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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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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3
2015년 02월 09일 12시 58분  조회:2187  추천:0  작성자: 죽림

 

21□쓰러진 자의 꿈□신경림, 창비시선 115, 창작과비평사, 1993

  이 시인은 시의 상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단순한 풍경 묘사 같지만, 그것이 묘사로 끝나지 않고 사람의 정서를 나타내는 배경으로 작용하다. 이 점 아주 뛰어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을 향해서 말을 아껴야 한다. 나이든 사람이 말을 하면 잔소리로 들리고, 그것이 심하면 주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나이 먹어갈수록 말을 줄이고 이미지를 써야 한다. 특히 상징이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시가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할 말 다 할 줄 아는 것이 상징 수법이다.

  신경림은 그런 비결을 누구보다도 잘 깨닫고 있는 시인이다. 다만 나이 든 자의 쓸쓸한 내면 묘사에 그칠 경우 초라해 보이는 것이 탈인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그것은 남들이 우러러 쫓아갈 만한 좀 더 큰 세계를 갖추지 못한 자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저 나이 들어가는 시인일 뿐이다. 한국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시인이 시에다가 한자를 남발한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시에서만은 한자표기를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 시다워지는 것일까? 납득하기 어려운 묘한 관행이 창작과비평사 기획실의 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4336. 10. 20.]

 

22□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김준태, 창비시선 123, 창작과비평사, 1994

  시가 초점이 두 갈래로 갈렸다. 일상의 새로운 모습을 노래한 시들은 잠시 반짝하다가 시들해지고, 이념의 투쟁을 선동하려던 시들은 흐르는 세월 앞에 시들해졌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시인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다. 새로운 시대는 오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여 생각나는 대로 넝마주이를 한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식과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중간중간의 한자는 이미 흘러간 세월을 바라보며 아직 벗어 던지지 못한 낡은 옷 같다.★★☆☆☆[4336. 10. 20.]

 

23□그래 우리가 만난다면□윤재철, 창비시선 102, 창작과비평사, 1992

  똥차가 지나가면 똥 냄새가 나고, 미인이 지나가면 향이 코를 스친다. 어떤 시인이 지나갔다. 그러자 그 뒤에 무언가 냄새가 났다. 시인은 분노로 들끓는다. 온몸이 달아올랐다. 아마도 그 열기이리라. 그 열기를 느끼는 사람은 잠시 시의 형식을 따질 것인가 말 것인가 혼란스러워한다. 그 열기는 시 이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이 가득 찼다. 그러나 그것이 세월을 넘어 감동으로 연결되려면 그런 열기를 담을 어떤 난로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알불을 그대로 두면 쬐는 사람이 손을 데는 수가 있다.★★☆☆☆[4336. 10. 20.]

 

24□모닥불□안도현, 창비시선 74, 창작과비평사, 1989

  할 말이 많으면 절제하기 쉽지 않고, 절제력을 잃으면 이야기를 하게 되며, 이야기를 하면 시는 줄거리를 갖는다. 그렇게 되면 시어들이 줄거리에 예속되어 빛을 잃는다. 줄거리를 갖는 시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속성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이 줄거리를 갖고 있어서 그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동원된 훌륭한 표현들이 제 몫을 못 한다.

  안도현의 반짝이는 표현이 살아있는 것은 ‘모닥불’ 같이 줄거리를 갖지 않는 시들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대부분은 줄거리를 갖고 있다. 특히 학교 생활을 다룬 시들은 줄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 생활이란 아이들과 맺는 관계가 주를 이루고 그런 관계를 표현하려면 줄거리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과도한 욕구불만이 말을 만들었고, 그 말이 표현을 갉았다. 표현이 일정한 높이에서 안정되게 자리를 잡았는데도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것은 마지막 순간에 지켜야 할 이 절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 한편 한편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시의 전부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이 시인의 능력부족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일부분은 시대에 있으리니.★★☆☆☆[4336. 10. 20.]

 

25□차씨 별장길에 두고 온 가을□박경석, 창비시선 106, 창작과비평사, 1992

  습작기 수준의 안타까운 시집이다. 무언가 얘기는 잔뜩 늘어놓고 있는데, 깊이가 전혀 없고 역사에 대한 인식도 수박 겉핥기 식이다. 게다가 시 쓰는 방법도 멀미나게 단순하여 어렵게 돌려 얘기하는 것을 함축성으로 오해하고 있다. 쉬운 것을 어렵게 얘기하는 것은 시가 아니라 말장난이다. 시인 자신은 아주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시들이 말장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떤 것을 노래해야 시가 되는가 하는 것부터 스스로 되물어야 될 일이다. 한자는 벗어나진 못한 습작기의 버릇처럼 곳곳에 남아있다.★☆☆☆☆[4336. 10. 21.]

 

26□썩지 않는 슬픔□김영석, 창비시선 108, 창작과비평사, 1992

  평범한 사물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안목이야말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의 능력인데, 이 시집에는 그런 안목이 곳곳에서 번득인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토해놓지 않고 적당히 꾸민 옷을 입혀서 내놓을 줄도 안다. 그러나 지식인의 관념성과, 풀리지 않은 것들을 설명으로 대신하려는 것은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념성만 조금 더 벗는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다.★★☆☆☆[4336. 10. 21.]

 

27□우리는 읍으로 간다□이상국, 창비시선 103, 창작과비평사, 1992

  차분한 시각으로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한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농촌과 분단 이주민을 중심으로 소재를 묶은 것도 아주 괜찮은 발상이다. 그러나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이미지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 하는 것이 흠이다. 줄거리를 갖고 있어서 그 서사성 때문에 표현의 참신함이 많이 죽는다. 몇 글자 섞여있는 한자 역시 표현을 갉아먹는다.★★☆☆☆[4336. 10. 21.]

 

28□하늘밥도둑□심호택, 창비시선 109, 창작과비평사, 1992

  한 개인의 잊을 뻔한 추억을 오롯이 되살려 놓았다는 점을 뺀다면, 시라고 할 것도 없는 시집이다. 어른이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어서 동시의 형식을 갖춘 것도 아니다. 잊기 아쉬운 옛 추억을 담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를 그대로 노래하거나 그 과거가 환기하는 어떤 의도나 의미가 시에 담겨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과거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울림이 없다. 시에 드러나는 것은 어떤 상징이 아니라 그저 그 당시의 사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자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다.★★☆☆☆[4336. 10. 21.]

 

29□희망의 나이□김정환, 창비시선 107, 창작과비평사, 1992

  습작기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시다. 시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이다. 시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담금질이다. 그것이 비유가 됐든, 아니면 말이 됐든, 그것이 시라는 옷을 입고 나타날 때는 여러 번  두들겨서 뽑은 단단한 결정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 시집 속에서는 시도 아닌 말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 한 사물 또는 한 현상에서 연상되는 나의 생각을 무작위로 늘어놓고는 시라고 행가름을 한 것이다. 당연히 모든 말들이 넋두리이다.

  그런 넋두리까지도 시라고 우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똥 싸고 방귀 뀌는 것까지도 시라고 해도 된다. 시에는 시라고 할 어떤 범주가 있는 법이다. 그 범주의 테두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이 중학교 때 배운 형식에다가 자기 생각을 어거지로 펼쳐놓은 것이 이 시집이다. 그러니 그런 것들이 시가 될 턱이 없다. 세계문학사에서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식을 창안했거나 시 창작 요령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4336. 10. 21.]

 

30□내일의 노래□고은, 창비시선 101, 창작과비평사, 1992

  과잉된 감정이 통제 받지 않고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으되 새로운 형식을 아직 찾지 못 했는데, 누군가 말을 시켜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떠들게 된 그런 경우라고나 할까? 침묵수행을 마쳤는데, 어쩐 까닭인지 언행이 깊어지지를 않고 수다쟁이로 변한 중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렇게 어수선하다. 침묵수행 동안 그가 깨달았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깨달았다고 해도 세상을 향해 말을 할 때는 법도가 있어야 한다. 옷이 거추장스러운 물건임을 깨달았다고 해서 벌거숭이로 나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깨달았다고 제 멋대로 지껄이면 그건 말도 아니고 진언도 아니다. 이따금 보이는 반짝이는 시들이 그의 깨달음이 가짜만은 아님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시의 장황스러움과 수다스러움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거추장스러운 한자까지 뒤섞여서 이 장광설을 더욱 뒤틀어지게 하고 있다. 의미는 의미고 시는 시다. 깨달음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433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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