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홈 > 보물 + 뒷간

전체 [ 3117 ]

283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산림화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732  추천:0  2020-01-07
  도망치기엔 느려도 너무 느렸다, 호주산불에 코알라 멸종위기  2020.01.07.    슬퍼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호주 북동부를 휩쓸고 있는 산불 속에서 불에 타서 도망가는 코알라의 모습이 공개됐다. 채널 9이 지난해 11월 20일(현지시간) 공개한 영상. [유튜브 캡처] 화상을 입은 코알라가 불이 붙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닌다. 하지만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나뭇가지에 걸터앉는다. 지나던 여행객에게 구조된 코알라는 목이 마른 듯 물을 필사적으로 빨아들인다. 6개월째 산불이 계속되고 있는 호주에서 매일 소셜미디어(SNS) 등에 올라오는 코알라의 모습이다.  지난 가을 시작된 호주 남동부의 산불이 점점 거세지면서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인 코알라가 사실상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미국 뉴스위크,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동물복지전문가들은 산불 피해가 가장 극심한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만 약 8000마리의 코알라가 불에 타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NSW주에 살고 있는 전체 코알라수의 약 3분의 2에 해당한다.  코알라 서식지 80% 불에 타 지난해 12월 27일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더위에 지친 코알라가 물을 마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수많은 동물 중 코알라가 유독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움직임이 느리고, 이동을 싫어하는 습성 때문이다. 생태학자 마크 그레이엄은 이번 산불과 관련된 의회 청문회에서 “코알라는 불의 확산을 피해 빨리 도망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서 “특히 기름으로 가득한 유칼립투스잎을 먹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보다 불에 약하다”고 설명했다.  퀸즈랜드대 크리스틴 아담스-호킹 박사도 내셔널지오그래피와의 인터뷰에서 “새는 날 수 있고, 캥거루는 매우 빨리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코알라는 너무 느리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코알라의 서식지인 유칼립투스 숲의 80%가 불 타 없어지면서, 코알라라는 동물이 독자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기능적 멸종 상태’에 접어들었단 분석도 나온다.  산불로 호주서만 동물 5억 마리 희생 산불을 피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 캥거루. [AFP=연합뉴스] 시드니대 생태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9월 시작된 대규모 산불로 인해 호주 전역에서 약 5억 마리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희생됐다. 세계자연기금(WWF) 호주 지부는 현지 언론에 “호주의 많은 동물들이 산불에 대처하도록 적응해왔지만, 이번 화재는 야생 동물들이 피하기엔 너무 크고 뜨거웠다”고 밝혔다. 또 “화재에서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굶주림과 탈수, 질병 등에 노출되어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SNS에는 불에 타 죽은 동물들의 모습이나 코알라와 캥거루 등을 구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미국 서핑선수 켈리 슬레이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린 캥거루가 타 죽은 모습을 담은 사진을 게시해 현지의 끔찍한 상황을 알렸다.  호주 산불로 불에 타 죽은 어린 캥거루. [사진 켈리 슬레이터 인스타그램] 하지만 화재에서 동물을 구하는 방법이나 기준 등이 마련돼 있지 않아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사이언스 포 와일드라이프(Science for Wildlife)의 켈리 레이 박사는 NSW주 의회에 출석해 “화재 지역에서 야생 동물을 구하기 위한 예산도 계획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서 “규정이 없어 야생동물 보호단체조차도 재난 지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지난 해 9월 시작된 이번 산불로 NSW주에서만 약 400만 헥타르에 달하는 녹지가 잿더미가 됐다. 호주 전체로 보면 약 600만 헥타르의 숲과 공원 등이 화마의 피해를 입었다고 BBC는 전했다. 600만 헥타르는 서울특별시의 약 100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5일(현지시간)까지 24명으로 집계됐다.  /이영희 기자 ==============================///  기자] 호주 남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다섯 달째 지속된 산불로 서울 면적(605㎢=약 6만ha)의 약 100배인 600만㏊가 잿더미로 변했다. 수백 개의 산불이 불바다를 이루고, 화염 토네이도까지 만들어 냈다. 산불 연기로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이웃 뉴질랜드의 빙하는 재가 덮여 갈색이 됐다. 시드니 서부 팬리스 기온이 역대 최고인 섭씨 48.9도를 기록하는 등 호주 대부분 지역이 절절 끓고 돌풍까지 불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7일 호주 현지 매체와 외신을 종합해보면 퀸즐랜드주와 뉴사우스웨일스주(NSW)에서 작년 9월 첫 째주 이미 100여건의 화재가 발생해 대재앙을 예고했다. 특히 작년 9월 2일 골드코스트 인근 사라바에서 시작된 산불이 빠르게 번졌고, 10월 초부터 이번 산불 사태가 본격화됐다. 최근 NSW주와 빅토리아주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산불 피해 면적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블룸버그 통신은 NSW주에서만 500만 ㏊가 소실됐다고 보도했고, 로이터 통신은 NSW주와 빅토리아주에서 600만 ㏊ 이상이 탔다고 전했다. 호주 매체인 나인 뉴스는 호주 전역에서 590만 ㏊, 세븐 뉴스는 600만 ㏊를 태웠다고 각각 보도했다. 산불 지역 주민 10만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고, 사망자는 최소 24명, 실종자도 20명이 넘는다. 주택 수천 채가 불에 탔다. 캥거루와 코알라 등 야생동물 5억 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호주에서 세번째로 큰 섬으로 '야생동물의 보고'로 불리는 캥거루섬도 호주 남동부를 휩쓴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호주 애들레이드 부근 세인트빈센트만 입구에 있는 이 섬은 약 5만 마리 코알라들에게는 '천혜의 보호구역' 같은 곳이다. 육지와 바다로 격리돼있어 치사율이 높은 클라미디아(chlamydia) 성병 등 유행병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호주에서 들불처럼 확산한 산불이 섬 전체 면적(4천350㎢)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7만ha(1천700㎢)를 휩쓸면서 이 지역에 서식하는 코알라의 절반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영국 가디언지 등 외신이 보도했다. 그동안에도 호주에 사는 코알라는 도시화와 기후변화, 개간, 개발사업 등으로 개체수가 점점 줄어 멸종위기에 있다는 경고가 잇따랐다. 서식지에서 밀려난 코알라가 길을 헤매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개의 공격을 받고 희생되는 경우도 크게 증가하는 가운데 최악의 산불이라는 '재앙'을 맞게 된 것이다. '캥거루섬 야생공원'을 운영하는 샘 미첼은 "코알라 개체 수의 50% 이상이 사라졌다"면서 "나머지도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몇주 내로 집단 아사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애들레이드대 연구진도 "캥거루섬의 코알라는 전체 코알라의 생존을 위한 보험과 다름없다"며 "캥거루섬 외에도 코알라의 집단 서식지인 빅토리아주 깁스랜드 등지에서 8천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심각성을 강조했다. 온실가스로 '멸종의 물결'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해 온 기후학자들은 이번 산불이 재앙의 시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사우스웨일스대 생태계 과학센터의 리처드 킹스포드 교수는 이번 산불의 규모와 심각성 면에서 수많은 동식물종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며, 숲의 생물다양성을 수십 년 후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킹스포드 교수는 이어 "동물들은 이러한 재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며 "침묵의 죽음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산불 현장에서 날아온 재와 연기에 따른 고통도 크다. 에어비주얼(Air visual)에 따르면 6일 오후 기준으로 호주 수도 캔버라의 대기오염지수(US AQI)가 285를 기록, 전 세계 95개 주요 도시 중 최악으로 꼽혔다. 시드니 등 대도시는 '회색 도시'로 변했고 호흡기 질환자가 속출했으며 일부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산불 재가 식수를 오염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불 재는 이웃 나라인 뉴질랜드까지 날아가 빙하를 덮고, 관광용 헬기를 띄울 수 없을 정도로 시야를 가렸다. 시드니 인근 주요 식수 취수시설의 오염 가능성도 제기됐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재가 식수 공급시설에 흘러 들어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폭염과 가뭄, 돌풍'은 이번 산불 사태를 키운 세 가지 원인으로 꼽힌다. 본래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대륙 중 하나로 연평균 강우량이 600㎜ 미만이다. 남반구라서 9∼11월이 봄이고, 12월∼2월이 여름인데, 작년 9월 초봄부터 기온이 30도가 넘는 등 이상고온 현상을 보였다. 폭염에 예년보다 심한 가뭄이 이어지니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땅이 더 메마르고, 마른벼락 등 자연발화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시속 35∼45㎞의 돌풍까지 부는 등 악재들이 겹치면서 한 번 시작된 산불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호주 정부는 산불이 너무 광범위해 인력으로 끄기는 어렵다고 보고,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중앙 정부는 예비군 최대 3천명에게 동원령을 내려 화마와 싸우고 있는 의용 소방대를 돕도록 배치했다. 또, 불길을 피해 해안가로 달아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함정, 항공기, 헬기 등 군 자산을 동원하고, 다른 나라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온 소방대원들이 호주 산불 진화에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다. (사진=연합뉴스) /이영호기자
283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5억... 댓글:  조회:3286  추천:0  2020-01-06
  호주 산불로 야생동물 5억여 마리 죽었다 2020.01.06.    슬퍼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생태학자들, 산불로 파충류, 포유류, 새 등 죽은 것으로 추산 [최용락 기자]  지난 9월부터 4개월째 잡히지 않고 있는 호주 산불 때문에 5억여 마리의 야생동물이 죽었다고 호주 CNBC가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CNBC에 따르면, 시드니대학 생태학자들은 9월 호주 남동부에서 산불이 시작된 이래 4억8000만여 마리의 포유류, 새, 파충류가 죽었다고 추산했다. 산불이 잡히지 않음에 따라 사망 동물의 수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드니대학 생태학자들은 28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피해 동물 중 상당수는 화재에 의해 직접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나머지 동물은 음식과 피난처의 고갈, 그리고 야생 고양이와 붉은 여우의 포식 때문에 목숨을 일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호주인들의 SNS 계정에는 검게 그을린 코알라가 의학적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죽은 동물이 땅에 쓰러져 있는 모습, 캥거루가 화염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디어터 오촐리(Dieter Hochuli) 시드니대학 교수는 "위험에 처한 잘 알려진 종뿐 아니라 수분과 영양 순환 면에서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곤충도 화재에 민감하다"며 "그들의 수와 기능이 회복될 것인지는 미지의 영역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미 수가 줄고 있던 취약종인 코알라가 이번 화재로 특히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생태학자들은 이번 산불로 8000여 마리의 코알라가 죽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산 레이 호주 연방환경부 장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이 지역 코알라 서식지의 30%가 황폐화되었기 때문에 같은 비율의 코알라가 죽었을 수도 있다"며 "화재를 진정시키면 더 정확한 수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산불은 현재까지 1000채 이상의 집과 900만 에이커의 땅을 태웠고, 1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기록적인 고온과 가뭄을 이번 산불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최용락 기자
283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저작권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822  추천:0  2020-01-06
이상 생긴 '이상문학상' '저작권 3년 양도'에 반발 김금희·최은영 등 수상 거부 최성욱 기자 2020-01-06  문화   2020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김금희(사진 왼쪽)·최은영(사진 오른쪽) 작가.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수상자들의 수상 거부로 무기한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문학과사상사는 6일로 예정됐던 ‘2020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당일 오전 밝혔다. 이상문학상을 주최하는 문학과사상사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상과 우수상 수상자를 공표할 예정이었지만, 우수상 수상 예정자이던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면서 당분간 발표를 보류하기로 했다.   문학과사상사는 당초 대상 수상자 1명과 우수상 수상자 10여 명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우수상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간 작가 중 대상 수상자를 제외한 작가들에게 주어진다. 수상자에게는 상금을 수여하고, 매년 1월 말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상작을 소개한다.    문제가 된 것은 수상작의 저작권을 3년간 문학과사상 측에 양도하고, 단편집에 싣더라도 표제작으로는 쓸 수 없도록 한 조항이다. 수상을 거부한 김금희 작가는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수상집에 작품을 수록하는 것과 관련해 계약서를 받아 확인하고는 게재를 못 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저작권을 해당 출판사에 3년간 ‘양도’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조항에 따르면 사실상 우수상 상금이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매절 원고료나 다름없는 셈이다. 또 다른 우수상 후보였던 최은영 작가 역시 계약서상 문구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주최 측에 수상 거부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번에 수상 거부 의사를 밝힌 이들은 한국 문단의 기대주로 주목받는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문학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경애의 마음’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등의 쓴 김 작가는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고,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쓴 최 작가는 황순원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실제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는 수상 거부 작가들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작품을 우수성을 널리 알린다’는 상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독소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불황을 겪고 있는 출판업계에서는 주최 측이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출판권마저 갖지 못한다면 문학상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문학과사상사 측은 “과거에도 같은 조건으로 작품집에 실리는 것을 동의하는 작가에게만 우수상을 수여해왔다”며 “비슷한 시기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작품이 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출판을 제약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조항은 이상문학상 제정 이후 유지돼오다 2010년 무렵 폐지됐지만 지난해 부활했다. 문학과사상은 계약서 수정을 포함해 해당 작가들과 수상 여부를 재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문학상은 문학과사상 설립자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소설가 이상의 뛰어난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77년 제정한 문학상이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과 함께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자리 잡으며 박완서, 이문열, 은희경, 김훈, 한강 등 수많은 등 유수의 작가들을 배출해 왔다.  /최성욱기자  /서울경제   "저작권 넘기느니 상 안 받겠다"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  2020.01.06.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저작권 3년 양도·표제작 금지 반발…"수상 거부" 최은영·이기호 작가도 같은 이유로 수상 거부 문학사상사(상 운영사), 수상작 발표 무기 연기[앵커] 국내 대표적인 문학상의 하나인 '이상문학상'이 저작권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상을 받으려면 저작권을 양도하라는 계약 조항 때문에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들이 잇따라 수상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기정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수상 거부를 먼저 알린 작가는 소설가 김금희 씨입니다. 우수상 선정 소식에 기뻐하다가 계약서를 받아보곤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는 건 물론, 개인 단편집을 낼 때도 표제작으로 쓸 수 없다는 저작권 조항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문열과 최인호, 신경숙, 한강 등 1977년 이래 당대 최고 작가를 수상자로 배출해 온 훌륭한 상이었기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김금희 / 소설가 : 이 중요하고 전통 있는 상이 작가를 격려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면 그걸 그대로 받기에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작가는 트위터로 이 사실을 알렸고 이후 최은영, 이기호 작가도 같은 이유로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문이 커지자 상을 운영하는 문학사상사는 수상작 발표 기자간담회를 무기 연기하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저작권 조항은 대상에만 요구했던 조건인데, 지난해부터 직원 실수로 우수상에도 추가됐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상 수상작이라 해도 과도한 요구라는 지적은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임지현 / 문학사상 대표 : 대상 저작권은 저작권 기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상황을 인지했으니까, 이를 충분히 검토해서 수상작가의 입장을 고려한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문단에선 이번 사태를 시대 변화에 뒤처진 출판계의 관행 탓으로 보고 있습니다. 낙후된 저작권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겁니다. [김금희 / 소설가 : 기본 전제로 "작가한테 저작권을 양도받을 수 있다, 지금 이 상을 운영한다는 이유 만으로." 그런 생각을 문학사상사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YTN 기정훈 //////////////////////////////////////////////////////////////=== "상 주고 3년 저작권 달라"… '이상문학상' 거부 잇따라 기사입력 2020.01.06.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국내 최고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이상문학상'은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상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작가들이 잇따라 상을 안 받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최 측이 상을 주는 대신에, 3년 동안 작품의 저작권을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소설가 김금희 씨는 작가 생활 11년 만에 처음 받을 뻔했던 이상문학상을 거부했습니다. 우수상을 받는 조건으로, 작품 저작권을 출판사에 3년 동안 넘긴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금희/소설가 : 작가에게 불리한 것을 취하고 독자들에겐 상을 포장하는 셈이에요. 이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죠. 상의 의미는 격려잖아요.] 함께 수상 명단에 오른 소설가 최은영 씨와 이기호 씨도 "다른 문학상에선 이런 조건을 겪은 적이 없다" 며 상을 안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상을 기리기 위해 1977년 만든 이 상은 가장 권위있는 국내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매해 발표된 뛰어난 중단편 소설을 골라 대상과 우수상을 엮은 작품집을 1월마다 내놓습니다. 출판사는 대상 작품의 저작권을 3년간 행사해 왔고, 지난해부터는 우수상 작품까지 이 규정을 확대 적용해왔습니다. 작가들의 수상 거부가 이어지자 출판사는 오늘(6일) 하려던 수상작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문단에선 작가들의 소중한 노동의 결과물을 상을 준다는 이유로 빼앗아선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수상 거부가 출판계의 옳지 않은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화면제공 : 소리목·문학동네·서울시여성가족재단·채널예스) /강나현 기자  =================///   시사상식사전 이상문학상      1977년 월간 이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李箱) 문학의 뛰어난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             외국어 표기     李箱文學賞(한자)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李箱)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작가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소설계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1977년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문학상이다. 중ㆍ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시상하며 수상작과 후보작을 매년 이라는 작품집을 통해 발표한다. 심사위원은 문학평론가와 신문사 문화부기자, 문학잡지의 애독자, 문학전공 교수로 구성된다.   심사 대상작 전년도 심사 대상작 이후 발표된 작품들로부터 당해년도 자료조사 마감일까지 발행된 문예지를 중심으로 해서 각종 정기간행물에 발표된 작품성이 뛰어난 중ㆍ단편소설을 망라하여 심사한다. 문단 경력이나 업적, 소설 길이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적인 완성도와 실험성이 가미된 작품 위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   심사(예심/본심) 수상 대상작은 예심과 본심에 걸쳐 심사한다. 예심은 1년 동안 각 매체에 발표된 작품을 수집하여 이상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대학교수, 문학평론가, 작가, 각 문예지 편집장, 일간지 문학 담당 기자 등 약 100여 명에게 추천을 의뢰한다. 이상문학상 운영위원회는 편집위원과 문학사상사 경영진 및 편집진으로 구성된다. 또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추천 작품 선정에 참고하는 등 모든 자료를 일괄하여 편집위원들의 지도를 받아 본심에 올릴 작품을 선별한다. 본심에 오른 작품을 대상으로 문학평론가와 각 신문사 문화부 기자, 문학잡지의 독자, 문학을 전공한 교수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선정한다.   수상 내역 및 상금 대상 1명과 특별상 1명, 추천 우수작상 10명 이내로 한다. 이 중 특별상은 이미 대상을 수상한 기(旣)수상작가를 포함한 중견ㆍ원로작가와 이상문학상의 우수작상을 여러 차례 받은 수상자의 작품이 심사 대상으로 오르게 되며, 당해년도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에게 수여한다. 상금은 대상 3,500만 원, 특별상 500만 원, 추천 우수작상은 각각 300만 원이 수여된다. 당선된 수상작은 문학성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매년 작품집 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 수상작의 출판 저작권은 문학사상사에 귀속된다. 단 2차 저작권(번역출판권, 영화화ㆍ연극화 등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고 발행 후 3년이 경과하면 저자의 작품집에 수록할 수 있다. 단 우수작상 및 특별상은 상금에 매절 원고료가 포함된 출판 관습과 본상 규정에 따라, 수록된 당해년도 작품집에 한하여 문학사상사가 계속 제한적인 저작권(사실상의 저작이용권)을 갖는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의 표제(대상 작품명)와 중복되거나 혼동의 우려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대상 작품명을 대상 수상작가의 작품집 서명(書名ㆍ표제작)으로는 쓰지 못한다. 이상문학상의 제1회 수상작은 김승옥의 이었다. 2012년 제36회 대상 수상작은 김영하의 가 선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문학상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두산백과 이상문학상   [ 李箱文學賞 ] 요약 소설가 이상(李箱)의 작가정신을 계승하고 한국 소설계의 발전을 위해 1977년 문학사상사(文學思想社)가 제정한 문학상. 분야 한국문학 주최기관 문학사상사 주최시기 및 기간 1월 시작년도 1977년 시상내역 중·단편 소설 대상은 문단경력이나 업적, 소설 길이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 위주로 선정하며, 심사위원은 문학평론가와 각 신문사 문화부 기자, 문학잡지의 독자, 문학을 전공한 교수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1월부터 12월까지 발표한 작품 중 작품성이 뛰어난 중단편 후보작을 골라 그중에서 대상 1편을 뽑아 시상한다. 상금은 대상 3,500만 원, 추천 우수작상 300만 원, 특별상 500만 원 등이다. 대상 수상작품은 추천우수작들과 함께 문학사상사에서 발행하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다.    * 역대 수상작 * 역대 수상작 회 연도 대상 수상작 수상자 1회 1977년 김승옥 2회 1978년 이청준 3회 1979년 오정희 4회 1980년 유재용 5회 1981년 박완서 6회 1982년 최인호 7회 1983년 서영은 8회 1984년 이균영 9회 1985년 이제하 10회 1986년 최일남 11회 1987년 이문열 12회 1988년 임철우 한승원 13회 1989년 김채원 14회 1990년 김원일 15회 1991년 조성기 16회 1992년 양귀자 17회 1993년 최수철 18회 1994년 최윤 19회 1995년 윤후명 20회 1996년 윤대녕 21회 1997년 김지원 22회 1998년 은희경 23회 1999년 박상우 24회 2000년 이인화 25회 2001년 신경숙 26회 2002년 권지예 27회 2003년 김인숙 28회 2004년 김훈 29회 2005년 한강 30회 2006년 정미경 31회 2007년 전경린 32회 2008년 권여선 33회 2009년 김연수 34회 2010년 박민규 35회 2011년 공지영 36회 2012년 김영하 37회 2013년 김애란 38회 2014년 편혜영 39회 2015년 김숨 40회 2016년 김경욱 41회 2017년 구효서 42회 2018년 손홍규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문학상 [李箱文學賞] (두산백과)  
283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풍선쓰레기",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917  추천:0  2020-01-01
풍선날리기 행사하다 야생동물 잡을라…비판 여론에 잇단 취소  2020.01.01.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앵커] 새해 첫 날 흔히 볼 수 있는 행사 중 하나가 소원을 적은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건데요. 올해는 일부 지자체가 해당 행사를 시작 몇 시간 전 부랴부랴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유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사회자의 구령에 맞춰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 위로 풍선을 날립니다. 저마다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기원합니다.  고다영 / 경기 안성시  "대학교 잘 가게 해달라고 소원 빌었습니다"  새해 소망을 담은 풍선이지만 일각에서는 환경피해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풍선이 터지거나 바람이 빠져 산이나 바다로 떨어지면 결국 쓰레기가 되고, 야생동물의 목숨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기네스북에 오르려고 대량으로 날려보낸 풍선들이 호수에 떨어지면서 배가 뒤집혀 인명피해가 나기도 했습니다.  김정덕 /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  "(풍선 날리기가) 정말로 소망을 이루기 위한 어떤 희망을 담는다면서 생명에 위해가 되는 것이라면 전혀 맞지가 않잖아요. 취지에도."  올해 해맞이 행사를 앞두고는 풍선날리기를 취소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 했습니다. 구설수에 오르자 일부 자치단체들은 부랴부랴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최태규 / 해돋이 행사 기획 관계자  "환경오염이란 것 때문에 풍선 날리는 것이 많이 자제가 되고 있어" 각종 행사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풍선 날리기. 이제 추억의 행사로만 남도록 정부가 나서서 금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TV조선 이유진 입니다. 
2833    [세상뒷끝] - 물고기 한마리 = 300萬 댓글:  조회:3522  추천:0  2020-01-01
5억에 팔렸습니다" 오늘의 HOT 뉴스  2019-12-3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2832    [그것이 알고싶다] - 타종 = 33 댓글:  조회:3461  추천:0  2019-12-31
보신각 종 33번 타종의 의미  - 종교적 의미 : 불교에서 유래. 불교의 우주관, 28계 33천 신앙에서 유래.새벽이 열리는 인(寅)時에, 4대문을 여는 파루(罷漏)는 33번 타종.저녁 유(酉)時에는 28번 타종.(동양적 사고로는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고도 함.33천을 도의천이라 하는데 그곳의 天民들은 건강하고 무병장수 하므로 밝아오는 새해와 밝아오는 아침에는 우리 국민들이 33천민들 처럼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기를 기원. - 민족적 의미 : 33천은, 동서남북 사방에 각 8계층의 하늘이 있고, 그 가운데 이 모두를 지휘하는 하늘을선견성(善見成)이라 하는데,우리나라를 세우신 국조단군이 바로 이 선견성의 성주인,환인천제의 아들이므로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광명이세(光明以世)의 이념이 널리 선양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이다. 보신각은 고종 32년(1895) 이전까지만 해도 종루로 불리웠던 곳으로, 종을 달아 조석을 알리던 곳인데,그 종은 태조 5년(1396)에 조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종루와 함께 불타버린 것을,임란 직후인 1594년 종루를 재건하고 원각사에 있던 종을, 불타버린 종을 대신해 내걸었다. 이 종은 원래 태조의 제 2비인 신덕 왕후의 능인 정릉의 능사에 있었다. 이 정릉사가 폐사되자 원각사로 옮겼다.그러므로, 엄밀하게 따진다면 보신각종은 정릉사종이라 불러야 맞다.이 종은, 고종 32년(1895), 종루가 보신각으로 이름이 바뀜에 따라, 보신각 종이라 불리게 되었고,현재의 종은 또다시 새로 조성된 것이다.어찌되었든, 33번의 타종은, 우리민족, 우리국가는 무력이 아닌, 홍익인간, 광명이세를 근간으로 인, 의, 예, 지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 할 것임을 33천, 즉 우주 전체에 맹세한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통치이념이, 종이 울릴 때 마다 상징적으로 표현된다고 하겠다. =================================/// 【한국의 옛 시보】 통신이 불편했던 옛날에는 밤에 별을 보거나 물시계를 써서 시각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시보를 하였는데, 그 방법은 종을 치거나 북을 쳐서 소리로 시각을 알리는 것이었다. 물론 시보는 주로 밤시간을 알렸다. 8세기의 신라 공혜왕(恭惠王) 시대에는 구리 12만 근이나 되는 큰 종을 만들어 새벽과 저녁에 종소리로 시각을 알렸고, 14세기의 조선 태조(太祖) 때도 큰 종을 쳐서 밤시각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시보법이 확정된 것은 15세기 예종(禮宗) 때로, 이때는 북을 쳐서 밤시각을 알렸다. 예를 들면, 2경 1점(二更一點)에는 북을 2번, 징을 1번 치기를 5회 반복한다. 시보의 시작은 초경 3점이고 마지막은 5경 3점이다. 이 동안에 경점에 따라 북을 295회, 징을 303회 친다고 기록되어 있어 마지막의 5경 3점에는 북 5회, 징 3회만 치고, 더 이상 반복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러한 경점시보 이외에 초경 3점 때를 인경[人定]이라 하여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시각으로 삼아, 28수[二十八宿]의 뜻으로 큰 종을 28회 쳤다고 한다. 한편 새벽의 5경 3점에는 바라[罷漏]라 하여, 33천(三十三天)의 뜻으로 큰 종을 33번 쳐서 통행금지의 해제를 알렸다. 1884년(고종 21) 왕명에 의하여 오정(午正) ·인경 ·바라에 금천교에서 포를 쏘게 한 일도 있는데, 오포(午砲)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1895년 가을 종전의 인경과 바라에 타종을 폐지하고 오정과 자정에 종을 치게 하였으며, 1910년(융희 4) 4월 l일 한국의 11시를 일본의 12시에 맞추어서 정오로 하고, 오포를 쏘아서 포성(砲聲)으로 시각을 알렸다.   
2831    [그것이 알고싶다] - 거인 = 3.5km 댓글:  조회:3661  추천:0  2019-12-31
키 3.5㎞ 거인 형상… NASA, 호주 지상그림 최신 사진 공개 2019.12.31.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키 3.5㎞ 거인 형상…NASA, 호주 지상그림 최신 사진 공개지난 20여 년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호주의 거대그림 ‘마리 맨’(Marree Man)을 촬영한 새로운 사진을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했다. 이 사진은 지난 6월 22일 NASA의 지구관측위성인 랜드샛8호에 탑재된 OLI(Operational Land Imager)라는 관측장치로 촬영한 것이다. 마리 맨은 1998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시에서 북쪽으로 589㎞ 떨어진 ‘마리’라는 마을 근처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견됐다. 이 때문에 마리 맨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거인 윤곽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직선 길이는 약 3.5㎞, 팔다리와 몸통, 머리 등 전체 윤곽의 길이는 28㎞에 달하며, 깊이는 발견 당시 20~30㎝로 파여 있어 하늘에서도 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은 거인의 모습이 왼손에 작은 사냥용 막대 또는 부메랑을 든 원주민을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마리 맨은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 작용으로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해 2016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됐었다.이에 따라 그해 8월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인근 주민들은 마리 맨이라는 명소가 없어지는 것을 우려해 지상그림을 복원하기로 했다. 이들은 원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정확한 GPS(위성항법시스템) 좌표를 가지고 5일 동안 그레이더라는 중장비를 이용해 폭이 최대 35m에 달하는 선으로 이뤄진 마리 맨을 다시 바닥에 새겼다. 특히 이 복원 작업에서는 마리 맨이 쉽게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땅을 원작보다 깊게 파서 거기에 초목이 자라도록 해 거인의 윤곽을 푸르게 만들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마리 맨의 윤곽을 따라 약 9m 간격으로 250개가 넘는 대나무 말뚝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말뚝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전 원작자가 일종의 스케치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도 이 그림은 여전히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조종사 트레버 라이트에 의해 마리 맨이 처음 발견된 지 1년 뒤인 1999년, 지역 단체 등에 누군가가 팩스로 마리 맨의 존재를 알리는 서류를 보냈다. 특히 이 서류는 미국기와 오륜기 그리고 원주민 사냥 관행에 관한 책에서 인용한 명판이 남아 있던 마리 맨의 위치를 가리켰다. 게다가 거기에는 미국식 철자나 계측 단위가 쓰여 있다는 점에서 마리 맨을 어떤 미국인 예술가들이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많은 현지인은 이 그림이 예술가 바디우스 골드버그가 2002년 임종 당시 자신의 작품임을 인정했다면서 그가 주도해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호주 유명 기업인인 딕 스미스는 지난해 6월 마리 맨의 기원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5000호주달러(약 405만원)의 상금을 주겠다고 했으나 아직 이를 받아 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283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동물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799  추천:0  2019-12-30
  "타이어에 낀 여우부터 바다표범까지" 英 동물보호단체 '2019 올해 구조된 동물' 공개  2019.12.30.    좋아요 슬퍼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영국 왕립 동물학대방지협회, '올해 기억에 남았던 동물구조' 사진 공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격 진지에서 구조된 바다사자 등 구조 참여자들 "성공적으로 구조돼 너무나 다행"브리스톨에서 구조된 여우/사진=영국 더 선 화면 캡처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영국의 한 동물보호단체가 연말을 맞아 올해 구조된 동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더 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왕립 동물학대방지협회 RSPCA는 이날 페이스북 계정과 홈페이지를 통해 '2019년 올해 기억에 남는 구조'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RSPCA 측은 "우리는 매년 11만 마리 이상의 동물들을 구조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격 진지에서 발견된 바다표범에서부터 세탁기 안의 고양이까지, 올해의 하이라이트를 공개한다"며 동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여러 장을 공개했다. RSPCA는 지난 2월 요크셔 동부 해안에서 부상을 입은 회색바다표범을 구조했다. 당시 바다표범은 10피트(약 3.04m) 높이의 제2차 세계대전 사격 진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 구조대원들을 쩔쩔매게 했다. 담당자인 리앤 호네스 헤더와 부감독관 클레어 미첼은 바다표범이 갇힌 지 24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헤더는 "안타깝게도 바다표범은 눈을 다친 상태였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며 "굉장히 가파른 경사와 높이 때문에 구조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간신히 바다표범을 그물로 유인해 구출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2월 요크셔 동부 해안에서 구조된 회색바다표범/사진=영국 더 선 화면 캡처 지난 4월 더비셔주 발버러에서 노루를 구조했던 사건도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꼽혔다. 당시 노루는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 교회 묘지 주변으로 도망치다가 펜스 사이에 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구조에 참여한 케이틀린 맥노튼은 "노루가 굉장히 겁을 먹은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부상은 당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소방당국의 도움을 받아 창살을 열어주자마자 도망쳤다. 정말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또 협회 측은 브리스톨에서 여우를 구조했던 순간을 언급했다. 한 물류창고 직원들은 낡은 타이어 가운데 머리가 낀 채 움직이지 못하는 여우를 발견했다. 수의사는 여우의 목과 머리에 윤활유를 발라 조심스럽게 타이어에서 머리를 빼냈다. 구조된 여우는 발견된 지역 인근으로 방생됐으며, 직원들은 여우에게 '미쉐린'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앨런 반스 경위는 "미쉐린은 운이 좋게도 덤불 사이에서 발견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었다"며 "그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너무나도 다행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밖에도 새장에 갇힌 다람쥐와 타이어에 낀 여우, 50m 높이 절벽 위에서 발견된 바다표범, 세탁기에 꼬리가 낀 고양이, 정원 담장에 몸이 낀 여우, 철조망 사이에 낀 양, 폐파이프에 갇힌 페럿 등이 꼽혔다.   /김가연 기자
2829    [요지경] - 하나는 "주자하고" 다른 하나는 "갖자하고"... 댓글:  조회:3465  추천:0  2019-12-30
‘기자인 줄 알았는데…’ 주민 제보로 전주 ‘얼굴 없는 천사’ 성금 훔친 일당 검거 2019.12.30.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훔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당은 성금을 훔치기 위해 며칠째 잠복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인근 주민의 결정적 제보와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천사의 선행은 20년째 이어지게 됐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30일 특수절도 혐의로 A 씨(35) 등 두 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5분경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 옆에 있는 ‘천사공원’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이 든 상자를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노송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동사무소 뒤쪽으로 가보세요’라는 전화를 받고 직원들이 나가봤지만 성금을 찾을 수 없었다. 천사가 4분 뒤 다시 전화해 장소를 알려주며 ‘확인했냐’고 물었지만 이미 상자가 사라진 뒤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오전 10시 37분경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로부터 절도 신고를 접수한 뒤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고 탐문수사를 벌여 용의자들의 차량 번호를 알아냈다. 한 주민은 최근 수상한 차량이 주차돼 있자 차량 번호를 적어뒀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이를 전달했다. 이 주민은 “26일과 27일 동네에서 보지 못했던 차가 주차돼 있어 얼굴 없는 천사가 이 때쯤 찾아오니까 기자들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오늘 오전 10시경 세금을 내기 위해 우체국에 가는데 차량 앞쪽과 뒤쪽 번호판이 가려져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얼굴 없는 천사가 성금을 2003년부터 17차례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전후해 전달해왔다는 것을 용의자들이 미리 알고 잠복 등으로 계획적인 범행을 준비했다고 판단했다. 일당은 오후 2시경 대전 유성구와 충남 계룡시에서 전북지방경찰청의 공조요청을 받고 추적에 나선 충남경찰에 의해 각각 붙잡혔다. 범행 발생 4시간여 만이다. 일당은 붙잡힐 당시 “훔친 돈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조사를 위해 전주 완산경찰서로 압송되면서 ‘왜 돈을 훔쳤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자세한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절도범들이 붙잡히면서 성금 6000여만 원도 회수됐다. 훔친 박스에는 5만 원권 지폐를 100만 원 단위로 묶은 현금 12다발과 노란색 돼지저금통,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힌 A4 용지가 들어 있었다. 회수한 돈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르면 직접 피해자인 ‘얼굴 없는 천사’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천사의 선행 취지가 퇴색하지 않도록 피해자를 ‘주민센터’로 특정해 이 돈을 주민센터에 다시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 4000원을 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천만¤1억원 상당을 기부했다. 지난해까지 19년 동안 성금 6억 834만 660원을 놓고 사라졌다. 아직 돼지저금통에 든 동전이 얼마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은 이번 성금을 포함해 6억 7000만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노송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천사도 성금 도난으로 많이 놀랐다고 들었다. 범인을 붙잡고 성금을 회수해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주=박영민 기자  =================================/// 30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시 전동 전주 완산경찰서 1층 로비. 모자 달린 점퍼를 입은 남성 2명이 나타나자 일제히 카메라 불빛이 번쩍였다. 둘 다 모자와 마스크를 한 상태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쯤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서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 6000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특수절도)로 긴급체포된 30대 용의자 2명이다. "왜 거액의 돈을 훔쳤나" "계획된 범행이었나" "얼굴 없는 천사에게 할 말 없나" "훔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등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두 남성은 묵묵부답이었다.  친구 사이로 추정되는 A씨(35)와 B씨(34)는 이날 오후 2시 25분과 2시 40분쯤 충남 계룡과 대전 유성에서 각각 붙잡혔다. 경찰은 주민센터 주변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용의 차량(흰색 SUV)을 추적해 주거지 인근에서 이들을 붙잡았다.  이들이 훔친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 6000만원도 되찾았다. A4용지 상자 안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담긴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다. 성금은 용의자 중 1명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범행에 이용한 차량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얼굴 없는 천사'가 30일 오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 두고 간 성금 6000만원을 훔쳐 도주한 30대 용의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이들에게 되찾은 성금. A4용지 박스에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다. [사진 충남 논산경찰서] 이번 도난 사건은 이날 오전 10시 3분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익명의 전화가 걸려온 전후에 발생했다. 40~50대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주인공은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얼굴 없는 천사'가 분명했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천사'는 매년 12월 성탄절 전후에 비슷한 모양의 A4용지 상자에 수천만원에서 1억원 안팎의 성금과 편지를 담아 주민센터에 두고 사라졌다. 지난해에는 12월 27일 오전 9시 7분쯤 주민센터 지하 주차장에 A4용지 상자를 두고 갔다.  상자 안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 10묶음과 동전이 담긴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다. 5020만1950원이었다. 상자 안에는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얼굴 없는 천사'가 30일 오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 두고 간 성금 6000만원을 훔쳐 도주한 30대 용의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이들에게 되찾은 성금. A4용지 박스에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다. [사진 충남 논산경찰서]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 4월 초등학생을 시켜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중노2동주민센터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남몰래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19년째 모두 20차례에 걸쳐 그가 두고 간 성금 총액은 6억834만660원이다. 올해가 20년째다. 그동안 그가 건넨 성금은 생활이 어려운 4900여 세대에게 현금과 연탄·쌀 등으로 전달됐다.  이날도 '얼굴 없는 천사'는 "(성금이 든 상자를) 천사공원 내 희망을 주는 나무 밑에 놨으니 가보세요"라고 짤막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직원들이 반가운 마음에 주민센터 뒤편에 있는 천사공원에 달려갔지만, 성금이 든 상자는 없었다. 이후 '얼굴 없는 천사'가 두세 차례 전화를 걸어 "성금을 찾았느냐"며 상자 위치를 재차 알려줬다. 직원들이 30분 넘게 주민센터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성금 상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얼굴 없는 천사'가 30일 오전 성금 6000만원이 든 상자를 두고 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뒤편 '희망을 주는 나무'. 성금을 훔쳐 도주한 30대 용의자 2명이 이날 오후 경찰에 붙잡혔다. [연합뉴스] 주민센터 직원들은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누군가 가져간 것 같다"며 전주 완산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주민센터 주변 CCTV를 분석해 약 4시간 만에 30대 용의자 2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이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을 가져간 사실은 확인했다"며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는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얼굴 없는 천사' 기다린 도둑들… 성금 두자마자 '슬쩍'  2019.12.30.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닷새 잠복 끝 성금 상자 절도 이맘때 연말이면 전주의 한 주민센터에는 현금 수천만 원을 가져다 놨으니 찾아가라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며 20년째 누군가가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해 온 겁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돈을 두고 갔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이 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JTV 송창용 기자입니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얼굴 없는 천사의 전화가 걸려온 건 오전 10시 3분쯤. 지난 2000년 이후 해마다 그래왔던 것처럼 주민센터 근처 어디쯤에 성금을 두고 왔으니 가져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며칠 전부터 전화를 기다렸던 직원 3명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성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종표/노송동주민센터 주무관 : (못 찾고 있으니까 이분이) 전화를 또 하셨어요. (조형물) 쪽에 있으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고 해서 갔는데 못 찾아서 들어와서 경찰에 연락한 거죠.] 경찰은 인근 CCTV를 조사해 절도범 차량을 특정하고 일당 2명을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충남과 대전에서 각각 붙잡았습니다. 성금 6천여만 원도 대부분 회수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충남 출신인 이들은 뉴스로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알게 된 뒤 지난 26일부터 전북 전주에 와 기다린 끝에 천사가 성금을 두고 떠나자 곧바로 훔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주 노송동 주민 : (수상한 차량이 지난주) 목요일, 금요일 이틀 있었어요. 토요일, 일요일에는 없었고 오늘 아침에 번호를 가리고 있었어요.] 경찰은 그동안 신분 노출을 극구 꺼려온 얼굴 없는 천사를 고려해 회수한 6천만 원을 다시 주민센터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영상취재 : 김준태·권만택 JTV)     /JTV 송창용 ==========================================/// 【 앵커멘트 】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몰래 기부를 하는 '얼굴 없는 천사'분들이 있는데요. 남을 돕지는 못할 망정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훔쳐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범인은 주민의 눈썰미에 범행 4시간 만에 붙잡혔습니다. 강세훈 기자입니다. 【 기자 】 전북 전주에는 '천사 마을'이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벌써 19년째 '얼굴 없는 천사'가 다녀갔습니다. ▶ 인터뷰 : 박다희 /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직원 -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7천만 원까지 기부를 하시는 '얼굴 없는 천사'를 기리려고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그동안 기부한 성금만 6억 원이 넘습니다. ▶ 스탠딩 : 강세훈 / 기자 - "얼굴 없는 천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오늘 아침 주민센터 뒤편에 있는 희망을 주는 나무 밑에 성금을 놓고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눈 깜짝할 사이에 누군가 훔쳐간 겁니다. 다행히 범인은 충남에서 범행 4시간 만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훔쳐간 성금 6천만 원도 회수했습니다. 주민의 날카로운 눈썰미가 범인 검거에 한몫했습니다. ▶ 인터뷰 : 노송동 주민 - "이 동네 차가 아니어서 좀 수상했어요. (오늘 아침에는) 차 번호판이 이상하게 그 차인데 하얀색으로 가려져 있더라고요." 경찰은 30대 김 모 씨 등 2명에 대해 범행 동기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MBN뉴스 강세훈입니다. 영상취재 : 조계홍 기자 영상편집 : 이우주 ===============================///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전북 전주시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수천만 원의 성금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붙잡힌 30대 피의자들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의 범행은 단 30초 만에 끝났다. 그러나 목격자 진술, 주민신고, 특히 증거인멸 계획 등이 틀어지면서 결국 수사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31일 특수절도 혐의로 A(35)·B(3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날(30일) 오전 10시40분께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뒷편 '희망을 주는 나무' 주변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6000여만원이 담긴 기부금 박스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경찰은 "성금이 사라진 것 같다"는 주민센터 측 신고를 받고 주변 폐쇄회로(CC)TV분석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탐문수사에 나섰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지난 26일부터 주민센터 주변에 세워져 있던 SUV 차량 1대가 수상하다는 주민 제보를 받고 충남경찰청과 공조해 논산과 대전 유성에서 이들을 붙잡았다. 또 용의자들이 갖고 있던 기부금 6000여만원을 회수했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 성금을 훔쳐 달아난 용의자의 모습.사진=전북지방경찰청 제공 ◆ 범행까지 '30초'…차량 번호판 가림막 시도  이들의 범행 계획은 치밀했다. 31일 전북지방경찰청이 공개한 CCTV 영상을 보면 30일 오전 10시3분께 범행 장소인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A 씨 일당이 나타났다. 이들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 후드티셔츠로 머리와 얼굴을 가렸다. A씨의 손에는 빨간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30초 뒤 A씨가 다시 차 조수석으로 돌아왔고 운전석에 있던 B씨와 함께 범행 현장에서 빠져나가는 모습이 인근 CCTV에 담겼다. A씨 등은 차량을 몰고 충남으로 향했다. 이들의 차 번호판은 휴지로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며칠씩 범행 장소 주변에 머물며 사전 모의를 하던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주민이 경찰에 차량 번호를 제보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차량 번호로 용의자를 특정했다. 이어 고속도로 순찰대, 충남 경찰과 공조 수사를 통해 범행 4시간만인 오후 2시30분께 이들을 충남 논산과 유성에서 각각 붙잡았다. A씨 등은 "컴퓨터 수리점을 한 곳 더 열기 위해 기부금을 훔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논산경찰서가 범인들로부터 회수한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박스에 들어 있던 성금.사진=논산경찰서 제공 경찰은 회수한 성금 6000여만원을 '얼굴 없는 천사'가 기부하려고 했던 노송동 주민센터에 오는 2일 전달할 예정이다. 한편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이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천만원이 담긴 종이박스를 몰래 놓고 사라져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해마다 연말을 기점으로 이뤄졌다. /한승곤 기자 ==============================///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 6000만원을 훔친 30대 남성 2명은 경찰 수사 결과 지난 28일부터 사흘간 주거지인 충남 논산과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를 오가며 잠복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범행 당일에는 차량 번호판을 물 묻은 휴지로 가렸지만, 이전에 답사할 때는 차량판을 가리지 않아 주민들의 의심을 산 것으로 확인됐다. "이틀 전부터 주민센터 근처에서 못 보던 차가 있어서 차량 번호를 적어놨다"는 한 주민 제보가 이들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31일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긴급체포된 A씨(35)와 B씨(3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30일 오전 10시 7분쯤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서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 상자를 통째로 차량(흰색 SUV)에 싣고 도주한 혐의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 25분과 2시 40분쯤 충남 계룡과 대전 유성에서 각각 검거됐다. 경찰은 주민센터 주변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용의 차량(흰색 SUV)을 추적해 주거지 인근에서 붙잡았다.  이들은 범행 당일 자정 무렵 논산에서 출발해 오전 2시쯤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이후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난 오전 10시까지 8시간 동안 차량 안에서 기다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전주에 오기 전 휴게소 화장실에 들러 화장지에 물을 묻혀 번호판을 가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전주에 올 때는 번호판을 가리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논산 지역 선후배 사이다. A씨는 논산, B씨는 공주에 산다. B씨는 A씨 고교 1년 후배 동창으로 알려졌다.  범행을 주도한 A씨는 논산에서 컴퓨터 수리업체를 운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경찰에서 "유튜브를 통해 '얼굴 없는 천사'의 사연을 알게 됐다"며 "컴퓨터 수리업체를 하나 더 차리려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A씨가 무직인 B씨에게 먼저 범행을 제안했다. 경찰은 A씨 휴대전화에서 '노송동주민센터'를 검색한 인터넷 기록을 확인했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천사'는 매년 12월 성탄절 전후에 비슷한 모양의 A4용지 상자에 수천만원에서 1억원 안팎의 성금과 편지를 담아 주민센터에 두고 사라졌다. 지난해는 12월 27일 오전 9시 7분쯤 주민센터 지하 주차장에 5000여만원이 든 A4용지 상자를 두고 갔다. 상자 안에는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얼굴 없는 천사'가 30일 오전 성금 6000만원이 든 상자를 두고 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뒤편 '희망을 주는 나무'. [연합뉴스] 그는 지난 2000년 4월 초등학생을 시켜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중노2동주민센터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남몰래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19년째 모두 20차례에 걸쳐 그가 두고 간 성금 총액은 6억834만660원이다. 그동안 그가 건넨 성금은 생활이 어려운 4900여 세대에게 현금과 연탄·쌀 등으로 전달됐다.  도난 사건이 일어난 30일에도 오전 10시 3분쯤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익명의 전화가 걸려왔다. 40~50대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얼굴 없는 천사'가 분명했다.  '얼굴 없는 천사'는 "(성금이 든 상자를) 천사공원 내 희망을 주는 나무 밑에 놨으니 살펴 보세요"라고 짤막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직원들이 주민센터 뒤편에 있는 천사공원에 달려갔지만, 성금이 든 상자는 없었다. 이후 '얼굴 없는 천사'가 두세 차례 전화를 걸어 "성금을 찾았느냐"며 상자 위치를 재차 알려줬다. 직원들이 30분 넘게 주민센터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성금 상자를 발견하지 못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A씨 등이 여러모로 어수룩하고 범행 수법도 허점이 많다고 봤다. 두 사람은 동종 전과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용의자 중 1명은 항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행 당일 오전 10시 40분쯤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누군가 가져간 것 같다"는 주민센터 측의 신고를 받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다. 주민이 제보한 용의 차량의 차주는 A씨였다.  '얼굴 없는 천사'가 30일 오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 두고 간 성금 6000만원을 훔쳐 도주한 30대 용의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이들에게 되찾은 성금. A4용지 박스에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사진 충남 논산경찰서]'얼굴 없는 천사'가 30일 오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주변에 두고 간 성금 6000만원을 훔쳐 도주한 30대 용의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이들에게 되찾은 성금. A4용지 박스에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사진 충남 논산경찰서] 경찰에 따르면 평소 A씨를 알고 있던 충남경찰청 소속 한 형사가 A씨에게 '너 어디냐. 지금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훔친 돈을 가지고 논산 쪽으로 도주하던 A씨는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훔친 성금을 B씨에게 맡기고 대전 유성에 있는 커피숍에 내려줬다. 그리고 계룡시 모처에서 해당 형사를 만났다고 한다. A씨는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형사가 집요하게 추궁하자 "내가 성금을 훔쳤다"고 자백 후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체포 당시 커피숍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현금 6000만원이 든 성금 상자도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됐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적힌 편지도 들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들이 도주 과정에서 붙잡혔기 때문에 훔친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10원 한 장도 안 썼다"고 했다.  경찰이 확보한 A4용지 상자 안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100장씩 각 500만원) 12묶음과 동전이 담긴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다. 세어 보니 6016만3210원이었다. 이것까지 포함하면 '얼굴 없는 천사'가 지난 2000년 4월부터 20년간 모두 21차례 기부한 성금 총액은 6억6850만3870원에 달한다.  경찰은 이번 도난 사건의 피해자를 '얼굴 없는 천사'가 아닌 노송동주민센터로 보고 회수한 성금을 전주시에 돌려줬다. "절도는 타인이 소유하거나 점유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말하는데 '얼굴 없는 천사'가 성금 소유권을 주민센터에 이전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경찰 측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2명 이상이 범행에 가담했기 때문에 특수절도 혐의를 적용했다"며 "일반 절도는 6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형이 있는데, 특수절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벌금형이 없어 처벌이 훨씬 무겁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 등이 범행에 사용한 차량 번호를 제보한 주민에게 포상금과 감사장을 줄 계획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2828    [그것이 알고싶다] - 천자문 110 댓글:  조회:3195  추천:0  2019-12-27
"이렇게 다양했어?"… 천자문 110종 한자리에 2019.12.27.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앵커] 천자문은 서당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글자의 입문서죠. 이 천자문도 시간이 흐르면서 한글 표기나 그림 해설이 덧붙으면서 변했다는데요. 구민성 기자가 알려드립니다.  [리포트] 옛날 옛적 학동들이 서당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천자문. 1754년에 해서체로 쓴 한석봉의 천자문은 컴퓨터로 찍어낸 듯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대가인 이항복의 글씨도 단아함을 뽑냅니다.  오래된 천자문일수록 중국어 발음에 가까웠습니다. 하늘 천은 하늘 텬, 땅 지는 따 디로 표기 됐습니다.  춘정공 박팽년과 김인후의 천자문은 흘림체로 당시 글씨 교본으로 널리 사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기봉 /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조선시대 같은 경우는 한자만 보통 써있습니다. 왜냐면 서당에서 스승이 가르치고 뜻을 해석해주고 외우게 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들어오면서부터는 혼자공부하는 인구가 많아서 한글 해설문이 달리고….”  근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그림 설명이 들어가고 다양한 서체 표기가 포함되는 등, 시대에 맞춰 천자문도 변했습니다  전분경 / 경기도 안산 “오늘날에 이르러서 우리들이 외래어만 자꾸 신경을 써서 그런데만 몰입해서 공부하려고 해서 천자문에 대해서 유래가 어떻게 되나 알고자 왔고….”  천자문은 오랜 시간동안 우리 역사를 담아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왔습니다.  TV조선 구민성입니다.  ====================================///다른 자료... 윤동주를 가리켜 '부끄러움의 시인' 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하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병자호란 순국지사를 기리는 경주 양동마을 고택 낙선당입니다.  대문에 사유청문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사유란, 군주가 나라를 이끄는 네 가지 강령 '예의염치'를 뜻합니다. 예의 법도 청렴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끄러움입니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 금수'라고 했습니다.  신소설 '금수회의록'에서는 여덟 짐승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금수만도 못한 인간을 꾸짖습니다. 그중에 벌은 '입에는 꿀을 머금고 배에는 칼을 품은' 인간들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 ...
282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재활용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199  추천:0  2019-12-25
 '무색' 용기... 사이다·소주에 화장품까지 2019.12.25.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재활용법 개정안 시행…사이다·소주 무색 페트병으로 유색 페트병·PVC 포장재 사용 불가…라벨도 떼기 쉽게 변경 재활용 등급 4단계 중 '어려움' 등급→환경부담금 최대 30%[앵커] 유색 페트병처럼 재활용할 수 없는 용기는 부담금을 내야 하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오늘부터 시행됐습니다. 이 때문에 소주와 사이다가 담긴 페트병에서 고유의 초록색이 사라졌습니다. 화장품 용기도 차차 바뀔 예정입니다. 박소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대형 마트 소주 판매대가 평소와 달라 보입니다. 익숙하던 초록 페트병이 무색으로 변한 탓입니다. 사이다 페트병도 투명해졌습니다. 손님들은 어색해 하기도 하고, 반기기도 합니다. [김나미 / 서울 홍제동 : 기존의 소주 같지가 않고 생수 같아요. 아직은 그래도 저는 이 색깔이 좋은 것 같아요, 녹색이.] [허혁 / 서울 망원동 : 갑자기 투명으로 바뀌니까 의아한 거에요. 그런데 또 바뀌니까 깔끔하고 괜찮네요.] 페트병 색깔은 달라졌지만, 담긴 술이나 음료의 맛이나 유통기한은 똑같습니다. [강현중 / 롯데칠성음료 홍보팀 : 1년 동안 제품 실험과 유통 테스트를 거쳤습니다. 맛, 향, 탄산 강도 그리고 음료 색 등의 품질 안전성 검증을 다 마무리했고요.] 재활용하기 어려운 유색 페트병과 폴리염화비닐로 만든 포장재를 쓸 수 없게 하는 재활용법 개정안이 시행된 첫날 풍경입니다. 특유의 갈색인 맥주 페트병도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입니다.  하지만 제품 변질을 막기 위해 선택한 색깔인 특성이 있는 만큼 맥주업계는 아직 대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맥주 페트병에 대해서는 법 시행을 유예하고 다른 용기를 찾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생활용품 가운데에서는 바디워시 제품이 눈에 띕니다. 불투명하던 용기가 투명해졌고, 라벨도 쉽게 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화장품 용기는 구조가 복잡하고 부품도 여러 가지라 당장 바꾸지 못했습니다. 업체들은 최장 2년까지 가능한 유예기간 동안 새 용기를 개발한다는 계획입니다. [김지현 /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 기능성 원료의 변색과 변취 등 효능 저하를 막기 위해서 색상이 들어간 유리병 사용이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재활용이 용이한 용기 등 제품 생산을 할 예정입니다.] 유리병은 무색과 갈색, 녹색만 재활용할 수 있는데, 와인이나 위스키 업계는 현실적으로 병을 바꾸기 어려운 만큼 그대로 쓰면서 환경부담금을 낼 것으로 보입니다. /YTN 박소정
2826    [그것이 알고싶다] - 윤봉길 거사 뒷 얘기... 댓글:  조회:2775  추천:0  2019-12-24
라이프 윤봉길 의사, 젖먹이 두 아들에게 남긴 편지에 '울컥' 현재 근황은? 2019-10-27  (사진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F.E TIMES(F.E 타임스)=조재성 기자] 윤봉길 의사가 물통 폭탄을 던지기 전 두 아들에게 유서와 같은 편지를 남겼다고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행사에서 물통 모양의 폭탄을 던졌다.      이에 요시노리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가와바타 사다츠구 상하이 일본 거류민 단장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일본군 주요 인사가 큰 부상을 입었다.   윤봉길 의사는 이 일을 치르기 전에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눈에 밟히는 두 아들을 두고 길을 나섰다.   윤봉길 의사는 편지에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흐르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마라"라고 시작하는 글을 남겼다.   이어 윤봉길 의사는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孟軻)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적었다.   당시 윤봉길의 첫째 아들 윤중은 세 살이었으며 둘째 아들 윤담은 아내의 뱃속에 있었다.   윤봉길의 아들 중 작은 아들은 안타깝게도 두살 때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윤봉길의 장남 윤종에게서는 장손녀 윤주경과 장손자 윤주웅이 나왔는데 장손녀 윤주경은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인수위에 소속돼 활동했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다.  [F.E TIMES(F.E 타임스)=조재성 기자]
282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페트병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827  추천:0  2019-12-24
‘쓰레기 몸살’ 주범 페트병… 의약품 원료로 재탄생 가능해졌다 2019.12.24.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중국글씨가 있는 어구와 페트병이 해변에 널려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플라스틱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일회용 페트병이 의약품 원료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연구원 소속 김희택ㆍ주정찬ㆍ차현길 박사팀과 고려대 김경헌 교수팀, 이화여대 박시재 교수팀이 공동으로 페트병을 분해해 의약품이나 화장품의 성분으로 쓰이는 소재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진은 페트병의 주성분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를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데 주목했다. 이들은 물을 이용해 PET를 단량체(단위 분자)로 분해한 후, 미생물을 이용해 유용한 소재들로 전환하는 전략을 설계했다.  버려진 PET는 화학적으로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리콜로 분해된다. 이어서 미생물을 이용해 테레프탈산은 핵심 중간산물인 프로토카테큐산을 거쳐 갈산, 피로갈롤, 카테콜, 뮤콘산, 바닐릭산으로 전환된다. 에틸렌글리콜은 해당 물질의 대사균주를 이용해 글라이콜산으로 전환된다. [자료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먼저, 섭씨 230도에서 PET를 물과 반응시켜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리콜을 얻어냈다. 이후 미생물을 이용해 이들을 의약품이나 화장품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소재로 전환했다. 테레프탈산을 갈산ㆍ카테콜ㆍ피로갈롤ㆍ뮤콘산ㆍ바닐락산으로, 에틸렌글리콜을 글라이콜산으로 탈바꿈했다. 갈산은 의약품(항산화제) 중간체로 쓰이고, 바닐락산도 의약 및 화장품용 방향 성분으로 쓰인다. 뮤콘산은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단량체에 쓰여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성분이다.  기존 방식 한계 극복…" 폐플라스틱 자원화 등 기술 개발 기대" 이번 연구에서 페트병이 다양한 소재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된 만큼, 기존 재활용 방식의 한계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버려지는 플라스틱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존의 방식을 살펴보면, 크게 기계적 방법과 화학적 방법 두 가지로 이뤄진다. 기계적 방법은 파쇄ㆍ세척ㆍ건조를 통해 PET 섬유를 회수한 다음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공 중 섬유의 길이가 짧아지는 품질 저하가 일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화학적 방법은 비용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이는 PET 섬유를 분해하고 단량체를 회수해 활용하는 방식인데, 재활용 비용이 높은 탓에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한국화학연구원 김희택 박사는 “기존에 폐기물로 취급됐던 폐플라스틱의 원료화 및 소재화 기술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며 “앞으로 폐플라스틱 자원화 및 소재화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화학회에서 발간하는 국제학술지인 ACS Sustainable Chemistry& Engineering(지속 가능 화학 및 공학) 12월호에 게재됐다.  /권유진 기자
282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방사능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954  추천:0  2019-12-23
  후쿠시마 방사능물 결국 바다에 버릴 듯 2019.12. 23.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일본이 벌써 120만 톤 가까이 저장돼 있고 매일 늘어나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결국 바다에 버리려는 쪽으로 점점 더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오늘(23일) 관련 회의가 있었는데 도쿄 유성재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제16차 소위원회에서 일본 정부가 오염수 처리 방안을 압축해 공표했습니다. 그동안 검토되던 다섯 개 방안 가운데 일단 희석한 뒤 증발 시켜 수증기로 배출하거나 물과 섞어 바다에 버리는 방안 두 가지로 줄인 겁니다. 전기 분해와 지하 저장, 지층 주입 등 나머지 세 가지 방안은 과거 사례도 없고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했습니다. 대기 중 증발은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때의 선례가 있다는 설명이지만, 그동안 도쿄 전력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해양 방류 외에는 답이 없다고 주장해 온 것을 감안하면 결국 해양 방류로 결정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일본 정부는 바다에 방류해도 인체 영향이 미미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오염수의 삼중수소 예상 누적 총량은 내년 1월 기준 860조 베크렐로 전례가 없는 양이어서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소위원회는 오염수의 처리 시기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갖고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결정으로 일본 정부가 해양 방류로 결론을 내리고 시기를 저울질할 가능성이 한껏 높아졌습니다. (영상취재 : 문현진, 영상편집 : 장현기)     /유성재 기자 ===========================/// [뉴스데스크]◀ 앵커 ▶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하지 않고, 결국 버리는 것으로 사실상 결정했습니다. 오염수 문제를 검토해 온 정부 자문위원회가 오늘 결과 보고서 초안을 내놨는데, 바다 또는 대기 중에 방출하는 방안만을 결론에 포함시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도쿄에서 고현승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후쿠시마 제1원전 내 991개 탱크에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는 117만여 톤. 핵연료 냉각에 쓴 물과 원전에 스며들어 오염된 지하수, 빗물 등 오염수는 하루 170톤씩 늘고있어, 탱크를 더 늘리지 않으면 2022년 여름에 꽉 차게 됩니다. 이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해온 정부 자문위원회가 오늘 3년여 만에 결과 보고서 초안을 내놨는데, 사실상 오염수를 버리기로 결론냈습니다. 위원회는 검토해온 6가지 처리방안 중 해양 또는 수증기 방출, 그리고 이 둘을 병행하는 방법 등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해양과 수증기 방출 모두 전례가 있는 데다, 방사선 추가 피폭량도 연간 최대 0.62 마이크로시버트로, 일상생활에서 피폭되는 자연방사선량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층 주입, 수소분해, 지하매설은 규제, 기술, 시간상 문제로 어렵고, 탱크를 더 짓는 방안은 원전 내 땅이 부족하고, 원전 밖으로 옮기는 것도 어렵다고 결론냈습니다. [세키야 나오야/日 정부 자문위원(도쿄대 교수)] "부지가 극도로 줄게 되어서 어떤 방법이든 처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현실적으로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에선 즉각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오가와라 사키/원전사고 피해자단체연락회] "(오염수) 육상 보관을 요구해 왔는데, 이번에 수증기 방출과 해양 방출 방안 밖에 나오지 않아 매우 불만입니다." 해양과 대기방출 모두 방사성 물질을 대량 배출해 피해 범위가 늘어난다는 환경단체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스즈키 카즈에/그린피스 재팬] "바다와 대기를 쓰레기통으로 쓰겠다는 발상 자체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자문위원회의 최종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일본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우려해온 대로 사실상 결론을 내려놓고 절차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김진호(도쿄), 편집: 안광희) /고현승 기자 =====================/// PICK 안내 ...반대에도···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바다로 내보낸다 2019.12.23.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경산성 전문가 소위원회 23일 정리안 발표 지하매설·지층주입·전기분해 등 방안은 배제 현지 주민들 '생계 위협한다'며 반발하는 안 강력히 반대하는 한국과 외교 갈등 불가피 지난 2월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의 오염 처리수를 담아둔 대형 물탱크들. 처분하지 못한 오염 처리수가 급격히 늘며 현재 부지에는 오염 처리수 100만t이 물탱크에 담긴 채 보관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 처리수를 바다와 대기로 방출하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3일 전문가 소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정리안을 발표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강하게 반대해온 방식이어서 일본 정부의 강행 여부에 따라 한·일 외교 갈등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니혼게이자이 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두 가지 방식으로 처분할 계획이다. 현재 원전 오염수를 정화한 뒤 탱크에 저장 중인 '오염 처리수'를 물에 섞어 바다로 내보내거나, 가열해 수증기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한다는 것이다. 다만 소위원회는 "방출 시기나 기간은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결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당초 소위원회는 ^전기분해를 통한 수소 방출 방식 ^약 20m 지하에 매설하는 방식 ^약 2500m 아래 지층에 주입하는 방식 등도 검토했지만, 전례가 없는 데다가 ‘규제·기술·시간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이유로 최종안에선 배제했다.  오염 처리수의 해양·대기 방출은 일본 국내에서도 이미 논란이 됐다. 원전 오염수는 정화시설(다핵종제거설비·ALPS)을 거쳐도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는 걸러내지 못해서다. 이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생계 위협을 이유로 이 같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당장 소비자들은 후쿠시마 인근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구매를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오염 처리수를 충분히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방출하면 과학적으로 무해하다는 입장이지만,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인 한국은 강력 반대 입장이다. 그동안 한국은 일본에 오염수 처리가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국제사회에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주변국에는 충분히 설명한 뒤 반드시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원자력안전 고위규제자회의에서도 이런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한국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일본 측은 ‘오염수 처리 방법은 정해진 게 없다’며 피해 나갔다. 지난 9월 10일 하라다 요시아키(原田義昭) 당시 환경상이 퇴임을 앞두고 작심한 듯 '바다로 방출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말했을 때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번에 해양·대기 방출 방침이 확정된 만큼 한국 정부의 대응 수위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김상진 기자
2823    [그것이 알고싶다] - 말하는 식물... 댓글:  조회:3371  추천:0  2019-12-21
"물이 부족해요"... 말하는 식물 등장 기사입력 2019.12.21.    좋아요 슬퍼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식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국내 연구진이 식물 뿌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신호를 분석해 식물 상태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혜리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I need water" (물이 필요해요.) "I need sunlight" (햇빛이 필요해요.) 물과 빛이 부족하다는 음성이 들립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식물. 상태가 좋지 않은 식물에 곧바로 물을 주고 빛을 쪼여 줍니다.  그러자, "Thank you for water. I'm fine" (물 줘서 고마워요. 이제 괜찮아요.)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하는 식물'이 국내 기술로 재현됐습니다. 식물 뿌리 주변에 있는 미생물의 신호를 읽은 덕분입니다. 물과 빛이 충분해 식물의 광합성이 활발해지면 미생물도 활성화합니다. 이때 미생물 주변에서 전자가 생성되는데, 이를 전기적인 신호로 변환해 식물의 상태를 파악하게 되는 겁니다. 반대로 물이나 빛이 부족하면 미생물이 활성화되지 못해, 전기 신호도 약해집니다. 이렇게 식물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전기 신호는 음성 신호로 전환돼 스피커를 통해 표출됩니다. [이은빈 / 건국대 생물공학과 연구원 : 식물에 급수하면 30분 내로는 식물의 상태, 식물의 활성도를 알 수 있게끔 설계했습니다.] 식물 뿌리 주변 미생물이 내보내는 전자는 흙 속에 심은 센서를 통해 간단하게 밖으로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식물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식물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양윤정 / 건국대 생물공학과 연구원 : (이 기술을 활용하면) 식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있어서 식물 관리가 좀 더 쉽고 식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공기 정화나 정서적인 이유로 실내에서 이른바 '반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늘고 있는 상황. 이번 기술을 통해 식물과 색다른 소통을 시도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YTN 사이언스 이혜리
2822    [그것이 알고싶다] - 만약... 만약... 만약... 댓글:  조회:3394  추천:0  2019-12-21
  만약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2019.12.21.    화나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고요하면서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백두산은 사실 활동을 잠시 멈춘 화산이죠. 최근 백두산 폭발을 가정한 재난영화가 개봉했는데요, 진짜 화산이 폭발하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스브스뉴스입니다. [뉴스 속보입니다. 백두산 화살이 폭발했습니다. 폭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이번 폭발은 관측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최고 수치의 폭발로 추정되는 가운데.] 백두산이 폭발해 대재난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좀 실감이 안 나지?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산의 모습은 차분하고 고요한 천지의 모습이니까 그런데 이 아름다운 천지 안을 들여다보면 거품이 부글부글? 백두산 천지 5km 아래로 확인된 '마그마 방'만 무려 4개. 언제나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활화산이야. 백두산은 과거에 여러 번 폭발했던 적이 있는데 약 1000년 전에 있었던 폭발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화산 대폭발로 기록되고 있어. 화산 폭발의 정도를 기록하는 화산 폭발 지수는 0~8까지 있는데, 당시 백두산 대폭발의 추정 등급은 무려 7.4. 무려 우리가 아는 폼페이 화산 폭발보다 수십 배 강한 위력이야. 실제로 2015년 5월 21일, 국민안전처 주관으로 부산대 교수팀이 최악의 백두산 대폭발 상황을 가정해 피해자료를 분석한 연구 자료 결과에 따르면, 백두산에서 천 년 전과 비슷한 규모의 대폭발이 일어나 북동풍이 불어올 경우 백두산에서 뿜어나온 화산재가 48시간 이내에 거의 한반도 지역을 뒤덮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 기계 고장의 원인이 돼서 항공, 교통, 통신 시설을 마비시키고 토양을 황폐화시켜 농작물을 망가트리는데 추정되는 경제적 피해액만 11조 원 이상이래. 이런 최악의 재난 상황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행정안전부에서 고시한 화산폭발 대비 국민행동요령에 자세히 나와 있어. 대부분 화산재 피해를 막기 위한 대처들인데 콘택트렌즈를 착용하지 않는다? 화산재를 현미경으로 보면 아주 날카로운 형태의 미세한 결정질로 이루어져 있어. 이걸 모르고 혹시 렌즈를 낄 때 자칫 렌즈에 달라붙은 화산재가 각막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야. 게다가 대부분 황산염 등 유독물질도 함유하고 있어서 호흡기에도 좋지 않지. 세상에 서울에서 500km 떨어진 곳인데도 이렇게 큰 영향을 준다니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영화 백두산까지 본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대재앙이 일어날까 두렵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천 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백두산이 크게 폭발한 적이 없고 다량의 화산재가 발생하더라도 바람의 방향 때문에 한국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는 어려워. [이윤수/포스텍 환경공학부 특임 교수 : 화산재로 해 가지고 다 뒤집어쓰는 거 아니냐. 미세먼지들? 초미세먼지들? 이러한 우려는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2011년 기상청에서 발표한 백두산 폭발 예측 시나리오에 따르면 영화에서처럼 최고 수준의 대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정도가 비교적 낮은 단계인 경우에는 화산재의 영향이 황사주의보에서 경보 정도라고 하거든. 그래도 우리는 가능성이 희박할 수도 있지만, 최악의 상황은 대비해야겠지? 그러니까 안전을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화산 대응 매뉴얼은 기억해두는 게 어떨까? (책임 프로듀서 : 하현종, 프로듀서 : 조기호, 구성 : 권재경, 편집 : 정혜수, 내레이션 : 박은영, 도움 : 김지영·박은영)         /조기호 기자
282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제흡연",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251  추천:0  2019-12-16
  “항공기 몰면서도 창문 열고 흡연”… 항공사는 ‘나 몰라라’  2019.12.16.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앵커] 비행기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되죠. 그런데 만약 비행기 조종사가 운항 중 담배를 피운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부 조종사들이 실제로 담배를 피우고 연기를 빼내기 위해 비상 장치까지 이용한다고 합니다. 김지숙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국내 모 항공사에서 6년 넘게 일한 조종사 김 모 씨. 조종석 흡연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김○○/A 항공사 기장/음성변조 :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봤어요. (전체 조종사의) 30% 정도는 태우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김○○/음성변조 : "활주로까지 가는 길이 있어요. '택시웨이(유도로)'라고 하는데요. 그 사이에도 조종실 창문을 열고서는 태우시는 분들도 가끔 계십니다. 창문을 열고 다시 닫았을 때 혹시 안 닫히진 않을까..."] 보잉 737기 조종석을 재현해놓은 공간입니다. 조종석에 불이 났을 때 연기를 빼내는 장치가 있는데요. 일부 기장들은 이 장치를 담배 연기를 빼는 데 쓴다고 합니다. 장치를 잘못 조작하면 객실 기압이 떨어지고 비행기가 급하강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김○○/A 항공사 기장/음성변조 : "실수할 수 있거든요. 극히 일부라지만 한 번의 비행에서 승객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실제로 지난해 7월 중국의 한 항공사 조종사들이 담배를 피우다 이 장치를 건드려 비행기가 급하강한 일도 있었습니다. 직장 익명게시판에는 조종사 흡연 문제를 성토하는 글이 많습니다. 하지만 흡연 시 최대 천만 원의 벌금을 내는 건 승객 뿐이고, 조종사와 객실승무원은 처벌할 규정이 없습니다. [정○○/B 항공사 승무원/음성변조 : "정말 많이 피우시는 기장님들은 정말 안에 들어가면 뽀얗거든요. (기장님들은) 무소불위예요, 그냥. 손님은 담배 피우면 여권 뺏고 공항에 도착하면 경찰한테 인계하고 막 이러는데 기장님들은 왜 저렇게 해 주나..."] 지난 6년간 기내 흡연으로 적발된 승객은 2천여 명. 조종사에게도 흡연시 자격을 정지하고, 항공사에 과태료를 매기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는 안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증언은 생생한데 정작 국내 여러 항공사들은, 정식 보고된 조종사 흡연은 없었다는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김지숙 기자
282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흡연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220  추천:0  2019-12-14
하늘에서 담배꽁초가 내려요... 아파트 흡연갈등 여전 2019.12.14.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층간소음만큼이나 아파트 흡연 갈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2018년부터 금연아파트를 지정하고 금연아파트 내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규정을 마련했지만, 자율규제에 머물러 있어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CJ헬로 강원방송 이다혜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원주의 한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입니다. 위층에서 버린 담배꽁초가 떨어져 창틀이 누렇게 그을렸습니다. 발코니 난간과 에어컨 실외기에 담뱃재가 떨어져 있는가 하면, 공용 복도 창문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쌓여 아예 재떨이가 돼버렸습니다. [아파트 주민 : 베란다 나가면 냄새가 나요. 거실 창문 밑에 꽁초도 떨어져 있더라고요.] [아파트 주민 : 그분들 나름대로 흡연구역에서 피운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뭐라고 하기가…주민들 사이에서 얼굴 붉히기도 좀 그렇고.]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경기도 오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유모차에 타고 있던 세 살배기 아기가 누군가 던진 담배꽁초에 맞아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파트 내 흡연문제가 최근 새로운 갈등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마다 금연조례를 제정하고 금연아파트를 지정해 운영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금연아파트는 입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신청하고 선정되면 현관, 복도, 엘리베이터 등의 공용공간에서 흡연이 금지됩니다. 금연아파트로 지정되면 입주민의 금연 독려를 위한 현수막 등 홍보물 설치 비용과 각종 건강프로그램이 지원됩니다. [이규숙 / 강원도 원주시보건소 건강증진과장 : 관에서 일방적인 지정이 아니기 때문에 입주민들 스스로 금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요. 스스로도 자율정화나 서로서로 감시망을 만들어갈 수 있거든요.] 그러나 원주지역 아파트 180여 개 중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곳은 단 4곳뿐. 주민 합의를 이루는 과정 자체가 어려운 데다 실제 지정까지 행정 절차가 까다로워 아파트들이 신청을 꺼리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거주하는 주민이 아닌 세대주의 동의가 필요하고 정작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는 주택 내 금연은 강제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여전한 상황. 공동주택 금연구역에서 흡연한 경우 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현재의 담당 공무원 규모로는 물리적 단속이 불가합니다. 때문에 주민자치위원회의 자율에 맡기는 등 제도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원주 모 아파트 입주자대표 : 시설물을 변경하는 부분은 소유주가 필요하겠지만, 흡연자의 동의를 받는 것은 현재 거주자가 더 우선시 돼서 거주자의 동의를 받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단순한 불편을 넘어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아파트 흡연 문제. 강제성 없는 법과 조례로 주민 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헬로TV뉴스 이다혜입니다.
2819    [별의별] - "고래 똥" = "바다의 황금" = 8 댓글:  조회:3376  추천:0  2019-12-13
바닷가서 주운 '덩어리'… 알고 보니 8억짜리 '고래 똥' 2019.12.13.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마지막 검색어는 '고래 똥이 8억 원'입니다. 태국의 한 남성이 바닷가에서 무게 17kg에 달하는 용연향을 줍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돌덩이처럼 생긴 이게 바로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인 용연향입니다. 고급 향수의 재료로 쓰이는데요, 상당히 고가에 팔려서 '바다의 황금' '바다의 로또'라고 불립니다. 이번에 남성이 주운 용연향의 가치도 무려 8억 5천만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남성은 해변에서 쓰레기를 뒤지다가 떠밀려오는 덩어리를 발견했는데요, 덩어리가 용연향이라는 걸 직감한 그는 라이터로 일부를 녹여 봤더니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고 합니다. 바다 위를 오래 떠다닌 용연향일수록 향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 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요. 누리꾼들은 "저것도 아는 사람이나 줍지ㅠㅠ 그냥 돌덩이같이 생겼네요." "고래 배설물이 이렇게 비싼 거였다니~ 나도 고래 똥 주우러 다닐까?ㅋㅋ"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자료출처 : 데일리메일)  
281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삼림파괴",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617  추천:0  2019-12-13
▲   현 브라질원주민협회 (APIB)의 소냐 과자자라(왼쪽에서 두 번째) 대표와 부족 리더들이 로마에서 거리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 ⓒ 아마존와치 제공 관련사진보기 "저는 브라질 (북동부) 마라냥주에서 온 소냐 과자자라(Sônia Guajajara)라고 하며, 현 브라질원주민협회(APIB)의 대표입니다. 지금 브라질 원주민들의 삶은 아주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농기업, 벌채 및 광산업체들이 아마존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35일 안에 3명이나 살해당했습니다. 이는 브라질 원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지난 2일부터 13일까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기후변화회의(COP25)를 찾은 소냐 과자자라 대표는 다수 원주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알리며 세계를 향해 국제연대를 호소했다. 지금 마드리드에서는 정부기관과 업계가 참여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 의결기구, 유엔기후변화회의(COP)의 공식 행사와 동시에, 환경-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대안적 행사, '기후 소셜 서밋(Social Summit for the Climate)' 및 원주민 리더들을 위한 대안적 연대체, '밍가 인디지나(Minga Indigena)'도 열리고 있다. 북남미에서도 많은 원주민 환경운동가들이 가세해 행진, 집회, 퍼포먼스, 토론회를 열며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지난 6일, 5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기후비상행진에서 공식 연설자로 초대된 소냐 대표는 군중을 향해 현 브라질 대통령을 비판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우리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단지 브라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입니다. 아마존은 불타고 있으며, 아마존을 보호하고자 싸우는 이들은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열대우림은 과거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지구 말고 없듯이, 우리는 대안(plan B)이 없습니다. 지난 500년 동안 계속된 이 싸움에 우리 모두가 전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싸움에 중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그녀의 친척 두 명이 고속도로에서 총격사건으로 살해당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 유엔기후변화회의 (COP25)를 찾은 소냐 과자자라 대표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기후변화회의 (COP25)를 찾은 소냐 과자자라 대표가 국제사회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 디모크라시 나우 방송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과자자라 부족의 대표격인 피르미노 과자자라(Firmino Guajajara)와 하이문도 과자자라(Raimundo Guajajara)는 사건 당시 환경 관련 미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총을 난사한 후 뺑소니친 용의자의 행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주 살인사건이 발생한 곳은 원주민보호지역이지만, 원주민들이 불법 벌채업자와 광산업자로부터 폭력에 자주 노출되는 곳이다. 과자자라 부족은 브라질 내 가장 큰 원주민 부족 중 하나로 약 2만 명의 주민들로 추정된다. 이들은 최근 증가하는 불법 벌채와 토지 점유로부터 이 지역을 보호하고자 7년 전부터 삼림 보호원단(Guardians of the Forest)을 구성해 정찰을 해오고 있지만, 역부족이기만 하다. 지난 11월 1일에는 삼림보호원이었던 파울리노 과자자라(Paulino Guajajara)가 살해당했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한 명의 아들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한 그는 지난 9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위험한 일이라 가끔 두려운 생각도 들지만, 머리를 쳐들고 맞서서 싸우고 있다"며 "현재 아마존의 자연이 너무 많이 파괴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토지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동물과 새들, 다른 부족도 보호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아마존을 보호해야 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는 대략 백만 명의 원주민이 존재하는데, 브라질 내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모니터링하는 가톨릭단체 씨미(Cimi)에 의하면, 1985년 이래 살인사건만 1119건으로 집계된다. 특히 2017년에는 110명, 2018년에는 135명이 살해당했다.   급격히 증가하는 아마존 파괴와 원주민 대상 폭력   ▲  지난 여름 불타고 있는 아마존 ⓒ 아마존 와치 제공 (katie Maehler) 관련사진보기 지난 1월 극우성향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아마존 지역의 삼림파괴와 아울러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이 급격히 증가추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린피스는 자체 웹사이트에서 원주민선교위원회(Indigenous Missionary Council)의 통계자료를 인용하며, 지난 1월 이래 브라질에서는 불법 토지점유가 두 배로 증가했고, 원주민보호구역에 대한 공격이 44%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벌목과 채광, 자원약탈을 목적으로 불법침입한 이 업자들은 종종 중무장을 하는 관계로 원주민들에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 현상을 믿지 않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과거 선거 캠페인 중에는 원주민들의 권리를 축소하고, 이들을 문화적으로 동화시킬 것이며, 아마존 내 원주민보호지역을 개발업자들에게 개방할 것임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브라질국립우주연구소(INPE)는 위성 자료를 근거로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8개월 동안 발생한 브라질 아마존 화재는 8만 7천 건 이상으로, 지난해(2018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76%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화재 건수다. 다수의 환경단체들은 아마존의 화재가 올해 들어 더욱 증가한 배경으로 열대우림을 불태우고 소 방목장과 콩 등의 작물을 키우는 농지, 광업 개발지로 만들려는 업계의 탐욕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브라질에선 건기에 화재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목축지 마련 등을 위해 인위적으로 삼림을 태우기도 한다. 예일대 발표에 의하면, 파괴된 아마존 삼림의 80%에 5천만 마리 이상의 소를 기르기 위한 목축지가 자리잡고 있다.  브라질의 환경단체 '지구의 벗 브라질(Amigos da Terra Brasil)'은 "아마존 산불은 누군가의 실수가 아니다"라며 "아마존 산불 뒤에는 피 묻은 자본이 있다. 이 힘은 지난해 말 대통령으로 당선된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이고, 이는 아마존 부족들과 아마존에 대한 공격을 용인하고 있다"며 웹사이트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또한 브라질 정부의 환경관리 프로그램 예산 축소 방침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 정책 예산이 95%나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브라질 내 환경 관련 기관과 연구자들에 대한 고소, 해고 등 정부의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브라질의 현 대통령과 각료의 환경정책은 대내외적으로 큰 비판을 사고 있다. 프랑스는 주요 무역거래를 막겠다고 위협하기도 했고, 노르웨이와 독일은 열대우림 보호기금 기부를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더 이상 원주민들의 피 보고 싶지 않다"    이런 브라질 현 정부의 반환경 정책기조에 대해, '브라질 사회정의 및 인권네트워크'의 마리아 루이사 멘돈사(Maria Luísa Mendonça) 대표는 지난 8월 미국 대안매체 디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제사회가 아마존 삼림파괴를 이끄는 브라질 소고기, 콩, 사탕수수, 목재 등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녀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마존 파괴에 대해 아주 만족해하고 있고, 책임을 회피할 핑계를 찾을 것이다"라고 일축하며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그를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국제사회가 아마존 농기업 제품(소고기, 콩, 사탕수수, 목재)의 보이콧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브라질 행정부에 재정지원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토지를 보호하며 국내시장의 70%에 해당하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 원주민이나 소농을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는 지난 11월 29일 브라질의 한 인권단체가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소한다는 브라질 신문 에스타다오(Estadao)를 인용보도했다. 아른스인권위원회(Arns Commission for Human Rights Defense)는 지난 11월 18일 아마존 화재와 원주민 리더 살해사건들과 관련, 현 대통령이 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범죄를 선동했다고 주장하며 '원주민 대학살'로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해마다 수많은 진정서를 접수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는 조사나 기소에 이르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만약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그는 30년 종신형과 아울러 벌금, 재산몰수를 당할 수도 있다. 군사독재시절 고문에 반대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브라질의 돔 파올로 에바리스토 아른스(Dom Paulo Evaristo Arns) 추기경의 이름을 딴 이 단체는 총 2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었으며 6명의 전직 장관, 언론인, 환경운동가, 변호인 등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단체 공식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다.   소냐 과자자라씨는 한 달간 독일, 이태리, 스페인 등 유럽에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파이낸셜 타임즈에 광고를 내 '아마존 파괴에 앞장서는 기업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최악의 은행 리스트'를 폭로해 눈길을 끌었다. 이 불명예스런 리스트에는 블랙락(BlackRock), 뱅가드(Vanguard), JP모건 체이스, 스페인의 산탠더(Santander), 프랑스 BNP 파리바스, HSBC은행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그녀는 원주민 리더들을 공격하는 이런 연속적인 폭력에 대해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을 통해 "도대체 이런 (폭력이) 얼마동안 지속될 것인가. 누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인가. 현 당국은 증오와 편견 아래 생명을 빼앗기는 원주민의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더 이상 원주민들의 한 방울의 피도 보고 싶지 않다!"고 분노했다. 또한 자신의 트윗에서 "지금은 제도화된 집단학살에 단호히 노라고 말해야 할 때"라고 명백한 어조로 말했다.    유엔기후변화회의(COP25)를 찾은 브라질원주민협회의 소냐 과자자라 대표 (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31차 실무회의 장춘서  2019년12월13일  조선언어문자의 법제화, 규범화, 과학화추진을 위한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31차 실무회의가 동북3성조선어문협의령도소조판공실의 주최로 12일 10일, 장춘에서 개최되였다.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 김명철 부주임이 회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동북3성조선어문협의령도소조판공실 책임자 박문수가 회의를 사회했다. 북경, 료녕성, 흑룡강성, 길림성 등 중국조선어규범위원회 위원 등 30여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 김명철 부주임이 축사를 하고 있다. 김명철 부주임은 1년사이에 《조선어규범집 해설》 10000책을 국내 조선언어문자 사용 단위에 무료로 발행하였고 ‘규범업무양성반'을 조직하였으며‘전국조선어문번역사업 업무골간 고급연수반’을 개최,‘조선문정보기술표준’을 제정, 새 규범 선전을 강화하는 등 사업성과를 올렸다면서 성적에 대해 충분히 긍정하였다. 그러면서 “사업연구를 강화하고 보급응용을 강화하며 기술표준 연구개발을 잘해 소수민족언어문자의 다양화, 규범화, 표준화 수요를 만족시키고 본 민족 언어문자 발전에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원들은 2개 조로 나뉘여 단어 규범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렸다. 4시간 후 각 조마다 진행된 연구결론을 집중, 모든 위원들이 모인 장소에서 최종 심의를 거쳤다. 이번 회의에서는 관광용어 례로 旅游房车 (관광캠핑카),地方陪同旅游(현지가이드), 페기물회수리용용어 례로  再生利用(재활용), 페건전지화학품처리처치용어 례로 蓄电池单体(축전지셀), 새로운 명사술어 례로  城乡(도농), 地球卫士奖(지구환경대상), 女汉子(녀장부), 套路贷(올가미대출),戏精(연기쟁이)등 도합 353개 단어를 심의 통과했다. 동북3성조선어문협의령도소조판공실 책임자 박문수는 총화발언에서 “민족언어문자에 대한 국가 정책을 잘 관철하고 언어규범의 함의와 목표를 잘 리해해야 하며 새 시대 민족언어사업의 발전수요에 적응해야 하고 봉사수준을 한층 높여야 한다.”고 부탁했다.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는 국내 조선어 전문가와 언어문자사업 행정관리 인원으로 구성된 조선어 규범화, 표준화 심의 조직으로서 위원들은 해마다 한번씩 모여 새 단어에 대한 규범화 회의를 하여 동북3성 조선어문협의령도소조와 정부에 조선언어문자규범화사업에 대한 방침, 정책, 조치에 대한 효과적인 건의를 제출한다. /길림신문 글 최화기자 사진 송광일
2816    화가의 사랑엽서 400통... 댓글:  조회:4038  추천:0  2019-12-12
미술   수수께끼 화가 - 구스타프 클림트 미술이야기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는 수수께끼 같은 화가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한번도 설명한적이 없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으며, 사생활은 철저히 숨겨서 수수께끼화가라는 말이 붙은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더욱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가 죽은 뒤 50년뒤 재평가 되면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화가로 손꼽기도 되었다.    어린시절을 알 수 없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도 자세한것을 알기가 어렵다. 클림트가 자서전을 쓰지도 않고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으니 어린시절을 짐작할 수 없는 화가는 아마 유일할 듯 하다. 그는 1862년 빈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7남매중 둘째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보헤미아 출신의 귀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라고 한다. 그가 나중에 금을 이용하여 모자이크 작업을 할때 아버지의 수공예품에 대한 기억이 크게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들만큼, 아버지의 직업과 먼훗날 작품에 연관성이 크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미술작품 클림트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라는 작품이다. 꽃이 흩뿌려진 작은 초원위에 서 있는 두 여인은 주변과 분리되어 그들을 마치 후광처럼 둘러싸고 있는 금빛 아우라 안에서 서로에게 황홀히 취해 있기도 하다.  '금'에 내재된 마술적 혹은 종교적인 함축성뿐 아니라 절대적인 부와 물질 가치의 상징성을 극대화 하고 있다는점이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보다 형태의 물질적인 면을 중요시 여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 인물 사이의 관계에서 연인의 머리를 잡고 자신에게 향하게 하여 그녀의 볼에 입맞추고 있는 남자의 남성성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클림트는 입맞춤하고 있는 남녀의 얼굴은 전통적인 사실주의로 처리하였지만, 그들의 의상과 배경에는 타원, 삼각형, 곡선과 소용돌이의 문양과 다양한 색채를 모자이크처럼 배치하여 장식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클림트는 많은 초상화를 주문받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결코 짧은시간에 완성을 하는것이 아닌, 한 작품 당 보통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초상을 그림에 있어서도 의뢰인의 사실적인 인물묘사에만 치중하지 않고 의상, 행동, 화면의 분위기까지 고려한 신중한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인물의 입체감과 공간감이 발견되면서 클림트의 초상화의 실력을 날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일반적인 캔버스보다 세로의 비율이 긴 화면을 많이 사용해서 인물을 제외한 배경의 공간을 줄여서 평면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아마 클림트의 초상화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클림트의 사랑 예전 TV 서프라이즈에 클림트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된적이 있다. 클림트의 걸작에 관한 비화가 방영이 되면서, 클림트의 숨기고 있던 사랑도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날이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여러 여자모델들의 누드화를 그려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그릴 수 없었던 한 여인이 있었으나 바로 연인 에밀리 플뢰게라고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밀리에게 반하고 나서부터 알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고, 클림트는 에밀리 몰래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영감을 얻기 시작했고, 그의 관능적인 그림은 그때부터 계속해서 탄생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클림트는 에밀리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면서 400통이 넘는 엽서를 보내며 마음을 전하기도 했었지만,  카사노바 화가 클림트가 에밀리 앞에만 서면 쑥맥이 되고 키스도 할 수 없는 남자가 되어버려서 자신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지게 되었고 그 후로 에밀리 앞에만 서면 자책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누드화를 즐겨 그리던 클림트는 에밀리가 수수하고 청순했기에 누드화를 그릴 수 없었고, 관능적인 누드화를 그리고 싶어서 구상이 되지 않았고, 다른 여자들은 클림트의 누드화를 좋아했고, 다른여자들을 만나서 그림을 그리게 되어버리지만 에밀리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그렇게 그녀가 떠난 후 그림에만 몰두한 2년안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라는 작품이다. 남자는 자기 자신을 그렸는데 에밀리가 자신을 떠날 것 같은 모습을 절벽에서 위태롭게 키스를 하는 남녀를 표현한거라고 한다.    위에서 이 그림을 소개할 땐 우주속에 갇혀 있고 황홀한 남녀를 표현한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클림트의 그림속 비화를 알고 나니 이 그림이 슬퍼지게 보이는건 왜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절벽끝에 내몰린 여자의 발이 아슬아슬 해보이기만 하고, 알려지지 않은 클림트의 뒷 이야기를 들으니 내심 재미있고 슬프고 안타깝기만 하다.        
2815    [세계속에서] - 왕과 서민, 서민과 왕... 댓글:  조회:3347  추천:0  2019-12-12
오바마, 베트남 현지 식당서 뜻하지 않게 공짜 밥 먹은 사연 2019.12.12.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국의 스타셰프 앤서니 부르댕과 분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앤서니 부르댕 트위터 캡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한 서민식당에서 의도치 않게 공짜 밥을 먹었다.  12일 현지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는 지난 11일 오후 호치민시 당떳 거리에 있는 '꾹각'이라는 식당을 찾아 저녁 식사를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돼지고기 스튜, 스프링롤, 신맛이 나는 수프 등 베트남 전통 음식을 1시간여 동안 즐긴 뒤 카드로 밥값을 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 식당 매니저는 음식값 계산을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는 "오늘 음식에 들어간 재료를 모두 우리 농장에서 길러 돈이 별로 안 들었다"면서 "집에 온 손님처럼 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매니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식당을 떠나기 전 주방장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는 이번 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오바마 재단 행사에 참석하기에 앞서 지난 8일부터 베트남을 방문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16년 베트남을 공식 방문했을 때 들러 전통음식인 분짜를 먹었던 식탁과 식기 등이 유리 상자 안에 전시 보존되고 있다. [연합뉴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던 2016년 5월 베트남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수도 하노이 하이바쯔엉구의 팜딩호 거리에 있는 식당 '분짜 흐엉 리엔'에서 미국 유명 셰프 앤서니 부르댕과 저녁 식사로 '분짜'를 먹어 화제가 됐다. 분짜는 현지식 소스에 쌀국수와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적셔 먹는 음식이다.  그들은 등받이가 없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분짜와 함께 현지 맥주 1병을 곁들인 뒤 6달러(약 7100원)를 지불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같은 서민 행보에 베트남 누리꾼은 열광했고 해당 식당은 관광명소가 됐다.  /김지혜 기자
2814    [세계는 지금] - 축구로 남과 북 "2800 하나"로... 댓글:  조회:3638  추천:0  2019-12-11
  "박항서호"… `40년 남북갈등` 베트남 하나로 묶었다  2019.12.11.   좋아요 훈훈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동향 아니면 응원도 안했는데 분단후 동족상잔의 비극 겪어 1400㎞ 긴 국토, 지역 감정 키워 박항서 이후 "우리는 하나" 남부 호찌민 출신 선수 활약에 북부 하노이서도 열띤 환호 베트남 축구 팬들이 10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30회 동남아시안게임(SEA) 결승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팀은 이날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대0으로 꺾고 1959년 대회 창설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로이터 = 연합뉴스]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11일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베트남을 짓누르던 남북 갈등도 이날 이후로는 깨끗이 사라진 듯 보였다. "베트남은 하나로 뭉치면 강하다. 함께하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 대표팀이 10일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시안(SEA) 게임에서 60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면서다. 현지 언론은 대부분 지면 1면을 '박항서 매직'으로 대서특필했다. 박항서 감독의 '나비효과'가 베트남 경제·사회·정치 모든 분야에서 국가를 한 단계 '레벨업'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박항서호의 거침없는 선전이 뿌리 깊은 베트남 남북 지역 갈등을 해소할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전국 각 지역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이라는 용광로에서 화학적 결합을 이루며 금메달을 따낸 덕분이다. 박 감독 부임 이전 베트남 대표팀 조직력은 '바닥'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면 대표팀 경기 관람조차 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세가 팽배했다. 특히 대표팀 선수 간, 출신 지역 간 갈등으로 하나로 뭉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베트남은 1976년 7월 통일을 이뤘지만 이후 40년 넘도록 지역 간 갈등은 여전하다. 북쪽 '정치수도 하노이', 남쪽 '경제수도 호찌민'으로 양분되며 라이벌 의식도 상당하다. 하노이 사람들은 호찌민 출신 남자의 억양을 '유약해 보인다'며 깎아내리고, 호찌민 사람들은 하노이 발음을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서로 총을 겨눴던 불행한 역사가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다. 남북으로 국토 길이가 1400㎞에 이르는 독특한 국경선도 서로를 좀처럼 섞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하지만 박 감독 부임 이후 선수들이 '원 팀'을 이뤄내고,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 혁혁한 성과를 내자 국가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SEA 게임 결승전에서 베트남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한 공격수 응우옌띠엔링 부모를 둘러싼 스토리가 화제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라오스전에서 해트트릭과 태국전에서 2골을 몰아친 그는 고비마다 팀을 승리로 이끌며 베트남에 우승컵을 선사했다. 그는 베트남 남부 호찌민 인근 빈즈엉성이 고향이다. 그의 부모는 고향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그의 선전으로 베트남이 우승컵을 차지하자 북부 하노이 축구팬들 사이에 빈즈엉에 있는 부모님 카페가 화제로 떠올랐다. "기회가 되면 띠엔링 부모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중부 출신 부이띠엔중, 북부 하노이 출신 응우옌꽝하이 등이 골고루 활약했다. 하노이에서 백화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조안티투이 씨는 "1000㎞보다 더 멀리 떨어져 사는 선수들이 조국을 위해 모여 성과를 냈다는 점에 감동을 느낀다"며 "축구를 보고 있을 때만큼은 베트남 전역이 모두 하나"라고 말했다. 윤옥현 대한상의 하노이사무소장은 "베트남 정부는 정부 고위직 자리를 지역별로 기계적 배분을 할 만큼 사회 통합에 각별히 신경 쓴다"며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가 연일 박 감독을 치하하는 것 역시 그를 통해 베트남이 하나로 뭉치는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과 한국 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승전 이후 베트남 주요 대도시 거리에는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번갈아 흔드는 차량과 오토바이 인파가 쏟아져 나와 도로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들은 "꼬렌 비엣남(파이팅 베트남), 박항세오" 등을 번갈아 외치며 광란의 거리 파티를 벌였다. 부부젤라 부는 소리와 폭죽 터지는 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김강욱 PTI 이사회 부의장은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선전을 펼친 이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한국 기업에 대한 베트남 국민의 호감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 홍장원 특파원] ==================================/// 국부 호치민과 나란히··· 박항서로 도배된 베트남 신문 1면 기사입력 2019.12.11.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 대표팀이 10일 동남아시아(SEA) 게임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0으로 완파하고 60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했다. [EPA=연합뉴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 대표팀이 지난 10일 동남아시아(SEA) 게임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자, 베트남 전역이 '박항서 신드롬'으로 들썩이고 있다.  우선 베트남 현지언론들은 11일 관련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이날 조간신문 1면은 대부분 ‘박항서 매직’이란 제목으로 도배됐고, 축구 전문지 ‘봉다’는 1면 전체를 박항서호 사진으로 덮었다. 봉다는 또 4면에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정상에 우뚝 섰다’는 제목 하에 베트남 대표팀 선수들이 박 감독을 헹가래 치는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고, 박항서호가 지난해 12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에 우승했을 때와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고 전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 대표팀이 10일 동남아시아(SEA) 게임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0으로 완파하고 60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자 베트남 하노이에서 현지 축구 팬들이 거리를 질주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연합뉴스] 징(Zing)과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대표적인 온라인 매체도 메인 페이지를 베트남 축구 소식으로 채웠고, ‘베트남 인베스트 리뷰’ 등 경제 전문지도 박항서호의 업적 소개를 빼놓지 않았다.  일간 베트남뉴스는 ‘SEA 축구에서 베트남의 역사적인 우승’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기사에서 “수백만 베트남 축구 팬들의 꿈이 60년 만에 이뤄졌다”면서 “결승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온 국민이 황홀감에 빠졌고, 자축하는 팬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고 전했다.  일간 년전은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이번 SEA 게임 7경기에서 6승 1무로 경이로운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며 박항서호가 우승을 차지한 뒤 찍은 기념사진을 올렸다. 이 사진에는 베트남의 국부인 호찌민 전 국가주석 사진, 베트남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나란히 등장했다.  VN익스프레스는 베트남이 오랫동안 기다린 SEA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자 축구 팬들이 밤늦게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했다면서 전국이 열광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매체는 또 박 감독이 베트남 국민, 베트남 축구협회와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이번 우승의 영광을 돌리고 내년 1월 태국에서 개최되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본선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고 전했다.  한편, 응우옌 응옥 티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번 승리에 대해 포상금 10억동(약 5000만원)을 지급했으며 베트남 축구협회(VFF)도 30억동(약 1억5000만원)을 내놨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 밖에도 민간기업들이 20억동(약 1억원) 이상을 후원해 10일 오후 11시 현재 70억동(약 3억6000만원) 이상의 포상금이 모였다.  /김다영 기자 ============================///   '박항서 매직'... 베트남에 부는 코리아 열풍 기사입력 2019.12.13.    좋아요 훈훈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박항서 매직'으로 베트남은 지금, 코리아 열풍입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동남아시안 게임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자 베트남 현지 언론들도 이렇게 신문 1면에 대서특필했는데요. 박항서 호에 포상금이 쇄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함께 전했습니다. 경기 중 보여준 박 감독의 리더십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당시 경기 장면 함께 보시죠. 박 감독은 후반 32분, 베트남 선수가 거친 몸싸움으로 쓰러지자 상대 선수에게 파울을 주지 않았다며,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는데요. 이를 두고 현지 언론은 마치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 닭 같았다며 박 감동의 지도력을 극찬했습니다. 하지만 박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자제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신이 레드카드를 받는 것보다는 우승이 우선이었다고 끝까지 뭉클함을 안겼습니다. [박항서 /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10일) : 미안합니다. 하지만 제가 잘 통제를 해야 했는데 제 레드카드 받는 것보다 우승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불만을 표출한 게 과했나 봅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 시각, 베트남 시내는 그야말로 축제의 밤이었습니다. 오토바이에 국기를 달고, 거리 응원을 하는 모습이 마치 2002 월드컵 우리나라의 4강 신화 때를 보는 듯하죠. 베트남 국민은 박항서 감독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며 60년 만에 거둔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박항서 매직' 덕분일까요?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우리 기업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이미 삼성은 지난 6월 베트남 한정 상품으로 '박항서 에디션' 스마트폰을 출시했고요. 현대차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베트남의 자동차 누적 판매량에서 일본의 도요타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한국 과자도 베트남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초코파이는 베트남 제사상에도 오를 정도로 국민 간식 반열에 올랐죠. 초코파이 회사인 오리온의 베트남 사업 매출액도 지난해 최고치를 찍고 처음으로 국내 매출을 뛰어넘었습니다. 또 한 번 진한 감동을 안기며 베트남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박항서 감독. 베트남 시민들은 박 감독에게 운이 좋은 때라는 뜻의 '당손'과 그의 성씨를 붙여 '박당손'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는데요. 우승 뒤에도 세계의 벽은 높다며, 동남아 왕좌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보여준 박 감독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차정윤 기자
2813    [세계는 지금] - "세계 최연소..." 녀인천하"... 댓글:  조회:3860  추천:0  2019-12-11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 탄생… 핀란드 내각은 '여인천하'  2019.12.11.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마린 총리, 선출되자마자 12명 여성 장관 입명 북유럽에 있는 나라 핀란드에서 세계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습니다. 올해 34살인 이 신임 총리는 선출되자마자 장관 19명 가운데 12명을 여성으로 임명했습니다. 김석재 기자가 기자입니다. 1985년 11월생, 올해 34살인 사회민주당 산나 마린 의원이 핀란드의 새 총리로 선출됐습니다. 세계 최연소 총리로, 핀란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입니다. 마린 총리는 선출되자마자 내각의 장관 19명 가운데 12명을 여성으로 임명했습니다.[산나 마린/핀란드 총리 : 모든 아이들이 꿈을 이루고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핀란드가 되길 원합니다.] 핀란드는 1906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준 나라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사회민주당과 중도좌파 연정을 구성하는 4개 정당의 대표 역시 모두 여성입니다. 마린 총리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15살부터 빵 포장회사에서 일을 했고 대학생 때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영업사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7살에 시의원에 당선된 뒤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 6월부터 교통부 장관을 맡아왔습니다. 마린 총리는 그동안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왔습니다. [산나 마린/핀란드 총리 : 내 나이와 성별을 생각해본 적이 결코 없습니다. 정치에 입문했던 이유와 유권자의 신뢰를 얻었던 것들만 생각합니다] 핀란드 국민들은 젊은 여성 총리의 선출에 환호했습니다. [핀란드 국민 : 젊은 여성 총리가 선출된 게 자랑스럽습니다. 좋은 일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린 총리는 내일(12일)부터 벨기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참석해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나설 예정입니다. (영상편집 : 정용화)  
2812    [그것이 알고싶다] - 안중근 거사 뒷얘기...일본인 "삽화 기자" 댓글:  조회:3552  추천:0  2019-12-11
  일본인 기자가 그린 재판받는 안중근 의사  2019.12.11.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앵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된 뒤 열렸던 재판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 공개됐습니다. 당시 재판을 방청한 일본인 기자가 묘사한 법정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이철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열차에서 내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경찰에 체포됩니다. 이듬해 열린 재판에 안중근 의사는 호송 마차를 타고 출석했습니다. 거사에 동참한 동료들과 함께 법정에 섰습니다. 재판 관계자 한 명 한 명의 얼굴. 안중근 의사를 방청석에서 바라만 보는 한국인 변호사들. 방청객이 소란을 피우는 모습까지 시간 순으로 재판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이주화/안중근 의사 숭모회 학예팀장 : "이때도 사진기자들이 있었는데 나가라고 했습니다. 일본 재판부에서. 그리고 삽화 기자만 남겨 놨었어요. 삽화 기자가 크로키 형태로 즉석에서 그린 겁니다."] 기자가 남긴 재판 방청권에는 여섯 번의 재판 중 네 번째라는 표시가 선명합니다. 그림과 방청권, 안중근 의사로부터 직접 받은 글씨까지 일본인 기자의 후손이 기증했습니다. [이혜균/안중근 의사 숭모회 사무국장 : "정말 정말 내 몸같이 아껴달라, 그런 이야기를 하셔서 저희가 감사히 받아 왔습니다."] 공판 기록물은 정확한 재판 날짜와 참석자, 법정 분위기까지, 그림과 함께 남겨진 유일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정윤서/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주무관 : "재판장, 검사, 통역관, 변호사들이 다 일본인들로 구성된 불공정한 공판이었는데요. 이를 정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사료로써 가치가 있다고 봤습니다."] 서울시는 그림과 방청권은 국가문화재로, 일본인 기자와 간수가 받은 안중근 의사의 글씨는 보물로 지정, 등록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신청했습니다. KBS 뉴스 이철호입니다. /이철호 기자
2811    [그것이 알고싶다] - 우주에서 만든 맥주의 맛???... 댓글:  조회:3507  추천:0  2019-12-06
감정표현 AI 로봇·맥주 원료 우주로 보낸 이유는? 2019.12.06.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NASA, 화물선 `드래건` 발사 인간과 대화 가능한 AI 로봇 3년간 ISS서 우주인과 협업 버드와이저 맥아·양조장비 화성에서 맥주 생산 목표 감정 표현이 가능한 IBM의 인공지능 로봇 사이먼2. [사진 제공 = 독일항공우주센터 국제우주정거장]우주비행사들이 기쁨과 슬픔 등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AI) 로봇과 함께한다면 어떤 심리적인 변화가 나타날까. 우주에서 맥주를 양조하면 어떤 맛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감정 표현이 가능한 AI 로봇과 맥주 빚을 보리를 우주로 보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5일(현지시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새로운 우주과학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실험 장비를 실은 화물선 '드래건(CRS-19)'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밝혔다. 드래건은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팰컨9'에 실려 이날 낮 12시 51분께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됐다. 총 38종의 실험 장비가 실렸고, 이 중 23종은 ISS에 보내는 새로운 실험 장비다. 독일항공우주센터(DLR)는 이번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AI 로봇을 처음 우주로 보냈다. 우주 환경에서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협력하고 상호작용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IBM이 개발한 모니터 형태의 AI 로봇 '사이먼2'를 투입했다. 이전 모델인 사이먼은 단순히 업무만 보조했지만 사이먼2에는 감정 표현과 공감 기능이 추가됐다. IBM은 "사이먼2는 우주비행사들의 감정을 파악하고 반응할 수 있어 대화 파트너도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먼2는 향후 3년간 ISS에서 우주인들과 생활하며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030년대 화성에 맥주를 공급하기 위한 버드와이저의 우주 맥주 실험 장비. [사진 제공 = 독일항공우주센터 국제우주정거장]'버드와이저'로 대표되는 미국 맥주 제조 업체 앤하이저부시는 우주의 무중력 환경이 보리와 맥주 양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보리와 특수 설계된 버드와이저 양조 장비를 보냈다. 버드와이저는 2030년대 인류의 화성 식민지 건설에 대비해 화성에 맥주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2017년부터 ISS에서 맥주 실험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이번 임무를 통해 무중력 상태에서의 맥아 제조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맥아 제조는 맥주 양조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계다. 리카르도 마르케스 버드와이저 부회장은 "버드와이저는 화성에서 양조하는 첫 맥주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밖에 우주 환경에서 근육·뼈 손실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 쥐 40마리와 우주인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불꽃 확산 실험 장비, 멕시코 학생들이 개발한 초소형 통신위성 'Az테크샛-1' 등이 실렸다. 이 과학 장비들은 8일 ISS에 도착할 예정이다. 현재 ISS에는 총 6명의 우주비행사가 체류하고 있다. 드래건은 ISS에서 진행 중인 과학 실험 결과물 등 54종의 샘플을 싣고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송경은 기자
281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동물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298  추천:0  2019-12-04
  누가 북극곰 몸뚱이에 '소련 전차이름'을 새겼나  2019.12.04.   화나요 슬퍼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러시아에서 몸에 검정색 글씨가 선명하게 그려진 북극곰이 목격됐다. 영국 가디언 유튜브 갈무리. 러시아 북부 지역에서 몸뚱이에 글씨가 적힌 북극곰이 포착됐다. 영상 속 북극곰은 하얀 털 위에 또렷하게 보이는 검정 글씨 때문에 먹이를 찾거나 흰 눈 위에서 몸을 숨기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3일(현지시간) 몸에 ‘T-34’라는 글이 선명하게 적힌 북극곰의 영상을 공개했다. ‘T-34’는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의 중형전차 이름으로, 일부 주민들은 전승기념일에 자동차에 새겨 2차대전 종전을 기념하기도 한다.  영상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세계자연기금(WWF) 직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으로, 메신저를 통해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영 생물연구소는 현재 이 영상이 찍힌 장소를 찾는 중이라며, 스프레이로 글씨를 적으려면 북극곰을 붙잡아 진정제를 주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곰과 사람의 접촉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북극곰들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북극해 인근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한 마을에서는 올 2월에만 50마리가 넘는 북극곰이 목격됐다.  북극곰의 몸에 낙서를 한 것이 먹이를 찾으러 온 북극곰들에게 화가 난 주민이 저지른 짓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인근 지역 주민들이 올 초 소란을 겪은 뒤 북극곰 접근 차단 조치를 강화한 바 있다면서 “겨울이 되면 이런 사례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붙잡아서 진정제를 놓고 낙서를 하는 일은 최소한 과학자들이 할 행동은 아니다” 라고 밝혔다. /임소정 기자
2809    [그것이 알고싶다] - 베트남(월남) 통일 댓글:  조회:4401  추천:0  2019-12-02
    베트남과 우리나라 통일의 공통점 1.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누어져 있었다. 2. 남북간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했다.(독일은 서독과 동독이 왕래가 자유로웠음) 3. 한쪽의 나라는 다른 한쪽의 나라에 비해 잘 살지 못했다.(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남한은 잘사는데 북한은 가난해서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고, 베트남도 북쪽이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음)   베트남과 우리나라 통일의 차이점 1. 우리나라는 통일을 하지 못했지만 베트남은 통일을 하였음. 2.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위상이나 경제력에서 남쪽이 우월하고 군사력도 밀리지 않고 있지만, 베트남은 북쪽이 남쪽보다 우월해서 공산주의로 통일이 됨.   베트남의 통일에 대한 문제점 1. 무력에 의해 통일이 되었음. 2. 양측의 대화와 타협이 충분하지 않았음.   베트남의 통일로 본 우리의 자세 1. 힘이 있어야 통일을 함. 2. 가능하면 대화와 타협으로 통일을 해야 함. 3. 통일이후의 발전을 위해 미리 계획을 세움(남북간의 화해, 격차 해소 등)   * 참고자료 : 베트남의 역사와 통일과정   베트남의 역사는 약 4천년 정도로 추정되며 그들의 설화에 의하면 랑롱권과 어우꺼를 그들은 자기네 시조로 생각하고 있다. 베트남은 계속적으로 중국왕조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0세기 중반에 최초의 베트남 독립왕조를 세우려 했으나 이내 다시 중국 송나라의 지배에 들어간다.   11세기에 200여년을 지배한 리왕조, 13세기에 200여년을 지배한 쩐왕조, 호씨정권, 레왕조, 이후 16세기에 분열과 혼란의 시기를 맞는다.   17,8세기의 베트남 역사에 중대한 사실은 북쪽의 쩐씨와 남쪽의 우옌씨에 의해 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18세기 말엽에 우옌왕조가 베트남을 재통일하게 되는데 마지막 왕조인 우옌왕조는 성립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던 프랑스 세력의 침입에 의해 1860년대에 절름발이 상태가 되고 1880년대에는 아르망 조약체결로 완전히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다.   1945년 3월 일본은 프랑스를 무력으로 격퇴하고 80여년의 프랑스의 베트남 통치를 종식시킨다. 8월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즉각 하노이를 장악하고 남부의 사이공까지 통제해 간다. 이것을 공산당은 8월 혁명이라 일컫는다. 9월2일 호치민은 하노이에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빌미로 16도선의, 북에는 중국의 국민당 군대가, 남에는 영국군이 진주하고 뒤를 이어 프랑스가 자신의 유산임을 주장하면서 베트남에 되돌아오므로 대립과 투쟁은 또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를 몰아낸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68년 북베트남군과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의 남베트남 공세로 인한 미국과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마지막으로 1975년 싸이공이 북베트남에 함락되고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로의 통일을 맞이하게 된다.   * 자료 출처 : 지식인의 답변들 =========================/// 베트남은 전쟁으로 무력통일을 한 그런 나라죠. 좀 설명하자면   베트남은 원래 프랑스의 식민지였어요. 그런데 1941년 일본군이 인도차이나반도로 공격을 해와서 일본과 프랑스가 협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이 일본은 프랑스의 '형식적' 베트남 지배를 인정한다는 것이였거든요. 그 후 일본은 거의 모든 베트남내의 프랑스인들을 가두고 괴뢰정부(허수아비 정권) 를 수립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건 아시죠? 그러면서 베트남에는 권력의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그 때 프랑스 파리에서 '호치민'이 돌아와서 베트민, 즉 베트남 공산주의 독립운동단체를 설립합니다. 베트민군은 일본 항복 후 며칠만에 베트남 북부를 장악하고 1945년 9월 2일 하노이에서 베트남 재통일과 독립을 선언합니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인 연합국들은 중국에게 베트남 문제를 떠넘깁니다. 중국군은 자기네들 세력이 뿌리박기 전까지는 프랑스인들을 풀어줄수 없다면서 그들을 계속 억류하고 있었고, 그 사이 베트민군이 점점 남쪽으로 세력을 뻗쳐왔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억류되어 있고, 중국은 실질적으로 통치를 하지 않으니 남부는 권력 공백상태가 되었죠. 그때서야 중국군은 프랑스인들을 풀어주어서 북부는 베트민 공산군, 남부는 프랑스가 장악합니다. 1946년 말에 그 둘 사이에 8년간 전쟁이 계속되었어요. 하지만 그 전쟁은 확실히 베트민군에게 유리했습니다. 유럽에 본국을 둔 프랑스로서는 베트남 재지배의 명분이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후에 베트민군이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게되면서 프랑스의 요새 디엔비엔푸가 1954년 5월 함락됩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다시 남북으로 나누어집니다. 북쪽은 호치민이 대통령인 베트남인민공화국이, 남쪽은 괴뢰정권인 베트남공화국이 세워지죠. 프랑스는 패배후 발빠르게 베트남을 떠납니다. 어느새 베트남문제는 미국이 떠안고 있게됩니다. 미국은 반공주의자인 응오딘지엠을 총리로 내세웠지만 독재정치를 펼쳐 신뢰도가 바닥을 기었죠. 반면 북부에서는 토지개혁을 단행해 호치민의 인기가 계속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러나 응오딘지엠은 정치, 경제 모두 무관심했을 뿐이었죠. 1959년에 북베트남은 민족해방전선, NLF. 흔히들 말하는 베트콩을 만들었습니다. 베트콩은 게릴라전으로 1960년대 초 남베트남의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요. 그리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군사개입을 시작해 통킹만 공습을 합니다. 남부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응오딘지엠은 암살됩니다. 1969년 공산군은 더 강하게 공격해왔고 미국은 서서히 발을 뺄 준비를 합니다. 1973년 1월에는 미국과 베트콩 사이에 파리협정이 조인됩니다. 미군이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공산군과 남베트남군도 휴전한다는 내용이었지만 미군이 떠난뒤 4월에 공산군은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1975년 4월 말 공산군이 사이공 대통령궁을 침입함으로써 베트남공화국은 멸망하고, 통일 베트남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됩니다.   베트남은 통일을 위해 딱히 노력한건 아닙니다. 무력통일을 했으니까요. 또 여러 서방국가들에 의해 상당히 피해를 많이 봤으니까요.   긴글 다 읽으셨다면.. 어느정도 도움이 되셨을거라 믿습니다. 출처가로세로세계사 읽고.. ===========================/// 더욱이 미군이 철수한 시점에서 월맹은 총공세를 폅니다. 1974년 1월부터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간의 갈등은 다시 무력충돌로 확대되었다. 결국 북베트남은 1975년 대규모 공세를 벌여 그해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을 점령했고, 남베트남의 대통령이던 즈엉반민의 항복을 받았다. 사이공이 점령된 뒤 남베트남공화국이 수립되었고, 1976년 7월 2일 남북 베트남이 통합해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수립하면서 베트남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트남전쟁 [Vietnam War] (두산백과)   더욱이 미군이 철수한 시점에서 월맹은 총공세를 폅니다. 자세한건 아래를..   미군 없는 월남은 빈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월맹은 앞에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뒤에서는 남베트남을 재차 침공할 준비를 했다. 침공 준비를 마치고 1975년 1월 시험삼아 푹룽 성(福隆省)을 공격하여 점령 한 뒤, 1975년 3월 월맹은 남베트남을 대대적으로 침공한다. 미국은 이왕 도와준 놈인데 그냥 손 빼기는 좀 찝찝했는지, 미군은 철수하면서 남베트남에게 많은 수의 무기를 공여했다. 남베트남이 그거 갖고 잘 싸우라는 거였는데... 1974년에 월맹군이 쳐들어 오자 대부분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박살나버렸다. 결국, 남베트남군은 대패했고 월맹군은 미군 무기를 노획하여 남베트남군을 역공하는 사태까지 갔다.# 사실 미국이 무기는 줬지만, 이 무기들의 유지를 위한 예산 비용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남베트남군은 일상적인 전투에도 지장을 받을 지경이었다. 일례로 미군 철수 전에는 전투 한번에 100발을 쏘던 포대가 단 3발만을 쏠 수 있었다. 특히 유지 보수에 민감한 공군의 타격이 커서 전투기는 많았지만 부품과 기름, 탄약이 없어서 제대로 출격할 수 없었다. 급기야 C-130 수송기에서 폐유 드럼통과 폭탄을 함께 투하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본래 공산주의자로서 군 내에 위장 잠입해 있던 전투기 조종사가[52] 남베트남 대통령궁에 폭탄을 떨구고 월맹에 귀순하기도 했다. 조종사들이 출격을 위해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인지 남베트남이 멸망할 때가 닥치자 태국이나 말레이시아까지 날아가서 태국 및 말레이시아에 망명한 조종사들이 수십명이다.[53] 공군 참모총 장이자 전 부통령 응우옌까오끼의 탈출 명령이 있었다고 한다. 귀중한 조종사와 전투기를 공산주의자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던가[54].흠좀무. 이때 탈출한 항공기들은 태국이 임시로 보관하다가 미국에 반환하였다.[55] 보병들은 미군을 따라서 싸운 경험이 남아있었는지 공군 지원 없이는 한 발도 못 움직인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1975년 3월 초에야 응우옌반티에우 대통령은 더이상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국에 흩어진 군대를 재배치해서 좀 더 버텨보려고 시도했으나 이게 잘못되면서 오히려 패망을 앞당기는 자충수가 된다. 1975년 3월 10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남베트남군의 주요 거점지인 부온마투옷을 점령했고, 이로써 수도 사이공으로 가는 길을 확보한다. 미국 정부는 의회에 9억 7,200만 달러의 남베트남 지원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의회는 더 이상의 예산 지원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물론 남베트남군이 무능력했던 면도 있긴 했으나 그 밖에 지휘 체계의 붕괴와 전략, 전술적인 문제도 상당히 컸다. 보급과 병참이 여의치 않았던 데다, 월맹군의 대공세에 남베트남의 대통령 응우옌 반 티에우가 내린 무모한 철수 작전으로 인해 피난민들과 군이 뒤섞이는 대혼란에 빠지면서 일개 야전군이 월맹군의 공격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되어버렸다. 이 철수 작전의 문제점은 대규모 철수작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은 그 자리에 없었고, 사령관 대리는 막 진급해서 별을 단 여단급 지휘관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보안을 유지한답시고 철수 작전 자체가 부대장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았다(...) 이 재배치를 틈타서 호치민 루트로 우회해서 진격한 월맹군에 의해 이후 1, 2군단이 통째로 붕괴되고 휴전선인 북위 17도선과 중부 고원지대가 넘어가면서 남베트남은 막장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1975년 3월 26일 중부에 고립된 최대의 기지겸 도시인 다낭이 함락되고 남베트남군은 궤멸된다. /위키백과에서  ==========================/// 두산백과 베트남전쟁   [ Vietnam War음성듣기 ] 요약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 (1960~1975). 이미지 크게보기 미토의 피난민 언제 1960∼1975년 어디서 베트남 누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 : 남베트남 정부군과 미국 왜 베트남의 통일 1960년에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이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지원한 미국과 벌인 전쟁이다.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벌인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1954)과 구분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하며, ‘월남전(越南戰)’이라고도 한다. 남베트남 정부가 붕괴된 1975년 4월 30일까지 지속되었다. 초기에는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의 내전(內戰)이라는 성격을 띠었으나, 1964년 8월 7일 미국이 통킹 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에 전쟁은 북베트남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 하에서 한국, 타이,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중국 등이 참전한 국제적인 전쟁으로 비화되었으며, 미국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으로 군사개입의 범위를 넓히면서 전장도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전쟁 중에 미국, 한국군에 의해 미라이 학살, 빈호아 학살, 퐁니 퐁넛 양민 학살 등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베트남전쟁의 배경   베트남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7년에는 베트남국민당이, 1930년에는 인도차이나공산당이 조직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하자 호찌민[胡志明]을 중심으로 1941년 5월 19일 베트민(Viet Minh, 베트남독립동맹)이 결성되었고, 이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한 뒤에 베트민은 하노이를 점령하고 그해 9월 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수립과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1946년 11월 23일 하이퐁(Haiphong) 항구에 함포 사격을 가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은 1954년 5월 7일 프랑스군의 거점인 디엔비엔푸(Dien Bien Phu)가 함락될 때까지 9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해 7월 제네바에서 휴전협정이 성립되어, 북위 17°선을 경계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제네바협정에서는 1956년 국제감시위원회의 감독 아래 베트남 전역에 걸쳐 자유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했으나 1955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응오딘지엠(Ngo Dinh Diem)은 선거 실시를 거부했다. 그리고 농민들이 베트민의 토지개혁으로 분배받은 농지를 다시 회수하고, 친 가톨릭 정책을 펼쳐 민중의 반발을 샀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는데, 초기에 카오다이(Cao Dai)나 호아하오(Hoa Hao) 등의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시작된 봉기에 베트민의 구성원들이 합세하면서 1950년대 중반에는 이른바 ‘베트콩(Viet Cong)’이라고 불리는 게릴라 군사조직으로 발전했다. 지엠 정권은 1958년 반공법을 시행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으로 반발을 억누르려 했으나, 남베트남의 반란 세력은 1960년 12월 20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해 정부군과 본격적으로 맞섰다. 이들은 민족민주정부의 수립, 토지개혁, 평화통일, 중립외교 등 10개 항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베트남전쟁의 경과   지엠 정권에 대한 반발이 확대되자 1963년 즈엉반민(Dưong Van Minh) 등은 미국의 방조 아래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응오딘지엠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1964년 응우옌칸(Nguyen Khanh)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남베트남 정권은 잇따른 쿠데타로 크게 불안정해졌다. 이렇듯 남베트남의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의 존슨(Lyndon Baines Johnson) 정부는 남베트남에 주둔하는 미군의 숫자를 늘렸다. 그리고 미국의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이른바 ‘통킹 만 사건’을 구실로 1964년 8월 7일 북베트남에 폭격을 가해 전쟁을 북베트남과의 전면전으로 확대했다. 미국은 그 뒤 1968년까지 북베트남에 약 1백만 톤에 이르는 폭탄을 퍼부었으며, 약 55만 명에 이르는 지상군을 파병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등에 파병을 요청해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등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1968년 1월 30일 음력 설날을 이용한 구정대공세를 펼쳐 주요 도시들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주요 시설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 성과를 배경으로 1969년 6월 8일에는 남베트남공화국 임시혁명정부를 수립했다. 미군과 남베트남 정부군은 곧바로 빼앗겼던 도시와 시설들을 탈환했지만, 이 사건은 미국의 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쟁의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반전 여론이 높아졌고, 결국 존슨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고 군사개입의 중단을 내세운 닉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닉슨은 1969년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새로운 안보·외교 전략으로 내세우며 미군의 철수 계획을 발표하였다. 구정대공세 이후인 1968년 5월부터 미국과 북베트남의 정전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1972년까지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1970년 이후에는 미국이 캄보디아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전장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972년 4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각지에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자, 미국은 북베트남의 모든 항만에 기뢰를 부설하고, 하노이와 하이퐁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는 등 북베트남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2년 여름부터 미국과 북베트남 사이의 정전 협상이 비밀리에 재개되었고, 마침내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파리평화협정은 남북의 휴전과 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구성, 60일 안에 모든 미군의 철수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미군은 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북베트남과 미군 사이에 포로 교환도 이루어졌다. 미국은 남베트남에 대한 원조 규모를 크게 줄였고, 오일쇼크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1974년 1월부터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간의 갈등은 다시 무력충돌로 확대되었다. 결국 북베트남은 1975년 대규모 공세를 벌여 그해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을 점령했고, 남베트남의 대통령이던 즈엉반민의 항복을 받았다. 사이공이 점령된 뒤 남베트남공화국이 수립되었고, 1976년 7월 2일 남북 베트남이 통합해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수립하면서 베트남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베트남전쟁과 한국   한편,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이다. 한국은 1964년 9월 의료진을 중심으로 한 비전투요원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30만 명이 넘는 전투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그 과정에서 1만6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많은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1999년에는 1만6천여 명의 고엽제 피해자들이 고엽제 제조사들인 미국의 다우케미칼과 몬산토 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트남전쟁 [Vietnam War] (두산백과) ========================================///   재미있는 전쟁 이야기 베트남 전쟁 강대국 미국의 굴욕으로 남다   전쟁 국가 : 미국 vs. 베트남 연도 : 1964~1975년 목차 베트남,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우다 미국,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참가하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확대된 전쟁 미국, 북베트남의 공격과 반전 여론에 몰리다 북베트남, 미국에 승리하고 베트남을 통일하다 베트남은 1883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어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다음 해인 1946년, 프랑스는 다시 베트남을 자기네 식민지로 삼았어요. 베트남은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지요. 1954년, 프랑스에 승리를 거두고 기뻐하는 베트남 독립군 베트남,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우다 베트남에는 오랫동안 독립 운동을 이끈 호찌민이라는 지도자가 있었어요. 그는 사회주의자로, 베트남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어요. 결국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군은 1954년에 프랑스를 베트남에서 몰아냈답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강대국들은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지요. 호찌민(1890~1969년) 이에 따라 베트남의 북쪽에는 호찌민이 이끄는 독립 국가가 들어섰고, 남쪽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정권이 세워졌어요. 그런데 남베트남의 대통령인 응오딘지엠은 사람들을 탄압하는 독재 정치를 했어요. 그래서 호찌민을 지지하는 남쪽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들은 통일을 위해 베트콩(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만들어 남베트남 정권과 싸웠지요. 호찌민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어요. 미국,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참가하다 미국은 남쪽 정부를 지원했어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남베트남 정권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요.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존슨은 북베트남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어요. 존슨 대통령은 1964년 8월에 미국 전함 두 척이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있는 통킹 만에서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어요. 이것이 바로 '통킹 만 사건'이에요. 사실 이것은 미국이 북베트남과 전쟁을 하기 위해 꾸민 일이었어요. 이로써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통킹 만 사건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여를 보도한 신문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확대된 전쟁 미군은 북베트남을 무자비하게 공격했어요. 밀림에 불을 지르고 고엽제(식물의 잎을 말려 죽이는 약품)를 뿌렸지요. 베트콩들이 숨을 곳을 없애고 식량 보급을 막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어요. 베트콩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정글에 숨어 미군과 맞써 싸웠지요. 그러면서 전쟁은 이웃 나라인 라오스와 캄보디아까지 번지게 되었답니다. 무장한 채 강을 건너는 베트콩들 미국, 북베트남의 공격과 반전 여론에 몰리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며 유럽 나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어요. 그러자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뉴질랜드 등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계속했지요. 미군은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에요. 1968년,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베트남의 음력 설날인 1월 30일에 남베트남의 서른여섯 개 도시를 기습적으로 공격했고,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까지 빼앗았어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이렇게 되자 미국은 전쟁을 계속하기 힘들어졌어요. 상황이 역전되어 베트남에서 점점 힘을 잃고 있었던 데다가, 미국 안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북베트남, 미국에 승리하고 베트남을 통일하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닉슨은 북베트남과 평화 회담을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1969년 6월 이후부터 남베트남에서 미국 군대를 조금씩 철수했지요. 결국 1973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콩의 대표가 모여 평화 회담을 열고, 전투를 중단하기로 하는 휴전 협정을 맺었어요. 휴전 협정에 서명하는 미국 국무 장관 하지만 이듬해 12월에 북베트남이 다시 전투를 시작했고, 1975년 4월에 결국 남베트남은 항복했어요. 베트남이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되면서 비로소 베트남 전쟁이 끝난 거예요.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패배한 최초의 전쟁으로 남았어요. 한편 베트남은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통일 국가를 건설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지요. 흥미진진 전쟁 상식! 베트남 전쟁이 남긴 상처, 고엽제 후유증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뿌린 고엽제를 맞은 많은 사람들은 두통, 피부 질환, 암 등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고엽제에는 몸에 해로운 다이옥신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1994년에 베트남 정부는 약 200만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발표했어요.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우리나라 군인들 중에도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부는 법을 만들어 이들의 치료를 지원하고 있답니다. 베트남 밀림에 고엽제를 뿌리는 미군 헬리콥터 관련이미지 19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북베트남의 독립 운동 지도자, 호찌민베트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가 일을 했다.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가 베트남에 와서 독립 운동을 펼쳤다. 이미지 갤러리 출처: (CC BY)Lynhdan Nguyen [네이버 지식백과]베트남 전쟁 - 강대국 미국의 굴욕으로 남다 (재미있는 전쟁 이야기,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   처음 세계사 10 - 현대 세계의 냉전과 변화 베트남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둘로 갈라진 나라가 또 있었어요. 바로 베트남이었어요. 베트남은 1883년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어요.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한 사이에는 일본이 베트남을 지배했지요.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베트남에서 물러났어요. 이때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켰어요. 일본의 꼭두각시였던 왕조를 무너뜨렸지요. 그리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세웠어요. 북베트남의 독립 운동 지도자, 호찌민베트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가 일을 했다.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가 베트남에 와서 독립 운동을 펼쳤다. 그런데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할 권리를 주장했어요. 결국 1946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프랑스가 충돌했어요. 이후 8년간 전쟁이 이어졌지요.(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의 저항과 세계의 여론에 밀린 프랑스는 1954년 베트남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어요. 이때 제네바 협정1)에 따라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나뉘었지요. 북베트남은 독립 운동 지도자였던 호찌민이 통치했고, 남베트남은 일본과 프랑스의 꼭두각시였던 바오다이가 다스렸어요. 북베트남의 호찌민은 주장했어요. “남과 북 가릴 것 없이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힘을 모아 외국 세력을 몰아내고 남북을 통일합시다.” 호찌민의 주장에 미국이 귀를 쫑긋 세웠어요. “이러다 공산주의자 호찌민이 남베트남을 집어삼키는 거 아냐?”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깃발과 군인베트남 공산주의자라는 뜻으로 ‘베트콩’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은 한 나라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 이웃 나라들도 공산주의 국가가 되기 쉽다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남베트남의 바오다이는 아주 무능한 통치자여서 미국은 걱정이 더 컸어요. 남북 통일 선거를 하면 북베트남의 호찌민이 이길 것은 불 보듯 뻔했거든요. 그래서 베트남의 분단을 강화하기로 했어요. 미국은 바오다이를 물러나게 하고 응오딘지엠을 새로운 통치자로 내세웠어요. 응오딘지엠은 호찌민이 주장하는 남북 총선거에 반대하고, 군대를 강화했어요. 미국 군사 고문단이 이를 도왔지요. 그리고 남베트남 정부에 맞서는 무리를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1960년에 결성된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이라는 단체였어요. 이들은 ‘베트콩’이라 불리며 게릴라 활동을 했는데, 북베트남의 도움을 받아 날로 강해졌지요. 응오딘지엠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반격을 막아 보고자 애썼어요. 남베트남에 계엄령2)을 선포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혼란을 틈타 남베트남 군인들이 1963년에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응오딘지엠은 쿠데타 세력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쿠데타 성공으로 들어선 군사 정부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던 1964년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미국의 군함이 북부 베트남의 통킹 만 앞바다를 순찰하던 중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킹 만 사건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정말로 미국 군함이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는지는 지금까지도 확실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당시 미국은 이 사건을 구실로 베트남에서 전쟁을 확대하기로 결심했어요. 베트남 전쟁 참전 미군미국은 때에 따라 징병제나 모병제를 실시했다. 남북 전쟁, 제1차 · 2차 세계 대전, 1948년부터 1973년까지는 징병제를 실시했다. 미국은 복수를 한다면서 항공기를 보내 북베트남의 함정3)과 석유 저장소를 공격했어요. 1965년 2월부터는 폭격기를 보내 북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와 여러 도시들에 폭탄을 퍼부었어요. 뿐만 아니라 직접 군대를 남베트남에 상륙시키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어요. 숨어 있다가 나타나 공격하고 밀림으로 숨어 버리는 게릴라 작전을 펼쳤지요. 그 작전에 미군도 쉽사리 힘을 쓰지 못했어요. 그러자 미국은 더 많은 군대를 베트남에 보냈어요. 1965년에 18만여 명이었던 미군은 1969년에는 48만 명, 최고로 많을 때는 54만 명에 이르렀어요. 뿐만 아니라 미국은 다른 나라의 군대까지 베트남 전쟁에 끌어들였어요. 한국을 비롯해 호주와 필리핀의 군대가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을 물리치지 못했어요. 오히려 북베트남군까지 남으로 진격하는 바람에 점점 더 밀리기만 했지요. 다급해진 미국은 본토에서 군대를 더 모아 베트남에 보냈어요. 그래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은 땅굴을 파고 숨어들거나 밀림 속에 위장하여 움직이면서 미군을 괴롭혔어요. 그러자 미군은 게릴라와 몰래 연락한다며 민간인4)들의 집을 불태웠어요.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을 숨겨 주었다는 핑계로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했지요. 밀림에 숨어든 게릴라를 찾는다며 고엽제를 뿌리기도 했고, 수많은 신무기로 베트남을 마구 공격했어요. 이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후유증을 앓아야 했어요. 나무를 죽이는 고엽제미군의 무기는 뛰어났으나 밀림을 잘 아는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게릴라 작전에는 소용없었다. 결국 밀림을 없애기 위해 고엽제를 뿌렸다. 하지만 이를 맞은 참전 군인들은 전쟁 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렸다. 미국 본토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우리의 젊은이를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에 몰아넣지 말라!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미국 정부는 전쟁에 돈을 엄청나게 쏟아붓느라 재정 적자가 늘었어요. 미국 정부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었지요. 게다가 미국 국내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결국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미국 군대를 철수하기로 했어요. 1969년부터 미국 군대가 철수하기 시작했어요. 대신에 미국은 남베트남 군대 수를 늘렸어요. 그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지요. 결국 1972년 봄, 북베트남 군대는 남베트남으로 계속 진격해 내려오며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어요. 미국과 북베트남은 본격적으로 교섭5)을 진행했어요. 하지만 미국은 협정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미국은 계속 사인을 미루며 수정을 요구했지요. 북베트남은 이를 거부했고요. 닉슨은 북베트남을 압박하기 시작했어요. 12월 18일부터 크리스마스 폭격6)을 실시했지요. 그러자 세계적으로 미국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거세졌어요. 미국 의회도 전쟁을 그만 멈추라고 강한 태도를 보였지요. 12월 말 북베트남이 협상에 응하겠다고 하고 나서야 미국은 폭격을 멈추었어요. 1973년 1월 미국과 북베트남은 파리 협정을 맺었지요. 협정에서 휴전하기로 약속했지만 남베트남에서는 여전히 원래 남베트남 정권과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이 계속 싸웠어요. 북베트남까지 나서서 1975년 4월 말 마침내 사이공7)을 점령했어요. 이렇게 해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패배, 공산주의 혁명 세력의 승리로 돌아갔어요. 전쟁을 치르는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어요. 보트피플(배 위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생겨났지요. 이들은 북베트남 정부를 반대하며 나라를 떠나 바다 위를 떠돌아야 했어요. 뿐만 아니라 베트남 국토 역시 말할 수 없이 엉망이 되고 말았지요.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정부와 군은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았어요. 또한 본토와 세계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답니다. 관련이미지 20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1954년, 프랑스에 승리를 거두고 기뻐하는 베트남 독립군 이미지 갤러리 출처: 재미있는 전쟁 이야기 [네이버 지식백과]베트남 전쟁 (처음 세계사 10 - 현대 세계의 냉전과 변화, 초등 역사 교사 모임)   =============================///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호찌민   [ 胡志明 ] 직업 혁명가, 대통령 국적 베트남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대통령. 1911년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선원이 된 그는 1917년 프랑스에서 새로 조직된 프랑스 공산당(PCF)에 입당하였다. 1923년에는 모스크바로 가서 1924년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참석하고 혁명에 있어서 농민의 중요성에 관해 연설하였다.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코민테른 대표로 중국에서 근무한 뒤 그는 피압박 인민 연맹, 베트남 혁명 청년 연맹의 창설을 지원하였으며, 1930년에는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창당을 지원하였다. 1940년에는 일본이 점령한 인도차이나로 돌아와 저항 군사 조직인 베트민을 조직하였다. 그 뒤 하노이에 정부를 수립하고 대통령이 된 그는 1946년에 남부 베트남을 점령한 프랑스와 싸워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승리함으로써 베트남의 분할을 가져왔다. 대외적으로도 소련 및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1959년 남베트남의 베트콩 게릴라를 지원하여 남베트남 정부를 타도한 그는 같은 해 당 서기직은 사임하였지만 대통령직은 유지하였다. 관련이미지 20 이미지목록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 이전 호찌민(1890~1969),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이미지 갤러리 [네이버 지식백과]호찌민 [胡志明]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   시사상식사전 호찌민      베트남의 민족운동 지도자로 아시아의 반식민지 운동을 이끌었으며, 구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초대 주석이 되었다.             외국어 표기     胡志明(한자) Ho Chi Minh     출생 - 사망     1890. 5. 19 ~ 1969. 9. 3   호찌민(1890~1969),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1890년 베트남 중부 호앙쭈(Hoang Tru)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응웬 닷 탕(Nguyen Tat Thanh)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망하고 농민 출신인 아버지는 관직에서 면직되면서 경제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1911년 바(Ba)라는 가명으로, 프랑스 증기선 아미랄 라투슈 트레빌호의 요리사로 근무하며 3년 이상 여러 국가를 여행하였다. 그는 생전 160여 개가 되는 가명과 필명 등을 사용했다.  1914~1917년까지는 영국 런던 등지에서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으나, 그 경험은 시야를 넓히고 사고를 성숙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였고, 그곳에서 정원사·웨이터·청소부 등으로 일하며 '응우옌 아이 꾸옥'이란 이름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다. 당시 파리에는 각 식민지에서 건너온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는 1919년 6월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베트남 인민의 8항목의 요구'를 제출하였다. 이는 중재자들에게는 반응을 얻지 못했으나 많은 베트남 지식인들에게 그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 프랑스공산당이 창립되자 여기에 가담하였고, 이듬해인 1921년 공산당의 지원으로 '프랑스식민지인민연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식민지 정책의 해악을 고발하는 기관지 <르 파리아(Le Paria)>(추방자라는 뜻)를 편집·발행하였다.  1924년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 출석하였고 이곳에서 약 2년간 머물며 공산당 혁명사상을 익혔다. 그는 코민테른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중국 남부 및 태국으로 파견되는 등 베트남 주변에서 혁명운동을 계속한다. 그리고 1930년 마침내 코민테른에 의하여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인도차이나공산당을 창립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리 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는 중국을 근거지로 베트남 혁명청년동지회를 결성, 이곳에서 훈련받은 베트남인들을 인도차이나 지하조직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기관지 <청년>을 발행하며 조직을 키워나간다. 그러다 1931년 6월 홍콩에서 영국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3년 석방된 뒤에는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이후 1940년부터 중국 쿤밍에서 공산당 조직과 함께 활동하였고, 1941년 베트남 잠입에 성공한다. 당시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와 일본의 공동협약 아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그는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중심으로 월맹(베트남독립동맹)을 결성하여 해방을 위한 총봉기를 목표로 세를 확산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호찌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그는 2차 대전에서 일본의 패배를 직감하고 중국과 미국에 전략적으로 접근하여 지원을 받아낸다. 1942년 중국 중경 방문 시에는 스파이로 오인되어 국민당에 체포되기도 하나 이듬해 9월 석방되었고, 중국과 미국에게 월맹이 임시과도정부임을 승인받는다.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월맹을 지원하고, 이로써 호찌민은 승리할 기회를 얻게 된다. 태평양 전쟁 종결 후 호찌민을 의장으로 하여 민족해방위원회가 결성되어 총봉기하였으며, 월맹은 베트남 중·북부 지역을 빠르게 장악해 갔다.  1945년 2월 호찌민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 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1954년에는 직접 프랑스에 대한 항전을 지휘하여 독립을 지켜내기도 하지만, 구소련과 중국의 간섭으로 인해 완전한 독립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후 제네바 회담에서 베트남은 17도 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할되었으며, 이내 남북 간 전쟁이 시작되었다(베트남 전쟁). 당시 호찌민은 정계 일선에서는 물러났으나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폭격 위험 아래서는 절대로 협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으나, 1969년 심장병으로 급사하였다. 이후 협상의 기회는 줄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그가 죽은 지 3년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관련이미지 19                                         이미지 갤러리 출처: 인물세계사 [네이버 지식백과]호찌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호찌민베트남 혁명의 중심 인물인 호찌민('깨우치는 자'라는 뜻)의 청년 시절 모습이다. 호찌민은 1911년 프랑스에 건너가 식민지 해방 운동을 시작하였다. 1920년 코민테른에 가담하였고, 프랑스 공산당 창립과 함께 당원이 되었다. 1925년에는 '베트남 혁명 청년 동지회'를 결성하여 사회주의 혁명 사상을 전파하였고, 1930년 2월 베트남 공산당을 정식으로 창립하는데 성공하였다. ■ 호찌민, 베트남 민족 운동을 이끌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고 있는 베르사유 사무국에 한 베트남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베트남 인과 프랑스 인을 법적으로 동등하게 대우할 것, 프랑스 의회에 베트남 대표가 참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 등 8개 항의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대표단이 청원하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 청년의 청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청년은 회담장 복도에서 쫓겨났다. 제국주의자들은 절대 자진해서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은 이 청년 호찌민은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소련에 호의를 가지게 되었고, 코민테른에 합류하여 민족 해방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베트남에서는 서양 지식을 보급하고 경제적 근대화와 행정 제도의 개혁을 추진하는 민족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호찌민은 1925년 베트남 청년 혁명 동지회를 결성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중국의 국민 혁명에 자극받은 민족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베트남 국민당을 조직하였다. 베트남 국민당은 세력을 급속히 키워 나가면서 프랑스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1930년 이들이 일으킨 전면적인 무장 봉기 시도가 실패하면서 중심 인물들이 대거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베트남 국민당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인도네시아 독립 포스터1928년 국민당을 만들어 반네덜란드 운동을 벌였던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으며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어서는 독재 정치를 벌이다가 실각하였다. 1930년에 조직된 호찌민의 베트남 공산당도 프랑스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쇠퇴기에 빠져들었다. 베트남 공산당은 1936년 이후에나 다시 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베트남 공산당은 독립을 바라는 모든 계층과 연합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들며 대대적인 독립 전쟁을 준비하였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연합이 공산당을 결성하여 네덜란드에 맞서 해방 투쟁을 벌여 나가다 해산당하였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국민당을 만들어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특히 이슬람 교가 민족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인도네시아 인들에게 이슬람 교는 자신들을 화교나 네덜란드 인과 구별짓도록 하는 것이자,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도네시아의 민족 운동은 이슬람 공동체 운동과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 전개되었다.   베트남 응헤띤 지역의 농민 봉기베트남 공산당은 농민과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 농민 항쟁과 노동자 파업 투쟁을 조직하였다. 위 그림은 1930년 여름, 소비에트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던 응헤띤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기록화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시아에 민족 운동이 확산되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280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친환경실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802  추천:0  2019-12-02
커피 잔 텀블러, 오래 안 쓰면 환경에 득 아닌 독  2019.12.02.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앵커] 내후년부터는 카페와 음식점에서 종이컵 사용이 금지된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텀블러나 머그잔 같은 다회용 컵을 더 많이 써보잔 취지입니다. 그런데 이 다회용 컵도, 잘못하면 환경에 독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유민 기자가 그 이유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공원. 커피를 즐기려는 직장인들이 모여듭니다. 대부분 일회용 컵을 들고 있습니다. [김현수·남광호/회사원 : "사무실에서 쓰는 컵은 있고요. 점심 먹고 들고 다니긴 좀 불편해서..."] [김서영/회사원 : "(일회용 컵에도) 돈을 지불한 건데 편하게 쓰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내후년부터는 음료를 밖에 들고 나가려면 추가로 돈을 내거나, 텀블러나 머그잔 등 다회용 컵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환경 보호 차원에섭니다. 일회용품 사용 좀 줄이겠다고 사게 되는 이 텀블러.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국내 한 환경 연구소에 의뢰해, 컵을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계산해봤습니다.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671그램. 플라스틱 컵의 13배, 종이컵보다는 24배나 더 많았습니다. 당장에는 환경에 더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꾸준히 사용한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루에 커피 한 잔씩을 마신다고 가정할 경우 플라스틱 컵은 2주 만에, 종이컵은 한 달 만에 텀블러를 따라잡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역전되는 겁니다. 2년이 지나면 플라스틱 컵을 쓸 때보다 온실가스가 33배가량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윤희/기후변화행동연구소 선임연구원 : "1435 텀블러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이 실험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살리는 건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실천이라는 것을 이 실험결과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이유민 기자
280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환경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174  추천:0  2019-12-02
지구온난화로 죽어가는 산호초 살리는 물고기들 2019.12.02.    슬퍼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건강한 산호초 소리 녹음해 들려줘도 '효과' 황폐화한 산호초 [엑시터대학 팀 고든 제공]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산호초는 산소량이 높고 먹이가 풍부해 바다 생물의 4분의 1이 살아가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다. 또 1㎡당 1천500~3천700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열대우림에 맞먹는 역할까지 한다.  건강한 지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지만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오르고 각종 쓰레기로 바닷물이 오염되면서 곳곳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으며 죽어 나가고 있다.  과학자들이 산호초 생태계 보전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인데, 최근 죽은 산호초를 복원하는 것과 관련된 2건의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 산호초 '의사' 파랑비늘돌돔(parrotfish) 산호에 붙어있는 미생물을 긁어먹는 파랑비늘돌돔 [켄달 클레멘트 제공] 호주 해양과학연구소(AIMS)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브렛 테일러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심각한 '백화현상'을 보이는 산호초 주변의 물고기 개체 수를 분석한 결과를 과학 저널 '글로벌 생물학 변화 (Global change Bi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초가 높은 해수면 온도에 장기간 노출될 때 보이는 스트레스 반응으로, 길게 이어지면 산호가 죽게 된다.  연구팀은 서태평양의 대보초(Great Barrier Reef)와 인도양 차고스 제도에서 백화현상을 보이는 산호초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백화현상이 나타난 곳에서 대부분의 어종이 급격히 줄어든 것과는 정반대로 파랑비늘돌돔은 개체 수가 2~8배 증가하고 각 개체의 몸집도 백화현상이 없는 산호초에 사는 개체에 비해 20%가량 큰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파랑비늘돌돔이 촘촘하게 난 이빨로 산호에 붙어있는 미생물을 긁어먹는데, 이런 행동이 산호의 회복을 도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했다.  백화가 진행되면서 산호가 죽어 황폐화한 자리에 미세조류와 남세균이 달라붙게 되는데, 이런 미생물을 먹이로 삼는 파랑비늘돌돔이 늘어 이들을 잡아먹으며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면 산호가 복원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산호와 파랑비늘돌돔이 순환고리를 형성해 산호가 죽으면 파랑비늘돌돔이 늘어 복원할 기회를 제공하고, 산호가 회복되면 먹이가 줄면서 파랑비늘돌돔 개체도 줄어들어 서로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분석했다.  테일러 박사는 약 8천㎞ 떨어진 서태평양과 인도양의 산호초에서 파랑비늘돌돔 개체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은 이런 순환고리가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산호초 생태계의 고유한 일부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한 산호 소리로 산호초 복원 '시동' 죽은 산호초 주변에 건강한 산호초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설치한 수중 스피커 [엑시터대학 제공 동영상 화면 캡처] 영국 엑시터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해양생물학 교수 스티브 심슨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수중 스피커로 건강한 산호초의 소리를 들려줬더니 어린 물고기들이 황폐화한 산호초로 몰려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Communication)'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대보초 내 죽은 산호초에서 이런 실험을 진행한 결과, 비슷한 산호초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물고기가 찾아와 머물렀으며, 생물 종(種)도 5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심슨 박사는 "건강한 산호초 주변에서는 물고기나 딱총새우가 내는 소리가 어우러져 상당히 시끄러우며, 어린 물고기들은 이런 소리를 듣고 서식지를 찾는다"면서 "산호가 죽으면 물고기와 새우가 사라져 귀신이 나올 것처럼 조용해지는데 수중 스피커로 건강한 산호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어린 물고기를 다시 유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 제1저자인 엑시터대학의 박사과정 연구원 팀 고든은 "물고기는 산호초가 건강한 생태계로 기능하는 데 중요하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주변에 물고기 개체를 늘리는 것이 자연적인 산호 복원을 촉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중 스피커를 설치하는 연구원 [엑시터대학 제공 동영상 화면 캡처] AIMS의 어류학자 마크 미칸 박사는 "죽은 산호초 주변에 물고기를 모은다고 해서 자동으로 살아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물고기들이 산호초 주변을 깨끗이 하고 산호가 다시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줌으로써 산호 복원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다른 참고 얘기... "백두산도 수증기 폭발 위험".. 천지 물 + 마그마 = 대형 폭발 예측하기 어려운 열수·수증기 화산 폭발이 큰 희생을 불러온 사례는 또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4년 일어난 일본 온타케산 분화입니다. 일본 나가노(長野)현과 기후(岐阜)현 경계에 있는 온타케산은 2014년 9월 27일 정오쯤 갑자기 분화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별다른 징후가 없어 일본 기상청은 경계 레벨을 올리지 않았고, 등산객들이 폭발에 휩쓸려 수십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한반도에도 '수증기 폭발' 위험성이 큰 화산이 하나 있습니다. 네, 백두산입니다. 단 이 경우 지하수 때문이 아닌 천지에 담긴 막대한 양의 물이 폭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대형 칼데라호인 천지에는 무려 20억 톤 정도의 물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천지 아래쪽에서 마그마가 활동 중이라는 겁니다. 호수에서 5~10km 아래에 서울시 면적의 2배의 마그마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마그마가 점점 위쪽으로 상승하다 천지의 막대한 물과 만나면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재난이 될 것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남북 분단에 막혀 백두산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북한의 핵실험이 백두산 마그마 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데요. 뉴질랜드의 재난이 한반도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남북간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입니다. /이재희 기자
280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환경오염",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293  추천:0  2019-12-02
눈 내린 인도 해변?… 모래사장에 쌓인 흰 거품의 정체 2019.12.02.    슬퍼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1일 오염된 흰 거품 속에서 뛰노는 인도 남부 첸나이 마리나 해변의 어린이들. [AP=연합뉴스] 흰 거품으로 뒤덮인 인도 남부 유명 해변 모습이 공개돼 환경 오염에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최근 인도 뉴델리 인근 강에서 발생한 흰 거품과 같은 현상으로 거품에는 각종 오염물질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인디언 익스프레스 등 현지 매체와 AFP통신은 2일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첸나이 인근 유명 휴양지 마리나 해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보도했다.  1일 오염된 흰 거품 속에서 뛰노는 인도 남부 첸나이 마리나 해변의 어린이들. [AP=연합뉴스] 사진 속 해변은 폭설이 내린 듯 흰 거품으로 뒤덮였다. 파도가 해변으로 거품을 밀어 올린 바람에 모래사장에는 흰 거품이 솜사탕처럼 두껍게 쌓였다.  타밀나두주 오염관리국은 폐수가 빗물과 만나면서 거품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폭우로 물이 불어나면서 고농도 인산염이 포함된 하수, 정화되지 않은 오수 등과 뒤섞인 것이다. 이 물이 급류를 이루면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 거품을 만들었다고 오염관리국은 설명했다.  최근 타밀나두에서는 갑자기 쏟아진 비로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우가 지나간 지난달 말, 마리나 해변 수 킬로미터가 며칠째 흰 거품으로 뒤덮였다. 거품에서는 악취도 진동하고 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1일 인도 마리나 해변에 쌓인 오염된 흰 거품을 즐기는 인근 주민들. [AP=연합뉴스] 인근 수산업 종사자들은 '해변 거품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변 근처에서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폰 쿠마란은 "생선도 오염돼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람들이 선뜻 생선을 사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거품의 위험성을 모른 채 해변을 뛰어다니고 있다. 어린이들은 온몸에 거품을 묻히며 장난을 치고 있고, 거품 속에 누워 사진을 찍는 등의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찍혔다.  해안연구센터 소속 과학자인 프라바카르 미슈라는 AFP통신에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거품으로 들어가는 것은 건강에 절대로 좋지 않다"고 경고했다.  2019년 11월 3일 뉴델리 인근 흰 거품으로 오염된 야무나강에서 힌두교 의식에 따라 물에 몸을 담근 인도 여성. [로이터=연합뉴스] /이민정 기자
2805    [별의별] - 100 = 100 = 3 = 량심 댓글:  조회:3684  추천:0  2019-12-02
  길에 흘린 100위안 100장 찾아주는데 3분 걸린 중국 양심 2019.12.02.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전동차 타고 가다 1만 위안 길에 흘린 노인 청소부와 교통 보조원, 행인 등이 모두 나서 100위안짜리 100장 찾아 돌려주는데 3분 소요중국에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로 ‘비에관시엔스(別管閑事)’란 말이 있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기 일쑤란 원성을 듣기도 한다.  중국 노인이 전동차 타고 가다 100위안짜리 100장 즉 1만위안을 길에 흘렸는데 행인들이 이를 3분 만에 주워 돌려줘 화제다. [중국 인민망 캡처] 그러나 길에 돈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나. 여기에도 ‘비에관시엔스’가 적용될까. 혹시 앞다퉈 주운 뒤엔 슬그머니 사라지지는 않을까. 지난달 28일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서 100위안(약 1만 7000원)짜리 100장이 길바닥에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 15분께 전동차(電動車)를 타고 쑤저우의 펑원(葑門)로를 지나던 루(陸)씨 노인이 실수로 주머니에 있던 100위안짜리 100장 즉 1만 위안을 길바닥에 흘리고 말았다.  중국 장쑤성 쑤저우의 한 노인이 전동차 타고 가다 1만위안을 흘리자 길을 지나던 행인들이 나서 줍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처음엔 모르고 그냥 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뒤따르던 이가 알려줘 돌아왔다. 돈은 어떻게 됐나. 바람이 불어 돈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은행 보안(保安)과 청소부, 교통 보조원, 길을 지나던 행인 등이 모두 나서 줍기 시작했다.  길에 흘린 100장의 100위안짜리가 한 장도 빠짐없이 모두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3분이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는 2일 보도에서 정확히 3분 걸렸다고 했다. 한장도 빠짐없이 주워 주인을 돌려주는 데 걸린 시간이 그렇다. 루씨 노인은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중국 네티즌은 “바깥은 영하 13도인데 이렇게 따뜻할 수 있나”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2804    [별의별] - "부자 거지" 댓글:  조회:3681  추천:0  2019-12-02
  노숙자 배낭 들추니 2억 돈다발이? '부자' 거지 화제 2019.12.02.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beta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화제의 인물' [서울경제] 노숙하는 거지를 잡고 보니 그의 배낭 안에서 1억 9,450만 루피아(1,630만원)의 지폐 다발이 나와 화제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일이다. 2일 자카르타포스트와 콤파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자카르타 간다리아 지역에서 구걸하던 거지 묵리스 묵타르 브사니(65)가 남자카르타 사회복지국의 단속에 적발됐다. 당국이 이 거지를 잡고 보니 그의 배낭 안에서 1,000만 루피아(84만원)씩 묶인 지폐 뭉치 18개 등 총 1억9,450만 루피아가 나왔다. 수도 자카르타의 월 최저임금이 394만여 루피아(32만8,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큰 돈임을 알 수 있다. 지방 최저임금은 자카르타의 절반 이하인 곳도 많다. 그는 처음에는 ‘일해서 번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구걸해서 모은 돈임을 인정했다. 묵리스는 구걸로 모은 동전과 소액권 지폐가 50만 루피아(4만2,000원)가 되면 은행에 가서 큰 단위 지폐로 바꿔 배낭에 보관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 조례상 거지가 구걸하는 행위와 거지에게 돈을 주는 행위 모두 금지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전경 / 로이터연합뉴스 묵리스가 사회복지 당국에 붙잡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7년에도 8,600만 루피아(720만원) 돈다발을 소지한 채 거리에서 구걸하다 적발됐다. 묵리스는 가족이 있지만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적발 당시 공무원들은 그를 복지센터에 보호하다 “다시는 구걸하지 않겠다”고 약속받은 뒤 모은 돈과 함께 가족에게 인계했다.  당국은 이번에도 가족이 그를 데리러 오면 모은 돈과 함께 인계할 계획이다. 지방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지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강신우기자
2803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대형 하우스"가 있었으면... 댓글:  조회:3314  추천:0  2019-11-30
축구장 맞먹는 국내서 가장 큰 비닐하우스 2019.11.30.    좋아요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정말 규모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초대형 비닐하우스가 처음 선보였습니다. 공간이 넓어, 온도 조절이 잘 돼 작물 재배가 쉽다고 하는데요. 오점곤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그렇게 작지 않은 상당한 규모의 일반 온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는 상상 초월입니다. 높이만 아파트 4∼5층 규모. 농구장보다 훨씬 크고 웬만한 축구장 크기와 거의 맞먹습니다. [유봉식 / 농진청 연구관 : 폭이 52m, 길이가 86m, 높이는 16m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지난 5월부터 비닐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서는 첫 번째 시도라 짓는 과정을 드론 영상에 담아 놓기도 했습니다. 이 초대형비닐하우스가 지어진 건 지난 7월 말, 그러니까 한여름이었는데 이렇게 이번에 처음으로 장미 수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차광막, 환풍기, 보광등, 분무시스템 등 그야말로 갖출 건 다 갖춘 초대형 온실. 시범적으로 장미와 딸기를 길러봤는데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김지강 / 농진청 원예작물부장 : 이 고온극복하우스에서 재배한 결과 장미는 초기 수량이 늘어났고 딸기는 일반 농가보다 수확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철 날씨와 폭염이지만, 초대형 하우스라 최대 13도 낮게 온도 조절을 할 수 있어 재배가 가능했습니다. [김지강 / 농진청 원예작물부장 : 온도가 높으면 생육에 어려움이 많거든요. 온도가 높을 때 온도를 기존하우스보다 많이 낮출 수 있어서….] 농진청은 앞으로 이 초대형 하우스에서 다른 작물의 시험 재배도 확대할 예정입니다. 또 열사의 나라 아랍에미리트에도 내년쯤 이 초대형 비닐하우스를 시범 설치할 예정입니다. /YTN 오점곤
2802    [그것이 알고싶다] - 로봇 앞엔 이젠 사람은 노예... 댓글:  조회:3210  추천:0  2019-11-30
  배달도 요리도 척척… 가까워진 ‘푸드 로봇’, 과제는? 2019.11.30.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앵커]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배달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직 사람을 완벽히 대체할 수준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엔 이른바 '푸드 로봇'과 함께하는 일상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황정호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습니다 [리포트] 대학 캠퍼스 식당 앞에 배달 로봇이 등장했습니다. 스마트폰 앱에서, 음식 주문을 받자마자 배달 준비에 들어갑니다. 캠퍼스 안에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9곳 마련돼있는데 그 중 한 군데를 선택하면 배달로봇이 음식을 제 앞까지 가져다줍니다.  커브 길도 돌고.. 방지턱도 곧잘 지나갑니다. 하지만, 배달 실력은 아직 초봅니다. [김요섭/배달서비스업체 로봇딜리버리셀 연구이사 : "자율주행으로 안 되는 구간들이 항상 있거든요. 저희가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게 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널찍한 매장 한쪽에 국수 삶는 로봇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와아~신기하게 (요리)하네.) 여기 사람이 필요없겠다. (그러게)"] 고명을 골라 그릇에 담기만 하면 금세 완성됩니다. 긴 팔로 익숙하게 육수를 담아줍니다. [신철호/○○전자 컨버전스센터 로봇선행연구소 연구위원 : "조리사 교육프로그램에 저희도 들어가서 실제로 어떤 모션으로 작업하시는지 보고 인간 친화적인 모션이 되도록 연구를 해왔습니다."] 다만, 사람을 대신하려면 편의성과 안전성을 더 높여야 합니다. [오준호/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 "굉장히 제한된 조건에서 연구를 하고 개발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실제로 환경에 갔을 때는 예측하지 못한 환경들이 너무 많이 발생하는 거죠."]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외식 업계에서도 로봇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황정호입니다. 황정호 기자
280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백두산연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011  추천:0  2019-11-30
영화 속 '백두산 폭발'... 실제 가능성은? 2019.11.30.    화나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화산 활동이 주춤하고 있을 뿐 살아있는 위험한 활화산입니다. 이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키는 상황을 가정한 대형 재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영화 '백두산'의 내용과 실제 가능성을 정혜윤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기자] 남북을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이 시작되고 한반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집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로 백두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킨 겁니다.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저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운명 같은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백두산'입니다.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가 실제 가능한 걸까? 화산학자들은 백두산을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화산 중 한 곳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표 아래 마그마가 살아 있는 '활화산'으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윤성효 / 부산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 천 년에 한 번 정도는 백두산에서 큰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있었다고 유추를 하기 때문에...] [제임스 해먼드 / 영국 버크백 런던대 교수 : 거대한 폭발의 영향은 엄청납니다. 946년에 폭발한 백두산도 그런 화산 중의 하나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백두산 주변 지표면이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거나, 화산성 지진이 급증하는 등 심상치 않은 화산 징후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윤수 / 포항공대 환경공학과 교수 : 2002년 6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3년 반 동안 백두산에서 심각한 화산 징후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긴장해야 하거든요.] 전문가들은 백두산 대폭발이 일어나면 800도가 넘는 뜨거운 용암과 화산석으로 백두산 주변 지역은 초토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남북한 모두 재앙 수준의 화산재 피해를 보게 되고 그 피해액은 남한만 11조 1,895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백두산 화산 분화에 대한 공동 연구를 꾸준하게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YTN 정혜윤입니다.
280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평화, 친선의 사절" = 참대곰 댓글:  조회:2986  추천:0  2019-11-30
‘영어 능력자’ 판다 귀국…모국어 不通 [ 2019년 11월 29일]     ‘영어 능력자’ 판다 귀국…모국어 不通, 영어에만 반응   [인민망 한국어판 11월 27일] 미국에 임대됐던 판다 베이베이(貝貝)가 첫 귀국 ‘쇼’를 했다. 귀국 후 처음 공개된 베이베이는 부끄러운지 나무 뒤에 숨어 죽순만 먹고 있다. 베이베이가 모국어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사육사가 영어와 쓰촨(四川) 말로 그에게 말을 건다. 네티즌들은 “분명 영어 8급 판다일거야~”라는 댓글을 달았다.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베이베이는 중국어(쓰촨 말)를 알아 듣지 못한다. 2016년 귀국한 ‘메이룬(美輪)’과 ‘메이환(美奐)’이 중국 사육사의 중국어 명령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다 ‘come here’라고 하자 느릿느릿 걸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이베이는 2015년에 톈톈(添添)과 메이샹(美香)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다. 중•미 판다 번식 관련 협정에 따라 미국 국립동물원에서 태어난 판다는 4살이 되면 중국으로 돌려 보내진다. 앞서 베이베이의 형 타이산(泰山)과 누나 바오바오(寶寶)도 귀국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베이베이의 인기가 치솟을 때 베이베이의 귀국을 앞둔 미국 동물원 안 분위기는 슬픔에 잠겼다. 미국 매체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CNN: Bye Bye, 베이베이: 사랑스런 판다 베이베이가 워싱턴에서 전용기 편으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ABC: 베이베이의 귀국을 앞두고 미국 국립동물원이 ‘Bye Bye, 베이베이’ 환송식을 열었습니다. ▎ABC산하 방송국 WTVM 홈페이지: 판다 베이베이가 워싱턴 동물원을 떠나 귀국해야 합니다. 팬들이 작별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베이베이가 있던 워싱턴 국립동물원은 베이베이의 팬들이 베이베이와 다시 한 번 더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주일간의 환송식을 열었다. 1주일의 환송식 기간, 판다관은 베이베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미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워싱턴 국립동물원 측은 올해로 4살이 된 베이베이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떠나기 전 1주일간 하루 평균 3,000~5,000명이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고 전했다. 판다는 중국의 국보이자 중국의 고유종이다. 판다들은 과거 여러 번 외국으로 보내져 우호 사절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고, 평화와 친선의 상징으로 차츰 자리를 잡았다. (번역: 인민넷 이인숙) 원문 출처: 중국일보 위챗 공식계정. abcnews, wtvm, cnn, cgtn, 관찰자망, 신화망, iPanda, 시각지 등 내용 종합
2799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관객참여 공연장" 있었으면... 댓글:  조회:3232  추천:0  2019-11-28
무대 거닐며, 음식 먹고, 줄거리 바꾸는 '관객참여' 공연 인기 기사입력 2019.11.28.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앵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관객 참여형' 공연이 계속 진화 중입니다. 소통을 넘어 음식을 먹으며 관람하고, 관객의 결정에 줄거리가 바뀌기도 합니다.  최윤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미용실 2층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연극 '쉬어 매드니스' 극중 형사들은 관객과 함께 범인을 찾습니다. 배우들이 그럴싸한 알리바이를 내세울 때 관객들이 사건 당일 행적을 캐묻습니다.  남자 관객 "저희가 참여하면서 보니까 재밌었고 집중해서 보게 되고,"  관객의 추리와 결정에 따라 줄거리 까지 바뀌는데.. 이번 공연의 범인은 미용실 여직원의 애인으로 밝혀집니다.  박종수 / 오준수 역 "집중 공격하는 질문들이라던지 그런 것들을 통해서 결말이 매번 바뀌니까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 배우들도 항상 새롭고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3개를 엮은 '로마비극'도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5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동안 관객들은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오가고, 심지어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보기도 합니다.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롱런하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는 다음달 관객을 찾아옵니다.  1920년 미국을 재현한 다양한 공간에서 관객과 소통하며, 현장성과 즉흥성을 살렸습니다. 무대를 벗어난 배우, 무대로 올라온 관객. 관객 참여형 공연이 새로운 장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TV조선 최윤정입니다. 
  ○○○는 사람보다 더 '오른쪽'을 좋아한다 2019.11.28.    후속기사원해요 좋아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먹이를 캐내기 직전 왼쪽으로 회전해 우측 몸을 아래로 돌린 돌고래의 모습.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os.190929#d3e634) 지능이 높은 동물 중 하나로 알려진 돌고래가 사람보다 더 심한 ‘오른쪽 편향’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간은 약 90%가 오른손잡이이지만,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돌고래 중 하나인 큰돌고래(병코돌고래)들은 해저에서 먹이를 사냥할 때 99% 이상 오른쪽 편향을 나타냈다. 해당 연구는 27일(현지시간) 발간된 영국왕립학회의 ‘로열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 저널에 실렸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돌핀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Dolphin Communication Project)는 카리브해의 바하마에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큰돌고래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돌고래들은 초음파를 활용해 해저의 모래 속 먹이를 찾아내는데, 주둥이로 모래구멍을 파 먹이를 낚아채기 직전에 순간적으로 90도에서 180도를 회전한다. 이때 대부분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쪽 몸을 바닥에 가깝게 만들었다.  이들이 관찰한 돌고래 수는 최소 27마리였으며, 총 709번의 회전 중 705건(99.44%)이 좌회전이었다. 4번의 예외를 보여준 건 딱 한마리의 돌고래였다. 이 돌고래는 오른쪽 가슴지느러미가 기형인 경우였으나, 다른 똑같이 기형을 가졌거나 오른쪽 지느러미가 없었던 다른 두 돌고래는 다른 돌고래들과 같이 좌회전을 했다.  연구진들은 급격한 좌회전 후 오른쪽 눈과 오른쪽 몸을 해저표면에 가깝게 유지한 것이 강력한 오른쪽 편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이유로는 돌고래 두개골의 좌우가 비대칭이며 후두가 왼쪽으로 치우쳐 음식을 넘길 공간은 오른쪽이 더 넓다는 점, 외비공(콧구멍) 아래에 있는 두 개의 소리를 만드는 기관(원숭이입술 혹은 소리입술) 중 오른쪽 편이 더 크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다른 가능성은 뇌의 작용과 연관된다. 돌고래는 시각 정보와 초음파 정보를 합쳐 물체의 모양을 시각화하며, 공간지각 능력을 발휘할 때는 오른눈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탁월했다. 사람처럼 돌고래도 한쪽 몸의 감각정보를 반대쪽 뇌에서 처리하므로, 뇌의 왼쪽 반구가 시각 정보와 초음파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더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오른쪽 편향은 많은 포유류와 비포유류에서 널리 관찰된다. 큰돌고래 외에 다른 고래들도 일반적으로 오른쪽 편향을 보이고 있다. 귀신고래와 혹등고래는 해저에서 먹이를 사냥할 때 오른쪽으로 구르는 경향이 있고, 눈에 수정체가 없어 음파탐지만으로 수영을 하는 갠지스강돌고래는 수영을 할 때 늘 오른쪽 몸을 바닥으로 향한 채 수영하는 것이 관찰됐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사람과에 속하는 고릴라 또한 오른손을 주로 사용한다. 왼쪽을 쓰는 성향이 우세한 동물로는 캥거루가 꼽힌다. 고양이의 경우, 수컷은 왼발잡이가 많고 암컷은 오른발잡이가 많은 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임소정 기자
‹처음  이전 3 4 5 6 7 8 9 10 11 12 1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