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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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장 산해관 넘어 전국해방 전장으로 3
2014년 11월 20일 16시 01분  조회:3920  추천:2  작성자: 김철호



조선족자제병들 팔면산서 토비와 접전 군중을 발동해 지혜롭게 토비굴 기습

422퇀 룡산으로 진격
중경을 해방한후 422퇀은 해방군총부로부터 고향인 동북에 돌아가 대생산건설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여 부대는 중경에서 배를 타고 장강의 물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런데 사천성 반현부두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도 악서, 리천현일대에 집결하라는 총부의 명령이 시달되였다.

422퇀은 즉시 출발하여 리천현소재지에 이르렀다. 알고보니 국민당패잔병, 지방악질분자, 토비 수천명이 상서 룡산지구 팔면산에 가려 하고 있었는데 이 한무리의 토비들을 숙청할 임무가 47군에 떨어진 것이다.

작전부서에 따라 주공임무를 담당한 제422퇀은  1950년 1월 3일 이른아침, 룡산을 향해 떠났다. 3일동안에 200킬로메터의 길을 강행군하여 5일에 룡산현소재지에 이르렀다. 퇀지휘원들은 우선 팔면산의 토비들의 움직임을 료해하려고 룡산현인민정부에 가 현장 손기력을 만났다. 손현장은 워낙 우리 주력부대가 한달전에 사천을 진공할 때 룡산현에서 당과 정부의 건설사업을 하도록 이곳에 남겨둔 동지였다. 퇀부에서는 손현장의 소개를 통해 팔면산토비들의 움직임을 알게 되었다.

사흥주를 두목으로 하는 토비들은 팔면산에 둥지를 틀고앉아 룡산의 다른 토비두목인 구백릉, 구파평 형제패와 이미 20여년을 날카롭게 맞서 룡산을 남북으로 나누어 차지하고 할거국면을 이루고있었다. 사홍주란 놈은 악착하기 그지없는자였는데 첩을 일곱씩이나 두고도 예쁜 처녀나 색시들을 보기만 하면 강제로 끌어가군 했다. 이자에게 강간당한 여자들과 비참하게 살해된 사람이 얼마인지 몰랐다. 이자는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아편을 팔아 무장을 사들이기도 했다. 송희렴은 상서토비무장에 “희망”을 걸고 사흥주에게 소장급 사장벼슬을 주었다.

422퇀은 룡산에 이틀동안 휴식하면서 사상동원, 식량준비, 적정료해, 행군로선선택 등을 주밀하게 했다. 적아의 력량대비를 보면 아군은 2000여명, 토비는 5000여명으로서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싸워야 했으며 싸워서 꼭 이겨야 했다.

1950년 1월 8일 새벽, 아군은 룡산을 출발했다. 리야, 팔면산까지는 100킬로메터, 직선으로 가지 않고 초두채에서 내계붕방향으로 그리고 또 락탑계, 세차하, 모아탄, 룡두방향으로 에돌아 전진하였다. 적들로 하여금 해방군이 리야를 차지 않고 보청으로 가는줄로 믿게 하려는 기만전술이였다. 부대는 강행군하여 룡두에 도착한후 백성들속에 들어가 보청으로 가는 길을 물어 짐짓 그곳으로 가려는것처럼 여론을 퍼뜨렸다.

오후 4시, 정파퇀장은 제1영을 이끌고 리야를 습격하러 나섰다가 리야진근처 약 1킬로메터 떨어진곳에서 한무리의 토비들과 조우전을 벌리게 되었다. 토비들은 처음엔 아주 완고했으나 아군의 기관총사격과 포사격에 눌리워 황망히 리야진으로 도망쳐들어갔다.

퇀부에서는 우선 리야진북쪽 산을 점령하라고 명령하였다. 유수하남안으로 진격하던 3영도 총소리를 듣고 재빨리 도하하여 그곳에 이르렀다. 아군은 리야진 북산의 제일 높은 고지를 점령하고 토비무리를 포격하여 놈들이 팔면산으로 도망쳐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토비두목 사흥주는 다른 토비두목들과 함께 리야진에서 술판을 벌리고 질탕 먹고마셔대면서 “공산군주력이 중경에서 팔면산을 공격하자면 적어도 10일 혹은 반달이 걸려야 한다”고 떠벌리고있었다.

“15년전 하룡, 소극의 부대가 우리 룡산을 포위한적 있었지. 그러나 나를 잡지 못해거든. 그런데 강서에 있는 고까짓 공산군이 다 뭐냐!”

사흥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밖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렸다. 희떱게 소리치던 사흥주는 정황을 알아보려고 황망히 진교로 나갔다가 불의의 습격만 당하고 진으로 돌아와보니 다른 두목들은 진자현만 남겨놓고 벌써 팔면산으로 도망쳐버리고 없었다. 사흥주는 부관에게 노래 두 마리를 끌어오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노새는 아군의 포소리에 놀라 달아나버리고말았다. 황급히 밖에 나온 사흥주는 졸개놈의 말을 빼앗아 타고 허겁지겁 팔면산으로 달아났다.

422퇀은 지친데다가 지형까지 익숙하지 못해 그날은 더 추격하지 않고 리야진에 주둔한 뒤 사부의 명령을 기다렸다. 사의 정찰과장이 아군에게 투항한 원 국민당 영순지구의 전원 섭붕승을 데리고 와 전파퇀장에게 팔면산의 지형을 소개하게 했다.

팔면산은 룡산현남부와 사천동부의 유양현사이에 있는 호남, 사천, 호북 3개 성 경계지대로서 높이가 해발 1400메터나 되고 길이가 45킬로메터나 되는 아주 험악한 산이였다. 산은 사면팔방이 험한 낭떠러지,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졌으며 산허리에는 소문난 연지동, 뢰풍동, 로동 등 크고작은 동굴이 많아서 실로 천연적인 지하보루였다. 산꼭대기로 통하는 네갈래 오솔길은 모두가 울퉁불퉁한 돌길이였다. 토비들은 멜대광주리를 메고도 나는 듯이 오르내리지만 지형에 생소한 아군전사들은 바라보는것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나서 기여다닐 지경이였다. 토비들은 이런 험난한 길에다가 또 갑문, 가시목문, 또치까까지 설치했고 대량의 토막나무무지와 돌무지를 쌓아놓고있었다.

1월 18일 아침 5시 정각, 팔면산에 대한 총공격의 포성이 울렸다. 아군은 정파퇀장의 지휘하에 제2영은 대암문으로 제1영은 소암문으로 동시에 공격을 들이댔다. 두곳은 모두 70~80도의 강파로운 절벽이였는데 산우의 길에 있는 세 개의 가시목문우에다는 소방울까지 달아놓았고 또 가시목문 량켠에는 또치까를 구축해놓았다. 가시목문을 다쳐 소방울소리가 나면 인차 또치까에서 총을 쏘고 토막나무와 바위돌을 내리굴렸다. 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아군은 몇 번의 돌격에서 모두 실패하고말았다.

군중속에서 길잡이를 찾아내 재차 진공하자는 방안을 세운후 많은 전사들이 군중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곳의 대부분 군중들은 자녀와 친척들을 산우에 두고있는 형편이라 산우의 정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도리여 해방군의 모든 행동을 토비들에게 알려주었다. 전사들이 공산당의 정책을 선전하고 실제행동으로 군중을 도와주어서야 군중들은 차츰 해방군을 믿게 되었다. 토비들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있던 일부 군중들은 자진하여 팔면산의 길안내로 나섰다.

팔면산을 지혜롭게 탈취
1월 20일 새벽 3시, 팔면산에 대한 공격을 재차 벌리였다. 돌격임무를 맡은 양보재련장은 퇀장의 명령에 따라 련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세사람의 길안내를 따라 바줄이며 줄사다리며 갈구리 등을 지니고 대소암문사이에 있는 이가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이르렀다. 마을뒤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걷노라니 안개속에서 기암절벽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팔면산으로 오르는 첫머리였다.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진 길잡이 팽오보가 허리에 줄사다리를 차고 어깨에 바줄을 멘후 절벽우의 한그루의 소나무를 겨냥해 손에 쥔 갈구리를 울리 던졌다. 갈구리가 소나무에 가 면바로 걸리자 힘주어 잡아당겨 든든히 자리잡게 한후 팽오보는 휙 몸을 날려 10여메터의 절벽을 눈깜짝할새에 톺아올랐다. 팽오보는 나무에다 줄사다리 한끝을 단단히 메놓고 다른 한끝을 절벽아래로 내리던져 전사들이 타고오르게 했다. 이렇게 그가 줄사다리를 놓으면 전사들이 타고 오르고 하여 두시간이 되나마나해서 100여명의 전사들이 팔면산에 오를수 있었다.

양보재가 신호총 세발을 발사하자 인차 포성이 울리고 기관총소리가 울렸다. 이는 토비들의 줄의력을 딴데 돌리고 돌격련을 엄호하기 위한것이였다.

3패는 다른 두 길안내의 인도를 받아 대암문공격에 나섰고 1,2패는 팽오보의 안내를 받으면서 소암문으로 접근해들어갔다. 날이 이미 밝고 있었다. 소암문을 지키는 100명가량의 토비무리가 우등불곁에 모여 불쬐임을 하다가 총소리와 고함소리에 놀라 나무와 바위돌을 마구 굴려내렸다. 나무와 돌들이 굴러내리는 소리가 산사태가 터지는것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총을 바치면 죽이지 않는다!”

산아래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요란할 때 산우에서 갑자기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울렸다. 10여명의 적들이 총소리와 함께 나자빠졌다.

“공산군이다! 빨리 도망쳐라!”

토비들이 질겁하여 뒤돌아섰지만 양련장이 거느린 두 개 패가 덮쳐들어가면서 한명도 놓치지 않고 몽땅 생포해버렸다. 대암문을 지키던 토비들도 아군 돌격패의 불의의 습격에 어쩌지 못하고 투항하고말았다.

주력부대는 산에 오른후 련을 단위로 수색전을 벌리였다. 조련장은 즉시 제5련을 거느리고 연자동에 이르러 전투대형을 지어 연자동을 포위하고 굴안의 동정을 살폈다.

연자동에는 네 개의 동굴이 한일자로 나란히 뚫려져있는데 굴과 굴사이는 약 10메터 되었다. 그리고 굴아에는 첫굴로부터 네 번째 굴까지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사흥주의 사령부와 후군부는 네 번째 굴안에 있었다. 가장 특이한 굴은 세 번째 굴이였다. 굴안에 들어간 다음 한구간의 내리막을 내려가면 수백명을 용납할수 있는 “대청”이 있고 그 주위에는 오불꼬불한 골목길이 있으며 대청청에 가득 널려있는 석주, 석순, 석화는 천연적인 엄페물로 되고있었다. 굴안에는 또 사천으로 통하는 비밀도로도 있었다. 실로 혼자서 “만인을 대적할수 있는 요충지”였다.

오후 5시, 수색하러 나갔던 부대가 모두 연자봉에 집결하여 연자동을 물샐틈없이 겹겹이 포위한후 정치공세로 사흥주를 투항시켜 보려 하였다. 그러나 사흥주는 투항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졌다. 연자동안의 컴컴한 굴안에서 기관총사격을 하기도 하고 보총사격을 하기도 하던 토비들중 담큰한 작자가 굴어구에 나서서 큰소리를 질러댔다.

“공산군들은 들어라. 여기는 어르신님들이 계시는 ‘작은 대만’이네라. 신선도 쳐돌라오지 못하는데 너희들이 다 뭐냐!”

그러자 다른 토비가 나서서 악독하게 웨쳐댔다.

“올라오려면 어서 올라오너라! 술도 있고 고기도 있으니 어르신께서 초대하련다. 그리고 계집들도 붙여주마!”

토비들의 조롱에 참지 못한 전사들은 명중탄을 안겨 그놈들을 쏴놉혔다. 악다구니질하던 놈들은 벼랑에 굴러떨어졌다.

정퇀장의 명령에 의해 산포가 불을 토했다. 연자동 굴 어구마다에 포탄이 날아가터졌다. 토비놈들은 포탄터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아이쿠!”“아야!”하고 법석을 대다가 한창 지나니 죽은 듯 고요해졌다.

이튿날 동틀 무렵, 연자동에서 나온 토비 한놈을 붙들어다 심문하니 그놈은 사흥주가 굴안에 없다고 했다. 자정이 지나서부터 어둠을 빌어 굴에다 바줄을 매 절벽에 드리우고는 그것을 타고 굴아래로 도망쳤다는것이였다.

3련과 5련은 즉시 연자동산마루를 점령하고 폭파약으로 연자동중심문을 폭파하였다. 그러자 산중턱에 대기하고있던 두 개 패 전사들이 제꺽 신을 벗어 휘발유를 쳐 홰불을 만들어 들고 굴안으로 들어갔다. 굴안을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대부분 토비들은 굴안의 삼면에 낸 출구로 도망치고 남아있는 놈은 얼마 안되였는데 바닥에 20여명의 토비시체가 널려있었다. 굴안에서 아군은 무전기 1대, 수십자루의 보총, 10만여근의 량식, 대량의 천과 의복, 아편, 소금, 기름 등을 들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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