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봉 기송 기암 기화요초로 화려한 천혜의 절경
기봉, 기송, 기암, 기화요초가 어울린 천혜의 절경 선경대앞에 서면 누구나 그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화룡시 덕화진경내의 선경대는 연길에서 100킬로메터, 길이 잘 닦아져있어 당날치기로도 선경대의 아름다움을 실컷 만끽 할수 있다.
감로수와 칠성암
선경대에 가면 맨처음 감로수와 만나게 된다. 감로수는 높이 24메터, 폭 42메터 되는 칠성암이라고 불리우는 아찔한 절벽밑의 바위혹에서 솟고있는데 누군가 장난감같은 작은 드레박을 만들어 달아놓아 길어마시기가 한결 즐겁기만 했다.
칠성암 앞에 흰대리석불상이 모셔져있고 그 주위를 화단으로 가꾸느라 일군들이 분주히 돌아치는 모습이 보였다. 여름밤, 이 절벽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북두칠성이 신통히도 절벽우에 떠있어 지어진 이름이 칠성암, 옛날에 이 칠성암앞에 한채의 절당이 세워져있었다고 하는데 그 절당을 북두칠성절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발견된 유적을 보면 조선식 6간구둘집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1885년 하홍락, 유희춘, 황경숙(녀) 등 중과 비구니가 조선에서 건너와 여기에 절당을 짓고 선교를 했다고 한다.
자라봉과 고려봉은 다정한 련인마냥 가지런히 솟았는데 자라봉잔등에는 한 마리 자라가 하늘로 기여오르려다 한쉼 쉬려는듯 멈춰서있는 모습의 커다란 바위가 굳어져있다. 칠성암 오른쪽비탈을 꺾어도니 산으로 오르는 통로가 나진다. 독야청청한 고솔과 잡목사이로 한오리의 좁은 길이 열렸을뿐인데 많이는 반석을 쪼아낸 층계길이다.
기이한 소나무
한 모퉁이를 돌면 다시 한 모퉁이가 다가서고 한 굽이를 지나면 또 한 굽이가 나타나면서 굽이굽이 돌아치는 고려봉 오르는 길, 굽이마다에서 기이한 소나무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면서 발목을 쥐고 놓아주질 않는다. 낭떠러지에 뿌리를 한절반 드러낸채 금방 떨어질것만 같은 기송이 흙 한줌없는 츠렁바위에 뿌리를 뻗고 푸르싱싱 자라는 모습은 엎드린듯, 허리굽힌듯, 가로누운듯, 비탈린듯... 각양각생이였다.
뚝 끊어져 쓰러져버렸댔는데 완강한 생명력으로 다시 허리를 펴고 궁(弓)자형으로 살아난 궁룡송(弓龍松), 땅에 머리를 쳐박았다가 다시 하늘로 오르려고 우뚝 머리를 치켜든 룡의 기상같기만 했다. 뿌리를 바위틈에 박고 그 틈새로 비물과 이슬을 받아마시며 200여년 자랐다는 반룡송(盤龍松), 뿌리우에 얹힌 2톤되는 암석이 뿌리의 자라는 힘에 의해 35센치메터나 들려있었다. 참으로 자연의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처자암과 신선궁
반룡송이나 궁룡송처럼 완강한 의력으로 산다면 만사가 통할수 있다고 하여 두 소나무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괴석을 만사통암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서 약간 올랐다 다시 내려오면 느슨한 길이 된다. 왼쪽은 낭떠러지, 오른쪽 아츠랗게 쳐다보이는 층암절벽을 천자암(千姿岩)이라 하는데 천가지 형태로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보살의 큼직한 귀가 그대로 바위에 새겨져있는가 하면 코끼리가 기다란 코를 척 드리운채 굳어져있기도 했다. 너구리, 올빼미, 매부리코... 얼핏 보아도 10여종의 형태를 인차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아츠라니 뻗은 절벽우에 금방 떨어질 것 같이 간들 얹혀져있는 큼직한 바위덩이, 쳐다보노라니 가슴이 다 섬찍해난다. 그러나 정작 그 바위까지 올라가 굴러보면 고착된 듯 끄떡 안는다.
신비한 절벽을 자꾸자꾸 되돌아보면서 10메터쯤 톺아오르니 절벽 벽에 인공으로 파놓은듯한 커다란 홈이 패여있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소나기를 만난다 해도 그 속에 몸을 숨기면 비맞을 근심이 없다고 한다. 네댓이 앉아도 넉넉할 바위혹속은 안방처럼 아늑해 보이기까지 한다. 옛날 신선이 이 바위혹속에 앉아 도를 닦았다는 전설로부터 신선궁(神仙宮)이라는 이름이 달아졌다고 한다.
기기괴괴한 바외와 기기괴괴한 소나물ㄹ 숱해 바라보면서 걷노라니 깎아지른듯 아츠라운 자라봉석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절벽밑을 더듬으로 100메터쯤 오르니 자라봉과 고려봉 두 다리 사이였다. 자라봉은 새가 아니고는 오를수 없는 사면절벽이여서 고려봉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정상에 오르기는 그리 힘겹지가 않아서 조금 쉬였다가 단숨에 올랐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선경대의 정경은 말그대로 절승경개이다. 삼형제봉이 장관이고 자라봉도 금방 눈앞에 다가선듯해 손을 내밀면 잡힐듯 싶었다.
고려봉정상에서 바위혹이며 맨 바위우에서 자란 소나무, 진달래, 너비 1메터, 깊이 9메터, 길이 30메터 패여 하늘이 한갈래로 보인다는 일선천(一線天)을 구경하느라면 시간가는줄 모를지경이다.
선경대의 해돋이
그런데 여지껏 등반이 선경대의 한모퉁이를 오른데 불과하며 그 절경도 절반쯤 구경하나마나 하다고 한다.
선경대풍경명승구의 총면적은 12평방킬로메터이며 봉우리가 16개, 주봉인 삼형제봉은 해발 921메터라고 한다. 도합 200여곳의 신기한 경관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주봉에도 오르지 못했고 또 선경대의 신기한 해돋이도 구경못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선경대의 해돋이는 독수봉(獨秀峰)에 올라야 진짜 구경할수 있다고 한다. 이튿날이였다. 아직 어둠이 밀리지 않은 이른 새벽, 손전지를 갖춰들고 운해일출의 경관을 보여준다는 독수봉을 향해 떠났다. 해뜨기전의 푸름을 가르고 산을 오르노라니 그 해돋이에 대한 동경이 더 커지기만 했다.
자매다리를 건너 얼마간 톺아오르니 절벽밑에 시커먼 석굴이 나타난다. 장수동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높이 1메터, 너비 2메터쯤 되어보이는 장수동은 45도각으로 올리빠진 석굴이였다. 손전지를 켜고 들어가니 가운데가 좁아지다 다시 널어지는데 마치 룡이 대가리를 틀어박고 하늘을 오르려 솟구친 자리같아 보였다. 장수동은 22메터나 깊었다.
장수동으로부터 구불구불 뻗은 길은 마치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같다. 날이 밝아짐에 따라 주위도 똑똑히 보인다. 금방 꿩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온갖 새들이 화답이라도 하듯이 삐쫑삐쫑, 따르르따르르... 별의별 소리를 다 내면서 동화의 세계를 꾸며준다.
가는곳마다에서 나타나는 울뚝불뚝, 오목뾰족한 바위가 괴이하기만 하다. 발길에 걸리는 소나무뿌리가 바위를 감싸안고 몸을 비탄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 바로 독수봉이란다. 좌우에 20메터 깊이의 깎아지른듯한 벼랑을 두고있는 좁은 바위길이여서 건너기가 아슬아슬했으나 거기에 가야 해돋이를 맘껏 구경할수 있다고 하기에 소나무가지를 갈아쥐면서 끝에까지 나갔다.
선경대명승관리국 윤갑송국장에 따르면 선경대라는 이름은 발해국 3대왕 문왕 대흠무가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고성에 도읍이 정해진후 14년간 발해국을 통치해온 기간 철주(鐵州)에 대한 시찰을 끝이지 않았는데 철주가 지금의 조선 무산일대, 선경대는 바로 무산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이곳을 지나면서 그 아름다움에 끌려 산정에 올랐으며 또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해돋이까지 구경했다고 한다.
독수봉에 올라서니 어느새 동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아득히 보이는 산정이 불그스레해지다가 점차 진붉게 변하는데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꽃구름은 무시로 붉은 빛, 노란 빛 온갖 빛깔로 무늬를 새긴다. 드디여 일점홍의 태양이 방긋 얼굴을 내미는데 손바닥에라도 담을듯 귀여워보였다. 그 태양을 손바닥에 담는 모습을 취하면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만약 파랗게 개인 날이라면 피빛의 동녘우로 하늘이 밀어놓은듯 파랗게 깔려있어 더욱더 황홀하다고 한다.
선경대의 주봉
각이한 형태로 복잡다양한 조각품을 이루는 바위들이 앞뒤에 굴러떨어질듯이 솟아 그 사이를 지나는 마음 천경을 밟는 심정이였다. 큰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독수봉과 삼형제봉은 더욱 가관이라고 한다. 비물이 츠렁바위를 타고 폭포로 쏟아지는데 웃층바위에서 아래 바위로 계단식으로 쏟아지는가 하면 몇길씩 되는 낭떠러지에 창살같이 내리꼰지며 흰갈기를 날리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폭포천국을 이룬다는것이다.
해발 921메터의 주봉인 삼형제봉에서 고려봉과 자라봉이 손잡힐듯이 바라보이는데 높은데서 마주 바라보는 기품이 더욱 름름하고 어엿했다. 삼형제봉은 기상이 거칠고 험악하여 고려봉과 자라봉의 탈속한 고운 모습과 같지 않았다. 고려봉을 억만겁 숨었다가 몸을 씻고 갑자기 나타난 미녀상이라면 삼형제봉은 하늘을 지켜선 완력한 대장부의 기상이였다.
쓰러진 아름드리 고송을 가로타고 건너고 금방 굴러떨어질것만 같은 바위를 안고돌면서 주봉의 맨끝인 절벽가에까지 가려고 이상한 바위벽에 매달려보니 바위벽에 말발굽같이 보이는 자국들이 수없이 찍혀있었다. 제일 큰 말발굽자리는 30센치메터, 움푹움푹 패인 자국은 볼수록 괴이하기만 했다.
여기서 저 멀리 락타봉과 선태봉이 한눈에 안겨왔다. 서역 사막지대의 락타가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을가. 어찌하여 여기에 멈춰서서 주봉을 바라보면서 더 다가서지 못하고 있을가. 보면볼수록 락타가 신통하고 이상스럽기만 하다.
가보고싶어도 길이 멀고 험하여(아직 개발하지 않았음)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선경대는 산 전체가 그대로 수석(壽石)이였다. 설사 사람이 임의대로 그린다해도 자유분방한 산의 골격과 그 골격에 뿌리를 뻗은 소나무를 그리기에는 붓끝이 부디기만 할것이다. 때문에 천혜의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태여난 선경대는 봄, 여름, 가을뿐만아니라 겨울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여 련민의 애틋함을 맛보게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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