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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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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시인 김영능 篇
2024년 08월 23일 05시 55분  조회:504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영능 시-자가용(외 7수)/시평 한영남
2021년 12월 14일 09시 58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자가용(외 7수)-김영능(《도라지》2020년 5기)

▣ 시 / 김영능

자가용(외 7수)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

어리둥절 알고도 모를 일이다

 

네가 배가 곯아서 헐떡거리면

말이 없어도 때를 어기지 않고

주머니를 털어 배불리 먹여주고

 

네가 고단하여 탈이 나면

지체없이 병원으로 모셔가서

오장륙부 검진 치료하고

 

너의 모양새가 허름하게 얼룩이 지면

대중 모욕탕에 모시고 가서

안팎을 깨끗이 샤워 시키고

 

네가 동서남북 눈치 없이

앉을 자리 갈 자리 헛갈리면

내가 벌점을 먹고

 

네가 급한 성격 덤벼치며

앞뒤 꽁문 접촉 사고를 내면

내가 벌금을 당해야 하고

 

네가 장부 호걸 깡패행세

재산인명 큰일을 저지르면

내가 감옥으로 가야 하니

 

피땀으로 애써 모은 돈

수없이 밀어넣었는데

또 얼마를 말아먹어야 하는가

 

아차하면 재산을 탕진하고

가문이 망하고

인생이 끝장 나는 판

 

도대체 알고도 모를 일이다

누가 주인인지

누가 노복인지

 

그래도 너들 무리들

큰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만 빵빵 치고 싸다니니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

거꾸로 살아야만 하는 세월

알고도 모를 일 너무도 많아

 

삼색등이 색망이고

밤낮이 삭갈리고

하늘땅이 헛갈린다

 

시라지

 

한 뿌리

한 혈줄

한 족속인데

 

익고 여물어 하얗게

속대 탱탱 살아난 놈들

빠알간 맛갈양념 꽃단장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가

식탁무대에 올라서는데

 

바람을 막아주고

먼지 오물 뒤집어쓰며

애지중지 품어주며

 

껍데기 울타리로

퍼어렇게 멍이 들어

후줄근 꼴기 없으니

 

새끼줄에 목 졸리여

엄동설한 칼바람 속

사랑채 이영새에 교수형

 

피가 마르고

뼈가 삭아서

눈물마저 거덜이 났구나

 

록차

 

맑고 투명하여 거짓 없다

순결하고 뜨거운 가슴에

무작정 뛰여들었어요

 

야위고 여린 한몸

짜릿한 몸부림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어요

 

따가움으로 살이 터질 듯

뼈 속까지 타들어가는 정열

온몸이 녹아 무너지는데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정은 아픔이였어요

사랑은 죽음이였어요

 

그래도 후회없이

마지막 숨결로

향기를 주고 싶어요

 

풀이고 싶다

 

꽃이 아니고

풀이고 싶다

 

화사하여 나비들한테

밟히우고

허비우고

사방의 눈총질에 고달프고

 

요염하여 벌들한테

쏘이고

할키우고

팔방의 발길질에 아프고

 

짙은 체취로 바람의 품에 안겨

벌님네 혼을 앗아가고

나비님 얼을 홀려가며

순진한 봄날을 희롱하고

무심한 세월을 간지르는

 

한순간 피였다 지는

가녀린 꽃이 아니라

한결같이 푸르른

이름 없는 작은 풀이고 싶다

 

수증기

 

나의 족속들은

아래로 낮은 곳으로만 찾아가는데

나는 우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나의 사촌

비방울은 구중천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깨여져 땅 속에 스며들고

 

나의 팔촌

우박들도 구름차에서 뛰여내려

분신쇄골 부서져 흙 속에 사라지고

 

나의 본가집

하천강물들도 밤낮 구을러

바다에 침전되여 자취를 감추는데

 

나만은 훨훨 하늘을 날아

자유자재로 자유를 즐긴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올라갈 수 있는 한정된 자유의 세상

 

더 올라가면

사촌처럼 팔촌처럼

곤두박질 나뒹굴고 만단다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신들메 조여매고

톺아오른다

정상을 노리고

 

욕망의 구렁이

릉선을 기여오른다

희망의 꽃너울

가발로 둘러쓰고

 

새소리 흘러보내고

꽃구경 제쳐놓고

비지땀 쥐여짜고

가쁜 숨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서서

앞을 살펴보니

더 높은 봉우리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네

 

끝없이 오르고 싶은 욕구

오금이 저려나는데

올라온 가파름보다

내려갈 골짜기 더 깊구나

 

솜구름

 

할아버지 한숨

하아얗게

숨 가쁘게 서리여

 

할아버지 산소

뒤산마루 오솔길에

꼬부랑 허리로 서성거린다

 

떠나가버린 수십성상

차마 잊을 수 없어

오늘도 이마에 손을 얹었는가

 

쓰라린 설음

함박으로 쏟아붓던

키 낮은 초가삼간

 

룡마루가 주저앉고

구새통이 기울어지고

쑥대가 무성한데

 

황소의 영각소리

꿀꿀이 떼질소리

수닭의 홰치는 소리

 

바람이 쓸어갔나

비물이 씻어갔나

세월이 잡아갔나

 

뭉게뭉게 솜구름

하아얀 수염발 날리며

마른 눈물 휘뿌린다

 

자욱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이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이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짭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비평-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한영남(《도라지》2020년 5기)
 

 

▣ 비평 / 한영남

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

―김영능시인의 근작시를 모티브로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한마디 하자.

시는 생활가운데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다시 예술적 승화를 시켜서야 비로소 시로 완성된다고 한다. 요즘 많이 퇴색해버린 운률까지 넣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하겠다.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하는 리유가 있다. 왜냐하면 낡은 터에서 이밥 먹는 소리라고 픽픽 웃는 분들도 결국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 이밥을 다시 찾게 되는 까닭이다.

시는 생활을 떠날 수 없다. 생활에 대해 눈을 감고 오로지 상상만으로 시를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의 머리속에 반영된 것은 생활 자체이고 그것이 상상력의 작용하에 아무리 희한하게 변형된다 하더라도 결국 생활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을 반영한다고 해서 생활을 그대로 사진 찍듯이 옮겨온다면 그 역시 시로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까닭이다.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글은 마치 날개가 없는 봉황과 흡사하다. 봉황이 날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라. 거기에 무슨 뭇새들의 왕이라는 이름이 걸맞을 것인가.

한마디로 시는 생활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예술적 승화를 시켜주어야 시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만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조선족 중견시인 김영능선생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에서 어떻게 시가 채집되고 어떻게 예술적 승화가 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자가용〉이라는 시는 그야말로 생활에 밀착한 시이다.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라는 아기자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연 시는 시종 자가용을 ‘너’라는 이인칭으로 지칭하면서 자가용과 주인의 관계를 풀어나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듯 보살펴도 쩍하면 벌점, 벌금이 차례지니 그야말로 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복인지 모를 일이다. 이 시점에서 시인은 평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일갈한다. 시비가 전도되고 선이 손해 보고 악이 오히려 호통치는 일부 사회부조리에 시원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시는 가장 일반적인 생활의 한 모퉁이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아기자기하게 풀어나가다가 반전으로 예술적 매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생활의 묘미가 시의 묘미로 거듭나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시라지〉 역시 순수 소박한 우리 삶의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두고 자못 유머러스하게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간다고 엉너리를 부린다. 그러나 “새끼줄에 목 졸리여 / 엄동설한 칼바람 속”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는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너무 홀대한 것은 아닌지. 독자들의 반성을 견인해내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피가 마르고 / 뼈가 삭아서 / 눈물마저 거덜이 났”다고 끌어올림으로써 우리 민족의 애환과 매치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기승전결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시라고 해야겠다.

〈록차〉를 마셔보자. 시는 우선 록차의 속성으로부터 출발해 본론으로의 접근을 꾀한다. 단 이 시에서 시인은 록차의 각도에서 시를 전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록차가 뜨거운 물속에서 우려지는 과정이 극명하게 안겨오면서도 록차의 심경이 되여 저으기 안쓰럽게 여겨진다. 4련에서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 정은 아픔이였어요 / 사랑은 죽음이였어요”라고 직접적 주정토로를 함으로써 록차의 깨달음으로부터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백미는 “그래도 후회없이 / 중략 / 향기를 주고 싶어요”라는 그 간절한 소망에 있다. 록차는 사랑을 위해 뜨거움 속에도 용감히 뛰여들었고, 짜릿한 몸부림도 치고, 온몸이 녹아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행위가 결국 사랑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래도 향기 한점 주었다는데서 안도하는 여기에 시인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풀이고 싶다〉를 보자. 요란하고 화사하고 떠받들리는 고운 꽃보다 눈총질, 발길질에 아픈 풀이고 싶은 리유는 무엇일가. 그것은 한결같이 푸르다는 풀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상의 란타를 당해도 오로지 푸름을 떠이고 사는 풀로 행복하다는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시세계관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자연을 쓰되 인간의 삶과 매치시키고 거기에 생명의 숨결이 흐르게 하는 여기에 김영능시인의 범상치 않은 시적 재주가 돋보이는 것이리라.

〈수증기〉는 기체, 액체, 고체로서의 물의 세가지 상태를 둘러싸고 시가 전개되고 있다. 유머와 위트가 없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아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시에서도 김영능시인의 능청스런 어투가 위불없이 드러나 시에 맛소스를 쳐주고 있다. 물의 세가지 상태를 ‘사촌’이니 ‘팔촌’이니 ‘본가집’이니 지칭해서는 친근감과 더불어 독자들의 입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리게 만든다. 그런데 생활의 론리가 사개 맞게 들어맞는 것을 독자들은 놀랍게 발견해야 한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 올라갈 수 있”다는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세상사람들한테 던져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니였을가.

〈등산〉도 소박한 서두가 깊은 인생철리를 견인해내는 시이다. 1, 2, 3련에서는 등산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련히 겪게 되는 사정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골똘하다. 그러나 4련에 이르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정상에 올라서서 / 앞을 살펴보니 / 더 높은 봉우리 /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는 것이다. 이 산에 오르면 저 산이 높아보인다는 말도 있고 산 우에 산이 있다는 말도 있다. 옳고 옳고 옳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시적 발견을 해내고 있다. “올라온 가파름보다 / 내려갈 골짜기 더 깊”다는 이것이야말로 김영능시인만이 해낼 수 있는 시적 발견이요 이 시적 발견이야말로 이 시를 더욱 시중의 시로 거듭나게 해주는 화룡점정이라 해야겠다.

〈솜구름〉을 바라보기로 하자. 시인은 하늘에 떠있는 솜구름 하나를 보고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보고 있다. 그의 눈망울로 수십 성상 세월이 아프리카 반마처럼 줄달음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제 “바람이 쓸어갔나 / 비물이 씻어갔나 / 세월이 잡아갔나” 보이지도 않고 솜구름만이 마른 눈물을 휘뿌리고 있다. 고래희의 시인은 솜구름 한송이를 보고도 인생을 반추해보고 삶의 부족점들을 반성해보고 있는가 보다.

시 〈자욱〉 역시 비금한 맥락의 시로 분류된다. 시 전문을 옮겨보자.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히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은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 시 〈자욱〉 전문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시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고도 많다. 그러나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감지하고 어차피 묻혀버릴 인생이지만 누구나 나름대로 열심히 깊고 옅고 바르고 비뚠 자욱들을 만들어오는 바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이야기라고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단념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인은 땀과 눈물과 피물로 ‘새 삶을 반죽한다’고 소리높이 호매롭게 웨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폭풍 속에서 가련하게 움츠리는 갈매기, 가가르, 펭긴 등 새들을 비웃으며 오연하게 창공을 그 날개짓으로 찢어대던 저 고리끼의 해연의 노래와 얼마나 닮아있는 것인가. 건강하고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삶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리라.

이상 김영능시인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이 어떻게 시로 환원되고 생명력을 획득하는지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지만 최근에 들어 김영능시인은 달관의 경지에서 인생을 관조하면서 지나온 삶의 궤적을 반추해보이고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는 시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것은 시가 생활을 떠날 수 없고 예술적 승화 없이는 시의 완성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아는 한 중견시인의 량심 있는 시적 주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능시인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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