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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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도라지> 제4기에 발표된 시8수
2015년 09월 18일 16시 59분  조회:1705  추천:2  작성자: 김철호
고궁(외7수)

김철호
 
해시계의 음특한 그림자가
몸을 뻗어 담장에 기여오른다
굵고 주름 깊은 고목이 
나이테에 묶여 숨을 헐떡인다
개미떼들이 백두봉을 지고왔다
개미떼들이 고비사막 날라왔다
붉은 물결
붉은 구호
발자국에 고인 붉은 구토물의 납함(吶喊)
천년을 살아 피를 먹은 거인
쿵쿵쿵
쿵쿵쿵
걷는다
 
광장엔 황금의 금자탑이 있다
 
걷는다
쿵쿵쿵
쿵쿵쿵
만년후에도 살질 거인
...
  
설레임.1
 
18층 빌딩에서 커다란 새 한마리가 뛰여내린다
콩크리트바닥과 만나 춤추는 피아노파편들
 
명예란 공중루각이라고 소리친다
 
자판기 우에서 혈흔들이 날뛴다
불바람이 어슬렁거린다
스마폰이 사람들 얼굴을 뭉청뭉청 뜯어먹는다
머리없는 그림자들이 활처럼 휘여져있다
 
검은 새, 흰 새들이 서로를 찾아 부르짖고
암수들이 부둥켜 안는다
 
콩크리바닥에서 피아노가 환생했다
 
피아니스트는 칠십년 묵은 할망구다
흰 머리카락들이 강선(鋼線)이 되여 땡땡 소리친다
음악이 나봐라 얼굴 내밀었다가
너 죽는다 주먹질이다
 
석간신문이 벽돌장이 되여
웃는 얼굴에 날아가 박힌다
 
독자는 한명도 없다
 

설레임.2
 
산은 파도를 멈추었다
산은 출렁이기를 그만두었다
 
황혼이 아닌데
벌써 어둠이 태머리를 땋고있다
 
찢어진 기와
물구나무선 미소
만족한 빛
도망친 숨…
 
산위에 산이요 산밑에 산이다
야ㅡ호!
 
백두의 큰 잔으로 동해물 푹 떠 음부(音符)에 뿌렸다
 
먼지 낀 먼지가 빛속으로 사라지다
우주를 삼킨 우주가 점속으로 들어가다
 
 
바다
 
붉은 재채기 슬프다
말라버린 숨 하늘에 어둡고
덮쳐오는 고함 검푸르다
길고 긴 그림자 물에 꽂혀서
뿔뿔히 도망치는 비늘을 꿰인다
일몰은 죽음이 아니다
서서히 오는 탄생은 어둠
새로운 생명이 숨어있다
    
 
 
뇌출혈.1
 
기적소리 들린다
환승(換乘)
탈선한 렬차
시골에서 불던 바람 도시로 왔다
눈빛이 깊다
투명해진 사유는 더 려과될것 없다
파도의 섬모(纖毛)
두꺼운 기억
길 잃은 날개
각도가 삐뚤어진 명(明)
새로운 바다
ㅡ바람아, 미안하다
먼 곳에서 걸어오는 목소리
시간의 멀미가 멈추려나봐
탄생은 아픈것이다
 
뇌출혈.2
 
이 한수의 시를 위해
태풍은
먼 바다서 찾아왔다
 
살점을 뜯는 바람
 
밤바다는 더욱 크게 운다
돌아갈 길 필요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 수평선 너머에 있고
시는 덜미를 쥔채 쓰러져 운다
웃는다
 
설(雪)
ㅡ시라는 괴물
 
은혜같던 초설(初雪)
뼈다귀가 생기고
살이 붙고
피가 돌고
하더니
 
나무가지 꺾는다
길을 막는다
지붕을 허문다
바람과 동무해
하늘을 끌어내린다
 
입김으로 씻은
창 안의 순한 눈(眼)들
폭력에 놀라 잃은 평화…
 
 
일기
 
숨소리는 속으로 흐른다
생명은 공간에서 만나 서로를 끌어안는다
 
“불타는 어제가 되돌아온대도
력사는 다시 쓸수 없다네
승자가 없는 영광 부끄럽다네”
맹인가수가 노래한다
 
한자 깊이의 땅속에서 
녹쓴 철갑모들이
해볕보기 싫다면서 삽질을 멈추라고 눈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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