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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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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7    [세상만사] - "감독과 가수..." 댓글:  조회:2933  추천:0  2020-12-16
사회 김기덕 왜 라트비아? 그의 사망 뒤엔 빅토르 초이가... 정병선 기자 입력 2020.12.16    지난 11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김기덕(60) 감독은 왜 발틱해 소국(小國) 라트비아에 정착하려 했을까? 김 감독의 라트비아 거주와 영주권 신청 배경에는 옛 소련(蘇聯)의 요절(夭折) 가수 빅토르 초이(최)에 관한 영화 구상 때문으로 알려졌다. 빅토르 초이는 28세 요절했다. 김 감독 역시 요즘치고는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환갑일(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며 “한국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라고 애도했다.   고(故) 김기덕 감독 김 감독이 사망한 라트비아는 빅토르 초이가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치고는 상당한 관계를 형성한다. 라트비아 리가는 아름다운 도시로 헐리우드 감독을 비롯해 옛 소련 감독과 유럽 감독들이 영화 배경으로 자주 등장시켰다. 김 감독은 라트비아 휴양도시 유르말라에 집을 구하고, 영주권을 신청하려던 중 변을 당했다. 김 감독이 장기 거주하려 했던 유르말라는 빅토르 초이와도 연관된다. 유르말라는 빅토르 초이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1990년 8월15일 빅토르 초이 역시 리가 공연을 마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유르말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28세였다. 라트비아 현지 교민들은 “김 감독이 위임장 신청 문제로 대사관을 자주 방문했다”고 했다. 또 김기덕 감독 생전 러시아와 옛소련 영화제 초청에 관여한 관계자는 “내년(2021년)이 한국과 라트비아 수교 30주년이라 빅토르 초이에 관한 영화를 구상했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 감독이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테마일 것”이라고 했다. 유르말라는 소련 때부터 유명한 휴양지 중 한 곳이다. 리가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이곳은 리가만과 리엘유페강 사이 30km 해안을 따라 자리잡은 아름다운 도시다. 소련 당시 빅토르 초이는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죽은지 30년이 됐음에도 여전히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빅토르 초이는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곡을 발표했으며, 특히 비틀즈와 존 레논을 좋아했다. 그의 노래는 소련 젊은이들을 개혁과 개방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내모는 역할을 했다.   빅토르 초이 추모 우표 디자인. 올핸 공교롭게도 옛 소련의 전설적인 록스타 고(故) 빅토르 초이의 사망 30주기다. 러시아에서 최근 그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1990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빅토르 초이의 사망 30주기를 맞아 ‘초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지난 9월3일 러시아에서 개봉 예정이었지만 불발됐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빅토르 초이가 죽기 직전 2개월 간 벌어진 가상의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이즈베스티야는 “ ‘영화 개봉을 앞두고 빅토르 초이 유가족들이 영화가 빅토르 초이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담았다'며 크렘린궁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상영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보도했다. 김 감독을 아는 러시아와 라트비아의 영화 관계자들은 “이런 빅토르 초이에 관한 일련의 논란이 김 감독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2018년 개봉된 빅토르 초이에 관한 영화 ‘레토(여름)’가 김 감독이 생각하는 빅토르 초이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않아 또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 레토는 한국인들이 빅토르 초이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으로 출품되면서였다.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인데도 빅토르 초이 역으로 2000대1의 경쟁을 뚫고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연기하면서 관심을 더했다. 더구나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상’ 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오른 김 감독이기에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김 감독이 빅토르 초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영화로 다룰법 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과 러시아 영화인들의 시각이다. 빅토르 초이는 1962년 옛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인(옛 소련 거주 한인) 2세 아버지와 당시 소련 국적(우크라이나)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록그룹 ‘키노(Kino)’를 결성해 약 9년 동안 페레스트이카(개혁) 와중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통해 개혁·개방을 이끌며 우상으로 떠올랐다. 빅토르 초이는 인기 절정에 있던 1990년 8월 15일 순회 공연차 들른 라트비아 리가에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해 28세로 요절했다. 이 사고는 아직까지도 KGB에 의한 타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확한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서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전체주의 사회의 탄압 속에서 반정부 메시지를 전해준 밴드였기에 의문은 더했다. 빅토르 초이는 소련 당시 레닌그라드의 유일한 합법적인 록 공연장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데뷔했으며, 1990년 1980소련 올림픽 개막식장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열며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경기장에 6만2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록음악을 ‘서구의 퇴폐적인 산물’이라며 금지하고 단속했던 소련 당국은 빅토르 초이 노래를 반체제 작품으로 규정, 공공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소련 말기 그의 인기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특히, 소련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풍자한 노골적인 반전·반핵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발표하면서 정부를 자극했다. 키노의 최대 히트작은 1988년 발표된 ‘그루파 크로비(혈액형)’였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던 소련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곡이었다. 그해 영화 ‘이글라’에도 출연하는 등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키노를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은 지금도 “키노 이전엔 소련에 대중음악이란 것이 없었다”며 “키노가 등장하면서 소련에 대중음악이 생겼다. 이것이 우리가 아직도 빅토르 초이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유다”고 말한다.
3036    [세상만사] - "모나리자와 독감상" 댓글:  조회:3259  추천:0  2020-12-16
국제 얼마면 되겠니, 모나리자 나홀로 감상 루브르 박물관 코로나 경영난에 경매, 가격은 예상을 뛰어넘고... 김수경 기자 입력 2020.12.16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AFP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를 온전히 혼자 관람하는 데 얼마가 들까? 16일(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 측은 전날까지 코로나로 인한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경매 행사를 열었다. 경매 품목엔 ‘모나리자를 가까이에서 단독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포함돼있었다. 코로나 전엔 박물관을 찾더라도 세계적인 명화 ‘모나리자’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림을 봐야 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훼손 등 우려가 있어 작품으로부터 3미터 이상 떨어져 감상해야했다. 이번 경매 품목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모나리자 진품을 매우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다. 경매 전 박물관 측은 ‘모나리자를 가까이에서 단독으로 볼 수 있는 기회’ 경매품목에 1만~3만 유로(약 1300만~4000만원)가 책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낙찰가는 이보다 훨씬 높았다. 한 익명의 온라인 입찰자가 이를 8만 유로(약 1억650만원)에 낙찰받은 것이다. 낙찰자는 연말에 박물관 측이 여는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또다른 경매 품목 중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사장이자 책임자인 장 뤽 마르티네즈와 함께 박물관 개인투어를 하는 것, 박물관의 야간투어를 하는 것도 있었다. 경매 업체 크리스티 측에 따르면 두 경매품목 모두 3만8000유로(약 5059만원)에 낙찰됐다. 루브르 박물관 측은 코로나로 인해 방문객 수는 75%까지 감소하며 모두 9000만유로(약 1100억)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경매로 손실의 일부를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035    [그것이 알고싶다] - "아리랑체‘’ 댓글:  조회:3458  추천:0  2020-12-14
서영근씨, 컴퓨터용 폰트(字体)' 중국조선족서예체' 개발 2020년12월14일    아이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면 웃음소리가 들끓고 자칫 티격태격하며 산만해지기 일쑤인데 수십명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인 이 곳에는 쥐죽은 듯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반듯하게 내리누른 백지장우에 비뚤어질세라 곱게곱게 한자씩 써내려가는 애고사리같은 아이들은 손에 저마다 먹을 머금은 붓대를 치켜세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들의 서예 스승 서영근 선생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한켠에는 로인분들이 먹물에 붓을 지그시 담가가며 붓글씨를 배우기에 한창 석양을 불태우고 있었다. 서예가 서영근 선생 남다른 서예 사랑, 유별난 제자 사랑. 이 두가지를 동시에 실천해가는 서영근 선생의 일상에는 서예도 제자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으로 되였다. 40년간 한결같았던 서예사랑을 이제 제자들에게 베풀어가련다는 서예가 서영근 선생, 그의 사무실 벽지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세면을 가득 메운 벽면으로 시작해 천장까지 빼곡하게 제자들의 영예증서로 도배되였는데 이게 바로 그가 ‘밥을 안먹어도 배부른 리유’라고 했다. 도문시 월청진에서 출생한 서영근씨가 서예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가인 아버지(서광억)와 서예가인 친형(서권)의 영향과 갈라놓을 수 없다. 소시적 어느날, 소설가인 아버지 앞으로 날아온 한 출판사 편집이 친필로 써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너무나 멋졌던 나머지 자신도 저런 멋진 글씨체를 익히고 싶어서 글씨를 잘 쓰던 친형의 도움을 받아 서예공부를 시작하게 되였다. 1989년 연변사범학원에 입학한 후로 당시 한개 과목으로 설치되여 있던 서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하고 남다른 집착으로 달라붙었다. 그는 사범학원 졸업을 앞두고 개인서예전을 개최하고 서예전에 입상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발한 서예활동을 시작하더니 서예가들 사이에서 유망주로 떠올랐다. 졸업 후에는 공예상표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각종 상표글씨를 써오다가 연길시중앙소학교 미술교원으로 전근하여 본격 아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994년에 연길에서 개최된 《아름다운 한글서예 중한련합전》에서 서영근씨는 여태 본적이 없던 한국의 전통서예작품을 보게 되였다. 그것은 연변의 서예작품과 확연이 다른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면서 또 다른 문화적인 차이를 크게 느꼈다. 하여 그는 전시회에 참가한 서예가들의 련락처를 수소문해 일일이 서신을 보내 가르침을 요청했다. 집요할 만치 가르침을 갈구하던 그에게 한국 서예가들은 그의 끈기있는 열정에 감동되여 서신 답장을 보내오면서 ‘장거리 가르침’을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스승들이 내여준 숙제를 서신으로 완성해 보내면 한국 서예가들은 하나하나씩 표기를 해가며 그의 작품을 지적하고 수정해가며 알뜰히 가르쳤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동안 서신으로 공부한 노력으로 당시 중국에는 없던 전통 궁체와 판본체를 마침내 배워낼 수 있게 되였다. 그러다 점점 더 서예에 갈증을 느낀 서영근씨는 한국 류학 길에 올라 더 깊은 문학과 서예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때는 1997년이였다. 한국 제주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본과과정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어학박사과정(경상대학교)을 수료한 후 서영근씨는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서예학 박사과정을 설치한 원광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궁체, 판본체 외 민체 등 여러가지 서체들을 두루 공부하게 되였으며 마침내 2008년에 제1호 서예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창신대학, 전주대학, 서정대학 등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서예 전수를 이어갔다. 또한 그는 한국에 있을 때 한민족서예학회, 재한동포서예협회 등 단체를 운영하면서 재한 조선족들에게 무상으로 서예를 가르치며  집 떠나 멀리 이국타향에 온 고향사람들과 서예로 끈끈한 고향정을 나누며 ‘재능기부’를 실천했다. 그러다 그는 언젠가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매일 쓰다싶이 하고 있는 컴퓨터 글씨는 진정 ‘우리의 것’이 아니란걸 알았습니다. 그건 한국이나 조선의 것이지 중국 조선족의 것이 아니였습니다.” 컴퓨터 속에 진정한 우리의 글씨체가 없다는 안타까움에 그는 2015년부터 우리 글 서체 컴퓨터 폰트개발에 달라붙었다. 남성미 넘치는 조선의 청봉체와 녀성미가 다분한 한국의 궁체를 접목해 2014년 ‘아리랑체’를 새롭게 개발했으며 이것을 2015년에 컴퓨터용 폰트로 제작하고 서예교본도 출간하였다. 꼬박 몇년간의 심혈을 기울여 드디여 지난달인 11월19일 그가 개발한 컴퓨터용 ‘서영근 아리랑체’ 등 폰트 저작권이 국가저작권국 허가를 받아 세상의 빛을 보게 되였다. 이로써 정정당당히 이제는 컴퓨터로도 아름다운 중국조선족서예체를 타자할 수 있게 되였다. 새로 개발된 이 폰트를 다운하여 컴퓨터에 설치하면 서영근 아리랑체를 위주로 서영근 궁체, 서영근 궁체흘림, 서영근 판본체, 서영근 판본체흘림, 서영근 민체, 서영근 민체흘림, 서영근 청봉체를 포함한 8가지 컴퓨터 폰트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골라 쓸 수 있게끔 우리 글 상용자 2500개를 수록해 넣었다. “영리성적인 목적으로 만든 폰트가 아니라 중국 조선민족 문화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이것을 진정으로 수요하는 공공기관이나 꼭 필요한 분야에 무상으로 제공하고저 개발한 만큼 그 과정이 길고 힘들긴 했으나 큰 자부심을 느낌니다.” 그윽한 먹향을 머금은 따끈따끈한 ‘우리의 글씨체’를 이제 우리의 컴퓨터 속에서도 륙속 만나보게 될 수 있게끔 보급에도 앞장서겠다는 서영근 선생의 당찬 포부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길림신문 김영화 기자
3034    [세상만사] - "담벼락 그림= 대박..." 댓글:  조회:3074  추천:0  2020-12-14
'자고 일어나니 백만장자'… 담벼락 그림 덕에 6억 집이 72억으로  2020.12.14.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머니투데이 김현지A 기자]/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영국에서 한 주택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500만파운드(한화 약 72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근처 주택들의 가격도 덩달아 껑충 뛸 것으로 예상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12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브리스톨 베일 가(Vale street)에 위치한 집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재채기를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그림은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의 그림이었다. 지난 10일 뱅크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새로 그린 벽화 "아츄(Aachoo!!, 재채기 소리)"를 공개했다. 이 그림 속 할머니는 재채기를 하느라 틀니와 지팡이가 날라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벽화가 그려진 집은 경사가 22도에 달하는 가파른 비탈길에 위치해 있다.  /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뱅크시는 이곳의 경사를 이용해 벽화 속 노인이 재채기해 옆집과 쓰레기통 등을 넘어뜨리고 바람에 뒤집힌 우산을 들고 있는 남자도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것처럼 연출한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벽화가 그려지기 전 베일 가의 평균 집값은 40만파운드(한화 약 5억8000만원)였다. 하지만 뱅크시의 작품이 등장한 이후로 이곳의 주택들은 수십억 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미술 전문가는 벽화의 가치를 500만파운드(한화 약 72억원)로 추정했다. 벽화가 공개되자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본래 집주인인 아일린 마킨의 아들 닉 마킨은 "원래 집을 매매하려고 내놨었지만 벽화가 생긴 뒤 계약서에 벽화를 잘 보존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기 위해 잠시 보류를 했었다"며 "언론들이 마치 집값이 올라서 어머니가 매매를 철회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오해를 일축했다.  그는 "우리가 500만파운드를 번 것도 아니다"라며 "오히려 벽화 때문에 관광객이 몰리자 벽화를 보존하기 위해 투명판을 설치하는 등 돈이 더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벽화가 그려진 해당 주택은 매각된 상태며 판매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현지A 기자 
3033    [세상만사] - "보석= 대박..." 댓글:  조회:2802  추천:0  2020-12-14
“신의 뜻”… 가난한 마을에 ‘보석’이 떠밀려오기 시작했다  2020.12.14.    훈훈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마을 주민 2000명 ‘보물찾기’서 금반지, 은팔찌 등 발견 일부 164만 원 상당에 팔려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빈곤에 허덕이던 베네수엘라 한 마을에 ‘보석’이 떠밀려오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올해 9월 초부터 베네수엘라 과카(Guaca) 해변에서 금반지 등 보석이 잇따라 발견됐다고 1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곳에 사는 라레스(25·여)는 매체와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해변 모래사장에서 보석을 발견했다”며 “기쁜 마음에 가족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마을 전체에도 알려져 주민 대부분이 모두 해변에서 보석을 캐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민 약 2000명은 ‘보물찾기’에 나섰고 금반지와 은팔찌, 보석이 박힌 액세서리 등을 심심치 않게 발견했다. 모든 주민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보물찾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찾아낸 귀금속 중 일부는 1500달러(약 164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금반지를 손에 넣은 한 주민은 “이것은 신의 뜻”이라며 감격했다. 다만, 이 보석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다. 일부는 가라앉은 해적선에서 왔다고 믿고, 누군가는 신이 축복을 내린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상 파악에 나선 뉴욕타임스는 현지 주민이 발견한 보석 중 하나를 전문가에게 보내 분석을 의뢰했고, 베네수엘라 제조 보석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고품질의 18캐럿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매체는 “이 보석들은 대체로 20세기 중반에 상업적으로 제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제조된 시기와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마을은 한때 베네수엘라 어류 가공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공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해 현재는 대부분 폐업한 상태로 마을 주민들은 가난에 시달려왔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주요 생산물이었던 정어리와 참치 등의 수확량 급감으로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보물찾기’가 시작된 후부터 정어리 수확량이 느는 등 행운이 계속됐다고 입을 모았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3032    [세상만사] - "그래도 맑은 세상..." 댓글:  조회:2605  추천:0  2020-12-13
사회 88세 할머니는 동전을 모았다...대구·경북 보듬는 연말의 천사들 경북 울진에선 할머니, 안동에선 아이들이 기부 대구선 부부·모자(母子)가 나눔 이어가 이승규 기자 입력 2020.12.13      경북 울진군 매화면의 임부칠(88) 어르신이 1년간 화폐 7종을 모아 19만 920원을 기부했다./울진군 연말을 맞아 대구와 경북에서 주변 이웃을 돕는 기부 릴레이가 펼쳐지고 있다. 아이들이 용돈을 아끼거나 어르신이 한달간 화폐 단위별로 모은 돈을 기탁하는 등 사연도 다양하다. 지난 10일 경북 울진 매화면 사무소에 임부칠(88) 어르신이 봉투를 들고 찾아왔다. 봉투에는 19만 920원이 들어있었다. 임씨가 매달 1만 6660원씩 1년간 모은 기부금이었다. 1만원·5000원·1000원권 지폐 3종을 시작으로 500원·100원·50원·10원 등 동전 4종에 이르기까지 현행 화폐를 종류별로 모아 더한 금액이다. 지난 해부터 ‘화폐 종류별 기부’를 시작한 임씨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성금을 못낸 적이 있어 마음이 아팠다”면서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했다. 지난 11일 경북 안동 용상동 행정복지센터에는 패딩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쓴 아이 2명이 고사리 손에 파란색 돼지 저금통을 들고 찾아왔다. 이주성·주원 형제는 이날 꼬깃꼬깃 접은 지폐와 동전으로 모은 용돈 10만 4600원을 기부했다. “어려운 친구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경북 안동시 용상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이주성·이주원 형제가 용돈 10만 4600원을 모은 돼지저금통을 소네 들고 있다./안동시 이군 형제와 함께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부모는 마스크 600매를, 손자들의 기부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면서 10만원을 추가로 내놓았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이름으로 한 기부도 있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3일 “김기호(85)씨가 남편인 故 박찬수 예비역 육군 준장의 명의로 성금 500만원을 기탁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지 1년 후인 2013년 자신의 노후 자금 1억원을 기부했다. 이듬 해엔 남편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나려고 모아둔 1억원을 남편의 이름으로 기부하며 부부가 모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백승묘 봉덕어린이집 원장도 1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해 6월 아들인 김민성씨에 이어 100만원을 기부하면서 모자(母子)가 모두 100만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나눔리더’에 이름을 올렸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을 기부한 김기호(왼쪽)씨와 백승묘(오른쪽)씨./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날 기부에 동참한 김기호씨와 백승묘씨는 모두 “지역 사회를 위한 나눔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쁘다”며 “우리의 마음이 대구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스한 불씨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3031    [세상만사] - "전반전과 후반전..." 댓글:  조회:2729  추천:0  2020-12-13
문화·라이프 성폭력 논란 감독을 추모? ‘김기덕 딜레마’에 빠진 영화계 김성현 기자 입력 2020.12.13      고(故) 김기덕 감독 “만약 누군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다.” 영화감독 김기덕(60)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12일 영화 ‘기생충’ 자막을 영어로 번역한 달시 파켓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 영화계 안팎에서 회자됐다. 파켓은 이 글에서 “2018년 그의 성폭력 의혹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보도된 이후, 나는 학교 수업에서 김기덕 영화에 대해 가르치는 걸 중단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베네치아, 베를린, 칸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상을 받은 유일한 한국 영화인. 하지만 성폭력 증언이 쏟아진 뒤, 국내 활동을 중단하고 키르기스스탄 등 해외에서 주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라트비아에 집을 구입하고 영주권을 취득할 계획이었지만 11일 코로나 합병증으로 리가의 대학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영화계는 별다른 논평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에 빠졌다. 오히려 추모 분위기에 선을 긋고 나선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아일랜드 출신 평론가 피어스 콘란은 “그가 촬영장에서 저지른 끔찍한 행동을 언급하지 않은 채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라는 애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슬펐다”고 했다. 평론가 박우성도 “대개의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지만 어떤 경우엔 또 다른 가해가 된다”고 했다. 일부 영화인은 온라인에 추모의 뜻을 밝혔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 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라고 했다. 영화 ‘신과 함께’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도 “참 외롭게 가시네요. 인사동 막걸리가 마지막이었네요. 기덕이 형 잘 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주라트비아 한국 대사관은 “유족이 장례를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으며,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 화장한 뒤, 유골을 국내 송환할 전망이다.       지난 11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김기덕(60) 감독은 왜 발틱해 소국(小國) 라트비아에 정착하려 했을까? 김 감독의 라트비아 거주와 영주권 신청 배경에는 옛 소련(蘇聯)의 요절(夭折) 가수 빅토르 초이(최)에 관한 영화 구상 때문으로 알려졌다. 빅토르 초이는 28세 요절했다. 김 감독 역시 요즘치고는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환갑일(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며 “한국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라고 애도했다.   고(故) 김기덕 감독 김 감독이 사망한 라트비아는 빅토르 초이가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치고는 상당한 관계를 형성한다. 라트비아 리가는 아름다운 도시로 헐리우드 감독을 비롯해 옛 소련 감독과 유럽 감독들이 영화 배경으로 자주 등장시켰다. 김 감독은 라트비아 휴양도시 유르말라에 집을 구하고, 영주권을 신청하려던 중 변을 당했다. 김 감독이 장기 거주하려 했던 유르말라는 빅토르 초이와도 연관된다. 유르말라는 빅토르 초이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1990년 8월15일 빅토르 초이 역시 리가 공연을 마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유르말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28세였다. 라트비아 현지 교민들은 “김 감독이 위임장 신청 문제로 대사관을 자주 방문했다”고 했다. 또 김기덕 감독 생전 러시아와 옛소련 영화제 초청에 관여한 관계자는 “내년(2021년)이 한국과 라트비아 수교 30주년이라 빅토르 초이에 관한 영화를 구상했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 감독이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테마일 것”이라고 했다. 유르말라는 소련 때부터 유명한 휴양지 중 한 곳이다. 리가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이곳은 리가만과 리엘유페강 사이 30km 해안을 따라 자리잡은 아름다운 도시다. 소련 당시 빅토르 초이는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죽은지 30년이 됐음에도 여전히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빅토르 초이는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곡을 발표했으며, 특히 비틀즈와 존 레논을 좋아했다. 그의 노래는 소련 젊은이들을 개혁과 개방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내모는 역할을 했다.   빅토르 초이 추모 우표 디자인. 올핸 공교롭게도 옛 소련의 전설적인 록스타 고(故) 빅토르 초이의 사망 30주기다. 러시아에서 최근 그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1990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빅토르 초이의 사망 30주기를 맞아 ‘초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지난 9월3일 러시아에서 개봉 예정이었지만 불발됐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빅토르 초이가 죽기 직전 2개월 간 벌어진 가상의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이즈베스티야는 “ ‘영화 개봉을 앞두고 빅토르 초이 유가족들이 영화가 빅토르 초이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담았다'며 크렘린궁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상영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보도했다. 김 감독을 아는 러시아와 라트비아의 영화 관계자들은 “이런 빅토르 초이에 관한 일련의 논란이 김 감독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2018년 개봉된 빅토르 초이에 관한 영화 ‘레토(여름)’가 김 감독이 생각하는 빅토르 초이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않아 또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 레토는 한국인들이 빅토르 초이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으로 출품되면서였다.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인데도 빅토르 초이 역으로 2000대1의 경쟁을 뚫고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연기하면서 관심을 더했다. 더구나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상’ 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오른 김 감독이기에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김 감독이 빅토르 초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영화로 다룰법 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과 러시아 영화인들의 시각이다. 빅토르 초이는 1962년 옛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고려인(옛 소련 거주 한인) 2세 아버지와 당시 소련 국적(우크라이나)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록그룹 ‘키노(Kino)’를 결성해 약 9년 동안 페레스트이카(개혁) 와중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통해 개혁·개방을 이끌며 우상으로 떠올랐다. 빅토르 초이는 인기 절정에 있던 1990년 8월 15일 순회 공연차 들른 라트비아 리가에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해 28세로 요절했다. 이 사고는 아직까지도 KGB에 의한 타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확한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서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전체주의 사회의 탄압 속에서 반정부 메시지를 전해준 밴드였기에 의문은 더했다. 빅토르 초이는 소련 당시 레닌그라드의 유일한 합법적인 록 공연장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데뷔했으며, 1990년 1980소련 올림픽 개막식장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열며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경기장에 6만2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록음악을 ‘서구의 퇴폐적인 산물’이라며 금지하고 단속했던 소련 당국은 빅토르 초이 노래를 반체제 작품으로 규정, 공공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소련 말기 그의 인기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특히, 소련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풍자한 노골적인 반전·반핵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발표하면서 정부를 자극했다. 키노의 최대 히트작은 1988년 발표된 ‘그루파 크로비(혈액형)’였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던 소련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곡이었다. 그해 영화 ‘이글라’에도 출연하는 등 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키노를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은 지금도 “키노 이전엔 소련에 대중음악이란 것이 없었다”며 “키노가 등장하면서 소련에 대중음악이 생겼다. 이것이 우리가 아직도 빅토르 초이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유다”고 말한다.
303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나쁜 점, 좋은 점",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855  추천:0  2020-12-11
코로나19 이후 히말라야 눈 더 하얗게 변했다  2020.12.10.    좋아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위성이 포착한 코로나로 바뀐 풍경들 히말라야 산맥 주변에 쌓인 눈을 헤치고 주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며 이 지역의 눈이 더욱 밝게 빛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NASA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덮친 가운데 위성의 눈에 지구가 바뀐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인도 히말라야 지역의 눈은 더 하얗게 빛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몇몇 지역에서는 대기오염이 감소하고 수질이 깨끗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미국지질조사국(USGS), 유럽우주국(ESA) 등 기관 연구원들은 이달 7일 열린 2020년 미국지구물리학회 추계학회에서 위성 영상을 통해 코로나19가 지구 환경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초기 결과를 발표했다고 NASA가 9일 밝혔다. 네드 바이르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지구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자신들이 수년간 연구해 온 히말라야의 눈이 더욱 밝게 빛나는 것을 확인했다. 공기 오염이 많으면 눈 위에 먼지와 그을음이 쌓이며 눈이 탁해지게 되는데 코로나19로 인도의 공기 오염이 줄어들면서 눈이 깨끗해진 것이다. 연구팀은 NASA의 테라 위성에 실린 ‘중간해상도 영상분석계(MODIS)’가 측정한 결과를 활용해 눈을 분석했다. 그 결과 눈 위에 쌓인 오염 물질은 코로나19 발병 이전 대비 36ppm(100만 분의 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것이 장기적으로 주변 주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히말라야의 눈은 주변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 거주민 3억 명에게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눈이 깨끗할수록 반사하는 태양빛이 많아 더 천천히 녹게 된다. 바이르 교수는 “알베도 변화가 눈이 녹는 양을 바꿀 순 없으나 눈이 녹는 시점은 바뀌게 된다”며 “이것이 잠재적으로 지역에서 사용할 물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 지역의 강물을 위성으로 촬영해 탁도를 분석했다. 3월 중순 뉴욕 주에서 봉쇄가 진행된 이후 맨해튼 서쪽 강의 탁도가 낮아진 것을 볼 수 있다. 파란색일수록 탁도가 낮다. USGS 제공 니마 팔레반 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연구원은 미국 뉴욕 맨해튼 주변 강의 수질이 깨끗해진 것을 확인했다. 가정과 사업체의 하수는 폐수처리장에서 처리되고 강으로 방출된다. 3월 중순 뉴욕시가 봉쇄 명령을 내리면서 맨해튼 통근자 210만 명이 맨해튼에 들어오지 못했다. 연구팀은 NASA 위성 ‘랜드샛-8’과 ESA 위성 ‘센티넬-2’을 통해 뉴욕 지역 물의 탁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3월 초에서 재택근무를 거치며 4월에는 물의 탁도가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티모시 뉴먼 USGS 국가토지영상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을 관찰했다. 그 결과 브라질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삼림 벌채가 빠르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와 콩고 지역에서도 급속한 삼림 벌채가 확인됐다. 반면 콜롬비아와 페루에서는 삼림 벌채가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느려진 현상도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지구 환경이 변화하는 양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환경이 개선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팔레반 연구원은 “전염병이 사라지면 수질도 되돌아갈 것”이라며 “연구자들이 확인하는 수많은 환경 개선은 세계가 전염병 이전으로 돌아가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열대우림을 위성으로 촬영했다. 6월에서 9월로 지나며 빠른 속도로 삼림 벌채가 일어나고 있다. USGS제공 조승한 기자 
3029    [세상만사] - 용연향= 대박... 댓글:  조회:2837  추천:0  2020-12-08
  대체 뭘 주웠길래… 해변 걷다 35억 횡재한 태국 어부  2020.12.08.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어부가 발견한 용연향 사진.더선 홈페이지 캡처. 태국 해변에서 한 어부가 우리나라 돈 35억원짜리 용연향을 주웠다. 용연향은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로, 향수를 만들 때 향을 오래가게 만드는 성분이 있어 고급 향수의 재료로 쓰인다. 영국 매체 더선에 따르면, 태국 어부 나리스 수완나상(60)은 지난달 23일 남부 나콘시 탐 마랏의 한 해변에서 100㎏짜리 흰색 바위를 발견했다. 이 수상한 돌덩이를 보고 가족들은 “용연향 같다”며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수완나상은 확인하기 위해 흰색 바위를 집으로 옮겼다. 어마어마한 무게탓에 수완나상의 사촌 형제들까지 바위 운반에 동원됐다고. 집에서 라이터를 켜 불꽃을 바위 표면에 갖다 대자, 바위에서는 사향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제서야 이 흰색 돌덩이가 용연향임을 알게된 수완나상은 이후 전문가에게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어부가 발견한 용연향 사진.더선 홈페이지 캡처. 용연향은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로 고급 향수의 재료로 사용되며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수완나상이 발견한 용연향은 무게가 100kg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 중 가장 큰 것이다. 수완나상은 현지 언론에 용연향 1㎏당 96만바트(한화 약 3450만원)를 주겠다는 제안이 왔다고 밝혔다. 100㎏이면 9600만바트(한화 약 35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더선은 수완나상의 월수입이 약 7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수완나상은 현재 전문가들의 정밀 감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그는 현지 언론에 “이 용연향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전문가들이 이걸 봐봤으면 좋겠다”며 “경찰에게 가서 내가 용연향을 발견했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놓을 계획이다. 집에 도둑이 들까 불안하다”고 밝혔다. 송다영 인턴기자
3028    [세상만사] - "비행기와 차가 뽀뽀..." 댓글:  조회:2526  추천:0  2020-12-08
국제 비행기가 고속도로서 차 들이받곤 “어휴, 죄송합니다” 오경묵 기자 2020.12.07     /미네소타교통국 트위터 미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믿기 어려운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비행기가 자동차를 추돌한 것이다. USA투데이·CBS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2일(현지 시각) 오후 9시 30분쯤 일어났다. 공중에서 경비행기 한 대가 빠른 속도로 고도를 낮추더니 3차선 도로 위로 착륙을 시도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비행기를 발견하고 황급히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비행기보다 ‘앞서’ 달리던 차량 한 대는 이를 피하지 못했다. 결국 비행기가 날개로 차량의 후미를 들이받았다. 뒤따라가던 차량을 운전하던 자넬 하웰은 소방구조대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CBS에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상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죄송하지만 뭐라고 하셨죠?’라고 했다”며 “다시 한 번 ‘고속도로에서 비행기가 자동차를 들이받았다’고 말했고, 상대는 ‘비행기라고요?’라고 재차 되물었다”고 했다.   /유튜브 KHOU 사고 차량을 운전한 유리크는 “뒤에 비행기가 오고 있는 것을 (부딪히기) 1초 전에야 발견했다”며 “도로 위에 날개를 편 비행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사고가 난 경비행기는 엔진 고장으로 인해 불시착했다. 비행기를 조종한 기포드는 “최대한 빨리 안전한 곳에 착륙해야 했다”며 “차와 부딪히는 사고는 피하고 싶었는데, 운전자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기포드는 곡예비행 미국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2017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땄다.   /유튜브 KHOU  
3027    [그것이 알고싶다] -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 댓글:  조회:4095  추천:0  2020-12-08
문화·라이프 “훈민정음 옛 자모 되살려 글자 163만개 만들었죠” 채민기 기자 2020.12.07      한글과컴퓨터 변성준(왼쪽) 대표와 윤디자인 편석훈 대표가 '한컴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을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나란히 섰다. 한컴이 창사 30주년을 맞아 개발하고 올해 한글날 공개한 이 글꼴은 윤디자인이 디자인을 맡아 훈민정음 해례본을 원본에 가깝게 복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옛 문헌 속 한글을 디지털 글꼴로 되살려서 현대에도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앞으로 해나갈 계획입니다. 올해 창사 30주년을 맞은 한컴이 한글의 시작을 재조명한다는 의미에서 훈민정음부터 시작했죠.”(한글과컴퓨터 변성준 대표) “훈민정음 기반의 글꼴은 전에도 있었지만 대개 현대적 재해석을 많이 가미했어요. 이번에는 원본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차별화했습니다.”(윤디자인 편석훈 대표) 최근 서울 마포구 윤디자인에서 마주 앉은 변성준·편석훈 대표가 말했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 ‘한글’을 만든 한컴은 한글의 우수함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온 소프트웨어 회사, 윤디자인은 국내 대표적 글꼴 디자인 회사다. 의기투합한 양사는 ‘한컴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을 개발해 올해 한글날 무료로 공개했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만들고 배포하는 글꼴의 상당수가 마케팅 목적인 것과 달리 한컴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글꼴에 접근한다. 변성준 대표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 저작권 걱정 없는 ‘안심글꼴파일’을 탑재하고, 한글 글꼴 확산에 활용하고 있다”면서 “선뜻 나서기 어려운 옛 한글의 디지털 복원도 한컴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했다. 이 글꼴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복원이라는 목표에서 비롯된 중요한 특징이 있다. 우선 글자의 비례 등을 해례본처럼 세로쓰기에 최적화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식이 아니지만 편석훈 대표는 “특별한 분위기를 내기 위한 디자인 작업에 쓰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책등이나 세로 간판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문장부호도 세로쓰기에 맞게 디자인하고 권점(문장 끝에 마침표처럼 찍는 작은 동그라미) 같은 세로쓰기용 부호도 만들었다. 이제는 거의 잊힌 훈민정음의 옛 자모들까지 지원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현대 한글의 자모를 결합해 만들어낼 수 있는 글자는 총 1만1172가지. 여기에 옛 자모를 추가하자 그 수가 163만8750가지로 늘었다. “옛 한글로 구현할 수 있는 최대 글자 수”라고 한다. 변성준 대표는 “옛 한글은 연구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개발 과정에서 자문에 응해주신 전문가들도 ‘옛 한글을 충분히 지원하는 글꼴을 한컴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한글과컴퓨터에서 개발한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로 훈민정음 서문 도입부를 입력한 모습. 해례본에 한글 ‘온자’(초성·중성·종성이 모두 결합된 글자)는 176자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체 글자의 구조를 설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국정운이나 석보상절처럼 한글이 등장하는 비슷한 시대 문헌을 참고해 비례와 형태를 도출했다. 반대로 훈민정음 글씨에 내재된 기하학적 속성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편 대표는 “훈민정음은 현대적이고 기하학적인 미감을 갖고 있어서 붓글씨의 표현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글자보다 분석하고 체계를 세우기가 용이한 면이 있다”고 했다. 훈민정음엔 없는 영문자를 한글과 어울리게 디자인하는 일도 생각보다 수월했다고 한다. 예컨대 훈민정음은 모음의 짧은 줄기를 선으로 긋지 않고 점으로 찍었는데, 이 점을 ‘i’나 ‘j’ 같은 영문자의 점과 비슷하게 만들어 통일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 글꼴은 한컴이 만든 웹사이트(font.hancom.com)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웹사이트에는 이 외에 한컴의 브랜드 글꼴 등도 공개돼 있으며 앞으로 개발하는 글꼴들도 올라올 예정이다. 변성준·편석훈 대표는 “앞으로 훈민정음 가로쓰기 글꼴을 개발하고, 용비어천가 같은 다른 문헌의 한글도 글꼴로 되살릴 계획”이라면서 “디지털로 복원된 한글이 후대에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3026    [세상만사] - 세 문화인물, 하나로 모이다... 댓글:  조회:2714  추천:0  2020-12-04
이상화가 선물한 병풍…대구에 기증 2020.12.04.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KBS 대구] [앵커] 민족시인 이상화가 독립운동 지사에게 선물한 10폭의 병풍이 대구시에 기증됐습니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했던 예술가와 독립운동가들의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도에 김명환기자입니다. [리포트] 1932년, 죽농 서동균이 금강산 구곡담 시를 행초서로 쓴 10폭 병풍입니다. 언뜻 보기엔 일반 서예 작품이지만 마지막 폭에 담긴 사연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민족시인 이상화가 친한 사이였던 죽농에게 부탁해 민족지사 포해 김정규 선생에게 선물한 겁니다. [이인숙/미술사연구자/경북대 외래 교수 : "기획을 이상화가 했고, 친구한테 쓰게 했고, 그리고 포해 선생한테 선물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김 지사의 아들 김종해씨는 서울 자택에 보관해 오던 이 병풍을 이상화의 고향인 대구에 기증하기 위해 직접 연락해 왔습니다. [김종해/김정규 지사의 아들 : "주인한테 돌려줘야 되겠다. 대구시에서 보관을 하면 훨씬 좋겠구나. 그런 마음에 기증한 겁니다."] 특히 이 작품은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을 통해 일제에 빼앗긴 국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원호/이상화 가문의 종손 : "대구를 대표하는 세 문화인물께서 하나로 모여 이런 콜라보레이션(협업)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감명이 더 크고요."] 대구시는 병풍 기증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대구미술관이 소장하며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이상화 고택과 연계해 역사적 이야기를 담아내는 기획 전시회도 열 예정입니다. KBS 뉴스 김명환입니다. 촬영기자:김익수
3025    [세상만사] - "歷史最佳足球運動員" 댓글:  조회:3200  추천:0  2020-12-01
  《天空体育》历史最佳!别的不说,C罗人气历史最高当仁不让 来源:不肥不瘦的五花肉  体育 《天空体育》历史最佳!别的不说,C罗人气历史最高当仁不让11月29日,《天空体育》发起投票,票选出历史最佳足球运动员。最终C罗成功当选。 本次活动一共有483317名网友参与了投票,样本还是可观的,最终尤文天王C罗获得了35.8%的得票,而老对手梅西获得35.4%的得票,屈居第二。马拉多纳则获得16.7%的票数,贝利获得12.1%的票数。 球迷的评选向来具有主观性,梅罗领先两位球王近一倍的票数,说明当下的球星更能进入人们的视野,而两人只有0.4的差距,也说明了两个人生涯至今的难分伯仲。 葡萄牙人出道这么多年来,一步步走到如今这个地位,让人不得不服。在网络时代,他的魅力得到无限放大。他个人形象堪称“高富帅”,社交能力出色,团队包装能力强大,职业表现也是无可挑剔。社交媒体上的粉丝也是足坛历史最多。    
3024    [그것이 알고싶다] - "중국-인도 국경" 댓글:  조회:2814  추천:0  2020-11-30
- 글꼴 작게가+ 글꼴 크게 두산백과 중국인도국경분쟁   [ 中國印度國境紛爭 ] 요약 1962년의 대충돌(大衝突)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인도 사이의 국경선을 둘러싼 분쟁. 언제 1962년 누가 중국, 인도 무엇을 국경분쟁 어떻게 인도측은 맥마흔라인을 국경선으로 보고, 중국측은 인도의 전통적 경계선을 국경선으로 주장 왜 국경선에 대한 중국과 인도의 이견 분쟁의 원인은 국경선에 대한 양자의 견해가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도 측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대에 영국이 멋대로 그은 ‘맥마흔 라인’(1914)을 그대로 국경선으로 보고 있는 데 반해, 중국 측은 영국 침략 이전의 전통적 경계선을 국경선으로 주장하였다. 양국의 국경수비대가 최초로 충돌한 것은 1959년 8월 인도 북동부 국경지대와 라다크 지구에서였다. 이 때에는 1960년 4월의 저우언라이와 네루의 회담에 의하여 일시적인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2년 봄이 되자 다시 인도군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여 7∼9월에 라다크 지구, 맥마흔라인에서 중국군과의 사이에 무력충돌을 일으켰다. 동년 10월 인도군은 대규모의 공격을 기도하였으나 중국군의 반격으로 완패하였다. 중국군은 동년 11월 돌연 정전을 선언하고 평화회담을 제의한 후 일방적으로 철수하였다. 1962년 말부터 이듬해 초에 걸쳐서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의한 조정이 시도되었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국경지대에서는 군사적으로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나, 국경선은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떠한 사태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중국인도국경 분쟁   발생시기   주요사건   1914년 4월 맥마흔 라인 설정. 1949년 10월 중국정부 수립. 1950년 10월 중국군 티베트 점령. 1954년 4월 중국-인도 협정으로 티베트가 중국영토가 됨. 1959년 3월 티베트 내 폭동 발생, 달라이 라마 인도로 피신. 1959년 8월 중국-인도, 국경 롱주에서 처음으로 교전 발생. 1961년 12월 인도, 국경 지역에 50 여개의 초소 설치. 1962년 10월 중국-인도, 1개월에 걸쳐 교전. 1995년 8월 중국-인도, 국경에 배치한 군대 철수에 합의. 2000년 11월 중국-인도, 국경 분쟁지역에 지도 상호 교환하기로 계획 및 추진. 2003년 6월 양국간 합의로 티베트는 중국의 지배 지역이며 시킴 지역은 인도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 2005년 4월 중국-인도, 국경문제 해결 로드맵 및 경제, 군사협력 증진에 합의. 2008년 9월 제12차 국경회담 결렬. 2010년 11월 인도, 국경 지역인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에 5000 여명 규모의 부대 창설. 2011년 8월 중국군,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 접경지역 성벽 파괴. 2011년 11월 제15차 국경회담 취소. 2012년 3월 중국군, 티베트 남부 국경 지역에서 실탄을 사용해 야간 전투기 공급 훈련 실시. 2012년 4월 인도, 중국까지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성공. 2013년 5월 인도 언론에서 카슈미르 지역에서 발생했던 인도군-중국군 대치 종료되었음을 일방적으로 보도함.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인도국경분쟁 [中國印度國境紛爭] (두산백과) ============================================================/// KIDA 세계분쟁 데이터 베이스 중국-인도 국경분쟁 일지     목차 1910년 - 1920년 1940년 - 1950년 1950년 - 1960년 1960년 - 1970년 1970년 - 1980년 1980년 - 1990년 1990년 - 2000년 2000년 - 2010년 2010년 - 1910년 - 1920년   일자 주요내용 1914년 4월 영국, 인도, 티베트 간 히말라야 산맥 분수령에 설정한 맥마흔 라인으로 영국령 인도와 티베트 국경 설정 1940년 - 1950년   일자 주요내용 1949년 10월 중국정부 수립 1950년 - 1960년   일자 주요내용 1950년 10월 중국군, 티베트 점령 1954년 4월 중-인 간 협정으로 인도 티베트가 중국영토임을 인정 1957년 10월 중국, 신장-티베트 간 고속도로 완공 1959년 3월 티베트 내 폭동으로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피신한 이후 중-인 관계 급속 악화 1959년 8월 동부국경의 롱주에서 중-인 간 첫 교전 발생 1959년 10월 서북 국경(라다크)의 콩카협곡에서 양측 간 2차 교전 발생 1960년 - 1970년   일자 주요내용 1961년 12월 인도, 약 50개의 국경 초소 설치 1962년 10월 20일 중국, 군사행동 개시(1개월 전쟁 이후 일방적 철수, 인도 측 사망/실종자 3천 명, 포로 4천 명, 중국군은 사상자 소수, 포로 없음) 1970년 - 1980년   일자 주요내용 1975년 9월~10월 서부 국경 악사이친에서 총격전 발생 1980년 - 1990년   일자 주요내용 1989년~1992년 국경회담 추진 1990년 - 2000년   일자 주요내용 1993년 9월 국경 평화협정 추진 1995년 8월 양측 국경병력 철수 합의 1996년 11월 중국 주석 장쩌민(江澤民), 인도 최초 방문, 국경문제 및 상호신뢰구축 4개 협정 합의 2000년 - 2010년   일자 주요내용 2000년 11월 양국, 분쟁지역에 대한 지도 상호교환계획 추진 2003년 그동안 성과가 없었던 실무급회담을 특별대표급 회담으로 격상시켜 국경문제 해결 노력 2003년 6월 인도-중국, 분규지역인 티베트 및 시킴(Sikkim) 문제에 대해 상호 합의 ※ 인도는 티베트가 중국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으며, 중국은 시킴왕국과의 무역 재개를 인정함으로써 인도의 일부라는 점을 묵인 2005년 4월 중국-인도,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관계 선언, 국경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과 경제 및 군사협력 증진에 합의 2008년 9월 제12차 국경회담 결렬 2009년 6월 중국, 국경지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면서 2009년 말 계획된 양국 합동군사훈련 취소 결정. 인도, 아삼주의 테즈푸르 공군기지에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30 MKI 4대를 전진 배치. 북동부 국경지대에 5개의 비행장을 포함한 공군 인프라 구축 예정. 국경지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는 병력 6만 명 증원과 화력 증강 계획 2009년 8월 9일 인-중, 국경문제 해결 공동 노력. 1년 만에 열린 제13차 국경회담에서 양측은 획기적 방안 마련에는 실패했으나 '평화적 해결 원칙'에는 합의.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간 핫라인 개설 합의. 양국 대표단은 수교 60주년을 맞는 2010년에 '인도 중국 우호친선의 해' 행사를 공동 개최하기로 합의 2009년 10월 24일 중국 원자바오 총리와 인도 만모한 싱 총리,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에서 국경문제에 대한 양국 간 이견을 점진적으로 줄이기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 2009년 12월 12일 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 병력 증파 계획 발표 2010년 -   일자 주요내용 2010년 4월 12일 인도, OPEN 지(誌) '중국의 대인도 전쟁 계획'을 표지 기사로 게재 2010년 11월 12일 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에 5,000명 규모의 부대 창설 2010년 11월 29일 제14차 국경회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 2010년 12월 16일 인도 뉴델리에서 중인 총리회담 실시 2010년 12월 16일 인도 외교부, 중국이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운동선수와 코치에게 비공식 비자를 발급한 데 대해 항의 2011년 1월 13일 인도 외교부, 이례적으로 중국은 인도 국경지대의 군사시설을 강화하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본다고 밝힘 2011년 8월 19일 중국군, 티베트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접경지역의 성벽 200m 파괴, 인도 반발 2011년 9월 26일 중국과 인도, 베이징에서 양국 간 첫 전략경제대화 개최 2011년 11월 3일 인도,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 향후 5년 이내에 10만 병력을 추가로 배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현대화 계획 마련 2011년 11월 27일 중국과 인도의 제15차 국경회담이 갑작스레 취소됨 2012년 1월 16~17일 중국과 인도, 뉴델리에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시브샨카르 메논 국가안보보좌관을 수석대표로 하여 제15차 국경회담 개최, 국경분쟁을 협의하고 조정하는 실무협의체 설립 합의 2012년 2월 20일 인도 안토니 국방장관, 중-인 국경분쟁 지역 방문 2012년 2월 26일 중국 외교부, 아루나찰프라데시에 대한 인도 내부의 강경 주장이 관리들과 언론을 중심으로 불거지자 중국은 인도에 국경의 평화와 안정유지를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고 밝힘 2012년 3월 2일 중인 양국 외교장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일부에 대한 중국군의 점유 문제 등을 논의 2012년 3월 29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제4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만모한 싱 인도 총리에게 국경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수 있도록 평화, 우호, 평등, 상호존중과 상호이해의 정신에 따라 국경회담을 추진하자고 제의 2012년 3월 23일 중국 공군, 인도와의 국경 분쟁 지역 부근인 티베트 남부에서 실탄을 사용한 전투기 야간 공급 훈련을 처음으로 실시 2012년 4월 19일 인도 ICBM 발사 성공, 중국 전역 도달 가능 2012년 6월 21일 중국 원자바오 총리, 유엔 지속가능개발회의에서 만난 만모한 싱 인도 총리에게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대화채널을 공식화했으며 국경평화를 유지해왔다고 강조하면서 상호 신뢰를 강화하자고 주문 2012년 7월 16일 중국과 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 출신자의 비자 발급 문제로 갈등 2012년 9월 16일 중국 량광례 국방부장과 인도 안토니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양국의 국경분재에 대해 논의, 4년 만에 합동 군사훈련 재개 합의 2012년 10월 21일 인도 언론, 정부가 육․해․공군 참모총장에게 접경지 군사력 강화를 위한 1단계 계획을 완료하자마자 실행 가능한 2단계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힘 2012년 11월 25일 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와 히말라야 지역인 악사이친을 중국 영토로 표시한 중국 여권 지도에 반발 2012년 12월 4일 중국과 인도는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시브샨카르 메논 국가안보보자관을 각각 수석대표로 하는 제16차 국경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고 완전한 국경분쟁 해결을 위한 사전절차로 국경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로 합의. 하지만,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의 영토문제와 영유권 분쟁 지역을 자국 영토로 표시한 중국 여권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 간 이견만 확인. 2013년 1월 16일 중국 언론, 중국과 인도가 연내에 합동군사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 2013년 2월 4일 중국 언론, 인도가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89,000명 규모의 전담 부대를 설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 2013년 4월 20일 인도 언론, 중국 인민해방군 소대 병력이 인도의 카슈미르 지역을 침범, 인도군과 대치 중이라고 보도 2013년 4월 22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 인민해방군이 인도와의 경계선을 침범했다는 인도 언론 보도 반박 2013년 4월 23일 인도 외무부, 인도 주재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 2013년 5월 6일 인도 언론, 카슈미르 지역에서의 인도군과 중국군 대치가 21일 만에 종료되었다고 보도 2013년 5월 9일 중국 외교부 왕이 부장은 방중한 인도의 살만 쿠르시드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중국과 인도는 본질적으로 전략적 동반자라며 양국관계의 강화를 주문 2013년 5월 19일 중국 리커창 총리는 첫 해외 순방지로 인도를 찾아, 싱 인도 총리와 회담하고 세계경제의 새 엔진을 만들자며 양국 경제협력의 확대를 당부. 양국은 국경 분쟁 등 여러 긴장 관계 해소에 적극 나서기로 합의 2013년 7월 17일 중국군, 인도령 라다크 서남부 지역으로 진입해 중국군 감시를 위해 설치해 놓은 카메라 기지를 파괴하고 장비 탈취 2013년 7월 21일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인도 매체들을 인용, 중국 인민해방군 신장군구가 최근 전차군단을 편성해서 인도와의 국경 부근 산악지역에서 고강도 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 2013년 7월 23일 중국과 인도, 뉴델리에서 국경선 충돌 문제와 관련해 2012년에 협상안들을 점검하고 충돌 시 상호 연락 방안 논의 2013년 7월 25일 인도 언론, 중국군 20여 명이 23일 바라호티 평원의 실질통제선(LAC)을 넘어 1시간여 동안 머물다가 돌아갔다고 보도 2013년 8월 12일 인도 언론, 중국과 인도가 실질통제선 침범을 방지하는 국경방어협력협정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 2013년 8월 21일 인도 공군, 라다크주 다울라트 베그 올디 비행장에 C-130J 수송기 배치 2013년 8월 29일 중국 국방부 양위쥔 대변인, 중국과 인도가 11월 4일부터 14일까지 중국 청두군구에서 연합군사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는 국경문제 등으로 악화된 양국 군사관계 개선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음 2013년 10월 23일 중국 리커창 총리와 인도 만모한 싱 총리, 히말라야 국경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국경협력협약을 체결 2013년 10월 27일 인도,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 인근으로 군대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북부 4개주에 군사 철도노선 14개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발표 2013년 11월 5일 중국과 인도, 중국 청두에서 5년 만에 연합 군사훈련 시행, 훈련명칭은 ‘손에 손잡고’로 정해짐 2013년 11월 19일 인도 내각 산하 안전위원회, 중국군의 침공에 대비해 히말라야 국경지대에 배치할 8만 명 규모의 산악군 ‘17집단군’ 창설 승인 2013년 11월 30일 중국 외교부 친강 대변인, 인도 프라납 무커지 대통령의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방문에 대해 ‘양측이 현재 우호적 협상을 통해 영토문제 해결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불쾌감을 표시 2013년 12월 16일 인도 언론, 중국군이 실질통제선을 넘어 인도인 3명을 납치했다가 1주일 만에 풀어줬다고 보도 2013년 12월 23일 인도 뉴스통신 PTI, 중국군 20~22명이 라다크 내 체프지의 실질통제선을 넘어 인도지역에 텐트를 설치했다고 보도하였으나 인도군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 2014년 1월 4일 인도, 공영방송 프라사르 바라티를 통해 접경지역 방송 인프라 확충에 350억 루피 투입 결정, 이는 주민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중국측  방송에 비해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짐 2014년 2월 10일 시브 샨카르 메논 인도 국가안보보좌관은 뉴델리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이틀 일정의 제17차 국경회담 개시. 양제츠 국무위원은 국경분쟁 방지를 위한 행동강령 마련을 제안 2014년 2월 11일 인도 언론 힌두스탄타임스, 중국군 7명이 9일 라다크의 추마르 구역의 실질통제선을 넘어왔다고 보도 2014년 2월 22일 나덴드라 모디 인도국민당(BJP) 총리후보, 아루나찰 프레데시주의 파시가트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지구상의 어느 세력도 인도로부터 단 1인치도 떼어낼 수 없다. 중국은 확장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발전적인 정신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발언 2014년 4월 4일 모디 총리후보, 10년간 집권해온 국민회의당 정부는 국경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인도국민당이 집권하면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밝힘 2014년 9월 17일 카슈미르 라다크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수백 명이 실질통제선을 넘어 인도 쪽에 진입함으로써 양국 군이 대치중인 사건 발생 2014년 9월 19일 중국 외교부, 시진핑 주석의 인도 방문 및 모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국경문제의 적절한 처리에 대한 인식 공유 발표. 시 주석은 양측이 지속적으로 우호적 협상을 통해서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며, 국경문제의 최종 해결 전에는 분쟁을 통제하고, 국경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국경문제가 양국관계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 모디 총리는 중국측과 함께 노력해서 국경분쟁을 통제하고, 국경문제의 협상을 추진해서 이른 시일 내에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언급 2015년 5월 15일 모디 총리, 중국 방문 및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국경 지역 군 지휘관 교류 확대 및 군사 핫라인 구축 등 국경분쟁 악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 2015년 9월 14일 중국 환구시보, 카슈미르 라다크 인근의 양국 간 실질통제선 주변에서 중국군이 설치한 감시초소를 인도군이 철거함으로써 양국 군이 대치중이라고 보도 ==================/// @@  {2020년도 일지} = 인도군과 중국군은 5월 판공호수 난투극, 6월 갈완 계곡 '몽둥이 충돌', 45년 만에 총기 사용 등 최근 국경 분쟁지 라다크 지역에서 잇따라 충돌했다. 인도와 중국은 1962년 국경 문제로 전쟁까지 치렀지만, 국경선을 확정하지 못한 채 실질 통제선(LAC)을 경계로 맞서고 있다. ===========================/// 량국, 1996년 병사들이 실제 통제선에서 총과 폭발물의 사용을 금지. ​ 판공 호수 근처 ​ 2. 역사[편집]   2.1. 1962년 전쟁[편집]  자세한 내용은 중인전쟁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2.2. 1967년 충돌[편집] 1967년 9월 11일부터 9월 14일 현재 인도와 중국의 국경지대인(당시에는 시킴 왕국과 중국의 국경지대) 나투 라(nathu la)와, 10월 1일 초 라(cho la)에서도 인도군과 중국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었다. 여기서는 1962년 중인전쟁과 달리 인도군이 88명 사망 163명 부상으로 340명 사망, 450명이 부상당한 중국군을 크게 이겼으며, 중국은 시킴에 영향을 행사하려는 계획을 접고 물러나야 했다. 2.3. 2017년 충돌[편집]  자세한 내용은 2017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2.4. 2020년 충돌[편집]  자세한 내용은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3. 분쟁 지역[편집] 아크사이친, 아루나찰프라데시/남티베트, 시킴주 북부 산악지역 등이 분쟁 대상이나, 예외로 2017년 국경 분쟁은 부탄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도클람이 분쟁의 시발점이 되었는데, 부탄 혼자서 중국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보니 결국 부탄 측에서 인도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인도가 개입하면서 중국-인도간의 국경분쟁으로 비화되었다.  
3023    [그것이 알고싶다] -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댓글:  조회:3395  추천:0  2020-11-30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최근 수정 시각:  2020-11-12 16:57:53   분류   미국-멕시코 관계 1. 개요2. 예상 모습3. 장점4. 단점5. 문제점 5.1. 외교 문제5.2. 비용 문제5.3. 원주민 보호구역 문제5.4. 다른 방법으로 들어오는 불법체류자는?5.5. 환경 문제 6. 공사 시작7. 기타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The wall just got 10 feet higher."[1] 도널드 트럼프   "We will build a wall and Mexico will pay for it" "우리는 장벽을 짓고 멕시코가 돈을 낼 겁니다." Mexico–United States border barrier / border wall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불법 이민자 밀입국 방지를 내세우며 공약으로 내건 장벽. 이미 존재하는 애리조나-멕시코 국경 장벽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티후아나(멕시코) 국경 장벽. 왼쪽이 미국, 오른쪽이 멕시코. 원래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상당 부분에는 이미 장벽이 존재하지만, 트럼프의 공약은 이 장벽을 훨씬 견고하고 높게 만들어 밀입국자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길이가 약 3000km가 넘기 때문에 장벽의 길이도 그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만리장성의 반이나 되는 길이다. 오천리장성 트럼프의 선거 저서인 에 의하면, 이미 중국인들은 수천년 전에 만리장성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못할게 뭐 있는가, 우리도 만리장성처럼 작은 장벽들을 차례차례 만들어 합칠 것이다, 이미 제대로 기능하는 작은 장벽들이 일부 주에 존재하고 있고, 추가 건설 비용은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멕시코인이나 그들의 미국 내 가족 등에게 물리는 벌금과 멕시코내 가족들이 보내는 송금 압류 혹은 고수수료 부과 및 멕시코에 대한 고율 관세부과 등의 간접적 접근으로 충분히 충당 가능하며 그렇게 멕시코에게 비용을 받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경선 후보일 때만 해도 그 특유의 과대망상적인 규모 덕분에 선거용 구호 정도로 취급되었으나, 그의 당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고[2] 결국 트럼프가 당선되자 진짜로 건설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트럼프가 선거운동 때 한 말과 달리 내각 인사들을 경제적 효율성에 민감한 월 스트리트 출신들로 채워넣자, 한때 진보진영에서는 트럼프가 장벽공약도 폐기할 것이라고 트럼프 지지자들을 약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이후 장벽건설에 대한 행정명령을 발동했으며#, 멕시코에게서 비용을 받아내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멕시코는 장벽 비용을 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이 4월 중순쯤에 입찰을 완료해 장벽건설사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2017년 5월 22일에 멕시코 장벽 건설 예산으로 16억 달러를 요구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에 중미에서 대규모 난민이 멕시코로 몰려와 미국으로 가려하자,[3] 장벽 건설에 대한 반응은 다시 엇갈리고 있다. 평소 허술한 국경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대부분 단기간에 전부 미국에 들어갈 줄 알고 난민에 호의적이던 멕시코는 미국의 강경한 대처에 난민 거주 기간이 무제한급으로 늘어나고 난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에 들어가던 지역 예산이 고갈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승인없이 확보한 예산으로 장벽을 건설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019년 7월 26일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경장벽 건설에 국방부 예산을 전용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계획에 하급심 판단을 뒤집고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민주당측은 반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10월 11일에 엘패소 연방지방법원의 데이비드 브리오네스 판사는 장벽건설에 국방예산을 전용하려는 트럼프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2. 예상 모습[편집] 미국언론에 공개된 건설현장의 모습. 이를 통해 완공시 대략의 형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의 예비입찰 공고에 따른 시공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다.# 높이는 도저히 넘지 못할 정도로, 30피트(약 9m) 이상은 되어야 한다.[4] 사다리를 놓고도 오를 수 없을 정도의 높이가 되어야 하며, 산악용 후크(걸이) 등 전문 등반장비를 동원해서도 쉽게 기어오르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소재는 견고한 콘크리트로 한다.   지하로도 6피트(약 1.8m) 정도 파고 들어가 지반에 단단히 붙어있어야 하며, 대형 해머나 산소용접기 등을 동원해도 최소 30분, 길게는 4시간 이상 견디는 구조로 시공되어야 한다.   장벽의 문은 7.5 m 이상의 너비로, 차량과 보행자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벽의 외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미국 쪽에서 바라봤을 경우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고,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색을 표현해야 한다.[5][6]   CBP 패트롤이 국경 동향을 잘 감시할 수 있도록 반대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see-through constructuring)가 요구된다. 이어, CBP는 캘리포니아 주 남부 샌디에이고에 모델용 국경 장벽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3. 장점[편집] 많은 중남미 출신 불법 이주자들은 멕시코 당국의 방관, 미국의 허술한 국경 감시를 틈타 광활한 육로를 통해 미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때문에 국경 전체를 물리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장벽은 밀입국 방지에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이 정책이 생긴 배경을 단순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멕시코 북부는 현재 마약 운반의 주요 통로로, 마약 최대 수요지인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마약 카르텔끼리 총격전을 벌이는 지경이다. 현재 멕시코의 상황은 내전 상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멕시코 정부가 군대까지 투입해가며 마약 조직들과 싸우고 있는 상태다. 단순히 평범한 국가 옆에 펜스 치고 막자는 소리가 아니다. 멕시코에서는 경찰서가 마약조직에게 테러를 당하는가 하면, 마약과의 전쟁을 주도한 시장이 대낮에 공공연히 총격으로 살해당하고, 시골 곳곳에서 마약농장이 발견되며, 마약 조직을 비판한 언론인과 판검사 및 정치인들이 무참히 마약조직에게 살해당하고, 거리에서 마약 조직의 잔인한 살인 현장이 종종 발견되어, 한 해 총격전으로 인한 사상자가 만명이 넘어갈 정도로, 모든게 엉망이다. 이런 나라 옆에다 장벽 세우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미국이 여러차례 개입했지만, 아직까지도 멕시코에서 마약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국경 근처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허술한 국경 방벽으로 넘어온 마약조직에게 살해당하는 일까지 일어나자, 주민 스스로 총으로 무장한 자경단까지 만든 사례가 있다고 한다. 물론 해상으로도 마약이 유통된다고 하지만, 9.11테러 이후에 미국은 테러 방지대책으로 해상 경비를 강화했고, 그로 인해 해상 경로 대신에 육상 경로로 마약을 운반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밀입국 방지로 미국이 얻는 이득을 정리하자면, 마약, 납치, 갱단 범죄 예방 현재 미국의 마약단속국은 상당한 자원을 멕시코에 쏟아부으면서 정작 미국 내에서 자생적으로 생산, 유통되는 메스암페타민, 엑스터시 등에는 총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면서도 중남미에서 쏟아져들어오는 엄청난 마약을 방어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특히 국경 인접지역의 청소년들이 매우 쉽게 마약에 노출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있는 셈인데, 만약 국경 봉쇄로 중남미산 마약을 차단할 수 있다면 마약단속국으로서는 미국 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플래카'라는 신종 마약이 최근 미국 청소년들에게 급속도로 확산되어 미국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 가격이 5달러 미만으로 매우 저렴할 뿐 아니라 투약하게 되면 마치 좀비처럼 고통을 잊게 되고 사람을 물어뜯고, 심지어 식인까지 하게 된다 해서 일명 '좀비 마약'이라 불리는 매우 위험한 마약이다. 문제는 멕시코 마약문제에 집중하느라 관련 사법당국이 인력을 배분할 수가 없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경제사정이 넉넉치 못한 서민층, 청소년층에 주로 확산된다는 점이 매우 시급하다. 범죄자 퇴로 차단 한국에서는 범죄자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도망간다면 미국은 잡범들까지도 멕시코로 많이들 튄다. 효율적인 이민정책 수립 및 실행 미국은 지금까지 주로 중남미 불법 이주자들 때문에 대사면만 수차례 했을 뿐 제대로 이민정책을 펴지 못했다. 또한 적법한 절차로 이민 수속을 밟아 귀화하는 이민자들과의 형평성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 일자리 창출 불법 이민자들에게 빼앗긴 수많은 저임금 일자리들이 지역사회의 실업자들에게 환원된다. 트럼프가 미국의 산업지역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 지역이 자신의 강력한 지지세력이 된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장벽 건설 자체가 창출할 일자리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4. 단점[편집]   대부분의 사회학자 및 경제학자들은 많은 위의 주장들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마약 문제는 마약과의 전쟁 문서를 봐도 훨씬 복잡한 문제이며, 어차피 자국 내에서의 단속 및 근본적인 마약 대처 방안에 대한 변화가 없는 한 장벽 하나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위에 언급된 중국의 신종마약은 새로 나왔을 때 잠깐 반짝했을 뿐이며, 그 이후 발빠른 대처와 효율적인 정책으로 이미 근절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보다는 저 멀리 중국에서 들어온 신종마약 문제를 바로 옆의 멕시코 탓으로 떠넘긴다는 게 더 웃기다. 정말 효율적인 마약 근절을 원한다면 차라리 멕시코의 마약소탕에 대대적인 금전적, 군사적 지원을 하는게 몇십배는 싸게 먹힐 것이라는 수준의 논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멕시코발 마약을 막을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세계 최대의 마약시장답게 미국으로 수입되는 마약의 대부분은 태평양 연안과 멕시코만에 위치한 미 항구도시들로 잘만 들어온다.   범죄 문제는 흔한 사회적 편견의 문제로, 오히려 불법이민자는 사소한 범죄라도 덜미가 잡히면 모든 걸 잃고 추방되기 때문에 불법이민자의 범죄율은 여러 통계에서 자국민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낮은 편이라고 나온다. 여러 통계에서 중-북미(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멕시코)이민자 출신 갱단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고 갱단끼리의 싸움이 잦은 편이며 이민자라는 이유로 시신의 정확한 국적, 정보를 알아낼 수 없어 통계에 집계될 수 없는 케이스가 너무 많다. 국경에서 조금 떨어진 엘에이만 하더라도 이민자 출신 갱들 때문에 밤거리 외출도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민정책의 문제도 생각보다 복잡한데,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대처와 합법적 이민에 대한 정책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민정책 개혁은 조세개혁만큼이나 쉽게 손대기 어려운 문제로, 불법이민자들을 막는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근 10년간 불법체류자 수는 감소추세에 있으며, 멕시코만을 상대로 계산하면 근 몇년간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숫자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나가는 숫자가 더 많다. 게다가 들어오는 불법이민자만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게, 합법적으로 미국비자를 받아 입국한 후 비자기한을 넘겨 오래도록 머무는 소위 불법체류자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불법이민자들을 쫓아내면 일자리가 환원된다는 생각도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부정한다. 실업률과 저임금은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문제이며, 저임금 노동자들을 내쫓는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남부 주에서는 농장주들이 최저임금을 안 챙겨줘도 된다는 이유로 불법이민자들을 선호하며, 많은 경우 불법이민자들이 저소득층 미국인들조차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싼 임금에 도맡아서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농장과 3D 업계의 공장들의 환경이나 상황에 대입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장벽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설 노동자에 대한 고용창출이야 되겠지만, 그런 점에서 장단점이 불확실한 장벽을 건설할 바에는 차라리 도로나 다리 같은 인프라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게 훨씬 나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이미 막대한 인프라 개발을 공언했지만, 이 역시 재원 마련이 불명확하다.   불법이민자들을 막는 효과도 거의 없을것이다. 현존하는 불법이민자의 90%는 관광이나 취업 비자로 “합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경우로, 이들 같은 케이스는 아무리 빈틈없는 최고의 장벽을 만든다고 해도 막을 수가 없다. 5. 문제점[편집] 이 공약이 경선 때 황당무계한 취급을 받았던 이유는 다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지나치게 낮게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약 그 자체로도 많은 무리수가 있기 때문이다. 5.1. 외교 문제[편집]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중위권에 해당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애향심이 강하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도 일정 수준 이상은 있다. 1980년대나 1990년대에는 멕시코가 국가파탄급 경제위기를 겪어서 미국 밀입국자가 많았으나, 2000년대부터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름에 따라 마약전쟁 중에 살기 위해 도망간 사람들 말고는 미국 밀입국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현재의 밀입국자는 상당수가 멕시코가 아닌 다른 곳(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처럼 치안이 불안한 국가) 출신인데,[7] 애꿎은 멕시코만 공격한다는 시각도 있다. 또한 힘의 우위로 찍어누르는 미국의 방식은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엔 멕시코를 반미 친중 또는 반미 친러 진영에 합류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대멕시코 압박이 시작된 이후 멕시코에서는 친미 계열인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반미 계열 인사의 지지도가 급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멕시코가 자국의 치안과 국경 관리를 허술하게 한 것은 분명하고, 이 때문에 미국에 피해를 입힌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장벽의 효과 유무를 떠나서 멕시코와 미국 사이를 틀어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적잖은 미국인들이 솔깃해하는 데에는 멕시코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멕시코는 자국민이 미국으로 불법입국하다가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불법입국 가이드북(...)을 배포한 적도 있을 정도로 불법입국 문제에 미온적이었다.[8] 무엇보다 미국보다 군사력에서 열세이며 경제 전반과 치안, 문화, 생활권까지 미국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은 멕시코가 완전히 반미로 돌아서는 것은 불가능하다.[9] 설령 지금보다 국경 통제가 훨씬 삼엄해지고 미국이 멕시코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NAFTA 재협상을 밀어붙이더라도, 멕시코와 미국은 계속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위의 모든 문제는 둘째치고 미국과 멕시코가 1970년에 맺은 콜로라도 강과 리오그란데 강 자연국경에 관한 협약에 강의 흐름을 막는 어떤 구조물도 세우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기에, 장벽 자체가 이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출처 물론 트럼프 정부가 멕시코와의 협약을 씹고 일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이러면 미국의 국제 신뢰도는 하락하게 된다. 그럼 강가의 빈 땅에 장벽을 세우면 되지 않겠냐는 말도 있지만, 이건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사유지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 더 골치 아프다. 이것도 무시하고 행정명령으로 장벽을 세울 수 있긴 하지만, 이러면 '미국우선주의를 추구하는 놈이 미국인의 사유지를 지멋대로 한다'는 빼도박도 못할 프레임에 걸려버린다. 강가가 사유지가 아니더라도 장벽으로 강이 막혀 버리면 강가 주변에 사는 미국인들이 강의 물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5.2. 비용 문제[편집] 트럼프의 주장만으로도 약 100억 달러, 비지니스 인사이더에서 추산한 비용으로는 250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 어느 쪽이 맞든 간에 엄청난 비용이라는 건 틀림없다. 후자의 비용 추산에 따르면 이 돈으로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도 10척 넘게 뽑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시민권자 여부를 불문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100달러가 조금 안 되는 돈을 골고루 나눠줄 수 있다. 트럼프는 멕시코 쪽에서 비용을 알아서 낼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애초에 멕시코 입장에서 보자면 이 장벽은 전혀 필요하지 않고 멕시코가 장벽 건설에 찬성한 적도 없으니 자기네 돈 내고 세워줄 이유가 전혀 없다.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 대선 전부터 트럼프 측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 없다"고 일축했으며, 트럼프 당선 후에는 아예 트럼프와의 회동 계획을 취소하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장벽 건설 비용은 120억~380억 달러(약 14조~44조 3000억 원)로 추정되고 있다.# 그냥 철조망 하나 깔아놓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변수에 대응하여 만든 장벽이라 비싸다고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직사 무기는 싹 다 막힌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트럼프가 전혀 언급하지 않은게 있는데, 바로 이 엄청난 장벽 유지비다. 미 정부회계감사원(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에 따르면 장벽 유지비 총합이 건설 비용을 넘는데 걸릴 시간이 7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7년이 지나면 국경 장벽은 총 유지비가 건설 비용을 능가하는, 말 그대로 돈 먹는 하마인 셈이다. 게다가 이 조사결과는 멕시코 쪽에서 훼손될 수 있는 장벽을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따지지도 않은거다. 출처 1월 26일에 트럼프는 멕시코산 수입 물품들에 대한 관세를 20%로 매겨 비용을 충당할 것이라고 했다. # 그런데 이렇게 되면 원래는 저렴했던 멕시코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서, 당연히 미국의 소비자들이 장벽 건설비용을 내는 꼴이 되기 때문에 큰 반발이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 위반이기도 하고. 이 때문에 현 여당이자 다수당인 공화당의 반발도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3월, 트럼프가 내년 첫해분 예산 41억 달러(4조 6천억원)를 의회에 요청했다. #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민주당은 셧다운도 불사하겠다며 반대했고, 공화당 역시 많은 의원들이 장벽 건설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특히 미-멕 국경에 접한 지역의 의원들은 트럼프가 제시한 물리적 장벽이 효용성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결국 법안은 계속 의회에서 계류하며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까지 갔지만, 막판에 트럼프가 해당 예산을 2018년에 요청하기로 하며 포기했다곤 안 했다한 발짝 물러나 셧다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원은 장벽 예산 관련 내용을 빼고, 대신 국방 및 국경 관리 비용을 증가시킨 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4월 30일에 통과시켰다.  그리고 니에토 대통령과 트럼프의 통화 내역이 유출되었는데, 그 내용이란 것이 "국경 장벽 비용 공약이 나에게 정치적 약점이 되고 있다. 제발 비용 부담을 않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달라"라는, 협박과 비굴함을 모두 갖춘 내용임이 드러났다. 다시 말해서 애당초 트럼프가 공약을 지킬 생각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까발려진 것이다. 그런데 2018년 3월에 난데없이 군대로 하여금 장벽 건설 비용을 내게 한다는 트윗을 올렸다(레딧 출처).그 관련 트위터 2018년 12월 22일. 의회에서 국경 장벽 예산 협상에 실패하면서 예산안 처리도 무산되어 결국 정부 셧다운이 일어났다.# 이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Gofundme를 통해 장벽 건설 비용을 모으고 있다. 이 장벽 비용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사람은 음모론적인 포스팅 때문에 페이스북에서 차단당한 전적이 있다고 한다. 트럼프 비판자들은 이를 보고 멕시코더러 비용을 부담하게 하겠다더니 결국엔 자기들이 돈을 내는 거냐며 비아냥거리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저 돈은 장벽 만드는 데 쓰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 기부하는 돈은 특정 목표를 위해 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분야에 쓰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2019년 5월 시점에선 기부했던 사람들이 왜 공사 현황에 대한 업데이트가 없는 것이냐, 이거 혹시 사기 아니냐고 의심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공사 시작을 4월에 한다고 했는데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기 때문.  한편 2019년 1월 10일, 트럼프는 자신은 멕시코가 장벽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는 말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에서 볼 수 있듯이 트럼프는 멕시코가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얘기했고, 이는 그가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말이다. 5.3. 원주민 보호구역 문제[편집] [10] 트럼프 측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은 문제지만 사실은 꽤 심각한 문제로, 애리조나 쪽 국경에서 약 75마일(약 120km) 정도 길이의 아메리카 원주민인 토호노 오오담 부족의 자치구역이 있다. 그런데 이 원주민 보호구역은 미국-멕시코 양 측에 걸쳐 있으며, 원주민들이 멕시코 불법 밀입국자들을 보호해 주는 등 원주민들은 미국 정부보다 멕시코인에게 더 호의적이다. 게다가 국경선을 따라 지으면 자치구역을 남북으로 분단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자치구역 측에서 이를 반대하면 미 연방정부에서도 지을 방도가 없다.[11] 그렇다고 여기만 쏙 빼놓고 장벽을 건설했다간 엄청나게 큰 개구멍이 뚫린 결함투성이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선거 과정에서 원주민의 권익 따윈 안중에도 없던 트럼프 행정부에게, 안 그래도 원래 공화당에 호의적이지 않은 원주민들이 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필요하다면 강경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트럼프 정부이기에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원주민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지을 수는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토호노 오오담 부족과 비슷하게 자연 환경 문제로 파이프라인 건설을 반대하던 부족의 반대를 무시하고 건설을 촉구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문제는 공화당 내에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장벽 건설에 대해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쓰면서까지 원주민들의 입을 막을 경우 오히려 민주당의 역공에 휘말리고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 현재는 아예 장벽 건설을 위해서 근처의 원주민 유적지들을 폭파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원주민들은 분노하는 상황. 5.4. 다른 방법으로 들어오는 불법체류자는?[편집] 장벽은 멕시코에서 육로를 통해 밀입국하는 밀입국자에게만 효과적이다. 멕시코에서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아서 미국에 입국한 사람이 비자기간이 만료되었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나, 해상 경로를 타고 오는 밀입국의 경우는, 이런 걸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만일 육로 차단에 대한 반대 급부로 선박, 비행기 등의 우회로를 선택하여 밀입국을 시도하는 이주자가 대폭 증가하게 된다면 결국 장벽은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한마디로 풍선 효과가 일어나 장벽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효과는 별로 없고 그저 이주자들의 밀입국 루트만 바뀌는 결과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지금도 인력은 부족하고 세관 절차는 까다로워 사실상 한계 상황에 다다른 미국 공항/항구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워 줄 수도 있는 문제다. 이에 반박하려면, 선박 및 항공기로 들어오는 밀입국자가 육로로 침입하는 밀입국자보다 적발하기 용이하고, 선박 및 항공기의 밀입국 적발 비용/인력을 크게 증강할 필요가 없으며, 육로 차단이 불법 이주자들의 수를 '많이'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을 모두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육로 쪽 이주자들만 막는 용도로 세우는 장벽이니 그 외의 방법을 통해 들어오는 이주자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불법 이주자들의 절대 다수가 육로로만 진입할 줄 안다고 가정할 때에나 타당한 것이다. 5.5. 환경 문제[편집] 거기에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는 트럼프가 장벽을 세우며, 재규어 보호조치를 풀고 재규어의 이동통로를 막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6. 공사 시작[편집] 위의 문제점들 때문에 흐지부지되나 싶었는데, 2017년 9월 25일에 기공식을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기사 10월에는 국경장벽 시제품 모형이 먼저 드러났다. 기사 그러나 시제품들은 2019년 2월에 철거된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2019년 5월 12일에 국경장벽 건설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사업 예산을 전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9월 3일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다른 프로젝트에 배정된 예산 39억 달러를 장벽건설을 위한 방안으로 승인했다.# 2020년 7월 2일에 미 세관국경보호국은 민간 방산업체 앤듀릴과 AI 감시탑설립을 추진하는 5년짜리 계약을 체결했다고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2020년 8월 3일에 미국의 한 건설회사 대표가 3억 달러 (3578억 원)에 달하는 남부 텍사스주의 새 장벽 건설 공사를 계약했다.# 7. 기타[편집]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한국 등 동맹국들에게 미군 주둔에 따르는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는 동기가 멕시코 장벽을 세우는 데 필요한 돈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공약 중 가장 임팩트가 큰 공약이라서 그런지 인터넷에서 트럼프의 상징으로 자주 회화된다.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을 활용한 인간 관악기물인 Do You Wanna Build A Wall?이라는 유명한 트럼프 자작곡 노래가 있다. # 최근에는 이 노래#가 유명한데, 다름 아닌 Geometry Dash 게임 스테이지의 배경 음악으로 나왔기 때문#. 진격의 거인의 방벽이나 왕좌의 게임의 장벽같은 드립도 쏟아져나온다. 트럼프가 2004년에 만약 벽이 있다면 넘어가거나 돌아가거나 땅을 파고 들어가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트럼프 반대자들은 그랬던 트럼프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멕시코인들이 이 영상을 보면 벽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고 비아냥거리는 식. 그런데다가 2019년 11월 2일에는 밀수업자들이 공구로 벽에 구멍을 내서 지나다니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시장이 교통난 해소를 위해 주변 도시로부터 돈을 받아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을 빗대어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농담을 했다가 뭇매맞은 해프닝이 있었다. # 영화 블랙 팬서의 주인공인 트찰라는 "현명한 자는 길을 내지만, 어리석은 자는 벽을 세웁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는데, 하필 이 영화가 장벽 건설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던 시점에 개봉해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뿜었다(...). 데스 스트랜딩에서도 쉘터에서 살아가면서 새 미국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한 프레퍼 노인이 자기가 봤던 마지막 미국 대통령은 모든 국경을 장벽으로 틀어막겠다던 사람인데 그런 나라가 어떻게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냐고 비난하는 모습이 나온다. 정작 이 노인도 외부 사회와 담을 쌓고 살고 있다는게 함정이긴 하지만. 실제로 코지마 히데오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국경 장벽이 데스 스트랜딩의 주제의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2020년 3월 현재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하자 질병통제를 위해 되려 멕시코 쪽에서 막는 
302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장벽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798  추천:0  2020-11-30
허물기도 힘든데… 막판까지 멕시코장벽...  2020.12.01.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바이든은 건설 중단 방침이지만 민간업자에 위약금 물어야 멕시코 장벽 건설 현장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불법 이민 근절을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막판까지 장벽 건설에 집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장벽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천145㎞에 달하는 멕시코와의 국경 중에서 임기 내 724㎞ 길이의 장벽을 건설하겠다면서 각종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 13일 현재 이 중 647㎞의 장벽이 건설됐다.  40㎞가량은 아무런 장벽도 없던 곳이고, 나머지는 불법 이민자가 국경을 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던 낡은 철책 등이 교체됐다. 장벽 건설에 비협조적인 토지 소유주에 대한 미국 정부의 소송도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토지 소유주에 대한 소송이 27건이었지만, 올해는 117건으로 4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와 관련, 마크 모건 CBP 국장 대행은 장벽 건설이 불법 이민 방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모건 대행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장벽 건설 중단 방침에 대해선 "미국인을 보호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NYT는 바이든 행정부가 장벽 건설을 중단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민간업자와 장벽 건설 계약을 맺었다면 계약을 취소하는 데에도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 정부가 지난해 애리조나주(州)에서 맺은 53㎞ 길이의 장벽 설치 계약은 총액이 4억2천만 달러(한화 약 4천650억 원)에 달한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이 계약을 취소하려면 1천500만 달러(약 166억 원)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벽건설에 반대하는 시위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부 바이든 지지층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기존에 건설한 장벽을 철거하는 것은 더 큰 과제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든 인수팀 관계자는 기존에 건설된 장벽을 철거하는 계획 자체에 거부감을 보였다. 자칫 새 행정부 출범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3021    [세상만사] - 그들도 "사람"이니깐... 댓글:  조회:2786  추천:0  2020-11-30
취중연설부터 주먹다짐까지... 역대 美 대통령 취임식 일화  2017.01.21.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역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예기치 못한, 때로는 웃지 못할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취중 연설부터 군중 주먹다짐까지, 취임식들이 남긴 일화를 이준영 기자가 모았습니다.  [기자]  전임자와 후임자가 함께 자리하는 게 관례인 미국 대통령 취임식.  그러나 지금껏 '고의 불참' 사례는 모두 세 번 있었습니다.  존 애덤스 2대 대통령과 그의 아들인 존 퀸시 애덤스 6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 18대 대통령은 각각 후임자와의 불화를 이유로 취임식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의 취임 행사 당시에는 2만 명이 넘는 축하 인파가 백악관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참석자들 간의 사소한 말다툼이 주먹다짐으로 번지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잭슨 대통령은 백악관 주인에 되자마자 급히 뒷문으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37대 리처드 닉슨과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 때는 워싱턴DC 일대에서 벌어진 반대 시위가 잔치 분위기를 망쳤습니다.  '취중 연설'도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16대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 당시 부통령이던 앤드루 존슨이 그 주인공입니다.  장티푸스 통증을 잊으려고 행사 중 과음했다가 연단에서 횡설수설하고 말았습니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 9대 대통령은 장대비 속에서도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1시간 40분 동안이나 연설을 했는데, 이후 급성 폐렴에 걸려 취임 한 달 만에 사망했습니다.  '최장 취임식 연설'이자 '최단 임기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YTN 이준영입니다. =================================/// 국제 오른발에 깁스한 78세 바이든 “난 괜찮아” 엄지 척 김수경 기자  2020.12.02      오른쪽 발에 깁스를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일(현지 시각) 델라웨어 윌밍턴에 있는 인수위 사무실을 나서며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일(현지 시각) 오른쪽 발에 깁스를 한 채 나타났다. 워싱턴 이그재미너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인수위 사무실이 꾸려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극장으로 향하는 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파란색 양복을 입은 바이든 당선인의 오른쪽 발목과 발 전체에는 구두를 신은 대신 깁스를 착용한 상태다. 바이든 당선인은 자동차에서 내린 뒤 “괜찮다(It’s good)”이라고 말하며 오른쪽 엄지를 들어보였다.     "나 깁스했어요." 오른쪽 발에 깁스를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일(현지 시각) 델라웨어 윌밍턴에 있는 인수위 사무실에 도착해 깁스한 오른쪽 발을 보이며 사무실로 향했다/트위터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바이든 당선인은 델라웨어 별장에서 애완견 메이저와 시간을 보내다가 오른쪽 발을 삐어 정형외과 치료를 받았다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밝혔다. AP통신은 엑스레이 촬영을 하러 가는 바이든 당선인은 눈에 띄게 절뚝거리며 걸었다고 보도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한 결과 발목이 삐었을 뿐이고 골절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정밀 검사를 위해 추가로 촬영한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는 오른발 설상골(쐐기뼈) 측면에 실금이 발견됐다고 CNN은 보도했다. 주치의 케빈 오코너 박사는 “발목의 측면에서 중간까지 미세한 골절이 발견됐고 다리 깁스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내년에 79세가 되는 만큼 미국 내외에서 그의 건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내년에 취임한다면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 국제 78세 바이든 “악! 내 발목”… 개와 놀다 골절로 병원행 김수경 기자  2020.11.3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반려견 메이저/트위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반려견과 놀다 발목에 금이 갔다. 29일(현지 시각) 바이든 당선인 측은 그가 전날 반려견 중 하나인 메이저와 시간을 보내다 미끄러지면서 발목을 다쳐 병원에 방문한다고 밝혔다. 현재 머물고 있는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29일 (현지시간) 반려견과 놀다 발목을 다쳐 현재 머룰고 있는 델라웨이주 뉴어크에 있는 한 정형외과를 나와 CT를 찍기위해 이동하고있다./Disclose.tv   29일 발목에 금이 간 것으로 알려진 미국 바이든 당선인이 탄 경호차량이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정형외과에 도착하고있다. /AFP 연합뉴스 AP통신은 엑스레이 촬영을 하러 가는 바이든 당선인은 눈에 띄게 절뚝거리며 걸었다고 보도했다. 맨 처음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한 결과 골절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정밀 검사를 위해 추가로 촬영한 CT에서 실금이 발견됐다고 CNN은 보도했다. 주치의 케빈 오코너 박사는 “발목의 측면에서 중간까지 미세한 골절이 발견됐고 다리 깁스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내년에 79세가 되는 만큼 그의 건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내년에 취임한다면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29일(현지 시각) 바이든 당선인이 전날 반려견 중 하나인 메이저와 시간을 보내다 미끄러지면서 발목을 다쳐 치료차 방문한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정형외과./AFP 연합뉴스 바이든 당선인은 오는 1월 백악관에 입주할 때 자신의 반려견 ‘메이저’(Major)와 ‘챔프’(Champ)를 함께 데리고 갈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 함께 놀아주다 그가 부상을 당한 메이저는 2년 전 구조된 유기견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딸 애슐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독소 노출로 살 곳을 잃은 어린 셰퍼트 형제들 사연을 올린 것이 인연이 돼 입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질 바이든과 반려견 메이저(왼쪽), 챔프/인스타그램 바이든 당선인은 메이저를 데리고 온 뒤 8개월 뒤에 두 사람이 델라웨어 윌밍턴의 한 유기동물 보호단체로부터 유기견을 입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메이저는 백악관 역사상 최초로 유기견 출신 퍼스트 펫이 된다. 바이든 당선인은 개 두마리 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데려갈 예정이다. 지난 27일 CBS 선데이모닝 진행자 제인 폴리는 트위터에 방송 예고편을 올리며 “바이든 부부가 백악관에 반려견 두 마리만 데려오지 않는다”며 “고양이 한 마리도 데려올 것이라고 그들이 말해줬다”고 전했다. 가장 최근에 고양이를 키웠던 조지 W부시 대통령 이후 10년이 넘는 공백 끝에 고양이가 ‘퍼스트펫 (FPOTUS·First Pets of the United States)’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결벽증을 이유로 지난 4년간 동물을 백악관에서 키우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개나 고양이 등 퍼스트 펫을 두는 전통을 지켜왔는데, 반려동물을 두지 않은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이었다.  
3020    [그것이 알고싶다] - 세계 축구계 제일 선호 운동복 번호? 댓글:  조회:2947  추천:0  2020-11-29
世界足坛球衣号码中10 
3019    [그것이 알고싶다] - "마라도나축구장" 댓글:  조회:2660  추천:0  2020-11-29
  那不勒斯主场更名“马拉多纳球场” 有多大成就才能获此荣耀 来源:齐鲁壹点  体育
3018    [그것이 알고싶다] - 력대 축구사상 10명 거성 축구운동원 댓글:  조회:2766  추천:0  2020-11-28
  到目前为止,足球史上最难超越的十大巨星球员都有谁? 来源:SPORTSGOAL  体育 伟大的球王马拉多纳永远离开了我们,值此缅怀之际,我来排一下我认为足球史上最难超越的十大巨星,主要有以下10人:马拉多纳、贝利、贝肯鲍尔、克鲁伊夫、盖德穆勒、罗纳尔多、齐达内、梅西、C罗、李慧堂。 这是这个世界上公认的两大球王,关于谁是第一,谁是第二的讨论我认为并没有多大意义。马拉多纳和贝利其实并不是一个时代的球员,也从来没有一起踢过球,这或许是足坛最大的遗憾吧。 但是两人一直被球迷们一起拿来比较,一起讨论,因为他们创造的成就太过耀眼,也太过接近,让人们无法不一起比较。巴西名宿济科有一句话这样评价两人:“马拉多纳世界足坛从未见过,贝利是足坛不可能出现的奇迹。” 贝利生涯被记录的总进球数是1283个,而这些进球是在1366场比赛中完成的,整个职业生涯场均0.94个进球的数据实在太过逆天,相信很难有球员可以打破这个纪录。 也因为进球数据的壮举,贝利被载入吉尼斯世界纪录,此外,贝利生涯一共3夺世界杯冠军,这样的成就太伟大,能被全世界称为球王绝对实至名归。 贝肯鲍尔、克鲁伊夫和盖德穆勒 这三人基本是同一时代的球员,三人各有特点,也同样经常被人拿来比较。虽然这三人彼此的关系并不是十分要好,但是他们对于足球的贡献都是非常大的,因为有他们,足球开始有了变化,战术发展也层出不穷,足坛的现代化发展正是从这个时代开始飞速前进的。 贝肯鲍尔被称为“足球皇帝”,他是足球自由人战术的开创者,攻防俱佳是他最大的特点。贝肯鲍尔职业生涯一共18年,一共获得过五次德甲冠军和三次美国职业大联盟冠军,而最让他名声大振的是,帮助拜仁完成了欧冠三连冠的伟业。除此之外在国家队,贝肯鲍尔是德国队在1974年夺得世界杯冠军的最大功臣。另外,两次金球奖已经是莫大的荣誉。 克鲁伊夫把边锋演绎到了极致,虽然没有贝肯鲍尔那么全面,但是特点鲜明,身材不是十分强壮,却总能抓住对手的弱点,给出致命一击。他的足球理念非常先进,球员时期,是他将4-3-3阵型完美展现,而作为主教练,全攻全守的战术震惊世界,也让现代足球更加好看,更加具有观赏性。 盖德穆勒的世界杯进球数是13场14球,代表德国队一共出场62次,打进66球,场均超过1球;欧洲冠军杯,35场35个进球,场均1球;德甲联赛,427场比赛,打进365个进球,这项联赛进球纪录甚至被称为足坛“永恒的记录”。 他们是并肩作战的队友,他们巅峰时期几乎相同,他们同属于足坛那个百家争鸣,百花齐放的时代,他们是当时足坛的"绝代双骄"。 罗纳尔多和齐达内,一个是有如外星人的天才射手,一个是极具艺术细胞的中场指挥官,他们是对手,也是队友,他们在场上针锋相对,也曾一起并肩作战;他们都创造了足坛史上难以超越的纪录。 两人最经典的对决莫过于1998年世界杯决赛,罗纳尔多率领的巴西与齐达内领衔的法国队相遇,这场比赛是在太过经典,有太多的故事,也有太多的解读。最终的结果是罗纳尔多莫名的低迷,齐达内成为英雄,但是两人的历史地位并不能通过这一场比赛来定夺。 齐达内最被称道的地方就是,越是关键的比赛,他越能成为领袖,世界杯决赛如此,欧洲杯决赛也如此,总之,他是天生的英雄,也是天生的领袖。齐达内的足球堪称艺术,他的马赛回旋直到今天依然被模仿,从未被超越。 他们是天生的对手,却不是敌人。虽然巴萨和皇马是死敌,但梅西和C罗却将竞争演绎成彼此进步的动力,双方你来我往,你进一球,我也要进一球;你赢得了欧冠冠军,我也要赢得欧冠冠军;你有金球奖,我也要有金球奖。可以这样说,如果梅西和C罗不是生在同时代,两人的成就可能都没有现在这么高。 C罗是现役足坛最自律的球员,他的天赋可能并没有梅西那么出色,但是他的成就一点不比梅西差。正是超强的自律性,让C罗整个职业生涯都在进步。 李惠堂 最后,我承认我是有私心的。选择李惠堂虽然有一定的争议,但是也是有依据的,因为在当时,李惠堂凭借表现也一度被世界认可,并获封球王称号。 据文献记载,李惠堂整个职业生涯一共打进将近2000个球,当然,绝大部分并未被国际足联认可,但是这样的纪录已经体现出他强大的实力。而且在1976年的联邦德国足球杂志评选中,李惠堂确实被评为世界五大球王之一。作为中国人,李惠堂在足坛的成就绝对排名第一。 李惠堂最让人觉得难以超越的,不仅仅是“球王”的称号,因为在他退役后,他还投身于足球裁判职业,成为了新中国第一个国际级裁判员,在裁判事业上也是中国足球第一人! 不仅如此,李惠堂还曾经当选为国际足联副主席,他在世界足坛也享有很高的威望,直到现在,他依然是在国际足联获得最高职务的中国人。   总结 以上就是我认为,到现在为止,足球史上最难超越的十大巨星,让我们永远记住他们的名字:马拉多纳、贝利、贝肯鲍尔、克鲁伊夫、盖德穆勒、罗纳尔多、齐达内、梅西、C罗、李慧堂。 他们为我们创造了太多美好的记忆,当然,难以超越不代表不能超越,历史是向前走了,也期待足坛能够涌现更多新星,来打破这些“球王”们创造的纪录!
3017    [세상만사] - "..." 댓글:  조회:5675  추천:0  2020-11-28
  马拉多纳葬礼现场:40人见球王最后一面,足坛仅1人受邀到场 来源:超燃足球  体育 北京时间11月27日,球王马拉多纳的葬礼在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郊外的贝拉维斯塔公墓举行。据阿根廷《奥莱报》独家披露,葬礼的所有策划组织都由马拉多纳前妻克劳迪娅全权负责,包括邀请哪些人来参加葬礼也是由她一人决定,足见克劳迪娅在家族中的地位。 #马拉多纳下葬#另外,到场的还有少数媒体人士,包括作家马拉蒂尼,他曾为马拉多纳写过一本传记,以及与马拉多纳关系最亲密的记者——《奥莱报》的阿雷瓦洛。 马拉多纳是一个桀骜不驯的球员,也是一个不自律的球员,从登陆欧洲开始,他的生活就和酒精、美色分不开关系,身体也受到了严重的摧残。马拉多纳职业生涯最辉煌的时候,还是在那不勒斯效力期间,但也正是在夜生活丰富的亚平宁半岛,马拉多纳逐渐走向堕落。早在上世纪90年代,马拉多纳就因为吸食违禁物品遭到禁赛,退役后的几年时间里,他的身体严重发福,心脏功能受到了严重破坏,一只脚几乎已经踏进了鬼门关。后来,马拉多纳得到了身边人的帮助,进行了长时间的治疗,最终摆脱了对违禁物品的依赖,身体也得以恢复。 目前,马拉多纳的财产总额是多少,暂时没有定论。不过,老马踢球的时候,球员们的工资并不是特别高。而且,老马并不是一个会攒钱的人,他的生活比较铺张,长时间下来,手里的现金应该没有多少。有媒体认为,马拉多纳的账户里只剩下10万美元,他更多的财产都是不动产和一些奢侈品。根据不完全统计,马拉多纳名下有4套豪宅和7辆豪车,如果全部换算成人民币,大约价值5亿元。马拉多纳去世后,他的子女们肯定会为了财产展开争夺。 这位墨西哥女演员近日透露,她在1986年世界杯期间与足球传奇人物马拉多纳有过一段难忘的夏日恋情,并将他称作是“我有过的最好的情人”。 梅尔勒乌里韦出生于1956年,现年64岁。1986年墨西哥世界杯结识马拉多纳时,梅尔勒正值女人最成熟妩媚的30岁年龄,而年轻有为的马拉多纳仅有26岁。 她说他是一个好人、是一个不可思议的男人,并补充说她和他在短暂的恋情中有着非常美好的回忆,但她也知道“这段恋情很快就会结束”。 梅尔勒说:“当我们看到对方时,我们就充分利用了这个时刻。” “他是我有过的最好的情人。” 这位女演员补充道:“马拉多纳非常性感,知道你想要什么。他干得不错!” 然而,在阿根廷赢得世界杯冠军,举行了一场盛大的派对后,马拉多纳在第二天就离开了。 梅尔勒回忆道:“我知道这笔交易是什么。我知道它就是夏日的爱情,一段转瞬即逝的浪漫。” 当被问及是否觉得自己被利用时,她说:“哦,不不,也许是我在利用他。” 但对于当时不可一世的马拉多纳来说,梅尔勒的身份的确有点太卑微了,她不过是老马一生中无数“一夜情”的女郎之一而已。 =========================================///   遗产争夺战爆发!马拉多纳11个孩子6个是私生子,5个“官方认证” 来源:和讯网  体育 马拉多纳去世背后:曾被指欠3亿税款,还怒骂华侨企业家“骗子” “上帝跟科比单挑输了,于是收走了上帝之手”。 阿根廷《国民报》11月25日报道,阿根廷传奇球星,“球王”迭戈马拉多纳因心脏骤停,送往医院治疗后,最终抢救无效去世,享年60岁。阿根廷总统府宣布,全国进入为期三天的哀悼期。 随后,“球王”贝利在社交平台发声称,“让人心碎的消息。我失去了一位可爱的朋友,这个世界失去一位传奇。要说的太多,但此时此刻,只愿上帝给予他家庭力量。希望有天,我们能在天空那端一起踢球。” 消息传回国内,不少网友同样为之感慨,“在同一年里,带走两位传奇,唉”、“可能是60后和70后心中永远的球王,没有之一”、“别了,上帝之手”、“一代人的青春记忆,他带走了我早已离开的青春,再见”。 来源:市界 5个“官方认证”的孩子与6个私生子……马拉多纳去世或引发家庭财产大战 据每日邮报26日报道,马拉多纳去世后,其家庭财产分配备受关注。到目前为止,他有五个“官方认证”的小孩及六个与他“可能”有联系的私生子。球王马拉多纳的去世或引发家庭财产大战。 马拉多纳和妻子克劳迪亚及两个女儿 除了两个婚内生下的女儿之外,马拉多纳承认的非婚生下的儿女还有三个。 1985年马拉多纳效力那不勒斯时,和克里斯蒂尼娜西纳格拉有过短暂感情,并生下了儿子小迭戈。老马一度拒绝接受DNA检测,但一家意大利法院判定他就是小迭戈的生父。 马加利吉尔 而一个月前,一位名叫圣地亚哥拉拉的男孩再一次在电视节目上呼吁球王承认自己是他的孩子这一事实。 圣地亚哥拉拉,长得还挺帅,有没有球王的影子? 此外,马拉多纳的律师马蒂亚斯莫尔拉在马拉多那去世前几个月表示,如果血缘得到证实,马拉多纳将承担起作为一个父亲应尽的责任。他还表示,马拉多纳可能还有4个私生子,其中三个的名字已经公之于众,分别是Joana, Lu和Javielito,他们是2000年2月马拉多纳移居加勒比海岛屿后生下的。 马拉多纳作为一代球王,在全世界拥有极高的名誉,虽然他已经远离足球场很多年了,但“马拉多纳”这个名字的价值,不可估量,而马拉多纳所拥有的财富,也是未知数。目前还没有阿根廷权威媒体机构对于马拉多纳的遗产进行评估,但可以想象,这个数字绝对不小。 2019年11月一份流传的录像带显示,马拉多纳曾表示:“我想告诉你,我一点也不怕死,我睡得很香,因为我在工作。我告诉大家,我不会留下任何东西,我会捐出它。” 到目前为止,尚不清楚这位足坛巨星的遗嘱如何分配,但如果他在心脏病发去世前未能留下有效的遗嘱,一场家庭财产大战将不可避免。 来源:综合于上游新闻、市界 =========================================///   惊人相似!马拉多纳和红魔传奇同天去世,私生活不节制致疾病缠身 来源:懂英超  体育 当地时间11月25日,阿根廷球王迭戈-马拉多纳突发心梗去世,震惊了整个足坛,乃至整个世界。 得知马拉多纳离世的消息,曼联足球俱乐部也第一时间表达哀悼。曼联官方在社交媒体写道:足球世界失去了最伟大的象征之一。安息吧,迭戈-马拉多纳。 上图是2008年11月7日,马拉多纳在弗爵的陪同下参观卡林顿训练基地。 老马和吉格斯合影 与身高将近2米的老范合影 两人在很多方面高度相似,都有变幻莫测的足球技术,经常一个人突破整条防线,将对方防守球员玩弄于鼓掌。 还不得不提到一个经典段子,英国球迷曾打出过标语:“Maradona Good,Pele Better, George Best。”     ========================================///   一名少年自称是马拉多纳儿子,并让他的律师申请掘墓和验尸 来源:世情百谈  体育 让人感到震惊的是,这项申请还要求把马拉多纳的遗体挖出来,然后转移到法庭停尸房,以便确认少年与马拉多纳的血缘关系。 这一令人瞠目结舌的事态发展是源于何塞先生在阿根廷电视上发布了这一令人咋舌的要求,一夜之间“少年要求挖掘马拉多纳遗体”这件事传得沸沸扬扬。 2014年,当13岁的圣地亚哥看到一本杂志封面上有马拉多纳的脸时,他觉得自己终于找到了亲爹。而后,他为找到这个“亲爹”进行了漫长而令人沮丧的斗争。 在何塞先生证实了这一耸人听闻的掘尸要求后的一夜之间,圣地亚哥告诉《德莱门多》节目的苏塔拉索帕:“不幸的是,我妈妈在我只有三岁时就过世了,但在她临死之前,那时候她不得不摘除呼吸机才能说话,她对一群律师说我是马拉多纳的儿子。” “我只是想知道我是谁,金融(财产)方面的事情对我来说并不重要。虽然我知道这个要求会在阿根廷引起很大的混乱,但如果我不这么做,谁会给我(马拉多纳的)DNA呢?” 他的律师在阿根廷电视节目的另一次采访中补充道:“我们谈论的是一个不知道自己到底是谁的年轻人。圣地亚哥今天没有来这里,因为他情绪上很痛苦。他不仅不知道自己是谁,而且还不能和父亲说再见。” 本周四,达尔玛和贾娜娜在布宜诺斯艾利斯西北郊区的贝拉维斯塔私人公墓为马拉多纳举行了葬礼。而住在意大利的马拉多纳的儿子因感染冠状病毒入院治疗,没有参加葬礼。 我是每天与你分享国际资讯和世间冷暖的小世。点击关注,可以查看更多新鲜资讯,随时随地了解世界变化。 ================================///   曝马拉多纳遗产清算程序已启动:总额9千万欧!或有11个孩子争夺 来源:我爱英超  体育 在足坛一代传奇巨星马拉多纳去世之后,他的遗产分配问题也成为了焦点话题。北京时间11月28日,来自西班牙知名媒体《马卡报》的消息,马拉多纳的律师已经启动了他的遗产清算程序。但这一清算程序,注定要成为一场闹剧。 马拉多纳在生前与包括彪马、EA、Konami等公司签署的肖像权合同将会继续生效,因此我们未来仍然能够在游戏中看见老马的身影。这些也都是老马给儿女们,未来留下的无形资产。 此外,目前还有6人自称是马拉多纳的私生子女,在老马离世后他们也试图希望能在其遗产中分一杯羹。在这6人当中,年龄最大的24岁,其他5人均为19-21岁。由于马拉多纳曾长期在古巴接受戒毒治疗,6人中有4人是古巴人。因此这6人要想分遗产,就要拿出有说服力的证据,证明自己是球王的孩子。可以预见的是,老马的遗产争夺战注定要充满争议和话题性。 =================================///   自称“交往过600个女友”的马拉多纳,却曾把最纯的心交给这三个特别的女人 来源:今日女报  体育 11月26日凌晨,阿根廷足球巨星马拉多纳因心脏骤停离世,享年60岁。 迭戈阿曼多马拉多纳,1960年10月30日生于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2000年,马拉多纳与贝利共同获得国际足联评选的“世纪球王”称号。 作为足球运动员,马拉多纳的成就不容置疑。通过足球,他几乎从中得到了一切他想要的东西:冠军、金钱、美女……而在球场之外,他的私生活也同样让人侧目。 今天,我们就来谈谈马拉多纳一生中最重要的三个女人——母亲,妻子,女儿。 想陪母亲再喝一次茶 1960年10月30日,迭戈阿曼多马拉多纳出生在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拉努斯当地最危险的一个贫民窟里,窝棚里没有自来水也没有电,他是这个贫穷家庭里四个女儿之后的第一个儿子,在家中八个孩子中他排行第五。 在马拉多纳的足球生涯中,母亲对他的鼓励和支持至关重要。当有记者问到他和贝利谁是足球这个项目有史以来最伟大的球员时,马拉多纳说:“谁是最好的?我妈说是我,你应该相信一个母亲的话。” 2011年11月21日,专程从阿联酋赶回阿根廷的马拉多纳在葬礼上为母亲的灵柩扶棺。 离婚后,前妻成了他的商务代表 纵然绯闻不断,身边过客匆匆,但马拉多纳只有过一位妻子——克劳迪娅维拉法恩(Claudia Villafane),两人1989年结婚,2003年分道扬镳。尽管已经离婚,但离婚后他们的关系仍旧十分特别。 马拉多纳平时很疼爱吉安娜。平时有空的时候就陪着女儿一起玩耍,在家里里动手做手工,带着女儿看比赛,还会带着女儿外出度假。 他教还不会说话的女儿说:尤文是坨屎、米兰是坨屎,只有那不勒斯才是冠军,然后看着牙牙学语的女儿露出笑容。 深陷毒品泥潭时也只有女儿才能唤醒他仅存的罪恶感:“每天我吸完毒回到家里,看到我的女儿我都很害怕,我只能把自己锁进浴室。” 据说,不管在哪里,即使是离婚后,他也每天都会和两个宝贝女儿通电话。 如今,一代传奇已然落幕,他的一生,既有天才的能力,又有数不尽的争议。但毋庸置疑的是,他人生中最重要的几个女人,给予了他关怀、鼓励,亲情和爱情让他拥有了软肋,也有了铠甲,更让他有了一往无前的勇气。 编辑:小白 ======================================///   球天下-马拉多纳遗产分配难 5正牌子女+6私生子女争夺 来源:球天下体育  体育 马拉多纳去世的消息震惊了全世界,据悉他将被安葬在阿根廷首都布宜诺斯艾利斯郊外的贝拉维斯塔公墓中,和他的父母永远葬在一起,不过马拉多纳的故事还未结束,关于马拉多纳高额的遗产分配问题,引发了媒体的关注。 马拉多纳遗产分配困难重重 按照阿根廷的法律规定,马拉多纳的子女将可以继承三分之二的遗产,但是问题在于,马拉多纳生前太爱挥霍,他的现金并不多,况且,马拉多纳的遗产大概只有3成在阿根廷国内,7成在海外,而且马拉多纳和不少知名品牌例如彪马等合作,还担任了白俄罗斯迪纳摩的名誉主席,这些马拉多纳的“捞金合约,以及在世界其他地方的一些合同,如开设的足球学校等,在他死亡之后也依然有效。这些都让马拉多纳的遗产合理分配尤为困难。 马拉多纳有6名私生子女? 马拉多纳没有立下遗嘱让遗产的分配问题尤为困难,理论上来讲,子女应当平均分配,但是马拉多纳和不少子女的关系并不融洽,他在生前就曾和大女儿吉安妮娜多次争吵,威胁要把全部遗产,包括房产、豪车、赞助合同等全部捐给慈善机构。在马拉多纳的葬礼上,大女儿吉安妮娜和母亲一直在全权安排整个葬礼,但是马拉多纳还和前妻有着很多法律纠纷,包括其职业生涯中获得的数百件奖项的所有权。 马拉多纳风流一生向来是新闻媒体喜欢的焦点人物,而他的遗产问题,终将成为一部肥皂剧,成为接下来媒体热炒的焦点。 =======================================/// 马拉多纳的突然离世,让全世界的球迷都陷入无限的悲痛中,而马拉多纳去世后,他的遗产也成为焦点,据悉马拉多纳生前曾四处留情,导致在世界各地的孩子将前来争产。 但也有阿根廷媒体表示马拉多纳去世前已经很穷,钱都分给别人了,自己仅靠教练工资生活。 去年11月,马拉多纳的女儿吉亚宁娜宣称父亲身体不好,还散布谣言称父亲被谋杀了,马拉多纳出面否认了女儿的说法,并表示自己很健康,决定死后遗产捐出去造福别人,不会把遗产给前妻的两个女儿。 马拉多纳公开承认的有八个孩子,来自六个不同的母亲,分别出生在阿根廷,古巴和意大利。但是其中只有两个是合法的孩子:33岁的达尔玛(Dalma)和31岁的贾安妮娜(Giannina),她们是马拉多纳与前妻克劳迪娅维拉法尼(ClaudiaVillafae)的所生的女儿。 马拉多纳的第四个孩子是与瓦莱里亚萨巴兰(Valeria Sabalain)所生,另外三个私生子来自两个不同的母亲,而且都在古巴,马拉多纳最小的女儿迭戈费尔南德斯(Diego Fernandes)今年7岁,是他与维罗妮卡奥耶达(Veronica Ojeda)所生。 马拉多纳去世前,刚刚过完60岁生日,当时除了在古巴的孩子,其余的孩子都聚集在父亲的床边庆祝60岁生日,没想到成为了永别。 马拉多纳这一生,辉煌、轰动、风流。球王的“官配”妻子只有1人:克劳迪娅,13年婚姻,生下2个女儿,达尔马和詹妮娜;此外,哈娜(24岁)、迭戈-费尔南多(7岁)、小迭戈(34岁,在那不勒斯感染住院)也是老马承认的孩子。另外,还有6人声称是自己是老马的私生子。 这是一个很难给出确切数据的问题。《号角报》指出,马拉多纳的总收入,“远远超过2亿美元”。这是显而易见的,另外,专门统计名人财富的“名人资本”网站则认为,马拉多纳这辈子的总收入——包括财富的增值,约为5亿美元。 球王的遗产有多少? 《号角报》将马拉多纳的遗产预设为8000万美元。前妻、女儿、私生子如何分配,尚不得而知,但有一点是肯定的:继承遗产,必须得缴税。 马拉多纳的遗产,大概七成在海外,三成在阿根廷国内。按照官方1:85的汇率,8000万美元折合68亿比索,也就是说,老马的遗产,20亿比索在阿根廷,47.6亿比索在海外。 算下来,马拉多纳总计68亿比索的遗产,要缴纳3.07亿比索的税。如果按照官方汇率(85比索=1美元),遗产税是360万美元。如果走“美元黑市(Blue Dollar,155比索=1美元)”,只需要缴纳200万美元的遗产税。 注:这里只是计算遗产税,不包含马拉多纳生前的税务纠纷。 ==========================///   球王马拉多纳不幸去世,90后娇妻何去何从? 来源:坤弟儿vlog  体育 球王不幸去世,90后娇妻何去何从? 她该怎么办? 就在刚才,球王马拉多纳不幸离开了人世,我们深表遗憾和痛心。据悉,球王是因为突发心脏骤停而去世。 马拉多纳刚刚度过了六十大寿,步入花甲之年。 迭戈阿曼多马拉多纳,出生于1960年10月30日,生于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阿根廷著名足球运动员、教练员,司职中前场。马拉多纳被认为是二十世纪最伟大的足球运动员,他不仅拥有南美球员精准的脚法和极其娴熟的带球技术,大局观也非常出色,在任何一支球队,他都是绝对灵魂,可以将球队整体盘活。 据悉,马拉多纳和克劳迪亚自17岁时就已经相识,当时他们都住在阿根廷首都布利诺斯艾利斯-阿尔汉里奇大街,并且是门对门。俩人一见钟情,1977年6月,俩人开始约会,十年后,他们的大女儿达尔玛出生。1989年5月,二女儿吉安娜妮(阿奎罗前妻)出生,同年11月,求婚成功的马拉多纳和克劳迪亚在首都布利诺斯艾利斯民政厅登记结婚。 得知自己不在马拉多纳亲朋名单的罗西奥-奥利瓦泪洒当场。她在一档节目中表示:“我不知道她们为什么拒绝我,我是迭戈-马拉多纳的最后一任伴侣,我只想给他说一声再见,我应该有和其他亲朋一样的权利。”说完,今年7月刚满30周岁的罗西奥-奥利瓦号啕大哭。 ====================/// 在马拉多纳去世之后,有一个人引起来外界广泛关注,她就是与马拉多纳交往6年之久,2018年年底宣布分手的前任奥利瓦,就在不久前,阿根廷TN新闻电视台终于采访到了奥利瓦。 老马旧爱一身黑衣坐在车内,戴着口罩看上起非常忧伤,期间还留下了眼泪,她对记者表示,“迭戈是我一生中最重要的一个男人,我会永远想着他的,我们感情很好。”此外,奥利瓦也透露,自己没有被马拉多纳的亲属允许(邀请)出席葬礼,所以没有机会与前任做最后的道别。 =======================/// 真的尘埃落定了!但是精神永存 马拉多纳9千万欧遗产如何分配呢 来源:粱山好友聊球  体育 曾经马拉多纳就扬言要捐出自己的全部财产,当时他是与女儿“吵架“啦才会这样说,如今他突然的离世,按照阿根廷的相关法律,马拉多纳的子女将会继承他名下的财产,据悉马拉多纳的总财产高达8000万到9000万欧元之间,别外他还拥有三处房产和几处地产等等。别外他生前与彪马、EA、Konami等等公司所签署的肖像权、代言等等合同还没有算在内,并且这些合同还会继续生效,产生出来的金钱将会由他的子女来继承,所以日后我们依旧可以看到马拉多纳的身影。   如果按照《马卡报》所说,以9000万元欧元来分配的话,那么马拉多纳的两个女儿达尔马和詹妮娜将会继承约6000万欧元的财产,但是问题在于,球王的儿女众多,他到底有多少个子女只有他自己清楚。马拉多纳亲自认可的子女总共有5人,前妻的两个女儿达尔马和詹妮娜,还有在意大利的大儿子小迭戈、23岁女儿哈娜以及小儿子7岁儿子迭戈-费尔南多,可那些自认是球王子女的人怎么办呢? 退役后马拉多纳的收入来源 退役后的的马拉多纳经济来源有哪一些呢?首先是冠名类的,比如说以马拉多纳名字命名的博物馆、官网,马拉多纳牌白酒每个月3万美元的收入以及自动售货机的肖像权使用费用每年20万。 名满全球,吸金机会无数,为何马拉多纳还一度差点破产呢? 其实对于马拉多纳来说其实想要赚钱并不难,如此的情况下,马拉多纳为何还会差一点破产呢?首先是马拉多纳的任性。虽然马拉多纳的吸金机会很多,但是马拉多纳的任性很经常搞砸这些,甚至还要赔钱。比如说马拉多纳和电视台的解说合同,因为马拉多纳经常不按照合同进行工作,电视台不仅申请了解约,还要求马拉多纳进行赔偿。再比如,马拉多纳的商业性,多次和主办方闹出冲突,马拉多纳甚至因此还一度损失45万美元。 东球弟侃球: 这就是马拉多纳,如果不是我行我素,或许马拉多纳就不会有这嘛多人喜欢,虽然这样的马拉多纳一度遭遇破产的尴尬,但是讲真的,只要马拉多纳觉得开心就行了。 ============================///   马拉多纳留下麻烦身后事:遗产或只剩下十万美元,多名孩子在认亲 来源:缤FUN世界  体育 这两天,迭戈阿曼多马拉多纳的名字,可谓霸占了整个社交媒体的屏幕。#球王马拉多纳去世# 就在悄无声息间,一代球王就这么突然离开这个世界了,不免让人感到扼腕。 年轻时的马拉多纳,凭借着精湛娴熟的技术,在球场上纵横驰骋,所向披靡,赢得不少重量级奖项。 截至目前,这些场景依旧让人们回味无穷。 毋庸置疑,马拉多纳确实担当得起球王这个称号。不过,据《太阳报》11月26日报道,马拉多纳在球场上风光无比,其实,他的感情生活也颇为精彩。 如今随着一代球王的离去,他留下的身后事也是麻烦一个接一个。 马拉多纳确定的亲生孩子暂时有5个 在马拉多纳生前,有5个确定的亲生孩子,分别是3个女儿以及2个儿子。 其中,马拉多纳与前妻克劳迪娅维拉法恩生了两个女儿,分别是如今已经33岁的达尔玛,是一名演员,以及31岁的吉安娜。 (马拉多纳的女儿吉安娜) 此外,马拉多纳还与女友维罗妮卡奥耶达,生下了一个儿子,取名为迭戈费尔南多。 (马拉多纳与克里斯汀娅辛纳格拉,以及他们的儿子迭戈辛纳格拉) (贾娜马拉多纳与生母瓦莱里亚萨布拉林) 两名分别叫做圣地亚哥拉拉和马加利吉尔的人,就曾经通过媒体,称自己是马拉多纳的孩子,希望能够与马拉多纳做鉴定。 (马加利吉尔) 另外,据报道,在古巴生活的那段时间里,马拉多纳还与别人生下了4个孩子。 女儿调侃:爸爸的孩子可以组成一支足球队了 在2018年10月,马拉多纳的律师马蒂亚斯莫拉曾经承认,马拉多纳在古巴的生活过得很逍遥,“未来将会出现很多马拉多纳的孩子”。 看到爸爸马拉多纳有那么多孩子,还被到处疯传,就连他的女儿吉安娜也忍不住调侃,马拉多纳的孩子可以组成一支足球队了。   阿根廷当地时间11月25日早上,在位于布宜诺斯艾利斯的家中,阿根廷传奇球星迭戈马拉多纳(Diego Maradona)像往常一样下楼吃早饭,但脸色苍白、感到寒冷。 他对侄子说:“我觉得有些不舒服”,随后返回房间内休息。 快到中午时,一位护士发现他的情况不对,立刻打电话求救。然而,当救护车赶到时,深受全世界球迷喜爱的一代球王已因心脏骤停离世,享年60岁。 当日清晨4点40分,罗西奥到达玫瑰宫,希望从为马拉多纳的家人及密友准备的通道进入、见前男友最后一面。在入口处,她被保安拦下,并被告知需去与球迷一起排队。 马拉多纳的第一任前妻克劳蒂亚瓦拉法妮(Claudia Villafane)与2位女儿率先入内;紧跟着的是其另一位伴侣薇罗尼卡奥赫达(Veronica Ojeda)。 她愤怒地告诉记者:“我是迭戈最后一位女朋友,是他最想见的女人!根本没人懂他。”她还表示,自己最后一次见马拉多纳是在10月30日,即他接受脑部血块移除手术的5天前。 马拉多纳与第一任妻子相识于少年时期,17岁的他对对方一见钟情。克劳蒂亚为他生下2名女儿后,二人在1989年补办了一场盛大的婚礼。 众所周知,他的球场外生活充满争议,感情问题也是其中一项。他爱着自己的妻子,但也舍弃不了“外面的世界”。终于,在2003年,克劳蒂亚再也不愿忍受他的花心,选择与他做回朋友。 去年,3位古巴年轻人声称是他的孩子。克劳蒂亚的女儿詹妮娜马拉多纳(Giannina Maradona)去年曾用玩笑的口气评价父亲:“再来3人,你和你的孩子们能凑够足球首发队员了。” 目前,老马已承认的子女有5人。除克劳蒂亚的女儿们外,另有3名子女由3位不同女性所出,最小的儿子年仅7岁。他离世前,又有2位年轻人自称是他的孩子,并要求进行鉴定。 图源:网络 编辑:王悲伤 ============================================///   缅怀球王 回顾马拉多纳生前的部分座驾 来源:汽车之家  体育 球王迭戈马拉多纳于2020年11月25日突然去世,享年60岁。殊不知这位传奇球星生前也是位不折不扣的车迷! 有哪位男人不爱车呢,何况是一位伟大的运动员!1980年2月,还不到20岁的马拉多纳拥有了一辆1979年生产的保时捷924,当时他还在阿根廷青年人足球俱乐部。 马拉多纳在转会巴塞罗那之前卖掉了保时捷924,这也许是他足球生涯中唯一一辆以他本人姓名注册的汽车,后期收藏此车的玩家一直保留着这辆车的原始注册文件。 1980年,球迷为马拉多纳在阿根廷青年人俱乐部所作出的成绩而感动,大家相约阿根廷一处汽车经销商,特意为他购买了一辆红色的梅赛德斯奔驰500 SLC作为礼物赠送。 1982年,马拉多纳在巴塞罗那时,购买了他在欧洲的第一辆车——菲亚特128,该车曾经风靡欧洲,大众汽车将其拆解用于参考高尔夫车型的研发,也是恩佐法拉利选择过的座驾。 1986年,墨西哥世界杯,阿根廷对阵英格兰比赛中,英格兰后卫回传给门将时,马拉多纳争抢到了第一点,但由于身高处于明显劣势的原因,马拉多纳用手将球打入了球门,当时被判有效进球,这就是著名的“上帝之手”事件。   就在这场1/4比赛中,“手球”过后仅4分钟,马拉多纳带球进攻,连续过掉六名英格兰球员,打入了这场比赛的第二粒进球。   马拉多纳带领阿根廷获得墨西哥世界杯冠军之后,他成为了阿根廷乃至世界足坛中的上帝。1987年,马拉多纳获得了阿根廷总统赠送的一辆独一无二的法拉利Testarossa。 当时,位于意大利马拉内洛法拉利总部所生产的Testarossa只有红色车身,马拉多纳的经纪人说服了法拉利,专门为他生产了一辆黑色的Testarossa跑车,代价是总统先生额外支付了13万美元。 另外,马拉多纳在1987年还与一辆珍贵的法拉利跑车擦肩而过,它是纪念法拉利成立40周年而生产的F40跑车,这也是恩佐老爷子批准生产的最后一款车,当年售价40万美元。 马拉多纳希望拥有一辆黑色法拉利F40,恩佐法拉利老先生最终答应了他的要求,起初为他定制的黑色F40价格为47万美元,当马拉多纳看到F40完全赛车化的设计后,放弃了它。 1994年,马拉多纳的反兴奋剂尿检结果呈阳性。1995年停赛处罚期结束后他返回博卡青年队,当时拥有一辆红色法拉利F355 Spider。 处于禁赛风波的马拉多纳,为了逃避记者们的围堵采访,他有一次竟然开着一辆蓝色的Scania 113H 360卡车前往足球俱乐部。 当然,马拉多纳拥有的车辆远远不止这些,媒体所报道过的还有MINI Cooper S、宝马i8、劳斯莱斯古思特、雪佛兰科迈罗、宝马M4,甚至还乘坐俄罗斯的HUNTA OVERCOMER极地工程车进入体育场。 马拉多纳年轻时的辉煌成就,使他当之无愧的成为了一名足球传奇人物,现在全世界都在缅怀他的伟大贡献。
3016    [세상만사] - "一生" 댓글:  조회:2544  추천:0  2020-11-28
图解马拉多纳的一生 图解马拉多纳的一生 缩小字体放大字体收藏微博微信分享3     ▲当地时间11月25日,阿根廷,球王马拉多纳因病去世,当地球迷悲痛悼念。图片:CFP   ▲当地时间11月25日,意大利那不勒斯。当日,意大利那不勒斯市市长德·马吉斯特利斯宣布将为因病去世的球王马拉多纳举行全市哀悼活动,并把那不勒斯队主场圣保罗球场更名为马拉多纳球场。图片:CFP   ▲当地时间11月25日,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球王马拉多纳因病去世,警方护送遗体离开住所。图片:CFP   ▲1974年8月1日,马拉多纳(左)与小队友们。图片:CFP   ▲1977年9月12日,布宜诺斯艾利斯,16岁的迭戈·马拉多纳在热身。马拉多纳1960年10月30日出生于布宜诺斯艾利斯最贫困的郊区菲奥里托。大多数人认为他是足球史上最好的足球运动员。他9岁时就开始踢球。他的第一个俱乐部是塞博利塔斯,阿根廷青年队的少年组。由于他不为人知的天赋,很快他在青年队就得到了一个绰号"皮比德奥罗",字面意思是"金童"。他为少年组踢了15场球,在16场,他首次与阿根廷青年队一起参加职业足球赛。几个月后,他便在阿根廷国家队中首次亮相。图片:AFP   ▲1981年,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马拉多纳在拉邦博内拉体育场与博卡青年队赢得1981年当地冠军后,被球迷们抬了起来。博卡青年俱乐部是阿根廷最受欢迎的足球俱乐部,由一群足球爱好者在一个不起眼的移民社区创建,最后发展为世界级别,它的支持者包括世界球星马拉多纳。博卡青年俱乐部于2005年4月3日庆祝成立一百周年。图片:AFP   ▲1981年9月5日,巴黎,阿根廷足球运动员迭戈·马拉多纳——被认为是世界上最好的球员,作为博卡青年队队员与巴黎圣日耳曼队进行友谊赛期间。图片:AFP   ▲1982年6月18日,西班牙,在阿根廷和匈牙利的世界杯首轮足球比赛中,阿根廷中场球员迭戈·马拉多纳在阿利坎特跳过了匈牙利的桑多·萨莱。马拉多纳攻入两球,帮助阿根廷队以4比1击败匈牙利队。图片:AFP   ▲1982年11月13日,巴黎,在与巴黎圣日耳曼的友谊赛上,身穿FC巴塞罗那队服的阿根廷足球运动员迭戈·马拉多纳。图片:AFP   ▲1984年7月4日,阿根廷足球运动员迭戈·马拉多纳从巴塞罗那抵达罗马,之后转会到那不勒斯。图片:AFP   ▲1986年5月22日,阿根廷足球明星迭戈·马拉多纳戴着钻石耳环,在墨西哥城进行国家选拔赛后,头上顶着足球走出训练场。图片:AFP   ▲1986年6月22日,墨西哥,世界杯1/4决赛,阿根廷2-1战胜英格兰,马拉多纳在比赛中。   ▲1986年6月22日,墨西哥,世界杯1/4决赛,阿根廷对阵英格兰,马拉多纳在英格兰门将彼得·希尔顿前的“上帝之手”。图片:AFP   ▲1986年6月29日,墨西哥,队长迭戈·马拉多纳在墨西哥城阿兹特卡体育场带领阿根廷队以3比2战胜西德后赢得世界杯足球赛。颁奖后,马拉多纳亲吻大力神杯。图片:AFP   ▲1986年,阿根廷,墨西哥世界杯冠军队队长迭戈·马拉多纳在球迷和安全人员的包围下,于1986年6月30日从墨西哥抵达布宜诺斯艾利斯机场。图片:AFP   ▲1989年3月26日,法国卢尔德,阿根廷足球明星迭戈·马拉多纳带着女儿达尔马在当地市长菲利普·杜斯特-布拉齐(R)的陪同下抵达卢尔德大教堂。图片:AFP   ▲2020年3月7日,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阿根廷前足球明星迭戈·马拉多纳在布宜诺斯艾利斯的拉邦博内拉体育场举行的阿根廷2020年超级联赛足球比赛开始前向观众致意。图片:AFP     ▲阿根廷队和巴塞罗那队前锋梅西向马拉多纳致敬,称他是"永恒的"。"对于所有阿根廷人和足球界来说,这是非常悲伤的一天",梅西说。"他离开了我们,但是也没有离开,因为迭戈是永恒的。"我珍藏着所有和他在一起的美好时光, 我向他的家人和朋友表示慰问和哀悼”。图片:社交网站 =================///   “球王”马拉多纳:曾拥有600个女人,却宣称自己只爱过一个人 来源:汤静诺  体育 在当地时间2020年11月25日,迭戈马拉多纳在家中突发心梗去世,享年60岁,全国进行为期三天的哀悼期。 马拉多纳本来住在贫民窟,但是小有名气之后,经济条件就有了改善,在他16岁时就搬到了阿赫利士大街居住。 这里是他和克劳迪娅相遇的地方。克劳迪娅也出生于社会最底层,父亲是一个出租车司机,母亲是家庭主妇。 他搬到这里的第一天就对对方一见钟情,然后暗恋了对方很久。在自传里他是这样描述的: “8个月就这样过去了,我天天想她,有时是在梦里,有时是在训练场上,有时是在我进球庆祝的时候,有时是在我受伤难过的时候……” 1977年之后,马拉多纳的事业就一路狂奔猛进。“在1978年,年仅17周岁的他以26粒进球夺得阿根廷甲级联赛最佳射手,成为阿甲联赛历史上最年轻的最佳射手。” 由此,就开启了一个属于他的时代。然而,成名之后的马拉多纳也开启了他放浪不羁的生活,和多个姑娘有染。 马拉多纳和克劳迪娅在一起度过了最初的激情期后,他的绯闻总是满天飞,被媒体拍到和阿根廷女歌手缠绵。 不久后到意大利踢球的时候,又和意大利的一位女孩有私情,和这个女孩生下的孩子后来成为首位马拉多纳被迫承认的非婚生长子。 思索之后,他决定同克劳迪娅结婚。两人1977年相遇,经历过十多年的爱情长跑之后,终于步入婚姻殿堂。 在婚礼上,他说:“克劳迪亚是我的惟一!她正是我要选的女人。上帝对我说‘她是最适合你的,你不会再找到一个比她更适合做你妻子的人了’”。 然而,婚姻并不能改变一个人的天性。结婚后的马拉多纳依然流连于花丛中,丝毫不考虑妻子的感受。 在2003年,克劳迪亚终于忍受不了马拉多纳对自己的背叛了,向他提出了离婚。 克劳迪娅和马拉多纳共同参加一档以马拉多纳球衣号命名的节目《足球10号》,马拉多纳宣称说希望与她复合,但是克劳迪亚拒绝了他。 也许,同马拉多纳周旋多年的克劳迪娅,已经彻底看清楚了对方的真面目,想明白了对方给不了自己想要的生活。 后来,当马拉多纳回顾自己放浪不羁的爱情生活时说道:“爱情?我只有一份,我拒绝拿任何女人和克劳迪娅相提并论,她们都不配。” 宣称自己有过600位女人的马拉多纳说自己只爱过一个人,那就是克劳迪娅。然而,这对于克劳迪娅来说,并不是一件值得骄傲的事。 1986年,世界杯1/4决赛中,马拉多纳先是用一记“上帝之手”完成进球。
3015    [세상만사] - "最后一程" 댓글:  조회:2220  추천:0  2020-11-27
马拉多纳遗体告别仪式举行 球迷排超长队伍送最后一程 2020.11.27                                                    北京时间11月26日晚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马拉多纳遗体告别仪式举行,当地民众排起长队,告别一代球王。马拉多纳的遗体告别仪式在阿根廷总统府举行,他的灵柩上披着阿根廷国旗,以及阿根廷队的10号球衣。总统府外,民众排起超长队伍,排队进入送马拉多纳最后一程。 ===========================================/// 马拉多纳灵柩运抵公墓 民众沿路护送做最后的告别 2020-11-27 09:54中国新闻网           23   当地时间11月26日,传奇球王马拉多纳的灵柩运抵首都布宜诺斯艾利斯郊区的贝拉维斯塔公墓,民众自发在路边护送灵车,与球王做最后的告别。 =============================/// 马拉多纳灵柩运抵公墓 民众沿路护送做最后的告别 2020-11-27 09:54中国新闻网           23   马拉多纳的灵柩已经下葬。球王的前妻克劳迪娅、两个女儿达尔马和詹妮娜,还有前女友维罗妮卡-奥耶达,老马的弟弟劳尔、姐妹等人,送球王最后一程。 送别人群中,也看到了球王贝利的代表(贝利本人没有到场)。贝利献花缅怀马拉多纳,“上帝给了他天赋,世界给了他宠爱”,这是贝利的送别语。 当地时间11月26日,传奇球王马拉多纳的灵柩运抵首都布宜诺斯艾利斯郊区的贝拉维斯塔公墓,民众自发在路边护送灵车,与球王做最后的告别。 ======================///   阿根廷殡葬工亵渎马拉多纳遗体引众怒,遭“死亡追杀”! 来源:巅峰奇缘  体育 马拉多纳遗体遭亵渎引众怒,阿根廷民众强烈谴责亵渎行为,发出“死亡追杀令”,要求开除三名涉事殡葬工国籍! 11月25日,马拉多纳突发心梗去世。在殡仪馆,一名殡葬工手摸马拉多纳遗体额头自拍并发朋友圈,另外两名殡葬工也出现相同的亵渎行为,违反职业道德,受到阿根廷全国民众愤怒谴责。
3014    [세상만사] - "天才黃金歲月" 댓글:  조회:2552  추천:0  2020-11-27
  一个恣意妄为的、 热烈的天才离开了我们 2020年11月27日  来源:人物     11月25日这一天,刚过完60岁生日不久的马拉多纳早早起床了,与往常没有什么分别。早餐是玉米卷,吃完早饭后走了一小会儿路。 到了中午,护士准备叫醒他吃药,却发现他昏迷不醒。当地时间13:02,马拉多纳被宣布死亡,据阿根廷本地媒体报道,死因是恶化的慢性心衰导致的急性肺水肿。 2020这个动荡之年的末尾,一个恣意妄为、热烈的天才离开了我们。在他故去后,他生前那些极度明亮又极度晦暗的人生片段,又重新被人们津津乐道。 《人物》截取了马拉多纳人生的9个片段,向天才以及他创造的黄金岁月作别。 文|汤禹成 编辑|姚璐 图|cfp 01 「上帝之手」 2020年11月26日,如果在中文搜索引擎中输入数字「1986」,推荐的第一个关联选项,就是「1986年世界杯上帝之手」。这是球王马拉多纳一生,乃至整个足球史上,都无法被忽略的一个进球。 那一年6月22日,墨西哥世界杯1/4决赛,阿根廷对阵英格兰。「当天的气温简直高得不可思议。」马拉多纳在自传中回忆,比赛上半场,两边都没有进球,阿根廷队在控球时间上占据了优势,但英格兰队也有几次「有威胁的射门」。 马拉多纳在上半场的僵持中有过一次气急败坏。他踢出一脚球,但皮球越出了角球点。他烦透了,觉得「角旗跟坐在角落的那些摄影师一样烦人」。他狠狠踢了几下红色的角旗,边裁跑了过来,勒令他将角旗扶正。 马拉多纳知道,「控球时间再长,不进球也是徒劳」。为了不让队员对上半场的比赛沾沾自喜,他在中场休息时和队友们说出了自己的这个想法。 他无疑是想赢的,「我想要赢得比赛,只想赢得比赛」。到了下半场,马拉多纳如往常一样很快投入了比赛。比赛到了51分钟,英格兰队一名队员踢来的一脚球,冲着马拉多纳的位置落下,「丝毫不差地冲我而去」。 「天哪!真是天赐良机啊,天哪!」马拉多纳心想。 随后的几秒,他像一只青蛙一样向空中跃起,双脚交叉成十字,后背肌肉用力。他用左手重重击球,嗒的一声,皮球飞进了球门。 他看看主裁,又看看边裁,没有任何动静。他决定帮助主裁做出决定——开始奔跑庆祝进球。最终,主裁说了「Goal!」这意味着,裁判没有看出这是个手球。 在一场世界大赛中,手球被裁判忽略的概率是那么低,但马拉多纳做到了——赛后,马拉多纳称之为「上帝之手」,「上帝伸出了手,帮助我们打进了那个球」。说这话时,他想到的是4年前在马岛战争中死去的阿根廷年轻人,那是阿根廷和英格兰之间的一场战争,以阿根廷战败告终。从一开始,马拉多纳就认定,这一次的世界杯对决,是一次复仇。 当时和「上帝之手」最近的人——希尔顿,英格兰的金牌门将。他和马拉多纳几乎同时跃起,对发生了什么一清二楚。事后,他始终无法释怀。一次接受卫报采访时,希尔顿果断地说:「马拉多纳是足球史上最好的球员,但我不尊重他。」他曾和马拉多纳多次见面,但始终拒绝彼此握手,「除非他道歉」。 希尔顿再也等不到那句道歉了。马拉多纳在自传中曾写道:「对于这个我用拳头打进的球,我完全不感到后悔。」接受他人质疑时,他往往回答:「那是一场比赛,如果裁判没有发觉那是手球,那进球就成了比赛的一部分。」 02 「他到底是哪个星球的生物?」 最经典的那粒进球,发生在「上帝之手」4分钟后。 马拉多纳从队友恩里克那儿接过球,两个对方球员包夹着他,他轻盈地从右前方把球拨了出来,随之继续向前猛冲。他又甩开了第三名防守队员——那时,解说员以为他接下去要传球给队友布鲁查加,但惊讶地发现,他还在继续带球。——后来,马拉多纳这样回忆当时的心路历程:「我怎么可能在这个时候传球呢!除非我疯了。因为这个球我一路带上来,那距离就好像我从自己家里带来的那样遥远。」 显然,他决定自己射门。盘过5个球员之后,球被他三根脚趾轻轻一拨,送入球网。 这是所有球迷无法忘记的瞬间。对于球迷来说,这是在世界杯这样最高水平的赛事中绝无仅有的、最令人震撼的进球方式——丝毫没有利用反击或配合创造的位置优势,而是纯粹依靠个人技巧、速度和身体的结合,连过五人,正面强吃,强进攻性与强观赏性并存。 这是马拉多纳一贯给人的印象,球就像黏在他的脚下,他能让球「随心所欲」,对手常常拽不到、拉不住、围不住,通过巧妙的一扣一拨,就能成功过人。 而在那场比赛中,根据马拉多纳的回忆,「之前发生类似的情况时,我都被对手掀翻在地,但是英格兰的队员们都是绅士,他们没有对我犯规。」在他的叙述里,天时,地利,人和,决定了那场胜利。 不过,在比赛的那一刻,有一个人比马拉多纳更激动,那就是乌拉圭解说员维克多 · 乌戈 · 莫拉莱斯。他声嘶力竭地说了一长段解说词,大呼「天才」和「足球万岁」,在那段语无伦次的解说里,他提出了一个意味深长的提问:「他到底是哪个星球的生物?」 马拉多纳后来看了这粒进球的英语解说、日语解说、德语解说,但他还是最喜欢莫拉莱斯的西班牙语解说,这也是他的母语。「每一次听到他的解说词,我就感到浑身的热血重新沸腾了起来,就像第一次听到时的感觉一样。」 那一年世界杯,阿根廷队共打入14个球,马拉多纳攻入5球,助攻5次,成功拿下了金球奖。很多人说,那一年的世界杯,「是马拉多纳一个人的世界杯」。 「那个进球独一无二,几乎不能用言语来形容,也无法用文字来表达。」 图源网络 03 最后一次挺进世界杯决赛 1990年意大利世界杯,阿根廷队的阵容并没有4年前那样强大。首场就失利,阿根廷输给了「非洲雄狮」喀麦隆。 但在那之后,依凭马拉多纳的表现,阿根廷赢了前苏联,平了罗马尼亚,小组赛才以小组第三晋级次轮。 16强赛阿根廷面对巴西。本来巴西队占尽优势,但始终未能进球,全场没有什么攻势的阿根廷,却在下半场凭马拉多纳中路连过数名巴西球员,助攻肯尼基亚破门,攻入全场唯一进球,1-0,阿根廷击败了巴西队,获得了晋级的机会。 之后,阿根廷又凭点球大战侥幸淘汰南斯拉夫晋级四强。 半决赛中,他们与东道主意大利在加时赛战成1–1后,结果阿根廷再次幸运地于点球大战中战胜了对手。 赛前接受媒体采访时,马拉多纳说:「如果他们(那不勒斯球迷)支持阿根廷,我会很高兴。」 但在赛场上,马拉多纳环顾四周,能看到悬挂着的横幅写着:「马拉多纳,那不勒斯爱你,但意大利是我们的国家。」 不过,这些标语没有影响马拉多纳的决心。在双方都进了3个点球的焦灼情况下,他冷静地用左脚轻拍点球,将球踢向了门将扑向的另一方,踢入了球网。就这样,马拉多纳带领一支非常普通的球队闯进了世界杯决赛。 那是马拉多纳最后一次完整参加的世界杯。 1990年世界杯半决赛中,马拉多纳点球进门 04 女人、毒品和枪支 1991年初春,在一场意甲联赛赛后的例行尿检中,马拉多纳被发现服用可卡因,他也因此被停赛15个月。而后来人们才知道,马拉多纳使用可卡因,甚至可以追溯到1983年效力于巴萨时,只是那时尚未被发现。 在西班牙,他第一次接触毒品,「我只是尝了一下,就觉得自己变成了超人」。而在那不勒斯,「毒品到处都是,在那里我越吸越多」。 1990年世界杯结束后,通过对意大利黑手党势力之一卡莫拉组织的监听,马拉多纳索要毒品和妓女的录音被曝光,他被处以500万里拉的罚款。在那则录音里,他要求对方「带两个姑娘来」。 不久后,1991年9月18日,意大利那不勒斯一家法院以拥有和服用可卡因罪,判处监禁马拉多纳14个月,并罚款3175美元。 图源网络 而在1994年,世界杯交战正酣,马拉多纳率领球队取得两场连胜后,又因为药检阳性被取消了继续比赛的资格。失去马拉多纳的阿根廷,以两场失利结束了那次世界杯的赛程。很多阿根廷球迷会把阿根廷的败北归因于国际足联对马拉多纳的处罚,他们坚定地相信——如果马拉多纳还在比赛,阿根廷根本输不了。 即便到了暮年,他也仍然风流。2018年世界杯的一场比赛上,58岁的他和90后年轻女友在观赛时旁若无人地亲吻,一旁的罗纳尔多神情呆滞。这张图片传遍了社交网络。至今都没有人能确定他有多少私生子。 1994年2月,离开那不勒斯不久的马拉多纳,情绪显得更难以控制。 根据BBC的报道,在对守候在自家门口的记者感到忍无可忍之后,马拉多纳端起了他的气枪,向记者射击,造成四名记者不同程度受伤。这桩官司花费了八年时间才审理结束,马拉多纳故意伤害罪名成立,被判处监禁两年,缓期两年。同时民事诉讼也以马拉多纳败诉告终,他需要向四名记者支付15000美元的医疗费用。 俱乐部主席沃尔特 · 卡塔尼奥在发生这件事后和媒体表示,马拉多纳正遭受抑郁症困扰。 这位绿茵场上的天才,在场外始终被毒品、药物、女人、攻击他人等负面新闻围绕。但真正爱他的人们,不会因此放弃对他的爱,相反,他们认为自己爱上了一个「充满瑕疵」的天才。而这正是马拉多纳的迷人之处——人们见惯了完美、无死角的偶像,马拉多纳的不羁和放纵反倒显得珍贵。 马拉多纳和女友 05 世纪之吻 在阿根廷博卡青年队复出后,1996年,在阿根廷足球联赛中,博卡青年对战河床。那一场比赛中,能够容纳49000名球迷的糖果盒球场几乎座无虚席。在这场堪比国家德比的火爆比赛中,马拉多纳两次助攻卡尼吉亚突破进球。 进球后,激动的马拉多纳抱起卡尼吉亚,在全场观众和其他队员前,长吻六分钟。传闻里,卡尼吉亚的妻子在赛后表达了不满,甚至有所诋毁,马拉多纳只是回应:「看在卡尼吉亚的份上就不追究了。」 在那个年代,两个男人在公开场合的亲吻是一件罕见的事,很多人质疑他们。——可放在如今来看,那种原始、恣意、无所顾忌的爱与热情,像是南美这片热带土地的天然产物,几乎贯穿了马拉多纳的一生。 疯狂又纯粹。 他们的默契配合已经不是第一次了。1990年的意大利世界杯对战巴西队时,大约第80分钟,马拉多纳在中场线后带球从中路狂奔近50米,连过三人为卡尼吉亚送出单刀,助后者终结了比赛。 那是阳光炽烈的90年代,马拉多纳和他的队友们都还意气风发。 大约三周前,卡尼吉亚曾经晒出两人之间的合影照片,并写道:「能和足球史上排名第一的人一起踢球,我无比荣幸,我的好兄弟,恭喜你出院。」而当时马拉多纳还回复了他:「我爱你,你知道的,我要给你一个大大的拥抱,我的好兄弟。」 马拉多纳去世后,这位好兄弟发推文表示:「我被这个消息震惊了,他是我的灵魂兄弟…希望你能理解,我现在无话可说。我只想告诉你的家人,我将陪他们度过这段痛苦。」 长达6分钟的「世纪之吻」 图源网络 06 他出生在贫民窟 在南斯拉夫导演库斯图里卡拍摄的有关马拉多纳的纪录片中,有这样一个令人动容的片段。 他在舞台上唱起一首写尽他一生的歌,《上帝之手》。 他出生在贫民窟 这是神的旨意 我奋力生长 挣扎存活 并面对逆境 我曾如履薄冰 只为谋求成功 …… 视频中,起初他独自唱着。后来,越来越多朋友涌上台,音乐的旋律也越来越激昂。他的两个女儿也上了台,马拉多纳把她们揽进自己的臂弯,父女一起唱着这首属于马拉多纳的歌。这简直变成了一个在场所有人的盛会,他们随着旋律摇摆着,跳动着,感性又深情。 马拉多纳和两个女儿 纪录片穿插了他与孩子相处的过往——咿呀学语的孩子坐在沙发上观看他的比赛,他带着孩子和妻子去游泳,两个孩子骑在他的背上,又或者躺在他宽大的肚子上。这一切都在提醒着你,刨除天才与恶魔的标签,他还是一个生动的父亲、温暖的朋友,一个有血肉的人。 成长在布宜诺斯艾利斯郊区一个贫民窟的他,或许也会在那个愉快的、天伦共享的瞬间想起自己的父亲。他的父亲在一家磨坊里当搬运工,每天工作12小时,勉强养活一家10口人。马拉多纳的父亲,在马拉多纳的职业生涯初期,做出了巨大经济牺牲。他在工厂里无休止地工作,让儿子得以实现愿望。「最希望他胜利的是我。我擦亮他的鞋子。我认为他可以超过贝利,甚至可以更好。」他的父亲曾这么说。 13岁那年,马拉多纳开始意识到母亲为了他们这几个孩子所做的牺牲。母亲每次端饭上来总说自己胃很疼,不想吃。于是剩下的饭菜就都分给了孩子们,「但其实母亲从未胃疼过。她撒了一个多么大的谎言,这是一个多么爱我们的老太太」。 在马拉多纳的职业生涯里,母亲从未缺席。她一直陪着儿子,为了控制住他的毒瘾,母亲数次和他动手。马拉多纳深爱他的母亲, 即使是在众目睽睽之下,也总能肆无忌惮亲吻母亲。 马拉多纳和家人 07 「那可是我的国家队啊!」 2008年,马拉多纳回到阿根廷国家队担任主教练。他已经无需再证明自己是一个天才的球员,但2010年的那场世界杯,是检验他能否成为一个卓越的教练的时刻。 7月3日,南非世界杯1/4的决赛上,阿根廷以0:4输给了德国。 赛后在向更衣室反行的通道上,德国《图片报》记录下了刚输比赛的马拉多纳抱着女儿痛哭的画面,一旁是对手德国队主教练勒夫。回到更衣室,马拉多纳继续痛哭。 马拉多纳抱着女儿痛哭 马拉多纳极度悲伤,本应该在德国队举行发布会之前面对记者的阿根廷队,推迟了发布会。马拉多纳走入发布会现场时,已经显得平静,说出了自己对比赛的看法:「比分并不是场上真实情况的反映。比分并不会减少我对我的球员的自豪感。我希望小伙子们能继续证明他们自己,能继续踢出漂亮的阿根廷足球,不信魔咒,也不要打架。」 他把眼泪留在了2010年7月初的南非。不久后,7月28日凌晨,阿根廷足协宣布了国家队教练马拉多纳的离任。 止步8强那天,球员下场时,他拥抱了失落的梅西。梅西被认为是最有可能成为马拉多纳后继者的球员,他们有很多共同点,同样身材矮小,同样有韧劲,同样球技高超——作为一个队伍的明星球员,他们在被对手绊倒后,总是能很快地爬起来。 梅西以零进球结束了自己的南非世界杯之旅。 一位记者在南非世界杯开始前曾经写下一篇报道,称马拉多纳不希望那一届国家队获得冠军,「因为他不想让梅西举起大力神杯,以此超越他的成就」。 马拉多纳在自传中表达了这一点的荒诞可笑:「那可是我的国家队啊!」「我没法告诉写这篇报道的记者身披国家队队服为国争光是一种什么样的感觉。」 可能没有人比他更希望梅西举起大力神杯。「到了2016年,我也希望阿根廷的徽章上能有七颗星的闪耀。但是事实并非如此,我们仅有两颗星而已。这感觉对我来说简直就像是一柄匕首插我的心脏。」 「梅西可以成为比我更加伟大的球员,他当然可以做到。」 马拉多纳拥抱身穿10号球衣的梅西 08 马拉多纳在墨西哥 纪录片《马拉多纳在锡那罗亚》,记录下了58岁的马拉多纳在墨西哥乙级联赛多拉多斯俱乐部执教的经历。 当他来到这个墨西哥北部城市时,吸引了一大批媒体和粉丝。他很快和这里的运动员打成一片。在一场友谊赛胜利后,他在一群年轻的球员中跳起舞,鼓励大家一起唱歌。 「很多人都得跟上他跳舞的节奏,这种热情会被感染。看着他边跳边呼,这个感觉太棒了。」 他在绿色的草地上和前来拍摄的记者一起跳比亚舞,不再像年轻时那样灵活,他肚腩抖动,腿脚也不那么灵便。但他还是那个洒脱、自由的马拉多纳。和年轻时相比,眉宇间还多了几分随和。 多年的伤病让他离不开队医和医院的治疗。他需要不时地治疗膝盖,镜头还会切到他不怎么灵便的行走姿态——上楼梯时,他往往需要扶着一侧的把手。他的心脏也一直不怎么好。哪怕只是跑动、接球、射门,他都能重重地摔在地上。 不过,随着时间推移,你会发现,马拉多纳还是那个马拉多纳。在一场关键比赛中,由于在更衣室情绪激烈,摔桌子打板凳的马拉多纳直接把拍摄团队请出了更衣室。在对方教练让自己「闭嘴」后,他大发雷霆,觉得比赛经历丰富的自己没有得到尊重。 即便在暮年,他的生活依然充满常人难以理解的情绪和波澜。 用足球「跳舞」的马拉多纳 09 10号球员的告别 「我觉得有些不舒服」,是马拉多纳离开前说的最后一句话。 10月30日,是他60岁的生日。拉普拉塔俱乐部为他庆祝了生日,但在媒体的报道中,他那时候就需要人搀扶。到了11月初,他接受了一场头部手术,不久后出院回家。 11月25日这一天,马拉多纳早早就起床了,与往常没有什么分别。早餐是玉米卷,吃完早饭后走了一小会儿路。 当时,陪伴在马拉多纳身边的亲人是他的外甥。马拉多纳对外甥说,他要看电视,然而,马拉多纳的脸色有些苍白,有些怕冷,之后,他就上床睡觉。和过去一段时间一样,他要睡个回笼觉才能够养足精神。 由于在那段时间,马拉多纳的身体状况并不好,因此在他的家中,心理医生、精神科医生以及私人护士一直监护着他的身体状况。到了中午,他必须要起床服药。但是,正当护士要准备去叫醒他的时候,却发现他昏迷不醒。 多年伤病缠身后,一个足球天才因为心脏骤停告别了我们。 一个恣意妄为的、热烈的天才告别了我们。 阿根廷总统府发布了公告,全国将为马拉多纳哀悼三日。总统费尔南德在社交媒体上表示,「是你把我们带到世界之巅,带给我们无数快乐,你曾是世界上最伟大的球员」。 阿根廷博卡青年队主场糖果盒球场当晚全场灯光熄灭,只留下马拉多纳包厢的一盏光亮,以此纪念那位曾在21岁就加入博卡青年,并在此退役的球王。而在意大利的那不勒斯——那个他离开巴萨后效力7年的地方,在他去世这一天,决定将主场圣保罗球场易名为圣保罗-马拉多纳球场。 阿根廷时间11月26日早晨,马拉多纳的遗体告别仪式在布宜诺斯艾利斯举行。阿根廷TN电视台直播的画面显示,马拉多纳的棺材上覆盖着阿根廷国旗和10号球衣。 在大部分马拉多纳的赛场照片上,他都穿着那件蓝白条纹的T恤,背后是描边的深蓝色的「10」。 (实习生张天依对本文亦有贡献) 参考资料: 《马拉多纳自传:我的世界杯》迭戈 · 马拉多纳 吴寒译 《我是迭戈》迭戈 · 马拉多纳 陈凯先译 纪录片《马拉多纳》(2008)埃米尔 · 库斯图里卡 纪录片 《马拉多纳》(2019) 阿斯弗 · 卡帕迪尔 纪录片《马拉多纳在锡那罗亚》(2019)马修 · 韦纳 ==============================================================///   多纳生前最后一位女友得知噩耗后立刻昏厥,随后参加节目追忆 来源:凉凉子诉说  体育 马拉多纳。毫无疑问,许多现役球星的偶像一定是马拉多纳。作为阿根廷国家队的代表,马拉多纳完全超出足球带来的荣耀。阿根廷甚至为他举行国葬,并降半旗,这也表明马拉多纳在阿根廷是一种精神代表。他辉煌的足球生涯是许多球员望尘莫及的。 作为马拉多纳的最后一位女友,罗西奥奥利瓦也难掩对这一消息的悲痛。就连罗西奥奥利瓦也在接到母亲通知马拉多纳死讯的电话后当场晕倒。悲伤在她身上是显而易见的,但那天罗西奥奥利瓦答应成为telefe的intrusos节目的嘉宾。所以,尽管罗西奥奥利瓦很伤心,他还是如期出席了演出。当然,这次的焦点转向了她和马拉多纳。 罗西奥奥利瓦今年30岁,比国王小30岁,但很难抗拒他们之前的爱情。他们已经在一起六年多了,他们是马拉多纳今年最亲密的人。在接受英特鲁斯的采访时,罗西奥奥利瓦说,她上一次见到马拉多纳是在今年3月,此后疫情开始蔓延,她再也没有见过马拉多纳。 奥利瓦希望马拉多纳能回到他唱歌、跳舞和快乐的脸上。他的60岁生日是10月30日,但马拉多纳的健康状况似乎不太好。当罗西奥奥利瓦回忆起马拉多纳的过去时,她说:“迭戈马拉多纳是我生命中一个非常重要的人。他疯狂,美丽,独特。他有一颗金子般的心。迭戈马拉多纳非常爱我,我的灵魂充满了他的影子。我将永远记住他。他对我和我的家人都很好。 接受节目采访后,罗西奥奥利瓦在个人社交媒体上悼念前男友马拉多纳,说:“谢谢!谢谢!非常感谢我的灵魂伴侣。可见,罗西奥奥利瓦对马拉多纳非常怀旧。但一些粉丝说,罗西奥奥利瓦是如此执着,以至于在听到这个坏消息后晕倒了,仍然可以参加演出。不过,一些球迷表示,马拉多纳深情的前女友可以安息。    
3013    [세상만사] - "世界球王 = 喜劇大師" 댓글:  조회:3474  추천:0  2020-11-27
  赵本山追忆 马拉多纳:心中真正的球王,曾手把手教他二人转 2020年11月27日  来源:虎扑     虎扑11月27日讯 11月26日晚7时,封面新闻独家釆访到了著名喜剧表演艺术家赵本山老师。得知马拉多纳去世的消息,赵本山显得十分悲痛,他还回忆起了10年前与马拉多纳在北京举行的温暖中国行慈善晚宴上,世界球王与喜剧大师的相逢。 根据封面新闻的报道,赵本山曾经在2010年马拉多纳来华参加慈善晚宴的时候教授了老马二人转中的“绝活”转手绢。 赵本山还在晚宴上以12万元的价格拍下了马拉多纳球衣,款项用于慈善事业。 赵本山同时也表示马拉多纳是他的年代第一个被中国人记住的世界足球巨星。他精湛的球技和对足球运动的贡献,值得我们永远铭记和怀念。 (编辑:姚凡) ==============================///   前妻做主, 马拉多纳已提前下葬,与父母长眠一起 2020年11月27日  来源:红星新闻       北京时间11月27日上午,马拉多纳正式下葬,他的下葬地点在阿根廷首都布宜诺斯艾利斯郊外的贝拉斯塔公墓,球王与他的父母同葬在这个公墓里。 当马拉多纳的棺椁从此前停灵的阿根廷总统府被送往贝拉斯塔公墓时,诸多阿根廷民众一路跟随,场面令人感动。当马拉多纳的棺椁抵达下葬地点时,一些在场的阿根廷球迷忍不住流下了眼泪,而马拉多纳的亲友们则守在这里,相互拥抱,给对方打气。在现场的有马拉多纳的前妻克劳迪娅以及两个女儿,另外还有球王的一些家人和生前最亲密的朋友,他们都在这里和马拉多纳进行了最后的告别。 法新社透露,在马拉多纳下葬前,他的遗体在阿根廷总统府中供民众悼念,结果由于大量球迷涌入,导致现场出现了混乱。据阿根廷媒体报道,马拉多纳的一位亲友表示,最终是马拉多纳的前妻克劳迪娅做出了葬礼提前进行的决定,所以在阿根廷总统府停灵11个小时后,马拉多纳的遗体被送往贝拉斯塔公墓安葬。他将与自己的父母一同长眠在这里。 再见,马拉多纳!再见,世界球王! =============================================///   数万球迷在 阿根廷总统府与马拉多纳遗体告别 2020年11月27日  来源:央视新闻客户端     当地时间11月26日,马拉多纳的遗体告别仪式在阿根廷总统府举行。数万名球迷从各地赶来参加当天的悼念活动。阿根廷总统府外球迷绘制了一幅马拉多纳的巨幅画像。总统府降半旗并挂上了黑纱。 从总统府向西超过一公里的道路上排满了从全国各地赶来的上万名球迷。很多人在排队中依然无法抑制住激动的心情。更有很多人对记者说,这是他今年疫情爆发以来首次出门。这一切的人流、冒险出行,都是因为马拉多纳,也只能是因为马拉多纳。 在马拉多纳曾经效力多年的博卡青年队主场外,依然有球迷到来敬献鲜花,以示哀悼。作为球队的绝对偶像,尽管很多年轻球迷并没有看过马拉多纳的比赛,但是他们依然对他有着深厚的感情。一位小球迷依偎在父亲的怀中,泣不成声。他用依旧稚嫩的声音对记者说:“我觉得马拉多纳没死,他就是去天堂参加比赛去了。等他赢了就还会回到我们身边的,反正他踢的比赛一定都能赢的。” 很多人昨夜没有入眠,他们就在总统府、方尖碑等待着能够与马拉多纳的遗体告别。一切来的太快,尽管已经过去了一天,但人们依旧不愿相信马拉多纳离去的事实。 ========================================/// 今晚亚冠赛前将有默哀仪式,纪念球王马拉多纳 2020年11月27日  来源:虎扑     虎扑11月27日讯 据记者马德兴最新消息,在今晚即将进行的亚冠赛前将有纪念去世球王马拉多纳的默哀仪式。 马德兴在社交媒体上写道:“今天亚冠赛前将有默哀仪式,纪念我们所有人的球王! 这是亚足联统一作出的决定。实际上,昨晚国内的足协杯赛就也应该有类似的仪式!足球是什么?首先是尊重!respect!球王是我们全世界的球王,很遗憾,就像先前高丰文走了一样,我们都没有一个仪式感,更何况是一个老外?但球王不是老外,是我们所有人的球王!” 图片来源:马德兴微博 (编辑:姚凡) ===========================/// 送别马拉多纳   阿根廷当地时间11月26日,马拉多纳正式被下葬。阿根廷首都布宜诺斯艾利斯几乎万人空巷,民众纷纷涌上街头,送别自己偶像最后一程。 民众送别偶像   TYC报道称,一位球迷甚至冲到灵车队伍中,险些引发车祸。   当地时间晚19点,马拉多纳的遗体到达贝拉-维斯塔公墓,被安葬在这里,他的父母也在这里安葬。 球迷闯入灵车队伍中     在过去一天多时间里,全世界都在悼念球王马拉多纳,他依旧会活在人们心里。   (小九)
3012    [세상만사] - "足球生涯 = 10" 댓글:  조회:2832  추천:0  2020-11-27
  再见迭戈! 一组图回顾 马拉多纳的足球生涯 2020年11月26日  来源:虎扑     虎扑11月26日讯 据多家外媒报道,一代球王马拉多纳因心脏疾病去世,享年60岁。让我们用一组图回顾一下他的球员生涯。 1981年10月26日,马拉多纳在博卡青年效力时的照片。   1982年,马拉多纳转会至西甲球队巴塞罗那,开启征服欧洲之旅。 1984年马拉多纳转会那不勒斯,从此开启了球员生涯的巅峰。不但在1986-87年和1989-90年赛季赢得意甲联赛冠军,他还赢得意大利杯(1987年)、欧洲联盟杯(1989年)和意大利超级杯(1990年)。 1992年马拉多纳离开开创他人生高峰的那不勒斯,转投西班牙俱乐部塞维利亚。 1982年世界杯,阿根廷VS意大利。马拉多纳 当地时间1986年6月22日,在墨西哥世界杯阿根廷与英格兰的1/4决赛中,马拉多纳用手把球攻入了英格兰队的球门,这就是著名的“上帝之手”事件。 仅仅在“上帝之手进球”3分钟后,马拉多纳连过6人破门得分。这一进球也被评为了世纪最佳进球。 6月29日,墨西哥城,1986年墨西哥世界杯决赛,阿根廷3-2西德。阿根廷巨星马拉多纳在两队2-2僵持时精彩助攻布鲁查加得分,锁定胜局。依靠在该届杯赛上的精彩表现,马拉多纳一举奠定了自己一代球王的地位,86年世界杯又被称为马拉多纳的世界杯。 1986年世界杯,阿根廷夺冠,马拉多纳亲吻金杯。 1990年世界杯,马拉多纳担任了阿根廷的队长,带领球队进入决赛,但以0比1败给前西德。 1994年世界杯马拉多纳因服用含有伪麻黄碱成份的药物被禁赛,有报道说马拉多纳为了参加世界杯在减肥,并且本身有哮喘,他减肥和治疗哮喘的药物里含有违禁成分。那届世界杯阿根廷国家队也表现不佳。小组突围之后,他们被罗马尼亚送回家,止步十六强。 2008年10月28日,阿根廷足协决定由马拉多纳担任阿根廷国家队的主教练职务。2010年7月3日,阿根廷队在2010年世界杯1/4决赛中以0-4败于德国无缘晋级后,随后在7月27日,阿根廷足协正式确认解除马拉多纳职务。 阿根廷0-4不敌德国,赛后马拉多纳拥抱梅西 当地时间2017年1月9日,瑞士苏黎世,2016年FIFA年度颁奖典礼,马拉多纳与因凡蒂诺合影留念。 当地时间2018年6月21日,俄罗斯下诺夫哥罗德,2018世界杯小组赛D组,阿根廷VS克罗地亚。马拉多纳观战手举梅西球衣 当地时间2018年7月15日,俄罗斯莫斯科,2018世界杯决赛,法国VS克罗地亚。马拉多纳看台观战 当地时间2019年11月24日,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19/20赛季阿超联赛第14轮,拉普拉塔体操0-1萨兰迪兵工厂,马拉多纳离职两天重执教鞭。 当地时间2020年11月2日,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马拉多纳因身体不适入院,阿根廷球迷聚集医院外祝福“球王”。 (编辑:姚凡)
3011    [세상만사] - "마라도나 = 중국" 댓글:  조회:3610  추천:0  2020-11-27
  何姿: 我不认识马拉多纳,他却主动与我合影! 网友: 因你衣前国旗 2020年11月26日  来源:体坛全接触     球王马拉多纳离开了这个世界,全世界的球迷都在悼念他,像中国并非足球迷的奥运跳水冠军何姿,也发表了一段回忆马拉多纳的文字: “这是2013年,在迪拜比赛的一次赛后合影——当时,我刚赛后采访结束,要经过后台的通道离开,结果看到他跟一大群保镖迎面走来,我下意识地靠墙站,先让他通过,没想到他却主动跟我握手,还鼓励了我几句。我那个时候并不认识他,也对足球不太了解 。只是觉得他非常的亲切!” “一代球王:迭戈-马拉多纳,愿天堂也有足球…… ”。   有网友在何姿的文字下评论说:何姿,你不认识马拉多纳,迭戈也很可能不认识你,但是,你当时穿着中国运动员的服装,而衣服上的中国国旗、国徽图案,马拉多纳显然认得——这就是球王为何为主动过来,跟你握手,跟你合影的原因。 确实,马拉多纳对中国也很感情,他一生曾四次来过中国,还接受过央视主持人白岩松的专访,在节目中,马拉多纳曾说过:“中国有能力拥有一支伟大的足球队!” 在今天,马拉多纳去世的消息传来后,中国足协官方还如此评价道:“作为二十世纪最佳球员,世界杯冠军得主,马拉多纳为世界足球做出了巨大贡献,给中国球迷带来了不可磨灭的美好记忆。马拉多纳的离去,让所有热爱足球的人无比悲痛。向马拉多纳辉煌的足球生涯致敬!再见,球王!”。 一位外国的运动员,能让中国足协官方专门于第一时间给予如此之高的评价,也说明了马拉多纳的伟大,以及他生前与中国关系的密切。 而作为一名跳水运动员的何姿,确实,如果不是她一身明显的中国运动员服装,或许,从其身边而过的马拉多纳,并不会注意到她。 也诚如网友所言:何姿衣服上的中国国旗、国徽图案,让球王注意到了她,且会主动走过来,与这位中国奥运冠军握手、合影,这个小小的细节,也充分说明马拉多纳与中国的感情之深了!     10年前结缘!赵本山追忆马拉多纳:他是我心中真正的球王 来源:天涯沦落人  体育 马拉多纳去世令世界体坛为之震惊,他的影响力远不止足球圈,体育各界人士也纷纷发文缅怀这位阿根廷球王。马拉多纳生前多次造访中国,他和“小品王”赵本山关系也不错,他们见面的时候也一度被认为是两位“马大帅”相遇。就在今天赵本山接受《封面新闻》采访的时候谈到了去世的马拉多纳,赵本山表示自己心里非常难过,马拉多纳就是自己心中真正的球王。 赵本山在国内的影响力是非常大的,他也参加过明星足球赛、入主过辽足,虽然踢球水平一般,但是赵本山是真的喜欢足球。他和马拉多纳的缘分来自于10年前,2010年马拉多纳在北京举行的温暖中国行慈善晚宴中和赵本山相遇,他们都被主持人请上台,英雄之间都是惺惺相惜的,他们在一起唱歌,赵本山直言自己接到邀请就来了,因为生活中也喜欢足球,非常喜欢马拉多纳。 赵本山有着和马拉多纳相似的经历,出生的环境都不是很好,一个是东北的穷农村,一个是阿根廷的贫民窟,也都是通过自己的打拼在上个世纪80年代成名的,影响了很多人。现在斯人已逝,马拉多纳在11月26日凌晨去世,赵本山也非常难过,希望马拉多纳在天堂安好。 当地时间25日上午,阿根廷球星马拉多纳在其位于阿根廷的家中突发心梗去世,享年60岁。为了查明马拉多纳的死因。当地时间11月25日18点,当地的法医对马拉多纳的遗体进行了解剖,最终宣布马拉多纳没有遭受暴力侵袭的迹象,是自然死亡。 马拉多纳到达合肥后入住天鹅湖大酒店,当天下午开始,连续参加3场活动,包括为一家医院的两位癌症患者进行捐助,还有一场球迷见面会。 当天晚上6点,在合肥政务区一家酒店举行的欢送宴会上,马拉多纳兴致很高,不时和嘉宾频频举杯。主办方还举行了精彩的文艺演出,引起老马极大的兴趣。 在翻译的帮助下,得知黄梅戏是安徽的特色戏曲后,老马用并不太标准的中国话连说几声“谢谢”。 9日晚8点多,老马从欢送晚宴悄然离开,随后飞离合肥。 来源:安徽网、环球网、山西晚报   马拉多纳为啥没能来华执教?足协无法满足他提的特殊待遇:不现实 来源:30年莱斯特城球迷  体育 马拉多纳的离开,引发全球球迷的悲伤。马拉多纳生前曾来过中国,并想过来华执教,而中国足协也曾想依靠老马的巨大影响力以及天才创造力来执教青训,但由于老马的要求太难实现,最终没能达成合作。 老马露出狡黠的微笑,他毫不掩饰自己想要的特殊待遇:“如果我真在这呆五年的话,能得到跟成人队一样的报酬吗?如果能的话,我愿意在中国待五年。”随后,老马知道自己这次无法与中国足协达成一致的目标,因此也就回避了自己任职的可能性。 而韦迪在接受采访时,对于马拉多纳来华执教一事反问道:“你们觉得可能吗?聘请马拉多纳的价钱足够请好几个外教,因此这个问题很不现实。”其实,当时足协与马拉多纳交流,也是出于当时特定背景下礼节性的问候,老马在世界杯上执教的阿根廷0-4惨败于德国,让他的执教能力受到严重质疑。
3010    [세상만사] - "一代一生" 댓글:  조회:5429  추천:0  2020-11-27
  马拉多纳的一生: 成于足球,毁于毒品 2020年11月26日  来源:阿基米德FM     2020年真是魔幻的一年。 年初,美国篮球巨星科比去世的消息震惊了全世界;临近年末,世界足坛传奇马拉多纳因病离世,一代球王的生命在60岁划上休止符。 回顾马拉多纳的一生,他因足球成为二十世纪最伟大的球员,他拥有精准的脚法、娴熟的带球技术,在任何一支球队,他都是绝对灵魂。 但也正是因为足球,在他功成名就后,阿根廷传奇沉湎于酒精、毒品和药物,最终让他在年仅60岁时,就划上了生命休止符。 马拉多纳,全名迭戈·阿曼多·马拉多纳(Diego Armando Maradona),1960年10月30日出生于布宜诺斯艾利斯一个贫民窟家庭。 在他出生之前,马拉多纳已经有了4个姐姐,重男轻女的父亲渴望家中有一个男孩。在马拉多纳降生后,他并没有得到父亲格外的关怀。为了养活一家7口人,他的父亲没有时间休息,每天开渡船运送家畜,并在化工厂干活,生活十分艰辛。 从小,马拉多纳就喜欢踢球,全家人没有想到,足球改变了全家人的命运。 1970年,10岁的马拉多纳来到阿根廷青年人俱乐部试训,成功入选。 15岁时,马拉多纳与阿根廷青年人队正式签约,球队在靠近球场的地方为马拉多纳租了一间小公寓,从那时起,全家人逐渐摆脱了贫困。 搬家那天,马拉多纳在新家门口深深亲吻了父亲的脸,那时的他,仍带着纯真的感情。 1975年10月,年仅15岁的马拉多纳完成了他在阿根廷甲级联赛的处子秀,也从此开始了他在球场上的传奇生涯。 1977年9月,马拉多纳率领阿根廷队获得世界青年足球锦标赛冠军。 1978年,马拉多纳以26个进球成为阿根廷甲级联赛联赛历史上最年轻的最佳射手,年仅17岁。 马拉多纳出色的球技吸引了欧洲足球俱乐部的目光。 1982年7月,马拉多纳以创纪录的900万美元转会至西甲球队巴萨;1984年7月,马拉多纳以750万美元转会费加盟意大利那不勒斯队。 在那不勒斯,他帮助球队一支保级弱旅变身意甲冠军,拿下欧洲联盟杯冠军,也捧回了意甲最佳射手金靴奖。 1985年11月3日,在马拉多纳刚刚转会那不勒斯不久,球队做客尤文图斯主场,马拉多纳在比赛中踢进了一个任意球,这个进球改变了那不勒斯,也改变了意甲今后的格局。 那场比赛,一共有5个那不勒斯球迷当场昏迷,2人犯了心脏病。 在那之后,马拉多纳被彻底封神,那不勒斯球迷整夜蹲在他的家门口,马拉多纳被视为上帝般的人物。 1986年6月,马拉多纳在墨西哥世界杯小组赛上,上演了帽子戏法。 四分之一决赛,阿根廷对阵英格兰之战,马拉多纳先是用“上帝之手”打入一球,然后又连过六人,攻入一球。 在世界足球历史上,马拉多纳的“上帝之手”成为永恒的谜团和经典。 当时,马拉多纳用手球进攻得分,却未被裁判发现。虽然英格兰极力争辩,但裁判依旧宣布进球有效。马拉多纳则宣称进球“一半是上帝之手,一半是马拉多纳的脑袋”。从那之后,“上帝之手”成为足坛名词。 这场比赛还有另外一层含义。 四年前的马岛战争,英国派遣海军在阿根廷家门口将阿根廷打败,但马拉多纳却率领阿根廷队在球场上羞辱了英国人,他也就此成为整个国家的民族英雄。 1986年世界杯,是马拉多纳一生的转折点。因为在那一年,他首次碰到了将他彻底毁灭的毒品。 彼时,马拉多纳带领意甲球队那不勒斯在欧洲赛场屡创奇迹。在接受采访时,记者曾问马拉多纳,那不勒斯对你意味着什么? 20多岁的马拉多纳说:“我的家。这里是我的家。” 那时的马拉多纳绝不会想到,在那不勒斯,他成为了神,也是在那里,他陷入了犯罪的深渊。当地黑手党将毒品触角伸向了马拉多纳。 在受邀参加了一场黑手党的家庭聚会后,马拉多纳开始接触毒品,并陷入了美色。 据英国导演阿斯弗拍摄的纪录片《迭戈-马拉多纳》揭露,只要马拉多纳开口,毒品就会按时按量送到他的公寓门口,马拉多纳沦为黑道家族的工具。 那不勒斯俱乐部为了遮丑,一开始没有让警方抓到马拉多纳的把柄,但也是从那时开始,他与那不勒斯俱乐部的蜜月关系走向了破裂。 1990年意大利世界杯,马拉多纳率领阿根廷在半决赛、也是在那不勒斯的主场给了意大利队致命一击,马拉多纳成为那不勒斯这座城市的罪人。 1991年,没有了俱乐部庇护的马拉多纳在赛后药检中被查出服用可卡因,意大利足协发布15个月禁赛令。 同年,警方在他的住所发现了毒品,马拉多纳被捕入狱。 走下神坛的马拉多纳参加了1994年美国世界杯,因为被指控服用兴奋剂,马拉多纳被驱逐出球场,他破口大骂,但无力回天。 1997年10月29日,迭戈·马拉多纳正式宣布退役。 退役后,马拉多纳当过阿根廷国家队的教练,也试图在球场东山再起,但他依然离不开酒精,毒瘾也很难戒掉。 由于常年生活不节制带来的健康原因,马拉多纳多次因高血压和心律失常紧急入院,并于2005年接受了胃部手术。近年来,马拉多纳健康状况越来越差,去年曾出现短暂昏迷、胃出血等重症疾病。 2020年11月25日,马拉多纳在家中因心脏骤停不幸去世,年仅60岁。 一代球王走了。 他的一生是传奇的一生,也是令人惋惜的一生。毒品毁了马拉多纳,也给世人敲响了警钟。 =====================================/// 1986年,墨西哥阿兹台克体育场,四分之一决赛,阿根廷遇到了英格兰。 赛前,比赛气氛空前紧张。足球、政治与社会的结缘,从来不是一件新鲜的事。但是在1986年之前,似乎从来没有任何一场体育比赛,能像当年世界杯这场比赛一般,引起全世界这么多的关注。毕竟,英阿的马岛战争刚刚过去4年,当时阿根廷人的想法,就是一定要借他们最热爱的足球,雪马岛之耻。阿根廷人最擅长足球,而在足球的起源地英格兰,同样重视足球。 那场比赛的过程,已经不用做太多详细的叙述。而马拉多纳则在五分钟之内,充分展现了「魔鬼」与「天使」两张不同的面孔。 一记「上帝之手」,马拉多纳高高跃起,用手把球「砸」入门中。尽管英格兰队不断抗议,但是保加利亚的边裁并未改判。这位保加利亚裁判于数年前去世,这次吹罚也被永远被钉在了「昏哨」的耻辱柱上,造成了一桩世界足球史上最没有悬念、又极富戏剧性的冤案。确实,英格兰人冤到了家,但是好像全世界,都站在了阿根廷人这一边。 「上帝之手」的瞬间 而在这个进球仅仅过去4分钟后,马拉多纳便连过五人,打进了那一粒「世纪进球」。 视频:让我们第一千零一次重温「连过五人」   Loaded: 100.00%     Replay Current Time 0:25 / Duration 0:25 Fullscreen Mute   亲,播放结束了 重播     自动播放 一般来说,伟大的进球大概有三种类型:团队协作、致命一击和华丽运球。而每一种进球,都有一个「官方」的伟大代表:比如,1970年世界杯,卡洛斯-阿尔贝托对阵意大利的进球;1988年欧洲杯,马尔科-范巴斯滕对阵苏联的进球;以及,1986年世界杯,迭戈-马拉多纳对阵英格兰的进球。 一个细节是,对阵英格兰的这粒伟大进球,最终马拉多纳过掉了英格兰门将希尔顿,然后打空门得手。但马拉多纳后来透露,在那一刻,他其实回想起了六年前在温布利对阵英格兰友谊赛中的类似瞬间——那一次,他试图侧身直接将球踢过门将克莱门斯,但却把球踢出了远门柱。在赛后当晚,马拉多纳的弟弟雨果曾打电话给他,告诫他英格兰门将已经做好了准备,他应该过掉门将再完成射门。 当时,马拉多纳一度对自己10岁弟弟的指手画脚非常愤怒。但在1986年的世界杯舞台上,当他再次单刀直入,面对英格兰的门将时,他没有再次浪费机会,而是「依照」弟弟雨果的建议,过掉了门将,将球稳稳送入了球网。 这粒进球的历史意义,也无需我们再多说。很多人对于足球的理解,都是由这个球而开始的。回到比赛现场,连丢两球后,虽然鲍比-罗伯森给英格兰进行了变阵,并通过莱因克尔扳回一球,但最终无力回天,遗憾失利。 这场比赛结束之后,阿根廷队进入到半决赛。即便如此,阿根廷人已经觉得自己赢得了世界,在马岛失败之后,他们所期盼的就是这样的一场爆发。 所以,或许马拉多纳才是复仇者联盟真正的「盟主」。在阿根廷球迷的心目当中,为什么他能有这么高的历史地位,不仅仅是因为他伟大的战绩,伟大的球技,更因为在如此特殊的历史政治背景下,所有激烈的民族情绪,都融汇到了阿兹台克这样一个著名的体育场,然后被马拉多纳用最极端也最过瘾的方式,彻底宣泄了出来。   ================================/// 2020年11月27日,一代足球传奇球星马拉多纳正式被下葬。马拉多纳的灵柩在阿根廷总统府玫瑰宫进行完遗体告别仪式后,被灵车运到距离布宜诺斯艾利斯市中心约40公里的比斯塔公墓进行下葬仪式,他已过世的父母也在该公墓安息。在从通向墓地的路上,大批阿根廷民众聚集在路边,为马拉多纳送行。抵达墓地后,大约30名亲朋出席了简短的下葬仪式,其中包括他的四名兄弟姐妹、四个孩子、前妻克劳迪娅、前女友奥赫达、意大利驻阿根廷大使朱塞佩-曼佐等人。
3009    [세상만사] - "하늘나라에서 축구하자고..." 댓글:  조회:2932  추천:0  2020-11-27
  上帝收回了他的手: 纪念马拉多纳 2020年11月26日  来源:南方人物周刊     迭戈·马拉多纳 1960年-2020年 对如今在商业化道路上越走越远的现代足球来说,马拉多纳这样桀骜不驯独树一帜的性格和精神,是堪比他球技的同样让人怀念的特质 本文首发于南方人物周刊 文 | 靴室笑谈社 邓延鑫 编辑 | 陈雅峰 全文约2813字,细读约需7分钟 2020年11月25日注定将是世界足坛黑暗的一天。一个月前刚刚过完六十大寿的马拉多纳,因心脏骤停去世,享年60岁。 无论是场内还是场外,马拉多纳都是一名极具争议性的人物:1986年世界杯四分之一决赛对英格兰的比赛堪称马拉多纳人生的缩影:他用左手打进本应被吹无效的违例进球,被球迷和媒体痛骂“骗子”、“无耻”;而四分钟后他连过五人完成破门,所展现的球技天下无双,是球迷心中当之无愧的球王,更是以一敌百的孤胆英雄……马拉多纳的传奇一生,值得人们仔细回味。 1986年6月22日,1986年墨西哥世界杯1/4决赛阿根廷2-1击败英格兰,马拉多纳连过五人破门得分 图/视觉中国 熟悉马拉多纳的朋友,在震惊之余,应该对这一消息并不感到十分意外。自退役以后,马拉多纳的健康状况就一直亮着红灯: 2004年,马拉多纳因过量吸食可卡因入院,一度病危; 2005年,马拉多纳接受手术,胃部被切除绝大部分; 2007年,马拉多纳因为肝炎和酗酒再次入院,情况严峻,甚至一个月内三次被传出死讯; …… 而在马拉多纳去世的三周前,他就因为脑部被检测出血凝块而入院接受手术,其医生透露手术十分顺利。 2020年11月5日,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马拉多纳接受脑部手术治疗,球迷在街头祈福 马拉多纳糟糕的身体状况和他混乱且放纵的私生活分不开关系:在80年代效力于巴萨时期,马拉多纳就沾染上了可卡因,而在职业生涯末期,他因食用禁药在1994年世界杯被禁赛; 退役之后,马拉多纳的生活更加没有节制,他的体重一度达到了130公斤,饱受肥胖问题的困扰,直到2005年手术后才有所缓解。 1981年5月30日,阿根廷布宜诺斯艾利斯,21岁的马拉多纳(前中)与父亲(前左)、母亲(前右)在海滩上合影 除此之外,马拉多纳场外丑闻不断:他曾在1994年世界杯期间用气步枪射击记者,导致后者轻伤;在2010年世界杯上,已从球员变为主教练的马拉多纳故意驾车撞倒了摄影记者,并在事故发生后继续辱骂对方。 2010年6月6日,南非比勒陀利亚,阿根廷主教练马拉多纳和队员梅西训练备战世界杯 从旁观者的角度,马拉多纳的这些所作所为跌破道德底线,甚至应遭受牢狱之灾。但作为一名足球运动员,马拉多纳举世无双的球技,却总能让人暂时忘却这些。 足球技艺、身体素质和超强意志完美结合的球王 自出道开始,马拉多纳就是天之骄子,绿茵场上绝对的聚焦点。 18岁时,马拉多纳便带领阿根廷青年队在决赛中击败苏联,夺得世青赛冠军并荣获MVP。 两年后,马拉多纳转会博卡青年,在40场比赛中打进28球,夺得了人生中第一个联赛冠军。 1982年,马拉多纳以创足坛转会费纪录的12亿比塞塔(900万美元)的身价加盟巴塞罗那 在1982年世界杯及红蓝生涯短暂的失意后,马拉多纳很快就走上了职业生涯的巅峰。1984年,马拉多纳来到了素有“小世界杯”和“世界第一联赛”之称的亚平宁,加盟了上赛季距离降级区仅1分的那不勒斯。 效力那不勒斯的七年间,马拉多纳将这支弱队变成欧洲顶级强队,率队夺得了两次意甲冠军和一次欧洲联盟杯的冠军,而他本人也荣获两次意甲金靴。 1986年6月29日,1986年墨西哥世界杯决赛阿根廷3-2击败德国,马拉多纳高举世界杯奖杯庆祝夺冠 最让人称道的还是马拉多纳在1986年世界杯上的表演:在七场比赛里,马拉多纳打进五球、送出五次助攻,并完成了122次一对一成功。 这样豪华的数据甚至还不足以体现马拉多纳在场上的实际影响力:除了对英格兰连过五人的“世纪进球”外,半决赛对比利时的第二球同样是连过数人后的破门。而这粒进球虽然在知名度上远不如前者,但在实际难度上并没有很大差距:前者主要是沿着边路完成的突破,而后者则是真正意义上的从中路的直捣黄龙,并且比利时防守球员已经落位。 1986年世界杯对比利时进球 在决赛中,德国专门派出两人对马拉多纳进行盯防,甚至施行伐木战术,但马拉多纳依然依靠个人能力为队友创造进球:阿根廷的第一粒进球是任意球,来自于马拉多纳在边路策动队友后的被犯规,第三粒进球则是马拉多纳在中圈以手术刀般精准的直塞帮助队友获得单刀机会并破门。 1986年世界杯对德国助攻 即便是1990年状态已大幅下滑的马拉多纳,在世界杯淘汰赛对巴西依然奉上了类似的凭借一己之力完成的表演:80分钟时在中场线后带球从中路狂奔近50米,连过三人为老搭档卡尼吉亚送出单刀,助后者终结比赛。球迷们也不禁畅想,若半决赛卡尼吉亚不停赛会怎样…… 1990年世界杯对巴西助攻 若不被对手特别针对,马拉多纳能以一己之力连过数人亲自进球终结比赛;即便被对手严加看管甚至被踢得人仰马翻,马拉多纳也能助攻队友完成致命一击,这就是马拉多纳在世界杯无与伦比的统治力。 出道以来,马拉多纳就是进攻型中场。在巅峰期,马拉多纳在球场上踢球的侵略性更强,除了带球向前突破外,经常快速后插上进入禁区并寻求身体对抗,起到了实际的前锋作用。 在沉迷毒品及受伤病困扰而状态下滑的后期,马拉多纳跑动衰减,但仍能依靠精湛的技术和强壮的身体稳住球权,而在中圈附近的组织和节奏感更加游刃有余。即便是1994年临近退役的马拉多纳,依然在禁赛前的两场小组赛中奉献一球一助攻,是阿根廷当仁不让的中场定海神针。 1994年美国世界杯小组赛D组阿根廷4-0击败希腊,马拉多纳和雷东多庆祝进球。这也是他在世界杯上打入的最后一个进球 图/视觉中国 相比阿根廷小老弟、大家更为熟悉的梅西,马拉多纳拥有同样出色的传射脚法、脚下技术和过人频率,而且拥有更出色的体能、速度、对抗和处理球的多样性,这让他在世界杯上一举封神。 相比于如今鼓励进攻的商业化的年代,80年代的足球充满了背后铲球、侧踹、剪刀脚……马拉多纳在一次次被铲倒后又爬起,又再次被铲倒,身体极度扭曲之下却仍能护球控球或将球摘出去。 1990年8月7日,1990年意大利世界杯决赛,阿根廷0-1不敌德国,马拉多纳试图突破布赫瓦尔德(左一)和马特乌斯(右二)的防守时被绊倒 图/视觉中国 在这样恶劣环境下一路杀出并最终称王的马拉多纳,真正达到了足球技艺、身体素质和超强意志三合一的境界。 1986年6月22日,1986年墨西哥世界杯1/4决赛阿根廷2-1击败英格兰,马拉多纳以“上帝之手”攻入第一球 图/视觉中国 桀骜不驯的矛盾体 在绿茵场上,马拉多纳是天生的领袖,无双的球技加上钢铁般的意志让他成为更衣室当仁不让的队魂;而在球场外,马拉多纳也堪称阿根廷甚至拉美人民的精神图腾。 在1986年世界杯前,阿根廷刚刚输掉了马岛战争,国内经济一片萧条,民众叫苦不堪。英阿两国也因此结成了世仇,阿根廷国内急需一针强心剂。 在世界杯这样和平年代的战争中,阿根廷以2:1击败了英格兰,两粒进球全都来自于马拉多纳,并且以“上帝之手”和“世纪进球”这样惊世骇俗的方式,这让他直接成为了阿根廷人民心中的英雄。 1986年世界杯决赛对英格兰进球 马拉多纳身上有两处最著名的文身:右手手臂上文上了切·格瓦拉,左腿小腿上则文上了卡斯特罗,两人都是反帝国主义、关心底层人士的拉美革命家,他们也是老马一生的偶像。 场外的马拉多纳做风硬派,敢爱敢恨,多次在公开场合炮轰美国在拉美国家的霸权主义:就在一年前,他公开对委内瑞拉领导人尼古拉斯·马杜罗表示支持,并谴责美国的非法干预。这让马拉多纳深受第三世界和底层人民的爱戴。 甚至在2010年世界杯对韩国开赛前,狂热的阿根廷球迷更将他的头像与政治家切·格瓦拉放在一起。马拉多纳的影响力显然早已超出足球之外。 在世界杯阿根廷对英格兰的比赛之后,主流媒体将马拉多纳称为“一半天使,一半魔鬼”的矛盾体。但在笔者看来,马拉多纳无论在场内场外,无论是否退役,他始终如一:纯粹,真实,敢于抗争。 2016年6月9日,法国巴黎,马拉多纳和贝利(右)出席传奇足球赛 马拉多纳的青年队教练梅洛蒂曾总结道:“他们更接近‘我’的理念而不是市场理念。一种慷慨的、开放的、为人民着想的足球,为自己的代表性和归属性骄傲的足球。还存在一种足球,那种足球漠视球迷,只对结果感兴趣,我不喜欢。”而对如今在商业化道路上越走越远的现代足球来说,马拉多纳这样桀骜不驯独树一帜的性格和精神,是堪比他球技的同样让人怀念的特质。 ================================/// 上帝之手的受害者! 英门将称马拉多纳一直未道歉,不道德却成荣誉 2020年11月27日  来源:天涯沦落人       近日,60岁的阿根廷球王马拉多纳在他的家中去世,引发了外界极大的关注度,马拉多纳作为足球历史上最伟大的球员注之一,他的影响力是非常大的,所以近期打开电视或者网络上浏览资讯的时候都会被马拉多纳的生前事迹、去世后的葬礼等等新闻刷屏,马拉多纳去世一度长时间登上热搜榜的第一名。 这其中人们在制作马拉多纳生前踢球时期的高光瞬间的时候,总是会提起1986年世界杯那场经典的“英阿大战”,马拉多纳带领阿根廷队以2-1淘汰英格兰队,其中马拉多纳打进两球,先是上帝之手,随后是练过5人创造世界杯历史上最佳进球。这其中“上帝之手”被外界认为是最符合马拉多纳形象的,天使和魔鬼的结合体,在对方眼中是魔鬼,在自己人眼中是天使。 上帝之手受害者是英格兰传奇门将彼得-希尔顿,因为这个球,他所在的球队早早就处于被动中,而这个球也被外界称为是“上帝之手”,马拉多纳职业生涯中最精彩的进球之一,虽然这个球是通过手打进去的。马拉多纳去世之后,希尔顿接受采访的时候谈到了马拉多纳,他表达了自己的哀悼,但也表示马拉多纳这么多年来一直都没有为手球而道歉,这个违反体育道德和规则的行为视为自己的荣誉。 马拉多纳后期和希尔顿之间是有碰见的机会,在两年前,有媒体想要组合希尔顿和马拉多纳见面,不过当时被马拉多纳拒绝了。而希尔顿在接受采访的时候也多次表示自己不会和马拉多纳握手,因为他欠自己一个道歉。 实事求是的讲,马拉多纳的手球因为当时的环境以及后期他带队成功夺冠,所以外界谈到“上帝之手”的时候更多的是赞誉,但如同希尔顿说到的一样,这确实是违反体育道德和规则的行为,不过事情已经过去太多年,而且斯人已逝,相信希尔顿也早就已经释怀了。
3008    [세상만사] - "再見, 球王" 댓글:  조회:2655  추천:0  2020-11-27
  中国足协 发文悼念 马拉多纳去世:致敬!再见,球王 2020年11月26日 09:52:17 来源:中国足协       作为二十世纪最佳球员,世界杯冠军得主,马拉多纳为世界足球做出了巨大贡献,给中国球迷带来了不可磨灭的美好记忆。 马拉多纳的离去,让所有热爱足球的人无比悲痛。 向马拉多纳辉煌的足球生涯致敬!再见,球王 ===================================================   马拉多纳曾寄语中国足球: 如果世界杯没有中国会是个遗憾 2020年11月26日  来源:虎扑     虎扑11月26日讯 北京时间今天凌晨,阿根廷足球巨星马拉多纳不幸逝世。在2017年,马拉多纳曾寄语过中国足球:人们一直都期待能看到世界一流水平的中国球员,如果世界杯上没有中国队是很大的遗憾。 2017年,马拉多纳曾在阿根廷接受采访时表示: 中国是当今世界第二大经济体,国际影响力越来越巨大。同时,作为世界第一人口大国,中国拥有全球最多的足球球迷。在世界杯和国际赛场上,人们一直期待着看到具有世界一流水平的中国球员的身影。如果世界杯上没有中国队是很大的遗憾。中国人口众多,我相信中国队一定会能在不久的将来,在世界杯的舞台上大放光彩。我也相信,我能够对中国足球发展有所帮助。 让我们一起助阵中国足球发展!我们一起努力培养出优秀的中国的青少年球员,让中国拥有与其大国形象所匹配的足球队。中国人口众多,但现在还缺少具备世界一流水平的球员。我相信通过我们的努力,一定能培养出优秀的青年球员,组建一支能够争夺世界冠军的强大的中国国家队。 =============================///   梦回1996丨 马拉多纳在工体,他没有球星的架子 2020年11月26日  来源:新京報     博卡青年时期的马拉多纳。图/视觉中国 新京报讯(记者 周萧)“他很平易近人,没有球星的架子。即使是传接球这样简单的动作,也可以看出他与其他球员的不同。”这是老国安人对于马拉多纳的印象。1996年7月25日,马拉多纳随博卡青年来华,在工体与北京国安进行了一场友谊赛,那年的球王36岁,在赛场内外都给人们留下了鲜明记忆。 北京市足协常务副主席兼秘书长刘军当时还在北京国安俱乐部任职,博卡青年来华前,大家对于球王的想象是“高高在上的”,但两支球队赛前共同参加的欢迎晚会让人们改变了看法。尽管语言不通,但“老马”在晚会上乐呵呵的。刘军回忆说:“有很多人找他签名、合影,他的态度都特别好,很容易接触,所以我们当时对马拉多纳的印象都非常好。” 7月25日赛前,站在马拉多纳对面“挑边”的北京国安队长是魏克兴,作为现在北京中赫国安俱乐部的技术部负责人,老魏对那场比赛的情景历历在目:“赛前金指(时任国安主帅金志扬)没有特意安排专人盯防、限制马拉多纳,大家在比赛里就是正常对位。因为马拉多纳是球王,是那时候我们的偶像,所以大家都希望能在比赛中看到他充分发挥,共同为球迷献上一场精彩的比赛。” 在那个时代,马拉多纳的比赛是中国球员必看的,魏克兴形容为“大家希望能极力地去学习、模仿”。来华与国安进行友谊赛时已经是马拉多纳球员生涯末期,国安队员们本以为他是凭借经验在博卡“传帮带”,但同场竞技时,他的崇拜者兼对手还是立即发现了不同。在魏克兴的印象中,“即使是传接球这样简单的动作,他做出来都和其他球员不一样。他对场上的观察、传球的想法确实与众不同,或许这就是球王的风采吧,只可意会不可言传。”国安1比2输掉了那场比赛,当时初出茅庐的贝隆打入两粒进球,“那时候人们都还不知道贝隆呢,我记得他进了个任意球,当时我们都以为是马拉多纳罚,结果就看到马拉多纳后撤了,贝隆打进了那个球。”魏克兴说。 /新京报记者 周萧 ==================================///   球王马拉多纳的最后时光:去世前还在散步,遗言遭曝光 来源:董球姐  体育 最近球王马拉多纳逝世的消息是霸屏了很多的社交媒体,这样一个轰动性的大新闻自然引来了很多人的关注,那么球王马拉多纳的最后一天是如何度过的?《奥莱报》将球王最后一天的行程公布了出来。 在很早之前医生就查出马拉多纳的头部有血液凝块,在11月3号马拉多纳就接受了头部手术,手术非常的成功。在医院静养了一周之后,他回到了自家休养,不过为了防止意外的发生,医院还是在他家附近准备了救护车。 11月25号是马拉多纳逝世的一天,在早晨60多岁的马拉多纳如往常一样先是吃了个早饭,然后外出散步。在散步归来之后,他选择躺在床上继续休息,而在休息前马拉多纳还和侄子说:我感觉不是很好。说完这句话之后,马拉多纳就躺在床上睡着。侄子也没有太过在意,因此等到马拉多纳睡着后也离开了,而这句话也成了球王的遗言! 等到了中午,马拉多纳的护士叫他起来吃药,可是护士却发现根本就叫不起来,而这个时候是阿根廷中午12点50分。护士发现马拉多纳叫不醒后,立刻通知救护车将他送到了医院。很快救护车就将马拉多纳接到了医院之中进行抢救。 马拉多纳在进入到医院之后,医生采取了很多方式对其进行抢救,但是最终还是没能将马拉多纳抢救回来。马拉多纳心跳停止是在13点2分,距离护士发现马拉多纳叫不醒只过去了12分钟的时间。从昏迷不醒到死亡,整个过程只经过了12分钟。就这样一代球王马拉多纳结束了自己的一生。
3007    [세상만사] - "綠茵場巨星" 댓글:  조회:2588  추천:0  2020-11-27
  马拉多纳去世前说的 最后一句话…… 2020年11月26日  来源:红星新闻     北京时间11月26日凌晨,阿根廷一代传奇巨星马拉多纳溘然长逝。此前,60岁的马拉多纳身体状态一直不好,今年11月上旬还接受了头部手术。可以说,这位阿根廷球王近来无论身体还是心理,都处于一个相当糟糕的状况。 据《号角报》报道,阿根廷当地时间11月25日,马拉多纳在位于阿根廷蒂格雷的家中吃了早餐,然后对侄子约翰尼·埃斯波西托说了最后一句话:“我感觉不舒服。”打算再次躺下休息。照顾他的护士立即打电话叫救护车。出于对“老马”的健康状况担忧,他的家人早就在附近安排了多辆救护车待命,但尽管多达9辆救护车在现场帮忙,依然无法阻止马拉多纳离开。阿根廷当地时间11月25日中午13时02分,马拉多纳抢救无效,离开人世,一代球王就此走完了他最后的人生。 阿根廷检察官约翰·布罗亚德向阿根廷媒体表示,在确定死亡后,马拉多纳的尸体被带到附近的停尸房进行尸检,他说:“马拉多纳当地时间下午12点左右死亡。法医警察下午四点开始工作。没有发现任何犯罪或暴力的迹象。我们可以说,一切都指向心脏骤停的原因。” 阿根廷足协在其社交媒体官方账号发文,通过其足协主席塔皮亚对阿根廷的传奇球星马拉多纳去世深表哀悼,并表示,马拉多纳将永远活在我们心中。 11月25日上午,阿根廷总统府发布公告,因马拉多纳去世,即日起阿根廷全国进入为期三天的哀悼期。 马拉多纳的突然去世,震惊了足球圈,同时也让很多人感到无比的难过,马拉多纳逝世后,全世界都在用自己的方式悼念这位伟大的绿茵场巨星。国内外的球迷、球星、媒体等都发文表达了遗憾之情。 葡萄牙巨星C罗第一时间对这位传奇前辈送上了自己的悼念。尽管马拉多纳是罗总裁“一生之敌”梅西的同胞,但这丝毫无法阻止C罗对马拉多纳的尊敬。C罗在个人社交账号上晒出了自己与马拉多纳的旧照后,动情地写道:“今天,我向一位朋友说再见了,而世界向永恒的天才告别。历史最佳之一。无与伦比的魔术师。你离开得太早了,但是留下了无止境的遗产和永远无法填补的空白。安息吧,你将永远不会被遗忘。” 阿根廷球星梅西也在个人社交账户上发文,“今天对于所有阿根廷人和足球界来说都是非常难过的一天。马拉多纳离开了我们,不过他也将永远和我们在一起,马拉多纳是永恒的。我会记住所有与他相处的快乐的日子,在此向他的家人和朋友表达慰问。愿他安息。” 罗纳尔多则写道:“对于球迷而言,这是多么悲伤的一天。我们的运动失去了最好的偶像之一,我也失去了伟大的朋友。从儿时起,我就从他身上汲取灵感。你的离开让人惊讶,但我还是要感谢能在生命中与你相逢。你的传奇是永恒的,你在球场上的魔法是永不磨灭的。安息吧朋友,希望上帝可以抚慰你的家人和全世界的球迷。” 而与马拉多纳并称为球王的巴西传奇贝利,也第一时间写道:“真是可悲的消息,我失去了一个好朋友,世界失去了一个传奇。我有很多话想说,但就目前而言,愿上帝给他的家庭成员赐予力量。我希望未来有一天我们能在天上一起踢球。” ============================================================/// 官方: 德甲德乙本轮集体为马拉多纳默哀,球员臂缠黑纱 2020年11月27日  来源:虎扑       虎扑11月27日讯 据德国足球职业联盟的消息,本轮德甲和德乙联赛将会在开赛前为周三去世的足坛传奇马拉多纳默哀一分钟。 除了默哀仪式,德甲和德乙球员都将在本轮的联赛中臂缠黑纱比赛。 (编辑:姚凡) ====================================///   球王离世!享年60岁太传奇,退役23年生活“丰富”,他满足了 来源:658可乐体育  体育 世界球王马拉多纳因心脏停止跳动而死,这是媒体对他的噩耗进行报道的结果。多家媒体证实,阿根廷国家队对此表示哀悼,梅西、贝利、C罗等球员,包括那不勒斯、皇马等球队都集体表示哀悼!球王的影响力有多大,他的精神感染了多少球员、球迷! 在1960-2020这段时间,球王刚刚离开的时候已经60岁了,作为运动员,特别是这个级别的运动员,60岁的享年确实有点少,就像现在的贝利,80岁了还很健康。但仅仅就球王个人而言,他在60岁的时候已经太具有传奇色彩了,他的伤势也说得很多,不包括球场上的伤。到2020年11月,马拉多纳在一家私人专家诊所接受了一次颅内血肿检查,之后仍在医院接受手术治疗,3日晚,他在一家私人专家诊所接受了紧急手术,医生说他已经恢复了健康。术后出现了短暂的知觉混乱状态,医生们认为这种状态与脱瘾症状有关,所以马拉多纳的治疗将继续几天。 退役后的老马也因饮食过多而导致肥胖,在2005年,球王的体重一度达到121公斤。而且是患高血压在2004年,因病住院,生命垂危。回到2000年,布宜诺斯艾利斯的心脏病专家卡洛斯.阿尔瓦雷兹提醒老马,他的心脏功能只有以前的38%,他在世界杯时有过心脏病发作,这次他也是心脏骤停,他为什么要这样,其实就是喝了些不该喝的东西! 除此之外,球王这么多年,私生活也很乱,在打球的时候,其实就吃了不该吃的东西。而且他退休23年了,还过着丰富的生活!最开始马拉多纳的前妻叫克劳迪娅,但他有很多女朋友,甚至比他的女朋友都大40岁!除此以外,马拉多纳曾经有很长一段时间滥用毒品和酒精,可以说是对人体危害最大的东西,他都试过了!必须说,他的生活真的很“充实”! 他尝试的那些东西,可以说是长年在侵蚀着他的身体,尽管他的身体很棒,身体也很好,但还是顶不住这种不自律。但老实说,马拉多纳也是够本的,应该享受的都享受了,已经退役23年了,也足够让他享受了,现在他也算是成功了!最终祝福球王,也希望后场球员更自律!    
3006    [세상만사] - "畵上句號" 댓글:  조회:2451  추천:0  2020-11-27
国际足球 >      法新社: 马拉多纳于当地时间周四下葬, 与其父母同葬在一起 2020年11月26日  来源:虎扑     虎扑11月26日讯 据法新社报道,马拉多纳的葬礼将于当地时间周四进行,届时他将和他的父母下葬在布宜诺斯艾利斯的同一个公墓。 当地时间11月25日,阿根廷球王马拉多纳与世长辞,生命的长度在60岁画上了句号。他的遗体也将于当地时间11月26日在布宜诺斯艾利斯的一座公墓下葬,据悉他将和他的父母葬在一起。 (编辑:姚凡) =============================/// 世界为你哭泣!回顾马拉多纳的球王之路 2020-11-26 01:46IC photo           131 北京时间11月26日消息,世界足坛陷入哀伤。迭戈·马拉多纳因心脏骤停抢救无效逝世,享年60岁。 出生于1960年10月30日的马拉多纳,是上世纪八九十年代的世界最佳球员,被认为是最经典的10号选手,也是公认的唯一可与贝利并称“球王”的球星。 身材矮小的马拉多纳拥有常人难及的球感和技术,而桀骜不驯的“混不吝”性格令他的形象充满了真实感。         ======================================/// 爬长城+蹬三轮+与赵本山同框 回顾马拉多纳的中国情缘 2020-11-26 19:21东方IC           13 北京时间11月26日,阿根廷当地时间25日上午,球星马拉多纳在其位于阿根廷的家中突发心梗去世,享年60岁。马拉多纳生前曾多次造访中国,参加过与北京国安、四川全兴的友谊赛,也留下了与赵本山等名人同框的瞬间。2017年接受采访时,马拉多纳曾表示,如果世界杯没有中国队会是个遗憾。2003年11月22日,北京,马拉多纳曾游览长城。          
3005    [세상만사] - "再見, 傳奇!" 댓글:  조회:2532  추천:0  2020-11-27
  噩耗! 马拉多纳去世, 各界伤心悼念“球王”, 私人座驾也被曝光 来源:汽车谈天下  体育 可能许多人对迭戈阿曼多马拉多纳并不熟悉,马拉多纳是阿根廷著名足球运动员、教练员,他被认为是二十世纪最伟大的足球运动员,就连科比都是他的粉丝。 但根据阿根廷多家媒体报道,传奇球星迭戈马拉多纳25日在家中突发心梗去世,享年60岁。 噩耗!马拉多纳去世,各界伤心悼念“球王”,私人座驾也被曝光。 2011年,马拉多纳在迪拜工作,执教迪拜阿尔瓦斯尔俱乐部,成为了迪拜体育荣誉大使,在迪拜他的座驾十分奢华,其中一辆就是宝马i8,这辆车是三缸发动机再搭配电机组成的混动四驱系统,这辆车算得上新能源跑车的代表作之一。它在中国市场售价十分昂贵,最低的也要170多万。 此外,他在迪拜还拥有过一辆劳斯莱斯古斯特,是一款6.6LV12发动机,国内售价也是450万起步。 科比曾盛赞马拉多纳:“马拉多纳是我的偶像,我爱马拉多纳。在意大利的少年时代,当马拉多纳为那不勒斯效力时,我总是会观看他的比赛。” 科比去世时,马拉多纳也曾感慨:“我对科比和他女儿以及同乘人员感到遗憾。再见,传奇!” ====================///       在马拉多纳的葬礼前,一名工作人员偷偷与球王棺椁合影并发到网上,这引发了全阿根廷的愤怒。   这个名叫迭戈-莫里纳的员工将这张合影发到网上,而合影的时候,球王的棺椁还没有盖上。结果,这一行径遭到阿根廷民众的愤怒声讨,莫里纳本人随即被开除,而马拉多纳生前所雇佣的律师,也展开了对他的追责,律师马蒂亚斯-莫尔拉称:“所有对这一懦夫行为有责任的人,都将付出代价。”   莫里纳被开除后,还向马拉多纳的家人发去了道歉信,但对于这一事件的调查仍在继续,有其他三名员工也参与了照片拍摄。   (江岛鸢)
3004    [세상만사] - "上帝之手" 댓글:  조회:2341  추천:0  2020-11-27
  央视凌晨时分报道! 一代球王与世长辞, 在世界范围内引起轰动 来源:988防务观察  体育 央视新闻11月26日消息,据阿根廷多家媒体报道,当地时间11月25日,被誉为“球王”的马拉多纳在其位于阿根廷的家中突发心梗去世,10月30日,马拉多纳刚过完自己60岁的生日。阿根廷总统府随后发布公告,宣布从即日起,阿根廷全国进入为期三天的哀悼期。 但其家人透露,马拉多纳的术后恢复效果一直不甚理想,曾多次出现紧张、焦虑情绪,家人提议将其转移至古巴进行治疗,但还没来得及实施,25日上午马拉多纳突然心脏骤停,当地9辆救护车紧急前往救治,但终因其病情太重未能救治成功。阿根廷总统府发布公告证实了马拉多纳的去世消息,并表示深深的哀悼,称马拉多纳将永远活在人们心中。 央视凌晨时分对消息进行了报道 悼念活动蔓延到了意大利、英国、中国等马拉多纳曾停留驻足过的地方。央视也在凌晨对消息进行及时报道,确认了“球王”马拉多纳离世的消息。据中国驻阿根廷记者报道,马拉多纳的葬礼被安排在举办过阿根廷前总统葬礼的大厅,当地媒体猜测,或有数百万的民众前往现场与马拉多纳做最后的告别。值得注意的是,这对于总人口不过4000多万的阿根廷而言,不是一个小数目。 2017年是中国和阿根廷建交45周年,3月对中国足球有自己了解的马拉多纳接受中国记者采访时表达了自己对世界杯上缺少中国对的遗憾。他认为,在不久后的将来,中国队一定会大放异彩,他将努力为中国足球的发展提供力所能及的帮助。 此外马拉多纳的伟大之处不仅限于足球。俄罗斯卫星通讯社报道称,委内瑞拉总统马杜罗在马拉多纳辞世后发了一条推文“坦白”,在今年1月,马拉多纳曾与马杜罗进行最后一次碰面,在加拉加斯的晚饭期间,他们讨论了“粮食问题”,马拉多纳在为一些给委内瑞拉人民运送粮食的秘密行动中,提供了难能可贵的帮助。
3003    [세상만사] - "축구의 神" 댓글:  조회:2536  추천:0  2020-11-26
시사상식사전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이자 전 축구감독으로, 1982년부터 1994년까지 4차례 월드컵에 출전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1986년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준우승을 이끌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브라질의 펠레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외국어 표기     Diego Armando Maradona     출생-사망     1960.10.30 ~ 2020.11.25   디에고 마라도나(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 빈민가에서 3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으며, 풀네임은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Diego Armando Maradona)'이다. 어려서부터 축구공과 생활한 그는 1976년 15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7년 최연소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며 '축구신동'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특히 1979년에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U-20 월드컵)에서 6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를 6전 전승 우승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1981년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 시즌 첫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그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82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를 거쳐, 1984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SSC 나폴리로 이적했다. 1987년 SSC 나폴리 사상 최초의 세리에A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1989년 UEFA컵우승과 1990년 세리에A 우승을 거머쥐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1992년에는 스페인의 세비야 FC로 이적했으며 이후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1993년부터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활약했고, 1995년부터는 다시 보카 주니어스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1982년부터 1994년까지 4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아르헨티나의 1986년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핸들링, 이른바 '신의 손'으로 골을 기록해 논란이 되었다.(당시 마라도나는 해당 골에 대해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4분 후 잉글랜드팀 수비수 6명을 제치고 월드컵 사상 최고로 꼽히는 골을 성공시키며, 멕시코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그라운드 밖에서의 사생활은 온갖 기행과 추문, 마약 복용 등으로 논란이 많았다. 그는 스페인에 진출한 이후 코카인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기자들에게 공기총을 쏘아대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도중 실시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코카인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15개월 출전정지를 받았으며, 1997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마라도나는 몰락한 영웅으로 은퇴하기는 했지만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서 나오는 순발력과 화려한 드리블, 위력적인 왼발킥으로 그라운드를 평정했고 이에 ▷1960년대 브라질의 펠레 ▷1970년대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에 이어 1980년대를 마라도나의 시대로 평가받게 만들었다.   그의 조국인 아르헨티나는 2001년 보카 주니어스의 홈 경기장인 라 봄보네라에서 마라도나의 은퇴 기념 경기를 열어주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은퇴 이후 우루과이와 쿠바를 오가며 약물중독 치료를 받았는데, 2000년과 2004년에는 약물 과다복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심장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1994년과 1995년에는 각각 아르헨티나 프로축구팀인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2개월), 라싱 클럽(4개월)의 감독을 지냈으며 2008년부터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선발이나 전술 운영 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며, 리오넬 메시·곤살로 이과인·카를로스 테베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포진해 있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경기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로 인해 2010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1년에는 UAE(아랍에미리트) 리그의 알 와슬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저조한 성적으로 구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2012년 7월 경질되었다. 한편, 마라도나는 2020년 11월 25일 심장마비로 인해 6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마라도나는 11월 초 만성 경막하혈종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수술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수정일 2020. 11. 26. 관련이미지 6                                 이미지 갤러리 출처: 축구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디에고 마라도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마라도나 별세에 메시 "디에고는 영원할 것"... 호날두 "영원한 천재와 작별" 2020년11월26일  마라도나 별세에 각계각층 애도 물결 펠레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공 찰 것" 前 소속팀 나폴리 "팀과 도시에 엄청난 충격"/리오넬 메시 인스타그램 캡처 전설적인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별세소식에 전세계 축구계가 슬픔에 잠겼다. 아르헨띠나 축구영웅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6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진 후 같은 아르헨띠나 출신인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는 인스타그램에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 두장을 올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메시는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아르헨띠나 국민과 축구계에 매우 슬픈 날”이라며 “그는 우리를 떠나지만 떠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디에고는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틀 마라도나’로 불렸던 메시는 2008∼2010년 아르헨띠나대표팀에서 고인과 감독과 선수로 지내며 2010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기도 했다. 이달 초 메시는 마라도나가 뇌수술을 받은 후에도 고인에게 쾌유를 기원한 바 있다. 마라도나와 더불어 전세계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로 꼽혀온 브라질의 펠레도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친구를 잃게 돼 슬프다”며 유족을 위로했다. 지난달 80세 생일을 맞은 펠레는 “분명히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공을 찰 것”이라고 말했다. 뽀루뚜갈 출신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의 트위터에도 고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호날두는 “오늘 나는 친구와 작별했고 세계는 영원한 천재와 작별했다”며 “그는 너무 일찍 떠났지만 무한한 유산과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를 남겼다. 당신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브라질 축구선수 네이마르(파리생제르맹)도 “당신은 우리 기억 속에 항상 있을 것”이라며 “축구가 당신에게 감사한다”고 썼다. 아르헨띠나 축구 대표팀 트위터 영국 전 축구선수 게리 리네커는 “우리 세대 최고의 선수이자 력대 가장 위대한 선수”라며 “축복과 어려움이 함께했던 삶 이후에 신의 손안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프랑스 축구영웅 출신의 미셸 플라티니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프랑스 언론에 “우리 과거의 일부가 저물었다. 위대했던 시절이 그립다”고 추모했다. 과거 고인이 몸담았던 팀들도 애도를 표했다. 아르헨띠나 대표팀은 트위터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며 “축구계 모든 이의 가슴에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라도나가 1984∼1991년 활약하며 클럽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딸리아 세리에A의 나폴리는 고인의 별세소식이 도시와 팀 모두에 “엄청난 충격”이라며 “우리 마음에 영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라도나는 클럽에서 8년간 활약하며 리그 우승과 유럽축구연맹 우승을 이끈 나폴리의 레전드다. 1982∼1984년 마라도나의 소속팀 스페인 바르셀로나도 “전세계 축구계의 아이콘”인 고인의 별세를 슬퍼했다. /종합  ===================================/// '축구전설' 아르헨띠나 마라도나 60세로 별세… 사인은 심장마비 2020년11월26일  이달초 뇌수술 받아…1986년 월드컵서 아르헨띠나 우승 이끌어 '신의 손' 론난도…천재적 재능, 마약 등 구설도 끊이지 않아 2017년의 마라도나 아르헨띠나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0세. 클라린, 라나시온 등 아르헨띠나 언론들은 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뇌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경막하혈종으로 뇌수술을 한 후 11일 퇴원해 회복중이였다. 당시 주치의는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라나시온은 이날 9대의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마라도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60세 생일이던 지난 10월 30일, 자신이 이끌던 팀 힘나시아의 경기를 앞두고 생일 축하를 받았는데 그것이 공개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등번호 10번의 마라도나는 아르헨띠나 축구 전설이자 영웅이다. 브라질의 펠레와 더불어 아르헨띠나를 넘어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1960년 아르헨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태어나 1976년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했으며 아르헨띠나 보카 주니어스,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이딸리아 나폴리 등을 거쳤다. 작지만 단단한 몸에 화려한 드리블, 위력적인 왼발킥으로 그라운드를 평정했다. 일찌감치 아르헨띠나 국가대표유니폼을 입고 A매치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었다. 1990년 선수 시절 마라도나 특히 1986년 메히꼬월드컵에서 아르헨띠나의 우승을 이끌며 일약 국민영웅이 됐다. 당시 마라도나는 월드컵 MVP로도 선정됐다. 은퇴후에는 아르헨띠나대표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아르헨띠나와 중동, 메히꼬 등에서 프로팀을 이끌다 지난해부터 아르헨띠나의 힘나시아 라플라타 감독을 맡았다. 뛰여난 실력에 대한 찬사 만큼이나 론난도 많은 선수였다. 은퇴 이후까지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론난은 '신의 손' 론난이다. 19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띠나와 잉글랜드의 4강전에서 마라도나의 손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이 그대로 골로 인정된 후 마라도나는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말했다. 이후 마라도나는 당시 의도적으로 손을 뻗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악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마라도나에겐 약물스캔들도 이어졌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도중 도핑 테스트에 적발돼 중도 귀국해야 했고 마약 중독 치료도 몇차례 받았다. 마약과 알콜 복용, 비만 등으로 과거에도 심장문제를 겪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기행이나 문제적인 발언들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사생활을 둘러싸고도 말들이 나왔지만 이 같은 론난 속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한 축구실력에 대해서는 론난이 없었다. 축구전설의 별세소식에 아르헨띠나와 전세계 축구계가 슬픔에 빠졌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띠나 대통령은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브라질 펠레는 "분명히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공을 차게 될 것"이라고 애도했고 고인이 몸 담았던 팀 나폴리도 작별을 전했다. 이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도 마련될 예정이다. 뇌수술후 지난 11일 주치의와 함께 한 마라도나 종합
3002    [그것이 알고싶다] - "동물전사" 댓글:  조회:2867  추천:0  2020-11-24
  핵시설에 도마뱀 스파이, 잠수함 탐지 조개…동물전사 뜬다   ​ AI 제치고 다시 뜨는 동물·곤충 전사들 ​ 노르웨이 왕실 근위대의 마스코트인 닐스 올라프가 현역 준장 신분으로 사열을 하고 있다. [사진 영국 국방부]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달 수중 생명체를 탐지수단으로 활용해 적을 찾는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세상 속으로] 사물 인터넷처럼 수중 생물 연결 적군 종류·규모·이동 데이터 수집 미 해군 돌고래·물개로 기뢰 탐지 ‘포유류 함대’ 베트남·걸프전 참전 이스라엘, 돼지로 지뢰 찾기 훈련 “동물 학대” 비난 목소리 높아져 메뚜기 등 곤충 군사용 활용 연구 ​ 지속적 수중 생명체 센서(PALS)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사물 인터넷처럼 수많은 수중 생명체를 연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각각의 수중 생명체가 센서 역할을 해 적 잠수함이나 함정의 이동 경로, 수중환경 변화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리고 연결망을 통해 아군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수중 생명체를 따로 기르거나 훈련할 필요는 없다. 바닷속에 지천으로 널린 물고기나 조개가 탐지기가 되기 때문이다. PALS 프로그램 매니저인 로리 애더네이터는 “미 해군이 현재 갖고 있는 수중 탐지수단은 비용이 많이 든다”며 “수중 생명체의 감지 능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PALS는 결코 황당한 얘기가 아니다. DARPA가 어떤 곳인가.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냉전 때 적(소련)을 기술적 진보로 놀라게 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연구기관이다. 인터넷·컴퓨터 마우스·윈도·GPS 등이 여기서 개발됐다. 김대수 KAIST 생명공학과 교수는 PALS에 대해 “해양동물은 바닷속이 삶의 터전이니 연결만 잘하면 잠수함에 대한 훌륭한 수중 감시장치가 된다”고 설명했다.     미 해군은 돌고래와 바다사자(아래 사진)를 훈련해 기뢰탐지에 사용했다. [사진 미 해군]   미 해군은 돌고래(위 사진0)와 바다사자를 훈련해 기뢰탐지에 사용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 총기와 기계, 전자장비가 발달하면서 전쟁터에서 모습을 감췄던 동물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의 군 당국이 동물을 생명체 무기로 쓰는 데 관심을 가지면서다.      요즘도 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은 개다. 군견은 군에서 폭발물이나 침입자를 찾는 임무를 맡았다. 미군은 군견용 방탄복을 만들었고 낙하산을 타고 병사와 함께 뛰어내리는 공수 군견도 있다.     그런데 군에 입대한 동물은 종류가 훨씬 더 다양하다. 동물·곤충을 이용한 테러 가능성을 연구한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부 교수(한국테러학회장)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로봇은 구동을 위한 배터리가 필요해 크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반면 생명체는 스스로 먹이를 먹으며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 로봇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미 육군의 군견은 특수임무에 투입하기 위해 공수훈련도 받는다. [사진 미 공군]  미 해군은 1960년대부터 돌고래·바다사자 등 해양 포유류가 수중기뢰를 탐지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돌고래의 경우 지능도 있고, 음파를 내보낸 뒤 전방에서 퉁겨져 나오는 것을 통해 해저지형을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기뢰 탐지 훈련을 받은 해양 포유류는 베트남전과 걸프전,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일부 돌고래는 적의 잠수부를 공격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미 해군은 한때 80마리의 돌고래와 10마리의 바다사자 등 해양 포유류 ‘함대’를 보유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돼지나 아프리카 대왕 캥거루쥐를 지뢰 탐지용으로 기르고 있다. 아프리카 대왕 캥거루쥐는 몸길이는 70㎝나 되지만, 지뢰밭을 활보할 정도로 민첩하다. 후각이 뛰어나고 지능이 높아 지뢰 탐지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군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비둘기에 카메라를 달아 정찰에 투입했다. [사진 독일 연방 기록소]  연세대 신경외과교실 장진우 교수 연구팀은 서울대 공대와 함께 쥐의 뇌에 전기신호를 가해 쥐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처럼 마이크로칩을 심거나 전자장치를 이식해 사람이 명령을 내리도록 만든 동물을 ‘사이보그 동물’이라고 한다. 현재는 유선으로 쥐를 움직이지만, 곧 무선 조종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특히 이 연구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지원을 받고 있다. 쥐는 개처럼 냄새를 잘 말고, 몸이 작아 좁은 공간을 이동하는 데 유리하다. 러시아도 대(對)테러 정찰용 사이보그 쥐를 연구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달 자국의 핵시설 주변 도마뱀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미국이 도마뱀을 이용해 핵시설을 염탐할 것을 두려워해서다. 사이보그 동물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011년 1월 자국 영공을 침범한 이스라엘 독수리를 포획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이 비행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이 독수리에 GPS를 달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를 스파이 독수리로 오해했다.     곤충과 동물(아래 사진)을 사람이 조종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사진 영국 과학박물관·DARPA]  곤충(위 사진)과 동물을 사람이 조종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사진 영국 과학박물관·DARPA] ​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동물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쟁에 동물을 동원하려는 시도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영국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진 한 군견은 군견병이 전사하자 몇 시간 후 죽었다. 군견의 사인은 심장마비·발작·스트레스였다. 군견병의 전사 때문에 상심한 게 군견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주요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동물을 전쟁에 이용한 데 대한 윤리적 비난이 커지자 급기야 미 해군은 지난해까지 돌고래·바다사자를 퇴역시킬 예정이라고 2012년 영국 방송 BBC에 밝히기도 했다.     동물 대신 곤충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미국 과학전문기자 에밀리 앤디스는 2006년 DARPA가 “감시 장비나 무기를 실을 수 있는 곤충 사이보그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곤충에 전기자극을 줘 조종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몸길이가 2㎝에 불과한 곤충인 거저리를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워싱턴 대학 세인트루이스 캠퍼스 연구팀은 2016년 8월 원격조종으로 위험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사이보그 메뚜기를 만들고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 메뚜기는 더듬이로 폭발성 화학물질을 탐지한 뒤 바로 그 사실을 무선으로 알릴 수 있다. 연구비는 미 해군 연구청(ONR)이 지원하고 있다. 김대수 교수는 “고등 동물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그래서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곤충을 군사용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연구가 더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지만, 군대의 마스코트로 계급까지 받는 동물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게 노르웨이 왕실 근위대 소속 닐스 올라프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동물원의 임금 펭귄인 올라프는 계급이 준장이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1913년 에든버러 동물원이 열 때 노르웨이가 임금 펭귄을 선물한 사실이 알려져 마스코트가 됐다.  ​     ​   [S BOX] 북한 땅굴 수색 중 숨진 군견 헌트, 무공훈장에 소위 계급 추서   1990년 북한의 제4땅굴 수색작전 도중 폭사한 군견 헌트. 헌트에겐 인헌무공훈장과 함께 소위 계급이 주어졌다. 육군은 헌트 소위 동상도 세웠다. [사진 육군]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군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북한의 제4땅굴에 대한 수색작업이 시작됐다. 육군의 군견 헌트(사진)는 땅굴에 먼저 들어가 폭발물수색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다 목함지뢰를 밟고 폭사했다. 국방부는 장병을 대신해 목숨을 잃은 헌트에겐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인헌무공훈장은 무공훈장 가운데 다섯째로 높다. 헌트는 군견 중 가장 높은 소위 계급도 받았다. 제4땅굴 안보견학장 입구에 동상까지 세워졌다.      군은 헌트처럼 공을 세운 동물에게 훈장도 준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영국의 ‘디킨메달’이다. 1943년 영국의 동물 구호단체인 ‘병든 동물을 위한 진료소’(PDSA)가 전쟁에 기여한 동물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비둘기 32마리와 개 18마리, 말 3마리,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디킨메달을 받았다. 영국군은 당시 무전기 고장을 대비해 통신문을 전달하는 비둘기(전서구)를 키웠다. 한동안 맥이 끊긴 디킨메달은 영국이 이라크전에 참전한 2002년 이후 다시 수상 동물이 나왔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10월 미 육군의 전서구 ‘쉘아미’(친애하는 친구라는 뜻의 프랑스 단어)는 적의 포화를 뚫고 통신문을 본부에 전달해 194명의 목숨을 구했다. 쉘아미는 이 과정에서 한쪽 눈과 한쪽 다리를 잃었고 프랑스 정부는 십자훈장을 수여했다.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홈피)
3001    [그것이 알고싶다] - "군견" 댓글:  조회:3059  추천:0  2020-11-24
군견(軍犬) ​1. 개요 ​ 군견(Military Dog, 軍犬)은 군용견(軍用犬)의 준말이며, 군사적 목적을 위하여 특별한 훈련을 시킨 개로써 경계견, 수색견, 통신견, 지뢰 탐지견(地雷 探知犬), 탄약 운반견 등이 있다. 영어로는 Military Dog, Military Working Dog(MWD), War Dog, 또는 Dogs in Warfare라고도 부른다. 군용으로 사육·훈련 및 관리를 행하는 개를 총칭하는 말이며, 군 부대에서 사육되는 대표적인 동물이고 재산이다. 영어권에서는 K-9, 또는 K9이라는 속어를 쓰기도 한다. 군견(軍犬)은 군부대에서 그냥 대충 키우는 개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발육과 건강을 검진해 선발하여 군 기준으로 무려 13개월동안 철저히 훈련양성과정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충분히 실전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수의 개만이 군견이 될 만큼 엄청나게 뛰어난 군자산이다. 당연히 양성과 유지에 매우 많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엘리트견들. 군견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양성, 훈련, 장비 비용에 훈련부대 유지비용까지 합치면 한 마리에 억소리가 나오는 수준이다. 개 주제에 졸병 목숨값보다 비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현대의 군견(Military Dog, 軍犬)들은 직접 적병들을 공격하는 살상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훈련 성과에 따라 수색, 추적, 경계, 탐지 등 주특기별로 군견마다 특성화하여 배치 및 활용한다. 사람처럼 개들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각 객체마다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IED 같은 폭발물에 의한 피해가 크게 늘어난 현대 전장에서 이런 위험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폭발물 탐지견(Explosive Detection Dog, 爆發物 探知犬)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들이 군견을 살상용으로 사용한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최초의 군견은 정말 살상용이었기 때문이다. 개들을 풀어라 백병전과 추격전에서 인간을 상대로 큰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과거의 전쟁때는 군견이 살상용으로 많이 쓰였다. 현대에는 화기가 주된 무기가 된만큼 군견은 보조적인 역할로 밀려난지 오래다. ​ 군견은 생물이기 때문에 공군의 조종사와 비슷하게 찍어내고 싶어도 찍어낼 수도 없고, 필수적으로 훈련기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비싼 몸이기 때문에 군견을 비효율적인 공격용으로 사용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좋은 군견은 잘 무는 군견이 아니라, 냄새를 잘 맡는 군견이다. 물론 군견이 거수자 제압 등 필수적인 공격 훈련을 안 받는 건 아니지만, 살상보다는 손이나 발 등을 물고 늘어져서 적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훈련한다. 그러나 미군 군견은 베트남전 때까지 직접 전투에 참여해 적병을 물어죽인 경우도 있는 등 아직까지도 비무장한 사람에게 위협적인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은 맞다. 지금은 군용견을 영어로 'Dogs in warfare' 로 칭하지만, 과거에는 'Attack dog' 으로 부른 것도 전투에 쓰였던 시절의 흔적이다. ​ 역사적으로는 이미 앗시리아 유적의 벽화에 무장한 병정과 함께 그려져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당연히 그 시절에는 살상용이다. 일본 전국시대 때 호조(北條)가문과 항쟁 중이었던 오타 스케마사(太田資正)는 개의 목에 편지를 달아 다른 부대에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때문에 인간 전령은 적군에게 붙잡혔지만 개 전령은 잡힌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과거 스페인에서는 군견을 대동하고 다니는 관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콩키스타도르들이 총포 및 철기와 함께 중남미 원주민들에게 또다른 공포를 선사해준 일화로 악명높다. 물론 과거에도 군견이라고 모두 살상용으로 쓰인 것은 아니며, 초소나 성채를 경비하는 경비용이나, 군함 등에서 쥐를 잡기 위한 수렵용 등으로도 많이 쓰였다. ​ ​ ​ 2. 특징 ​ ​군견(Military Dog, 軍犬)을 다른 군 자산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사람과 같은 생물이라는 것이다. 총기마냥 필요한 수만큼 공장에서 척척 찍어낼 수도 없고 작전 도중 부상이나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으며, 갑자기 명령을 거부하거나 도망을 치는 등 이상행동을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최초 육성부터 운용, 퇴역에 이르기까지 항시 해당 분야 전문가가 붙어서 관리와 운용을 해주어야하며, 다루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군견의 능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 ​ ​ 3. 임무 ​ 군견(Military Dog, 軍犬)이 활약하는 분야를 크게 나누면 탐지, 수색, 추적, 경계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같은 군견이라고 해도 개마다 차이가 있어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가 다르며, 해당 군견에게 가장 적합한 주특기를 부여하고 전문적으로 훈련시킨다. 따라서 군견마다 맡는 임무도 크게 차이가 난다. 가장 널리 이용하는 것은 역시 민감한 후각을 살린 폭발물, 지뢰를 탐지하는 폭발물 탐지견(Explosive Detection Dog, 爆發物 探知犬)이다. 미대통령 전용 차량을 수색하는 것부터 동네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까지 수색 범위는 광범위하다. ​ 중요 인사가 도착하거나 지나가는 자리에 테러 목적의 폭발물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이때는 금속탐지기와 함께 운용한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이라크 내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워낙에 급조폭발물이 유행하다 보니 폭발물 처리반과 연계하여 작전하기도 한다. 동네를 순찰하면서 쓰레기나 흙더미 속에 숨은 위험물을 찾아낸다. 때로는 불법 매입한 총기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다. 이라크 등지에는 외곽 지역에 파괴된 유적이나 사원이 있는데, 이곳에도 순찰을 나간다. 복잡한 유적에도 얼마든지 불법 무기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뢰 매설 지역에서 지뢰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 ​(1). 탐지 ​ 탐지견(Detection Dog, 探知犬)은 '(Explosive) Detecting', 'Search', 'Sniff Dog' 이란 표현을 쓴다. 물론 마약 탐지도 탐지이므로 같은 표현을 쓰긴 한다. 이때는 'Drug Detecting Dog', 또는 'Sniff Dog'라고 한다. 일부 대테러부대나 경찰특공대에서도 사용하는데 침투하려는 지역에 설치했을지 모를 폭발물이나 함정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야외 순찰이든 실내 침투든 만일 폭발물이 있다는 확신이 들면 목줄을 길게 늘려 군견만 보내고 군견병(軍犬兵)은 뒤에서 안전하게 기다린다. 군견이 비싸다 한들 사람 목숨만큼 귀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실내 침투에서는 침투조가(영화 등에 흔히 보이는) 자세로 대기하고 탐지견을 먼저 보내 이상이 없음을 살핀 후, 문을 폭파하고 쳐들어가는 식으로 훈련한다. ​ 분쟁 지역에서 순찰하는 군견은 탐지를 나갔다가 부대원이 보는 눈 앞에서 폭발해 죽기도 한다. 비록 군용은 아니지만, 위험 물질의 반출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도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흔히 개가 주인에게 경고를 할 때는 짖지만, 폭발물 탐지견은 그 자리에 정자세로 앉는 것으로 신호를 보내는 편이다. 소음을 내면 주변을 놀라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군에서 폭발물 탐지용 군견으로 쓰이기도 한다. ​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나, 중요 회담이 있을 때 나오는 군견은 대부분이 폭발물 탐지용이다. 한국에서 G20 회담이 열린다고 하자, 경찰특공대 훈련을 조명하면서 군견의 활약을(기밀 누설이 안되게 대충) 보여주기도 했다. 따라서 대중이 미디어로 가장 자주 접하는 것도 당연히 이쪽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적인 인식은 '개 = 무는 동물' 이기 때문에 탐지견보다 공격견이 더 앞선다. ​ ​ (2). 수색   수색견(Search Dog, 搜索犬)은 정찰견(偵察犬)이라고도 불리며, 탐지견(探知犬)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작전지역에서 적의 침입 및 흔적을 찾는 임무를 맡는다. 수상한 흔적 등이 발견되면 현장으로 출동하여 위험 물질과 위험 인물을 수색을 통해 찾아내어 작전을 보조한다. 즉, 탐지견(探知犬)이 예방 차원에서 출동해 작전을 수행한다면, 수색견은 이미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출동해서 수사를 돕는다. 수색견이 크게 활약하려면 사건 현장이 잘 보존되서 적의 족흔(足痕)이 확실하게 남아 있어야 하는데, 먼저 현장으로 출동한 5분대기 대원들이 현장을 마구 헤집어 놓아 오히려 군견의 속을 터뜨리는 일이 많다. ​ 적(敵)과 더불어 침투한 적(敵)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Booby trap)이나 땅굴 등을 찾아낸다. 침투한 적 입장에서는 못 지운 흔적(痕跡)을 군견이 냄새를 맡아 찾아내면 매우 곤란하므로, 군견은 저격 우선 순위 상위권에 들어가 있다. 실제 현대전에서 군견은 적 장교(지휘관), 무전병과 함께 우선 저격 대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공비가 군견을 먼저 쏴죽였다. 영화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군견이 바로 이 수색견이다. 만일 수색 중에 적을 발견해서 장거리를 추적하거나 공격까지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 ​(3). 추적 ​ 도주(逃走)하고 있는 적의 경로를 따라가며 찾아내는 것이 바로 추적견(Tracking Dog, 追跡犬)이다. 며칠 밤낮으로 추적작전(追跡作戰)을 해야 할 수도 있어서 추적견도 체력이 좋아야 하지만, 해당 군견병도 생고생을 해야 한다. 특히, 험한 산지나 삼림으로 숨어서 찾기가 힘든 범인을 찾을 경우, 추적견의 능력이 최대로 발휘된다. 인간의 지각능력(知覺能力)보다 훨씬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이용하여 작전소요시간을 크게 단축시킨다. ​   (4). 경비 ​ 그 외로는 경비견(Guard Dog, 警備犬)이 있다. 말 그대로 집 지키는 개의 군용 버전인 셈이다. 부대 외곽이나 중요 지점에서 보초를 선다. 경비견(Guard Dog, 警備犬)은 흔히 "Guard Dog", "Watch Dog", "Sentry Dog" 이라고 한다. 야간 시야로 적을 경계하고 후각과 청각을 이용해 침입자를 찾는다. 가장 간단하고 쉬운 임무이기 때문에 딱히 작전이나 훈련이 없으면, 보통 군견은 놀리지 않고 이 임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상당히 널널한 임무이기 때문에 엎드려서 잠도 자고 군견 자신이 들어갈 땅굴을 파기도 하고, 같이 경계를 서는 경계병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군견은 군견이라 사람은 놓칠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도 기가 막히게 듣고 경계태새로 돌변하기도 하는 등 매우 유능한 경계자원이다.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용도일 테지만, 폭발물 탐지견만큼 극적인 임무가 아니라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 ​ (5). 기타 ​ ​이 처럼 군견마다 주특기가 다르기 때문에 한 군견에게 상기한 네 가지를 모두 수행할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경비 주특기로 훈련된 군견을 추적 작전에 동원한다고 해도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임무를 맡기려면 다시 교육과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이미 훈련된 군견에게 다른 주특기를 재교육 한다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며, 오히려 군견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 해당 주특기로 처음부터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군견을 데려오는 게 더 효율적이다. 군견은 고가치 정예장비로 훈련되지만 부대에서 군견을 얼마나 중요하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그 능력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 단순히 군견을 집 지키는 애완견마냥 밥만 주고 산책만 시키는 식으로 관리하고 훈련도 소홀히 한다면 군견도 동네 잡종견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개가 워낙 흔한 가축이다보니 군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연구를 하지않고 아무렇게나 소모하는 지휘관 및 병사도 매우 많다. 지속적인 훈련 및 교육이 없다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전투력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분명한 건 대테러 작전처럼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특수한 임무에도 참가할 만큼 중요한 전력 요소라는 점이므로 부대 하나를 놓고 군견 운영의 전반적인 상황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 미군에 공급하는 군견은 네덜란드에서 교배하고 훈련한 품종이 많다고 한다. 이쪽 군견의 성능이 우수하여 미군과 계약하고 공급한다고 한다. 또한 군견 훈련 방식은 영국이 앞선다고 한다. 미군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성공한 후 네이비 씰(Navy SEAL)은 이번 작전에도 군견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카이로라는 이름의 벨기에 말리노이즈라고 한다. 군견 장비 업체인 K9 스톰 회사에서는 방탄 조끼, 전방위 인식 카메라, 위치 추적기, 원거리 수신기 등으로 무장했을 거라고 전했다. 네이비 실의 군견은 일반 군견과 정찰 활동 방식이 약간 다른 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목줄 끌고 다니지 않는다.   핸들러와 주력 부대는 안전한 곳에 대기하고 핸들러가 원거리 수신기로 명령을 내려 군견 혼자 정찰을 나간다. 카메라를 달았으므로 병사의 시야가 미치는 곳을 볼 수도 있고, 만약 폭발물이 폭발한다 하더라도 군견만 사망하지 인간 병사의 목숨에는 손실이 없다. 그리고 돈 많은 미국 군대인 데다 나름 고급 군견이라서 그런지 방탄 조끼를 포함한 장비 가격만 해도 원화로 2천만원 중반쯤 나간다. 물론 엘리트 군견 부대를 운용하는 건 미국만이 아니지만 말이다. ​ ​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참가한 군견을 재현한 12인치 피규어. 위에 언급된 장비들을 착용한 모습이다.​ ​ ​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2차 대전 때, 소련군이 연구하던 대전차 군견 전술(Anti-Tank Warfare)도 있다. 원래는 적 전차에 폭탄을 설치하고 빠져나오는 것인데, 개의 지능이 따라주지 않아 바뀐 계획이 개에 폭발물을 매달아 적 전차에 보낸 다음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전차 밑에 음식을 두고 찾는 훈련을 시킨 다음 실전에서는 독일 전차에 보내 피해를 입힐 계획이었는데, 이 개들이 소련군 전차를 가지고 훈련받았기에 실전에 투입되자 소련군 전차 밑으로 달려들고 말았다. 훈련 상황에서는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에서 전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훈련했는데, 막상 전장에 투입하니 정신없이 총성, 포성이 울리며 포화가 쏟아지고 화약과 기름, 피냄새로 진동하는 전장에서 개들이 패닉에 빠져서 가장 가까운 엄폐물 개구멍에 기어 들어가거나 정신없이 도망 가버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 개의 감각의 민감도를 감안하면(개의 청각, 후각은 각각 인간의 4배, 100배에 달한다.) 총, 대포를 쏴재끼며 훈련하지 않는 이상 실용화하기 힘든 방식이었던 것이다. 현대에는 사라졌을 것 같으나 아직까지도 러시아군에선 군견들에게 이런 훈련을 하고 있으며 개에 폭탄을 달아 자살 공격을 시키는 테러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병사가 많은 짐을 들지 못하는 경우 개에 짐을 달아 다른 부대로 보내기도 했다. 마바리 전투견이나 도그밋처럼 걸어다니는 인벤토리까지는 아니고 임시로 활용했던 것이다. 메시지를 심어 전령 대신 보내기도 했다. 통신, 운송 수단이 발달한 현대에선 당연히 쓰지 않는다. 또한 전장에서 부상자를 찾아내는 용도도 있다. 재난 지역에서 부상자를 구하는 특수 목적견도 있으며, 이 쪽은 군용견보다는 구호단체 등에서 많이 쓰인다. ​ 의무용으로도 자주 사용되는 데, 목 주변에 응급처치용 물품을 장착하여 부상병을 찾아가게 훈련시켜 전시에 풀어놓거나 미군에선 군견을 이용하여 심리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현대 전쟁은 다양한 로봇을 만들어내고 실험 중이지만, 쇼미더머니를 쳐대는 미군이라도 아직까지 군견을 능가할 탐지 장치는 만들지 못한다. 군대가 언제까지 군견을 이용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물학적 후각 신경을 똑같이 모방해 대량 생산하지 않는 한 군견은 지속적으로 이용할 듯하다. ​ ​ ​ 4. 군견이 되는 견종 ​ 저먼 셰퍼드 도그(German Shepherd Dog), 벨지안 쉽도그 말리노이즈(Belgian Sheepdog Malinois), 래브라도 리트리버(Labrador Retriever) 이렇게 3종이 주로 활동하며, 가끔 롯트 와일러(Rottweiler), 도베르만 핀셔(Dobermann Pinscher), 아메리칸 핏 불 테리어(American Pit Bull Terrier), 코카시안 셰퍼드 도그(Caucasian Shepherd Dog), 잉글리시 스프링어 스패니얼(English Springer Spaniel), 보더 콜리(Border Collie), 포인터(Pointer) 등이 쓰이기도 한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진돗개(Jindo Dog, 珍島犬) 역시 군견병이 바뀌면 다른 주인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군견으로 부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진돗개(Jindo Dog, 珍島犬)는 중형견이라 군견으로 쓰기에는 덩치가 너무 작다. 군견으로 육성되는 저먼 셰퍼드 도그(German Shepherd Dog)나 도베르만 핀셔(Dobermann Pinscher)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체중이며, 에어데일 테리어(Airedale Terrier)나 벨지안 쉽도그 말리노이즈(Belgian Sheepdog Malinois)보다도 대략 5~10kg나 가벼워서 군견 육성에 굉장히 곤란하다. 덩치가 작으면 당연히 체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고된 훈련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 또 진돗개(Jindo Dog, 珍島犬)는 서열에 집착하며 자신의 영역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 때문에 임무에도 부적합하다. 게다가 성질이 사납고 다른 동물에 대한 배타성과 지배욕이 강해서 여러 마리를 함께 길들이기가 굉장히 까다로우며, 이 때문에 자기들끼리도 빈번하게 싸움이 발생한다. 즉, 진돗개(Jindo Dog, 珍島犬) 자체가 군견으로 삼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충성심이 강하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한 번 인식한 인간과의 서열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서열에 집착하는 습성과 어느 정도는 연관된다. 덧붙이자면, 이 또한 표면적인 이유이자 특정 품종에 국한된 습성은 아니며, 현장에서도 진돗개(Jindo Dog, 珍島犬)를 군견도입을 시도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여러 임무에 부적합한 습성으로 인해 훈련에 용이하지 않아 채택하지 않았다. ​ ​한국군 첫 진돗개(Jindo Dog, 珍島犬) 군견 "파도"와 "용필" ​ 하지만, 2015년 군대에서 이러한 진돗개(Jindo Dog, 珍島犬)의 단점을 극복하고 군견으로 훈련시키는 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공군 등 몇몇 군에서는 리트리버 종이 폭발물 탐지 등 대테러 작전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육군에서도 폭발물 탐지견(Explosive Detection Dog, 爆發物 探知犬)으로 리트리버 등을 이용하였는데, 당시 주로 파병되었던 중동지역의 셰퍼드 종의 외관적 기피 여론에 기인한다. 또한 군견에게는 군견병이라는 늘 동고동락하는 파트너가 있다. 무엇보다 한 마리와 한 사람의 유대가 중요하다. ​ ​ ​ ​5. 군견은 훈장을 받을 수 있다? 없다? ​ 제 2차 세계 대전 때 미군에서 병사 몇 명을 구하고 불구가 된 군견에게 지휘관이 전투 중 부상당한 사람에게 지휘관 재량껏 줄 수 있는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했지만, 미국 의회 쪽에서 "훈장은 인간에게만 줄 수 있다." 면서 도로 뺏어간 기록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베트남 전쟁에서는 기지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군견이 퍼플 하트를 수여받기도 했다. 미국의 군견 운용 역사에 흑역사로 남는 오점이 있는데, 제 2차 세계 대전 전,후에는 군견을 가정집으로 입양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군견을 입양시킨 반면에 베트남전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 ​ ​ 실제 베트남전에 투입된 미군 군견 3,000여 마리 중 본국에 귀환한 것은 200마리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현재 사용하는 장비를 대부분 남베트남군에게 넘겨주는 방침에 따라 현지에 내버려두고 철수해버렸다. 군견의 파트너인 핸들러(Handler, 調鍊師)들이 어떻게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 역시 영웅적인 활약을 벌인 동물에게 주는 훈장도 있다. 영국에선 군견도 아닌 잡종견(雜種犬, Mongrel dog)에게 빅토리아 여왕이 전쟁 훈장을 직접 수여한 사건이 있다. 근데 그 개가 사망하자 박제로 만들었다. 러시아에서는 군견에 대우가 상당히 좋다. 훈장을 줬다 뺐는 미국과 달리 거의 사람 대우를 해준다. ​ ​ 다만 이렇게까지 대우가 좋은 이유는 아래 보면 있다. 한국에서도 군견에게 훈장을 수여한다. 수훈견이 무려 두 마리나 있다. 하나는 1968년 1, 21 무장공비 청와대 기습기도 사건(이른바 김신조 사건) 당시 무공을 세워 인헌무공훈장을 받은 견번 41번 '린틴', 그리고 육군 제 21보병사단에서 활약한 '헌트' 라는 셰퍼드 종은 90년 3월 제 4땅굴 소탕 작전시 북한군이 설치해 놓은 목함지뢰를 탐지, 자신의 몸으로 지뢰를 터뜨려 1개 분대원의 생명을 구한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군견으로는 두번째로 군인 계급을 부여받고, 군견으로서는 최초로 장교 계급인 소위로 추서되었다. 또한 추모 동상도 세워졌다.​ ​ ​ 관련기사보기 : https://news.v.daum.net/v/20140207183708150 ​ ​​2014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군견을 포로로 잡았다. 군견의 정보장비 수준을 볼 때 사람으로 치면 대령급이라고 한다. ​ ​ [출처] 군견(Military Dog, 軍犬)  
3000    [세상만사] - 군견 = 무공훈장 댓글:  조회:2607  추천:0  2020-11-24
총알 뚫고 적 저격수 잡은 군견… PDSA 최고 무공훈장 2020.11.24.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올해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군견 쿠노. 작전중 총알을 수발 맞은 양발에 의족보조장치를 차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윤다혜 기자 = 아프가니스탄에서 적 저격수를 제압해 자신의 부대원들을 살린 영국 군견이 동물에게 주는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영국 특수군 소속 폭발물 탐지견인 '쿠노'는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됐다. 작전에 나선 쿠노와 부대원은 알카에다의 십자포화에 걸려 한 건물에 은신한 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당시 퍼부어지는 총알과 수류탄 세례속에서 누구의 희생없이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이때 핸들러의 명령을 받은 쿠노는 지체 없이 뛰쳐나갔다. 쿠노는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저격수를 향해 곧장 달렸다. 이 과정서 수발의 총탄을 맞고도 저격수의 팔을 물고 늘어져 그를 제압했다. 적이 당황하는 틈을 탄 부대원들은 일제 반격에 나서 상황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큰 부상을 당한 쿠노는 응급 조치후 부상병들과 함께 이송됐다. 양쪽 뒷발 모두 총상을 입은 쿠노는 결국 의족 보조장치를 차게 되고 현역에서 명예 예편했다.  쿠노는 벨기에 세파드 마리노이즈견종으로 올해 만 4살이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영국 동물보호단체 PDSA는 23일 쿠노의 용맹함과 희생정신을 기려 그를 올해 '디킨 메달' 수상견으로 선정했다. 동물에게 수여되는 디킨메달은 영국 빅토리아크로스에 해당하는 최고 무공훈장이다. PDSA는 앞서 캄보디아에서 지뢰 제거활동중인 아프리카 두더지붙이쥐 '마가와'에게 용감한 동물상을 준 바 있다.
2999    [믿거나말거나] - 인도 신동 최연소 "예언가"... 댓글:  조회:2750  추천:0  2020-11-22
인도 록다운 일상 인도 천재 점성가 아난드, 코로나 예측한 최연소 인도 점술가  Vasant 사는 다히코 ・ 2020. 8. 14.        Global Child Prodigy Awards 2020 수상자인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아동 신동 이니셔티브) Abhigya Anand는 전염병 발생 가능성에 대해, 코로나가 발생하기 4개월 전에 전 세계에 경고했습니다. 이 내용은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할 무렵 전세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었고, 순식간에 유명 점성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아유르베 다와 미생물학을 졸업 한 막내 점성가] ​ 오늘은 이미 유명해진 아난드에 대해 좀더 알아볼게요~ ​ 아난드는 2006년 인도 카르 나 타카의 스리랑가 파트 나에서 태어난 세계에서가장 어린 점성가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신의 재능을 가진 아이이며, 배우지도 않은 이론들을 술술 얘기해서 10세때부터 같은 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 그는 산스크리트어의 ME와 Ayurveda 분야에서 최연소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연구를 마친 후 2~3시간 동안 흥미롭고 긴 강의를 시작했으며, 그의 세션 중 하나에는 400 개 이상의 ppt 슬라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   ​ 2019년 8월 그는 '세상에 심각한 위험' 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업로드했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인터넷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조회수 6 백만 회를 돌파했습니다. ​ 이 비디오에서 그는 이 전염병이 6월 30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직까지 인도 코로나 확진자가 6만명이상이 나오고 있는걸 보면 기간은 살짝 잘못 짚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 그는 이 전염병이 전 세계 인구의 80%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약 20%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사상자는 2020년 9 월 10일에 일어날 것이라며 날짜까지 콕 찝었는데요. 이 날을 깃점으로 전염병은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드는 이게 끝이 아니라고 했고,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가 될것이며 사람들의 고통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또한 많은 초강대국이 현재의 영광을 잃고 새로운 초강대국이 나타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 나라가 어디인지는 밝혀진바가 없는데요. 현재 초강대국들의 리더들의 이기적인 면모를 보았을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닌것 같습니다. ​   ​ 아난드가 GCP Awards 2020년 Ceremony에 참석했을 때 GLOBAL CHILD PRODIGY 팀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Vastu Shastra와 점성술은 행성, 별 및 다양한 천체와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우주의 시작부터 서로 겹치는 과학입니다. 우주에서 과학적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행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과학에 반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성은 우리 모두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그 행성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 그의 최신 비디오에서 Abhigya는 또 다른 재난이 2020년 12월 20일에 지구를 강타 할 것이며 2021년 3월 31 일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보다 더 심각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또한 그 영향이 2021년 3월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그는 우리가 면역력을 확보해야만 이러한 유행성 발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그는 또한 우리가 할 수있는 최소한의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고 자연을 해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모든 육류 상인에게 직업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 ======================================/// 유튜브 'Conscience' 채널   인도의 유명한 점성가이자 천재 소년으로 알려진 아비냐 아난드(Abhinaya Anand)가 앞으로 발생할 2차 팬데믹(Pandemic)에 대해 예측했다. 최근 아비냐 아난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2020년과 2021년 상황에 대해 예측하는 영상을 촬영해 올렸다. 앞서 아난드는 지난해 11월 이후 전 세계가 큰 재난을 겪을 것이며 6개월간 바이러스가 퍼지고 중국이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의 예상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1차 팬데믹은 실제 중국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아난드는 이번 영상에서 올해 12월 또 다른 재난(2차 팬데믹)이 밀려온다며 이는 1차보다 훨씬 강하고 규모가 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오는 12월 20일 목성과 토성이 나란히 서게 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아난드는 이때 중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며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기근, 군대의 이동 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바이러스 백신이 나오지만 곧바로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며 슈퍼 박테리아가 등장해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로 인해 2021년 2월 10일에 천문학적으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 세계 경제가 붕괴에 빠진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끝으로 아난드는 자신의 예측 때문에 사람들이 공황에 빠지질 원치 않는다며 전염병 종식과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파괴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 글꼴 작게가+ 글꼴 크게 12억 인도를 만나다 인도 점성술     자연현상을 미리 예측하고자 하여 발전한 것이 인도의 점성술이다. 이를 우리는 미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당수의 인도인은 과학이라고 믿는다. 인도인의 점성술에 대한 신뢰는 대단하다. 델리대에 점성술로 유명한 교수가 한 사람 있었는데 한 학생의 말로는 그 사람이 1회 인생을 점쳐주는 대가로 내야하는 복채가 만 루피(20만 원)라고 한다. 한국의 토정비결과 같이 인도인이 가장 신뢰하는 점성술 교본은 브리하트 파라사르 호라 사스트라(BrihatParasar Hora Sastra)라고 불리는 책으로서 우리말로 하자면 ‘점성술의 심해(深解)’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베다 시대에서부터 내려온 인도 점성술의 비기(秘記)에 들어간다. 이 책에 따르면 정사각형 안에 대각선 방향으로 또 하나의 정사각형을 그려 넣고 12개의 구획을 나누어 태양계의 행성을 배열하고 개인의 사주를 배열하여 세상과 인생사를 예고한다. 현대 과학과의 큰 차이점은 현대 과학은 태양을 중심으로 한 지동설(地動說)을 근거로 하지만, 인도의 점성술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고, 달도 행성의 하나로 여기며 천동설(天動說)을 근거로 한다. 인도 사제들이 인도인의 대소사(大小事)를 위해서 부적도 써주고 갖가지 처방을 하는 근거가 된다.  유명한 점성가가 인도에 10만 명 이상이 있는데 아침 8시에서 9시에 케이블 TV 프로에 나오는 유명한 점성가 베잔 다루왈라는 매일 하루의 일과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알려준다. 유명한 영화배우 아미땁 바찬이나 수상인 만모한싱도 그의 고객이라고 한다. 그는 아미땁 바찬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오팔 반지를 끼도록 했고 그때부터 아미땁 바찬이 어려움을 딛고 인도의 대표적인 배우가 됐다고 한다. 한국어과의 한 학생은 점성가가 금으로 된 반지를 끼면 앞으로 6개월 안에 취업이 될 것이라고 해서 7천 루피(14만 원)를 주고 반지를 사서 끼고 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오늘의 운세와 같은 점성가의 예언을 아침에 읽고 운세대로 외출을 삼가라고 하면 외출도 하지 않을 정도로 그 믿음이 대단하다. 수많은 인도인들은 이를 믿고 있다. 저녁에 돌아오면 신문에서 확인하며 아침에 예언된 대로 안 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생년월일의 숫자로 운세를 보는 수 논리(Numerologic)가 상당히 인기가 있는 편인데, 전(前) 인도 크리켓 팀장이었던 강굴리(Ganguly)는 특별히 수 논리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점성술 (12억 인도를 만나다)  
2998    [세상만사] - 한복 교복 입기... 댓글:  조회:2320  추천:0  2020-11-20
한복을 교복으로... 2020.11.20.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한복 생활화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긴 하지만 전통 한복은 일상생활에서 불편하고, 연예인들이 입는 한복은 튀는 경향이 있죠. 정부의 한복 교복 시범사업에 참여한 학교들이 한복 교복을 입기 시작했는데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승은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한복 교복을 입은 전남 작천중학교와 경북 대창중학교 학생들입니다. 일반적인 교복과 색깔과 틀이 크게 다르지 않아 실용적입니다. 그러면서도 깃 부분이나 색동을 활용한 배색 등에 한복의 특징이 살아있습니다. 넉넉한 품의 윗옷에 한복 선이 담긴 치마가 편해 보이면서도 예쁩니다. [강윤희 / 작천중학교 학생 : 교복은 시간 지나면 안 입는데 왜 입냐고 (하지만) 실물 보는데 책으로 보는 것보다 너무 예뻐 가지고 입고 싶었어요.] [이용빈 / 대창중학교 학생 : 바지에도 단추가 있어서 편하고 움직이기도 쉬워서 고등학교 되면 몸이 커지니까 돌아다니기도 쉽고 좋을 것 같아요.] "와! 예쁘다!" 그동안 학교를 직접 방문한 전담팀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을 함께 물었습니다. 전통 소재 대신 튼튼한 교복용 원단과 기능성 원단을 사용했습니다. 몸에 꽉 끼어 성 역할을 정형화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여학생 교복으론 바지나 치마 바지를 선택한 학교도 있습니다. [오은교 / 학부모 : 기존 교복 같은 경우에는 셔츠 부분에서 카라(깃) 부분이 다림질이 힘들었는데 오히려 한복 교복은 깃이다 보니까 다림질이 편했어요.] [김우수 / 전남 강진군 작천중학교 교장 : ...중학생들한테 한복이 고유한 우리나라 것이라는 걸 심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시범사업 참여 학교는 16곳, 일부 교사들도 호응해 자비로 사 입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두 배 이상 한복 교복을 선택하는 학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며 공모를 통해 디자인을 늘리고 있습니다. YTN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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