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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의 독립운동
1914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삼도구로 총본사를이전 한 후, 대종교는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대 대종교도가 주도한 독립운동의 중심지는 북간도 왕청현 일대였다. 왕청현에서는 동도본사 책임자인 서일이 중광단을 조직하고 독립정신함양과 군사교육에 진력하였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중국에 망명중인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연명으로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 일명: 무오독립선언서(戊午獨立宣言書)를 발표하였는데, 서명인사 39인의 대부분이 대종교도였다.
서일은 중광단을 토대로, 정의단(正義團)으로의 확대를 거쳐,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발전하였다. 북로군정서는 북만주지역 한인무장투쟁활동의 중심이 되었고, 북로군정서 독립군 병사의 대다수는 대종교도였다. 이로서 대종교는 항일전쟁의 이념적 기반으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르렀다.
1920년 10월 북로군정서는 서일의 지휘 아래, 김좌진, 나중소, 이범석 등의 지휘하에 청산리대첩(靑山裏大捷)의 전과를 거두었다. 이어서 대종교도 독립군들은 1925년 신민부(新民府)를 결성하여, 민정과 군정을 아우른 한인자치정부 성격을 띤 독립군단을 성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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