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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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륙도하(김철호)
2008년 09월 01일 15시 51분  조회:2245  추천:29  작성자: 김철호
주덕해 김약연 윤동주 안중근... 민족의 우수한 인걸들을 낳아 키운 력사의 강반

오랑캐령

오랑캐령을 째면서 건너간 국도옆의 자그마한 골짜기로 맑은 물줄기가 돌돌 산아래로 흘러간다. 손바가지로 물을 뜨기조차 힘겨울 정도의 작을 내물, 그래도 그 물로 목을 추기니 가슴이 거뿐하다.
개울의 청맑은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간단한 도시락을 펼쳤다. 동행한 향토문학수집가인 김재권(원 룡정시문련 주석)씨와 황장석(시인)씨, 윤대일(지신록장 전임공회주석)씨 등은 력사의 산정이며 륙도하의 발원지의 하나인 오랑캐령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멋이 좋다면서 흥겨워 한다.
<<지금은 시원한 콩크리트길이지만 옛날엔 흙길이였는데 저 아래로 구불구불 아흔아홉구비를 돌아야 삼합가는 령을 내릴수 있었습니다. 정말 험하기가 말이 아니였지요.>> 윤대일씨는 새 국도가 건설되면서 오랑케령이 12메터 낮아졌노라고 말한다.
오랑캐령을 해관령(1915년 이 령에 해관이 설치되였음)이라고도 부르는데 제일 높은 봉오리가 해발 830메터, 서쪽의 오봉산이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해발 1055메터라고 김재권씨가 설명해주었다. 김재권씨는 륙도하는 오봉산, 오랑캐령, 허망채골에서 흘러내려온 시내물이 합류되여 이루어진 해란강의 한지류라고 한술 더 떠주었다.
<<최서해의 소설 <탈출기>에 오랑케령에 대한 묘사가 여러곳 나오는데 바로 이 령을 말하는 것입니다.>>황장석씨는 <<오랑캐령에 오라서니 서북으로 쏠려오는 봄새 찬바람이 어떻게 뺨을 갈기는지...>>하는 최서해 소설속의 묘사는 당시의 우리 민족들이 살길 찾아 이 령을 넘던 장면에 대한 묘사였다고 하면서 <<중국조선족문화는 사실상 명동골에서부터 시작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징어며 쯥쯥한 명태무침에 맥주잔을 부딛히면서 오랑캐령보다 더 험악했던 민족수난의 현장에 앉아있는 기분은 각별했다. 햇볕에 반사되여 반짝거리면서 풀속에 몸을 숨겼다 나타났다 아래로 흐르는 내물은 작은 생명의 번창을 위해 쉴새없이 조잘거린다. 100여년전에도 우리의 수난민족들은 한줄기의 희망을 안고 저 내물처럼 중얼거리면서 이 령을 넘었을 것이다. 오늘엔 중화민족대가정속의 떳떳한 주인공으로 살고있지만 그때엔 고개마다에 수난과 치욕, 절망과 굴욕만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기념비가 많은 륙도하량안

륙도하는 나라의 지도에 표시되여 있지 않는 작은 강이다. 총길이가 45.5킬로메터의 너무나 작은 강이다. 상류는 개구리도 뛰여건널만큼의 작은 시내이고 하류도 기껏해야 다리를 걷고 몇발작이면 건널 수 있는 강이다. <<100년전만 하여도 륙도하는 배를 타고 건너는 큰 강이였다. >>(소설가 류연산)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버들이 우거진 속으로 키넘는 물이 흘러 해마다 익사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빠질만큼 물이 고인곳을 찾을수가 없다. 물론 장마철 홍수 터지면 자갈로 뒤덮인 개천은 표호하는 흙탕물이 범람하여 큰 재해도 불러오지만 그것도 몇 년에 어쩌다 한번씩 있는 일이다.
그러나 륙도하엔 사연이 많다. 깊고 높은 력사의 파도가 흘러지나갔다. 주덕해, 김약연, 윤동주, 안중근, 송몽규, 김창걸... 우리 민족의 우수한 인걸들이 륙도하반에서 태여났으며 자랐고 활동했다. 15만원 탈취사건유적지, <<5.30>>폭동지휘부기념비, <<3.13>>반일의사릉, 안중근의사 사격훈련유적지... 새날을 맞기 위해 흘린 렬사들의 피는 그 얼마인지 모른다.
명동촌 기독교회당옆에 김약연선생의 비석이 있고 장재촌에 묘소가 있다. 비석은 몹시 파괴된 모습, 문화대혁명때의 흔적이라 한다. 김약연선생은 1868년에 조선 회령에서 태여났으며 1899년 2월 18일, 22세대주 142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명동과 장재촌에 정착, 명동학교를 창립하고 국민회 회장 등 직을 력임하면서 반일인재양성과 독립운동에 혼신을 다 받친 교육가이며 반일독립운동가이다.
국도를 따라 조금 내려오다가 보니 강 왼족 기슭에 하얀 비석이 보였다. 작가 김창걸 문학비라고 김재권씨가 귀띔해주어 모두뜀을 하여 강을 건너 기념사진을 남겼다. 작가 김창걸 문학비는 룡정시문학예술계련합회, 연변대학조선언어학학부, 한국한민족문화연구소에서 세운것이였다. 문학비에는 김창걸선생의 대표작 <<암야>>의 한 글귀가 새겨져있었다.

이 어두운 밤이 밝으면 빛나는 대낮이 되듯이 나와 고분이와의 앞길에도 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밝은 해발이 비춰주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는 어두운 이 밤길을 빨리하였다.
 
김창걸선생은 1936년 1943년사이에 단편소설 20여편을 발표, <<암야>>를 통해 청년농민 명손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창조한 우리 민족의 저명한 소설가이다.
일행을 실은 취재차가 우중충 솟은 선바위밑을 지날 때 김재권씨는 <<바로 저 바위산 뒤골짜기인 팔도하자 만진기에서 안중근렬사가 땀을 흘리면서 무예를 익혔습니다>>고 하여 바라보니 바위산 옆에 깊숙히 패인 골짜기가 있었다. 선바위는 원래 세 개의 큰 바위산이였는데 돌을 까서 길을 닦느라고 두 개의 바위산이 날아났다면서 김재권씨는 아쉬운 한숨을 톺는다.
선바위를 지나 명동촌에서 7-8리 내려오면 강 남쪽에 유표하게 안겨오는 자연석으로 만든 비석 두 개가 보인다. 그 유명한 15만원 탈취사건유적지기념비와 <<5.30>>폭동 지휘부기념비이다. 강 북쪽 아담한 마을-승지촌에는 주덕해생가옛터기념비가 있다. 철채에 둘려있는 주덕해생가옛터는 깨끗이 정리되여 있었다. 잔디가 곱게 깔려있는 마당에는 버드나무와 오동나무가 곱게 자라고 있었다. 옛집은 없고 기와를 얹은 막 아래 정갈한 우물이 한틀 있었다. 드레박으로 물을 길어 마셔보니 시원하고 맛있었다. 탑식으로 건축한 기념비는 중공룡정시위원회, 룡정시인대상무위원회, 룡정시인민정부에서 2001년 7월 1일에 세운것이였다. 기념비에는 주덕해동지의 략력이 새겨져 있었다.
륙도하기슭 룡정시시교 합성리동산묘지에는 조선의 <<3.1>>반일봉기를 지지성원한 반일시위대회-<<3.13>>시위에서 수난당한 14명 렬사가 잠들어있는 <<3.13반일의사릉>>(일명<<만세묘>>라고도 함)이 있다. 그리고 그 산 언덕에는 저명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묘소가 있다.

륙도하가 낳은 시성-윤동주

명동촌의 국도옆에 세워져있는 <<윤동주생가>>라고 유표하게 새겨져있는 석비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각별히 끈다. 석비옆의 내리막 수레길을 따라 조금 가면 윤동주생가가 있다. 기와를 얹은 10간과 고간이 달린 조선족전통구조의 집이다. 1900년경에 윤동주의 조부 윤하연선생이 지은집인데 1917년 12월 30일 윤동주는 바로 이 집에서 태여났다. 1932년 4월 윤동주가 은진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그의 조부는 솔가하여 룡정으로 이사하고 이집은 다른 사람이 살다가 1981년에 허물어졌다. 1993년 4월 그 력사적 의의와 유래를 고려하여 룡정시정부에서 윤동주생가를 관광점으로 지정, 1994년 8월 력사유물로서의 윤동주생가를 복원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첫눈에 허물어진 우물이 안겨왔다. 몇 년전에 왔을때에도 시원한 물을 길어 마셨댔는데 우물은 푹 꺼지면서 완전히 메워졌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아무 일 없었댔는데 지금은 허물어졌다>>면서 김재권씨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생가를 찾을때마다 읊조려지는 윤동주시인의 저명한 <<서시>>이다. 어려서부터 문학에 뜻을 둔 윤동주는 17세에 시 <<초 한대>>, <<삶과 죽음>>, <<래일은 없다>>를 썼다. <<병아리>>, <<오줌싸개지도>> 등 동시를 <<카틀릭소녀>>잡지에 발표했으며 1938년부터는 <<조선일보>>학생란에 <<유언>>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일본 교도에서 체포, 2년형을 언도받는다. 1945년 생체실험대상으로 비명에 횡사한다. 생전에 시집 한권 내놓지 못한 시인이였으나 후세에 그의 시가 볕을 보면서 그 찬란한 빛발을 발하게 되는데 일본의 한 학자는 윤동주를 세계적인 시인이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그의 시집 <<하늘과 별과 시>>는 한국청소년들이 가장 즐겨하는 시집이며 그의 시는 해마다 최고의 시로 뽑히고 있다.

맺는 말

맑게 흐르던 륙도하는 룡정에 들어서면서 종이공장의 페수에 금방 흐려진다. 그 맑던 물이 역한 약물로 오염되면서 공농다리를 지나 피혁공장의 오염된 해란강물과 합류한다. 그로서 짧지만 비장한 흐름은 끝나는 것이다. 백리의 하루 길을 급히 달려 해질녘에 그 로정을 마치고 고느적한 저녁 노을을 맞는다.
이 땅에는 백리되는 강이 기수부지이다. 아예 이름도 없는 강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러나 륙도하-이 작고 옅은 강에는 너무도 크고 깊은 사연이 실려 흐르고 있다. 그러한 사연은 우리의 가슴을 적시며 흘러흘러 백년후에도 천년후에도 이 기슭의 보석같은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륙도하여 영원히 흘러라!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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