙둘러서서 불을 쬐였다. 그속에는 그 마을의 지주아들 룡정운(龍政云)이도 끼여있었다. 이날따라 술을 한잔씩 얼근히 마신지라 다들 기분이 좋았는데 누군가 방금 약혼한 룡정운이를 놓고 놀려주었다. 룡정운은 아무런응대도없다가 방구를 “빵”꼇다.  모두들 와ㅡ하하 웃었다. 그래서 무참해진 저쪽은 그 무참을 뭉때리느라 룡정운이를 더 놀려주었다. 룡정운은 그가 하도그러니 밸이 꼬여 “이제 또 더 놀려봐라 싹 다 잡아죽여버리고말테다.”고 했다. 그러서 또 한바탕 웃음이터졌다.

이는 본래 흔히들 하는 작란이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대대의 빈협주임(貧協主任) 전(田)아무개가 씽 달려들어 룡정운의 멱살을 잡고

“이자식 죽고푸냐?”하면서 “공사로 끌어가라!”했다.

다들 장난쓰느라그러는건데 뭘 그렇게까지야 하고 말렷다.

그 자리에 정운룡의 아버지 정덕찬이도있었는데 보아하니 아들이 입을 잘못놀려 경을 치는것같아 사정사정해 빈협주임 전(田)가는 손을 뗏다.

 

워낙은 이로서 끝내야했건만 누군가 훗날 이일을 공정지휘부에다 고자질을 하는통에 일은 그만 잘못번지고만 것이다. 어느날 룡정운은 공정지휘부에 불려가 심문을 받기시작했다. 그들은 그를 손쓰지 못하게하느라 뒷짐을 묶어놓고는 그보고 너는 꼭 제무리가있어서 배짱이 세진것 같은데 바른대로대라면서 뚜드려팼던 것이다. 룡정운은 악이 치밭이는데다 아프고 견디지 못하겠으니 아버지 룡덕찬(龙德灿), 숙부 룡년찬(龙年灿), 족형 룡무운(龙戊云)은 다자기가 이렇게 매맞는것을 알면 이제 가만있지 않으리라했다. 그러자 공정지휘부(工程指挥部)에서는 그 세사람마저 잡아다 너희들은 무리를 지은것 같은데 누구누구 또 한편인지 대라했다. 그 셋이 편은무슨편인가, 아무것도 없다하니 그들은 아니다 거짓말이다, 바른대로 대라면서 달아매고 때렸다. 그렇게 해서 억지로 받아낸 말인즉 먼 사패공사에 있는 룡정운의 고모부 오헌보(吳憲保)도 이일을 안다면 가만있자고하지 않을것이다 이제 천여명이라도 데리고와서 무지하고 지악한 너희들을 때려엎고말것이라했다.

(中共贵州省委信访处:<<苗乡风云>>,载<<春风化雨集>>,上册,群众出版社,1981年)

 

때리고 핍박해서 그렇게 없는 말을 받아낸 우랑대대의 무장부장은 그것을 선색이라면서  구위서기 룡문비(龙文飞), 공안특파원 구헌정(欧献庭)에게 회보했던것이다. 구헌정(欧献庭)은 즉시 사패공사에다 전화를 쳐서 오헌보(吴宪保)를 끌어다가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두주일이나 심문해봤자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그들은 오헌보(吴宪保)를 집에 돌려보냈다.

 

계속조사 

1976년 4월 5일,북경에서 각성한 군중들이 “문화대혁명”에 불만하여 항의를 하는 “천안문사건”이 발생했다. 그때는 이 일을 “반혁명사건”이라 결정함으로하여 국세는 한동안 몹시긴장해졌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오헌보(吴宪保)는 다시금 공사에 불려가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심문을 받기시작한 것이다.

 

4월 12일, 송도현위서기 석맹명(石孟明)은 성에서 온 촬영기자를 접대하게되였는데 석맹명(石孟明)은 그와 말하기를 “우랑에서는 사업을 잘하고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계급투쟁을 잘틀어쥐요. 듣자니 우랑에는 반혁명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하면서 “반혁명은 경솔이볼게 아니니 되게 답새겨야합니다. 첫째는 진압, 둘째는 징벌. 절대 손이 물러서는 안되지요.” 했다.   

 

5월 7일,현위에서는 확대회의를 열고는 “계속심입하여 반혁명정치요언을 조사하고 반혁명파괴활동을 타격하며 심입하여 등소평을 비판하고 우경번안풍을 반격하는 투쟁을 해야한다”고 했다.

5월 10일,공안특파원 구헌정(欧献庭)은 우랑구위상위회에서 공안부의 “요언을 추격조사”하고 “반혁명을 추격조사”하라는 두가지 긴급통지를 전달하면서 우랑구에는 “확실히 반혁명조직이 있다”고 했다.

5월 19일,송도현삼급간부회의에서 현위서기 석맹명(石孟明)은 “우경번안풍과 반혁명을 계속조사하는 고조를 일으켜야한다”면서 “즉시 군중운동을 발동하라”고 호소했다.

6월 6일과 7일, 우랑구에서는 각공사의 서기들이 다 참가하는 구위확대회의를 열고 반혁명을 “계속추격조사”하는 부서들을 내왔는데 구위서기 룡문비(龙文飞)는 구(區), 공사(公社), 대대(大隊)는 문제를 조사해내는 교대반(交待班)을 내와야한다면서 일반성원은 생산대에서, 골간분자는 공사에서, 주요두목은 구에 잡아다 교대하게끔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포치를 한 것이다.

 

한편 오헌보(吴宪保)는 그전에 벌써 지독한 고형을 이겨내지 못해 따지고 캐묻는대로 근본있지도않는 “지하당”, “민공대” 등 반혁명조직이 있다고 “승인”했던 것이다. 성원은 20명이 더되였는데 매부 구륙장(欧六章), 처자의 족혁 룡덕찬(龙德灿), 룡년찬(龙年灿), 처자족질 룡무운(龙茂云), 중학시절의 동창생 양재덕(杨再德), 향옥후(向玉厚)、서전월(舒典月)、전흥화(田兴和) 등이라 주어댔다。


이상의 잡아낸 사람 20여명의 수자를 갖고서는 전 구(區)의 5개 공사 28개 대대 “교대반”에서 짐작하는 수자에 근본미치지 않았기에 1975년에 이미 찾아낸 동인(铜仁)과 관련이 있은 이른바 복흥당(复兴党)성원이라는 윤수응(尹修应)、양정영(杨正荣) 등 사람과 전에 투기도박을 해서 검거되였던 윤수무(尹修武)、오병칭(吴炳称)을 다시잡아다가 “교대반(交待班)에다 넣었다”. 그러면서  손때매운 혁명자들은 구의 교대반(交待班)을 집접틀어쥐고 생사람잡이에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구위서기 룡문비(龙文飞)는 회의때 교대반(交待班)에 들어간 “반혁명분자”는 다섯가지를 꼭 교대해야한다고 했다.

1). 반혁명조직의 명칭을 교대해야하고

2). 반혁명목적이 무엇이며

3). 반혁명강령은 무엇이고

4). 반혁명활동방식은 어떻고

5). 우와 아래의 련계인은 누구라는 것.

공안특파원 구헌정(欧献庭)은 심문할 때는 기록을 잘해야하고 각 공사는 서로 련계를 잘하여 다같이 정황을 제때에 장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7월 10일,우랑공사에서는 “반혁명추적동원대회”를 열면서 동시에 로개석방인원인 룡후생(龙侯生)과 “로실하지 못한 사류분자”를 다시잡아다가 한데넣고 투쟁했다. 이날있은 투쟁대회에 다른 여러공사의 대표들도 참가했는데 구장 룡금명(龙金明)이 집행하고 구무장부장과 “반혁명추적소조”조장인 팽충순(彭忠顺)이 발언을 했던 것이다.

 

7월 19일 20日,이틀간은 목채공사에서 우랑、사패、목채 등 세 공사의 서기가 참가한 회의를 열었는데 현무장부장이 그 회의를 틀어쥐고 그지간의 “반혁명추적”을 분석하고 한단락의 사업을 총결지었다. 그러면서 구위서기 룡문비(龙文飞)는 우랑공사는 “반혁명추적”에 진보가 있고 효과도 있다했거니와 혁명을 틀어쥐고 생산을 촉진한다고 한바탕 표양도 했다. 그는 다른 한 곳 사패는 일찍이손썻길래 적잖은 선색을 제공했지만 아직까지도 몇사람만이 혁명을 하고있다고 했고 다른한곳 목채공사는 담이 너무약하다했고 또 다른 은암과 대흥 두 공사의 “반혁명추적”을 보면 성적이 하나도없길래 차라리 저쪽으로친다고 불만스러운 소리를 했다.

 

54가지 혹형,37개 인명

전안조(專案組)는 규정하기를 한사람의 공술은 듣고 두사람의 공술은 믿으며 세사람의 공술은 결정짓는다고 했다. 구위서기 룡문비(龙文飞)는 “초는 불을 달아야 밝아지고 ‘반혁명’은 때리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면서 전안조(专案組)에서는 형구(形具)를 갇추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54가지에 달하는 고형방법이 나왔는데 그것이 “교대반”의 “학원”들을 극도로 못살게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대고 형이 동생을 대며 친척이 친척을 대고 벗이 벗을 대여 서로물어먹는 형국이 생기였던 것이다. 목채공사(木寨公社) 모평생산대(毛坪生产队)는 남성주요로동력이 다해봣자 19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12명이나 반혁명으로 되었고 그중 9명은 “교대반”에 들어갓던 것이다. 그야말로 전에없은 혹독한 반혁명추종운동(反革命追從運動)이였던 것이다!

(<<中共铜仁地委关于松桃苗族自治县牛郎区“追反”冤案平反昭雪情况的报告>>,

1978年10月11日)

 

석달이나 지속되였던 그 반혁명추종운동(反革命追從運動)으로 하여 선후 486명이 “교대반”에 들어가 그곳의 “학원”이 되었는데 그중 6명이 총살당하고 13명이 학사(虐死)했으며 13명은 자살했다. 그러고도 살해된 자의 친척이라 연루(連累)되여 사망한 것이 5명이였으니 모두해서 37명이나 목숨을 잃은것이다. 매를 맞아 불구로 된것이 263명. 죽이려다가 미처죽이지 못한것이 18명이였다.

(《中共铜仁地委关于松桃苗族自治县牛郎区“追反”冤案平反昭雪情况的报告》,

1978年10月11日) 

 

“교대반”에 들어간 사람 대부분이 개인보복에 든 것이였다. 례를 들면 사패공사 홍성대대 량풍요생산대의 진조전(陳祖前), 진인배(陈仁培), 진조무(陈祖武) 삼형제는 전에 당질녀를 묶어놓고 강간하려한 민병련장 진술병(陈述炳)을 혼뜨검내운 일로 하여 잡혀들어가 그자의 손에 매맞아죽었다.

우랑공사 우랑대대의 당지부부서기 향(向)모는 1969년도에 생산대에 진 빚 200원을 몇 년째 종시 값을 념을 하지 않으면서 생산대회계이자 보관원인 호회칭(胡淮称)보고 량식을 그냥달라했다. 이에 호회칭(胡淮称) 규정대로 량식을 주지 않았더니 그는 그를 “교대반”에 잡아넣어 “학원”으로 만들어놓고서는 협박과 고형을 받아 끝내 죽게만들었던 것이다. 

 

은암공사 파동대대의 룡세항(龙世恒)이 죽게된건 전에 지부서기 룡(모)가 어머니를 강간하려다 그한테 들켜 성사못한 일로(당시 룡세항은 14살) “교대반”에 들어 물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일을 잊지 않았던 룡세항(龙世恒)은 커서 몇 번 지부서기 룡(모)를 공산당간부라해도 렴치없고 도덕이 없다했던 것이다.

그비슷한 안건은 은암공사 첨파생산대대에서도있었다. 은암공사 첨파생산대 대장 룡세명(龙世明)은 룡흥무(龙兴茂)의 녀편네와 통간하려다 못하고는 기회가 왔다고 여겨 룡흥무(龙兴茂)를 “교대반”에 너어 “학원”으로 만들어서는 거기서 매맞아죽게하고는 그의 녀편네를 끝내 차지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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