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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을 꽈 박아 싣고 남쪽으로 달리던 차가 정거장도 아닌 산굽인돌이에서 갑자기 정거했다. 저기 앞에서 한떼의 비적이 레루장을 번지고 있었던것이다. 기차를 전복하고 략탈을 하려는것이다.
《왜놈이 망하니 비적이 끓는구나!》
《란시에 어떻게 살겠소. 빨리 이눔의데를 떠나야지.》
민호와 한바곤에 앉아가는 동포들이 하는 말이였다.
기차를 호위하는 쏘련군이 총을 갈겨 비적들을 쫓아버렸다. 례루장을 바로놓고나서 렬차가 다시달리기 시작했다.
한데 렬차가 어느 한 역에 서자 사람들은 끔찍스러운 장면을 보게되었다. 손에 흉기를 든 한무리의 악당들이 그 역에서 차가오기를 기다리고있는 사람들을 살해하고있었던것이다.
민호는 열어놓은 차창으로 죽어 넘어간 몇구의 시체를 보고 그것이 동포임을 알았다.
《아니 저놈이!》
한자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꾸레미를 쥐고 달아나고 있었다. 한데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는 그자가 낯이 익어서 민호는 다시한번 놀랬다. 그자는 다른놈이 아니라 호덕화였던거다.
《호덕화! 이놈 서라!》
고함을 내지른 민호는 차가 채 정거하기전에 창문으로 뛰여 내렸다. 그러는 사이 그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저 철천지 원쑤놈을 놓쳤구나!》
민호는 원통해서 소리쳤다.
어린애가 쓰러진 제 어미의 몸가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민호는 그리로 가보았다.
30대의 젊은 각시가 방금 호덕화의 칼을 맞고 쓰러졌는데 상처에서 진붉은 피가 쿨쿨 쏟아져 나와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걔의 애비도 죽었소! 저게요!》
방금 략탈을 당한 사람중 누군가 알려주었다.
차가 멈추면서 총을 갈겨 비적들이 물러갔지만 10여호의 동포귀향민들은 차도 못타고 그놈들 손에 변을 당했다. 어떤 집은 장정이 죽고 어떤 집은 녀인이 죽고 어떤 집은 내외 가 다 죽어서 이렇게 아니만 남았다.
민호는 이가 갈리였다.
《네놈들을 보기만 하면 붙잡아 각을 찢어놓을테다!》
차가 떠나고 있었다. 그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얼른 안고 뛰여 올랐다.
구원된 아이는 서너살밖에 안되는 남자애였다.
《피난가는기여.》
《아닌기여. 볼락커니 우리 모양으루 고향갈락고 떠난기여.》
《끔찍허지. 백죄 이게 무슨 변이여.》
《이눔의데는 정말 몬살데다.》
《몬살데니께 빨리가야지.》
남이 당한 불행이지만 몹시안타까와들했다. 같은 동포라 자기한테 떨어진 불행같이 여기면서 겁을 집어먹기도했다.
애가 그냥 울어댔다.
아낙네 셋이 이쪽으로 왔다.
《얘야 그만울어라. 에미애비 다 잃어 어떡하겠냐.》
《애가 배곱파 울잖을가.》
아낙네 하나가 강낭떡을 우는 애의 손에 쥐여주었다.
아이는 그냥 울어댔다. 아무리 얼리고 얼려도 소용없었다. 부모를 다 잃은 아이니 섧게 울었다. 낯설은 사람의 품이라서 그것이 아무리 포근해도 서러움을 달래지 못했다. 아이는 울고 울다가 맥이 지치는지 그만 스르르 눈을 감고만다. 잠이 든 모양이다.
기차는 내처 앞으로만 달리였다. 이제 더 가서 목단강역에 이르러 갈아타고 그냥 남으로 간다면, 중도에 변고만 없다면 래일아침녘에는 도문역에 닿을것이다. 거기서 두만강을 건너면 고향땅을 밟을 수 있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민호는 더 갈 수 없었다. 그는 목단강에 채 이르지 않고 자그마한 산골역에서 내렸다. 그는 여기서 질러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흐릿한 날씨였다. 차에서 내린 민호는 태평진까지 백여리길을 걸어야했다. 렬차에서 내린 후에도 내처 눈을 감고있던 아이가 잠을 깼다. 자기를 품에 안고 가는 사람이 어쩌면 면목이 있는것 같기도한지 까만 눈으로 마록마록 올려다본다.
《요 불쌍한 것아, 네 운명이 어쩌면 이리도 기박하냐. 무정한 세월이지. 울지 말어라 얘야. 네가 운다고 엄마아빠가 눈을 다시뜨겠냐. 아마도 이젠 내가 너를 안고 방아를 쪄야겠구나.》
아이는 더 울지 않았다. 울어봤자 소용없는 줄을 알기라도 하는것 같았다.
민호는 그 아이를 웃기기도 하면서 말을 시켰다.
《울지 않으니 참 고운 애구나. 얘야 네 이름이 뭐니?》
《김성국.》
《오 그렇냐, 김성국이라. 넌 이름도 곱구나.》
아이는 제 성명만 알았지 아버지도 엄마도 이름이 뭔지는 아직 몰랐다. 아마 배워주지를 않은모양이다. 민호는 아이가 건실하고 귀여웠지만 이 애가 부모의 이름을 아직 모르니 친척이 있어도 찾아주기 어려울것 같아 근심스러웠다.
《야 요놈아, 내가 시름꺼리를 안아온것 같구나.》
아이는 웃었다. 아직은 철부지였으니까.
산간을 벗어나니 꽤 널다란 길이 나졌다. 그 길을 따라 내처 서쪽으로 갔다. 그러다가 갈림목에 거진이르러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 둘을 새로만나게 되였다. 둘다 검정치마에 흰옷을 입었는데 머리에는 보따리를 이렀다. 저고리의 고름이 바람에 팔팔 날리고 있었다. 분명 동포녀인들이였는데 하나는 점고 하나는 늙었다. 보아하니 모녀가 아니면 고부간일것이였다.
혼자서 고적한데 동포를 만나 길동무를 하게됐으니 미상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지라 민호는 걸음을 부지런히 놓아 따라잡으면서 말을 걸었다.
《조선분들이구만! 어디로 가십니까?》
두 녀인은 무르춤 서서 이쪽을 보았다.
《에그, 손님도 조선분임둥!》
깜장옷고름을 단 로파가 반가와 하면서도 얼굴에 다소 미안해하는 빛을 띠였다. 아마 면목모를 사람이 뒤를 바싹따르니 따게 보고 불안스러웠던모양이다.
《하하, 날 의심했던 모양이구만.》
《글쎄요....》
각씨가 말을 하려다말고 사나이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본다.
로파가 민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어왔다.
《어디메 감둥?》
《나말입니까, 태평진에 갑니다.》
《그러믄 같이 동무하게 됐네. 우리두 그쪽으루 가꼬마.》
《댁이 태평진에 있는모양이죠?》
《아니꾸마. 그 뒤의 목청에 있쓰꾸마.》
목청에는 일본이민단속에 조선사람 열둬호가 끼여 살았는데 그 마을의 일본사람들이 화금으로 피해가자 그들도 따라갔더랬다. 그러다가 일본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면서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니 그들은 마치 병아리가 오리무리에 끼였다가 배척당하듯 나앉아 하는수 없이 목청에 되돌아가 사는 판이였다. 한데 민호는 아무리봐야 로파가 면목이 있는지라 전에는 어디서 살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로파가 자기는 전에 가진구에서 살다가 지금의 그 목청마을에 이사를 왔노라했다. 그렇구나, 그 딸부자집이 맞구나! 민호는 흑룡강가에서 밀수장사를 해먹으면서 독립혁명에는 꼬물만큼도 관심없던 한 사람의 몰골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의 이름이 김국정이라는것 까지도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다.
품에 안긴 아이가 또 보채기 시작했다.
《오오오, 이놈아 배고프냐?》
민호는 아이를 달래다말고 두 녀인을 향해 비라리를 했다.
《그 보따리에 먹을게 있거든 좀 주시오. 애가 아마 배곱파 이러는것 같습니다.》
《집의 애깁둥?》
《아닙니다.》
《그럼 뉘집앤가요?》
각시가 처음부터 이상스런 눈길로 보고있더니 캐물었다.
《오다가 주은애요.》
《어마나!》
그녀는 걷다말고 눈이 동그래진가.
로파도 걸음을 멈추고 굳어진다.
《아니 그게 무슨소림둥? 주었다니?....》
민호는 기차타고 오다가 목격한 일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두 녀인은 듣고서 혀를 끌끌 찼다. 애가 운명이 참 기구하다하느니 민호를 세상에 둘도 없이 마음좋은 사람이라느니했다.
각시가 머리에 인 꾸러미를 내리자 로파가 먼저 꾸러미를 내려 헤치여 삶은 강냉이를 한이삭 꺼내였다.
《여기걸 주자. 그건 꺼내지 말거라.》
민호는 반갑게 받아 아이손에 쥐여 주면서 물었다.
《두분은 어떻게 되는 사입니까?》
로파가 알려주었다.
《얘는 내 딸이꾸마. 집이 저어기 이도하자에 있습지비. 내가 일이 있어서 갔다가 오는건데 길에 도적놈많아서 혼자못간다면서 이렇게 따라나섰으꼬마. 이러구 보니 손님을 참 잘만났네 동무하게 돼서. 얘 분선아, 으전 그만 돌아가거라.》
댁의 로인은 없는가고 물어보니 집에 있다는거다. 이젠 령감이 됐을텐데....민호는 속으로 뇌이면서 이마살을 찌프렸다.
《원, 두분 다 우둔하구만요. 도적이 씨굴씨굴한데 나다니지를 말아야지 어쩔라구 그럽니까. 그래 사위되는 분은 없습니까?》 《사위말임둥 있스꼬마. 있어두 저그만치 일곱이나 되꾸마. 얘가 네번째 딸이꼬마.》
로파는 사위많은걸 자랑삼아 말했다.
민호는 각시를 다시봤다. 이 로파의 네번째딸이면 나를 주자던게 아닐가. 대체 어떤 남편을 얻어 사는지 궁금해났다. 하여 너짓이 물어봤다.
《이도하자 사위분은 누군지 왜 장모를 이렇게 보낸답니까?》
《황용팔이를 모릅네까유. 걔가....》
각씨가 로파를 말을 더 못하게 하느라 얼른 해석했다.
《우리 나그넨 집에 있어도 사정있어서 못떠나요.》
《그 사람 무슨눔의 병인지 여러달째 구들장만 지키구있어.》
각시는 어미가 앓고있는 사위가 미워 구시렁거리는것이 보기싫은지 말머를 돌렸다.
《여러집이 털렸어요. 밤에 낯가리구 칼들고 와서는.... 모두들 말하는게 그것들이 다 웃마을에 사는 되놈들이래요. 원 어쩌면 제바닥 사람끼리 그런짓을 하는가요. 애 아버지가 일어나면 우리도 목청가 살아야겠어요.》
《거기라고 안전할까, 나쁜놈은 어디나 다 있는데.》
민호는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알아보려했다.
로파가 전번때 있은일을 말하는것이였다.
《손님은 그래 모름둥. 우리 거기서 하마터면 몰살을 할번했쓰꾸마. 일본이민단하구 같이 있다가.... 마침 오인이라구 허는 사람이 나타나 못그러게 해서 구원이 된게꾸마. 듣자니 조선사람이라는데 낯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느님같이 고마분 분이지.》
민호는 동포들이 자기가 해놓은 일을 공으로 여겨주면서 잊지 않으니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한 혼란스러운 이 세월에 딴심보를 품은 자들이 조선사람을 얼구이즈(二鬼子), 즉 두 번째 일본놈이라면서 무지한 한족들을 선동하여 무시무시한 어떤 거조를 낼것만 같아서 은근히 근심스럽기도했다.
올때 장평보고 말을 건사해달라고 맡겨둔 일이 있어서 민호는 태평진에 이르나 그를 찾아 곧추 치안대로 갔다. 위삼포가 조난당한 예전의 유지회접대실이 지금은 치안대실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민호는 거기서 뜻밖에 자기를 마중나온 향란이를 만났다.
《원 올사람 오잖을라구.》
《이게 며칠인가요. 듣자니 지금 사처에서 도적이 끓는다는데..... 건데 얘가 누구의 앤데 안고와요?》
《우리 애지. 오다가 주었소.》
《무슨소린지.... 롱담작작해요. 애가 귀엽게 생겼네요.》
《롱담아니야. 얜 내가 주은애요. 그렇지, 성국아? 네가 말해보렴. 믿질 않는구나.》
이때였다. 옷입은 주제들이 람루하긴 해도 끌끌한 사나이 스믈여섯이 욱 쓸어들어 오면서 불렀다.
《오인형님!》
《엉!?....》
민호가 고개들어 보니 그들은 다가 전에 염왕산에서 휴척을 같이해왔던 류자들이였다. 너무나 뜻밖인지라 민호는 혼을 잃은 사람같이 어안이 벙벙해지고말았다.
《아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너희들은 엽때껏 어데 있다가 이렇게 나타느는거냐?》
《하하하!.....》
모두 집안이 떠날갈지경 일장의 폭소를 텃치였다.
향란이가 웃다말고 알려주었다.
《이분들은 오인만나러 왔어요. 여게와서 기다린지가 벌써 닷새째 되는걸요.》
《나를 기다렸어? 하하하!....》
그제야 민호도 소리애여 웃으면서 하나하나 눈주어 다시봤다.
26명중 15명은 마수재를 따라서 목청에 가마마스러 갔다가 살아난 류자들이고 11명은 민호를 따라 화금에 갔다가 포위에 들어 싸운 끝에 거기를 뚫고 나와 염왕산까지 들어가놓고 다시 사지판에 들었다가 겨우살아난 류자들이였다. 그들은 다가 여지껏 장광재령의 평정산(平頂山)과 로독정(老禿頂)에 숨어서 원시인같이 지내다가 우연히 서로 만난것이고 이제야 일본이 망한것을 알고 버덕으로 나온것이다. 실로 숨이 질긴 기구한 행운아들이였다.
《오인형님, 우린 처음에는 저마끔 흩어졌다가 하나둘 만나고 만나다보니 지금은 보는바와 같이 이렇게 대오가 된겁니다.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료략질을 내놓구는.》
여럿중 전에 제2련에서 패장노릇을 했던 두지개(杜之開)란 류자가 이러면서 마침 오인도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노라했다.
그들은 다가 염왕산의 포토우두령이 태평진에 나타나 일본군의 무기고를 털었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정녕 그렇다면 그건 바로 오인 정민호일것이다, 그가 여직 살아서 동산재기(東山再起)를 하는 모양이다 하면서 급급히 달려왔다고 한다.
민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예전에 오군자두령질을 할 때 어느덧 나도모르게 급인지풍(急人之風)이 있는 협객으로 이름나더니 이제 또 그모양이 되는가, 아무튼 이것들이 나를 믿고 찾아왔으니 버리지는 못하겠구나.
《이 오인이 본래는 고향돌아갈 생각이였다만 지금은 가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주어 온 이 애를 보아라. 부모가 악당의 칼을 맞아 사고무친한 고아로 되고말았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는가. 호덕화 놈이다. 이건 내 눈으로 친히 본거다.》
《아, 호덕화! 오인형님이 그래 그놈을 봤단말입니까?》
호덕화의 이름이 나오자 류자들은 모두 눈에서 불이 일었다.
이미 향란이로부터 염왕산이 괴멸하게 된것은 호덕화가 변절하여 길잡이를 서줬기 때문이라고 들었던것이다.
《그놈은 철천지 원쑤다!》
《그놈을 꼭 잡아야 한다!》
스믈여섯 류자는 모두 한결같이 웨치면서 이를 갈았다.
민호는 속으로 됐구나 됐어 너희들의 가슴속에 복수가 불타고있으니 됐구나 됐어 하면서 그들을 향해 단호히 말했다.
《악당의 귀축같은 만행을 저주하고 증오한다면 그것은 품이 서는것을 의미한다. 여기 우리들 중 누가 이제 호덕화모양으로 악행을 하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없을줄로 믿는다. 그것이 죄악이란걸 안다면 절대하지 않을것이다.》
《옳은 말이요! 우리가 악당으로는 되지 않을것이요!》
누군가 부르짖었다.
민호는 들피지고 강강한 모습들을 보면서 한결 정중하고도 박력있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감사한 말이다.... 그러길래 이 멋으로 사는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목숨을 초개같이 알되 그것을 헛되이 던져서야 되겠는가. 삼생의 죄를 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의로운 노릇을 해야한다.... 지금 혼란한 시기를 당하여 불쌍한 생령들이 도탄에 빠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과 죄가 맞붙는 싸움을 해야한다. 우리가 항일을 한것 처럼.》
《우리는 오인형님의 지시를 받겠습니다!》
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웨치였다.
이때 장평은 제 일을 보느라 어디에 나가서 없고 향란이는 민호가 주어온 아이를 데리고 놀았다. 이미 석녀로 되어버리고 만 향란이는 이젠 아이를 밸 수 없는지라 남의 아이라도 하나 가져다 길러볼 생각이였으나 민호의 생각이 어떤지 몰라 여직 입을 열지 못하였던것이다. 한데 오늘 뜻밖에 민호가 아이를 하나 안아왔으니 차라리 잘된것 같았다. 향란은 무당절반 의사절반 되면서라도 내가 이 아이를 길러 내 자식으로 만들어보리라 맘을 먹었다.
《본인은 이곳 유지회사람이요. 당신들 중에 누가 두령인가?》
웬 사나이가 곁다리 둘을 데리고 나타나 집안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길래 눈여겨 보니 면목있는자였다.
저 피자놈을 내가 또 만나게 되는구나!.... 향란이는 숨결이 거세여지면서 젓가슴이 오르내렸다. 당장일어나 요정내고싶었다. 내가 그때 저자를 아예 없애버렸어야 옳았는데....
기름을 바른것 같이 윤기나는 까만 팔자수염이 뱁새눈과 강마른 얼굴을 장식해주고 있었다. 선량한 티라곤 손톱만치도 없이 매끄럽게만 생겨먹은 그자는 언젠가 향란이가 아버지의 산소에 분향을 하려고 여기에 왔다가 사진을 가지고 뒤를 따르기에 철채찍을 휘둘러 꼭그려뜨렸던 그 둘중의 한자였던것이다. 그는 아직 향란이를 알아본것 같지 않았다.
《저분이 우리의 두령이요, 왜그러오?》
두지개가 턱짓으로 민호를 가리켰다.
태평진유지회의 사람이라는 그 팔자수염은 민호를 한참이나 눈박아보고나서 머리를 다시돌려 두지개를 보며 말했다.
《오, 임자로구만. 십년전에 여게와있지 않았는가?》
《맞소 맞아. 나 여게와 있었어. 메기눈 작아도 볼건 다 본다더니.... 건데 온데는 는 어쨌단말이요?》
도지개의 멸시담긴 언사에 팔자수염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의 그 가느다랗게 치째진 뱁새눈은 넌 불청객이야 이놈하고 내쏘는것 같더니 입에서 욕이 나갔다.
《이 토비놈아! 사단을 일으키고 간 일을 벌써잊었냐. 낮가죽 가려운줄도 모르구 또 와서는....흥!》
용강이를 따라서 들어왔다가 가버린 일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도지개가 욕을 먹고 가만있을리 만무였다.
《뭐라, 내가 낮가죽가려운줄도 모른다?.... 당나귀입술이 말의 입에 맞지 않는거야. 누가 할 소릴 누가 해?》
팔자수염은 이쪽이 배포유한데다 모두들 자기 하나를 쏴보는지라 그만 움이 질려 말을 더 못하고 턱만 까불었다.
향란은 그를 보면서 지난때의 일을 다시금 후회했다. 왜놈들은 망해서 쫓겨났다. 하건만 그놈들한테 붙어서 피자노릇을 하던 저따위놈들은 남아서 주인행세를 하자고 드니 한심하구나. 내가 그때 저놈을 아예 없애버렸어야 옳은건데 과연 잘못했구나.
향란이는 팔자수염을 이번까지 세 번째 본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묘에 분향하러 왔을 때고 두 번째는 사진사 왕아명을 찾아왔을 때다.
그날 한낮때였다. 향란이가 말에 안장을 지워갖고 초옥서쪽에 있는 개울가로 끌고 가 물을 먹이고있는데 소춘매가 어느새 알고는 달려와 걱정했다.
《시누이 그냥 가려오. 가지말란데두 그러네. 시누이를 빼앗겨버린 그놈들이 다리가 졸아붙었다구 가만있을가, 원. 어떻게 하나 붙잡자고 눈에 쌍불을 켜고있을건데.》
《이런것 저런것 무서워 주저하구서야 어떻게 산채를 나가며 내가 어떻게 위씨가문의 딸노릇을 할가. 날 어디 붇잡아 보라지.》
향란은 이러면서 고집스레 말을 타고 태평진에 왔던것이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 땅거미지기 시작했다. 이 시각을 맟춰서 온 향란이는 그때도 말을 성밖의 그리 멀지 않은 밭곁의 풀밭에다 몰아넣어 저절로 풀을 뜯게 해놓고는 성내로 들어왔다. 향란이는 먼저 사진사의 집을 찾아가기로 맘먹었다. 지지당부했건만 사진을 내돌려 자기를 위험에 처넣은 그를 살려두지 않으리라했던것이다. 등잔불을 켠 집들은 창문이 밝았다. 거리에 가로등이 설치되였어도 <성전>을 지원하느라 전기를 절약하라면서 켜지 못하게 했던것이다. 성안이 어둡건 환하건 향란은 자기가 활동하는데 크게 영향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담이 그만큼 커있었던거다.
사진관 바로 맞은켠에 가게방이 하나 있고 그 가게방과 이웃하여 협착한 공간을 리용하여 절름발이 신기료가 신깁는 방을 꾸려놓고 있었다.
향란은 거기로 가서 절름발이와 마즌켠 사진관 사진사네 집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어봤다.
《아주머닌 어디서 왔소?》
신기료는 빤히 올려다보면서 되묻는것이였다.
《륙도구에서 왔어요.》
향란은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데서 헛걸음했구만.》
《왜서요? 사진사가 집에 없는가요?》
《저걸 보시오. 벌써 나흘째나 문이 꾹 닫겨있다니까요. 아명은 어디 외출을 한게 분명하지.》
《그가 어디로 외출했을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알겠거든 댁네하구나 물어보슈.》
《아니 그런데 저....》
향란은 어쨌으면 좋을지 궁리가 미처돌지 않아 잠시 망설이였다. 그러다가 그저는 돌아갈 수 없어서 물어보았다.
《그래 집은 어딘지요. 그가 없으면 댁네라도 만나봐야겠어요.》
《저 옆쪽에 골목있잖우. 저기루 가서 왼편으루 돌아서면 벽돌담이 있는데 널문을 했지유. 거기루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즉 사진관이자 곧 저택이 되는 셈이다. 향란이가 절름발이 시키는대로 큰길을 건너 골목을 돌아가 보니 과연 한길되게 쌓은 벽돌담이 나지고 널대문도 있었다. 한데 대문을 열자고 보니 밖에다 자믈쇠를 놓은채 그 집은 고즈너기 어둠속에 잡겨있었다.
그자의 녀편네도 없단말인가? 요렇게 공교로울 변이라구야 내가 공탕을 하다니. 염왕산 류자들은 강탈을 해도 여지껏 주인없는 집은 침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건 비겁한 자의 졸렬한 행동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향란이는 신기료를 다시찾아갔다.
《왜 집도 비였소?》
녀인이 인차돌아오는것을 보자 그가 먼저물었다.
《대문을 잠갔네요.》
《그러면야 복장점에서 안돌아온게지. 거기나 가보오.》
《복장점이라니요?》
《아니 모르는가, 아명은 돈많이 벌어 복잠점차린걸.》
《그런가요. 그렇다면 운이 튼 사람이네요. 사진관을 차렸겠다 복장점을 차렸겠다. 어쩌면 복이 그리두 굴러들가.》
향란이는 장탄설을 늘여놓다말고 그가 알려주는대로 사진사가 차린지 그 복장점을 찾아갔다. 멀지 않았다. 남쪽으로 좀 더 나가니 간판을 내건 복장점이 나졌다. 사진관을 차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으면 이토록 남이 없는 세를 내며 살가. 태평진에는 복장점이 여러개있었다. 향란은 전에 자주다녀서 다 알고있지만 새로 생긴 이 복장점은 처음와보는것이다.
카텐을 쳐서 창문이 그리 밝지 않을 뿐 불을 켜놓았으니 안에 사람이 있다는걸 말한다.
《그렇지, 내가 빈손으로는 돌아가지 않게 됐구나.》
향란이는 웃음이 절로흘러나왔다.
사위가 조용했다. 향란은 미리준비해갖고 온 검은천으로 복면하고 문가로 다가갔다. 귀를 기우렸더니 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도란도란 나고 있었다. 혼자서 중얼댈리는 없는것이다. 하나는 여자목소리고 다른 하나는 남자목소리였다. 사진사가 출장을 했다니 저년은 필시 다른사내와 마주하고있으리라.
도란도란 나던 말소리가 갑자기 웃음으로 바뀌면서 높아졌다.
《아유 간지러워라! 호호호....》
《흐흐흐....》
둘은 분명 그짓을 하고 있었다. 집안으로부터 나오고있는 닉음(溺音)은 당장뛰여들어 강탈을 하려던 녀인의 의지를 뒤흔들었다. 향란은 내가 이럴때 뛰여드는건 남의 은사를 휘젓는 갈개꾼짓이다. 참자 조금만 더 참자했다.
이윽하여 조용해졌다.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끝난모양이다. 한데 사나이가 거기서 얼른나오지를 않으니 향란이는 초조해났다. 어떤 자식인지 남의 녀편네와 아예 딱 붙어서 이 밤을 보낼셈인가. 그러면 안되겠는데. 향란이는 집안정형을 알고싶었다. 그래서 그 복장점의 다른 한 창문에 가보니 마침 카텐의 한쪽이 덜가리워져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진사녀편네는 드세게 찧어댄 방아공이에 열이 난 방아확을 식히느라 그러는지 알몸뚱이로 탄자를 편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있고 사나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향란이는 그 사나이가 옷을 다 입고나서 몸을 이쪽으로 돌리는 순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다. 팔자수염을 괘씸하게 자래운 그는 언젠가 사진을 가지고 성밖까지 뒤를 밟아나왔던 자였던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할 감정이였다. 향란이는 다른때는 늘 내가 응당 그놈은 죽여버렸어야 했을걸 하면서 후회했건만 정작다시보니 이상하게도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팔자수염은 거기를 나와 어딘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안에서 돌차간 인기척이 났다. 향란이는 녀인이 문을 잠그자고 일어난다는걸 제꺽알아챘다. 어물거릴 때가 아니였다. 그녀는 복장점의 문을 뚝 떼고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있었다.
《악!》
사진사녀편네는 복면한 사람이 귀신같이 나타난지라 그만 혼비백산하여 숨넘어가듯 단마디 비명만 내지르곤 털썩 주저앉았다.
《발정을 한 계집년!》
향란은 한마디 욕을 해놓고 불빛에 번득이는 비수를 코앞에 들이댔다. 아직 몸에 실한오리도 걸치지 않은 녀인은 고양이한테 잡히운 쥐모양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목구멍이 꺽 메여 소리를 지를 수 없고 오금이 졸아들어 달아날 수도 없었다.
《여게 도루누웠거라, 어서! 일어나면 없애치울테다!》
넋이 떨어진 녀인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것 같아 방금 팔자수염과 극락을 보았던 탄자우에 다시눕는 수밖에 없었다.
향란은 그녀가 눕자 진렬장에서 까마반들반들한 수달피목달개를 단 값진 녀인용털가옷을 두벌꺼냈다. 털세타 네벌과 남성옷 두벌 그리고 남성용과 녀성용적삼도 각각 몇벌씩 꺼냈다. 그런 후 그녀는 그것들을 꾸러미에 싸갖고 나와버렸다.
사진사는 제 복장점을 털리우고서도 경찰에 보고하지 않았거니와 이웃과도 까딱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것은 그번 략탈이 어느 혐원이 있는 악한 녀인이 제 안속을 채우느라 계획적으로 남의 은사를 들춰낸것이라 여겨지는 한편 이 일을 내놓고 떠든다면 도적도 못잡고 공연히 추문만 퍼져 세상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로부터 향란은 정식으로 손을 펴기 시작했던것이다.
이듬해의 청명절이 돌아오자 향란이는 제 아버지의 산소에 참배하러 간 기회에 두 번째로 그 복장점을 털어냈다. 그번에도 사진사녀편네가 면바로 집에 가지 않고 복장점에 있었는데 향란이는 수건으로 그녀를 아갈잡이를 시킨 후 침대에 꽁꽁 묶어놓고는 상점안의 옷들을 걷어 트렁크 두 개에 골똑넣어갖고 돌아왔다.
그번까지 당하고서야 사진사네는 경찰에 보고했고 그와 함께 태평진에는 흉맹한 녀강도가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그게 누구일까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리저리추측만 할 뿐 근거가 똑똑치 않으니 누구나 명확히 알아맞히지 못했다. 태평진에 복장점이 여럿되는데 이 녀강도가 사진사네 한집에만 달려들고 다른집은 건드리지 않는게 이상했다. 그러면서 다른 또 한가지는 일본사람은 보는족족 해치니 더구나 수수께끼로 되고 있었다.
지난해의 초겨울. 향란이는 사진사의 집을 세 번째 습격했다. 그번은 그녀가 략탈을 목적한것이 아니라 사진사를 아예 없애버리려 한 것이다.
사진사 왕아명이 마침 집에 있었다.
그의 녀편네는 친정에 가고 없었다.
그날밤은 웬 일인지 전기를 주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오래간만에 전기불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불빛이 밖으로 한점도 새여나가서는 되지 않았다. 기실은 이것이 방공련습이였던것이다.
《엑크!》
사진사는 복면한 녀강도가 집안에 뛰여들자 궁둥이를 총에 맞은 노루모양 풀쩍 뛰였다.
《도, 돈을 줄께!.... 여, 여게있어!.....》
사진사는 벌벌 떨면서 뒷걸음쳐 벽가에 놓여있는 책상에 다가가 뻬랍을 뽑고 손을 넣었다.
《허튼수작말어!》
향란이는 어느결에 허리에 감고있던 철채찍을 풀어 그자의 팔목을 후려갈겼다.
권총이 땅에 떨어졌다.
향란이는 철채찍을 휘둘러 그를 한쪽구석에 몰았다.
어께와 목이 찟기운 사진사는 울상이 되여 원성을 텃드렸다.
《네년은 대체 누군데 우리만 그냥 못살게 구느냐, 엉?》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냐, 이 한간놈아!》
향란이는 유연한 태도로 낯을 가리웠던 수건을 벗었다.
《이젠 알만하겠지?》
《아, 알만하오. 자, 잘못했소.》
향란이는 가증스러은 그자를 향해 경멸을 보내였다.
《더러운 피자놈! 잘못했다면 다냐. 사진사의 탈을 쓰구 왜놈의 첩자질이나 하고....네놈은 대체 몇사람이나 잡아먹었냐?》
자기가 이미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고 피하지 못할 사지에 들었음을 깨달은 사진사는 발작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강도야!》
향란이는 철채찍으로 그의 입을 갈겨놓았다.
사진사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안고 딩굴면서 피를 억물었다.
누군가 잠그어 놓은 앞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게 누군가요? 왜 그 모양인가요?》
향란이가 화난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요. 소래기는 왜 질렀소?》
방공훈련에 동원된 순경이였다.
《소리라니요, 누가 소리쳤게?》
순경은 여자의 목소리라 뭐라고 구시렁대면서 가버렸다.
향란이는 상우의 재떨이곁에 있는 석냥갑이 눈에 띄이자 그것을 손에 쥐였다. 뻬랍을 뒤지니 인화지와 사진건판들이 가득나왔다. 그녀는 쓰레기통에 구겨 던진 종이와 신문지들을 커다란 그림병풍가에다 모아놓았다. 그리고는 그 우에다 뻬랍안의 것들을 마저털어 놓은 후 석냥을 그어댔다. 불이 당기였다. 향란이는 사진사가 바당에다 떨어뜨린 권총을 주어 들고 뒷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왔다.
달빛이 흐르는 밤은 고요했다.
태평진을 나와 마상에 올라앉아 뒤돌아보니 성안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향란이는 소란해지기 시작하는 태평진을 뒤에 남기고 말을 달려 그날밤으로 염왕산에 돌아왔던것이다.
사진사의 죄는 파라척결(爬羅剔抉)했지만 특무녀석의 죄는 그대로 숨겨져 있었다......
《여보시오, 무슨일있습니까?》
민호는 입을 열고 그 팔자수염과 물었다.
《당신이 두령이요?》
팔자수염은 이켠을 다시보며 얼굴에 노기를 피웠다.
이 자식이 왜 이모양이냐. 민호는 그를 갖잖게 여기면서 여전한 투로 말했다.
《대체 무슨일인지 어서 말이나해보시오.》
《우리는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으니 어서 여기서 가버리란말이요..... 왜 그러겠는가. 그건 이런거야. 염왕산은 전에 여기서 좋은 일 하잖았거든. 원한을 많이 끼쳤어. 그래서 주민들은 환영하지 않는단말이요.》
두지개가 참지 못하고 일어서면서 발끈했다.
《그따위 개나발같은 소리는 작작해라. 이눔의데가 다 뭐야. 우리 위두령은 여게왔다가 눈감았다. 그때 일 우리는 뭐 속에서 내려간줄 아느냐?》
향란이가 격분했다.
《저 미친 녀석을 좀 가르쳐줘요.》
말이 떨어지기바쁘게 류자들이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이러자 다른 둘은 그만 혼겁하여 밖으로 내뺐다.
류자들은 그러잖아 심심하던 참이라 네놈이 제발로 잘 찾아왔구나 태평진 주민들이 우릴 환영하지 않으면 꼴이 어떻게 되는가를 좀 보여줄테다면서 팔자수염을 몸에 실한오리 없이 쫄닥벗겨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는 좋다고 손벽을 쳐대며 왁작 웃어댔다.
좀지나니 장평이 일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뛰여왔다.
《너무하오! 너무하오!》
류자들이 그의 말을 문질러버렸다.
《뭐가 너무했단말이냐.》
《너무한게 없다.》
《그만쯤했으니 우린 대자대비를 베푼거다.》
장평이 울상이 되어 알려줬다.
《그게 나의 재종형이요.》
《뭐라구!?.....하하하!....》
류자들은 다가 일순간 멍해졌다가 다시 폭소를 텃치고말았다.
《그런 재종형이 있다고 말이나할게지.》
그저 이런 작난이나 분풀이로 무마해버릴 일이 아니였다.
오늘 이같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는 한때 위용강을 따라왔던 자도 있어서 태평진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니 자연히 말성이생기기 마련이였다. 염왕산토비는 다 없어졌다더니 어디 그렇지 않구나, 그자들이 뭘하자고 여기에는 모이는가 불만품으면서 불안해 하는 사람이 적잖았던겄이다.
장평은 그래도 주대있는 사나이였다. 그는 종숙이 노여워하건말건 재종형이 욕하건말건 남이야 지벌대건말건 다 꿈만해하면서 류자형제들의 해후의 상봉이니 경축하지 않아서야 되느냐며서 돼지잡고 술받아 연회상을 크게 차려 위로했다.
《스믈여섯에 넷을 가하고 거기다가 나까지 합하면 모두 설흔하나. 염왕산은 아직살아있소!》
장평은 좋아하면서 오늘 이같은 만남은 신불의 덕택이라했다.
그런것 같기도했다. 목에 모두 옛모양으로 부대화상을 걸었다.
장평이 입을 다시열었다.
《오인형님, 지금 염왕산에는 산채도 없잖은가요. 형편이 그같이 좋잖은데 이 동생이 의견을 한가지 내놓으랍니까.》
《말해봐 뭔데?》
민호는 귀가 솔깃해졌다.
장평이 입을 다시열었다.
《내 의견은 이런겝니다. 형님들은 다 여지껏 산속에 갇혀셔 고생많이 했는데 이제는 다시 산에 가지 말고 그냥 여기에 눌러있는게 좋잖은가하는겝니다. 우리 치안대하고 합치든지 아니면 독립으루 되던지 건 맘대루구. 그러면 난....》
두지개가 팔을 홱 저어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가만, 네 의견은 그래 우리더러 밥을 얻어먹기 위해 태평진보초를 서라는거냐?》
다른 류자들도 굶을지언정 그 노릇은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관심이 고맙다만 장평아, 우리는 환영도 하잖는 여기에 눌러앉아있을 수 없네라.》
《너나 여기서 대장질을 해먹거라. 우리는 산에 들어가서 다시기국하련다.》
민호와 도지개의 말이였다.
그들은 마음먹은대로 하였다. 연회를 파하자 장평 하나를 내놓고 류자들은 그 자리로 떠나 오인 정민호와 향란이를 따라 염왕산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중앙산채의 페허위에 터를닦고 통나무를 베여 커다란 집 한 채를 지어놓고 어느날 의식을 거행하여 새로 기국했다.
민호는 30명의 류자로 새로 조직된 자기의 이 대오를 <철혈대>라 이름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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