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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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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시인 김응룡 篇
2024년 08월 23일 05시 01분  조회:507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응룡 시인
2014년 08월 12일 16시 58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심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훈춘에 계시는 김동진시인과 그의 시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방송국, 잡지사에서 편집사업을 맡아오시면서 우리 문단을 장식해온 김응룡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응룡시인은 많은 문학인들을 탄생시킨 두만강기슭-화룡시에서 탄생한줄로 알고있습니다. 두만강과 문학은 어떤 필연적인 련관이 있는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먼저 김을룡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지요.
 
림-네, 김응룡시인은 1946년7.11. 길림성 화룡현 덕화향 유동촌 소유동골에서 출생, 선경대 그 아래. 유동하기슭. 좀더 내려가면 길지촌, 덕화향, 남평진, 맞은켠은 두만강건너 조선 이 부근에 많은 문학인들이 산출, 로과에 리욱선생(비록 여기서 태여나지 않았지만), 최룡관,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등 허씨3형제, 길지촌에 박장길, 김영건, 김응룡, 최홍일도 이 부근 하향 등
 
신-원래 형제가 여러분이였는데 후에 병으로 사망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그는 화전농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국가급 풍경구인 선경대아래골인 소유동에서 화전을 일구고 감자와 보리를 심어 식구들을 먹여살리였다. 그의 우로 형 둘과 누이 둘이 있었는데 형 둘과 누이 하나가 전염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자 아버지는 막내아들(후에 남동생이 하나 생겨났음)인 그마저 잃을가봐 사주팔자를 잘 보는 로인을 집에 청해놓고 그의 이름을 짓게 하고 또 그의 평생 사주를 쓰게 하였다. 하여 그의 가문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만자돌림이였으나 그만은 이름을 응룡이라고 지었다.


신-이름을 바꾸었는데도 여러차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이름이 좋아도 그는 어릴 때부터 내내 죽음의 신을 뒤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살을 잡는 해의 추석맞이때였다. 어머니등에 업혀 물레방아간에서 어머니가 방아를 찧는것을 보아온 그는 어머니가 제사상을 차리려고 기름떡을 굽는 사이에 아장아장 걸어서 방아간에 가 어머니처럼 방아확안의 쌀을 번지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방아확에 빠졌는데 방아공이 내리치자 얻어맞아 정신을 잃었다. 그때 어머니가 찾으러 나왔으니 망정이지 방아공에 한번만 더 맞았더라면 물아이였던 그는 진작 죽고말았을것이다. 또 한번은 그가 다섯살이 되던 해 봄이였다. 그의 집은 두만강변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이튿날 그 때는 1952년, 조선전쟁이 치렬한 때라 강건너 조선의 신작로로 중국인민지원군이 이틀 낮과 밤을 이어 전선으로 나가고있었다. 그는 군대들의 자동차며 땅크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풀리려고 버석버석해진 얼음우로 건너가다가 그만 얼음이 꺼지는바람에 물에 빠지고말았다. 다행히도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옥동이라는 처녀가 발견하고 기겁한 소리를 치자 그의 아버지가 달려나와 겨우 그를 건져냈다. 그 외에도 일곱살때 백일해에 걸려 죽을번하던 일, 강변에서 놀다가 뱀한테 물려 죽을번하던 일, 개한테 물려 범의 고기를 먹고 살아나던 일… 15살에 급성페염, 급성신염 등 합병증이 와서 다 죽게 되였는데 마침 연길현간부휴양소가 마을앞에 있어 휴양소 의사들의 극진한 치료를 받아 또 한번 사경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그 흔적으로 소년이였던 그의 머리는 반나마 희여버렸다. 그래도 죽음의 고비마다 귀인들이 나타난것은 아마도 이름 덕을 입은것 같다.

신: 그같은 일들이 그의 문학의 길에 어떤 힘을 주지 않았는가 생각하는데요.
 
림: 그는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오면서 생명의 귀중함과 그런 고비마다 사랑의 손길을 뻗쳐준 사람들한테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이 되는 도리를 조금씩 깨우쳐왔다. 이 모든것은 아마도 후날 그가 작가로 시인으로 될수 있은 밑거름이 되였으리라.
그는 아홉살에 13리나 되는 먼 곳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래서 학교로 오가는 길에 책을 들고 걸으면서 암송 같은 숙제를 하고 손에 들어오는대로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신-초중때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면서요? 그때 어떤 작품을 썼습니까?
 
림-네 초중때 《참외에 깃든 이야기》란 아동소설을 써서 연변방송국에 응모작품으로 보냈는데 뜻밖에도 우수상으로 입선되여 상을 받게 되자 그는 문학에 대한 뜻을 더욱 확고히 굳히게 되였다. 초중시절의 반주임선생이였던 남흥범선생님은 문학에 집념하는 그를 기특히 여기고 의식적으로 인도하고 지도해주었다. 그래서 초중을 졸업할 때는 일정한 문학수양을 갖게 되였다. 초중을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지망을 쓸 때 가정살림이 구차하여 아버지 뜻대로 연변사범에 지망을 썼는데 조선어문이 만점을 맞는 기적을 내여 화룡고중에서 먼저 입학시키는 바람에 사범학교로 못가고 화룡고중을 다니게 되였다.
1967년 화룡고중졸업. 문화혁명이 일어나 대학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68년 8월 고향에 돌아와 민영교원-남평소학교에서 1970년까지 교원을 하다가 (이때 학생가운데 박장길시인이 있음) 화룡현 중학교교원훈련반에 가서 근 8달동안 학습하고 덕화향 경흥중학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는 이 시기에 시와 아동문학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1972년에 연변작가협회에 가입. 이런 덕으로 1974년 8월 덕화향문화소에 소장으로 전근.
공사문화소사업을 하는 기간 김성휘시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사의 아침》이란 덕화공사시집을 편집출판했으며(정식출판) 길림성 모범문화소의 영예를 따냈다. 1978년 5월, 그는 연변방송국 오태호주필의 안중에 들어 곡절끝에 전근수속을 마치고 연변방송국에 전근이 되였다.
방송사업을 하는 기간 그는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함수공부를 하면서 청소년프로를 당담했기에 몹시 분망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사업의 수요로 가끔 아동문학작품과 가사만을 썼을뿐 어려서부터 사랑해온 시는 별로 쓰지 못했다. 1985년에 함수졸업. 방송국청소년부 대리주임. 문학부부주임으로 사업.
신: <연변문학>에 전근되여서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편집과 창작에 몰두하였다고 들었는데요.
 
림:1988년 12월, 연변문학월간사에 전근이 되여서야 그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을 편집하는 한편 문학에 대해 재학습하게 되였다. 당시 그는 주관적으로 편집자가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하면 과외작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것이라고 인식하고 수필, 실화, 시를 닥치는대로 써서 발표했다. 이때 그는 수필편집, 실화문학편집, 시편집 등을 맡았댔는데 시문학작품을 편집하게 되자 그는 여러 류파의 시리론 특히 현대시리론을 알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학습에 게으르지 않았다. 나중엔 시평론실 주임도 맡아하면서 학습과 창작실천과정에서 그는 시란 심미적이고 정감적이고 생명의 상징이여야 한다는것을 깨우치게 되였고 그의 시에 이런것을 체현하려고 노력했다. 2006년 8월 정년퇴직.

신-그렇다면 김응룡시인에게는 어떤 작품들이 있으며 또 지금 정년퇴직후에도 많은 사업을 펼친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계십니까?
 
림-1969년에 시 “빈하중농호장”을 처녀작으로 발표하면서 아동서사시 “붉은 사과”, 덕화공사 시집 “공사의 아침”편집, 방송드라마 “산골마을의 아이들”, 동화그림책 “알룩이와 흰둥이”,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 등 백여수 성인가사 “그리운 고향길” 등 수십수.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인작품쓰기시작했는데 실화문학작품 “사랑의 손길”, 수필 “망돌” 등 50여편, 시 150여수 많은 가사를 창작,
시집 “잔디풀의 작은 사랑”,
황장석시인과 합작하여 장편실화소설: “얼의 몸림”, “삶의 선택”, “물속의 불”, --주로 기업가들의 일대기- 그중 리송웅도 있음.
역시 황장석시인과 함께 “숲속에서 맺은 사랑”이란 소설집을 번역
그리고 대형문학총서 “두만강”, 단풍수필회 비전기간행물 “단풍잎” 연변시인협회에서 꾸리는 시문학총서 “시향만리”등의 편집에 참가.
중앙문화부를 비롯한 8개부문에서 공동주회한 “전국 “꽤꼴새컵”동요창작콩클에서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가 1등상을 타는 등 전국 성주 우수 문학창작상 수십차 수상.
한국 “문예시대” 해외동포문학상 수상.
현재: 연변시인협회 부회장 겸 비서장.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아동문학연구회 비서장. 시총서  "시향만리" 편집, 조직자의 한사람, 등
 
신-실로 많은 작품창작과 문단활동들을 펼친 김응룡시인이였습니다. 그럼 먼저 시골 외톨이들의 현실상황을 아프게 쓴 그의 시 "기다림"을 감상하고 림선생의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림
 
김응룡
 
정오무렵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개가 짖는다
컹컹
마을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 보고
이 집개 저 집 개
짖어댄다 목 메여 짖어댄다
산비탈 메밀밭에서
다락논에서
김을 잡던 외기러기 사내들
약속이나 한 듯
일손 놓고 일어선다
행여
행여…
저마다 부서지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신: 농촌의 현실생활에 눈길을 돌린 시였는데요 해설부탁드립니다.
 
림-녀성이 없어진 우리 농촌들에서 살아가는 외톨이 사내들이 정오무렵에 한적한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에 대한 동일한 눈길을 통하여 리향, 해외로무송출 등으로 인한 부부리산의 아픔, 로총각들의 결혼난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농촌에서의 가정의 해체화 경향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실존상황을 아주 짧지만 특색 있는 모멘트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준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시제목 "기다림"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다. 혹시 마을에 여인의 그림자라도 나타날가고 기다릴수도 있고 한국간 친척이나 안해를 기다릴수도 있고 장가갈 그 날을 기다릴수도 있고...
 
신: 네농촌의 현실을 그려낸 김응룡시인의 시 <기다림>이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시<까치둥지>를 감상하겠습니다.
까치둥지
         김응룡
 
지는 잎들이 받들어 올린
까만 그리움 하나
백양나무 가지에 동그랗게 걸려
쳐다보는 나의 눈 이슬 젖는다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
주인은 어데 갔나
동구밖 나선 할배할매 눈이 허는데
반가운 기별은 전하지 않고
늙은 총각들 술병 안고 쓰러졌는데
오작교는 놓지 않고
생기가 떠나간 자리
까만 그리움 하나
행복했던 나날들이 락엽되여 뒹구는 시골
백양나무가지에 높이높이 걸렸구나
 
신: 백양나무에 걸려있는 빈 까치둥지를 통해 생기를 잃어가고있는 농촌의 전경을 그려내고있습니다.
 
림- 이 시에서는 우리 농촌에서의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을 나무에 달린 빈 까치둥지에 비해 표현했다. 까치는 사실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새이다. 그러나 그런 길상스런 까치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밖에 남기지 않고 애오라지》 《까만 그리움만 하나》만이 《백양나무 우에 높이 높이 걸렸구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민족적인 우환의식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정서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민족적 사명감에서 우러난 김응룡시인의 우환의식을 잘 보여주었다. 민족적인것이 사라져가는 농촌의 현실에서 느낀 진실한 정서를 비교적 생동한 시적 형상화를 통해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이 시는 한국《문예시대》2006년 해외동포문학상수상작
신: 급속한 사회의 발전에 비해 피페해진 농촌의 현실을 밝힌 시였습니다.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향수>입니다.
향수
 
김응룡
삶은 올감자에
하얀 김이 서리고
된장 찐 풋고추 향을 피워 올리면
내사 65도 배갈
한 병 마셔도 취하지 않소
앞강의 여울소리
긴긴 전설 풀어내고
숲속의 새들 딸기빛 사랑을 노래했소
젊은 시인은 심장을 뽑아
미루나무에 걸고
둥둥 북을 쳤소
먼먼 지평선 저쪽
내가 태를 묻은 땅이 있으련만
강물의 여울소리도
새들의 사랑노래도 들리지 않고
안개만 자욱하오
불볕에 달아오른
세멘트길 따라
홍개미 한 마리가 포복전진하오
35도 배갈에 취해
비틀 비틀
 
신: 역시 농촌의 실생활에 눈길을 돌리고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시인의 고향은 앞강건너 저쪽 먼곳의 지평선저쪽에 아득히 보인다. 허나 갈수가 없는것이 또한 현실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눈앞에 비쳐지는 것은 사랑도 희망도 빛바래진 농촌의 현실이고 그 속에서 정신상태가 허전하여  술이나 마이며 마음을 추슬리려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 시에는 쓸쓸함과  눈물이 반죽되여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이러한 시들은 우리 농촌의 쓸쓸한 통곡소리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마지막 부분에 홍개미가 포복전진한다는것과 술취한 작품중인물이 비틀비틀하며 겨우 한발작씩 전진한다는 표현이 아주 재치있어보인다. 이런 시적 형상화와 표현은 힘들게 향수를 참으면서 하루하루 한발작씩 옮겨디디며 살아가는 고달픈 정서를 더욱 짙게 해준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시골개구리들의 울음>입니다. 역시 농촌의 정경을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시골개구리들의 울음
 
김응룡
 
어둠이 깃든 시골
개구리들이 운다
눈물도 없는 개구리들이 울음
높이 질벅하다
비도 오지 않아
강가 모래불에 묻은 엄마
물에 밀려갈 근심도없는데
왜 우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이 우는 리유
아는지 모르는지
이영이 고삭은 초가에서
진작 잠에 곯아떨어진 늙은 량주
꿈을 꾼다
꿈에 안아보는
손자손녀 재롱에
행복의 웃음 느침으로 흘러내려
베개잇 적신다
이 시골 인적
늙은 량주마저
초가에 묻힐가바
개구리들은 운다
밤새껏 밤새껏
 
신: 농촌에 내려가면 시상이 잘 떠오르는가 봅니다. 비록 도시에서 생활한 경력이 더 길지만 농촌제재를 많이 다르고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시도 농촌에 내려갔다가 느낀 감수를 적은것같은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 고향에 간 시인은 현대적인 문화향수에 푹 빠져 보내던 도회지와는 달리 밤에 우는 개구리소리를 듣게 된다. 문화도 없고 아예 늙은 량주밖에 안남은 그런 시골, 한산하기 그지없고 고적하고 스산하고 괴괴한 그 저녁 그저 하염없이 우는 개구리소리만 들린다 시인은 이제 늙은 량주만 늙어서 사망하면 이 시골은 완전 인적이 없어진다. 즉 사람냄새가 영영 없어진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초가에 늙은 량주가 묻혀없어질가봐 개구리가 밤새껏 운다고 한다. 역시 사그라져가는 시골의 삭막한 풍경에 대한 시인의 애탄의 목소리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시는 <창졸한 시절>입니다. 젊음을 잃은 아쉬운 마음을 담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창졸한 시절
김응룡
 
꽃은 그때 벌써 다 지고
죽은 나비들의 장송곡이 슬펐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
 
눈물이 떠나간 자리에
아직 죽지않은 뼈들이 숭숭 구멍나는데
고해의 끝은 어디
굼실대는 저 파도우
지는 별이 차갑다
 
생명의 페지를 아무리 번져도
가장 빛났던 페지는 그 한장
행복도 그속에서만 파랗게 열기뿜는데
돌이켜 번질수 없는
오 창졸한 시절이여
 
신: 세월이 원쑤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느끼고 경험했던 그런 감수를 적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림—고향에 있을때의 그 청춘시절 젊은 시절이 너무도 빨리 창졸하게 흘러간걸 아쉬워하는 마음을 시화했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여기서 지렁이는 울뚝 돋아오른 피줄을 비유한것이고 그 지렁이가 세월이 가지말라고 모지름쓰지만 허사이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우물>입니다. 우에서 감상한 시들과 비슷하게 농촌전경을 빌어 시인의 감수를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우물
                          김응룡
페허로 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
하늘이 좁다고 울던 개구리들
강따라 사방 흩어지고
돌담벽에 돋은 푸른 이끼
사라지는 농경세월 손저어 바래거니
시이미지 쫓던 이 붓대
갈팡질팡
 
신: 아주 짧은 시지만 사회현실을 잘 보여준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림-페허로 된 마을, 스산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밖에 안남았다. 그 우물속에서 울던 개구리들도 이젠 다가 강따라 골안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돌담벽엔 이끼만이 외롭게 푸르러진다 어딘가 락후햇지만 인심이 아주 후했던 농경세월은 차츰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휑덩그렁하고 스산한 살풍경이 된 고향에서 시인은 뭔가 쓸수가 없어, 정서를 흘릴수가 없어 붓대가 갈팡질팡 허공에서 헤매인다…여기서 또 하늘이 좁다고 울던 우물안의 개구리는 결국 시골세계가 너무나 좁다고 웨치며 그 어떤 꿈을 안고 버덕으로 도회지로 떠나간 사람들을 상징한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시는 <감자 두알>입니다. 우에서 감상했던 시들보다 더 슬프고 쓸쓸하게 농촌의 분위기를 그려낸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감자 두알
김응룡
이글거리던 숯불도 꺼지고
화로를 마주한 할머니와 손자
주고받던 이야기도 꺼지고
이제 남은 재불엔 감자 두알

인적 끊긴 마을이라
개도 일찍 잠들어
밤이 긴 도포자락 끄는 소리만
스르럭 스르럭
이따금씩 문풍지 울린다

다가는 인생과
막 시작하는 인생을
익은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흰김이 이어주어
아직은 온기가 도는
시골 초가의 밤
 
신: 할머니와 손자의 내일이 근심되는 쓸쓸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림-령감도 없는 홀로인 할머니와 아빠 엄마도 없는 형제도 없는 홀로인 손자 합했자 둘이서 마주 앉아있다. 분위기가 어딘가 외롭고 조용하고 적막하다. 그래서 숯불도 이글거리는 숯불이 아니고  화로불 개도 일찍 잠들다. 인적이 없으니 개가 짖을일이 없게 됐고 그래서 더구나 적막강산. 거기다가 또 밤이니.
그래도 시인은 완전히 식은 모습에 붓을 놓아버리지 않고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휜김속에 그 조그만한 온기를 되살려 준다. 미소하나마 그래도 그 어떤 묘연한 희망을 살작 얹어주는 배려를 보였다. 가는 인생은 가더라도 아직 어린 손자 그는 오는 인생이요 시작하는 인생이니깐. 희망같을걸 얹어주는 배려를 보여준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유리창>입니다. 유리창을 생기발랄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록있는 시입니다.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유리창
                 김응룡


님아
너 상금도 기억하느냐
우리들의 숨결이 닿아
정열의 눈물 흐르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안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밖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서로서로 애타게
갈망하면서도
마음의 빗장 못열어
별만 쌍쌍
얼어붙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님아
그 유리창은
지금도 그 곳에
그 모습 그대로 달겨있고
소쩍새는 지금도 그날 밤처럼
그렇게 슬피 울고있어
님아
우리 함께 가자
그 시절 그 유리창가로
그리고 세월의 울타리 넘어
마주서 보자
너의 한쌍의 새별을
나의 한쌍의 새별을
그럼 축복같은 눈이
너와 나의 머리
하얗게 덮어놓고
꿈같은 옛말을 들려줄거야
 
신: 생기와 정열로 차넘치던 청춘시절의 사랑을 샛별눈을 빌어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림-사랑시다. 사춘기시절, 서로 창을 두고 눈사랑하고 기다리고 숨어서 보고 애타게 그 얼굴 그모습, 그 눈동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때 그 순진한 티없는 사랑.
지금처럼 대놓구 말하지도 못하던 전통적인 사랑, 수집은 사랑, 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쿵-쿵 방아찧던 그런 사랑을 진솔하게 시화했다.
구성상으로 보면 님아가 세번 첫번째 님아로부터는 그때 젊음의 새별같은 눈동자가 유리창을 사이두고 얼어붙던일, 두번째 님아로부터는 지금도 그 유리창이 그냥 그 자리에 달려있다는 (혹은 기억속에 달려있다는) 세번째 님아로부터는 우리가 다시 그 유리창창가로 즉 그 추억속으로 다시 가자는 가서 추억의 눈을 맞으며 서로 그때의 콩콩 뛰던 가슴을 얘기하자는 걸 썼다. 그래서 구성상에서도 흩어짐 없이 아주 정연하고 자연스레 흘렀고 아주 째였다.
 
신-네 김응룡시인에게는 시작품외에도 수필, 소설, 드라마, 실화 등 다양한 문학장르의 작품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의 시작품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더 넓은 범위에서 살펴보면 좋겠지만 시간상관계로 오늘은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이 시간 문학살롱프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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