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축구의 력사와 전통
연변축구를 말할라치면 우선 그 력사가 긴바 지난 세기 초엽 축구란 스포츠운동이 중국땅에 생겨서부터 연변땅(옛날엔 간도땅)에 있었다. 또한 연변축구는 줄곧 조선족을 위주로 진행이 돼왔다. 연변축구의 전통 역시 조선족의 굴함없는 정신과 령리한 지혜가 부여돼왔으며 중국땅에서는 오래동안 축구라 하면 “북방의 연변”과 “남방의 매현”을 꼽아왔다.
다음 연변축구는 조선족을 위주로 진행이 돼왔기에 중국조선족축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중국에서 유일한 소수민족 프로팀을 운영하기에 중국소수민족축구를 대표한다고 할수도 있다. 동시에 연변에는 조선족만 살고있는것이 아니고 한족을 포함한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있기에 국내언론들에서는 흔히 “연변축구”라고 일컽키도 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반도외 세계 각국에서 코리안민족프로축구단을 갖고있는 곳은 오직 중국 연변밖에 없기에 우리의 연변축구는 더욱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연변축구는 일련의 휘황한 성과와 무수한 인재를 산출하기도 했다. 일찍 위만주국시기 당시의 간도축구팀은 만주국축구운동대회에서 늘 우승했는가 하면13명의 조선인선수를 갖고있는 만주국축구팀은 조선과의 경기(만-선축구대회)에서도 자주 상대방을 제압하군 했다.
새중국의 탄생후 중국조선족축구는 더욱 휘황한 일로를 걸어왔다. 1952년 상해에서 있은 전국청년축구대회에서 연변청년축구팀은 대회의 준우승을 쟁취, 그뒤 국가에서 조직한 웽그리아류학축구팀에는 전체 성원20여명중에 박만복을 비롯한 조선족이7명이나 들어있었으며 제1대의 중국국가축구팀에도 리봉춘을 비롯한 조선족선수 여러명이 있은걸로 알고있다. 그와중1955년 주로 연변의 조선족들로 구성된 길림성축구팀이 창립됐다. 길림성축구팀은 창립되자 바람으로 국내4개 강팀중의 하나로 당시의 중국축구1부리그인 전국축구갑급리그에서 종횡무진해왔으며 마침내1965년에는 전국축구갑급리그의 우승고지에 오르는 괄목할만한 력사의 한페지를 엮었다. 용솟음쳐나온 인재들을 말할라치면 박만복, 리광수, 동경춘, 지청룡, 허경수, 정지승 등 그 수가 헤아릴수 없이 많으며 전국의 수많은 축구팀중 조선족선수가 없는 축구팀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1950년대말의 중국국가림업팀은 일색의 조선족들로 조직되였다고 한다.
연변축구 역시 장기간에 거친 “계급투쟁”고 문화혁명 등으로 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굴곡적인 일로를 걸으면서도 연변은 여전히 국내의 축구발전 중점지구로 수많은 축구인재를 산출했으며 국내의 축구무대에서는 늘 조선족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볼수 있었고1994년 중국축구가 프로화궤도에 진입된후에도 주로 조선족들로 구성된 연변팀( 혹은 길림성팀)은 국내1부에서7년간이나 그 투혼을 불살랐으며 지금 여전히 국내이 지구급으로서는 유일하게 자기의 프로구단을 갖고있는 상황이다.
연변축구의 현주소
2005년 갑급리그로 복귀한 연변축구팀은 몇해간 갑급리그의 중위권을 맴돌다가 지난해에 갑급3위를, 올해엔 갑급11위에 머물었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 설법이 뒤따르고있다. 어떤이들은 “지난해엔 운이 좋았고 올해는 운이 나빴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이들은 “지난해의3위나 올해의11위 모두가 연변팀의 진짜 실력이 아니다”고 하고있다.
이는모두 일리가 있는 설법들이다. 여기서 필자의 관점이라면 지난해엔 외적용병영입이 비교적 성공했고 올해엔 외적용병영입이 기본상 실패한데 귀결된 순위결과라고 말하고싶다. 중국축구가 프로화궤도에 들어선이래 외적용병영입의 성사여하가 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상해, 북경, 광주 등 대도시의 호화구단들이 그런가 하면 연변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팀성적이 외적용병에 의해 좌우지된다는건 슬픈 일이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이다. 외적용병의 대량 영입이 중국축구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떠나서 팀성적이 추락하여 강급될 경우 다시금 원자리로 복귀한다는것이 매우 어렵다는것이 곧바로 중국축구의 현실이다. 우리 연변축구만 놓고봐도2000년 갑A리그에서 강급되여 팀을 매각한후 옹근5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2부리그인 갑급권으로 복귀할수 있었다.
그럼 우리 연변의 현실정에서 슈퍼리그진출 가능여하를 타진한다면?
한편 이번에 연변축구팀의 슈퍼리그진출목표는 구락부나 주체육국보다는 주정부의 리룡희주장이 직접 엄령을 내려 정해준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을급에서 갑급으로 올라오는 년한이5년이 걸렸고 갑급에서 “남정북전”한 년한만 해도7년이라 이젠 슈퍼리그를 견줄 때가 되였거니와 연변팀의 실력을 놓고봐도 이젠 슈퍼리그목표를 내걸수 있다는 확신이 된다. 왜냐하면 외적용병을 제외한 본토배기 선수들로 구성된 진영을 놓고볼 때 우리 연변팀은 그래도 갑급에서 맴돌기는 아까운 팀이기때문이다.
주체육국 우장룡 부국장에 따르면 현재의 연변팀 선수구성에 있어서 평균 나이가25세미만으로 국내에서 신로교체가 가장 완벽하게 잘된 팀이라 한다. 이는 우장룡 부국장 역시 국내의 여러개 구단들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해본후 밝힌 일가견으로서 설복력이 있는 말이다. 연변구단을 놓고볼 때 국내 구단들중 국내선수를 가장 적게 영입하는 구단으로서 이는 연변내의 선수잠재력을 말한다. 다른 구단의 선수를 적게 영입한다는건 여러가지로 좋은 점이 있다. 첫째, 돈이 적게 든다는것이고 둘째, 본토배기 선수들고 구성되니 연변을 위해 뽈을 찬다는 정신이 보다 강할것이며 셋째, 선수들 사이의 호흡이 보다 잘 맞을수 있다. 그리고 연변적선수가 대부분이다보니 외지선수들이 와도 연변선수들의 “기”를 잘 받아들여 곧바로 정신력이 강해졌는바 그제날의 황경량과 왕광위가 그랬는가 하면 몇년전의 탕초 또한 그랬다.이는 우리 연변축구팀의 가장 큰 우세이다.
이렇듯 연변축구팀으로서의 우세가 있는 반면 부인할수 없는 렬세 또한 몇가지로 나눌수 있다.
우선 자금사정이다. 2005년 연변팀이 갑급리그에 참전해서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유일하게 관명권협찬을 유치하지 못한 팀이였다. 이는 지난날 갑A시대에 비해서도 훨씬 렬악한 환경을 조성했다. 갑A시대에는 자금난이 심각하다고 해도 해마다 관명권협찬상이 나타났으나 갑급시대에 와서 그것이 단절됐다. 명년에 주정부에서2000만원을 투입하여 팀을 밀어준다고 하나 다년간에 거쳐온 자금난을 일시에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음 우에서 “정신력”을 연변팀의 우세라고 했지만 현재 이 “정신력” 역시 연변팀의 “특허”가 아니라는것이다. 이젠 슈퍼리그와 갑급리그의 많은 팀들에서도 “정신력”을 강조, 연변팀의 “정신력”도 적지 않게 무색해진 상황이다. 거기에 선수 개개인의 기술을 볼 때 전국의 축구마당에 내노라 하고 내놓을 선수도 몇명이 되는가 하는것도 의문스럽다.지난 세기50-60 년대는 그렇다치더라도 지난 세기80-90년대의 고종훈처럼 체력과 기술 등이 겸비한 선수를 찾아볼수 없는것도 사실이다.자신감의 결여 역시 홀시할수 없는 고리이다. 특히 올해 시즌을 점검해보면 몇껨의 경기는 자신감의 결여현상이 현저하게 드러났다. 어떤이들은 올해 시즌 연변팀 선수들의 체력이 형편없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 관점에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체력도 정비례로 떨어질수밖에 없었다고 보태고싶다. 최근 몇년간 자주 있은 감독교체, 로임체불 및 몇껨의 이길수 있은 경기에서의 패전 등은 모두 자신감이 떨어질수밖에 없는 요소이다. 앞에서 제기되다싶이 연변축구팀의 진짜 실력은 절대 올 상반년에 반영된 그런 실력은 아니였다. 올해 슈퍼리그에서2위 팀과 많은 점수 차이로 우승한 광주항대와도 대등한 경기(지난해 시즌)를 펼쳤던 연변팀이다. 그리고 강팀과는 과감히 도전해보군 하던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는 연변팀이다. 그럼 주눅이 든 “양무리”를 어떻게 하면 용맹한 “사자무리”로 탈바꿈시키겠는가 하는것은 사령탑을 잡은 감독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나서고있다.
갑급리그와 슈퍼리그
연변에 있어서 갑급리그는 슈퍼리그와 마찬가지로 열광적이다. 아니 축구를 좋아하는 연변팬들은2004년 을급리그때도 매껨의 홈장경기를 관람하면서 연변팀을 열광적으로 응원, 매껨의 홈장경기때마다 평균2만명 정도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래서 당시 성내 모 매체의 한 기자는 “을급리그경기장의 슈퍼리그분위기”라고 연길홈장을 평가했다. 최근 몇년간 전국의 축구붐이 식어지면서 연변홈장도 그 분위기가 지난 세기90년대의 갑A시대보다 많이 못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갑급리그인 연변홈장의 관중수는 중국슈퍼리그의 그 어느 경기구보다도 결코 짝지지 않는다고 감히 장담할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갑급리그팀이든 을급리그팀이든 연변에 프로구단이 있기만 하면 축구를 사랑하는 연변팬들은 곧바로 경기장을 찾을것이고 또한 성세호대한 응원전을 벌일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연변을 벗어나서 론할 때 갑급리그와 슈퍼리그의 그 중량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우선 대외적인 홍보가 다르다. 2000년도5.1절 련휴기간 필자가 개인사유로 북경에 갔을 때 적지 않은 북경사람들이 길림오동팀이라 하면 대단한 축구팀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했다. 그때만 해도 길림오동팀은 우리 길림성을 대표하는 축구팀으로 간주되기가 일쑤였다. 헌데 지금은 외부에서는 우리 길림성축구라면 장춘아태를 꼽지 결코 연변팀을 꼽지 않는다.
다음 기업인들이 관명권매입 등 협찬을 함에 있어서도 슈퍼리그와 갑급리그를 다른 안경을 걸고 본다. 그 사례로 연변축구가 갑A에서7년간 몸담고있을 때 선후로 한국삼성, 한국현대자동차, 길림오동 등 굴지기업들이 연변축구를 도와나섰지만 갑A에서 강급하고 다시 을급에서 갑급에 진급하여 뛰는 동안 단 하나의 기업도 관명권매입에는 나서지 않았다. 구락부의 홍보마케팅 등 전략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갑급리그와 슈퍼리그 사이의 중량을 감안하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관중수이다. 우에서 연변홈장의 관중수가 다른 경기구보다 락관적이라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것이였지 이전 지난 세기90년대와 비교한것은 아니다. 그때는 연변내는 물론 멀리 흑룡강 녕안시에서도 단체로 축구구경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관중석이 꽉 차고도 경기장밖의 나무에도 사람들이 달려있었다. 메히꼬인파가 자주 일었고 저녁이 되면 팬들이 켜든 라이타불빛 또한 독특한 풍경선을 이루었다. 현재 유럽이나 남미의 적지 않은 구단들에서는 기업의 협찬같은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한다. 경기장 티켓수입만으로도 구단운영이 가능하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연변축구도 그렇게 안된다는 리유가 없다.
에필로그
연변축구의 슈퍼리그진출 – 자치주창립60주년에 드리는 헌례로 간주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떠나 연변축구가 슈퍼리그에 진출하여 보다 활성화되면 그것을 통해 더욱 많은것을 얻을수 있다. 정치, 경제와 문화 및 또 다른 연변사람들의 이미지를 세상에 알릴수 있다. 그리고 “축구의 고향”이라는 명성을 더욱 새롭게 새길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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