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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윤동주
2015년 01월 31일 13시 15분  조회:2863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시 모음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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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 모음
/ 빈하늘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편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첨부이미지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워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순이의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트르게네프의 언덕

 

 

윤동주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그때에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

나 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

다 병, 간스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세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

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찣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의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있

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

작 만자작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너와는 상관 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

야기 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어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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