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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시모음
2015년 04월 13일 21시 24분  조회:5751  추천:0  작성자: 죽림

<축구에 관한 시 모음> 

+ 축구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침묵과 비명만이 
극치의 힘이 되는 
운동장에 가득히 쓴 눈부신 시 한 편 
90분 동안 
이 지상에는 오직 발이라는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 
(문정희·시인, 1947-)


+ 공 이야기

날개 없이
45분간의 비상
눈물 없이
45분간의 번민
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 수평선들 휘감기고
무수한 입술의 인간 육신이  빚어낸 듯
관중석에선 고통도 낙담의 두려움도 들려오지 않는다
적도 형제도 포옹케 하는
최후 영웅의 무르익음
(카티 라팽·프랑스 여류시인)


+ 절대로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스위퍼에게 늑골과 비골을 강타당해보지 않았다면 고통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진정한 동네축구를 해보지 않았다면 즐거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추가 시간 때문에 게임에 져보지 않았다면 눈물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뒤에서 태클당한 동료 때문에 악다구니를 써보지 않았다면 연대감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골문을 향해서 날쌔게 돌진해 보지 않았다면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가차없이 차가운 운동장 바닥에 쓰러져 보지 않았다면 수치심이 무엇인지 알겠니. 
결코 프리킥 벽을 쌓아보지 않았다면 우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방문 경기에서 승리의 구보를 해보지 않았다면 오르가슴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팀을 이루어 경기를 해보지 않았다면 좌파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경기장에서 "죽어라 검둥이"라는 외침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혼자 승리한 것으로 착각한 경험이 없었다면 이기심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윙으로 뛰어보지 않았다면 주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홈팀 심판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아보지 않았다면 불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슬럼프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불면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결코 자살골을 넣어보지 않았다면 증오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친구야, 네가 결코, 정녕, 볼을 차보지 않았다면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 
(월터 사아베드라·아르헨티나 축구해설자이며 시인) 


+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
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
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
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
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
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
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
때리거나 던지거나 차거나
공을 다루는 재주가 아예 없는 내가
0이 주 개 붙은 2002년 6월
느닷없이 사람들에 치이며
광화문 거리를 비집고 들어가
대애안∼미인구욱!
엇박자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질러댔다
월드컵 4강, 독일과 한 판 붙을 때는
운 좋게 상암구장 목 좋은 자리에서
머리 흰 붉은 악마가 되어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돼지오줌깨나 새끼줄 뭉치를 차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우리 젊은이들이 겁도 없이
월드컵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이제 두 달도 안 남은 6월을 기다리게 됐고
다시 한 번 거리에 나가
악마들과 손뼉을 치며 발을 굴리고 싶은 것이다.
날개가 없이도 잘도 나는
바람둥이 공을 두고
헛발질도 못하는 내가.
(이근배·시인)


+ 똥볼

축구시합 하러 운동장으로 나갈 때 
내가 코딱지를 파먹으면서 
개미 똥구녁 맛 같다고 하니까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여자 부반장 복실이가 
멥쌀눈을 흘겼다 

나는 동해물팀 공격수 
등번호 9를 달고 냅다 달렸다 
찬스를 잡아 슛을 했는데 
아뿔사! 똥볼이 됐다 
복실이가 메롱메롱 놀렸다 

날아가던 황새가 
똥볼에 놀라 물똥을 찍 쌌다 
동해물! 장백산! 
배고픈 아이들이 
악머구리떼처럼 소리쳤다 

오늘 축구시합은 
복실이 때문에 
재수 옴 붙었다 
동해물팀이 
3대 빵으로 깨졌다 
(오탁번·시인, 1943-)


+ 로스 타임

내 내부에
진흙탕에 더러워진 손수건 같은
운동장 하나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공기가 빠진 축구공이 하나
방치된 채로 있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상한 과일처럼
풀밭에서 굴러온 공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우리 개구쟁이들은, 그러나
쇠약해진 동물을 못살게 굴며
올가미에 몰아넣듯이 골을 향해
매일매일 공을 차며 놀았다

그날들의
뒤엉켜 뛰어 돌아다니던
잔인하면서도 쾌활한 그림자가 배어있는
방과 후의 운동장

언제나 머리 위에 있어
스스로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것
우리들이, 진정 발로 차고 싶었던 건
황금의 태양이  아니었을까

눈을 감으면 
두 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골대가
그림자와 더불어 기울고 있다
저편 아득히 풀숲이 그늘져 있다
(혼다 히사시·일본 시인)


+ 축구하는 시

시는 구르는, 잔디 위에
인생을  굴리는 게임 같은 것.
악운을 거스르기 위해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처럼,

시는 큰 화재 같은 것. 그곳에서
신의 사자(使者)들이 모든
믿음을 배제한 채 오직 스타디움의 강령에 의해
합창으로 사원을 불사르는 곳.

시는 세 개의 기둥으로 된 활.
마치 11개의 발자국으로 영광과
최고형의 징벌의 지옥을 넘나드는
기요틴 같은 것.

시는 둥근 신성을 케이블로
연결한 눈물 같은 것.
종국에는 수도 없는 페인팅의 밤으로
아이들의 웃음으로 끝나는 어떤 것.

시는 무한한 실수에 태연한 채,
울타리도 없는 운동장에서
골 연습에 열중하는 아저씨 바로 당신,
아니면, 아주머니 바로 당신.

시는 바로 완곡어법 없이 굴러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 모두로 하여금
올림픽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
(호세 루이스 킨테로 카리요·멕시코 시인) 



너도 나도 붉은색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하고, 오로지 하나의 패션으로 만들어 준 것은 정치도 경제도 문학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축구이다.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이근배,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중).

    축구는 이처럼 우리 삶을 성찰하는 시가 되었다. '시의 문법, 축구의 문법'은 축구에 대한 세계인의 교감과 시적 관심을 압축하고 있다. 이근배 이성부 오탁번 문정희 이장욱 등 한국시인 다섯 명을 비롯해 프랑스, 멕시코, 아르헨티나, 일본, 독일  시인들의 축구에 관한 시. 축구와 문학의 상관관계를 다룬 시들.

    무엇보다 외국 시인들이 시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대중의 서사시로, 삶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놀이로, 유년의 원형적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여류시인 카티 라팽은 "날개 없이/45분간의 비상/눈물 없이/45분간의 번민/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 수평선들 휘감기고/무수한 입술의 인간  육신이  빚어낸 듯/관중석에선 고통도 낙담의 두려움도 들려오지 않는다/적도 형제도 포옹케  하는/최후 영웅의 무르익음"('공 이야기' 중)이라며 축구경기를 인생의 서사시로  엮어낸다.

    멕시코 시인 호세 루이스 킨테로 카리요는 "시는 구르는, 잔디 위에/인생을  굴리는 게임 같은 것"이라거나 "시는 바로 완곡어법 없이 굴러가는/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우리 모두로 하여금/올림픽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축구하는 시' 중)이라며 축구를 시로 승화시켰다.

    일본 시인 혼다 히사시는 "가난했던 소년 시절/상한 과일처럼/풀밭에서 굴러온 공은/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중략)/언제나 머리 위에 있어/스스로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것/우리들이, 진정 발로 차고 싶었던 건/황금의 태양이  아니었을까"('로스 타임' 중)라며 축구를 통해 유년시절의 꿈을 추억한다.

    독일 시인 라인하르트 움바하는 "멍청한 공이 회전을 시작합니다 기류를 뚫고요./우린 모르겠습니다, 그 모두가 어디에서 왔는지./마냥 불가해합니다, 우주보다  더요/그런데 갑자기 수천 명이 욕하는 소리 들려 옵니다,/움짓움짓 골기퍼 뒤에서  놓인 것을요, 공요"('멍청한 긴 패스' 중)라며 자살골을 넣은 선수가 야유를 받는  상황을 풍자적 어법으로 그렸다.

    축구에 대한 시와 노래가 들어 있는 시집 '공의 업적'을 낸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해설자이자 시인 월터 사아베드라는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뒤에서 태클당한 동료  때문에 악다구니를 써보지 않았다면 연대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경기장에서 '죽어라 검둥이'라는 외침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절대로' 중)라며 공을 차보지 않고는 인생을 알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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