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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고있는 보천보의 일제기관들.
로진창에서 악질주구 리도선부대를 괴멸시키고
압록강 건너 보천보에서 일제 통치기관 들부셔
1937년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군 4사 제1퇀, 제3퇀, 6사 제9퇀, 제10퇀은 무송현 동강양무띵즈밀영에서 회사한후 령도간부련석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는 1936년 가을부터 진행된 반“토벌”투쟁의 경험교훈을 총화하고 1937년 상반년의 활동방향과 병력배비문제를 토의했다. 적아의 태세를 분석한후 부대를 나누어 유격활동을 진행하면서 적들의 분할포위를 돌파하기로 방침을 제정, 4사주력은 연변지구인 안도, 화룡으로 진군하여 유격활동을 하다가 다시 장백현으로 돌아오며 6사주력은 무송에서 장백현으로 곧바로 나아가 장백산구에서의 유격전을 견지하면서 적들의 1937년 춘기대“토벌”을 분쇄하기로 했다.
리도선부대를 괴멸시키다
동강회의후 두만강연안을 거쳐 조선의 무산지구로 진출할 임무를 맡은 4사 1퇀, 3퇀과 사부소속부대 및 6사 9퇀의 300여명 병력은 4사 정위 주수동, 1퇀 최현 등의 인솔하에 며칠동안 급행군하여 돈화현 목단령에 다달았다. 4월초 부대는 안도현 황구령북쪽도로에서 군수물자를 만재한 군용마차 20여대를 습격하여 많은 식량과 피륙을 로획하여 결핍하던 군복과 식량을 해결하게 되었다. 4월 23일 안도현 승평령동남쪽에서 일본군과 맞다들어 격전을 벌린후 적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안도현 로진창부근에 이르렀다.
4사 1퇀 퇀장 최현은 부대의 행동을 보장하기 위해 5명으로 구성된 정찰조를 파견하여 사위의 정형을 정찰하게 했는데 정찰조원들은 적의부대가 지나간 것 같은 많은 발자국이 나있는데 그 발자국에 고인물이 아직 흐린대로 있더라고 보고했다. 이에 최현은 3련을 파견하여 로진창동북쪽 묘령의 경계에 배치하고 주력부대는 수림에서 나와 계곡을 따라 행군하라고 명령했다.
얼마 가지 않아 대사하에 이르렀다. 대사하는 워낙 물살이 세고 차거웠다. 게다가 봄물이 져서 부대가 건너려면 다리를 놓아야 했다. 최현은 한 개 련을 파견하여 강에 다리를 놓게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강가의 금전굴곁에서 휴식을 취하게 했다. 몹시 지친 전사들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코를 골면서 굳잠에 빠져들고말았다.
이때 황구령에서 항일련군에게 군수물자를 털렸다는 소식을 들은 리도선은 200여명 병력을 거느리고 은밀히 아군의 뒤를 밟으면서 기회를 엿보고있었다. 떠날 때 리도선은 상전앞에서 “이번 길에 공비들은 모조리 소멸하겠다. 만약 한놈이라도 놓친다면 황군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것이다”고 큰소리쳤다.
토비출신인 리도선은 한때 항일대오속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9.18”사변후 혁명을 배반하고 왜놈의 개다리로 되였다. 총질을 특별히 잘하는 명사수였던 이자는 주구의 자식들이 아니면 반역자거나 명포수들을 모아 부대를 묶어 우두머리질을 했다. 불악귀같은 놈들은 동만일대에서 수천명의 혁명투사와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였다.
그 대가로 왜놈에게서 훈장까지 탔으며 안도현치안대 사령의 보좌에까지 올랐다. 이자의 수하 중대장, 소대장은 거의다 왜놈들이였다. 리도선부대는 일본군과 배합하여 항일련군 “토벌”에 나서서 나쁜짓이란 나쁜짓을 다 저질렀다. 이자는 마안산밀영을 포위하고 항일련군 2군 정치부 주임 리학충과 부상병들을 살해했고 처창즈, 황니거우, 석문자, 호로계자, 투도구 홍륭 등지를 여러번 “토벌”하면서 무고한 백성과 항일투사들을 무수히 살해했다. 리도선부대가 지나가는 마을들에서는 무고한 백성들이 무리죽음을 당하게 되기에 안도지방사람들은 리도선을 “저승에서 보낸 악귀”라고 저주했다. 왜놈들의 특수훈련을 받은 이자들은 항일련군의 유격전술에 대해 익숙히 알고있었고 안도일대의 지형, 산세, 인심을 파악하고있었다.
불의의 습격을 계획하고 아군이 휴식하고있는 근처에까지 배밀이로 접근해온 적들은 30~40메터 사이두고 우리의 보초병에 의해 발견되였다. 보초병은 “적이다!”하고 큰소리로 웨치는 한편 방아쇠를 당겼다.
놈들은 아군에게 손쓸 틈을 주지 않으려고 일제히 사격을 가해왔다. 총소리에 놀라 깨여난 전사들은 재빨리 무기를 찾아들고 적들을 향해 맞불질을 했다. 정위 주수동이 적탄을 맞고 희생되였다. 사태는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 이때 항일련군의 유명한 기관총수 리경달이 벌떡 일어나 적들을 향해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뜻하지 않은 불벼락을 얻어맞은 놈들은 잠시 대가리를 땅에 틀어박고 전진을 멈추었다. 하여 아군은 어려운 순간에 귀중한 시간을 얻을수 있게 되었다. 그때를 최현은 회상기 《혁명의 한길에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대원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주위에 널려있는 금점구뎅이와 버럭더미로 분산하여 재빨리 전투태세를 갖추면서 맹렬한 반격을 가하였다. 쳐들어오던 적들은 적지 않은 시체를 남기고 얼마쯤 물러섰으나 더 물러설곳이 없는 것을 알자 결사적으로 대들었다.
적아간의 화력전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강안이 금시에 포연으로 자욱해졌다.
아군부대들은 버럭들과 구뎅이들을 리용하여 계속 사격하였다. 그리하여 적대렬에는 혼란이 조성되였다.
“2중대는 좌측으로. 1중대는 우측으로!”
이것은 불리하게 널려있는 안군진지를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구령에 의하여 부대성원들은 적탄이 우박치는 속에서도 대렬을 재정돈하게 되었다. 나는 계속 금점구뎅이에서 허리를 솟구쳤다. 낮추었다 하며 전투를 지휘하고있었다. 그런데 적 두놈이 내앞에 나타나 나를 쏘려고 겨누었다. 순간 나는 허리를 굽혔으나 적탄은 나의 어깨를 때렸다. 나는 부상을 당했지만 전투를 계속 지휘하였다.
전투개시후 거의 반시간이 지나갔다... 아군의 완강한 방어와 명중사격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바득바득 기여들었다. 그때까지만도 적들은 벌써 수십명이나 꺼꾸러졌지만 아군의 턱밑으로 배밀이를 하며 기여드는것이였다. 놈들도 퇴각을 하기만 하면 전멸당한다는 것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적아간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 이제는 20~30메터 지어는 약 10메터까지 된곳도 있었다.
그런데 놈들은 아직도 공세를 취하고 우리는 수세에 처하여있었다. 피동적인 수세에 오래 머물게 되면 필연코 아군부대에 만회할수 없는 불리한 정세가 닥쳐올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놈들에게 반공세를 취할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벌써 놈들도 구뎅이와 버럭밑으로 기여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투는 사실상 고착되고말았다. 놈들은 버럭을 몸가림삼고 혹은 구뎅이속에 대가리를 틀어박고 지구전을 시도하였다.
이제는 적들도 우리를 사격하기에 불리했고 우리도 역시 곤난하였다.
그런데 적들의 응원부대가 올 위험성이 있었다.
나는 이때 놈들에게 수류탄을 던질 것을 명령하였다. 우리의 수류탄들이 일제히 눈앞에 널려있는 적들의 음페지를 향해 날아갔다... 연거푸 안겨지는 수류탄불벼락을 받고 수많은 놈들이 비명을 울리며 쓰러지게 되자 남은 놈들이 뿔뿔이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돌격명령을 하였다. 우리 용사들은 도망치는 적들을 향하여 성난 사자와도 같이 함성을 울리며 돌격해나갔다...
아군은 혼비백산한 적들을 총창으로 찌르고 총탄으로 쓰러뜨리면서 5킬로메터나 추격, 일망타진해버렸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전사들은 “신선대”라고 불리우는 리도선의 악질부대와 싸운줄을 모르고있었다. 적들에게 짐군을 강제로 잡혀온 농민들의 말을 듣고서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
전장을 수색할 때 한 농민이 시체사이게 끼여있는 한 군관을 가리켰다. 놈은 아직도 목숨이 붙어있으면서도 짐짓 숨진체 가장하고있었다. 농민은 저놈이 리도선이라고 손짓과 눈짓으로 전사들에게 알려주었다. 누군가 달려가 발로 몇 번 차도 놈은 죽은체 꼼짝하지 않았다. 수색해보니 목에는 항상 걸고 다니는 금인형이 걸려있고 호주머니에는 도장이 들어있었다. 틀림없는 리도선이였다. 놈은 총알에 넓적다리를 맞아 도망칠래야 도망칠수 없게 되자 시체더미속에 죽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놈을 발견했던 농민은 꽁무니에 차고있던 도끼를 빼들었다. “윽”하는 소리와 함께 악질주구의 대가리가 땅우에서 딩굴었다. 짐군들은 모여들어 몽둥이와 돌로 그놈의 시체를 죽탕을 만들어놓았다.
그때 현소재지까지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도망쳐간 놈이 네놈인데 그놈들도 어떻게나 혼쌀이 났던지 당도하자마자 두놈은 그 자리에서 죽어자빠지고 한놈은 입원치료를 받다가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니 리도선부대에서 살아남은 놈은 단 한놈뿐인 것이다. 로진창전투는 리도선부대를 완전히 소멸해버림으로써 군사적인 면에서 뿐만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거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화광에 휩싸인 보천보
보천보 경찰관주재소의 포대.
천상수와 소덕수를 거쳐 5월중순경 지양개등판에 이른 6사는 압록강을 건너가서 적을 무찌르기 위해 대오정비와 여러 가지 선동사업을 벌리였다. 대원들에게는 승마복형태의 새 여름군복을 지급하였다.
새 군복차림으로 일신한 6사 장병들은 1937년 6월초, 19도구를 떠나 20도구, 21도구, 22도구를 거쳐 구시산이 지척에 바라보이곳에 와닿았다. 앞쪽의 등판이 제비등판이였는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곤장덕과 마주서있었다. 부대는 구시산마을에서 얼마간 머루르다가 제비등판에 올랐다.
6월 3일 새벽이였다. 조선의 높고낮은 산봉우리들이 키돋움을 하면서 6사전사들을 반기였다. 망국의 설음을 안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 총잡고 항일련군에 참가한 조선인전사들은 조선땅을 바라보면서 설레이는 가슴을 달랠수 없었다.
그날 부대는 제비등판에서 로독을 풀었다. 선발대원들은 구시물동에 가서 떼목다리를 마련하였다. 6월 3일 밤, 부대는 압록강을 건넜다. 적들이 몇겹으로 경계진을 치고있다는 삼엄하고 조밀한 국경경비선을 감쪽같이 건넜던 것이다. 구시물동은 소연한 물소리로 부대의 도하를 감싸주었다. 부대는 지체없이 곤장덕에 올랐다. 곤장덕은 울창한 수림으로 덮여있는 평평한 야산이였다. 여기서 부대는 보초를 세우고 하루밤을 숙영하였다.
다음날은 이른아침부터 곤장덕숲속에서 전투준비를 하였다. 포고, 삐라, 격문도 준비하고 지도부회의도 소집했다. 정찰원들을 농민으로 가장시켜 시내동정을 면밀히 정찰하게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곤장덕을 내리여 곧바로 보천보시가지에 들어선 부대는 여러 갈래로 나뉘여 소정된 위치를 차지했다. 부대가 어찌도 엄밀히 행동했는지 지휘처로 정한 근처의 농가앞마당에서 흥이 도도해 장기를 두고있던 농민들도 사정을 깜빡 모르고있었다.
“땅!”
정각 10시, 김일성은 전투개시를 알리는 신호총을 보천보의 밤하늘에 쏘아올렸다.
신호총소리와 함께 전사들은 맹렬한 사격으로 적기관들을 들수시였다. 먼저 온갖 폭압과 만행의 아성인 경찰관주재소에 주되는 타격이 안기여졌다. 삼림호구에 적들이 많이 모이게 되어있다는 정보에 기초하여 부대는 거기에도 드센 공격을 들이댔다. 순식간에 온 거리가 발칵 뒤집혔다.
얼마후 여기저기서 불길이 타래쳐오르기 시작했다. 면사무소, 우편국, 삼림보호구, 소방회관을 비롯한 여거래의 적통치기관들이 일시에 화염에 휩싸였다. 거리 전체가 여러개의 대형조명등을 설치한 무대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전투는 순식간에 승리로 끝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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