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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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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70
2015년 02월 11일 16시 21분  조회:2010  추천:0  작성자: 죽림

 

691□세상의 나무들□정현종, 문학과지성시인선 161, 문학과지성사, 1995

  종심소욕에도 불유구라더니, 이렇게 말해도 시, 저렇게 말해도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른 것인가? 똥을 눠도 시 코를 풀어도 시인 것만 나온다면야 세상엔 온통 천재시인들로 꽉 들어찰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풀어놓은 것들이 모두 시가 아니라는 것은 시인들 자신이 알 것이고, 그것을 시인이 모른다면 그것은 시인의 무지이거나 그를 무지의 상태에 머물게 해주는 주변의 눈먼 칭찬일 것이다. 역사는 공범까지 비판할 겨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화살은 시인 자신이 감당할 몫이니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것은 시인 자신이다.

  ‘그림자’ 같은 시를 보면 시에 전혀 무지한 것은 아닌데, 어째서 태반의 시를 그저 발상의 차원에 머물러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 시인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우주율인데, 우주율을 인식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는 철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 어느 곳에서 발현되며, 그것이 어떤 절차로 이웃에게 다가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시인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 발상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한자 역시 말장난이다.★★☆☆☆[4337. 7. 1.]

 

692□시인의 바깥에서□김연신, 문학과지성시인선 225, 문학과지성사, 1995

  시가 다른 예술의 양식을 빌려서 자신의 외연을 확장하고 형식을 실험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그림에 의지할 경우, 대부분 의미의 빈혈을 겪는다. 그림을 글씨로 베껴놓은들 거기서 의미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여주기 방법의 극단이 초래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형식에 의존할 때는 그 형식이 시에 반영될 때 시에서 볼 수 있는 효과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계산하고 차용해야 한다. 이 시집의 시들 역시 이런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를 그림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에 의미 파악이 쉽지 않고, 그것을 형식 실험의 부산물이라고 강변한다고 해도, 시각 이미지가 강화될수록 의미가 뒤따르지 않으면 뜻 없는 이미지만이 남게 된다. 이런 건 말장난처럼 보이기 쉽다. 형식이 새롭거나 실험하려는 의도이면 그것이 그렇게 된 불가피한 사연이 있어야 하는데, 시의 형식을 어렵게 풀어본 것 이외에는 별로 볼 것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윤회의 상상력으로 접근한 어패류에 관한 시는 그 난해도에 견줄 때 정작 그 난해함을 뚫고서 잡아낸 결론은 허망할 지경이다. 정선의 그림에 관한 시 역시 그림을 글로 베꼈다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그때 어떤 의미가 시로 살아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언어가 여전히 그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도 즐길 만한 것이지만, 이런 시도는 이미 많은 시에서 본 것이다. 요컨대 그런 형식 실험에서 시의 긴장을 어떻게 퉁겨줄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퉁겨줌이 반응을 일으키는 지점은 형식만이 아니라 의미까지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험은 늘 어려운 것이다. 한자는 성공하기 어려운 장비이다.★★☆☆☆[4337. 7. 1.]

 

693□렌의 애가□모윤숙, 영인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

  소화 12년, 즉 1937년에 이런 시집이 나왔다는 것은 문학사에서 볼 때 묘한 울림을 갖는다. 일제의 통치가 강화되어 국내에는 저항세력들이 거의 소멸되어 가던 시기이니, 그런 영향일까? 문제의 초점이 현실을 부정하고 지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해 넋두리로 일관하고 있다. 시대의 우울한 정황이 이러한 일탈된 세계를 만들어냈을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조선의 여인이고, 이미 결혼한 남자를 그리워한다. 그러다가 이국 땅에서 삶을 마감하는 듯한 분위기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당시 통용되던 도덕관념을 염두에 두고 쓴 듯하다. 그런데 산문시의 전통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의 호흡으로 긴 시를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시 전체에 걸쳐서 격정이 넘치고 있다. 전체의 구조는 밋밋한 것이 흠이지만, 감정이 시를 밀고 가는 그런 형국이다. 그런 점에서 일정한 줄거리를 갖고 있지만 서정시에 가깝다. 섬세한 감수성이 곳곳에서 돋보이기까지 하여 실패한 사랑에 대해 노래한 시로는 특별히 손꼽을 만하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라든가 통념에 대한 내용들이 시에서 굴절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서 좀 아쉽다. 호흡이 긴 시를 쓸 때는 현실을 시에서 어느 정도 드러내주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대한 고려가 거의 안 되었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제목이 “렌의 애가”이니, 등장하는 <시몬>이라는 인물은 <렌>의 연인이겠다. 렌이니 시몬이니 하는 것은 서구 취향이어서 당시 이 시인의 감성이 어떤 방향으로 흘렀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토착화되지 못한 정서는 기름방울처럼 물위에 떠있다. 그것을 선구자의 그것으로 만드는 것은 책상머리 이론가들일 것이다.★★☆☆☆[4337. 7. 5.]

 

694□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268, 문학과지성사, 2003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의미를 끌고 다니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설명해버리고 나면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이미지가 함축하는 바를 찾는 일이 중첩되어 오히려 시의 주제를 파악하는데 방해가 된다. 특히 장소를 변경해가며 쓰는 시들은 자신이 왜 거기 와있는가 하는 것까지 설명하려 들면 시가 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의 많은 부분이 삶의 깨달음에 대한 번민을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로도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표현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말하는 자신 안에 어떤 답을 갖고 있는 것이 시에 활력을 준다. 단순히 의문을 던져서 무언가에 궁금증을 갖고 있다는 정도에 머물다가는 맥풀린 시가 되고 만다. 그것은 이미 종교에 다가가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던지고 끝내는 풀지 못한 암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집 전체를 읽어보면 그렇게 동경하는 그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 어딘지 모르고 방황하는 것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것을 어떤 깨달음의 체계에 빗대어 아는 체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는 것, 그래서 입을 여는 것조차도 편견이요 착각인 것이 그 세계인데,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는 것은 우매함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상상력은 아름답지만 도착지점도 아닌 곳에서 상상을 끊는 것은 참혹할 따름이다. 시든 도든 설명하려 들면 안 되는 법이다. 화두는 그 세계를 아는 자들이 쓰는 말이지 최소한의 성실성도 갖추지 않은 자들이 만지는 장난감이 아니다. 이 경우 최소한의 성실성이란 침묵이다.★★☆☆☆[4337. 7. 5.]

 

695□풀나라□박태일, 문학과지성시인선 263, 문학과지성사, 2002

  시를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이다. 운율, 이미지, 시어, 상징……. 이 중에서 특정 요소에 집착할 때 생기기 쉬운 것은 불균형이다. 어떤 것은 다리가 너무 길고 어떤 것은 대가리가 너무 크다. 그렇게 돼 가지고는 제대로 된 시가 못 된다. 물론 특정 요소에 집착하는 것은 다 사연이 있다. 음악성을 추구하겠다던가, 민족어를 빛내겠다던가 하는 그런 사연들 말이다. 그러나 시는 시인 만큼 민족어든 운율이든 그것이 시를 일단 빛내는 방향으로 작용해야지, 그것이 시의 전체 균형을 허물면 좋은 시가 되기 어렵다. 이 시집의 시들은 시어와 운율에 크게 집착했다. 운율이야 탓할 것은 못되지만, 시어에 대한 집착은 의미의 결핍을 낳는다. 의미가 물러나면 시는 모호해진다.★★☆☆☆[4337. 7. 5.]

 

696□박목월 시 전집□이남호 엮음, 민음사, 2003

  9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시집이다. “청록집”의 시들을 빼놓고는 별로 보잘 것이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을 만큼 큰 이름의 시인치고는 작품의 양이나 수준이나 너무 소품이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우선 눈에 띄는 결함은 시에서 현실이 거의 증발하고 없다는 점이다. 개인의 소심한 생활을 쓴 것들이 간간이 있을 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정서가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은 주제의 빈약과 맞물려있다. 중반 이후 주제가 제법 뚜렷해지면서 시로서 알찬 수확을 보여주는 부분은 “크고 부드러운 손”인데, 이 부분의 시들은 찬송가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깨달음이 그때 와서 그랬을 것인데, 시로서는 너무 늦은 셈이다. 시가 다루어야 할 것은 생활 저 너머의 어떤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평생의 시작 경향을 결정한 듯하다. 다만 시어를 고를 때 함부로 생각을 담아내지 않고,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선택한 태도는 거의 연금술사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4337. 7. 6.]

 

697□타오르는 책□남진우, 문학과지성시인선 244, 문학과지성사, 2000

  시각 이미지를 주된 방법으로 활용하는 시들은 짧은 구도 가지고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작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시각 이미지들이 주로 보여주기만 할 뿐 직접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란 시인이 제시를 하면 독자들이 그것을 자신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하여 그 의미를 해독하는 기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짤막한 제시로 끝나고 나면 독자들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되다 만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자꾸 시가 길어지는 것이고, 마침내 대작의 충동에 빠져서 결국은 성공한 시인은 ‘황무지’ 같은 대작을 쓰게 된다.

  이 시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에서 나온 시집이다. 할 말을 직접 못하기 때문에 맥풀린 제시로 끝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짧은 시에서 시각 이미지의 제시로 성공하려면 그것이 상징성까지 아울러 동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의미를 동반하지 않은 채 이미지만 제시되고 있고, 그 이미지를 조합해 보아야 풍경 묘사에 그치고 마는 수가 많다. ‘족장의 가을’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고, 절반 이상의 시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 따라서 대작을 쓰던가 상징으로 건너가던가 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 지금 상태 가지고는 주제의 빈곤을 극복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미지의 조립이 너무 논리에 따르고 있어서 독자가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한 단위로 풍경이 제시되는데, 그 풍경이 담아낼 내면 풍경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풍경화로 머물고 만다. 말하자면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마음속의 그림은 읽는 사람의 정서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뒤를 짜 맞추는 논리성이 시에서 어떤 효과를 주는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명징한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어떤 효과를 위해 종사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4337. 7. 6.]

 

698□시를 쓰기 위하여□김연신, 문학과지성시인선 177, 문학과지성사, 1996

  사물을 보는 눈이 독특하다. 그러나 그 독특함이 시의 본령이라고 믿는 것은 시를 일그러뜨리는 원인이 된다. 형식에 집착하면 자칫 눈이 세 개가 생길 수가 있다. 괴상하다는 측면에서는 구경할 만하지만, 그런 얼굴 가지고 살기는 참 피곤한 일이다. 시가 독특한 것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이다. 무조건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 시집 전체를 밀고 가는 중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렇게 할 필요란 내용의 호응을 말한다. 독특한 방법이 지배하더라도 어차피 보여주어야 할 그 무엇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자는 네 번째 눈이다.★★☆☆☆[4337. 7. 6.]

 

699□한없는 밑바닥에서□장영수, 문학과지성시인선 246, 문학과지성사, 2000

  방법 없음도 시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것이다. 혼돈을 지향하는 어떤 세계를 노래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중년이 현실과 과거를 돌이켜보는 세계이다. 그렇다면 방법 없음은 방법이 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각 덩어리를 떠오르는 대로 행을 갈라 나열해 놓는다면 그것을 제대로 된 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햇빛이 얼굴에 정면으로 쏟아진 순간’ 같은, 그럭저럭 읽을 만한 작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다. 한자는 그 함량마저 줄인다.★☆☆☆☆[4337. 7. 7.]

 

700□허공□문충성, 문학과지성시인선 252, 문학과지성사, 2001

  의욕이 앞서서 소화되지 않은 채로 이미지들이 쏟아졌다. 특히 제주의 역사와 관련된 사건들과 제주의 자연을 시 속에 끌어들이려고 애쓴 표정이 역력히 보이는데, 거기에다가 어떤 이야기와 주제를 넣을 것인가 하는 것이 아직 분명치 않아서 소재를 제공하는 데 급급했다. 특정 사건이나 사물은 그것이 시로 승화되는 계기가 꼭 있어야 한다. 그냥 제시만 해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인 체험이든 사고이든 그것과 연관이 되어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않고 낱말이나 이미지만 제시되면 그것이 결국은 시를 이루지 못하고 물에 뜬 기름처럼 감정의 위쪽에서 둥둥 떠다닐 뿐이다. 어떤 부분에서 접근해야 시 안으로 이미지가 들어오는가 하는 것을 좀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빼야 할 이미지이다.★★☆☆☆[4337.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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