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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산란한 세월에도 계절은 드팀없이 바뀌여 어느덧 이듬해의 봄이 되였다. 자그마한 어래무시내가 다 풀리고 드넓은 흑룡강에도 어름장이 떠돌았다.
어느날 할 일은 없고 심심해서 속이 쏴난 기덕이가 바람쒜러 밖에 나갔다가 달려들어오더니만 벽에 걸어놓은 활을 제꺽 벗겼다.
《왜 그러니?》
《나는 놈이요! 얼마든지 맞히만하겠소!》
《오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시합해볼가!》
민호도 한달전에 산 베르단을 제꺽들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흰 매 한 마리가 머리우에서 빙 돌고 있었다.
기덕이는 활에 살을 메워 들었다.
《가만!》
민호는 당장 활시위를 놓으려는 그를 제지했다.
《왜 그러오?》
《쏘지 말어. 아까운건데.》
기덕이는 형님 제법 인도주인걸, 그래 어느때부터 짐승을 불쌍히 여기게된거요 하면서 말을 듣지 않고 엇서려했다. 그가 그러니 민호는 아니 네가 정말 이럴테냐 하면서 버럭 성까지 냈다. 기덕이는 그의 이같은 단호한 제지에 부닥치고보니 싸울수도 없는지라 하는수 없이 활시위에서 깍지손을 떼지 못한채 그만 들었던 활을 아래로 되내리우고말았다.
매는 시르맨커동쪽의 늪가에 내리꼰지더니 무엇인가를 제꺽 채갖고 하늘로 다시올라갔다.
《저놈이 토끼를 잡았구나!》
《그것보라니까. 내 잡을 걸 저놈이 채간거요. 에 참!》
기덕이는 맹랑한 일이라며 눈까지 찔 깔린다.
매는 서쪽으로 날아 어래무시내건너쪽 어디엔가 내리고 있었다.
《그놈의 매가 사람보다 사냥술이 더 좋구나!》
민호는 탄사를 올리고나서 매가 공중에 다시나타나지 않으니 이젠 그만 기덕이와 함께 시르맨커로 되들어오고말았다.
그런 후에 약 둬시간가량 지나서다. 개들이 짖어대서 나가보니 웬 사람이 시내저쪽에서 이켠을 건너다보는것이었다. 한쪽어깨에 렵총을 멘걸 보니 분명 포수인데 그의 한손에 털이 재빛나는 토끼가 한 마리 들려있었다.
민호는 그 포수를 보고 사납게 짖어대는 개를 말렸다.
《여보시오!》
포수는 이쪽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얼굴생김새를 보니 그도 허저족인데 어래무마을의 사람은 아였다.
《왜 그럽니까?》
민호가 물었다.
저쪽은 자기를 이쪽으로 건니여줄 수 없겠는가했다. 근처 다른마을에 사는데 사냥나왔다가 배가 고프던차 마침 인가를 만났다는거다. 민호는 속으로 정오가 지났다 그래도 어쩌겠냐 밥을 다시지어서라도 먹여보내야지 했다. 내 살림이 아무리구차해도 객지에 나도는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는것이 이들 허저족의 공유한 인품이요 미덕이였다. 황차 그도 기덕이도 이 종족의 손에 구원된게아닌가.
기덕이도 밖으로 나왔다. 민호는 그보고 포수를 우머르천에 태워 이켠에 건너오게 하라 하곤 자기는 곧 밥지으러 들어가려했다. 한데 바로 이때였다. 아까의 그 매가 다시나타나 그들의 머리우 매지구름이 떠도는 하늘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기덕이가 우머리천으로 그 사람을 이켠으로 건네웠다.
매가 낮추 두바퀴를 돌 때 포수가 올려다보면서 손가락 두개를 입안에 넣더니 맵짠 소리를 냈다.
매는 그 소리를 잡아들었는지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날아내려와 바로 포수의 그 채양없이 두텁게 만든 가죽모자꼭대기에 앉았다.
《야, 희한한데!》
《아까 그 매로구나! 포수가 매를 기른다더니 이게 바로 사냥매라는게구나!》
《그렇구만! 틀림없소! 내가 이걸 잡았더면 어쩔번했을가....》
《글쎄말이다. 갚지못할 큰빚을 질번했지.》
이쪽에서는 한편 그리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를 번한 방금전의 순간을 돌이키면서 감탄를 련발했다.
매는 몸체가 대단히 컸다. 정기있는 동그란 두 눈은 과연 매섭게 생기였고 쇠갈고리같은 부리와 발톱은 날카로왔다. 자못 위엄스런 놈이다. 실로 날새중의 왕이라하겠다.
개들이 주인노릇하느라 그러는지 얌전해지면서 더 짖지 않았다.
포수는 매를 낮다란 시르맨커지붕우에 올려놓았다. 매는 이상하리만치 주인이 놓은 자리에 꼼짝않고 앉아 눈을 조용히 감았다떴다한다.
《거 훈련 잘 받은 놈인 걸! 주인께 충성하겠구나!》
민호는 찬탄 한마디를 더 발했다.
물어보았더니 포수가 하는 말이 매를 이쯤 길들이자면 공력이 대단히 들길래 생각은 있어도 매를 길러 사냥하는 사람은 극히 드믈다는거다. 그러면서 보태는 말인즉 노력과 품을 넣어서 일단 길만들여놓으면 매가 개보다 곱절 값간단다.
그의 매는 해동청매(海東靑鷹)였다. 이 이름은 옛날 동부연해를 해동청이라 부른데서 지어진 것이다. 무원의 해동청마을이 바로 이 매의 산지이다. 해동청매는 등급을 분명하게 나눈다. 털빛갈이 순백색인것이 상등이고 갈꽃인 것이 귀중하며 흰색에 잡색털이 섞인것이 그다음, 털이 회색인것이 마감간다. 해동청매는 곧게 서면 키가 거의 3자나 되는데 꼬리로는 부채를 만든다. 이런 매는 하늘공중을 대단히 높게 날뿐만아니라 눈이 비상히 밝아 지면에서 까불대며 노는 쥐새끼도 보아낸다. 부리와 발톱은 쇠갈고리같아서 고니, 토끼따위는 물론 지어는 아이나 노루까지도 어렵잖게 채가는것이다.
료조(遼朝)때 통치배들은 해동청매를 특별히 좋아했다. 하길래 그들은 늘 녀진인들을 추기여 허저인과 매를 빼았는 싸움을 하게해서는 허저인들의 소유물이던 해동청매를 제손에 넣군했었다. 그들뿐이 아니다. 청조(淸朝)때에 이르러서는 해마다 새잡이꾼을 이곳에 보내여 10월부터 12월하순까지 그믈을 갖고 풀밭에 숨어 매를 전문잡게까지 했다. 털이 회백색이거나 잡색인것도 잡으면 백성은 기르지 못하고 매륵장경(梅勒章京_즉 都督)에게 보내야했거니와털이 순백색인 것을 잡았을 시에는 매륵장경도 감히 갖지 못하고 조정에 올리바쳐야했다.
나이 40대인 그 허저인포수는 말했다.
《우리는 증조때부터 매를 길렀소. 그러다보니 참…한 번은 매를 부릴만하게 다 길러놓으니 관가에서 와갖고 억지다지로 빼았아갔다오. 그래서 증조부는 빼앗긴걸 되찾으려했다가 그들손에 애매한 매만맞구…결국은 그 미열로 세상뜨고말았다오. 이 매의 조상이 바로 우리 할아버지가 그때 기른 매라오. 할아버진 산에서 나오지 않고 매를 길렀던거요.》
민호가 아 그런가 하면서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물었다.
《그래 지금은 매를 기르기 편합니까?》
《편하다는게 다 뭐요. 고태자서 일을 친 그놈의 청보산패 토비들이 내 저 매를 욕심낸지 오랬소. 그 무리에 진사해라구하는 녀석이 있는데 재작년그러께 날 찾아왔더구만. 돈을 줄테니 매를 팔라구서. 그러는걸 난 만원을 준대두 안판다구했지. 그랬다구 그놈이 어쨌는지 아오.》
《어떻게 됐습니까? 토비니까 곰상히 물러갔을리야없지요.》
《그렇지. 며칠안돼서 그자가 또왔던거요. 전번때처럼 두놈데리구서. 그땐 내가 집에 없었더랬소. 그러니 어떻게 한줄아오. 그녀석들이 글쎄 얼싸좋다구 매를 매창채로 메여갔단말이요.》
《저런! 그래서 잃었다는말입니까?》
《아니요. 일은 참 묘하게 됐지…마침 그날 난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그놈들하구 맞띠웠단말이요. 그래 죽자꾸나가 벌어졌는데 내가 매장멘 놈의 목을 하나 분질러놓고 진사해놈은 칼로 이마를 긁어놨던거요.》
이 사람이 그래 혼자몸으로 토비 셋하고 맞붙어 해냈단말인가? 다시보게 된다. 체대도 크지 않건만 과연 제가 기르고있는 매같이 단단하고 날파람있게 생긴 사나이였다.
그래도 의문은 남아있는지라 민호가 물었다.
《모를 소립니다. 토비가 남의 매까지 감질을 내다니. 그자들이 매는 해서 뭘하길래요? 설마 사냥에 부려먹자는건 아닐건데?》
《사냥에 부려먹는다는게 뭐요. 어느 고관어른께 진상할려구 그런게지.》
《원 무슨소린지. 정부관리도 그래 토비의 회뢰를 받는답니까?》 《이런 아득신보지. 자넨 그레 관리면 다 속밝은줄아나. 》
《그렇다면…》
《저 장작림만 보라구. 지금은 관동왕이 돼서 코대세우고 우쭐렁대지만두 그도 밑그루는 토비야. 그걸 누가 몰라서.》
사실 그러했다. 지금 동북의 패왕으로 불리는 장작림(張作霖)인즉은 토비출신인것이다. 속담에도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했거늘 어디가면 청렴한 관리를 보랴. 관리의 세도에다 토비들의 등살에 여기 동북땅ㅡ관동(만주)의 백성은 몸살을 앓고있었다.
혹시 그 녀석이 아닐가?…민호는 그의 얘기를 듣노라니 눈앞에 한 사람의 몰골이 색바래진 낡은 그림같이 얼른거려 물어봤다.
《칼에 이마를 긁히자 이름이 뭐라구요? 나이는 대략 얼마나됩니까?》
《나의 저 매를 훔쳐가던 녀석말이지. 그자는 이름은 진사해고 올해 나이가 아마 서른셋일게요. 듣자니까 그 녀석 워낙 종자가 나쁘다는구만. 할애비적부터 토비라나. 지악한 놈이지. 재작년 여름에도 그놈의 패거리가 당벽진서 숱한 고려사람을 죽였던거요.》
《아니 뭐랍니까!…그놈의 패가 당병진서?…》
전혀 뜻밖이라 민호는 깜짝놀랬다. 재작년이면 1921년이 아닌가. 그해여름의 일이면 바로 <당벽진참안>을 가리키는것이다! 옳다, 옳고말고! 그렇다, 그렇고말고! 틀림없다! 한데 흉수가 바로 그놈이라니!... 민호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으면서 주먹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덕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그놈이 바로 네였구나! 진사해!》
민호는 가철군이와 한동아리가 되여 유씨네 배를 략탈한, 가진구에서 피끗보았던 그 이마에 칼자리가 흉하게 그려진 자를 다시금 머리속에 떠올리면서 잔인무도한 그 토비무리의 이름까지를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넣었다.
매임자는 두 젊은이의 거동을 보고 비로서 이들은 자기와는 민족이 영 다른, 한족도 아니요 조선족임을 알게되였다.
한편 이쪽에서도 알고보니 매임자가 린근 어느 마을에 살고있는 허저인인것이 아니라 진사해의 보복을 피해 산속에 숨어사는 사람이였다. 그는 가뜩이나 인수가 적어 거의나 민멸(泯滅)의 위기에 처해있는 자기 민족의 운명에 대해 우려하고 근심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번의 <고태자참안>을 되새기는것이였다. 세상을 독천장으로 삼고 제멋대로 만용을 부리며 날뛰는 토비를 저주했고 백성들이 뼈가 물러나게 벌어서 관병을 먹여살려내건만 이럴때도 나서지 않으면야 그놈의 군대는 해서 뭘하겠느냐 하면서 그자들을 숙청하지 못하는 정부의 부패함을 원망하기도했다. 속에 불만이 꽉 차있는 사람이였다.
어디 그 한사람만의 감정이란말인가. 과연 그러했다. <고태자참안>이 발생하자 몸시 불안해난 백성들은 한결같이 나라에거 군대를 동원하여 하루속히 잔악한 토비를 숙청해버릴 걸 요구했다. 하건만 움직이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토비들은 료략질을 계속 심하게 감행하고 있었다.
《안됩니다. 무능한 정부만 믿고 멍청해있다가는 어느때 또 화를 입을지 모릅니다. 횡래지액이라잖습니까. 어느때 재난이 날아와 눈깜짝새에 온 마을 온 민족이 전멸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어찌하면좋겠소?》
《제 하나의 안신만 생각말고 온 마을 온 민족이 뭉치게해얍지요. 안그렇습니까. 더구나 이럴때는말입니다. 모래알같이 흩어지지 말고 쇠덩이같이 단단히 뭉쳐야한단말입니다. 생각해보시오. 안그리구야 되겠습니까,그래?》
전에 사망한 가싼다 유만진의 7일제날 민호는 나쟈에게도 이렇게 깨우쳐주면서 충고한적이 있다. 그래서 내내 불안과 공포에 잠겨 떨고있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용기를 내여 한사람같이 뭉쳐진것이다. 청장년들은 한군데서 먹고 자면서 항시 대적준비를 했고 부녀자들도 집일만하지 않고 련방소조에 들어 남성들과 마을수위를 분담하고 있었다.
하위, 무홍윤, 치치하에 살던 허저인 가족 여러호가 모여들어 어래무마을은 갑작스레 흥성흥성했다. 아버지가 죽어 그 뒤를 이은 젊은 가싼다 나쟈는 살길을 찾아 온 그들도 책임지고 돌봐줘야했다. 혈관속에서 같은 피가 흐르고있는 수난의 동포가 아닌가! 그는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몸을 내번지면서 맡은 사업을 적극적으로 해나갔다. 마을의 보위를 조금치도 늦춘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원 주민과 피난민들을 한데 합쳐 고기잡이철이 돌아오면 집체로 고기잡이에 나서게끔 조직도 해놓았다.
어느날 기덕이가 제 속맘을 내비치였다.
《정형! 이만하면 우린 없어도 되잖을가.》
《가버리자구? 가려거든 너 혼자서 가. 난 못가겠다.》
민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가슴속에 넣어두고 사랑을 싹틔운 녀인이 있기도하거니와 허저인 모두가 이같이 어려운 처지에 든것을 뻔히 보고도 외면할 수 없었다. 저만의 안신을 위해 훌쩍 가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건 너무나 몰인정하고 부덕의(不德義)한 짓이 되고마는게 아닐가.
량심이 절대 허락치 않았다.
《정형 안가면 나도 안가겠소.》
아무때건 자기는 가야 할 사람이지만 적어도 토비를 숙청하기 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금 느끼게 된 기덕이는 민호와 함께 동고동락 하면서 환난상구하리라 한번다시 결심했다.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봄과 여름철이 다 가고 가을을 잡아들자 50여명 악당으로 결성된 청보산마적들이 다시금 동강현내에 나타나 무장비상태에 있는 마을들을 골라가며 료략질하기 시작했다.
《그놈들이 도금한 가락지두 다 빼앗는다누만. 빼다가 못빼면 손가락까지 찍어버리면서까지.》
《에그, 끔찍해라. 어쩜 그렇게 까지…》
《군대가 뭘하구있는가, 밥통들!…》
《가자, 관청이 정말 맥못쓰는 형편이면 우리가 나가서 싸워보자! 관청이 그자들과 한덩어리라면 아예 그것마저 뚜드려부시자!》
백성들은 웨쳐댔다. 분노가 극에 이르고 있었던것이다.
어느날 나쟈가 렵총과 검으로 무장한 50명의 청장년들을 데리고 동강진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때를 기다렸을 뿐 마음없거나 성의없어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참지 못할 반항으로 번져나가자 군벌들은 그제야 리유좋게 얼버무려대면서 나섰다.
아문의 기마대와 포수대가 조직되였다. 한데 그 주력은 모두가 허저인들이였다. 그들은 기마술이 좋거니와 사격술역시 좋았던거다.
《나를 기마대의 대장질을 하라누만.》
아문의 기마대가 조직되던 날 나쟈가 두 조선젊은이를 만나서 하는 말이였다.
《시키면 해보지요 뭐. 나쟈형을 내놓구야 맡아 나설 사람 어디있습니까. 사람들이 그깟 무럼생선같은 아문장교의 말은 개방구만도 안여길텐데요, 안그렇습니까.》
민호가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임직을 축하했다.
기덕이도 마찬가지였다.
포수대의 대장은 봄에 매를 갖고 사냥다니던 그 허저인 사나이였다. 하여 민호도 기덕이도 그는 성명이 위하연임을 알게되였다.
두 조선젊은이도 손에 총을 잡고 나쟈의 기병대에 들어 청보산토비숙청을 나섰다. 그네들의 이같이 의로운 행위에 대해 모두들 고마와했다. 지어는 위대한 국제주의자라고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토비숙청은 간거했다. 청보산마적들은 다가 지형에 익숙하고 날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자들은 북만에서 민심을 잃을대로 잃은데다 전에 다른 토비무리들과 척을 짓다보니 원조받을 곳이 없어 점점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같은 형편에서 숙청에 탄원해나선이들의 들끓는 복수심과 멸적의 신념이 용감성을 한결 더 발휘케했다. 하여 이번 토벌은 2개월내에 끝을 보았다.
한데 동강진우쪽 부금(富錦)근처에서 청보산패마적 과반을 숙청하고나서였다. 기마대와 포수대가 밀산쪽으로 내빼는 잔당을 계속추격하여 완달산(完達山)골안에서 최후의 숙청을 벌렸을 때 그 악당의 무리에서 세번째가는 인물이였던 진사해를 그만 놓쳐버리고말았다. 그자 혼자만이 어느새 말을 집어던지고 새여버린거다.
《그놈을 잡아야하는건데, 참!》
《화근을 남겼구나.》
속이 어찌 개운하랴. 기덕이도 민호도 몹시 맹랑해하였다.
토비숙청을 마무리지으면서 련달아 검거풍이 세차게 일어났다. 그래서 전에 토비와 내통이 있던 자들이 련속잡혀나오게되였는데 그 속에는 무원의 건달 가철군이도 끼여 있었다. 그가 잡혀가자 가씨는 자식을 감싼 죄로 파직당했고 집은 패가망신하고말았다.
그런데 얼마후 류치장에 집어넣은 가철군이 감쪽같이 담장을 뛰여 넘어 탈출했다. 진사해가 그를 구출한 것이다. 그런줄을 민호와 기덕이는 물론 나쟈까지도 몰랐다.
양력으로 1924년 2월 5일, 이날이 춘절이였다. 현아문은 춘절전에 포수대만 해산시켜 집에 돌아가서 식구들과 함께 명절을 쇠게하곤 기마대는 해산시키지 않았다. 원인이라면 청보산마적을 섬멸했지만 아직도 몇 명씩 작당한 강도단들이 남아서 의연히 작경을 놀거니와 명절기간을 리용하여 다른현경내에 있는 토비들이 래습 할 수 있길래 현성의 보위를 가강히 해야한다는거다.
《저들만 안녕하면 단가, 제길할!》
나쟈는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그믐제를 지낼 수 없게되자 자연히 불만이 생겼다. 한들 무슨 방법이 있는가.
《아들이 못가면 우리라도 가서 제를 지내는게 어떨가.》
기덕이가 먼저내놓는 생각이였다.
《그래. 그리해야지. 우린 그러는게 좋겠구나.》
민호도 생각이 돌았다.
그런데 며칠간 말미를 얻자하니 아문에서는 일반대원도 되지 않는다면서 명절휴가가 없다는걸 그래 모르느냐 정 가겠거든 퇴대하고가라했다.
《그깟거 퇴대하라면 하지. 하루 밥 세끼먹여주면 그게 은헨가. 제기!》
기덕이 두덜댔다.
《차라리 그러자. 그러는 편이 났겠구나.》
둘은 그 자리에서 퇴오를 신청했다.
비준이 어렵잖게 제꺽됐다.
《좋구나, 우리들만의 자유를 다시찾아서!》
민호는 기마대를 나오고보니 되려 거뿐하면서 마치 강호산인(江湖山人)으로나된듯한 기분이다.
《정형, 아직은 사냥철인데 우리 춘절쇠고 나가볼까?》
《그러는게 좋겠다. 올핸 큰놈을 좀 사냥해보자꾸나.》
《그러자면 심산으로 들어가야잖소.》
《거야물론이지. 위하연이란 사람있잖아. 우리 그일 찾아가자.》 그들은 약속과 같이 춘절을 쇠자 곧 행동에 나섰다.
어래무마을을 떠난 그들은 사흘만에 퍼그나 깊은 산속에서 외계와는 접촉이 너무나 적어서 반야인상태에 처해있는 한 허저인동네를 발견했다. 인가라곤 모두합쳐봐야 다섯호밖에 안되였는데 그나마 장정이라곤 셋뿐이고 나머지는 부녀와 아이들이였다. 세상에 이런 구석진데도 있단말인가! 그들은 아직까지 고태자에서 제 동포가 토비들 손에 무리로 살해된것도 모르고 있거니와 겨울내에 선후하여 장정 둘이나 야수한테 잘못된것으로 하여 곤혹을 겪고있었다. 이쪽에서 찾고있는 위하연이란 사람은 여기에 살고있지 않았다.
민호와 기덕은 여기서 자기들이 전에는 보지못했던 괴상한 건축물을 발견했다. 그건 허저어로 원터허안코라 부르는건데 높다란 나무우에다 공중다락모양으로 지은 자그마한 나무집이였다. 이 마을에 모두 다섯채였는데 다가 꼭대기에 길이와 너비가 둬자되는 정방형의 통풍구가 뚫어져 있었다. 벌방이 싫어서 여기를 떠나지 않은 그 허저사람들은 갑작스레 지군하는 산물이나 맹수의 습격을 막기 위해서 이런 집을 짓고 사는것이였다.
마을거민 중 중국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의 포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마저 발음이 변변치 않아 곱씹어말하고 손짓표현을 해야 의사소통이 겨우되였다.
그 사람은 여기서 서쪽으로 약10여리만 더 들어가면 <마부카골>이 있는데 거기에는 얼마전에 사람잡고 선불맞은 곰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곰을 허저인들은 마부카 혹은 마바카라 불렀는데 뜻인즉 <큰나으리>라는거다. 이곳의 곰은 종류가 두가지였다. 하나는 반달곰인데 이런 곰은 체통이 작아 무게가 기껏해야 3~4백근밖에 안나간다. 반달곰은 가슴패기에 흰털이 있으며 령민해서 능히 나무로 바라오르고 구새먹은 나무속에서 산다. 그래서 천창(天倉)이라한다. 다른 한가지는 말곰인데 그건 반달곰보다 몸체가 퍽 크거니와 무게도 썩 더 나가 보통 8~9백근씩된다. 이런놈은 기운이 대단하지만 굼뜨고 나무에 바라오를줄도 모른다. 그래서 거의가 땅굴이나 풀더미속에서 사는거다. 그런다고 지창(地倉)이라 한다.
《선불맞은 놈 사납다는데 잡을만할가.》
《사납다고 못잡으면야 바보지 뭐야. 황차 인명해친놈인데 살려둬선 안되지.》
민호는 허저인포수가 겁을 집어먹고 그 곰을 건드리기 무서워하는 것 같아 기덕이보고 꼭 잡아버리자했다. 정성껏 자래운 두 사냥개의 기지와 담량도 그렇고 자신의 사냥술이 진짜 어느만큼한가를 시험도 쳐 볼만한 기회였다.
얼굴이 강마르고 털보인데다 한쪽 볼에 험한 상처까지 있어서 홉사 병든 늑대같아보이는, 그래서 나이조차 대중키어려운 그 허저인 포수가 두 사람을 인도했다. 그는 떠나기 전에 먼저 <마부카골>이 있는 서쪽을 향해 꿀어 엎디여 산신령께 이제 세사람이 그곳으로 떠나가오니 제발 변고가 생기지 않게 보호해주십사 빌었다.
민호와 기덕이는 그가 시키는대로 따라했다.
포수가 주의줬다.
《내가 짐승 몇마리 잡을 수 있다구 말마슈.》
《예. 그럽죠.》
《톱자리 난 통나무그루터기에는 앉지를 마슈. 거긴 산신령이 앉는 자리외다.》
《예. 그럼 앉지 말지유.》
《총탁소리두 철붙이 소리두 내지를 마우. 그러면 운수가 달아납네다. 》
《그렇다면야 주의합지요.》
《젠장! 주제에 되겐 까다롭게구네.》
기덕은 끝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뱉었다.
민호는 그보고 여기와서도 이네들의 풍속은 지켜줘야한다고 좋게 타이르고나서 보탰다.
《우리 곰사냥하고 저 다락집도 들어가보는게 어때. 아직두 원시사회를 벗어못난 이치가 손님대접을 어떻게 하는가두 볼겸. 》
기덕이는 그렇게 하자 이거야말로 모험을 동반하는 진짜고찰이 아니냐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외지손님이 산속에서 살고있는 이러한 허저인의 포수집에 들렸다면 돌아갈 때 주인모르게 소금이나 담배같은것을 한움쿰씩 훔쳐갖고가는게 례의였다. 그래야만 그 포수집은 앞날이 길하다고 여기는것이다.
셋은 한낮때 <바브카골>에 이르렀다. <바브카골>은 묘사그대로 아름들이고목들이 어빡자빡 너어지고 부러졌고 잠목들은 혹은 휘여지고 혹은 탈린것이 꼭마치 마귀돌개바람에 재를 입어 훼멸의 경지에 이른 사곡(死谷)과도 같이 스산하기짝이 없었다.
세 사람은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빨랑대고 우쯜렁대던 개들도 여기와서는 멀리가지 않고 사람의 발뒤축을 바싹따랐다.
그 골 어구로부터 약 200여백메터쯤 들어갔을때다. 개 두 마리가 넘어갈 것 같이 기우둠한 아름드리 느티나무주위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마구짖어댔다.
《저것들이 아마 짐승의 냄새를 맡았나보다.》
민호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면서 다가가서 살펴봤다. 그것은 벼락에 허리가 뭉청 잘리운 구새먹은 통나무였는데 짐승의 발톱에 험하게 긁혀 나무껍질이 거의다 벗겨졌다. 그속에 분명 곰이 들어있을것이다. 하건만 그놈은 끄떡하지 않는다.
《네놈이 어디 몇참견디나보자.》
민호는 아느새기다려도 동정이 없자 손을 쓰기로 작심했다. 그는 허리에 찬 가죽부대에서 주먹만큼한 강낭떡을 꺼내여서는 그것을 총닦개걸레에다 쌌다. 그리고나서 통나무로 벌벌 기여올라가 그걸 나무통의 아구리에다 집어넣었다.
아니나다를가 좀있으니 반응이 생겼다. 개짖는 소리를 들었으련만 셈평좋게 잠을 자고있던 반달곰은 코구멍을 쑤시면서 페속으로 스며드는 총기름냄새를 더는 맡아낼 재간이 없는지라 그 구새먹은 나무통속에서 엉기엉기 게바라나오기 시작했다.
그놈이 허연 가슴팍을 드러내면서 온 몸뚱이를 통밖으로 쑤우욱 올리밀때였다. 민호는 장탄한 베르단을 들어 조심스레 겨누어 질끈갈겼다.
《맞았다! 맞았다!》
기덕이가 기뻐서 환성을 내질렀다.
단방에 치명상을 입은 그 반달곰은 아래로 쿵 떨어지더니 다시일어나지를 못했다. 4백여근은 실히나갈 놈이였다.
《제깐놈이 내 총구멍을 벗어나. 하하하!…》
민호는 곰을 잡고 득의양양하여 허저인 포수보고 곰이 어디에 또 있는가고 물었다. 허저인 포수는 안으로 더 들어가면 저런 반달곰이 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길을 지지 안내하던 그가 민호를 더 이상 못들어가게 팔을 잡는것이였다. 왜 이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낯색을 불쾌하게 지으면서 홰홰 손사래질했다. 너희들이 방금 말을 듣지 않고 그같이 들썽하게 웃었으니 산신령을 노엽힌거요 그래서 들어가면 낙자없이 곰한테 뜯기우리라는거다.
《제길할! 귀신은 어디서 배를 곯고있는지.》
기덕이는 화나서 두덜대면서 저런거나 어서 잡아가지했다.
그래도 말을 들어야지 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장정 둘을 더 불러다 잡은 곰을 날라갔다.
두 젊은이는 웅담과 가죽만 벗겨가지고 고기는 다섯몪으로 쳐 그곳의 주민들이 골고루 나눠갖게 하고는 그만돌아오고말았다.
사냥은 즐거운 놀음이였다. 그들은 강이 풀릴때까지 짐승을 여러마리잡아 예산밖에 수입을 적지 않게 올리였다.
나쟈는 봄이 지나 여름물고기잡을 철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왔다. 아문의 기마대 대장직을 그리 탐탁하게여기지 않은 그는 집에 식솔은 많아도 벌손이 적다는 리유를 들이대고 겨우풀려나온거다. 두 조선청년이 이제는 토비를 숙펑했겠다 돈도 장만했겠다 그냥 눌러있을리는 없어 훌 떠나버릴것만같아 나쟈는 집으로돌아오자바람으로 시르맨커를 찾아왔다. 이때는 기덕이는 없고 민호혼자서 버들가지로 통발을 엮고있중이였다.
나쟈는 그를 대하자 좀 비틀린소리로 말을걸어왔다.
《아니, 간다는 사람이 그건 틀어서 뭘하오?》
이쪽은 웃었다.
《갈때는 가더래두 제 먹을 고기야 잡아야지.》
《그래 언제쯤 가려오? 듣자니 당장이라는데 그게정말이요?》
《무슨소리를… 누가 그럽디까, 우린 안갑니가.》
《아니 뭐라오? 안간다니 그게 정말인가?》
《내가 어느땐 거짓말을 합디까.》
《안가면좋아. 그래야지. 그래야허구말구. 내 좀 얘길해볼가.》
나쟈가 정색해서 대방의 안색을 살핀다.
《할 말이 있으면 해봐요. 우리끼리 뭐 못할말이 있다구서.》
민호는 대방이 자기와 하자는 말이 대체 무엇일가 속으로 점치면서 얼굴에 웃음을 그믈그믈 피여올렸다.
《그럼 내 털어놓구 말하지. 자넨 그래 우리 집 츄얼이를 어떡헐참인가? 정혼이 다 된 애를 딴바람들게 해놓구서는 그래 그냥 아닌보살을 할 셈인가? 자네들 일 참 답답하구만.》
《답답 할것두쌨네. 츄얼이 알려주지 않습디까. 우리지간의 일은 빤하다구요.》
나쟈가 두눈을 끄무럭거렸다.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거다.
《빤하다니 대체 어떻게 빤하단말인가?》
그가 그러는게 재미있어서 민호는 나오는 웃음을 삼키고 능청떨었다.
《내가 대상이 있는게 빤하지 뭐.》
《거기가 대상있다, 어디메?》
《여기 어래무에요.》
《뭐라, 그게 누군데?》
《츄얼이.》
《그러니 당자끼린 언녕 결정이 돼있었다는건가. 그런걸 여적지 감추고있다니 원! 사람이 이뭉스럽긴!》
나쟈는 나무리듯 하면서 흔쾌하게 웃었다.
민호는 곰을 잡아갖고 어내무로 돌아온날밤에 츄얼이와 정식으로 혼약이 이루어졌던거다. 일은 잘 풀리였다. 기덕이가 무르익은 과실인데 제때에 따지 않으면 벌레먹고 썩어서 못쓰게 된다면서 왼심을 써 둘이 마침내 천사만려를 풀고 입까지 맞추었다. 벙어리속은 낳은 어미도 모른다고 튀한 수탉이 봐도 놀래서 달아날 그런짓을 츄월이가 감히 하고서는 그 누구와도 아직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있으니 오빠인들 어찌알랴.
아무튼 잘된일이였다.
생기와 활력만이 무미함을 메울수있었던 생활이 다시금 옛궤도에 들어서고 있었다. 해가 뜨면 깨여나 늪에 놓은 통발을 들추고 주낚을 놓고 아침을 먹는다. 그러느라면 린화와 나쟈가 전해에 다시 손질하여 쓰게 만든 원래의 낡은 배를 몰고온다. 그러면 민호와 기덕이는 그들을 따라 큰강의 어장으로 간다. 그물을 느리고 거두어 고기를 잡는다. 잡은 고기를 집에 남길만큼 남기곤 팔 것은 깨끗이 다 팔아버린다. 그리고는 또 잡고…
단조롭고 조용한 생활이였건만 그 흐름속에도 소용돌이는 있는것이였다.
어느날 아침 기덕이가 말했다.
《정형 오늘이 무슨날인지 아오?》
《오늘이라?…》
《그래 오늘. 잘 생각해보우.》
《륙월이십팔일이라…그렇구나! 자유시사변! 어언간 삼년이 되는구나! 세월이 과연 빠르기두하다!》
《어쩔테요?》
《뭘말이냐?》
《난 아무래도 가봐야겠소.》
《네가 혼자서?》
《정형이야 쉽게 떠나질 못하지. 않그러우. 그러니까 내혼자 나가서 돌아보고 올테요. 대체 어떻게들 된 모양인지.》
독립혁명진영의 형편을 알아야 하는데 몰라서 답답했다. 기덕이는 민호와 토론하고 어래무를 떠나갔다. 먼저 쏘련으르 건너가 그곳의 형편부터 알아오기로 했다. 기한은 한달. 늦어도 8월초는 꼭 들아오도록 약속하고 겨울에 사냥해서 번 돈은 똑같게 나눠가졌다. 그런것을 기덕은 자기 몫에서 절반을 갈라내여 잔치에 보태쓰라면서 부득부득 내놓고 갔다.
민호는 친구를 훌쩍 보내고 보니 밀려드는 적막감에 한동안은 마음을 진정키 어려웠다. 그렇다고 시간을 허송할 수도 없었다. 그는 서둘러 신방이 될 시르맨커를 깨끗이 거두었다. 그리고는 어느날 미혼처를 데리고 동강진으로 장보러 갔다. 돈을 주어 그녀가 마음들어하는 이불감과 옷감을 사게했고 살림기구를 갖추게도 했다. 마련없이는 잔치를 할수없던거다.
한편 잔치날이 림박하자 딸을 시집보내는 유씨네 집에는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들어 잔치음식을 만드는데 봉족들었다. 꽃바람이 불어서 남까지 싱숭생숭 즐겁게 만드는 가기(佳期)였다. 이슬을 머금은 함박꽃이 바야흐로 망울을 텃치려 하듯이 츌얼이와 민호의 사랑은 무르익어 이제 막 피여나려한다. 저것보오 얼마난 황흘한가고 아낙네들은 웃고 떠든다. 조선총각이 일등 다즈처녀를 채간다느니 츄얼이가 남편잘만나 복가마를 탓다느니…
제 민족을 내놓고 이족의 아가씨를 품에 넣는것도 팔자일가.
민호와 츄얼이는 어느덧 새 생활이 엮어질 결합의 날을 맞았다. 이날 조선민족의 혼례처럼 륙례를 갖추지 않았다.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혼례식은 제대로 거행했다. 장소는 널직한 신부의 집. 허저인들의 풍속은 혼례식을 려명때에 올린다. 잔치이튿날은 색시가 시부모님께 절하고 시집올 때 갖고 온 작은 도끼로 나무패고 물길어 첫때를 하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이번잔치는 좀 달랐다. 허저인의 풍속을 존중하면서 거치장스러운 세절은 빼고 그대신 신랑신부가 맞절하는 순을 새롭게 삽입해 둘은 백년해로를 언약했다.
축복이 값진 날이라 세상만물이 웃어주는것만같았다.
궁상에 파묻혔던 산촌이 환락에 잠기였다. 이 한날은 마치도 극락에나 든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불공평은 불가피의 막연한 존재였다. 제 각시감빼았기고 분해하지 않을 인간이 세상에 어디있으랴. 전에 츄얼이와 혼사말있었던 루싼이는 마음 옹쳐먹을게 빤하다. 허나 민호는 자기가 자유련애로 승리한 사람이니 츄얼이를 차지할 리유가 당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또한 공연히 끼여들어 정적이 됐구나 하는 자책감도 없지 않아 쑥스럽기도했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것땜에 남들앞에서 병신같이 놀고싶지는 않았다. 낮에 음식쓰고 오락을 놀았다. 어래무의 처녀총각은 물논 어른들도 춤출줄을 모르는 이라곤 없었다. 모두들 제 장기를 풀었다. 그들은 저마다 허리에 방울을 차고 손에는 모양이 접시같은 동그랗고 고운 북을 들고 두드려대면서 춤을 추었다. 어떤 동작은 신통히 쌀만춤과도 같았다. (아마 그 영향이 대단한모양이다.) 그래도 거개가 캐활한 동작이니 보기좋았다. 간청에 못배겨 끌려나온 민호는 잠시 어쨌면 좋을지 몰라 무밋거리다가 각시더러 쿵캉치를 불라했다. 그리고는 거기에 맞추어 조선춤을 냅다췃다. 덩실덩실 춤이 잘도나갔다. 모두들 보기좋다고 갈채를 보냈다. 누가 언제 이런 잔치를 보기나했으랴. 여기에 허저인마을이 생겨서는 유사이래처음이라 한다. 이날은 허저인처녀와 조선사나이의 결합을 축하하느라 온 마을이 밤늦게까지 명절기분에 함뿍잠겼다. 한데 친구가 없어서 그의 축하를 받지 못하니 섭섭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별수 있는가.
민호는 어여뿐 안해의 살틀한 애무와 육체적결합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였고 생활은 실로 꿀같이 달고 행복했다. 츄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기쁨실린 풍염한 얼굴에서는 언제나 가실줄모르는 예쁜미소가 남실거렸다. 순정에 파묻혀 부부지정을 감수하고있는 이 허저인 새각시는 한없이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안고 행복한 미래를 동경하면서 매일매일 아름다운 환상의 꽃그물을 떠가기 시작했다.
《여봐요. 조선치마저고리 내가 입으면 어때보일가요?》
《오 그걸말이요. 그걸 츄얼이가 입으면야 정말 선녀같이 고울거요.》
남편이 내던지는 달콤한 말에 츄얼이는 홍시감같이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면서 잡초롬히 생각에 잠기였다.
민호는 안해의 솜마음을 민감하게 읽어보고 이제 어느때든 자기가 조선민족의 복장을 만들어 이 허저족녀인에게 해입혀보리라 맘먹었다. 그렇지, 가진구에 사는 김씨네더러 조선치마저고리를 해달라고 사정해보자. 값을 주는데야거절안하겠지.
어느날 그는 과연 옷감을 사갖고 가진구에 사는 김씨댁을 찾아갔다. 딸많은 김씨아낙네는 처음 이 동포젊은이가 혼사말을 온줄로 알고 무등 반가와했다. 그런데 나오는 얘기의 품새가 아주 영 딴판인지라 그만 낯색이 굳어지더니 자기는 남이 입을 옷을 해줄 짬이 없다면서 청을 퇴박하는것이였다.
멋도 없고 맹랑하기 그지없었다. 이젠 어떻게 해야하는가. 헛걸음을 치고 만 민호는 안해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들것 같아서 이 생각 저 생각을 굴린 끝에 우선 한복입은 안해의 화상이라도 한 장 그려주리라 맘을 먹게됐다. 츄얼이는 남편이 시키는대로 고스란히 모델을 서주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곁에 다가와 꼼짝않고 서서 남편이 그리는 그림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군했다.
서투른 목수손에서 훌륭한 가구가 만들어질리없고 어설픈 피장이손에서 질좋은 가죽옷이 나올리없지 않은가. 그림그기를 좋아는 하지만 재간이 그닥지 않은 손에서 미인상이 그려질리 만무였다. 하지만도 녀인은 지금 남편의 손에서 그려지고있는 것이 곧바로 자기라고여기면서 기뻐했다. 마을의 여느 녀인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태여나 시집오도록 여직 사진한장도 찍어못본 신세였다.
《이건 당신이 아니야, 절대아니라니까. 내 각시 츄얼이야 얼마나 미색인가. 안그렇소. 그래서 내가 욕심낸거지. 말하자면 바로 저 리도령이 춘향이한테 반하듯이.》
《춘향이가 누군가요? 그녀잘 면목아나요?》
《하하하, 이거… 내가 그 녀잘 아는가구? 아니요. 그녀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아니구 이마칸에 나오는 아가씨모양으루 바로 이야기의 인물인거요.》
민호는 갈필(渴筆)을 손에서 놓지 않은채 하던말을 이었다.
《내가 학교다닐 때 <춘향전>을 읽어봤소. 그 책에다 쓰기를 그녀자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옛날 춘추때 위장공의 처모양으루 고왔다누만. 덕행은 왕계의 처와 주문왕의 처를 담구. 말하자면 그 두 부인은 동양녀인들 중 부덕의 대표자로 되여있는거요. 춘향이가 바로 그렇게 출중한 녀자였다는소리겠지. 물론 그게 지어낸 얘긴 하지만도 그같은 녀인쯤이야 그래 우리 조선에 없었을가.》
《있겠죠. 물론있겠죠. 없으면야 그런 얘기가 나왔을가요.》
《들어보오. 그녀자는 문필이 좋은데다 마음 또한 화하고 순한 녀자였다오. 이비의 정절을 품었으니 금천하의 절색이요 만고녀중 군자라 했소.》
《그건 무슨소린가요, 만고녀중에 군자라는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녀자중의 군자라는 거요. 군자는 학덕이 뛰여난 사람을 가르키지. 말하자면…》
민호가 설명하려다말고 고개들어 보니 츄얼이 입을 감쳐물고 눈을 내리까는데 어느덧 귀뿌리가 붉어졌다. 해석해주어도 리해가 따라가지 못할지경 무식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러는게 문명했다. 제길헐, 내가 이따위소린 왜 줴쳤어. 그제야 민호는 대방의 의식정도는 고려치 않고 제 감정에만 도취되여 지벌인 자신이 미워났다.안해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 남편을 어떻게 보겠는가. 다시는 이러지 말고 조심해야겠구나. 자신의 경망함을 경고했가.
어느덧 7월이 다가고 8월에 접어들었다. 하건만 응당 돌아와야 할 친구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를 기다릴라니 민호는 일각이 삼추같았다. 어떻게 된거야, 왜 아직도 않올가, 혹시 불의의 사고라도 생긴거나아닌지?… 오만가지의 불길한 생각이 머리속에 착찹하게 갈마들어 잠을 이루기조차힘들었다.
눈치역은 츄얼이가 남편이 여러날이나 초조불안해 하는 모습을보고 따라서 근심했다.
《이젠 와야 할 분이 왜 이리두않와요. 당신이 찾아가봐야되잖겠어요.》
《글쎄말이요. 아무래두 내가 한번 나가봐야될것같구만.》
어느날 민호는 과연 친구찾으러 떠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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