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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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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7    [문단소식]- 황금의 가을에 "가을의 눈"을 보다... 댓글:  조회:1049  추천:0  2024-09-09
[새책 소개] 김학송 시집《가을의 눈》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6월19일    연변작가협회 계획출판프로젝트 도서로 시인 김학송의 신간 시집 《가을의 눈》이 최근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도합 9부로 나뉘여 228수의 시가 수록된 시집 《가을의 눈》은 주제와 소재의 다양성, 예술수법의 전위성으로 특히 주목된다. 조선족 서정시의 정통성과 모더니즘시의 접목을 시도한 탐구정신이 이 시집의 전반에 깔려있다. 다의성을 지닌 시어안에  시인의 독특한 감수가 노을처럼 곱게 펼쳐져 독자와의 교감의 폭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한편 시집 《가을의 눈》은 서정성이 넘치는 생활밀착형의 시들도 다수 수록되여있어 독서계와 랑송계의 큰 관심을 받게 될것으로 보인다. 김학송시인은 도문시 곡수촌에서 태여났으며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를 졸업했다. 그는《연변문학》에 시 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국내외에서 시, 수필, 동시, 가사 등 다양한 쟝르의 문학저서 30여권을 출판했다. 김학송시인의 일부 시는 번역되여 《세계시인선집》에 등재되기도 했다. 수필 는 중학교 조선어문교과서에 수록되였다. 김학송시인은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단군문학상 등 수상경력이 있다. /안상근 기자  
《중국현대시인문고》(1~5권) 출간기념식 길림서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9월2일  《중국현대시인문고》(1~5권) 출간기념식 길림서   《중국현대시인문고》 편집위원회에서 주최한 《중국현대시인문고》(1-5권) 출간기념식이 저자들과 길림, 연길, 할빈, 심양 등지의 주류문단에서 왕성한 시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족, 회족, 만족, 조선족 등 현대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9월 1일 길림시에서 진행되였다.     행사에서는 먼저 한영남 시인의 《문고》 출간 경과보고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이번 《문고》는 기획에서 번역을 거쳐 최종 출간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19년 일본에서의 시집 출간 실정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김학천, 전경업, 조광명, 한영남, 김창영 등 5명 조선족시인들의 시집을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류춘옥 시인한테 넘겼다. 초벌 번역은 1년 여의 시간이 소요되였고 번역고는 일본의 저명한 시인, 평론가, 학자들에게 넘겨져 심사를 받았다.     연변작가협회 김학천 전임 주석이 김춘룡 회장에게 감사패 전달(한영남 시인 대신 수령)    그런 과정에서 류춘옥 시인의 시집 《도쿄의 표정》이 일본어판으로 출간되면서 일본 전역에 류춘옥 시인이 알려지게 되고 그것은 또한 우리 조선족 시인들의 일본어판 시집 출간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게 했다.   2021년, 류춘옥 시인은 5명 조선족 시인들의 일본어판 시집 출간을 《중국현대시인문고》라는 타이틀을 걸고 향후 중국현대시인들의 시집을 륙속 일본어로 출간할 의향을 전해왔고, 뜻을 합쳐 중국조선족 시인 6명으로 구성된 《중국현대시인문고》 편집위원회를 내오고 출간사업을 밀고 나갔다.   《소시계》(小诗界) 하금 주필이 류춘옥 시인에게 감사패 전달(한영남 시인 대신 수령)   물론 그동안 일본 시전문지《시와 사상》월간지와 해마다 한번씩 묶는《시인집》에 2021년에는 10명 시인의 시 20수, 2022년에는 35명 시인의 시 70수, 2023년에는 70명 시인의 시 140수를 번역하여 발표했고 올해에는 이미 30명 시인의 시 30수가 《시인집》에 발표되였으며 《시와 사상》 월간지에 30수의 시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문고》 편집위원인 김학천 시인과 전경업 시인은 중국시단의 거물급 시인들의 시를 추천하는 동시에 사업 추진 과정에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제때에 발견하고 제때에 시정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와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문고》는 앞으로 조선족 뿐만 아니라 중국의 기타 소수민족 내지 중국 주류문단의 시인들에게 앵글을 맞추고 그들의 시작을 일본에 소개하고 그들의 시집을 일본어로 번역출간하는 것이 류춘옥 시인과 편집위원회의 꿈이라고 밝혔다.   한영남 시인은 경과보고 마감에 《문고》의 출간을 위해 물심량면으로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은 김춘룡 회장과 류춘옥 시인에게 뜨거운 감사를 표했다.   시전문지 《소시계》(小诗界)잡지 하금 주필은 축하 발언에서 “《문고》의 출간은 일본시단이 중국시단을 리해하는데 자료적 가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국현대시인들의 창작활동에도 추동적인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출간식에 참석한 시인, 평론가들은 《문고》를 둘러싸고 폭넓게 교류하였다.   편집위원회에서는 김춘룡 회장과 류춘옥 시인께 감사패를 전달하고 김학천 시인이 김춘룡 회장과 류춘옥 시인에게 자신의 서예작품을 전달했으며 전경업 시인이 전체 참석자들에게 기념품을 전달했다.   《문고》는 지난 7월 20일 일본 도요미술사출판판매에 의해 일본어로 번역출간되였다.   글 김창영, 사진 김희 파일 [ 6 ]      
[珍藏版] 김학철 장편소설《20세기의 신화》 潮歌家族 潮歌网        안내: 위 사진제목을 클릭하면 볼수 있습니다.   조선족 최대 필화사건!  작가가 10년 옥살이로 고역을 치르게 한 바로 그 소설! (《천지》1989년 발취련재,창작과 비평사 1996년 출판)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김학철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9.끝)   김학철과 반우파투쟁 [수필] 《20세기의 신화》(김학철) [반우파투쟁에 관한 김학철수필 7편] 가해자와 피해자 [청취기록] 반우파투쟁과 《20세기의 신화》(김학철)  
3114    김학철/정판룡 댓글:  조회:1279  추천:0  2024-08-23
원로작가 김학철선생과 《20세기의 신화》                              정판룡   (1)   1997년 이른 봄인것 같다. 나는 무슨 일로 한국에 나갔다가 서울 종로서점에서 생각밖에 갓 출판된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를 발견했다. 출판사와 출판기일을 보니 출판은 서울에 있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하고 출판시간은 1996년 12월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이 《20세기의 신화》로 하여 수많은 옥고와 고생을 하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책은 처음으로 보는것이니 두말없이 한책 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3월 11일에 종로서점에서 샀다는것을 기록해두었다. 곧 읽어보려고 했지만 서울에서는 시간이 없었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내가 곧 병원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바람에 미처 읽을 사이가 없었다. 요지음 시간이 생겨 이 소설을 한번 자세히 읽었는데 내용인즉 전날 연길에 있던 임일평이라는 젊은이가 1957년 반우파투쟁때 우파분자로 되여 처음에는 기관에서 비판투쟁을 받다가 후에는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 가서 로동개조를 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摘帽右派)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것을 주로 쓰고있었다. 1957년에 전개된 반우파투쟁과 민족정풍은 주로 문예계를 중심한 인테리와 대학이나 당정기관에서 전개하여 이런저런 《분자》로 애매하게 붙잡혀나온 사람은 대부분이 임일평처럼 옳은 말, 속에 있는 말을 감히 한두마디 한 사회의 중견인물들이였다. 이런 사람들을 우에서는 50년말부터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다 모아놓고 로동개조를 시킨것 같다. 그러다가 60년대 중엽에 중앙에서 새로운 정책이 내려오면서 일부 《분자》들의 정치모자를 벗겨주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주고 신임하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 임일평이도 《모자를 벗은 분자》가 된 뒤에도 원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신문사 접수실에서 접수원 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1960년부터 중국에는 《3년자연재해》라고 하여 종래로 보지 못한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일어났다. 확실한 통계가 나오지 않아 기근의 엄중정도를 알수 없으나 우리 대학에서도 한때는 가둑나무잎, 콩대, 강낭대를 삶아 대식품을 만들었으며 푸대죽만 한두해 먹었으니 소위 《분자》들이 강제로동을 하는 강제수용소가 그 난통에 어떠했으리라는것은 가히 짐작할수 있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의 전국성적인 대기근은 《3년자연재해》로 인해 일어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것이 이미 밝혀졌다. 1957년부터 시작된 과격한 정치운동과 대약진, 인민공사화 등 좌적인 운동은 공산풍, 평균풍 등을 초래하게 한것이다. 거기다가 1960년부터 공개화된 중쏘분기는 날이 갈수록 첨예해져 마지막에는 우쑤리강의 진보도(珍?島)에서 무장충돌까지 발생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어제날의 형제국가는 우리의 적으로 되였으며 나처럼 국가의 파견을 받고 쏘련류학을 한 사람들까지 의심을 받게 되였다. 《20세기의 신화》에는 이런 내용들도 적지 않게 취급되고있다. 나는 바로 60년도 5월에 류학갔다 돌아왔다. 이때 학교에 돌아왔으니 이 시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돌아와보니 나의 스승 김창걸선생님은 58년에 내부민족주의분자 모자를 쓰고 임일평처럼 학부의 자료실에서 접수원노릇을 하고있었으며 나의 동창친구들도 여럿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로 되여 학교에서 로동개조를 하고있었다. 로시인 리욱선생은 57년도 대명대방(大鳴大放)때 북경에 연수 가고 학교에 없었기에 면했다고 하며 또 학교에는 《학생우파》라고 하여 학생속에서 잡혀나온 《우파분자》들도 여럿 있었다. 글을 가르칠만한 교원들이 모두 적으로 되여 잡혀가고 없으니 학교는 폭풍이 지난 들판처럼 쓸쓸하고 처량했다. 1960년 가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오면서 우리는 살기가 더 힘들었다.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에 묘사된 먹기를 위한 각종 사건들이 대학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1961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대처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이 우에서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일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 우경분자들에게 씌운 모자를 벗겨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라는 꼬리표를 그냥 달고 다니는것이였다. 로작가이신 김창걸선생은 운동때 민족주의분자로 확정은 되였는데 부교수이기에 성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내부민족주의분자로 되고있었는데 비준이 없는 분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민족주의분자의 꼬리표를 달고 그냥 자료실의 접수원으로 계셨다.  이처럼 《20세기의 신화》는 나로 보면 근 6년간 쏘련에 류학갔다가 돌아와 문화대혁명의 대동란이 일어날 때까지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때였기에 퍽 인상적이며 실감적이다. 우리 조선족문학으로 볼 때 토지개혁, 해방전쟁, 항미원조, 그리고 50년대의 호조합작, 인민공사시기를 반영한 작품들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20세기의 신화》처럼 50년대중엽으로부터 무고하게 이런저런 《분자》의 정치모자를 쓰고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며 생활을 해야만 했던 우리 사회의 일부 우수한 인테리들의 생활과 《3년자연재해》로 하여 생겼다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폭넓게 반영한 작품은 없다. 형제민족의 문학에는 《강제로동수용소》거나 60년대의 대기근을 반영하는 작품들 (이를테면 왕몽의 소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김학철선생이 쓴 이 작품이 처음인것이다.   (2)   《20세기의 신화》는 전, 후편 도합 1350매의 규모이니 김학철선생의 장편가운데서는 중간에나 속할것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년만 인 1965년 3월에 탈고 했다고 하니 1964년 년초에 쓰기 시작한것 같다. 당시 김학철선생은 몇해 강제로동수용소에서 로동개조를 했지만 잠시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창작의 권리는 여전히 없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때 《가중되는 정치적압박과 극단적인 궁핍》은 그로 하여금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는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보고 느낀것을 무슨 형식으로나마 쓸 생각을 한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쓰게 되니 자연 개인숭배에 대한 말을 많이 하게 되고 그분에 대한 불경의 내용이 소설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때는 또 바로 문화혁명이 일어날 때라 그 누가 그이에 대한 불경의 말 한마디만 해도 현행반혁명이 되던 때이니 김학철선생이 조용히 집에서 쓴 이 소설이 무사할수 없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얼마 안되여 반란파들은 발표도 되지 않은 소설원고를 몰수해갔으며 예심으로만 7년 4개월, 정식공판으로 판결받은 감옥생활이 10년, 도합 17년 4개월의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김학철선생님의 말씀대로 이것도 력사적기록을 돌파했다. 나는 한동안 세계문학을 전공했으며 세계문학사도 여러 책 쓴 사람이기에 동서고금 문학사에서 소설로 하여 큰 고생을 한 사람을 더러 알고는 있으나 김학철선생처럼 근근히 초고를 써놓은 미발표원고로 하여 근 20년 옥고를 치른 사람은 없는것 같다. 1977년 12월 만기출옥을 한 뒤에도 김학철선생은 옹근 3년을 완전실업자 대렬에 끼여 살다가 1980년에 최고법원에다 직소를 해서야 아직 발표되지 않은 미발표소설이라는데서 일이 락착이 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거리 《20세기의 신화》는 무죄판결이 공포된 뒤에도 7년이나 갇혀있다가 1987년 8월에야 비로소 임자에게 돌려졌다. 나는 《20세기의 신화》가 한국에서 출판되리라는것을 전혀 모르고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그 책을 한권을 샀으며 김학철선생은 한국에서 출판되였다는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우연히 북경에서 김학철선생과 만나니 또 무슨 봉변을 받을려는지도 모르겠다는 근심을 했다. 그뒤 어떤 봉변이 또 그에게 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김학철선생의 속이 편안할수 없다. 그의 이런 정서는 그뒤 그가 발표한 많은 수필, 산문들에서 엿볼수 있다.   (3)   김학철선생은 1916년 출생이니 금년 만으로 85세가 된다. 지금 중국에는 파금(巴金)같은 로작가가 아직 생전이고 파금이나 빙심(氷心), 조우(曹遇)같은 백세로인이 한둘이 아닌것을 보면 이전에 비해 작가의 수명도 많이 길어진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반정황을 보면 수명은 길어도 창작수명은 길지 않다는것이다. 파금같은분은 건국초기부터 글은 별로 쓴것같지 않으며 빙심도 나이가 얼마간 들면서는 별로 쓰지 않았다. 우리 중국조선족 문단을 보아도 대부분의 작가, 시인들은 나이가 60~70이 되면 점차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것이 상례로 되고있다. 장편소설 《부활》을 늙어서 완성하여 세상에 소문을 낸 로씨야의 대문호 똘쓰또이도 나이 80이 된 뒤에는 가정내부의 소소한 쟁론으로 출가하였다가 외지에서 사망하는 일이 생긴것을 보면 우리의 김학철선생처럼 85세의 고령이면서도 계속 쓰는 로인은 적어도 이 중국에는 더 있는것 같지 않다. 김학철선생은 몇해째 《장백산》 잡지에다 《초대석》이라는 란을 설치하여 매기 3~4편의 수필, 산문을 발표하고있으며 그외에도 이따금 이곳저곳에 발표한것을 합하면 한해에 근 20편의 글들을 발표하고있는 셈이다. 김학철선생은 1980년 12월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담당판사가 대중앞에서 랑독했으니 1956년부터 1980년까지 장장 24년을 창작권리를 박탈당했으며 환갑해가 퍽 지난 64세 때 다시 창작권리를 회복했으니 부득불 늙어서야 글을 쓰게 되였다. 남들은 집에서 편안히 할아버지노릇을 할  때 김학철선생은 그때에야 잃었던 시간을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강철같은 그의 의지는 김학철선생으로 하여금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글을 계속 쓰게 하는것 같다. 감학철선생은 어떻게 하든 잃었던 24년의 시간을 보충하고야 말겠다고 하셨다. 《이 점에서만은 하나님이 공정한것 같애. 잃은 시간을 보충하라고 나에게 시간을 주는것 같애.》 김학철선생이 몇해전에 골암(骨癌)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지금 정황은 어떤가고 물어보았더니 《몸에 난 암종만 열 개나 된다고 하는데 나는 치료도 하지 않고 거기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아.》 기실 김학철선생님은 신체가 극히 불편한 몸이면서도 아침마다 그 높은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는 부르하통강가에 나가 우리 젊은 사람 이상으로 운동을 하신다. 지난번 북경에서 《장백산작가상》 시상식이 있을 때 김학철선생은 원래 참가하려고 계획했는데 집에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가시지 못했다. 김학철선생은 작가이고 투사이며 투사이며 작가이사다. 그는 일제시기에 반일투사 윤봉길의 애국행위에 감동되여 20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상해로 건너갔으며 중국륙군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30년대말에는 조선의용대에 입대한 반일투사일뿐만 아니라 광복후에도 정치, 사회 부조리와 감히 맞서 싸운것으로 하여 근 20년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24년이나 창작의 권리를 박탈당했었다. 그의 이런 투사정신을 떠나 그의 문학을 리해할수 없다. 그리고 김학철선생에게 있어 문학은 시종 그의 투쟁무기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께서 건강장수하시고 더 많은 좋은 작품을 써주시기 바란다.                                                    2001년 8월         정판룡: 평론가, 연변대학 전임 부총장, 교수.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 유니세프에 기부 낙찰된 노벨평화상 메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경매에 출품된 노벨평화상 메달이 1억350만 달러(약 1천336억 원)에 낙찰됐다고 AP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메달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내놓은 것으로, 이번 낙찰가는 과거 노벨상 메달 경매 최고가인 476만 달러(약 61억 4천500만 원)의 스무 배가 넘는다. 무라토프는 인터뷰에서 "이번 경매 행사에 많은 연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런 큰 금액에 낙찰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는 미국 뉴욕 헤리티지 옥션을 통해 진행됐다. 뉴욕에서 열린 무라토프의 노벨평화상 메달 경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헤리티지는 "경매 수익금은 전액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에 전달돼 전쟁으로 집을 잃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메달을 누가 낙찰받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헤리티지는 낙찰자는 대리인을 통해 경매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헤리티지 대변인은 "1억350만 달러는 1억 스위스 프랑과 같다"고 언급, 낙찰자가 미국 외 거주자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이 23캐럿의 메달을 녹이면 175g의 금덩어리가 되는데, 이는 시가로 1만달러(1천290만원)에 불과하다고 AP는 전했다. 무라토프는 지난해 10월 언론 탄압에 맞선 공로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탔다. 그는 1993년 4월 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의 자금 지원으로 '새로운 신문'이라는 뜻을 지닌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가 러시아 당국의 처벌 위협 속에 올해 3월 폐간했다. 무라토프 기자의 노벨평화상 수상(2021.12.10)                     영상 기사02:01 [영상] 수단분쟁 닷새째…3번째 휴전합의 또 깨지고 무력 충돌 계속 영상 기사02:05 [영상] 구호품 받으려던 군중 몰려…예멘 압사 사고로 최소 78명 사망 영상 기사01:51 [영상] 코미디언 서세원, 캄보디아서 별세…향년 67세 영상 기사02:07 [영상]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대선출마…가문은 바이든 지지 영상 기사01:43 [영상] 세상 등진 25세 아스트로 문빈…라이브방송서 "좀 힘들었었어요" 영상 기사02:55 [영상] '약자와의 동행'은 언제쯤…'장애인의 날'에도 지하철 시위 영상 기사02:01 [영상] 수단분쟁 닷새째…3번째 휴전합의 또 깨지고 무력 충돌 계속 영상 기사02:05 [영상] 구호품 받으려던 군중 몰려…예멘 압사 사고로 최소 78명 사망 영영상 기사       핫뉴스 [삶] "나는 6살에 강남고속터미널, 누나는 7살에 서울역에 버려졌다" 반려견 패대기 친 식당 주인 입건…"과로에 술먹고 이성 잃었다"  
311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영화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346  추천:0  2022-05-29
“영화계도 자유 위해 나서야”... 칸 영화제... “독재자는 죽고 자유는 영원… 영화는 자유의 편에 서 있을 것” 김영준 기자 2022.05.19      17일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 개막식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히틀러를 비판한 찰리 채플린처럼 오늘날의 영화계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간에 대한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는 죽을 것이요, 그들이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간 권력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독재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는 한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17일(현지 시각) 열린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 개막식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깜짝 등장했다. 특유의 국방색 상의를 입은 그는 화상 연설에서 찰리 채플린의 1940년 영화 ‘위대한 독재자’ 속 ‘최후의 연설’ 장면의 유명한 대사를 인용하며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화계의 지지를 호소했다. ‘위대한 독재자’는 채플린이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분장을 하고 나와 독일 나치 정권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히틀러에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배우 겸 코미디언 출신이기도 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치 정권을 정면 비판했던 당시의 찰리 채플린과 같이 오늘날의 영화계가 자유를 위협하는 푸틴 정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때와 같이 지금도 독재자가 있고 자유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영화계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오늘의 영화계가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새로운 채플린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승리의 결말을 보장할 영화가 필요하고, 영화는 매 순간 자유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의 힘을 강조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모든 참석자들이 기립해 박수로 화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화상 연설을 적극 활용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으며 지난달엔 미국에서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화상 연설을 했다. 그는 당시 “우크라이나의 음악인들은 턱시도 대신 방탄복을 입고 있다”며 “그들은 병원에서 부상자들을 위해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 화상 연설에선 “모든 독재 정권은 예술의 힘을 알기에 예술을 억압하려 한다”며 “예술을 통해서만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들은 러시아와 맞서 싸우는데 필요한 무기와 원조,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전쟁’을 주요 주제로 다룬다. 지난달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숨진 것으로 알려진 리투아니아 감독 만타스 크베다라비시우스의 다큐멘터리 ‘마리우폴리스2′와 벨라루스 태생의 우크라이나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다큐멘터리 ‘파괴의 자연사’ 등이 상영된다. 영화제 측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러시아 영화계의 참가를 금지했으며, ‘Z’라는 제목이 달렸던 프랑스 감독 미셸 하자니비시우스의 영화는 ‘Z’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해 ‘파이널 컷’이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출품됐다.
3111    [그것이 알고싶다] - "청와대로 가보쟈..." 댓글:  조회:2948  추천:0  2022-05-14
    청와대 주변 문물과 나무들...   중앙일보     2022.05.13.     일러스트= 안충기 기자   백악산 능선에는 사연 많은 나무가 한그루 있다. 정상과 청운대 사이에 있는 소나무다. 풍경에 정신을 팔고 걷다보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나무 몸통에 난 구멍들을 시멘트로 메우고 그 위에 둥근 모양으로 하얗고 빨갛게 칠했다. 딱 사격 표적 모양이다. 그 옆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1.21 사태 소나무〉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센터(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한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무장공비 일당은 당시 청와대 및 주변시설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침투 간 아군복장과 민간복 착용, 취객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도발을 자행하였다. 1월 21일 교전 후 14일간 작전 결과 침투한 31명 중 28명 사살, 2명 도주, 1명을 생포(김신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 예비군(68.4.1)이 창설되었다.   백악산 능선 1.21 사태 소나무. 변선구 기자 나무의 총탄 자국은 공비들이 백악산 능선을 타고 튀었음을 말해준다. “박정희 모가지 따러왔수다.” 생포된 김신조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은 서늘했다. 1.21 사태는 예비군만이 아니라 육군3사관학교와 전투경찰대를 만들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련 교육을 실시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에 복수를 하려고 만든 684특수부대에서 행해진 가혹한 대우는 실미도 사건을 불렀다. 그 뒤 인왕산과 백악산, 청와대 앞길은 절대 보안공간이 돼 일반인 통행이 막혔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하나는 생태 보존이다. 아이러니1-청와대 나무들 총 맞은 나무 수령은 100년이 넘어 보인다. 꽤 나이 들어 보이지만 백악산에서 이 정도면 청년이다. 백악산은 길 아닌 곳은 갈 수 없고, 허용된 길이라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비무장지대와 다를 바 없다. 백악산 식생이 철조망의 엄호를 받았다면 청와대 풀과 나무들은 정원사의 극진한 보호를 받아왔다. 그래서 청와대는 창덕궁 후원 못잖은 명품 정원이다. 나무마다 사연도 많다. 대통령과 나무 4월 5일이 식목일이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0년 4월 5일에 열린 순종의 친경제(親耕祭)다. 임금이 손수 나무를 심고 밭을 갈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며 청와대는 장충단 공원, 어린이대공원, 국립수목원, 독립기념관, 남산 등과 함께 때마다 대통령이 나무 심는 단골장소가 됐다. 식목일에 심은 나무와 남긴 메시지도 갖가지다. “나무를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애국을 논할 자격이 없다” (1972년 박정희) “가구마다 나라꽃 무궁화 1그루를 심자” (1992년 노태우) “심고 보호하는데 그치지 말고 가꾸고 경영하자” (1994년 김영삼) “산림녹화와 경제적 활용을 병행하자” (2000년 김대중) “북악산을 전면 개방하겠다” (2007년 노무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63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공동으로 식목행사를 했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녹지원에 무궁화 15그루를 심었다. 사진을 통해 청와대 나무들의 사연을 알아본다. 정문을 통해 본관으로 가다보면 대정원 양편에 키가 훤칠한 금강송 무리가 있다. 춘양목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강릉~원주간 영동고속도로를 만들 때 10그루를 옮겨다 심었다.   대정원 옆 금강송. [눌와] 본관 동쪽에 있는 1960년생 쥐띠 구상나무다. 1988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심었다.   노태우 대통령 구상나무. [눌와] 영빈관 동쪽에 있는 가이즈카 향나무. 박정희 대통령이 심었다. 일본 오사카 남부 가이즈카 지방이 고향이다. 1918년생 말띠이니 100살이 넘었다.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대구 달성공원에 가이즈카 향나무가 이땅에서는 1호로 알려져있다. 문화재청은 이 나무를 사적지 부적합 수종으로 결정한 바 있다. 서울현충원에 있던 이 나무들은 대부분 국내 수종으로 바꿨다. 일제의 상징이니 뽑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땅에서 자라면 우리 나무인데 감정적 접근을 경계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가 보는 노란 민들레는 대부분 서양민들레다. 박정희 대통령 가이즈카 향나무. [눌와] 영빈관 앞에 있는 무궁화.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김대중 대통령이 심었다. 김대중 대통령 무궁화. [눌와] 상춘재 부근에는 나무 120여 종이 자란다. 잔디밭에 있는 반송은 청와대의 상징 같은 나무다. 177세(2022년 기준) 먹었다. 키 12m, 폭 15m가 넘는다. 반송 옆에는 적송 3그루가 있다. 4그루로 보이지만 오른쪽 두 그루는 뿌리를 같이 하는 한그루다. 왼쪽이 적송 오른쪽이 반송. [청와대 경호처] 녹지원 뒤 숲에서 자라는 회화나무 고목 중 하나다. 단정하고 늠름하게 생겼다. 청와대 관람 안내인이 설명하는 자리이자 포토존이다. 사진 명소 회화나무. [눌와]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심은 동백나무. 녹지원과 이어진 상춘재 동쪽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 동백나무. [눌와] 상춘재 앞에 있는 백송. 전두환 대통령이 심었다.   전두환 대통령 백송. [눌와]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에 심은 독일가문비나무. 1944년생 원숭이띠다. 대통령 전용 헬기장 옆에 있다. 최규하 대통령 독일가문비나무. [눌와] 연풍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작은 공원인 버들마당이 있다. 여기에 훤칠한 용버들 한그루가 서있다. 이 땅에서 가장 굵고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감이다. 버들은 물을 좋아한다. 근처에 개울이 흘렀다는 증거다.   용버들. [눌와] 대정원 동편 소정원 한가운데 있는 이팝나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심었다. 박근혜 대통령 이팝나무. [눌와] 수궁터에 있는 주목. 줄기가 붉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썩어 천 년, 합해 삼천년을 간다’는 청와대에서 최고참 나무다. 743세(2022년기준) 잡수신 왕할아버지다. 그 왼쪽에 구 청와대 본관 터임을 표시한 호리병조각이 있다. 수궁터 주목. [눌와] 수궁터에 있는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복자기. 1980년생 원숭이띠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심었다. 김영삼 대통령 복자기. [눌와] 성곽로 끝, 백악산 정상에서 청와대쪽으로 타고 내려오는 능선 중간에 백악정이 있다. 청와대 담장 밖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본래 정자가 없었는데 2004년 4월에 만들었다. 서울 사대문 안은 물론 아차산, 남산, 관악산까지 보인다. 이 한쪽에 2004년 5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서어나무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어나무. [눌와] 이명박 대통령이 심은 산딸나무도 백악정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 산딸나무. [눌와] 관저 앞, 관저와 침류각 사이에는 거대한 낙우송 무리가 서있다. 조경을 할 때, 광화문 쪽과 삼청동 쪽에서 관저를 가리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를 심을 때는 대개 정원의 가장자리에 심는다. 김영삼·박근혜 두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정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성격과 나무 심는 위치도 연관이 있을까. 이승만·윤보선 두 대통령 이름이 붙은 나무는 없다. 당시는 경무대 시절이라 지금의 청와대보다 영역이 작았고, 식목이 다른 일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수 있겠다. 정문에서 본관으로 들어가는 길 양 옆에 잘 생긴 반송이 11그루씩 서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조경을 했지만 이름표가 붙어있지는 않다. 아이러니2 아이러니가 하나 더 있다. 백악산 청와대 일대의 문화유산이 알려진 과정이다. 드문드문 밝혀지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밝힌 곳은 학계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청와대 경호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경호실 직원 몇몇이 역사문화유산 관련 연구 동아리를 만들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발품을 팔아 펴낸 책이 『청와대와 주변 역사·문화유산』이다. 2007년의 일이다. 내용이 치밀하고 충실하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청와대 내부와 인근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발굴하여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이는 단순 히 호사가적인 관심의 충족이 아니라 그간 잊혀져왔던 이 땅의 역사와 내력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소개한 본격적인 문화유산 저술이라는 점에서 놀라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청와대 일대의 문화유산 몇 개만 살펴보자.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각자 1990년대에 대통령 관저 뒤에서 ‘천하제일복지’가 새겨진 바위를 발견했다. 청와대 자리가 예부터 명당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표석 왼편에 연릉오거(延陵吳据)라는 글자로 보아 중국 남송 연릉 지역 출신 오거의 글씨를 집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 아래는 물이 솟는 천하제일복지천이 있다. 관저를 새로 지을 때 지금의 모습으로 주변을 정비했다.   천하제일복지각자. [청와대 경호처] 침류각(枕流閣) 오운정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손석희 전 앵커와 퇴임 인터뷰를 한 장소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枕流)는 뜻이다. 본래 관저 자리에 있었다. 1989년에 관저를 지으며 지금 자리로 옮겼다.   침류각. [청와대 경호처] 오운정(五雲亭)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후원인 경무대 만들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일제가 훼손하기 전인 1910년대 이전까지 이곳은 창덕궁 후원처럼 수려한 계곡과 정원이 있었다. 경무대에는 32개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오운각(五雲閣)은 임금 휴식처, 융문당(隆文堂)은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이고, 융무당(隆武堂)은 군사를 조련하는 장소였다. 오운정은 청와대에서 유일한 정자다.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글씨다. 관저 자리에 있던 정자를 관저를 신축하며 현재 자리로 옮겼다. 오운정. [청와대 경호처] 석조여래좌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 제작돼 경주 남산 계곡에 있던 불상이다. 이를 일제 때인 1912년 데라우치 총독이 서울 남산 총독 관사인 왜성대로 가져갔다. 1939년 총독 관사를 현재 청와대 자리에 만들며 함께 옮겼다. 관저를 새로 지을 때 지금 위치로 이전했다. 몸체가 온전하고 연꽃문양을 새긴 대좌까지 남아있는 통일신라 석불은 많지 않다. 기독교 장로 대통령 시절에 불상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불상을 치워버렸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일부 신도들이 성모상과 예수상을 함께 들여놓으라는 요구도 했다.   석조여래좌상. [청와대 경호처] 팔도배미 터 영빈관 앞뜰을 좌우 각각 8개 구역으로 나눈 공간이다. 1893년 고종이 신무문 밖에 경농재를 짓고 그 앞을 팔도를 상징해 8등분했다. 조선 8도, 즉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의미한다. 농사를 체험하며 풍흉을 살필 목적으로 만들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매년 봄 신하들과 전국에서 올라 온 곡식 종자를 심었다고 한다. 친경전(親耕田)이란 이름보다는 ‘팔도배미’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걸으면 보이는 것들 지난 4월 6일 백악산 남측 탐방로를 개방했다. 삼청 안내소~만세동산 약수터~청운대 쉼터~청운대전망대~법흥사 터~삼청 안내소로 돌아오는 코스다. 여유 있게 걸어 2시간 정도 걸린다. 4월 26일, 이 길을 한 바퀴 돌고 청와대앞길을 거쳐 분수대까지 걸었다. 코앞에 있는 청와대는 성곽로 능선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경사가 급한 길을 숨 가쁘게 올라가니 샘터이자 쉼터인 만세동방이 나온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이 움푹한 홈으로 떨어진다. 마실 수 없으니 손이나 얼굴을 씻으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쉬고 있는데 산불감시원 아저씨 둘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 분은 신입으로 보였다. “여기는 전국 일급지예요. 청와대 뒷산이라 그만큼 신경을 써요. 우리는 서울국유림관리소 소속이고요. 다른 데는 보통 오전 10시에서 7시까지 근무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1시간 빨리 일을 시작해요. 자부심을 가져도 돼요.” (일당 7만3280원인 산불 감시원이 되기는 쉽지 않다. 15kg짜리 등짐 메고 2km걷기 체력을 시험한다. 기계톱질을 얼마나 잘하는지도 본다. 재산이 4억 원을 넘으면 응시를 제한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재학생도 안 된다.) 법흥사 터 한쪽 작은 샘에는 청둥오리 한 쌍이 수시로 물속에 머리를 박았다. 가까이 가보니 물속에는 올챙이가 바글바글했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말했다. “저놈들 요즈음 신났어요. 이 계곡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를 오르내리며 영양보충을 하느라고 바쁘거든요.” 백악산과 북악산 북악산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백악산이 정확한 이름이다. 행정명칭도 백악산이다. 정상에 있는 표지돌에도 ‘백악산 해발 342미터’라고 새겨있다. 정상에는 두 개의 바위가 있다. 그 중 큰 바위에 오목한 홈이 몇 개 있다. 성혈(性穴)이라고 하는데 선사시대 이래 소원을 기원하며 표면을 오래도록 갈고 파낸 흔적이다. 예부터 ‘알바위’, ‘알터’, ‘알홈’ 등으로 부른다. 전국에 이런 이름을 가진 바위가 꽤 있다.   백악산 정상.   정상에 있는 알바위. 명식, 제정흡, 조민곤 세 명의 이름이 파여져 있다. 한 사람은 돌을 쪼다 말았는지 성만 새겨놓았다. 부아암(負兒岩)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8부 능선에 툭 튀어나와 있다. 바위 두 개가 포개져 있는데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다. 광화문 쪽에서는 돌출부위가 드러나지 않지만 동쪽이나 서쪽에서 보면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정도전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며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이 바위를 옮겨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정선 그림 속의 부아암. 간송미술관 소장. 법흥사 터(法興寺址) 백악산 동편 중턱에 있다. 신라시대 때 지은 절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자리가 협소하고 계곡물이 적어 스님 한둘이 생활할 수 있는 작은 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55년 절집을 지었으나 1.21사태 뒤 폐쇄하고 지금은 건물터, 축대, 주춧돌만 남아있다. 이 길을 개방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주춧돌에 앉아 쉬었다고 작은 소란이 일었다. 부처님이 보셨으면 한바탕 웃었겠다. 법흥사 터. 만세동방(萬世東方) 북악산 동쪽 6~7부 능선 계곡 중턱에는 약수터다. 바위에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이라고 새겨져있다. 왕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내용이다. 이승만 대통령 때는 이 계곡의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 먹었다고 전해진다.   만세동방 약수터. 청계천 발원지 백악산 인왕산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청계천으로 들어간다. 2005년 11월 종로구가 최장발원지를 조사했다. 백악산 서쪽 청운동 자하문 고개,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백악산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다. 백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을 발원지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촛대바위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 있다. 도성길과 붙어있다. 정남 쪽에 경복궁이 있다. 일제가 바위 정수리에 박은 쇠말뚝을 광복 뒤 빼내고 촛대바위라고 이름 붙였다.   촛대바위. 숙정문(肅靖門) 도성 4대문 중 북쪽으로 나가는 문이다. 조선시대엔 음양오행설에 따라 이 문을 열면 여풍(女風)이 분다고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면 숙정문을 닫고 남대문을 열었다. 북을 음이고, 남을 양으로 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4대문 중 유일하게 사람이 지나다니는 문이 됐다. 숙정문. 4ㆍ19 최초 발포 현장 청와대 서쪽 광장, 분수대 옆 바닥에는 동판 하나가 누워있다. 일부러 찾아야 보인다. 1960년 4월 19일 화요일 오후 1시 40분경,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대를 향해 처음으로 총을 쏜 현장이다. 이날 21명이 죽고, 17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를 추념해 2018년에 서울시가 만들었다.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역삼각형 모양(가로 35cm, 세로 35cm)이다. 서울시가 선정한 인권 현장 62개소 중 한 곳이다.   분수대 옆 4.19 첫 발포 지점. 분수대에서 북쪽으로 길을 건너면 무궁화동산이 나온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안가를 헐어 내고 공원으로 만들었다. 행정구역상 궁정동이다. 1979년 10월26일, 이곳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총을 맞고 숨졌다. 병자호란 때 청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김상헌 집터 옆이다. 현장에는 죽음의 자리를 표시한 어떤 활자도 없다. 당시 공원을 조성하던 이가 바위 두 개를 포개놓고, 그 위로 가지를 드리운 소나무 한그루를 심어놓았다. 이 사정을 아는 사람만 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안가 터.     대통령 성격 나오는 청와대 나무…아예 나무 안심은 두명은 누구? 청와대 풀과 나무들은 정원사의 극진한 관리를 받아왔다.            
3110    [세상만사] - "문제...문제" 댓글:  조회:2242  추천:0  2022-05-14
[잡문] 알쏭달쏭한 문제 2016년 02월 24일 작성자: 회령                                                                                                                                                                                        1.사람의 머리통문제         천지간 우주간 수수께끼가 많지만 많이 해명되였고 계속 해명되고 있다. 해가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굴러가 퉁! 떨어진다던 문제(수수께끼)도 해명을 보았고 미친수캐가 달을 짓씹어 먹었다든 문제도 언녕 해명되였다. 상아아가씨가 옥토끼를 데리고 절구를 찧는다는 문제는 해명중에 있다. 말과 당나귀가 노새와 버새를 만들어낸(창조한) 오묘한 문제도 해명을 보았고 화성에 물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거이 해명이 되는 모양이다. 사람이 250년까지 살수 있다고 이전에 어떤정신병자가 기염을 토하며 대성을 질러 웃긴바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무슨 백세시대라는가 하면서 건강장수의 비밀, 비결이 륙속 밝혀지는 중이다.     사람들이 점점 더 약아빠지면서 보는 눈 생각하는 눈 분석, 판단하는 눈 그리고 실천행위가 고속으로 발달해서 말하자면 과학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계속 발전을 하고 있어서 수수께끼는 다 해명을 볼것이다. 천당이며 극락세계며… 다 밝혀질 것이다. 시간문제일뿐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리론상에서 해명을 보았고 지금 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그런데, 요상한것이 사람의 머리통문제다. 인간세상 수천년래 동서고금을 두루 보면 사람이 사람문제를 해결못한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주를 탐색하고 사막을 다스리고 대기온난화를 조정하고 러씨아가스를 도관으로 한국에 가져가고 장강의 물을 북경, 천진에 끌어오고… 이런 어마어마한 어기찬 일은 하면서도 사람이 제머리통 하나를 다스리지 못하여… 세상이 시끌벅적 여전히 계속 복잡하다. 온전한, 바로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건 아니다. 말썽은 제대로 되지못한 인간의대갈통 때문에 생기는데, 그것이 줄곧 인간사회의 미해결문제로 되고 있다. 멀리는 말고 근, 현대만 본다면 1,2차세계대전은 누구의 머리통 때문에 일어났는가? 38선은 어느놈 때문에 생겨나고 조선전쟁은 어느애들 때문에 터져가지고 지금도 우리를 원통케 하고 또 세인들앞에서 부끄럽게 하는가! 주영강, 서재후, 령계획, 소영동무… 그느마들 먹을게 없었는가 잠자리 불편했는가… 왜서 개골망신, 패가망신을 했는가… 아무리 따져봐도 그 머리통에 문제가 생긴거다. 주은래, 주용기… 이런 이들은 왜 오늘도 세계적 존경을 받는가?! 머리문제다. 머리통에는 정신이 있는데 그속에 의식이 있고 의식속에는 지식, 사유, 감각, 사상, 감정, 량심, 도덕, 습관… 이런것이 들어 있다. 사람은 머리통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세상의 모든일은 머리통에 달렸다.     머리통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공자님을 모셔와도 쓸데없고 그리스도, 석가모니, 나무아미타불, 마르쿠스, 레닌, 모택동… 고금중외 철학가, 사상가, 정치가, 종교가, 문학가, 교육가, 의학가, 생물학가… 그어느 성현을 모셔와도 쓸데없다.     인간은 오늘까지도 사람의 머리통문제를 철저히 해결하지 못했고 태평성대를 만들어 보지 못했다. 뒤죽박죽 치고박고 막고뚫고 잡고뛰고 양봉음위… 예나 지금이나 북새통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대갈통에 문제가 있는 인간나부랭이는 부단히 잡아버려도 부단히 생겨나니… 도대체가 생존바탕과 환경에 문제가 생겼나 염색체 유전인자에 귀신이 붙었나…                                                                                                                                                                   2016.2.24 =========================///             2.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         앞에서 머리통이요 대갈통이요 하며 무식하고 개명치 못한 악담을 하긴했지만 떠들다 보니께 워낙 주제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여서 급급히 함구를 했다. 세계관, 인생관, 사상, 량심, 도덕, 인격, 원칙, 당성, 진리… 감히 의식형태를 건드리다니… 고양이 새끼가 쇠대가리, 사자대가리를 맡은것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닌가.         하여 이제부터는 중한것은 피하고 경한것으로, 즉 직접 보고 듣고 한 현실적인 알쏭달쏭한 문제를(나로서는 리치를 알수없는것.) 말하고저 한다. 목적은 여러분들의 가르침을 받자는데 있다.         세상이 다 알다싶히 중국의 제5대의 중앙령도들은 맡은일을 잘하고 있다. 중국이 망하기를 늘 바라고 있는 사람들은 맹랑하고 괘씸하기가 짝이 없겠지만 그들도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수는 없을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바른말 하기를 싫어하고 심술통이 바르지 못한 미국아덜이지만 갸들도 습근평을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했는데 앞으로는 어떨가… 더 잘할거다하고 신심을 가지면서도 머리가 기우뚱거려지는, 말하자면 반신반의하는, 신심도 있고 우려도 있다. 그것은 양봉음위, 흥상만하(상급은 법석떠들며 얼렁뚱땅 속여넘기고 하급은 직접  기편한다.) 관관상호(아래위령도가 서로 감싸 줌.)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때문이다. 암행어사(독찰조)가 다니는데도 담이 큰 놈들이 여전히 있는데 이놈들의 방해와 교란, 파괴를 간단하게 볼수없다. 그래서 속이 개운치 못하고 우려가 생기는거다.     층층의 령도가 업적을 올리자고 기를 쓰고 초유록처럼 사업하는것은 위인민복무일뿐만아니라 그의 벼슬급도 오를수 있기에 말그대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다. 이것은 너무도 감동적이고 칭찬할 일이고 대단한 일이고 자타가 기뻐해야할 일이고… 좋은일이다. 그런데, 어떤령도의 업적올리기에는 치사스럽고 더럽고 젖먹던 밸까지 올라오는 문세가락이 들어있다.     여기서 간단한 실례를 한번보자.     한국시골에서 부는 바람을 얻어 먹었는지 우리고장에서도 “문화축제”라는 바람이 불어치는데, 어떤것은 희한하기 짝이없다. 중공18대에서 5위일체건설을 호소했는데 거기에 문화건설이라는 조목이 들어있다. “문화축제”는 문화건설범주에 넣을수 있을뿐만 아니라 중앙과 언행보조를 일치한다는 명분도 세울수 있고(모든면에서 보조를 맞추라고 중앙에서 말한바가 있다.) 업적을 쌓는데도 유익하고 첩경일것 같아서… 하여튼, 여기저기서 문화축제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남이 한걸 그대로 옮겨다 할수는 없는거고… 여덟신선이 바다를 건널때처럼 저마다 기발한 신통성, 창발성, 능동성, 적극성, 필요성, 절박성, 효익성, 위기감, 책임감, 사명감, 원대한안광, 혁명적포부, 과학발전관, 당성… 일체의 전략전술, 방법과 수단, 열량을 다 발휘해서, (어떤령도는 우격다짐으로) 축제잔치를 결정하고 굉장히 크게 경쟁적으로 펼치는데, 축제가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변소문화축제, 뱀장어문화축제, 술문화축제, 봄똥문화축제, 개구리, 두꺼비, 거머리, 나비, 개똥불, 한우, 제주도똥돼지, 개, 짚신, 낫가락, 대장간, 도자기, 막걸리, 뻥튀기(옥수수튀기), 각설이… 지어는 미국의 선진문화를 학습하여 방귀문화라는것도 창출하였는데, 미국에서는 정신병자들이 이미 방귀대회(축제)까지 남녀가 용약 달려들어 엄숙하게 거행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하내비를 따라가지 못하여 방귀축제를 하지못한 상황이긴 하다만 하여튼, 한국에서는 무엇에나 다 거창하게 “문화”라는 두글자를 붙이기 좋아하며 거기에 따르는 축제가 말그대로 여기저기산골마을, 버덕마을들에서 비온뒤 똥버섯 돋듯, 눈온뒤 강아지 뛰놀듯 비일비재다.     우리 이 고장 령도들에서도 한국의 “선진문화”를 혜안으로 예민하게 통찰하고 인입접목을 해서 무슨버섯 문화, 무슨배 문화, 무슨꽃 문화,  무슨강 문화, 돌문화, 찰떡문화, 초두부, 감주, 비빔밥, 소싸움, 빙설, 얼음, 여름철, 겨울철… 문화가 버쩍 만발했는데 거기에 따르는 축제도 가지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어떤령도자는 사심이 발작했다.     우리고장 어느부락에서 처음으로 축제잔치를 하는데, 시작부터 말썽이였다. 그것은 1, 2령도가 생각이 달랐든 것이다. 1령도께옵서는 기발한 신통성과 창발성, 필요성, 절박성… 20여가지 “성”에 나중에는 당성까지 내 휘두르며 축제를 주장하고 얼빠수는 필요없다고 일언지하 내놓고 반기를 들었는데, 결국은 거수가결로 축제를 하기로 결정했다. 속심을 말한다면 반대자가 훨씬 더 많았으나 일빠수가 노려보는 관건적 시각에 미움깨 살거있나, 내돈 드는것도 아닌데… 아주 대찬성이기나 한듯 번쩍 혹은 정중하게 다수가 거수를 했든것이다.     얼빠수가 코방귀를 뀐 리유는 다른데서 야단법석 진행한 축제들의 사회효익(초상인자, 경제진흥, 문화건설에서)을 보면 그 휘황한 성과라든지 심원한 의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돈은 백만단위로 날아났다. 할일 없는 귀빈, 수장, 로령도를 모셔오고 외국에 통기하여 엉덩이가수(노래할때 엉덩이를 돌출하게 심하게 률동함. 그래서 군중들이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 듣기좋고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엉덩이가수라고 함.), 마구 뒹굴고 물구나무를 서며 고함을 지르다가는 도깨비가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사설을 하는(신형의 노래라고 함.) 무슨 예술그룹… 그런걸 품삵을 주고 사오고 축포를 터치고 꽃불을 쏘고 기념품(뢰물)을 주고 연회를하고 먹거리전시, 민속놀음활동도 하고… 하여튼, 며칠을 여가있는 사람들은 심심풀이를 하였다. 축제잔치에서는 예술공연이 주요한 한장면인데 우리네 연원들의 연출은 박수갈채를 받았으나 거금을 주고 사온 외국연원들의 연출은 박수 한짝 없었다. 소학교아인지 중학교아인지 한 녀자애 둘이 새된소리를 두번 질렀을 뿐이다.     이렇게 시작한 축제를 이 부락에서는 련8ㅡ9년을 힘차게 하고 이젠 걷어치웠다. 번마다 축제뒤끝에는 우리부락을 세계에 알렸다는둥 민족문화를 고양했다는둥 정신문명건설을 했다는둥… 총결에서 라렬하는 만질수도 없고 볼수도 없는 성과는 수두룩 했으나 원래 없는 재정에 뭉테기 지출만 뚜렸했다. 유형의 성과가 전혀 없은건 아니다. 일빠수동지가 티비화면에 몇초를 생광스럽게 면목을 낸바가 있고 무슨지면에 사진과 함께 인터뷰내용이 나온것이, 그리고 그간 일빠수 두사람이 상급으로 조동을 했는데 하나는 반급이 오르며 조동하고 하나는 한급을 올리 조동을 한것이 휘황한 성과였다.     첯번째 축제가 있은후 군중들은 부질없는 짓을 한다며 돈이 아깝다고 하였다. 하지만, 일빠수동지들은 만난과 교란을 맞받아 용왕매진 나가며 짓부시고 해마다 두세번씩 축제잔치를 강행하였다. 결국은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돈만 팔아먹고 개뿔도 쓸데없는 축제를 걷어치우라는 민성질타와 나중에는 상급의 엄명일갈에 축제놀음이 사라졌다. 그간, 돈은 몇백만을 날렸는지, 어느놈이 얼마를 먹었는지… 뒷소문은 무성해도 일절 비밀에 붙혀 정작 말썽을 이르킨건 하나도  없었다. 축제는 창위집체결정이였고 학비를 지불한것은 정정당당, 잘한일이라는 것이였다. 성적앞에서는 일빠수가 돌출해 지고 실책, 오책, 손실, 실패… 이런것들 앞에서는 창위가 집체로 나섯는데 다들 무사했다. 했다는 심각한 검사란 “학비를 냈다.” 하며 히쭉 웃는것이고 두어번 궁둥이를 터니 깨끗히 끝났다.     근년에 기층에서 정풍의 일환으로 “생활회의”라는 활동을 하는데, 이곳 군중들은 생활회의가 어떻게 되나 지켜 보았다. 군중들이 보건대는 몇년 진행한 축제놀음 한가지만에서도 서넛은 무사할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일빠수를 비롯해서 창위전원이 히쭉웃고 무사통과! 생활회의는 끝났다. 축제덕을 입어서 한급을 춰 상급에 간 전임 일빠수가 파견을 받고 이곳 생활회의 감독, 지도를 내려와 친히 참석했는데 그의 평가결론은 다음과 같다.     “… 에ㅡ 이번 본부락지도부의 생활회의는 상급의 지시정신에 완전히 부합된다. 준비가 충분히 잘 되였고 얼굴을 붉히고 땀을 흘리고 목욕을 거뿐히 하고 새옷을 입고 경쾌한 심신으로 사업에 뛰여들게 되였다. 단결의 대회 승리의 대회다…”     군중들의 평론은 좀 달랐다. 중구난방 떠들어 대는 그들의 공론을 대충 귀납하면 다음과 같다.     “… 그게 관관상호라는 게오. 양봉음위 흥상만하 부정부패 그런짓거리를 같이 해 먹은것도 있고 해 먹도록 도와준것도 있고… 서로 걸리니까… 하이야며 별장이며 벼슬팔아 모은돈… 다 무사하게 새겼군! 그간 이곳아덜이 해 놓은게 뭐이요? 상급에서 회의를 하면 따라서 회의를 하구 상급에서 시찰을 오면 따라서 댕기구 그리구 축제를 하느라 북쩍거리구 또 다른게 뭐이 있수? 없지?... 어느촌에서 갑자기 홍수피해를 당했을때 한눔이나 대갈짝을 내 밀었소?... 흥! 생활회의가 뭐, 단결의 대회, 승리의 대회라구?... 빌어먹을! 쯔쯔쯔. 엑!퉤!”                                      2016.2.26 ======================///           3.기준문제     옳고그름, 좋고나쁨, 길고짧고, 곱고밉고… 이런것들을 판단하는 데는 고금중외 모두 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기준이 애매모호해서 긴가민가 알쏭달쏭한 문제(현상)가 많다. 문단에도 기준문제가 있는것 같다. 개혁개방전에는 전쟁영화에서 우리편의 주요인물이 희생될때면 두세가지 만세를 부르거나 전진돌격을 웨쳤다. 혹은 당을 따라 혁명을 잘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절대 다수의 관중들이 감동을 하고 고무추동 교육을 받았었다. 극소수가 가슴에 총을 맞은 사람이 어떻게 구호를 웨치거나 긴 유언을 할수있겠냐고 하며 의문을 품거나 내놓고 떠들기도 했는데 그런사람들은 두뇌가 꽤 까다로운 사람들이지만 성분은 좋았다. 그래서 엄중할 경우에는 단, 당지부대회에서 검사비판교육을 한두번 받았다. 성분이 나쁜 사람이면 큰일난다. 하지만 그때세월 성분이 나쁜사람들은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며 살았기에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겉으로는 좋은말만 하고 나쁜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시절의 모든 문학예술작품은 무산계급의 정치돌출, 사상돌출, 영웅인물돌출이 절대적 주선률이 였다. 사상성과 예술성의 유기적 결합을 강조하긴 했으나 정치사상이 우선이였다. 작품은 군중을 공산주의 사상과 작풍으로 교육하며 공산주의길로 이끄는 힘이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진것 같다. “계급” “혁명” “만세” “투쟁” 지어는 공산당, 공산주의, 자본주의, 압박착취… 이런말들을 하기 매우 꺼리며 작품에 정치사상성언어가 한마디만 있어도 그 작품은 창비를 맞는다. 그리고 “정치냄새가 난다.” “문화혁명때냄새가 난다.”고 할뿐만 아니라 어용나팔수라느니 어용문인이라느니 앞잡이라느니 하며 지금이 어느때라구!... 원, 참! 한다. 지금이 어느땐가? 사회주의초급계단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공산당의 령도와 무산계급독재를 수호, 견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작가 예술가들은 인민의 인재들이며 당의 인재들이다. 하다면 홍색주선률에 접근하거나 가담해서 자신을 이바지하는 것이 본분이 아닌가… 알쏭달쏭하다. 작품의 언어사용에도 아기뚱한 점들이 있다. 한국식으로 영어나 불어, 독일어를 사용해서는 아무 거침이 없이 통과가 되지만 한어를, 례하면 위에서 쓴 창비(총살)거나 피주, 쏘폴(구멍가게), 써푸, 땐디, 꽈호, 양뤄촬… 이런 우리가 익숙할뿐만 아니라 우리말로 변형된 상용어들을 쓰면 권위어른께서 면색이 퍼러딩딩해 나며 심기가 불편해 하시는데, 그것 참 까리까리 하다. 사투리 사용에서도 한국작가가 사용한것은 “하ㅡ 대단하다니! 귀중한 문화유산을 발굴 계승하고… 참, 대단해!”하고 무릎을 치고 엉덩이를 들썽거리지만 우리고장 작가들이 감히 그랬다가는 날벼락이 떨어진다. 왜서 이러는지 리치를 알수없다.                                                                                                                                                                            2016.3.2 =============================///           4.가치관의 기준    지금은 가치관도 아주 다종다양한것 같다. 그것은 여러가지 기준때문인것 같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동서고금에서 천경지위의 천륜이다. 이건 세살먹은 애로부터 천하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극히 일반적인 상식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여 왔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현상이 있을뿐만 아니라 그런 현상을 하늘만큼 춰 올리니…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다. 매체에서 보면 일부 젊은이들이 산골에서 기여다니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부모는 상관하지 않고 경로당이며 보육원에 찿아가서 자선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친절하기가 입안의 혀보다 몇십배 더 나긋나긋 하다. 사랑의 마음이 어찌도 강렬한지 어떤 젊은이는 아프리카 원시부락까지 날아가서 자선봉사를 한다. 힘겹게 사는 부모가 있으면서, 부모는 관계치 않고 자선봉사에 열중하는것은 리해하기 어렵다. 부모에 대한 부담은 없으나 주변에 보살핌이 수요되는 동포가 상당히 있건만 기어이 외국으로 날아가 봉사를 하는건 무엇때문인지… 련합국에서 파견한 구조대천사도 아니면서. 내역은 어떻든간에 봉사장면을 대서특필, 대방특보 하는 관방매체의 용의는 또한 무엇인가…선진발달문명국이여서인지 내가 알기 힘든 가치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또 이런것도 있다. 그것은 동물애호, 동물사랑인데 참으로 납득이 않갈때가 많다. 옆에 쓰러진 사람이 있건만 코물이 난다고 호들갑을 떨며 발바리를 안고 병원으로 가는 귀부인, 유한마담, 배고파서 손가락을 빠는 아이들곁에서 고양이에게 고기전을 냠냠 먹여주는 아가씨, 할머니… 어떻게 보는것이 옳은가… 사람에게는 얼음보다 더 랭혹하지만 짐승을 보면 “얘네들, 쟤네들!” 아들이요 딸이요 손자요 하는데, 지어는 짐승과 살겠다는 남녀까지 나와서 사람들을 경악케 하지만 이것도 동물애호 동물사랑으로 긍정해 주고 제창할바인가… 한때 류행되던 “지구촌”이란 말을 지금은 왜서인지 별로 쓰지 않지만 통신정보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어느구석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세상이 그길로 다 안다. 하다보니 벼라별 일들을 다 접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그야말로 “신기”한 것들이 많다. 미국에서 “전국방귀자랑대회”를 굉장하고도 정채롭게 성공리에 거행한후 이곳저곳서방문화권에서 미가슴(녀자)선발대회, 미엉덩이(녀자)선발대회, 미거시기(남 녀복식)선발대회, 미허벅지(녀자)선발대회, 남녀라체혼합군중대회, 남녀라체혼합시위 행진, 남녀라체혼합경축대회… 등등 범국가적행사들이 미국의 대대적인 지도와 지지하에, 솔선수범 이신작칙의 영향하에 거이 해마다 펼쳐지고 있다. 이런행사들에 대한 미국의 지도사상과 학술리론을 보면 그것이 “인성, 인권의 원초적 본성이며 자유, 민주의 요구며 발휘”라는 것이다. 선진문명의 표징이기에 세계가 모두 환영해야 하며 따라배워야 하며 나아가서는 보급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침을 한발이나 흘리면서 인성의 전면적 해방이며 인권자유의 절대적 보장이며 이것이야말로 천당이라고 극찬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물질문명은 발달했으나 정신문명은 극도로 타락했다고 한다. 서양을 포함해서 세상만민의 절대 대부분 사람들은 “미친놈들이 미친지랄을 한다. 이 세상이 제대로 잘 되자면 미국놈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격한 웨침을 한다. 세상의 모든일에는 진리가 오직 하나뿐이라고 하는데, 기준도 그런거 아닌가… 그 유일정확한 기준으로(진리기도 한.) 하나의 지구촌, 하나의 인류가 되자면 세월은 얼마가 더 흘러야 겠는지… 우리를 보더라도 통일인식, 통일사상, 통일행동이 그렇게 쉬운일이 아님을 알수있지 않은가… 일조에 모든사람이 공산주의사상과 풍격으로 통일된다면, 동일한 가치관을 수립한다면 세상에 무슨 말썽꺼리가 있겠는가?!... 일만년이 오래지만 조석을 다투어야 하리…                                                              20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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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2월24일. 새벽 5시30분, 폭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 아이들과 우리의 배낭을 쌌다. (…) 내 그림들을 파일에 넣었다. 우리의 아늑한 집은 방공호가 되어버렸다. 창문과 문 위는 온통 십자가들이다.   *십자가: 폭격시 유리가 터지지 않도록 십자 모양으로 테이핑한 것   2월28일. 미사일이 옆집에 떨어졌다.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 날이 갈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진다.   3월1일. 지하 생활 6일 만에 우린 바퀴벌레가 되어버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폭파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개구멍을 파악하고 있다가, 곧장 기어들어간다. 음식은 가루 한 톨까지 다 먹어치운다.   3월3일. 전쟁 8일째 밤 이후 나는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누구와 그리고 어디로 떠날지도 정하지 않은 채. 그냥 핸드폰을 들고 택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들이 도와주었다.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택시 연락처를 주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택시기사는 나우치카에 있다고 했다. (…) 20분 후 우리는 기차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서 가게 되는 상황에 대비해 아이들의 배낭을 버렸다.   전쟁 첫째 날 내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무서운 사실이지만 그 생각으로 미리 적어두었다.   3월6일. 다음날 새벽 5시 우리는 바르샤바 시내에 위치한 Mercure 호텔에 도착했다. (…) 결국 겉옷만 벗은 채 쓰러져 잠들었다.   3월12일. 엄마는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했다. 엄마는 하리코프(하르키우)에 외삼촌과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남았다. (…)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뿐.   그리고 2022년 4월, 책 앞에 쓴 ‘작가의 말’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이 일기를 적는 이유는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 위해서다.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 오로지 피, 파산,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의 커다란 구멍만 남는다.” /황예랑 편집장
310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이야기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535  추천:0  2022-05-02
2022.04.27  공유하기 북마크   글자크기 변경 인쇄하기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글·그림|정소은 옮김|이야기장수| “내 나이 서른다섯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책 는 이 같은 ‘작가의 말’로 문을 연다. 지난 2월24일 오전 5시, 그는 폭격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짐을 챙기기 시작한 그는 아홉 살과 네 살 아이의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는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다. 그러나 “왜 적는 거야?”라고 묻는 네 살 딸에겐 솔직히 답하지 못한다. “우리, 지금 놀이를 하는 거야.” “무슨 놀이?” “‘전쟁’이란 놀이.”   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삶이 뿌리째 뽑힌 한 우크라이나 작가가 연필 한 자루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이다. 폭격 9일째 국경 밖으로 탈출한 저자는 남편과 이별해야 했다. 이야기장수 제공"  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삶이 뿌리째 뽑힌 한 우크라이나 작가가 연필 한 자루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이다. 폭격 9일째 국경 밖으로 탈출한 저자는 남편과 이별해야 했다. 이야기장수 제공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뿌리째 뽑혔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나고 자란 그레벤니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는 “전쟁 전 우리 삶은 마치 작은 정원 같았다”고 말한다. “그 정원에서 자라는 모든 꽃들은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꽃피우는 정확한 계절이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했던 우리 정원은 날이 가면 갈수록 풍성하게 자랐다.” 그랬던 그는 이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는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전쟁으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연필 한 자루로 기록한 책이다. 전쟁 발발 후 지하실을 방공호 삼아 8일을 보내고, 가족과 이별한 채 피란을 떠나는 과정이 일기 형식으로 담겼다. 이 책은 먼저 출간된 원서 없이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출판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한국 출판사의 편집자·번역자가 작가와 직접 소통하며 작가가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보내온 그림의 연필선을 살려 책으로 펴냈다. 평소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그림 작업을 해오던 작가지만 전쟁통 와중 연필과 종이만이 그의 작업 도구가 됐다. 그레벤니크는 “바깥에서 전투기들이 우리 집을 폭격할 때 그림은 나만의 내면세계를 향한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었다”며 “내 모든 두려움을 종이에 쏟아부었다”고 썼다.   작가는 혹시 모를 ‘사망 후 식별’을 위해 네 살 딸의 팔에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적었다. 이야기장수 제공 책에는 폭격이 시작된 날부터 3월 중순까지 작가의 일기가 담겼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이들 가족은 9층 집에서 지하실로 달려내려 간다. 지하실은 마을 사람들의 방공호가 됐다.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폭격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지하 생활’도 길어진다. “거리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바로 옆이다.”(2월27일) “미사일이 옆집에 떨어졌다.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 날이 갈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진다.”(2월28일) “지하 생활 6일 만에 우린 바퀴벌레가 되어버렸다.”(3월1일)   은행이 문을 닫고 카드 거래가 정지되며 현금이 없어 생필품을 사지 못하고, 동물 먹이로 쓰려던 빵 조각을 씹으며 연명한다. 딸 베라는 말한다. “엄마, 난 초콜릿을 오래 아껴 먹을 수 있어. 볼 안쪽에 붙여두었어.” 지하실에 분필을 가져가자 아이들은 암벽화처럼 벽에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폭격 소리를 들으며 벽에 ‘평화’라고 적는다.   의 저자이자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이야기장수 제공"  의 저자이자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이야기장수 제공 거친 연필선의 글과 그림이 가득한 책장마다 전쟁의 공포가 묻어난다. 작가는 점점 가까이서 울리는 폭격 소리에 지하실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폭격은 ‘러시안 룰렛’ 같다. “5분 후 어디선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제비뽑기, 아니 러시안 룰렛이다. 오늘 넌 타깃이 되지 않았어. 이제 내일까지 꼭 살아남아.” 결국 전쟁 9일째가 되던 날, 그의 가족은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내 인생 35년을 모두 버리는 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배낭 하나만 짊어진 채, 목적지도 모른 채로 무작정 뛰어든 피란 열차는 “이 세상 모든 눈물로 가득”하다.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들이 눈물을 삼키며 아이들을 달랜다. 성인 남자는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계엄령으로 인해 작가도 곧 남편과 이별한다. 하루키우에선 거동이 불편한 외조부·외조모를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엄마와도 헤어졌다. 탈출 후에도 아슬아슬한 순간은 계속된다. “우리가 지옥에서 탈출한 것은 기적이다. 우리가 지나온 후 이르핀 지역에서 철도가 폭발했다.”   무사히 국경 밖으로 탈출했지만 이제 ‘전쟁 난민’이 된 작가와 두 아이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현재 불가리아의 한 소도시에 임시 난민 자격으로 머물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고향 하르키우 소식을 매일 애타게 기다린다. 작가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책 출간 소식을 전하며 “내가 가진 것은 노트와 연필뿐이었지만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면서 “나의 주된 메시지는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 전쟁을 멈추라는 것”이라고 썼다. /선명수 기자
310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그림책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409  추천:0  2022-05-02
"시내가 폭격당하고 있다" 우크라 그림책 작가의 '전쟁일기' 2022-04-15   인쇄     문학동네 새 브랜드 이야기장수서 국내서 세계 첫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전쟁 첫째 날 내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출신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36)는 2022년 2월 24일 오전 5시 폭격 소리에 잠이 깼다. 이 상황을 9살 아들 표도르와 4살 딸 베라에게 설명하고 아이들 팔에 인적사항, 연락처 등을 적었다. 폭격이 시작되자 작가가 딸의 팔에 적은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 [이야기장수 제공]   날이 밝은 뒤 방공호가 된 지하실로 내려가 8일을 보냈다. 폭발음이 들리지 않으면 집에 올라가 먹을 것을 챙기고 미사일이 떨어지면 두 아이의 손목을 붙들고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거리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바로 옆이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무섭다."(2022년 2월 27일) "시내가 폭격당하고 있다. 미사일이 이바노바 사거리에 떨어졌다. 번화하고 아름다운 나의 도시를 그들은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다."(2022년 3월 1일)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이야기장수 제공]   그레벤니크 작가는 지하 생활과 피란, 어머니·남편과의 생이별 등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너진 삶을 연필 한 자루로 기록했다. 2015년부터 '엄마, 화내지 마' 등 그림책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그는 평소의 화려한 그림체 대신 거친 연필 선으로 그려나갔다. 이 다큐멘터리 일기장은 작가와 한국의 편집자, 번역가가 직접 소통하며 완성해 '전쟁 일기'란 제목의 책이 됐다. 우크라이나에선 출판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워 문학동네 출판그룹의 새 브랜드인 '이야기장수'가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이야기장수의 첫 책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나의 도시를 그들은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다" 그렌벤니크 작가의 스케치 [이야기장수 제공]   그레벤니크 작가는 종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우크라이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피란 과정에서 어렵게 택시를 구해 10분 만에 터전을 정리하고 어머니를 남겨 둔 채 떠나는 모습, 계엄령으로 성인 남성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지 못해 남편과 생이별하는 순간이 저릿하게 떠오른다. "남편은 우리를 버스에 태웠다. 그는 더이상 우리와 함께 갈 수 없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남편은 온 힘을 다해 우리를 격려해주었다."(2022년 3월 5일)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는 작가의 말처럼 스케치한 그림에는 불안과 공포, 슬픔, 죄책감, 서글픔이 엉켜있다. 지하실에서 친구가 된 아이들이 벽면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임신부 모습, 피란 열차를 타려고 기차역에 몰린 인파, 남편과 헤어지는 장면…. 방공호가 된 지하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이야기장수 측은 작가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일기장 사진을 낱장으로 받았다. 피란 과정에선 그림을 디지털화 할 수 없었다. 작가의 그림을 일일이 연필 선을 따고 명암을 실제와 근접하게 맞추는 과정을 거쳤다. 작가는 현재 두 아이와 함께 폴란드를 거쳐 불가리아에서 임시 난민 자격으로 머물고 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들과 고향 하르키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는 "우리가 지옥에서 탈출한 것은 기적이다. 우리가 지나온 후 이르핀 지역에서 철도가 폭발했다"고 적었다. 이 글을 번역한 러시아 문화 전문가 정소은 씨는 "이것은 수백만 평범한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책의 인세는 작가에게 전달되며 번역료 전액과 출판사 수익 일부는 저자가 추천한 기관인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된다. /연합뉴스
310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록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741  추천:0  2022-04-08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 지원 위해 재결합 2022.04.08  박소영 기자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 / AP 연합뉴스   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재결합한다. 영국 가디언과 AP 통신 등은 핑크 플로이드가 약 30년 만에 재결합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새 노래를 발표한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새 싱글 '헤이 헤이 일어나'(Hey Hey Rise Up)에는 창립 멤버인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 2000년대 이후 활동을 같이 해 온 가이 프래트와 프로듀서 겸 작곡자 니틴 쇼니, 고인이 된 옛 멤버 릭 라이트의 딸 갈라가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밴드 붐박스(BoomBox)의 리더 안드리 흘리우뉴크가 러시아 침공 직후 불러 화제가 된 우크라이나 민중가요도 삽입됐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에 기부된다. 1965년 런던에서 결성된 핑크플로이드는 1960~1970년대 록 음악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였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며, '벽'(The Wall), '달의 뒷면'(The Dark Side of the Moon) 등의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억 5000만 장 이상 판매됐다. "우크라 위해…" 록밴드 핑크플로이드 재결합 약 30년만에 새 싱글 발표 우크라 `민중가요` 삽입 최현재 기자  2022.04.08  왼쪽부터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전 멤버), 닉 메이슨, 故 릭 라이트.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설의 록밴드를 다시 뭉치게 했다.  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출신의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약 30년 만에 재결합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새 노래 '헤이 헤이 일어나(Hey Hey Rise Up)'를 발표했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에 기부될 예정이다.  이 노래 제작에는 핑크 플로이드 창립 멤버인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 외에 2000년대 이후 활동을 같이해 온 가이 프랫과 프로듀서 겸 작곡자 니틴 쇼니, 고인이 된 옛 멤버 릭 라이트의 딸 갈라가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밴드 붐박스(BoomBox)의 리더 안드리 흘리우뉴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소셜미디어에 올린 뮤직비디오에서 부른 우크라이나 민중가요 몇 소절도 이 노래에 삽입됐다. 2015년 런던에서 붐박스와 공연한 적이 있는 길모어는 흘리우뉴크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성소피아 성당 앞에서 군복 차림으로 20세기 초 우크라이나 독립군을 기리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이 노래를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시 흘리우뉴크는 미국 공연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뮤직비디오를 찍은 뒤 여러 전투에서 싸웠으며 이 과정에서 폭탄 파편이 얼굴에 박히기도 했다. 길모어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순간 내가 가진 플랫폼을 활용해 뭔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길모어는 자신의 며느리가 우크라이나인이어서 손주들 역시 반은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며느리가 매우 연로하고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 친정어머니를 다른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 국경 너머로 간신히 대피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1965년 런던에서 결성된 핑크 플로이드는 사회성 짙은 가사로 유명한 록밴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록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였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현재 기자] ⓒ 매일경제 ========================/// 우크라이나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인 남성이 피아노를 치며 열창합니다. 현지의 유명 록밴드 '오케안 엘즈이'의 리드 싱어 바카르 추크 씨입니다. 원래는 팬들이 가득 찬 콘서트장에서 노래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해 길거리 곳곳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피란민이 모여 있는 방공호와 부상당한 병사들이 있는 병원, 또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며 노래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건데요. 그는 러시아 군함의 발사 거리 내에 있는 남부 도시 오데사에서도, 러시아군의 맹폭격을 받은 북동부 도시 하르키우에서도 길거리 공연을 펼쳤는데 외신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록 투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국민들에게 진한 위로가 됐을 것 같아요."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SBS 뉴스  
310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무라토프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485  추천:0  2022-04-08
노벨평화상 수상 러 기자 "붉은 페인트 피습..." 2022-04-08   글자크기조정  
310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언어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494  추천:0  2022-04-08
우크라이나어 배우기 열풍 2022.04.08.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듀오링고의 우크라이나어 학습 화면 [듀오링고 홈페이지·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투자회사의 동유럽 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스캇 리처즈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로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었으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전근이 보류됐다. 이미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리처즈는 지금 우크라이나 가톨릭 대학의 온라인 강의에 등록해 우크라이나어를 '열공'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우크라이나어로 그들의 문화, 그들의 자유와 침공을 맞아 그들이 보여준 놀라운 용기를 칭송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처럼 우크라이나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에 따르면 이 앱을 이용하는 전 세계 우크라이나어 학습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577% 증가했고 특히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200만명 이상 몰린 폴란드에서는 2천677%나 급증했다. 날 때부터 러시아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민족의식이 고양된 지난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어를 배우겠다는 열기가 확산해 왔다. 최근 개설된 '우크라이나어 회화클럽'의 신규 등록자는 사흘 만에 1천명에 육박했다. 우크라이나 시인  우크라이나 시인 리부바 야킴추크가 지난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시를 낭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부모가 러시아, 할머니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출신인 캐나다인 폴리나 레비나는 키이우와 도네츠크에서 2년간 유엔 관련 인도주의 업무에 종사하면서 러시아어만 사용해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애틀랜타의 IT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애비 데이비스처럼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돕기 위해 이 나라 말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IT 인프라 강화를 돕겠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또 다른 외국어 학습 앱인 핌슬러로 우크라이나어를 공부하고 있다. 일부 외국어 학습업체들은 자사의 자원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링큐는 우크라이나어 무료 강좌를 개설했고 외국어를 배우려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무료 프리미엄 계정을 제공한다.  교사들의 협동조합인 마이쿨클래스는 우크라이나 교사들이 이용할 때는 수수료를 면제하고 신청 절차도 간소화했다. 듀오링고는 우크라이나어 학습자에게서 나오는 광고 수입을 전액 우크라이나 구호 활동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레바논으로 이주한 난민들에게 언어 교습으로 생계 수단을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설립된 나타칼람은 지난달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 강사들을 처음 채용했다. 강사들은 시간당 최소 10달러의 급여를 받는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우크라이나어 학습 열풍은 우크라이나의 독자적인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인식과는 상반되는 흐름이다. 러시아제국과 옛소련 시절 탄압받고 빈농들이 사용하는 러시아어 방언으로 멸시당했던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언어라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두 언어는 이탈리아어 및 포르투갈어와 비슷한 정도의 유사성을 지닌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두 언어에 모두 능통한데 지난 2019년 우크라이나에서 실시된 조사에서는 집에서 주로 쓰는 언어가 '우크라이나어'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많았고 '러시아어' 또는 '둘 다' 쓴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8%와 25%로 나타났다.  폴란드 난민학교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310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노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782  추천:0  2022-03-24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피소에서 한 어린 소녀가 노래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른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온라인상에 공개돼 전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렛 잇 고’를 부르는 아멜리아의 모습.(사진=마르타 스메호바 페이스북 캡처   8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 뉴욕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근 온라인상에 우크라이나 소녀 아멜리아가 키이우의 대피소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르는 영상이 올라왔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아이 울음소리로 소란스럽던 대피소는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금세 조용해졌다. 아멜리아가 노래를 마치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대피소에서 소녀의 노래를 들은 마르타 스메코바는 당시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그는 “폭탄 대피소에서 소녀의 첫 마디가 나오자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일을 제쳐두고 이 소녀의 노래를 들었다. 남자들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노래 첫 소절에서 이미 (아멜리아 노래를 듣기 위해) 완벽한 침묵이 흘렀다”고 적었다.    해당 영상은 SNS를 통해 공유됐고 이 곡의 원곡자인 가수 겸 배우 이디나 멘젤도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영상을 공유했다. 그는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글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기색을 의미하는 하늘색, 노란색 하트모양 이모티콘을 적었다. 영상은 스메호바의 페이스북에서만 10만 회 이상 공유됐으며 트위터, 유튜브 등에도 공개돼 조회수는 각각 수백만 회를 기록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우크라이나에 영광을”,“가슴이 너무 아프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 “... ...난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전쟁을 피해 몸을 숨긴 시민들로 가득 찬 좁은 대피소. 긴장한 듯 의자에 올라서서 머뭇거리던 금발의 소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대화 소리와 아기 울음 소리로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유모차에 실린 아기를 돌보던 여성은 눈물을 흘렸고, 노래가 끝나자 시민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소녀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내려온다. 러시아와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한 대피소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의 러시아어 버전을 부르는 소녀 아멜리아의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노래는 고난과 역경, 두려움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대피소에 함께 있던 시민이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린 이 영상은 각종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조회수가 300만을 넘어섰다.   지난 3일 영상을 처음 온라인에 올린 시민 마르타 스메코바는 “아멜리아는 내게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관중 앞에서 노래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며 “아멜리아가 노래를 부르자 대피소에 있던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래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아멜리아의 노래에 ‘렛 잇 고’ 원곡을 부른 가수 겸 배우 이디나 멘젤도 화답을 보냈다. 자신의 트위터에 영상을 공유한 멘젤은 “우리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인 파란색과 노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겼다. =============================/// "큰 무대서 노래하고 싶어요" 우크라 '렛 잇 고' 소녀 꿈 이뤘다 이선영 에디터 2022.03.22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한 대피소에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를 불러 화제가 된 우크라이나 소녀가 폴란드 자선 콘서트 무대에 섰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21일 미국 CNN 등 외신들은 폴란드로 탈출한 우크라이나 7살 여아 아멜리아 안소비치 양이 지난 20일 폴란드 중부 우치의 아틀라스 아레나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 '우크라이나와 함께'에 출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안소비치 양은 우크라이나 전통 의상을 입고 긴장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습니다. 공연장을 메운 수천 명의 관중들은 휴대전화 불빛을 좌우로 흔들며 응원을 보냈습니다. 이날 공연은 TV로도 중계돼 많은 사람들이 안소비치 양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 공연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성금이 38만 달러(약 4억 6,000만 원) 이상 모였고, 공연을 주최한 폴란드 TVN미디어그룹은 80만 달러(약 9억 8,000만 원)를 추가로 기부했습니다. 앞서 안소비치 양은 이달 초 우크라이나 키이우 한 대피소에서 '렛 잇 고'를 불러 화제를 모았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긴장감과 공포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맑은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당시 대피소에 있던 한 남성은 SNS에 영상을 게시하며 "아이가 관객이 있는 큰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안소비치 양의 '렛 잇 고'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가 1,0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겨울왕국'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가수 겸 배우 이디나 멘젤은 자신의 SNS에 해당 영상을 공유한 뒤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응원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현재 안소비치 양은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폴란드 임시 거처에서 할머니, 오빠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아직 키이우에 남아 군인들을 돕고 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한편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후 우크라이나 밖으로 피란을 떠난 난민 수는 21일 기준 35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약 200만 명이 폴란드에 머물고 있습니다. '뉴스 픽'입니다.  출처 : SBS 뉴스   ======================///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우크라이나 방공호에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제곡 ‘렛잇고’(Let it go)‘를 불러 감동을 준 7세 여아가 폴란드에서 열린 자선콘서트 무대에 섰다. (사진=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AP통신은 폴란드로 탈출한 우크라이나 7살 소녀 아멜리아 안소비치 양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폴란드 중부 도시 우치의 한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를 위한 자선 콘서트에 출연해 수만 명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다고 전했다. 아멜리아는 이날 공연에서 우크라이나 전통 의상인 자수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고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우크라이나에 영광과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곡을 노래했다. 관중들은 연대의 표시로 휴대전화로 불빛과 휴대 조명을 들어 공연장을 밝혔다. 이날 콘서트는 TV로 중계됐고 우크라이나를 돕는 38만 달러(약 4억600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 공연을 주최한 폴란드의 TVN미디어 그룹도 80만 달러(약 9억8000만원)를 기부했다. 현재 아멜리아는 할머니, 오빠와 함께 폴란드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의 부모는 여전히 키이우에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앞서 아멜리아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대피소에서 ‘렛잇고’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당시 대피소에 있던 한 남성이 아멜리아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수백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원곡자인 가수 멘젤도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글과 우크라이나 국기색을 의미하는 하늘색, 노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기며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 "겨울왕국" 주제가 "렛잇고"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오늘 밤 눈 덮인 산이 하얗게 빛나 Not a food print to be seen 발자국도 보이지 않아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고립된 왕국 그리고 나는 그곳의 여왕이 된 것 같아 The wind is howling like swirling storm inside 내 마음속의 폭풍처럼 바람도 울부짖어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ve tried 감출 수 없었어, 하늘은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알거야 ​ ​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받아들이지마, 보이지 마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내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착한 소녀가 되야 해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감춰, 느끼지마, 드러내지 마 Well now they know 하지만 지금 그들은 알겠지 ​ ​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Can't hold it back anymore 더이상 감춰둘 수는 없어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Turn away and slam the door 돌아서서 문을 닫아버려 L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tay 난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아 Let the storm rage on 폭풍아 몰아쳐라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난 추위 따윈 한 번도 신경 쓴 적 없어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 everything seem small 멀어지면 모든 게 작게 보이니 참 웃기지 ​ ​ ​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그리고 한 때 날 지배했던 공포도 Can't get to me at all 나를 전혀 괴롭힐 수 없어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때야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한계를 시험하고 돌파하는 거야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옳은 것도 , 틀린 것도, 지켜야 할 규칙들도 이젠 없어 I'm free 난 자유로워 ​ ​ ​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나는 바람과 하늘과 함께 일거야 Let it go, let it go 다 잊어, 다 잊어 You'll never see me cry 더이상 내가 우는 것을 못 볼거야 ​ ​ ​ ​ Here I stand 난 여기 서 있어 And here I'll stay 그리고 여기 머무를 거야 Let the storm rage on 폭풍아 몰아쳐라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내 힘이 하늘에서 땅으로 휘몰아쳐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내 영혼을 얼음결정체들 속에서 마구 소용돌이 치고 있어 And one through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내 생각은 얼음같이 찬바람처럼 확고해져 I'm never going back, the past in the past 난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 과거는 과거일 뿐 ​ [출처] 겨울왕국
3100    [그것이 알고싶다] - "노벨 평화상" 댓글:  조회:2566  추천:0  2022-03-24
시사상식사전 노벨 평화상      노벨상 6개 분야 중 하나로 평화 증진에 현저히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1901년 노벨상 제정 이후 평화상은 2021년까지 총 102차례 수여돼 개인 109명·단체 28곳이 받았으며, 첫 번째 노벨 평화상은 1901년 국제적십자위원회 설립자인 스위스의 장 앙리 뒤낭과 국제평화연맹의 설립자인 프랑스의 프레데리크 파시가 수상했다.             외국어 표기     Nobel Peace Prize(영어)   1901년 노벨상 제정과 함께 수여되기 시작한 평화상은 평화 증진에 현저히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노벨 평화상은 1901년 국제적십자위원회 설립자인 스위스의 장 앙리 뒤낭과 국제평화연맹 설립자인 프랑스의 프레데리크 파시의 공동 수상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총 102차례 수여돼 개인 109명, 단체 28곳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다만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4년‧1915년‧1916년‧1918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던 1939~1943년에는 수상자 선정이 없었다. 또 1923년‧1924년‧1928년‧1932년‧1955년‧1956년‧1966년‧1967년‧1972년에도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1948년에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으나 암살당하면서 그해 노벨위원회는 "살아 있는 후보 중 적절한 인물이 없다'며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노벨 평화상 선정과 시상 다른 노벨상이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 한림원(스웨덴 아카데미) 등에서 선정하는 것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과 시상 권한을 갖고 있다. 이는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으로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내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부문의 시상자 선정과 수상식은 스웨덴에서 하는 것에 비해, 평화상 수상자 선정과 시상식은 노르웨이에서 이루어진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결정에 관한 전권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갖고 있는데,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출된 5명의 위원은 후보자 추천 작업과 선별 검사, 최종 결정 과정에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보장받는다.  매년 10월 노벨위원회는 각국 전문가 1000여 명에게 서한을 보내 평화상 후보를 추천받는다. 후보자 추천권은 ▲노벨위원회 전‧현직 위원 및 노벨연구소의 자문관 ▲각국 의원 및 정부 각료와 국제 의회연맹 회원 ▲국제 중재재판소 및 국제 사법재판소 재판관 ▲국제 항구평화사무국 위원 ▲국제법 연구소 연구위원 ▲현직 법학·정치학·역사학·철학 교수 ▲노벨 평화상 역대 수상자 등에 있다.  서한을 받은 후보 추천위원은 다음해 2월 1일까지 추천 이유서를 첨부해 추천한다. 추천위원이 자신을 추천할 수는 없다. 노벨위원회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후보 범위를 좁혀가며 선별작업을 벌인다. 최종 수상자는 노벨위원회 5인 전체 회의에서 결정하며 수상자의 신원은 발표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다. 수상식은 노벨 사망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다.  한편, 노벨상은 생존자 개인에게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평화상은 단체나 조직에도 수여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국적 2021년 기준으로 미국이 23명으로 가장 많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이어 프랑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수상자 국적     수(명)     미국     23     프랑스     8     영국     7     스웨덴, 독일     5     남아프리카공화국     4     스위스, 벨기에, 아일랜드, 이스라엘, 러시아     3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아르헨티나, 북아일랜드, 이집트, 폴란드, 동티모르, 라이베리아     2     이탈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캐나다, 북베트남, 일본, 인도, 멕시코, 코스타리카, 티베트,  미얀마, 과테말라, 팔레스타인, 한국, 가나, 이란, 케냐, 방글라데시, 핀란드, 중국,  파키스탄, 콜롬비아, 콩고 민주공화국, 이라크, 에티오피아, 필리핀     1     2010년 이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와 그 업적   연도     수상자     업적     2010     류샤오보(중국)     중국의 기본 인권 신장을 위한 비폭력 투쟁     2011     엘런 존슨 설리프(라이베리아),  레이마 그보위(라이베리아),  타와쿨 카르만(예멘)     여성 인권을 위한 비폭력 투쟁     2012     유럽연합(EU)     유럽의 평화와 화합에 기여     2013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전 세계 화학무기 폐기 주도     2014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  카일라쉬 사티아르티(인도)      아동·청소년의 인권 향상에 기여     2015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튀니지의 민주화 주도     2016     후안 마누엘 산토스(콜롬비아)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의 평화협정 서명     2017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     핵무기 관련 활동 반대 운동 주도     2018     나디아 무라드(이라크),  데니스 무퀘게(콩고 민주공화국)     전쟁 성폭력 종식 노력     2019      아비 아머드 알리(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수십 년을 이어온 오랜 분쟁을 종식시킴     2020      세계식량계획(WFP)     기아를 퇴치하고 분쟁지역 평화에 기여해 굶주림이 전쟁과 갈등의 무기로 활용되는 것을 방지     2021     마리아 레사(필리핀), 드미트리 무라토프(러시아)     민주주의와 영구적 평화의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    [네이버 지식백과] 노벨 평화상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세계평화인물열전 노벨평화상: 기록과 역대수상자 노벨평화상 수상에 얽힌 다양한 기록들   기록으로 보는 노벨평화상 1901-2017 1901-2017년까지 시상횟수 : 총 98회 1, 2차세계대전 기간을 포함해 19년은 선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14-1916, 1918, 1923-24, 1928, 1932, 1939-43, 1948, 1955-56, 1966-67, 1972) 그리고, 1925년과 1962년에는 수상자는 선정되었으나, 시상이 1년 연기되었다. 총 98회의 전체 수상자 수 : 131   2017년 현재까지, 개인은 104명, 단체는 27개가 수상. 단, 국제적십자위원회가 3번 수상 (1917년,1944년,1963년), UNHCR이 2번 수상 (1954년,1981년), 따라서 실제 단체의 개수는 24개. 수상자가 1명(개)인 경우 vs 여러 명(개)인 경우     수상자의 평균 연령: 62세   대륙별 분포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대륙별 분포. 역대 수상자 전체를 보면 서유럽과 북미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백인⋅서구중심성은 노벨평화상 비판에 빠지지 않던 단골 메뉴였다. 1901-2017년 사이 전체 수상자 중 서유럽과 북미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65%에 달한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도 미국(21명), 프랑스(9명), 영국(7명) 순이다. 특히 초기 50년간 북미와 서유럽이 아닌 곳에서 수상자가 배출된 경우는 1936년 아르헨티나의 사베드라 라마스 단 한 번뿐이었다. 아프리카인이 최초로 선정된 것은 1960년, 아시아인은 1974년에 와서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인권의 시기에 이르러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개선되기 시작한다. 특히 21세기에 와서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수상 비율이 약 70%, 미국과 유럽은 약 25%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최초의’ 수상자들   진기한 기록들   여성 수상자 1901년부터 2017년까지 총 104명의 수상자 중 여성수상자는 16명으로 전체의 15.3%에 불과하다. 특히 처음 75년간 여성수상자는 단 3명으로, 그마저 모두 유럽과 미국 출신이었다. (이는 노벨위원회 구성과도 관련된다. 약 50년간 노벨위원회는 단 1명의 여성위원도 갖지 못했다. 현재는 총 5명 중 3명이 여성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인권의 시기를 거쳐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대(2001-2017)만 따졌을 때 여성 비율은 35% (총 17명 중 6명)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상 파리 평화협상 중 레득토(오른쪽)와 키신저(왼쪽) 1973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리더 레 득 토의 수상 결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노벨평화상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경우로 꼽힌다. 두 사람은 같은 해 파리에서 이루어진 베트남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두 전쟁 당사자 간의 다분히 정치적인 협상에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사람들은 nobel 평화상이 아니라, 전쟁상 또는 ‘ig-noble’ 평화상이라고 조롱했다. 뿐만 아니라 레 득 토는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는 수상자로 지명된 최초의 아시아인이자, 최초의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이를 거부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라는 영예(?)를 얻는다. 키신저는 수상을 허락했지만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 이후 노벨평화상을 반납하고자 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사건으로 노벨위원회 위원 2명이 위원직을 사임했다. 받았어야 했으나 받지 못한 사람들: 간디와 톨스토이     인도의 간디(왼쪽)과 러시아의 톨스토이(오른쪽)은, 의외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평화인물들이다. ⓒ Unknown / http://lj.rossia.org/users/john_petrov/849786.html 당연히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거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인도의 간디와 러시아의 톨스토이다. 간디는 무려 5번이나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끝내 받지 못했다.(1937-39, 1947-48년) 노벨평화상은 물론,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평화상도, 문학상도 받지 못했다. 특히 ‘평화와 비폭력의 아이콘’인 간디가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수상이 유력시됐던 1948년에도 간디가 상을 받지 못한 것은 발표 몇 달 전 그가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적합한 후보자가 없다”며 수상자 없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1961년 스웨덴 출신이자 노벨재단 이사장 아들이었던 D. 함마르셸드에게는 사후수상이 허락된 바 있다. 또 위원회가 사후수상 불가를 정식으로 공식화한 것도 간디 사후 거의 30년이 지난 1974년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간디의 수상실패를 그의 갑작스런 죽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간디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었다. 후자는 비폭력 원칙에도 불구하고 간디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더 큰 폭력과 유혈을 야기했다는 점 (특히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과 관련해), 그가 지나친 인도 민족주의자라는 점 등을 근거로 간디의 수상을 반대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노벨위원들의 그런 견해가 노르웨이와 영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당시의 백인우월주의나 서구중심주의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간디의 사례는 ‘노벨평화상의 가장 큰 실수’, 또는 ‘노벨평화상의 수치’로 불린다. 이런 사람들도 노벨평화상 후보에? 히틀러, 스탈린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는 1939년 스웨덴 국회의원에 의해, 스탈린은 2차대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45년과 1948년 두 차례나 후보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한국의 전두환도 추천된 바 있다. 그 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한 유명인으로는 윈스턴 처칠(대신 처칠은 2차대전 회고록으로 헤밍웨이를 제치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아르헨티나의 후안 & 에바 페론, 세계 평화학의 아버지 요한 갈퉁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벨평화상: 기록과 역대수상자 - 노벨평화상 수상에 얽힌 다양한 기록들 (세계평화인물열전, 이문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노벨 평화상 러시아 언론인, 우크라 난민 위해 메달 경매   MBC뉴스     2022.03.24.     투데이 이슈톡입니다. 노벨 평화상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 기여한 공로자에서 수여하는 상인데요. 러시아 최초의 노벨 평화상을 받은 언론인이 자신이 받은 메달을 경매에 내놓겠다고 밝혀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렸습니다. 첫번 째 키워드는 "노벨상의 진짜 가치 경매 나온 평화상"입니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받고 활짝 웃는 주인공! 바로 러시아 반체제 인사이자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를 이끌고 있는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입니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건데요. 이들 매체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격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전쟁의 참상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폐간 위협을 받으면서도 푸틴 대통령의 부정부패를 폭로 중이라는데요. 진실을 알린 보도로 수상한 노벨 평화상을  우크라이나를 위해 다시 내놓은 무라토프 편집장. 메달이 비싼 가격에 팔려서 그의 바람대로 전쟁으로 다치고 아픈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오슬로(노르웨이)=AP/뉴시스] 지난해 12월11일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1.12.11.  [서울=뉴시스]송재민 인턴 기자 =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언론인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노벨상을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CNN,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60)는 이날 성명을 통해 "2021년 노벨 평화상을 판매해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기금에 보태겠다"고 밝혔다. 무라토프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10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있다"며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피란민, 부상을 입은 어린이들과 메달을 공유하고 싶다. 경매를 진행할 경매 업체를 구한다"고 했다. 앞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무라토프는 영상 성명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시작했다"며 "전쟁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는 슬픔과 수치심을 짊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후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격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무라토프는 편집 회의를 통해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된 기사를 나란히 배치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우리 신문의 입장"이라고 무라토프는 전했다. 이에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미디어 감독청인 로스콤나드조르는 이틀 만에 노바야 가제타를 폐간하겠다고 위협하며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도시 폭격과 민간인 사망에 대한 '진실하지 않은 정보'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고 WP는 전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 4일 러시아군에 대한 '가짜 뉴스'를 유포할 경우 최대 징역 15년의 실형을 부과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백 명의 기자가 러시아를 탈출했지만, 무라토프는 여전히 모스크바에서 일주일에 세 번 노바야 가제타를 출판하고 있다. 무라토프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이 정보 전쟁에서 도망가느니 차라리 내 발을 총으로 쏘겠다"며 "정부가 신문사를 폐간하려 한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겠지만, 직원들과 독자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신문사 불을 끄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1년 무라토프는 필리핀 언론인 마리, 레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무라토프는 "이번 노벨 평화상은 노바야 가제타와 (신문에서 일하다) 살해된 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노바야 가제타 소속 기자 6명이 괴한의 총격을 받거나 둔기를 맞고 숨졌으며, 특히 부편집장은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 올 노벨 평화상 언론인 2명은 박하얀 기자 2021.10.08  공유하기 북마크 1 글자크기 변경 인쇄하기 필리핀 레사 “사실이 없는 세계는 진실과 믿음이 없는 세계” 러 무라토프 “숨진 기자들 위한 상…억압적 현실 대변할 것”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8일 202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필리핀의 마리아 레사(왼쪽 사진)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AFP연합뉴스 올해 노벨 평화상은 독립언론을 이끈 언론인들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마리아 레사와 드미트리 무라토프를 선정했다. 레사와 무라토프는 각각 필리핀과 러시아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가 민주주의 수호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의 수상은 권위주의 정권이 세계 곳곳에서 권력을 잡은 오늘날 언론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노벨위원회는 “민주주의와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알리려는 것”이라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실에 근거한 저널리즘은 권력 남용, 거짓말, 전쟁 선전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레사는 필리핀 출신 언론인으로 필리핀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의 공동 설립자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의 폭력성을 조명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만연한 ‘가짜뉴스’에도 집중해왔다. 위원회는 래플러가 “두테르테 정권의 논란이 많고 살인적인 마약 반대 캠페인에 비판적인 관심을 집중해왔다”고 평했다. 레사와 그가 이끄는 매체를 눈엣가시로 여겨온 필리핀 당국은 지난 2년 동안 레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10차례 발부했다. 당국은 2019년 2월 래플러가 한 사업가에 대한 허위 내용을 보도한 혐의가 있다는 명목으로 레사를 체포해 이듬해 6월 유죄를 선고했다. 레사가 항소하면서 보석으로 석방됐다. 당시 인권단체와 언론계는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면서 저널리즘을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레사는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사실(fact) 없이는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며 “사실이 없는 세계는 진실과 믿음이 없는 세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기자가 되기 가장 좋은 때이다. 가장 위험한 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면서 “우리는 계속 빛을 비출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토프는 1993년 러시아 반(反)정부 성향 신문인 ‘노바야 가제타’를 공동 창립해 1995년부터 24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온 이 신문은 창간 이래 기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정부패나 경찰의 불법행위, 선거부정, 친정부 댓글부대 등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전해왔다. 위원회는 무라토프가 “러시아에서 수십년에 걸쳐 점점 더 험난해지는 환경에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해왔다”고 설명했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무라토프는 “이번 노벨 평화상은 나 개인이 아닌 노바야 가제타와 (신문에서 일하다) 숨진 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텔레그램 뉴스채널 ‘포디옴’에 “억압받는 러시아 언론을 계속 대변할 것”이라며 “ ‘외국 첩보원’으로 낙인찍혀 공격받고 국외로 추방되는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실은 이날 무라토프의 수상에 대해 “그는 재능 있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이념에 헌신하고 고집스럽게 일해왔다”면서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래플러는 “크렘린궁은 (정권을) 비판한 언론인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환영한다”고 일갈했다. 노벨위원회는 앞서 지난 3월1일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개인 234명과 단체 95곳 등 329명이 올랐다고 밝혔다. 평화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스웨덴크로나(약 13억5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올해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오는 12월10일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에 맞춰 노르웨이 오슬로대 강당에서 열린다. ===============================/// '노벨상' 러 독립언론, 젤렌스키 인터뷰 후 발행 중단  2022.03.28  작게 크게     기사내용 요약 "러 당국 2차 경고…완전 폐쇄 막기 위한 조치" 우크라이나 전쟁 끝날 때까지 잠정 중단 편집장 무라토프, '언론자유 수호'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슬로(노르웨이)=AP/뉴시스] 지난해 12월11일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기자회견에 참석 중인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정원 기자 =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설립한 러시아의 저명한 독립 언론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인터뷰한 뒤 러시아 당국의 경고를 받고 발행을 잠정 중단했다.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발행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통신규제기관인 연방통신정보기술매스미디어감시국(로스콤나드조르)의 두 번째 경고에 따른 결정이다. 이 언론 편집위원회는 성명에서 "우리는 로스콤나드조르로부터 2차 경고를 받았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특별 작전'이 끝날 때까지 신문의 웹사이트, 디지털, 인쇄물 발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은 "어려운 결정"이라며 "존경받는 출판물을 구하고 완전 폐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히 보기     이어 "이것은 우리와 여러분에게 끔찍하고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위해 우리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 언론은 러시아 당국이 법률로 정한 '외국 대리인'(foreign agent)을 명시하지 않아 이날 2차 경고를 받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7일 러시아 독립언론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러시아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노바야 가제타에선 '모든 크렘린의 사람' 저자 미하일 지가르가 무라토프를 대신해 참여했다. 1차 경고는 지난 22일 내려졌다. 러시아 법원은 1년 내 2차 경고를 받은 언론에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무라토프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러시아 당국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기여한 점을 평가 받았다. 그는 지난 22일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자신의 노벨평화상 메달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무라토프가 1993년 설립한 독립 언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직설적인 비판가였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를 포함해 설립 이래 6명이 살해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3098    [세상만사] - "고래 똥 = 로또"... 댓글:  조회:3234  추천:0  2021-10-12
2021.03.07        ▲ 태국에서 또 한 번 ‘바다의 로또’가 터졌다. 현지 매체 방콕잭은 6일 보도에서 태국 사뚠주의 한 어부가 용연향 두 덩어리를 줍는 횡재를 만났다고 전했다.   태국에서 또 한 번 ‘바다의 로또’가 터졌다. 현지 매체 방콕잭은 6일 보도에서 태국 사뚠주의 한 어부가 용연향 두 덩어리를 줍는 횡재를 만났다고 전했다. 현지 어부 아세레 푸아드(24)는 지난 2일 아버지와 낚시를 나갔다가 폭우를 만났다.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풀이 죽어 돌아간 어부 부자에게 바다는 대신 용연햔을 선물했다. 어부는 “빈손으로 터덜터덜 발길을 돌렸는데 얕은 해변에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용연향에 대해 본 적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에 가져왔다”고 밝혔다.             ▲ 이들이 주운 덩어리 무게는 각각 7㎏, 600g으로 지난달 태국 나콘시탐마랏주의 한 여성이 주운 용연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들이 주운 덩어리 무게는 각각 7㎏, 600g으로 지난달 태국 나콘시탐마랏주의 한 여성이 주운 용연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어부 가족은 송클라대학교 연구실에 용연향 샘플을 보내 진품 감정을 받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두 사람이 주운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그 가치는 최고 1020만 2000바트, 한화 약 4억 원으로 추정됐다. 진품 증명서를 받아든 어부 부자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버지는 “폭풍우를 만나 일찍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결국 이런 보물을 얻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두 사람은 이제 최고급 용연향을 사갈 사람을 찾고 있다. 판매를 위해 재감정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두 사람이 주운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그 가치는 최고 1020만 2000바트, 한화 약 4억 원으로 추정됐다.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된다. 배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색을 띠는데, 질감은 부드럽지만,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바다를 떠돌며 햇빛과 소금기에 노출되면 검은색은 점차 연해지고 질감은 딱딱해지며 좋은 향이 난다. 바다 위를 오래 떠다닌 용연향일수록 향이 좋으니 그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최고급 용연향은 500g당 2300만 원의 고가에 팔려나간다. ‘바다의 로또’, ‘바다의 황금’, ‘해신(海神)의 선물’이라고 불릴만하다.     ▲ 지난달 23일 태국 나콘시탐마랏주 시리포른 니암린(49)이라는 주민 여성도 수억 원대 용연향을 주워 화제를 모았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해변을 따라 걷던 그녀는 폭 30㎝, 길이 61㎝, 무게 약 7㎏짜리 황금빛 용연향을 발견했다. 가격은 790만 바트, 한화 약 3억 원으로 책정됐다. 지난달 23일 태국 나콘시탐마랏주 시리포른 니암린(49)이라는 주민 여성도 수억 원대 용연향을 주워 화제를 모았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 해변을 따라 걷던 그녀는 폭 30㎝, 길이 61㎝, 무게 약 7㎏짜리 황금빛 용연향을 발견했다. 가격은 790만 바트, 한화 약 3억 원으로 책정됐다. 서울신문 / 권윤희 기자 ============================================ ‘바다의 로또’ 횡재… 15억원대 용연향 건진 태국 어부 2021.10.06        ▲ 1일 SCMP는 태국 수랏타니주의 한 어부가 조업중 30㎏짜리 용연향을 건지는 횡재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태국 어부가 바다에서 로또를 건졌다. 1일 SCMP는 태국 수랏타니주의 한 어부가 조업중 30㎏짜리 용연향을 건지는 횡재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현지 어부 나롱 펫차라지는 지난달 27일 니욤 해안에서 파도에 떠밀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물체 가까이 배를 몰았고, 한눈에 용연향임을 알아봤다. 어부는 “겉만 보고도 과거 텔레비전에 나온 값비싼 용연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된다. 배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색을 띠는데, 질감은 부드럽지만 악취를 풍긴다.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된다. 배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색을 띠는데, 질감은 부드럽지만,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바다를 떠돌며 햇빛과 소금기에 노출되면 검은색은 점차 연해지고 질감은 딱딱해지며 좋은 향이 난다. 바다 위를 오래 떠다닌 용연향일수록 향이 좋으니 그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최고급 용연향은 1㎏당 최소 3만7500~4만2791달러, 한화 약 4500~5200만 원의 고가에 팔려나간다. ‘바다의 로또’, ‘바다의 황금’, ‘해신의 선물’이라고 불릴만하다.       ▲ 어부가 주운 30㎏짜리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확인됐다. 시세대로라면 그 가치는 125만 달러, 약 15억 원 이상이다. 횡재를 직감한 어부는 손에 쥔 용연향을 일단 가족 몰래 숨겨두었다. 그는 “마을 사람 중 누구도 진짜 용연향을 보거나 만져본 적이 없었다”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용연향을 상자 속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곤 용연향 샘플을 송클라대학교 연구팀으로 보내 진품 감정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어부가 주운 30㎏짜리 덩어리는 품질 좋은 용연향으로 확인됐다. 시세대로라면 그 가치는 125만 달러, 약 15억 원 이상이다. 어부의 한 달 벌이가 10~20만 원 수준인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로또가 터진 셈이다. 어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너무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면서 “용연향 진품 증명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용연향 판매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값만 잘 쳐준다면 어부 일을 그만두고 친구들과 잔치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 권윤희 기자 ====================///      중앙일보  2020.12.08  이병준 기자  태국에서 발견된 100kg짜리 용연향. 사진 페이스북 캡쳐 태국에서 한 어부가 35억 원짜리 용연향을 주웠다고 영국 더선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용연향은 수컷 향유고래의 토사물로 향수를 만들 때 쓰이는 물체다. 보도에 따르면 태국 어부 나리스 수완나상(60)은 지난달 23일 남부 나콘시 탐 마랏의 한 해변에서 100㎏에 달하는 용연향 덩어리를 발견했다. 용연향을 집까지 옮기는 데에는 수완나상의 사촌 형제들까지 동원됐다. 수완나상은 처음에는 용연향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집에 와 겉면을 불에 그을려보자 향기가 나 용연향인 걸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수완나상은 현지 언론에 용연향 1㎏당 96만바트(약 3450만원)를 주겠다는 제안이 왔다고 밝혔다. 100㎏이면 9600만바트(약 35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더선은 수완나상의 월수입이 약 7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수완나상은 “이 용연향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전문가들이 이걸 봐봤으면 좋겠다”며 “경찰에게 가서 내가 용연향을 발견했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놓을 계획이다. 집에 도둑이 들까 불안하다”고 했다. /이병준 기자 ============/// 주황색 공... 희귀 진주 '줍줍' 횡재  2021-02-05   요약beta   공유  댓글  글자크기조정  인쇄 (서울=연합뉴스) 태국 남부에 사는 한 가난한 어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진주 중 하나인 멜로 진주를 발견해 뜻하지 않게 횡재를 얻었습니다. 지난 1월 27일 태국 남부의 나콘시 탐마라트 주에 사는 하차이 니욤데차(37)씨가 마을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굴 껍데기를 줍다가 1천만 바트(약 3억7천만원)로 추정되는 멜로 진주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5일 로이터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하차이씨는 조개껍데기 3개가 달라붙은 버려진 부표를 발견하고는 동생을 불러 새집을 꾸미는 데 사용하려고 가져왔는데요.   세 번째 껍데기를 열자 그 안에는 10펜스 동전보다 약간 큰 7.68g 정도 되는 오렌지색 진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이 진주는 매우 희귀한 멜로 진주로 그 가치는 최고 1천만 바트(약 3억7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의 한 부유한 사업가는 진주를 백만 바트(약 3천7백만원)에, 또 다른 명품 수집가는 5백만 바트(1억8천6백만원)를 제안했지만, 더 비싼 값을 받고 싶은 가족들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현재는 중국인 구매자가 1천만 바트(약 3억7천만원)에 사겠다고 제안을 해 와 협상 중입니다. 가장 비싼 가격에 진주를 팔고 싶은 하차이씨는 "그 돈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 운명을 바꿀 거다. 우리 가족 모두 더 나은 삶을 살 거다"며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멜로 진주는 남중국해와 안다만해에서 주로 서식하는 바다달팽이 '멜로멜로'가 만들어내는데 오렌지색에서 황갈색, 갈색까지 다양하며, 오렌지색 진주가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상으로 보시죠.    
3097    [별의별] - "둥글다"와 "평평하다"... 댓글:  조회:3137  추천:0  2021-09-13
“지구는 평평” 외치는 음모론자들, 무시만 해선 안되는 이유  ‘지구는 둥글다’가 음모론이라고? 귀 닫고, 눈 감고 자기 주장만 펼치는 이들의 외침 다큐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윤수정 기자 2021.09.13      1998년 영화 ‘트루먼 쇼’는 작은 섬 모양의 세트장에 갇혀 일거수일투족이 TV로 방영되는 트루먼 버뱅크(배우 짐 캐리)의 삶을 그렸다. 특히 트루먼이 배를 타고 거대한 세트장 속 바다 끝에 위치한 평평한 벽을 발견하고, 그곳에 달린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는 장면이 유명하다. 보통의 평범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기발한 영화적 상상’이란 생각을 먼저하게 될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과학계 정설로 받아들여진 오늘날 평평한 세트장에 사람을 가두고 관찰한다는 개념이 신선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사실은 실제 우리 삶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이다.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진 ‘평면지구인’들   평평한 지구 모양을 축소한 모형을 들고 있는 평면지구인. /넷플릭스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는 위와 같은 지구 평면설을 믿는 이들을 다룬다. 스스로를 ‘평면 지구인(Flat Earther)’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구체 지구론’이 정설이 된 게 사실은 ‘트루먼 쇼’ 같이 거대한 음모를 위해 사람들을 세뇌시킨 결과라고 주장한다. 나사(NASA)와 정부 기관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하늘 밖으로 사람들이 나가는 걸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닐 암스트롱 등 우주인들의 역사도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배워온 교과서와 정반대 주장을 하는 이들이 그저 헛소리를 하는 괴짜처럼 보이겠지만, 다큐는 놀랍게도 이런 평면지구인이 미국에서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유명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2018년 조사한 결과 미국인의 약 2%(650만 명)가 지구평면설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큐는 이들 평면지구인들이 ‘평평한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를 결성하고 심지어 2017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국제 학회까지 여는 모습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평면지구인들의 모습을 보면 생각보다 멀쩡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해 놀라게 될 것이다. 개중에는 미국 경찰국 법의학 컨설턴트 등 과학적 지식이 다분해 보이는 전문직종의 사람들도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평면지구론을 설명하며 엉터리 근거를 댈 때마다 금세 현실감각이 돌아오게 된다. ‘지평선이 평평한 걸 내 눈으로 봐서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안다. 신기루 현상도 있다지만 그건 과학자들의 음모론이다’는 식의 주장이 대부분이어서다. 다큐도 이 같은 허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의 모습을 분석하거나 반박하는 실제 과학 전문가들의 장면을 계속 교차해서 보여준다. 다큐 속 평면지구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한 실험 모습. 이들은 구멍이 뚫린 판자 여러개를 세우고, 레이저를 비춰 불빛이 구멍을 일직선으로 통과하면 지구가 평평한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번번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데 실패한다. /넷플릭스 전문가들은 특히 이 같은 평면지구인들의 믿음이 ‘확증편향의 오류’로부터 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학적 사고는 A라는 가설이 B라는 결론으로 도출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검증을 거치는 방식을 택하지만, 평면지구인들은 B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이에 맞는 근거들을 끼워맞춘다는 것이다. 실제 다큐에선 평면지구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에 끼워 맞출 근거를 찾기 위해 각종 엉터리 과학 실험을 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틀려도 틀렸다고 말하지 못 하는 진짜 이유 평면지구인들의 학회에서 지구 모형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춤을 추고 있는 평면지구인. /넷플릭스 평면지구인들은 수차례 자신들의 주장이 자기 모순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코 자신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못 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스스로를 구체 지구론을 믿는 이들을 음모론에서 구해낼 영웅처럼 여기고, 이를 통해 구축한 영향력과 공동체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평면지구인들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서전트’는 다큐에서 내내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평면지구인들 사이 인기를 끌며 각종 강연을 하고, 심지어 그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다고 자랑한다. 특히 2015년 유튜브 전체 검색 건수가 5만 건에 불과했던 지구 평면설 영상이 2018년 1940만 건에 달했다며, 지금이야말로 평면지구인들이 뭉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평면지구인(Flat Earther)'을 뜻하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평면지구설 신봉자. /넷플릭스 마크의 말처럼 평면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상당히 끈끈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만날 때마다 ‘평평히 살자’는 사인을 주고 받고, 삶의 곳곳을 지구 평면설과 관련된 티셔츠, 책, 평평한 지구모형 탁자 등 각종 굿즈로 채우기 시작한다. 덕분에 본래 목수가 직업이었던 한 평면지구인은 아예 평평한 지구 모형만 만들며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한다. 급기야 평평한 지구인 모임 내 각자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파벌까지 생긴다. 마크는 자신들의 모임 내 70%가 평평한 지구 위에 반구형 물체가 덮고 있다고 믿고, 나머지 30%는 위가 뻥 뚫린 평평한 지구 모형이 여러 개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파벌의 사람들을 찍어내기 위해 각 파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정부 기관의 스파이’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 다큐는 그만큼 평면지구인들이 실제 지구평면설이 거짓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소속감을 강화하기 위해 몰두한다는 사실을 계속 짚어낸다. ◇음모론은 또 다른 음모론을 낳는다   2017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열린 평면지구인 국제 학회에서 사회를 맡고 있는 평면지구 전문 팟캐스터 퍼트리샤 스팅어. /넷플릭스 다큐 속 과학자들은 그럼에도 이들 평면지구인들을 결코 “경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구평면설 같은 음모론이 또 다른 음모론을 계속 낳을 수 있는 만큼 그저 웃긴 이야기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다큐 속 평면지구인들은 지구 평면설 이외에도 ‘백신은 위험하다’, ‘나사는 히브리어로 ‘속이다’란 뜻으로 사기 집단이다’ ‘언론이 모든 남성들을 여성으로 만들려고 트랜스젠더 옹호론을 조장한다’ 등 각종 음모론도 함께 퍼뜨린다. 심지어는 유명한 평면지구인들 스스로도 ‘사실은 우리를 감시하는 정부기관 사람들이다’ 등의 음모론에 시달린다. 전문가들은 이들 음모론 논쟁이 과학자들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양상으로 흐르는 게 특히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각종 합리적인 근거를 대도 음모론자들은 “믿을 수 없다”며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반박 증거를 갖다가 끼워 넣는다는 것이다. 실제 다큐 속 한 평면지구인은 “왜 과학자들은 구체지구론이 틀렸다는 고백과 함께 내부고발을 안 하냐”는 물음에 “생계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란 주장을 펴고, 주변 수많은 평면지구인들 또한 이 대답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큐는 이런 행동이 결국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자신들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평면지구인들은 다큐에서 자신들이 주장한 음모론 때문에 소셜미디어 그룹에서 강퇴 당하거나, 심지어 이혼까지 당했다고 고백한다. 다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마이크 휴즈란 미국 남성이 평면지구설을 직접 증명하겠다며 사제 로켓에 몸을 실었다가 추락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다큐 속 과학자들의 다음과 같은 일침은 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진실처럼 떠도는 요즘을 저격하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음모론자들을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들의 지성 또한 변형되게 내버려 두는 거다. 가장 최악은 이들을 사회의 경계까지 쫓아내고 결국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3096    [세상만사] - "표면이 벗겨진 금메달" 박물관으로... 댓글:  조회:2692  추천:0  2021-09-02
2021-09-01   도쿄올림픽서 입었던 운동복도 함께 기증 "메달에 대한 사람들 관심 원하지 않아"     ↑ 톈진 체육박물관에 자신의 메달과 운동복을 기증하는 주쉐잉 / 사진 = 웨이보 캡처 2020 도쿄올림픽 트램펄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중국의 주쉐잉(23)이 논란이었던 '표면이 벗겨지는 금메달'을 톈진시 체육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현지 시간 28일, 도쿄올림픽 여자 트램펄린 챔피언 주쉐잉이 자신이 딴 금메달과 이번 올림픽에서 착용했던 운동복을 톈진 체육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박물관 관계자는 "주쉐잉의 금메달과 운동복은 올림픽 정신을 고양하는 중요한 컬렉션"이라며 "기증을 선택한 주쉐잉의 헌신을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쉐잉이 박물관에 기증한 금메달은 문지르면 표면이 벗겨져 논란이 된 적 있습니다. 주쉐잉은 지난 23일 자신의 웨이보에 "메달도 껍질을 벗길 수 있나요"라며 사진 세 장을 올렸습니다. 이 중에는 금메달의 작은 얼룩을 닦자 표면 색깔이 변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 문지르면 표면이 벗겨져 논란이 되었던 주쉐잉의 금메달 / 사진 = 주쉐잉 웨이보 주쉐잉은 "내가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다. 금메달에 얼룩을 발견하고 문질렀을 뿐"이라며 "문질렀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고 덧붙였습니다. 해당 게시물에는 댓글이 2만여 개 이상 달렸고, 중국 네티즌들은 벗겨지는 올림픽 금메달을 비판했습니다. "저질 제품", "이게    일본의 독창성인가", "일본에서 새것으로 바꿔줘야 한다" 등의 반응도 있었습니다. 해당 게시글에 관한 논란이 커지자 주쉐잉은 "메달이 벗겨지는 문제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서 메달에 대한 사람들 관심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에 부담감을 느낀 주쉐잉이 결국 해당 금메달을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디지털뉴스부] ===========================/// 기자 입력 2021-08-25 09:26수정 2021-08-26 10:1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사진출처=2020 도쿄올림픽 트램펄린 여자 금메달리스트 주쉐잉 웨이보    2020 도쿄올림픽 트램펄린 여자 금메달리스트 주쉐잉이 자신이 받은 금메달이 벗겨졌다면서 실제 표면이 벗겨져 얼룩진 금메달 사진을 올려 중국 현지에서 논란이 일었다. 24일(현지시각) 글로벌 타임스에 따르면 주쉐잉은 메달에 흙이 묻어있는 줄 알고 문질렀는데 금메달이 벗겨졌다고 하며 사진을 3장 올렸다. 사진 속에는 금메달의 표면은 점점 벗거져 그 면적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엔지니어이자 제품 디자이너인 팬콩은 “사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지만 코팅 사이에 불필요한 잔여물이 제거되지 않아 금이 잘 붙지 않게 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주쉐잉이 올린 이 사진은 중국 현지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논란이 됐다. 한 중국 누리꾼은 “수년간 메달을 위해 노력해 온 선수에게 흠 있는 메달을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했다.   어떤 누리꾼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금메달 사진과 비교하며 “러시아 체조 선수 다리아 발레비예브나의 집에 불이 났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며 “많은 것이 탔지만 메달은 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이 있는데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 사용한 메달은 일본 정부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2020 메달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 국민에게 기부받은 전자기기를 재활용해 메달을 만든 것이다. 이는 도쿄올림픽이 강조한 ‘지구와 사람을 위해’라는 의제와 함께 친환경 취지에 부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도쿄올림픽 메달 제조사인 일본 조폐국은 환추시보에 “금박피에 대한 어떠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도쿄 조직위원회가 이번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디자이너 딜런 양은 “금메달은 의미가 더 중요하다”며 “메달의 가치는 그 메달이 얼마나 비싼 원료로 만들어졌는지보다 그 메달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의해 정의될 수 있다”고 전했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 주쉐잉의 메달이 불량품으로 확인되더라도 올림픽 역사상 첫 사례는 아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당시 메달이 부식됐다며 IOC에 교환을 요청한 사례는 100건이 넘는다. IOC는 문제가 되는 메달을 수거해 수리하고 선수들에게 다시 나눠줬다.          
3095    자유 자유 그리고 자유... 댓글:  조회:2729  추천:0  2021-08-07
도쿄올림픽 ‘패션 반란’ 2021.08.07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獨체조대표팀 “노출 의상 싫다” 자유복장 배드민턴, 유니폼 다채 “원하는 대로 입는다” 개성 중시2020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에 출전한 이란의 소라야 아가에이의 경기 모습. 히잡과 긴 옷을 입었다. 배드민턴은 복장 제한 없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옷을 입고 출전할 수 있다. 도쿄=AP 뉴시스‘편하게, 멋지게, 우리답게.’ 올림픽은 다양한 패션의 경연장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올림픽 구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와 비교하면 올림픽 패션의 방향은 위의 세 가지 내용으로 압축될 수 있다. 올림픽 패션에서는 선수들이 기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적 역할(편하게)이 강조됐고, 그러면서도 아름답고(멋지게), 자신이 대표하는 국가의 정체성 및 이미지(우리답게)를 세계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 추구됐다. 올림픽 패션과 관련해 지금은 금지된 전신수영복처럼 최첨단 공법을 동원해 과도한 기능을 지닌 복장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많았다. 하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여성 복장 노출 및 일부 국가의 정체성 표현이 논란이 됐다.  독일 여자 체조대표팀은 그동안 여자 선수들이 주로 착용하던 비키니 모양의 레오타드 유니폼 대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 모양의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독일 여자 체조 대표 엘리자베트 자이츠는 “모든 여성은 무엇을 입을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 비교해 모든 선수들에게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하는 배드민턴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경기를 치른 선수들 30명 중 3분의 1가량이 반바지 외에 레깅스, 원피스, 히잡 등 다양한 복장을 하고 나선 내용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배드민턴 역시 2014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선수들에게 미니스커트를 의무화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복장 전면 자율화로 바뀌었다.  하지만 반대로 거의 모든 선수가 비키니를 입고 출전한 종목도 있다. AP통신은 여자 비치발리볼 선수 대부분이 비키니를 입고 출전했지만 강제 조항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비치발리볼은 긴 바지 및 긴소매 등 다양한 복장을 허용하고 있지만 선수들은 비키니를 택했다. 미국 선수 앨릭스 클라인먼은 “더운 날씨에 많은 옷을 입고 모래가 끼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일부 복장에 대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있는 반면 기능적 필요에 따라 선택했다는 의견이 혼재하고 있는 셈이다. 선수들이 특정 복장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와 선택권 모두 중요하다. 결국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정진애 대한체조협회 여자체조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사실 체조에서는 순발력 유연성 등이 중요한데 옷이 끼면 불편하고 동작에 방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팀 유니폼은 선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아티스틱 스위밍 스타인 스베틀라나 로마시나와 스베틀라나 콜레스니첸코는 경기복에 곰 무늬를 넣었다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승인을 얻지 못하기도 했다. IOC는 도핑 문제를 일으킨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다.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러시아 선수들은 러시아 국기와 국명을 쓰지 못한다. IOC가 곰 무늬를 금지한 것은 곰이 러시아라는 국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은 결국 곰 대신 거미 무늬 옷을 입고 출전했다.  그러나 러시아 선수단은 유니폼에 흰색 푸른색 붉은색을 적절히 섞어 사실상 러시아 국기를 형상화했다. IOC가 정작 이 유니폼들을 제재하지 못해 올림픽에서 러시아 이미지를 지우려던 효과가 미미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미국은 랄프로렌, 이탈리아는 조르지오아르마니, 프랑스는 라코스테 등의 패션 브랜드와 손잡고 유니폼을 디자인하며 공을 들였다. 올림픽 패션은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패션 잡지 보그 온라인 호주판은 인상적인 올림픽 패션 31장면을 선정하면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우주인을 연상시키는 복장으로 출전했던 호주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 등과 함께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 검은색 옷을 입고 출전했던 김연아의 모습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원홍 전문기자 
309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생태복구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783  추천:0  2021-07-14
하늘에서 '와르르' 쏟아진 물고기... 2021.07.14.    좋아요 슬퍼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미국 유타주 야생동물자원부((Utah Division of Wildlife Resources:DWR)가 경비행기를 통해 유타주 일대의 호수에 물고기를 방생하는 모습. /사진=페이스북 캡처미국에서 수천 마리의 물고기가 경비행기에서 쏟아져 나온 영상이 공개돼 화제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매체 뉴스위크 등에 따르면 유타주 야생동물자원부(Utah Divisionof Wildlife Resources:DWR)가 최근 경비행기를 통해 유타주 일대의 호수에 물고기를 방생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물고기 사육(fish stocking)'으로 불리는 프로젝트로, 부화장에서 사육된 어류의 어린 개체를 호수에 방생해 개체 수 복원 등 연구에 활용하는 작업이다. 최근 유타주는 높은 수온과 가뭄에 따른 낮은 수위로 물고기 개체 수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대비해 호수 등지에 물고기를 방생해 관리해오고 있다. 유타주 야생동물자원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연간 1~2회 물고기를 번식하고 약 25만마리의 어린 개체를 사육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물고기를 실은 비행기가 유타주 전역 200여 개 고지대 호수를 비행하면서 진행됐다. 비행 한 번에 약 3만5000마리의 물고기를 방생할 수 있다. 유타주 야생동물자원부는 이 방생 작업을 위해 연간 1~2회 물고기를 번식, 약 25만마리의 어린 개체를 사육한다. /사진=페이스북 캡처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 손가락 크기의 어린 물고기를 활용한다. 유타주 야생동물자원부 측은 "작은 크기의 개체들은 잎사귀처럼 펄럭이듯이 천천히 떨어진다"며 "물고기의 크기가 더 크면 생존율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게 방생한 물고기의 생존율은 약 95~99% 수준이다. 한편 이 프로젝트는 1956년부터 매년 행해졌다. 이전에는 대형 봉투에 물과 물고기를 실어 옮기거나 말을 이용해 높은 곳까지 물고기를 옮기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방생된 물고기들의 95% 이상이 생존, 번식에 성공한 것으로 밝혀져 역사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기자 프로필   소가윤 기자
3093    [별의별] - 소똥과 신성화... 댓글:  조회:3061  추천:0  2021-06-25
소똥과 신성화... 인도의 한 남성이 소똥을 몸에 바른 뒤 소를 만지고 있다. 인도의 일부 힌두교도는 소똥이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인도의 한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한밤중 절도범이 보관소에 침임해 훔쳐 달아난 건 803kg에 달하는 '소똥'.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왜 소똥을 이렇게나 많이 훔쳐간 것일까.  23일(현지시간) AFP 통신, 인디언 익스프레스 등은 인도 차티스가르주의 두레나 마을에서 '소똥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주인의 신고로 수사 중인 경찰은 "용의자 몇명을 심문했지만, 아직 범인이 체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 하리쉬 탄데카르는 "범인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의 소똥을 운반할 수 있었는지, 왜 훔쳤는지 분명하지 않다"면서 "계속 수사 중이며 범인을 붙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소똥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게 되면 이 범행의 동기도 짐작할 수 있다.  소똥과 건초를 섞어 만든 소똥 케이크. 인도에서 연료로 사용된다. [AP=연합뉴스] 인도의 주 정부들은 농부들과 낙동가들에 소똥을 비료로 활용한 유기농을 각별히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 소똥은 100kg당 200루피(약 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에 도난된 소똥 803kg은 1600루피, 약 2만4000원치인 셈이다.  '소똥 케이크'란 이름의 연료도 인기다. 신선한 소똥과 건초를 섞어 햇빛에 말린 뒤 연료나 비료 등으로 사용한다.  인구의 80%가 힌두교인 인도에선 소를 신성시하며 소 배설물로 약이나 비누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인도 정부는 2019년 소 배설물로 만든 의약품과 개인 위생용품 개발에 50억 루피(약 764억원) 를 투자했다. 소 관련 산업의 현대화를 목표로 국가암소위원회를 세우기도 했다.  인도에서 여성들이 소똥을 운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위원회는 지난해 암소의 똥으로 만든 휴대전화 방사선 차단 칩을 출시했다. 당시 위원회는 "암소의 똥에 방사선 차단 효능이 있다"면서 "이 칩을 휴대전화에 부착하면 방사선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도 정부는 또 소 배설물로 만드는 치약·샴푸, 모기 퇴치제의 생산을 장려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인도 정부가 세운 국가암소위원회가 지난해 소똥으로 만든 칩. 위원회는 이 칩이 휴대전화 방사선 차단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구자라트주에선 일부 힌두교도들이 코로나19 예방과 치료를 위해 소똥을 몸에 바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매주 한 번씩 축사를 찾아 소의 똥과 소변을 몸에 바른다고 한다. 소의 배설물이 면역력을 높여 코로나19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몸에 바른 똥과 오줌이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소를 껴안거나 예를 표하고, 에너지를 높이기 위해 요가를 한다. 이후엔 이 '소똥소변팩'을 우유나 버터밀크로 씻어낸다.  소똥을 몸에 바른 인도 남성들. 이들은 소똥이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인도 남성이 소똥을 몸에 바른 뒤 우유로 씻어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행위가 오히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JA 자이알랄 인도의학협회 회장은 "이런 방법은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없으며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이기 때문에 오히려 질병을 전파시키는 역작용이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인도발 델타 변이는 전 세계 90여 개국에 퍼졌다. 델타 변이에서 한 단계 더 변이 한 델타 플러스 변이까지 인도를 포함한 10개국에서 발견됐다.  /중앙일보 임선영 기자
3092    [세상만사] - 윤여순 / 윤여정 + (딸) = 원동력 어머니... 댓글:  조회:3039  추천:0  2021-06-04
  동생 윤여순(왼쪽)-언니 윤여정. 사진ㅣtvN 방송 화면 캡처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신영은 기자]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 출신 비즈니스 코치 윤여순이 대기업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과, 오스카상 수상에 빛나는 언니 배우 윤여정에 대한 얘기 등을 들려줬다.  윤여순은 지난 2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특집에 출연했다.  윤여순은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 출신 비즈니스 코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MC 유재석은 "몰랐는데, 윤여정 선생님의 동생이냐?"고 물었고, 윤여순은 "사실이다.   친동생이다"라고 답했다. 조세호는 "눈이 좀 비슷하신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했고, 윤여순은 "내가 쫌 이쁘지 않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로 지난 4월 26일(한국시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사싱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 최초의 연기상 수상이었다.  유재석이 "윤여정 선생님이 오스카상을 수상을 하셨는데 어떤 축하 인사를 드리셨냐?"고 묻자 윤여순은 "우린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쿨하게~ '언니 정말 큰일 했다~' 뭐 이 정도였다"고 현실 자매 다운 모습을 보였다.  윤여순이 걸어온 길은 남다르다. 윤여순은 41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LG그룹에 부장으로 처음 입사한 사연을 공개했다. 그는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 하게 돼 미국에 함께 갔다. 배우자가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미국에서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땄다. 당시 주위에서 마흔이 넘은 여자가 박사 학위를 따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많이들 말렸다. 그래도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 딸이니까"라고 박사학위를 마친 이유를 설명했다.  귀국한 윤여순은 LG그룹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며 "회사에 들어간다는 게 무서웠다"며 "사표를 써서 다녔다. 여성한테 불리한 게 많았다. 힘들고 억울하고 불편한 것 투성이었다. 운 적도 많았다"고 돌아봤다.  LG그룹 최초 여성 임원으로 발탁된 것에 대해서는 "당시 LG 그룹 전체에 여성 부장이 셋이었다"며 "구본무 전 회장님이 성과에 대해 물었고, 미래 지향적인 사이버 아카데미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하니 '그럼 딱이네요'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임원이 되고 변한 것에 대해서는 "임원이 되면 전용차, 수행 비서, 임원 방이 따로 나온다"며 "굉장히 변해 보이지만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에 임원 방에 가만히 앉아서 쉴 수는 없다. 성과를 내야하고 책임이 커진다"고도 말했다.  이렇게 '최초'의 길을 걸어온 윤여순은 LG아트센터 대표를 역임한 뒤 현재는 비즈니스 코치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워킹맘의 고충도 털어놨다. 윤여순은 딸이 어린시절에는 곁에 있길 바랐지만 성장한 뒤에는 일하는 엄마에 대해 감사해했다며 "열심히 살면 아이가 은연중에 다 배운다. 육아와 성장과정의 모든 것들이 여성에게만 전담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도 강조했다.  윤여순은 워킹맘으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그는 "어머니가 30대에 딸 셋을 데리고 혼자가 되셨다. 선생님을 하셨고, 지난해 가을에 돌아가셨다"며 "세상이 험난하고 어려운 일이 많으셨을텐데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최선을 다하셨다. 어디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다 하셨다.    그런 분을 보고 살다보니 몸에 배었다"고 털어놨다.  촬영장에 함께한 윤여순의 딸은 "엄마는 엄마로서도 좋지만 제일 친한 친구다. 자존감이 뭔지 가르쳐준 분이다. 엄마 덕분에 스스로 제 길을 잘 찾은 것 같다"라고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309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코끼리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057  추천:0  2021-06-04
코끼리 떼 느닷없는 500Km 대이동… "서식지 감소 때문" [영상] 2021.06.04    코끼리 떼 대이동, 1년 반 째 계속 또 북쪽 이동 포착 "코끼리 서식지 보존해야" /사진=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공개한 CCTV 영상 캡처 코끼리 떼 이동이 1년 반 넘게 포착되고 있다.  4일 신화통신 등 중국 현지 언론은 "지난 20일 중국 윈난 시솽반나(西雙版納) 자연보호구에서 이동을 시작한 코끼리 떼는 지난 2일 밤 쿤밍(昆明)까지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야생 코끼리가 민가를 부수고, 농작물이 피해를 끼치면서 인간과 충돌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코끼리 이동 경로를 관찰하고 있던 쿤밍과 인근 도시 위시 정부는 코끼리의 접근에 경찰 675명, 긴급 트럭 62대, 드론 12대, 식량 10톤을 배치하여 무리의 경로를 바꿨다. /사진=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공개한 CCTV 영상 캡처 또한 옥수수나 소금 같은 음식을 마당에 보관하지 말고, 코끼리를 놀리는 행위를 피하면서 안전 거리를 유지하라고 공지했다. 관련기사 "300만원 들여 쌍커풀 수술했는데 남편이 이혼하재요" 중국 해커, 뉴욕 교통국 공격…中 "증거 갖고 이야기 하라" "中전기차 니오, 저점매수 기회…상승 여력 40% 이상"   이들 코끼리는 지난 4월 시솽반나에서 북쪽으로 거의 1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처음에는 17마리의 코끼리가 무리에 있었지만, 4월 24일에 두 마리는 돌아섰고 나머지는 쿤밍에서 남쪽으로 약 90km 떨어진 위시시 근처 마을까지 이동했다.  SNS에는 코끼기 목격담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틱톡 버전인 더우인에서는 마을 중심가를 따라 코끼리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공개한 CCTV 영상 캡처 운남시 측은 "코끼리들이 40일 동안 412번 문제를 일으켰고, 600만 평방 피트의 농작물을 파괴했고, 680만 위안(한화 약 12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 코끼리는 주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종으로 1986 년부터 국제 자연 보전 연맹 (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의 멸종 위기 동물로 올라가 있다. 때문에 중국에서도 엄격하게 보호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현재 약 300마리의 야생 코끼리가 살고 있고, 주로 윈남 남부 지역에 생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 중 일부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사진=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공개한 CCTV 영상 캡처 코끼리 전문가인 북경사법대학 창리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코끼리 원정대가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것"이라며 "지난 20 년 동안 숲이 고무와 차 농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아시아 코끼리의 거주 가능 지역이 감소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코끼리 서식지 보호와 생태 통로 건설을 위해 거시적 규모에 대한 적절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이것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 운남 야생코끼리 15마리 계속 북상!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가?     2021년 05월 31일              운남성림업초원국에서 발표한 소식에 따르면 30일 18시 10일에 이르기까지 북상 중인 아시아코끼리떼가 옥계시 홍탑구 락하향 대만촌 첨산보초 언덕 부근에 도달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분석을 통해 이 15마리 야생코끼리가 계속 북상하려는 추세가 있다고 연구판단했다. 국가1급 중점보호야생동물이자 주력종인 아시아코끼리가 이례적으로 북상하고 있어 사회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아시아코끼리 북상 안전방비사업 전방지휘부는 비상대비인원 및 경찰력 도합 연인원 450여명을 투입하고 경찰차, 자갈운반차 228대, 굴착기 4대, 무인기 3대를 출동시켜 미리 대비태세를 갖추고 24시간 내내 감시경보를 실시해 인민군중들의 생명안전을 확보하고 있다. 동시에 아시아코끼리가 좋아하는 먹이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코끼리떼의 식량을 확보하고 군중들의 피해를 줄이고 있다. 운남성림업초원국에서는 다음 단계에 사람들의 안전과 코끼리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을 토대로 계속 감시경보와 안전방비를 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생코끼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가?  운남성림업초원국은 4월 16일부터 시쐉반나 국가급 자연보호구에서 생활하고 서식하던 아시아코끼리 17마리가 보이시 묵강현에서 옥계시 원강현으로 이주했다고 소개했다. 4월 24일, 그중 2마리 코끼리가 보이시 묵강현으로 되돌아가고 나머지 15마리는 계속 북으로 이동해 홍하주 석병현을 거쳐 최근 옥계시 아산현에 진입했다. 5월 27일 저녁, 코끼리떼는 한동안 아산현성에 진입해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29일 저녁, 코끼리떼는 옥계시 홍탑구 경내에 진입했다. 홍탑구와 아산현에서는 현재 코끼리떼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아시아코끼리의 이주확산은 흔한 현상이다. 하지만 일정한 범위에서 서식지를 돌며 먹리를 찾아 순환이동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 북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운남대학 생태환경학원 교수 진명용은 장기간 아시아코끼리를 추적, 연구해왔지만 이와 같은 장거리 북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어디까지 갈지는 우리도 알 수 없고 기후, 음식, 수원이 그들을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을지는 아직 한층 더 모니터링과 평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명룡은 이번 야생코끼리의 북상은 ‘목적지가 없는’ 려행일 수 있다고 말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  
3090    [문단소식] - 송화강반에 피여나는 문학의 향연... 댓글:  조회:2720  추천:0  2021-05-23
송화강반에 피여나는 문학의 향연... 시가작품연구회 및 《송화강》문학상 시상식 열려 (ZOGLO) 2021년5월17일  고 리삼월 작품연구회, '송료동인회'시가작품연구회, 《송화강》문학상 시상식 및 시화전  "단순한 시상식이 아닌 축제의 장이다." "이 걸어온 력사가 우리 민족의 력사가 아닐가 생각된다." "북방원로 리삼월선생의 시는 리얼미티한 현장감이 있고 예민한 시대성을 띠고 있다." "리삼월선생의 시의 특징은 시대를 썼지만 시대에 휘말리지 않았다. ... ...   삶의 희노애락이 시와 만나 그림이 되고 삶의 메시지, 향토애가 송화강반에 피여오르고 있다.     지난 5월 15일,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의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 기념 계렬행사인 저명한 시인 고 리삼월 작품연구회, "송료동인회"시가작품연구회,  "삶의 희로애락, 시와 만나 그림 되다"를 주제로 한 '2021년  시화전'  및 《송화강》잡지 문학상 시상식이 코로나방역수칙을 엄수한 가운데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서 열렸다. 심양, 대련, 길림, 진황도, 연변 및 흑룡강성내 각지에서 온 작가,시인, 평론가 및 관계자 40여명이 참가해 자리를 빛내였다.      행사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송화강》잡지 리호원 주필 행사의 첫순서로 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시인이며《송화강》잡지 전임 주필이였던 고 리삼월시인의 작품연구회가 열렸다.    시인의 생전 문우였던  전경업, 한영남, 김성우 등 시인들이 고 리삼월시인의  시를 다 층차, 다 각도로 분석하였다.  리삼월시인은 북방문단의 거목이자 중국조선족문단의 거목이기도 하다. 리삼월 시인은 1954년에 처녀작 〈망우강의 노래〉를 《연변문예》에 발표하여서부터 2009년 생애의 마지막 시 〈꽃과 잎〉을 쓰기까지 장장 55년간 천여수의 시로 찬란한 시의 성채(城砦)를 쌓아올렸다. 리삼월 시인의 접목의 아픔을 참고 / 먼 이웃 / 남의 뿌리에서 / 모지름을 쓰면서 자랐다 // 이 곳 토질에 알맞게 / 이 곳 비에 맞춤하게 / 이 곳 바람에 어울리게 // 잎을 돋치고 / 꽃을 피우고 // 이제는 접목한 자리에 / 든든한 테를 둘렀거니 / 큰 바람도 두렵지 않고 / 한마당 나무들과도 정이 들고 / 열매도 한아름 안고… // 그러나 허리를 잘리여 / 옮겨오던 그 날의 칼소리 / 가끔 메아리로 되돌아오면 / 기억은 아직도 아프다   이들은 리삼월선생의 시에 대에 "북방원로 리삼월선생의 시는 리얼미티한 현장감이 있고 예민한 시대성을 띠고 있다. 리삼월선생의 시의 특징은 시대를 썼지만 시대에 휘말리지 않았다. 기록적인 성분이 많다. 민족의 력사를 볼 때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백년의 력사가 그림처럼 그려진다......"고 평했다.   이어서 진행된 '송료동인회'시가작품연구회에서는 전경업, 한영남, 리상학, 김창희, 김춘산, 백진숙, 리해란, 강매화 등 문인들이 이번 행사를 위해  창작한 시작품을 발표, 허심탄회하게 창작소감을 밝혔다.    세번째 행사는 “삶의 희로애락 시와 만나 그림 되다”를 주제로 한 '2021년 송화강 시화전' 전시회가 열렸다.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박춘희 관장, 《도라지》잡지 리상학 주필, 《료녕조선문보》 김창영 문학담당편집이 래빈을 대표하여 개막식 커팅을 했다. 조선족시인들의 땀과 심혈이 담긴 시작품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시화전의 의미를 더재해주었고 문인들의 응집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코로나로 인해 미뤄졌던 '송화강'잡지 2019년도 '송화강-수필문학상' , 2019-2020년도 '송화강-상상시문학상' , 2019-2020년도 '송화강-해외문학상'시상식이 진행되였다.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강설봉씨의 경쾌하고 감미로운 색소폰연주로 막을 연 시상식은 《송화강》잡지 최미령 부주필이 사회를 맡았다.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박춘희 관장이 환영사를,  형제 간행물들인《도라지》'잡지사 리상학 주필, 《연변문학》김창희 편집, 《장백산》잡지사 홍려 편집이 축사를 했고 《송화강》잡지 리호원 주필이 심사평과 수상작을 발표했다.   《송화강》잡지 2019년도 '송화강-수필문학상' 가작상에는 리련화의 , 김춘식의 가 선정되였으며 2019-2020년도 '송화강-상상시문학상'에는 리명철의 , 변창렬의 가 선정되었다. 2019년도 '송화강-해외문학상'에는 백성일의 ,  2020년도 '송화강-해외문학상' 에는 고안나의 가 선정되였다.    시상식 이모저모 시 가작상 수상자인 리명철씨는 수상소감에서 "한때 문학소년이였던 자신이 필을 놓은 지 30년이 지나 조선어로 창작한 시로 수상을 했다는 것이 감개무량하다."며 문학의 길로 인도해준 스승 리동렬 대표와 문우 선후배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행사에서는 남해숙, 허월매, 리해연, 리경, 설금옥, 최연 등 교원들이 명시와 수상시들을  읊조려 행사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송화강》잡지사 리호원 주필은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지도부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으로 행사를 원만하게 마칠 수 있었다."며 《송화강》잡지를 향후 더욱 많은 조선족문인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진지로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글 문야/일부 사진 제공 연길융합매체중심/조글로
3089    김승종 譚詩 "추억 다섯개비"를 고향 향해 올리나니... 댓글:  조회:3022  추천:0  2021-05-23
《연변문학》 2021년 5호 2021년 05월 19일  ====================================================   추억 한개비(외4수)                               김승종     음력설 지나 정월대보름 날, 이명주, 명이주, 총이주 - “귀밝이술 마시는 날”, 색동저고리 앵두입가에도 수저로 약주 살짝쿵 묻혀 이슬방울 빨게 하던 날, 말 잘 듣기 원하며 권커니 작커니 덕담 나누던 날, 고래등 팔간 집 인정미 찰복찰복 넘쳐 흘러 흘렸었다... 세월아, 네월아, 미풍세속 “귀밝이술 마시는 날”, 후유,- 박물관에 가서 찾아보소 잉...     추억 두개비         음력설 지나 정월대보름 날, “량표糧票”와 “부표布票”와 “생선표生鮮票”들이 어깨를 너너없이 들쑹 들썩거리던 세월, 시골에서 어쩌다 비릿비릿 사온 동태로 무우 듬뿍 썰어 넣고 보름달과 함께 끓렸지...     아홉 식솔 단란히 모여앉아 일년 딱 한번 “명태국 먹는 날”, 봄기운 감도는 “잔치날” 아닌 잔치날이였었지...   할배, 할매, 아부제, 삼촌, 아들... 명태국 사발엔 명태 살덩어리 소복소복... 단, 어마이 명태국 사발엔 무쪼박과 명태 대가리만 듬성...   어마이 왈;- “엇, 거 명태국물 시원하다카이, 그리고 명태 대가리가 더 구수하다카이...” ...   요즘, 없는게 없는 “4989시장” 세월,- 명태국 한 솥 듬뿍 끓려놓고 어마이를 몸소 모신 "명태국 먹는 날”, “복”자가 새겨진 왕사발에 명태 살덩어리만 소복히 덧돌이로 떠드리련만,-   아희야,- 어마이의 텅 빈 자리 속에서 “명태국 먹는 날” 오늘따라 명태 잔뼈가시가 이 내 목구멍에 자주 걸림은 또...     언감자     버들방천 버들개지 꼬도꼬도 손짓하는 속에 죽림강은 흐느적 흐느적 몸 풀어 개구리 겨울잠 와지깡 깨우며 흘러 흐르고...   언 감자 이삭 줏이로 골연을 헤쳐 내리던 흰 무리 검은 무리들의 두 어깨와 등곬은 늘 꺼무칙칙한 농말로 줄레줄레 멍들고 송골송골 골수로 얼기설기 삭혀지고...   동지섣달 무렵,  내 고향 죽림동 팔간 집에서는 언 감자 삶는 구수한 향기와 살내음으로 아홉 식솔의 구곡간장 진동하고...   새벽 녘, 어디에선가 얼었던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새빨갛게 아릿아릿 녹는 소리가 박달나무 티는 소리와 함께 서릿서릿 서려 갈기갈기 짓들려오고지고...         죽림동 아낙들     울 할매에게도 “3.8”절은 있었어도 국수원밥숭이마저도 없었다 울 어마이에게도 “3.8”절은 역시 있었어도 되내기 되풀이는 더더욱 없었다 울 죽림동 모든 아낙들 “3.8”절 날, 굿거리장단 까막나라 몰랐었다     그저,- 이 날도 굳건히 굳건히 소똥두엄 광주리 망짝같이 “절반 하늘”과 함께 “떠 이 고” 강 건너 앞 다락떼기로 마파람 일구며 줄달음쳐 톺아 올랐었다...   오호라,- 저기 저 살가우니 강냉이 소꿉에 총총이 알알이 피땀 무늬 들어박힌, 잊혀져가는 죽림동 아낙들이여,- 한 송이 두 송이 불러 불러 죽림동 일자배기 하늘가에 청청백백 새겨둘 절세의 이름들이여,-     고향의 신토불이     냉이야, 참 미안스럽다카이 고향에 있을 때 그것이 그렇게도 구미 당기여준 줄을... 달래야, 참 죄송스럽다카이 고향에 있을 때 그것이 그렇게도 별미 돋구어준 줄을... 두릅아, 참 송구스럽다카이 고향에 있을 때 그것이 그렇게도 입맛 돌리여준 줄을... 송이야, 참 문안도 못했다카이 고향에 있을 때 그것이 그렇게도 진귀한 특산인 줄을...   아희야,- 고향 죽림동 본디 “토통님”들과 “신토불이님”들, 핫,- 반가우니 반가운 이웃 사촌이였던 줄을, 씹어도 씹어도 곱씹어도 구수했던 줄을 몰랐던, 철부지 햇궁둥이를 한 열 둴 방망이 피멍 얼얼히 쳐대소 잉!!!...   ㅡ2021년 5호 "연변문학"에서
308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대기오염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976  추천:0  2021-05-22
‘코로나의 역설’ 덕분에...  2021.05.22.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지난 2018년 1월 6일(사진 왼쪽)과 2020년 4월 17일 촬영된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사람간의 접촉을 줄이기 위한 이동 제한이 실시되면서 대기 질이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일명 ‘코로나의 역설’로 불린 이 현상 덕분에 조기 사망을 피한 사람의 수가 3만 2000명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이 코로나19 팬데믹 후 전 세계 대기 오염 수준을 분석했다. 36개국의 위성 및 지상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살펴본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제한 조치가 전 세계의 대기오염 주범인 이산화질소(NO₂) 농도가 감소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2019년 11월 1일(사진 위)과 2020년 4월 20일 촬영된 인도 뉴델리의 스카이라인. 사진=AP 연합뉴스연구진은 “유럽, 북미 및 동아시아 36개국의 위성 및 지상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적으로 이산화질소 농도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서 “이로 인해 중국의 약 2만 1000명을 포함해 전 세계 약 3만 2000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코로나의 역설’로 대기중 이산화질소 농도는 감소했지만, 오존과 미세먼지(PM2.5) 수준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연구에 활용된 데이터 중 88곳에서는 대기중 이산화질소는 감소했지만 이와 동시에 오존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유럽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곳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경제 중심지 밀란. 2020년 1월 8일(사진 위)은 자욱한 스모그로 가득차 있으나 같은해 4월 17일 촬영된 하늘은 맑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대기오염물질의 역사상 가장 큰 단기적 감소를 발생시킨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연구진은 “이러한 오염물질의 축적이 각각의 지역의 대기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전 세계에서 이러한 오염물질의 발생 수준을 더 낮추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 맞는 대기 질 정책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종합과학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308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평화의 녀신",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080  추천:0  2021-05-16
미스 미얀마 “도와달라”... 김은경 기자 입력 2021.03.29        2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2020에 미얀마 대표로 나선 한 레이가 무대에서 국제 사회에 도움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미얀마 반(反)군부 시위에서 군경의 발포로 114명이 숨진 지난 27일(현지 시각), 국제 미인대회에 참가한 미얀마 여대생이 최종 심사 무대에 올라 국제 사회의 도움을 눈물로 호소했다. 양곤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한 레이는 27일 밤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2020 연설에서 시위 중인 자국민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은 평화와 비폭력을 주제로 한 국제 미인대회다. 흰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그는 “세계의 모든 시민은 조국의 번영과 평화를 바란다”며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과 이기심을 이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얀마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기 위해 거리에 나설 때, 저는 이 무대에서 제 시간을 이용해 똑같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주말 국제 미인대회에서 미스 미얀마 '한 레이'가 "도와달라"며 눈물의 연설을 하였다/Miss Grand Myanma 공식 페이스북 제가 오늘 이 무대에 서는 동안, 조국 미얀마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얀마를 도와주세요. 우리는 지금 당장 여러분의 긴급한 국제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 레이는 “목숨을 잃은 모든 시민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고 했다. 그는 눈물을 참으며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고, 청중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이클 잭슨의 ‘힐 더 월드’(Heal the World)를 수화와 함께 부르며 연설을 마쳤다.   한 레이는 이날 대회에서 상위 순위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많은 응원과 박수를 받았다. 그는 무대가 끝나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나는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제 목소리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지난 25일 인터뷰에서도 “나는 미얀마 대표로서 전쟁과 폭력을 멈춰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며 “미얀마에서 많은 사람이 군부의 총에 맞아 죽고 있다. 우리 국민을 도와달라”고 했다. 대회 중 각국 전통 의상 심사에서 ‘평화의 여신’을 표현하는 황금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한 레이가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2020 전통 의상 심사에서 ‘평화의 여신’을 표현하는 황금 의상을 입고 무대 섰다. /AFP 연합뉴스 현지 매체에 따르면 27일 양곤과 만달레이 등 미얀마 전역 41개 도시에서 벌어진 반군부 시위에서 군경이 실탄과 고무탄을 발포해 최소 114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식수 배달원 등 행인뿐 아니라 어린이도 여럿 있었다.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는 거리에서 놀던 아이를 비롯해 5~15세 어린이 최소 4명이 이날 군경 총탄에 숨졌다고 전했다.
308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미인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233  추천:0  2021-05-16
“반격의 시간이 왔다”...    정지섭 기자 입력 2021.05.12      미얀마 사태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저항해 민주진영과 소수민족 등이 연합하면서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미스 미얀마 출신 30대 여성이 군부에 맞서 무장 투쟁 의지를 밝혔다. 12일 AFP 통신에 따르면 2013년 태국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인터내셔널 대회 미얀마 대표였던 타 텟 텟(32)은 지난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검은 셔츠에 총을 든 사진을 올렸다.   타 텟 텟은 사진과 함께 “반격해야 할 때가 왔다. 무기나 펜 또는 키보드를 잡건 아니면 민주주의 운동에 돈을 기부하건, 모든 이들은 이 혁명이 승리할 수 있도록 자기 몫을 다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날은 군부 쿠데타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간 정부가 축출된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싸울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도 돼있다. 내 목숨도 내놓을 준비가 돼있다.”고 썼다.   2013년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에 자국 대표로 참가했던 시절의 타 텟 텟. /AFP 연합뉴스 그는 현재 체조 강사로 활동중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미얀마의 ‘미의 여왕'이 공개적으로 군부 저항 의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역시 방콕에서 열린 올해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에 참가한 미얀마 여대생 한 레이(양곤대 심리학과)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국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해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에 참가한 미얀마 대표 한 레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데타에 반발하는 시민들을 향한 군부의 무차별 발포와 잔학 행위로 사망자가 급증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한 레이는 “미얀마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기 위해 거리에 나설 때, 저는 이 무대에서 제 시간을 이용해 똑같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레이는 연설 말미 마이클 잭슨의 ‘힐 더 월드’를 수화와 함께 불렀다. 그는 상위에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박수를 받았다.
308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평화와 미인"... 댓글:  조회:3353  추천:0  2021-05-16
“미얀마 위해 ... 장근욱 기자 입력 2021.05.16        미국 플로리다주(州)에서 진행 중인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 중인 미얀마 대표 투자 윈 륀(22)이 본선에 앞서 지난 13일에 현지 하드록 호텔에서 열린 전통의상 경연 도중 관객들에게 '미얀마를 위해 기도를'이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펼치며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페이스북 “미얀마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Pray For Myanmar)”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미인 대회 ‘미스 유니버스'에 미얀마 대표로 나선 투자 윈 륀(22)이 지난 13일(현지 시각) 민족 의상 경연에서 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경연 순서가 오자 그는 미얀마 전통 의상을 입고 오른손에 두루말이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천천히 무대 맨앞으로 걸어가더니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미얀마식으로 인사했다. 이어 두루말이 양끝을 펼쳐 하늘 높이 들어 보였다.   팻말 미스 미얀마/페이스북 앞서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 정권을 뒤엎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5년 만에 무너진 것이다. 이에 미얀마 곳곳에서 반(反)쿠데타 시위가 벌어졌고 수백 명 이상 시민이 사망했다. 지난달 1일 군부에 반발하는 민주진영과 소수진영이 통합 정부를 구성해 사태는 내전으로 치달았다.   지난 3월 5일(한국 시각) '미스 유니버스 미얀마' 투자 윈 륀이 검은 마스크를 쓴 차림으로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해 있다. /인스타그램 쿠데타 이후 투자 윈 륀은 자신의 SNS를 통해 미얀마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을 호소하면서 반군부 시위에도 직접 참석해 왔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찾은 미얀마 양곤 공항에서 후드티와 안경을 착용하며 변장해야 했다고 전했다. “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하면서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지난 8일 미국 플로리다에 무사히 도착한 투자 윈 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미스 유니버스 미얀마 2020′ 투자 윈 륀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미얀마에서 벌어진 시위를 군경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장면 등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그러면서 “누구나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가 있다. 미얀마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최근 다른 미얀마 유명인사들도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미스 그랜드인터내셔널 2013년 대회에 미얀마 대표로 참가했던 타 텟 텟(32)은 지난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검은 셔츠에 총을 든 사진을 올리면서 “반격해야 할 때가 왔다. 무기나 펜 또는 키보드를 잡건, 민주주의 운동에 돈을 기부하건, 모든 이들은 이 혁명이 승리할 수 있도록 자기 몫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2013년 미스 그랜드인터내셔널 미얀마 대표 타 텟 텟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308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평화와 시인의 죽음"... 댓글:  조회:3393  추천:0  2021-05-16
미얀마 저항 시인의 죽음... 이기우 기자 입력 2021.05.16      미얀마 군부 정권 반대 활동을 해왔던 시인이자 민주화 운동가가 지난 14일 테러를 당해 사망했다. 범인은 피해자에게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 살해했다.   지난 14일 미얀마 북서부 사가잉 지역 몽유와시에서 휘발유 테러를 받아 사망한 시인 세인 윈 /연합뉴스 미얀마 언론 미얀마 나우는 미얀마 북서부 사가잉 지역 몽유와시에 거주하던 세인 윈(60)이 14일 이유 없이 공격당해 사망했다고 16일 보도했다. 윈의 친구 타잉 아웅은 이날 오전 윈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윈에게 휘발유를 붓고 몸에 불을 붙였다고 진술했다. 그는 “범인이 띤잔 축제(미얀마에서 명절 ‘띤잔’을 맞아 서로에게 물을 뿌려대는 축제) 때처럼 윈에게 휘발유를 뿌렸다”고 했다. 윈은 곧바로 몽유와 종합병원에 이송됐지만 14일 밤 사망했다. 아웅은 “(윈이) 다리, 손, 머리를 비롯해 거의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며 “얼굴은 새까맣게 탔고 손과 발의 피부는 벗겨져 있었다”고 했다. 테러를 가한 범인은 인근 지역 주민으로 밝혀졌지만 경찰은 아직까지 그를 체포하지 못했다.   윈은 아웅산 수치 전 미얀마 국가고문이 이끌던 정당 국민민주주의연맹의 오랜 지지자였다고 한다. 1988년 미얀마 군부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부터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1990년에는 당을 위해 선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윈은 몽유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도 참가했다. 윈의 지인은 “윈은 정직하고 적극적인 활동가였다”며 “이번 공격은 개인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저명 인사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시인 크 자 윈과 찌 린 아이는 지난 3월 거리 시위 도중 총격으로 사망했다. “혁명은 심장에 있다”는 시를 써 군부를 비판한 시인 켓 띠는 지난 9일 군경에 끌려간 후 하루 만에 장기가 제거된 시신으로 돌아왔다.  
308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쥐 떼와의 전쟁",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348  추천:0  2021-05-15
호주 하늘에 ‘쥐 비' 내렸다… ‘쥐 떼와의 전쟁' 나선 농민들 곡물농사 풍년에 쥐떼 몰려  주정부에 쥐 박멸 재정지원 요청 장근욱 기자 입력 2021.05.14      최근 호주에 쥐가 급증하면서 농민들이 ‘쥐떼와의 전쟁'에 나섰다. 호주 농민들은 쥐떼를 ‘자연 재앙'이라면서 주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더선과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州)의 농촌에서 쥐떼가 출몰한 영상들을 보도했다. /트위터 호주 ABC 기자 루시 태크레이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무수히 많은 쥐가 떨어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농부가 추수를 마치고 곡물창고를 청소하던 중 곡물을 저장하는 사일로(silo)에서 곡물 사이에 숨어있던 쥐떼가 튀어나온 것이다.   /트위터 태크레이가 올린 또 다른 영상에서도 창고에 빛을 비추니 수많은 쥐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는 장면이 담겼다. 다른 영상에서는 고양이가 머리 위에 쥐를 놓고도 신경도 안 쓰는 모습이 나타난다. 영상에서 고양이 주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다급하게 “쥐 어딨어! 쥐 어딨어! 잡아!”라고 말하지만, 고양이는 별 반응이 없다. 농부 론 맥케이는 호주 ABC 방송에 “밤에는 쥐 수천 마리가 바닥을 우글우글 뒤덮는다”고 했다.   /트위터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 소속 연구원 스티브 헨리는 영국 가디언지와 인터뷰에서 “곡물 농사가 평년보다 크게 풍년이 들면서, 쥐들이 일반적인 시기보다 일찍 농장 근처로 몰린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통 농장에서 한번 곡식을 심고 수확하는 동안, 쥐 암수 한 쌍이 약 500마리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 상인들은 쥐 배설물을 치우는 데만 하루 6시간은 할애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 식료품점 사장은 ”실내에서 죽은 쥐들 때문에 가게에 악취가 진동한다”면서 “식료품 사려는 주민들은 다른 동네를 찾는다”고 했다. 이처럼 쥐떼가 급증하면서 뉴사우스웨일스 농민들은 주 정부에 쥐 박멸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쥐약을 살 비용으로 일인당 2만 5000달러를 달라는 것이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쥐로 인한 경제적·공공보건적 위기를 막기 위해 3900만 달러(440억원)의 예산을 연방 정부에 요구한 상태다. 주정부는 또 브로마디올론(bromadiolone)이라고 하는 고독성 쥐약에 대한 허가도 요구했다. 이 약물은 독성이 강해 기존에는 사용이 금지됐다. 뉴사스우스웨일스주 농업부 장관은 “쥐떼를 24시간 안에 박멸할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쥐약”이라고 설명했다.
3082    [세상만사] - 심봤다... 억... 댓글:  조회:3036  추천:0  2021-05-10
"심봤다" 벌초 나선 50대, 1억원대 천종산삼 21뿌리 발견 안소영 기자 입력 2019.06.06      조상 묘를 벌초하기 위해 산에 오르던 50대 남성이 1억원 상당의 천종 산삼 21뿌리를 발견했다.   고씨가 발견한 천종산삼. 6일 한국전통심마니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낮 12시쯤 벌초를 위해 전남 담양군 무등산에 오르던 고모(50)씨가 수풀 사이에서 천종산삼 21뿌리를 발견했다. 10여년 전부터 산을 오르며 취미로 약초를 캐 온 고씨는 삼잎을 알아봤다. 그는 총 15뿌리의 어미산삼(모삼)과 6뿌리의 아들산삼(자삼) 등 가족 천종산삼을 조심스레 캐냈다. 감정 결과 모두 1억원 상당으로 알려졌다. 한국전통심마니협회 관계자는 "천종산삼이 대량으로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모삼은 70년 이상, 자삼은 20~30년 정도로 무게도 두냥(75g) 정도라 1억원의 감정액도 무리가 없다"고 했다. 천종산삼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산 속에서 자연 상태로 자란 산삼을 말한다. 천종산삼은 조선시대 인삼값 기준, 동일 무게 금값의 20배 이상으로 알려졌다.
3081    [세상만사] - 천종산삼... 억... 댓글:  조회:2813  추천:2  2021-05-10
경남 거창서 천종산삼 발견...감정가 1억2000만원 안소영 기자 입력 2019.05.07     경남 거창군 일원에서 50대 약초꾼이 100년 넘는 천종산삼(天種山蔘) 5뿌리를 발견했다. 천종산삼은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자연 상태로 자란 산삼이다.   경남 거창군 일원에서 50대 약초꾼이 발견한 천종산삼(天種山蔘) 5뿌리. 한국전통심마니협회에 따르면, 약초꾼 이모(51)씨는 6일 오전 7시쯤 거창군에서 약초를 캐다가 천종산삼 5뿌리를 찾아 캐냈다. 발견된 천종산삼은 짙은 황색에 뇌두 길이가 10cm를 넘었으며 무게는 성인 두사람 복용량 정도인 75g 이상이었다. 뿌리 길이만 90cm에 달했다. 한국산삼감정평가협회는 이 산삼이 110년 이상 됐다며 감정가를 1억2000만원으로 평가했다. 서상록 한국전통심마니협회 상임 감정위원장은 "형태나 색상이 뛰어나 약성이 매우 기대되며 희소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3080    [세상만사] - 100년 산삼 한뿌리... 억... 댓글:  조회:3019  추천:0  2021-05-10
“심봤다” 100년 된 천종산삼 캤다, 감정가는? 김준호 기자 입력 2021.05.10        경남 함양 덕유산 자락에서 발견된 100년 이상 추정되는 천종산삼. /한국심마니협회 세계산삼엑스포가 열리는 경남 함양에서 100년 넘은 천종산삼이 발견됐다. 20여년 간 산삼 감정을 한 베테랑 심마니도 “모삼 한 뿌리로만 이정도 길이의 초대형 산삼은 처음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국전통심마니협회는 지난 7일 함양에서 약초를 채집하는 이모(여·62)씨가 의뢰한 천종산삼 감정 결과 100년 이상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10일 밝혔다. 천종산삼은 50년 이상 자연적으로 자란 삼으로, 한번도 사람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 산삼을 말한다. 하늘이 내린 삼이라고 천종산삼(天種山蔘)이라고 불린다. 협회에 따르면 이 천종산삼은 함양 덕유산 자락 해발 7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암반과 암반 사이에서 자랐다. 뿌리 무게만 68g, 뿌리 길이 63㎝에 이른다.   경남 함양 덕유산 자락에서 발견된 100년 이상 추정되는 천종산삼. /한국심마니협회 정형범 한국전통심마니협회장은 “이번에 발견된 천종산삼은 자삼 없이 모삼 한 뿌리로만 발견된 것으로 초대형”이라며 “뿌리를 거둘 때 나타나는 옥주의 흔적과 짙은 황색의 색상, 무게 등을 고려해 수령이 최소 100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대법원에서 특수분야 감정인(전문가)으로 산삼, 산양삼, 기타약초의 감정을 수행하는 전문가다.   정 회장은 200여년 전 조선 말 인삼 시세가 금 시세의 20배 정도된다는 점을 고려해 최초 이 천종산삼의 감정가를 9000만원으로 책정했다. 정 회장은 “감정을 한지 23년 간 한 뿌리로 이정도 크기의 천종산삼은 처음”이라며 “과거 이보다 색이 옅고 여러 뿌리가 있는 천종산삼 가격이 수억원을 호가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 최초 감정가 9000만원은 제가 봐도 적게 책정된 것이다. 이보다 3배 정도(3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 함양에서는 오는 9월10일부터 10월10일까지 한달 간 ‘천년의 산삼, 생명 연장의 꿈'을 주제로 2021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가 열린다. 함양은 전국 최대 산양삼 생산지다. 500여 농가가 730ha에서 산양삼을 재배하고 있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끼고 있어 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함양에서는 오래 전 영원불멸의 꿈을 꾼 중국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왔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3079    [그것이 알고싶다] - "민성보" 댓글:  조회:3338  추천:2  2021-05-10
민중의 소리- 《민성보》     2015-08-05      민성보 옛터. 룡정에는 민성가라는 거리가 있다. 지난 세기 20년대에 그 거리에 민성보라는 신문을 꾸리는 신문사가 있었고 거리의 이름은 그에서 연유되였다. 그 신문사 옛터는 조선말로 된 간행물의 탄생지로서만이 아니라 “중공룡정촌지부”유적지로도 유서가 깊다. 1919년 중국 5·4운동은 문화운동의 영향하에 연변의 진보인사들은 반일무장투쟁을 배합하여 어려움을 이겨나가며 많은 간행물을 꾸렸다. 1919년 3월, 연변지역에서 발행한 조선문신문들로는 《일민보》, 《신국보》, 《중외통신》, 《구국일보》, 《조선민보》가 있었다. 그러던중 1928년 1월, 《민성보》가 룡정에서 고고성을 올렸다. 신문사는 룡정촌 신안거리(현 민성거리)에 세워졌다. 《민성보》의 최고지도기구는 40명으로 구성된 “보무위원회”였다. 강위청(연길 현상회 회장)이 위원장으로, 관준언(화룡현교육국 국장)이 신문사 사장으로, 방지함(룡정촌 전화국 국장)이 경리로 추대되였다. 《민성보》는 한문과 조선문으로 된 4절지 4개 면으로 된 일간신문이였다. 그중 1, 2면과 3면의 전반부는 한문판이고 3면 후반부와 4면은 조선문판이였다. 한문판 총편집은 안회음이 겸했고 조선문판 총편집은 윤화수였다. 일발행량은 2000부, 연변에서 그 영향이 컸다. 신문은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취지에서 《민성보》라고 이름을 달았다. 그 취지에 걸맞게 《민성보》는 신학제, 신문풍, 백화문을 구사하였으며 혼인자유, 남녀평등을 제창하는 등 진보적인 언론의 구실을 톡톡히 하였다. 1928년 2월 주동교가 신문사 편집일군으로 초빙되여 왔다. 주동교는 겉으로는 편집일군의 명색을 띠였으나 실제로는 중공만주성위의 파견으로 민중의 토대와 혁명적극성이 높은 연변에 공산당조직을 건립하고 발전시키는 사업을 하러 온것이였다. 하여 1928년 2월 연변에서의 첫 공산당조직인 중공룡정촌지부가 민성보사를 거점으로 건립되였다. 주동교가 당지부 서기를 맡았다. 《민성보》의 한문판 주필 안회음은 신문사내의 진보세력들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세우지 못하게 되자 1928년 여름 사직하고 천진으로 돌아갔다. 이를 기회라 생각한 주동교는 중공만주성위에 청시하여 당간부를 증파해줄것을 요구했다. 곧 공산당원 손좌민, 리별천이 파견되여 와 신문사에 취직했다. 이리하여 《민성보》의 주필로부터 책임편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산당원들이 필을 잡게 되였고 《민성보》는 실제상 중공룡정촌지부의 전투보루로 되였다. 중공룡정촌지부가 건립된후 중공북방국에서는 지방교육부문에서 북평의 해당 당국에 교원을 파견해달라고 요구를 제기하는 기회를 빌어 1928년 3월부터 6월까지 연변에 파견되여오는 북평 향산자유원(香山慈幼院)의 졸업생속에 17명의 공산당원과 공청단원을 함께 파견하였다. 연변에 도착한 17명 당원, 단원은 인차 주동교와 련락을 맺고 중공룡정촌지부의 령도밑에서 지하건당사업을 전개하였다. 불과 몇달이 못되여 그해 7,8월에 국자가, 동불사,로투구, 광개욕, 팔도하자, 옹성라자, 삼도구, 화룡, 훈춘 등 9개 지역에 당지부가 설립되였다. 8월에는 중공만주성위의 지시정신에 따라 중공동만구위가 건립되였다. 동만구위를 민성보사에 두었다. 주동교가 서기를 맡고 조직위원을 류건장, 선전위원을 조지강이 맡았다. 이들은 《민성보》를 하나의 선전도구로 삼고 용감하게 일제의 침략행위를 폭로, 규탄하였으며 피압박자들이 일떠나 침략자들과 용감히 싸우라고 호소하였다. 1929년 1월 15일 중공동만구위 서기 주동교가 룡정의 국민당특무들에게 체포되고 2월에는 서기대리인 류건장도 체포되였다. 손좌문, 리별천 등 북평에서 온 당원들도 선후로 피신하여 연변을 떠나는바람에 중공동만구위는 실제상 와해되고말았다. 국공합작의 분렬, 국민당의 간섭, 지방관원들의 무능 등 원인으로 1931년 “9.18”사변후 민성보는 부득불 정간되였다. 지금 룡정시연수학교 정원에는 기념석 하나가 세워져있다. 2010년 룡정시 당위와 정부에서 건립한 기념석에는 조, 한 두가지 문자로 룡정촌당지부 건립상황이 주홍빛 글자로 음각되여있다. 기념석의 건립을 주도했던 룡정시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 박호만회장은 “민성보는 푸른 벽돌로 지은 불과 240여평방메터 되는 단층집이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룡정촌의 당지부가 들어서면서 이로써 항일투쟁은 새로운 단계에로 들어서게 되였고 연변의 당사에 빛나는 한페지를 적어내려갔습니다”고 말했다. 또 “《민성보》의 옛터는 이곳에서 남으로 수십메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었으나 그곳에 민가가 밀집하기에 룡정시연수학교내에 세우게 되였다”고 소개했다. 《민성보》는 20세기 20년대 동북에서 중문과 조선문으로 꾸린 유일한 신문이였다. 또한 《민성보》는 예봉을 직접 일제와 국내통치계급에 돌렸고 인민대중들에게 각성하고 단합하여 다같이 대적하며 외환을 막아나서라고 호소한 진보적 신문이였다. 글 김혁/사진 리련화 기자 =======================================/// 민중의 목소리 『민성보』 한자 1920年代 間島에서 한글과 中國語로 刊行된 民衆의 목소리 『民聲報』 영문 Min Sung Bo, the newspaper published in both Korean and Chinese in Gando in 1920s 중문 1920年代在间岛用汉语和朝鲜语出版的报纸民声报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전체보기 민중의 목소리 『민성보』의 탄생 『민성보』는 1928년 1월 연길현 용정에서 당시 연길현·혼춘현·화룡현·왕청현 등의 연변 지역 교육계와 공상계 상류층 인사들이 공동 출자하는 형식으로 창간된 신문이다. 『민성보』는 1920년대 간도 용정에서 간행된 대표적인 진보 신문의 하나였다. 중국어와 한국어로 간행된 『민성보』는 “언론을 빌어 동포를 깨우친다.”는 취지로 창간된 이래 언론을 통한 활발한 항일 구국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2년 초 중견 편집진들이 일제에 체포되면서 부득이하게 폐간되었다. 『민성보』는 연변 지역 한인 사회를 대상으로 이 시기 활약하였던 한인 사회 단체의 활동, 사상과 이념 문제, 향토 역사 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래는 이를 알 수 있는 한인 사회에 관련한 기사 목록이다. 「연변 시사 만평(중)(延邊時事漫評(中))」[民國 17.05.05], 「동만운동의 종횡관(팔):방화산(東滿運動의 縱橫觀(八):方火山)」[民國 17.05.27], 「혁신단 사건 발생지 용암동 실사기(革新團事件發生地龍岩洞實查記)」[民國 17.06.03; 17.06.10; 17.06.14; 17.06.21; 17.06.29], 「집회일속(集會一束)」[民國 17.06.21], 「레닌주의에 대한 민족 문제 개요(6)(레닌主義 對한 民族問題概要(六))」(民國 17.06.10), 「일본 제국주의 재동북지전도(속)(日本帝國主義在東北之前途(續))」[民國 17.10.07], 「논한민공당지기인급중일아국제지관계:천수(論韓民共黨之起因及中日俄國際之關係:天水)」[民國 19.09.18], 「화룡현 조사지(1):박창한(和龍縣調查志(一):朴昌翰)」[民國 19.09.06]. 『민성보』가 탄생하기까지 『민성보』는 일본 제국주의가 연변에 대하여 정치·경제·문화·군사적으로 전반적인 침략을 감행하던 시기에 탄생했다. 일제는 1907년 8월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세웠고, 1909년에는 청나라 정부와 간도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일제는 용정·국자가 등지를 일본인에게 거주와 무역을 허용하는 상부지(商埠地)로 만든 동시에 길회(길림-회령) 철도 부설권과 한인 영사 재판권을 얻었다. 또한 그들은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철수하는 대신에 간도 일본 총영사관을 설립한 후 연길·화룡·혼춘·왕청·안도현 등을 관할하였다. 일제는 용정의 민족 교육을 말살하기 위해 1906년 개교 1년 만에 폐교된 서전 서숙의 교사(校舍)를 매입하여 1908년 한인 자녀를 상대로 만주 경내에서 처음으로 식민주의 교육의 거점인 간도 보통학교를 설립했다. 1921년 7월에는 중국 동북 지역 침략의 중요한 발판 가운데 하나였던 연길현 용정에서 『간도 신보(間島新報)』를 창간하였다. 창간 당시 『간도 신보』는 일본어판과 한글판 두 가지가 발행되었다. 『간도 신보』에는 일본 거류민회의 내용뿐만 아니라 연변 지역 한인 사회와 관련한 정치·경제·문화·사회 전반에 관한 내용, 조선 총독부 관리들이 연변 지역을 방문한 내용, 소련연해주 지역 한인 사회와 관련한 내용 등이 실렸다. 1927년 7월, 일제는 일본 상인들을 선동하여 중국 정부가 부과하는 수입 물자에 대한 부가세 납부를 반대하고, 중국 해관 창고 문을 부수고 공공연히 물품을 약탈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법령을 무시한 불법적 행위는 연길 도윤(延吉道尹)과 각 현 인민들의 지대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각 현의 인민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시위 행진을 전개하며, “길회 철도 부설을 반대한다!”, “연변에서의 일제의 각종 특권을 취소하라!”, “관세 자주를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일본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결국 일본 측은 일본 상인들로 하여금 잘못을 승인하고 사과하게 하며, 세금을 보충하여 납부하고 일체 손실을 배상하도록 하였다. 그 뒤 연변의 애국적 진보 인사들은 자발적으로 민중을 각성시켜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주권을 수호하며 정의를 주장하고 압박과 착취에 반항하기 위하여 『민성보』의 창간을 준비했다. 『민성보』는 1927년 여름, 연길·화룡 2개 현의 저명인사들인 화룡현 교육국 국장 관준언(關俊彥), 용정촌 전화국 국장 방지함(方芷涵) 등이 발의하고, 연길·혼춘·화룡·왕청, 용정촌의 교육계·공상계의 애국 인사들이 마음을 합쳐 성금을 모금하여 인쇄기를 구입한 후 용정촌 신안 거리[지금의 민성 거리]에 신문사를 꾸림으로써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민성보』의 조직과 편집 방향 민성보사의 최고 집행 기구는 4개 현과 용정촌에서 선출된 40여 명의 보무 위원회(報務委員會)였다. 그리고 신문사 내의 조직기구로는 사장과 경리를 두고 그 아래에 편집부·영업부·인쇄소를 두었다. 『민성보』의 중국어면 총편집은 안회음이 맡았다. 그는 국내외 주요 신문 편집을 책임지고 주관하였다. 안회음은 국민당의 중간파 인물로써 신문사내의 진보 세력들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게 되자 얼마 후 사퇴하고 1928년 여름에 용정을 떠나 천진으로 돌아갔다. 『민성보』의 지방 신문과 문예면은 주동교가 주관하였다. 중국어면 편집에는 손좌민이, 교정은 이별천이 맡았다. 한국어면 총편집은 윤화수(尹和洙)였다. 민성보사에는 60여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조선족과 한족이 각기 절반씩을 차지하였다. 『민성보』는 매주 6회 발행했는데, 총 4면으로 1면부터 3면 전반부까지는 중국어면이고, 3면 후반부터 4면은 한국어면이었다. 당시 『민성보』의 주요 영업 수입은 광고비였다. 4면 중의 한 면은 광고가 차지했다. 『민성보』의 하루 발행량은 2,000부 정도로 비록 발행량이 많지는 않았으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특히 한인 주민들에게 그 영향이 컸는데, 『민성보』의 출간으로 일본인 신문 『간도 신보』가 독점했던 용정촌 여론의 동향이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민성보』는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을 막고 안으로는 봉건 세력을 공격하는 것에 편집 방향을 맞추었다. 『민성보』는 투쟁의 예봉을 직접 일본 제국주의와 중국 통치 계급에게 돌리고 압박을 당하고 있는 민중에게 각성과 단합을 촉구하면서, 민족 평등을 주장하고 문화와 인종이 같은 중국인과 한인들에게 환난을 함께 이겨나갈 것을 호소했다. 『민성보』는 한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출병한 일제의 야만적 행위를 적발 및 폭로했고, 일제가 설치한 경찰 조직, 경제계와 문화계 등에서 활동하는 간첩[특무] 활동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규탄했다. 한편, 『민성보』가 탄생되던 시기를 전후하여 지방의 중소 민족 공상업은 이미 생기를 띄고 있었다. 용정 한 곳만 하더라도 사영 발전소·제분소·양조소·사탕 공장·제재 공장, 벌목 회사·은행 등이 연이어 세워졌다. 그러나 당시 값싼 일본 상품과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일본 담배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민족 공상업은 더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이에 『민성보』는 "외국 상품을 배척하고 이권을 만회하자!", "관세 장벽을 높이 쌓자!"라고 강력히 설파함과 동시에 세금을 감면 혹은 면제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을 건의 제출했다. 그러나 지방 관원들이 자기 이익만 채우고 관세권을 무시하는 바람에 결국 이권이 외국인의 수중에 들어가 버려 그 어떤 방안을 제시해도 무용지물이 될 뿐이었다. 『민성보』는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만화로 묘사했다. 만화의 내용은 닭[중국 상품] 한 마리가 노끈[세금]에 얽매여 있는데 독수리[외국 상품]가 덮쳐들어 닭의 깃털을 쪼아 닭이 죽어가는 형상이었다. 『민성보』가 교육, 문화 생활에 끼친 영향 교육 방면에 있어서 『민성보』는 새로운 학제를 도입할 것과 백화문을 쓸 것을 주장했다. 이로 인해 연변 지역은 한문(漢文)이라고 불리는 문언문(文言文)을 쓰던 것에서 현대 한어(現代漢語)인 백화문(白話文)을 쓰게 되었고, 지방 정부의 공문, 포고문마저 차츰 백화문으로 쓰게 되었다. 한인에 대해서는 형식에 구애되지 말고 스스로 학교를 꾸릴 것을 제시함으로써 한인이 꾸린 학교가 일본 사람이 꾸린 소학교나 영국, 독일 사람들이 꾸린 교회 학교보다 훨씬 많아지게 되었다. 동시에 신문화·신사상을 전파하기 위하여 『민성보』는 문예, 노동자 원지, 여성, 아동 등 전문란을 설치하여 새로운 격조로 대량의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으며, 농업 집단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러시아 농촌을 소개하고 「들끓는 새 로씨야 농촌」, 「철의 흐름」 등 새로운 러시아 작품을 전재하였다. 연변 문단이 활기를 띤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민성보』는 또한 문화 생활면에서도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1930년 봄, 수구파인 장창일과 주광일 등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제창하고 ‘이풍이속(移風移俗)’을 반대한 반면 화룡현 삼도구 제6 소학교 교장 주소성 등은 공가점(孔家店)을 타도하고 낡은 예교를 반대하며 신문화를 받아 들이고 백화문을 사용할 것을 주창했다. 이들은 『민성보』를 통해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논쟁하였는데, 이는 결국 존공파(尊孔派)의 실패로 끝났다. 이 3개월의 필전(筆戰)은 여성들의 단발부터 남녀 합교(男女合敎), 남녀 동학(男女同學), 혼인 자유, 남녀 평등과 여성 참정 등의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켰고 잠잠하던 연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민성보』는 한 자루의 비수가 되어 일제와 낡은 통치 계급을 위협했고, 이들은 『민성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면서도 두려워하였다. 일제는 한국어면 총편집자인 윤화수를 위협하며 압박했지만 윤화수는 추호도 두려워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민성보』, 역사가 되다 1924년에 시작된 제1차 국공 합작은 1927년 마무리되었고, 『민성보』의 간행에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1929년 1월 손좌민·이별천 등 신문사 내의 공산당원들이 용정을 떠났고, 1930년 말에 이르러서는 『민성보』의 주요 편집진이 공산당원에서 국민당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항일이라는 대의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1930년 말 국민당 우파의 원로인 호한민(胡漢民)이 ‘민성보’라고 신문의 제호를 친필로 쓴 뒤부터 『민성보』는 우파적인 성향을 담기 시작했다. 특히 문예 전문란의 좌파적인 성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민성보』의 창간 주역인 방지함은 직접 편집을 맡고 의연히 일제를 비판했다. 1931년 9월 18일, ‘만주 사변’으로 불리는 ‘9·18 사변’-유조호(柳條湖)만주 철도 폭발 사건-의 발발로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중국 침략을 위한 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고 식민지화하기 시작하자 『민성보』는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가 『민성보』의 주요 지도자들을 갖은 수단을 동원해 탄압했고, 외교에 무능했던 지방의 중화민국 관리들은 끝내 신문사를 보호하지 못했던 것이다. 『민성보』는 곧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투사'라고 할 만하다. 다음의 글은 『민성보』의 창간인이자 사장인 관준언이 서명했던 비장한 정간사이다. "동인들은 엎어진 둥지에 성한 알이 없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원쑤들의 온갖 위협과 유인을 물리치면서 몇 달 동안 출판을 견지해왔다. 꺾어질지언정 휘여 들지 않으려는 의지로써 원쑤를 섬기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3078    [별의별] - 코끼리와 새둥지 새끼새 댓글:  조회:3165  추천:0  2021-05-10
인도에서 야생 코끼리가 바나나 숲을 습격했지만 새둥지의 새끼만은 공격하지 않아 화제다. [10TV News Telugu 캡처]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인도에서 야생 코끼리떼가 바나나 300그루 이상을 쓰러뜨리며 쑥대밭을 만들었지만 새둥지만은 건드리지 않아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인디안 익스프레스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인도 남부 타밀 나두 주(州) 엘로드 지역의 바나나 숲은 지난 8일(현지시간) 야생 코끼리 5마리의 습격을 받았다. [10TV News Telugu 캡처]바나나 나무 300그루 이상이 초토화된 모습. [Aju's Colours of Life 캡처] 분노에 찬 코끼리들은 바나나 나무를 차례로 쓰러뜨리면서 300개 이상의 나무를 전복시켰다. 그러나 부근 일대가 초토화됐지만 단 1그루만이 멀쩡하게 서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상하게 여긴 바나나 숲 주인 크리쉬나사미 씨는 보존된 나무에 접근했고 그 안에 새둥지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새둥지는 바나나 열매 위에 만들어져 있었으며 그 안에는 갓 태어난 4~5마리의 새끼새가 있었다. 현지 언론은 크리쉬나사미 씨를 인용해 “코끼리 습격이 끝나고 주민들과 함께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숲으로 갔다”며 “300개 이상의 나무를 쓰러뜨린 코끼리가 ‘우연히’ 새둥지가 있는 나무만 공격하지 않은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새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배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바나나 열매 위에 만들어진 새둥지. 새끼 새 5마리가 생존해 있다. [Aju's Colours of Life 캡처] 해당 영상은 인도 산림 관리국의 파빈 카스완씨가 트위터에 공유하면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 4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코끼리가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네” “멋진 대자연의 단면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섬세한 생명체다” 등의 감동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인명 피해 역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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