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옥녀늪에 와서
윤청남
밭머리 먼 밭골에서 허리 굽혀
이삭을 줏다가
6월에 뜨는 꽃 누가 진달래라
할 것인고
손끝에 닿는 하늘
그 물의 원두에서도
우라고 했다
비가 내려 한결 축축한 날
고풍스런 구리거울에도 례외 없이
구름은 어려있었다
어디에도 실은 남아있지 않으리라
믿었던.
자작나무숲에서
네가 빨갈 때 나는 까맣고 네가 까말 때
나는 빨갛다
덮인 날 검은 흙에 해살은 살이 되여
천년을 넘어온 그리움의 바람이런가
수렁길에 설이 오른 소똥 식지 않은
물 남의 말소리
멀어지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는 사의에는
둥지를 튼 음악이 초원으로 여리다
어둠에 맞먹는 그늘 밑을 굴러가는 살 촘촘한
저 바퀴.
습 지
밀려온 것이 자작나무숲을
짠하게 한다
낮은 곳을 선택했다가 이렇게
하늘을 갔고 구름을 갔고
별을 숨기게 된 것이다
머문다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 수밖에 없는
저지대를 습하게 만든 것은
돌아갈 수 없는 물이다
새들의 지저귐에도 절반쯤
슬픔을 얹어준.
숭선 폭포
내가 아니라 너에 의해
얻어낸 멋
누가 시대를 택할 수
있겠냐만
운명은 너로 하여 달라져
있었다
미울 수 없는 농토 30리
구실이라면 어떠랴
너에게로 간다는 것 타고난
복이여라
그리움 천리를 허물고
두만강
둘이 하나로 되는 일은
숨기기 어려운 그림이였다.
상천벌
거북등 각골문 임금의 옥새
품도 품이려니와 물이 먼저니
올라선 두만강 꿈이라 하라
모내기 풍경은 지우지 못한
군함산 손톱눈에 흙이라 할가
얻어지는 것이 잃은 것을 덮을 수 있다면
가을에는 눈물 없이 마주설 수 있을지
그 뜰에 물이 들면 명경이
따로 없나니.
/연변일보 2019년 6월 28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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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발표한 시
2020년 12월 15일 12시 01분 작성자: 윤청남
평양랭면(1)
윤청남
오늘의 그림에는 과거도 미래도 섞일 수
없다고 했다
어둠을 사르는 정조로 영원을
노리는
어디에도 기대 살 수 없는 것이
별이라 했다
흙에 뿌리를 대이고 언어를 대신한 초불은
바람을 씹어 광명은 만든다
너를 청정하게 삭힌 태양은
고독이라 했다
풍만한 사상과 건전한 정감은
어둠 하나 벗는 순간의 정서라 했다
살아가는데 여유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2018.6.4.
평양랭면(2)
윤청남
낯설지 않은 풍경을 거리와 대동강물에서
접할 수 있었다
유경호텔을 평양에서 으뜸가는
건물이라면
밤을 지배한 빛이 너를 얇게 썰어
말렸다
백이 되고 천이 돼도 결국은 다시
점 하나로 모여가 달이 됐다
내리는 봄은 야산 굽이굽이 모양을
지니지 않은 만큼
잔잔한 비에만 실릴 수 있는 서정이 밤을
흙으로 밑그림이 순한 음악을 대신했다
2018.7.7.
평양랭면(3)
윤청남
옥류관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
어이다 잡힌 조선의 미인이
간판을 유색하게 한다
몇억광년 품을 들이면 별에도
닿을 수 있다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경계를 넘어왔다
서늘한 숨결로 다가선 전자문명이
둘을 하나로 얽어줬다
보내려 해도 다시 보내지지 않는
너는 나와 석양을 함께 한다
2018.7.8.
평양랭면(4)
윤청남
새 울음소리는 거울 밖에서 넘어오고
심플한 냄새가 하늘에 닿는데 한몫을
한다
산을 만나 물을 넘고
밀은 내가 멀어진 들에서 출렁였다
떠나 온지도 참 오래된 고장인데
어리광 부리는 바람을 다시
느꼈다
천지간에 그림을 바꿔 놓은
감았다 뜨는 눈이 나를 누르게 했다
2018.7.9.
평양랭면(5)
윤청남
너의 그림자는 있어도 너는 누굴 닮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하늘이다
수수한 언어로 불가한 거리를
줄였다
한컵의 물과 같은 군자와의
만남
어느 것과 같지 않은 것이
너다
너를 먹고 돌아앉아 이루지 못한 사랑을
떠올렸다
2018.6.5.
평양랭면 (6)
윤청남
유에 무란 말과 무에 유란 말을
씹어보게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사색하게 한다
먼 것이 가까운 것이고 가까운 것이
먼 것이란 것을 깨우치게 한다
돌아앉으면 눈앞에 있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2018.7.10.
평양랭면(7)
윤청남
밀이 골조 되고 메밀이 살 되어
일궈세운 건물
비우기가 아닌 한 몸 으깨진 뒤
자연과 환경을 널 키워낸
혼이랄 때
그리움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자(尺)는
눈물뿐이다
향기는 아픔과 맥락을 같이 한다
2018.5.15.
평양랭면(8)
윤청남
귀 눈 볼 살짝 들린 입귀를 넘어 상큼한
코신 콧마루까지 은근하다
담박하게 그려진 눈썹 하나의 곡선을
그릇이라 한다면
속히웠다 속혀 가는 련못에
바람과 달리
더디게 와서 느긋이 머무는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담담한 정서를
앞세운다 했을가
점 하나로 나를 향해 지금도
오는 것
물론 화가의 초월한 작품에 그칠 수도
있지만
내가 작아지는 만큼 커지는 달은 진한
그림자를 만든다
202011.24.
평양랭면(9)
윤청남
대동강을 사이하고 옥류관과 수상시장
단군릉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넘어온 평양성
날 저물어 짐을 푼 량강도호텔이
대동강 물에 둘러싸인 섬이란 것을
알게 되고
새 날을 맞는다는 것은 숨겨진 비밀을
헤친다 하기보다
깨여나는 자의 느낌을 대신하는
그림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손이 아니면 닫을 수 없는 것들
무엇으로 저 풍경을 바꿀 수 있겠는가
맑다는 것의 의미는
이슬 보다 큰 이슬이 이슬을 덮었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때는 봄
여백의 한끝을 철새가 끼룩끼룩 날아들고
있었다
20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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