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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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1.
2011년 05월 06일 12시 06분  조회:5982  추천:29  작성자: 김송죽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

                 (제2부)

 

                   1

 

 

  고종의 무능을 늘 한탄해 온 서일이 그에 대한 견해가 돌아서게 된 것은 1907년 1월 16일 고종이 런던트리뷰운지 특파원에게 소위 보호조약(保護條約)이란 짐이 아는 바가 아니라고 부인한 6항목의 친서를 수교(手交)한 것을 大韓每日申報가 전재한 것을 보고서였다.

   사실 고종은 일본의 침략야심을 오래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국력이 약하다보니 그를 감히 맞서서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은 먹히우고 마는 처지를 당하게 되어 오로지 자기의 무능을 통탄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금와서는 사력(死力)을 다해서라도 기우러진 나라를 다시일쿼세워 보려고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런던트리뷰운지 특파원에게 친서로써 乙巳保護條約은 무효라고 표명한 것이 그 행동의 일측면이 될 것이다.

   그에 앞서서 고종은 乙巳保護條約이 강제로 늑결(勒結)되면서 국권이 상실되여 감은 물론 자기는 결국 이또오 히로부미가 다루는 꼭두각시처지에 놓이게 된거요 신념(宸念)은 이루다 표현할 수 없는지라 어느날 동엄(東嚴) 정환직(鄭煥直)을 불렀던 것이다.

   나이 환갑에 이른 정환직은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내다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의 벼슬을 하고있었는데 그 누구보다도 대바른 고급관리요 충신이였다. 불혹의 나이에 벼슬길에 올라 의금부도사(義禁府都寺)로 부터 삼남도오령(三南都五領), 삼남검찰사겸토포사(三南檢察使兼討捕使), 삼남도찰사(三南都察使)가 되어 탐관오리들을 척결하여 공이 많다.

   그를 불러온 고종은 오열(嗚咽)을 하면서 물었다.

   《경은 화천지수를 아는가?》

   정환직이 왜 모르랴.

   화천지수(華川之水)의 유래인즉 이러하다. 고대 중국 제(齊)나라의 임금 경공(頃公)이 적군의 집중공격을 받아 생사(生死)가 눈앞에 닥쳐왔을 때에 장군 봉축부(奉丑父)가 임금과 옷을 바꾸어 입고서 수레우에 올라앉았다. 말을 몰고 있는 임금이 적에게 체포될 순간, 봉축부는 그보고 화천에 가서 물 한잔만 떠오라고 하였다. 임금은 다행히 그 기회를 타서 도피할 수 있었고 봉축부는 대신 체포되여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임금은 나더러 의병을 일으켜 대신 나가 싸워달라는 뜻이로다!)

   동엄 정환직은 숙연히 밀조(密詔)를 받고나서 눈물을 머금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그는 우선 관직을 사퇴하고 큰아들 용기(鏞基)와 남산의병진을 이끌고 싸웠다. 배달민족은 이같이 조국애와 골육지정(骨肉之情)으로 아버지와 아들, 형님과 동생이 또는 윤리도덕적 감정으로 스승과 제자, 남과 남이 일심동체되여 싸웠다. 비장한 희생을 많이 내면서도 항쟁을 계속하였다.

   박기호가 당일의 大韓每日申報를 보라고 들고 와서 서일과 그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대화가 오갔다.

   박기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임금님은 애국의 열이 불타 온 땅에서 의병투쟁이 자꾸재발하는걸 이제는 속으로는 은근히 반가와 하시는 것 같구, 그러면서 다른면으로는 일본이 회유와 공갈로 국권을 하나하나 빼앗아 내는 형편이니 자못 심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계시는 것 같구나.》

   《그러시면서 빼앗긴 국권은 기어히 회복해보려 하심이 명백하다.》

   《국권을 남한테 다 빼앗기면야 허수아비지 뭐야. 그래갖구야 어떻게 구천에 가있는 조종을 대할가,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래두 사력을 다해서 국권을 되찾으셔야지. 안그래? 만대에 오욕을 남기지 않으시려거든.》

   《의례 그래야지. 그런데 .... 가만있자, 이 신문에 신채호의 문장이 또 났다지. 우리의 친구 하나가 신문지를 무대삼아 결심대루 싸워나가니 반갑구나!....일본의 침략성, 간악성을 기탄없이 까밝히고 악질친일분자를 규탄함이 구절구절 예리하니 실로 실물폭탄의 실력을 릉가하는 종이폭탄이로다!》

   이 말에 박기호도 동감하면서 그의 글은 지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분발시키는 활력소구실을 한다고 찬평(讚評)했다.

   《일본은 그 신문에 뻗친 독수를 걷어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신문의 안전이 늘 근심이다. 지독한 일본놈들이지. 그놈들은 오장이 어떻게 돼먹었는지 세상 못해내는 짓이 없으니까.》

   서일은 오늘 역시 신채호의 안전까지 념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이 예측은 옳았다. 大韓每日申報가 통감부의 비위를 다시 한번 크게 거슬리여 일본은 신문사 사장인 영국인 배설추방공작을 더 활발히 추진하였던 것이다. 일본측은 大韓每日申報의 기사를 번역하여 영국측에 제시하면서 배설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는 등 외교경로를 통한 압력을 가하면서 그 자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탄압을 자행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매컨지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일인(日人)들은 할 수만 있으면 그의 생활에 불편을 주려고 애썼으며 그의 사업을 방해하고자 갖은 짓을 다했다. 일인들은 그의 우편물에 늘 장난을 쳤고, 신문사종업원들은 이러저러한 구실로 위협 또는 체포했으며 그의 집안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 Korea's Fight Freedom>>

   

   어느날 신문에 놀라운 소식이 또 났다. 한차례의 조직적인 정부대신 집단암살행동이 일본군경에 의해 마침내 제지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라철, 오기호 등이 5적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것을 보도한것이였다.

   《원, 어떻게들했으면 또 실팬가? 역적대신들을 일거에 소탕하자고 했으면 우선 계획부터 대단했을텐데 한놈도 없애지 못하다니 원! 에에...》

   서일은 보던 신문을 맥없이 던진채 그 보도는 되도록 새겨두지 않으려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맹랑하게만 여겨져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고있는데 어느날 꿈밖에 이홍래가 바람같이 경원에 나타날줄이야!

   《아니! 이선생도 그 행동에 참여를 했단말입니까, 그래?》

   《그렇네. 걷보기는 펀펀할 것 같으리오만은 지금 나는 똥줄이 달아서 피신을 다니는 놈일세.》

   이홍래가 하는 말이였다.

   그랬다, 걷모양보구야 누군들 그를 탈주자로 의심하랴. 우선 외형부터 보자. 서양복을 정갈하게 입고 구두신고 멋진 가죽가방까지 척 들었으니 짜장 출장을 나선 어느 회사직원같지를 않은가.

   《하하, 대단히 배포유한분이네요!》

   《하하하!....》

    서일도 박기호도 그가 똥줄이 달았다는 소리에 웃음이 나갔다.

   이날은 월요일이였다. 서일은 그를 우선 제 집에다 숨겨 푹 쉬라해놓고는 저녁켠에 퇴교를 해서야 박기호와 함께 조용히 다시마주앉았다.

   《거사를 이루자던 날이 3월 25일이니까.... 우리야 신문을 보구서 그 날을 알지요. 오늘이 4월 1일이라 그러니 꼭 한주일만이구려! 한데 가만있자, 그러면....그렇게 먼데서 이레만에 여기까지 오다니! 행동이 실로 과연 잽싸기도합니다! 축지법을 쓴거야 아니겠지요? 불가사이야, 불가사이!》

   서일이 손가락을 굽혔다폇다 꼽고나서 머리를 젓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까 이선생하던 얘기를 잊었나. 똥줄달아 도망치는 중이라잖어.》

   박기호가 말해서 희연이와 죽청이까지도 웃었다.      

   《그래두 불가능이야, 날개있어서 날아왔으면 몰라두.》

   서일은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홍래는 이때에야 비로서 중도에 있었던 일 한가지를 실토했다.

   《내가 날개있어서 빨리왔을가. 오다가 부정행실이 좀 있었네. 들어들보라구. 난 그날 집에 피끗들렸다가 곧추 정거장쪽으루 내뺐지. 거기에 때마침 떠나는 차가 있더군. 짐을 반가량 싫은 무개화차였어. 올라가 보니께 경의선이라, 차는 북쪽으루 달리데. 마침 잘됐다했지. 잘되다말다. 그놈의 차가 정거장에 오래눌러붙지를 않구 고맙게두 가구가구해서 이틀만에 나는 평양에 도착했던거네. 거기서 내려버렸지. 압록강쪽은 아마두 경계가 더 심할거다 생각을 해서였지. 그래 어떻게 됐겠나, 방향을 이리루 돌린거지. 안오자니 영락없이 잡힐 것 같구. 오자니 아득하구.... 양덕에 이르러 말 한필을 훔쳐 타구 그냥 달리구 달려왔네. 그러다 청진에 채못닿아서 말이 그만 거품을 물고 눈깔을 까뒤히는게 죽을 거 같으데. 그래 그놈을 네갈데루 가거라 팽가치고는 도보루 예까지 온걸세.》

   《그 입은 옷도 훔친겁니까?》

   《아니여. 옷은 청진서 내 돈주고 사 입은거네.》

   《그럼 가방은요?》

   《그건 집에 있던거네. 나오면서 부러 유유히 들구나왔지. 멋부리면 나을거 같아서.》

    (자기를 변장하느라 무던히도 신경을 썼구나.)

   서일은 웃음을 입에 문채 가방쪽에 눈길을 던졌다가 거두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그러니까 이선생은 월경을 작정하고 이리루 오신게로군요, 그렇죠?》

   《........》

   이홍래가 묵묵부답인걸 보자 박기호가 롱을 걸었다.

   《아닌게 아니라 똥줄이 달아두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아무렴 만주까지 도망을 치다니요 원. 혼빵났지요?》

   《혼빵나그러는게 아니라 성공하지도 못하구 잡히면 그때는 더 맹랑한 꼴이라 재미없어서 그러는거네. 숨을 돌렸다가 다시와서 한번 또 해봐야지.》

    이홍래는 이러면서 자기의 실수를 털어놓았다.

   《내가 거느리는 패는 권중현이를 잡자구 했드랬지. 아느새있으려니까 그자가 오데. 건데 사인교에 앉아 꺼들거리는 꼴이 어찌두 눈에 시던지 내가 고만에 <이 역적놈아, 네 죄를 모르느냐?>고 소래기를 치면서 달려나갔지. 먼저 갈겨놓고 봐야했을건데 그만.... 피스톨을 꺼내 겨누자니 그자의 호위병들이 왁 달려들어 끄잡아당기데. 그래서 난.... 강상원이 갈겼네. 그런데 아뿔싸, 맞히지를 못했네. 재차 갈긴것도.... 그가 체포되는걸 보구 난 날 잡으려는 놈을 둘러메쳐 넉장을 놓고는 그만 내뺐던거네.》

   《아니 건데 소리는 왜 쳤습니까? 그럴려거든 차라리 <여봐라, 내가 총을 쏠테니 넌 게 가만히 섯거라>하실거지.》

   서일의 입에서도 놀림말이 나와서 모두들 웃었다.

   《그러게 말이네. 이런 꼴루서 되자니께.... 난 그놈은 잡았다했지. 서툴렀어. 우린 너무도 서툴렀어.》

   이홍래도 얼굴은 웃고있어도 맹랑해 하는 빛이 력력했다.

   그날 각 대신을 예궐(詣闕)의 도상(途上)에서 일제히 거결(擧決)할 것을 결정하고 내온 부서를 볼 것 같으면 이러했다.

   

   參政大臣 朴齊純의 암살책임자는 吳基鎬의 결사대 수명

   內部大臣 李址鎔의     ,,        金東弼의     ,,    

   軍部大臣 權重顯의     ,,        李鴻來의     ,,    

   學部大臣 李完用의     ,,        朴大夏의     ,,  

   法部大臣 李載克의     ,,        徐泰運의     ,,     

   前軍部大臣 李根澤의   ,,        李容彩의     ,,      

 

   이근택은 총소리를 듣고 집에서 나오지 않아 참살될 것을 모면하였다. 이완용의 저격을 맡았던 일대는 시장하여 주막집에 잠시 들린 틈에 이완용이 지나감으로써 역시 실패하고말았다.

   서일은 이홍래의 구술을 다 듣고나서 결론적인 평을 했다.

   《내가 보건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면 애국열정과 매국노에 대한 분노가 앞선나머지 치밀한 계획과 세심한 노력을 소홀히 한 탓이로구먼.》

   《그 말이 맞네. 아마 그런 것 같네.》

   이홍래는 착오적인 결함을 승인하면서 일이야 어떻게 됐던간에 라철선생이나 오기호선생이나 결코 이것으로 끝내자고는 하지 않을거라했다.

   《이것으로 끝내지 않으면 어쩔텝니까? 이선생은 이제 서울로 다시금 올라가보렵니까? 관두시오. 그런 모험스러운 짓은 하지두마시오. 지금 경찰에서 잡아낼려구 눈에 쌍불을 켜고있을텐데.... 용맹이 너무 과해두 안됩네다. 나돌지 말구 여게 꾹 배겨있으시오, 쫓지를 않을테니.》

   서일은 웃방을 내주면서 그를 두문불출하게 단단히 뒤를 눌러놓았다.

   이홍래는 그지간 이 의병대 저 의병대를 전전하면서 혹은 격문을 써주기도 하고 혹은 함께 싸우기도 하였다면서 그러는 사이 경상북도 금산군의 박대하를 알게 된 것이라면서 같은 민영환의 부하인 김동필, 이용채와 함께 의병을 다시금 일으키려다가 라철을 찾아가 조언을 바란즉 그가 하는 말이 나라를 팔아먹는 5적부터 주살(誅殺)해버려야 한다기에 그러면 그래보자고 거사에 참여를 했노라면서 오기호가 조직한 유신회에 대해서, 그와 라철(아인영)이 주장해온 민간외교로선에 대해서 제나름의 평가를 했다.   

   서일은 이홍래가 몇해전에 라철의 조언(助言)을 듣고 월경의병장의 노릇을 착실하게 해낸 일을 새삼스레 상기하면서 라철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분일가 그를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 또다시 무럭무럭 났다.

   이러던차 4월 2일자 서울의 친일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들에 라철이 오기호, 김동식과 함께 평리원(平理院)에 자수했다는 소식보도가 났다.

   《자수를 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홍래가 신문을 보더니만 펄쩍 뛰였다. 그리고 얼굴은 보기조차 흉할 정도로 이그러 지면서 갈피잡기 어려운 생각에 착잡해지는것이였다.

   《이것 안보입니까, 정부는 이 사건을 정부정복을 목적으로 한 내란사건으로 규정하고 체포된 자들을 평리원으로 이송하였다구요. 이런데도 뛸쳐나가 볼셈입니까? 스스로 법망에 걸려들 짓은 하잖는게 좋겠습니다.》     
   서일은 움찔거리는 그를 다시 한 번 꾹 눌러놓았다.

   3월 25일의 거사가 실패하였으나 라철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동지들과 함께 급급히 재거사(再擧事)를 계획하고 박대하를 지방에 내려보내여 결사대원을 모집케했다. 한데 이때에 서창보(徐彰輔)가 실수하여 수사당국에 체포됨으로 하여 사건의 전모(全貌)가 밝혀져서 동지들은 륙속 체포되였다. 이렇게 되자 라철은 가만히 보고만있을 수 없어서 이광수와 이용채에게 거사를 부탁하고 동지 둘과 함께 자진하여 평리원(平理院)을 찾아가 내가 시켜서 한 일이니 벌을 하겠거든 나를 하라면서 자수한 것이다. 이어서 이기 와 이광수도 자수하였고 이용태외 19명이 하나하나 체포되는 판이였다.

   체포되지 않고 피신한 것은 이홍래와 박대하, 이용채, 서태운 뿐이였다.

   날이 점점 가면서 그 사건에 관한 소식은 신문에서 점점 가라앉았다.

   《잡히지 않은 이들은 멀하는지?.... 라철은 어떻게 되는지?....》

   이홍래는 소식을 몰라 답답하니 속에서 털이난다했다.  체포되지 않은 사람은 이홍래모양으로 계속 숨어있을거요 체포된 사람은 판결을 기다릴것이오만 그는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같아서 그냥 견디기 어려워했다. 그러면서도 서일이 학교에 출근한 후라도 훌 떠나가지는 못했다. 감히 그럴수 없었다. 서일의 집에다 몸을 숨기는 한 주인의 허락없이는 일체의 자유적인 행동은 금하기로 단단히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꼭마치 쇠초롱에 갇힌 야수와도 갔다.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

   서일은 친구앞에서 사정이 딱함을 얘기했다.

   《그래두 절대루 내놓지는말아야지, 놈들이 눈에 쌍불켜고 찾는판인데 나가기는 어디루 나간다구. 번들번들 나돌다가는 영락없이 잡히고말거다, 안그래?.... 그래두 안전하기야 여기가 제일이지.》

   박기호의 말이였다.

   《나도 그 주장인데.... 아마도 내가 서울에 한번 갔다와얄 것 같다.》

   《정황알아본다 그거지? 건데 그걸 어떻게? 누구와?....》

   《우선 신채호를 만나서.... 그인 언론인이니 알수도 있지 않을가?》

   《지금은 보다싶히 재판소라는건 싹 다 왜놈과 그 주구들의 손에 들어간건데 저들이 하는 일을 그한테 알려주기나 할가. 설혹 알려준다해두 실속대로 알려줄가. 그런 기자들하구는 옹추간이 됐을건데.》

   박기호가 하는 말인데 과연 그럴법한 일이기도한지라 더 말을 하지 않고 집에 돌아가 이홍래의 앞에 이 말을 꺼내보았다. 그랬더니 이홍래는 급기야 낯이 확 밝아지는것이였다. 그는 내심으로는 언녕부터 서일이 한번 서울에 가줬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던 것이다.

   《이상설은 로씨야서 북간도로 건너갔다니 만날 수 없는거구....》

   《자결순국을 한 민영환의 유서를 읽으면서 통곡하던 그분말이지요?》

   《맞어. 그건 어떻게 알우?》

   《서울갔다가 마침 봤지요. 종로서 자기도 죽겠노라구 야단쳤던걸요.》

   《그랬소. 야단을 쳤어. 병원가 구급을 하구서야....》

   《그분 만주가서는 뭘하시게?》

   《용정서 서전의숙을 세우고 글을 가르킨대. 그렇지, 우당선생이 계시니 그분하고 물으면 혹 알수 있겠어.》

   《우당이 누구신데?》

   《우당을 몰라? 이회영말이여. 그분의 동생 성재 시영선생도 있구. 이시영이야 알겠지, 김홍집의 사위말이요. 그인 전에 외부교섭국장을 지냈잖아. 평양감찰사로 있다가 그만두고 중추원의관으루 전임해서는 한성재판소장으루 게시네. 그들 6형제 대부들은 다가 애국심이 대단한 분들이요. 건 그렇구 그분들은 더구나 라철과는 모두 친분이 두터우니 도와나설거네.》

   보아하니 이홍래는 그들의 관계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이회영은 1898년 무술(戊戌) 중추(中秋)에 이상설, 여준(呂準) 등과 남산 홍엽정(紅葉亭)에 모여서 내외정세를 검토하면서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불쌍한 백성과 일본을 비롯한 열국의 독아(毒牙)가 엇바꾸어 핍박해 옴에 난국타개책(難局打開策)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던 끝에 이상설의 서재를 회의실로 정하고 방략을 연구했는데 라철은 그때 그네들과 동지적인 혈맹을 맺은 것이다.

   을사해인 1905년 11월상순 어느날 이상설이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알선으로 로일강화조약에서 한국에 대한 우월권을 얻은 일본은 이또오 히로부미으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어떤 조약을 제출케 하고자 파유(派遺)했으니 이는 한차례의 음모요 한국에 대한 치명적인 것이 될 것 같으니 이에 대한 강구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바 있다. 그때 이회영은 올것이 왔다고 탄식하면서 어찌 방관하랴 이상설이 현재 참찬(參贊)으로서 요직에 있으니 참정대신 한규설과 숙의(熟議)하여 불리한 조약은 한사코 거부하도록 하고 이시영은 외부교섭국장에 있으니 외부대신 박제순을 설득하게 하는 한편 고종황제의 결의 여하가 관건이니 황제가까이에 있는 민영환에게 부탁하여 어떠한 제안이던 불리한 것은 완강히 거부하도록 상주(上奏)하도록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또 라철이 오기호 등 동지들과 함께 민간외교를 나섰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는 결국 이모양이 된 것이다.

   서일은 함흥에 계시는 친부(親父)께서 건강이 좋지 않아 보러 갔다와야겠다며 곧 서울을 향해 장도의 길에 올랐다.

   이홍래는 박기호가 주인사내없는 집에 있기 불편할것이라면서 제 집으로 모셔갔다.

   서일은 서울에 당도하자바람으로 大韓每日申報社부터 찾아갔다. 마침 신채호가 출장을 하지 않아서 생각대로 만날 수 있었다. 신채호는 느닷없이 나타난 서일을 무척 반갑게 맞이했다. 신채호는 대구를 중심으로 경향각지(京鄕各地)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적극 참가하여 필봉으로써 이를 고무하면서 즐기던 담배까지 끊고 있었다. 서일이 그의 앞에서 선문도 없이 이같이 문득 찾아오게 된 연유를 말했더니 그는 아 그런가, 라철은 과연 전민이 존경하고 흠양할 분이다, 5적을 암살하려던 거사가 비록 실패는했지만 이들의 애국정신은 일제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하면서 자기도 체포된 이들의 형편을 무척 알고싶다고 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우회영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때 우회영은 서울에 있지 않아 만나보지 못하고 그의 아우 이시영(李始榮)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장인 이홍집이 명성황후 조화(遭禍)와 아관파천(俄館播遷) 사건으로 인하여 역적으로 몰려 무참하게 살해되자 이상설, 여조현(呂祖鉉) 등 명사(名士)들과 산정(山亭) 야사(野寺)에서 10여년간 정치학과 법학만을 연구하다가 이제 다시 관직을 맡고 사업을 시작한 이시영이다. 그는 자기보다 10살도 더 손아래인 두 젊은이가 라철을 비롯한 5적암살건 관련자들의 형편과 운명에 대해서 각별히 관심하면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발분(發奮)하는것을  보고 감격했다. 그는 자기도 같은 심정이니 구원에 진력하리라면서 지금 平理院 재판장으로 권력을 쥐고있는 이윤용(李允用)을 5역적과 꼭같이 잔인, 교할한 인간이라 욕했다.

   이윤용은 1854년생이고 홍성대원군의 사위다. 

  《그 녀석은 염통에 붙었다 간에 붙었다 하는 그 재간하나를 내놓구 뭐가 더 있을가. 낯가려운줄도 모르는 처세술? 고약하지. 의리란 개보다도 없는 자일세. 홍선대군 때에는 그한테 잘보여서 사위까지 됐지. 후에는 민비헌테 알랑거리며 달라붙어 양덕현감노릇을 한게 아닌가. 한때 병조참판질도 허구. 형조판서를 지낼때는 어땠나 보게. 좌포도 우포도 그걸 도맡아 다했으니....그래서 경무사로까지 오른게 아닌가. 그런 녀석이 아관파천때는 친로파내각엘 가담했단말이요.》

    이시영이 하는 말이였다.

   《그러다 심기일전해 이젠 친일주구질이지요. 그렇지요? 더럽기가 부덕쥐같은 놈입니다! 듣자니 이완용이하구 형님동생하며 끔찍스레 지낸다는군요. 이름자까지 비슷하겠다. 모르는 사람은 다 그들을 진짜 형제로 믿을 수도 있지요. 합니다만 정말 너절한 배짝입니다.》

    신채호가 역적들의 우정을 경멸했다.

   《그렇군 그래. 그가 한때는 이준용의 왕위찬탈음모에도 가담을 했었지. 그런 놈이 글쎄 이 나라의 사법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원....저따위 간신역적들이 지금 망국에 채질하고 있음을 눈뜨고 보면서도 어쩌지를 못하니 국민일원으로서의 무능함과 자책감이 뼈를 에일때가 많습니다.》

   서일이 이런 말을 해서 이시영은 다시본다. 과연 네가 우국충정을 지닌 젊은이로구나 하며 대견해 함이 그의 얼굴빛에 력력했다.

   그들 셋이 평리원에 가 알아보니 아직은 사건관련자를 체포중이여서 재판이 어느때 가서 열릴지 미결이라는 것이 거기의 답복이였다. 그러나 한가지 명확한 것은 라철을 위시한 자수자와 이미 체포된 자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는 평리원 심판장 이윤용이 사건의 중대성을 논하여 이 안건을 판사(判事) 김정묵(金正黙)에게 위임했다는 것과 사건의 담당검사는 이건호(李建鎬), 정석규(鄭錫圭), 박유관(朴有觀) 등이라는 것이다.

   (그들 중 누구를 끄당겨본다?)

   이시영은 속으로 생각을 굴려보다가 이 일은 아마도 만계(萬計)를 다해서 고종을  움직이게 하는게 득책이라면서 제 속구구를 내놓았다.

   《그렇게 되면야 오죽좋겠습니까. 춤을 출 일이지요.》

   《그럼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재판은 모면키 어렵겠지만 그것이 내리더라도 경하게 내리거나 실효가 무기력해지기를 서일도 신채호도 다같이 바라는거다.

    이시영은 능력껏 힘써보마고 했다.

    서일은 이번 서울걸음에 친구 하나를 새로 사귀게 되었다. 육군연성학교 조교로 있는 김규식(金奎植)이란 청년이였다.

   《인사하게. 이분은 함북 경원서 교육사업을 하고계시는 나의 지기지우 서일선생이시오.》

    신채호가 그를 서일에게 소개하면서 각별히 덧붙이였다.

   《대바르고 용감한 청년이요. 동지로 사귈만한.》

    김규식은 나이 19살라는데 나이에 비해 퍽 숙성해보였다. 서일은 키골이 장대해서 거인다운 그의 풍염한 얼굴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듬직해 보여 좋군! 천자가 일부당천의 장군감이야!》

    칭찬에 김규식은 되려 파겁을 못한 소년모양으로 송구스러워했다.

   《전 아직 어립니다. 선배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많이 받아야겠습니다.》

   《선배란 신념이 같을 때 만이 그 자격이 있는거니 굳게 믿어도 될 것이오만 역적간신이 속출하고있는 이런 혼암의 세계에서는 조석으로 맘이 같잖은 자들도 있는거니 각별히 조심해야 할것이오.》

   《과연 지당한 말씀입니다. 지금의 대신만 놓고봐도 어느 하나 애국자로 표방하지 않은 자 있습니까. 기중에는 한때 자주독립을 요란스레 부르짖어 많은 사람의 스승으로 선배로 흠앙의 대상이 되어 떠받들리던 자도 있습니다만 심기일전해서 지금은 왜의 꼭두각시로 놀아대고있잖습니까.》

   김규식은 이러면서 이번 집단적인 5적암살행동이 실패로 끝났음에 몹시 아수해하였다. 그러면서 한편 또 체포된 자들의 처지를 동정도 했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야 어찌 직책을 다한다하리오. 조헌, 곽재우, 고경명, 김천일을 알고있을게요. 그들은 다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신명을 나라위해 바친 유명한 의병장아니오. 우리 민족은 혈관속에 그들의 충효사상과 구국정신이 흐르고있길래 국난을 당할때마다 용감히 일떠나 항쟁하는게 아니겠소. 나는 규식이도 구국명장이 돼여주길 바라오!》

   서일은 갈라질 때 그의 손을 잡고 이같이 간곡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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