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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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의 밤>> 제2부(29)
2015년 02월 04일 10시 11분  조회:2956  추천:0  작성자: 김송죽
 

                           29

  

 

 

 

 

 

    겨울철을 잡자 염왕산은 류자 300여명이 긴급출동하여 맹가강의 대부호인 맹지주의 장원에 달려들어 그의 식솔과 종들이 먹을것만 내놓고는 나라에 바치려고 입고한 량식을 마차 50여대에 실어 몽땅가져왔다. 염왕산은 그 기와가마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으리라한 자신의 낙언을 배반한것이다. 각지에 집단부락이 생겨나고 있었다. 보갑제도가 나오고 유지회의 활략이 강화되면서 이전처럼 기와가마를 마스기는 어려워지는 형편에서 이번의 행동이 계획된것인데 내막을 보면 그것은 략탈이 아니였다. 염왕산과 맹지주간에 미리 연통하고 의합이 맞아 사전에 엄밀히 짜고 꾸민 일장의 연극이였던것이다.

    만주국은 농업을 권장한다고는 하나 농사를 아무리 잘지어도 사탕주고 어린애를 얼리듯 량식을 헐값으로 거두어가니 맹지주는 불만품고 차라리 이럴때 교분이 두터웠던 염왕산의 식량난을 해결해주는 편이 났겠다고 맘을 먹은것이다.

    이런줄을 모르는 사람들은 토비는 토비구나 이제는 제 굴앞도 못살게 구니 그 본질이야 저승간들 고치랴고 비난했다. 토비가 남한테 비난받는것이야 여상사한 일이니 이상할 것도 두려울 것 없거니와 그러는것이 외려 관방의 이목을 흐리워 맹지주를 보호하 는데도 훨씬 나은것이였다.  

   《아니 이번의 구도관자(출격)는 벼락불붙었나보죠. 어쩜 그리두 빨랐나요. 그 기와가마는 아마 너무도 물렀던가봐요.》

    소춘매가 왕견을 보자 하는 말이였다.

   《말두마슈 식은죽먹기였지유. 날쏘시개소리(총소리) 몇 번 나니까  파수가 분자(총)던지고 달아나데. 그래 대문 활 열구는 맘껏 싣구 돌아왔지유. 개극(싸움)이야 웃마을의 자위단허구 붙을번했지. 건데 몇놈 데우고 잠재우니 그만 에크 안되겠구나 그만두데. 저깟것들 아무렴 우릴 당해낼라구. 어림두없지.》

   《대체 어느 가마를 마쉇게요?》

   《맹가강의 맹지주.》

   《아니 거길 때리다니! 듣자니 그분하곤 교분이 두터웠다는것 같은데요. 이젠 정말 막짓을 하네요.》

   《막짓이라니야. 세월이 궁하게 만들었는데....하래비거래두 훔쳐먹어야 사는거요. 안그런가요 소부인.》

    왕견은 이러면서 운명이 저승에 전당잡혀 오늘일지 내일일지 하는 판에 토비가 정인군자노릇을 하겠느냐 그런다면야 소웃다 구럭터질 일이지 했다. 다년간 자유방종한 생활을 해오다가 요몇해간은 전에 없던 규률에 속박되여 지겹게 지내온 이 류자는 이번걸음을 아주 만족스러워했던것이다. 략탈을 천직으로 삼아 온 류자들의 심리상태가 거의 이러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략탈을 우선하고 반일은 다음에 하자는 주장이 머리를 쳐들기도했다.

   《소부인은 요즘 앓지나않는가유? 몰골이 왜 그렇게 못쓰게 돼가는가유? 그 곱던 얼굴이 말이 아니구만! 혹 용강맏두령이 부인한테 등한한거나 아닌가우.》

    남한테 떠받들려야 할 압채부인이 남편과 틀려져 별거를 하고있는 일이 시시하게 류자들의 화제거리로 말밥에 올라 왕견도 모르지는 않으련만 의뭉스레 자기는 모르는양하고 있었다. 룡이 물밖에 나면 개미가 침노를 한다더니 속담그른데 없는것 같았다. 소춘매는 남편과 그 지경이 되니 자기를 딴눈으로 보면서 두꺼비 파리노리듯이 슬금슬금 곁에 다가드는 사나이의 속심을 모르는게 아니지만 만나면 동정하고 관심해주니 그리밉지는 않았다.

    위용강은 맏두령이 되어 상좌에 오르자 그날로 제 이불짐을 아버지방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소춘매도 올케를 괴롭히지 않고 잠자리를 제방으로 다시옮겨간것이다.

    소춘매는 고달플 때가 있기는했지만 섹스를 쾌락을 주는 오락락으로 여기고 많이 즐겨온 녀인이라 어쨌든 그 방면의 기질은 남다르게 뛰여나기마련이다. 그 불가결의 오락을 놀아본지도 이제는 오랬다. 가끔 올케를 찾아갔다가는 안에서 나는 거센 숨소리를 들을 때면 독수공방을 하고있는 자신이 가련하다못해 불쌍했다.

    내가 왜 이런 징벌을 받아야 한단말인가? 그래 누구를 위해 절개를 지켜야한단말인가? 과연 그럴필요가 있단말인가?.... 남자의  그 장기가 점점 더 못견디게 그리워나면서 몸이 달아나 그녀는 방선을 풀기시작했다.

    한편 성정이 워낙 소탈하고 방자하게 돼먹은 왕견은 그녀가 경계를 풀고 곁을 주고있음을 눈치채자 담이 커져 수작질했다.

   《소부인님, 허허허.... 아마 미용해드릴 사람 없는모양인데 내가 허허허....》

   《구접스레 놀지 말고 저리 썩 물러가요.》

    소춘매는 매정스레 퇴박놓으면서 쫓아버렸다.

    하지만 그러기는했어도 그녀는 어느날 밤에 사나이가 기여드니 소리없이 받아주었다.

    한번 두번 재미는 늘어갔다.

    그러다가 꼬리가 기니 밟히였다. 왕견과 붙어서 한창 고조에 치닺느라 몸부림을 치고있을 때 향란의 눈에 들키고만것이다.

   《어머나! 무슨짓들을 해요? 미치지 안않았어? 》

    향란은 혐오를 품으면서 제 올케를 꾸짖었다.

    그러나 소춘매는 태연했다. 당황해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되려 오연히 변명해나서기까지 했다.

   《시누이만 녀잔가. 나도 여자야. 감정은 다 같은거야.》

    물론 그러했다. 인간은 목석이 아니요 육정이 있는건데.....그걸 모르는 향란이가 아니지만 허겁지겁 옷을 주어입고 창황이 자리를 피하는 사나이를 주먹으로 되게 우려주었다.  

    향란이가 오빠를 위해 그랬다지만 과분한것이였다.

    소춘매는 내가 왜 이런데 그냥 박혀있어야 한단말인가, 나를 동정하는 사람도 없는데? 가슴에 은결이 든 소춘매는 이틀후 소리없이 염왕산을 떠나고 말았다.

    번개가 잦으면 벼락늦이라 그녀가 배부도주(背夫逃走)한것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너무도 돌연스러워서 민호는 놀랬다. 좋게 해결될 수 있으련만 어찌하여 이런일이 생긴단말인가? 내가 어떻게 데려온건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부간의 불화가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민호는 소춘매가 자기와도 한마디 말없이 가버린게 야속했다. 하여 향란를 찾아가 자기의 섭섭함을 말했더니 향란이는 눈물지으면서 자기가 목격한 일을 그에게 얘기했다.

   《그런판이였구만!》

    민호는 고개를 숙이고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다가 물었다.

   《이 일을 누가 또 알고있소?》

   《지금은 나혼자밖에 몰라요.》

   《그럼됐소. 이 일을 입밖에 소문내지 말아주오. 누구하고도.》

   《그러지요.》

    향란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왕견이 제 각시와 치정관계가 있은것을 오빠가 알면 아무튼 가만있을리 만무였다.

 

    염왕산류자는 어느날 북진하여 토성자(土城子)마을을 들이쳐 그곳에 자리잡고있는 위만군을 쫓아버리고 돌아오다가 이번에는 하가툰(河家屯)에 들어간 일본군 첨병반(尖兵班)을 섬멸하여 기관총 1정과 새 구구식(九九式) 보총 6자루, 박격포 1문을 로획했다.

    민호는 로획품을 갖고 산채로 돌아온지 며칠안되여 흑산(黑山)이라 부르는 한 삼림대가 인본군의 손에 녹아나 잔병 들이 갈팡질팡한다는 정보를 새로입수했다.

    관동류자들은 의거(義擧)가 있었다.

    위용강이 민호와 어떻게 했으면 좋을가고 물었다. 그러자 민호는 류자들은 강호의 의기를 몹시 중시하고있지 않는가 같은 무리끼리 재난당한것을 빤히 보고도 못본체하면야 그건 독초자(다른마음)가 아니냐했다. 하여 구원하는것이 옳다고 둘은 마음을 같이 맞추었는데 문제는 도탄에 빠진 그들을 그저 건져주느냐 아니면 아예 수편(收編ㅡ받아주다)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이 문제를 사량팔주가 다 모인 자리에 내놓고 토론을 붙이였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차라리 수편하는것이 좋겠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사람을 파견하여 그곳 두령을 설강하는 것이였다. 누구를 대표로 파견날 것인가?

    흑산토비의 두령은 본명이 장운천(張雲天)이였는데 담이 크고 감때사나운 사람이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는 자기를 수편하자고 설강하러 가는 사람이면 그가 일본사람이건 중국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죽여버린다고 한다.

    이번에는 류자가 류자를 수편하러 가는것이다.

    제깟게 감히 염왕산을 깔보고 독수를 뻗쳐, 그러기만 하면 네깟건 형체도 안남게 갈아치우고말테다. 민호는 흑산을 같잖게 보면서 자기가 갔다오겠다고 나섰다. 그랬더니 모두들 포토우가 없으면 싸움을 어떻게 하느냐며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민호는 생각 끝에 그렇다면 내가 한 사람을 고르겠다면서 왕견을 추천했다.

    민호가 그를 내보내자고하는건 첫째 그는 담략이 있고 믿을만한것이고 둘째는 그를 위험에서 구원해내자는거다. 안해를 놓쳐버린 위용강이 혹시 눈치채고 그를 해칠 수도 있으니 이럴때 빼돌리는게 어느모로 보나 좋을것 같았던것이다.

    두령들은 한결같이 그의 제의를 동의했다.

    어느날 왕견은 대표신분으로 흑산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엄동이였건만 만주전역에서 전대미문의 집단부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적들이 반일군을 민가와 철저히 격리시킴으로써 그들로부터 식량을 비롯한 모든 필수품을 지원받지 못하게 고립시키자는 지독한 책략이였던것이다.

    이런때에 부평초같이 떠도는 반일력량을 하나라도 자리잡게끔하는건 실로 은공이 되는것이다! 

    흑산 류자들은 어느 한 자그마한 마을에 들어있었다. 일본토벌대는 그 마을을 지나 다른 한 유격대를 쫓아 멀리 가버렸던거다. 병은 고칠 수 있어도 운명이야 어떻게 고치랴. 목숨을 겨우살려내고 가쁜 숨이 좀 놓이게 된 장운천은 래일을 어찌알랴 오늘술은 오늘먹고 오늘취해볼 판이지 하면서 히망도 목표도 없이 막연하게 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초가 달려들어가 염왕산에서 손님이 와서 두령을 만나자고 한다니 장운천은 머리도 들지 않고 장기를 그냥 놀면서 왔으면 들여보내라했다.

    집안에 들어간 왕견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많아보이는 그한테 인사차림으로 몇가지 손세를 해서 먼저 자기가 온 뜻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장운천은 입가에 알기어려운 미묘한 웃음을 짓더니 엽초를 말면서 엉뚱한 말을 꺼냈다.   

   《난 풀둥구리(담배) 좀 썰어야겠다. 동생한테 봉성자(석냥)없나?》     《내가 홀 까먹구 그걸 안가지구왔지. 자 여게다 달아보슈.》        왕견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화로에서 이글거리는 숫덩이 하나를 손으로 쥐여 들이대면서 그더러 불을 붙이라했다.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은 장운천은 한쪽바지가랭이를 쓱 걷어 올리여 제 장단지를 가리켰다.

   《여게다 놔라.》

   《그럴거야 있습니까. 내 여기두 되지요.》

    왕견은 어룽어룽한 사문을 먹침한 자기의 팔에다 그것을 올려놓았다. 숯덩이가 살을 태워 역한 노린내가 집안에 찼다. 하건만 왕견은 꿈적하지 않고 바당에 선채 그가 장기두는것을 구경하는데 얼굴에 고통스러워 하는 빛이란 추호반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장운천은 장기판을 밀어놓고 고개돌려 이쪽을 다시보는데 수염이 꺼칠한 얼굴에서는 감탄하는 빛이 떠올랐다.

   《염왕산에 강호가 모였다더니 과연 헛소리같지 않구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강호라니요. 나같은 무명소졸이 강호가 될가요.》

   《아니 그럼 동생은 사량팔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모를소리다. 그래갖고 무슨 자격으루 날 만나자는건가?》

   《자격이야 있지요. 나는 염왕산의 대표루 왔으니까.》

    이러면서 왕견은 과연 염왕산인장이 박힌, 그를 대표로 보내는 파견장을 내놓았다.

   《개극을 한번 크게 치르고나니 뒷 일이 하도많아 형님들은 모두다 몸을 뺄새없지유. 그래서 내가 온건데 왜 안되는가유?》

   《어, 어, 아니네! 아니야! 사정이 그렇다면야 나도알만해!》

    장운천은 태도가 좋아지면서 얼굴에 웃음을 띠우기까지 했다.

    염왕산에서 일개 말직류자를 담판대표로 보낸것이 속으로 언잖았지만 감히 맛설 수도 배짱부릴 수도없는 그였다. 지금은 자기의 신세가 개가죽이 불에 오그라지듯 하는 판인데야.

    왕견은 그한테 염왕산의 근황을 알려주고나서 나날이 급변하고있는 형세에 대처키 위해서는 류자끼리라도 힘을 합쳐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이어서 염왕산은 이켠의 난처를 알고 자기를 보냈으니 과연 몸을 의지할데 없거든 청할때 따라붙으라했다.

    장운천은 꺼칠한 턱수염을 벅벅 긁었다. 별수가 없었던것이다. 우선 목숨은 건지고봐야했다. 가면 자리도 주리라니 그는 설강을 접수하고 수편에 동의했다.

    흑산패는 50명류자중 말이 있는 자는 17명밖에 안되였다. 게다가 적지 않은 류자가 총도 없이 칼만갖고 있었다. 이래갖고서야 발톱까지 무장한 왜놈의 군대와 어떻게 맛서 싸운단말인가?

    왕견은 그들을 이끌고 곧 염왕산으로 향했다.

    한데 어찌알았으랴, 가는 길이 이리도 평탄치 않음을. 그들은 새벽녘에 한 마을을 지나다가 그 마을을 지키고있던 자위대의 습격을 받아 장운천두령을 잃었거니와 새자도 8명이나 버리였다. 그래서 염왕산으로 들어온 류자는 41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염왕산에 들어오자마자 무기와 말을 보충받고 하나의 독립패로 편입되였다. 그리고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왕견이 아예 독립패의 패장직을 맡게 되였다.

 

    춘절을 한주일가량 앞둔 양력1월하순의 어느날 염왕산을 장기적으로 나가있는 차챈더가 류자청찰병에게 급보를 적어 보냈는데 내용인즉 근간에 활동이 심한 일본군 도려(屠旅)기병 200여명이 지금 태평진으로 향했으니 그런줄을 알라는것이였다.

    염왕산두령들은 즉각 회의를 열고 적의 동향을 분석했다. 그것은 태평진주둔군과 배합하여 여기 이 염왕산을 한번다시 습격해보려는 꿍꿍이가 아니면 다른 어느 반일부대를 토벌하자는것일거다. 약 한달전에 있은일이다. 일본군과 위군(만주국군)은 800여명의 병력으로 남쪽으로 이동중인 조상지(曺尙志)의 반일부대 200여명을 소탕하려 맘먹고 그들이 숙영을 포위하고는 장장 8시간이나 싸웠다. 하지만 결국은 제쪽에서 되려 120여명의 병력을 잃었거니와 조상지는 조상지대로 부대를 이끌고 포위를 돌파했던것이다.

    그 소식이 염왕산에 전해져 류자들을 크게 고무했다.

    적이 태평진까지 오자면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꽤 걸릴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도려가 태평진에 들어가자면 반드시 태평진 동쪽 약 15리지점에 있는 한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그 골짜기는 흡사 구유모양으로 생긴 하나의 협곡인데 길이가 5리가량되고 량켠은 가파른 둔덕이다. 적을 가두고 때리기 좋은 지형이였다.

    민호는 앉아서 적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나가서 소탕하는것이 더 낳으리라 생각하고 작전방안을 내놓았더니 대부분두령이 찬성하였다. 하여 그의 주장은 채납되였던것이다.

    염왕산에서 400명인마가 산채를 나와 눈구름을 날리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과연 짐작했던바와 마찬가지였다. 이켠에서 거기에 당도한지 얼마안되여 적의 길다란 기병대가 나타나 그 골짜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던것이다. 민호는 물론 마즌켠에서 습격을 준비하고있는 위용강도 속으로 됐다 이놈들은 다 잡아놓은거라며 기뻐했다.

    열, 스믈, 설흔, 마흔....

    한데 어찌알았으랴, 작전이 헝클어질줄을! 적이 아직 반수도 들어오기 전인데 어느 성급한 자가 제멋대로 총질을 했던것이다. 그 바람에 적은 전진을 멈추어서 이미 골짜기에 들어선 자들만 주검을 내게되였다. 가자니 앞에서 총알이 날아오고 량옆은 오르기 힘든 언덕이라서 말머리를 돌려 내빼는 수밖에 없었는데 날아오는 총탄에 맞은 자들은 말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자벌레뛰듯 뒷재주를 치기도 했다.....

    전투는 빨리끝나버렸다. 이쪽은 한명의 사상자도 없는 반면에 적은 32명살상, 13명포로였으며 로획한것은 소총 40자루와 말 13필뿐이였다.

   《이깟거 뭐야, 이깟거! 눈꼽재기두 안되지, 눈꼽재기두! 그놈들을 다 잡아치우자했는데, 다 빼앗아자했는데! 다! 다!》

    위용강은 일본관동군의 이 정규부대를 전멸하여 한번 본때를 보이려했던것이 계획이 그만 다 파탄된지라 분하고 분해서 침을 탁 탁 뱉아가며 펄펄 뛰였다.

   《어느 녀석이 내 명령이 없이 총을 쐈어, 어느 녀석이! 총싼 녀석은 여기루나와, 여기루! 냉큼!》

    그는 제마음대로 총을 갈겨댄 흑산류자를 잡아내여 그 자리에서 총탁으로 답새겨 머리통을 묵사발이 되게 만들었다.

 

    염왕산이 예로부터 언제한번 술독이 말라본적이 있었던가! 기와가마를 마스었건 못마스었건 싸움에 이겼건 못이겼건 경축하느라 술, 위로하느라 술.... 술은 언제나 마시였으니 그것은 스스로 제도화되다싶히 고착된 습성으로 되고만게 아닌가.

    경쾌한 내납소리에 북소리 한데 어울려 들려왔다. 이번에도 출전했던 류자들이 돌아오자 산채에서는 음악소리속에서 주연을 벌리였는데 술에 얼근히 취한 위용강이 양즈방보고 양즈방에 가둔 포로를 전부끌어내라했다.

    마침 그 소리를 민호가 잡아들고 물었다.

   《어쩌자고 그러오?》

   《그깟것들 살려둬선 뭘해 판산(밥)이나 축내는걸.》

   《잠깐만, 위형은 머리가 그렇게 밖에 안도는가?》

   《거기생각은?.....》

   《그 표(인질)를 갖고 오도야마와 흥정을 해보자는거요.》

   《그게좋아. 그래두 자네가 머리도는군! 하하하....》

    위용강은 손벽을 짝 쳐가며 웃었다.

    화서즈가 태평진의 오도야마사령앞으로 보내는, 우리 손에 너희들 도려기병 13명이 포로되였으니 찾아가겠거든 포로 한명당 탄알 한상자씩 교환하자는 해엽자 한통을 갖고갔다.

   《과연 토비는 토비로구나!》

    그 글을 받아본 오도야마는 분이 나기도 하고 탄가사 나가기도했다.

    별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토비손에 떨어진 자기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하여 전군에 미치게 될 영향을 고려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때는 오후2시. 약정한 그 시간이 되자 오도야마는 과연 탄알 13상자를 가지고 지정한 장소에 나타났다. 길이가 40여메터되는 다리를 두편사이에 놓고 하나는 저쪽에서 하나는 이쪽에서 서로 대치하였는데 오도야마는 이쪽에서 해달라는대로 탄알 13상자를 먼저 다리중간에다 갔다놓았다.

    쌍방은 다가 무기를 휴대한 자는 뒤로 50여메터 썩 물러났다.

    이켠의 산굽인돌이에서 홀연 말탄 사람 다섯이 포로 13명을 길다란 포성에 한줄로 묶어갖고 나타났는데 앞장선 사람이 바로 위용강이였다. 그는 말에서 내리자 포로들을 끌고 다리중간에 서서 기다리고있는 오도야마앞으로 걸어갔다. 면목이 익숙한 그들 둘은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대방을 향해 고개를 까댁이고 얼굴에 약간 웃음을 발랐을 뿐 말은 한디도 없이 교환을 이루었다.

    저쪽에서 군관 하나가 나와 포로된 자들을 하나하나 보고 인정했고 이쪽에서는 반둬더 전문방이 나가 그네들이 갖고 온 13상자가 탄알이 옳은지 아닌지를 검사했다.

    쌍방은 그것이 끝나자 각기 자기편쪽으로 향했다.

    이때 량쪽은 다 손짓해서 포로들은 저쪽으로 건너가고 류자 13명이 달려가 탄약상자 13개를 둘러메고 뛰여왔다.

    류자들이 메여 온 탄알상자를 말파리에 방금싣자 저켠에서 오도야마가 아직 다리를 채 건너가지 못한 포로들을 엎디라고 고함쳤다. 이쪽에다 기관총을 갈기자는것이였다. 한데 어찌알았으랴, 그의 고함소리가 입끝에서 채 떨어지기 전에 이쪽에서 명사수들이 먼저손써 매복한 기관총수의 머리통을 갈겨놓을줄이야!

    

    방금 수편한 흑산패의 류자들이 산채의 한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루세끼밥을 배불리먹고 동빈설한에 따뜻한 온돌에서 자면서도 하는 일 없으니 무료했던지 여러잡생각끝에 불만을 토했다.

   《그 자식을 눈감긴건 억울해.》

   《걔가 잘못했어두 그러진 말아야지.》

   《너무했어, 몸서리치게.》

   《규률이 다 뭐야. 쇠도 너무강하면 부러지는거야.》

    위용강이 도려를 매복습격할 때 저들의 동료를 죽여버린 일을 놓고 하는 소리였다.

    화제가 어느덧 돌아간다.

   《야 이거 그냥 들어앉아있을 판인가?》

   《안그러면....넌 목숨을 내던지고싶냐?》

   《넌 반일을 안하려나?》

   《뭐 반일을? 체, 왜놈이 내 살부지수아니야.》

   《그렇다구 넌 이제는 외돌참이냐 그래?》

   《나하구 그렇게 색먹고 따지지 말어.》

   《쉿! 왕패장 들을라, 경칠라구.》

   《듣겠으면 들으라지 그도 제 목숨은 아까와할거야.》

   《그런사람같잖아.》

   《그래 그런사람같잖구 우둔한 도깨비같애.》

    왕견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면서도 뒤공론질이였다.

    이때 창고의 쌀마대를 쥐가 구멍내지 않나해서 검사를 다니던 량태 백두옹이 뎅걸뎅걸 잡스레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오, 하하하! 량태님께서 왕림하셨수?》

   《량태님 한잔안냅니까, 왜놈하고 매매도 잘됐는데.》

   《더도말고 한잔만 제꺽하게 주십쇼.》

    방자한 녀석들이 늘큰히 앉아 렴치를 잃는지라 량태는 한심해서 웃고말았다. 그랬더니 곁을 주는줄로 알았던지 한녀석이 두꺼비모양으로 엎디여 절까지 해가며 조른다.

   《량태님! 량태님! 자비하신 량태님!》

    고약한 놈들같으니라구 이 늙은걸 가지고 노느냐. 량태는 자기가 수모를 받는것 같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넌 대체 누구냐?》

   《예 저말입죠. 독립패의 부패장입지요. 허니까 저의 의견이야 들어줘얍죠. 안그렇습니까?》

   《내가 안들어주면?》

   《그러면야 떠듭지요. 우린 목랑청아니야.》

    억이 막힐 소리였다.

   《야 이 육시를 할 놈아, 네 아갈머리에서 그런말이 함부로나와?.....인제보니 네녀석들은 말짱 여기로 처먹으러 들어왔구나. 돼먹지 못한 녀석들!》

    량태는 싸잡아 욕해놓고 문을 열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민호가 마침 왕견을 찾아오다가 량태가 문을 탕 닫는데 온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한지라 적이 놀랐다.

   《아니 량태형님, 무슨일입니까?》

   《들어가 물어보게. 통 말이 아니야.》

    량태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독립패는 규률이 너무나 물란하다고 했다.

   《왕패장이 있습니까?》

   《없어. 걔가 없으니 더 막소리지. 아무리 생각해도 갱충맞은 짓을 한거야. 저것들을 원체 끌어들이지 말아야했을걸 그랬지.》

    량태는 어리무던한 늙은이로서 여지껏 산채에서 존경받아온 사람이였다. 수하 류자들을 제 동생이나 자식처럼 여기고있는 그는 조만해서는 성내는 법이 없는데 오늘 이렇게 노여워하는것을 보니 문제가 엄중했다. 민호는 속으로 안되겠다 이놈들은 다른패와 성질이 다르니 틀어쥐고 단단히 교육해야겠구나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더니 그철도 어느새 다 가고 또다시 여름이 왔다. 산간은 청신하고 아름다웠다. 계곡에서는 수정같은 실개울물이 돌돌돌 노래하며 흘렀고 각가지의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가며 제 목청을 자랑했다.

    민호는 향란이가 동무해달라해서 산채의 서쪽골로 갔다.

   《그 적삼벗어요. 여러날되도록 왜 갈아입을 념을 안해요.》

    향란이는 갖고 온 빨래와 함께 그의 적삼도 씻으면서 한가지 근심스러운 일을 말했다,

   《오랍은 이제야 올케생각이 몹시나는모양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그걸 어떻게 아오?》

   《저번때는 나보고 춘매가 가면서 무슨말이 없던가구 묻더니 어제는 네 올케 언제오겠다고 말하더냐고 묻는단말이얘요..》

   《그래 뭐라고했소?》

   《뭐랄게있나요. 다시 올 사람이면 갔겠는가구했지요.》

   《야박한 소리를 했구난.》

   《그래요. 나도 말해놓고 보니 너무 야박하게 대한것 같아요. 물론 오랍잘못이 백분의 백이지만도.》

   《나더러 할빈행차를 한번 더 해달라는거요?》

   《글쎄요. 어떻게 했으면 좋을가요?》

   《그 사람일이야 이젠 내가 비쳐도 안비쳐도 되는게 아닌가.》

    민호는 두동싸게 말했다. 향란이는 눈을 할끗 빨면서 그따위 동떨어지는 소리는 제발하지 말라했다. 민호는 그가 어찌든 그 일로 다시 할빈에 가고푼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난 이젠 굿이나 보지 오지랖넓게 간섭하지 않을테야. 정말이요.》

   《그렇겠지요. 리해할만해요. 나도 앵돌아진 올케를 이제다시 돌아서게 한다는건 되지도 않을 짓인걸 알면서도....》

    중이 달아나면 절당을 내놓고 어디로 갈가. 소춘매가 십중팔구는 연하루를 다시찾아갔으리라. 자기가 싫어서 떠난 곳으로, 염오하면서 버리였던 그 생활속으로 다시들어갔을것이다.

    향란이가 다 한 빨래를 말리우느라 풀우에 널고나서 민호곁에 다가와 나란히 앉아 볕쪼임을 하고있는데 키가 잘달막하고 암팡지게 생긴 새자 하나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개울을 따라올라오더니 이켠에 사람이 있는것도 보지 못하고 앞을 지나 계속 산속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저자식이 어디로 가는거야 도망치느라 저러는게 아닌가 미친자식!

    민호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서라! 어디로 가는거냐?》

    저쪽은 와뜰 놀라면서 그 자리에 섰다. 왕견패의 새자였다.

   《여긴 염왕산이야. 왜 혼자 짐승의 밥이 되곱푸냐?》

    그자는 되돌아오면서 둘러댔다.

   《나도 놀러왔다가. 헤헤헤....》

 

    8월이 되자 차챈더가 또 하나의 정보를 보내왔다. 서남과 서북쪽으로 일본군이 움직이고 있는데 아마도 염왕산으로 다시기여들것 같으니 사전에 대책을 대는게 좋겠다는것이다.

    두령들은 그 정보를 받고 적이 염왕산으로 들어오자는건 뱀이 참대통으로 들어오는것과 같기는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염왕산주위에 붙지 못하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여 어느날 400명의 기마대가 동원하여 어느 한 항일의용군을 뒤쫓다가 방향을 염왕산쪽으로 돌리고있는 일본군을 반습격하여 쫓아버렸다.

    대오는 어느 한 커다란 마을을 공점하고 거기서 하루밤눌러있게 되었다. 지난해의 말까지 통계를 보면 만주국전역에 집단부락이 1,172개 생겨났는데 이 마을 역시 네주위에 빙 둘러 토성을 쌓고는 귀퉁이에다  높다란 망경대까지 만들어 놓은 집단부락이였다.

    이틑날 아침. 출발직전에 한 로파가 찾아와 울면서 간밤에 자기네 집에 들었던 류자 둘이 옷을 훔쳤다고 고소했다.

   《마인!》

    이번의 출격을 쥐휘하고있는 민호는 즉각 류자들을 집합시켜놓고 각 패에서 자기의 인원을 점명케 했다. 그랬더니 수편한지 얼마안되는 흑산패의 새자 둘이 없어진것이 발견되였다.

    민호는 왕견보고 다른새자를 시켜 그들을 찾아보도록했다.

    이윽하여 그 없어진 새자둘을 찾아냈는데 그들은 도적질한 옷을 다른사람에게 팔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그자들을 칼칼히 쏘아보았다.

   《너희들은 무슨짓을 했느냐?》

    두 새자가 제딴에는 리유가 있는것 같았던지 오감스레 웃어가면서 넉살부렸다.

   《용돈이 다 떨어져서. 헤헤헤....》

   《그렇습죠. 나도 손이 너무말라서....》

    그자들이 노는 작태에 더욱 격분됐다. 민호는 불길이 일어나는 눈으로 그자들을 쏘아보면서 갈린 목소리로 꾸짖었다.

   《이 부량한 놈들! 작심삼일이로구나! 네놈들은 그래 염왕산의 규률도 법도 모른단말이냐?》

    그제야 두 새자는 낯이 질리면서 제발 한번만용서해달라했다.     《용서는 무슨놈의 용서야. 너같은 망종들 때문에 국이 밝아질것도 밝아지지 못하고 어지러워지고있다.》

    민호는 당장에서 그자들을 처단하고 마을을 나와버렸다.

    그 사건이 이같이 처리된건 당연하지만 늦게야 수편된 류자들에게는 받아내기 어려운 위협과 압력으로 받아졌다. 그들은 감히 내놓고 말을 못하고 뒤에서 꿍꿍댔다.

    전에 언젠가 량태를 격노케 만들었던 두 새자가 왕견을 붇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나는 성명이 양화(梁和)라는 새자고 다른하나는 공파(孔波)라는 새자였다.   

   《패장형님! 대체 우릴 어쩌자는겝니까? 그까지 옷 몇견지가 뭔데 아까운 형제의 생명을 빼앗습니까? 무슨 돼지라고 옴짝달싹못하게 수족을 묶습니까? 숨넘어갈 때까지 이러구살아야하는가?》

   《인간은 날적부터 제 하늘 제가 이고 살게된거야. 감탄고토라잖아. 기률이구 난장이구 맞깥잖으면 버리고 가버릴 수도 있지. 건데두  이러니 저러니 흠잡으니 어디살겠어. 이 공파의 머리도 어느날 적표(떼여버림)할런지 모를일이지.》

    왕견이 그들에게 일깨워주었다.

   《맘이 그렇게 돌아서서야 되니. 싸움잘하구 국이 밝아지게 할려면 의례 규률이야 자각적으루 준수해얄게 아니여. 건데 그렇게는 안하구서 위반을 하니 백성이 우릴 어떻게 보겠나? 우리가 지금은 백성지지를 받아야 해. 그러지 않구는....세월이 달라진거야.》

    민호의 처리가 잘못된게 하나도 없다고 비호했다.

   《왕패장까지 편을 아들어주면 우린 누굴 믿으랍니까?》

   《우린 왕패장을 맏두령보다 더 믿고있는데....병졸없는 장군은 거지장군이야.》

    양화와 공파는 겨끔내기로 불만을 토하면서 자기들은 다가 왕견을 하늘만큼 믿고 속말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친형같이 여긴다는지 하느님같이 여다는지 거짓말을 했다.

    난 이것들을 끌어왔고 그래서 한급가진거다. 이들은 나를 믿는 새자니 바로 내것이지. 말이 맞아 병졸없는 장군이야 거지장군이지 뭐야. 이것들이 없어지면 나는 뭐루되는가. 왕견은 그들을 너무 속상하게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왕견의 독립패는 단독으로 임무를 맡고 어느 한 마을에 남게되였고 주력은 산채로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서다. 염왕산에서는 외선경비를 맡고있는 류자들로부터 동북반일련합군(東北反日聯合軍)에서 대표를 보내왔다는 보고를 받게되였다. 위용강은 또 무슨놈의 대표냐 하면서도 갑을간 접견하기로 했다.

    대표는 경위원 둘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 세사람은 이전에 정민수가 들어올 때의 모양으로 눈을 싸매고 산채까지 들어온 후 싸맨것을 풀고는 물 한모금도 대접받지 못한채 두령들을 만났다.

    중앙대청에는 류자 40명이 량켠에 갈라 렬을 지어섰다. 세사람은 그들이 손에 쥐고있는 서리발치는 칼날을 하나하나 비껴지나서 8대금강이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상에 이런놈의 접견이 어디에 있는가. 담판을 하러왔는데 대표를 이모양으로 대하다니!

   셋은 가운데 놓은 의자에 가 앉았다.   

   방금전 자기의 경위원 둘과 함께 회색군복을 입고 혁띠에 권총까지 차고 나타난 대표를 봤을 때 민호는 깜짝놀라 하마터면 소리지를번했다. 그 대표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최기덕이였던 것이다. 오매에도 잊지 못할 친구를 이렇게 만나다니!

   최기덕역시 그런것 같았다. 그역시 민호를 알아보았겠지만 이쪽에 딴눈길을 보내지 않으면서 먼저 위용강의 앞에다 크고 붉은 인장이 찍힌 련합군사령부의 위임장을 내놓으면서 자기는 성명이 최기덕인데 대표로 파견되여 여기에 왔노라했다.

   최기덕은 언제배웠는지 그리 류창하지는 않으나 얼마든 알아들을 수있는 한어로 자기가 위험불구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리유를 설명했다.

  《뭐라, 나를 수편해보려구! 어림도 없는 노릇이지! 공산당이 뭐냐. 이 용강이는 이젠 아무도 믿지 않으니 돌아가거라!》

   위용강은 대방이 꺼내놓은 동북반일련합군에 들라는 제의를 칼로 무를 잘라버리듯이 단마디로 거절해버렸다.

   그의 태도가 이같이 말도 다시붙여보지 못하게 단호했거니와 사량팔주도 거의 그와 같은 생각이여서 염왕산을 수편하려고 설강하려 온 최기덕은 목적을 이룰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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