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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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전기 설한 (34)
2014년 04월 05일 15시 22분  조회:3180  추천:1  작성자: 김송죽
 

 

34.

1938년도 여름에 김좌진의 딸 강석이는 일본에서 치료받고 나아서 돌아왔다. 비록 어린 나이긴 했지만 강석이는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한편 어린 그로서도 그지간 변화가 많음을 보아냈다. 특히 구면의 사람들이 이제는 그의 눈에 많이 보이지를 않은 그것이였다.

모두 어디로 갔는지?....

리덕수로인이 양부한테 그사이 <<큰개>> 한 마리 죽었노라고 알려주었다. 그가 말한 <<큰개>>란 <<치안공작반>>의 두목 김동한이였다. 혈채많은 그자는 전해의 여름에 화남(樺南)의 반재하(半載河)에서 초기 녕안북만로농의용군 건립에 참여하여 그 대장이 되였고 밀산유격대참모장, 항일련군 제4군참모처 처장을 지내다가 항일련군 제8군을 개조코저 파견되였던 항일간부인  김근(金根)을 귀순시키려다가 장계취계에 들어 도루 제 생명을 잃고만것이다.

헌데 그해 년말에 이르러 박봉도, 리○○ 두 반역자가 일제측에서 내건 상금 천원에 눈이 어두워 김근을 살해하였다.

<<그런 놈 잡아 릉지처참을 해야지.>>

모두들 반역자를 저주했다.

강석이는 어려서부터 양부와 <<8로>>들에게서 인간이면 절개가 굳어야하고 적아를 가릴줄을 알아야 하고 애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과 자기 조국과 민족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강석이는 나이 10살이니 이쯤하면 리지적인 감정을 키울만도했다.

이때까지도 <<8로>>는 용케도 흩어지지 않았고 그럼으로해서 늘 모일수 있었고 모여서는 국세를 론하고 자기 사람들의 형편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강석이는 그네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들었고 들은것은 다른사람한테 번지지 않았다. 그는 양부모가 시키는 말은 명심해듣는 소녀로 자난거다.

 

중국내지를 점령하고 나아가서는 온 아세아를 독점하려는 야심이였던 일제는 조선에서처럼 만주의 경제를 략탈할 목적으로 <<만주개발계획>>을 세우고는 그 일환으로 목단강개발을 다그쳤다. 그들은 1935년도에 벌써 <<목단강도읍계획위원회>>와 <<목단강도읍건설>>기관을 설립하였다. 그러면서 목단강을 <<백만인구, 북만의 수부, 신경의 문호, 국제의 요새>>로 만들리라고까지 떠벌이였던 것이다.

그통에 목단강은 물론 근처에 있는 해림일대의 농촌주민들까지 들볶이우면서 과중한 부담과 고역에 시달려야했다.

한창 이런때이던 1939년 9월 14일에 강석이네 집에는 갑자기 기막히는 액운이 떨어졌다. 이제 나이 24살인 둘째오빠 두문이가 달구지에 벼를 싣고 목단강에 갔다오다가 길가 논판에서 죽은것이다. 생사람이 죽다니? 강석이는 정깊은 오빠가 급사하자 기막히게 울었다.

둘째아들 두문이가 죽은것에 대해 김기철은 여러모로 분석해보고 이것은 분명 전에 독립군과 척진 자의 짓이라 짚었다. 그러니 신경이 곤두서면서 경각성을 더 높이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일신보다 양녀가 피해입을가봐 더 근심이였다. 묘하게도 강석이 역시 손톱에 칠색의 무지개발이 일었다. 김좌진의 손톱이 그러했던것이다.

<<유전인데야 별수있나. 그녀석들이 아마 손톱보고서도 네가 뉘 딸인거는 알아볼수있어. 한나무에 오래앉아있는 새 살을 맞는다잖어.>>

양부는 이러면서 식솔을 데리고 그곳을 훌쩍 떠났다. 이때는 강석이가 김좌진이 생부임을 알고있었다.

이번에 자리잡은 곳은 조선호가 하나도 없는 어느 한 중국마을이였다.

여기면 좀 났겠지 하는 생각도 났지만 강석의 양모는 남편신변이 걱정되여서 아예 멀리로 가버리자고 했다. 이에 양부는 왜놈의 천하인데 어디가면 경찰이 없으랴. 아들을 앞세우고 늙은것이 목숨을 아까와해선 뭘하겠느냐했다. 아무때건 자기는 경찰에 잡혀갈 몸인데 에라 될대로되라지 하고 운명을 팔자에 맡기면서 꿈만해하기 시작했다.

하노라니 그날은 끝내 오고야말았다. 양부가 간밤에 꿈자리 사납다더니만 아니나다를가 한낮에 경찰이 문득 찾아온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이번에 온 경찰은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았거니와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간 일본에 가서 잘 지냈느냐고 제법 인사치례까지 하고는 양부더러 자기와같이 가자는 것이였다.

이때는 큰오빠 두생이만 없고 양부모와 언니 영조 그리고 이제 4살인 오랍동생 원렬(元烈)이, 두생의 처 정숙이와 딸 선녀하고 강석이 이렇게 식솔 일곱이 집에 있었다.

너무도 조련받아서인지 이젠 담이 어지간히 커진 양모가 그 만주경찰을 붇들고 자기도 남편따라가보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양부께서 발끈했다.

<<아니 당신까지 왜 이러우. 크게 끈 잡힐건 없으니 별문제 없으리라잖우. 꼼짝말구서 애들 건사나 잘하라구.>>

그래도 이렇게 붙잡혀가면 끝장일것만같아서 모두들 울었다. 강석이도 엉엉 울면서 양부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어 기도했다.

<<한얼님! 한얼님!>>

그런데 언니 영조는 울면서 강석이한테 분풀이했다.

<<조 간나새끼땜에 울 아버지 잡혀갔다. 조 간나새끼 모가지 똑 떼여 김치움에 처넣었으면 좋겠다.>>

그 욕설이 어찌나 지독하고 무섭고 가슴맞히는지 강석이는 그만 참지 못하고 와ㅡ 울음보를 텃치였다.

이럴 때 마침 밖에 나갔던 큰오빠가 돌아왔다. 그도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는것을 보고서 들어오는 참이였다. 그는 강석이가 하도 서럽게 우니 이상스러웼던지 웬 일이냐고 물었다.

강석이는 그한테 방금 당한 일을 말했다. 그러자 두생오빠는

<<계집애가 원, 아무 개소리나 막 치는구나.>>하면서 영조를 한바탕 되게 꾸짖어놓았다.

울음을 그친 강석이는 다시한번 속으로 양부가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빌었다.

<<한얼님! 한얼님!>>

과연 강석이가 빌고 한얼님이 보우해서인지 며칠만에 양부가 풀려나왔다.

집식솔은 모두 기뻐했다.

그렇다고 마음놓을 일이 아니였다.

<<그놈의 속창 누가몰라서. 어미양 풀어놓아 새끼양까지 잡아먹자는 수작인걸.>>

양부는 두생이를 시켜 전에 다니던 젋은 독립군들은 래왕을 금하게끔 했다.

적들은 아닌게아니라 은근히 감시했고 양부를 가끔 불러갔다. 한번 불리워가면 여러날을 철창에 갇히였는데 어떤 때는 한달이 넘을때도있었다.

이러는 사이 강석이네는 또 이사짐을 꿍치였다. 이번에 이사한 곳은 해림.  아닌게아니라 장돌뱅이식의 살림이였으니 때는 바로 1940년도 늦가을이였다. 강석이네가 해림에 이사와도 <<8로>>들은 여전히 모이군했다. 고맙게도 경찰의 감시가 그네들에게까지는 미치지 않음이 분명했다. <<8로>>들은 모이기만하면 수구회의였다.

어느랄 아침, 순경이 시내가의 숲에 던져진 시체 하나를 발견했다. 40여살의 거쿨진 사나이였는데 사자는 조선사람이고 해림과 목단강을 자주오가던 전의 <<치안공작반>> 인원이라는 것이 인차밝혀졌다. 가해자가 누구일가고 추측이 많았다.

강석이는 입을 까딱 열지 않았다. 깊게 생각할 필요없었다. 그건 <<8로>>가 아니면 숨어지내고있는 독립군들이 한 일이라고 그는 짚었다. 변절자, 특무는 마땅히 그렇게 징벌해야 한다. 이것이 어린 소녀의 맘이였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지 얼마안돼서 강석이네 집은 또 봉변당했다. 이번에는 일본경찰이 만주경찰 여럿이나 데리고 느닷없이 달려들었다. 그자들이 이번에는 제 솜씨를 나타냈다. 일본경찰 하나는 총탁으로 간장독을 쳐 박살냈고 장독도 그모양으로 깨버렸다. 어떤자는 총창으로 베개까지 찔러 터치고 쌀을 못먹게 하느라 석유등잔을 쌀마대에 던지기도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임신한 양모의 배를 발로 차놓기까지 한 것이다. 그바람에 배를 부등켜안은 양모는 모진 고통에 떨면서 류산을 하고말았다.

이 한무리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집법자들은 이렇게 무방비의 집을 살풍경을 만들어놓고서야 직성이 플리는지 돌아가버렸다.

양부는 이날 다시체포된 거이다.

경찰들의 행패질이 예전만 심한것을 봐서 이번에는 그저일같지 않았다. 그래서 강석이네 집은 그대로 초상난 집모양이 돼버렸던 것이다.

<<울기만 하면 아버지 돌아오시나 뭐. 난 아버지 어떻게됐나 보고올테야.>>

강석이는 언니 영조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런데 영조는 겁나서 경찰서에 접근못하고 강석이만 가까이가서 마침 변을 보러가는 족쇄찬 양부를 보았다.

<<썩어질 언니새끼!>>

그는 언니 영조를 겁쟁이라 되게 놀려줬다.

얼마후 양부는 2년 8개월의 도형을 받고 형을 집행코저 장춘에 압송되였다. 죄목은 늙은것이 반일감정을 갖고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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