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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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말발굽산(김철호)
2008년 09월 01일 09시 22분  조회:1576  추천:26  작성자: 김철호
상처입은 명산 그래도 전설과 옛모습 있어 좋다

말발굽산 샘터

연길에서 뻐스를 타고 모아산고개를 넘어서면 유표하게 눈길을 끄는 바위산이 있다. 룡정의 명산 말발굽산이다. 석질이 좋아서 채석장으로 사용되여 산이 몹시 파손된 모습이 멀리서도 알린다. 그러나 의연히 말발굽같은 모양를 보전하고 있어 찾는이들이 있다고 한다.
말발굽산으로 가자면 연변대학 농학원뻐스정류소에서 내려 농학원길을 따라가면 된다. 빤히 보이는것 같아도 정작 산기슭에까지 가자면 꽤나 걸어야 한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말발굽산은 웅장해보였다. 깍아지른듯한 벼랑으로 만들어진《말발굽》과 그 속에서 자라고있는 잡목들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한창 밭일을 하고있는 농민에게 말발굽산으로 쉽게 가려면 어떻게 갈수 있는가고 물었더니 왕청같은 소리를 한다.
《샘치물(샘물) 뜰라(길으러) 감둥?》
《말발굽산에 샘물이 있습니까?》
《좋은 샘치가 있습죠.》
말발굽산에 좋은 샘터가 있다는 얘기는 금시 초문이라 무척 귀가 솔깃해졌다.
《그 샘터 어디에 있습니까?》
《산너머에 있는데 과수원을 지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있지유. 아마 찾기가 쉽잖을거우다.》
《멉니까?》
《한시간쯤은 걸어야 할건데유.》
농민의 말을 들으면서 말발굽산을 바라보니 등산객들의 모습이 알렸다. 이따금 뭐라고 웨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등산을 즐기는이들이 한창 산을 돞고있는 모양이였다.
산굽을 휘돌아 지나고있는 조개선(조양천-개산툰)철길을 건넌후 산으로 곧게 통하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 돌밭길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카메라샤타를 연신 누루는데 웬 로인 한분이 다가왔다. 멜가방이며 비닐통을 든 모양이 샘물길으러 가는 로인같았다.
나는 먼저 산 정상에 오른후 샘터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먼저 샘터부터 가보려고 마음을 고쳐먹고 부지런히 로인의 뒤를 따르면서 샘터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윤씨성을 가진 로인은 농학원에서 교수사업을 하다가 정년퇴직한분이였는데 올해 70세였다. 산길을 씨엉씨엉 걷는 모습은 50대의 장년같아 보였다.
《하루 건너 한번 꼴로 물길으러 가는데 물맛 참 좋지요.》
샘을 발견한지가 꽤 오래 된다고 했다. 샘물이 있다는것을 안후부터 줄곧 샘을 길어마셨는데 이젠 몇 년 잘된다고 한다.
로인을 따라 걷다보니 말발굽산을 반바퀴 빙 돌면서 산 뒤에 이르렀다. 산정에서 한창 떠들던 등산객들이 산뒤의 백양나무숲을 바라고 내려오고있었다. 백양나무숲은 인공숲이였다. 일매지게 자란 백양나무는 련병장에 정연히 줄서있는 씩씩한 병사들같아 보였다. 너무 아름답고 멋진 나무숲이였다. 그 숲을 지난후 사과배과수원을 꿰지르니 내리막 길이였다. 황토와 모래로 섞인 땅이여서 비가 와도 길이 질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소나무숲을 지나야 했다. 로인은 앞에서 지팽이로 풀을 툭툭 치면서 쉽게 길을 줄였다.
아름다운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가 왕성하게 자라지 않아 아직 누런 흙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가쯘한 잔디를 밟는 감각 무척 즐거웠다. 멀리서 양떼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있었고《꺼겅, 껑...》하고 꿩이 우는가 싶더니 이번엔 뻐꾹새가 《뻐꾹뻐꾹》한다.
로인은 오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사람들 발길에 곱게 다져진 오솔길이였다. 소나무 한 그루가 오솔길을 가로 막았다. 그 소나무를 안고 도니 바로 샘터였다. 말발굽정상부근에서 예가지 오는데 12분나짓이 걸렸다.
비닐꼭지를 해놓은 수도관으로 샘이 졸졸졸 흘러나오고있었는데 비닐관은 바위속에 박혀있었다. 몇길되는 바위벽 맨 밑에 박혀있는 비닐꼭지로는 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고있었다. 한모금 마셔보니 시원하고 달았다. 련신 몇모금 마시니 그동안 걸어오면서 흘린 땀이 다 식는것 같았다. 참으로 좋은 샘이였다.
《겨울에도 샘이 마르지 않지요. 물수량도 변함없구요. 오늘은 사람이 적습니다. 어떤 때에는 저기 산등성이에까지 줄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윤로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상점에서 사가지고 간 광천수를 다 털어버린후 그 병에다 샘물 가득 채운후 로인과 인사하고 목적지인 말발굽산정상을 바라고 자리를 떴다.

말발굽산전설

생김생김이 신통히도 말발굽같아 말발굽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이 산을 말발굽산이라고 부르는데는 그럴만한 전설이 있었다.
아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다. 지금의 말발굽산은 그때엔 그저 좀 높은 산언덕이였을뿐이였다고 한다. 그 산언덕밑에 넓고 깊은 십리늪이 있었고 늪아래와 남쪽에 기름진 벌이 펼쳐져 있었다. 늪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었는데 이 벌을 차지하고 사는 큰부자의 집이였다.
어느해인가 부자가 퇴마루에 앉아 볕을 쬐고있는데 한 헌걸찬 젊은이가 지게를 지고 마당으로 성큼 들어서는것이였다. 젊은이가 하는 말이 부모량친 다 잃고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이 집을 찾아왔으니 일이라도 시켜준다면 백골난망이겠다는것이였다.
깍쟁이로 소문난 부자는 어진간한 사람은 머슴으로 두지 않았지만 이 젊은이는 어깨가 너럭바위같고 뼈마디가 굵직굵직한것이 마치 꼬리없는 황소같아 보여 마음이 동했다.
《좋아! 일만 잘하면 장차 장가까지 보내줄수도 있지.》
젊은이는 힘도 세거니와 일솜씨 또한 날래였다. 남들이 밭머리에서 어정어정 할 때 벌써 호미날이 번쩍 하더니 저쪽 밭머리까지 나갔다. 게다가 하루 종일 일해도 아프다거나 맥없나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꼴단이나 나무단을 지고 마을에 들어설 때 보면 큰 산이 움쭐움쭐 걸어들어오는것 같아 보였다.
부자에게는 아주 예쁘게 생긴 무남독녀 외딸이 있었다. 처녀는 부지런하고 어엿하게 생긴 머슴총각에게 반해버리고말았다. 총각도 처녀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는것을 먼저 눈치챈 부자마누라는 끙끙 속만 태웠다. 령감이 알면 야단을 칠터이고 그렇게 되면 망신을 톡톡히 당할터이였다. 그러나 종이로 불을 감쌀수는 없었다. 드디여 부자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끼를 찾아쥔 부자는 머슴을 죽여버리겠다면서 펄펄 뛰였다. 마누라는 간신히 령감을 말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밤에 단단히 잡도리를 했다가 몰래 죽인후 저 못에 쳐넣읍시다요.》
그런줄도 모르고 총각은 밭에서 부지런히 일만 하고있는데 난테없는 백마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화살처럼 달려왔다. 말잔등에 앉은이는 부자집 딸이였다.
《어서 타요. 집으로 돌아가면 그대로 죽게 되니 도망치자요.》
《죽다니? 그게 웬 말이오?》
처녀는 아버지, 어머니가 꿍꿍이를 꾸민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 《그대는 귀한 몸이거늘 이 비천한 인간을 따라 고생함이 타당치 못하오. 내 비록 싸우다 죽기는 할망정 잡히지는 않을테요. 아가씨 마음 변함없거든 황청에서라도 다시 만나기오.》
《사람에게 빈부귀천이 따로 없거늘 소녀 한번 먹은 마음 어찌 변하오리까. 저승으로 가실려거든 소녀 함께 데려가소이다.》
머슴총각이 딸과 함께 도망친다는것을 눈치챈 부자는 숱한 사람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쫓아왔다. 처녀의 애원이 불같고 쫓아오는 사람들이 서리같은지라 총각은 할수 없이 백마에 뛰여올랐다.
앞에서는 총각과 처녀가 탄 말이 달리고 뒤에서는 부자가 탄 말이 뒤쫓았다. 한창 달리니 눈앞에 십리늪이 나타났다. 넘자니 날개없어 넘을수 없고 건느자니 늪이 너무 깊어 건널수 없었다. 그렇다고 되돌아서자니 칼과 도끼를 든 무리들이 있었다. 두 사람이 망설이고있을 때 부자네패거리들이 다가왔다.
《사랑이 죄가 되었사오니 창천은 부디 굽어 살펴주옵소서.》
두 사람은 이렇게 웨치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이때였다.뒤발로 땅을 차면서 하늘공중에 솟아오른 백마는 단숨에 십리늪을 날아넘은후 늪맞은켠 산마루를 콱 박차면서 또다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때 백마가 남긴 발자국이 바로 지금의 말발굽산이 되었다고 한다. 뒤따르던 부자네들은 닫는 말을 미처 멈춰세우지 못해 그대로 다 눞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아직도 미모의 산

말발굽산은 뒤에서 보기에는 집안현의 고구려태왕릉처럼 보인다. 부서진 바위들이 밑에 널려있고 둥두렷한것이 도굴당한 커다란 왕릉같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강한 바위볏이 솟은것이 날카로와 보인다. 나무 한 그루가 산마루 가까이에 초병처럼 서있을뿐 말발굽산정상은 벗은 모습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우선 농학원과 농학원마을이 잡힐듯 보인다. 멀리 룡정시가지도 지척으로 안겨온다. 해란강이 흰검으로 갈라놓은 세전벌은 두쪽이 나있는데 벌써 모살이가 다 되어 벌이 푸른색을 띠고있었다. 물론 가을이면 황금의 파도가 설레일것이고 겨울이면 아득한 은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유서깊은 세전벌은 연변의 곡창으로 소문높다.
룡정-연길도로로 차들이 실북나들듯이 오가고 밭에서는 경운기 소리가 통통 난다. 인형처럼 작게 보이는 농민들이 전간에서 한창 밭일에 바쁘고있었다. 남쪽으로 비암산과 대포산이 바라보이고 북쪽으로 돌아서니 모아산이 안길듯이 다가온다. 그 뒤로 삼봉동산이 손짓한다. 말발굽산은 이런 산 가운데서 제일 낮은 산이기는 하지만 그 중심에 솟아있어 여러 산들 거느린 형국이다.
푸름이 꽉 찬 만무가원의 가관은 말발굽산에서 보아야 진미일 것이다. 모아산으로부터 시작된 과원은 릉선을 따라 내려오기도 하고 산허리를 휘돌기도 하면서 끝없이 뻗고뻗어있다. 연변지구에 5개의 만무과원이 있는데 그중 3개가 말발굽산을 중심으로 하는 룡정에 있다고 한다. 말발굽산주위를 에둘러있는 룡정과수농장은 아시아주에서 제일 큰 과수원이다. 룡정시의 과수면적은 8600헥타르, 사과배나무면적은 6800헥타르다. 사과배는 우리 민족이 배육해낸 우량종이다. 사과배는 지금 세계시장에 나가 우리민족을 자랑하고 있다. 말발굽산주위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사과배는 1987년에 벌써 농업부의 량질제품으로, 오염, 공해없는 록색식품으로 평의되였다.
말발굽산정상에서 일망무제한 만무과원의 풍모를 바라보는 멋 얼마나 장쾌한지 모른다.
말발굽산은 비록 채석장으로 활용되여 많이 파괴되긴했어도 의연히 미모가 남아있다. 우에서 내려다보면 성벽처럼 벼랑이 둘어선 가운데 거뭇하게 홈이 패인곳이 바로 머슴총각의 백마가 힘차게 박차고 뛰여나간 발자국자리였다. 거기는 잡목이 우거져 멀리서 보기에 더욱 우묵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몇길되는 절벽 벽이 닭볏모양으로 빙 둘레를 치고있는데 옛날 허물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앞이 조금 트였을뿐 완전한 원형을 거의 이루었다고 한다.
《너무너무 예뻤었지요. 동그란것이 정말 말발굽같았어요.》
아까 샘물터까지 동행했던 윤로인의 말이 떠오른다. 윤로인은《지금은 볼멋을 다 잃었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그래도 옛미모가 많이 남아있어 잘 보호하면 찾아줄 사람이 많을 산으로 될것 같아 보였다. 채석일군도 없고 근년들어 돌을 캔 흔적도 없는걸로 보아 채석을 금지시켜 놓은것 같아 다행스럽다.
말발굽산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상처입은 명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볼수록 그래도 말발굽같아 보여 즐겁기만 하다. 이제라도 더는 사람손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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