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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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봄비속의 얼굴(김철호)
2008년 09월 01일 16시 33분  조회:1824  추천:46  작성자: 김철호

《모병위속래(母病危速來)》
급전을 받은 나는 사형판결을 받은 죄수마냥 마구 떨었다.
차창밖에서는 솜털같은 촘촘한 비발이 끝없이 내리기만 하였다.
나는 그때처럼 어머니가 그리워본적은 없었다. 어서 어머니곁으로 가고싶었다. 희백색 하늘, 고요히 내리는 봄비, 문발처럼 드리운 그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자애로운 웃음, 순한 눈길이 눈앞에 환히 안겨오는 것 같았다.
어느 모로 보나 어머니는 수수한 살림집 부녀 그대로였다. 흰 무명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받쳐입고 머리엔 흰 수건을 치고 젖은 손이 마를새 없는 그런 녀인이였다.
광복전 절골에 가서 금광일을 하던 아버지는 마을의 한 부농의 딸과 눈이 맞았는데 그가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선후로 우리 다섯남매를 낳았다. 나의 우로 녀자애를 하나 낳았는데 조산으로 잃고 나도 팔삭둥이로 태여났다.
형제들가운데서 내가 제일 약골이였다. 희초리같은 아래다리며 아롱아롱한 가슴팍엔 살점이라곤 없었다.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동생들 몰래 나의 손에 쥐여주군 하였다. 마디가 굵직하고 키도 큰 동생 준도는 동네애들과 싸울 때면 늘 나의 역성을 들어주었다.
어느땐가 강에 나가 썰매를 타다가 준도와 나는 얼음구멍에 빠져 덜덜 이를 쪼으며 집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준도를 욕질해서 옷을 갈아입게 하고는 나의 언손을 자신의 젖가슴에 품어주었다.
《이새끼 준철아, 넌 엄마 아들이고 난 아니야! 난 다리밑에서 주어온 애래!》
준도는 퍽 컸을 때까지도 이렇게 나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한번은 준도가 지나가는 자전거에 치여 무릎과 허리를 상했다. 내가 울면서 준도를 업고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낯이 파랗게 질리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만 휭하니 바깥으로 나갔다. 얼마후 어머니는 자적거쟁이를 집에 끌고 와서 준도앞에서 잘못을 빌게 했다.
그 일이 있은후부터 어머니에 대한 준도의 생각은 퍽 달라졌다.
하루는 길가에서 대정금을 주은 나는 기뻐서 깡충깡충 뛰여서 집으로 돌아 왔다. 나는 동생들앞에서 대정금줄을 탱탱 치면서 시뚝해했다.
그때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대정금이 어디에서 났는가고 물었다. 내가 곧이곧대로 대자 어머니는 종래로 있어본적 없는 눈길로 나를 쏘아보는것이였다.
《넌 어느때부터 이런 나쁜 애가 됐니? 동생들앞에서 그런 본을 보여, 엉! 다른 사람이 떨군걸 주어오는 것은 훔친거나 같아!》
내가 머리를 푹 떨구고 아무 말도 없자 어머니는 불호령을 내렸다.
《냉큼 제자리에 갔다놓고 못올가! 맞아죽기전에!》
나는 아수운대로 대정금을 원래의 지리에 가져다놓았다.
준도는 뻐드렁이를 드러내고 처음으로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형, 엄만 공평해!》
소학교 4학년때였을 것이다. 준도아래로 녀동생 하나가 있었는데도 어머니 배는 또 남산만했다. 어머니는 그런 몸으로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의 림시공으로 나무껍질을 벗기는 일을 하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저녁밥까지 다해놓고 일하러 갔다. 점심밥을 가마안에 넣고 저녁밥은 높은 덕대우에 얹어놓았다. 우리는 하학한후 가마안의 밥을 나누어먹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밥은 우리의 배를 채워주지 못했다. 금방 밥을 먹었는데도 돌아앉으면 꼬르륵 하고 배속에서 개구리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우리 집은 그래도 괜찮았다. 다른 집에서는 솔껍질을 벗겨다 떡을 해먹거나 풀뿌리를 파서 삶아먹고있었다.
해거름때만 되면 우리 형제는 배가 고파서 맥없이 방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이제나 저제나 하고 어머니가 퇴근하여 올것만 기다리였다. 그러다가도 정지문이 삐익 열리고 육중한 어머니의 배가 들어오면 환성을 질렀다.
그날도 연기만 지꿎게 기여 다니는 골목길을 목빠지게 바라보다 못해 준도가 나에게 밥을 먹자고 하면서 턱으로 높은 덕대우를 가리켰다. 내가 머리를 살래살래 젓자 준도는 흥하고 코방귀를 뀌더니 바깥에 나가 큼직한 목데기를 주어들고 왔다. 그것을 벽밑에 놓고 덕대의 밥그릇을 내리우려고 하였다. 준도는 발끝을 들고 밥그릇에 손을 댔다. 순간 밥그릇이 준도의 머리를 치면서 땅에 떨어졌다. 새빨간 수수밥이 한구들 널렸다. 덩지가 큰 밥덩이는 구들우에서 데굴데굴 굴러대기까지 하였다. 혼비백산한 우리 형제는 구둘에 널린 밥을 주어서 그릇에 담았다. 준도는 애물이였다. 밥그릇에 맞아 이마에 닭알이 생겼는데도 대수로와 하지 않고 히죽거리며 구둘에 널린 밥을 연신 입으로 주어넣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우리 책망하지 않았다. 밥이 눈자리나게 축갔는데도 모르는체하면서 우리들 그릇에 골고루 퍼주고는 살며시 바깥으로 나가는것이였다.
이슥해도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으니 준도와 나는 슬그머니 나가보았다. 헛간에서 인기척소리가 나기에 살며시 들여다보니 어머니는 쪼크리고 앉아 뭔가 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가 우리들 몰래 무얼 먹는다고 생각하자 나는 불만스러운 생각에 앞서 일종 야릇한 감정이 가슴에서 굼실거렸다. 무엇이길래 우리 몰래 저렇게 먹을가? 우리는 슬그머니 어머니의 등뒤에 가 섰다.
비술나무껍질! 순간 준도와 나의 눈을 허공에서 부딪쳤다.
몸을 돌린 어머니는 우리를 발견하고 일어섰다. 어머니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옷자락을 툭툭 털고는 정겹게 우리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엄마, 다신 밥을 훔쳐먹지 알겠어!》
준도는 어머니의 무릎을 끌어앉았다. 나도 어머니의 옷자락을 잡았다. 어머니는 우리가 기특한 듯 웃음을 머금고 한품에 안아주었다.
《남들이 다 먹으니 나도 좀 입질해본것이지 배고파서가 아니야.》
그후부터 우리는 다시는 밥을 훔쳐먹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몰래 어머니가 계속하여 대식품을 먹고있는줄을 누구도 몰랐다. 한번은 기름타는 냄새에 자다 깨여나보니 부엌아궁이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에 어머니의 흐트러진 머리그림자가 벽에 비치여 언뜰거렸다. 나는 힐끔 부엌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불을 끄집어내여 아궁이앞에 모아놓고 남비로 한창 밀가루떡을 굽고있었다. 종시 잠이 오지 않았다. 떡도 먹고싶었거니와 어머니의 소행도 불만스러웠다.
밤대거리를 마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상을 챙겨주었다. 아버지는 군소리없이 구운 떡을 먹었다.
(흥, 아버지에게는 구운 떡! 우린 매일 뻘건 밥!)
《준철아, 안자니? 안자면 입질해라.》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인차 자그만치 떡을 떼여 나에게 주었다. 그래도 좋았다. 준도랑 복순이랑 저렇게 세상 모르고 잘 때 한입이라도 먹으니 여북 좋은가!
그런데 꼼지락거리다 뒤이어 복순이도 일어나 앉았다.
아버지는 준도와 복순이에게도 주라면서 떡을 밀어냈다.
《이 철없는것들이 언제면 셈이 들가?》
떡을 얻어먹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불만은 우리들 가슴에 맺혀있었다.
하루는 밤중이 되도록 아버지가 퇴근하지 않자 어머니는 금방 태여난 준태를 업고 도시락을 챙겨갖고 나와 준도를 앞세우고 아버지의 직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용수직장에서 두만강의 물을 끌어들이는 일을 보고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강가에 나가서 일하고있었다. 두만강으로부터 곧추 물탕크 있는데까지 기다란 물도랑이 나있었다. 물도랑옆에 화토불을 피워놓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우리가 낯익은 아저씨에게 알은체를 하자 그 아저씨는 물도랑을 향해 《어이-》 하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한창 가슴치는 물도랑에 들어가서 성에장을 몰아내고있었다. 힐끔 이쪽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조금후 기슭으로 나왔다. 고무옷을 입은 어버지는 이발을 맞쪼았는데 입술은 새파랗게 색이 죽어있었다. 누군가 술고뿌를 주자 아버지는 반나마 담겨져있는 술을 단꺼번에 쑥 마셔버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물도랑의 성에장을 밀어내는 용도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성에장을 밀어내지 안는다면 물도랑이 얼어붙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공장에서 수요하는 물을 공급못한다는것이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숭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해 아버지는 영광스럽게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어머니의 눈가엔 자랑과 행복감이 고요히 빛나고있었다. 어머니는 다정한 이웃 녀인들이 마실을 오면 부끄럼을 타는 소녀마냥 짐짓 낯을 붉히면서 살그머니 자랑하군 했다.
《우리 집에선 당원이 됐다우. 그러니 우린 당원가속인거유.》 아버지는 애당초 집일을 할줄 몰랐다. 그러나 우린 어머니가 그것으로 하여 불만의 소릴 하는걸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톱질, 대패질, 망치질을 곧잘 했다. 지어는 벽을 바르로 구둘도 뜯어고치였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의견을 보일라치면 어머니는 우리를 타일렀다.
《아버진 당원이니 공장일에 힘다해야 한다. 집일은 그저 잔손질뿐이니 내가 해도 되는거다. 너희들도 이렇게 방조해주니 얼마나 헐하니!》
그렇게 금슬이 좋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만 다투었다. 그것은 내가 열서너살 먹었을 때 일일 것이다.
외지에서 살던 할머니가 갑자기 찾아왔던 것이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반겨맞았지만 아버지의 눈길은 심술스러웠다.
어느날 저녁 나는 어버지와 어머니가 강변뚝밑에 마주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누가 효자랄 것 같소? 누가? 어느때는 뿌리치고 가던 것이 죽게 되니 기여든단말이요. 어머니가 언제 한번 나를 아들로 생각한적 있었소? 우리가 금방 살림을 꾸렸을 때에도 늦지 않았댔지. 그러나 어머닌 못들은체했단말이요.》
《글세 아무리 어머니가 잘못했어도 우린 다 어머니의 자식이 아닌가요? 이번에 우리 집에 온 것은 마지막 길을 가자고 온것인데 이렇게 대하면 어떻게 해요?》
《어떻긴 뭐가 어떻다고?》
《남들이 웃어요. 당원가속에서 그런다고 남들이 웃는단말이예요. 그리고 어머니도 고생이야 막심하셨지 않아요? 이 자리 저 자리 옮기면서 숱한...》
어머니가 흐느껴 울었다. 어버지는 쭈크리고 앉더니 성냥을 드윽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성냥불빛에 비치는 아버지의 얼굴은 참으로 무서웠다. 눈살이 잔뜩 찌프러지고 얼굴의 근육은 모두 지렁이처럼 일어나서 꿈틀거리고있었다. 며칠이고 깎지 않은 수염은 꺼칠했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툰 원인을 알았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첫돌이 되던 해에 쏘련으로 돈벌러떠나간 할아버지를 8년동안이나 기다리다 못해 아버지를 버리고 재가를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밥을 빌어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후 할머니를 각박하게 대하진 않았다.
할머니가 세상뜨던 해에 어머니는 림시공일을 잠시 그만 두었다. 어머니는 매일 할머니의 속옷을 빨아입혔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밥도 한술두술 떠서 대접했다. 그때 할머니의 몸에는 무슨 이가 그렇게도 많았는지 모를 일이였다. 어머니는 매일 이를 잡아주었다. 화로불을 웃방에 들여다놓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머리털을 번지면서 보리알같은 이를 주어 화로에 넣으면 툭툭 하고 이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어머니가 한번이라도 낯을 찡그리거나 심술스런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제 식솔만 해도 한구둘인데 나까지 애를 먹이니 손부리 터질거야. 일찌감치 죽어버려야지. 왜 죽자 해도 죽어지지 않누.》
할머니가 목메인 소리로 이렇게 말할라치면 어머니는 인자스럽게 웃으시며 할머니를 위로하시는것이였다.
《어머니 근심말아요. 맘놓고 오래오래 사시기만 하면 돼요.》

아, 어머니! 그렇게도 맘좋은 어머니가 무슨 급병이기에 전보를 다... 나는 전보지의 글자가 혹시 잘못 찍히지 않았나고 의심스레 다시다시 펼쳐보기도 하고 정신이 돌지 않았는가고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다.
기차마저 나를 놀려주는지 아주 느릿느릿 달리는 것 같았다.
《차가 연착된건 아집니까?》
《연착되다니요? 아주 정시인데요.》
《그런데 왜 이제야?》
《호호호 급하신 모양이군요.》
렬차원처녀는 곱게 눈을 할겼다.
나는 머리를 싸쥐였다.
상해복단대학의 입학통지서를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몹시 기뻐하셨다. 그러나 그때 어머니의 눈엔 물기가 고여있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도 못오겠구나. 공부가 바쁘겠는데 급하다고 널 부르겠니. 이 에미가 죽었다는 기별이 가도 와선 안돼. 그저 공부만 잘해야 돼. 알겠니?》
아, 어머닌 그때 모든걸 알고계신것이였구나. 시골에서 상해라고 하니 오금을 쓰지 못하고 히히닥거렸지만 어머닌 언녕 짐작하고계셨구나.
어머니는 우릴 얼마나 진속으로 사랑해왔는가! 그러나 자식은 어시의 속을 다는 몰랐다. 지금도 어머니에게 욕을 주던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몸서리난다.
《문화대혁명》때 중국의 대다수 사람들이 받은 그런 재난이 우리 집에도 들이닥쳤다.
처음에는 어머니 성분으로 하여 말썽을 들었다. 우리들은 이렇게 자라면서도 어머니가 착취계급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을 감감 모르고있었댔다. 홍위병조직에 들려고 신청서를 쓰면서 어머니의 출신과 사회관계를 밝혀야 했다. 준도와 나는 다 중학교 1학년생이였다. 나는 학교에 한해 늦게 붙어 준도와 같이 다니였던 것이다. 우리는 둘 다 홍위병조직에 들지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말이 무겁던 어머니는 아예 벙어리가 된 듯 종일 가도록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사만 보았다.
우리는 어머니가 어떻게나 괘씸했던지 배에 태워 두만강물에 띄워보냈으면 하는 심정이였다. 준도가 더했다. 그는 어머니앞에서까지도 착취계급이라고 욕했다. 자신의 몸에도 착치계급의 피가 섞였으니 두만강물에 뛰여들어 씻고씻는대도 그 더러운 것을 씻을 방법이 없게 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외가집 조상들을 물귀신이 될 두상들이라고 쌍욕을 했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도 맘좋고 착하신 어머니가 부농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되지만 어머닌 평생 한가지 노래밖에 부를줄 몰랐다.

오막살이 우리 집에도
광명한 새아침 밝아왔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오막살이가 아니라 팔간기와집에서 산해진미를 먹고 자란 기생충이라니.
《엄만 빈하중농 피를 얼마나 빨아먹었어?》
어느날 준도가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는 낯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썩 후에야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난 그때 죽고만싶었다. 자식의 앞길을 망쳐먹고싶은 어시가 세상에 어디 있겠니. 너의 외할아버는 구두쇠라 해도 유명한 구두쇠였다. 돈이라 하면 눈에 불을 켰지. 땅도 사고 소도 장만하고 소작도 주었다. 그래도 우린 이밥 한번 배를 두드리면서 먹어보지 못했단다. 믿어지지 않을거다. 난 발가락이 삐죽이 나오는 신을 신고 다녔단다. 너의 외할아버지가 여간 미웠으면 집을 뛰쳐나와 너의 아버지께 왔겠니. 불쌍한 언니가 너의 외할아버지의 핍박에 못이겨 맘에 없는 사내한테 시집을 갔었지. 나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아우성치며 울던 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구나. 지금은 어느곳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이모가 남조선 어디에서 잘살고있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퍼졌다.
어머니는 가두에 끌려나가 비판까지 받았다.
1967년 유명한《k.8.2무단적사건》때 아버지는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눈에는 눈물도 없었다. 목석처럼 시체를 마주보던 그 암담한 눈길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아버지를 입관하여 수레에 싣고 떠나는데도 어머니는 우두커니 앉아서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러던 것이 외마디소리를 지르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후부터 어머니는 쩍하면 실신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모진 것이 세월이고 빠른 것 역시 세월이다. 세월속에서 아이들은 몰라보게 커가고 어머니는 무섭게 늙어갔다.
어머니의 성분과 사회관계로 하여 남들이 다 가는 공장, 학교를 가지 못하고 우리 형제는 농촌으로 내려갔다. 신체가 남달리 좋은 준도는 해마다 군대모집때면 미칠 지경이였다.
다행히 아버지문데가 풀려서 우리 형제중 한사람이 아버지대신으로 공장에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체질이 약한 나를 데려가려 하였으나 나는 준도를 떠밀어보냈다. 해마다 민공판으로 떠돌면서 잔등에 묻은 모래가 떨어질 새 없고 코등이 늘 딩딩 부어다니는 꼬락서니가 꼭 일을 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시험제도가 회복되자 나는 생산대 비준을 얻고 집에 가 복습하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가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이마의 잔주름을 활짝 펴면서 대견스레 웃는 것이 나의 눈에는 함박꽃보다도 더 예뻐보였다.
《대학에 가거들랑 꼭 1등을 해야 한다.》
어머니는 마치 내가 대학시험에 합격이라도 된 듯이 이렇게 부탁하는것이였다.
공장에 들어가서 나무껍질 벗기는 일을 하는 어머니는 일이 매우 고되였으나 언제나 얼굴에 웃음기를 담고있었다. 밤대거리때에도 낮에 쉬지 않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술병을 사들였다. 어머니는 술공장과 계약을 맺고 날마다 술병을 주민들 손에서 사들여서는 술공장에 넘겨주어 웃돈을 벌었던 것이다. 얼마 더 벌지 못하면서도 어머니는 그 일을 아주 열성스레 했다. 우리가 말리면 어머니는 《이제 준철이가 대학에 가고 또 복순이도 인차 대학시험을 치겠는데 돈이 있어야 뒤를 대줄게 아니냐?》라고 하였다. 평시에 푼돈도 쪼개쓰던 어머니가 통이 커져서 매일 닭알과 고기를 사다간 공부를 하는 나한테 입에 맞는 반찬을 해주었다. 어머니의 장부책은 아주 볼만했다. 성냥 한갑 값으로부터 동네집 아무개 딸이 설에 와서 세배를 올렸을 때 세배값을 주었다는 50전 돈도 장부에 올라있었다. 그런데 요사이것은 하나도 장부에 오르지 않았다. 아마 어머니는 요사이처럼 손이 크게 돈을 써보신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름찬 돈수자를 장부에 올리지 못하고있는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버지의 사망비가 나와서 저축한 돈도 있다고 어머니가 쩍하면 외우지만 그 돈을 바라고 통이 크게 돈을 쓸 어머니가 아닌 것이다.
어머니가 들어왔다. 나는 장부책을 보다가 웃었다.
《아이, 별거 다 끄집어내가지구 그랜다. 가져오너라. 인젠 아궁이에 넣어야지.》
《건 왜요?》
《세월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낡은 문서를 해서 어따 쓰겠니?》
《그래도 이건 없애지 말아요.》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장부책 하나를 대충 펼쳐보다가 한곳에 눈길을 멈췄다.

11월 3일 사탕 한봉지. 준철.

《엄마, 이건 뭐예요?》
《그건... 오, 그날 네가 공량 바치러 오지 않았댔나?》
나는 멍하니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농촌에 내려가서 처음으로 소수레를 몰고 시내로 공량바치러 왔다가 집에 잠간 들렸을 때였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검은 솜외투에 새끼줄을 질끈 동인 내가 가없어보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새 낯이 까맣게 타고 수염도 꺼실꺼실 돋은 것이 장해보여 그랬는지 나의 터부룩한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은 떨렸다.
길에다 소수레를 세워놓고 들어왔기에 인차 떠나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옷섶을 헤치고 이리저리 뭔가 찾다가 조금 기다리라면서 옆집으로 나가는것이였다.
나도 바깥으로 나왔다.
《돈 한 1원 없소?》
《50전밖에 없는데요.》
《그거라도 주오. 인차 갚아줄게.》
옆집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참, 엄마두.)
어머니가 나오자 나는 아니꼽게 어머니를 쏘아보다가 볼멘 소리로 말했다.
《전 가겠어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쥉쥉 걸어갔다. 시내를 거의 벗어나갈가 했을 때 어머니가 뒤따라 왔다. 어머니는 뭘가 종이에 싼 것을 나의 호주머니에 밀어넣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둘렀던 털수건을 나의 목에 돌려주는것이였다. 거기엔 둬냥되는 사탕알이 들어있었다. 나는 한알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때는 그 감정을 미처 다 몰랐는데 지금 장부책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나는 희망대로 대학에 붙었고 이듬해 복순이도 중등사범학교로 갔다. 후에 막내동생 준태는 중학교에서 직접 군대에 나갔다. 준도도 자기의 뜻대로 자동차를 몰고 있다.
열손가락에 어느 손가락인들 깨물면 아프지 않으랴만 부모들이란 다같이 자식을 귀여워하나 다같이 믿는건 아닌 것 같다. 어머니는 언제나 준도로 하여 머리가 세여진다고 나에게 말했다.
준도는 폭주가였다. 독한 배갈을 컵들이를 했다. 담배를 피워도 고급담배밖에 피울줄 몰랐다. 준도는 공가의 일을 해주면서도 담배나 술을 주머니속에 쑤셔넣어주지 않으면 심술을 부리기가 일쑤였다. 그의 공구함속에는 언제나 술과 담배가 빌 새 없었다. 한가지 좋은 습관이라면 공자만은 봉투채로 어머니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와 늘 다퉜다. 돈을 헤프게 쓴다고 닦아세우군 했다. 네가 한때 먹어치우는 돈이면 준철이는 한달 생활소비를 하겠다고 핀찬을 했다. 그럴 때면 준도는 사내라면 좀 통이 커야지 형처럼 속이 비좁고서야 대학을 나와도 큰일 못할거라고 비웃군 한다는것이였다. 준도의 친구는 거개가 도박을 놀기 좋아했다. 그러나 준도만은 도박을 놀지 않는다고들 했다. 우연히 한번 도박판에 끼여들었다가 한달 로임을 몽땅 잃고말았다고 한다. 그것을 안 어머니는 어찌도 성을 내셨는지 범같은 준도마저도 혼쌀을 먹었다.
어머니는 나와 복순이에게 달마다 소비돈을 부쳐보냈다. 나에겐 30원, 복순에겐 15원씩 부쳤다. 복순이는 사범학교이기에 국가에서 식비를 대주었던 것이다.
나는 송금통지서를 받을 때마다 귀전에서 나무껍질 벗기는 도끼질소리며 병사리가 부딪치는 장그랑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슴이 쩌릿해났다. 어머니가 고생하는걸 생각하니 돈 한푼이라도 헤프게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달마다 5원씩 모았다가 방학때면 꼭 어머니의 옷감을 떼가군 했다.
그런데 지난 겨울방학이였다. 어느날 복순이는 고방구석에 엎디여 쿨쩍쿨쩍 울고있었다. 나는 급기야 복순이를 잡아일으키면서 웬 일인가고 따졌다. 복순인 말없이 보꾸레미를 내앞에 밀어놓는것이였다. 헤쳐보니 거기엔 어머니의 속옷들이 들어있었다. 깨끗이 빤 옷들이였다. 찬찬히 보니 깁고 깁지 않은것이란 없었다. 지어는 빤쯔마저 여얿곳이나 기운 자리가 있었다.
《오빠, 녀자들에겐 빤쯔가... 오빤 몰라요. 지금 이렇게 빤wM마저 기워입은 녀자가 어디에 있어요? 우린 거미새끼들이예요. 어머니가 이러는줄도 모르고... 오빠고 나고 다 못났어요! 못났어요!》
복순이는 목이 메여 말도 잘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물리개옷을 입으면 입었지 자기절로 새옷을 사는 습관이 없었다. 그날 우리 오누이는 백화점에 나가서 어머니의 속벌을 몽땅 사왔다. 어머니는 우리를 몹시 나무람했다. 그럴게면 책 한권이라도 더 사서 읽거나 학용품이라도 더 사서 쓸것이자 왜 이렇게 못나게 노는가고 푸념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주는 사랑을 모르는체하면서 외면했으나 그 눈속에 담겨져있는 물방울을 우린 언녕 보아냈다. 개학하여 돌아갈 때 어머니는 역에까지 나와 바랬다. 별수럽게 나의 얼굴을 애잔한 빛을 담은 눈길로 바라보는것이였다. 어머니의 눈동자엔 뭔가 하많은 것이 담겨져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뭔가 나에게 말하려고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끝내 아무 말도 안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편치 않기에... 그렇게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차에서 내린 나는 허둥지둥 집마당에 들어섰다. 집은 조용했다. 필경 사람들이 있을텐데 왜 이리도 조용할가? 나는 벌컥 문을 떼고 들어섰다. 집식구들이 다 모여있었다. 복순이도 군대에 간 준태도 이미 와있었다. 나의 출현에 저마다 놀람을 금치 못했다. 복순이의 입술은 세워놓은 닭알처럼 고정되여버렸고 준도의 눈섭은 제비날개마냥 파닥거렸다.
《어머닌?》
나는 제 목소리 같지 않게 부르짖었다.
《오빠!》
《형님!》
복순이와 준태는 나의 품에 와락 안기면서 엉엉 울어댔다.
《형님!》
준도는 무릎을 꿇고 앉더니 머리를 땅바닥에다 맞쪼으면서 엉엉 울었다.
《대체 어머닌 어디 갔어? 엉?》
그제야 옆집에서 내가 온줄 알고 우르르 달려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수가 없었다. 형제들에게 부축되여 어머니 묘앞까지 왔으나 난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무덤을 치며 목놓아울었다.
《어머니 이게 웬 일이세요? 말 한마디 없이 자식을 저버리다니요... 어머닌 뭔가 저하고 말씀하려 하셨는데... 깨여나세요. 아들이 왔어요. 준철이 왔어요. 준철이 왔어요!》
어머니는 영영 돌아가셨다. 3일분의 공자를 받으려고 《5.1》절에 일을 나가셨다가 와이야줄이 끊어지며 굴러떨어지는 통나무에 치여 잘못되였던것이다. 병원에 가서 6시간만에 숨졌는데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단다.
우리 형제는 련 며칠 울음으로 보냈다. 동네에서와 친척되는분들이 련이어 와서 동무해주면서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우리를 달랬으나 우린 앞이 막막하여 살것 같지 못했다. 어머니의 존재가 이처럼 위대하다는 것을 우린 비로소 느꼈다. 우리 형제는 어머니의 농궤를 열었다. 복순이가 궤속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여놓았다. 우리가 방학이면 사오군 한 옷감들이 그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지난 방학때 복순이와 함께 사왔던 속벌도 다치지 않은대로 있었다. 맨밑에 보자기 네 개가 있었는데 보자기마다에 꼭같은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우리 네 오누이들의 첫날옷감들이였다. 그리고 옷감속에는 500원짜리 저금통장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모두 우리 네 오누이의 이름으로 저금한것이였다.
우리 네 오누이는 또다시 목놓아 울었다. 현금 2천원과 첫날옷감, 이것은 어머니의 피땀이였다. 어머니는 마지막 한방울의 피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바쳤다. 우리의 미래에 바쳤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5년철이 지났다. 고향산기슭에 자그마한 봉분 하나를 남겨놓고 그저 소리없이 가셨다. 눈녹은 언덕에 파란 풀잎이 봄꿈에 녹아있다. 그속에 어머니께서 잠드시고 있다. 영원히, 영원히...

연변대학문학반졸업작품집《그녀의 세계》1987년 연변인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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