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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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장 적들의 심장속에 들어가.2
2014년 02월 20일 10시 24분  조회:2395  추천:0  작성자: 김철호


동녕 및 연변일대 소부대활동에서 특수한 공을 세운 려영준에게 1944년에 수여한 영예증서.


일본군차림으로  적구와 적 병영을 들락들락
놈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도 사경을 피해

 풀속에 엎디여 21시간

“1943년, 나는 또다시 새로운 임무를 맡고 로흑산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보중이 전문욱을 보내여 나와 함께 활동하도록 했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적들의 무력배치정황을 정찰하고 군사시설을 촬영해야 했습니다.”

로항일전사 려영준씨는 그때의 정경이 눈에 환히 떠오르는 모양이였다. 창가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로안이 유난히 빛났다.

려영준과 전문욱은 먼저 곰골비행장을 정찰했다. 산에서 망원경으로 내려다보니 활주로 옆에 비행기 6대가 있었다. 방수포를 씌워놓았기에 무슨 비행기인지 알수 없었다. 사면에 고정보초를 세워놓고 순라병이 몇분 간격으로 왔다갔다 하였기에 낮에는 근본 비행기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밤에 손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밤장막이 드리우기를 숨어서 기다리면서 적들의 동정을 살폈다. 순라병들은 창을 맞춘 총을 받들어 쥐고 규칙적으로 일정한 구간까지 왔다가는 돌아서군 했다. 돌아서서 가는 틈을 리용하면 될 것 같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두 사람은 살금살금 비행장에 접근했다. 적순찰병이 이쪽 비행기있는데까지 왔다가 저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두사람은 다람쥐마냥 날렵하게 방수포를 씌워놓은 비행기밑으로 숨어들었다. 비행기를 손으로 만져보니 그것은 나무로 만든 가짜비행기였다. 다음 비행기로 옮겨갔다. 이렇게 6대의 비행기를 다 손으로 만져보았다. 4대가 나무로 만든 가짜비행기였다.

마지막 비행기까지 다 정찰하고 방수포밑에서 나오려고 할 때였다. 검은 그림자가 얼뜰하고 나타났다. 적순라병이였다. 걸리기만 하면 물론 빠져나갈수 없는것이였다. 순발적으로 두사람은 잽싸게 방수포기슭으로 몸을 감싸면서 엎드렸다. 어찌도 민첩하게 행동했는지 바스락소리조차 없었다. 순찰병놈은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손전지로 방수포주위를 휙휙 비쳐보면서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불러대는것이였다. 순찰병의 발길밑에 엎디여 있는 두사람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채 숨을 딱 끊고있었다. 아무일 없자 순찰병은 저쪽으로 털썩털썩 걸아갔다. 놈의 뒤등을 바라보면서 두사람은 방수포를 살그머니 들고 다람쥐처럼 쏙 빠져나와 산길에 들어섰다.

지하아지트로 사용하고있는 범의 굴까지 오니 벌써 날이 환히 밝고있었다. 새벽이슬에 속옷까지 폭 젖어 물주머니가 된 두 사람은 부랴부랴 마른 옷을 갈아입고 새초를 깐 포근한 자리에 드러누웠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한낮이였다. 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개여있다.

“래일 날씨 어떨가?”
“오늘보다 좋을 것 같은데...”
“그럼 오늘밤에 적병영에 들어가 숨었다가 래일 낮에 사진을 찍을가?”
“거 좋겠군.”

두 사람은 이렇게 계획을 짠후 어슬녘에 사진기를 챙겨가지고 길을 떠났다. 일본군병영은 범의 굴에서 15킬로메터 떨어진 산간에 들어앉아 있었는데 가실철조망으로 둘레를 치고있었다. 철조망 안은 잡초가 무성했다. 철조망 밑으로 기여들어 간 두 사람은 병실정면 풀발속에 엎디였다. 모기떠들이 살판을 만났다고 마구 매달려 기승을 부렸다. 삽시에 얼굴이며 손발이 모기에게 물리여 투둘투둘해졌다. 벌레까지 기여들어 물어뜯는 통에 참아내기가 참으로 힘겨웠다. 움직이면 안되기에 입을 꽉 깨물고 모기와 벌레의 세례를 받아내야 했다. 그런데 모기나 벌레에게 물어뜯기우기보다 더 힘겨운 것이 갑자기 터져나오려 하는 기침이였다. 목이 간질간질해나면서 금방 “칵!”하고 소리가 나갈 것 같아 식은땀이 다 송골송골 돋았다. 이럴 때면 미리 준비해가지고 간 약담배를 약간 뜯어 입에 넣어야 했다. 그러면 기침은 신기하게도 목구멍에서 삭아버리는것이였다.

날이 홰창 밝았다. 호각소리가 귀청을 두드렸다. 병실에서 몰켜나오는 놈들의 구두징소리, 꽥꽤거리는 장교놈들의 돼지멕따는듯한 고함소리가 귀전에서 들렸다. 두 사람은 적들과 불과 100여메터 거리를 두고있었다. 풀 한 대만 흔들해도 놈들에게 들킬수도 있었다.

한낮이 되자 풀모자를 쓴 두 사람은 살며시 앉은 키는 늘구면서 사진기를 적병영, 군수품창고, 병원 등을 겨냥하고 사타를 찰칵찰칵 눌렀다. 원만히 사진을 찍은후 두 사람은 다시 풀속에 엎디였다. 이제부터는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야했다. 그것은 지루하기 그지없는 기다림이였다. 풀숲은 바람 한점 안주고 하늘은 사정없이 볕을 쏟아대기만 했다. 찌는 시루안에 들어앉은 듯 열기가 확확 안겨와 인차 땀벌창이 되고말았다. 게다가 벌레들이 갉아대고 파리들이 달려들어 일신은 마비상태에 빠지고말았다. 하루종일 물한모금 먹지 못하다나니 나중에 혀끝마저 바싹 말라 입을 제대로 벌릴수조차 없었다. 이런 속에서 꼬박 21시간 참아내야 했다.

드디여 날이 어두워졌다. 병영앞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보초서던 놈들도 진해빠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무토막처럼 둔해진 다리를 끌면서 무사히 귀로에 올랐다.

적들과 함께 밤을 새워

“1945년 5월, 나와 전문욱은 도문일대를 정찰하라는 임무를 맡고 또다시 국경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대황구 고개를 넘어 량수촌으로 간다는 것이 그만 길을 잘못들어 왕청의 십리평 뒤산에 떨어지고말았습니다.”

쏘련의 바르꼬브니짜에서 국경을 넘은 두 사람은 삼차하치기로 빠려들어갔다. 반령, 로야령 밑림속을 꿰고나가 대황구고개를 넘은후 곧추 량수로 떨어지려는 타산에서였다. 그런데 로야령(해발 1477메터)에서 그만 산발을 잘못 타는 통에 왕창같은 곳에 가서 떨어졌다. 살펴보니 십리평 뒤산이였다. 두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마주보고있는데 어데선가 인기척소리가 와작와작 났다. 허리를 날렵하게 낮추면서 바라보니 십리평골안을 누렇게 덮으면서 일본군들이 들어오고있었다. 왕청에 대한 정찰임무를 맡지는 않았지만 정찰병으로서 적들의 군사적움직임을 보고 피해서는 안되였다.

“우린 적들의 무력배치와 방어진지를 정찰할 행동계획을 짠후 십리평골안을 참빗질하면서 일본군방어진지를 정찰하고 왕청시가지에 내려가 시내전경까지 사진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신흥쪽으로 빠져서 삼도구남쪽 장골에 들어섰습니다. 장골은 석현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였지요.”

로항일전사 려영준은 시간, 지점 등을 아주 정확히 지적했다.

장골은 석현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였다. 철길을 따라 나가자면 가야하를 네 번이나 건너야 하는데 철교외에는 다리가 없어서 수레나 자동차는 다닐수 없었다. 그래서 놈들은 1943년부터 장골에다 방어진지를 건설하고 백성들이 이곳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일본군복차림이였기에 보초선을 넘어 10여킬로메터 되는 방어선을 무난히 통과할수 있었다. 놈들은 제편인가 하여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방어선을 넓게 치고 한바탕 해볼듯했지만 기실 속은 텅 비여있었다. 골짜기어구의 포진지에는 쇠붙이대포라곤 한문도 없었으며 모두가 장대기에 방수포를 씌운 가짜들이였다.

까울령에 다달은 두 사람은 모닥불을 지펴놓고 젖은 옷을 벗어 말리우면서 싸늘한 5월의 산속에서 하루 밤을 새웠다. 날이 희슥히 밝은후 옆을 둘어본 두사람은 초풍할 듯이 놀랐다. 게딱지같이 쳐놓은 일본군풍막이 여기저기 널려있지 않는가. 그제야 두사람은 적들의 “보호”속에서 하루밤을 새웠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안개가 산기슭에까지 내리덮혀있어 적들이 아직 기미를 차리지 못하고있었다. 안개속에을 헤치면서 두 정찰병은 번개마냥 산마루를 넘어섰다.

“그때 우린 매일 낮 12시면 꼭꼭 본부에 무전으로 련락했습니다. 무슨 군대이며 병력은 얼마이며 번호는 어떤가 하는 것을 잘 포착해야 했지요. 때론 한창 전보를 치느라 여념이 없는데 왜놈들이 달려들어 부랴부랴 안테나를 걷어갖고 도망치기도 했지요. 또 차림새가 일본사람같아서 백성들의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는데 백성들은 ‘요 일본놈들이 어느새 마우재(로씨야)말을 다 배웠네’하면서 증오의 눈길을 쏘기도 했지요. 아무튼 그날 우린 신기동뒤산까지 무사히 왔었죠.”

려영준은 이전에 도문에서 지하공작을 하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신기동 뒤산 바위있는데까지 내려갔다. 이 바위는 앞면은 절벽이고 뒷면은 까울령산줄기에 이어져있는 아주 기묘한 바위였다. 주봉뒤에 우묵한곳이 있는데 거기에 들어앉으면 누구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두사람은 그 웅뎅이에 은신하여 밤을 지어먹으면서 낮에는 주봉에 올라가 숨어 망원경으로 도문시내를 내려다보았다.

“10여년전에 삯나무군으로 가장하고 수레에 앉아 길가에 삐라를 늘이면서 지나가던 거리며 엿장사로 변장하고 현병대앞으로 지나가던 골목들을 손쉽게 찾아볼수가 있었습니다. 눈에 익은 거리였고 애수가 남아있는 시가지였지요.”

로항일전사 려영준씨는 책상우에 놓여져있는 망원경을 들어 보이면서 감개무량해 말했다.

“그때 5년동안의 정찰활동을 하면서 처음 창조해낸 방법 하나 있었습니다. 망원경을 사진기렌즈 앞에 고무줄로 동여매가지고 원거리목표를 눈앞에 당겨다 찍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도문 일대의 전경을 여러번 찍었습니다. 도문일대의 지형도도 완성했구요. 이런것들은 그후 쏘련홍군의 연변해방에 크나큰 도움을 주었지요.”

두 정찰병은 도문에 대한 지형정찰을 맞힌 후 날이 어두워지자 량수촌 뒤산을 넘어서 대황구쪽으로 갔다. 한번도 다녀본적 없는 익숙치 못한 곳인지라 밤길을 걷다가 길에서 좀 떨어진 수풀속에 들어가 잔다는 것이 그만 60여호 되는 집단부락앞에서 잤다. 날이 푸름해서야 상황을 안 두사람은 부랴부랴 산으로 올라갔으나 어느새 자위단놈들과 경찰대놈들의 추격에 들고말았다. 놈들은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서지 않으면 쏜다고 야단이였다.

두 정찰병은 산등으로 올라가다가 나무가 꽉 들어선곳에서 옆으로 비껴나갔다. 그런줄도 모르고 적들은 산마루로 곧추 올라갔다. 이렇게 하여 또 한번 위험한 고비를 넘기였다.

시퍼런 도끼 다섯 자루

두 정찰병은 하루종일 가다가 해질무렵에 좁은 골짜기에 들어섰다. 멏굽이 돌아서 골짜기막차기까지 올라가보니 산비탈에 귀틀집 한 채가 있어다. 나지막한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몰몰 피여오르고있었다. 두 사람은 숲속에 숨어서 한창 동정을 살폈다. 집안에서 한 늙은이가 나와 두리벙두리벙 사방을 살펴본후 땔나무를 안고 들어갔다.

해도 이미 서산에 곤드라진 뒤라 이 집에서 하루밤 묵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두 정찰병은 숲속에서 나와 주인장을 부르면서 문을 뚝 떼고 들어갔다. 집안은 단칸이였는데 아까 땔나무를 안고들어간 늙은이는 부엌바닥에 터버티고 앉아 새로판 함지안을 유리쪼각으로 다스리고있던참이였다. 늙은이는 흘끔거리면서 불청객들을 눈빗질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집안을 쓸어보았다. 시렁우에 대두병이 놓여있는데 그 속에 든 것이 아무래도 술인 듯 싶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 다섯자루가 늙은이가 앉아있는 벽뒤에 가지런히 세워져있었다. 혼자인가도 물으니 또 한사람이 있다고 했다. 량식가지러 마을로 내려갔는데 아마 래일 아침에나 올것이라고 했다. 하루밤 묵자고 하니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늙은이는 주인이 시키는대로 산속에 들어와 함지를 파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왔다.

“그런데 저 병에것은 무었입니까?”

“주인이 치성을 하라고 떠보낸 술이지유.”

늙은이는 술병을 슬쩍 쳐다보고나서 너스레를 떨었다. 저 술 한모금만 마시면 꿀잠을 잘것같았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불행은 항상 눈썹에서 떨어질수 있는것이니깐. 두 사람은 다시는 술병을 쳐다보지 않았다. 지루한 밤을 엇갈아 자면서 새웠다.

아침이 되자 다른 늙은이가 왔다. 그는 두 정찰병과 술병을 번갈아보더니 여기서 잔 손님들인가고 의아쩍게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니 머리를 살래살래 젖는것이였다. 원래 있던 늙은이가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지하공작원들 같은데 저 술 안 마시길 잘했수다. 사람잡는 술입죠. 저 령감쟁이는 놈들의 분부를 받고 여기 와서 함지를 파는체하면서 전문 사람잡이를 일삼습지유. 지하공작원들이 혹시 저 술을 마시고 취하면 저 도끼로 목을 칩니다유. 당신들 어제 밤에 술 마시기만 했더면 영락없이 도끼날밑의 귀신이 될번했슈다.”

두 사람은 등골이 서늘해났다. 늙다리는 악착한 특무였던 것이다.

“나에게도 젊은이들같은 아들이 있었는데 유격대에 간후 종무소식이외다. 놈들은 아들을 만나거든 귀순시키라고 여기에 보냈수다. 젊은이들을 보니 아들 본 것 같구만요. 그래 왜놈들 망하기는 망할란가우?”

“왜놈들이 오래잖으면 망합니다. 안쪽에서 모주석이 령도하는 팔로군이 나오고 뒤에서 쓰딸린이 령도하는 쏘련홍군이 나오면 왜놈들 꼼짝달싹 못하고 망할겁니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그나저나 저 늙다리가 일러바치러 간 것 같은데 빨리 자리를 뜨시우.”

두 정찰병은 로인님에게 허리굽혀 정중히 인사올린후 마굴을 벗어나 부랴부랴 수림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꼬박 닷새동안 산길을 걸어서 임무를 원만히 완수하고 무사히 본부로 돌아갔다.

“우리가 목숨을 내걸고 정찰하여 바친 정확한 정보가 있었기에 그후 대일전쟁에서 쏘련홍군은 손쉽게 왜놈들을 쳐부실수 있었지요.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채 산속 풀밭의 원혼이 되었는지 알수 없지요. 소분대활동은 동북전선에서 탁월한 역할을 했습니다. 소분대 대원들은 정말 광복을 위해 생명을 바쳐 세웠습니다.”

로항일전사 려영준씨의 자랑스러운 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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