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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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라지는 고향
2012년 11월 11일 21시 29분  조회:5040  추천:1  작성자: 김인섭
사라지는 고향
                                                     김인섭  2012-0-07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사자성어는 동물의 귀소본능과 일부 어별들의 회귀본능과 맥을 같이하여 인간의 애향심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생물체의 귀가성으로부터 인출한 인류의 망향 정감도 동물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시류에 밀려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바닷가의 어디에 삶터를 잡은 역마살(驛馬煞) 나그네가 돌탄막급(咄嘆莫及)의 신세를 호소하기 위함이다. 만 사람이 한결같다는 향수의 발로이겠다. 장구한 나날 타향에서 헐떡이며 다녔어도 고향에 대한 모정(慕情)은 달아오를 뿐 식은 적이 없다.인제는 인생의 이순으로 바이없이 끌려가며 차차 여가도 많아지니 가슴속의 회향병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태생지로 내몰군 하였다.
 
늦가을 어느 날 용무차 시간을 내어 유소년 시절의 애환이 서려있고 생의 꿈을 키워주던 산간벽촌을 찾았다. 타지를 떠돈지 오래지만 마냥 고토를 등지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공사다망으로 부랴부랴 왔다가도 무심히 지나쳤을 뿐이다.여태껏 고향땅 모습이 아수라장이란 수풀 같은 소문에 귀를 주고 있다가 이번은 쪼아보기를 작심한 방문이었다.
 
내 고향은 연변의 어느 골짜기에 있는 안골 마을이다.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조선반도의 무자비한 인재(人災)와 가공할 천재를 대피하여 이 고장에 울짱을 박으려고 좁쌀 한 말의 대가로 풍수지리에 족집게라는 명풍을 모셔다 살자리의 택지(擇地)를 위촉하였다.두둑한 매복료(賣卜料)를 얻어챙긴 그는 여기저기 사곳을 누비다가 이 골안을 둘러보고 남녘 하늘을 향해 앙천축수하면서 가파롭게 올리벋은 뒷산은 서북쪽의 액귀를 막아주는 토지신이요 동남을 향해 탁 틔인 밋밋한 비탈은 풍년를 갖다주는 곡신의 놀이터인데 당신들의 명당이 다른 곳일 수 없는 바로 이 곳이란다.거기에 부연하여 윗쪽에서 흘러오는 석간수는 후손만대의 생명수요 앞쪽의 골개천 옹달샘은 장수를 키워내는 억겁의 령천인데 둘이 없을 길지라 간권(懇勸)하니 개척자는 귀가 번쩍 뜨이어 삽을 콱 박았다는 전설이다. 실로 그 천우신조의 은총이였던지 이 안동네에 해해년년 풍년이 찾아오는데다 아이들이 망백초(忘百草)로 건강하고 로인들이 학령(鶴齡)으로 장수하여 농사고장에다 장수촌이라 린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왕견(往見)하니,원래 간선도로에서 들어가는 토사도는 포장길로 멋진 탈바꿈하여 격세지감이 불끈 솟아올랐다.그래도 빛바랜 추억을 살리려고 승용차는 세워놓고 8리 길을 걸어 오른다. 마가을이라 갈걷이를 끝낸 들녘은 쓸쓸해도 경사진 곡저 량편에 계단을 이룬 전답이 예와 같이 정겨웠다. 헌데 지레짐작이 동인인지 지나치는 낯익은 동네들을 보면서 이 터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한 삶이 엿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직하였다.기억에 아련한 농가들이 세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하고 땅쪽으로 푹 가라앉아 그 모습이 구슬프기만 하다. 심란해진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다 개울을 가로지른 줄다리에 앉아 다리쉼을 하며 내리다 보니 때는 갈수기여서 작은 물줄기가 까까스로 흐르는데 뿌유스름한 물색이 눈깔스럽다. 그 옛날 구갈이 나면 시름없이 마시던 일급수가 탁수로 되어버려 마음이 읍읍불락(泣泣不樂)이다.어쩐지 세멘트 길바닥도 무척 서먹서먹하였다.
 
굶주리던 모진 세월과 발빈전쟁(拔貧戰爭)의 세파 속에서 끈끈한 정을 나누던 옛 이웃들을 마주하려 마을에 들어선다.허나 회억은 가슴에서 숨쉬나 눈앞의 현실에는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다.삼십여 호가 모여살던 터전이었는데 인적기 보이는 집은 대여섯 호 정도이다.거거의 대못으로 처깔한 집들 마당은 풀 풍년이고 돌담은 허물어지고 주저앉았고 어느 집은 기둥까지 썩어내려 눈이 호되게 시렸다.동네 탄생의 기념수인 아름드리 버들 밑은 한 길 되는 잡초가 꽉 서 있다. 가축들의 기척은 귀를 씻어도 안 들리는 마을에서 으쓱 무엇이 엄습하여온다. 장수촌이 몰락촌으로 일변하였다.
 
허전함에 헐헐거리다 죽마고우 옛친구와 마주했다.70고개가 보이는데 최년소라 촌민조장이란다.반짝이는 기억을 더듬으며 옛 이웃들의 안부에다 잡다한 일상까지 한담을 나누는 중 원주민들 거의는 외국으로, 도시로, 혹은 자식을 따라가고 남은게  6호인데 그 식솔이 합해야 11명이란다.그것도 로자,환자가 아니면 하느님의 분부대로 움찍거리는 약자들이다. 두메산골에 고고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린지 십년이 넘는단다.거자(去者)들이 버린 땅은 타민족들이 다루는데 이젠 그들이 가난티를 다 벗고 자가용으로 통근 농사를 하는 모양이다.세상이 이러하니 자기들은 입살이만큼 농사나 지으며 이럭저럭 살다가 때가 되면 떠날 생각이라고 속내를 꺼내 보인다. 내 고향 마당지기들이 씨가 바짝 마르고 있었다.
 
개혁개방이 경직된 낡은 체제를 수술대에 올리자 만백성은 가난의 사슬을 끊으려고 지동지서하며 치뛰고 올리 뛴다.약진하는 산업사회의 뒤를 따라 더 많은 점유와 신분 상승을 꾀하며 끝머리도 모르고 고공 줄타기를 한다. 이들 중 셈이 빠른 날파람군들은 마력을 발휘하여 부를 쌓았거나 도시민으로 기틀을 잡아가고 다부분은 소강상태에서 앉은걸음으로 어정거리는데 일부는 살인적 경쟁에 못배기어 고군약졸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각자위심(各自爲心)으로 변혁에 둔감했던 이들과 바이없는 순정파들, 역운을 탄 힘없는 사람들은 가난 설음을 감내하며 탯자리 지킴이로 전락하였다.
 
친구는 무척 반기며 마누라에게 음식 대접을 주문하고 아랫 마을의 옛 친구도 불러온다.근처에 가게가 없어 엉뚱한 장면이나 때우려 시내로 갈 때면 상비로 갖췄다는 비축분을 꺼내어 초졸한 술상을 차리고 백주잔을 나누었다. 하는 이야기란 집체화 나날에 추위와 기근에 허덕이며 이 산골에 동잇땀을 쏟던 이야기와 팽글팽글 돌아가는 세상을 따라 못간다는 이야기에다 누구는 어쩌고 나는 저쩌고 하는 한담객설인데 어쩐지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처량한 행여소리로 들리며 가슴살이 찌근거리었다.실로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이게 아닌가는 생각을 거뜬 올렸다 내리웠다.그래도 이 선량한 향토민들이 최후의 동네파수군들이고 이 사회를 떠받친 <조선족사회공정무한공사(朝鮮族社會工程無限公司)>의 영예로운 직원들임을 속저리게 느끼었다.
 
해넘이가 되어 발이 무거운대로 자리를 떴다. <이제 우리까지 떠나면 동네도 자취없이 사라진다.그러니 너두 지금 사는 곳을 고향으로 알고 잘 살기나 해라.정이 들면 고향이 아냐! 옛친구가 왔으니 한량없이 기뻐도 돌아간 뒤면  허탈에 빠져 한참 심화병을 해야 하니 다시 안 와도 괜찮을 같다!> 친구의 작별 인사말이다.유서깊은 이 땅은 만고불변이겠는데 이 나그네는 바야흐로 완벽한 실향민이 되고 있다. 
 
호텔에 돌아와 고향을 잃고 친구를 잃고 회억의 <낙시터>까지 깔끔히 잃는다는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며 저녁을 굶었다는 사실을 밤중에야 의식했다. 현대인들이 고향에 대한 련민의 깊이는 얼마일가!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하게 변해버린 고향을 어찌해야 할 지 앞이 오라가락하였다.오붓하던 그 산촌이 무너져 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휘영휘영하는 마음을 꽉 잡고 있을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용무로 만든 술자리에서도 동네 이야기가 이어졌다. 근디말이여! 여출일구(如出一口)로 네 마을만이 아닌 조선족 사회가 끝장이라며 한결같이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질러댄다. 북적이는 중생들이 돈방석을 노리고 태평세월을 찾아 맹이동하는데다 출산기 여인들의 대탈출과 생육 기피로 하여 민족의 관산이라 불리는 이 뜰이 인구의 격감.교육의 황페,경제의 기형이란 한파가 몰려와 위태로운 사지판에 오른지 한참 된다. 온 민족이 된 몸살을 해대는 이 터자리에 <대한(大旱)>이 들었다는 실감이 머리를 짓누르도록 몰려왔다.
 
리향민들 다수는 나름대로 물질적 포만감에 쌓여 급제했던 반가 도령의 금의환향보다 못할 게 없다고 배를 만지며 자부하고 있다. 가난이 덕지덕지했던 궁상을 벗어내치고 풍요의 시대를 즐기며 세시의 행사 때나 경조사 때면 멋있는 차림에 자가용으로 포장도로를 내달리니 옛적의 고을 원님도 부럽지 않으리라.그러나 번쩍이는 외형의 안쪽에서  득은 무엇이고 실이 무엇인가를 생각이나 할가. 금전만에 샛별눈을 박고 있으며 잃은 것들의 귀중함이나 후대의 훗날은 꿈에나 꿀가!
 
이국 땅에서 말 못할 천대와 기시를 받으며 번 아까운 돈을 술놀이,카라오케,외적인 과시에 마구 날리며 전통과 문화의 계승에는 뒷전이고 후대의 민족언어 교육마저 시원히 팽개치는 게 남이 아닌 우리의 숱한 갑남을녀들이다.그렇게 귀한 애들을  반숭건숭 인간으로 전화시키는 싸가지결핍증 행실을 보며 <한숨이 구만 구천 두>이다. 가부간 조선족 공동체가 꺼져 내리고 그 문화가 불티나게 사라지는 게 확연한 모습이며 민족 절멸의 동녘이 보일보 다가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돈 번 뒤에 민족 상실이라면 이는 적자 장사에다 <장사 끝에 살인 난다.> 이다.
 
어느 땐가 철학 교원이 사회 발전은 파도식, 라선식의 전진상승이라고 력설하던 기억을 더듬는다. 이 영구진리와 조선족 사회에 등식을 세우려는데 이 둔한 머리로선 해법이 없었다.해진 군복에 낡은 총검을 차고 세계의 최강이라 뽐내던 일본 관동군을 향해 당장 네 땅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치던 주덕해 선생이 보고 싶었다.그는 애국애족의 불굴의 정신으로 당찬 조선족 사회를 건설하여 중화민족에 불후의 업적을 남기었다.그 본전을 후손이라는 뭇사람들이 빡빡 긁어 먹는 때 이 영걸이 재출현한다면 작게 반가우랴.
 
그러나 이는 푼수데기의 토막생각 이상은 아닐 것이다.급진급변을 거듭하는 디지털 시대에 사회의 변혁과 진보를 어느 한 카리스마적 호협한에 기대어 실현하다는 환상은 구시대적 정치 유물로 된지도 이슥하다.다름 아닌 조선족 공무원들의 <과학발전,여세추이(與世推移)>의 탁월한 지혜, 지성인들의 창조정신과 민족의 신념각성이 더없이 필요하다.설법은 간단하나 심중한 심혈의 대가를 치러야 될 것이다. 고향과 문화가 사라지고 후대까지 사라진다는 오늘, 단결기래도명천(团结起来到明天)!※ 을 웨칠 때가 래일이 아닌 지금이다.
 
타향에서 삶을 꾸리는 내 같은 무리들은 생계 전쟁이 미완의 과제이다. 다만 기한에 허덕이며 동년을 자랐고, 섬찍한 동란에서 청소년을 보내었고, 개혁개방 시기는 지동지서로 헤매이는 긴긴 날이었는데 인생의 저녁엔 고향의 상실과 민족의 리산이란 고배를 마시며 개팔자 인생을 보낸다는 기분에 오늘도 가슴앓이 시련을 받고 있다.
 
자기의 무능함은 애써 숨기는 뒤소리군이지만 고향만은 사랑스럽다.그 <왕가물>이 든 땅에 <삼춘고한(三春苦旱) 가문 날에 감우(甘雨)가 오니 즐거운 일>라도 없을가! 파아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시내가의 실버들이 춤추던 동네에 사과배꽃,살구꽃,아기진달래가 활짝 피는 그 날을 돈수재배하며 기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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