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리 넓은 로령산정 새밭물이 한곬으로 모이면서 시작되는 해란강발원지
해란강 상류
《걸어가자면 4시간 좋이 가야 해란강 발원지에 닿을수 있습니다.》
화룡시문련 상무부주석 류재학씨는 은실을 드리운 듯 뽀얗게 내리는 비속으로 멀리 산정을 기리켰다. 증봉령에서 제일높은 산인 베개봉(일명 증봉산)이 해발 1670메터이니까 해란강이 발원한다는 로령은 해발 1000메터이상은 될터란다.
류재학씨는 금년 4월에 화룡시정부의 해당인원들과 함께 해란강발원지 개발을 위한 답사로 로령에 오른적있다 한다. 산정은 4-5리 넓은 새밭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새밭주위는 아름드리나무로 둘레를 치고 있더라면서 산우에 그렇게 넓은 평원지대가 있을줄을 몰랐던지라 다들 아연해지고 말았다 한다. 새밭은 습지였다. 그 습지의 물이 한곬으로 모이면서 작은 시내를 이루는데 바로 해란강발원지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긴 시내가 곧추 산아래로 내리 흐르면서 이골저골에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하여 지금 눈앞에서 소리치며 흐르는 강줄기가 되었다. 정강이를 넘을 것 같아보이는 물결은 말그대로 벽계수였다.
산곡간을 울리며 갈기치는 물결은 숲이 꽉 우거진 골짜기를 뚫으면서 아래아래로 힘차게 내달린다.
《아마 저쯤이 직소택일겁니다.》
류재학씨가 가리키는곳에 차를 세운 우리는 가파로운 비탈을 내려 집채같은 바위들이 엇갈려 물려있는 골짜기로 내려갔다.
하얀 물갈기가 바위를 때리면서 흐르것이 하나의 경관을 이루었다. 2메터 남짓되는 작은 폭포가 눈앞에 안겨온다. 커다란 바위를 타고 갈기치며 내리꼰지는 밑에 자그마한 소가 생겼다. 유명한 직소택인 것이다.
1920년 10월 21일 야스까와가 이끄는 일본군 선두부대가 바로 이 직소택에서 호된 타격을 받았는데 김좌진, 리범석의 지휘하에 매복진을 펼치고 있는 북로군정서군에게 삽시간에 90여명의 목숨을 내주여야 했다. 이 전투를 신호로 독립군은 홍범도 등의 지휘하에 이도구 완류구전투, 천수동전투, 어랑촌전투, 고동하전투 등을 벌려 수많은 일본군을 살상하는 대일전역가운데서 가장 휘황한 승리를 거두었다.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는 청산리 마을의 작은 산언덕에 세워져 있었다. 500평방메터의 부지에 너비 25메터, 높이 17.60메터의 굉장한 화강석석비가 세워져있어 기분이 장쾌했다. 석비 앞면에는 《청신리항일대첩기념비》라고 조한문자로 새겨져있었고 밑면에는 항일련군들이 일제와 전투하는 군상이 새겨져있었다.
청산리마을에서 얼마간 내려오면 옥소반같은 저수지가 나타난다. 송월저수지다. 아담지고 화려했다. 송월저수지아래에 자리잡고있는 마을이 송월촌, 마을어구로 하여 서남쪽으로 1킬로메터쯤 올라가면 유명한 송월산성이 있다. 산성둘레의 길이는 2480메터, 눈여겨보면 성터자리가 아직도 알린다.
화룡시가지를 꿰둟고 흐르는 해란강은 묘령툰에 와 잠시 쉬려는듯 급한 흐름을 멈추면서 유유히 흐른다. 바로 이 마을이 김좌진 등이 대일전쟁의 중요한 회의를 가진 곳이다. 일제와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타격하자는 《피전정책》을 결정, 청산리전투같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해란강을 건너면 청호마을, 대종교본부가 있던곳이다. 청호마을에서 국도를 건너면 작은 언덕이 있는데 대종교 제1세 교주 라철, 제2세 교주 김교헌, 대종교 동도본사 주관인 서일의 묘비가 있다. 1911년 서일은 반일의벙을 규합하여 중광단을 조직했으며 후에는 대한군정서로 개편했다. 서일을 총재로 한 대한군정서산하에는 김좌진(사령관)을 비롯한 유명한 인물들이 있었다.
해란강중류
그 유명한 백리장성은 해란강기슭에 자리잡고있는 토산자 동산촌 이도구의 산언덕에서 시작된다. 장성은 서성, 룡문, 세린하, 도원, 동불사, 조양, 팔도, 연집, 흥안 등 향과 진을 경유하여 계림북산에 이른다. 력사학교수 방학봉선생에 따르면 백리장성은 실제 거리가 300리도 넘는다.
70리 평강벌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팔가자진남산위에 위치해있는 팔가자산성은 둘레길이 1500메터이다.
평강벌 한가운데 자리잡고있는 동고성은 그 유적지가 지금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금나라시기에 쌓은것이며 선종정우2년 년호가 있는 구리관인이 출토되기도 했다. 평강벌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그래도 서고성이다. 외성은 장방현인데 둘레의 길이가 2720메터이다.
해란강은 비암산에서 조여든 평강벌을 빠져나와 좁은 협곡을 지나 해란강반의 명주-룡정을 감돌며 흐른다. 비암산에는 그 유명한 일송정이 있고 룡정시내에는 룡정지명기원지우물터, 일본간도총령사관 옛청사, 영국더기 등 많은 유적들이 있다. 룡정은 리상설, 윤동주, 송몽규, 양림, 구춘선, 심련수, 강경애, 한락연, 김시룡, 김성휘 등 인물들을 배출했으며 유명한
《3.13》반일시위, 《5.30》폭동 등이 일어났고 서전서숙, 동흥중학교, 대성중학교, 연신학교 등 반일인재양성학교가 있었다.
룡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세전벌은 석정으로 들어가는 산골어구까지 일망무제한 논벌을 펼쳐주는데 그 논벌은 해란강물을 먹고 살진다. 멀리 모아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만무과원이 눈시리게 펼쳐진다. 연변의 5개의 만무과원이 있는데 룡정에 3개가 있다고 한다. 그중 연변룡정과수농장(화룡집단)은 아세아주에서 제일 큰 과수원이다. 룡정시의 과수면적은 8600헥타르, 사과배면적은 6800헥타르에 달한다.
동성용을 감돌아흐르는 해란강반에는 유명한 새벽농민대학이 있다. 1958년 5월 l일, 전국로력모범 김시룡이 창시하였고 제1임교장을 맡았었다. 지금 1만2300평방메터되는 교사에 6개의 실험실과 2개의 표본실, 컴퓨터실, 도서관, 열람실이 있으며 100헥타르에 달하는 실험지와 생산기지가 있다. 이 학교에서는 졸업생 2000여명, 연수졸업생 3000여명을 양성했다.
해란강하류
4킬로메터의 무인지경 골짜기를 경유한 해란강은 화전자(석정)에 다달은다. 첫 동네가 석정 《1, 2대》, 길 하나를 사이두고 두 마을이 있는데 이상한 것은 길 오른쪽 마을은 대부분 낡은 초가집인데 반해 길 왼쪽마을의 집들은 모두가 벽돌기와집들이였다.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는 농부가 있어서 사정을 물어보았다. 김광명(57세)이라고 부르는 농민은 허허 웃으면서 《부자동네와 가난뱅이 동네지유.》했다.
1대 사람들은 한사람당 1쌍(10무) 이상씩 땅을 다루고있는데 2대 사람들은 한사람당 4무정도의 밭을 다루고있는 것이다.
《농사를 잘 지으면 잘 살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잖구요. 화전자담배가 얼마나 유명한지 아시지유.》
《어르신은 몇대에서 사십니까?》
농민은 어줍게 웃으면서 2대에서 사는데 소도 없어서 이렇게 1대사람한테서 소를 빌려가고있는 형편이라 한다.
구장리라는 패쪽이 세워진 마을을 지나니 산중턱을 남포질해 허물어서는 그 버럭을 차에 싣고가는 사람들이 있어 물었더니 새롭게 금광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구룡마을은 고즈넉했다. 마을길에 사람그림자가 별반 보이지 않고있었다. 지나가는 한 나그네를 잡고 정황을 물으니 그럭저럭 산다는것이였다.
《하룡저수지물이 저 아래까지 올라옵니다. 1, 2대는 에 들어 이사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일명 해란호라고 부르는 하룡저수지공사는 마지막단계에 진입한 것 같다. 아직 물이 저장되지 않고있지만 저장된후의 정경을 상상만해도 가관이 아닐수 없다. 이제 민속촌이 들어선다고 한다. 어린이놀이터, 유람선선박장, 문화교육구 등 시설을 앉히는데 부지면저 56만3천평방메터, 사용면적 20만평방메터의 민속촌이 선다는 것이다. 더욱 흐뭇하게 하는 것은 계림에다 세우는 해란강골프장이다. 총 1480만딸라가 투자되는 골프장은 7월 15일 개장하게 된다고 한다. 36홀로 되어있는 골프장은 이제 300내지 400여명 일군을 고용하면서 아세아의 최고의 골프장으로 부상된다는 것이다. 1년에 년인수로 10만명 손님을 접대, 연변에다 부리워놓을 리익이 상당하지 않을수 없다. 건설총무부 정길준리사는 골프장앞날에 아주 락관적이였다.
《골프장중앙정상에 건설된 클럽하우스와 콘도, 부대시설은 세계 어느 골프장에서도 볼수 없는 초현대식 이딸리아대리석건물로서 아릅답고 웅장하게 건축되였습니다. 이제 수영장과 겨울을 즐길수 있는 스키장까지 건설합니다.》
해란강은 하룡촌에서 부르하통하와 합류하면서 두만강을 향한 달음박질을 다그친다. 《연변인민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유명한 노래에 《해란강반에 붉은기 나붓기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래로 하여 해란강은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해란강은 겨우 132킬로메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강, 평강벌과 세전벌이 있어 유명하고 력사의 발자취가 력력해 유명하며 영웅들의 그림자가 비끼여 유명하다. 지금 계림에다 건설하는 골프장으로 세계인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러면 해란강은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이 작은 강이 세계적인 강으로 둔갑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수 있겠는가.
2003년 6월 23일 연변일보 제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