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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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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44
2015년 02월 11일 12시 23분  조회:2000  추천:0  작성자: 죽림

 

431□견딜 수 없네□정현종, 황금이삭.1, 시와시학사, 2003

  정말 견딜 수 없는 시집이다. 그럴 듯한 관찰이나 비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삶의 깊은 통찰이나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을 길게 늘어진 모양으로 나열해 놓은 것이니, 그것을 시라는 양식에 담았다는 공로 빼놓고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는 시집이다.★☆☆☆☆[4337. 2. 11]

 

432□내 안의 열대우림□정해종, 생각의 시 1, (주)생각의 나무, 2001

  ‘당연히 일어날 것 이외에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의 절망을 노래한 시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른 수준을 시들이 보여주고, 그 세계 또한 일관되게 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시가 갖는 형식도 모두 신선한 맛을 간직하고 있고, 군더더기 표현이 거의 없이 시가 아주 단정하면서도 화려하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정서를 과장되게 표현한다는 혐의가 남는다. 시집 전체에 비장미가 서려있는데, 개인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비장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장으로 비치기 쉽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칫하면 진솔함과 진실성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경계에 와있다는 뜻이 된다. 바로 이 점만 경계하면 훌륭한 작품을 쓰는 진짜 실력 있는 시인이 될 것이다. 한자는 아무래도 불필요한 도구이다.★★★☆☆[4337. 2. 11]

 

433□매우 가벼운 담론□조말선, 제3의 시 9, 문학세계사, 2002

  이제 시가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시대가 왔음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이수명과 아주 많이 닮았고, 박서원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어쨌거나 이런 시인들의 행보는 시가 시를 위해서 존재하거나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형태의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시를 보는 독자의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가 그 안에서 스스로 무성생식을 하는 그런 몸을 낳게 된 것이다.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하겠지만, 거기까지 간 뒤에 무엇이 남아 시를 말할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남는다.★★☆☆☆[4337. 2. 11]

 

434□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정채봉, (주)현대문학북스, 2000

  짧은 시가 갖는 위력을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짧은 시는 잠언의 형태와 깨달음의 전달자 노릇을 하는데 아주 좋은 효과를 보인다. 이 시집들의 대부분은 그런 것들인데, 주로 사랑이 거기에 담겨있다. 그런 만큼 이미지들이 만드는 오랜 울림을 주는 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너무 담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도가 짧은 시에 들어있는 것이 많다.★☆☆☆☆[4337. 2. 11]

 

435□새들은 난간에 기대 산다□조영순, 등불 아래의 시 10, 하늘연못, 2001

  각각의 낱말들은 고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낱말을 많이 동원할수록 이미지는 많아지고, 그 이미지들은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본래 하고자 하는 말에 비해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동원되고 있다. 그래서 본래의 뜻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미지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시를 쓰면서 주제를 명확히 정하지 못한 채 썼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제를 먼저 선명하게 한 다음, 그 주제를 전하는데 긴밀하지 않은 이미지들은 아깝더라도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시가 산다. 이미지 몇 개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면 시 전체가 혼란스럽고 난삽해진다. 그리고 특수한 소재로 특수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잘 하면 신비한 느낌을 주지만 자칫하면 이상한 취미로 비치기 쉬우니 조심해서 결정할 일이다.★☆☆☆☆[4337. 2. 11]

 

436□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정일근, 문학사상사, 2003

  시가 생활이고 생활이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청산유수로 전개되는 삶과 생각의 질서가 강물처럼 흘러간다. 한 번 제시된 생각과 이미지가 막힘이 없이 갈 곳으로 잘 찾아가서 마무리까지 한다. 시를 쓰는 방법만큼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를 이야기에 의존해서 쓰는 것과 여백을 남겨두지 않고 모두 설명하려는 것, 그리고 불교의 원형에 의존해서 생각을 전하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그건 일종의 타성이기 때문에 감정의 울림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명작을 쓰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주춤거릴 필요가 있다.★★★☆☆[4337. 2. 11]

 

437□지상의 편지□조성림, 우리시대의 시인 100인 선집, 문학마을사, 2002

  무리한 상상을 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의 상징과 의미를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좋다. 이미지가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거기에 삶의 의미를 담는 재주가 있다. 거기다가 추억이 주는 울림을 잘 살려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들이다. 일상의 인식을 새롭게 깨우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제 할 말을 다 하는 것은 아주 큰 능력이다. 살집이 너무 마르지도 않고 뚱뚱하지 않게 아주 알맞은 몸매로 다듬어졌다. 다만 설명을 하려고 하는 부분이 곳곳에 있고, 불필요하게 붙어있는 이미지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덜어내는 것만 보충한다면 좋은 시를 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긴장과 구도가 계속되면 좀 지루해질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에 이 시인의 앞날이 달려있다. 한자는 불필요한 혹이다.★★★☆☆[4337. 2. 11]

 

438□눈잣나무□주경림, 문학아카데미 시선 131, 문학아카데미, 2000

  사물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시각이 아주 참신하고 부지런하다. 그리고 그것을 형식에 담으려는 노력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건과 사고를 꼼꼼하게 시로 담으려는 성실함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들이 사물에 동일시를 하여 거기에 생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짜여졌다. 이 방법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방법은 명징하게 드러나지만 너무 세세한 것까지 설명하려는 경향이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시 곳곳에서 너무 많은 묘사가 이루어져서 오히려 군더더기로 느껴지는 곳이 많다. 시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대상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지만 그 비중이 문제다. 대상의 묘사에 너무 많은 설명을 하면 답답해지고,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면 관념화한다. 그래서 그 비중이 아주 중요한데, 이 시집에서는 대상에 대한 묘사가 더 많은 편이어서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시가 다양한 사회의 변화와 세계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어렵다. 좀 더 다양한 창작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교과서 식의 시만 가지고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세상은 복잡하다.★★☆☆☆[4337. 2. 12.]

 

439□혼자 타오르고 있었네□조태일, 창비시선 187, 창작과비평사, 1999

  뭐랄까?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씨앗을 만드는 풀이나 나무 같다고나 할까, 그런 분위기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깊다. 그렇기 때문에 시들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생각이 단단하게 뭉쳐졌다. 그때쯤이면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사상 내지는 사색의 흐름이 나타나야 한다. 이 시집에 나타나는 것은 죽음 때문에 그 반대편에서 빛나는 것들과 자신을 있게 한 과거에 대한 조명이다. 그것이 아주 단단하게 단련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은 한 시인에게는 너무 큰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한자는 불필요한 흠이다.★★☆☆☆[4337. 2. 12.]

 

440□물빛, 그 영원□박주일, 만인시선 2, 만인사, 2001

  시는 언어를 통해 나타나지만 생각은 언어를 뚫고 그 뒤의 컴컴한 세계를 드러내는 데까지 미쳐야 한다. 오래도록 다듬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단순히 이미지만 가지고는 어려운 것이 시이기도 하다. 인식이 깊어지던가 할 말이 분명해지던가 해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낡은 시의 유산이다.★☆☆☆☆[4337.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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