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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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 부(3)
2015년 02월 03일 10시 09분  조회:2216  추천:0  작성자: 김송죽
 

 

 

 

 

                             3

 

 

 

    악한자는 그 나름대로 악한 심보가 따로있는거다. 적악지가에 필유여앙이라했거늘 남을 해쳤으니 그 죄를 어찌할가.

   《배를 찾지 못할 바에야 이젠 배값이라도 받아낼 궁리를 해야지. 않그렇습니까. 그저 손해만보고 앉아있을 수야 없지요.》

    민호가 속타산을 내비치자 가싼다는 이마살을 찌프린다.

   《이 사람아, 우리가 그걸 누구한테서 받아낸단말인가?》

   《가철군의 애비한테서 받아내죠.》

    이 말을 듣고 나쟈도 머리를 가로젖는다.

   《안돼. 그렇게는 못해. 범인을 잡지두못해갖구서 무슨 수가 있다구 그러오. 안돼, 안되다니까. 우선 증거가 있어야 하는거야.》

   《체, 범인을 꼭 잡아야 증거가 되는건가. 이 일은 그러지 않아도 얼마든되는겁니다.》

    민호는 여유작작하게 대구했다. 목덜미를 잡지도 못하고 걸고들었다간 동티를 낼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깟것은 무섭지 않았다. 주범은 그놈이 아닌가. 딱 점찍고있으면서 왜?.

    유씨네는 배값을 담은 얼마간이라도 받아내기싶은 생각이 불붙듯했다. 하지만 이 일은 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막연한 일이니  그만 맥을 놓고있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민호는 달랐다. 그저 왜 이렇게 당하기만해야하는가. 법으로 해결이 안될거면 차라리 내 주먹을 믿어야지. 되든 안되든 한번 해보자 맘먹고는 유씨를 향해 가씨네 집에 가서 한번 걸어볼텝니다, 후일은 내가 책임질데니 념려말고 제발 말리지만말아주시오 하고는 지체없이 친구를 데리고 나섰다.

    변비의 가을날씨라서 어느새 차가와졌다. 곧추 무원을 향해 달려간 그들은 이 사람 저 사람한데 물어서 생각대로 끝내 가씨댁을 찾아내고야말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배포유하게 주인을 만나봤다. 때는 저녁켠. 가씨가 퇴근해서 마침 집에 있었고 마누라도 있었다. 한데 녀석이 어디갔는지 낯짝이라도 한번 다시보려는 가철군은 집에 없었다.

   《손님들은 대체 뉘시오?》

    예감이였던지 머리쌀이 갑작스레 어지러워난 가씨는 느닷없이 나타난 초면의 두 불청객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레 대했다.

   《댁의 철군이가 어디메루갔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우. 건데 자네 갠 무슨일에 찾는거요?》

   《가철군이 우리 집의 배를 빼앗아가서 그럽니다.》

   《원 무슨소린지…》

   《댁의 망나니가 강탈을 했단말입니다.》

    민호는 잡담제하고 명토를 박았다.

    이러자 예상과 같이 일은 되어갔다. 근거도 뵈이지 못하면서  줴친 소리건만 병통을 면바로 찔렀는지 가씨는 단통 낯색이 샛하얘지면서 안절부절을 못한다. 제아들의 됨됨이를 너무나 잘아는 부모라 이런 경우 입이 백개라도 할말이 없었던거다.

    《그래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부모니까 책임져야죠. 배값을 내시오. 그게 어떤 배라구. 방금만들어서 아주 영 새건데. 훽해배입니다!》

    《뭐라오? 어이구!》

     가씨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의 마누라는 아예 입도 열지 못하고 떨기만한다. 적잖은 이들이 억울하게 당하고는 절치부심 하면서도 감히 찾아오지 못했다. 결찌많은 아들놈이 보복을 무섭게 할까봐. 한데 이들만은 그렇지 않았다. 무겁한 태도로 해보자고 드는 판이니 가슴이 얼어들기 시작한거다. 내아들만 막짓을 할가, 악이 나면 누구든 행패부리기마련이야. 이들은 아마 칼을 품고 왔을거다 하고 생각하니 가씨내외는 겁이 질려 떨기까지 했다.

    《어떻게 할텝이까, 담은 얼마라도 배값을 내겠습니까 아니면 죄진 아들 콩밥 멕이겠습니까? 우린 호의루 찾아왔다는걸 아시오. 정말루 양보를 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래두 싫다면… 댁의 아들이 승천입지를 한대두 우린 찾아낼텝니다! 붙잡아낼텝니다! 복수할텝니다! 두고보시오 안그러는가구!》

    민호는 짧은 중국말재간을 다 털어 재고 당기며 윽박질렀다.

    대방의 배때벋은 짓에 가씨는 한결 주눅들어 감히 대들지도 내쫓지도 못했다. 그는 불효자식때문에 똥감태기를 쓴다면서 거의 울상이 돼갖고 신음소리를 내더니 하는수없이 집에 있는 저축금을 몽땅 내놓았다.

    배값은 안되지만 액수가 적잖았다. 길림대양(吉林大洋) 200원이니. 이 돈이면 철갑상어 천근값과 맞먹는 셈이다.

    그야말로 혀바닥으로 면도칼을 갈 듯이 우둔한 짓이였다. 하지만도 유씨네는 잃은 것을 얼마간이라도 찾은 셈이라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또 이 일로해서 어느때든 보복이 돌아올것 같아 은근히 가슴을 죄이기도했다. 해도 민호는 그깟거 하고 꿈만해하였다.

   《아직두 더 받아내야합니다. 개는 무서워하면 무서워할수록  더 얏잡아보고 물자고 달려들지요.》

  

    한편 날이 가고 달이 가건만도 린화는 한번 병상에 누운 후로 아직 일어나지 못한다. 어느날 가싼다가 동강진에 가서 또 쌀만을 청해왔다. 언젠가 민호의 거짓수작에 넘어가 귀신약을 주었던 그 쌀만이였다. 그가 그때 준 귀신약이 효험을 보았다. 그건 어쩌다가 면바로 상과 맞아서 그렇게 된게지 쌀만이 만들어 낸 귀신약이 령험해서가 아니였다. 더욱히 그것이 만병을 통치하는게 아닌거고. 과연 그같이 령험하다면 왜서 쌀만을 다시청할가?

    쌀만은 전번때와 같이 자기를 귀신으로 분장하더니 짜장 미쳐나는 것 처럼 한바탕 열성스레 부산을 떨어댔다. 가싼다는 그가 그러는 것이 감사무지하여 돌아갈 때 별비로 큰아들이 방금 강에서 잡아온 큰 잉어 한 마리까지 더 보태서 줘보내는것이였다.

    이래도 정성이 부족한가 지성이 부족한가? 쌀만이 왔다갔어도 린화는 병이 호전되기는 커녕 외려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이젠 머리가 천근같이 무거우면서 빠개지듯 아파났다. 그러다가 그것이 좀 진정 될 때면 베개밑에서 개미 기여가는 소리를 황소가 싸움질하는 것으로 들을지경이다. 그토록 허약해진거다. 하건만 유씨네는 치료한다는게 고작해야 쌀만이나 불러다 굿을 하게 하곤 내쳐두니 이를 어쩐단말인가. 코막고 답답한치들아, 무지의 고배를 기여히 마셔봐야 정신차릴거냐?… 민호는 그들이 하는 짓이 점점 더 민망스럽기만했다. 이런때에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되라지 하고 내쳐둔다면 환자는 영락없이 잘못될것이다. 아무렴 그꼴을 어떻게 보고만있겠는가. 격이 나더라도 사람은 살려고놓봐야하는게 아닌가. 하여 민호는 욕지기가 나오는 것을 소태 넘기듯 겨우 목구멍으로 넘기고나서 유만진앞에서 다시금 제 주장을 피력했다.

   《이젠 굿은 그만두구 제발 내 말을 들어주시오. 린화를 살리겠거든 어쨌든 의원의 약을 써야합니다.》

    유씨는 이젠 별 도리없겠는지 그럼 네가 한 번 나서보라했다.

    이젠 린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의원덕이요, 칠성판을 지면 내탈이라겠지. 우매한 제 탈인건 모르구. 민호는 이런 각오를 하면서 가싼다보고 돈 30원만 달라해서 행장을 갖춘 후 곧추 의란으로 향했다. 의원이 가까운 동강진에도 있지만 큰 약국은 그래도 그곳에 있을것이였다.

    의란에 간 근는 먼저 약국에 들려 약부터 샀고 그 다음에는  공부하고 있는 청량이를 찾아가서 집에 변고가 생긴것을 알려줬다.  민호는 그래놓고 온김에 고태의연한 옛 금조(金朝)의 흔적을 감상했다. 한데 그는 여기에서 생각밖에 조선독립혁명진영의 현황을 다소 알수있게되였다. 어느 독립운동자가 이곳까지 와갖고 퍼뜨린 소문인지 아니면 관방에서 알린 소식인지 로씨야령에 넘어갔다가 <자유시사변>직전에 되건너온 일부 독립단체마저 이제는 싹 다 해산되여 그 존재마저 보이지 않는다고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닌게아니라 울음이 나갈일이였다.

   《우린 어쩜 이렇게 자진하고마는가. 아아!…》

    민호가 어래무레 돌아와 친구한테 형세를 알렸더니 친구역시 가슴터지게 한숨을 토하고는 목놓아울었다.

    한편 오래동안 간헐적인 두통에 시달리던 린화는 민호가 의란서 지어온 첨약을 먹고 정신이 차츰 돌기 시작했다. 이젠 몸이 춰서도록 보양이 될만한 음식을 많이 먹어야할 것이다. 한데도 번번이 보면 유씨네는 타스헌이니 다라카니 라부다하니 하는 따위의 물고기음식만 그냥 해주었다. 곡기나게 낟알과 산짐승고기는 왜 안먹이는지, 그런걸 먹였으면 좋으련만…

   

    어느덧 추운 겨울절기에 들어섰다. 한데도 올해는 아닌때에 산신령을 노엽힌 범자가 생긴터로 쌀만이 그 벌로 입산제를 보름이나 늦추다보니 아직은 토끼 한 마리도 감히 잡을 수 없게됐다.

   《개코야! 입산제는 무슨놈의 입산제야! 그런다구 산에 못들어가? 흥.》

    어느날 허저인의 신앙을 개떡같다면서 내내 우숩게만 보아온 최기덕이 이같이 씨벌이며 사냥하러 나서는 것을 민호가 막았다.

   《왜 이러니, 제기! 덤비긴... 산에 가면 산놈 따라부르고 바다에 가면 바닷놈 따라불러라했어. 괜히 큰일치지 말고 잠자코있거라.》

    유씨네는 연어잡이를 하지 못하다보니 남처럼 돈을 벌지 못했을 뿐 이왕년과 마찬가지로 제먹을 고기는 그래도 두루장만했다. 하여 지금 유씨네도 마을의 여느집과 마찬가지로 겨울철 사냥준비를 다해놓고 입산날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판이였다. 

    어래무에서는 올까지 동네사람이 실종되고 변을 당하고 보니 누구든 혼자서 산속을 감히 드나들 용기가 나지 않아 친척이나 가까운사람끼리 짝패를 무어 사냥하기로했다. 이런 집체식의 사냥이 전에도 없은것은 아니다. 어느 패나 나이 듬직하고 사냥경험이 있으며 산에 익숙하고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는 사람을 저들의 책임자로 선출한다. 그러고는 그번의 사냥을 일임케 하는데 그 사람을 로더마바라 한다. 로더마바는 사냥시 자기 패거리의 모든 활동을 지배한다. 만약 사냥군지간에 어떤일로 분기가 생길라치면 그것을 조해하며 자기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모여서 처리하기도 한다. 로더마바에게 그것 외 다른 어떤 특수한 권력은 없다. 그도 여느 사람과 같이 사냥하고 수렵물도 똑같이 나눠가진다. 따라서 사냥철이 끝나면 그의 직무는 해소되는거다.

    두 조선청년은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기에 사냥을 나가고싶어도 마음뿐이였다. 하여 그들은 땔나무나 넉넉히 해놓고 뜨뜨한 시르맨커에 들어앉아 근산의 잔짐승잡이놀이로 이해의 겨울을 지내려했다.

    마을에 이마칸을 하는 사람이 왔다기에 그게 어떤건지 들으러갔다온지 사흘이 되는 날 민호가 친구보고 말했다.

   《착고를 빌려와야겠다. 창애도 몇틀있어야 하구. 짐승잡이를 하자면 우선 잡동사니들이 있어얄게 아니냐. 맨손으루야 어떻게.》

   《나쟈형이 이제 갖다줄게요. 어제 서르미를 만들던데. 내가 그보구서 <나쟈형님, 심산에 들어가 큰짐승잡이하는데두 요런걸 씁니까?> 하고 물었더니 <아니야, 임자네두 있어야 할게 아닌가.> 하더구만. 그래 난 기뻐서 좀 거들어줬소.》

   《모르겠다 떡줄놈은 꿈도 안꾸는데 김치국부터 마신게아녀? 더구나 넌 중국말도 잘 모르면서... 제대루 알아듣기나했니?》

   《어이구, 정형은 내가 뭐 영 까막바본줄알우. 나도 이젠 웬간한건 알아들을만하오.》

   《네가 알아들어? 불지말마.》

   《분다니, 내가? 쳇!》

   《아니면 정말이냐. 정녕 그렇다면 진보를 축하해야겠구나.》

   《놀리지 마오. 나도 이젠 웬간한건 다 알아듣는다니까.》

   《뭐라? 웬간한건 다 알아듣는다구? 야 이 로씨야대포쟁이야, 네가 그렇다면 그래 이마칸은 왜 안들었니? 그건 중국말로 한건데. 넌 한마디두 못알아듣겠다면서 린화네 집에 가구서두. 솔직히 말해봐. 거겐 너의 그 반양머리에 반한 계집애있어서 간거아녀?》

   《어이구 알긴 개떡같이 아네. 사실대루 말해서 그 소녀 반한건 내가 아니구 정형이야.》

   《허튼소리. 그 여자앤 미혼부있다는걸. 너도알아라.》

   《알기야 알지만두.... 건데 그게 문젠가 뭐. 걷어장지면단데.》

   《그게 될가, 안될거야. 그 민족은 안그래. 한번 정한 혼인은 절대 파하는 법이 없다는구나.》

   《뭐라, 한번정한 혼인 파하는 법 없다? 그럴사한 자가당착인걸! 세상만물이 불변아니요 이 민족도 페단은 깨닫고 고쳐가면서 개화하고있는거다고 말한건 대체 누구였소. 그게 정형아니던가.》

    기덕이는 어느땐가 허저족을 놓고 변론이 있은것을 새삼스레 끄집어내여서는 그걸 언질잡고 반박하려들었다.

    말문이 막혀버린 민호는 뭐라고 대구했으면좋을지 미처 생각이 돌지 않아 어정쩡해있다가 그만 신경질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댔다 됐어, 내가졌다구하자.》

    그들이 유씨집에 사냥도구빌러 갔더니 나쟈가 이미 준비해놓은 착고며 창애며 서르미며를 내놓으면서 그것으로 족제비, 황가리, 여우따위의 짐승들을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건너방에 있던 나쟈의 안해가 시누이와 함께 이쪽으로 건너오면서 말했다 .

   《두분께서 마침 잘 오셨어요. 그러잖아 시누이를 막 보내려던참이였는데요.》

    민호가 의아쩍어했다.

   《아주머니, 무슨일입니까?》

   《겨울옷을 해입어야죠. 두분 다 품을 재여봐야겠어요.》

    츄얼이가 선참 민호앞에 다가와 제 뼘으로 체통을 재이였다.

    최기덕이 한쪽눈을 끔쩍이며 능청떨었다. 봐라 내 짐작이 어때 그 계집애가 너한테 반한거 아니냐 하고 놀리고 있었다. 민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 시각 여지껏 점잖을 빼온 자신의 낮가죽이 가면구로 되여 한까풀 홀랑 벗겨지는것만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이 수치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생육이 불전한 바보아니요 마음속 이성을 그리고 점유하고푼 맘이 너무도 자연스레 꿈틀거려서 사랑은 그야말로 자사자리한것임을 감수하기에 이른 그였으니.

   옷이 인츰되였다. 감이 마련되여있은데다 유씨댁의 그 두 녀인은 솜씨재서 사흘내에 다 지어 친히 갖고 시르맨커에 와서 입혀보기까지했다. 유씨네가 지어준 겨울옷이라는 것이 실은 천이라곤 한쪼각도 들지 않은 순노루가죽제품이였다. 이곳 어래무의 허저인들은 겨울철이면 다가 이런 옷을 입는다. 안쪽에 털이 있는 이런 가죽옷은 기실 솜옷보다 한기를 썩 훌륭히 막거니와 모양도 보기좋았다. 그런것을 유씨네는 일전한푼 받지 않고 지어준것이다. 짜장 한집안사람같이 여기여. 하니까 이쪽은 말그대로 밥을 갖다주면 입을 벌리고 옷을 갖다주면 손을 내미는 식이 되고말았다.

    이들의 은혜를 뭐로 갚으면 다 갚을가!

    츄얼이 독촉했다.

   《왜 그래요. 그 옷 얼씨덩 벗고 이걸 입어봐요.》

    민호는 사내답지 못하게 쭈물거리다가 처녀가 독촉해서야 받아입었다.

    츄얼이는 정성을 다한 제 솜씨의 진가를 알아낼모양으로 한참 이리보고저리보고 했다.

    민호는 가죽오리를 감쳐만든 개씹단추가 신기해서 어루만지다가 입을 뻐개면서 한마디했다.

   《아가씨지은 옷 내몸에 딱 맞는구만. 감사하오.》

   《맘에 드나요?》

   《들구말구. 물론이지.》

   《그럼됐어요. 그런데 말이얘요. 절 아가씨라말고 이담부텀은 그저 츄얼이라고 불러줘요. 난 그렇게 불러주는게 더 반가와요.》

   《더 반갑다, 그럼 그렇게 할가. 하하하하!…》

    민호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소리내 웃었다.

    츄얼이도 웃었다. 한결 유쾌해진 그녀의 얼굴에는 명랑한 홍조가 어리면서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남실거렸다. 교양있는 집의 고명딸로 자라난 츄얼이는 어딘가 도고한 자태였으나 오만하거나 거만한 티라곤 보이지 않았다. 가끔가다 애교는 부릴줄 알아도 다른 계집애들같이 경망스레 호들갑을 떨거나 가살피울줄을 몰랐다. 그녀는 인물고운 것 만큼 순직하고 맘씨곱고 인사성바르고 눈썰미좋고 손부불이 여물었다. 이런 일등급의 처녀를 그래 어느 총각인들 욕심내지 않으랴. 속담에 닭한테 시집가면 닭을 따르라해서인지 듣자니 츄얼이느 시집가면 남편공대잘하고 시부모잘모시는 정실한 안해감이라 소문이 나 임자가 벌써 있는데도 외지에서 혼사말을 걸어오는  총각이 한타스나 된다고 한다.

   

   츄얼이는 이튿날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시르맨커를 찾아왔다.

  《두고길러요. 제가 우야즈네 보고 달래서 얻은거애요. 여기서는 개가 보배얘요.》

   털이 똑같이 감실감실하고 복실복실한 그놈들이 이제 발을 탄지 얼마안되였다.

   《요 귀여운것들아! 네놈들이 이젠 우리하구 한식솔됐구나!》

    민호도 기덕이도 고것들이 참으로 귀여워죽겠다면서 한 마리씩 품에 안았다.

    츄얼이는 웃다말고 눈을 할끗빨았다.

   《곱다구만말구 건사잘해요. 개를 기를줄이나 아는지?.. 》

   《챠 이거 사람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린가. 아니 그래 세상에 어느 바보가 그래 개기를줄도 모른단말인가.》

    민호는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러니 츄얼이가 정색해서 묻는다.

   《그럼좋아요. 어디 말해봐요. 개를 어떻게 기르는가요?》

   《거야 저놈들이 배곱파 울면 제때에 죽을 먹이구....》

   《어마나! 그저 그렇게 기른단말인가요, 원! 한심해요. 개를 어디 그렇게 기르는가요. 깜깜이네. 명심해들어요. 개를 제대로 기르자면 첫째 소금이나 향기로운 음식을 먹이지 말아야 해요. 알겠나요. 그따위건 절대 먹이지 말아야한단말이얘요. 왜 그러겠어요. 그따위걸 먹이면 코가 둔해져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단말이얘요. 짐슴마다 피우는 냄새가 다른거얘요. 코가 둔해져 그걸 가릴줄도 모르는 개면야 무슨짝에 쓰겠나요. 않그래요. 그러니.... 개가 이제 좀 더 커서 빨랑거리면 데불구다녀요. 그래야 그게 어려서부터 길을 알아두게되는거얘요.》

   《그담에는 어떻게 하랍니까, 아가씨?》

   《날 그렇게 불러달라던가요.》

    츄얼이가 민호를 향해 눈을 곱게 흘겼다.

   《오! 하하하…》

   《개는 두살먹어서부터 일곱살될때까지 퉈르치를 끌수 있어요. 그럴러면 목대가 세얄게 아닌가요. 개가 좀 크거들랑 목에다 몽둥이를 달아줘요. 그래야 개는 목덜미에 기운이 오르게되는거얘요. 생각해봐요, 안그렇겠나요.》

   이쪽은 둘다 머리를 끄덕였다.

   츄얼이는 이밖에도 여러가지의 상식들을 알려줬다. 평상시에 개가 짐승잡이하는 재간이 있는가 없는가를 관찰해야한다느니 성질을 장악하고 훈련시켜야한다느니…츄얼의 말과 같이 여기서 살아갈려면 과연 개를 알고 길러야했다. 개는 사냥시 유력한 조수일뿐만아니라 호신위사(護身衛士)였다. 그것이 겨울이면 또한 허저인식의 썰매인 퉈르치를 끌기도해야했다. 하니까 개야말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축력이기도했던것이다. 여기서는 어느 집에서든 다 개를 기르는데 제일적어서 세마리, 어떤집에서는 지어 열몇마리나 기르기도했다. 이 일대를 예로부터 견국(犬國) 혹은 사견부(使犬部)라 부른것도 바로 이 연유에서일것이다. 원나라나 명나라, 청나라때에는 여기에 개정거장까지 설치되여있어서 그것이 지어는 주요한 운수도구로까지 리용되었다고한다.

    두 젊은이는 가싼다의 딸님이 명념하여 갖다준 강아지를 명심하여 잘 키워서 훌륭한 사냥개로 만들어보리라했다.

  

    사정모르는 씨베리야의 찬바람이 불어오기시작했다. 가련한 생령들을 한품에 포섭하고 먹여살려온 산천마저 추위에 떨어댔고 강은 어느새 얼어붙기시작했다.

    11월중순의 어느날이다. 심산으로 사냥을 가지 못한 둘은 아침을 든든히 먹고나서 또 하루작업에 나섰다. 차츰 근면한 살림꾼으로 되어가고있는 그들이라 애초에 계획한대로 잔짐승잡이에 재미를 붙인거다. 바람한점불지 않는 명랑한 날씨였다. 대지는 간밤에 내린 눈에 동일색의 흰이불을 덮고 조용한데 손거울같이 동그란 겨울해는 눈부시게 밝은 빛을 한껏 뿌려주고 있었다.

   《오늘은 족제비잡이하기좋겠구나.》

   《황가리잡이하기두 좋지.》

   《그렇구나. 황가리건 족제비건 담비건 여우건 눈에 띄는 놈은 다 잡자. 그래서 짐이 되면 갖다 팔고. 족제비가죽 한장에 오원각수라니 좁쌀 한 되를 사구두 이원각수나 남잖아. 》

    민호의 속구구였다.

    요즘 잔짐승잡이해서 돈푼을 손에 쥐게되자 그들은 우선 쌀부터 사다가 밥을 지어 먹었다. 물과 가까이 있으면 고기의 성미를 알게되고 산과 가까이 있으면 새의 울음을 가릴줄을 알게되는 것이다. 물고기잡이도 짐승잡이도 차츰 미릅이 트기 시작한지라 그들은 이제는 거촌(居村)의 궁상에 낯이 익는 것 처럼 이 고장의 환경에 적응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쌀밥생각만은 더해갔다.

    시르맨커근처에서 눈우에 찍힌 황가리발짝을 발견하자 그들은 두곳에다 덫을 놓고나서 함께 어래무시내를 건너서 서켠산으로 들어갔다. 산뜻한것이 동화속 그림같았다. 한곳에 이르니 하얀눈우에 한갈래의 오불꼬불한 짐승길이 그려져 있었다.

    최기덕이 서르미를 놓으면서 혼자소리로 중얼댔다.

   《여우야 여우야 제발 맞아다오. 그래야 우리 정형두 새 털모자나 하나 써보지.》

    전날 여우 한 마리를 잡아 깝지를 발쿠어 팔았더니 할대양(哈大洋) 20원이였다. 민호는 그 돈으로 새 털모자 하나를 사서 먼저 친구부터 쓰게 하고 자기는 유씨네가 준 낡은 털모자를 그냥쓰고있었다. 그래서 기덕이는 미안해하는것 같았다.

    민호가 그의 중얼거림을 잡아듣고 입을 열었다.

   《뭘 그러니. 봐라, 나도 털모자를 쓰고있잖아. 이제 여우잡으면 그건 팔아서 돈을 만들어야한다. 돈! 돈! 안그래. 그래야 총을 사지. 뭐니뭐니 해두 그게 관건이구 중요한거야. 총! 총을 말이다!》

    그는 고향떠나 만주당에 와서 느낀바를 새삼스레 회상했다.

    3.1시위가 있기 전해인 1918년 11월, 대한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여기 만주땅 길림성 화룡현 삼도구의 대종교총본사(大倧敎總本司)에 모여 세계에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발표한바있다.

   

    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우리 단군황조께서 상제(上帝)에 좌우하시어 우리의 기운을 명하시며, 세계와 시대가 우리를 돕는다. 정의는 무적의 칼이니 이로써 하늘에 거스리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5천년 조정의 광휘를 현양할 것이며, 이로써 2천만 백성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니, 궐기하라 독립군! 제하라 독립군!...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이것은 선언문의 결속부분이다. 애국심이 좀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열혈을 끓게 하는 그 웨침이야말로 얼마나 장엄가! 

    민족의 해방운동과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에서 가장 올바른 방법이 곧바로 무력투쟁이였다. 하기에 독립군(獨立軍)이 창립된것이다. 일제의 조선침략이 의병운동을 발기시켰고 3.1만세시위는 민중을 깨우쳐주었다. 승냥이는 오로지 렵총으로 맛섬이 지당함을! 침략자와의 대결에서 인식이 높아진 애국지사들은 그 어떤 형식의 타협보다도 직접적인 무장항쟁이 더 실제적임을 깨달은것이다.

    정민호가 몸을 잠그었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는 바로 만주각지에 건립된 여러 독립군들 중에서 무력이 제일강한 부대였거니와 주력이기도했다.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이자 대종교의 수령인 서일총재(徐一總裁)는 자신이 창건한 중광단(重光團)을 바탕으로 확대 재창건한 이 부대를 무적의 대오로 튼튼히 키우고자 그 얼마나 많은 심혈을 쏟아부었던가! 

    민호는 숨이 지는 시각까지 그를 잊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멀고도 험한 길이였다. 정민호는 자기가 무기운반대에 들어 친구들과 함께 서일총재를 따라 로씨야의 연해주에 가 수백자루의 장총과 탄약을 사서 등짐으로 지어 나르던 광경을 지금도 가끔 상기하군한다. 캄캄칠야에 억수로 쏟아지는 찬비를 맞으면서 적의 감시선을 넘어야했던 그 위험하고도 간고한 밀반입의 려정ㅡ그 것이 힘겹고 고달프긴했어도 또한 희열속에 희망이 벅차오르는 한때이기도했던것이다. 그때 그같이 육체를 혹사하는 고생이 있었기에 조선의 독립운동사상 금빛기록으로 남길 청산리대첩(靑山裏大捷)을 이룩할 수 있은게 아닌가!

    아아, 그러나 오늘은....        

    간밤에 내린 눈이 발목을 덮고 있었다. 둘은 짐승을 찾느라 아느새 싸다녔다. 개들이 갑자기 짖어댔다.

   《가만! 저게뭐요?》

    앞에 가던 기덕이가 터져나오는 함성을 가까스로 삼키면서 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들이 지금 가고있는 바로 저 앞에 체통이 여우보다 작고 몸체의 털이 갈색나는 몽통한 짐승이 나무뿌리를 뚜지다가 놀래여  달아난다.

   《너구리다! 너구리!》

    민호가 제손에 쥐고있던 지다창을 뿌렸다.

    앙증맞은 그놈은 맞지 않고 달아났다.

   《에잇, 이 미런한 등신보지!》

    민호는 자신이 미달한 투창거리에서 너무 성급히 서둘렀음을  깨닫고 자신을 꾸짖었다. 

    산비탈에 동그란 흙구멍이 하나 있었다.

   《오, 요게바로 고놈의 굴이구만! 됐소! 됐소! 이젠 고놈을 납짝 붙잡게 됐소! 》

    기덕이가 짐승의 굴을 발견하곤 너무좋아 손벽까지 쳐대며 춤을 췄다.

   《가만있자, 덤비지 말아야지.》

    민호는 우선 다른 어디에 짐승이 달아날 수 있는 구멍이나 있지 않는가 살폈다. 그리고는 그 구멍에다 치더룽이 빌려준 든든한 지다창을 들이밀었다. 한데 감촉이 물렁하리라 여긴 물체는 닿이지를 않고 되려 흙같은것이 창끝에 마쳐왔다.

   《어허? 요 앙증한 짐승이 어디루 갔을가? 뛸데없이 여기로 들어갔을텐데.》

    둘은 창으로 흙을 뚜지다가 그만 맥을 놓고말았다.

    토끼꼬리만큼이나 짧다란 겨울낮은 어느새 저물어갔던거다.

    그들은 너구리는 커녕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돌오면서 볼라니 시르맨커와 가까운곳에서 털이 새노란 여우털모자를 쓰고 발에 물고기깝지로 만든 원다를 신은 어래무마을의 로인 하나가 빙천(冰釧)으로 쪼아낸 강판구멍에다 후리채를 넣어 휘젓고 있었다. 방금 잡아낸 손바닥만큼한 붕어가 강판에서 마구뛰면서 분탕질했다. 로인이 초면이 아닌지라 민호는 다가가며 롱조로  말을 걸었다.

   《하 이거 로인님두 원! 남먹자는 고길 다 잡으면 우린 그래 굶어살란말입니까?》

    로인은 고개를 들더니 두 조선젊은이가 손에 지다창까지 들었건만 아무것도 못잡고 돌아오는 꼴이라 맹랑해서 놀려줬다.   

   《건데 자네들이 잡은 짐승은 어쨌나? 왜  뵈질을 않아?》

   《오늘은 공탕입니다. 아마 손에 재수가 붙잖는모양이죠.》

   《토끼새끼두 눈에 띄이던가 그래? 》

   《안띄긴요. 우린 그보다 더 좋은 놈을 놓쳤습니다. 너구리를 만났지요. 건데 고놈이 글세…》

    로인은 민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구리라니? 그놈은 본디 겨울에 밖으로 잘 안나오는 습성인데 나왔더라지. 그놈 아마 죽자구 환장을 했던가봐.》

   《글쎄요.》

   《그래 그놈도 못잡았다 그건가?》

   《글쎄요. 쫓았더니 굴에 들어간 놈이 없어졌습니다. 귀신이 곡할일이지 참.》

   《가만있자. 굴에 들어가더란말이지. 그러믄야 그게 오소리굴이지 너구리굴은 절대아닌거야. 너구리란 놈은 원체 게을러서 제굴은 안파구 남의 신세에 살아가는 짐승일세.》

   《아 그런가요. 그래서 음험하구 능청스런 사람을 너구리같은 놈이라고 하는 모양이죠.》

   《그렇네.》

   《건데 왜 들어간 놈이 없어는졌습니까?》

   《자네들은 오소리굴이 어떻다는걸 모르는군. 그놈을 굴이 안에 들어가서는 여러갈래일세.》

   《아, 그런가요!》

   《그렇네. 오소리란 놈은 굴을 깊게 뚫는데 그 안은 가로 세로  통해있는거네. 어디 그뿐인가. 거기다 굴도 여러층일세. 말하자믄 그놈들두 인간모양으루 자는 방이 따로있는거구 창고두 따로있는거구 칙간두 따로있는걸세.》

   《아니 뭐랍니까, 하하하!…오소리란 놈이 그래 제 굴속에다 칙간까지 만들어놓고 산단말입니까. 난 그 말씀이 어쩐지…》  

   《거짓말같은가. 아닐세. 정말이야. 생각해보게나. 그놈들이 겨울한철 내내 굴속에만 들어박혀있는데 똥오줌은 그래 어디다 누겠나. 아마 그래서 그런 궁리를 해낸것 같네.》

   《그게 정말입니까. 한데 로인님은 고놈의 짐승들이 궁리가 그렇게 기발하다는걸 어떻게 아십니까. 설마 물어보지야 않았겠죠.》

   《물어봤네, 물어봤어. 젊은이두 한 번 물어보게나. 그러면 오소리가 그렇다구 알려줄거네. 그놈의 짐승은 경각성이 대단히 높네.  약기두 하구…어떻게 약은가 하믄.... 이렇네. 그놈의 짐승은 남이 제 굴을 뒤지는 것 같으면 앞구멍을 제꺽 막아버린다네. 그래서 뒤지던 사람은 굴이 거기서 끝난걸루 알구는 그만 맥을 놓고마니 결국은 허탕치구마는걸세.》

    로인은 오소리습성을 말하면서 그놈을 쉽게 잡자면 가장좋기는 봄에 나가 동면을 깨고 활동하기 시작 할 때 굴에 내굴을 불어넣는것이라 알려주었다. 허저인들은 오소리를 더러쿵이라 부르는데 고기는 먹고 가죽은 벗겨서 자리를 만들며 기름으로는 화상을 입거나 물에 덴데를 치료했다. 로인은 오소리란 놈은 가을철에 많이 먹어 살을 피둥피둥 지우고는 음력 10월중순께쯤부터 동면에 들어가기 시작한다고 알려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오소리는 천성이 굴파기를 좋아하거니와 궁리가 기발하고 묘한데다 우습게 노는 놈들이다. 오소리무리에는 전문 굴을 파고 운반하고 파놓은 굴을 멋지게 손질하기만하는 기술공이 각각 따로 있는것이다. 말하자면 분공이 돼있는것이다. 굴파는 놈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굴을 팔 때 흙나르는 놈은 등때기는 밑으로 배때기는 우로 올라오게 반듯이 눕는다. 그러면 다른놈들이 파놓은 흙을 그놈의 배우에다 착착 올려놓는다. 그래서 짐이 다 된것 같으면 여러놈이 귀를 물어 당겨서 밖으로 끌어낸다. 그렇게 해서 흙은 파는 족족 밖으로 운반되는건데 굴을 다 파고나면 그 <운반공>의 등때기는 닳아서 털이 거진 다 빠지고만다. 그래 그모양이 됐다고 심히 불쌍히 여겨 여럿은 둘러싸고 아이고 이걸 어쩌나 몹시아플텐데 하면서 털이 하루속히 빨리나라고 홀홀 불어준다. 여럿이 모여들어 하도 극진히 위안하고 친절스레 구는통에 그 <운반공>은 그만 터지는 울분도 참으며 묵삭이고마는거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나서 민호도 기덕이도 우수워죽겠다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오소리동화가 과연 그럴듯 하다했다.

     시르맨커로 가는 강판우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둘은 다가 거기에 대해서는 무심해하면서 시르맨커로 들어갔다. 생각밖에 츄얼이가 와 있었다. 인정스러운 그녀는 가을에 자기가 손수따서 만든 실백잣과 허저인들이 차얼카차라고 하는, 생선을 져며서 말린 포를 갖고와서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니 져녁을 지어놓고 막 돌아가려던참이였다. 

    츄얼이는 짐짓 골난 모양으로 사내들을 핀잔했다.

   《온 집안살림 싹 다 털어가도 모르겠네요. 어디루 나가겠거든 문이나 잘 단속해야지 그게 뭔가요 집안 다 얼궈놓으면서.》

    민호도 기덕이도 량미간을 모았다.

   《아니, 문이 열려있었다니?》

    민호의 말 끝에 기덕이 동을 달았다.

   《문은 내가 꼭 닫아놓구갔는데. 틀림없어.》

   《틀림없다? 건데 문이 열려있더라잖아.》

    괴상했다. 민호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때려 밖으로 다시나왔다. 주위를 눈주어 살피고나서 시내로 내려가 강판우에 찍혀진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것은 북쪽에서 말타고 온 자가 말에서 내려 마을쪽으로 향하지 않고 여기 막까지 왔다가 되돌아간것임에 분명했다. 웬놈이 왔다갔을가?…머리속에서는 불길한 예감이 고패쳤다. 그는 고기잡이하는 로인한테로 달려갔다. 마침 로인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고기잡이도구들을 거두는참이였다.

    민호가 다가가 물으니 로인은 아까 백말을 탄 사람 하나가 큰강쪽에서 왔다가 되돌아가더라면서 얼굴은 보지 않아 자기도 누군지 모르겠노라했다. 그러면서 그 로인역시 이상하다고 했다.

   《웬놈이 왔다갔을가, 좋은 싹수가 아니야.》

    민호는 낯색이 한결 어두워졌다. 이제 어느날 불청객이 다시나타나 어떤 불길한 짓을 할지 모른다. 하니 방비책을 대야했다.

   《총이 없으니 활이라도 당장 하나 만들어야잖소.》

    기덕이도 같은 생각이였다.

   《그래야지. 준비해야겠다. 준비없는 대적은 실패다.》

    이틑날 그들은 굵기가 맞춤한 참나무를 골라 곱게 다듬은 다음 거기에다 피나무깝지를 꼬아 줄을 만들어 메우니 활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봐야 신통치않았다.

   

    그 다음날이다. 어제 고기잡이하던 로인이 또 왔기에 자기들이 만든 활을 내다뵈였더니 로인은 보고서 이게 놀음감이지 어디 활이냐며 웃었다. 그리고나서 로인은 그 자리로 돌아가더니 제것을 하나 가져와서 그들에게 주면서 두고 쓰라했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변이라구야!  

    로인이 준 그것은 제작된지 오랜 진짜활이였다. 활은 허저인들이 옛적부터 사용해 온 사냥도구였는바 화승총이나 양포가 나온 그제나 신식의 베르단이나 머스킷총이 나온 지금이나 의연히 버리지 않고 가끔씩 사용하는 무기였다. 그들이 제작하는 활은 단층궁과 쌍층궁 두가지였는데 로인이 가져다 준 활은 그 자신의 출중한 솜씨를 보여주는 정교하게 만든 쌍층궁이였다. 이 활은 길이가 한발이나되였는데 활체는 외층을 송목으로 하고 내층은 검정짜작나무로 했으며 그 사이에 노루힘줄과 사슴의 힘줄을 넣고 잔잔한 비늘이 붙은 고기가죽을 달여서 제조한 점력이 아주 센 풀로 붙이여 만든것이다. 활시위는 가느다란 사슴힘줄이였다. 그래서 활은 단단하고 질기고 탄성이 아주강했다.

    그 허저인로인은 두 젊은이가 봐서는 도무지 알아낼수 없는, 허저인들은 아무라커라 부르는 나무를 쪼개여 만든, 철촉을 단단히 박은 살 24대와 시위를 당길 때 쓰는 짐승의 뼈로 만든 가락지까지 주면서 그것을 다루는 방법까지 세세히 알려주었다. 고마왔다.

    사람의 심미감도 괴상하다. 원시종교에 대해 그토록 혐오하는 기덕이였건만 현대인이전 류인원의 발명물인 이 최초의 원시무기에 대해서만은 오히려 류다른 흥취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지어는 이것하나면 되리라면서가지 믿기까지한다. 하지만 민호는 그래도 총 한자루는 속히 갖추어야겠다고했다. 그러자면 돈주고 사창을 사야하는거고.... 방정맞게 그놈의 짐승잡이가 여의치 않았다.

    민호가 한창 어떻게 했으면좋을지 몰라 우유부단하고있을 때 심산에 들어갔던 치더룽이 집에 왔다가 시르맨커를 찾아왔다.

    민호가 의아쩍어했다. 

   《아니 왜 왔습니까? 산에 잡을 짐승이 없습디까?》

   《아니요. 왠지 화약냄새피우며 불질하곱푸잖아 그만뒀소.》

    치더룽은 말을 끊었다가 입을 다시열더니 이쪽을 향해 불쑥 물는것이었다.

   《자네들은 나하구같이 장작부업이나 하잖겠소?》

    생각밖이다. 민호는 자기 앞에 나타난, 수염이 꺼칠한 이 사나이의 강마른 얼굴을 말끄미 쳐다보면서 넌 아마두 꿈자리사나와 사냥을 그만둔모양이구나 하면서 머리를 한참이나 찌붓거리다가 되물어봤다.

   《그게 그래 되기나하겠습니까?》

   《왜서 안돼 받는데가 있는데. 이제 강이 풀리면 거기서 륜선이 달릴텐데. 기계를 움직이자면 장작을 때야하는거요. 안그렇소 장작을 때야한단말이요. 길이를 똑같이 두자되게 자른 장작을 높이석자 너비석자 길이 여섯자되게 쌓아놓으면 전에는 그 한무지에 륙원각수였는데 올해는 이원이 더 올라 팔원각수라오. 해볼만하지.》

   《그렇지만 우린 운반차도 없잖습니까?》

   《차없으면 앉은자리에서 도매상들한테 넘겨팔아도 되지.》

    민호는 이 일을 친구와 토론해보았다. 여기에 들어앉아 신경이나 도사릴게 있는가. 기덕이 역시 그 일을 해보는것도 괜찮겠다고 나섰다. 그렇다면 좋아. 남들이 하는 일을 우리라고 왜 못하랴. 일이란 배워가면서 하면 되는거야.

    두 젊은이는 츄얼이네 보고 강아지를 한동안 맡아서 길러달라부탁 하고는 그 이튿날로 톱과 도끼를 들고나섰다.

    그들은 산에 들어가 발매를 넣었다. 총을 살 돈의 아구를 마추기 위해서는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자는 그들이였다. 한데 아무리애써봐야 하루에 근근히 길림대양(吉林大洋) 2원을 쥘 정도. 그 벌이도 맘과 같이 되여주질 않았다. 축력이 있고 운수도구가 있어서 품꾼을 도고 전문하는 사람이거나 되거리장사군이나 그걸 받아서 직접 륜선주에게 넘겨파는 자가 어리(漁利)를 보고 있었이다.

  

    양력으로 1922년 1월. 어느덧 구정이 가까왔다. 집을 떠나 멀리사냥나갔던 사람들이 한패 두패 돌아왔다. 이즈음에 민호와 기덕이도 돌아오고말았다. 예로부터 라월30일, 즉 음력그믐날밤이 되면 허저인들은 서남쪽을 향해 꾸러미를 태우고 음식을 차려 백성(白城)을 잃었을 때의 망령들에게 제를 지냈다. 1115년에 녀진족 완안부(完顔部)의 수령 아골타(阿骨打)가 금나라를 세웠다가 천흥(天興) 3년, 즉 1234년 설날에 몽골군과 송나라군의 련합진공에 배겨내지 못하고 그만 망해버렸다. 당시 금나라의 국민이였었던 허저인들은 자기의 나라가 망해버린 이날의 고통을 세세대대 잊지 않게 하려고 설날이면 죽을 먹는다. 금조(金朝)의 첫서울 상경회녕부(上京會寧府)가 지금의 흑룡강성 아성(阿城)에서 남쪽으로 4리쯤되는 아스하(阿什河)지방의 백성(白城)이다. 그곳이 지금 허저인들이 몰려와 살고있는 여기 이 일대와는 위치상 먼 서남쪽에 있는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도 년년이 그믐이 돌아오면 그쪽을 향해 망국제를 지내고 있었다.

    린화가 시르맨커를 찾아와 설을 함께 쇠자해서 가보니 그의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한창 종이를 풀로 붙이여 만든 바구니에다 은박종이를 갖고 옛날 화페로 쓰던 배모양의 은전과 동전모양이으로 동그랗게 오린 누런종이들을 각각 담아갖고는 그것을 잿더미에 갖고 가 태우고 있었다. 위패가 모셔져있는 서쪽방 제단에는 술과 조이쌀밥과 물그릇이 간단히 놓여 있었다.

    츄얼이가 추리(李子)를 진하게 풀어 지짐떡을 굽고있었다. 민호나 기덕이나 다 그것이 저녁상에 올라 맛볼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고 이 집에서는 그것을 조종삼대라는 베부마바, 여러귀신의 화상이라는 우마즈 즉 부엌신, 불신, 집신한테다 제물로 차려놨다.

    민호와 기덕이는 그믐날밤을 그들과 함께 지내고 이틑날 설을 맞았다. 한데 이 설날하루 그들은 뜻밖에도 유씨네 식솔과 함께 좁쌀죽만 먹었다.

    민호역시 좁쌀죽을 먹노라니 자연히 가슴속에 망국의 설음이 괴여 올랐다. 조선의 독립운동자는 누구나 다 강제적인 <한일합방>을 승인하지도 않거니와 합방이 공포된 8월 29일을 국치일(國恥日)로 정하고 이날은 찬밥을 먹으면서 나라잃은 통한을 가슴속에 새기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조선사람도 허저인과 꼭같은 신세로 돼버렸을가! 민호는 탄식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들과 함께 설쇨 멋도 없는 가련한 독립군인의 신세!… 나는 그래도 부모형제있건만 친구는 어떠한가. 험악한 풍진세상에 혈혈단신이다. 눈만 껌벅하면 무주고혼이 되고말 신세였다.

    추운 겨울날에 시르맨커를 여러날 비워놓을 수는 없는지라 그들은 설이튿날에 돌아왔다.

   

    정월보름날 아침이다.

    개 두 마리가 몹시 짖어댔다.

   《저것들이 왜 저래?》

    민호는 밖에 나갔다가 그만 날아오는 총알에 어깨를 맞았다. 웬 백말을 타고 온 자가 그를 향해 권총을 갈긴것이다. 총소리에 놀랜 기덕이가 제꺽 활을 갖고 달려나와 돌아서는 말의 궁둥이를 쐈다.  그자는 놀랜 말을 타도 북쪽으로 창황이 내빼고말았다.

    끝내 불행한 괴사가 생기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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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조(金朝)는 의란에다 胡里改路를 설치하여 송화강중하류와 우쑤리강하류

         그리고 흑룡강의 중하류를 관할케 했다. 

      * 타스헌ㅡ잘게 썰어 지진 물고기.

      * 다라카ㅡ날것으로 먹는 물고기. 

      * 라부다하ㅡ물고기회.

      * 이마칸ㅡ허저인의 구전문학. 이마칸이란 이야시라는 뜻인데 문자가 없는 형편에서

        암기되여 전해졌음. 내용은 영웅구가와 민족복수, 자기 종족의 흥망과 성쇄,  고향

        과 청춘남녀의 애정찬가로 엮어졌다.

      * 서르미ㅡ복노(伏弩) 즉 암전(暗箭)이라고도 하는 사냥도구로서 모양은 활과 비슷함.

        짐승이 다니는 길에다 고정시켜놓고 살을 메워놓아 줄을 다치면 나가게 되어있다.

      * 퉈르치ㅡ개썰매.

      * 원다ㅡ물고기깝지로 만든 울라비슷한 신.

      * 빙천ㅡ고기잡이때 얼음을 끄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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