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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다. 꽃 한 송이 내 피를 떠돌았다. 내 마음은 바이올린이었다.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 나를 사랑해주었다. 봄, 맞잡은 두 손, 행복함에 나도 즐거웠다.
내 말은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새 한 마리 눕는다. 꽃 한 송이. 바이올린 하나.)
**시집: 《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지》
후안 헬만(Juan Gelman) :
기억과 망각 속에서 나는 쓴다 '나를 주는 것은 아픈 일'
여덟 살 소년은 이웃집에서 사는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소녀를 위해 좋은 시를 적어 보냈다. 그래도 소녀의 사랑을 얻을 수 없자 결국 본인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소녀의 마음은 얻지 못했지만 열한 살 소년의 시는 문학잡지에 실린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시인이라고 선언하고 그날로 대학을 중퇴한다. 그리고 청년공산당 동료들과 함께 '딱딱한 빵' 동인을 결성, 시 낭송회를 연다. 그러나 부조리한 세상과 타협을 거부한 그는 공산당과도 결별하고 극우 무장단체의 협박 속에 강제로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다. 그에게 붙여진 혐의는 국가반란죄. 그는 13년 동안 숱한 나라들을 전전하며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에 대항한다. 파블로 네르다 문학상, 세르반테스 문학상에 빛나는 후안 헬만, 그가 의지한 것은 언제나 시였다. 이웃집 소녀를 사랑할 때처럼 시는 세상에 대한 그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보고 고르라고 한다면, 난 우리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 수 있는 이 건강함을, 이렇게 불행하게 살 수 있는 행운을 택하리라. |
후안 헬만( Juan Gelman, 1930~)
2010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을 예정이던 지난 10월 7일 해거름, 조선일보 문학 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르헨티나 시인 후안 헬만(Juan Gelman)이 유력한 노벨상후보라는 것. 미리 대비해 글을 준비해줬으면 하는, 이르자면 원고청탁이 그 내용이었다. 놀라왔다. 고은 시인과 시리아의 아도니스, 일본의 하루키 등이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후안 헬만은 다소 예외였기에. 하지만 많은 부분 놀라움은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왔다. 다름 아닌 그와의 친분 때문.
소위 비판적 사실주의(realismo crítico) 작가인 헬만의 시는 다분히 공격적이다. 그의 시가 많은 부분 저항을 다루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저항의 시대가 아닌 평화의 시대에도 그의 시는 당시 서정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1956년 그의 첫 시집 ‘바이올린과 다른 문제점들(Violín y otras cuestiones)’은 당시 중남미의 네루다풍 서정시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는 처음부터 네루다식 전통 서정시와는 거리를 두었다. 1963년, 탱고(Tango)를 거꾸로 한 시집 ‘고탱’(Gotán')'은 말로만 변화를 얘기해선 안 되고 실제로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하던 시대였던, 소위 신인간주의 문학 시대의 작품이다. 중남미에서 헬만의 민중일상서정시는 마치 맞춤복처럼 시대적 각광을 받기에 이른다. 파블로 네루다풍의 시들로는 그 혁명적, 혁신적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헬만은 시집 ‘고탱’에서 일상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의 조화와, 일명 탱고적 수사와 리듬이 자아내는 소위 헬만류 상호텍스트성을 선보인다. 감상(感傷)과 요염(妖艶)으로 풀이되는 대중적 철학의 우수(憂愁)가 깔린 탱고의 부드러움이, 딱딱한 현실적 소재와 주제를 보다 더 부드럽게 만들어, 독자의 읽는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네루다의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El Canto general)’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메타포나 리드미컬한 음악성은 보이지 않지만, 시집 ‘고탱’에는 독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일상생활 회화체 문장이 갖는 현장감과 생동감, 풍자, 유머 등이 살아 있다.
남자 하나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피를 숟가락으로 담고 있다 친애하는 후안 결국 넌 죽음에 이르렀구나 부드럽게 젖은 너의 조각들도 이젠 너에게 소용없구나
바늘구멍 사이를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었니 네가 도망치지 못하게 아무도 손가락으로 막질 않았구나
사망전후, 그는 그의 뼈에 기댄 채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제 너를 내려놓는다, 동생아 너로 인해 땅이 떨고 있다 우린 지켜볼 것이다 불멸의 광기에 밀려서 어디로 네 손들이 다시 튀어 나올 것인지를
시‘마지막’(Final)전문
‘후안’은 우리의 ‘철수’처럼 중남미의 평범한 남자이름이다. 그리고 사실(Fact)에 관한 한, 그냥 신문기사를 넘겨보는 정도로만 묘사되어 있다. 독자는 피해자로서, 혹은 가해자 또는 공범으로서 좀 더 정교하고 자상한 해석을 가하면서 생략 된 사실부분을 스스로 완성해나가야만 한다. 즉 바르트가 말하는 독자 또한 단순한 수용자에서 벗어나, 작가의 기호와 자신의 독서행위간의 대화를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도출해 낼 수 있는 ‘텍스트의 즐거움’을 맛보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첫 연의 첫 번째 행은 마치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세 번째 행에선 살해된 남자를 2인칭으로 부르며 혼잣말을 하고 있다. 다시 3연에 와선 3인칭 단수가 피살자가 된다. 그리고 다시 피살자가 2인칭이 되는 마지막 연은 그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독자들을 향해 던지는 화두이다. ‘우린 지켜볼 것이다./ 불멸의 광기에 밀려서/어디로 너의 손들이……’ 그의 손들, 그것은 살해된 이의 불멸성을 의미하며, 죽은 자를 따르는 모든 산 자들이 그러하리란 것을 의미한다. 그 화두는 두 말할 것 없는 ‘저항’이다. 다음에 소개할 시 ‘내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선 그 ‘저항’이 은유 없이, 여과 없이 직선적, 평면적으로 노출된다. 장소적 배경은 물론 사랑하기도 쉬웠지만 고문당하기도 쉬었던, 1960년대 중남미대표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헬만은 ‘밑 빠진 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정신없이, 아픈 몸으로, 거의 살아있는 상태로/ 내가 태어난 도시를 위해 먼저 울음 운 시들을’옥중에서 썼다.
밑 빠진 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정신없이, 아픈 몸으로, 거의 살아있는 상태로 내가 태어난 도시를 위해 먼저 울음 운 시들을 쓴다 그 많은 시련 속에서도 내 사랑하는 아들들이 여기서 태어났다고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아름답게, 달콤하게 ……써야만 한다
도망치거나, 남거나, 하질 않고 저항하는 법을…… 더 많은 시련, 형벌, 망각이 있을지라도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써야만 한다
- ‘내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Mi Buenos Aires querido)’ 전문
199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했을 때다. 시내 박물관 옆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선 난, 깜짝 놀랐다. 탁구 점수표 같은 가격표 때문. 시간별로 끝자리를 올려 아이스크림 가격을 수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옷을 사러갔다가 흥정하는 사이 물건 값이 올라 구입치 못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연간 1,000% 이상의 인플레이션, 10,000페소 자리 지폐를 찍어내기 위해 몇 배의 돈이 들어갔기에, 돌아오는 지폐에다 0을 덧붙여 다시 유통시키던 시대. ‘이빨을 위한 빵도 없는 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다음 시는 적나라하게 직설한다.
아버지, 하늘에 계신, 이제 그만 내려오슈
불쌍한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기도문도 잊어버렸소 불쌍한, 지금은 잠든, 씻을 필요도 없게 된, 옷을 얻기 위해 거리를 헤맬 필요도 없게 된, 부드럽게 투덜대며 밤 새워 당신에게 먹을 것을 구하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이제 그만 내려오슈 잠시 내려와 이 모퉁이에서 굶어 죽어가는 날 좀 보슈 무슨 소용으로 태어났는지 직장도 없이, 빈털터리 손을 바라보는 날 좀 보슈
잠시 내려와 보시라니깐요 이 낡은 구두를, 이 텅 빈 창자를, 이빨을 위한 빵도 없는 이도시를,. 몸은 불덩이처럼 열이 오르고 쏟아지는 빗물 아래 파고드는 송곳추위. 한번 내려 오슈, 제발 내 영혼을 만져주고 가슈, 제발
난 훔치지 않았어요 죽이지도 않았어요 마냥 어린애였어요 하지만 날 때려요, 때린다구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계신다면 내려와 보슈, 제발 아님, 공수병에 걸릴래요 전염시킬래요 목에 피가 솟도록 소릴 지를래요
-시 ‘어느 실업자의 기도(Oración de un desocupado)’ 전문
아르헨티나는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25~)의 공포정치로 그 후 약 3년간 일명 '치옥의 전쟁'(Dirty War) 통에 빠진다. 의회를 해산하고 법관의 80%를 군인으로 교체한 군사평의회(Junta)는 일부 중요한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곤 무구한 시민들을 연행, 투옥, 고문, 사형시켰다. 명분은 좌익 게릴라 척결이었지만 실은 반대세력을 무자비 탄압하기 위한 조치였던 바, 그 희생자 수는 무려 3만여 명에 이른다. 리오 델라 플라타.(Río de la plata)강, 스페인어로 은(銀)의 강이란 뜻. 그 은빛 물결은 핏빛이 돼버렸다. 마약을 먹인 뒤 발가벗겨 무자비하게 비행기에서 떨어뜨렸다. 카리브 해로 흘러들어가는 이 강구에 수 만 명이 수장되었던 바, 은퇴한 한 해군 조종사의 1995년 '비행' 이란 제하의 고백서에 따르면, 그가 복무하던 공군기지에 매주 수요일 수 십 명의 희생자들이 실려 왔으며, 자신의 부대에서만 최소한 2,000 여명이 대서양 한 가운데 던져졌다는 것이다. 임산부는 뱃속애기를 빼낸 뒤 던져졌으며, 애기는 강제입양 당했다. 바로 후안 헬만의 며느리, 마리아 클라우디아(María Claudia)가 그 희생자 중 하나이다. 뱃속의 애기는 우루구아이에 입양되었으며, 그녀의 시체는 카리브 해 물고기 밥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가득이나 공격적인 헬만의 시는 한층 더 공격적인 어조를 띠기 시작한다.
네 이름을 부르리 밤이나 낮이나. 난 너와 잠자리를 함께하리 난 네 그림자와 성교하고 난 네게 내 미친 심장을 보여주리
난 널 미치광이처럼 짓밟을 것이며 난 파코와 함께 널 죽일 것이며 로돌포와 함께 널 죽일 것이며 아롤도완 너를 죽여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며 내 아들과는 너를 내 아들의 아들과는 너를 디아나와 함께 난 너를 호떼와 함께 난 너를 너를 일백 번 죽이기 위해 사랑하는 얼굴이 필요치 않으리
네가 죽을 때까지 난 너를 죽이리 내가 너를 죽이리
-시, 기록 Ⅰ (Nota Ⅰ) 전문
난 이미 내일 죽었거든 난 그저께 죽을 거야 날카로운 칼로 76을 파버릴거야 파코의 뿌리를 깨끗이 하기 위해 파코의 잎새를 깨끗이 하기 위해 망가진 노새처럼 땅에 박힌 날 도와주려했던 사람들, 후에 77이 되고 로돌포의 눈들을 만나기 위해 지금은 텅 빈 시선들, 뼈를 씻어야할 거야 사라지는 그림자완 거래를 하지 않을 거야 가슴, 뼈 위에 뿌려지는 흙, 차가운 땅바닥에 누인 친구들이여, 용기를 다오 그림자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는구나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몸 어느 부분을 멈추게 할 순 없지 심장도 낱말도 낱말, 심장도 친구들이여
- 시, 기록 Ⅱ(Nota Ⅱ) 전문
1976년은 아르헨티나 국치의 해다. 이미 ‘그들은 내일 죽었으며, 그저께 죽을 목숨’이었다.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들의 서러운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시인은 ‘날카로운 칼로 76을 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2,000년 말, 드디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루구아이에 입양되었던 외손녀 마리아 마까레나(María Macarena)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20여년 만에 외할아버지 후안 헬만과 조우하게 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내 중심에 위치한 대통령궁 정면엔 약 500평 남짓한 공원이 자리한다. 이름 하여 ‘오월광장’. 지금도 실종자 가족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곤 자식을 돌려달라며 하염없이 침묵의 원(圓)을 그린다. 그녀들이 바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가족모임인 우리의 ‘오월어머니회’의 모태인 아르헨티나 ‘오월광장 어머니’회원들이다. 올 1월 초, 필자는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 차 그곳을 들렀다. 오월광장어머니회 회원들과의 면담을 위해서였다. 이어서 달려간 곳이 바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신공항부근에 위치한 군사학교(군정시절엔 헌병대였다). 담벼락에 걸려있는 설치예술품들. 젊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 적힌……. 에칭으로, 판화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겉모양새야 어찌되었던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심장이 따갑도록 말해주고 있었다. 그중에는 열네 살 소녀도 있었고 열아홉 임산부도 있었다. 파코(Paco), 로돌포(Rodolfo), 아놀도(Anoldo), 디아나(Diana), 호테(Joté).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설치물들엔 벌건 녹이 끼여 있어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듯 담벼락을 지날 땐 음산한 기운마저 느꼈지만, 쇠붙이에 붙은 녹 덩이가 어찌 그들이 흘린 피보다 더 진할 수 있겠는가. 희생된 ‘파코의 뿌리를, 파코의 잎새를 깨끗이 해주기 위해’서라도 시인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그 어떤 것도 멈추게 할 수 없는’혁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난폭하게 요구한다 몇몇 이들은 그 광경을 좋지 않다고 여기고 한 남자, 미치도록 날고 싶어 하고 몇몇 이들은 그를 이상하다, 아프다 생각하고 한 남자, 혁명을 갈구하고 마른 벽을 오른 뒤, 가슴을 열고선 심장을 꺼내 헌병대의 의견에 반대하며 한 여인을 향해 마구 흔들어대고
마침내 한 남자 세상의 지붕 위를 정신없이 날자 사람의 마을은 불타오르기 시작하고 ‘고탱(Gotán)’의 깃발, 타오르기 시작하고
- 시, 의견들(Opiniones) 전문
멕시코는 스페인어 권 망명문인들에게 관대하다. 레온 펠리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사울 이바르고옌, 그리고 후안 헬만. 세계적인 문인들이 멕시코에서 저작생활을 했으며, 하고 있다. 모두 조국에서 추방당했거나 망명한 작가들이다. 헬만과 필자와의 첫 만남은 1997년 어느 봄날, 필자의 또 다른 친구, 우루구아이 시인 사울 이바르고옌이 주간으로 있던 멕시코 엑셀소르(Excelsor)신문사에서 이루어졌다. 1930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익히 아는 바처럼 남미출신의 대표적 저항시인들이다. 각자의 조국인 우루구아이와 아르헨티나에 민주정부가 들어섰건만 앞서 말한 바처럼 아직도 그들은 멕시코에서 생활한다. 이바르고옌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멕시코도 이만하면 자기 조국이 아니냐고 한다. 헬만에게 이유를 물으니, 답이 더 괴짜다. 멕시코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기 때문이란다. 저항시인들의 답치곤 너무나 알량하다. 하지만 그들만의 여유 있고 이유 있는 저항 방식에서 우러나온 현답이 아닐까 한다. 끝으로 바이올린 심장을 가진 친구, 후안 헬만을 위해 쓴 졸시 한 편을 덧붙인다.
지금쯤 아르헨티나에 있었으면 하는 자네에게 편지를 쓴다네 편지여백에 암소 한 마리와 당나귀 한 마리를 그려 둠세 자네가 이 편질 읽을 즈음 암소의 젖에선 자네가 좋아하던 Alpura표 우유냄새가 풍기고 유난히 크게 그려질 당나귀 귓바퀴에선 아, 에, 이, 오, 우 우리시절의 인사가 성탄종소리처럼 풀어졌으면 하네
아 참, 자네 침실 앞 쓸쓸한 망고나무를 위해 새 한 마리 그려 넣는 것도 잊질 않겠네 하지만 색칠은 자네가 하게 시절이 빨간색을 원하면 빨갛게 노란 색을 원하면 노랗게 아님 그냥 편지지색으로 두든지 그래도 자넨 파란색으로 칠할 걸세 색깔이 다르다고 새소리까지 다르겠냐는 둥 엄살스런 군더더기까지 붙이며 말이야
참 자네 심장은 바이올린이랬지 언제 꽃 한 송이 자네 혈관 편으로 보내겠네 그 향기 또한 자네가 정하게 손으로 만지는 향기 귀로 듣는 향기 눈으로 보는 향기 하지만 자넨 쉬 권태에 빠질 코를 위한 향기는 원치 않을 걸세
언젠가 페론의 마누라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지어다’ 시건방 떨 때 자네의 눈은 아르헨티나를 위해 피눈물 흘렸고 자네의 입은 아르헨티나를 위해 또 울부짖었지 죽을 때도 서서 죽은 ‘체 게바라’처럼 천만 번 죽어도 결코 무릎 꿇지 않으리라…… 결국 자네 심장이 켜대던 음악으로 아르헨티나의 귀는 뚫리지 않았나
역시 자네 군더더기엔 질퍽한 향기가 있네 그려 이제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도 살만 하지 않냐는 질문에 자넨 답했지 바이올린 심장을 뜨겁게 연주해 줄 여인이 더 이상 그곳엔 없다고…… 더구나 연주회는 밤낮 열려야 한다고 친구여, 미구에 자네의 그 바이올린 심장을 나에게도 차용해줄 수 없겠나 비록 연주해줄 여인은 없지만
아무튼 이 편지는 아르헨티나로 갈 걸세. 잘 있게
2006년 1월 9일
바이올린 심장도, 연주해줄 여인도 주위에 없는 친구, 광렬
페론당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아르헨티나정부는 헬만을 사면 복권시켜준다. 1989년, 그의 귀국은 성대했다. 도처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은 ‘유토피아는 시와 함께 온다.’란 켓치플레이즈를 걸고선 거장시인의 귀국을 진정으로 환영했다. 아르헨티나 ‘국가시인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헬만은 “난, 시를 쓰지만 군인이다. 단지 비무장일 뿐. 모든 시인에겐 인류를 위한 보다 나은 길을 개척할 의무가 있다”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수상의 영광을 군부독재아래 희생된 아름다운 영혼들에게 돌린다는 말도 잊질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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