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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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평론] 랑송동시에 대한 소견 (김철호) 댓글:  조회:966  추천:0  2018-06-25
랑송동시에 대한 소견 ㅡ최문섭 랑송동시와 한국 랑송동시 비교로부터 본 “랑송시”   김철호    1.랑송시에 대하여   사전(조선의 6권 ”조선말 사전”, 한국 “새 우리말 큰 사전”, “엣센스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는데 “랑송”은 있었지만 “랑송시”라는 단어는 없었다.    6권사전에서는 “랑송”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1. (시를)음률적으로 류창하게 감정을 표현하면서 소리 내여 읽거나 외거나 함. 2.글을 류창하게 소리내여 욈. “새 우리말 큰 사전”에서도 대체적으로 해석이 같았다. 반면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는 “랑송”을 “소리 내여 글을 읽음”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랑송시”는 “서정시”같은 시처럼 제이름을 가지고 명사화되여 사전에 오른 시가 아니였다.   그렇다면 “랑송시”가 없는가? 아니다. “랑송시”는 있다. 모든 시는 다 랑송 가능하며 랑송할 수 있는 시는 다 “랑송시”다. 난해한 시, 몽롱한 시는 랑송할 수 없는가? 얼마든지 랑송할 수 있다. 난해한 음악, 난해한 미술 작품(요즘엔 난해한 무용까지 나타나고 있다)에 대한 리해가 어려운 것처럼 청취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 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년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쁜히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몰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 보았다   ㅡ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여 갔다 (“에피소드/조향)   이 시는 초현실주의적인 시인데 작품의 특징은 돌발적인 이미지의 결합에 있다고 “한국명시”라는 책에서 해석하고 있다. 주제는 “잠재의식 속에 느끼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라고 한다. 랑송은 가능하다. 시에 대한 해득은 각자 소양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이 시를 이미 읽었거나 잘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랑송을 통해 미적인 향수까지 느낄 수 있을 거고 처음 접촉하면서 시에 대한 깊은 훈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뚱맞은 소리로 지어 미친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호화가 많이 된 같은 시는 랑송불가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례컨대 나의 동시 “메아리”가 그렇다.   이쪽에서 파도가 밀려가면   (((((((   저쪽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   때론  중도에서 만나기도 하고   ((((( )))))   또 서로 등지기도 하고   ))))) (((((   왔다갔다 만났다 헤여졌다 변덕도 많구나 (“메아리” 전문. 동시집 “하얀 심장”)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초기단계에 먼저 나타난 것이 음악이였다고 한다. 소리로만 초기 예술적감정을 표현했다는 말이다. 그 다음 그 소리에 말을 삽입하여 소리의 뜻을 더 명확하고 감명 깊게 나타내게 하였는데 그 말이 초기의 시(사)이다. 시가 소리(음악)와 떨어져나와 독립적인 장르로 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그때의 시는 무조건 랑송을 위한 글이였다. 즉 시 자체가 바로 랑송을 위해 지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시면 랑송하는 글이고 랑송하는 것은 바로 시라는 것이다. 따로 “랑송시”라고 구별화되여 있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태여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여지는 걸로 배웠다. 그 하나는 서정시이고 다른 하나는 서사시이다. 두 형태를 합한 시가 서정서사시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를 문학공부를 좀 한 사람이면 다 알것이다. 유럽문학의 최대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이다. 소설같은 신화이야기를 시화한 것이다.    조기천의 유명한 “백두산”은 장편서정서사시이다.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의 소리 없는 웃으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 이끼 오른 바위를 벼루돌삼아 곰팡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 듯 고루며 이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백두산" 첫부분)   그외의 시는 대개 거의 다 서정시에 속한다.   시가 랑송을 위해 태여났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시를 “운문(韻文)”이라고 한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운문이란 일정한 규율과 압축, 음악성이 있게 지어진 글을 말한다. 즉, 시는 화성과 률동의 본능에서 발생한 사물이다. 그럼 시는 왜 이렇게 지어지는가? 바로 랑송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시는 랑송을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여났으며 그 대부분 시는 영원히 랑송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랑송 외의 목적도 있지만 그것은 본고의 주제를 위해 생략하겠다.)   세계에는 수백 만, 수천 만 수의 시가 있고 매일 같이 수천, 수만의 시가 새롭게 창작되고 있지만 그 시에다 “랑송시”라고 따로 규명해 내놓은 시는 별로 없다. 시는 원래부터 랑송을 위해 태여난 글이기에 하필이면 “랑송시”라고 규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2.우리가 말하는 “랑송시”란 어떤 시인가?   이렇게 랑송시란 따로 없고 모든 시는 다 랑송 가능하며 랑송 가능하면 랑송시인데 우리는 왜 “랑송시”를 따로 말하려 하며 우리가 말하는 랑송시란 과연 무엇인가?   이 문제를 풀려면 나의 체험으로부터 “랑송시”에 대한 인식을 피력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을 겪어본 사람라면 랑송시를 가장 많이 체험했을 것이라고 본다. 저 유명한 대형 혁명서사극 “동방홍”의 해설은 시로 엮어지였고 많은 사람들의 신금을 울려주었다.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 대약진, 인민공사, 반우파투쟁… 많은 력사적인 사변 속에서 “랑송시”라는 형식의 시가 그때의 형세를 위해 역활을 하였다. 그때는 문학예술이 독립성적(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큰 기계의 하나의 부속품 내지 라사못이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선전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던 문학이 그러한 역활을 담당함은 자명한 일이였다.   새가 군살을 많이 달면 높이 날지 못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문학이라는 원형의 살 외의 살은 덜어내야 문학으로서의 나래를 활짝 펼수 있고 높이 날수 있다. 이러한 여건이 개혁개방과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났다. 중국에서의 문학예술은 차츰 제 궤도에 들어서게 되였으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독립적인 봉오리를 찾게 되였다. 그러나 “좌”적 사상의 여독은 문학의 피속에 섞여 지금까지 문학의 몸에서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때론 그것을 잊고 그것에 수긍한다. “랑송시”가 바로 그렇다.   3.최문섭의 랑송시로부터 본 현상     최문섭선생은 중국조선족동시단에서 성과작이 수두룩할뿐만 아니라 인격적 품위 또한  높은 동시인이다. 동시집 “물노래 돌노래”(연변인민출판사 2011년)는 그의 생전의 마지막 작품집일 것이다. 최문섭선생이 여러가지 형식의 동시탐구에 힘을 기울려 성과를 따냈다는 것이 이 동시집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동시집은 “동시편”, 동요편”, “동시조편”, “랑송동시편”으로 묶어졌는데 우수한 동시가 아주 많다.   최문섭선생 작고 1주년 세미나에서 나는 이 동시집을 평한 “어린이의 본능적 특징으로부터 본 최문섭 동시ㅡ최문섭동시집 《물노래 돌노래》심독(心讀)”이라는 제하의 글을 발표했다. 그 평론이 그후 최문섭기념동시선집 “콩나물”에 실렸는데 무슨 원인에서인지 랑송시를 평한 부문이 삭제되여 있었다. 그 부문의 일부를 복원해 본다.   최문섭동시집《물노래 돌노래》에는 동요편, 랑송시편, 동시조편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비해 이런 형식의 시는 그 표현력이 강력하지 못하고 낯설지가 않다. 특히 동요들은 형식의 새로운 추구거나 내용의 파격적인 돌파가 없었다. 눈에 확 띄이지 않았고 너무 평범하고 수수해 보였다.(중략)  우에서 살펴본 최문섭시인의 동시들로부터 우리들은 최시인이 퍽 자유로운 사유를 바탕으로 동시를 다루었다는것을 느꼈다. 그러나 랑송시에 와서는 그 자유로움이 스톱되는 느낌이다. 어딘가 얽매인 매듭을 풀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이 엿보였다.   “소년아동창간 60돐에 드림”이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랑송시 “꽃대궐”, “북경올림픽길상물을 노래하여”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다섯 복동이”, “고 김례삼선생님 령전에 드림”이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고개길 넘어가신 할아버지”, “중국조선족소년보창간 60돐을 맞으며”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하얀 축복 드린다” 이러한 랑송시에서 동시인은 자유분방한 개성을 꺾으면서 정해진 주제를 위해 필을 날릴수 밖에 없었기에 시적인 표현이 예술화되지 못하고 “위하다”에 목매일 수밖에 없었다.(중략)    이 평론에서 나는 최문섭 랑송시의 편폭에 대해 파악하기도 했다.   편폭: “봄맞이가자” 54행, “꽃대궐” 32행, “다섯 복동이” 46행, “꽃명절” 40행, “10월의 하늘 아래” 37행, “고개길 넘어가신 할아버지” 42행, “하얀 축복 드린다” 55행   그 편폭이 일반 동시에 비해 다 길다. 그 중 가장 짧은 랑송시 “꽃대궐”도  32행이나된다. 그럼 “꽃대궐”을 보자.   꽃대궐 ㅡ”소년아동”창간 60돐에 드림   봄바람 살랑살랑 세월의 언덕 넘어 불어오고 뾰족뾰족 연푸른 싹 새봄 맞아 이슬비에 돋아난다 울긋불긋 칠색으로 단장한 꽃대궐ㅡ “소년아동”잡지 창간 60돐 프랑카드 명절의 춤사위에 받들려 눈부시다   오너라, 아이들아 꽃다발 흔들며 채색풍선 날리며 노래하자! “소년아동”이 걸어온 발자취를 경축하자! 우리들의 즐거운 생일을 중국조선족 첫 어린이잡지 영원한 아이로 거듭나는 “거인” 지금 활개치며 힘차게 걸오온다   “소년아동”은 우리네 꽃동산 일년 열두달 꿀샘 솟는 여기에 지식의 바다가 출렁이고 과학의 궁전이 눈비시다   “소년아동”은 우리네 길동무 이곳엔 흰옷의 전설이 숨쉬고 미래의 훌륭한 꿈이 어려있다   아이들아, 오너라! 깔끔한 새옷 입은 “소년아동”이 우리를 손짓한다 신기루같은 찬란한 래일을 창창한 하늘가에 걸어놓고 우리를 꼬드긴다 새 희망 안고 훨훨 우주의 한끝까지 날아가라고!    보는바와 같이 이 랑송시는 그 어떤 예술을 위한 추구가 아니라 하나의 아동잡지를 위한 가송이다. 모든 가송이 다 그러하듯 이 가송도 부풀리고 춰주는 것으로 일관되여 있다. 이런 랑송시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위한 시상(詩想)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송가이다. 동시라는 순수한 장르를 빌어서 어른의 욕구를 발설하는 행위인 것이다.    개혁개방 이전,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선전을 위해 시가 많이 전락되여 문학적인 색갈을 잃고 말았는데 랑송시라는 것이 둔갑하면서 그 갑질이 더 심했다. 그런데 최문섭선생은 개혁개방이 많이 진행되였고 문학이 본연에로 많이 복귀하고 있었던 상태에서 이같은 랑송시를 창작한 것이다. 정치가 문학에 준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반증이다. 이런 시를 랑송하라고 하면 자각적으로 랑송할 어린이가 한명이라도 있을가?    주지하다 싶이 랑송시는 ‘랑송시”라는 초유의 이름을 갖고 등장해서 선전선동의 도구로 전락되였고 지어 무대에까지 올라서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그 영향력이 아주 강해서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 의해  “랑송시”라는 하나의 독립적인 풍격의 시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였다.     4.한국의 랑송시     과연 랑송시라는 독특한 형식의 시가 있어야 하는가? 랑송시가 과연 우리가 념두에 두고 있는 그런 형태의 시인가?    연변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성인시의 경우 랑송시를 따로 말하는사람이 거의 없다. 랑송시가 고갈되였다거나 랑송할 시가 없다고 대성질호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한국에 가서 여러번 전국시랑송대회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런 시랑송대회에서 랑송시를 따로 지어서 시를 랑송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본적 없었다. 대개는 기성시인들이 창작한 우수한 시였다. 가장 많이 랑송된 시는 윤동주의 “별 혜는 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유치환의 “행복”, 서정주의 “국화 앞에서”, 한룡운의 “님의 침묵”, 마종기의 “우화의 강”… 그 외에도 노천명, 신동엽, 황금찬, 박제천, 정호승, 이외수, 김광섭… 지어는 소설가 박경리의 시까지 랑송되였다. 이들 시는 이른바 “랑송시”라는 얼굴로 창작된 시들이 아니라 읽히고 사랑받는 가운데서 무대에 오른 시들이였다.   연변에서도 지금 시랑송대회 같은 것이 보급되여 많은 시들이 랑송되고 있는데 내가 알기에 랑송시라고 따로 창작한 시들이 한 수도 없다. 다 랑송자가 자신이 랑송하기에 합당한 그냥 시를 골라서 랑송하는 것이다.   시가 랑송자를 통하여 청중과 만날 때 완벽한 커무리키이션(즉 출연자의 동작, 음성기호)이 이루어져 소통되여야 하는데 극 소부분 시를 제외한 대부분 시들이 이런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 표현자의 연기가 줄충하기만 하면 지어 어려운 시도 청중에 가 닿을 수 있다.     5.한국의 랑송동시     그럼 동시에서는 꼭 랑송동시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가? 랑송동시가 없어서 애들이 랑송동시 가뭄에 들어 허덕이는가? 랑송동시를 두고 나는 여러 해를 고민하였다. 여러 사람과 토론도 해보았다. 한국에 갈 때마다 서점을 돌면서 혹시 랑송동시집 같은 것이 없을가 찾아 보기도 했다. 금년 1월, 아들집 가까이의 이름 없는 서점에서 우연찮게 랑송동시집을 발견하게 되였다. 물론 보배가 따로 없었다. 랑송동시집을 사갖고 집에 온 나는 단숨에 시집을 다 읽었다.    이 “랑송동시집”(전 3권, 1, 2학년 편, 2, 3학년 편, 5, 6학년 편)에는 전래동요 1수 외에 92명 동시인이 지은 동시 157수가 올라있었는데 놀랍게도 많이 류전되고 사랑받던 한국의 동시들이 거의 다 올라있었다. 한국의 저명한 동시인 김종상의 동시가 도합 6수가 올라있고 두번째로 문삼석동시인의 동시가 5수, 제해만 동시인의 동시가 4수 올라있었다. 엄기원, 손동연, 유경환, 이준관, 하청호, 손세광, 최계락, 오순택, 권영상, 박두순… 등 많은 동시인의 작품들이 두 세수 씩 올라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내가 “동시야 놀자”문학췬에다 한국의 동시 600수를 골라 올렸는데 이번에 구입한 한국 “랑송동시집”에 그 시들이 거의 다 있었다. 우리의 눈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랑송시”라는 초유의 시를 발명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 그런 동시들이 다 랑송동시였다.   랑송동시집의 첫페지를 장식한 동시는 문삼석동시인의 “이른 봄 들에서”였다.   사르륵 사르륵   “여보세요, 계세요?”   속삭이는 봄비.   소로록 소로록   “누구세요? 나가요.”   내다보는  새싹. (“이른 봄 들에서” 전문)   이 랑송동시집에 실린 문삼석동시인의 다른 한 동시를 보자.   누가 뿌렸나? 그 많은 씨앗.   하늘 밭 가득 촘촘한 씨앗. (문삼석 “별” 전문)   도합 20자밖에 안되는 이미지 단시이다. 이 “랑송동시집”에 실린 많은 동시가 “이른 봄 들에서”와 같은 이미지동시였다.    꽃/이봉춘   꽃은 손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꽃은  발도 없다   그러나  산을 넘어 먼곳까지 잘도 간다   돌다리/하청호   깡충 깡충 별들이 건너뛰다가   퐁당 퐁당 물 속에 빠져 버렸다   반짝 반짝 냇물 속에 빠진 수, 수만의 별 별들   꽃씨/최계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지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시에 새로운 이미지가 없고 새로운 시적 발견이 없다면 훌륭한 시가 될수 없다고 본다. 엄격히 말하면 새로운 이미지는 훌륭한 시를 싹트게 하는 종자라고 할수도 있다.    이미지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미지란 시에서 표현되는 원관념의 다른 한 형상이다. 어떤 시를 읽을 때 우리는 그 시 밖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 그림이 바로 이미지이다. 시를 읽는데 머리 속에 그림이 생기는 것이다. 그 그림이 이미지이다.    랑송동시집에 이런 동시가 있다.   산 위에서 보면 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 쏙 얼굴을 내밀지요   장난감 같은 교문으로 재조잘 재조잘 떠밀며 날아 나오지요 (김종상 “산 위에서 보면” 전문)    이 시를 보고 머리 속에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는 학교가 하나의 새장으로 떠오르고 그 새장 속의 아이들이 새가 되여 날으는 장면. 나뭇가지 사이로 본 학교가 하나의 새장이라는 시적 발견은 아이들을 새라는 이미지로 둔갑시켜 아름다운 화폭을 안겨준다. 독자의 머리속에는 동화같은 커다란 그림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 그림이 바로 이미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는 이미지 만들기이며 이미지가 없으면 시가 될 수 없다고까지 말하는데 과한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직설적인 표현, 현실주의적 표현이였다. 현대시에 접어들면서 이미지창조가 필수로 되였다. 시에서 이미지창조는 지금까지는 최고의 표현수법이다. 하이퍼시에서는 그 이미지 창조를 한 시에서 여러번 나타내고 있다.    주제를 떠난 이야기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많은 동시가 이미지동시이고 이런 동시를 랑송하는 것이 실제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감이 옳다고 본다.   이처럼 한국의 “랑송동시집”에는 우리가 평소에 말하던 그런 보통 동시로 일색되여 있었다. 1, 2학년, 3, 4학년, 5,6학년 별로 묶어졌고 심도가 차츰 깊고 편폭이 길어지는 것 빼고는 다 보통시였다. 특별히 랑송을 위해 창작한 그런 시들이 아니였다는 말이다.   편폭이 좀 긴 5, 6학년편에 실린 동시 한편을 살펴보자.   꽃길   유경환   순한 짐승들 지나다닌 길목에   사슴 발자국대로 사슴꽃 피고 노루 발자국대로 노루꽃 피고 토끼 발자국대로 토끼꽃 피고   이름 없는 짐승이면 이름없는 꽃 피고   재주 한번 넘어 사슴 되고 재주 한번 넘어 노루 되고 재주 한번 넘어 토끼 되고   심심할 땐 혼자서 이름 없는 짐승   꽃길 속에 그 누구 들어올 때까지 나는 재주 잘 넘는 왕자이고 싶다   사슴꽃이 어떤 꽃인가를 노루꽃이 어떤 꽃인가를 토끼꽃이 어떤 꽃인가를   심심할 땐 혼자서 그리며 생각한다 (“낭송동시집” 5, 6학년 편 86페지)   산짐승이 지나간 발자국이 꽃이 된다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동시이다. 사슴 발자국은 사슴꽃, 토끼 발자국은 또끼꽃이라는 발상은 동화적이다. 이 동시에 대한 랑송법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랑송법   1연은 자연스럽게 읽고, 2연은 한 행씩 또박또박 읽어 갑니다. 그래서 3연에 이르러 더우 또렷하게 낭송해 줍니다. 4연도 2연처럼 읽습니다. 그리고 5연도 3연처럼 또렷이 읽어 의미를 강조해 줍니다. 6연은 동화 구연하듯, 상상의 세계로 안내해 줍니다. 7연에서는 설명하듯 한 행씩 분명한 어조로 낭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끝 연은 조용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천천히 읽습니다. 시 낭송의 끝은 항상 끝나는 느김이 충분히 나도록 읽어 주어야 됩니다.    동시는 문학이며, 최고의 문학이다. 우리는 문화대혁명같은 시절에 문학으로 정치를 하던 그런 작법을 답보해서는 안된다. 누군가 정치는 협치 내지 타협이지만 문학은 협치가 되거나 타협의 상대로 되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문학은 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며 예술적인 창조다. 랑송시라고 해서 “아, 오…”를 련달아 외치거나 없는 감정을 토해내면서 그 무엇에 아첨하는 따위 짓거리를 이젠 영영 버려야 한다.     6.어린이가 읊기 좋아하는 시가 바로 랑송동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최문섭선생이 쓴 그런 동시는 어른의 강요가 아니면 어린이들은 절대 랑송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몇년전 도문에 가서 어린이들의 시랑송경연을 본적 있다. 어린이들이 랑송하는 동시는 거의 다가 연변 동시인들의 동시였다. 소개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자각적인 선택과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가 배분되였다. 그런데 한 동시를 두 아이가 랑송했다. 그 동시가 바로 나의 동시였다. 대표작도 아니고 스스로 잘 썼다고 생각하는 동시도 아니였다. 곁에 있는 허송절선생에게 저 동시는 왜 두 아이가 랑송하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두 아이가 다 저 동시를 선택해서 한 아이에게는 다른 동시를 랑송시키려고 했는데 두 아이가 다 기어이 저 동시를 랑송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되였다고 했다. 두 아이가  자각적으로 선택했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였다. 그 동시를 보자.    꽃은 왜 웃나/김철호   꽃이 왜 웃냐 하면 꽃이 왜 웃냐 하면   바람이 살랑살랑 간지럽혀서 해죽해죽   꽃이 왜 웃냐 하면 꽃이 왜 웃냐 하면   해살이 살랑살랑 간지럽혀서 해죽해죽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동시가 있다. 강요는 금물이다. 우리가 랑송시랍시고 아무리 멋지게 지어서 준다고 해도 그것이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으면 어른의 넉두리를 아이의 입으로 하는 꼴 이상이 될수 없다.    아이들에게 좋은 시를 읽게 하고 랑송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그 시와 접하면서 상상력을 꽃피우고 아름답고 멋진 시상 속에서 건강하게 크라는 것이 목적이 되여야 하지 어른의 그 어떤 선전이거나 선동, 속풀이가 목적이 되여서는 절대 안된다고  본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우리의 동시인들이 창작한 거의 모든 동시가 다 랑송 가능하며  랑송할 동시가 없어 아이들이 목말라하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문학이 아닌 그늘에서 습관화된 그런 의식을 버리고 문학의 본연에서 창작을 정진하게 하는 것이 오늘 날의 우리의 자세가 되여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랑송시”는 없다. 시가 있을 뿐이다. 모든 시는 거의 다 랑송 가능하며 시는 처음부터 랑송을 목적으로 창작되였다. 이이들의 가슴에 가 닿는 아름답고 멋진 시를  창작하여 많이 읽히고 랑송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뿐이다. 아이들에겐 있지도 않는 어른의 서정을 갑자르면서 어린이화하여 내 쏜들 그것을 아이들이 받아줄리가 없다. 동심에 잘 기대여 우리가 창작한 동시가 바로 “랑송동시”이다.   7.글을 마무리하면서   “랑송동시집” 서문의 한 단락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지을가 한다.   시는 우리가 본디부터 타고 난 귀한 사랑의 마음을 제일 고운 언어로 다듬어 낸 가장 자랑스러운 사랑의 노래입니다. 옛날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가 “시란 정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라고 한 것도 이 점을 지적한 말입니다.   ㅡ미안해 넘어뜨리려고 그런게 아니야   새싹은  봄이면 돋아 나지만 내가 요만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까지엔 봄날이 수없이 지나가야만 했어   파란 하늘을 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 하고 싶었어 달라진 세상,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  그렇지만 기쁨은 잠깐, 사람들은 날 피해 다녔어 난 쓸쓸했지   그 때, 네가 가까이 온 거야 너무 반가워 덥석  네 발을 잡았지   너와  친구하고 싶었어 (“돌부리” 이혜영)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나뒹굴어져 발목을 삐거나 팔꿈치가 벗겨질 수도 있고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아찔한 순간입니다. 그런데도 돌부리를  미워하거나 원만하지 않습니다.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린 돌부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봅니다.   돌 한 덩이가 길바닥을 뚫고 숫아나 돌부리로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깜깜한 땅 속에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밝은 햇볕 아래서 푸른 하늘을 보는 순간은  너무나 큰 감격입니다.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친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발을 잡은 것이지 넘어뜨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돌부리의 마음이 눈물겹습니다.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는 미움보다 뜨거운 정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노래인 시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시를 많이 외고 감상하면 가슴 속에서 저절로 사랑이 자라나고 마음과 말씨도 고와집니다. 마음과 말씨가 고와지면 행동이 착해지고 행동이 착하면 생활이 건강해져서 사회가 정의롭고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랑의 노래인 것입니다. 2018년 아동문학세미나에서 발표  
40    모음 댓글:  조회:1876  추천:0  2011-08-19
A. 랭보[프랑스] 검은 A, 하얀 E, 붉은 I, 초록 U, 파란 O, 모음이여! 나 언젠가 너희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 A, 끔직한 악취 주변을 윙윙거리는 반짝이는 파리 떼 털로 덮힌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 E, 안개 낀 천막의 순진함, 자랑스러운 빙하의 창, 흰 왕, 산형화의 전율. I, 주홍빛, 토해낸 피, 분노에, 속죄의 도취에,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 U, 순환, 초록 바다의 성스런 떨림, 동물들 흩어져 있는 방목장의 평화, 연금술이 학구적인 큰 이마에 새긴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한 날카로운 소리 가득한 최고의 나팔, 세계와 천사가 가로지른 침묵. 오, 오메가여, 그 눈의 보랏빛 광채여!
39    수치 댓글:  조회:1642  추천:0  2011-08-19
A. 랭보[프랑스] 검이 그 골통을, 하얗고 두툼한 초록 보따리를, 결코 새롭지 않은 기운으로 잘라내지 않는 한 (아, 그는, 그 코를, 그 입술을, 그 귀를. 그  배를 베어야 할 것을! 두 다리도 포기해야 할 것을! 오, 놀라워라!) 그러나, 안돼. 정말로, 머리에는 칼날이, 배에는 조약돌이, 창자에는 불꽃이, 작용하지 않을거라 믿는다. 그 귀찮은 개구쟁이, 저리 어리석은 짐승은 한순간도 속이고 베반하는 걸 멈추어선 안된다 몽 로쇠의 고양이처럼 여기저기 냄새를 뿌린다! 오, 신이여! 그의 죽음에, 어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38    [시]할머니가 소녀였을 때 집시들이 말하기를,(차알스 시믹) 댓글:  조회:2061  추천:24  2009-11-23
할머니가 소녀였을 때 집시들이 말하기를, 차알스 시믹[미국] 너는 전쟁과 병마와 굶주림의 가장 사랑스런 손녀가 될 것이니라. 네 삶은 무성영화를 보는 눈 먼 자와 같을 것이니라. 너는 양파를 잘게 다지고 네 심장 조각 또한 곱게 다져 뜨거운 냄비에 함께 넣을 것이니라. 네 자손들은 밧줄로 묶인 여행 가방 위에서 잠잘 것이고 네 남편은 밤마다 두 개의 묘비인 양 너의 젖가슴에 입을 맞출 것이니라. 보라, 어느새 너와 너의 이웃을 위해 단장하고 있는 까마귀들을. 미소도 없이 그 무엇에 대한 맹세도 없이 너의 큰아들은 다만 입술에 파리 떼를 덮고 누울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네가 만나는 모든 개미들과 거리의 잡초들을 너는 부러워할 것이니라. 몸과 영혼은 현관 입구의 계단에 따로 앉아 같은 껌을 씹고 있을 것이니라. 귀여운 작은 소녀야, 널 사가도 되겠니? 라고 악마는 물을 것이니라. 장의사는 네 손자에게 장난감을 사서 안겨줄 것이고 마음은 죽음의 마당에 이르러서조차 말벌의 집 같을 것이니라. 신에게 기도할 것이나 신은“방해하지 마라”는경고문만을 내걸고 있을 것이니라. 더는 묻지 마라, 내가 아는 전부는 이 뿐이니라.
어떻게 팔레스타인들이 온기를 지킬 수 있을까요 나오미 녜[미국] 하나의 단어를 골라서 수없이 되새겨 보세요, 그 말이 당신의 입 속에서 불씨를 일으킬 때까지. 아다프레, 저항하는 사람, 알파드, 외로운 사람, 별들의 이름은 바로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 지은 거지요. 밤마다 저들은 한 세상과 또 다른 세상 사이의 긴 길에 선답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눈을 깜빡이기도 하고. 그들의 노란 눈이 내려다보기에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지요. 디라, 작은 집, 별들은 당신들의 담을 허물고 우리를 불러들이지요. 내 우물이 마르고, 할아버지의 포도들이 노래하길 그쳤지요. 나는 불씨를 찾아 석탄을 쑤석이고 아이들은 울고 있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이 바로 별과 같은 존재란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하얀 돌의 성곽을 쌓고, “이것이 내 것이다.” 라고 주장하지요.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미자르, 베일, 망토를 사랑하게 되면 그것들 뒤에 고대인이 앉아 불꽃을 풀무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란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 고대인은 우리들 숨결 속에 어두운 바람을 휘젓고 있지요. 그리고 말하지요. 이 베일은 걷어질 것이고 마침내 그들은 빛나는 우리를 보게 될것이라고, 축복의 언덕에 호박(琥珀)처럼 흩어져 있는 우리를, 정말 그럴까요? 사실 이건 내가 지어낸 이야기이고. 미자르에 대해선 나도 잘 아는 바가 없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 지상에서 온기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요. 당신의 어깨에 두른 숄이 내 것처럼 얇아지면 당신도 나처럼 이야기를 지어내게 될 겁니다.
36    [시]1월 1일(데이비드 레만) 댓글:  조회:2081  추천:27  2009-11-23
1월 1일 데이비드 레만[미국] 어떤 이들은 영감이 번개와 같은 것인 줄 알지만 난 그것이 페와 공기에서 오는 것이라 믿어 당신은 그것을 들이쉬고 내쉬고 그것은 당신의 몸 속을 순환하지 살아있는 나의 숨결 수면 위를 가로지르는 바람 때로 영감은 칠면조 고기로 만든 샌드위치와 완두콩 스프나 베니 굿만*의 클라리넷 음계처럼 나의 주문에 따라 나오는 것이기도 해 언제나 응답해주는 언어 나의 클라리넷 어떤 이들은 영감은 순결한 영혼에만 이른다 하지만 그건 아니지 영감은 순결한 자와 순결하지 않으 자를 구분하지 않지 참을성 있는 자와 성급한 자 연인들과 방탕한 자들과 숫처녀들 모두에게 오지 당신은 그저 영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들을 수 있게 되지 긴 기다림 뒤에 드러나는 소설의 마침내 단순한 결말 같은 것을 부서진 파편일 때 우리를 더 매혹하던 충격적 순간 옛 노래 그 이상한 소음 어쩌다 그만 듣게 된 끊이지 않을 전화벨 소리 *베니 굿만(1909ㅡ1986):재즈 클라리넷 연주자  
35    [시]초상화(스탠리 쿠니쯔) 댓글:  조회:2270  추천:19  2009-11-23
초상화 스탠리 쿠니쯔[미국] 내가 태여나기 몇 달 전 그토록 힘들었던 봄날, 공원에서 자살해버린 아버지를 어머니는 끝내 용서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이름을 장롱 가장 깊은 곳에 가두고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지만 나는 어머니의 깊은 곳에서 두들겨대는 아버지의 주먹질 소리를 들었다. 어느 날, 내가 다락방에서 길쭉한 입과 멋진 콧수염, 깊은 갈색의 초상화를 찾아 들고 내려왔을 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파스텔 초상화를 갈기갈기 찢었고 내 뺨을 세차게 때리셨다. 이제 내 나이 예순 넷 타는 듯, 지금도 나는 그 뺨이 아프다.
34    [시]동물들이 치룬 대가(로버트 블라이) 댓글:  조회:1994  추천:24  2009-11-23
동물들이 치룬 대가 로버트 블라이[미국] 나무들로 둘러싸인 축사안에 검게 빛나는 발굽을 가까이 맞대고 서 있는 햄프셔 암양들은 갚아야 했다, 양털로, 자궁으로, 먹음으로써, 그리고 양치기 개에 대한 두려움으로. 동물들은 모두 갚아야 했다. 말은 하루 종일 갚았다; 돌처럼 무거운 배들을 끌었고 땅은 그들이 끌어올린 것을 다시 끌어내렸다. 돼지들? 그들은 칼이 목으로 들어올 때 꽥꽥 소리치는 것과 이어서 흘러내리는 피로 갚았다. 피, 그 뜨겁고 개인적인 것으로, 그리고도 남은 부채는 내장들이 갚았다.   “이렇게 사는 게 나야.” 라고 돼지들은 말 할 줄 모른다. 여자들은 머리를 숙여서 갚았고, 그리고 남자들은 내 아버지처럼 술을 마셔서 갚았다. 악마는 소리쳤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갚아라!” 나는 나의 빚을 다른 식으로 갚았다. 이들처럼 농장의 방식으로 갚을 수 없었으므로, 오늘 이 시를 쓴다.  
33    [시]첫 꿈(빌리 콜린즈) 댓글:  조회:1685  추천:21  2009-11-23
첫 꿈 빌리 콜린즈[미국]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사람을, 첫 꿈에서 깨어난 날 아침 그는 얼마나 고요해 보였을가, 자음이 생겨나기도 오래 전 짐승의 표피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서서 모음으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는 아마도 슬며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깊은 곳을 내려다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가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단 말인가, 홀로 생각에 잠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돌로 쳐 죽인 뒤에만 만질 수 있었던 짐승의 목에 어떻게 팔을 두를 수 있었던 것일까, 살아 있는 짐승의 숨결을 어찌하여 그리 생생하게 목덜미에 느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 한 여인에게도 첫 꿈은 찾아왔으리라, 그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홀로 있고 싶어 자릴 떠나 호수가로 갔겠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젊은 어깨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만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 몹시도 외로워 보였을 것이라는 것 뿐, 만일 당신이 거기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녀을 보았더라면 당신도 그 사람처럼 호숫가로 내려갔으리라. 그리하여 타인의 슬픔과 사랑에 빠진 이 세상 첫 남자가 되었으리라.
32    [시]만가(림망) 댓글:  조회:1839  추천:22  2009-11-16
만가 림망[중국] 검은 글자가 가득 찍혀있는 종이 한장 되돌아가는자의 소식을 실어왔구나 수많은 세월은 그림자 없는 묘비를 세우고 우리는 다시 사라져간 령혼들의 기억을 더듬는다 가슴속에 반짝 피여났다 사라지는 반디불인가 우리들의 착하나 도움 없는 소원을 흔들어주고 겨울날의 한가닥 해빛처럼 북방, 차거운 공기를 따뜻하게 하는 힘이 실린다 검은 망토의 사신은 홀연히 사라졌다 어디서 다시 오는가 소리없는 발걸음이 뒤잔등을 서늘케 하고 우리가 알수 없는 공간을 스쳐지나며 약속도 없이 다가와 생명의 날개를 움켜잡더라 이젠 몇번째 페지더냐 우리 암담한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 오늘은 또 다른 그림자에 덫을 잡혔거니 사신이 손에 쥔것은 무덤가는자의 카드만이 아니더라 먼길 떠난자 기억에는 수많은 꿈이 번뜩이고 그 얼굴들은 스크린처럼 순간마다 바뀌거니 다시 되새길수 없는 어제를 지나쳐오면서 생명의 나무에서 얼마나 많은 마른 잎 떨어뜨리더냐 검은 글자 가득 찍힌 종이는 검은 날개의 까마귀인가 퍼덕이여 황혼을 피빛으로 물들이고 늙은 가수가 작별의 만가를 부르고 또 부르더라 이젠 몇번째 페지더냐 우리 눈앞에서 흩날리는 저렇게도 많은 저주로운 날개들
31    [시]대화(담욱동) 댓글:  조회:1800  추천:33  2009-11-16
대화 담욱동[중국] 해빛 찬란한 바다가에서 넘실거리는 물결을 마주하고 너는 두 팔을 펼치며 바람과 말한다  “날고싶어라” 갈매기와 말한다 “날고싶어라” 또 나와 말한다 “둥둥 뜨고싶어라” “사랑과 사과처럼 뜨고싶어라” 이때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였노라 “나는 아무것도 가질것 없다오 진실하고 방탕한 녀심 하나밖에는”
30    [시]독(보들레르[프랑스]) 댓글:  조회:1854  추천:14  2009-03-18
술은 아무리 지저분한 빈민굴도 기적과도 같은 사치를 옷 입혀 꾸며줄 줄 아니 그 붉은 아지랑이의 금빛 속에 전설과도 같은 희랑을 얼마라도 솟게 한다 마치 흐린 하늘에 지는 석양처럼 아편은 끝간데도 없는 것을 더욱 넓히고 무한을 다시 늘여 시간을 더 깊이 파고 관능의 기쁨을 파고들어 어둡고 서글픈 쾌락들로 넋을 제 부피에 넘치게 채워준다 이 모두도 네 두 눈에서 네 초록색 눈에서 생겨나는 독을 당하지는 못한다 네 눈은 내 넋이 떨면서 거꾸로 비치는 호수 ... 내 꿈들이 떼지어 와서는 그 쓰디쓴 구렁에서 목을 축이는 호수 이 모두도 나를 깨무는 네 침방울의 무서운 기적을 당하지는 못한다 내 넋을 여한도 없이 망각 속에 잠그고는 현기증을 몰아대며 기진한 넋을 죽음의 강변으로 굴려가는 네 침!  
29    [시]사랑의 신과 두개골(보들레르[프랑스]) 댓글:  조회:1775  추천:17  2009-03-18
사랑의 신이 인류의 두개골 위에 앉아 있으니 뻔뻔스러운 웃음 지닌 불경한 녀석은 그 옥좌 위에서   둥그란 거품들을 즐겁게 불어대고 거품은 하늘로 솟는다 마치 하늘 꼭대기에서 저승에라고 가닿으려는 듯이   반짝반짝 금방 부서질 듯이 여린 공은 훌쩍 날아올라 터지면서 제 가냘픈 넋을 금빛 꿈처럼 내뱉는다   두개골이 거품마다에게 사정하며 신음하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ㅡ 이 짓궂고 어처구니없는 장난은 언제 끝장날 거지?   왜냐하면 잔인한 내 입이 공중에다 흩뿌리고 있는 것은 바로 내 머릿골이고 내 피고 내 살이니깐 이 살인하는 괴물아
28    [시]피의 샘(보들레르[프랑스]) 댓글:  조회:1667  추천:10  2009-03-18
장단맞춰 흐느끼는 샘물처럼 내 피가 콸콸 흐르는 듯 여겨지는 수가 가끔 있다 지절대며 흐르는 그 소리는 곧잘 들려도 상처 찾아내려고 아무리 더듬어도 소용 없다   포장길들을 작은 섬들로 둔갑시키고 샘물마다의 갈증을 일일이 적셔주며 도처에서 자연을 붉게 물들이는 피는 도시를 가로질러 흘러간다 시합장에서처럼   나를 좀먹는 겁을 하루라도 잠재워달라고 나는 머리로 오르는 술더러 자주 부탁도 했으나 술은 눈을 더 밝게 귀를 더 날카롭게만 해주니   나는 건망증 있는 잠을 사랑에서 찾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도 나에게는 그 잔인한 처녀들에게 내 피 빨리도록 만들어진 바늘방석일 따름
27    [시]상처(월리엄 스태퍼드[미국]) 댓글:  조회:1893  추천:11  2009-03-18
그것들은 말해준다, 어떻게 세월이 흘러 어떻게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지. 그것들은 말한다. 기울어진 삶이 들어설 때 그것은 돌아서서 친구였던 우리 얼굴을 베어버린다고. 가짜 상처란 없다. 교회에서 한 여인의 볼에 햇살이 비칠 때 우리는 교훈을 본다. 그 책엔 세월이 있다. 그곳엔 합창대가 부르는 노래도 도달하지 못할 슬픔이 있다. 줄지어 선 아이들이 미래가 예비된 얼굴을 들어올린다. 언젠가는 상처가 자리잡을 얼굴들을.
26    [시]그대와 기예(월리엄 스태퍼드[미국]) 댓글:  조회:1729  추천:14  2009-03-18
그대의 정확한 오류는 아무도 못 듣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그대의 빗나간 걸음은 혼자서 걷는 위대한 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대는, 비틀거려도 늘 집에 이르는 세상에 산다.   세월이 그대 얼굴에 새기어든다-- 젊음이 있었을 때 그대의 재능이었던 것은 젊음. 그것이 가고 나면 그대는 이끼에 덮인 바위를 더듬어 그대의 길을 찾고   소리가 나기도 전에 음악이 시작하는 곳을 발견한다. 늘 내리고 있는, 늘 새로운 눈송이처럼 조용히 협곡들이 뻗어 있는 저 먼 산중에서.  
25    [시]유성(遊星 파블로 네루다[칠레]) 댓글:  조회:2132  추천:8  2009-03-18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가을은 무슨 빛을 하고 있는가? 나날은 서로 그물눈처럼 얽혀 있는가, 그러다가 드디어 머리카락 하나가 으쓱하는 것처럼 모두 다 풀어지게 되는가? 얼마나 많이 떨어지는가ㅡ 종이, 술, 손들, 시체들이ㅡ 지구에서 그 지방으로? 물에 빠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 거기인가?  
24    [시]바위(옥타비오 파스[멕시코]) 댓글:  조회:1947  추천:9  2009-03-18
꿈꾸며 살았네. 길을 걸으며 언제나 출발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이었네. 꿈에서 깨었네. 포박을 당한 채. 언제나 도주의 기회를 엿보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이었네. 바위에 붙들어 매인 채 다시 잠이 들었네 동아줄은 꿈 바위는 죽음이었네. 신은 눈을 뜨리 우리는 그의 ‘무(無)의 왕국’에 돌아가리.  
23    [시]레몬 애가(다까무라 고오따로오[일본]) 댓글:  조회:2010  추천:9  2009-03-18
그렇게도 당신은 레몬을 기다렸다 슬프고도 하얗게 밝은 죽음의 침상에서 나에게서  얻은 한 개의 레몬을 당신의 고운 이가 소리내며 깨물었다 싱그러운 향기가 풍긴다. 그 몇방울의 하늘이 주신 레몬의 맛은 선뜻 당신의 의식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당신의 푸르고 맑은 눈이 빛나며 웃는다 나의 손을 꽉 쥐는 당신의 건강함이여 당신의 가슴에 비바람은 부는가 이와 같은 생명의 갈림길에서 지에꼬는 옛날의 지에꼬가 되고 일생의 사랑을 한순간에 비췄다 그리고 얼마 후 젊었을 때 산에서 하듯 큰 숨을 한번 몰아 쉬더니 당신의 호흡은 그대로 멈추었다 사진 앞에 꽃은 벗꽃 그늘에 시원스레 빛나는 레몬을 오늘도 놓자.   
22    [시]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헨리 밴 다이크[미국]) 댓글:  조회:1861  추천:5  2009-03-18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우리 얼굴은 시원한 빗줄기를 한 번 더 느끼길 원할 겁니다. 세상에 늘 음악 소리만 들린다면 우리 마음은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사이사이 달콤한 침묵이 흐르기를 갈망할 겁니다. 삶이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면 우리 영혼은 차라리 슬픔의 고요한 품속 허탈한 웃음에서 휴식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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