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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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ㅡ제2부 27.
2011년 08월 22일 18시 31분  조회:4336  추천:0  작성자: 김송죽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27.

   비록 초가집이기는 하지만 도합 22칸으로 신축된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4채의 숙사겸용의 명동학교는 산골치고는 보기드믈게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 앉은 큰 건축물군체였다. 그 중 한채에는 작은 칸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작은 칸을 교무실이자 중광단실로 리용하고 있었다.

   중광단원이 아니고 외지에서 와 공부하는 학생들은 숙사를 따로 지을 때 까지 우선 개인하숙을 해야했다. 그들뿐 아니였다. 이미 지은 집을 갖고서는 중광단원들도 다 용납할수 없어서 남의 집을 빌리는 형편이였다.

   동만의 겨울추위는 함경도보다 더 독했다. 북위 43°이북이였으니 그럴수밖에.

   하지만 중광단실은 벽날로가 열을 내뿜어서 훈훈했다. 도람통과 연통을 구하기 어려운 때라 로씨아인의 뻬치까를 본따서 만든것이였는데 그것이 제법 구실을 했다. 물론 숙사겸용으로 사용하고있는 교실들은 뻬찌까가 아니고 돌구들이였지만 늘 청결이 잘되고 정연했거니와 방한도 잘되였다.

   서일은 어린 소학반의 일체 교학과 사무를 심권과 박승익에게 맡기고 자기는 현천묵, 계화, 채오, 량현 등과 정력을 중광단사업에 몰부으면서 짬짬이 대종교의 교리를 연구했다.

   《선생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 배우자니 전혀 깜깜모르겠습니다.》

   마을의 농민 하나가 삼일신고(三一神誥)에 있는 진리훈(眞理訓)을 한단락 베껴 들고 어두운 낯색으로 서일을 찾아왔다. 

   

         人物同受三眞曰, 性命精人全之物偏之眞性無善惡

        上喆通眞命無淸濁中喆知眞精武厚薄下喆保返眞一神.

   

   《인물이 동구삼진하니 왈, 성과 명과 정이라 인은 전지하고 물은 편지니라 진성은 무선악하니 상철이 통하고 진명은 무청탁하니 중철이 지하고 진정은 무후박하니 하철이 보하나니 반전하야 일신이니라.》

   농민은 알듯 말듯 한지 눈을 꺼무럭거리더니 결국은 머리를 가로털어버렸다. 의연히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거다.

   그래서 서일은 그것을 한층 더 쉬운말로 풀이했다.

   《사람과 만물이 한가지로 셋 참함을 받나니. 가로대 성품과 목람은 온전하고 만물은 치우치니라. 참성품은 착함도 악함도 없으니, <상등철인>이 통하고. 참 목숨은 맑음도 흐림도 없으니, <중등철인>이 알고. 참 정기는 두터움도 엷음도 없으니, <하등철인>이보전하나니. 참함을 도리키면 한얼이 될지니라.》   

    《아 그런 소리구만유. 이제는 좀 알만합네다.》

    농민은 밝은 낯빛이 되어갖고 돌아갔다.

    교도들 가운데 그같이 깜깜인 사람이 어찌 하나뿐이랴. 서일은 무릇 모든 경전을 쉬운말로 풀이하고 강해를 해야 신도들에게 그것이 접수될수 있고 따라서 신앙심도 높아질수 있다는것을 절실히 느끼고 지식인 교도들은 누구나 모두가 이 방면의 일을 착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전(經典)은 민족의 력사와더불어 모든 중광단원들이 첫 자리에 놓고 배우는 중점과목이 되였다. 서일은 그들에게 원문을 읽는 것이 중요하지만 교리를 제대로 풀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여 그는 덕원리의 시교회를 책임진 이들보고 자기처럼 해주라면서 시교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서일은 모든 순교원(巡敎員)이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경전은 구구절절 그 뜻이 심오하니 풀이를 잘해야 깨침이 제대로 될것이다. 해석이 모호하면 아니가르침만 못하다. 따라서 순교원은 첫째로 구국항일사상을 가진 애국자여야한다. 더 론할 여지가 없이 반드시 꼭!》

   그는 입교하는 그날부터 주장이 명백하고 견결한 사람이였다.

   

   문밖에서 갑작스레 떠들썩했다.

   몇사람이 웬 일인가며 밖으로 나가자고 일어섰다.

   서일도 보던 책을 탁상에 내려놓는데 문이 활짝 열리더니 중광단원 여럿이 웬 키큰 사나이를 데리고 우루루 들어왔다. 그 속에 경비를 책임진 허활(許活)도 끼여있었다. 웬 일인지를 몰라 이켠에서 물으려는데 낯모를 그 사나이가 서일을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곧바로 다가오더니 차렷을 하고 손을 올려 경례를 붙이는것이였다.

   《서일단장님! 저는 시위연대 정위 동천 신팔균이 옳시다. 저는 단장님을 만나뵙고자 불원철리하고 찾아왔습니다.》

   《오 그렇소. 손을 내리고 거게 앉소. 무슨일에 나를?...》

    서일은 신팔균과 악수하고나서 자리를 권하며 물었다.

    초면의 사람을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단장의 부드러움과 신팔균의 군인다운 깍듯한 례모에 모두들 일시 멍해질뿐이였다.

    서일은 불원철리하고 자기를 찾아왔다는 초면의 군인장교를 자리에 앉혀놓고나서 다시보았다. 관골이 불거지고 두눈이 형형 불타는데 나이가 기껏해야 자기같이 이제 30대중줄에 올랐을 기강이 씩씩한 젊은이였다.

   《동천 신팔균이라지, 만주로는 언제 건너왔소?》

   《재작년입니다. 국치를 당하고 보니 있을 멋이 없었습니다. 황실근위 보병대에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유명무실했고, 그래서 나는 군적을 집어던지고 나와 고향으로 가고말았던겁니다.》

   《고향이 어딘데?》

   《충북 진천입니다. 학교를 세워봤지요. 보명학교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구국청년을 양성해볼까구. 그리구는 대동청년당을 내왔던겁니다. 윤세복이 하고 김동삼이 하고, 박중화, 안희재. 서상일. 박중화...》

   《오 그랬소! 국권회복을 위해서 진력했구만!》

   《하긴 진력하노라했지만 그게 어디됩니까. 나라는 그예 이꼴로 되고말았지요... 생각하면 분해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그래 나는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이 그만 훌쩍 떠나 만주로 들어오고말았지요.》

    서일보다 한 살지하인 동천 신팔균(東天 申八均)은 1882년 5월 19일 서우 정동(貞洞)에서 평산신씨(平山申氏) 석희(奭熙) 공의 아들로 태여났다. 그의 부친은 철종(1850ㅡ1863)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포도대장(捕盜大將)을 거쳐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했고, 고조부 홍주(鴻周)는 순조(1801ㅡ1834)때 훈련대장을 역임했다. 조부 헌(櫶) 공은 형, 공, 병조(刑,工,兵曹) 판서와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지냈는데 특히 일제와 담판했던 저 유명한 강화조약(江華條約)때 나라를 대표해 명성을 떨친 외교관이였다.

    이러한 집안에서 태여난 신팔균이였기에 가문의 전통에 따라서 18살 때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 보병과에 입학했고, 군사교육을 받고나서는 21살 때에 보병참위(步兵參尉)로 입관되여 시위연대(侍衛聯隊) 부위(副尉)로, 황실근위(皇室近衛) 정위(正尉)로까지 승진했다가 그만둔 것이다.   

    신팔균은 조상의 땅을 등에 지고 남의 땅에 몸을 맞겨야 하는 신세가 됐으니 통분하기 그지없다면서 중광단을 대종교에서 세웠다니 자기도 가입할 맘을 먹었노라했다.

   《참 잘왔소. 반가운일이요. 그러잖아 우린 사람이 모자라는 판인데... 바로 당신과 같은 군사인재가말이요.》

   《중광단은 지금 인원이 얼마나됩니까? 그리구 어떻게 하고있습니까? 간판을 보니 명동학교라 했구만요.》

   《그렇소. 명동학교지. 그리고 지금은 이것이 곧바로 중광단이기도한거요. 인원수는 외지에 분산되여있는 사람까지 다해서 천여명. 왜 분산되였겠소, 그건 아직도 몽땅 집결할만한 조건이 구비되지 못해서요. 래년에 집을 더 지을 타산이오. 지금은 그저 지식을 배우는걸 우선으로 하고. 머리가 비지 않게끔. 운영방침은 자급자족(自給自足), 근공검학(勤工儉學)이요.》

   서일은 새해부터는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리라는걸 알려주었다.

   신팔균은 듣고나서 군사훈련은 안하는가고 물른것이였다.

   서일은 군사훈련도 해야겠건만 아직은 그를 책임질 사람이 없거니와 군사기술서적마저도 없다고 했다. 신팔균은 이 말을 듣더니 자기가 훈련교원을 맡겠다고 흔연히 자진하면서 꾸러미속에서 군사교본 두권을 내놓는것이였다. 한권은 보병들의 내무, 규률, 전술 등 규범집인 <<보병조건>>이고 다른 한권은 <<군대부호>>였다. 시위대에서 사용하던것이였다.

   이리하여 중광단은 군사훈련과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신팔균이 이러는 것을 지켜보고있던 허활은 그제야 다가와서 자기가 사람을 알아볼줄을 몰라서 너무 과분했으니 량해하라면서 단장을 만나게 하기는 커녕 의심만 품고 피스톨마저 빼앗은 일을 사과했다.    

   신팔균은 아니요 사과할 것 없소 경비를 잘 서려면 의례 그래야지, 그대의 높은 경각심과 책임성에 외려 내가 감탄하오, 무기를 내놓으라니 안된다며 대항하고 억지를 부린 내가 잘못이였지 안그렇소 하면서 그가 돌려주는 피스톨을 받아서 건사했다.   

   이틑날 중광단의 중진들이 학과목설치에 따른 교학과 훈련시간 배비문제를 놓고 한창 토론하고있는데 이동호, 이달문, 이덕수, 김기석, 장기덕, 장사학 등 여섯사람이 소수레에다 훈련용의 목총을 한가득 실어왔다. 중광단은 비록 무기가 없는 정황이지만 군사훈련은 해야 할 것이고 군사훈련을 할 시 빈손으로 하면 멋없고 잘할수도 없는데 그저 보고만있을건가, 그래서야 안되지 하면서 그들은 자진나서서 여러날 품을 들여 소문없이 훈련용목총 1백여자루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년세많은 그네들의 합숙이 어느덧 어지러운 목기공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고마운일이였다.

   서일은 자신이 중광단원이면서 이 조직의 어려운 짐은 스스로 자진하여 맡아 해내고있는 그들을 각별히 존중하여 우리 중광단의 보배이자 원로분들이요 하면서 한 분 한 분 소개해주었다.

   《군수, 양반, 유생, 담사리, 동학당 의병이 뭉쳐서 이룩된 중광단...오, 우리 한배검께서 지켜주고 보우하사 앞날은 꼭 창창할것입니다!》

   신팔균은 가슴이 울렁이도록 감격되여 이같이 부르짖었다. 여지껏 이곳 저곳 떠돌며 귀속을 못찾은 그라 중광단을 집이라고 생각하니 기쁨이 솟아 내가 이제는 부모없고 집없는 고아는 아니구나해서 모두를 크게웃었다.

   이때의 중광단은 실로 귀속을 잡지 못해 광활한 동북만주를 헤매이는  광복투사들이 절실이 바라고 찾는 훌륭한 집으로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1913년이 돌아왔다.

   이해의 봄은 국치를 당하여 세 번째로 맞이하는 봄이였다.

   

            봄이 왔네 봄이 왔네  겨울가고 봄이 왔네

            천지간에 화기돈다  집집마다 기쁘구나

            바위밑에 눌린 풀도  싹이 터서 올라오네

            한얼님이 주신 생명  대자연의 힘이크다.

 

            겨울철에 얼어 붙은  샘물들이 다 녹았네

            이골저골 졸졸줄줄  사방으로 흐르누나

            바위밑에 눌린 풀도  싹이 터서 올라오네

            한얼님이 주신 생명  대자연의 힘이 크다.

       

            꽃이 피네 꽃이 피네  산과 들에 꽃이 피네

            벌의 노래 나비춤에  옷갖것이 웃는구나

            바위밑에 눌린 풀도  싹이 터서 올라오네

            한얼님이 주신 생명  대자연의 힘이로다  

 

    “봄노래”가 산간을 들깨워 덕원리는 생기로 넘치였다.

    수난자의 감슴속에 응어리로 맺힌 원한을 풀어주려는 듯이 따스한 이 계절은 추위를 몰아내고 드팀없이 찾아왔다.

    중광단은 총동원하여 수10헥타르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었다. 진펄을 갈아번지고 물도랑을 빼고 강물을 끌어들이여 천수답을 만들어 벼씨를 뿌렸고 산기슭 공지를 밭으로 만들어 강냉이, 수수, 조, 감자를 심었다.

                  

                      형제들아 자매들아

                      배달겨례 모든 인중(人衆)

                      우리 형제자매들아

                      함께 지성으로 일심하여

                      빛내보세 빛내보세

                      대황조의 베푼 신교 빛내보세   

   

    농망기가 지나자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휴식을 하는 한편 모두 교리를 참답게 배우는것을 의무이자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들은 홍암대종사 라철이 손수지은 “단군가”를 불렀고 그 노래의 뜻을 따라 대황조의 베푼 신교를 빛내보려고 노력했다. 태양숭배의 원시신앙으로부터 무속신앙(巫俗信仰ㅡ쌀만교. 사마니즘)의 변천과정을 걸친 자기 민족의 유일한 이 새교의 사상이 점차 대중속에 뿌리밖혀져서 새 교문의 문호(門戶)가 천산남북에 널리 열리고 삼신숭배(三神崇拜)의 고유한 정신과 배천사신(拜天事神)의 미속과 미풍이 세상에 널리 퍼져 그 명맥을 후세가 이어가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다가 대종교를 굳게 지켜가고 있었다.

    봄일이 다 끝나니 농한기여서 모두가  휴식하며 배우고 있을 때 철도 모르고 떠돌이를 하던 성이 박씨인 한 집이 덕원리가 좋다는 소식을 어디서 주어듣고는 살아보려고 식솔을 일곱이나 끌고 찾아왔다. 그들의 가긍한 정상을 보고 덕원리에서는 받아주었거니와 마을 사람들은 그 가정의 어려움을  헤아려 생활일절을 돌봐주려고까지했다.

    

               가마히 우에 계시사 한으로 든,

               보시며 낳아 살리시고 늘 나려주소서

   

   마음착한 교도들은 그 집을 위하여 두손모아 기도했다.

   그런데 새로 이사를 온 박씨네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몰리해를 하는 무신론자였다.

   《한배검이 누긴데 이래? 신을 믿는다구 밥이 나오나?》

    일가주장인 박씨도 그렇고 그의 마누라도 그렇고 주는 대접이나 받으면서 곱다랗게 지내기나 할 것이지 교도들이 두손모아 념송(念誦)하는것을 보더니만 그게 우습다며 이따위 소리를 실없이 죄친 것이다. 그통에 그들 일가는 이사를 왔다가 그 자리로 그만 쫓겨나고말았다.

    자기가 마음없어 믿지 않으면 그만일것이련만 철딱서니 없이 그같이 미현하게 노는 사람도 있었으니 자작지얼(自作之蘖)이란 아마 이런 것을 보고 하는 말이겠다.  

   대종교를 신봉하지 않으면야 몰리해를 할 수 있으니 가르쳐줘야지만 그 행동거지나 너무도 눈에 나니 가르쳐주려는 사람마저없었던것이다.

   한울이란 곧 하늘(天)을 가리킴이요 이는 예로부터 써온 말이다. 한얼은 신(神)을 말함이고 한검은 신인(神人)을 말함이며 한배검은 천조신(天祖神)을 가리키는 것이다.

   배달민족은 원래 지역적으로 아세아의 동쪽에서 백두산령의 광명한 정기를 타고난바 원시시대로부터 밝은 태양을 숭배하였고 신도의 교문이 열린 그때부터는 천신숭앙(天神崇仰)의 사상이 깊이 뿌리박혀 온 것이다.

   한배검 신앙의 유래를 간추려 보면 이러하다.

   한개검은 세상에 살아있은 기간 진종(眞倧)의 대도(大道)로 교화(敎化)를 펴고 홍제(弘濟)의 이념(理念)으로 치화(治化)를 펴 신교(神敎)의 진리로 만백성을 깨침으로써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신도문화(神道文化)를 성역(聖域)에 크게 빛나게 한 것이다.  

   신앙으로부터 독특한 풍속이 생기였는바 집집마다 어린 아기를 낳으면 3일만에 3신께 공봉(供奉)하고 검줄(祭索)을 대문에 매여 붉은 실이나 헝겁으로 머리 끝에 매여 명복(命福)을 빌고 그 이름을 댕기(檀祈)라 하며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저고리에 흰 헝겁으로 동정을 달아 백두산을 기념하였다. 평안도, 함경도의 10월사상제와 만주의 3월 太白祭(백두산을 태백산이라 이르기도 함)는 모두 보본(報本)의 특전(特典)으로서 고개위의 성황당(城隍堂ㅡ國師堂․仙王堂)과 전간의 고시례(高矢禮ㅡ농부들이 들에서 밥을 먹을 때 첫술밥을 내던지며 “고시례”하는 것은 농관 고시례를 추모하는 례임)는 저 세상으로 먼저가신 이를 기리는 아름다운 풍속인것이다.

   부여의 옛풍속에 구서(九誓)라 하여 아홉가지의 맹세가 있었고 신라, 백제, 고구려에서는 계률이 엄하여 계명을 어기면 오륜을 벗어난 자라 하여 그 지방에서 쫓아냈다. 통용된 5계를 볼 것 같으면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써 하며 부모를 섬기되 효도로써 하며 벗을 사귀되 신의로써 하며 싸움에서는 후퇴하지 말며 살생을 함에는 반드시 가림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불계(佛戒)의 부합(不合)한 것보다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소총(疏忽)함이 없이 行하라.》  

   신라의 원광법사(圓光法師)도 귀산(貴山)과 이같이 말했던 것이다. 

   고려에서 하늘제를 지낼 때는 팔관회(八關會)라 하여 여덟가지의 죄를  짓지 않게끔하였으니 곧 살생을 하지 말며, 도적질을 하지 말며, 제일(濟泆)을 하지 말며, 망언을 하지 말며, 음주를 하지 말며, 高大床에 앉지 말며, 향화(香華)를 입지 말며, 관청(觀廳)을 자악(自 樂)치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교의 명칭도 력대로 비슷하였다.

   부여는 대천교, 신라는 숭천교, 고구려는 경천교, 발해는 진종교, 고려는 왕검교, 만주는 주신교.

   기타 여러 나라들에서는 천신교라 불렀던것이다.

   홍암대종사 라철이 1909년도에 대종교리념의 실천강령으로 되는 “오대종지”를 발포하였는데 서일은 이를 연구하고 “오대종지강연”을 저술했다.

 

        1. 敬奉天神  (인물의 本源을 아는 것)

        2. 誠修靈誠  (인생의 良能을 아는 것)

        3. 愛合種族  (인세의 平和를 얻을 것)

        4. 靜求和福  (인간의 自由를 누릴 것)

        5. 勤務産業  (인류의 文明을 늘일 것)

 

   종지강연은 이같이 인생의 본능, 자유, 행복 등을 현대철학에 비추어 현실면을 강조한 것이다.

   이해의 음력 10월에 서일은 령계를 받고 참교로 피선되여 시교사를 잉임(仍任)하였다. 령계는 교인의 자격을 작성하는 의전으로서 교리를 독신하며 의무를 각수(恪守)하는 이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신부(神府)에 입적하였다 하여 명부에 등록하였다. 그 명부를 천록(天籙)이라 한다.

   서일은 주야로 수도에 정진했다. 그리하여 차츰 성통(性通), 도통(道通)하게 되었고 견(見), 문(聞), 지(智), 행(行)의 사대신기(四大神機)를 마음대로 구사할 지경에 오르고 있었다. 이는 실로 놀라운 터득이였다!

   서일은 가는곳마다 덕행을 베풀면서 진리를 규명하였다. 하여 그가 이르는 곳이면 신도가 운집하였고 입교하려는 자가 수백, 수천, 수만명에 달했다. 

   《동포여러분, 사랑하는 나의 형제자매들! 여러분은 백두산 이북으로 펼쳐진 저 일망무제한 광야를 보셨습니까? 그것은 우리 한배검님께서 끼치신 만리성역이거니 우리가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광활한 이 대지를 잊지 마시오. 유유히 흐르고 있는 송화강을 가운데 놓고 동서로 펼쳐진 땅, 저기  완달산부터 흥안령기슭까지 그 어디면 신족(神族) 우리 동포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으며 우리 형제자매들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남북이 평연한 이 성역에서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력사를 지녀왔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 금수강산에서 선조의 생애를 이어나가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의 연설은 가끔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로 중단되였다 이어지군했다.

   《동포 여러분! 나의 형제자매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리념으로 일관계승해온 석일(昔日)의 국세는 얼마나 훌륭했던가, 우리에게도 한때는 과연 자랑찬 력사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해동삼불(海東三弗) 무리에게 면자(面刺)하여 내 아희 이세민(李世民)에게 말을 부치노니 금년 만일 조공(朝貢)을 부치지 않으면 명년에는 당연히 문책의 병을 일으킬 것이다.> 보시오, 누가 이같이 큰 소리를 쳐던가요?... 이 글은 바로 고구려의 막리지(莫離支) 연개소문이 당나라에 병졸을 시켜 보낸 최후의 통첩이였습니다.

   동포여러분! 여러분은 이 소리를 듣고서 감상이 어떠합니까?... 이로 보아도 당시 우리들의 선조는 한족(漢族)을 얼마나 어리게 보았던가를 가히 알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러했습니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과거에는 이같이 위엄을 떨치면서까지 떳떳이 세상을 살았던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해보시오. 대체 누구의 대에 이르러 그 명맥이 다 끊어졌습니까?  바로 우리들의 대에 이르러 다 끊어지고 만게 아닙니까. 생각들해보시오. 왜 이토록 처참하게 되였는가? 이것이 누구의 탓인가? 우리에게는 그래 책임이 없단말인가?... 죄가 없단말인가?... 하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대답은 간단한겁니다. 분발해야 합니다. 분발하여 통분함을 힘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잃어버린 국권을 우리의 손으로 되찾아와야합니다. 후세에 치욕을 남기지 않으려거든.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발휘했던 그 위엄을 다시갖출 그날을 맞아오기 위해서 우리는 단합해야합니다. 정신차리고 혈전분투할 준비를 해야하는것입니다!》

   력사를 잃어가는 사람, 민족의 자부심을 잃어가는 사람, 그리하여 자비감속에서 골기없고 자곡지심(自曲至心)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정신차리라 깨우쳐주느라고 서일은 이같이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열변이였다.

   그것은 피타는 절절한 호소이기도 했다...

   어느날 고향에 간다면서 훌쩍떠났던 이홍래가 갑작스레 왕청에 다시나타났다. 그가 돌아와서 반가운데 생각밖의 일을 말해 모두를 놀래웠다.

   《내가 어디루 갔다왔는지 아오. 거제도엘 갔다왔단말이요.》

   《아니 거기는 왜서요?!》

    현천묵이 눈이 둥그래지면서 물었다.

   《조성환을 만날려구서. 건데 왜놈들이 경계가 어찌두 심한지... 눈을 발라메고있더란말이요. 그래 내가 어찌했겠소. 헐수 할수 없이 말뚝에 매인  양새끼모양으루 그저 먼 발치에서 보다가 왔네그려.》

   《그리구는요?》

   《그리구는 꼬리를 뺐지, 잡히면 날이면 볼장은 다 보니까.》

   《하하하하...》

    이홍래의 저돌적인 행동에 모두들 혀를 내두르면서 웃고말있다.

    계화는 그토록 싸다녀도 붙잡히지를 않는 일이 과연 별일이라 했다. 그래서 모두들 또 웃기는데 명실공히 “월경의병장”이 돼서 내내 동분서주하는 이 열혈의 남아는 아닌게아니라  무겁한 사나이였다. 꼭 마치 사선을 제멋대로 넘나드는 불사조(不死鳥)같았다.

   암살을 계획했던 조성환은 섬에 같혀있었고 그 대적수(大敵手)는 눈이 펀들펀들 살아서 돌아다녔다. 지난해의 7월, 가쯔라 다로오는 로씨아를 방문하고 제2차의 일로밀약(日露密約)을 맺았는바 장춘이남 즉 남만주와 내몽골(동몽골)을 일본의 소유로 하고 장춘이북 즉 북만주와 기타의 몽골지역을 로씨아의 소유로 정하였다.

   한심하게도 남의 땅을 갖고 제멋대로 놀아대는 판이였다.

   그러나 그러했음에도 운명이란 본래 타고난것이라 가쯔라 다로오는 이 세상을 오래살지를 못했다. 이또오 히로부미가 죽자 그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을 병탄함에 급선봉이 되었던 이 군벌출신의 대륙확장주의자는 자기의 정권이 무너질까봐 국내의 사회주의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하였던 것이다.  지난해의 12월에 메이지천황이 죽어 세 번다시 수상자리에 올라앉은 가쯔라 다로오가 새 내각을 구성하자 호헌운동이 일어나 전국을 석권했다. 올 2월달에 들어서자 가쯔라 다로오는 강박적으로 제3차의회를 해산시켜버렸다. 그러자 분노한 군중들은 국회대청을 포위 습격하였을뿐만아니라 가쯔라 다로오의 어용신문이였던 “국민신문사”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다.

   가쯔라 다로오는 핍박에 못이겨 사직하고는 10월달에 그만 죽어버린 것이다.

   배달민족을 노예로 만들어버린 원쑤는 이같이 사라졌건만 야심많은 일본은 아마데라스오오미까미(天照大神)를 지상으로 하는 “황실중심주의”에 의하여 세계의 제패를 꿈꾸면서 군국주의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처하여 만주땅에서는 조국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이 비록 강보에 싸인 유년기이기는 하지만 희망을 품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이 운동의 기운을 대종교가 크게 심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대종교에서 첫 항일구국단체로 발족한 重光團은 장차 만주에서의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할 군사력으로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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