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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감각을 잃어버리는것은 아닌지?!..."
2019년 12월 01일 00시 15분  조회:2101  추천:0  작성자: 죽림
한-싱가포르 수교 45주년 국제네트워크 전시
'더 센시스: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호흡하다'
한국과 싱가포르 등 작가 13팀 참여
토탈미술관 전시 후 내년 싱가포르서 개최
애들린 쿠에 ‘속삭임(당신을 기억하는 100가지 방법)’
[서울경제] 감각은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싱가포르서 활동하는 예술가 애들린 쿠에에게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는 할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더 정확히는 야들리(Yardley)의 잉글리시 라벤더향 파우더를 사용하던 그의 할머니와 고모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작가는 지난 2014년 9월, 싱가포르 라벤더 거리의 철거 예정인 건물을 위한 작업을 요청받았다. 라벤더 향과 할머니들의 시대를 기억해 낸 작가는 장소의 역사성을 되짚었다. 1858년 식민지를 장악한 영국인들이 농담처럼 이름 붙인 ‘라벤더 거리’는 가스 공장의 악취와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는 채소농장을 가로지르며 우마차가 다니는 곳이었고, 라벤더 향수를 뿌린 성매매 여성들이 드나들던 매춘업소 이름이 그 거리의 대표 건물인 ‘라벤더 스파’였다. 

토탈미술관의 기획전 ‘더 센시스(The Senses):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호흡하다’의 오프닝 퍼포먼스로 작가 쿠에가 선보인 작품 ‘속삭임(당신을 기억하는 100가지 방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철거된 호텔 객실을 재구성 한 짙은 보라색 벽면의 공간에는 라벤더 파우더가 수북이 깔렸다. 2개의 종을 매단 가느다란 빨간 실은 아시아 지역 대부분이 공유하는 ‘인연’의 상징이다.

첸 사이 화 콴 ‘대지의 소리 싱가포르’
감각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뿐만 아니다. 땅도 기억을 품는다. 싱가포르 작가 첸 사이 화 콴은 재해를 겪은 땅을 찾아다니며 깊이 1m 지점의 흙을 파 모았다. 탄소와 무기물을 함유한 흙이 전지처럼 작동해 미묘한 음파를 만들어, 지진·홍수·테러 등 땅이 겪은 상흔을 끄집어낸다. 작품 ‘대지의 소리 싱가포르’는 인간이 미처 감지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린 자연의 소리를 들려준다.

이번 전시 ‘더 센시스’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 13팀은 전쟁이나 식민지를 경험한 적 없는 전후 세대로, 물질적 풍요와 사회·경제적 발전의 변화 속에서 경험한 서로의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오는 2020년 한국·싱가포르 수교 45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는 12월 2일까지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다음 내년에는 싱가포르에서도 개최될 예정이다.

이잠 라만 ‘그는 사랑할 수 없는 한 남성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긴 연분홍 꽃은 아름답건만 슬픈 이름을 가졌다. 싱가포르 작가 이잠 라만의 ‘그는 사랑할 수 없는 한 남성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야들야들해 보이는 꽃잎의 재료는 라만이 자신의 몸에서 떼어 낸 굳은살이다. 파르르 솟은 꽃술은 잘라낸 손·발톱이다. 꽃을 떠받친 잎사귀는 피 묻은 붕대를 잘라 만들었다. 작가는 몸이 기억하는 인간의 감정을 자신의 신체 조각들로 재구성했다. 버려졌을지 모를 은밀하고 사적인 기억들은 작품을 통해 영원성을 얻는 셈이다.

최수앙 ‘언더 더 스킨’
극사실적인 조각으로 유명한 최수앙의 신작은 일견 파괴된 듯한 모습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교한 조각작업을 하다 건강까지 상하게 된 작가가 ‘이제는 안 그래야지’ 다짐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는 새 너무나 ‘잘’ 재현해 놓은 인간 형상을 마주하고선 그만 “얼굴의 가운데를 엄지로 짓누르고 쓸어 올린” 작품이다. 몸에 밴 감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이다. 짓이긴 손가락 지문마저 선명해 “사실과 같은 허구에 또렷한 실재를 남기고” 있다.

김지민 ‘인사이드 아웃’
작가 김지민의 ‘인사이드 아웃’은 해골 모양의 새장 안에 마주 앉은 새 두마 리를 통해 현대인의 지각·소통방식을 보여준다. 짹짹(tweet)거리는 새들은 생각도, 감각도 없이 옆 사람이 말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따라 읊고 복제만 할 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함몰된 현대인을 풍자하는 듯하다. 김 작가는 의류에 붙은 라벨을 재료로 한 작업으로 유명하지만 ‘라벨 공장’들이 인건비 싼 중국 등지로 옮겨가면서 재료 수급이 어려워진 것을 계기로 전혀 달라진 근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준 ‘입의 향연’
작가 이준의 ‘입의 향연’은 잘 차려놓은 식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맛보는 입이 아니라 쉴새 없이 재잘거리는 입을 위한 성찬이다. 관객이 내는 소리에 센서가 반응해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인터넷신문 기사 제목·댓글 등을 식탁 위에 펼쳐놓는다. 식탁 색깔은 현재 미술관 바로 위 하늘의 색과 현장의 날씨를 반영한다. 접시 위에 놓인 병을 감싼 노랑·초록·파랑 등의 색깔은 카카오·네이버·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상징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승아 객원큐레이터는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더 빠른 속도로 소통할 수 있게 된 지금, 과연 인간의 감각과 지성의 지평은 더욱 넓어졌고 그 소통 역시 더욱 확대되었는가 묻고 싶다”면서 “이번 전시는 인간의 감각을 사유하고 새롭게 경험, 지각하는 작품들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성격을 재조명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조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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