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 아니면 응원도 안했는데
분단후 동족상잔의 비극 겪어
1400㎞ 긴 국토, 지역 감정 키워
박항서 이후 "우리는 하나"
남부 호찌민 출신 선수 활약에
북부 하노이서도 열띤 환호
베트남 축구 팬들이 10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30회 동남아시안게임(SEA) 결승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팀은 이날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대0으로 꺾고 1959년 대회 창설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로이터 = 연합뉴스]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11일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베트남을 짓누르던 남북 갈등도 이날 이후로는 깨끗이 사라진 듯 보였다. "베트남은 하나로 뭉치면 강하다. 함께하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 대표팀이 10일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시안(SEA) 게임에서 60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면서다. 현지 언론은 대부분 지면 1면을 '박항서 매직'으로 대서특필했다. 박항서 감독의 '나비효과'가 베트남 경제·사회·정치 모든 분야에서 국가를 한 단계 '레벨업'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박항서호의 거침없는 선전이 뿌리 깊은 베트남 남북 지역 갈등을 해소할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전국 각 지역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이라는 용광로에서 화학적 결합을 이루며 금메달을 따낸 덕분이다. 박 감독 부임 이전 베트남 대표팀 조직력은 '바닥'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면 대표팀 경기 관람조차 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세가 팽배했다. 특히 대표팀 선수 간, 출신 지역 간 갈등으로 하나로 뭉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베트남은 1976년 7월 통일을 이뤘지만 이후 40년 넘도록 지역 간 갈등은 여전하다. 북쪽 '정치수도 하노이', 남쪽 '경제수도 호찌민'으로 양분되며 라이벌 의식도 상당하다. 하노이 사람들은 호찌민 출신 남자의 억양을 '유약해 보인다'며 깎아내리고, 호찌민 사람들은 하노이 발음을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서로 총을 겨눴던 불행한 역사가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다. 남북으로 국토 길이가 1400㎞에 이르는 독특한 국경선도 서로를 좀처럼 섞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다.
하지만 박 감독 부임 이후 선수들이 '원 팀'을 이뤄내고,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 혁혁한 성과를 내자 국가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SEA 게임 결승전에서 베트남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한 공격수 응우옌띠엔링 부모를 둘러싼 스토리가 화제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라오스전에서 해트트릭과 태국전에서 2골을 몰아친 그는 고비마다 팀을 승리로 이끌며 베트남에 우승컵을 선사했다. 그는 베트남 남부 호찌민 인근 빈즈엉성이 고향이다. 그의 부모는 고향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그의 선전으로 베트남이 우승컵을 차지하자 북부 하노이 축구팬들 사이에 빈즈엉에 있는 부모님 카페가 화제로 떠올랐다. "기회가 되면 띠엔링 부모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중부 출신 부이띠엔중, 북부 하노이 출신 응우옌꽝하이 등이 골고루 활약했다. 하노이에서 백화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조안티투이 씨는 "1000㎞보다 더 멀리 떨어져 사는 선수들이 조국을 위해 모여 성과를 냈다는 점에 감동을 느낀다"며 "축구를 보고 있을 때만큼은 베트남 전역이 모두 하나"라고 말했다.
윤옥현 대한상의 하노이사무소장은 "베트남 정부는 정부 고위직 자리를 지역별로 기계적 배분을 할 만큼 사회 통합에 각별히 신경 쓴다"며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가 연일 박 감독을 치하하는 것 역시 그를 통해 베트남이 하나로 뭉치는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과 한국 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승전 이후 베트남 주요 대도시 거리에는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번갈아 흔드는 차량과 오토바이 인파가 쏟아져 나와 도로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들은 "꼬렌 비엣남(파이팅 베트남), 박항세오" 등을 번갈아 외치며 광란의 거리 파티를 벌였다. 부부젤라 부는 소리와 폭죽 터지는 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김강욱 PTI 이사회 부의장은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선전을 펼친 이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한국 기업에 대한 베트남 국민의 호감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 홍장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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