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우주' 경매가
132억 넘어…
한국 미술품 '최고'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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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조금 전 홍콩에서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가장 값비싼 작품이 나왔습니다. 김환기 만년의 대작 '우주'가 132억 5000만 원에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우리 미술품이 100억 원 넘는 가격에 경매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권근영 기자입니다.
[기자]
[크리스티 홍콩경매소 : 8800만 (홍콩)달러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 돈으로 약 132억 5000만 원, 지금까지 경매된 한국 미술품 중 가장 높은 가격입니다.
1971년 뉴욕의 화랑에서 처음 전시된 '우주'는 김환기와 절친했던 외과의사 김마태 씨가 구입해 48년 동안 간직하다가 이번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김환기는 두 폭의 캔버스에 커다란 원을 그리듯 파란 점을 찍고 또 찍어 '우주'를 완성했습니다.
이 그림은 지난해 85억 원에 팔린 김환기의 또다른 추상화 '붉은 점화'의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경매된 한국 미술품 10점 중 9점이 김환기의 것입니다.
단순하고도 숭고한 아름다움,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 미술의 흐름과 함께 한 그의 작품이 점점 각광받고 있습니다.
[에블린 린/크리스티 아시아 미술 부회장 : 홍콩에서 전시하면 많은 사람들이 김환기를 잘 몰라도 그의 그림에 매료됩니다.]
106년 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달항아리와 매화 같은 전통적인 소재를 사랑했습니다.
쉰 살 되던 1963년 낯선 뉴욕으로 건너가 새로운 미술에 도전했습니다.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2012년) : 그 하나하나가 점을 찍을 적에 당신이 생각했던 사람도 있고 산도 있고 별도 있고 그랬어요.]
고향인 안좌도 섬마을의 뻐꾸기 소리를 추억하며, 먼 곳의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며, 노화가가 찍은 무수한 점들은 이제 한국 현대 미술의 문을 활짝 연 별이 됐습니다.
(화면제공 : 환기재단 환기미술관)
(영상그래픽 : 오은솔)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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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우주',
한국미술사 새로 썼다…
132억원 낙찰(종합)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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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홍콩 경매서 한국 미술품 첫 100억원 돌파
작가 추상화 최대 크기·유일 두폭화 희귀성·예술성 인정
김환기, '우주'(Universe 5-IV-71 #200), 1971[크리스티코리아 제공]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1913∼1974)의 대표작 '우주'(Universe 5-IV-71 #200)가 100억원을 훌쩍 넘기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우주'는 23일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1억8천750만원(8천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이는 구매 수수료는 포함하지 않은 가격이다.
수수료를 뺀 낙찰가 기준으로 한국 미술품이 경매에서 100억원 넘는 가격에 팔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20세기&동시대 미술 이브닝 경매 하이라이트 작품 중 하나로 선보인 '우주'는 시작가 약 60억원(4천만 홍콩달러)으로 출발, 치열한 경쟁 끝에 예상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전화로 경매에 참여한 고객에게 돌아갔다. 낙찰자는 크리스티 뉴욕을 통해 경매에 참여한 외국 컬렉터로 추정된다.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인 '우주'는 김환기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폭화다. 254×127㎝ 독립된 그림 두 점으로 구성돼 전체 크기는 254×254㎝에 달한다.
김환기 작품 중에도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그림으로,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작가의 말년 뉴욕 시대에 완성했다. 자연의 본질을 담아내려고 한 김환기 예술사상과 미학의 집성체로 평가된다.
작가의 헌신적인 후원자이자 각별한 친구, 주치의였던 의학박사 김마태(91)씨 부부가 작가에게 직접 구매해 40년 넘게 소장했다. 1971년 완성 이후 경매 출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환기 작품은 한국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1년 6개월 만에 자체 경신했다.
직전 최고가는 김환기가 1972년 그린 붉은색 전면점화 '3-II-72 #220'가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기록한 낙찰가 85억3천만원(6천200만 홍콩달러)이다.
김환기 작품은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순위 상단을 독차지했다. 9위 이중섭 '소'를 제외한 상위 10위가 모두 김환기 작품으로 채워졌다.
이날 경매 결과는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쾌거로, 김환기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재평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홍콩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 그랜드홀에 전시된 김환기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 #200). 이 작품은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사상 처음으로 낙찰가 100억원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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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이 한국미술품 최고가 다시 깰 것"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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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린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20세기&동시대 미술 부문 부회장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홍콩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 그랜드홀에 전시된 김환기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 #200) 앞에 선 에블린 린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20세기&동시대 미술부문 부회장. 2019.11.23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우주'는 경매시장에 등장할 때마다 늘 새로운 기록을 남길 것입니다. 이 작품만이 김환기 기록을 다시 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3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 낙찰 기록을 세운 김환기 '우주'(Universe5-IV-71 #200)에 대한 에블린 린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20세기&동시대 미술 부문 부회장의 평가다.
경매에 앞서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만난 에블린 린 부회장은 '우주'의 한국미술품 최고가 달성을 확신하며 "이번 기록은 기념비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한국 작품이 예술성과 희귀성을 모두 갖춘 '우주'의 기록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자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한국 대표 작가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김환기 전면점화 가운데 가장 크고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우주'는 실제 이날 경매에서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대만 출신 에블린 린 부회장은 소더비에서 14년간 근무하고 지난해 크리스티로 옮겨 동아시아 미술품 경매를 총괄한다. 2013년 장판즈의 '최후의 만찬'으로 당시 아시아 동시대 미술 경매 최고가 경신을 끌어내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2015년 홍콩에서 기획전을 열어 한국 단색화를 처음 선보이는 등 한국 근대 미술을 세계 시장에 소개하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김환기와 '우주'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에블린 린 부회장은 "한국 미술에 관심이 많고 특히 김환기 작품을 좋아한다"라며 "지난 10년 가까이 김환기 작품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갈 때마다 '우주'가 위탁 전시된 환기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정말 훌륭하다고 느꼈다"며 "세계 시장에 내놓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우주'는 김환기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김마태 박사가 작가에게서 직접 사들여 소장한 작품이다. 서울 환기미술관에서 대여해 전시했으며, 경매에는 이번에 처음 나왔다.
김환기와 김 박사는 1950년대 초반 부산 피란 시절 우연히 만나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김 박사는 1953년 25세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고, 김환기는 1956년 프랑스로 떠났다. 김 박사는 성공한 외과 의사가 되고, 파리에서 3년간 서양미술을 접하고 서울로 돌아온 김환기는 1963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뉴욕에서 재회한 이들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지고, 김 박사는 많은 김환기 작품을 구매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컬렉션인 '우주'는 1971년 포인덱스터 갤러리에서 열린 김환기 첫 뉴욕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당시 전시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할 만큼 작가도 큰 애정을 가졌다.
김 박사는 40여년간 소장한 '우주'를 마침내 시장에 내놓기로 하고, 지난여름 여러 경매사 중 크리스티를 선택했다. 동아시아 미술 담당자인 에블린 린 부회장이 뉴욕으로 날아갔다.
에블린 린 부회장은 "'우주'를 큰 무대에 내놓는 날을 오래도록 꿈꿨는데 이뤄졌다. 운명적이었다"고 당시 감격을 전했다.
경매를 앞두고 전시장에 걸린 '우주'는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에블린 린 부회장은 "붓으로 점을 찍듯 작업해 자연스러운 번짐이 있는 작품에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라며 "많은 색을 써서 화려하게 그리기는 쉽지만, 색을 절제하면서도 다양한 푸른 빛을 낸 김환기는 정말 위대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김환기와 한국 미술 작품이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그는 "서양 미술계에서도 '우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라며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미술이 국제무대에서 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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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
김환기 작품 '우주' 131억여원 낙찰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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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달성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작품 ‘Universe 5-IV-71 #200’(1971년 작·일명 ‘우주’). ‘우주’는 이날 저녁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800만 홍콩달러(약 131억8750만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코리아 제공.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1913~1974)의 작품 ‘Universe 5-IV-71 #200’(일명 ‘우주’)이 23일(현지 시간)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800만 홍콩달러(약 131억8750만원)에 낙찰되면서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거듭 경신해온 김 화백의 작품이 이날 기존 최고가 기록을 다시 깬 것이다. 한국 현대 미술작품이 경매에서 100억원을 돌파한 것도 처음이다. 또 ‘우주’가 최고가를 차지하면서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상위 1~10위 가운데 김 화백의 작품이 9개에 이르는 대기록도 세워졌다(이중섭 화백의 ‘소’가 9위다). 미술계에서는 한국 작가의 작품값이 100억원 대를 넘어서면서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의 입지가 다져지고, 향후 김 화백은 물론 한국 화가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1971년에 미국 뉴욕에서 그려진 작품 ‘우주(Universe)’는 푸른색 전면 점화(點畵)로 김 화백의 전성기 화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걸작으로 평가받아 왔다. 김 화백 작품 중 유일하게 2폭 짜리이자 크기도 가장 크다(254×127㎝×2㎡). ‘우주’는 김 화백의 후원자로 미국에서 활동한 의사 김마태씨와 부인 전재금씨가 작가에게서 직접 구입, 40여년 소장해왔다. 경매에 나온 것도 이번이 최초다.
‘우주’는 이날 저녁 홍콩 완차이의 컨벤션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의 ‘20세기와 동시대미술 이브닝 세일’에 17번째로 출품됐다. ‘우주’ 경매는 시작가 4200만 홍콩달러로 막을 열면서 경합이 벌어졌다. 치열한 경합 끝에 결국 전화로 응찰한 낙찰자가 시작가의 2배가 넘는 131억여 원의 최고가를 부르면서 경매는 마감됐다. 낙찰자는 경매 특성상 신원이 공개되지 않지만, 외국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이자 김 화백 작품의 최고가이기도 했던 기존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6200만 홍콩달러(약 85억3000만원)에 낙찰된 붉은색 점화 ‘3-Ⅱ-72 #220’이다. 2017년 4월 케이옥션 서울경매에서는 푸른색 전면 점화 ‘고요 5-IV-73 #310’가 65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김 화백의 작품이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처음 기록한 것은 2015년 10월이다.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1971년 작품 푸른색 전면점화 ‘19-Ⅶ-71 #209’가 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되면서 직전 최고가 기록이던 박수근 화백의 작품 ‘빨래터’를 뛰어넘었다. 이후 김 화백의 작품은 자체 경신을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도재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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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新 기원 연 김환기…
"세계시장이 주목할 것"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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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품 최고가 10위 중 9개 김환기 작품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김환기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 #200)가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사상 처음으로 낙찰가 100억원을 돌파했다.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김환기 대표작 '우주'(Universe 5-IV-71 #200)가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예상을 크게 웃도는 가격에 판매되며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국내 미술품 사상 최초로 경매 낙찰가 100억원 돌파가 기대됐던 '우주'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단숨에 130억원대를 기록했다. 한국 미술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대기록 세운 김환기 대표작 '우주'
김환기 작품 가운데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우주'는 경매 출품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1971년 완성 후 경매 시장에 처음 나온 데다 예술성, 희귀성을 모두 갖춰 낙찰가 100억원 돌파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그동안 많은 미술계 '큰손'들이 손에 넣고자 했고, 경매사들도 이 작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경매에서도 국내외 컬렉터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시작가는 약 60억원(4천만 홍콩달러)이었으나 추정가 상단인 95억원 선을 순식간에 넘고 100억원마저 돌파했다. 현장에 묘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전화로 참여한 두 입찰자 간에 치열한 경합이 벌어져 가격은 132억원까지 치솟았다.
일각에서는 홍콩 정세 불안 등으로 낙찰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기우였다.
별을 상징하는 푸른 점들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 '우주'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완성된 뉴욕 시대 대표작이다. 김환기 특유의 점화 중에서도 정신적, 기술적으로 완전히 성숙한 단계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환기는 1970년께 얇은 서예 붓으로 수묵화를 그리는 기법으로 전체 화면에 점을 찍는 전면점화를 선보였다. 이후 타계할 때까지 캔버스를 내려다보면서 한 점씩 찍어나가는 작업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로 인해 척추신경이 손상될 정도였다.
'우주'는 김환기 전체 작품 중 가장 폭넓은 푸른 색조를 사용한, 가장 큰 그림이다. '환기 블루'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푸른빛은 김환기를 대표하는 색이다. 작가가 남긴 유일한 두폭 그림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작가의 추상화 가운데 완전한 원형 소용돌이 형태가 나타나는 드문 작품이기도 하다.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김환기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 #200)가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사상 처음으로 낙찰가 100억원을 돌파했다.
◇ "한국 미술 재평가 계기 만든 쾌거"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우주'를 가장 귀한 작품을 소개하는 20세기&동시대 미술 부문 '하이라이트 이브닝 경매'에 올리고 별도 도록도 제작하는 등 공을 들였다.
이날 경매에는 김환기를 비롯해 요시모토 나라, 산유, 자오우키, 후지타 등 아시아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여럿 나왔다.
그중에서도 '우주'와 이날 경매 최고가인 398억6천만원(2억6천6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산유의 '다섯 명의 나부'에 이목이 쏠렸다. '우주'는 프리뷰 전시장에서도 산유 작품과 마주 보는 부스에 전시됐다.
그만큼 이번 경매에서 김환기와 '우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그래서 이날 경매 결과가 더욱 중요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는 직전 기록보다 무려 47억원 뛰었다. 기존 기록은 김환기의 1972년작 붉은색 전면점화가 지난해 5월 기록한 85억3천만원(6천200만 홍콩달러)이었다.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7억2천만원에 팔린 푸른색 전면점화 '19-Ⅶ-71 #209'를 시작으로 김환기 작품은 지난 4년간 한국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7차례나 다시 썼다.
이날 '우주' 경매 결과를 포함하면 국내 미술품 판매가 상위 10위권이 9위 이중섭 '소'(47억원)를 제외하고 모두 김환기 작품으로 채워진다. 이날 경매 전까지 10위였던 박수근 '빨래터'가 11위로 내려갔다.
미술계는 김환기의 약진으로 한국 미술이 세계시장에서 더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어려운 시기에 절대 가치를 인정받은 쾌거로, 한국 대표작가 김환기가 국제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상징적인 액수 100억원을 돌파한 김환기 작품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100억원대를 깨는 한국 작가가 나왔으면 하는 미술계 염원이 있었는데 매우 의미 있는 결과"라며 "그동안 작품성에 비해 국내 작가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반전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도 "앞으로 한국미술이 국내외에서 다시 한번 더 부각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콩=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홍콩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 그랜드홀에 전시된 김환기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 #200). 이 작품은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사상 처음으로 낙찰가 100억원을 돌파했다.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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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김환기 작품 중 유일한 두폭화
‘우주’는 김환기 작품 중 유일한 두폭화(diptych)이다. 이는 뉴욕 시절 김환기의 추상예술의 정수이며,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기도 하다. 세로 254cm, 가로 254cm의 화폭을 푸른 점들이 가득 메우며 두 원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는 김환기 작고 3년 전에 완성한 것으로 그의 그림 중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히지만, 경매 시장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주’를 소장해온 이들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마태(한국명 김정준)·전재금씨 부부. 1951년 부산 피난시절 김환기를 만난 부부는 그에게서 작품을 직접 사들여 50년 가까이 보관해왔다. 첫 만남부터 김 화백이 타계한 1974년까지 김마태씨는 단순한 후원가를 넘어 친구로서 김환기의 작품 활동을 지원해왔고, 그에게 있어서 ‘우주’는 "미술 작품 이상이었다"고 한다.
1972년 김마태 박사의 거실서 자신의 작품 '우주' 앞에 앉아 있는 김환기. [사진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우주’는 그동안 환기미술관에서만 전시됐다. 이후 크리스티를 비롯한 여러 경매사나 바이어들이 재단 측으로 숱한 러브콜을 보냈으나 소장자인 김마태씨가 답한 적은 없었다. 그런 소장자가 ‘우주’를 경매에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에블린 린 (Evelyn Lin)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20세기 & 동시대 미술 부문 부회장은 "그가 작품을 시장에 내놓은 것은 단순히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술 시장 내에서 김환기에게 걸맞은 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김마태·전재금씨 부부가) 크리스티 뉴욕에 연락해 왔을 때, 저는 운명을 느꼈어요. 김환기의 작품을 미술 시장에서 올바르게 자리매김(포지셔닝)하는 것이 김마태씨의 꿈이었기에 크리스티 뉴욕에 먼저 연락해온 것입니다.”
린 부회장은 김환기의 ‘우주’가 한국 추상미술의 정수뿐만 아니라 “아시아 문화 자체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두 개의 원은 음과 양의 조화, 해와 달,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 남성과 여성 등과 같은 우주의 모든 기운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다. 제목이 ‘우주’인 것도 그런 이유다.
김환기 기록, 여기서 끝날까?
이미 한국 미술 시장에서는 김환기의 경쟁상대는 김환기뿐이었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톱5가 전부 김환기 작품이다. 앞서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붉은색 점화 ‘3-II-72 #220’이 85억에 낙찰되면서 김환기의 최고가 기록과 한국 미술품 경매 기록이 경신된 바 있다. 올해 4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는 분홍색 점화 ‘무제’가 71억원에 낙찰됐다.
작품가격 사이트 K-Artprice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지난 5년간 김환기의 작품은 총 141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김환기 작품은 나오기만 하면 최고가”라는 것이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의 설명이다. 린 부회장은 전날 경매에 앞서 “김환기의 신기록은 ‘우주’만이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한국미술 성장에 직결될까?
하지만 린 부회장은 “(김환기 작품의 최고가 기록이)바로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과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김환기의 작품이 재평가되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한국 미술의 걸작(마스터피스)은 경매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번 신기록은 “김환기 미술 시장만 바꿀 것”이라 말했다. “한국에는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대부분이 미술관 소장이라 시장에는 좋은 작품이 많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 정상화 화백의 그림을 보고 반했지만, 작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 미술 시장을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 미술 시장은 연간 4000억원 규모로, 28조원 정도의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한국 미술 저평가돼 있다"
린 부회장은 “이번 경매에 나온 김환기, 박서보 등 많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한국 미술 자체가 저평가되어 있다”면서 “미술은 어떤 아이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변한다”며 “한국 미술에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밝혔다.
/홍콩=윤소연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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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
새로 쓴 김환기는 누구?
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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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한국 미술사를 새로 쓴 김환기 작가는 대중은 다소 생소하실 겁니다.
어떤 인물이고, 이번 경매는 어떻게 이뤄진 건지 뒷얘기를 문화스포츠부 국영호 기자와 함께 뉴스추적을 해보겠습니다.
【 질문 1 】
132억 원, 낙찰가가 이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이 됐던 건가요?
【 답변 1 】
사실 이번엔 한국 미술품 최초로 100억 원을 돌파할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다른 작품이 국내 최고인 85억 원 거래가 됐기 때문이었는데, 이런 액수가 나오자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 질문 2 】
정말 그랬을 것 같은데, 경매 현장 분위기 자세히 전해주시죠.
【 답변 2】
이번 우주란 작품의 경매는 10분 정도 진행이 됐습니다.
가치가 낮게 매겨진 작품은 1분, 중요 작품은 5분 정도 소요된 걸 보면 '우주'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국과 일본 작품 경매가가 그동안 200억 원을 훌쩍 뛰어넘어왔었는데, 우리 미술도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게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학준 /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
- "마지막에 8,800만 홍콩 달러에 최종 낙찰됐을 때 장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습니다. (한국 미술이 세계) 주류 미술시장에 편입됐다는 신호탄으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질문 3 】
그런데 132억 원에 낙찰한 분,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 답변 3】
크리스티 경매 측은 고객 정보 보호를 위해 '신원 미상의 전화 응찰자'로만 밝힌 상황인데요.
오늘 오전에 한 언론에서 '국내 모 건설사 회장의 손자인 25세의 한 큐레이터'라고 보도를 해서 이목을 끌었습니다.
당사자는 "애매한 부분 있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을 아낀 상황이고, 일각에선 외국인 수집가란 말도 나옵니다.
그리고, 낙찰자는 구매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최종 구매가로 우리 돈으로 153억 정도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질문 4 】
그렇다면, 영상에 계속 나오긴 했지만, 우주란 작품 어떤 그림인가요.
【 답변 4 】
작품은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점으로 꽉 채워진 '전면점화' 형태입니다.
작가가 작품명처럼 우주를 표현한 것인데요, 두 가지로 해석해 그린 두 폭의 그림이 하나로 붙여져 구성돼 있습니다.
전체 크기는 가로, 세로 2m를 훌쩍 뛰어넘는 대형작품인데요, 김환기 작품 가운데 가장 큰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 인터뷰(☎) : 문지수 / 크리스티 코리아 실장
- "음과 양, 여성과 남성 이렇게 우주의 본질을 하나의 캔버스에 담아내려고 하셨거든요. 고국의 밤하늘을 그리워하면서 한 점 한 점 그리셨던."
【 질문 5 】
그럼, 이런 걸작을 완성한 김환기 작가는 어떤 인물인가요.
【 답변 5 】
김환기 작가는 사실 고인입니다.
1913년에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1974년 미국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주는 작고 3년 전인 1971년에 그린 것이고요.
굴곡진, 어떻게 보면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청소년기는 국내에서, 이후 일본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습니다.
유명 시인인 이상의 부인과 재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요, 미술 인생 말미엔 미국 뉴욕에서 이번 우주를 비롯한 걸작들을 쏟아냈습니다.
【 질문 6 】
그럼 우주란 이 작품 대중은 볼 수 있습니까.
【 답변 6 】
사실, 지난달까지는 김환기 작가의 이름을 딴 환기미술관에 전시됐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이 현재 경매를 위해 해외로 가 있는 상황이라 쉽진 않아 보입니다.
낙찰자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인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소장한다면 공개가 어렵고, 외국인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훌륭한 작품을 공개한다고 하면 가능할 일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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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작가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그림만 그렸을 정도로 집념과 열정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만의 예술혼과 진정성이 이제 와서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것인데, 그 울림이 상당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문화스포츠부국영호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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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경매에 나오는데 김환기의 오랜 절친이자 후원자였으며 주치의였던 김마태(91) 박사와의 인연이 그 배경에 있어 눈길을 끈다. 크리스티는 이번 경매를 앞두고 발간한 ‘우주’ 도록을 통해 이 작품을 40여년간 소장하며 김환기와의 우정을 지켜온 김마태 박사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김마태 박사는 현재 미국 뉴욕에 산다.
인터뷰에 따르면 김환기와 김마태 박사의 첫 만남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대 부산 광복동의 한 커피집이었다. 당시 전쟁을 피해 내려온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는데 김마태 박사의 부인 전재금의 어머니인 소설가 김말봉도 그 중 하나였다. 김마태 박사는 당시 약혼자였던 전재금과 함께 길에서 우연히 김환기와 만나 인연을 맺고 곧 절친이 됐다.
이후 두 사람은 미국과 프랑스 등 각기 다른 대륙에 있었음에도 돈독한 우정을 이어왔다. 1963년 김환기가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할 것으로 결심하고 그의 부인이 이듬해 합류할 때 김마태 박사가 항공권 비용을 도왔다.
이에 김환기는 감사의 표현으로 자신의 1959년작 ‘섬의 달밤’을 김마태 박사 부부에게 선물했다. 이후 이들 부부는 점점 더 자주 만났으며 김마태 박사는 개업과 함께 더 많은 김환기의 작품을 구매하며 컬렉션을 점차 키워갔다. ‘우주’는 뉴욕의 포인덱스터 갤러리에서 1971년 전시됐고 이때 김마태 박사와 그의 부인이 작품을 구매해 소장해왔다.
김마태 박사는 “김환기 화백은 언제나 환영 받는 손님이었다”며 “친화력 있는 웃음과 짓궂은 농담으로 인해 그는 중심 인물로 종종 주목을 받곤 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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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우주’ 구매자 미스터리…
“한국인 아니다” VS “20대 한국인 컬렉터”
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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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131억 한국 미술 최고가 경신한 ‘낙찰자’에 관심 집중…송자호 큐레이터 “애매한 부분 있어”]
김환기, '우주'(Universe 5-IV-71 #200), 1971 /사진제공=크리스티코리아
23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국 미술 역사상 최고가인 131억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대표작 ‘우주’의 주인공을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술계 관례상, 낙찰자의 신원은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구매자가 20대 한국 컬렉터라는 얘기가 퍼지면서 ‘사실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주’는 10분이 넘는 치열한 경합 끝에 약 131억 8750만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구매 수수료를 포함하면 150억원이 넘는다. 한국 미술품이 경매에서 100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주’의 경매를 담당한 크리스티코리아 측은 낙찰가를 알리면서 구매자는 “한국인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K씨가 보낸 ‘긴급속보’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한국인이 최종 구매자”라며 간단하지만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K씨 내용에 따르면 25세 한국인 송자호 큐레이터가 마지막까지 전화응찰로 치열한 경합으로 따라갔으며(구매의사가 확실해 최종 가격까지 경합했다는 의미) 미국 국적의 송씨 대리인이 직접 전화연결로 낙찰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구매 목적은 송씨 개인의 수집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구매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보도자료 내용은 변함이 없다”며 “송자호 큐레이터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낙찰자가 한국인이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자, 송자호 큐레이터는 24일 오전 한 언론과 전화통화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직·간접적으로 구매에 관여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한국 미술 경매 시장에서 ‘최초’와 ‘최고’ 기록이 나오면서 송 큐레이터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송씨는 송승헌 전 동원건설 회장의 장손으로, 동원건설에서 문화예술 분야를 도맡고 있다. 현재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의 수석큐레이터다.
미국 보스톤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2015년부터 동원건설 큐레이터로 입사해 다양한 전시의 기획과 후원을 담당해왔다.
그는 올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업 대신 미술을 선택한 것에 대한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며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상, 꿈꿔온 것을 이뤄내고 싶어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송 큐레이터는 국내 신인작가를 후원하고 다양한 작품을 수집하면서 국내외 갤러리로부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 걸그룹 카라 출신의 박규리와 연인 사이로도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열린 ‘낙서 천재’ 존 버거맨 전시회에서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송 큐레이터는 “앞으로 기획하는 전시에 연예인 등을 참여시켜 대중적으로 더 알리고 싶다”며 미술의 대중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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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김환기
[ Kim Whan Ki , 金煥基 ]
요약 한국의 서양화가.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이미지가 걸러진 절제된 조형성과 한국적 시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회화의 정체성을 구현해냈다.
출생-사망
1913.2.27 ~ 1974.7.25
호
수화(樹話)
국적
한국
활동분야
회화
출생지
전남 신안
주요수상
제7회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회화부문 명예상(1963),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1970)
주요저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05)
주요작품
《론도》(1938), 《항아리와 여인들》(1951), 《항아리와 매화》(1954), 《영원의 노래》(1957), 《달과 산》(1960), 《작품》(1968),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주요업적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서구 모더니즘의 한국화 구현
김환기(金煥基)는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남도의 조그만 섬마을에서 자란 그는 푸른 바다와 깊고 넓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오지만 곧 중퇴하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933년 도쿄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해 1936년 졸업하고, 이어 대학 연구과를 수료한 다음 1937년 귀국했다.
대학시절 김환기는 동료들과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1934)나 ‘백만회’(1936) 같은 혁신적인 그룹을 조직하는 한편 ‘이과회’와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에 그가 출품한 작품들에는 대부분 직선과 곡선, 그리고 기하학적 형태들로 구성된, 당시 한국 화단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비대상회화가 대담하게 시도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선구적인 추상화가로서의 그의 초기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론도》(1938) 같은 작품을 보면 음악적인 주제와 어울리는 흐르는 듯한 서정적 운율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음악적 서정은 이후에도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요소이다.
해방 이후 김환기는 유영국, 이규상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미술 그룹인 ‘신사실파’를 조직하고 그룹전을 열었다. 그는 서구의 양식을 실험하는 한편 한국적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 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 해군 종군화가로 활동하며 부산 피난시절을 묘사한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1950년대 김환기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작품의 주제가 전통적인 소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달, 도자기, 산, 강, 나목(裸木), 꽃, 여인 등의 소재를 통해 그는 한국적인 미와 풍류의 정서를 표현했다. 특히 백자 항아리의 멋에 깊이 심취하여 도자기는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56년에서 1959년까지의 파리 시기에도 지속되었다. 그의 한국적 모티프에 대한 탐닉은 파리에서의 제작 기간 동안 그 농도를 더했다. 그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도 가지 않았던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항아리, 십장생, 매화 등을 기본으로 한 추상 정물화 작업을 선보였고, 이는 후에 고국산천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김환기의 색채는 화면 가득 푸른색을 띠게 되었다. 그에게 푸른색은 고국의 하늘과 바다의 색이고, 그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색이기도 했다.
1963년 10월 김환기는 제7회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회화부문 명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바로 뉴욕으로 가 11년에 걸친 뉴욕 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가 뉴욕에 정착한 1963년 무렵에 미국 화단의 주도적 경향은 색면회화였지만, 한편으로는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을 비롯한 여러 새로운 실험적 미술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의 뉴욕 시기 작품은 크게 형상이 남아 있는 1970년 이전과 점과 선만의 완전한 추상으로 화면 전체가 변하는 1970년 이후로 나눌 수 있다. 1970년에서 그가 타계한 1974년까지는 그의 활동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다.
1970년부터 김환기의 캔버스는 전체가 점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1970년에 제작한 점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그 해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김광섭의 시 의 마지막 구절을 제목으로 가져다 쓴 이 작품에서 김환기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수많은 인연들을 하나하나의 점으로 새겨 넣었다. 여기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우주적 윤회를 담고 있다. 한 점 한 점 찍어가는 행위는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집중하여 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과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작업은 문인화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김환기는 누구보다 서양미술을 풍부하게 경험했지만, 그 정신에 있어서는 동양의 전통을 계승하고 예술을 통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 시대의 문인화가였다. 비록 자연의 외형은 사라졌으나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1971년과 1972년의 그의 작품에서는 점화의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에 활형의 곡선으로 변화를 주었다. 1973년에는 활형과 직선들이 교차되거나 어우러져 사용되었다. 이러한 요소는 무한으로 열린 공간의 확장을 상징하고 광대한 우주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1970년 이후 그의 작품은 점점 더 크기가 커져 200호 상당의 대작들을 남겼다. 이들 작품은 한 시기의 작업이라기보다 그의 전 생애 작업을 갈무리하여 완성한 것이라고 하겠다.
김환기는 1974년 7월 갑작스런 뇌출혈로 뉴욕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한국적 풍류와 정취를 지닌 인정 많은 감성의 소유자였던 그는 온몸으로 예술을 살다가 이렇게 61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의 곁은 부인 김향안(본명 변동림)이 지켰다. 1992년에는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이 세워졌다. 그의 생가인 ‘신안 김환기 고택’은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251호로 지정되었다.
주요 작품에는 《종달새 노래할 때》(1935), 《론도》(1938), 《항아리와 여인들》(1951), 《항아리와 매화》(1954), 《영원의 노래》(1957), 《산》(1958), 《달과 산》(1960), 《18-VII-65 밤의 소리》(1965), 《작품》(1968),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Echo 22-1》(1973), 《09-05-74》(1974)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환기 [Kim Whan Ki, 金煥基]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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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술가
동경유학: 추상회화를 실험하다
김환기의 작품활동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기가 동경유학을 했던 시절이다. 그 이유는 그 무렵에 활동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은 동경유학 시기를 회고하며 “우리는 동경에서 공부했지만 유럽의 미술을 또는 세계문학을 공부했으며 되도록 일본의 영향을 안 받으려고 노력했었다. 실은 영향을 받을 것도 없었고 일본이란 우리들 생리에 맞지도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1) 그러나 김향안의 회상을 존중하더라도 일본에서 미술학교를 다니고 배우는 과정에서 일본화단과 알게 모르게 연관을 맺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동경유학 시절 김환기는 우리나라의 어느 화가들보다 일본화단의 진보적인 화가들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작가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절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13년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부농 김상현의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외아들이었다. 그는 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1927년 서울의 중동중학에 진학하였다. 김환기는 19세였던 1931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동경의 니시키시로중학[錦城中學]을 다녔고 1년 후인 1932년에 졸업했다. 그 후 1933년부터 1936년까지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서 공부하였고, 졸업 후 1937년까지 연구과에 남아 있었다.
『일본대학 예술학부 50년사』에 의하면 1934년 당시 미술과 관계되는 교수와 강사 중 서양화 실습 교수에는 후기인상주의 양식으로 그리던 기무라 쇼오하치[木村莊八, 1893~1958]를 비롯해 나카시마 주니로[長島重二郞]가 있었고, 일본미술사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담당하였다.2) 김환기가 이들에게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일본의 민예운동을 일으킨 야나기가 이 무렵 일본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김환기는 어느 글에서도 자신이 야나기에게 배웠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조선 도자에 대한 야나기의 관심이 혹시 김환기가 훗날 한국의 도자를 사랑하고 작품의 소재로 삼게 되는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보게 된다.
일본대학 재학시절인 1935년에 김환기는 이과회(二科會)에서 주최하는 ‘제22회 이과전(二科展)’에 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그의 데뷔 작품인 약 100호 크기의 이 작품은 현재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데 이 작품에 대해 김환기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는 달기만 했던 작품이다. 모델 없이 제작했으나 누이동생 사진을 보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작품이었다. 구름, 버드나무, 새알들이 보이는 지극히 낭만적인 풍토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다. 나는 남방의 따사로운 섬에서 나고 섬에서 자랐다. 섬이란 태풍이 오기 전에는 평화롭기만 했다. 사실이다. 그렇지만 특히 종달새 노래하기 시작하는 봄이면 살았나 죽었나 한계를 모를 정도로, 하여간 무엇인지 모를 것들이 느껴지기만 하던 내 고향이었다. 나의 소년 시절의 이러한 것들을 표현해보려고 내 딴에는 애써보고 한 달 만에 가 이루어졌다.3)
이 작품에서 김환기는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소녀의 상체나 팔을 거의 원통으로 단순화하고 추상화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에 올린 바구니의 명암표현에서는 입체주의[Cubism]적 단면화를 보는 듯하고, 바구니 안에 든 새알은 초기 입체주의 작품들에서 간혹 나타나듯 그대로 투명하게 표현되었다. 또 명암을 강하게 대조시킨 배경과 축도된 원근법을 통해 이미 사실주의적 묘사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5년, 캔버스에 유채, 178.0×127.0cm.
일본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5년, ‘제22회 이과전’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으로 김환기의 데뷔작이다. 원통처럼 표현된 상체나 팔, 투명하게 보이는 새알 등을 보면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대상을 단순화ㆍ추상화시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35년, 캔버스에 유채, 178.0×127.0cm.
일본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5년, ‘제22회 이과전’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으로 김환기의 데뷔작이다. 원통처럼 표현된 상체나 팔, 투명하게 보이는 새알 등을 보면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대상을 단순화ㆍ추상화시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에서 보이는 이러한 특징은 입체주의의 변형, 예를 들면 레제(Fernand Léger, 1881~1955)의 작품에서 기하학적으로 원통화되어가는 인물표현들이나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1878~1935)의 1912년경의 초기 작품들, 또는 1928년에 프랑스에서 귀국해 ‘이과회’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도고 세이지[東鄕靑兒, 1897~1978]의 양식과도 유사성을 가진다. 이와 같이 입체주의에서 유래한 단순화된 형태의 추구는 자연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20세기 초 근대화ㆍ도시화되어가는 유럽 사회의 모더니티의 표현이다.
그런데 김환기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서구의 실험적 형태와 이질적인 토속적인 서정성이 서로 공존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섬이라는 배경설정과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가는 소녀의 전 근대적 주제, 그리고 작가가 털어놓는 평화로운 섬의 낭만적 분위기가 서구의 근대적인 양식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때부터 자연에 대한 서정적 반응이 김환기 작품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으로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김환기는 대학 밖에서도 다른 화가들과 더불어 공부하고 활약할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다. 우선 그가 와 같이 낭만적인 주제에서 좀더 기하학적 추상으로 전환하는 데에 적어도 간접적인 영향을 준 화가는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城, 1905~1999]였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유럽에서 공부한 무라이는 귀국 후 문화학원에서 가르치면서 주로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1910년대 회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1937년부터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풍의 기하학적 추상으로 변모를 모색한 화가였다.
무라이는 1935년 12월에 동경 시나가와[品川]구의 ‘포플러의 집’으로 불리던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그 후 이곳에는 화가이자 문화학원에서 가르치던 츠다 세이슈[津田正周, 1907~1952]가 이사해왔고, 화가 오노사토 도시노부[小野里利信, 1912~1986]가 자주 놀러왔다. 이 ‘포플러의 집’에 약 1년 정도 같이 기거한 우리나라 화가들이 김환기와 유영국(劉永國, 1916~2002)이었다.
무라이 마사나리의 화실에서(1938년 동경). 오른쪽으로부터, 김환기, 길진섭, 무라이 마사나리, 무라이의 부인이다. 무라이는 ‘포플러의 집’으로 불리던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김환기는 이곳에서 1년 정도 같이 기거하였다.
1991년 일본에 있었던 필자4)는 무라이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무라이는 키가 훌쩍 컸던 김환기를 기억하면서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잘 울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무라이와 츠다 그리고 오노사토는 모두 1937년부터 시작되는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들과의 친분 때문에 김환기뿐 아니라 문화학원에 다니던 문학수(文學洙, ?~?),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유영국 등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이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1936년은 김환기에게 매우 바쁜 해였다. 그는 ‘제23회 이과전’에 아직도 인물의 형상이 남아 있는 을 출품하여 입선했다. 이때 그는 훗날 일본 추상회화의 선구자들이 되는 도고 세이지, 야마구치 다케오[山口正男, 1902~1983], 사이토 요시시게[齊藤義重, 1904~2001], 야마모토 게이호[山本敬輔, 1911~1963] 등과 같이 제9호실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제9호실에서 전시한 이들 작가들은 1938년 10월에 도고 세이지와 후지타 츠구지[藤田嗣治, 1886~1968]를 고문으로 하여 ‘구실회(九室會)’를 결성하였다. 김환기는 1938년 12월 결성 성명서를 발표할 때 가입하였으나 1939년 5월에 있었던 제1회 전시회에 참여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며 그 직후 탈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5)
한편 1936년에 김환기는 길진섭(吉鎭燮, 1907~?), 다시카미 다케나[鶴見武長], 간노 유이코[管能由爲子]와 더불어 ‘백만회(白蠻會)’를 조직하고 동경 긴자에 있는 기노쿠니아[紀伊國屋] 화랑에서 네 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이 그룹은 도고 세이지, 아베 곤고[阿部今剛, 1900~1968], 초현실주의 화가 고가 하루에[古賀春江, 1895~1933], 그리고 프랑스에서 화려하게 귀국했던 후지타 츠구지 등이 1933년에 개설한 아방가르드 양화(洋畫)연구소의 연습생들이 결성한 것이다.6) 김환기가 다니던 이 연구소의 일본 화가들은 전위적 추상화가에 속하였으며 전후에는 모두 유명 미술가들이 되었다. 이해 11월 그는 동경의 아마기[天城] 화랑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으나 이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나 반응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알려진 바가 없다.
1937년 4월에 김환기는 일단 귀국했다. 귀국 후에도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계속해서 그는 일본 최초의 추상미술 공모전이었던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아마도 그의 고향 기좌도 혹은 서울에서 작품을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한 김환기의 작품목록과 활동, 그리고 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필자는 이미 논문으로 자세하게 언급한 바 있다. 7)
그가 출품한 작품들은 대부분 없어졌으나 사진 자료를 보면 대부분 곡선과 직선 그리고 기하학적 형태들로 구성된, 당시 서울 화단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비대상회화가 대담하게 시도되어 우리나라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그의 초기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남아 있는 예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 중인 는 1938년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은 제4회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으로 보인다. 에는 아직도 피아노의 곡선적인 형태와 사람의 형상이 남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평면에서 곡선과 직선, 그리고 흰색과 검은색, 노란색과 파란색들의 색면으로 이루어진 구성작품이다. 이것은 도 마찬가지이다. 김환기의 이러한 표현양식은 ‘자유미술가협회전’의 주류를 이루었던 기하학적 추상이나 구성주의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말레비치나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작품들이 엄격하고 팽팽한 균형감과 역동감에 근거하는 데 비해 김환기의 와 같은 작품에서는 곡선이 더 많이 사용되었고, 음악적인 주제에 어울리게 흐르는 듯한 서정적 운율감을 느낄 수 있다. 김환기는 동경에 있으면서 서양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음악적 서정은 그 후에도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1938년, 캔버스에 유채, 60.7×72.6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곡선과 직선 그리고 흰색, 검은색, 노란색, 파란색들의 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론도’는 순환부분을 가진 악곡 형식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음악적인 주제에 어울리게 서정적인 운율감이 드러나 있다.
1938년, 캔버스에 유채, 60.7×72.6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곡선과 직선 그리고 흰색, 검은색, 노란색, 파란색들의 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론도’는 순환부분을 가진 악곡 형식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음악적인 주제에 어울리게 서정적인 운율감이 드러나 있다.
서울과 기좌도를 왕래하고, 일본에 작품을 보내기도 하면서 지내던 김환기는 1940년 10월 서울의 정자옥(丁字屋)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가졌다. 그러나 그 후 해방까지 일본이나 우리나라 화단의 활동은 전쟁의 영향으로 위축되었고 김환기의 경우에도 역시 거의 작품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그는 문인들을 많이 알고 지내게 되었고 문예지였던 『문장(文章)』 등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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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c)환기재단·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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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동경유학: 추상회화를 실험하다 (한국의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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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신안 김환기 고택
[ 新安金煥基古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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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촬영된 신안 김환기 고택 전경이다.
유형
유적
성격
생가
건립시기·연도
20세기초
소재지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251호
문화재 지정일
2007년 10월 12일
목차
정의
내용
정의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에 설립된 화가 김환기의 생가. 국가민속문화재.
내용
국가민속문화재 제251호. 신안 김환기가옥은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생가로서 현재 안채와 화실 1채로만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920년에 건축된 것으로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현 소유주는 신안군 교육청으로 되어있다. 현재는 교사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별동으로 건립된 화실은 194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이 건물 역시 현 소유자는 김환기 가족이 아닌 정기웅으로 되어 있다. 안채와 화실 사이에 사랑채가 있었으나 1970년대에 훼철되어 현재는 공터로 남아있다. 김환기는 안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화실은 김환기가 주로 방학을 이용하여 잠시 서울에서 내려와 작업을 하던 곳이다. 현재는 살림집으로 사용하여 내부가 많이 변형되어 있다.
신안 김환기가옥은 안좌면 읍동마을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입지한 집터는 상당히 넓으며 건물 위치는 안쪽에서 보아 좌측에 안채, 우측에 화실이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ㄱ자형 기와집으로 평면구성을 보면 좌측으로부터 곡간, 건너방, 대청마루, 안방, 정지의 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지 앞쪽으로 꺾어져서 다시 방 1칸이 있다. 이 방이 김환기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구조는 다듬은 네모 초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민도리집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문은 정지의 판장문만을 제외하고 모두 띠살문으로 되어 있고 벽체는 회벽으로 마감되어 있다.
화실은 본래는 초가였으나 현재는 시멘트기와로 개조된 一자형 민도리집이다. 평면 구성은 현재 우측 전면으로 방 2개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뒤쪽으로 정지, 그리고 좌측으로는 넓은 대청과 끝으로 곡간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좌측으로 방 1칸과 현재의 정지에 목욕칸만이 있었고 나머지(곡간 제외) 공간은 모두 넓은 대청(화실)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현재 별도의 담장 내에 위치하고 있다.
신안 김환기가옥은 건축적 측면 보다는 이 고장이 낳은 한국의 대표적 서양화가 김환기의 생가로서 그 존재의미가 있다 하겠다.
참고문헌
『전남의 전통건축』(천득염, 전남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 1999)
『문화재도록』(전라남도, 1998)
『지방문화재 조사보고서』 (I)(전라남도, 199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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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김환기 고택 전경1999년 이전에 촬영된 신안 김환기 고택 전경이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촬영: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신안 김환기 고택 [新安金煥基古宅]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