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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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사상과 령혼의 화려한 불꽃놀이, 그리고 점점 무르익어가는 김철호주의(허인)
2015년 09월 18일 17시 02분  조회:1635  추천:3  작성자: 김철호
비평/허인
 
사상과 령혼의 화려한 불꽃놀이, 그리고 점점 무르익어가는 김철호주의
 
시가 아프다. 우리 시대의 시가 이래저래 여러모로 너무나도 아프다.
그런데 이러한 병페적인 시들의 치유를 목적으로 근근히 짧디짧은 몇년사이 파격적인 화려한 변신을 륙속 꿈꿔왔고 또한 근래에 보기 드문 성과를 이룩한 시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철호시인님이시다. 또한 김철호시인만큼 적극적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해왔고 또한 그 거창한 행로에 걸맞게 주렁주렁한 성과를 이룩한 시인은 극히 드문줄로 안다.
시에서의 화려한 변신이나 파격적인 변화를 두고서 평론가들은 한단계 더 높여 흔히
도약, 혹은 비약이 크다거나 의경(意境)이 새롭다고 표현한다.
필자가 보건대 시의 핵심은 이제 더는 조촐한 이미지와 이미지즘의 강박적인 조합, 구조주의적인 서두, 발전, 내용, 결과 등 그 따분한 의경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폭넓게 령혼과 사상, 더 나아가서는 확고한 리념과 개인주의(主義)적인 품격과 풍격, 관용과 포용에 있는듯 하다. 시체에 아무리 좋은 수의를 입혀봐야 결국 시체이듯이 시에서의 시인의 언행은 곧바로 그 시인의 풍격이 되기도 한다. 겉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사상이 없는 시들은 결국 시체에 불과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여기서 김철호시인님의 주옥같은 근작시 8수를 조심스레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창발적 경향의 한 특징
 
지금까지 우리의 시들은 단일성, 동일성의 원리에만 의존하여 구성되여 왔다.
현재의 시들도 대부분이 그러하다. 이를테면 꽃이면 꽃, 들이면 들, 별이면 별, 즉 대상, 주제, 내용, 정서 등등 모두가 동일성 원리에 의거하여 발상되여 왔었고 효과면에서도 지나치게 단일성을 강조해온것이다. 헌데 여기서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창발적 경향의 한 특징과 불쑥 맞닥뜨리게 되며 킨넬이 말했듯이 “계속해서 깊이깊이 파고들어가노라면 너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며 하나의 동물일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더욱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노라면 너는 아예 풀잎이거나 한그루의 나무일수도 있을것이다…”와 같이 심상(心相)시에서의 의식과 무의식을 훌쩍 뛰여넘어 너무나도 자연스레 자연과 결부시켜 새롭게 령혼과 사상을 탄생시키려 하는 하나의 개인주의 표현방식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렇다고 인간적인것을 굳이 무너뜨리려는것이 아니다.
“해시계의 음특한 그림자가/몸을 뻗어 담장에 기여오른다”에서 쉽게 살펴볼수 있는것이 곧바로 한점의 오차도 용허치 않는 해시계의 작용이다. 시제가 “고궁”이고 보니 눈앞에 자연스레 펼쳐지는 첫번째 그림이 곧바로 이제는 해 질 무렵 높다란 담장을 슬금슬금 기여오르려고 아득바득 몸부림치는, 아직은 가물가물한 어느 조그마한 그늘의 작은 모습이다. 그 그늘이 있었기에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고궁의 모습은 더욱 고색찬연한것이 아닐가싶다. 다음 “굵고 주름 깊은 고목이 나이테에 묶여 숨을 헐떡인다”에서 어느사이 “담장”에서 “고목”으로 모습이 뒤바뀐 고궁의 모습은 이제 아름찬 나이테에 저절로 숨이 차 헐떡이기도 한다. 허나 그 모습은 비참한 결과가 아니라 어딘가 긍지에 찬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듯 거창하고 주렁진 성과들은 어디에서 오게 됐을가? “개미떼들이 백두봉을 지고왔다/개미떼들이 고비사막 날라왔다”에서와 “붉은 물결/붉은 구호”에서 눈여겨 살펴볼수 있다싶이 이 세상 한낱 미물인 개미떼들마저 어기영차 어김없이 이곳으로 지고온 그 백두봉과 고비사막에서 현란하게 눈이 부신 력사의 한 장면을 백문의 불여일견이라고 피부로 직접 부딪치고 엿볼수 있도록 시인은 배려심으로 설정해놓은듯 싶다. 이러한 배려심이  있었기에 “발자국에 고인 붉은 구토물의 납함/천년을 살아 피를 먹은 거인”에서 발자국에 고인 력사는 구토물마저 결국 붉은색일수밖에 없으며 또한 아우성도 아닌 이 세상의 납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더욱 뚜렷하게 상징시킨듯싶다. 그렇게 오랜 세월 밝고 조금 어눌한 그늘속에서 싱싱한 피를 꿀꺽꿀꺽 삼켜가며 배불리 먹고 천년을 살아온 “거인”이였기에 “쿵쿵쿵/쿵쿵쿵/걷는다//광장엔 황금의 금자탑이 있다//걷는다/쿵쿵쿵/쿵쿵쿵/만년후에도 살질 거인”이며, 또한 여기에서는 다선을 목적으로 단순한 한두개의 이미지나 이미지즘의 라렬이 아니라 특정된 한 사물에 공간과 시공(時空)을 아예 훌쩍 뛰여넘으려는 풍격, 품격, 인격, 그리고 사상, 력사, 언행, 령혼을 시인이 재치있는 솜씨로 아낌없이 투영시켜놓은듯싶다.
이 시는 사상과 령혼의 화려한 불꽃놀이, 그리고 점차 무르익어가는 김철호주의가 뚜렷이 한눈에 잘 엿보여 마치 한편의 방대한 시리즈를 읽는듯하여 저도 몰래 감탄을 련발하게 된다.
포스트모던시 가운데서 가장 많은 론의가 이루어졌던것이 곧바로 고백시이다. 뢰트기, 로월, 프라스, 섹스톤, 베리만 등이 모더니즘의 전통을 무너뜨렸던것은 브레슬린이 지적한대로 “예술이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의 상징적, 신화적, 추상적인 질서들을 추구하는 미학을 버려야 했기때문이다.”
김철호시인의 시는 자기 패러디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라는 점에서 상징주의 시와는 확연히 중요한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 아래에서 감성과 리성, 의식과 무의식중의 발로에서 김철호시인은 어느 곳에 더욱 비중을 두었는지 우리 다 함께 “바다”, “설(雪)”, “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 시들의 공통점은 시인 자체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더욱 세심한 관찰을 통하여 조준이 된 랭철한 사유 끝에 명중이 된 가장 인간적인 즉 인격적인 근로한 사상을 부여시켜 그 공명감이 더욱 큰듯싶다.
“바다”의 경우 “일몰은 죽음이 아니다/서서히 오는 탄생은 어둠/새로운 생명이 숨어있다”에서 시인은 어쩌면 예언에 가까운 미래 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의 지혜로운 자세로 포용의 자세를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설”의 경우 “은혜같았던 초설(初雪) /뼈다귀가 생기고/살이 붙고/피가 돌고/하더니”에서도 슬그머니 인격화를 완성시켜 놓았으며 “일기”의 경우 “한자깊이의 땅속에서/녹쓴 철갑모들이/해볕 보기 싫다면서/삽질을 멈추라고 눈짓한다”로 인간 대 인간, 인격 대 인격이라는 사상으로 소통을 시도하려고 하는 지혜가 엿보이기도 한다.
이 시들은 한수한수가 모두 걸작이며 또한 이 세상 그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한점의 부끄럼없는 훌륭한 우수작품이 틀림없다.
 
자체에 대한 우울한 반항과 기술복제적 인간에 대한 자각
 
이번에 발표된 김철호시인의 대부분 시들은 시에서의 새로운 문법을 라침판처럼 뚜렷하게 보여주는듯싶다.
여기서 필자는 간단히 문법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히 문법의 범주로만 끝나는것이 아니다. 즉 리성보다는 본능, 질서보다는 충동,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찬연한 그 세계,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전통적인 시문법을 사정없이 파괴함으로써 시인이 노리는것은 과연 무엇일가?
시인은 시의 화자의 피줄에 와닿는 초감각적인 리성적인 세계에 의식과 무의식으로 피와 살, 령혼을 불어넣고 지혜롭게 노래하고있는듯싶다. 그러한 시니피앙들은 읽는이들 마음속의 커다란 흔들림과 함께, 어쩌면 뼈속까지 오싹오싹해날 정도의 크나큰 공명감과 함께 공감속의 그 짜릿짜릿한 전률들을 독자들에게 핫이슈로 선물하고있는듯싶다.
시니피앙이란 무엇인가? 소쉬르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언어기호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즉 흔히 말하는 소리심상이나 기표이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개념, 혹은 기의)는 마치 동전의 앞뒤 관계처럼 짝을 이루면서 존재하는것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서나 시인의 사상의식은 항상 미래지향적이였으며 드레시(漂亮, 幽雅)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들을 창출, 랜덤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부묘사에서 드라이브코스(自駕游線路)를 스스로 구축해왔다.
더우기 새로운 언어조합속에서의 자률은 지극히 러브시(示好)한 이률배반속에서도 걸작(杰作)과 함께 항상 개혁이 동일시되여 왔었다는것을 누구나 쉬베 알수가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행보는 오늘도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으며 또한 과감한 개혁의 리론과 그 기능을 불러오는 중요한 단서가 곧바로 시인의 더없이 정확한 의사전달로서 맨트(話語, 臺詞)가 필요없는 기획적인 자아도전과 저돌적인 돌파, 즉 새로운 시어창출과 함께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여러모로 독자들앞에서 검증받아야 하는 그런 데스트가 아닐가.
어쩌면 련작시의 서두이고 시작일지도 모르는 “설레임 1, 2”를 읽고나면 하이퍼시의 방향인 현실과 초월을 불쑥 머리속에 떠올리게 되며 데리다의 해체개념 가운데서 “모든 언어기호는 공간적대립과 시간적지연이라는 특성을 나타내기때문에 결국 현존이 아니라 흔적으로만 인식된다”는 그 말이 떠오른다.
“설레임 1”의 “18층 빌딩에서/커다란 새 한마리가 뛰여내린다/콩크리트바닥과 만나 춤추는 피아노파편들” 중에서 “새”와 “피아노파편들”은 언어기호학적인 척도에서 살펴보면 마음의 흔적들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18층 빌딩”이라는 특정된 장소와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인격화를 완성하여 “명예란 공중루각이라고 소리친다”로 그 사상을 납함할수 있었던것 같다. 다음 “자판기우에서 혈흔들이 날뛴다/불바람이 어슬렁거린다/스마트폰이 사람들 얼굴을/뭉청뭉청 뜯어먹는다/머리 없는 그림자들이 활처럼 휘여졌다”에서 볼수 있는것은 그 어떤 외계인이나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곧바로 과거와 현실을 외계인이나 괴물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의 실제 모습들이며 결국 삶의 울타리는 너무 좁아 “검은 새, 흰새들이 서로를 찾아 부르짖고”로 부딪치고 부대끼며 가끔 아우성치더라도 흩어지면 죽고 모여야만 살수 있음을 설파한듯 하다.
“설레임 2” 역시 같은 도리로 “찢어진 기와”를 “물구나무 선 미소”로 인격화하면서 진보적인 사상, 즉 “만족한 빛/도망친 숨…”으로부터 민족적인 색채가 다분한 “백두의 큰 잔으로/동해물 푹 떠 음부(音符)에 뿌렸다”를 견인해내였으며 “먼지 낀 먼지가 빛속으로 사라지다/우주를 삼킨 우주가 점속으로 들어가다”로 세상사는 새옹지마와 같은것이며 우주마저도 작다면 결국 한개 점에 불과한것이다는 시인의 높은 경지를 종교도 철학도 아닌 사상과 령혼으로 지혜롭게 드러낸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정석으로, 또한 기초로 하여 단단히 밟고 더욱 높이 올라서려고 하는 기획적인 발전이지 결코 지극히 이률배반적이지는 않다는것이다. 그럼 우리 함께 김철호시인은 링크와 내트워크구축으로 어떻게 이미지즘을 완성해 가고있는가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뇌출혈 1”의 경우 “기적소리 들린다”는 환각장애인들의 병적인 심호흡을 간결함의 극치, 즉 기적소리로 표현하여 그 묘미를 더해주고있으며 “환승/탈선한 렬차/시골에서 불던 바람 도시로 왔다”로 더이상 안전지대가 없음을 하이브리드로 집결시킨듯 하다. “눈빛이 깊다/투명한 사유는 더 려과될것 없다”에서 살펴볼수 있는것은 삶의 우수(優愁)이다.
“뇌출현 2” 역시 기적소리가 한수의 시로 바뀌였을뿐 의식과 무의식만이 아닌 감각, 초감각적으로 령혼이 부르는대로 따라 읽노라면 리해하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을줄로 알고있다. 한수의 시로부터 시작하여 바람, 바다, 암수, 콩크리트, 피아노, 할망구, “흰머리카락들이 강선이 되여/땡땡 소리친다/음악이 나봐라 얼굴 내밀었다가/너 죽는다 주먹질이다”, “석간신문이 벽돌장이 되여/웃는 얼굴에 가 박힌다” 등은 기막힌 표현들이며 결구에서 “독자는 한명도 없다” 역시 시제 뇌출혈과 미묘한 입맞춤을 하면서 싱싱한 사람이라면 마주서기가 아연해지도록 머쓱하게 하였다.
시행은 박자와 강약의 음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시인의 숨결로 이루어진다. 즉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 약동하는 생명의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무리하면서
 
이상으로 살펴본 김철호시인의 근작시 8수에서는 포스트모더니스트다운 시인의 더욱 적극적이고 더욱 화고해진 창작자세와 점점 맑은 령혼속에서 사상으로 무르익어가는 시인의 새로운 풍격, 품격, 그리고 아주 깔끔하게 새롭게 완성이 된 김철호주의의 피와 살, 얼과 넋이 하아얀 뼈짬으로 시퍼런 소금처럼 뚜렷이 보여줘 읽는이들로 하여금 더욱 감탄을 련발켜 하는듯싶다.
포스트모도니즘은 모더니즘을 부정하는것도 그렇다고 계승하는것도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비판한다는 모순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끝으로 김철호시인은 새로운 한해 더욱 큰 정진이 있으시길 기대해본다.
 
《도라지》2015년 제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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