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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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장 산해관 넘어 전국해방 전장으로 2
2014년 10월 09일 09시 54분  조회:2286  추천:1  작성자: 김철호

 
156사 남창보위임무 완수 족친부락무장 해제
422퇀 장강 뛰여넘어 중경해방전투서 용맹을

강서땅에서

1949년 6월하순, 강서일대는 장마비로 뒤덮였다. 강서성의 여섯갈래 큰강이 몰려드는 파양호의 수위는 3메터나 껑충 높아졌다. 호수주변의 수많은 촌락들과 논밭이 큰물에 잠겼고 교통이 단절되였다. 이런 기회를 리용하여 각지의 토비들은 제멋대로 행패를 부렸다.

강서성의 경비사로 남아 도시질서를 유지하고 공업생산을 회복시키는 일에 바삐 돌아치고있는 156사는 미처 농촌을 돌보지 못하고있었다. 하여 강남의 특징인 족친부락무장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런 무장은 말이 족친부락무장이지 실지는 지주들의 무장으로 지주들의 리익을 보호하고있었다. 그런데 몇십년간 계속되여내려오는 족친부락간의 싸움은 그 뿌리가 깊어 빈곤한 농민들은 족친부락무장을 자신들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담보로 알고있었다.

156사가 경비부대로 남창시에 들어간 것은 6월 2일이였다. 급선무는 발전소, 식량창고, 수도국과 기타 설비와 물자들이 특무와 패잔병들의 파괴를 받지 않도록 보위하며 공장들에서 생산을 회복하도록 동원조직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등 사업을 전개하는것이였다. 하지만 농촌의 형세가 긴장하게 되자 부득불 경비사의 대부분이 농촌으로 파견되지 않을수 없었다.

156사는 남창시에서 약 100킬로메터 떨어져 주위에 빙 둘러있는 정안, 여간, 청강, 무주 등 지역들에 네 개의 조선족영을 파견하였다. 후에는 또 466퇀, 467퇀 퇀부와 그 직속부대들까지 진출시키다보니 조선족 지휘원과 전투원들이 약 3000명이나 농촌을 완전히 해방하는 간고한 사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3영은 남창시에서 동남으로 약 100킬로메터 떨어져잇는 진현, 여간 두 현을 포함한 파양호남단과 륙지가 잇닿아있는 농촌으로 가게 되었다. 농촌에 내려온 3영은 전투대의 임무와의 선전대와 공작대의 임무까지 맡아야 했다. 그런데 가장 큰 애로는 언어문제였다. 북방한어를 대충 아는 조선족장병들은 남방사투리가 심한 이곳에서 거의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마찬가지였다. 식사도 큰 문제거리였다. 주식은 입쌀과 밀가루였는데 부식물은 물고기와 고구마뿐이였다. 매일 물고기를 먹자니 습관에 맞지 않았고 화식비도 초과되였다.

이런 특수정황을 분석하고 해결대책을 연구하였다. 우선 각 련을 애민공작대, 부업대, 전투대로 나누었다. 한어수준이 좀 높거나 문화수준이 높은 약 60%의 인원을 애민공작대로 무었다. 이들의 임무는 빈곤한 농민들의 농사일과 살림일을 방조하면서 그들의 지방사투리를 배워내는것이였다. 그 과정에서 군중과 밀접한 관계가 맺어지면 앞으로 진행할 선전대, 공작대의 사업에 효과가 클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약 10%의 인원으로 조직된 부업대에서는 물고기잡이, 석재캐기 부업을 하여 화식비초과문제를 해결하였다. 나머지 인원들로 전투대를 무어 담당구역에서 야간감시보초와 주간이동보초를 서면서 부락무장이 외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전사들이 농사일을 비롯한 모든 일을 방조해주면서도 밥 한끼 먹지 않고 엄격히 군중규률을 준수하자 한달도 못되여 농민들은 마음의 탕개를 풀어주었다. 언어도 차츰 익숙해져 군중관계가 더욱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농민들은 주동적으로 지주, 부농들의 동태를 보고하기도 했다.

부락의 빈곤한 농민들이 발동되자 부대에서는 인차 농회와 부녀회를 조직하고 기층정권을 건립할 준비로서 우선 감조감식을 실시하고 농촌의 계급을 획분하였다. 이렇게 되니 은페되여있던 계급모순이 포면화되면서 족친부락지간의 모순은 완화되기 시작했다.

조선족장병들의 끈질긴 노력과 뜨거운 애정에 감화된 군중들은 감추어두고있는 족친무장을 적발하기 시작했다. 하여 족친무장은 해제하게 되었고 토비들도 꼬리를 감추게 되었으며 족친지간의 장벽도 차차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강서지방은 드디여 우리 조선족장병들에 의해 진정한 해방을 맞게 되었다.

“멀지 않은 10월 1일에 새 중국이 창건되게 된다!”

이 소식은 156사 장병들에게 환희를 불러왔다. 9련의 영웅모범강연대회에서 시를 즐기는 지도원 최학송은 시적인 언어로 개막사를 올리기도 했다.

“심심산골 내고향 북간도를 떠나 넓고넓은 료서평원을 지나 천하 제일강산 만리장성을 넘어 40일간 광활한 대지를 씩씩하게 전진하였노라. 노호하는 장강을 건너 승승장구하여 우리 군대의 창건지인 이곳 남창에 조선족의 젊은이들이 찾아왔노라. 씩씩하게 발맞추어 이땅의 한식솔로 태연히 나타났더라. 이제 곧 새 중국이 탄생된다. 이것은 우리 조선족용사들의 오랜 념원이였노라. 우리 모두 새 중국의 탄생을 환호하자. 우리 모두 새 중국을 끝까지 지키기로 맹세하자!”

1949년 10월 1일, 남창시방송국은 거리에 확성기를 가설해놓고 남창시군정위원회, 정부, 각계, 각층에서는 “8.1”봉기를 일으켰던 광장(지금의 8.1광장)에 식장을 가설하고 새중국탄생기념활동을 하였다. 156사에서도 대표들이 대회에 참가하였고 나머지 대부분 전사들은 대회장을 보위하기 위해 남창시의 주요거리와 강가를 경비하였다.

확성기에서 “동방홍”노래소리가 오래동안 울렸다. 뒤이어 새 중국 국가로 된 “의용군행진곡”이 우렁차게 울렸다. 음악이 끝나자 모택동주석이 우렁찬 목소리로 “중국인민은 일떠섰다!”라고 전세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장엄하게 선고하였다.

확성기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나올 때 남창의 거리거리와 강가에서 경비를 서고있던 조선족전사들도, 남창광장에서 경축대회에 참가한 조선족전사들도 모두 가슴이 희열로 벅차올랐다. 환승환은 남창봉기광장상공에서 휘날리는 오성붉은기를 바라보면서 호매롭게 말했다.

“저 오성붉은기에는 우리 조선족전사들의 피도 슴배여있소! 우리 156사 조선족용사들의 피도 섞여있소!”

중경해방전투

절대다수가 조선족으로 구성된 중국인민해방군 제47군 141사 422퇀(원 연변의 길동1퇀의 후신)은 1949년 7월 20일에 장강도하작전에 참가하여 장강천험을 뛰여넘은후 호남성 부정현일대에서 국민당패잔병들을 숙청하고 사천쪽으로 진격하여 나갔다.

그러나 8월에 잡아들자 열대지방의 기후에 적응되지 않아 90%의 전사들이 학질과 리질로 앓아누었다. 지어 생명을 잃은 전사들마저 생겼다. 하지만 고추와 마늘을 즐겨먹는 관계로 조선족전사들은 저항력이 강했다.

병에 걸리지 않은 “행운아”들은 앞뒤로 뛰여다니면서 량식을 구해다가 죽을 쑤어주면서 환자들을 간호하였으며 하루에 몇 번씩 보초를 서군 하였다. 당지 백성들의 말에 의하면 항일전쟁시기 왜놈들은 의창을 강점한 뒤 학질과 리질에 걸려 무리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족들로 다수를 이룬 422퇀 전사들은 둬달 병마와 싸운후 거뜬히 일어섰다. 이들은 11월 7일부터 12월 2일까지 근 한달동안에 련속작전을 하여 백계장, 아봉관 전투에 참가하여 적군 63명을 살상하고 3913명을 포로하였으며 말 17필, 척탄통 13정, 60미리포 18문, 박격포 3문을 로획했다.

422퇀은 영순지구에 들어간후 제2야전군 제3병퇀 제139사와 협동작전하여 국민당의 마지작 소굴인 중경을 해방하는 간고한 전투를 벌리였다. 422퇀은 상, 악, 천 전역에서 처음부터 국민당 제15군 군장 송희렴의 부대를 추격하면서 험산준령을 넘었다.

비를 무릅쓰고 조두채에서 출발한 422퇀은 하루 낮과 밤을 험악한 산길을 톺게 되었다. 오르내리는 거리가 35킬로메터되는 백운산의 좁고 가파로운 길을 넘기란 여간 조련치 않았다. 경사가 17도나 되는 산길에 비까지 줄창 내리여 미끄럽기가 그지 없었다. 낮에는 지팽이를 짚고 밤에는 홰불을 들고 무인지경을 줄여나가야 했다. 지칠대로 지친데다가 등에 멘 짐이 비에 젖어 점점 무거워나고 짚신은 이미 닳아 떨어져 어떤 전사들은 언녕 맨발로 걷고있었다. 어떤 전사들은 걸을 수 없으니 아예 엎드려 기였다. 그러다보니 5킬로메터가량 되는 루인파의 내리막길을 4시간이나 걸었다. 행군도중 몇몇 전사들이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져 희생되기도 했다.

험한 산을 넘고나니 이번엔 강을 건널 일이 큰 문제였다. 세수하를 건널 때였다. 골물사태에 다리가 밀려가서 세수하를 건너려면 다리를 놓아야 했다. 그런데 갖은 고생을 다해 다리를 놓았으나 번마다 기세사나운 물에 밀려가군 하였다. 마지막에 림시다리를 가설하고 쪽배도 몇척 얻어왔다. 부대는 림시다리와 배를 리용하여 한번에 몇사람씩 강을 건너야 했는데 전 사가 세수하를 건너는데 이틀밤 이틀낮이나 걸렸다. 이렇게 갖은 애로를 전승하면서 38갈래나 되는 세수하를 건넜다.

부대는 팽주로부터 백마에 이르러 적과 싸운후 중취쪽으로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여 중취에서 국민당 15군 제64사 제191퇀과 치렬한 싸움을 벌려 일부 적들을 소멸하였다. 그런데 중경을 해방하는 길을 열려면 반드시 중취를 점령해야 했다.

11월 21일 오후 4시, 제3영 부영장 정용은 앞장에 서서 지휘하면서 비발치는 적탄을 뚫고 돌격하여 재빨리 중취를 점령하였다. 중취를 앗긴 적들은 중취서산으로 기여올라가 3영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영부에서는 서산의 적 화점을 까부시라는 나팔신호를 울렸다. 정용부영장은 계속 9련을 지휘하여 적화점을 향해 번개같이 돌격해올라갔다. 몇몇 전사들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정용부영장은 기포련에 신호를 보내 모든 60미리포, 박격포, 기관총으로 적 화점을 사격하라고 알렸다. 돌격나팔소리가 창공에 울려퍼지고 집중사격이 시작되였다. 9련전사들은 정용의 지휘하에 맹호같이 돌격해나가면서 적을 무찔렀다. 3시간 남짓이 진행된 전투에서 아군은 적 200여명을 살상하고 200여명을 포로했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출신인 정용부영장은 영광스럽게 희생되였다.

422퇀은 무사히 오강을 건너 계속 전진하였다. 그들은 우로구에 쳐들어가 적 일부를 포로하고 적정을 탐지하여 적들이 열래장에 주둔하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75킬로메터를 강행군하여 열래장을 불의에 기습하였다.

제1영 제2련에서는 감쪽같이 적 보초병을 요정내고 병영속에 뛰여들어 총 한방 쏘지 않고 달콤한 꿈나라에서 헤매이던 적 신편 제1군 제2사 부사장 이하 1000여명을 포로하였다. 422퇀은 계속 행군하여 중경에 도착한후 형제부대와 함께 중경시가지를 해방하는 전투에 뛰여들었다. 10여일간의 치렬한 시가전에서 422퇀의 조선족장병들은 무비의 용감성으로 영용히 싸워 11월 30일, 끝내 중경을 해방하였다.

중경해방전투에서 422퇀은 국민당군 7483명을 살상, 포로하였는데 그중 퇀급이상 군관이 19명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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