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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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청산리대첩.3
2014년 02월 06일 08시 49분  조회:1966  추천:0  작성자: 김철호


청산리마을에 세워진 청산리대첩기념비.

고동하강반에서 일본군 또다시 녹아나고
반일부대 반토벌전서 위대한 승리 거둬

백성들의 일편단성

“청산리전역을 비롯한 모든 반일무장투쟁은 연변인민들의 생산존망을 위한 일이였습니다. 일제가 연변에 침입하여 ‘토벌’을 감행한것은 반일무장부대만을 진압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전반 조선인에 대해 탄압하고 조선인들을 저들의 식민지노예로 만들기 위한것이였습니다. 때문에 광범한 조선인들은 사명감을 안고 저들의 아들들을 반일무장부대에 보냈으며 군수품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헌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각적인 행위였습니다. 일본침략자를 반대하는것은 또 조선인만의 리익을 위한것이 아니였습니다. 때문에 광범한 한족들도 청산리전역때 생명을 무릅쓰고 군수품을 지원했습니다.”


청산리 베개봉.

연변대학 력사학 교수 박창욱선생은 청산리전역시 한족을 비롯한 수많은 군중들이 반일부장부대를 위해 군자금과 식량공급을 부담했으며 정보도 제공하고 길안내도 나서주었다고 말하면서 “특히 조선인녀성들이 어랑촌전투때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총알이 귀전을 스치는 최전연진지에까지 음식을 날라다 준 사적은 무척 감동적입니다. 그녀들은 적들과 싸우느라고 음식먹을 시간적여유가 없는 투사들의 입에 밥을 떠넣어주면서 격려했지요. 실로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사연입니다”고 하면서 격동을 금치못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형을 당시의 《독립신문》은 “녀자의 일편단성(一片丹誠)”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이 지방에 있는 부인들은 애국하는 일편의 적성(赤誠)으로써 음식을 준비하여 가지고 위험을 모(冒)하고 탄우가 분분(紛紛)한 전선에 용진(勇進)하야 전투에 피로한 군인들을 공상(供償)하며 위로하였다.

어떤 군인들은 분전망식(奔戰亡食)하야 진작 응식(應食)치 않을 시(時)에는 부인들이 울며 권하기를 제씨(諸氏)가 만일 차(此)를 식(食)치 않으면 우리는 사(死)로써 귀(歸)치 않겠노라 하야 기어이 취식(就食)하도록 하야 일반군인으로 하여금 큰 위안을 받게 하였다.

북로군정서 연성대장 리범석도 부녀들의 이런 헌신적인 지원에 대해 자신의 회상기 “우등불”에서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교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계속되였다. 굶주림! 그러나 이를 의식할 시간도 먹을 시간도 없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치마폭에 밥을 싸가지고 빗발치는 총알사이로 산에 올라와 한덩이 두덩이 동지들이 입에 넣어주었다. ...어린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손길로... 그 얼마나 성스러운 사랑이며 고귀한 선물이랴! 그 사랑 갚으리, 이 목숨 다하도록! 우리는 이 산과 저 산으로 모든것을 잊은채 뛰고 달렸다.

맹개골전투


독립군의 행장.

어랑촌전투를 끝낸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련합부대는 50명씩 소부대를 지어 황구령방면으로 이동하였다. 1920년 10월 23일. 아침부터 이동하기 시작한 북로군정서 소부대는 오후 3시경에 맹개골(孟家溝)삼림속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반일부대는 일본군 기병 30여명이 이 골짜기의 길로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즉각 삼림의 변두리에 매복했다가 접근해오자 일제히 사격하여 적 기병 10여명을 사살하였다. 북로군정서 부대는 말 5필, 군용지도 4장, 시계 5개, 기타 피복, 장구(裝具) 등 다수를 로획했다.

만기구전투

맹개골전투에서 승리한 북로군정서 부대는 맹개골로부터 맹산하를 따라 서쪽으로 약 10킬로메터 행군하여 만기구(萬麒溝)의 후방삼림속에서 휴식하고있었다. 이때 일본군 보병 100여명이 행군해오고 있었다. 북로군정서부대는 행군해오고있는 부대가 반일부대인지 일본군인지를 판별하지 못하고 “우리 군인가?”고 소리쳐 물었다. 이에 일본군은 반일부대인줄 알고 즉각 전투태세를 취하였다. 그제야 그것이 일본군이줄을 안 반일부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적들은 30여구의 시체를 남기고 패주해 도망쳤다.

망개골 시거우전투

만기구전투에서 적 30여명을 살상한 북로군정서군은 행군도중 200여명 일본군을 발견했으나 전투를 피하여 황구령방면으로 행군하다가 10월 23일 밤 삼림속에서 숙영하였다. 24일 맹가골 시거우(西溝)로 행군하던 50여명 북로군정서부대는 일본군 100여명이 포 6문을 끌고 행군해오는 것을 발견, 즉각 공격을 개시하여 강타를 안긴후 민첩하게 후퇴했다.

이때 일본군기병 1개 소대가 삼림죄편으로부터 나타나 삼림쪽으로 올라왔다. 이에 북로군정서부대는 20분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일본기병대 1개 소대를 거의 전멸시키고 삼림속으로 숨어버렸다.

천보산전투

어랑촌전투를 끝내고 이동하던 리범석이 인솔하는 북로군정서 소부대는 10월 24일 저녁 8시와 9시에 은동재부근에서 천보산부근의 은동광을 수비하고있던 일본수비대 한 개 중대를 두 번이나 습격하였다.

25일 새벽에는 홍범도련합부대가 식량조달을 위하여 이곳을 습격하여 일본수비대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리하여 일본군은 국자가에 있는 보병 1개 중대와 기관총 1개 소대의 긴급증원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1개 대대의 병력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동하전투

“고동하전투는 전반 청산리전역의 마지막 전투입니다. 1920년 10월 25일 밤중부터 26일 새벽까지 진행된 이 전투는 홍범도부대가 일본군 이이노추격대의 야습을 다시 반격한 반야습전인데 많은 일본군을 섬멸했습니다. 이번 전투는 토벌군의 총사령인 일본군 19사단장 다까시마중장이 줴친 ‘홍범도, 김좌진 등 불령선인단을 근절’히겠다고 한 호언장담이 무너지고 토벌계획이 파탄되는 최후의 전투였습니다.”

고동하전투는 간고한 전투였지만 적을 통쾌히 무찌른 전투였다고 박창욱교수는 말한다.

홍범도, 김좌진 부대를 단숨에 섬멸하려 했지만 처처마다에서 골탕을 먹은 일본군은 고동하방면으로 퇴각한 반일부대의 뒤를 미친개마냥 쫓아왔다. 그러나 봉밀골안을 50시간동안이나 헤매이면서 골골마다 샅샅이 들췄지만 반일부대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이에 악에 바친 일본군은 혈안이 되어 고동하기슭을 훑기 시작했다.

고동하는 로령동남측에서 발원하여 화룡경내의 와룡을 거쳐 안도경내로 흘러들어가는데 송화강수계에 속한다. 고동하가 화룡경내로 흐르는 길이는 53.5킬로메터, 만족어로 물결이 사품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홍범도부대를 찾아헤매이던 일본군 이이노소좌가 인솔하는 추격대는 10월 25일 밤 10시에 고동하곡(오도양차 남쪽, 지금의 고동하림장 남쪽) 10킬로메터 부근에서 우등불을 피워놓고 숙영하고있는 홍범도부대를 발견하게 되였다.

홍범도부대(북로군정서부대의 50여명을 포함) 350여명은 고동하기슭에서 일본군이 포위하여 오는줄도 모르고 고즈넉하게 숙영하고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가에 모여 휴식하고있는 반일전사들의 모습이 우등불화강으로 하여 어두운 곳에서는 너무 뚜럿히 알렸다. 악에 받친 일본군은 인차 부대를 전투태세로 정돈하여가지고 2개소대를 돌격대로 홍범도부대를 일거에 소멸하려고 하였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소식을 실은 상해 <독립신문>.

10시 30분 일본군은 총공격을 개시했다. 환한 화강속에서 아무런 준비없었던 홍범도부대는 적들의 맹공격에 엄중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홍범도장군은 전장을 수습하기 위하여 부대원들을 재빨리 고동하기슭에 솟아있는 절벽가로 철퇴하라고 명령했다. 전사들은 비호마냥 날래게 절벽을 타고 올랐다. 반일부대가 차지한 절벽은 량쪽으로 고동하가 사품치며 흐르는 깎아찌른듯한 절벽이였다. 나무까지 빼곡히 솟아있는 절벽에서 내려다보니 금방까지 차지하고있던 우등불가가 환히 바라보였다.

일본군은 우등불가를 점령한후 대승이나 거둔듯 주위 산을 향해 헛총질을 하면서 우줄렁거렸다. 일본군의 일거일동이 한눈에 안겨오는 절벽가에 몸을 숨긴 반일부대 장병들은 홍범도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잽쌉게 총을 휘둘러 우등불가에서 우줄렁거리는 일본군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반습격을 당한 일본군은 우등불가에 척척 나가 쓰러졌다.

그때를 홍범도장군은 이렇게 회억했다.

처음 일본군은 마적들을 길안내로 반일부대를 찾아 우등불을 쬐이는 곳을 향하여 속사포를 발사했다. 이에 불을 쬐이던 많은 병사들이 회생되였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부대는 날새도 얼씬 못할 바위에 올라가 날 밝기를 기다리면서 우등불을 놓은 곳을 내려다보니 적들이 나다니는것이 보였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우리들이 우등불가를 차지한 적들을 향해 총질하니 누렇게 쓰러졌다. 놈들이 아군이 있는 곳으로 기여드는것을 겨냥하여 총탄을 퍼부으니 쓰러지는 놈들이 수십명이 되었다. 기병이 달려올라오는 것을 또 쏘아눕히니 한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주동을 차지했던 일본군은 삽시에 피동에 빠지면서 무리죽음을 당했다. 당황해난 적들은 공격을 멈춘후 부근의 1143고지에 올라가 있다가 날이 밝게 되여서야 이젠 살았다고 안도감으로 낯에 희열을 나타냈다. 그러나 다시 공격하려고 보니 홍범도부대는 벌써 감쪽같이 철퇴한후였다.

고동하전투를 마지막으로 홍범도련합부대와 김좌진 북로군정서부대는 26일 낮부터 일본군추격대의 “포위토벌”을 완전히 벗어나면서 토벌계획을 철저히 파탄시켰다. 결국 1920년 10월 21일 아침부터 10월 26일 새벽까지 6일간 걸쳐 진행된 청산리전역은 10여차의 전투를 반복하면서 반일부대의 “반토벌”대승리로 끝났다.

“청산리전역의 승리는 조선인뿐만아니라 중국인민들의 반일의식을 고무시켰습니다. 중국 각지의 신문들은 련속하여 청산리전역의 소식을 보도하여 민중들의 사기를 고무하였습니다. 그리고 광대한 민중들의 반일의분을 격발시켰는데 특히 각지의 청년 학생들은 집회와 시위운동을 조직하고 일제의 침략을 성토하면서 일본침략군으로 하여금 하루속히 중국에서 철수할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여 나섰습니다. 연길, 훈춘, 화룡, 왕청, 동녕 등 연변의 5개현 대표들은 외교관계를 통하여 일제를 중국경내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강력히 제기했으며 안되면 무력을 써서라도 일제를 몰아내야 한다고 3번이나 외교부에 청원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정부는 일제의 만행을 저지시키지 못했고 결국 반일부대에 대한 ‘토벌’이 조선민중에 대한 대참안으로 이어지는것을 눈을 펀이 뜨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박창욱선생의 개탄의 목소리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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