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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시인 방산옥 篇
2024년 08월 24일 00시 43분  조회:635  추천:0  작성자: 죽림
방산옥 시인

불가사의, 그속에서 숨쉬는 생명시학/김룡운
2014년 11월 11일 10시 15분   작성자: 김룡운
 
 
불가사의그속에서 숨쉬는 생명시학
  방산옥의 하이퍼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평함
 
                                김몽
 
                     1.
방산옥시인이 하이퍼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출산했다. 우리 조선족시단에서 방순애의 하이퍼시집 «시간은 원이 되여» 다음으로 내놓은 두번째 하이퍼시집이다.

45년간 록색생식의학연구에 몰입하면서 수많은 아가들을 선물하였고 건강한 삶, 행복한 짝을 지어주었던 의학자가 이번에는 그 자신이 문학과 미친듯이 짝짓기를 하여 예쁘고도 포동포동한 아기,하이퍼시집을 낳았으니  실로 경하할만한 일이다. 오늘 필자는 69세가 되여 늦둥이를 출산한 산모를 경하하려고 이 자리에 앉았다.

시집을 읽으면서 감탄과 경이로움도 함께 읽었다. 중국어로 «中华妇女临床医学研究»,«中华实用临床医学防治研究»,«健康你我她»를 내놓고 우리 글로 «성을 알면 삶이 아릅답다»와 그리고 60만자에 달하는 «삶과 짝»을 저술한 의학자가 불과 2,3년 사이에 동시집 «바람도 빼똘빼똘»을 만들고 200여수의 하이퍼시를 창작했으니말이다. 그중에서 92수를 골라 묶은것이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이다. 시집은 제목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가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여서 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시인은 책머리글에서 최룡관선생님을 알게 되여 세심하고 열정적인 지도를 받았다고 말하고있다. 이 세상에서 인연이라고 하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만나 교향곡 제5번이 탄생했고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로상에서 예수를 만나 결국 오늘과 같은 기독교가 있게 되였다. 우리 중국 조선족의 문학의 경우 중국문학권의 영향도 무시할수 없지만 주로는 개혁개방으로 국문이 열린 덕분에 한국문학과 인연이 맺어져  서방현대파문학리론을 접수하여 오늘의 중국조선족현대파문학이 세워지게 되였다. 하이퍼시 경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문학의 거센 물결에 적응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나라들에서 하이퍼텍스트문학이 시작된지 오래다. 한국은 서구와 인연이 맺어져 십년 뒤늦게야 하이퍼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하이퍼텍스트문학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한창 실험단계에 있으며 론쟁도 많이 진행되는것으로 알고있다. 우리 문학은 이번에도 한국과 인연이 닿아 하이퍼시를 알게 되였고 지금 일부 시인들이 하이퍼시에 경도하는 바람이 일고있다. 최룡관시인을 주축으로 하이퍼시 동아리가 형성되였고 대련에서는 김파시인이 디지털시와 하이퍼시에 몰입하고있다.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를 읽으면서 생각이 깊었고 고민도 두터웠다. 비평문학은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감상괴 리해,해석과 가치판단을 통해 삶을 대하는 눈과 마음을 넓혀주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어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걸어가도록 구도하고 그 자신이 순례자로서 걸어가는 삶의 길을 찾기에 다름 아니다. 무릇 시를 비평하는 사람은 독자의 눈과 귀를 가져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인의 마음과 손의 감각을 감지하여야 한다. 아니, 어쩌면 비평가란 그 어느쪽에도 속할수 없는 경계선상에 서있는 경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희려 그런 리유로  해서 그런 경계인이야말로 가장 첨예하게 시를 읽는 일과 시를 쓰는 일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방산옥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곤혹스러웠던것은 하이퍼시의 특성때문이였다.하이퍼시의 특성을 간단하게 개괄하면 탈관념, 초월과 건너뜀의 기법,시간경계의 무시, 다선구조, 무한한 공간 등등이다. 이런  특성들이 또 언어의 폭력조합과 어울려져  난해성 내지 불가사이성이 가중된다. 매 수의 시를 정확하게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최룡관선생은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의  서평  «새로운 천지에서 타오르는 시의 불길»에서 다만 새로운 시 령역의 개척과  이미지폭력조합만 건드렸을뿐 구체적인 시해설은 한수도 하지 않았다.

 사실 하이퍼시를 일목료연하게, 깨끗하게 해석하고 분석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난해성이다. 문학의 한 류파인 포스터구조주의와 포스터모더니즘은 신비를 추구하고 사이비를 제창한다. 이들은 “불가사이한것이 언제나 아름답고 아름다운것은 언제나 불가사이하다고 주장한다.”하이퍼시의 초월과 건너뜀의 기법은 이들의 리론과 많이 닮아있다. 결국 하이퍼시와 대화한다는것은 불가사이한 물체와 대화하는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하이퍼시에는 유일정확한 답이 있을수 없다. 명확한 풀이를 할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하이퍼시가 아닐것이다. 이런 리유에서 하이퍼시를 일목료연하게 해석한다는것 그 자체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하이퍼시와 대화를 나누기로 하였다. 첫째는 비평가의 사명감이였고 둘째는 해석의 열쇠를 찾아보려고 미궁에서 헤매는것이 비록 피곤하고 고단한 일일지라도   바로 거기에 또 시 읽기의 다른  한 재미가 있기때문이였다.

                  2.
방산옥시인은 소재발굴에서 새로운 령역을  개척하고있어 주목을 끈다. 그의 대부분의 시들이 주역과 의학소재를 다루고있다. 최근년에 우리 시단에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는 시인들이  나타나  시단에 활력소를  가미해주고있다.  광주의 박운호시인이 주역을 기본 핵으로 하여 미묘하고 신비한 마방진시를 쓰고있고 미국에 있는 홍군식시인이 순 불교를 소재로 130수의 시를 만들어 «원묘»라는 표제로 세상에 내놓을 준비를 하고있다. 그 본인은 불교시라고 하는데 내가 보건대 소재는 불교이지만 형식은 하이퍼시라고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학을 소재로 시를 쓴는  시인은 방산옥 한사람뿐인것 같다.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는 시적상상력의 기본 바탕을 이루고있는 주역적사유와 의학적사유가 시의 내면공간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견인력으로 작용하고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독자적특수성과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러한 특수성으로 하여 방산옥의 시는 남들과는 다른 개성적인 얼굴을 가지게 된다.

방산옥의 시를 여러가지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음양결합을 바탕으로, 주로 생명시학에 시각초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방산옥의 시가 여러가지 내용을 포괄하고있지만 생명 또는 섹스에  관한 내용이 가장 비중있게, 가장 빈번히 다루어지고있다. 표제들만 보아도 그것이 립증된다. “삼월이 분만한다”, “옥문”,“안개의 젖통을 스친다”, “짝사랑”, “자궁은 랭장저장고”, “송이버섯의 결혼” 등등. 그래서  필자는 시평의 표제를 «불가사이, 그 속에서 숨쉬는 생명시학이라고 달았다.

방산옥의 시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탄생하고 활발하게 숨쉬면서 푸덕이는것은 시인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시인 방산옥은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인줄로 알고있다. 그는 특히 성박사로 소문이 나있다. 그는 “성을 알면 삶이 아름답다”, “삶과 짝ㅡ생식과 전신건강”등 저서를 출간한 사람이다. 하기에  시인은 알게  모르게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생명례찬과 신비, 혹은 생명의 탄생과 부활, 성의 신성함을 시의 핵으로 다루고있는것 같다.

모든 생명의 탄생은 음과 양의 결합을 전제로 한다. «고물주를 수송합니다»가 전형적인 례로 된다. 시에서 남성의 생식기 남근은 «물구나무», «호랑이심장으로 만든 기차»로 은유되여 그 거대한 힘이 과시되고 있고 녀성의 생식기 질은 «불아궁이»,«동굴»로 은유되여  남근을  정복할수 있는 더 큰 힘으로 묘사되고있다.   남근이 «물구나무» 나 “호랑이처럼 힘이 세지만 녀성의 힘이 더 세여 그 “연장이”“불아궁이”에 들어가자  “그슬러 검정버섯이 ”된다. 성교를   해학으로 풀어낸 시라고 볼수 있겠다.  
 
구들목에 앉았던 고양이
병아리소리에 연장이 부풀어납니다
질이라고 쑥 들어간 연장은
불아궁이에  그슬러 검정버섯이 되였습니다
……중략
호랑이 심장으로 기차 만들고
위장으로 기차길을 닦았습니다
기차는 음낭역을 떠나 질역으로
고물주를 수송합니다
 
ㅡ«고물주를 수송합니다» 일부
 “고물주”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필자는 “고물주”를 남성의 “정자”(精子) 가 아닐가고 생각한다. “기차가 음낭역을 떠나 질역으로/고물주를 수송”했기에 이로부터 수많은   생명이 탄생하거나 부활하여 방산옥의 시들은 생명의 약동으로 부풀어오른다.
 
집안에서 나는 응아 소리에
태양의 빨간 청각, 파란 미각, 투명한 시각들이
창문을 깨고 날아들어옵니다
 
ㅡ«버들과 련꽃형제» 일부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시인의 무한한 환희가 시줄에 앉아 춤을 추고있다. 얼마나 기뻤으면, 얼마나 급했으면 “태양”이 아기를 보려고 창문을 깨고 들어왔겠는가. “빨간 청각,파란 미각,투명한 시각”이라는 언어조합이 전반 시에 감미롭고도 싱싱한 숨결을 부어놓고있다.
«산문을 열다»는 굉장한 상상의 힘을 빌어 만물을 창조하는 대자연의   신비무궁함을 시화하고있다.
 
새들은 향기를 부채질하여
친구들을 부르고
꽃들은 구름을 펼쳐
새아침 목청을 그린다
 
목동의 초막에서는 천문가가
아침 정적을 울리는
첫울음을 터뜨리고
심산의 근육수축으로  양수가 터진다
 
천년송에 머리박으며 울부짓는 바람은
사지를 무겁게 끌고다녀도
정에 취한 청산은
건(乾)도 손(選)도리(离)도…
모두들 품어준다
 
ㅡ«산문을 열다» 일부
 
 대자연으로서의 산은 하나의 거대한 어머니의 자궁이 된다. 그 자궁이 수축하여 양수가 터지자 삼라만상, 안개, 나무잎,아침이슬,꽃, 목동, 구름 등이 태여나 세상은 생명의 숨결로 굼실거린다. 이 시의 구조상의 특징은 결과와 원인이 전도된데 있다.원인이 마지막 련에 누어있고  결과가 앞부분에 서있다. 필자는 산문을 열다를 “자궁을 열다”로 리해하고있다.

어머니로서의 산은 단지 수많은 아기들을 낳을뿐 아니라 보호하고 따스하게 품어주는것도 있지 않고있다.

천년송에 머리 박으며 울부짖는 바람은
사지를 무겁게 끌고 다녀도
정에 취한 청산은 건(乾),손(選)도 리(离)도…
모두들 품어준다
이 시에서 돋보이는 이미지결합은 “목청을 그리다”이다. 시인이 화가가 되여 소리를 그리고있는것이다.
 이상은 주역적사유속에서 만들어지고있는 생명을 소재로 한 시들의 일부였다.우에서도 말했지만 방산옥의 시에는 주역적사유 못지 않게 의학적사유로 만들어진 시들도 적지 않다.
«초경»은 인체의 생리변화로 새로운것의 탄생을 례찬한 시라고 본다.
 
제비 한마리 치마폭을 감싼다
제비 새끼가 첫 고고성을 울리며
얼굴을 뾰족히 내민다
 
우물가 수양버들에서
회색강아지들이
먹거리 찾아 우물에 뛰든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달님은
별아가들을 업고 앞마당에 내린다
 
자고 일어난  소녀의 침대머리에
장미꽃이 피여난다
어두운 협곡을 뚫고
13년만에 답은 선물
 
ㅡ«초경» 전문
초경을 장미꽃에 비기고 그것이 “어두운 협곡을 뚫고/ 13년만에 찾아온 선물”이라는 표현은 칭찬을 받을만한 시구다. 시인은 초경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장미꽃향기로 승화시키고있다. 더욱 눈박아 보아야 할것은 인간과 자연의 화합하고 인간과 자연이 동격을 이룬다는 점이다.  시인은 갓 태여난 제비새끼와 버들개지, 별아가, 초경을 맞은 소녀 등을 한줄에 세워놓고 함께 탄생을 축하해주고있다.

우리는 «용광로에 빠진다»에서 생명의 과정을 묘사한  새로운  신선한 시를 만나게 된다.
 
코가 바람을 잘근잘근 씹어삼킨다
인후바위를 비비며
호수들은 계곡을 가득 채우고
갑문을 연다
 
동그란 바람호수들이
낭떨어지로 미끌어떨어지며
붉게 달아오르는 용광로에 빠진다
 
심장펌프가 물을 퍼낸다
물은 도랑을 따라 전야를 적시며
점점 검푸른 옷을 입는다
 
강물은 새길 찾아 돌아오며
검푸른 옷을 벗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붉은 옷과 푸른 옷은
뱅글뱅글 옷만 갈아입다가
동년의 꿈을 꾸며 잠든다
 
ㅡ“용광로에 빠진다” 전문
 
제1련은 코로부터 호흡을 하여 산소가 페에 들어가는 현상을 말하고 2련은 산소가 심장에 이름을 말한다. 시인은 심장의 박동을 “심장펌프가  물을 퍼낸다”에 견주고있으며 수많은 모세혈관이 온 몸에  펴지는 현상을  «물은 도랑을 따라 전야를 적신다”고 묘사하고있다.   동맥을 “붉은 옷”으로, 정맥을 “푸른 옷”으로, 그리고 동맥과 정맥의 순환현상을 “붉은 옷과 푸른 옷은 /뱅글뱅글 옷만 돌려입다가/동년의 꿈을 꾸며 잔다”라고 노래부르고있다. 생명의 과정을 의학적도리로 설명했으나 이미지가 생신하고 선명하기에 읽으면 재미가 돋아난다.

이외도 의학적사유로 생명의 탄생과 환희를 읊조린 시들이 아주 많다. 례하면 “언덕에서 목을 쭉 빼든 민들레가/노란 꽃망울진 유방과 속삭일 때마다/젖무덤에서 한잎한잎 꽃잎이 피여난다” «처방전1» ,“침들을 한줌 쥔 손바닥은/침모내기에 구슬따 흘린다/ 땀방울은 파란 잔디밭을 키우고/벼꽃을 만발시킨다”«침모내기»,“올챙이들이 갤갤/새들이 짹짹/산에서 목탁이 딱딱딱/계곡에 노래를 심습니다”«옥문».

방산옥시인은 신선한 이미지창출에서도 재기를 보인다. “빨간 청각 파란 미각,투명한 시각”,“우뢰가 우주의 귀뺌을 치다”,“글자가 삐뚤삐뚤 길을 닦고/길은 모양을 조각하며 소리를 낳는다”주문의 마디마디가 /푸른 잎에서 쫑쫑 뛰여내린다”. “우주핸들”,“침모내기”.이런 잘 구사된 이미지조합들은 시를 시로 만드는데서 관건적인 구실을 하고있다. 방산옥시인이 열심스레 탁마해낸 이미지에 대해 할말이 퍼그나 있으나 편폭을 고려하여  더이상 론의하지 않기로 한다.
 
                3.
 
  오늘 이 자리를 빌어 하이퍼시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간단히 피력하고자 한다.  우리 시단에서  하이퍼시를 두고 엇갈리는 견해들이 상충하고 있어 약간의 조률과 해석이  필요하기때문이다. 하이퍼시에 너무 매료된 어떤 사람들은 하이퍼시가 가장 우수한 시고 여타의 시들은 시가 아니거나 한층 낮은 수준의 시라고 하고 반대로  하이퍼시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은 하이퍼시는 인간과 세상을 등진 무의미한 동화적장난이라고 폄한다. 필자는 하이퍼시는 시대가 낳은 문학사조의 하나라고 본다. 그러나 하이퍼시가 최고의 시형식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이퍼시는 그로서의    강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있다. 그러므로 강점은 배우고 단점은 삼가해야  한다는 립장이다. 언젠가 김철호시인이 자기가 하이퍼시를 공부하는것은   하이퍼시를 쓰기 위함보다는 자기의 시를 더 풍부히 하기 위한데 있다고 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학사조는 모두 저마다의 강단점이 있으므로 서로가 대방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걸러내여 자신을 더 충실히 하는것이이 참다운 문인이 걸어가야 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공생공존(共生共存),  호경호존(互敬互爱)의  정신은 문학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와 견해가 같지 않다고 하여 무조건 대방을 비방하거나 폄하는 일은 부디 삼가해야 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데가주망과 앙가주망을 두고 끊임없이 론의가 계속되고있는데 그것을 화두에 올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 아다싶히  간단하게 정의하면  데가주망은 절대적자유,자기해방, 현실도피 등을 의미하고 앙가주망은 현실과 어떤 인연이나 관계를 맺는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참여와 통하기도 한다. 시문학에서는 순수시와 참여시로 구분된다. 사르르트의 앙가주망개념이 가장 대표적이다. “작가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를 모를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상에 나서서 [나는 세상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수 없도록 만드는데 있다. 그리고 일단 언어의 세계에 끼이는 이상 작가는 말할줄 모른느척 할수는 절대로 없는것이다. 의미의 세계속으로 들어가면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것이다.”(사르르트[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두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 다시말해서 문학은 문학을 위해서도 존재하고 사회를 위해서도 존재한다. 괴테는 “시는 남자가 세계에 하는 키스이다. 그러나 빈 키스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갈파한바 있다. 아내가 아니라 연인에게 하는 키스는 단순히 애정의 표현일뿐이여서 연인은 아내처럼 아이를 낳거나 생활계획과 같은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된다. 괴테의 말은 서정시의 무목적성 즉 순수성을 지적한 말이다. 에드리 앨렌포도 “시는 시이고 그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명제를 내놓았는데 역시 같은 맥락에 선다. 그러나 시는 이들이 말하는것처럼 단순한 감성의 표출로 끝날수는 없다. 시는 모종 의미에서 사회와 력사, 사상과 인식의 거울이 되여야 하다. 그렇다고 하여 시가 정치의 노예가 되야야 한다는것은 아니다. 순수와 참여, 시의 이러한 량면적속성에  주목하여 토마스 엘리엣은 “사상을 한다발 장미의 향기로 표현하라”는 주문을 내세운바 있다. 사상을 전하되 아름다운 장미의 향훈으로 감싸라는 뜻이다. 사상을 사상으로 전하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정치나 철학으로 될것이다. 어떤 사상도 예술의 옷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플라늘레르 역시 시에서 사상을 과일의 영양소처럼 숨겨놓으라고 권고하고있다. 사과의 아름다운 향기와 맛에 끌려 한줌 베어먹는 순간, 사과의 영양소도 함께 흡수되는것이다.

지금 우리 시단의 경우 순수와 참여(여기서 말하는 참여는 세상과의 교류와 인연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일체, 비희고락, 분노, 사랑 등을 모두 아우른다)의 대립이  상충상태로 존재하고있다. 그중 제일 많이 의론되고있는것이 하이퍼시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순수와 참여의 대립을 넘어서 이 둘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는 소통과 화홥의 지형도를 국축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드러나는 시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현실과 너무나나 동떨어진 시도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사료된다.

하이퍼시는 초월과 건너뜀의 기교를 통해 절대적자유와 무변의 공간을 제공하고 사유의 비약을 도모하며 생신한 이미지창출을 꾀하고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무의미를 뜻하는 랭혹한 탈관념과 지나친 언어폭력조합은 커다란 난해의 미궁을 만들어 세상과 독자와의 고립이거나 소외, 단절의 위험이 초래될수 있을것이다.  독자가 외면하는 시집을 찍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이퍼시가 안고있는 가장 큰 위험은 까딱하면 문자유희나 장난 그 자체에  머무르고만다는데 있다.  시가 아무리 순수를 겨냥한다 해도 시인이 세상밖이나 진공상태에서 살수는 없는 이상 현실과 교감하는 어느정도의 삶의 숨결은 있어야 한다는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오늘 필자가 례문에 올린 방산옥의 시들은 정도부동하게  관념이 슴배여있는 숨쉬는 시들이였다. 례문에 올리지 않은 시들중에서도 «오염된 부르하통하»,«어둠이 산문을 삼킨다» 등 시들은  현대문명이 가져다준 자연의 파괴,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를 고발한  시들이였다. 그리고 김파시인이 장백산집지에 발표한 디지털하이퍼시에도 «안개 낀 미로»를 비롯하여 옅은 관념의 옷을 걸친 시들이 몇수 보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하이퍼시에도 어느정도의 관념을 집어넣을수 있다는 도리를 립증해주고있다.

필자가 절대적인  탈관념에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부딪치고있는 현실상황때문이다. 멀리로는 서아프리카에 무서운 전염병인 에블라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수천명이 죽어가고있으며 그것이 미국과 구라파까지 확산하여  온 세계가 공포에 떨고있다. 중동에서는 전쟁과 폭란으로 수많은 인생이 살륙되고있어 세상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다. 시인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는척 할수 있겠는가. 가까이로는 중국의 고위급간부들이 수십억, 수백원의 나라돈을 탐오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사무친다. 문인들이 이런 현싱에 눈 감은채 그냥   음풍영월만 할수 있겠는가. 더 가까이로는 한반도가 매일 갈등으로 으르릉거리고 있으며 중국조선족은 해외진출로 부를 창조하였지만 그 대가로 교육위기, 가정파탄 등 위기도 함께 겪고있다.  이런것도 우리가 그냥 못본척 할수 있겠는가. 더 더 가까운 례를 들어 나의 누이나 어머니나 딸이 괴한에게 강간당할 때 그 광경을 보면서도 그 곁에서 그냥 수수께끼같은 시를 읊을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결코 구호식이나 탄원식의 정치시를 쓰라는것은 아니다. 엘리옷의 말처럼 사상을 예술적으로 장미의 향기처럼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이퍼시에서도 일정한 정도의 관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하이퍼시를 연구하고 하이퍼시를 쓰고있는 한국의 최진연시인의 말에  큰 공감을 갖고있다. “하이퍼시에서 일체의 관념을 배제한다면 문학의 량대가치인 유희성만 남고 관념에 의한 공리성은 전혀 무시될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소한의 관념이라도,심상운의 표현을 빌자면  “지장수같은 관념 ”을 쓰려고 한다. 대상에 대한 감각과 인식의 인지단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엷고 투명한 정도의 관념을 함유하게 함으로써 시적가치를 높이는것이 더 좋으리라고 생각해서이다.”(최진연 [하이퍼시의 리해])

하이퍼시가 엷고 투명한 정도의 관념을 함유한다면 세상과의 화합도 이루어지고 따라서 독자층확보도 가능해질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폭력조합에 대해서 몇마디 덪붙히려고 한다. 신비평에서는 언어의 폭력조합을 아이러니견제와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적당한  견제와 균형은 시 앙금을 증강시키고 사색의 심도와 광도를 확대하여 시의 품위를 높이지만 지나치면 미궁에 빠지게 된다. 일반적인 시도 읽이지 않는 시대인데  하물며 수수께끼같은 시야 더 말할나뉘가 있겠는가. 독자층의 외면은 너무나 당연할것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폭력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는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무릇 세상일이란 모두 적당하면 좋다. 과하면 탈이 생긴다.

하이퍼시는 21세기에 군림한   문학의 한 사조로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 탈관념과 언어의 조합에서 조금 더 유연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하이퍼시가 많은 사람들의 긍정을 받을거이며 미래가 양양하고 창창할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이퍼시의 존재가치와 이후의 운명은 어느 한두사람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력사에 의해 증명될것이다.

하이퍼시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방산옥  시인의 시집출간에 다시한번 뜨거운 축하를 보낸다. 금후 더 훌륭하고 예쁘고 멋진 하이퍼시를 낳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2014년 10월 18일 연길에서
 
방산옥의 시집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세미나에서 발표한 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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